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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한국 댄스스포츠의 대부(大父) 박영택의 생애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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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댄스스포츠의 대부(大父) 박영택의 생애사 연구

A Study on the Life History of Young-Taik, Park, the Godfather of Dancesport in Korea

곽애영 ( Kwak Ae-young ) , 이인정 ( Lee In-jung )
  • : 한국체육사학회
  • : 체육사학회지 27권2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6월
  • : 105-122(18pages)
체육사학회지

DOI


목차

Ⅰ. 서 론
Ⅱ. 사교춤의 ‘삼바 가라스からす’, 박영택의 생애(1950년-1960년대)
Ⅲ. 라틴 아메리칸 댄스의 개척자, 박영택의 생애(1970년∼1980년대 중반)
Ⅳ. 댄스스포츠의 행정가, 박영택의 생애(1980년대 중반∼2010년대)
Ⅴ.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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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 라틴 아메리칸 댄스 초대 챔피언으로 댄스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온 원로전문인 박영택의 생애를 고찰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 발전사를 재조명 하는데 있다. 결과에 따르면 첫째, 춤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난 박영택은 원인화와의 인연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사교춤을 전문적으로 섭렵해 나가며 댄스스포츠계의 삼바가라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둘째, 국내 라틴 아메리칸 댄스의 초대 우승자가 된 박영택은 영국과 미국의 국제표준무도 교본을 입수·분석하여 라틴 아메리칸 댄스 전 종목을 정립·보급하는 개척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의 발전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셋째, 한국무도교육협회의 수장으로 댄스스포츠계의 행정을 일임해 온 박영택은 유럽 우수선수초청 시범 및 강습회 개최, 연수원 운영 및 지도자 양성, 학생선수의 발굴 등으로 한국 댄스스포츠의 위상을 높였고, 국내 최초의 통합단체를 발족하여 댄스스포츠계의 입지를 공고히 구축함으로써 2007년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인받는데 공헌했다.
This study is on the life and accomplishments of Park Young-taik, a Dancesport pioneer who has devoted himself to the development of Dancesport in Korea and the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Park was a dancer who displayed innate talent and skill, and after befriending Won In-hwa and mastering social dancing of various genre, became widely known as the ‘Samba Garasu’ in the Dancesport world. Second, As winner of Korea’s inaugural Latin American Dance Competition, Park laid the foundation for the sound growth of Dancesport in Korea by systematically establishing the standards for every Latin American dance category and propagating it. Third, as a leader and an administrator, Park was instrumental in raising the status of Dancesport in Korea. In leading the Korea Association of Education DanceSport(KAEDS) Park operated training centers, nurtured leaders, and developed student athletes which culminated in unification of 8 associations of dancesport in Korea which later resulted in it becoming a member of the Korean Sport & Olympic Committee(KSOC) i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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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2
  • :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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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권4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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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제강점기 전북 무용 교육 연구

저자 : 김은경 ( Kim Eun Kyoung )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3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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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무용 교육의 양태를 고찰함으로써 특징과 성격을 규명하여 한국 근대무용 교육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전북지역의 일제강점기 여학교 및 권번의 설립과 교육 활동을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이 파악할 수 있었다. 전북지역 여학교는 기독교 선교단체의 사립여학교와 관제에 의한 공립여학교가 설립되어 공통적으로 체조가 교육되었고 율동, 유희를 통해 운동회와 학예 등 특별활동으로 행해졌음이 드러났다. 반면 권번에서 시작된 실용목적의 예술무용 교육은 전통무용뿐만아니라 시대를 반영한 서양무용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무용 교육은 학교에서는 주된 교육없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권번에서의 무용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여성이 공식적으로 사회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후 무용문화에 역할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modern dance education in Korea by examining the patterns of dance education in Jeollabuk-do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to identify its characteristics and features. In order to achieve this purpose,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educational activities of the women's school and Gwonbeon, an institution established to train Gisaengs, established in Jeollabuk-do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was found as follows. First, most of the girls' schools in Jeollabuk-do consisted of private girls' schools established by Christian missionary groups and public girls' schools established by the government, where gymnastics was taught, sports events and arts were conducted as special activities, but there was no evidence that dance was taught. On the other hand, it was found that art dance education for practical purposes, which began in Gwonbeon, had been conducted in various forms, including Western dance, reflecting the era as well as traditional dance. Through this study, it was revealed that dance educ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passive without systematic education in schools, but rather, it was thoroughly conducted in Gwonbeon, providing women with an opportunity to officially enter society and contributing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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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제하 경찰과 강도관 유도 지도자의 활동 연구

