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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한국복식> 16세기 해주오씨(海州吳氏) 묘 말군의 재현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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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해주오씨(海州吳氏) 묘 말군의 재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Reproduction of Malgun in Tomb of Mrs. Haeju Oh’s in the 16th Century

최윤희 ( Choi Yoon-hee ) , 이은주 ( Lee Eun-joo )
  •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 : 한국복식 47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5월
  • : 29-53(25pages)
한국복식

DOI

10.47597/KDS.47.2


목차

Ⅰ. 서론
Ⅱ. 조선시대 여성 말군에 대한 문헌 고찰
Ⅲ. 출토 말군 고찰
Ⅳ. 해주오씨 묘 말군 재현
Ⅴ.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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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시대 여성용 말군에 관한 문헌기록을 고찰하고, 안동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해주오씨(海州吳氏, 미상~1520) 묘 말군을 재현하면서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장 석남동 말군의 형태와 구성법을 비교ㆍ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상의(馬上衣)인 말군은 왕실여성과 여관(女官, 상궁 이하 기행내인), 사대부가 부인이 착용한 옷임을 확인하였다.
둘째, 왕실여성의 말군은 복완(服玩)과 대렴(大殮)ㆍ소렴(小殮), 가례(嘉禮)에 사용하였는데 백릉(白綾), 백초(白綃), 백저포(白苧布), 백화문릉(白花紋綾), 백화사주(白花絲紬), 백금선(白錦線), 금선단(金線段) 슬란(膝欄) 등으로 제작하였다. 여관(女官)의 말군은 백주(白紬), 백정주(白鼎紬), 백면포(白綿布)로 제작하였으며 사대부가 부인의 말군은 백릉(白綾), 백초(白綃) 등으로 제작하였다. 이를 통해 신분별 재료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2005년에 보고된 인천 석남동 회곽묘 말군과 광산김씨 집안의 해주오씨 묘 말군 두 점의 제작 방법을 비교한 결과, 인천 석남동 말군은 70㎝ 폭 너비의 숙초(熟綃)로 제작한 것이고 해주오씨 말군은 32.5㎝ 폭 너비의 세주(細紬)를 사용하였다. 15~16세기로 추정되는 두 묘의 말군은 뒷트임의 개당고로, 바지가랑이 잇는 방법, 허리 맞주름, 바지부리 주름 접는 방법 등이 유사하였다. 반면에 해주오씨 말군의 바지가랑이 폭 너비는 석남동 말군에 비해 적었지만 주름개수가 많았으며 바느질 기법 또한 달랐다. 허리끈은 석남동 말군은 허리말기에 넣어 만든 흔적만 보였으나 동일한 방법으로 바느질한 해주오씨 말군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넷째, 온전한 형태로 출토된 해주오씨 말군을 재현하는 데에 사용된 옷감량은 1493년(성종 24) 『樂學軌範』의 포백척(布帛尺)을 기준으로 바지와 허리말기감이 세주(細紬) 32자(1,509㎝)와 허리끈감으로 주(紬)가 2.4자(114㎝)이 소요되었다. 이는 1638년(인조 16)부터 1744년(영조 20)까지의 『嘉禮都監儀軌』에 기록된 32~35자 분량의 여관용 백주(白紬) 말군 분량과 같아, 실물과 기록이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examines the literature on female Malgun (襪裙, 袜裙)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reproduces the Malgun excavated from Mrs. Haeju Oh’s tomb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Malgun of clothes for riding horses(馬上衣) was worn by a royal woman and a woman in the household of government officials, was a court maid whose position.
Second, the last group of royal women were used for cerements and ornament at a funeral and the wedding ceremonies and was made of white twill(白綾), white thin silk tabby(白綃), white ramie(白苧布), a white pattern of twill(白花紋綾), Hwasaju (白花絲紬), Geumsun (白錦線), Geumsundan (金線段) Slan (膝 欄). A woman in the household of government officials was made of white twill(白綾), white thin silk tabby(白綃), a court’s maid position can check the difference in materials by using white silk tabby(白 紬), a white Jeongju (白鼎紬), white cotton(白綿布) weres such as silk and cotton cloth.
Third, the results of comparing the manufacturing methods of the tomb in Seok-Nam-dong, Incheon, reported in 2005, and the tomb of Mrs. Haeju-Oh’s in Gwangsan Kim’s family released this time are as follows. In the Malgun in Seok-Nam-dong, Incheon is made of thin, Sookcho (熟綃), which is the fabric is 70㎝, and in the Malgun of Mrs. Haeju Oh’s tomb is made of filament silk tabby(細紬) which is the of the fabric is 32.5㎝. The Malgun of the two tombs, estimated from the 15th to 16th centuries, had similar to the back opening Gaedanggo (開襠袴), the method of joining respectively for the pants, the waist fold, and the folding method of the pleats at the bottom of p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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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기타(예체능)
  • : KCI등재
  • :
  • : 반년간
  • : 2005-3959
  • : 2713-9077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3-2022
  • :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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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권0호(2022년 11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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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시대 야복(野服)에 대한 고찰

