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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신문』의 「본국력사」 고찰

A study of Bongungnyeoksa in the Haejo Sinmun

반재유 ( Ban Jae-yu )
  •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한국학연구 6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8월
  • : 171-195(25pages)
한국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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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주필 장지연과 상고사 저술
3. 상고사 풍속서술과 문답식 표기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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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신문』은 1908년 2월 26일부터 5월 26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海參崴, Vladivostok)에서 발행된 한인신문이다. 당시 『황성신문』의 주필로서 인지도가 높았던 장지연을 창간초기부터 주필로 영입하였으며, 러시아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수많은 발매소를 설치하여 신문을 보급한 사실을 통해, 단순히 러시아 지역 내 한인교포를 위한 신문이 아닌 국내여론의 형성과 국권회복의 일익을 담당하던 매체로서 중요한 사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해조신문』에 실린 개별 연재물들은 『해조신문』의 성향이나 주필의 편찬의식 등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 창간 초기부터 연재된 「본국력사」는 국민정신의 배양 및 민족교육을 위해 상고사 연재를 시도했다는 점과 함께, 개신유학자의 상고사 인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본국력사」는 저자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 해당 연재물에 대한 집필 배경이나 의미 등을 논의하는데 어려움이 존재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본국력사」의 연재 시기와 출전, 내용상의 특징 등을 근거로 장지연을 저자로 추정하고, 그가 상고사의 풍속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던 문답식표기 등 독특한 서술방식들을 검토하며 『해조신문』 속 상고사 연재의 의미를 논의해 보았다.
「본국력사」의 연재 속에 담으려 했던 상고사의 풍속과 이를 전달하기 위한 서술방식 등은 당대 일제의 국내 신문 규제에 대항하여 민지의 계발 및 민족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려 했던 장지연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기획이며, 『해조신문』의 성격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 「본국력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The Haejo Sinmun was a Korean newspaper published in Vladivostok, Russia, from February 26 to May 26, 1908. It recruited Jang Ji-yeon as the main writer from the beginning of its foundation, who was well-known as the main writer of the Hwangseong Sinmun. The Haejo Sinmun was not just a newspaper for Korean residents in Russia but an important media for the formation of domestic public opinion and the restoration of national sovereignty.
The individual serials in The Haejo Sinmun showed the tendency of the newspaper and its main writer's intention. Among its serials, Bongungnyeoksa, which was serialized since its inception, is noteworthy in that not only it attempted to serialize Korean ancient history in order to cultivate the national spirit and raise national consciousness, but also it is possible to examine how protestant Confucianists recognize Korean ancient history. However, since Bongungnyeoksa did not specify its author, there is difficulty in discussing its background or meaning. Therefore, estimating Jang Ji-yeon as the author based on the timing, reference, and content characteristics of Bongungnyeoksa, this paper reviews the unique narrative methods such as catechetical prose that he employed to effectively convey the customs of the Korean ancient history, and consequently discusses the meaning of serializing Korean ancient history in The Haejo Sinmun.
The customs of the Korean ancient history that was contained in Bongungnyeoksa and the narrative methods to convey them are designs, through which we can see Jang Ji-yeon's intention to enhance the wisdom of Koreans and awaken their national consciousness against regulating newspapers in Korea by Japanese Empire. This is why we should pay attention to Bongungnyeoksa as an important historical material, from which we can see the nature of the Haejo Si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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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469X
  • : 2734-035X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9-2022
  • :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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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권0호(2022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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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북의 김기림을 넘어서

저자 : 김재용 ( Kim Jaeyong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25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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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남북에서 그동안 억압되었던 작가들에 대한 해금이 진행되었는데, 북한에서는 1984년에 남한에서는 1988년에 많은 작가들이 풀려나 널리 읽혀졌다. 남북 모두에서 금지되었던 정지용과 김기림이 이 시기에 읽히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김기림은 매우 문제적이다. 한국전쟁 시기에 한반도에서 갑자기 사라진 김기림은 해방직후 줄곧 남북협상파로서 활동하였다. 자주적인 통일독립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김기림은 미국과 소련을 적극 환영하였다. 일본을 제압한 미국과 소련의 힘을 업고 통일독립국가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신탁통치가 시작되자 비판적 지지로 전환하였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로운 제국의 이익을 잘 알고 있지만 그 길 아니고는 통일독립을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없기에 비판적 지지를 하였다. 1947년 중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김기림은 분단이 올 위험성을 감지하고서는 남북협상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부 지식인들은 소련을 믿고, 다른 일부 지식인들은 미국을 믿으면서 한반도가 급속하게 분단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 김기림은 이 모두를 비판하면서 남북협상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남북에 분단 국가가 각각 들어서고 나아가 남북협상의 버팀목이었던 김구마저 사망하자 간신히 자신을 지탱하다가 결국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다. 전쟁 이후 남북한에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남한에서 김기림이 해금되면서 연구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는데 주로 모더니즘의 각도에서 진행되었다. 1984년 이후 김기림은 북한에서도 해금되었는데 주로 민족적 향토적 측면에서만 다루어졌다. 남북에서 행해진 이러한 김기림 이해는 1930년대 이후 유럽 근대를 비판하면서 비서구 식민지의 세계사적 가능성을 탐구하였고 이 연장선에서 남북협상운동을 벌였던 김기림과는 잘 맞지 않다. 1차대전과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위기를 감지하고 그 대안을 탐색하였던 김기림의 세계 이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근대성과 제국의 근대성에 대한 그의 미학적 대응을 충분히 감안하여야 한다.


In the 1980s, the lifting of the ban on writers who had been suppressed by North and South Korea was carried out, and many writers were released in 1984 and 1988 North Korea and South Korea seperately. Jeong Ji-yong and Kim Ki-rim, who were banned from both the north and south, began to be read during this period, Kim Ki-rim, who served as an inter-Korean negotiator shortly after liberation suddenly had disappeared from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Korean War, Kim Ki-rim, who thought it was necessary to create an independent unified and independent state, welcomed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ey tried to create a unified and independent state with the power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at defeated Japan. However, when the trust rule began after the Moscow Triad, it switched to critical support. Although he was well aware of the interests of the new Empires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he gave critical support because there was no realistic way to achieve unification and independence. When the U.S.-Soviet Union Joint Committee broke down in mid-1947, Kim Ki-rim sensed the risk of division and actively launched an inter-Korean negotiation movement. Some intellectuals believed in the Soviet Union, others believed in the United States, and when the Korean Peninsula was rapidly on the verge of division, Kim Ki-rim criticized all of them and launched an inter-Korean negotiation campaign. However, when the divided countries were established in the two Koreas, and even Kim Gu, who was the main person of the inter-Korean negotiations, died, he managed to support himself and eventually disappeared in the process of the Korean War. After the war, he was a completely forgotten in the two Koreas. Then, in 1988, when Kim Ki-rim was lifted from South Korea, a lot of research was conducted, mainly from the angle of modernism. Since 1984, Kim Ki-rim has also been lifted in North Korea, and been read mainly in terms of ethnic and local aspects. This understanding of Kim Ki-rim, conducted by the two Koreas, could not explore the possibility of world history of non-Western colonies. Kim Ki-rim's world understanding of the European crisis and exploring alternatives after World War I, should be read in consideration of the global outlook, including non-Western colonies, on the basis of imperial modernity and imperial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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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북한문학 속의 김소월 1