저자 : 이승수 ( Lee Seung-s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3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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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하 경찰을 둘러싼 유도 지도자의 활동을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살펴보는데 있었다. 이를 위해 유도의 해외 보급 현황, 유도 지도자의 조선 진출, 경찰을 둘러싼 유도 지도자의 활동을 고찰했다. 연구방법은 문헌자료를 토대로 분석했고 선행연구를 원용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본에서의 유도의 급격한 성장은 해외 보급의 초석이 되었고, 가노(嘉納)와 그의 제자들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하여 조선에서의 유도 보급, 진흥에 노력했다. 유도 지도자는 경찰의 유도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대회 심사, 강연,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고, 한편 경찰은 유도 지도자의 활동과 관련한 제도적 지원을 했다. 이는 경찰과 유도 지도자가 상호 협력 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식민지 정책을 원활하게 전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경찰과 유도 지도자들에 의해 유도가 유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연구는 일본 유도의 해외 진출 역사를 연구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생각하고, 또한 유도 발달사를 재고하는데 의미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judo coaches associated with the police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in connection with the situations of the time. About research methods, literatures were analyzed, and advanced studies were quoted. The followings are the results. The rapid growth of judo in Japan formed in distributing and promoting judo in Joseon. Judo coaches did various activities such as judging at competitions, lecturing, and writing to meet the police's needs for judo while the police provided institutional support related to their activities. This means that the police and the judo coaches were in a mutually cooperative relationship. It also implies that judo was utilized by the police and judo coaches as a means of developing colonial policies favorably.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will contribute to reviewing the history of Japanese judo' overseas expansion and reconsidering the history of judo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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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천지역 치어리딩 발달사

저자 : 김지연 ( Kim Ji Yeon ) , 양현석 ( Yang Hyun Suk ) , 윤정욱 ( Yoon Jung Woo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47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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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천지역 치어리딩 발달사 연구로 국내 치어리딩 종목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문헌 연구 및 심층 면담의 연구방법을 실시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우리나라에서 치어리딩 종목은 2003년 대한치어리딩협회가 창설되면서 본격화 되었으며 치어업 코리아 치어리딩 페스티벌(치어업코리아오픈 치어리딩 대회),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치어리딩 축전 등의 대회로 치어리딩 종목이 도입, 발전되었다. 둘째, 대한치어리딩협회 창설 후 2014년 9개의 산하 협회가 신설되었는데 그중 인천 치어리딩 협회는 2018년부터 남동구, 부평구, 미추홀구, 연수구 등의 지부를 신설하면서 인천 내 치어리딩 종목에 많은 발전을 꾀했다. 또한 올스타팀 스콜피온의 대회참가 및 공연, 각 초, 중,고등학교의 스포츠클럽팀의 활동이 인천지역 치어리딩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인천 치어리딩은 협회, 산하 지부, 각종 학교 스포츠클럽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천지역 치어리딩 종목에 지대한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를 통해 앞으로 치어리딩 종목의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This study of the development history of cheerleading in Incheon conducted a literature study and in-depth interviews centering on the Incheon area, which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Korea and obtained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 in Korea, the sport of cheerleading began in earnest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 Cheerleading Association in 2003, and has been further developed through competitions, such as Cheer Up! Korea! Cheerleading Festival and the national cheerleading festivals among students' sports clubs. Second, after the foundation of the Korea Cheerleading Association, nine new affiliated associations were established in 2014. Among them, the Incheon Cheerleading Association has created its branches in Namdong-gu, Bupyeong-gu, Michuhol-gu, and Yeonsu-gu since 2018, trying to further advance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Incheon. In addition, the all-star team Scorpion's participation in competitions and performances, and the activities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sports club teams significantly affected the development of cheerleading in Incheon. Incheon Cheerleading has great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sport of cheerleading in the region through the active activities of associations, affiliated organizations, and various school sports clubs. Going forward, it is expected to further accelerate the development of cheerl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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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조선씨름대회의 전개 양상과 영향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9-6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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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국적인 씨름대회의 효시인 전조선씨름대회가 한국 씨름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본 것으로,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기존 전조선씨름대회의 역사에는 개최 시기와 해석에 있어 오류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YMCA(1927-1937)와 조선씨름협회(1929-1934)가 각각 전조선씨름대회라는 동명의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한 결과였다. 두 전조선씨름대회는 씨름 경기의 대중적 인기와 근대적 조직화를 위한 자극제가 되었고, 씨름 인재들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전조선씨름대회는 한국 씨름의 전승과 확산을 위한 핵심적인 근간이 됨과 동시에 향후 전국적인 씨름대회의 모태로 기능했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impact of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the forerunner of the national ssireum competition, on the development of Korean ssireum,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It was confirmed that there were errors in the timing and interpretation of the previous Pan Joseon Ssireum competitions. This is because the YMCA (1927-1937) and the Joseon Ssireum Association (1929-1934) each held the tournament under the same name as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two Pan Joseon Ssireum competitions served as a stimulus for the popularity and modern organization of ssireum matches, and became the foundation for systematic fostering of ssireum talents. The Pan-Joseon Ssireum competi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erved as a key foundation for the transmission and spread of Korean ssireum, and at the same time served as the basis for future national ssireum com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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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세기 향사당의 변천과정에 대한 연구

