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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연구회> 동양철학연구> 20세기 초 유교 종교화의 논리와 유교사적 의의 ― 박은식(朴殷植)과 장지연(張志淵)의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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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유교 종교화의 논리와 유교사적 의의 ― 박은식(朴殷植)과 장지연(張志淵)의 경우 ―

Logic of religiousization of Confucianism and Confucian historical significance in early 20th century - In case of Park Eun-sik and Jang Ji-yeon

정성희 ( Jeong Seong-hee )
  • : 동양철학연구회
  • : 동양철학연구 111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8월
  • : 133-171(39pages)
동양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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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시작하는 말
Ⅱ.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담론
Ⅲ. 박은식과 장지연의 상황인식
Ⅳ. 박은식과 장지연의 대동교 창설과 유교 종교화의 논리
Ⅴ. 맺는 말 - 유교종교화 운동의 한계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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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년간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던 조선의 성리학은 조선 말기에 이르면 학문적으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이론적 분기를 거듭하면서 생동감을 잃고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세도정치와 외척정치가 등장하면서 도학적 이상정치의 추구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러한 때 강제적 개항을 맞게 된 조선은 준비되지 않은 개화를 감당하면서 열강 사이에서 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무풍지대에서 도학에 침잠해있던 조선 유학자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중화론과 의리론에 입각한 위정척사가 유림의 보편적 반응이었고, 반대편에는 유교망국론을 주장하는 극소수급진개화파가 있었다. 또 한편에는 개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주체적으로 해야 하며 서구문물을 수용 하더라도 그 바탕은 유교가 되어야 한다는 동도서기론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유교적 전통과 가치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유학자들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유학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은 유교개혁론자라고 하겠다. 이들 가운데 박은식과 장지연은 식민지 이전까지는 같은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유교개혁을 위해 유교종교화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발달한 서양 문명의 바탕은 기독교라는 종교라고 보고, 그 종교의 대중성과 조직력, 결속력에 주목하고, 오랜 기간 우리의 현실과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유교를 종교화하고자 하였다. 유교에서 종교성을 끌어내어 조직화하고, 지배층 지식인만의 학문이었던 유교를 대중화하려 새로운 종교조직을 결성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대동교였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종교가 가지는 신비주의적 요소와 사적인 욕구를 완전히 배제하고, 유교 특유의 합리성과 공적인 영역만을 강조했다. 또 대동교 설립의 목적이 종교화 자체가 아니라 종교화를 통한 유교개혁이었고, 대중의 단합을 이끌어내어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었으나 유교의 대중종교화는 결국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대동교 운동은 유교에서 소외되어 있던 민중을 의식하고 대중화의 필요성을 일깨웠으며, 적극적 선교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또한 종교화 과정에서 공자를 아시아 유교의 종조로 자리매김하고, 우리의 유교에는 기자를 공자 앞에 위치시킴으로서 우리만의 독자성과 민족성을 띤 유교를 설정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즉 이들은 척사위정론자들의 중화론과 개화론자들의 유교망국론이 빠질 수밖에 없는 외세 의존성을 탈피하여 독자적인 대안을 제시하였고 그 논리적 근거를 탐색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조선 유학에서 도의 보편성에 대한 강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던 민족의식을 환기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였다.
Park Eun-sik(朴殷植) and Jang Ji-yeon(張志淵) are Confucian scholars from the late Chosun Dynasty to the colonial period. They are also called Confucian reformists. Beginning in 1876, Joseon Dynasty came into contact with Western culture through the forced opening of ports. The cultural openness that started without preparation caused a national crisis. Under this circumstance, Confucian reformists independently accepted Western civilization based on Confucianism, and they made an active effort to reform Joseon Confucianism by making Confucianism a religion. They tried to preserve the nation-state by turning Confucianism into a religion, organizing the masses, and uniting the people's hearts. It was Daedonggyo(大同敎) that was established for this purpose. They were not radical reformists, nor were they in a position to adhere to the existing Confucian values themselves. Their argument was the theory of Dongdoseogi(東道西器) that they would achieve enlightenment, but their ideological basis had to be Confucianism. Jang Ji-yeon and Park Eun-sik carried out a Confucian reform movement based on the theory of self-strengthening, engaged in media activities, and they founded Daedonggyo in 1909 to conduct research and activities to make Confucianism a religion. However, the movement to convert Confucianism into religion failed to persuade neither the public nor the conservative Confucian scholars. As Confucian scholars with rational and public thinking they could not embrace private desires in Daedonggyo. In the end, due to their limitations as Confucian scholars, the religiousization of Confucianism and the popularization of Confucianism had to fail. Despite these limitations, the Confucian religiosity movement has historical and ideological significance. For one thing, it brought attention to the religiosity of Confucianism which was not discussed in traditional study of Confucianism. This was an attempt to be conscious of people as an entity of the Confucian organization, and popularize Confucianism. Another is that they sought to find ethnicity and subjectivity in Confucianism. They revered Confucius as the dogma of Confucianism, but the Confucianism of our nation goes up to the pre-Confucius 'Gija(箕子)‘. It is based on the ’Gijadonglaseol(箕子東來說)‘. From a modern perspective we can find the signification of religiousization of Confucianism as a rational religion that has no faith in the Absolute, and therefore no exclusivity. Therefore it may serve as a buffer zone in our present country which is a multi-religious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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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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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713-9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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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8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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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권0호(2022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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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야(草野)의 선비 송제민의 복수(復讎) 논의가 지닌 의의