저자 : 이상숙 ( Lee Sangsook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6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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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북한문학에 나타난 김소월시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민요성, 서정성, 민족성을 보여준 김소월은 한국현대시의 대표 시인이다. 그러나 남북의 문학사는 김소월의 민요적 율격, 민족적 정서, 향토적 소재를 각기 다른 의미와 관점에서 평가한다. 남한 연구자들이 서정성, 전통적 정한(情恨)의 정서, 낭만과 애수, 민요, 전통 율격의 시인으로 소월을 평가한다면 북한의 문학에서는 인도주의, 인민성, 애국주의, 민족적 형식, 민족적 요소의 기준으로 소월을 평가한다. 카프에 가담한 바 없고 이념적 경향성을 드러낸 바 없으며 남북 분단 전에 작고하여 체제 선택과도 관계없는 김소월이지만 분단된 남북의 문학사 안에서는 서로 다른 이념적 잣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의 북한 문학은 김소월을 '비판적 사실주의' 시인으로 규정한다. '비판적 사실주의'는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되기 전 단계의 사상적 문학적 한계를 가진 작가와 작품에 부여된 명칭으로, 김소월이 일제에 빼앗긴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 민요조의 율격으로 향토성, 애국성, 인민성을 보였지만 애상성이 과도하고 계급성이 부족한 한계를 보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설가 나도향과 함께 대표적인 비판적 사실주의 작가였던 김소월은 1960년대 중반 다른 카프계열 작가들과 함께 북한문학계에서 사라졌다. 이후 20여년 후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복권되며 북한문학계에 김소월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때에는 '비판적 사실주의'가 아니라 '사실주의'의 면모가 더 강조되었다.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북한의 문학사에 드러난 김소월에 대한 평가를 찾아내고 그 변화를 정리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This study assesses the critical evaluation and status of Sowol Kim's poems based on their place in Hoseok Um and Sepyeng Yoon's literary surveys, Modern Joseon Literary Anthology: Poetry (2) (1957), Modern Joseon Literary Anthology 14 (1992), and North Korean Literary History which were compiled by period.
The poems of Sowol Kim, a representative modern Korean poet, are well known in both North and South Korea for their folksong and lyrical characteristics, and their ethnic distinctiveness. In terms of the confrontation between modernism and tradition in South Korean literature, and between engagement and purity, Sowol Kim is recognized as a pure and lyrical poet. However,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the evaluations of Kim's oeuvre in South and North Korea. In North Korean critical literature, Kim is positively evaluated for expressing his affection for his people and nation, which had been subordinated to Japan, and for stressing regional characteristics, patriotism, and a people-centered philosophy using folksong-style rhythms, although some criticize the excessive sorrowfulness and lack of focus on class in his work. In the context of North Korean literature, the treatment of ethnicity, regional characteristics, and patriotism in Sowol Kim's poems are understood as embodying affection for the nation and the people, which also can be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theory of national specificity and the form of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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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반도 통합문학의 가능성 탐색-월북 이후 이기영의 대표 작품을 중심으로-

저자 : 오태호 ( Oh Tae-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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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이기영의 월북 이후 작품들 중 단편소설 「개벽」, 중편소설 「형관」, 장편소설 『땅』, 대하소설 『두만강』 등을 대상으로 한반도적인 시각에서 통합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진행해보았다. 1920년대 이래로 일제 강점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농민문학의 기수로서 대표적인 리얼리스트로 평가받고, 해방과 분단 이후 '북한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세계를 점검함으로써 분단 체제를 극복하는 단초로서의 '한반도 통합문학'의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해방기의 두 작품인 「개벽」과 「형관」에서는 당대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인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먼저 「개벽」은 불안한 지주 황주사와 소심한 소작농 원첨지 등을 비롯하여 인물들의 개성적 성격을 입체적으로 포착하면서 해방기 북한 사회의 풍경을 현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형관」 역시 해방 직전의 농촌을 배경으로 강제 징용을 둘러싼 일제와 농민들의 갈등을 그리면서, 농민 김부득과 허달삼을 중심으로 사상범 전력이 있는 문사 박철 등의 일화를 통해 일제 말기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는 텍스트에 해당한다.
반면에 『땅』과 『두만강』은 '토지개혁'과 '한국전쟁', '민족해방운동' 등의 주제에 대한 목적성이 과잉되어 서사적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에 해당한다. 물론 『땅』에서 주인공 곽바위에 대한 '순이 어머니'의 이중적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 등에서는 입체적 형상화가 이루어지지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에 대해 흠모와 감격을 금하지 못하는 곽바위의 생각과 마음을 묘사하는 대목은 '수령형상문학'의 전조로서 평면적 인물의 도식주의적 형상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두만강』에서도 곰손이가 씨동이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대목 등은 글공부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내용으로 당대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서사적 미덕에 해당하지만, 김일성 부대의 '항일 유격대원'으로서의 자부심에 넘치는 씨동이의 내면을 요약 기술한 대목 등은 인물의 입체성이 거세되어 평면화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기영의 문학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반도적 통합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텍스트에 해당한다. 월북 이후 해방기의 텍스트는 일제 강점기에 대표적인 리얼리스트로서의 감각을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문학의 필요성을 제공해주는 텍스트라고 판단된다. 반면에 분단 고착화 이후 발표된 『땅』과 『두만강』의 경우 당문학적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서사성의 약화와 함께 인물의 입체성이 평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문학의 가능성'을 회의(懷疑)하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영의 텍스트가 북한문학의 실체이자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 서사적 리얼리티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다. '해방 이전의 이기영'과 함께 '분단 이후의 리기영'은 리얼리즘적 관점에서 한반도 통합문학의 외연을 넓힐 필요를 제기하는 입체적 텍스트인 셈이다.


