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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학회> 경제사학> 『묵자 - 경제학자의 묵자 읽기』 김승석 지음 북코리아, 2019년, 602쪽 『묵자 -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다』 북코리아, 2020년,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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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 경제학자의 묵자 읽기』 김승석 지음 북코리아, 2019년, 602쪽 『묵자 -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다』 북코리아, 2020년, 308쪽

손영식
  • : 경제사학회
  • : 경제사학 7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8월
  • : 394-401(8pages)
경제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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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회과학분야  > 경제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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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3회
  • : 1226-3575
  • : 2713-981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5-2022
  • :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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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권0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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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함경선 개통과 원산의 지역 경제

저자 : 丁振聲 ( Jin Sung Chung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1-475 (6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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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전선이 개통된 함경선은 조선 동북지방의 교통체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옴으로써 이 지역 교통의 허브로서 발전해 온 원산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함경선 개통으로 소비지와 생산지 간의 직거래가 용이해짐에 따라 조와 명태 집산지 원산의 위상은 하락하였다. 그러나 미곡과 면직물 유통에서 원산의 위상은 강화되거나 유지되었다. 함경선 개통으로 미곡생산지와 원산이 철도로 연결됨에 따라 원산의 미곡 이출은 1920년대 말 미가의 하락으로 일본의 미곡 수요가 크게 감소할 때까지 증대하였다. 함경선 개통으로 연선 지역에서 신규 발생한 면직물 수요에 대한 공급은 여전히 원산항으로 이입되는 일본 제품에 의해 이루어졌다. 함경선 개통은 연선의 광산 개발을 촉진하여 이 지역에서 생산된 광산물의 일본 이출이 증대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광산물의 일본 이출이 뚜렷한 증가를 보이는 것은 1930년대 중반 이후였다. 1920년대 말에 시멘트, 금속 및 기계류 등 건설 자재의 이입이 일시적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나, 이것은 당시 함경남도에서 진행된 공장 및 발전소 건설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었다. 함경선 개통에 따른 조와 명태의 집산지 원산의 역할 저하는 곡물과 명태 거래를 주요 활동 분야로 하였던 원산의 조선인 상공업자에게는 대체로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특히 조선인이 주로 종사하던 명태 거래의 쇠퇴는 조선인 상공업자에게 큰 타격이었다. 원산의 객주조합은 명태의 원산 집하를 강제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려 하였으나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다.


The Hamgyeong Line, which opened the entire line in 1928, had a significant impact on the Wonsan economy, which had developed as a transportation hub in the northeastern part of Korean Peninsular. The status of Wonsan as a collection site for millet and pollack declined as the opening of the Hamgyeong Line facilitated direct transactions between consumer and production sites. However, Wonsan s position in rice and cotton textile logistics was strengthened or maintained. As the opening of the Hamgyeong Line connected the rice production area and Wonsan by rail, the export of rice from Wonsan increased until the demand for rice in Japan decreased significantly in the late 1920s due to the decline in rice prices. The supply to the new cotton textile demand in the area along the Hamgyeong Line, was still made by Japanese products that were imported to Wonsan. The opening of the Hamgyeong Line was expected to increase the export of minerals to Japan by promoting the development of mines along the railway line, but it was only after the mid-1930s that the export of minerals to Japan showed a marked increase. In the late 1920s, metal and machinery imports temporarily increased, but this was a temporary phenomenon caused by the construction of factories and power plants in Hamgyeongnam-do Province. Following the opening of the Hamgyeong Line, the decline in the role of Wonsan as a collection site for grain and pollack generally had a negative impact on Korean merchants in Wonsan, who were mainly engaged in grain and pollack trading. In particular, the decline in pollack transactions, which were mainly engaged in by Koreans, was a great blow to Korean merchants. The Wonsan Gaekju Johab(commission agency association) tried to protect its vested interests by forcing the collection of pollack into Wonsan, but failed to achieve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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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식민지기 인천 상업과 화교

