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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한국 해군사관학교의 해양체육프로그램 변천사(194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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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군사관학교의 해양체육프로그램 변천사(1946-2021)

A Study on the Transformation of Marine Sports Program in the Korean Naval Academy

이태희 ( Lee Tae-hui ) , 안진규 ( An Jin-kyu )
  • : 한국체육사학회
  • : 체육사학회지 27권3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9월
  • : 19-36(18pages)
체육사학회지

DOI


목차

Ⅰ. 서 론
Ⅱ. 연구방법
Ⅲ. 해양체육프로그램의 도입·적용기(1946∼1978)
Ⅳ. 해양체육프로그램의 성장기(1979∼2009)
Ⅴ. 해양체육프로그램의 정착기(2010∼2021)
Ⅵ.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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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문헌분석방법을 사용하여 1946년 해군사관학교 개교부터 2021년까지의 해양체육프로그램의 변천 과정과 그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도입·적용기(1946-1978)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해군 장교 육성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관생도에게 해군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해양성 강화와 해상 생존능력을 높이고, 협동심 및 도전정신 등의 리더십을 배양하여 최정예 해군 장교로 성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둘째, 성장기(1979-2009)는 해양체육과를 신설하는 등 수업으로서의 해양체육프로그램 강화와 함께 사관생도 개인의 적성에 맞는 해양스포츠를 선택하도록 다양한 해양체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해양스포츠에 유능한 해군 장교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셋째, 정착기(2010-2021)는 도입·적용기와 성장기의 해양체육프로그램 성격과 내용을 포함하고, 보다 체계적이며 강화된 해양체육 수업 운영과 함께 군사훈련으로의 해양체육프로그램 확장을 통해,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며,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세계 일류 해군 장교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transition process of marine sports from the opening of the Korea Naval Academy in 1946 to 2021. The following conclusion was reached. First, in order to achieve the purpose of fostering naval officers, the introduction and enemy courage (1946-1978) focused on strengthening the maritime nature and the ability to survive in the sea, and cultivating leadership such as cooperation to grow into the best naval officer. Second, the growth period (1979-2009) focused on fostering competent naval officers in marine sports, such as strengthening marine sports as a class, and providing various marine sports programs. Third, the 2010-2021) focuses on fostering world-class naval officers who live up to the era of globalization in the 21st century, protecting maritime sovereignty and contributing to international peace through the operation of more systematic and strengthened marine sports cl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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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2
  • :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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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권4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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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제강점기 전북 무용 교육 연구

저자 : 김은경 ( Kim Eun Kyoung )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3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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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무용 교육의 양태를 고찰함으로써 특징과 성격을 규명하여 한국 근대무용 교육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전북지역의 일제강점기 여학교 및 권번의 설립과 교육 활동을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이 파악할 수 있었다. 전북지역 여학교는 기독교 선교단체의 사립여학교와 관제에 의한 공립여학교가 설립되어 공통적으로 체조가 교육되었고 율동, 유희를 통해 운동회와 학예 등 특별활동으로 행해졌음이 드러났다. 반면 권번에서 시작된 실용목적의 예술무용 교육은 전통무용뿐만아니라 시대를 반영한 서양무용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무용 교육은 학교에서는 주된 교육없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권번에서의 무용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여성이 공식적으로 사회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후 무용문화에 역할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modern dance education in Korea by examining the patterns of dance education in Jeollabuk-do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to identify its characteristics and features. In order to achieve this purpose,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educational activities of the women's school and Gwonbeon, an institution established to train Gisaengs, established in Jeollabuk-do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was found as follows. First, most of the girls' schools in Jeollabuk-do consisted of private girls' schools established by Christian missionary groups and public girls' schools established by the government, where gymnastics was taught, sports events and arts were conducted as special activities, but there was no evidence that dance was taught. On the other hand, it was found that art dance education for practical purposes, which began in Gwonbeon, had been conducted in various forms, including Western dance, reflecting the era as well as traditional dance. Through this study, it was revealed that dance educ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passive without systematic education in schools, but rather, it was thoroughly conducted in Gwonbeon, providing women with an opportunity to officially enter society and contributing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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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제하 경찰과 강도관 유도 지도자의 활동 연구