In this paper, among Lee Ki-young's post-North Korea works, short stories 「Gaebyeok」, medium-length novels 「Hyeonggwan」, long novels {Land}, and large-scale novels {Tumen River} We conducted an exploration of the possibility of integrated literature from a Korean Peninsula perspective. Since the 1920s, he has been regarded as a representative realist as a jockey of Korean literatur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as the best writer in North Korea after liberation and division, confirming the possibility and impossibility of “integrated literature on the Korean Peninsula” as a starting from the 1920s.
In the two works of the liberation period, 「Gaebyeok」 and 「Hyeonggwan」, the reality of the time was able to face living characters. First of all, 「Gaebyeok」 is a work that realistically embodies the landscape of North Korean society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capturing the individual characteristics of the characters, including unstable landlord 'Hwang Jusa' and timid tenant farmer 'Won Cheomji'. 「Hyeonggwan」 is a text that vividly captures the scenery of the end of Japan through anecdotes such as Kim Bu-deuk, a farmer, and Park Chul, a writer with a history of ideological criminals, while depicting conflicts between Japanese and farmers over forced labor against the backdrop of rural areas just before liberation.
On the other hand, {Land} and {Tumen River} are works that clearly reveal narrative limitations due to excessive purpose. Of course, in the {Land} three-dimensional imagery takes place in the part where the double view of Soon-i's mother against the main character Kwak Ba-wi is revealed. On the other hand, however, the part describing Kwak Ba-wi's thoughts and minds, which cannot help admiring and admiring “Great Leader Kim Il-sung,” is a precursor to “Great Figure Literature,” and is a representative part of the schematic shape of a planar figure. In the {Tumen River}, the part where Gomson preaches the importance of education to Sidong is a narrative virtue that brings the importance of writing study to life. However, the summary of the inner side of Sidong, who is full of pride as an “anti-Japanese guerrilla member” of the Kim Il-sung unit, is problematic in that the three-dimensional nature of the character is intensified and planarized.
Lee Ki-young's literature corresponds to a text that simultaneously shows the possibility and impossibility of integrated Korean literature. The text of the liberation period after North Korea's defection is judged to be a text that provides the necessity of integrated literature in that it has a sense of being a representative realis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On the other hand, in the case of {land} and {Tumen River} announced after the division, it confirms the impossibility of integrated literature in that the three-dimensional nature of characters is being planarized along with the weakening of artistry. Nevertheless, assuming that Lee Ki-young's text is a mirror reflecting the times as a substance of North Korean literature, the author Lee Ki-young is a three-dimensional text that raises the need to expand the scope of integrated literature on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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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북으로 간 심훈과 채만식-북한 『현대조선문학선집』의 '해금 작가' 연구 서설-

저자 : 장문석 ( Jang Moon-seok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160 (6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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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남한의 문학사적 정전인 심훈과 채만식의 문학이 탈냉전 이후 북한에서 문학사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현대조선문학선집』으로 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198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그 이전보다 더 유연한 시각에서 다양한 작품을 문학사의 시야에 포괄하였다. 『조선문학개관』 2권(1986)과 『주체문학론』(1992)에서는 북한의 연구자들은 심훈과 채만식의 문학을 '카프'의 동반자 문학으로 이해하였다. 이후 『현대조선문학선집』을 통해 심훈과 채만식이 창작한 다양한 양식의 작품이 북한에 소개되었다. 『현대조선문학선집』은 류희정을 비롯한 편집자의 텍스트 비평을 통해 원전에 기반하여 편찬된 문학선집이다. 『현대조선문학선집』은 『주체 문학론』 등 강령적 문학 이해에 기반하면서도, 텍스트의 편집과 해제를 통해 강령에 한정되지 않는 텍스트의 목소리를 제시하였다. 『현대조선문학선집』이 복원한 심훈과 채만식의 문학에 대한 이해는 『조선문학사』 9권(1995)과 여러 연구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진다. 탈냉전기 북한의 심훈과 채만식 문학 인식은 남한의 인식과 제한적이나마 동시대성을 형성하였다.


This article examined the process in which the literature of Shim Hoon and Chae Man-sik, the literary cannon of South Korea, became the object of discussions on literary history in North Korea after the post-Cold War, and was published in Collection of Modern Korean Literature. In the mid-1980s, North Korea incorporated various works into the perspective of literary history from a more flexible perspective than before. In Korean Literature Overview 2(1986) and Literary Theory of Juche(1992), North Korean researchers understood Shim Hoon and Chae Man-sik's literature as literature of sympathizer. Since then, various literary mode of works written by Shim and Chae have been introduced to North Korea through Collection of Modern Korean Literature. Collection of Modern Korean Literature is a literary selection compilation based on text criticism by editors including Ryu Hee-jung. Collection of Modern Korean Literature is based on the understanding on the view such as Literary Theory of Juche. This collection presented a voice of the text that is not limited to the single view through editing the text and explaining the work. In addition, the voices of Shim Hoon and Chae Man-sik's literature restored in Collection of Modern Korean Literature become richer through Korean Literary History(1995) and various studies. Two Koreas' literary perception on Shim and Chae during the post-Cold War period share limited synchr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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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남북한 문학장에서 조명희 문학의 위상

저자 : 임옥규 ( Lim Ok-kyu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1-19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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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문학장은 각각의 특성과 이념적 제약으로 인해 상호 이질적이며 배타적인데 이는 남북한 문학사의 구성과 서술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상호 재평가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남북한 문학사에서 공통적으로 주요하게 논의되는 작가 중 한 명인 조명희 작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의 문학은 남북한이 함께 공유하는 문화유산으로 남북한 문학사 접점으로 존재한다. 그의 국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문예활동은 한민족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도 분단이라는 이념적 대립 상황과 사회주의 사상을 선택하여 소련에 망명하였다는 선입견으로 인해 그의 문학사적 업적이 온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또한 그의 방대한 문예와 문학관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기에 통합문학사적 측면에서 그의 문학사적 위상과 전망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한 통합 문학사 서술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방편이 될 수 있으며 남북한을 넘어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위상을 점검하는 실증자료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본고는 남북한에서의 조명희 연구사를 살펴보면서 특히 북한 평가의 역사적 변모과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또한 남북한 근현대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조명희적 경향을 근대화 비판과 사실주의 계보의 확장으로 보고자 한다. 그는 1920년대 피식민지 주체의 마음을 형상화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굴절된 근대화를 비판하였고 그의 사실주의 창작방법론은 남북한에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었다. 그가 구소련으로 망명한 이후 원동고려문단 활동 사항을 통해서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문학으로서의 특색과 전망을 살펴볼 수 있다.
본고는 남북한 문학장에서의 조명희 문학의 위상을 다루고 한민족 디아스포라문화권에서 조명희 문학의 논리와 의미를 분석하여 남북한 문학 소통의 전망을 마련하고자 한다.


