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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여항문화 연구와 데이터 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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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항문화 연구와 데이터 모델링

An Essay on Data Model for Creating Database of Yeohang(閭巷) Culture

김지선 ( Kim Ji-sun ) , 류인태 ( Ryu In-tae )
  • : 한국한문학회
  • : 한국한문학연구 8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8월
  • : 79-118(40pages)
한국한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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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한문학 연구와 데이터 모델링
2. <19세기 여항전기집 수록 인물 데이터 네트워크>에 대해
3. 여항문화 데이터 편찬을 위한 개념적 모델링 사례
4. 맺음말: 데이터, 문학과 역사와 예술이 만나는 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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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항문학 분야의 본격적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 연구로서 졸고 ‘김지선(2019), 「19세기 여항전기집 수록 인물 관계망 구현 및 분석 연구 -『호산외사』, 『이향견문록』, 『희조일사』를 중심으로」’에서 제안한 여항문학 데이터 모델을 바탕으로, 더욱 확장된 범위의 ‘여항문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개념적 데이터 모델링을 전개하고 그 고민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였다.
데이터 모델링(data modeling)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로 재현하기 위한 일종의 설계도로서 데이터 모델(data model)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물리적 현실로서 아날로그 환경과 전자적 재현으로서 디지털 환경은 근본적 속성이 다르기에, 연속하는 현실의 대상을 디지털 세계에 분절된 것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이러한 고민이 인문학적 문제의식과 결합할 경우 대상을 개념화하는 절차로서 ‘개념적 데이터 모델링’ 과정은 복잡한 사유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인문학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꼼꼼한 읽기와 해석 그리고 분명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데이터 모델링 과정은, 정교한 인문학 데이터를 구축하게 하는 바탕이자 그로부터 다양한 디지털 인문학적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적 단서에 해당한다.
다종다양한 기록을 매개로 수많은 정보가 복합적 관계를 맺고 있는 ‘여항문화’의 세계를 디지털 환경에서 입체적인 데이터로 정리ㆍ표현하기 위한 모델의 일환으로서, 본 연구에서 정리한 클래스(Class)는 ‘인물(Person)’, ‘시사(Community)’, ‘단체(Group)’, ‘기록(Writing)’, ‘서화(Object)’, ‘저서(Book)’, ‘장소(Place)’, ‘공간(Site)’, ‘사건(Event)’, ‘가문(Clan)’, ‘관서(Office)’이며, 개별 클래스에 속한 개체들 사이의 의미적 연결로서 정의한 대표적 관계(Relationship)로는 ‘저자이다(author)’, ‘지은이다(writer)’, ‘쓴 사람이다(calligrapher)’, ‘그린 사람이다(painter)’, ‘언급하다(mentions)’, ‘수록하다(contains)’, ‘구성원이다(member)’ 등이 있다. 해당 클래스와 관계는 ‘여항문화’와 관련된 지식을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매개로서 한문학, 사회사, 미술사, 문화사 등의 전공 간 장벽을 넘나드는 유효한 채널이 될 수 있다.
추후 여항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문헌을 매개로 조선후기 다양한 직능을 향유한 중인들의 신분적 감각과 그들의 폭넓은 예술 활동까지 다채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여항문화’ 데이터베이스를 편찬하기 위해서는, 문학-역사-예술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성격의 논의-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며 그와 같은 행보(movement)를 위한 기초 단서로서 본 연구에서 정리한 내용이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This paper focused on organizing various information about conceptual data modeling for the building of a more extended range of 'Yeohang Culture' database based on the data model of Yeohang Literature proposed by ‘Kim Ji-sun(2019), A Study on the Design and Analysis of the Human Network in 19th-century Collections of Biographies of the Commoner Class(Yeohangjeongijip) -Focusing on Hosanoesa, Ihyanggyeonmunnok, and Huijoilsa’, a full-fledged digital humanities study in the field of Yeohang Literature.
Data modeling refers to the process of designing a data model as a kind of blueprint for representing objects existing in the real world as data in the digital environment. Since the analog environment as a physical reality and the digital environment as an electronic representation have fundamentally different properties, the transforming an inseparable object of reality into a segmented one in the digital environment is not simple. When these concerns are combined with the humanistic awareness, the process of 'conceptual data modeling' as a method of conceptualizing objects inevitably entails complicated reasoning. On the other hand, the data modeling process based on micro reading and interpretation of humanities texts and clear humanistic awareness is the basis for creating sophisticated humanities data and the basic clue for enabling varied digital humanities study from it.
As part of a model for organizing and portraying the world of 'Yeohang Culture', in which a large amount lot of information is in a complicated relationship through a variety of records, as three-dimensional data in a digital environment, The Class designed through this research includes ‘Person’, ‘Community’, ‘Group’, ‘Writing’, ‘Object’, ‘Book’, ‘Place’, ‘Site’, ‘Event’, ‘Clan’ and ‘Office’. The representative Relationship defined as semantic links between entities belonging to individual classes includes ‘A author B’, ‘A writer B’, ‘A calligrapher B’, ‘A painter B’, ‘A mentions B’, ‘A contains B’ and ‘A member B’. As a medium that comprehensively connects knowledge related to ‘Yeohang culture’, The Class and Relationship can be an effective channel that bridges the barriers between majors such as Sino-Korean Literature, Social History, Art History and Cultural History.
In the future, a comprehensive discussion-research that crosses the fields of Literature-History-Art should be conducted in order to compile a 'Yeohang Culture' database that can extensively look into the status consciousness and artistic activities of the commoner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rough the literature directly or indirectly related to them. it is hoped that the contents summarized in this study might be meaningfully used as a basic clue for such a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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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8-128x
  • : 2733-4910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6-2022
  • :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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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권0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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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한문학연구 84집 목차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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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倣中國의 안과 밖 - 자기비판과 자기존중

저자 : 김홍백 ( Kim Hong-bae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6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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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중기의 지식인 柳夢寅(1559∼1623)의 자타인식에 대한 연구이다. 유몽인의 중국 인식과 관련한 담론을 '倣中國論'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여 방중국론의 안과 밖에서 드러나는 그의 자타인식을 정리하고 그 구체적 양상과 의미를 조선 중후기 지성사 안에서 조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유몽인이 인식하는 중국은 지역과 종족에 따른 북방(후금)과 중원(명조), 시차와 위상에 따른 고대 중국(동아시아 문명)과 당대 중국(명조 현실)의 다양한 부면이 교착되어 있으며 방중국의 대상 또한 군사적ㆍ사회경제적 영역인가 언어적ㆍ문화적 영역인가에 따라 조선의 자기비판과 자기존중이라는 자기인식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의 자기비판이 군사와 경제의 영역에서 타자를 참조해 더 나은 주체를 구축하고자 하는 '자기향상으로서의 자기비판(자기성찰)'이라면, 그의 자기존중은 언어와 문화의 영역에서 타자와 차이나는 주체의 고유성을 소중히 여기는 '자기긍정으로서의 자기존중(자기수용)'이라 할 수 있다.
곧 조선과 중국에 대한 유몽인의 자타인식은 후금과 명조, 고대 중국과 당대 중국, 군사적인 것과 사회경제적인 것, 문화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문명적 보편성과 지역적 고유성 등의 이항적 관계를 가로지르면서 형성된 자기비판과 자기존중이라는 중층의 자기인식과 교직되어 있는 것이다. 자국의 것이라도 비판해야 할 경우가 있고 자국의 것이기에 존중해야 할 경우가 있다. 타국의 것이라도 수용해야 할 경우가 있고 타국의 것이기에 거리를 두어야 할 경우가 있다. 무엇을 비판하고 존중할 것인가? 무엇을 수용하고 거리 둘 것인가? 유몽인의 중국 담론에는 중세 동아시아 전환기의 조선 지성사에서 첨예화되었던 자국과 타국, 주체와 타자 간의 긴장과 균형에 대한 나름의 사상적 고투가 담겨 있다.