저자 : 김재경 ( Kim Jack-young ) , 김기림 ( Kim Girim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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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제민은 비록 벼슬길에 오르지는 못한 선비였지만, 임진왜란이라는 국난 시기를 당하여 국가와 백성을 염려하고 원수를 갚고자 하는 충의의 마음은 평생토록 한결같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정에서 일본과 외교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그는 「만언소」를 작성하여 외교 재개 반대, 일본에 대한 복수 방안을 논의했다. 그가 남긴 「만언소」는 언제든지 일본에 의해 침탈당할 위기에 있는 조선을 구하고자 하는 의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성공했던 사례를 들어 복수 방안을 제안한다. 그가 제시한 7가지 방안은 적을 교만하게 만들기, 간첩 이용하기, 백성 기르기, 가르치기, 현명한 재상을 임명하여 전적으로 맡기기, 뛰어난 장수를 임명하여 전적으로 맡기기, 뜻과 마음을 하나로 하며 한결같이 하기 등이다. 그러면서 이 복수 방안 실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복수 논의는 그 내용이 현실적이며 구체적이고, 일본과 조선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 및 분석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Although Song Je-min was a scholar who could not rise to the rank of official, his loyalty to the country and people and to avenge the enemy was constant throughout his life during the national crisis of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re was a movement to resume diplomacy with Japan in the court, and he wrote Maneonso(萬言疏) to oppose the resumption of diplomacy and discuss revenge against Japan. Maneonso he left behind showed his will to save Joseon, which was in danger of being invaded by Japan at any time.
He suggests a plan for revenge by citing the case of the successful revenge of the Yue(越) Dynasty Gu Chun(句踐) on the Wu(吳) Dynasty. The seven measures he suggested were making the enemy arrogant, using spies, raising the people, teaching them, appointing a wise chancellor and entrusting them entirely, appointing an outstanding general and entrusting them completely, and keeping one mind and heart together. At the same time, if there is anything he can do in the practice of this revenge plan, he pledges that he will be happy to do it.
His discussion of revenge is realistic and concrete enough to be put into action immediately, and it is significant that it is based on thorough and objective reflection and analysis o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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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사상 원형에 대한 남북한의 연구비교 ― '풍류(風流)'담론의 전개 양상을 중심으로 ―

저자 : 이난수 ( Lee Nan-su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6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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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의 '원형'문제는 근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당시 '원형'담론은 근대 사상가들에 의해 시대 변화에 역동적으로 대응할 가치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원형'에 대한 계승과 변용의 논의는 분단을 맞이하면서 단절된다. 분단이후 남북한 철학에서 '원형'문제는 이념적 차이뿐만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형성 과정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본고에서는 분단이후 고대 사상에 대한 차이점을 '풍류'를 중심으로 분석·비교하였다. 최치원의 '풍류'는 신채호, 최남선, 정인보 등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원형으로 논의되면서, 더불어 '단군(檀君)', '홍익인간(弘益人間)', '선인(仙人)' 등의 양상으로 발전되었다.
남한의 경우 '풍류' 담론은 종교와 사상의 경계를 아우름으로써 시원적 담론으로 고착되었다. 시대적 상황이나 사상가들마다 다르게 논의되면서 끊임없이 현재화되고 변용되었다. 이러한 점은 '풍류' 가 그 자체로 규명되기보다, '단군'·'홍익인간'·'화랑'·'멋' 등의 개념과 혼용됨으로써 파생되는 결과로 알 수 있다.
북한에서는 철학적 사유의 발생적 측면에서 원형 담론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유물론적 사유의 발생은 '기(氣)'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그리고 '풍류'담론은 진보적인 사상이거나 혹은 봉건적이며 반동적인 특성을 지닌 사상으로 논의되었다. 이러한 '풍류'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담론에 대한 논리적 결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남북한의 '원형'담론은 근대에 공유했던 원형 사유의 변용이라 할 수 있다. 담론을 통해 우리는 이념의 장벽처럼 고유 사상의 장벽도 견고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The issue of the archetype in Korean thought has been raised in earnest as it gets into the modern times. At that time, the archetype discourse was recognized by modern thinkers as a value to dynamically respond to the changes of the times. However, the discussion of the modern success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archetype is cut off with the arrival of the division. After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 issue of archetype was not only ideologically different, but also in the process of forming philosophical thought, the difference of opposing viewpoints was revealed.
This study analyzed and compared the differences in ancient thought after the division, focusing on 'Pung-ryu'. While Choi Chi-won's 'Pung-ryu' was discussed as the archetype of Korean thought centering on Shin Chae-ho, Choi Nam-seon, and Jeong In-bo etc., in addition, it developed into aspects of 'Tangun (檀君) Hongikinkan (弘益人間)' and 'Sunin (仙人)', etc.
In the case of South Korea, the 'Pung-ryu' discourse was entrenched as a primordial discourse by encompassing the boundaries between religion and thought. It was constantly present and transformed, discussing it differently in different situations and thinkers of the times. This point can be seen as a result of being derived by mixing with concepts such as 'Dangun', 'Hongikinkan', 'Hwarang(花郞)', and 'Meot(멋) ather than being identified by 'Pung-ryu' itself.
In North Korea, the archetype discourse appears in terms of the occurrence of philosophical thinking. In other words, the occurrence of materialism thinking was discussed around 'chi'. and the discourse of 'Pung-ryu' was discussed as a progressive thought or an thought with feudal and reactionary characteristics. The conflicting assessment of 'Pung-ryu' reveals a logical flaw in the discourse.
In the discourse on the archetype of the two Koreas examined so far, it was possible to examine the transformation of the archetype thought shared in the modern times. Through this, we can see that the barriers of indigenous ideology have been strengthened just like the geographical barriers of South and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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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역』의 종교성이 갖는 현대적 의미 ― 다산역학의 종교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