Writer Cho Myung-hee has had a profound impact on the literary history of North and South Korea through various literary activities. She is one of the most talked about writers in the histo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literature in both Koreas. Cho Myeong-hee is variously evaluated as a national writer, folk writer, anti-Japanese writer, and exile writer. Nevertheless, his literature was not properly evaluated due to the ideological confrontation of the division of North and South Korea and the prejudice that he chose socialism and defected to the Soviet Union. On the one hand, it is not easy to deal with his literary status and prospects because his vast view of literature and his view of literature form a diverse spectrum. However, this aspect can be a means of presenting a methodology for writing an integrated history of literature in preparation for the upcoming era of unification, and is meaningful as an empirical data to examine the status of Korean diaspora literature beyond North and South Korea. This article examined the status of Cho Myeong-hee's literature as a means of describing the history of inter-Korean integrated literature.
This article examines Cho Myung-hee's history of research on North and South Korea and analyzes his historical evaluation of North Korea in depth.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literary history of North and South Korea, Cho Myung-hee's tendency appears as a criticism of modernization and an expansion of the genealogy of realism. He criticized the modernization of the colonial era while embodying the spirit of the colonial subject in the 1920s, and his realism creation methodology was variously inherited in South and North Korea.
In addition, this article closely examined the activities of Korean literary circles in the former Soviet Union from 1927 to 1938 after exile in the Soviet Union, and compared the perceptions of North and South Korea. Through this, we will analyze the logic and meaning of Cho Myung-hee's literature in the Korean diaspora culture to prepare a communication horizon for North and South Korea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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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무(時務)의 연구자, 강덕상(姜德相)의 조선사 연구

저자 : 이규수 ( Yi Gyu-so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23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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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재일 역사학자 강덕상(1931~2021)의 삶의 궤적을 검토했다. 강덕상은 일본의 조선사 연구, 특히 근대사 연구의 초석을 쌓았다. 우방협회(友邦協會)를 토대로 한 '조선근대사료연구회(朝鮮近代史料硏究會)'의 활동을 비롯, 일본 사회에서 조선사 연구가 갖는 진정한 의미와 방향을 제시했다. 본인이 말하는 시무(時務)의 역사학자로서의 길이었다.
강덕상의 삶은 재일조선인으로서 살아온 '격투'의 역사였다. 식민지 시대 황국 소년으로서 강덕상은 조국의 존재가 희미했다. 조선인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일본에 충성을 다하도록 강요당한 황국 소년, 강덕상의 모습을 통해, 황민화 정책이 인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강덕상의 방황과 고뇌는 청년기에도 계속되었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그토록 가혹했다.
강덕상이 민족 정체성을 회복한 것은 '조선인 선언' 이후다. 대학원 진학 이후 강덕상은 근대사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일본에서 조선사 연구의 전국적 학회인 '조선사연구회(朝鮮史硏究會)'의 결성에 핵심적 역할을 다했다. 개인 연구 영역 그는 경제사 관련 자료의 수집과 분석을 통해 조선의 내재적 발전을 추적했고, 3ㆍ1운동 연구에서도 민족대표 논쟁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강덕상은 시무의 역사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것은 강덕상의 대표적 연구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로 이어졌다.
강덕상은 '재일사학(在日史學)'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연구를 제시했다. 강덕상은 일본인이 언급하지 않은 숨겨진 역사의 규명이 '재일사학'의 본령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인이 다루지 않은 영역, 일본인이 피하고 싶은 영역을 일본 역사학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일본의 조선 연구가 지닌 문제와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강덕상은 일관되게 민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은 남북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방향성을 전망한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여운형 연구가 이루어졌다. 강덕상의 여운형 평전 집필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운형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서만 분단된 한반도의 민족의식의 심리적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과 통일은 여운형 사상의 재평가를 통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강덕상은 '시무의 역사학자'로서 온 생애를 바쳤다.


In this article, the trajectory of life of Korean historian Kang Deok-sang (1931-2021) was reviewed. Kang Deok-sang laid the foundation for the study of Korean history in Japan, especially modern history. It presented the true meaning and direction of Korean history research in Japan, including the activities of < The Korean Modern History Research Association(朝鮮近代史料 硏究會) > based on the Friendship Association(友邦協會). This was his researching path as a historian of the mission of the times(時務).
Kang Deok-sang's life was the 'fighting history' as a korean in Japan. In colonial-era as a colonized boy, Kang Deok-sang had a faint perception on his country. Through the appearance of a colonized boy, Kang Deok-sang, who has Korean's mind but is forced to fulfill his loyalty to Japan, it is possible to understand how imperial citizenship's policy could distort human mind. Kang Deok-sang's wandering and anguish continued even in his youth. Prejudice and discrimination against Korean people in Japan were so harsh.
It was after the 'Korean Declaration' that Kang Deok-sang restored his national identity. After entering the graduate school, Kang Deok-sang devoted himself to researching modern history. He played a key role in the formation of the < Korean History Research Association(朝鮮史硏究會) >, a national academic society for Korean history research in Japan. In the field of personal research, he tracked the intrinsic development of Korean through the collection and analysis of data related to economic history, and also drew attention from academia through the debate on national representation in the study of the 3.1 movements. In this process, Kang Deok-sang shared the problematic consciousness of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Times. It led to the study of the massacre of Koreans in the Great Kanto Earthquake, a representative study of Gang Deok-sang.
Kang Deok-sang presented a new field of study called 'Korean history in Japan(在日史學)'. He emphasizes that the discovery of hidden history which the Japanese did not mention is the main body of 'Korean history in Japan.' It is important to raise a problem that the Japanese did not deal with and they wanted to avoid. This also presents the problems of recent Japanese research on Korea and future tasks.'
Kang Deok-sang consistently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people. It predicts the direction of unification and overcoming the division of the two Koreas. Under this awareness, a lingering study was conducted. The ultimate purpose of Kang Deok-sang's writing of critical biography of Yeo Woon-hyung is that only through a proper evaluation of Yeo Woon-hyung, psychological unification of the divided Korean Peninsula's national consciousness is possible. It suggested the prospect that Korean's independence and unification could only begin through a re-evaluation of Yeo Woon-hyung's ideas. Kang Deok-sang has devoted his entire life as a researcher of the mission of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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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어느 재조일본인의 인양 회고와 그 의미-요시하라 이사무의 『내려진 일장기』에 나타난 일제 말기 인천의 지리지-

저자 : 윤미란 ( Yun Mira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3-26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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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요시하라 이사무(吉原勇)의 수필 『내려진 일장기-국민학교 1학년생의 조선일기』(2010)에 나타난 일제강점기 말기와 인양기에 관한 재조일본인으로서의 조선 인식을 분석하고 그 의의를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저자 요시하라 이사무는 종전 전후에 재조 일본인으로서 인천에서의 경험을 회고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어제의 적에서 오늘의 조력자가 되는 현실 모순의 상황을 인식한다. 또 그는 조선인을 이분법적으로 도식화(나쁜 조선인/착한 조선인)하여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정형화를 강화하는 한편 착한 조선인 에피소드를 통하여 기존의 조선(인) 인식을 전복하기도 한다. 요시하라는 '제국의 브로커'도 아니고 '식민자의식'이 강렬하지도 않았던 한 재조일본인으로서 인양기 인천의 체험을 '화해를 위한 기억'으로 재구성하였다.