This paper examines inter-subjective consciousness of Yu Mong-in(柳夢寅, 1559~1623) in the Middle Period Chosŏn. The discourse related to Yu Mong-in's perception of China is captured with the concept of Bang-Junggug(倣中國, to emulate China), examining his perception of the Inside and Outside, and shedding light on its meaning in the Middle and the Late Chosŏn Dynasty. For Yu Mong-in, China is a mixture of various aspects of Northern China(Later Jin) and China-centered(Ming Dynasty) according to region and race, ancient China(East Asian civilization) and contemporary China(Ming Dynasty reality) according to time difference and status. In addition, the target of Bang-Junggug(倣中國) is closely related to the self-consciousness of self-criticism and self-respect in Chosŏn, depending on whether it is a military/socioeconomic field or a linguistic/cultural field. This paper analyzes that his self-criticism is self-criticism as self-improvement(self-reflection) to build a better subject by referring to others in the military and economic domains. Along with this, his self-respect is also considered as self-affirmation(self-acceptance) that values ​​the uniqueness of the subject who is different from others in the domains of ​​language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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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艮齋 崔演의 산문 연구 -「雜著」 소재 작품을 중심으로-

저자 : 정용건 ( Chung Yong-gu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104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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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6세기 중반의 문인 艮齋 崔演을 대상으로, 그 생애 이력과 문학적 위상을 소개하고 그가 구가한 산문 세계의 특징적 면모를 살핀 글이다.
최연은 젊은 시절부터 文才를 인정받아 賜暇讀書 관원으로 선발되고 주요 문한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明 사신을 맞이하는 遠接使 從事官로 선발되어 시문 수창의 국면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 각종 공문서의 제작을 담당하여 차기 文衡의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그는 '16세기 중반의 주요 관료 문인'으로서 견고한 위상을 점유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당시 조선에서 주변부로 인식되었던 '강릉 출신의 저명 문사'로서도 널리 기억되었다.
최연의 산문 창작 활동은 이와 같은 학적 배경과 지위를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그의 산문은 평생동안 유지된 관료로서의 삶을 반영하듯, 공적 성격을 띠는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다만 그중에서도 사적 영역에서 찬술된 『艮齋集』「雜著」 소재 작품들은 다양한 문학적 참고와 수사 활용을 바탕으로 성립되어, 그가 지닌 문예 지향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잡저」에서 먼저 눈에 띄는 점은, 「逐詩魔」, 「封管城子誥」, 「麴秀才傳」과 같은 擬人體 산문이 여럿 실려 있다는 것이다. 韓愈의 「送窮文」, 「毛穎傳」을 비롯한 다양한 중국 작품과 고려 말~조선 초 선배 문인들의 가전 작품에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 작품은, 前代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그 나름의 변용ㆍ확장과 문학적 수식을 거쳐 성립되었다. 그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문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고뇌, 자부심을 아울러 표출하였다. 또한 그는 「雁奴說」과 「貓捕鼠說」이라는 두 편의 '說'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들 역시 당ㆍ송 산문 및『太平廣記』 등 유서류 저작의 강력한 자장 위에서 산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최연은 제재와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는 과거의 성취에 기대었으면서도, 구체적인 작품 구성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들과 다소 변별된 방식을 취하며 국가 운영에 관한 논제를 풀어내었다.
이처럼 최연의 「잡저」 작품은 문사로서의 자기 정체성 피력 및 거대 담론의 문학적 구현이라는 주제ㆍ내용 상의 특징을 지니며, 중국 및 우리나라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계승과 변용이라는 형식적 특징을 지닌다. 이는 강릉 출신 문사로서 일생토록 중앙 조정에서 문한 활동에 전념한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는, 비록 그 수는 조선 후기에 비해 많지 않지만, 전대의 여러 성취를 두루 참고하고 응용하는 방식을 통해 文藝趣를 선명히 드러내고 작품의 다변화를 모색했던 16세기 중반 산문의 한 특성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This paper is a text that introduces the life history and literary status of Ganjae(艮齋) Choi Yeon(崔演), a writer in the mid-16th century, and examines the characteristic aspects of the prose world he admired.
Choi Yeon was recognized for his literary talent from a young age, and was served in various important literary positions. In particular, he was selected as a member of the Wonjeobsa(遠接使) Jongsagwan(從事官) to welcome the Ming(明) envoy and played an active part in the creation of poetry and prose. As such, he occupied a solid position as a 'main bureaucratic writer in the mid-16th century'. On the other hand, he was also widely remembered as a 'famous writer from Gangneung(江陵)' who was recognized as a marginal member in Joseon at the time.
Choi Yeon's prose were developed based on such academic background and position. Most of his prose is of a public nature. However, among them, the works of 「Japjeo(雜著)」 written in the private realm were established based on various literary references and use of rhetoric, showing his literary-oriented tendency well.
The first thing that stands out in his prose of 「Japjeo」 is that he wrote anthropomorphic works such as 「Chuksima(逐詩魔)」, 「Bonggwanseongj- ago(封管城子誥)」, and 「Guksujaejeon(麴秀才傳)」. These works, which seem to have been created under the influence of various Chinese and Korean works, including Han Yu(韓愈)'s 「Songgungmun(送窮文)」 and Lee Gyu-bo(李奎報)'「Moyeongjeon(毛穎傳)」, inherited previous achievements, but were established through their own transformation and expansion and literary modification. Through these works, he expressed his identity as a writer as well as his agony and pride. In addition, he also left two pieces of 'Seol(說)' works, 「Annoseol(雁奴說)」 and 「Myoposeoseol(貓捕鼠說)」. These are also presumed to have been created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the writings such as Tang(唐) and Song(宋) prose. However, while Choi Yeon leaned on past achievements in terms of subject matter and consciousness, in the composition of specific works, he took a somewhat differentiated method and solved the topic of state management.
Choi Yeon's prose of 「Japjeo」 has thematic and content characteristics of expressing self-identity as a writer and literary realization of grand discourse, and has formal characteristics of succession and transformation of China and Korea's literary achievements. This can be said to be the result of his tendency as a writer from Gangneung to devote his whole life to literary activities in the central stage. On the one hand, this is also a point that shows a characteristic of 16th-century prose, which sought to diversify its works by clearly revealing its literary prowess through the method of referring to and applying various achievements of its predecess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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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열하일기』에 나타난 중국인 형상화와 쓰기 전략 -곡정 왕민호를 중심으로-