저자 : 이승수 ( Lee Seung-s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3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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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하 경찰을 둘러싼 유도 지도자의 활동을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살펴보는데 있었다. 이를 위해 유도의 해외 보급 현황, 유도 지도자의 조선 진출, 경찰을 둘러싼 유도 지도자의 활동을 고찰했다. 연구방법은 문헌자료를 토대로 분석했고 선행연구를 원용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본에서의 유도의 급격한 성장은 해외 보급의 초석이 되었고, 가노(嘉納)와 그의 제자들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하여 조선에서의 유도 보급, 진흥에 노력했다. 유도 지도자는 경찰의 유도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대회 심사, 강연,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고, 한편 경찰은 유도 지도자의 활동과 관련한 제도적 지원을 했다. 이는 경찰과 유도 지도자가 상호 협력 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식민지 정책을 원활하게 전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경찰과 유도 지도자들에 의해 유도가 유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연구는 일본 유도의 해외 진출 역사를 연구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생각하고, 또한 유도 발달사를 재고하는데 의미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judo coaches associated with the police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in connection with the situations of the time. About research methods, literatures were analyzed, and advanced studies were quoted. The followings are the results. The rapid growth of judo in Japan formed in distributing and promoting judo in Joseon. Judo coaches did various activities such as judging at competitions, lecturing, and writing to meet the police's needs for judo while the police provided institutional support related to their activities. This means that the police and the judo coaches were in a mutually cooperative relationship. It also implies that judo was utilized by the police and judo coaches as a means of developing colonial policies favorably.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will contribute to reviewing the history of Japanese judo' overseas expansion and reconsidering the history of judo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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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천지역 치어리딩 발달사

저자 : 김지연 ( Kim Ji Yeon ) , 양현석 ( Yang Hyun Suk ) , 윤정욱 ( Yoon Jung Woo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47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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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천지역 치어리딩 발달사 연구로 국내 치어리딩 종목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문헌 연구 및 심층 면담의 연구방법을 실시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우리나라에서 치어리딩 종목은 2003년 대한치어리딩협회가 창설되면서 본격화 되었으며 치어업 코리아 치어리딩 페스티벌(치어업코리아오픈 치어리딩 대회),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치어리딩 축전 등의 대회로 치어리딩 종목이 도입, 발전되었다. 둘째, 대한치어리딩협회 창설 후 2014년 9개의 산하 협회가 신설되었는데 그중 인천 치어리딩 협회는 2018년부터 남동구, 부평구, 미추홀구, 연수구 등의 지부를 신설하면서 인천 내 치어리딩 종목에 많은 발전을 꾀했다. 또한 올스타팀 스콜피온의 대회참가 및 공연, 각 초, 중,고등학교의 스포츠클럽팀의 활동이 인천지역 치어리딩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인천 치어리딩은 협회, 산하 지부, 각종 학교 스포츠클럽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천지역 치어리딩 종목에 지대한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를 통해 앞으로 치어리딩 종목의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This study of the development history of cheerleading in Incheon conducted a literature study and in-depth interviews centering on the Incheon area, which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Korea and obtained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 in Korea, the sport of cheerleading began in earnest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 Cheerleading Association in 2003, and has been further developed through competitions, such as Cheer Up! Korea! Cheerleading Festival and the national cheerleading festivals among students' sports clubs. Second, after the foundation of the Korea Cheerleading Association, nine new affiliated associations were established in 2014. Among them, the Incheon Cheerleading Association has created its branches in Namdong-gu, Bupyeong-gu, Michuhol-gu, and Yeonsu-gu since 2018, trying to further advance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Incheon. In addition, the all-star team Scorpion's participation in competitions and performances, and the activities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sports club teams significantly affected the development of cheerleading in Incheon. Incheon Cheerleading has great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the region through the active activities of associations, affiliated organizations, and various school sports clubs. Going forward, it is expected to further accelerate the development of cheerl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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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조선씨름대회의 전개 양상과 영향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9-6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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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국적인 씨름대회의 효시인 전조선씨름대회가 한국 씨름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본 것으로,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기존 전조선씨름대회의 역사에는 개최 시기와 해석에 있어 오류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YMCA(1927-1937)와 조선씨름협회(1929-1934)가 각각 전조선씨름대회라는 동명의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한 결과였다. 두 전조선씨름대회는 씨름 경기의 대중적 인기와 근대적 조직화를 위한 자극제가 되었고, 씨름 인재들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전조선씨름대회는 한국 씨름의 전승과 확산을 위한 핵심적인 근간이 됨과 동시에 향후 전국적인 씨름대회의 모태로 기능했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impact of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the forerunner of the national ssireum competition,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ssireum,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It was confirmed that there were errors in the timing and interpretation of the previous Pan Joseon Ssireum competitions. This is because the YMCA (1927-1937) and the Joseon Ssireum Association (1929-1934) each held the tournament under the same name as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two Pan Joseon Ssireum competitions served as a stimulus for the popularity and modern organization of ssireum matches, and became the foundation for systematic fostering of ssireum talents.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erved as a key foundation for the transmission and spread of Korean ssireum, and at the same time served as the basis for future national ssireum com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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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세기 향사당의 변천과정에 대한 연구