저자 : 박근 ( Park G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7-80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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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점필재 김종직은 향사례의 구체적 시행을 위하여 유향소 복원을 성종에게 건의하게 된다. 따라서 복원된 유향소는 향사당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어지게 된다. 이후 향사당과 향사례는 현재 활터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론된다. 본 연구는 향사당의 변천과정 속에서 향사례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활쏘기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16세기에는 향사당의 전국적 분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향사당의 교육적 기능 위주의 유형과, 유향소적 기능 위주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모두 _주례_의 향대부를 체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적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지역별로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향사당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향사당과 유향소가 분리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1593년 영현지역에 나타난 사계는 향사례를 복원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향사당의 변형적 형태인 것으로 확인된다.


In the early Joseon Dynasty, Kim Jong-jik suggested Seongjong to restore the Yuhyangso for the specific implementation of the Hyangsarye. Therefore, the restored Yuhyangso is called Hyangsadang. Since then, it is inferred that Hyangsadang and Hyangsarye may have influenced the formation of the current live site. This study attempted to examine the changes in Hyangsarye in the transition process of Hyangsadang, and to examine the transition process of traditional archery through this. As a result of the study, it was confirmed that Hyangsadang was distributed nationwide in the 16th century. It can be divided into two types: the educational function-oriented type of Hyangsadang and the Yuhyangso function-oriented type, and both use the Hyangdeabu of _Jurye_ as a sieve. However, it is confirmed that there were many differences by region in the method of applying this. However, it is judged that Hyangsadang and Yuhyangso are not separated because they adhere to the name of Hyangsadang. In particular, the Sagye that appeared in the Younghyun area in 1593 was made to restore the Hyangsarye and is confirmed to be a modified form of the Hyangs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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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진·한조시기의 무예의 형성 및 특징