저자 : 黃昞起 ( Hwang Byong Kee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9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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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다산역학의 종교학적 특징과 그것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탐구한 것이다.
『주역(周易)』은 고대 점서에서 발전한 것이므로 원천적으로 종교성을 함유하고 있다. 그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있어 차이를 드러내지만, 현재의 행동과 미래를 판단하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것이다. 그것이 시대변천과 함께 윤리적으로 변모하고, 철학적 색깔을 띠고, 자연과학적 합리성을 띠게 되었지만 그 근본성격은 변할 수 없다. 정약용은 『주역』이 초월자인 신(上帝)을 섬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를 중심으로 하여 『주역』의 근본적인 종교성과 그 현대적 의미를 밝혔다.
인류문명은 언어, 혈통, 역사, 관습, 종교, 제도 등의 수많은 문화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최초의 역사적 자료들은 인간의 합리적 사고 이전의 비합리적 세계, 곧 신화적 세계에 대한 묘사들로 가득차 있다. 중국의 전적 가운데 아마도 가장 이른 시기에 탄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역』은, 설령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완성된 형태의 것이 아닐지라도, 처음부터 예측불허의 잠재적 두려움을 초월적 대상에게 물어 답을 얻고자 하는 일종의 방법론적 신탁이다. 이러한 방법론적 신탁은 정교한 절차와 나름의 합리적 방식에 의해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진 문자로 그 결과를 드러낸다. 『주역』의 핵심적 언어인 길흉(吉凶)이 곧 신탁의 결과물로 인간에게 전달되는 것이니, 태생적으로 종교적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류문명의 기층에는, 적어도 『주역』적 사고의 기층에는, 종교적 요소가 존재한다. 동서양의 문명론자들은 한결같이 문명의 중심에 종교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종교는 크게 세 가지의 유형이 있다. 첫째, 예언적 성격을 띤 종교로 중동의 사막에서 유래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같은 종교들이다. 이들은 경건하지만 조건 없는 신앙을 우선한다. 둘째, 신비적 성격을 띤 종교로 인도에서 유래한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불교, 힌두교 같은 종교들이다. 이들은 보통 명상 같은 신비적 체험을 강조한다. 셋째, 이성적 종교로 동아시아에서 유래한 유교, 도교, 선교 같은 종교들이다. 이들은 지혜를 강조하며 가장 지혜로운 자를 보통 성인, 진인 등으로 추앙한다.
『역』은 태생적으로 인류문명이 구가해 온 종교성의 혼융복합체이다. 동아시아에서 유래한 이성적 종교이지만, 신비적 체험과 예언적 신앙의 성격도 아우르고 있는 독특한 책이다. 『역』은 태생시에 청명(請命)이라는 신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공자 이후 지명(知命)의 지식론 체계로 탈바꿈하였다. 점서에서 출발하여 인생철학서로 변모하였고, 신학에서 인간학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는 태생적 초월의지는 그것을 현대인들이 철학서 또는 인생철학서로 읽는다 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주역』을 읽는 최종 목적은 사태가 길흉으로 전개되어 가는 단계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것이며, 그러한 판단에 의거하여 이성적 실천을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주역』은 원천적으로 종교성을 띠고 있으며, 신학적 프레임을 지니고 있다. 『주역』 텍스트의 다양한 인간학적 변용은 이러한 신학적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적 프레임 속의 인간학적 변용이 바로 『주역』의 현실적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동양학은 이른바 성인의 출현 이후 인간학 외에는 다루지 않았지만, 오직 『주역』만은 인간학이자 태생적으로 신학이다. 정약용은 역상(易象)의 본원적 성격에 기초하여 신학의 프레임으로 인간학을 포섭하고 있다.


This research explores the religious character of the Tasan Yi-ology and its significance in the contemporary era. Because the Zhouyi (周易) was written as an ancient divination text and developed from it, it necessarily has a religious quality. Determining actions that take place in the present and future is a religious activity in essence, regardless of who is held in reverence. Therefore, even though the practice of divination had changed as time passed and it became more ethical, philosophical, and rational like natural science, the essential character of the text had not been altered. Accordingly, Tasan Jeong Yak-yong claimed that the Zhouyi demonstrates history and culture of the era when people revered shangdi (上帝), i.e., a supreme being. Based on this view of Tasan, I will illuminate the Zhouyi's fundamental religiousness and its significance in our contemporary society.
While the Zhouyi presents a rational religion that originates in East Asia, it is unique in the sense that it incorporates mysterious experiences and prophetic beliefs, which developed as the Zhouyi went through a series of transformations. When the Zhouyi emerged, the text was written to serve as an oracle, qingming (請命), but it eventually became an epistemological system that concerns knowing one's fate (知命) since the time of Confucius. In other words, the Zhouyi evolved from the text of divination to the that of life philosophy; from theology to humanities. Nonetheless, even if contemporary people read it as a philosophical text or as a philosophy of life, the Zhouyi's intrinsic willingness to transcend the human world is not undermined. In the end, the ultimate purpose of reading the Zhouyi is to make a sound judgment about how a situation is developing into one's fortune and act accordingly.
The Yi is a composite of religiosity that has been praised by civilizations. While the Zhouyi is a rational religion that originates in East Asia, it is unique in the sense that it incorporates mysterious experiences and prophetic beliefs. When the Zhouyi emerged, the text was written to serve an oracle called qingming (請命), but it was shifted to an epistemological system that concerns knowing one's fate (知命) since the time of Confucius. In other words, the Zhouyi evolved from the text of divination to the that of life philosophy; from theology to philosophical anthropology. Nonetheless, even if contemporary people read it as a philosophical text or as a philosophy of life, the Zhouyi's intrinsic willingness to transcend the human world is not undermined. In the end, the ultimate purpose of reading the Zhouyi is to make a sound judgment about how a situation is developing into fortune and take a reasonable action.
Therefore, the Zhouyi necessarily reflects religiosity and embodies a theological framework. The text's various, anthropological transformations occur within a theological structure, and thus the anthropological transformation within a theological frame manifests a true picture of the Zhouyi. Ever since sages had appeared, scholarship in the East generally did not deal with anything else than philosophical anthropology, yet the Zhouyi―and only the Zhouyi―has been philosophical anthropology and, inherently, theology. Therefore, Jeong Yak-yong, by standing on the innate characters of the Yi's images, embraces philosophical anthropology within a theological frame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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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초기 유가의 자유지향경향성에 관한 시론(試論)