This thesis is to analyze the perception of Koreans by the Japanese living in Korea regarding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the period of salvage and to investigate the significance of Isamu Yoshihara's essay “The Japanese Flag Dropped - Chosun Diary of a First Year Student at Elementary School” (2010). The author, Isamu Yoshihara looked back on his experiences in Incheon as a Japanese based on the end of the war. He recognized the situation in which the United States confronts the reality of going from an enemy of the past to an enabler of today. He said to have subverted the existing Chosun (people) beyond the good Chosun people episode that strengthened the standardization of Chosun (peopl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y picturing another Korean in a dichotomous way (bad Chosun people/good Chosun people). Yoshihara was neither an “Imperial Broker” nor had a strong sense of “colonialism.”, a Japanese residing in Korea, reconstructed the experience of Incheon during the salvage period as 'memories for reconc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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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동아시아학 속의 한국학-미국 UC 버클리의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장재용 ( Jaeyong Chang ) , Rachel Min Park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3-29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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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한국학의 성장세는 뚜렷하지만, 한국 안에서의 한국학과 한국 밖, 특히 미국의 한국학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미국에서 한국학의 발전이 동아시아 연구라는 좀 더 넓은 맥락과 어떤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는지를 미국 UC 버클리대학교의 사례를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UC 버클리대학교 한국학의 성장은 미국이 참가하였던 두 차례의 국제전, 태평양 전쟁과 베트남 전쟁 수행과정에서 연방정부의 지역 전문가의 육성차원애서 이루어졌다. 또한 이 글은 궁극적으로는 한국학의 연구 방법론을 재고하고 학문적 차원에서 국가 간 교류를 촉진하여 한국학 연구의 생산적인 틀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While the discipline of Korean Studies has grown increasingly popular and widespread in recent years, there is often an assumed homogeneity between the “Korean Studies” practiced across different countries, eliding the specific sociohistorical contexts that led to its various disciplinary formations. In particular, there is a need to distinguish between the Korean Studies as practiced in South Korea proper and the United States.
This article examines how the development of Korean Studies in the United States was inextricably linked to the broader context of East Asian Studies, using the specific case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to consider how early research institutions (such as the 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 global events such as World War II and the Vietnam War, and federal-level education policies influenced the direction and tenor of research on Korea within the United States.
By reassessing the genealogy of Korean Studies in the United States and demonstrating its sociohistorical differences with its development in South Korea, this article ultimately aims to provide a productive framework in reconsidering research methodologies, promoting cross-country exchange in terms of scholarship, and future promising directions for the framing of Korean Studies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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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근대 전환기 여성 번역가의 등장과 근대적 인식론의 성립-잡지 『우리의 가뎡』에 연재된 영한 번역을 중심으로-

저자 : 김민지 ( Kim Minji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5-31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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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대 전환기 여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근대적 지식을 전파하고자 하였던 잡지 『우리의 가뎡』에 연재된 번역문을 조명함으로써 서구의 논의가 어떻게 전달되었는가를 검토하였다. 『우리의 가뎡』에 나타난 '독자에서 필자로'의 이동 양상은 선행 연구들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 지점이었다. 앞선 논의들을 참고하여, 본 연구에서는 독자 출신 '기자'였던 백경애의 번역 작업에 주목하였다. 백경애는 『우리의 가뎡』 8호에 두 편의 글을 발표하며, 기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하나는 '현상모집' 당선작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내한 선교사였던 미국인 저자 무야곱(제이콥 로버트 무스, J. Robert Moose)이 출간한 책의 일부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문이었다. 이 번역물은 『우리의 가뎡』에 총 3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본 논문은 이때의 번역물이 전문(full text) 번역이 아니었으며, 매호 '역자 후기'와 같은 형태로 사견(私見)이 함께 게재되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백경애의 번역 작업이 서구의 시선을 그대로 전달하는 대신 조선의 상황을 덧붙이는 형태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번역 방식을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 논의를 빌려 '상황적 번역'이라 명명하고, 당대 여성들에게 조선이라는 삶의 터전이 '전근대적 농촌/근대적 여학교'와 같은 이분법적 공간으로 간단히 규정될 수 없었음을 주장하였다. 한국 여성들의 문해력 획득 및 글쓰기 역사와 관련하여 '영한 번역'의 사례를 검토하는 연구 방식은 식민지 역사 속 '근대화' 문제를 다층적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examines that Western discussions were not simply conveyed to Koreans by highlighting the translations published in the magazine “Uriui Kadyung”; which spread modern knowledge to female Korean readers in the 1910s. The phenomenon of 'readers becoming writers' identified in the magazine was also importantly examined in previous studies. Referring to the previous discussions, this study focused on the translation work of Baek Kyung-ae, who was a reader-turned-writer. Baek started her career as a writer by publishing two articles in the magazine “Uriui Kadyung” No. 8 in 1914. One was the winning work of the “Writing Contest,” and the other was a translation of parts of the books published by J. Robert Moose, an American author who was a missionary in Korea, in 1911. The translation had been serialized in three volumes in the magazine “Uriui Kadyung.” Especially, this article focused on the fact that the translation was not a full text translation, and was published with an editorial such as “translator review”. As a result, I concluded that Baek's translation work was adding the situation of colonial Korea instead of conveying the Western view as it was. I named this translation method as “situational translation” by borrowing Haraway's discussion of “situated knowledge”. And I claimed that colonial Korea, as a living space for Korean women, should not be defined in a dichotomous way, such as 'pre-modern rural area / modern girl's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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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감염병과 주권의 재영토화-1946년 콜레라의 발생이 불러온 풍경들-