저자 : 박수밀 ( Park Su-mil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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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熱河日記』에 나타난 중국인 형상화 양상을 살피고 연암과 곡정 왕민호와의 대화를 통해 연암의 쓰기 전략과 사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중국인 중에는 연암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상화된 인간이 많다. 그 가운데 곡정은 비분강개한 선비의 전형으로 창조한 인간형이자 연암의 자아를 많이 투영한 인물이다. 곡정의 형상은 연민을 느끼게 하고 친밀감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독자가 거부감 없이 다가서도록 한다.
이를 바탕으로 연암과 곡정과의 필담 가운데 두 가지 話題에 주목해 보았다. 효와 열녀에 관한 필담에서, 연암과 곡정은 열녀와 효자 풍속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서로 호응해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열녀와 효자 윤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 속에서 연암이 그 폐해를 직접 비판하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연암은 곡정의 입을 빌려 열녀와 효자 만들기의 폐단을 비판하였다. 반면 유학과 의리에 관한 대화는 서로 대립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의리는 고정되어 있다는 연암의 발언은 솔직한 생각이 아니었다. 「伯夷論」上ㆍ下와 『열하일기』 7월 27일자 백이 관련 기사를 살핀 결과, 연암은 의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했다. 곡정의 말을 연암이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곡정의 말이 연암의 본심이었다. 둘의 대화는 연암 자신은 숨고 상대방인 곡정의 언어를 통해 작가의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각종 인간에 대한 형상화 전략을 살펴 연암의 인간에 대한 태도를 종합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the aspects of embodying Chinese people in Yeolha's Diary, and to understand YeonAm's writing strategies and ideas more deeply through conversations with YeonAm and Gokjeong, Wang Minho. Among the Chinese appearing in the Diary, there are many human beings intentionally shaped by YeonAm. Among them, Gokjeong is a person created as the prototype of an scholar of resenting sorrowfully, and a person who projects much of Yeon-Am's ego. The shape of Gokjeong makes readers feel pity and builds a sense of intimacy, so that they can approach Gokjeong without repulsion. Among the written talks of Yeon-Am and Gokjeong, I paid attention to two main topics.
In the written talks about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YeonAm and Gokjeong continued their conversation by responding to each other while negatively recognizing the customs of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It was difficult for YeonAm to directly criticize the harmful effects in a trend that took the ethics of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for granted. Thus, YeonAm used Gokjeong's voice to criticize the evils of making the tradition of the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On the other hand, the conversations about Confucianism and loyalty developed in opposite directions. YeonAm's voice that loyalty is fixed was not an honest opinion.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two books of 'Baek-Yi Theory 伯夷論' and the articles related to Baek-Yi in the 'Yeolha Diary 熱河日記' on July 27th, YeonAm thought that loyalty is not fixed, it is a relative value that changes according to the times and circumstances. Although YeonAm took the form of refusing Gokjeong's words, in reality, Gokjeong's words were YeonAm's true intentions. The conversation between the two took the method of revealing the author's truth through the language of Gokjeong, who is the other person, while YeonAm hides himself. By continuously examining various strategies for shaping human beings appearing in Yeolha's Diary, YeonAm's attitude toward humans will be comprehensively summar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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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세기 후반 서울 양반과 빈곤의 문제 -도저동 金履中 家를 중심으로-

저자 : 김하라 ( Kim Ha-ra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92 (5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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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8세기 후반의 서울에 거주한 金履中(1740~1787)의 생애와 가계를 추적해 조선후기 양반이 직면한 빈곤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김이중의 외사촌동생인 兪晩柱의 일기 『欽英』의 기록을 기초 자료로 삼았다.
김이중은 조선후기 노론계의 유력한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안동김씨의 구성원으로 淸風溪 주인 金尙容의 6대손이다. 서울에 세거하던 김상용의 직계 후손들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충청도 오두리와 덕산현 등지에서 새로운 생활의 기반을 찾았고, 김이중의 증조부인 金盛達의 대에 이르러 오두리에 정착하게 된다. 김성달의 5남 金時淨이 백부에게 입양되어 삶의 터전을 덕산현으로 옮긴 이래 김이중의 先代는 가난한 충청도 양반으로 몰락할 조짐을 보였다. 이후 김시정의 차남 金礪行이 32세로 사망하자 유가족인 그 아내 杞溪俞氏와 두 아들 김이중 및 金履弘은 생계를 이을 방법이 없었다. 이에 기계유씨의 친정에 의지하여 살아가기 위해 세 모자는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얼마 후 기계유씨가 사망하자 완전히 고아가 된 김이중 형제는 전적으로 외삼촌 俞漢雋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그들은 끝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했다.
김이중은 龍仁李氏와 혼인하여 2남 3녀를 둔 가장이 되었고, 『흠영』에 기록된 13년간 그의 가족은 서대문 밖 둥그재와 용산 확교동, 남대문 밖 도저동 등지에 거주했다. 이 가족의 주거지가 늘 도성 밖에 있었다는 점은 그들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처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 가족의 빈곤은 잦은 질병과도 관련을 갖는데, 김이중의 자녀 중 2명은 1786년 서울에 유행한 홍역을 앓았으며, 1명은 그 시기에 사망했다. 또한 김이중은 질병에 시달리다 40대 후반에 사망했다. 김이중을 포함한 가난한 양반의 삶을 지켜본 유만주는 조선의 양반에게 가난이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이중 사후 15년 된 1801년 그 장남 金伯淳이 천주교도로서 처형된 것은, 부친으로부터 계승된 가난의 경로를 따른 귀결이 아닌가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trace the life and family line of Kim Yi-jung, a gentry who lived in Seoul in the late 18th century. Through this work, I intend to analyze in detail the problems faced by the gentry class of the poor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basic data of this paper is Heumyeong, the diary of Yu Man-ju, Kim Yi-jung's maternal cousin.
Kim Yi-jung is a member of the Andong Kim Clan, an influential fami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is the 6th generation descendant of Kim Sang-yong. The direct descendants of Kim Sang-yong, who lived in Seoul, went through the Second Manchu Invasion of Korea and found a new basis for life in Odu-ri and Deoksan-hyeon, Chungcheong-do. This lineage has been settled in Odu-ri since the time of Kim Seong-dal, the great-grandfather of Kim Yi-jung. Since Kim Seong-dal's fifth son, Kim Si-jeong, was adopted by his uncle and moved to Deoksan-hyeon, Kim Yi-jung's ancestors showed signs of declining as poor Chungcheong-do gentry. When Kim Si-jeong's second son, Kim Yeo-haeng, died at the age of 32, the bereaved family, his wife and his two sons, had no way to make ends meet. So, the three families went to Seoul to live by relying on Mrs. Yu's younger brother Yu Han-Jun. Shortly after, when Mrs. Yu died, the completely orphaned brothers became completely dependent on their uncle Yu Han-jun, and they were unable to stand on their own financially.
Kim Yi-jung got married and became the head of the household with two sons and three daughters. For the 13 years recorded in Heumyeong, the Kim family lived in Dunggeujae outside Seodaemun, Hwakgyo-dong in Yongsan, and Dojeo-dong outside Namdaemun. The fact that this family's residence was always outside the four gates of Seoul shows their poor socio-economic situation. The family's poverty is also related to frequent illnesses: two of Kim Yi-jung's children suffered from the measles epidemic in Seoul in 1786, and one died around the same time. Kim Yi-jung suffered from a disease and died in his late 40s. Yu Man-ju, who observed the lives of poor noblemen, including Kim Yi-jung, came to the conclusion that poverty is like a death sentence for the gentry in Joseon. The fact that the eldest son Kim Baek-sun was executed as a Catholic in 1801, 15 years after the death of Kim Yi-jung, is judged to be the result of following the path of poverty inherited from his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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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선후기 문인들의 청ㆍ장년기 齋號와 자아정체성