저자 : 손태호 ( Son Tae-ho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1-13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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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아노미 시대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되는 춘추전국시대 중국에 있어서의, 노나라 문화에 속한 학자와 제나라 사람들 간의 충돌은 본격적 다극화 시대로 향하고 있는 오늘날 참조할 점도 있다. 즉, 전형적인 다극화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문제와 그 해명의 과정을 관찰하면, 보다 규모가 큰 다극화 시대인 오늘날의 우리들이 세계인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게 하는 유익한 시사점도 발견된다.
전통적으로 법가적 관행에 익숙했던 제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 노나라에서 일어난 유가들의 단점은 무엇보다도 권력자가 다스리기에 불편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자유민적 생활태도는 당시의 권력자들에겐 당혹스러운 것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공자와 안영, 맹자와 순우곤의 대화 내용 등으로 공자, 맹자가 제나라에서 처했던 입장들을 고려해 보자면, 문화적인 혹은 학문적인 괴리보다도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그들 간의 각각 다른 정치적 배경에 따른 입장 차이였다고 보인다.
특히 이 논문에서 맹자의 제나라에서의 입지를 추적해 본 결과, 맹자와 여타 직하학자들, 혹은 맹자와 제 선왕 간의 가장 큰 괴리를 빚어낸 요인은, 각 주체들의 출신국의 정치적 상황의 차이에 기인한 정치적 견해차였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황적 사실, 즉 출신국의 정치 상황이나 체제에 따라 세계인들 간에 충돌과 몰이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는 시대차를 넘어서는, 인간사회에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아이디어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에 있어서도 세계인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출신 국가의 현실적 정치 상황이 가장 중요한 분석 요소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유익한 관점을 도출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생각된다.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eople of the Qi Dynasty, the disadvantage of Confucian scholars is that they are, above all, uncomfortable to govern by those in power. Confucian scholars shared their own culture, and since Confucius was young, it has already been known as a "notoriety" to bureaucrats in the Qi country. Such an early evaluation of the tradition of Confucianism suggests that such a trend already existed in the Lu Dynasty before Confucius. In other words, it suggests that the founder of Confucianism, as is generally known today, is not Confucius, and that Confucian tendencies existed before him.
Such a tendency seems to have been a prominent characteristic of the culture of the Lu Dynasty, as the descendants of the Lord of Zhou inherited the status of the monarch, accepting the culture created by the Lord of Zhou. In other words, it is highly likely that Lu Dynasty was traditionally a Confucian country, and that such a cultural atmosphere was used to be dominant before Confucius, and Confucius inherited such a tradition and renewed Confucian scholarship.
Even in the oppressive situation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the culture of the old country Lu(魯) where the tradition of republic was established, became the base for the Mencius' mind to develop toward an original and free-spirited direction. And considering the position of Mencius in the Qi(齊) Dynasty, this personality seems to have been the main factor that caused a gap between Mencius and the royal scholars of the Qi Dynasty.
The conflict between Lu(魯) culture and Qi(齊) culture in China in the Warring States Period, is worth referring to today's full-fledged multipolar era. The problem of China in the Warring States Period, a typical multipolar era, and its process of solution have also beneficial implications that can give us considerable hints in expanding our understanding of world people in today's more complex era.
These circumstantial facts, that is, the fact that there may be gaps between multicultural people depending on the political situation or system of the country of origin, may generalize beyond the differences of the times as a principle that can be universal in human society. So, more important than cultural or civilized differences between multipolar countries(e.g.,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and Japan) seems to be the difference in political situations. In this regard, it is thought that there is room for the general theory that the realistic political situation of the country of origin should be one of the most important analysis factor in understanding multipolar people eve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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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天論의 변천 양상을 통해 본 諸子百家의 사상적 연속성 ― 학파의 경계 문제와 직하학궁의 공간성을 중심으로 ―

저자 : 배다빈 ( Bae Dabin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3-16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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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先秦 제자백가 사상이 정치적 수요와 관점에서 형성·전개된 것이라는 관점을 기초로 전통적인 제자백가 학파 구별 도식이 야기할 수 있는 편향성 문제를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선진 사상의 핵심 논제인 天論의 변천 양상을 톺아보면서 정치적 時流와 공간적 특징을 중심으로 사상적 연속성을 추적해본다. 이 단계에서는 공자·묵자·등석·『노자』·『장자』 등 여러 사상가의 다양한 천론을 촉진한 보편적 문제의식을 강조한다. 나아가 직하학궁이라는 특수한 환경 및 이로부터 더욱 심화·발전된 직하학사들의 천론을 탐구해봄으로써, 제자백가 사상은 학파를 불문하고 시공의 환경에 조응하여 융합·심화한 것임을 드러낸다. 이로써 본고는 제자백가의 사상적 차이보다는 융합적 측면의 一端을 파악하고자 한다.


Based on the view that the ideas of the Spring and Autumn Warring States Period were formed and developed from the perspective of political demand, the paper points out the problem of bias that can be caused by the traditional school distinctions. Based on this idea, I examine the transition patterns of discussions on 'Tian(天)' and trace the ideological continuity focusing on political situations and spatial characteristics. In particular, by exploring the environment of "Jixia Xue-gong(稷下學宮)", it will be emphasized that the thoughts of the Hundred Schools were fused and deepened in response to the political and contemporary environment regardless of school. In this way, I attempt to grasp one aspect of the convergence aspect rather than the ideological difference between the Hundred Sch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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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남자』의 인성론