저자 : 박귀순 ( Park Cindy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1-93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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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법을 통해서 진·한조시기의 무예의 형성 배경 및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진·한시기 무예의 전개변화 요인과 그 체육·무예사적 의미를 밝혔다. 진조시기에는 군사무예가 크게 발전했으며, '군공작'이라는 제도를 통해 병사의 훈련과 참전을 장려했다. 진조의 금무정책으로 민간의 병기 소유가 금지되면서 도수무예인 각저가 발달했는데, 오락·유희·관람적 요소의 특징을 나타냈다. 한조시기에는 각저와 수박 등은 유희·오락·관람적 요소와 무예적 요소의 특징이 내포되어 전개되었으며, 새로운 병기무예가 출현했고, 일본에 영향을 주는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두 왕조의 무예가 다르게 전개된 변화 요인은 첫째, 국가 통일 과정 중의 주변 환경적 요인, 둘째, 중앙집권체제의 실천 방법에 따른 요인, 셋째, 중앙 조정의 정책과 제도 시행에 따른 요인. 넷째, 국내 대내·외에 대한 외교 교류 변화에 따른 요인에 있었다. 이를 통해서 두 왕조의 무예의 교육적 가치, 교류 가치 및 계승적 가치를 내포한 체육·무예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This article examined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martial arts in the Qin and Han dynasties. Through this, the factors of martial arts change in the Qin and Han dynasties and its martial arts value were revealed. During the Qin dynasty, military martial arts developed greatly, and the training and participation of soldiers were encouraged through a system. As the private sector was banned from owning weapons due to Qin's a prohibit weapon policy, Jiaodi, a provincial martial arts, developed, which showed the characteristics of entertainment and viewing elements. During the Han dynasty, various types of martial arts were developed, and Jiaodi and watermelons were formed by includ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elements of entertainment, viewing and martial arts. Through the factors of change in the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Qin and Han martial arts, it was possible to find the educational value, exchange value, and successive value of martial arts in both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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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중세 교회의 토너먼트 경기 금지와 위험성

저자 : 김복희 ( Kim Bok-hee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4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07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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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중세 토너먼트(tournament)의 초기 용어와 확산, 교회의 토너먼트 경기 금지 및 토너먼트 경기의 위험성을 파악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토너먼트라는 용어는 처음에 기사도 편력의 특징인 십자로, 도전을 통한 게임의 요소가 언급되었고,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토너먼트와 퀸틴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으며, 토너먼트는 프랑스의 기사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중세 교회는 토너먼트 경기를 금지시키기 위해 참여자를 파문하고 교회 묘지에 매장할 수 없다는 법령을 공포했으나, 토너먼트 경기에서 사망한 대부분의 기사들은 고해성사, 수도사의 도움 등으로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이외에도 교회는 교화, 설교 등을 실시했지만 토너먼트 경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토너먼트 경기의 위험성은 경기에 참여한 군주와 기사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사례를 통해 확인되었다. 따라서 중세 교회의 토너먼트 금지와 위험성은 쥬스트(Jousts)를 등장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early term and spread of tournament in the Middle Ages, the church's prohibition of tournament play, and the dangers of tournament. The results are as follows. The term tournament was first mentioned as a crossroads, a characteristic of chivalry, and elements of games through challenges. In the First Crusade, the terms tournament and quintin appeared. spread to other regions of the The medieval church promulgated a decree to excommunicate participants and not to bury them in church cemeteries in order to ban tournament games, but most of the knights who died in tournament games were buried in church cemeteries with the help of confessions and monks. In addition, the church conducted edification and sermons, but could not stop the tournament. The dangers of tournament games have been confirmed through cases in which monarchs and knights who participated in the games were killed or injured. Therefore, the medieval church's prohibition and danger of tournaments became a factor in the emergence of Jou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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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초의 솔각 전문서적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산 ( Kim S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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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근대 중국 무예교습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의 내용과 의미를 문헌고찰의 방법으로 고찰함에 있다. 중국의 근대화 기간이라 할 수 있는 민국시대 중국 무술을 서양의 병식체조적 요소로 분류하고 조합하여 단계적 교수체계를 만든 마량의 중화신무술 체계는 중국 체육의 근대화에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그중 중국식 씨름이나 레슬링이라 할 수 있는 솔각에 관한 서적인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은 솔각 기술을 전문적으로 기술한 첫 서적이면서 중화신무술 체계의 서술 방법으로 인해 전문적 신체 문화였던 솔각을 일반적 교육체계로의 첫 시도로서 의미 있는 서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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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금슬 『춤동작』에 내재한 무용치료 가치 탐구