저자 : 류상윤 ( Sang Yun Ryu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77-50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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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무역 통계와 영업세, 매출액 조사 자료 등을 활용해 인천항 화교 상인들의 영업 규모를 일본인, 조선인과 비교하면서 시계열로도 파악해 보고자 한 것이다.
먼저 국세조사와 경성상업회의소 조사 자료를 통해 1920년대 후반 인천의 화교 상업이 남한뿐만 아니라 조선 전체에서도 매우 두드러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무역 통계를 가공해 화교 상인들의 일차적 영업 기반에 해당하는 무역이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었다는 점도 파악할 수 있었다.
영업세와 매출액 자료를 활용해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 인천 화교 상인의 지역 내 위상을 검토한 결과 상업 전체로는 10%대의 비중, 그리고 특정 품목, 즉 직물과 잡화의 거래에서는 다른 민족 상인들보다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비중은 무역 통계에서 추론되는 것보다 더 컸는데 계속되는 도전 속에서 특히 화교 직물상들이 일본산 직물의 거래를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화교 직물상들은 1930년대 중반에도 매출 규모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릴 수 있었다.


This paper tries to compare the sales amounts of overseas Chinese merchants in the port city Inchon with Korean and Japanese counterparts. Trade statistics and several surveys of sales tax amounts and sales amounts are used.
First, the 1930 population census data and the survey on the economic power of foreigners conducted in 1929 by the Kyongsong (or Keijo) Chamber of Commerce were analyzed. It is found that Inchon was the second biggest city in terms of commercial activities of overseas Chinese merchants in Korea, at least at the end of the 1920s. Next, trade statistics were analyzed and processed to estimate primary backgrounds of overseas Chinese merchants in Inchon. The sum of trades with Chinese regions except the Manchuria and imports of British cotton textiles via China showed downward trends under the colonial rule, which must have been a big challenge to Chinese merchants in Inchon.
Finally, the sales amounts of overseas Chinese merchants were compared with Korean and Japanese counterparts using several surveys in the late 1920s and the early 1930s. They occupied more than ten per cent of overall trade and commerce in Inchon, and dominated their counterparts especially in trades of textiles and sundries. This position was resulted from their continuous efforts to participate in trades of Japanese textiles. It is observed that even in the mid-1930s, when trades with China became minor, Chinese textile merchants could keep their sales amou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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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차 대전기 조선의 주식시장과 조선증권취인소

저자 : 이명휘 ( Myung Hwi Lee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09-556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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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기 조선의 주식시장은 군수기업의 투자자금을 조달하고 저축을 동원하는 정책적 기구였다. 거래소 종목을 청산거래하는 지역분소에 불과하였던 조선취인소는 해산되었고, 국영기관으로 개편되었다. 조선증권취인소에서는 조선의 군수기업 주식이 주종목으로 거래되었고, 상장종목은 시국주식으로서 배당과 주가의 안정성이 보장되었다. 조선증권취인소는 주식거래뿐만 아니라 인수업무를 포함한 발행기구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태평양전쟁이 격발되고 패색이 짙어지는 중에도 비상시 대응수칙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거래소가 운영되었다. 2년여의 짧은 영업기간 동안 조선증권취인소의 수익은 안정적이었고 민간 출자자에게 고배당의 약정을 이행하였다. 주식시장의 선도주(先導株)는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제조공업·광업 등 시국주식으로, 주가가 관리되는 전시상장(戰時相場) 종목이었다. 해방 이후 조선증권취인소의 주종목이었던 군수기업 주식의 대부분은 국가 소유로 귀속되어 사회간접자본으로 전환되었으며 거래원을 비롯한 증권계 전문인력은 증권거래소 창립의 주역이 되었다. 2차 대전기 증권거래제도는 1962년 증권거래법이 공표되기 이전까지 한국 증권거래제도로서 준용되었다.