저자 : 안세현 ( Ahn Se-huy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22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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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후기 문인들이 20∼30대 청ㆍ장년기에 齋號를 짓고 記文을 창작한 것에 주목하여, 이것에 담긴 의미와 청ㆍ장년기 자아정체성의 일면을 고찰하였다. 조선시대 자신의 서재에 붙인 기문 중에서 20∼35세에 지은 글은 37편 가량 되며, 20대 초반에 지은 것도 10편 가까이 된다. 이러한 기문은 대부분 17세기 이후에 창작되었으며, 당쟁이 격화된 숙종 연간 이후의 글들이 많다. 당쟁이 극심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조선후기 문인들은 청ㆍ장년기에 자신의 존재와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자아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에 더욱 고투했던 것이다. 조선후기 청ㆍ장년기 문인들은 재호를 지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였으며, 기문을 지어서 자기 삶을 반성하고 인생의 진로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그들은 사회를 향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인정받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고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자아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In this paper, I explored the meaning of the actions of writ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o named their study and created Gimun in their 20s and 30s. In addition, I considered one aspect of the search for youth self-identity contained in these gimuns.
Among the gimuns based on his study creat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bout 37 were built at the age of 20-35, and nearly 10 were built in the early 20s. Most of these gimuns were created after the 17th century, and there were many works after King Sukjong, when the conflict between factions began to intensify. In the late Joseon Dynasty, young writers named their study to reflect on their own lives and to establish the course of their lives by writing a gimun. Furthermore, they wanted to actively reveal their identity and be recognized by society.
In this regard, this paper will have many messages from young people living today to establish self-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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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조집> 소재 '여성 致富ㆍ治産談'의 서사적 특성과 의미 -구비설화와의 교섭 양상을 중심으로-

저자 : 임이랑 ( Im Lee-la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9-25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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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조집> 소재 치부ㆍ치산담 가운데 여성이 제반 행위를 주도하는 자료를 선별하여 그 서사적 특성과 의미를 규명한 것이다. 특히 구비설화와 한문 단편의 교섭 양상을 살펴 여성 주도형 치부ㆍ치산담의 서사적 계승 관계와 변전 양상을 추적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우선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구비설화 <내 복에 산다>류에서 발견되는 '현명한 내조자'의 원형적 여성을 계승하여 치부 행위 주도하기, 名馬 알아보기, 남편 출세시키기 등 민담의 상징적 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민담에서는 다루지 않은 현실적 치부 및 치산 행위의 전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즉,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전통적 현모양처와 생존형 여성 異人 사이에서 집안 살림의 소박한 일꾼이자 가업과 가문의 번영을 주도하는 선도자로서의 여성 형상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들이 다양한 민담적 화소를 수용했더라도 종국에는 구비설화가 추구하는 '환상성'과는 다른 길을 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정 경제의 실질적 운용자로서 당대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여 그들의 치부 및 치산 행위를 핍진하게 기술한 '교술성'이 오히려 공고해진 것이다. 따라서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과부와 같은 여성 가부장, 자신의 신분 해방을 위해 남성의 킹메이커를 자처한 여종, 남편이 소속된 직업 세계의 각종 위험 요소들을 치밀한 계획과 현명한 처세로 소거한 서리의 처 등 입체적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로서의 흥미와 교훈을 두루 성취한 서사적 자산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은 <이조집> 소재 치부ㆍ치산담 가운데 여성이 제반 행위를 주도하는 자료를 선별하여 그 서사적 특성과 의미를 규명한 것이다. 특히 구비설화와 한문 단편의 교섭 양상을 살펴 여성 주도형 치부ㆍ치산담의 서사적 계승 관계와 변전 양상을 추적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우선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구비설화 <내 복에 산다>류에서 발견되는 '현명한 내조자'의 원형적 여성을 계승하여 치부 행위 주도하기, 名馬 알아보기, 남편 출세시키기 등 민담의 상징적 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민담에서는 다루지 않은 현실적 치부 및 치산 행위의 전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즉,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전통적 현모양처와 생존형 여성 異人 사이에서 집안 살림의 소박한 일꾼이자 가업과 가문의 번영을 주도하는 선도자로서의 여성 형상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들이 다양한 민담적 화소를 수용했더라도 종국에는 구비설화가 추구하는 '환상성'과는 다른 길을 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정 경제의 실질적 운용자로서 당대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여 그들의 치부 및 치산 행위를 핍진하게 기술한 '교술성'이 오히려 공고해진 것이다. 따라서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과부와 같은 여성 가부장, 자신의 신분 해방을 위해 남성의 킹메이커를 자처한 여종, 남편이 소속된 직업 세계의 각종 위험 요소들을 치밀한 계획과 현명한 처세로 소거한 서리의 처 등 입체적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로서의 흥미와 교훈을 두루 성취한 서사적 자산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narrativ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women's leading activities among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located in "Ijo Collection". In particular, they focused on tracking the narrative succession relationship and transformation patterns of women-led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by examining the negotiation patterns of folktales and short stories of Chinese characters. As a result, first of all, it was confirmed that the female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actively accept the symbolic pixels of folk tales such as leading the chibu behavior, recognizing famous horses, and making her husband succeed. At the same time, he revealed the full extent of realistic 'becoming and managing wealthy' that was not covered in folk tales. In other words, women-led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show a complex image of a woman as a simple worker of family life and a leader in the prosperity of the family business and family between a traditional wife and a stranger woman for survival. Therefore, even if they accepted various folktales, it could be seen that they eventually chose a different path from the "fantasy" pursued by the folktales. By highlighting the role of women at the time as practical operators of the family economy, the "didactic characteristics" has rather been solidified. Therefore,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of the female can be seen as narrative assets that have achieved interest and lessons through three-dimensional female characters such as widows, maidservants, and Seo-ri's w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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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李鈺의 「頖村四旌閭記」에 대한 우의적 독해

저자 : 정순희 ( Jeong Sun-he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7-29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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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촌사정려기」는 성균관의 일을 하는 반촌 주민 5 사람이 유가 이념을 실현한 것을 다룬 글이다. 총 5 사람의 삶을 다룬 것에 비해 글은 비교적 짧다. 게다가 글의 본론에 해당하는 네 旌閭記는 600여자에 불과하고, 서두와 결미에 붙인 작가의 논평은 400 여자로 전체의 반 가까운 분량을 차지한다. 분량뿐만이 아니다. 네 정려기의 내용은 간략하면서 서술 방식에서도 비교적 단순하게 통일돼 있다. 그에 반해 글의 서두와 결미에 붙인 작가 논평은 매우 자세하다.
이옥은 서두와 결미에서, 성균관에 종사하는 반촌의 사람들이 유가 이념적으로 교화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 반박한다. 곧 이옥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中人들에게서는 정려문이 거의 없고 양반들의 거주지에 정려문이 많다고 하며, 사회 최하층의 반촌에 있는 4 개의 정려문을 이러한 반박의 근거로 든다.
「반촌사정려기」는 글의 무게 중심이 글의 서두와 결미의 작가 논평에 있다. 그러다 보니 4 정려기는 실재하는 사실이면서도 작가의 논평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 것으로 보이게 된다. 특히 서술 내용을 간략히 하고 서술 방식을 통일시키면서 네 정려기가 각각 유가 이념의 寓意로 일반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 Banchonsajeongryeogi > is an article about the realization of Confucianism by five Banchon residents who work for Sungkyunkwan. Given that the article dealt with the lives of a total of five persons, the article is relatively short. In addition, the number of characters of Jeongryeogi (旌閭記) corresponding to the body of the article is only about 600, and the number of characters of the author's comments attached to the beginning and the end are about 400, accounting for nearly half of the entire article.
The foregoing applies to not just the amount. The contents of the four Jeongryeogis are concise, and the methods of description are relatively simply unified. On the other hand, the author's comments attached to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article are very detailed. At the beginning and end, the author refutes the criticism that the people of Banchon, who are engaged in Sungkyunkwan, do not seem to be ideologically edified in Confucianism.
At the basis for his refutation is the following thought. That is, examples of the realization of the Confucian ideology are rather rarely seen among economically affluent middle-class people, and it is natural for the yangbans, the greatest beneficiaries of the Confucian ideology, to realize the Confucian ideology. The artist cites the four Jeongryeomun in Banchon, a village of the lowest class of society, as the basis for this objection.
In < Banchonsajeongryeogi >, the center of gravity of the article lies in the author's comments at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article. Therefore, the four Jeongryeogis seem to have been mobilized as a means for the author's comments while being subsistent facts. In particular, as the contents of description were simplified and the methods of description were unified, the four Jeongryeogis are respectively generalized into the allegories of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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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峿堂 李象秀의 「中庸章句序」 讀法