저자 : 차서연 ( Cha Seoyeon ) , 이은주 ( Lee Eun-j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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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주자(朱子, 1130~1200)가 만년에 착용한 야복(野服)의 의미와 조선에서 제작해 입은 야복의 의미, 형태와 구성을 고찰한 것이다. 야복은 본래 '야인(野人)의 옷'이라는 의미였으나, 주자는 만년에 예복 겸용의 일상복 일습을 '야복'이라 이름하였다. 상의(上衣)ㆍ하상(下裳)ㆍ대대(大帶)ㆍ방리(方履)의 4가지로 이루어진 야복을 편리함과 풍속의 교화라는 이유로 주자가 착용하였는데, 형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조선의 학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주자가 입었다는 상의ㆍ하상 야복에 근거하여 심의(深衣)와 상복(喪服) 제도를 기준으로 '야복' 형태를 제안하였다. 야복의 상의는 심의 제도를 인용해 만들었으나 단추로 여미도록 하여 차이를 두었다. 하상은 상복의 하상 제도를 따라 만들고, 야복의 하상 도련에는 상복의 하상에는 없는 검은색 가선을 추가하였다. 관모는 치관(緇冠)과 복건(幅巾)을 쓰고 대대는 백색 바탕의 신(紳) 부분에 검은색 가선을 둘렀으며 신발은 흑리(黑履)를 착용하였다.
조선에서는 주자를 따라 일상복과 의례복의 용도로 야복이라는 옷을 착용하였으나 주자가 착용한 야복의 형태를 알 수 없었기에 심의와 상복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다. 주자의 야복보다는 다양한 의례복 용도로 활용하여 빈객을 만날 때는 물론, 제사나 사당의 출입 또는 상중에 출입할 경우에 야복을 입기도 하였다. 빈객접대를 위한 의례복 용도에 더하여 다양한 경우의 의례복으로 용도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조선 야복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야복의 유물이 없어 정확한 형태를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조선의 야복을 권상하(權尙夏, 1641~1721) 초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study examined the clothing styles of the Yabok (野服), which had been worn by Zhu Xi in his later years, being presented to fabricate and wear in Joseon. Zhu Xi named the single-clothing style as the Yabok that has the characteristics of robes and consists of four elements, Sangeui (上衣), Hasang (下裳), Daedae (大帶), and Bangri (方履). It is able to verify its approximate shape from the 'Haklimokro(鶴林玉露)' of Na Dae-gyeong since he never explicitly mentioned about the style of Yabok.
Scholars of Joseon exerted to fabricate and wear the Yabok following Zhu Xi.
The style of Yabok complies with not only the institution of the Haklimokro but also the Simeui (深衣) and the funereal clothes presented by Song Si-yeol(宋時烈), and this can be verified through the portrait of Kwon Sang-ha(權尙夏). The Gwan (冠) that was worn together with the Yabok fell into either Chigwan (緇冠) or Jeongjagwan (程子冠). In addition, it is speculated that the Bangri was recorded as Chori (草履), or Heukhye(黑鞋) was typically worn.
It is thought that the Yabok of Zhu Xi, which consisted of four elements, had acquired the status of the 'clothes of Zhu Xi' by fabricating and wearing based on the Simeui and the funereal clothes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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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시대 관아 원역의 관모 종류와 형태