For about six years from 1939 to 1944, in Colonial Korea, the stock market broke away from the liquidation trading market of exchange stocks and started to function as a capital market. Specially Chosen Securities Exchange, established in 1943, maintained a stable price of shipbuilding stocks and capital of military enterprises under the wartime mobilization system for the execution of the Pacific War. Acted as an intermediary for procurement, The Chosun Securities Exchange was an institution that was in charge of extremely important tasks in the wartime financial policy of the distribution of industrial funds and protection of national savings. As a result, the colonial stock market served as the historical origin of Korea s capital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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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영국 식민지는 프랑스 식민지보다 더 좋은가?: 바누아투 사례연구

저자 : 유동우 ( Dongwoo Yoo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7-59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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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관점의 연구들은 영국 식민지가 되는 것이 프랑스나 다른 국가의 식민지가 되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영국의 문화와 제도는 식민지의 안정적인 정치와 강력한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 통제된 실험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평양에 있는 섬나라인 바누아투는 논쟁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동일한 영토에서 공동정부와 영국 정부, 프랑스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공동정부는 1906년부터 1980년까지 지속되었다. 현지인들은 영국 관습법에 따를 것인지 프랑스 민법을 따를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다. 한 국가의 국민은 다른 국가의 법률에 따라 기업을 설립할 수 있었다. 바누아투의 경우는 정치적 측면에서는 영국이 우위에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프랑스가 우위에 있음을 시사한다. 프랑스의 영향력이 큰 지역은 영국의 영향력이 큰 지역보다 더 발전하였다. 영국의 주요 무역 회사는 프랑스 법에 따라 회사를 설립하였고 몇몇 영국 농장주는 프랑스 경제정책의 혜택을 받기 위해 프랑스 거주지에 등록하였다.


Comparative studies have suggested that British colonization is more beneficial than that of France and other colonizers. It is argued that British cultures and institutions contributed to stable politics and robust economic development of its colonies. However, evidence is still inconclusive because a controlled experiment is very difficult in social science. Vanuatu - a Pacific island - provides an excellent setting for reconsidering the argument. Britain and France established a joint government, the British government, and the French government, which lasted from 1906 until 1980, in the same territory. Local people could choose whether to be tried under the British common law or the French civil law. Nationals of one country could set up corporations under the laws of the other. The case of Vanuatu suggests that political perspectives are in favor of Britain, but economic perspectives are in favor of France. The French-dominated areas have been more developed than the British-dominated areas. The major British trading company established a company under the French law and a certain number of British planters registered themselves in the French residency to attain the benefits of French economic poli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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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피터 얼 지음, 양동휴 옮김 『디포의 세계: 18세기 영국 경제사』 해남, 2022년 - 서평(書評)

저자 : 송병건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93-595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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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병화 옮김 『불쉿잡』 민음사, 2021년 - 서평(書評)

저자 : 변창욱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96-598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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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경철 지음 『바다 인류: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휴머니스트, 2022년 - 서평(書評)

저자 : 이승우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99-604 (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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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송병건 지음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경제이야기』 1-3권 사회평론, 2022년 - 서평(書評)

저자 : 박이택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05-611 (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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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재정투융자'와 국가에 의한 자본형성, 1913-1988

저자 : 김재호 ( Jae Ho Kim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62 (5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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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식민지기 조선총독부와 해방 이후 한국 정부에 의해서 이루어진 '재정투융자'(fiscal investment and loan)를 추계하고 분석함으로써 국가에 의한 자본형성의 전개 과정을 수량적으로 고찰하고 그 의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재정투융자의 규모는 식민지기 이후 고도성장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특히 식민지기 후반인 1930년대와 해방 이후 고도성장기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증가율이 빨랐다. 국가에 의한 자본형성은 식민지 지배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식민지기 후반에 정부저축 증대와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였다. 해방과 함께 이러한 과정은 중단되었지만 한국전쟁 휴전 이후 급속히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 재정투융자를 위한 재원으로 정부저축이 증대하기 시작하였으며 원조를 대신하여 차관이 도입되었다. 이는 1970년대의 민간저축의 동원과 함께 재정투융자의 재량권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국가에 의한 자본형성은 식민지기의 추이가 이어지는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대로 연장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정부는 재정투융자를 위한 독자적인 조직과 재량권의 확보라는 점에서 식민지기 총독부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 이후에는 재정투융자의 용도에서 사회간접자본의 비중이 감소하고 광공업 부문의 비중이 증가하는 변화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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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군정기 상무부 기술교육지도위원회의 활동