저자 : 신재식 ( Shin Jae-si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5-32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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峿堂 李象秀(1820~1882)는 조선 19세기 農巖系 문인으로 唐宋派 문학가이다. 그의 「中庸章句序讀法」은 唐宋派 문학론을 朱子의 「中庸章句序」 독해에 적용한 것으로, 조선후기 당송파의 계승과 발전 뿐 아니라 그 구체적 실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상수는 「中庸章句序」에 문학적 기법이 활용된 점을 간파하고, 大註와 小註를 통해 그 역할을 정밀하게 분석 해설하여 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후학에게 구체적 독해의 지침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독해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구성과 주제의 유기성 파악, 수사와 표현의 정합성 분석 등이 그것이다. 즉 「中庸章句序」의 주제와 주요 문구를 찾고, 그 호응 관계를 단서로 삼아서 그 전체의 문단 구성(1단 中庸의 정의, 2단 堯舜의 '中'자 전수, 3단 孔子 문하의 中庸 전수, 4단 子思의 中庸 저술, 5단 中庸의 실전, 6단 二程의 中庸 발명, 7단 朱子의 章句 저술)을 파악한 것, 그 과정에서 작자가 활용한 다양한 수사법(對照, 照應, 接引, 頓挫 등)을 포착하여 작자의 의도(道學의 대의 해명, 子思 『中庸』의 역할, 道統의 계보 확립, 道學의 실전 경위)를 파악하는 단서로 삼은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이상수는 문학의 독해 방식을 학문의 영역에까지 적용시켜 그 활용성을 극대화시켰다. 그러므로 이는 단지 조선후기 문학사적 의의 뿐 아니라 교육사적 의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역대 중국과 조선의 經說을 집대성한 『七書詳說』의 저자 朴文鎬의 스승으로 그 경전 해석의 방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경학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Lee Sang-soo(1820~1882) is a writer of the old doctrine faction who developed theories on Tang-Sung literatures. His 「Method of Reading the Preface of the Commentary on the Doctrine of the Mean」 is an application of the literary theory of Tang-Sung literatures to the reading of Zhuzi's 「the Preface of the Commentary on the Doctrine of the Mean」. This is an example that can confirm the succession and development of Tang-Sung literatur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well as its concrete practice. Lee Sang-soo saw the use of literary techniques in 「the Preface of the Commentary on the Doctrine of the Mean」. by accurately analyzing and explaining its role and using it as a means to understand the author's intentions, he has provided specific guidelines for reading comprehension to younger students. The reconstruction of the analytical process of his method of reading revealed its characteristics, broadly divided into two: Understanding the organicity of composition and subject matter, Analysis of the consistency of rhetoric and expression. First, find the topic and main phrase, and use the correspondence as a clue to figure out the composition of the entire paragraph. Second, the various rhetorical methods used by the author are captured and used as a clue to understand the author's intentions. By applying the reading comprehension method of literature to the realm of scholarship, its utility was maximized. It can be said that it has significance not only in the literary history of the late Joseon Dynasty, but also in the history of education. In addition, it can be said to have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it influenced the disciple's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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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세기 전반 서유영의 新興寺 행적과 詩交

저자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7-36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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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문인 雲皐 徐有英과 그의 벗 洪翰周, 李承元이 新興寺를 배경으로 지은 21제 34수의 시에 주목하여, 당시 서유영의 행적과 詩交를 추적한 것이다. 먼저 시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기를 고증했다. 신흥사는 현재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릉 인근에 있는 흥천사이다. 서유영은 1839년 봄 39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신흥사를 유람하고, 같은 해 늦봄부터 늦여름까지 3개월가량 신흥사에서 사찰 독서에 들어갔다. 이후 1850년대에 신흥사를 재방문하여 마지막 유람을 즐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서유영과 벗들의 신흥사 시를 시기별로 구분하여 서유영의 행적과 감회를 분석하였다. 첫 유람, 서유영의 시에선 관광객의 설렘이 나타나며 그에게 신흥사는 불교적 신비가 흐르는 청정 지대였다. 사찰 독서 기간, 친구들과 떨어져 고립되자 경탄의 감정은 그리움으로 바뀌고 신흥사는 외로운 유배지가 되었다. 마지막 유람, 벗과 동행하여 다시 찾은 신흥사에서 서유영은 첫 유람 때와 같은 평온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 같은 감정 변화의 기준은 벗과의 동행 여부에 있었다. 그에게 신흥사는 벗이 있으면 황홀한 낙원, 벗이 부재하면 황량한 유배지였다. 이는 그와 동행했던 홍한주와 이승원의 시에서 신흥사가 일관적으로 경탄의 공간인 것과 대비되었다. 신흥사 시는 서유영과 벗들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며, 이때의 벗은 대등하게 시를 논할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흥사 시는 시와 벗과 낙원의 기록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글의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연구에서 충분히 규명되지 못했던 修學期 서유영의 생애에 접근할 수 있었다. 둘째, 19세기 초 서울․경기 문인 시사의 끈끈한 우정의 현장을 엿볼 수 있었다. 셋째, 시 속에 형상화된 과거 신흥사의 정경을 복원함으로써 신흥사를 한국문학의 영역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This article traces Seo Yoo-young's deeds and poetry in Sinheungsa in the 19th century by analyzing 21 poems of him, Hong Han-ju, and Lee Seung-won.
First, I proved the place and period of the poem. Sinheungsa is Heungcheonsa located near Jeongneung in Donam-dong, Seongbuk-gu, Seoul. Seo Yoo-young first visited here in the late spring of 1839, began temple reading for about three months from late spring to late summer in the same year, and revisited here in the 50s and enjoyed the last tour.
I analyzed Seo Yoo-young's activities and emotions shown in poem. In the first tour, the excitement of tourists appeared, and Shinheungsa was a clean area with Buddhist mysteries. During the temple reading period, as separated from friends, the feeling of wonder changed to longing, and Sinheungsa became a lonely exile. In the last tour, the same peaceful joy returned, because he was with his friends.
The criterion for such emotional change was whether to accompany friends. Sinheungsa was an ecstatic paradise with friends, and a desolate exile without friends. This change contrasts with Hong Han-joo and Lee Seung-won's consistent wonder. Sinheungsa poem shows Seo Yoo-young's friendship. The friends at this time means someone who can discuss poetry equally. Therefore, Sinheungsa poem can be defined as a record of poetry, friends, and paradise.
The achievements of this article are as follows: first, it was possible to supplement Seo Yoo-young's life in the studying period, which was not sufficiently identified in previous studies. Second, we could get a glimpse of the strong friendship of literature club in the early 19th century, in Seoul. Third, by restoring the scene of Sinheungsa that appeared in the poem, Sinheungsa could be invited to the realm of Korea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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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한문학연구 85집 목차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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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항문학총서속집≫ 수록 자료의 성격과 의의