저자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25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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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박금슬 『춤동작』에 내재한 무용치료의 가치 탐색을 목적으로 사적 고찰 및 음악, 춤사위에 대한 질적 연구를 진행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첫째, 춤동작은 박금슬의 삶이 투영되어 종교적 모티브, 한국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기교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한국 문화와 정서를 체험할 수 있음이 탐색 되었다. 둘째,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를 통해 완성된 움직임으로 다양한 운동성을 내포하여 워밍업에서 필요한 기본무로써 자연스러운 신체 움직임을 유도하고 폭넓은 신체 표현을 가능하게 하여 예술치료 및 움직임을 통한 치료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이 탐색되었다. 셋째, 독특한 용어 정립으로 쉽게 동작을 익힐 수 있게 하고 용어 자체에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어 한국적 무용치료 연구 및 실제에 교육 자료로써의 활용이 가능함이 탐색 되었다. 후속 연구로 이러한 우리 고유의 것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치료 도구 개발 및 그에 따른 결과에 과학적 연구를 제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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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64년 도쿄올림픽대회와 한국스포츠의 변화

저자 : 손환 ( Son H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39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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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가 한국스포츠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광복 후 한국의 올림픽 참가사,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의 참가와 교훈,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 후 한국스포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는 그때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무런 실정도 모르고 올림픽대회에 무모한 도전을 해온 한국스포츠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했다. 그 변혁의 중심에는 스포츠행정가이며 정치인이었던 민관식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한국스포츠는 민관식을 만나 그의 불도저와 같은 뚝심으로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의 건설 등 한국스포츠의 발전을 위한 스포츠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들 시설은 한국스포츠가 세계스포츠무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한국이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계스포츠계에 스포츠강국으로서 위상을 높이는데도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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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근대 씨름의 영웅 김성률의 생애와 체육활동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5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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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대 씨름의 영웅 김성률의 생애와 관련된 신문, 잡지, 문헌, 인터뷰 등을 분석해 김성률이 한국 씨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마산 출신의 김성률은 어린 시절 담대한 기질과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다양한 운동에서 소질을 보였다. 마산상고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씨름판에 등장한 김성률은 60-70년대 공식적인 전국씨름대회를 거의 독식하면서도 뛰어난 기술로 한국 씨름의 대중화를 견인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 경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경남 지역의 씨름 인재 양성에 헌신한 결과 이만기를 비롯한 위대한 씨름인들이 마산에서 탄생했다. 또한, 씨름 행정가의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씨름의 제도화와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도 힘썼다. 이처럼 김성률은 한국 씨름의 대중적인 확신과 발전을 견인한 핵심적인 주체로 기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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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일보사 주최 전국 연날리기대회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 최흥희 ( Choi Heung-hee ) , 왕심위 ( Wang Xin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71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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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분석을 통해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전국 연날리기대회를 살펴보았다. 한국일보사는 전통문화의 부흥과 판매 수입 인상을 목적으로 연날리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회는 주로 정부청사 신축 공연지, 경마장, 서울운동장 야구장 등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개최하기 시작했고, 점차 지방 민속의 발전을 위해 지방에서도 개최되었다. 공무원, 군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연날리기대회에는 외국인을 포함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가했고, 학생부와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남녀노소가 참가하는 스포츠대회가 되었다. 또한 경기종목은 시대에 대응해 변화하여 지방의 전통연과 창조적 과학연 등이 선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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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씨름의 조직화 과정: 왼씨름 통일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8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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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씨름의 조직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씨름 경기방식이 통일되는 과정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8세기 샅바의 등장은 씨름 경기의 독창성과 역동성을 위한 동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20세기 초까지 지역적으로 다양한 경기방식의 출현을 추동했다. 씨름의 조직화를 위한 시발점은 1927년 조선 씨름협회 창설이었다. 일제강점기 협회 창설을 기반으로 개최된 전국적인 씨름대회는 주로 왼씨름 경기방식이 채택되면서도 오른씨름과 통씨름 경기가 분리되어 개최되면서 씨름의 과학화와 제도화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 협회는 학생부 경기를 왼씨름 경기방식으로 규정하면서 향후 씨름 경기방식의 통일을 위한 근간을 마련했다. 해방 이후 한국 씨름은 1961년 전국체육대회가 시금석이 되어 1962년부터 점차 왼씨름으로 통일되었다. 그 결과 씨름은 같은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근대적인 스포츠문화로 진화할 수 있었다.