저자 : 유용빈 ( You Yongbin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20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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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회남자』(淮南子)의 인성론에 대해 욕구[欲]와 감정[情] 개념을 중심으로 철학사적 맥락에서 고찰하였다. 『회남자』에 따르면, 본성[性]은 사물의 자연적 성질이고, 사물은 고유의 본성을 지닌다. 인간 역시 그러하다. 인간의 본성은 마음에 욕구가 없고 몸이 무사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욕구,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각적 욕구에 의해서 훼손된다. 그래서 감각적 욕구를 제거해야 한다. 성인은 감각적 욕구를 제거하여 본성을 보전한다. 이는 곧 이상적 통치로 이어진다. 이러한 주장은 본성, 즉 자연적 성질에의 순응을 주장하는 도가의 입장이 사회적, 정치적 질서 유지에 취약하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감정에 의해서도 훼손된다. 특히 감정은 부적절한 행위를 유발하여 정치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감정을 제거해야 하는데, 심술(心術)이 바로 그 방법이다. 심술을 익히면, 감각적 욕구를 제거할 수 있고, 나아가 감정까지 제거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감정의 제거를 주장하는 도가의 입장이 사회 유지에 적합함을 강조한 것이다. 『회남자』의 인성론은 본성, 욕구, 감정 개념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하나의 이론이다. 이를 통해 『회남자』는 도가에 대한 경쟁 학파의 비판에 대응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회남자』의 인성론은 유가와 묵가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다. 이상의 내용을 고려해보면, 『회남자』가 말한 인간의 본성을 허정(虛靜)으로 개괄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과 『회남자』의 인성론을 유가와 도가의 인성론을 총결한 것으로 보는 관점에는 수정이 필요하다.


This paper studies the theory of human nature in Huainanzi 淮南子 from the perspective of history of philosophy in particular focusing on the notions of desire 欲 and emotion 情. According to Huainanzi, the nature 性 is the natural property of objects, and objects have their own nature. A similar point holds in the case of human. The human nature is characterized as sound body and no desires in mind. As the human nature is damaged by desires, specifically, by sensual desires, they must be removed. A sage preserves his nature by removing sensual desires. This leads to an ideal governance. This claim emphasizes the fact that Taoism requiring the conformity to the natural properties has an important implication to the preservation of social and political order. The human nature is also damaged by emotions. In particular, emotions have a bad impact on politics by causing improper behavior. Thus, emotions must be removed and mind cultivation 心術 is a way to do so. By cultivating mind, one can remove sensual desires and furthermore remove emotions. This emphasizes the fact that Taoism requiring the removal of emotions is an appropriate theory for the preservation of social order. The theory of human nature in Huainanzi is a theory organizing the notions of the nature, desire and emotion. This allows Huainanzi to respond to the criticism raised by its competitors. In this respect, the theory of human nature in Huainanzi contains criticisms against Confucianism and Mohism. Given the above points, we need to reconsider the view that the human nature in Huainanzi is grasped by emptiness and tranquility 虛靜 and also the view that the theory of human nature in Huainanzi is a summation of Confucian and Taoistic theories of human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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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공지능시대 인간의 특성과 유가철학의 관계론

저자 : 이철승 ( Lee Cheol Seung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3-23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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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인류는 인지과학, 뇌과학,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지능'과 구별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였다. 많은 과학자와 미래학자들은 머지않아 '포스트휴먼'을 상징하는 '강한 인공지능'이 출현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 '강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감성, 창의성, 이성, 도덕적 판단, 자유의지, 자율성 등을 갖추어 지능과 역량 면에서 인간을 초월할 수 있다. 이러한 '로보 사피엔스'의 도래는 기존의 인간관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새로운 관계 윤리를 모색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는 인간중심주의의 관점에서 도구적 이성을 통해 근대 문명을 발전시켜왔던 모더니즘적 사유에 대해 깊게 성찰할 것을 요청한다. 곧 탈인간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인공지능이 갖추고 있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성찰과 근대적인 인간관을 대체할 새로운 인간관의 모색을 필요로 한다. 이때 자연지능을 갖춘 인간과 인간의 특성을 갖춘 인공지능은 서로에 대해 수직적인 질서의식의 강요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인간과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첨단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유능한 과학기술자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쌍방 간에 갈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현상적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가철학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뿐만 아니라, 다름과 다름의 유기적인 소통을 통해 공동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21세기형 유가철학에 의하면 인간과 인간 및 인간과 인공지능이 관계할 때, 서로에 대해 도구적 이성을 통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고, 민주적인 협의와 합의를 통해 서로의 차이 문제를 해결하여 평화로운 사회를 함께 건설해야 한다.


In the 21st century, mankind has developed 'artificial intelligence', which is distinguished from 'natural intelligence' by utilizing cutting-edge scientific technologies such as cognitive science, brain science, biotechnology, and nanotechnology. Many scientists and futurists predict that in the near future, 'strong artificial intelligence', which symbolizes the 'posthuman' era, will appear. This 'strong artificial intelligence' will be equipped with emotions, creativity, reason, morality, free will, and autonomy, which have been considered domains unique to human beings so that it can transcend humans in terms of intelligence and capabilities. The advent of 'robo sapiens' as such throws fundamental questions about the previous of humanity and raises the necessity to seek a new ethic of relation.
This calls for deep reflection on the modernist thinking that has developed modern civilization through instrumental reason from the viewpoint of anthropocentricism. That is, this requires reflection on the personality possess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and seeking for a new view of humans that will replace the modern view of the humans from the perspective of non-anthropocentricism. In this case, humans equipped with natural intellig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which is not humans but is equipped personality, should pursue horizontal relationships with each other rather than forcing a vertical sense of order.
However, although artificial intelligence appears to be independent of humans, it is difficult to completely exclude the influence of competent scientific technologists who can operate state-of-the-art systems. This means that when a conflict between humans and artificial intelligence occurs, it may appear to arise from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artificial intelligence, but may reflect the relationships between humans in some cases.
The Confucian philosophy not only acknowledges and respects each other's differences, but also seeks to build a community through organic communication between differences. According to the 21st century Confucian philosophy, when humans enter into relations with each other and when humans enter into relations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they should treat each other as purposes rather than means through instrumental reason, and solve the problem of differences from each other through democratic consultation and agreement to construct a peaceful society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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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국 근대 서예 연구(1) ― 19세기말·20세기초의 서예 ―