저자 : 김영진 ( Kim Young-j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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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 구자균(1912~1964)에 의해 일제시기에 여항문학에 대한 연구가 처음 시작되었고 『이조후기 여항문학총서』 1, 2차분(1986/1991, 임형택 외 편, 전10책 총 86종 수록)의 출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여항 관련 신자료가 꽤 많이 발굴되었기에 자료의 수집과 公刊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이 인식하고 있었다. 필자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자료 수집ㆍ해제 및 DB구축' (한국학 기초자료 조사사업, 2019.6-2022.5)의 연구 책임자로 성과를 마무리하여 그 결과로 금년에 ≪여항문학총서속집≫ 제1ㆍ2권(27종 수록)이 막 출간되었다. 제3ㆍ4권(40종 수록 예정)은 2023년 2월 출간 예정이고, 제5권(30종 이상 수록 예정)은 2024년 2월 출간 예정인 바, 본고에서는 제1ㆍ2권에 수록된 18세기 시문집과 제3ㆍ4권에 수록될 19세기 시문집을 중심으로 그 성격과 의의를 소개한다.
우선 제1ㆍ2권에 수록된 자료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18세기 핵심 여항시사의 대표 시인들의 시문집이 대거 발굴된 점이다. 둘째, 여항인들이 주도한 조선 후기의 시가사, 음악사, 회화사, 서예사 관련 자료의 확충이다. 셋째, 여항문학 또는 여항문화를 주도한 인물들을 대거 확충했다는 점이다. 넷째, 여항 시사나 특정 교유 그룹이 확인되지 않는 중요 개별 문인 자료의 발굴이다. 다섯째, 善本 자료의 확정과 출판문화사 연구에의 일조이다.
제3ㆍ4권에 수록될 19세기 시문집의 주요 특징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송석원 시사의 핵심 멤버인 노윤적의 시집과 아직 저자 고증은 되지 않았지만, 송석원시사 명단 속에 있는 시인이 분명한 인물의 『詩抄』 가 있다. 또 송석원시사 구성원은 아니지만 이 시기 중인 최고의 시인이라 할 조수삼의 미발굴 시집 『妙杏園詩集抄』가 주목된다. 둘째, 송석원시사 다음 세대의 시인들로 여항시단의 주축이자 또 한편 추사 김정희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문인들인 오창렬, 박기열, 조술증, 유최진, 함진숭 등의 자료 발굴이다. 셋째, 역시 추사와의 교유가 확인되나 중인으로의 뚜렷한 직무(관직)가 확인되지 않은 인물인 이기하, 이구하, 신광현 등의 자료들이다. 넷째, 이상적을 중심으로 한 역관 시인들(부친 이정직, 숙부 이정주, 후배 및 제자 김석준, 변원규, 고영주)의 시문집이다. 김석준과 변원규는 개별 시집 외에 역관 6인 시선인 『해객시초』가 따로 전한다. 6인 중 한 명인 김병선이 편찬한 『화동창수집』도 큰 의미를 갖는 저작이다. 다섯째, 의원의 문집 속에 실린 序跋 및 편지 내용에 언급된 자료들이다. 이현양과 홍현보의 문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섯째, 갑오경장으로 여항인 또는 중인이라는 신분의 구분은 다소 퇴색되었지만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에도 여전히 중인출신 인물의 문화적 활약은 지속되었다. 蘭垞 李琦를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제5권은 尺牘, 遊記, 自傳, 筆記, 詩話, 畫帖, 契會, 詩選 등의 문체가 수록될 예정이다. 다만 본고에서는 자료 목록만 제시하고 그 구체적 내용과 의의에 대해서는 후고로 미룬다.
30여 년 전에 영인된 『여항문학총서』가 86종을 수록하였는 바, 『속집『은 근 100종에 육박한다. 질과 양 모두 비등한 수준을 담보한다고 자신한다. 이전의 『여항문학총서』가한문학, 국문 시가, 예술 문화사, 서울학 등의 연구에 자료의 반석이 되고 연구의 기폭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이번 『속집』 역시 한국학은 물론 동아시아 비교사의 보다 넓은 시각에서 연구, 그리고 문화 컨텐츠로의 활용 등 큰 반향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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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 후기 가집의 여항인 항목에 대한 재검토

저자 : 권순회 ( Kwon Soon-hoi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77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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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 후기 가집에서 여항인 작가의 작품을 수록한 '여항인 항목'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도하였다. 19세기 전반 이전에 출현한 가집 가운데 이삭대엽 유명씨부에 여항인 작가가 등장하는 가집을 대상으로 여항인 항목의 특성을 살폈다. 총 23종의 가집을 대상으로 살펴본 결과 여항인 38인의 작품 411수를 확인하였다.
여항인 항목은 18세기 초 김천택에 의해 『청구영언』(김천택 편)에 '여항육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정되었다. '여항육인'은 작가명 표기가 유지되는 19세기 전반까지 여항인 항목의 핵심으로 자리하면서 정전화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가운데 18세기 중반 『청구영언』(김천택 편) 다음에 등장한 가집의 여항인 항목에서는 의도적으로 김천택을 배제하고 대신에 사대부인 박인로를 포함했다. 새로운 여항인은 조응현 단 1인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반면에 김수장은 이후 등장한 『해동가요』 계열 가집에서 김천택의 흔적을 되살리며 여항가객의 정통적 맥락을 다시 확립한다. 동시에 김수장 시대에 활동했던 여항인 11인의 작품을 『청구가요』에 별도로 수록하여 여항인 항목의 외연을 확장한다.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여항인 항목이 다양하게 분화된다. '여항육인'과 『청구가요』에 등장했던 작가들이 통합되고 여기에 새로운 여항가객들이 더해진다. 총 20인의 여항가객이 새로 출현하였다. 여항인 항목의 수록 형태도 달라진다. 여항인들이 사대부와 뒤섞여 분산 수록되는가 하면, 항목명을 별도로 부여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가집의 편제가 전면적인 악곡 편제로 전환되고 노랫말이 악곡별로 재배치되는 19세기 전반에 오면 그 규모는 대폭 축소되고 여항인 항목은 점차 자취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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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항문화 연구와 데이터 모델링