KCI등재

7영·호남 문화재 춤의 현황과 특색에 관한 비교 고찰

저자 : 이경호 ( Lee Ke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0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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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호남 지역에서 춤과 관련된 무형문화재의 전승현황과 발전을 비교 고찰한 것이다. 연구방법은 계보를 통한 질적 연구에 의하여 무형문화재와 관련된 자료를 위주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로 한국무용에 있어서 대표적인 문화재 춤인 승무는 영·호남 지역 모두 전승되고 있으며, 권번에서 활동한 악공과 보유자의 활동영역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살풀이춤은 호남지역의 춤 정서인 한을 담았는데, 그 흐름은 영남과 호남지역과 유사한 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호남 권번의 춤꾼들이 영남에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권번과 연관된 종목의 춤은 입춤의 경우 권번에서 기본이 되는 춤이고, 진주검무는 교방의 기녀들의 춤으로 권번에서 전승되었다. 그리고 산조춤과 예기무는 즉흥성이 강한 춤이다. 그러나 한량무는 권번 춤에 영향을 받은 영남지역의 남성 춤꾼의 춤으로 정착하였다. 이 춤들은 점차 지역적 특색이 융화되어 독특한 춤사위로 전승되었고,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정착하게 되었다.

KCI등재

8한국 댄스스포츠의 대부(大父) 박영택의 생애사 연구

저자 : 곽애영 ( Kwak Ae-young ) , 이인정 ( Lee In-j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22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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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 라틴 아메리칸 댄스 초대 챔피언으로 댄스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온 원로전문인 박영택의 생애를 고찰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 발전사를 재조명 하는데 있다. 결과에 따르면 첫째, 춤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난 박영택은 원인화와의 인연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사교춤을 전문적으로 섭렵해 나가며 댄스스포츠계의 삼바가라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둘째, 국내 라틴 아메리칸 댄스의 초대 우승자가 된 박영택은 영국과 미국의 국제표준무도 교본을 입수·분석하여 라틴 아메리칸 댄스 전 종목을 정립·보급하는 개척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의 발전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셋째, 한국무도교육협회의 수장으로 댄스스포츠계의 행정을 일임해 온 박영택은 유럽 우수선수초청 시범 및 강습회 개최, 연수원 운영 및 지도자 양성, 학생선수의 발굴 등으로 한국 댄스스포츠의 위상을 높였고, 국내 최초의 통합단체를 발족하여 댄스스포츠계의 입지를 공고히 구축함으로써 2007년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인받는데 공헌했다.

KCI등재

9신문기사를 통해 본 한국 생활체육 배구 발달사

저자 : 안진규 ( An Jin-kyu ) , 조문기 ( Cho Moon-gi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3-133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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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국내의 신문기사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생활체육 배구의 변천사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광복 이후 1950년대는 조선배구협회를 창립하고, 1959년 4월 서울시 종별배구리그전에서 첫 국제식 6인제 배구경기를 갖게 된다. 둘째, 1960년대는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는 극동식 9인제 경기를 지양하게 된다. 셋째, 1970년대는 제1회 어머니배구대회를 시작으로 극동식 9인제 배구가 생활체육 배구로 도약한다. 넷째, 1980년대는 한국 어머니 배구연맹 등 9인제 생활체육 배구 단체가 조직된다. 1990년대는 지역사회 및 직장에서 친목경기로 큰 인기를 누린다. 2000년대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생활체육 배구대회의 창설이 급진적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2010년대는 소프트 발리볼 등 기존 9인제 틀에서 벗어난 생활체육 배구의 다양화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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