저자 : 전상모 ( Jun Sang-mo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5-279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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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그동안 퇴행적이고 비관적으로 인식해 왔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한국 근대서예를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오해를 불식하고자 시도한 논문이다.
갑오개혁을 통해 개혁의 주도권을 장악한 관료·지식인들은 '文明開化'를 추진했다. '自强獨立'을 주장했든, '舊本新參'을 주장했든 그들이 추진한 '문명개화'의 정점에는 '문명적 근대 국가 수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역사적 조건에서 관료·지식인들이 견지했던 사상적 경향과 노선은 주변 사람들의 미적 활동이나 비평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오세창과 안중식이다. 오세창의 글과 이도영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시사만평은 자강독립론자들의 세계관을 비추는 것이었다.
이 시기 중앙서단에 군림했던 안중식과 오세창·김규진 등은 당시 서화계를 대표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개혁의 노선을 두고 서로 힘을 합치기도 하고 길을 달리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비평으로, 때로는 교육을 통해서 나약한 서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 무렵 각 지역에서도 거목들이 버티고 있었다. 개중에는 이미 중앙무대에서 인정을 받고 향리에 내려간 경우도 있었으며, 아예 중앙서단과는 거리를 둔 채 초연히 서화에 매진하고 있는 거목들도 많았다.
갑오개혁 이후 우리나라 근대 학교 교육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습자교과에 대한 법규는 있었으나 전하는 교과서는 없을 뿐 아니라 교과서에 관한 어떠한 사료도 없다. 그러나 소학교 학기말 시험 과목에 습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주요교과임에는 분명하다. 통감부가 실시한 식민지주의 교육정책은 소위 '文明'的교육과 實學主義적 교육에 바탕을 둔 모범교육이었기 때문에 국어과에서의 습자교육은 그야말로 국어과 안에서의 문자를 익히는 측면의 書法즉 '書方'이 이루어졌을 뿐 '書藝'적인 측면에서의 書法敎育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한말에 이르기까지 국공립 초등교육기관이 없었으며 단지 민간의 힘에 의한 서당이 있었을 뿐이었다. 1907년 7월 개설한 사립 미술교육기관인 교육서화관은 1907년 7월에서 1908년 1월까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계몽적 차원에서 종합예술교육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본고에서 19세기말·20세기초까지 한국 근대서예를 작품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에 실려있는 기사나 담론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본 논문을 통해 그간의 오해가 풀렸으면 한다. 나아가 점차 빛을 잃어 가고 있는 한국 현대서예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This study is an attempt to dispel misunderstandings by analyzing the modern Korean calligraphy of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which had been perceived as retrogressive and pessimistic.
The bureaucrats and intellectuals who took the initiative through the Gabo Reform of 1894 promoted cultural enlightenment. Whether they insisted on independence through strenuous efforts(自强獨立) or taking the old as the basis ad referencing the new(舊本新參)', the culmination of the cultural enlightenment they pursued has in common: establishing a civilized modern state. The ideological tendencies that bureaucrats and intellectuals held in social and historical conditions directly affect the aesthetic and critical activities of those around them. The most notable people during this period are Oh Sechang and Ahn Jungsik. The editorial cartoon, composed of Oh Sechang's writings and Lee Doyeong's drawings, reflected the worldview of those who wanted independence through strenuous efforts.
Ahn Jungsik, Oh Sechang, and Kim Gyujin, who dominated the central calligraphy group, were representatives of the field of calligraphy and painting at that time. In terms of the reform of calligraphy, they sometimes cooperated, but they mostly took different stances and tended to be passive. By the way, there were great calligraphers in each region. Some of them went down to the province after being recognized on the central stage, and others devoted themselves to calligraphy and painting by keeping their distance from the central calligraphy group.
After the Gabo Reform of 1894, Korea laid the foundation for modern school education. Although there were laws on the subject of writing practice, there were no textbooks and no historical material for textbooks. However, writing practice was a major subject because it was included in the elementary school end-term exam subjects. Since the colonialist education policy implemented by the Japanese Residency-General of Korea was based on civilization education and realistic education, the writing practice education in the Department of the Korean Language is literally about learning and writing characters, not calligraphy education. Until the late period of Joseon, there were no national or public primary education institutions in Korea, only Seodang by the private sector. It is significant that Calligraphy Education Center, a private art education institution operated from July 1907 to January 1908, attempted comprehensive art education, although it was a short period.
In this paper, I have looked into articles and discourses publish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as well as works about Korean modern calligraphy from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I hope that this paper will clear up any misunderstandings in the past. Furthermore, I believe it will help find the way forward for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calligraphy, which is gradually falling into the sh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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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자의 恕와 인정욕구 고찰

저자 : 김정희 ( Kim Jeong Hee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2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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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가 다원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다원화 사회의 시대적 요청은 동일화 안에서의 사회통합이 아닌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통합 방식을 찾는다. 2,500년 전의 공자는 당시 법과 형벌로써 이루어진 사회에서 과감하게 禮治가 이루어지기를 꿈꿨다. 예치를 통한 사회통합이 목적이었다. 공자가 예를 통하여 희망하였던 사회는 善한 사회였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인정욕구를 공자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유학의 모토는 '입신양명'이기 때문에, 명예와 이름은 영원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유학자들의 확신이다. 특히 仁人·義人은 공동체, 혹은 타자 일반에게서 인정받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에서 유학이 지향하던 인간상은 기본적으로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논자는 공자의 恕개념에서 인정욕구를 발견하였다. 공자가 지향하는 군자의 모습은 '주체적인 사람'이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남을 제대로 알아보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통찰력의 제고'가 아니겠노라는 결론을 내려 본다. 본고는 공자의 恕개념을 살펴본 후, 공자의 사상에서 드러나는 인정욕구를 고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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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가의 법 사상에 대한 일 고찰 ― 다산의 『흠흠신서』에 나타난 법과 도덕률의 균형을 중심으로 ―