저자 : 허병식 ( Huh Byungshik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7-33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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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국주의 시기에 한반도 외부의 구일본 제국의 권역 속에서 살아가던 조선인들은 해방을 맞은 후, 국내로 귀환하였다. 제국-식민지 질서에서 냉전-국민국가 질서로 주권권력이 재편되고 식민지배의 폐해와 전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익이 교차하던 국제정세 속에서 귀환을 둘러싼 양상은 복잡한 국면을 마주하고 있었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 한반도와 만주 사이에 냉전적으로 교차하고 있던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은 자신이 속할 영토와 국가, 정체성 속으로 투신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1946년에 한반도 전역에 발발한 콜레라 사태는 귀환하고 월경하는 민족의 이동에 결정적인 장애로 작동하였다. 일본에서 노동을 하던 조선인들의 귀환은 콜레라로 인하 차질을 빚었다. 또한 중국 동북 지역 한인들이 귀국이 아니라 현지 정착을 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도문을 중심으로 전 연변 지역을 휩쓸었던 콜레라 감염병이었다. 이 과정에서 온전한 국적조차 부여받지 못한 한인의 귀환은 국제적 현실과 냉엄한 전후 동아시아 질서 속에 휩쓸려 갔다.
감염병이 불러온 공포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당대의 미디어였고, 문학은 이 공포가 불러온 시스템과 질서의 혼란을 조명한다. 염상섭은 만주에서 귀환하던 한인들의 모습을 담은 일련의 작품에서 콜레라라는 감염병을 직시하고 있다. 만주로부터 귀환하는 한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을 검증하는 것과, 콜레라 예방주사를 맞았느냐의 문제이다. 방역이 사상과 감염병 양편에 공히 방역이 작동하고 있는 양상이다.
콜레라라는 감염병과 관련해서 기억해야할 장소는 접경지만이 아니다. 해방 후 대구와 제주에서 일어난 정치적 격랑은 콜레라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굶주림에 이어 병마로 다시 쓰러져야 했던 사람들-그들의 원과 한의 입김이 모여 시월의 폭풍을 불러왔다. 남한에서 주민의 수와 대비해서 가장 심각한 발병률과 사망률을 보여준 지역은 제주도였다. 미군정의 보고서는 이러한 제주의 콜레라 발병세에 대해서 방역 격리 조치가 이완된 것과 감염된 피난민이 제멋대로 밀수, 밀항하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판정하였다. 대흉년과 . 제조업체의 가동 중단, 높은 실업률, 미곡 정책의 실패 등으로 제주 경제는 빈사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상황과 콜레라 사태는 이후로 이어진 제주 4.3 사건과 밀접히 연동되는 것이다. 현기영이 그의 작품들에서 조명하고 있는 해방 후 제주의 풍경 속에는 어김없이 콜레라로 인해 흉흉해진 마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 연구는 해방기의 접경지과 대구, 제주에서 민심의 동요를 불러온 일련의 사태들을 당대의 정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조명하고, 이를 응시하고 있는 문학과 미디어의 담론을 분석하였다.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period, Koreans living in the sphere of the former Japanese Empire outside the Korean Peninsula returned to Korea after liberation.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n which sovereign power was reorganized from the imperial-colonial order to the Cold War-nation-state order, the harms of colonial rule and the interests of the great powers surrounding the Korean Peninsula after the war intersected, the aspect surrounding the return was facing a complex phase. Crossing the borderline that crossed the Cold War between the Korean Peninsula and Japan and between the Korean Peninsula and Manchuria was also a task of committing oneself to the territory, country, and identity to which one belonged.
The cholera outbreak that broke out across the Korean Peninsula in 1946 acted as a decisive obstacle to the movement of returning and bordering peoples. The return of Koreans who were working in Japan was hindered by cholera. Also, one of the important reasons why Koreans in northeast China chose to settle there rather than return home was the cholera epidemic that swept the entire Yanbian region around Tumun. In the process, the return of Koreans, who were not even given full nationality, was swept away by the international reality and the harsh post-war East Asian order.
It was the media of the time that reacted most sensitively to the fear brought about by the infectious disease, and literature sheds light on the chaos of the system and order brought about by this fear. In a series of works depicting Koreans returning from Manchuria, Yeom Sang-seop faces an infectious disease called cholera. What is required of Koreans returning from Manchuria is to verify their ideas and whether they have been vaccinated against cholera. Quarantine is working on both sides of ideology and infectious disease.
The border isn't the only place to remember when it comes to infectious disease cholera.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the political upheaval in Daegu and Jeju after liberation was directly related to cholera. The people who had to fall again due to illness following hunger - their won and the breath of Han gathered to bring about the storm of October. In South Korea, the region that showed the most severe morbidity and mortality compared to the number of residents was Jeju Island. The report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determined that the cholera outbreak in Jeju was caused by the relaxation of quarantine measures and the smuggling and smuggling of infected refugees at will. Great Famine and Jeju's economy fell into a state of death due to manufacturing shutdowns, high unemployment, and failure of rice policies. And this economic situation and the cholera crisis are closely linked to the Jeju 4.3 incident that followed. In the landscape of Jeju after liberation, which Hyun Ki-young illuminates in his works, there is always a picture of a village that has been horrified by cholera. This study illuminates a series of events that provoked agitation in the borderlands of the liberation period, Daegu, and Jeju in the contemporary political and social context, and analyzed the discourses of literature and media staring at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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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27~1637년 조선의 遼民 대책과 토벌론

저자 : 우경섭 ( 禹景燮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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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이후 청천강 이북에서 벌어진 東江鎭과 遼民의 작폐는 호란 이전보다 한층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毛文龍은 가도 인근 해안을 넘어 내륙까지 진출하여 군사를 주둔시켰고, 요민들은 피난한 조선인들의 땅을 차지하고 눌러앉으려 하였다. 또한 그들은 조선의 관리와 군인들을 공격하고 사신 일행까지 습격하는 등 조선의 공권력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모문룡은 조선인들까지 동강진에 편입함으로써, 청천강 이북 일대를 자신의 통치 아래 두고자 하였다.
1629년 모문룡이 요동경략 袁崇煥에 의해 처형된 뒤, 명 조정은 가도의 일부 병력 및 요민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동강진의 내분이 지속되면서 그동안 요민들에게 의식을 공급하고 작폐를 단속하던 최소한의 기능조차 마비되자,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요민들은 동강진의 통제에서 벗어나 내륙을 횡행하며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요민의 登州 송환을 기본 방침으로 고수하던 조선 조정에서는 두 가지 방책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동강진과 요민을 무력으로 제어하려는 토벌론과 청천강 이북의 통치를 잠시 유보하자는 청북포기론이었다. 특히 1630년 劉興治의 반란 이후 요민을 대하는 조선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조선 조정은 요민들이 명을 배신하고 후금과 내통할 가능성을 명분으로 삼아, 가도에 대한 식량 지원을 중단하고 군사를 보내 가도를 공격했다.
그러나 명 조정은 여전히 동강진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했고, 요민의 작폐는 계속되었다. 또한 후금은 동강진의 내분을 틈타 가도를 공격하며 재침을 위협했다. 이러한 상황 아래 조선은 청북의 방어체제를 완비하지 못한 채 병자호란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1637년 청에 항복한 직후 수군을 파견해 가도 공격에 동참하여 요민을 토벌하고, 남한산성에서 맺은 약조에 따라 요민을 수색하여 청으로 송환하기 시작했다. 이제 명나라 백성으로 조선이 보살펴야 할 요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체포하여 북송해야 할 청의 백성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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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후반~효종 초반 대외전략상의 위기에 대한 검토