저자 : 박근 ( Park G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7-80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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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점필재 김종직은 향사례의 구체적 시행을 위하여 유향소 복원을 성종에게 건의하게 된다. 따라서 복원된 유향소는 향사당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어지게 된다. 이후 향사당과 향사례는 현재 활터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론된다. 본 연구는 향사당의 변천과정 속에서 향사례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활쏘기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16세기에는 향사당의 전국적 분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사당의 교육적 기능 위주의 유형과, 유향소적 기능 위주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모두 _주례_의 향대부를 체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적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지역별로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향사당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향사당과 유향소가 분리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1593년 영현지역에 나타난 사계는 향사례를 복원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향사당의 변형적 형태인 것으로 확인된다.


In the early Joseon Dynasty, Kim Jong-jik suggested Seongjong to restore the Yuhyangso for the specific implementation of the Hyangsarye. Therefore, the restored Yuhyangso is called Hyangsadang. Since then, it is inferred that Hyangsadang and Hyangsarye may have influenced the formation of the current live site. This study attempted to examine the changes in Hyangsarye in the transition process of Hyangsadang, and to examine the transition process of traditional archery through this. As a result of the study, it was confirmed that Hyangsadang was distributed nationwide in the 16th century. It can be divided into two types: the educational function-oriented type of Hyangsadang and the Yuhyangso function-oriented type, and both use the Hyangdeabu of _Jurye_ as a sieve. However, it is confirmed that there were many differences by region in the method of applying this. However, it is judged that Hyangsadang and Yuhyangso are not separated because they adhere to the name of Hyangsadang. In particular, the Sagye that appeared in the Younghyun area in 1593 was made to restore the Hyangsarye and is confirmed to be a modified form of the Hyangs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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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진·한조시기의 무예의 형성 및 특징

저자 : 박귀순 ( Park Cindy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1-93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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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법을 통해서 진·한조시기의 무예의 형성 배경 및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진·한시기 무예의 전개변화 요인과 그 체육·무예사적 의미를 밝혔다. 진조시기에는 군사무예가 크게 발전했으며, '군공작'이라는 제도를 통해 병사의 훈련과 참전을 장려했다. 진조의 금무정책으로 민간의 병기 소유가 금지되면서 도수무예인 각저가 발달했는데, 오락·유희·관람적 요소의 특징을 나타냈다. 한조시기에는 각저와 수박 등은 유희·오락·관람적 요소와 무예적 요소의 특징이 내포되어 전개되었으며, 새로운 병기무예가 출현했고, 일본에 영향을 주는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두 왕조의 무예가 다르게 전개된 변화 요인은 첫째, 국가 통일 과정 중의 주변 환경적 요인, 둘째, 중앙집권체제의 실천 방법에 따른 요인, 셋째, 중앙 조정의 정책과 제도 시행에 따른 요인. 넷째, 국내 대내·외에 대한 외교 교류 변화에 따른 요인에 있었다. 이를 통해서 두 왕조의 무예의 교육적 가치, 교류 가치 및 계승적 가치를 내포한 체육·무예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This article examined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martial arts in the Qin and Han dynasties. Through this, the factors of martial arts change in the Qin and Han dynasties and its martial arts value were revealed. During the Qin dynasty, military martial arts developed greatly, and the training and participation of soldiers were encouraged through a system. As the private sector was banned from owning weapons due to Qin's a prohibit weapon policy, Jiaodi, a provincial martial arts, developed, which showed the characteristics of entertainment and viewing elements. During the Han dynasty, various types of martial arts were developed, and Jiaodi and watermelons were formed by includ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elements of entertainment, viewing and martial arts. Through the factors of change in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Qin and Han martial arts, it was possible to find the educational value, exchange value, and successive value of martial arts in both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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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중세 교회의 토너먼트 경기 금지와 위험성