저자 : 나우권 ( Na Woogwun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6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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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는 도덕을 중시하면서 형벌을 무시하였다고 파악한 적도 있다. 그러나 유가가 주장한 바는 도덕률에 의거한 법치였다. 진秦나라의 가혹한 법치를 비판하면서 한문제漢文帝는 신체에 가해지는 형벌(肉刑)과 연좌죄를 폐지하였다. 신체에 형벌을 남길 경우, 사회적 낙인이 찍혀서 잘못을 반성하더라도 새로운 삶을 추구할 기회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연좌죄를 시행하여 처벌만 강조할 경우, 법이 가진 또 다른 측면인 교정矯正기능이 무력화되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법이 자연의 원리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는 道生法개념, 법이 올바름(義)과 인심人心에 부합해야 한다는 일종의 자연법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서 '법의 유가화'가 이루어지는데, 본고에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다산 茶山의 『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 찾았다. 그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째, 증거에 입각하여 법을 체계적으로 운용하였다. '3.곡산부 김대득 사건'에서는 현장 검증을 반드시 실시하고, 인적 증거와 물적 증거 모두를 확보하였다. 신빙성이 높은 일관된 진술을 확보함으로써 인적 증거를 확보하고, 동시에 물적 증거를 찾아서 억울한 범죄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1.수안군 김일택 옥안'에서는 확실한 물증이라고 파악되던 증거들을 논파하여 명확하지 않은 정황 증거에 불과함을 입증하였고, 피해자 진술이 변경될 때 최후 진술보다 최초 진술이 중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5.북부 함봉련 옥사'에서는 피해자의 진술ㆍ검시 보고서ㆍ공증公證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여, 거짓 증언을 무력화시켰다. 이상의 세가지 내용이 일치되지 못할 경우, 사건이 명확하게 해결되지 못한 것이므로 수사 기록 이면의 권력관계까지도 고려하였다.
둘째, '법의 유가화'를 이루기 위한 고차방정식을 고찰하였다. '8.강진현 백필랑 백필애 사건'에서는 계모와의 갈등 속에서 자살한 어린 소녀들의 사건을 재조사하였다. 아무리 부모라도 딸이 죽음을 선택하도록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면 사형죄로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계모가 두 딸이 자살하게 된 인과관계가 있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정확하게 밝혔다. 오늘날의 경우 계모는 무죄로 방면될 것이다. 그런데 다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식들이 계모에게 욕을 하면서 불효를 일삼았다는 점을 지적하여 신장 30대로 처벌하였다. 가족 구성원이 자살하였다는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효를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을 알게 하기 위해 경미한 처벌을 내린 것이다. '4.수안군 최주변 복검안'에서는 도덕이 강조되면서 법질서가 무시되는 현실을 비판하였다. 이 사건은 남편의 죽음을 오해해서 엉뚱한 사람에게 보복 살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열녀로 칭송하고 무죄방면하였다. 다산은 도덕률의 무제한적인 확대가 법질서의 붕괴로 이어지고 거짓된 도덕의식으로 가득차는 역작용을 낳기 때문에, '법의 유가화'는 일정한 정도의 법적 제재 속에서 견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1.강진현 정절부 사건'에서는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고 도덕을 표창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과 도덕의 균형을 추구하였다. 법의 측면에서는 살인 계획을 주도한 사람을 정범으로 처리한다는 법 조문을 정확하게 이해시키고,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하여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잘못된 재판관을 비판하였다. 도덕의 측면에서는 자신의 성적 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행위를 인정하고 열녀로 포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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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오륜 안의 君子之交와 友德교우론 ― 동아시아 우정론 전개 양상Ⅰ ―

저자 : 辛正根 ( Shin Jeong-geun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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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과 부자는 사회 질서의 핵심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군신과 부자의 의의와 역할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많다. 특히 오륜 중에 군신은 근대에 이르러 봉건적 특성으로 비판되고 반인권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붕우도 오륜 중의 하나였다. 붕우는 오늘날에도 고락을 함께 나누며 우정을 키우는 등 삶의 동반자로 간주된다. 이러한 우정도 18세기를 전후로 의미와 역할에서 커다란 질적 변화를 겪었다. 18세기 이후의 우정이 자기애를 바탕으로 인류애(汎愛)의 특성을 나타낸다면, 18세기 이전의 우정은 오륜 안에서 개별적인 덕목(信)을 실천하여 훌륭한 사람(君子)이 되는 맥락이다. 후자를 君子之交라고 규정할 수 있다. 군자지교의 특성을 밝히기 위해 사람이 권세와 이해타산이 아니라 덕목을 바탕으로 벗을 사귀는 友德論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뒤로 18세기까지 우덕론이 우정의 기준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우정이 권력과 이해타산 중심으로 흘러가자 그 타락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참다운 우정과 타락한 우정의 이분법에 따라 현실에 나타난 다양한 우정의 다양한 양상을 분류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 과정을 통해 18세기 이전 우정의 특성이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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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근대 이행기 유학자의 현실대응 양상에 관한 연구 ― 간재 전우의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중심으로 ―