저자 : 김태훈 ( Kim Taehoo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6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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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병자호란 이후 새로운 대외 전략이 모색되고, 그 과정에서 창출된 외교적 논리·명분이었던 備倭論과 朝·淸和親論이, 청의 입관 및 효종의 즉위 등 대내외적 환경 변화를 계기로 그 효용성을 잃고 폐기의 수순을 밟게 되는 과정을 인조 후반~효종 초반의 대외전략상 위기라는 관점에서 검토한 연구이다.
인조대 후반 대청 왜정 보고를 통해 전개된 비왜론은 조·청 간 전략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졌고, 청·일 간 연계를 차단하면서 대일정책상 독자성을 유지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청의 입관 이후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완화된 상황, 효종 즉위 이후 반청적 인사의 기용에 대한 청의 견제 등과 맞물리면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조·청화친론은 병자호란에서 패전하여 청에 稱臣하게 된 사실을 일본 측에 은폐하는 전략이었다. 그 한계가 매우 분명하고 불완전한 대응책이었던 조·청화친론은 청의 입관 이후 조선에 대한 견제가 완화되면서 사실상 폐기 처분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시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던 이러한 외교 전략의 용도 폐기는, 이후 새로운 대응 전략이 출현하지 않음으로써 대외전략상 위기 국면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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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찬출(撰出)된 악한: 정명수와 『인조실록』의 개찬

저자 : 조일수 ( Cho Ilso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9-9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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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후금에 귀의하여 끝내 조선에 파견된 칙사의 지위까지 오른 정명수는 아마도 한국사상 최악의 매국노이자 악한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적개심에 가득 차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끝까지 괴롭혔다고 기억되는 정명수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과도할 지라도 원전(原典)을 찾아보면 실록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많은 자료에 근거해 있다. 이 글에서는 인조대 『승정원일기』를 효종의 시대에 편찬된 『인조실록』과 대비해 읽는 방법을 이용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명수의 모습이 효종대의 정치적 의제 하에 만들어졌고 오늘날까지 재생산 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사료적 가치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실록을 역사적 사실들을 명백하게 나타낸다는 식으로 과도하게 이상화(理想化) 하거나 『승정원일기』가 후대에 개수되었으니 개수 당시의 정치적 의제를 반영한다는 주장들의 문제를 검토하여 이에 대한 반론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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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유.엔. 마주르(Ю.Н. Мазур)의 생애와 한국어의 품사 체계

저자 : 칼리나 ( Kalina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12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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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니콜라예비치 마주르(Юрий Николаевич Мазур, 1924~1998)는 러시아 최고의 한국어학자 중의 한 명으로 평가된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모스크바 동양학연구소 극동학부 한국학과에서 한국어를 전공하였고 1953년에는 동 연구소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그는 모스크바 동양학연구소, 제1 모스크바 국립외국어대학교를 거쳐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동양언어연구소에 임용된 후 남은 인생을 이 연구소에서 보냈다. 마주르는 한국어와 관련해서 100편이 넘는 업적을 남겼다.
이 논문의 목적은 마주르의 생애와 연구 업적을 소개하고 그의 한국어 품사 체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본고는 러시아어로 집필된 마주르의 「현대 한국어 문법 개요(Краткий очерк грамматики современного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1954), 『한국어(Корейский язык)』(1960), 『한국어 문법. 형태론. 조어론(Грамматика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 Морфология. Словообразование)』(2001)을 대상으로 하였다. 러시아인 한국어학자 마주르는 러시아어 문법을 기반으로 한국어의 단어를 자립성 유무에 따라 품사와 보조어로 나누어 설명했다.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등과 같은 자립성이 있는 것들은 품사에 포함시키고 후치사, 접속사, 소사, 의존명사 등과 같은 보조적인 의미·기능을 나타내는 것들은 보조어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양상어의 설정, 러시아어의 전치사에 대응되는 후치사의 설정, 소사의 설정 등 러시아어의 문법 개념들을 한국어에 적용시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 조선어문법의 영향을 받아 관형사를 설정하였다. 마주르는 교착어인 한국어의 품사 체계를 러시아어의 품사 분류 기준으로 분류하여 모호한 면도 있지만 러시아인 한국어 학습자가 한국어를 이해하고 익히기에 최상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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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어 감각형용사의 어근 파생 접미사와 어근 형성

저자 : 홍석준 ( Hong Seok-ju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9-17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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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서 고유어 감각형용사는 대부분 '복합어근 + -하다'의 구조를 띤다. 감각형용사의 어근을 형성하는 파생 접미사는 아직까지 그 목록이 정리되지 않았고 어근 형성 방법도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감각형용사를 시각, 미각, 촉각, 청각형용사로 구분하여 각 어휘장에서 분석되는 어근 파생 접미사 목록과 그 접미사에 의해 형성된 복합어근을 제시했다. 그리고 감각형용사 어휘장에서 파악되는 어근 형성 방법으로 파생, 합성, 내적 변화, 어간의 어근화, 유추 등이 있음을 밝혔다. 어근 파생 접미사는 시각형용사에 해당하는 색채형용사에서 24개 유형, 명암형용사에서 12개, 크기형용사에서 27개 유형, 모양형용사에서 16개 유형이 분석되었고, 미각형용사에서 13개 유형, 촉각형용사에서 33개 유형, 청각 형용사에서 3개가 확인되었다. 어근의 파생은 어간에 어근 파생 접미사가 결합(검- + -(으)ㅅ → 거뭇)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고, 합성은 동일 어근을 반복(거뭇거뭇)하거나 다른 어근을 결합(새콤달콤)시키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내적 변화에는 어근의 자음과 모음을 교체시키는 방법(불긋:볼긋:뿔긋)과 어근의 음절수를 확대(질컥:질커덕)하거나 축소(거머무트름:거무트름)시키는 방법이 있다. 어간의 어근화는 형용사나 동사의 어간이 형태 변화 없이 어근으로서 '-하다'와 결합하는 것(둥글다:둥글하다)이고, 유추는 기존 어근들의 형태와 닮은 꼴을 취함으로써 그것들과 비슷한 의미를 띠는 방법(뜨뜻무레 cf. 노르무레, 시그무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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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해조신문』의 「본국력사」 고찰

저자 : 반재유 ( Ban Jae-yu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1-19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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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신문』은 1908년 2월 26일부터 5월 26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海參崴, Vladivostok)에서 발행된 한인신문이다. 당시 『황성신문』의 주필로서 인지도가 높았던 장지연을 창간초기부터 주필로 영입하였으며, 러시아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수많은 발매소를 설치하여 신문을 보급한 사실을 통해, 단순히 러시아 지역 내 한인교포를 위한 신문이 아닌 국내여론의 형성과 국권회복의 일익을 담당하던 매체로서 중요한 사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해조신문』에 실린 개별 연재물들은 『해조신문』의 성향이나 주필의 편찬의식 등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 창간 초기부터 연재된 「본국력사」는 국민정신의 배양 및 민족교육을 위해 상고사 연재를 시도했다는 점과 함께, 개신유학자의 상고사 인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본국력사」는 저자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 해당 연재물에 대한 집필 배경이나 의미 등을 논의하는데 어려움이 존재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본국력사」의 연재 시기와 출전, 내용상의 특징 등을 근거로 장지연을 저자로 추정하고, 그가 상고사의 풍속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던 문답식표기 등 독특한 서술방식들을 검토하며 『해조신문』 속 상고사 연재의 의미를 논의해 보았다.
「본국력사」의 연재 속에 담으려 했던 상고사의 풍속과 이를 전달하기 위한 서술방식 등은 당대 일제의 국내 신문 규제에 대항하여 민지의 계발 및 민족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려 했던 장지연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기획이며, 『해조신문』의 성격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 「본국력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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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신생활』의 역사적 의미 재론 -잡지사의 사회적 실천을 중심으로-