저자 : 김복희 ( Kim Bok-hee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07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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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중세 토너먼트(tournament)의 초기 용어와 확산, 교회의 토너먼트 경기 금지 및 토너먼트 경기의 위험성을 파악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토너먼트라는 용어는 처음에 기사도 편력의 특징인 십자로, 도전을 통한 게임의 요소가 언급되었고,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토너먼트와 퀸틴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으며, 토너먼트는 프랑스의 기사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중세 교회는 토너먼트 경기를 금지시키기 위해 참여자를 파문하고 교회 묘지에 매장할 수 없다는 법령을 공포했으나, 토너먼트 경기에서 사망한 대부분의 기사들은 고해성사, 수도사의 도움 등으로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이외에도 교회는 교화, 설교 등을 실시했지만 토너먼트 경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토너먼트 경기의 위험성은 경기에 참여한 군주와 기사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사례를 통해 확인되었다. 따라서 중세 교회의 토너먼트 금지와 위험성은 쥬스트(Jousts)를 등장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early term and spread of tournament in the Middle Ages, the church's prohibition of tournament play, and the dangers of tournament. The results are as follows. The term tournament was first mentioned as a crossroads, a characteristic of chivalry, and elements of games through challenges. In the First Crusade, the terms tournament and quintin appeared. spread to other regions of the The medieval church promulgated a decree to excommunicate participants and not to bury them in church cemeteries in order to ban tournament games, but most of the knights who died in tournament games were buried in church cemeteries with the help of confessions and monks. In addition, the church conducted edification and sermons, but could not stop the tournament. The dangers of tournament games have been confirmed through cases in which monarchs and knights who participated in the games were killed or injured. Therefore, the medieval church's prohibition and danger of tournaments became a factor in the emergence of Jou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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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여자탁구의 세계제패 과정에 관한 연구(1954∼1973)

저자 : 이선애 ( Lee Sun-ae ) , 최흥희 ( Choi Heung-hee ) , 김재우 ( Kim Jae-w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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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여자탁구가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1973) 단체전에서 우승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제3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1954, 싱가포르)에 처음 출전한 여자탁구는 오랫동안 홍콩과 일본의 벽에 부딪혀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러한 벽을 허물고 여자탁구가 아시아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제9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1968, 인도네시아)였다. 제2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1956, 일본 동경)에 처음 참가한 여자탁구는 제25회 대회(1959, 서독 도르트문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여자탁구는 이념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인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 만인 1969년 제30회 대회(서독 뮌헨)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여자탁구는 6위를 차지했다. 다음 대회인 31회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렸다. 마침내 여자탁구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탁구의 우승에는 1970년부터 추진된 대한탁구협회의 인프라 구축과 상비군제도 정착, 그리고 훈련의 체계화가 뒷받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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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 해군사관학교의 해양체육프로그램 변천사(1946-2021)

저자 : 이태희 ( Lee Tae-hui ) , 안진규 ( An Jin-k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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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문헌분석방법을 사용하여 1946년 해군사관학교 개교부터 2021년까지의 해양체육프로그램의 변천 과정과 그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도입·적용기(1946-1978)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해군 장교 육성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관생도에게 해군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해양성 강화와 해상 생존능력을 높이고, 협동심 및 도전정신 등의 리더십을 배양하여 최정예 해군 장교로 성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둘째, 성장기(1979-2009)는 해양체육과를 신설하는 등 수업으로서의 해양체육프로그램 강화와 함께 사관생도 개인의 적성에 맞는 해양스포츠를 선택하도록 다양한 해양체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해양스포츠에 유능한 해군 장교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셋째, 정착기(2010-2021)는 도입·적용기와 성장기의 해양체육프로그램 성격과 내용을 포함하고, 보다 체계적이며 강화된 해양체육 수업 운영과 함께 군사훈련으로의 해양체육프로그램 확장을 통해,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며,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세계 일류 해군 장교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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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텍스트마이닝과 네트워크 분석으로 본 한국체육사학회지(1996∼2022) 연구동향과 과제