저자 : 吉泰恩 ( Gil Tae-eun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13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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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근대 이행기에 유학자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알아보고 이에 따른 그들의 대응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활동했던 간재 전우가 현실대응에 있어서 어떠한 방법으로 위정척사를 전개했는지에 대해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학자들의 현실인식에 따른 대응 양상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성리설에 대한 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다르게 나타났다. 여기서는 화서학파의 이항로, 노사학파의 기정진, 한주학파의 이진상, 간재학파의 전우의 성리설 등과 그들의 사상을 계승한 제자들을 확인하고 살펴보았다. 특히 전우에 대해 기존 연구에서 그의 중심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심본성'에 기반한 위정척사와의 관계를 검토한 연구는 아직 미진하다. 전우의 활동 및 저술에 나타난 중심 철학을 통해 그의 위정척사에 대한 방법상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이 본 논문의 핵심이다. 전우의 위정척사를 존화양이와 교학전도로 집약할 수 있는데, 모두 '심본성'을 중심으로 예의와 도학의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타학파는 심으로서의 즉각적인 대응에서 거의(擧義)나 서구문물에 대한 비판적 수용 등을 보였다고 한다면, 전우는 본성을 수호하려는 교학전도의 방법으로 자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바로 현실인식과 대응태도에서 전우가 도학자로서, 그리고 후대에 도학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 전도자로서, 도에 대해 매우 엄정한 입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평소에 간직하면서 거의하는 유학자들과 다른 방법으로 교학을 전개한 것이다. 한편 전우뿐 아니라 3학파의 자가설에서 보이는 경향은 '기보다는 리의 우위'를 인정한다. 이는 미증유의 격변기를 맞아 원칙을 고수하고 유학적 신념을 수호해야 한다는 우환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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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세기 초 유교 종교화의 논리와 유교사적 의의 ― 박은식(朴殷植)과 장지연(張志淵)의 경우 ―

저자 : 정성희 ( Jeong Seong-hee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3-17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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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년간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던 조선의 성리학은 조선 말기에 이르면 학문적으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이론적 분기를 거듭하면서 생동감을 잃고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세도정치와 외척정치가 등장하면서 도학적 이상정치의 추구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러한 때 강제적 개항을 맞게 된 조선은 준비되지 않은 개화를 감당하면서 열강 사이에서 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무풍지대에서 도학에 침잠해있던 조선 유학자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중화론과 의리론에 입각한 위정척사가 유림의 보편적 반응이었고, 반대편에는 유교망국론을 주장하는 극소수급진개화파가 있었다. 또 한편에는 개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주체적으로 해야 하며 서구문물을 수용 하더라도 그 바탕은 유교가 되어야 한다는 동도서기론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유교적 전통과 가치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유학자들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유학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은 유교개혁론자라고 하겠다. 이들 가운데 박은식과 장지연은 식민지 이전까지는 같은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유교개혁을 위해 유교종교화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발달한 서양 문명의 바탕은 기독교라는 종교라고 보고, 그 종교의 대중성과 조직력, 결속력에 주목하고, 오랜 기간 우리의 현실과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유교를 종교화하고자 하였다. 유교에서 종교성을 끌어내어 조직화하고, 지배층 지식인만의 학문이었던 유교를 대중화하려 새로운 종교조직을 결성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대동교였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종교가 가지는 신비주의적 요소와 사적인 욕구를 완전히 배제하고, 유교 특유의 합리성과 공적인 영역만을 강조했다. 또 대동교 설립의 목적이 종교화 자체가 아니라 종교화를 통한 유교개혁이었고, 대중의 단합을 이끌어내어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었으나 유교의 대중종교화는 결국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대동교 운동은 유교에서 소외되어 있던 민중을 의식하고 대중화의 필요성을 일깨웠으며, 적극적 선교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또한 종교화 과정에서 공자를 아시아 유교의 종조로 자리매김하고, 우리의 유교에는 기자를 공자 앞에 위치시킴으로서 우리만의 독자성과 민족성을 띤 유교를 설정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즉 이들은 척사위정론자들의 중화론과 개화론자들의 유교망국론이 빠질 수밖에 없는 외세 의존성을 탈피하여 독자적인 대안을 제시하였고 그 논리적 근거를 탐색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조선 유학에서 도의 보편성에 대한 강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던 민족의식을 환기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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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국 애니매이션의 유아 인성교육과 유교철학적 함의 연구 ― <뽀롱뽀롱 뽀로로>와 『사소절』 「동규」편의 대비를 중심으로 ―

저자 : 김미라 ( Kim Mi-ra )

발행기관 : 동양철학연구회 간행물 : 동양철학연구 11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3-21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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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유교적 동몽교육의 이념을 현대적으로 잘 구현시킨 대표적인 시청각 교재인 <뽀롱뽀롱 뽀로로>를 통해 나타난 인성덕목을 추출하여 『사소절』 「동규」편의 유교적 가치 덕목과 교육방법 원리를 연결시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전통 인성교육의 현대적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사소절』 「동규」편에서는 다소 개인적인 수신예절을 언급하고 있는 예절서라고 한다면, <뽀롱뽀롱 뽀로로>는 인간관계예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대비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뽀로로>와 『사소절』 「동규」편은 유아들의 인성교육 내용 및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지만, 두 텍스트마다 각각 인간관계적 또는 개인적 예절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사소절』 「동규」편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인예절 방법과 <뽀로로>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간관계에서의 인성덕목을 조화롭게 대비하여 현대 유아교육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유아 인성교육 방법론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뽀로로> 시즌 6의 총 26화 가운데 9가지 에피소드를 선정하여 인성교육진흥법의 8대 덕목과 『사소절』 「동규」편에 나오는 인성교육내용과 연계하여 정리해 보았다. <뽀로로> 시즌 6의 총 26화에서는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 성격에 따라 좌충우돌 다양한 일들이 발생한다. 각 에피소드의 내용들은 재미와 공감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교육적인 메시지까지도 전달하고 있었다. 즉 에듀테인먼트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셈이었다. <뽀로로>는 '인성'덕목이라고 하는 교육적 코드뿐 아니라 감성, 사회성, 지성 등 아이들의 성장 발달과정에 도움을 주는 교육적 시청각 자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각 캐릭터마다 필요한 수신예절의 내용을 제시하여 에피소드에 가미시킨다면 최고의 인성교육 시청각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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