저자 : 김지선 ( Kim Ji-sun ) , 류인태 ( Ryu In-ta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9-11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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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항문학 분야의 본격적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 연구로서 졸고 '김지선(2019), 「19세기 여항전기집 수록 인물 관계망 구현 및 분석 연구 -『호산외사』, 『이향견문록』, 『희조일사』를 중심으로」'에서 제안한 여항문학 데이터 모델을 바탕으로, 더욱 확장된 범위의 '여항문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개념적 데이터 모델링을 전개하고 그 고민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였다.
데이터 모델링(data modeling)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로 재현하기 위한 일종의 설계도로서 데이터 모델(data model)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물리적 현실로서 아날로그 환경과 전자적 재현으로서 디지털 환경은 근본적 속성이 다르기에, 연속하는 현실의 대상을 디지털 세계에 분절된 것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이러한 고민이 인문학적 문제의식과 결합할 경우 대상을 개념화하는 절차로서 '개념적 데이터 모델링' 과정은 복잡한 사유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인문학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꼼꼼한 읽기와 해석 그리고 분명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데이터 모델링 과정은, 정교한 인문학 데이터를 구축하게 하는 바탕이자 그로부터 다양한 디지털 인문학적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적 단서에 해당한다.
다종다양한 기록을 매개로 수많은 정보가 복합적 관계를 맺고 있는 '여항문화'의 세계를 디지털 환경에서 입체적인 데이터로 정리ㆍ표현하기 위한 모델의 일환으로서, 본 연구에서 정리한 클래스(Class)는 '인물(Person)', '시사(Community)', '단체(Group)', '기록(Writing)', '서화(Object)', '저서(Book)', '장소(Place)', '공간(Site)', '사건(Event)', '가문(Clan)', '관서(Office)'이며, 개별 클래스에 속한 개체들 사이의 의미적 연결로서 정의한 대표적 관계(Relationship)로는 '저자이다(author)', '지은이다(writer)', '쓴 사람이다(calligrapher)', '그린 사람이다(painter)', '언급하다(mentions)', '수록하다(contains)', '구성원이다(member)' 등이 있다. 해당 클래스와 관계는 '여항문화'와 관련된 지식을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매개로서 한문학, 사회사, 미술사, 문화사 등의 전공 간 장벽을 넘나드는 유효한 채널이 될 수 있다.
추후 여항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문헌을 매개로 조선후기 다양한 직능을 향유한 중인들의 신분적 감각과 그들의 폭넓은 예술 활동까지 다채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여항문화' 데이터베이스를 편찬하기 위해서는, 문학-역사-예술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성격의 논의-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며 그와 같은 행보(movement)를 위한 기초 단서로서 본 연구에서 정리한 내용이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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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청시기 행정막부의 사야집단과 왕휘조의 자서전 『병탑몽흔록』

저자 : 김정숙 ( Kim Jeong-su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6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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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아시아 문학사 속 중간층의 성장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작성된 것이다. 한국한문학계의 독자가 조선의 중인계층과 대조하여 살펴볼 수 있도록, 청대 사야집단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모하였다. 지방행정 사회에 유입한 행정막부의 사야를 '중간계층'으로 설정하고, 사야집단의 형성과 역할, 이어서 그 개별 사례로써 왕휘조와 그의 자서전 『병탑몽흔록』 등을 개괄하고 정리하였다.
18세기 청대 사야 집단의 형성 배경은 우선 지방행정 전문가의 결핍이 거시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틈새에서 생계를 해결하고자 한 사람들은 대체로 생원계층이었다. 과거시험에 편중된 관리선발제도는 그 경직성으로 인해 무수한 생원을 양산하였고, 그들 중의 일부가 호구지책으로 행정사야의 공급원이 된 것이다. 행정사야의 역할은 관원의 행정업무를 보좌함은 물론이고 구실아치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사야는 지방관원이 사적으로 초빙한 행정 전문가였으므로, 사야와 主官의 관계는 서로 대등하고 독립적이었으며 상당히 존대를 받았다.
개별 사례로써 소흥사야 왕휘조와 그의 자서전을 대상으로, 왕휘조의 유막생활 및 『병탑몽흔록』의 저술 동기ㆍ내용ㆍ체재, 그리고 당시 주류 학풍과의 관련성 등을 살펴 보았다. 자전적 연보라는 형식은 건륭ㆍ가경시기에 유행한 보첩학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병탑몽흔록『의 편찬은 외적 배경보다 내적원인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덕을 축낸다'라는 아버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야의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형명사야는 왕휘조의 심적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심적 태도가 毋自欺와 실사구시의 삶을 추구하도록 만들었고, 그러한 삶의 내용이 '연보'라는 형식과 결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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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79년 간행된 『白雲遺集』 硏究

저자 : 김중섭 ( Kim Jung-seop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20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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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879년에 간행된 李奎報 遺集의 일종인 『白雲遺集』에 대하여 개관하고, 이 유집에 收錄되어 있는 「代仙人寄下界書」의 저자 문제에 관하여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이규보는 고려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그가 남긴 시문은 『東國李相國集』을 통해 전해지다 조선전기에 편찬된 』東文選』에도 상당수 실렸다. 또한 여러 차례 간행된 』동국이상국집』은 顯宗代에 이르러 또 한 번 간행될 정도로, 그의 시문은 조선 후기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규보가 세상을 떠난 지 600년이 더 지난 뒤에 이규보의 또 다른 유집이 출간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백운유집』이다.
『백운유집』은 木活字本 1책으로 간행된 책인데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서 누가 어떠한 경위로 간행하였는지 밝힐 만한 근거가 없다. 지금까지 『백운유집』에 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또한 거기에 수록된 「대선인기하계서」는 『東國李相國集』과 』東文選』에는 「代仙人寄予書」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학계에서는 이 작품을 이규보가 자기 자신에게 쓴 書簡이라고 통상적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백운유집』에는, 『동국이상국집』이나 『동문선』에 실려 있는 이규보의 작품과 對比해봤을 때 그 제목이 다르거나 내용이 다른 경우, 그리고 이규보의 작품이 아님에도 이규보의 작품으로 수록된 경우들이 있다. 더욱이 주목할 만한 내용은 「대선인기 하계서」의 제목 아래 夾註에서 저자를 이규보가 아닌 '林椿'이라고 特記하고 임춘이 이규보를 위로하기 위하여 써준 글이라고 서술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백운유집』에 관한 연구에 착수하여 소재 작품 전체를 살피고 이전의 문집들과 다르게 기록된 작품들에 관하여 자세히 언급하였다. 아울러, 「대선인기하계서」를 쓴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규명하면서 이규보와 임춘의 관계, 작품의 제목과 내용, 사용된 문체와 용어 등 여러 측면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 말 간행된 이규보 유집의 일종을 소개하고 『백운유집』에 나타난 變改 양상들을 파악하였으며 기존과 다른 관점들에 대해 살폈다.
『백운유집』의 내용 중에는 신뢰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규보의 문집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할 때 이규보의 해당 유집은 충분히 검토의 대상이 될 만하다. 또한 본고에서는 『백운유집』처럼 후대에 새롭게 간행된 고려 문인의 유집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力說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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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 시대 '春王正月' 이해의 흐름