저자 : 김미숙 ( Kim Misuk ) , 변현 ( Byun Hyun ) , 전상완 ( Jeon Sang-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7-50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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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1996∼2022년까지 한국체육사학회가 발행하는 한국체육사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의 연구동향을 분석하고 과제를 제시하는 데에 있다. 연구대상은 27여 년간 발표된 총 478편의 논문으로 제목과 초록을 발췌하였다. 소셜 매트릭스 프로그램 텍스톰을 활용하여 텍스트마이닝을 그리고 Ucinet6과 NetDraw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 및 시각화하였다. 분석한 결과, 첫째, 1996∼2011년까지 발표된 논문에서는 스포츠, 한국, 연구, 올림픽, 체육, 경기 등에서 높은 중심성 값이 나타났다. 또한 군집분석 결과는 '시공간 및 집단', '스포츠의 내재화와 세계화', '움직임과 지향점', '시대·지역별 스포츠의 다양성' 등 4가지 범주로 분류되었다. 둘째, 2012∼2022년까지 발표된 논문에서는 한국, 올림픽, 스포츠, 태권도, 중국 등에서 높은 중심성 값이 나타났다. 또한 군집분석 결과는 '종목과 대회의 확장', '체육인의 등장과 활약', '근대 및 확산', '전통과 무예', '지역 체육 및 인물', '국제 무대로의 도전', '스포츠와 민족주의', '스포츠의 대중화와 체계 확립' 등 8가지 범주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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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김영기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연구

저자 : 허진석 ( Huh Jin-seo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1-6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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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는 한국 남자농구 역사상 광복 이후 등장한 첫 대중스타이다. 그는 1956년 멜버른올림픽과 1964년 프리올림픽,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명성을 얻었다. 국제무대에서 빛난 김영기의 경기력은 탁월한 개인기라는 특징으로 요약된다. 김영기는 트위스트 슛, 원 핸드 슛, 빠르고 다양한 드리블을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익혀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김영기는 은퇴 후 방송해설자와 코치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196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1970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은 은퇴 후 우리 농구계의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김영기는 농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유명인사(Celebrity)로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한국 스포츠가 대중적인 문화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기에 이른 지금 김영기의 선구자적 업적과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의 발전적 계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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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씨름 경기장의 역사적 변천 과정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8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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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씨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씨름 경기장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근대 이전의 씨름은 안정성이 확보되는 천연적인 환경에서 행해졌다. 강변의 모래 백사장과 들판의 풀밭과 같은 자연환경이나 짚이나 멍석을 깐 인공적인 공간이 곧 씨름 경기장이었다.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창설된 이후 최초로 모래를 기반으로 한 씨름 경기장의 설비 규정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씨름은 양질의 모래 수급과 일제의 감시 때문에 주로 실내의 사각 링이나 매트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광복 이후 대한씨름협회는 실내외로 구분된 경기장 시설 자원과 규격에 대한 지속적인 개정을 추진했다. 씨름 경기의 안정적인 개최와 역동적인 경기의 연출을 위함이었다. 이러한 규정의 변화 속에서 현재의 씨름 경기장은 모래 설비가 원칙이 되었다. 모래판이 씨름의 역사성과 정체성 유지를 위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기능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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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탁구인 김충용에 대한 사적 고찰

저자 : 박경호 ( Park Kyo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02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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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탁구 최초 국제대회 금메달리스트인 탁구인 김충용의 성장 과정과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 과정을 조명하고자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한국 탁구, 방콕 아시안게임, 김충용과 관련된 다양한 문헌고찰을 실시하였으며 김충용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스토리를 확보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김충용은 한국전쟁 이후 탁구가 성행하던 대구 지역에서 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진보된 탁구 문화를 경험하였고, 우리나라의 전문적인 체육 시스템이 정착되기 이전의 상황 속에서도 당대 탁구의 엘리트 코스를 거치면서 성장해 온 준비된 챔피언이었다. 둘째, 1966년 김충용이 획득한 금메달은 우리나라 탁구사에 있어서 첫 번째 국제대회 금메달이라는 '최초'의 기록이었으며, 중국과 일본에 밀려 국제대회에서의 자존감이 상실되어 있던 우리나라 탁구계에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문화적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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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구술사로 통해 본 태권도의 일본 진출과 확산