저자 : 이은주 ( Lee Eun-j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5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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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록과 회화자료에서 자주 등장하는 녹사(錄事)와 서리(書吏), 별감(別監)과 견마배(牽馬陪), 징씨(徵氏ㆍ親氏ㆍ親侍)와 내취(內吹), 사령(使令), 나장(羅將), 소유(所由), 갈도(喝導), 조예(皂隸) 등 관아 원역(員役)을 중심으로 그들의 관모 제도 변천과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첫째, 평정건(平頂巾)은 녹사의 유각평정건(有角平頂巾)과 서리의 무각평정건(無角平頂巾)이 있었다. 18세기 전기 영조 때에 녹사의 유각평정건이 사모로 변경됨에 따라 조선후기에는 서리만 무각평정건을 사용하게 되었다. 둘째, 두건(頭巾)은 녹주두건(綠紬頭巾)과 자적두건(紫的頭巾, 紫巾), 흑주두건(黑紬頭巾, 皂巾), 홍주두건(紅紬頭巾)이 있었다. 녹주두건은 악공과 관현맹인이 사용하였는데 18세기 전기 이후에 폐지되었고 자적두건은 가자(歌者), 대전 별감(別監)이 궐내에서 썼으며 세자궁 별감은 흑주두건을, 수복은 소속에 따라 홍주두건과 흑주두건을 사용하였다. 셋째, 초립(草笠)의 경우, 조선전기 별감은 상복(常服)에 주황초립(朱黃草笠)을 쓰고 견마배는 종색립(椶色笠)을 썼다. 18세기 중기부터 별감과 견마배는 물론, 징씨와 내취 모두 황초립을 사용하였다. 넷째, 사령은 흑립(黑笠) 중 흑칠한 포립(布笠)을 사용하였다. 다섯째, 조건(皂巾)은 의금부(義禁府) 나장과 사헌부(司憲府) 소유, 사간원(司諫院) 갈도, 조예가 사용하였다. 18세기 후기부터 조건의 뒷면좌우에 두석소경(豆錫小鏡, 눈)을 장식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ovide a document that can be used for historical contents by detailing the method of use and characteristics of different types of headgear that were worn by members of the government office(官衙) during the Joseon period. First, There were two kinds of pyeongjeong-geon with side wings(有角平頂巾) for Noksa(錄事) and pyeongjeong-geon without wings (無角平頂巾) for Seo-ri(書吏). In the early 18th century, pyeongjeong-geon for Noksa was changed to Samo(紗帽), so only Seo-ri used the pyeongjeong-geon without wings. Second, the dugeon(頭巾) were green dugeon, purple dugeon, black dugeon, and red dugeon. The green dugeon disappeared after the early 18th century. Subok(守僕) wore the red dugeon or black dugeon. Thir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yeolgam wore an orange colored grass hat on his daily official clothes, and a guiding horse wore a brown hat. After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it changed to the yellow hat(黃草笠). Byeolgam, Gyunma-bae(牽馬陪), and Chinshi(徵氏) and an army musician(內吹) used the yellow hat(黃草笠). Fourth, Saryeong(使令) wore the black got covered with hemp(布笠). Fifth, jo-geon(皂巾) was used by Najang(羅將), Galdo(喝導), and Joye(皂隸). After the late 18th century, brass discs were decorated on the left and right sides of the back of the jo-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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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정부 신곡동 무연고 묘 출토복식의 특징