저자 : 정윤성 ( Jung Yoonsung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7-22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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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 조선의 최초의 사회주의 잡지를 발간하고, 최초의 필화 사건의 당사자로 알려진 신생활사의 여러 대외적 활동에 주목했다. 사학계와 국문학계의 선행연구들은 사회주의 지식과 관련한 잡지의 번역·수용 양상과 그것의 당대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신생활사의 주요 필진들은 사회주의 담론을 보급하면서도 동시에 사회 현안에 즉각적으로 개입했다. 예컨대 신생활사는 1922년의 '신석현 학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내 언론·사회단체들과 제휴하여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했고, 잡지사의 주도적인 움직임은 기미년의 민족적 궐기를 환기할 만큼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생활사는 체육대회, 강연회를 개최하며 지식과 담론의 차원과는 다른 경로로 민중과 접촉했고, 강력한 인쇄 역량을 기반으로 여타 사회운동단체와 연계된다. 이른바 '신생활사 필화 사건' 당시 잡지사를 둘러싼 전방위적 행정·사법 조치는 사회주의 지식체계의 유통지이자 '활동기지'로서의 신생활사의 면모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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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용운·유산과 전통·애국주의

저자 : 최현식 ( Choi Hyun-sik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7-26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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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80년대 후반 북한 문단에서 극적으로 복권되고 새롭게 가치화된 한용운 문학의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된다. 당시까지 한용운 문학은 부르주아지의 문학형식과 불교 중심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 아래 북한문단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김정일이 주도한 주체문학에 의해 애국주의와 인민주의에 대한 헌신, 항일혁명운동의 적극적 실천을 새롭게 평가받았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한용운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 전제는 한용운 문학이 김일성의 항일혁명운동과 그 문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진보적 전통과 유산에 해당된다는 당문학(주체문예)의 결정이었다. 본고는 이런 정황에 기반한 한용운 시의 복권과 재평가를 첫째, 북한 인민들을 독자대중으로 설정하는 문학잡지와 현대시선집, 문학신문의 논문과 기사, 둘째, 『조선문학사』로 대표되는 학계의 공식 입장과 평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용운 문학은 김일성의 혁명운동과 항일문학을 절대화하기 위해 조국=임에 대한 애국심과 인민에 대한 사랑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문단이 진보적 이념과 애국주의를 더욱 입체화하기 위해 문학적 형식과 수사법 등에 대해서도 자세한 검토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의 한계로 지적되던 불교적 사유와 상상력도 주체철학과의 연관 속에서 새롭게 평가되어 그 부정적 가치를 거의 넘어서게 되었다. 현재 한용운의 작품은 북한판 조선문학사에서 확고한 지위와 탁월한 평가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그의 독립 운동과 작품 활동이 문학사를 넘어 김정일의 『주체문학론』과 북한의 필독서이자 유훈통치의 교서인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등재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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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칸트와 함께 만해를 -『님의 침묵』의 자유의 이념과 사상 번역의 흔적-

저자 : 강동호 ( Kang Dong-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5-30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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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님의 침묵』에서 구현되는 '님'에 대한 '사랑'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자유'에 관한 사유를 규명하는 데 있어 한용운과 서구 근대철학과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밝히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만해와 칸트의 만남이다. 칸트의 철학과 더불어 만해의 시를 읽는 작업의 정당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서 마련될 수 있다. 한용운의 주요 텍스트들에는 단편적으로나마 칸트 철학에 대한 앎을 암시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그러한 흔적이 중요한 이유는 칸트의 도덕 철학에서 피력되는 자유에 대한 논의와 『님의 침묵』이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님의 침묵』에서 발견되는 만해와 칸트 사이의 사상적 유사성과 차이는 중요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자유와 법칙의 일치라는 절대적 원리를 추구하지만, 그것의 구체적 실현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만해는 칸트와는 다른 사유의 경로를 택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님'이라는 시적 표상으로 전개되는 한용운의 세계관이 서구적 근대성과 전통적 사유가 갈등하고 교차하는 과정 속에서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해와 칸트 사이의 이러한 단순하지 않는 연결 고리에 집중할 때, 우리는 전통과 근대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 속에서 온전히 의미화 될 수 없는 『님의 침묵』의 독특하고도 이중적 성격에 대해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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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냉전기 북한 지식인의 아시아 인식 -서만일의 『인도기행』(1957)을 중심으로-

저자 : 고자연 ( Ko Ja-yeo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09-33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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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50년대 중후반의 북한 기행문들을 바탕으로 당시 아시아 지식인들의 문화교류 양상을 파악하고, 그들의 아시아 인식을 규명하며, 그들이 구성해나간 문화교통을 아시아적 지평에서 맥락화하여 냉전 아시아의 실제적 맥락을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동안 북한 문학 연구에서도 기행문, 특히 아시아 기행문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실정으로, 이에 1950년대 중후반 북한의 아시아 기행문들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본고는 그 첫 번째 연구에 해당하며, 주 텍스트는 서만일의 『인도기행』이다.
서만일의 『인도기행』은 1950년대 중반에 본격화되기 시작한 '아시아 연대'의 주요 행사 중 하나인 '아세아 작가대회'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텍스트이다. 또한, 서만일은 조선작가동맹 산하 외국문학분과위원회 위원장,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 조선-인도 문화협회부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희곡·시·동시·평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창작했으며, 북한의 1세대 소련유학파 출신으로 러시아어에 능통하여 번역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중요한 작가이다. 그러나 1959년 숙청 이후 복권되지 못했고,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는데, 본고는 서만일을 재조명하는 연구이기도 하다.
본고는 『인도기행』을 중심으로 다음의 내용들을 고찰했다. 먼저, 그간 제대로 연구된 바 없는 '아세아 작가대회'를 정리했다. '아세아 작가대회'는 전후 최초 아시아 작가대회로서 반둥회의 이후 아시아 연대를 위한 실질적인 실천의 첫 행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다음으로 『인도기행』은 북한에서 처음 발표된 '자본주의 방문기'였던 만큼 동시기의 다른 북한 기행문들과 그 여행 경로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본고는 사회주의 진영(북한, 중국)에서 자본주의 진영(버마, 인도)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냉전의 횡단'이라는 시각으로 고찰하였다. 이어 서만일의 눈에 비친 인도를 살펴보며 그의 인도 인식과 그에 따른 아시아 인식을 살펴보았다. 그는 인도를 여행한 다른 외국인들과는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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