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3-11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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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본의 태권도 진출과 확산에 관한 연구로 문헌연구와 일본에 진출했던 태권도 사범 면담내용을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일본에 태권도 보급이 이루어졌으며, 오사카대학에서 태권도부의 창설과 태권도가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었다. 둘째, 일본 태권도의 체계적 보급이 이루어졌으며, 일본태권도협회가 7년 만에 일본올림픽위원회(JOC)의 준가맹 단체로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태권도 국가 대표 팀은 국제적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해나갔다. 셋째, 일본태권도연맹은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선수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카모토 선수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러한 결과 일본에서 태권도의 이미지 상승과 태권도 인구가 증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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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제강점기 상해 조선체육인 현창운(玄彰運)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병중 ( Kim Byung-jung ) , 조준호 ( Cho Jun-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3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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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상해에서 활약한 조선체육인 현창운의 생애와 체육활동을 분석했다. 그에 관한 선행연구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서는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에서 1차 사료를 입수하여 번역, 해석을 통한 문헌분석법을 사용하였고, 각 사료의 교차검증을 통해 내용의 정확도를 높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10년 일본 제국주의의 한일병탄(韓日倂呑)에 의한 주권상실은 일제강점기 상해 조선 체육인 형성의 시대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에 그들은 민족의 울분을 원동운동대회의 참가, 체육활동을 통해 분출했다. 둘째, 조선의 야구선수 현창운은 1915년 제2회 상해 원동운동대회에 상해야구단 대표로 참가했다. 이는 한국 근대체육사에서 최초로 조선체육인이 국제종합경기대회에 참가한 것이었다. 이후 현창운은 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 고려공산당 등의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귀국한 후에는 조선의 야구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현창운의 제2회 상해 원동운동대회 참가는 근대 한국체육의 대외지향성을 상징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근대 조선체육의 국제성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국제체육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높은 위상의 첫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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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북미스포츠역사학계의 연구 동향과 시사점: 학술지 「Journal of Sport History」(1974-2000)를 중심으로

저자 : 김방출 ( Kim Bang-chool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5-15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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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북미스포츠역사학계의 연구 동향을 소개하는 작업으로, 학술지 Journal of Sport History에 1974년부터 2000년까지 게재된 연구들에 초점을 두고 그 내용과 성격을 정리하였다. 연구방법의 측면에서, 모든 연구들의 현황, 패턴, 양태 등을 정밀하게 분류, 구분하여 객관적 수치로 제시하기보다는, 역사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성격들을 포착하여 해석함으로써, 연구 동향을 대표하는 몇 가지 징후들을 뽑아서 제시하는 것이다. 연구결과는, 연구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실증적 연구에서 사회사적 연구로 확장되어 공존하고 있다는 점, 스포츠 관련 이데올로기, 담론 등을 탐구하는 지성(사상)사 연구가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는 점, 학회 창립 초기부터 스포츠역사학의 학문적 본질, 성격, 실제 등을 검토하고 성찰하고 논의하는 관심들이 지속적으로 표명되어 왔다는 점, 과거 스포츠의 역사적 주체에 대한 관심이 백인 남성에 초점이 있었던 것에서 점점 여성 주체와 소수 인종 및 민족들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연구의 주제, 대상, 실제 등이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에서는 한국의 체육사학회 및 학술 구성원들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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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한국 최초의 올림픽 참가 과정 연구: 국내 단체결성 및 활동을 중심으로

저자 : 김영남 ( Kim Young Nam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5-168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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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체육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최초 올림픽 참가에 주목하여 국내에 창설되어 활동했던 관련 단체들의 행적을 고증하는 것에 연구의 목적이 있다. 광복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주로 올림픽 관련 단체의 결성과 활동을 토대로 올림픽 참가 승인과 출전 준비가 이루어졌다. 먼저 올림픽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NOC 조직 준비와 올림픽 참가 제반 마련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올림픽대책위원회의 임무를 계승하여 올림픽위원회, 올림픽준비위원회, 올림픽후원회가 순차적으로 결성되어 활동했다. 올림픽위원회는 IOC와의 문서연락 등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했고, 올림픽준비위원회는 올림픽 출전에 대한 종목선정, 선수선발, 기술향상 등에 목적을 두고 결성되어 활동했다. 올림픽후원회는 올림픽 출전에 소요되는 경비조달을 목표로 결성되어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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