저자 : 김동선 ( Dong-sun Kim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3-29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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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군정기 상무부의 설립 과정과 특징, 그리고 공업기술 인력양성 과정에서의 역할을 밝히고 있다. 미군정기 공업행정의 중심에는 상무부가 있었다. 상무부는 미군정기 생겨난 부서로 그 양태와 기능은 미 상무부와 유사하다. 미 상무부는 대내외 무역 업무는 물론이고, 상업 공간 활동의 성장을 지원하며 기초연구에 투자하고 지적재산권과 창작자의 발명에 대한 보상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미군정청 상무부도 적산관리, 국내 상업 감독, 도량형 관리, 수출입심사, 특허행정, 공업기술 연구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군정청 상무부는 미 상무부와는 달리 기술교육지도위원회를 만들어 과학기술 인력양성에 관여하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상무부가 고급 기술 인력이 필요한 분야와 수요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원인은 상무부 관할 하의 지질광산연구소와 중앙공업연구소가 식민지 시기 기술 인력을 양성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요에 따라 상무부가 식민지기 광공국의 업무를 승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처럼 미군정청의 상무부는 미 상무부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미군정의 정부구조 개혁은 향후 한국의 공업기술 정책을 미국과 유사한 형태로 추진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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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대한 평가: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중심으로

저자 : 박기주 ( Ki-joo Park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9-33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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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수출 주도적 성장전략의 발전 형태이며 금융 배분이 중요한 정책 수단이었음을 설명하고,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사용하여 기업 차원에서 정책의 효과를 계량적으로 분석하였다.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은 국민투자기금과 차관 도입을 통해 기업이 경쟁 가능한 최소 생산 규모의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기업경영 지표로 보면, 중화학 공업이 1970년대의 육성정책 덕분에 어느 정도 규모의 시설을 갖추었으며 그 때문에 정책이 사라진 1980년대에 스스로 확장해 갈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에 낮은 금융비용과 높은 타인자본 비율이 기업의 성장에 기여하였다는 회귀분석 결과는 육성정책이 유효하였음을 지지한다. 또한 생산성 추계에 의하면 1970년대에 중화학공업은 경공업에 비해 생산성 증가율이 높았으며, 그것은 투자 증가에 동반한 기술 변화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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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산업구조 변화와 에너지 집약도: 1970-2005

저자 : 박세영 ( Seyoung Park ) , 이창근 ( Changkeun Lee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7-35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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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KLEMS 데이터를 활용하여 1970년부터 2005년 사이 우리나라 산업부문의 에너지 집약도 변화를 개관하고 그 변화 요인을 산업구조 변화와 각 산업 내부의 에너지 효율성 개선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기존의 연구들에 비해 이 논문은 산업구조의 변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구조 변화가 1985년 이전에는 에너지 집약도를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에너지 집약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하였음을 보인다. 승법 또는 가법적 분해분석 기법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이 결과는 동일하게 유지된다. 이 논문은 기간 측면에서는 1980년대 이전, 산업 범위 측면에 있어서는 전 산업을 대상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연구를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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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Historical Statistics of Korea 출간의 경과와 의의 -2022 KEKA 국제학술대회 특별 좌담-

저자 : 조영준 , 김낙년 , 박이택 , 배석만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9-38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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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적자원 이론과 정책』 김형만 지음 박영사, 2021년, 376쪽

저자 : 안정혜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89-391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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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해역 속의 인간과 바다의 조우: 세계경제와 해역경제』 현재열 지음 선인, 2021년, 273쪽

저자 : 고선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2-393 (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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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세연구원 기본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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