저자 : 김민구 ( Kim Min-ku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4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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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尊周大一統의 의미를 내포한 '春王正月'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파악하고자 하였다. “元年春王正月”은 『春秋』 경문의 첫머리에 적힌 글로, 시기는 봄, 1월을 가리킨다. 그런데 周曆을 따져보면, 실제로 이는 겨울 11월이다. 중국의 여러 학자들은 이 괴리를 포착하고 나름대로 근거를 붙여 이해하려 하였다.
胡安國ㆍ程頤ㆍ朱熹ㆍ王守仁ㆍ顧炎武 등 중국학자의 '春王正月'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의 『春秋』 이해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胡安國은 孔子가 본래 겨울인 子月을 의도를 갖고 '봄'이라고 표기했다는 일명 '以夏時冠周月'論을 주창하였는데 이는 『公羊傳』의 '大一統'의 의미와 程頤의 논의를 계승한 것이다. 朱熹는 胡安國의 의견과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그가 지은 『胡氏傳』을 높이 평가했다. 胡安國의 주장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공적인 논의에서 정설로 취급되었다. 王守仁은 胡ㆍ程ㆍ朱의 논의와 결을 달리하며 '孔子는 周의 역법에 쓰인 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張維와 조선의 일부 문인은 王守仁의 논리를 긍정적으로 수용했지만 宋時烈 등 여러 학자의 반론 또한 거셌다. 이 논리가 對策文과 같은 公的인 글에 등장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正祖 때에 이르러 顧炎武의 『日知錄』이 정조 및 당시의 핵심 관료들에게 유행하였는데, 이때부터 顧炎武의 '春王正月'에 대한 설은 常論이 되었다. 공적 영역의 정설과 학자 개인이 가진 이설의 충돌, 이들의 위치가 바뀌는 과정은 학술사적으로 흥미로운 영역이 아닐 수 없다. 본고는 '春王正月' 개념의 이해 과정을 추적하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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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선 중종대 간행 호불 논서 『東吳沙門隱夫顯正論』에 대하여

저자 : 박기완 ( Park Ki-wa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7-290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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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부현정론』은 조선 중종대 조정의 불교 관련 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던 무렵, 지방의 사찰이 증가하고 목판본 불서 간행이 급증하던 때에 간행된 호불 논서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 호불 논서인 『유석질의론』과 『은부현정론』은 모두 연기사에서 최초로 간행되었는데, 전 시기 간행된 기화의 『현정론』이 수세적 차원의 호교론을 펼치는 것과 달리, 이 두 책은 각 저자가 개성적 필치로 다양한 논거를 사용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불교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문답의 구조를 띠고 있는 『은부현정론』은 기타 호불 논서와 달리 가탁이라는 문학적 형식을 빌려 가상의 시공간을 설정했고, 마지막 부분에서 『장자』와 「노자한비열전」 등에 나오는 표현을 이용해 불교가 유학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다 문학적으로 구현해내었다.
『은부현정론』은 儒佛을 막론하고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전거로 활용하였다. 다만 불경의 표현보다는 유학서의 표현을 사용한 경우가 더 많으며, 이는 저자의 박학과 화려한 문장 구사를 보여준다.
이 시기 불교는 그 전통이 단절되기보다는 오히려 강학용 저서를 출간함으로써 전통을 더욱 공고히 다져가거나, 다양한 개성적 저술을 출간하는 면모를 보인다. 연기사에서 최초로 간행한 『은부현정론』의 문체적 특징과 저술 형식은 그 자체로 조선 시대 불교의 새로운 역사상을 보여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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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동학골남씨와 수락산 玉流洞의 주인 남용익 -한문학 자료가 지닌 인문 유산 콘텐츠로써의 활용 방안을 겸하여-

저자 : 신영미 ( Shin Young-mi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1-347 (5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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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壺谷 南龍翼(1628∼1692)과 그의 世系가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일대에 남긴 자취를 탐구하고 그것을 인문 유산 콘텐츠로 활용하는 데 있다. 남용익과 의령남씨는 한 지역에 뚜렷한 종적을 남긴 인물과 가문의 예시로, 특정 개인과 특정 가문을 드높이는 데 이 글의 취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남양주시 별내면은 楊州 松山에 속했고 청학리 일대는 東鶴골, 東海谷, 陶谷 등으로 불렸다. 의령남씨와 양주 송산의 인연은 조선조 개국공신인 南在 때부터지만, 이들이 청학리를 근거지로 둔 '동학골남씨'로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는 16세기 南孝義 때부터이다. 남효의의 6세손인 남용익은 근기 서인에서 노론이 되었고, 그 후손들은 18세기부터 구한말까지 경화세족으로 명성을 유지하였다.
별내면 청학리 일대는 구한말까지 田莊으로 기능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남씨가 아직도 많은 이유는 先塋과 땅을 비롯한 선조들의 유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자취를 찾아 답사하던 중 茂朱公 南復始 묘소가 남용익의 묘소로 誤認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간 도난이라 추정된 남복시 묘소의 문인석 머리를 발굴하고, 별내면 청학리 청학근린공원에 남용익의 世系가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에 관해서도 조사하였다.
수락산 玉流洞은 동학골의 명소로 남용익이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이는 『호곡집』 내 숱한 시로 증명된다. 더욱이 남용익과 그곳을 찾았던 李喜朝가 훗날 옥류동 암벽에 玉流洞 글자를 새겼는데, 최근 이 글자가 발견됨에 따라 구체적인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현재 옥류폭포가 있는 곳으로 여전히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다. 한문학 자료를 매개로 시민들에게 향유될 필요가 있다고 보아 관련된 시와 기록을 소개하였다.
자연경관과 역사 경관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수락산 옥류동은 명승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이에 인문 유산의 콘텐츠화 방안으로 표석 설치와 QR 활용 등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묘소 고증과 유물 발견과정을 거치며 체감한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안전 신문고 Application”을 모델로 한 “문화재 신문고 Application”의 개발을 제안하였다. 이상의 약소한 아이디어가 관, 시민, 연구자, 문화재 소유주 등 다양한 주체가 협조할 수 있는 유연한 형태의 플랫폼 구축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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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19세기 북경 유리창 오류거 서점과 조선 지식인

저자 : 왕연 ( Wang Jua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49-38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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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는 동아시아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였고, 서적의 유통과 매매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서적 유통과 매매의 집중지로서의 유리창 서점가는 문화교류의 중심지가 됐다. 서점가의 서점과 서적상도 서적의 유통 과정에서 문인들과 인연을 맺어 문화교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건륭제 때 『사고전서』의 편찬을 위해 사고전서관이 생기면서 민간 善本을 찾아주는 오류거 서점의 역할이 특히 활성화되었다. 오류거 서점 주인은 청나라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했을 뿐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과도 오랜 기간 밀접히 친분을 유지해 왔다.
이 논문에서는 청나라 문인들의 史料와 조선 사신의 연행록 관련 자료를 조사하여 오류거 서점의 당시 위상과 영향을 정리하였다. 오류거 서점의 경영이념, 판매방식, 서적 서목, 문인들과의 교유 등에 관한 내용을 한중 양국 지식인의 기록을 통해 상세하게 검토하여, 오류거 서점이 서적을 매개로 어떻게 당시 문화교류의 가교역할을 했는지와 이덕무ㆍ박지원ㆍ박제가ㆍ유득공ㆍ남공철로 대표되는 조선 사신들과 어떻게 밀접한 연계를 지속해 왔는지 살펴보았다.
오류거 서점 주인인 도씨 부자는 紳商의 고상한 품성으로 한중 지식인의 찬사를 받았고, 결국 오류거 서점을 한중 지식인이 신뢰하는 문화교류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 명성은 조선 사신들이 연행록에 상세히 기록하여 조선 지식인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북경에 간 조선 사신들도 오류거 서점을 청나라 문인들과 교류의 거점으로 삼고 오류거 서점에서 청나라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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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간행물
간행물명 최신권호

문창어문논집
58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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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교육논집
59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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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어문
95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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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비교연구
81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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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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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이론연구
91권 0호

국제어문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2022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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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연구
62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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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예비평연구
76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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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사연구
8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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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한문학
93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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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고전연구
45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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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론총
94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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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어문학
98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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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보
47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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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연구
67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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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연구
50권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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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문화연구
8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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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어문연구
62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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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설연구
54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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