저자 : 송미경 ( Song Mi Ky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8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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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경기도 의정부 신곡동의 무연고 묘에서 미라와 출토복식이 수습되었다. 복식유물을 비롯하여 총 92점이 수습되었다. 복식유물과 함께 7점의 만사(輓詞)가 수습되었다. 만사를 통하여, 피장자의 나이는 40세를 내외이며, 유학(幼學) 신분으로 소과에 급제한 것으로 추정하며, 기이한 병에 걸려 1581~1594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치관제구를 제외한 복식만을 다루려고 한다. 의정부 신곡동 무연고 묘에서 수습된 복식은 35점으로 도포 3점, 직령 3점, 철릭 6점, 단령과 대대 각 1점, 액주름 3점, 장옷 2점, 과두(裹肚) 1점, 칼깃저고리 1점, 여자저고리 3점, 치마 2점, 철릭소매로 추정되는 1점, 버선 2점, 합당고 3점, 개당고 2점, 복건 1점 등이다. 수습된 복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염습 할 때, 상의는 모시 액주름 1벌, 면 액주름 1벌, 모시철릭 1벌, 모시직령 1벌, 사면교직 단령 1벌이 사용되었다. 하의는 삼베 합당고 2벌, 면 겹 개당고 1벌, 주 겹개당고 1벌이다. 액주름이 습의의 가장 속옷으로 사용되었다. 이 가문에는 한지를 염습과 보공에 많이 사용하였다. 수례지의(襚禮之衣)로 사용된 것은 목판깃 여자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장옷이 사용되었다. 보수한 옷이 많으며, 옷감을 이어서 사용한 경우도 많아, 실제생활에 착용되었던 옷으로 당시의 의생활을 알 수 있다. 직물은 사면교직, 주, 면포, 마포 등이 사용되었고, 무늬가 있는 직물은 철릭의 고름바대와 여자저고리의 깃과 견마기, 끝동, 장옷의 겨드랑이 삼각무와 같이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남자의 포류는 단령, 직령, 철릭, 도포, 액주름, 과두가 수습되었다. 단령의 염습의 사용으로 반가의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전단후장형 직령과 도포가 수습되었다. 도포는 겨드랑이에 주름이 잡혀 있는 솜도포로, 17세기 전반기에 보이기 시작하는 일반적인 도포의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남자바지는 개당고와 합당고가 수습되어 피장자가 생존했던 16세기 말에는 사폭바지는 착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In 2016, mummies and excavated costumes were recovered from an unidentified tomb in the park construction area in Singok-dong, Uijeongbu, Gyeonggi-do, Korea. A total of 91 items were collected, including clothes relics and writings commemorating the burial. Through the memorial, it is estimated that the person who died is about 40 years old, and he passed the national examination to the first grade(小科) and it seems that he fell ill and died in 1581-1594. In this study, will only deal with clothing from coffins. Thirty-five pieces of clothing were collected from unidentified tomb in Singok-dong, Uijeongbu, including three pieces of Dopo, clothing, three pieces of Jikryung, six pieces of Churlik, one piece of Dallnyeong, three pieces of Aekjurum, two pieces of Jangot, one piece of Gwadu, collar with knife shape Jogori, three pieces of women's Jogori, three pieces of Chima, one piece of churlik sleeve, two pair of socks, five pieces of trousers, one piece of scarf etc. For the shroud, two pieces of Aekjurum, one piece of Jingnyeong, one piece of Dallnyeong, four pieces of trousers were used. In this case, Korean paper was used a lot for buffering. Among the collected relics, there were many repaired clothes, and there were many cases where new and old fabrics were connected. This is evidence of wearing it, and it can see the clothing life of the time. The fabrics used were plain silk, cotton and hemp, ramie and mixture fabrics with silk and ramie. Textiles with patterns were limitedly used, such as the Goreumbadae of Churlik and the collar and Gyeonmagi of the women's Jogori, and the gusset of the Jangot. In particular, it can be seen that Dopo filled with cotton is a process of changing into a general form in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There are two types of men's trousers: Gaedanggo (trousers shape's it crotch closed) and Hapdanggo(trousers shape's it crotch opened). It can be seen that sapok pants were not worn at the end of the 1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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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규방공예 요소를 활용한 경남 행복교육지구 체험 프로그램 및 키트(kit) 개발

저자 : 이제남 ( Jenam Lee ) , 이은진 ( Eunjin Lee ) , 한재휘 ( Jaehwi Ha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3-102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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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우리의 전통문화인 규방공예를 경험해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경남 행복교육지구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실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체험 키트를 개발한 것이다.
현재 경남 행복교육지구 프로그램에서 규방공예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규방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였고, 사천 행복마을학교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하였다. 교육 과정은 총 16차시로, 침선, 매듭, 염색, 장식기법 등의 규방공예 요소를 활용하여 소품을 제작한다. 교육 과정은 사용할 옷감을 염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느질에 필요한 바늘꽂이 만들기, 보조가방 만들기, 쿠션 만들기, 나만의 소품 만들기 순으로 진행하였다.
교육이 끝난 후 참여 학생들에게 만족도 조사를 시행하였고, 쿠션 만들기 교육과 스카프 천연염색을 가장 만족한 과정으로 뽑았다. 이를 바탕으로 쿠션 만들기와 손수건 염색하기를 키트로 개발하였다. 본 연구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규방공예를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경남 행복마을교육지구에서 직접 시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체험 키트를 개발하였음에 의의가 있다.


This study developed the Gyeongnam-Happy-Education-District program so that youth can experiecne Korean traditional culture, Kyubang-crafts(boudoir-crafts), and developed kits based on the program results. Currently, there are few programs on the theme of Kyubang-crafts in the Gyeongnam-Happy-Education-District program. Therefore, in this study, a Kyubang-crafts experience program targeting middle school students was developed. The program consists of a total of 16 times, and small items are produced using the elements of Kyubang-crafts such as needlework, knots, dyeing, and decorative techniques. The program was implemented for middle school students at Sacheon-Happy-Village-School. After the education, students conducted a satisfaction survey and then cushion making and scarf dyeing education were selected as the most satisfactory courses. Based on this, cushion making and handkerchief dyeing were developed as kits.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developed an experience program using Kyubang-crafts for middle school students, implemented it directly in the Gyeongnam-Happy-Education-District and developed kits based on the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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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전기 순창 단오성황제 재현을 위한 무속제의 참여자 복식 제안

저자 : 이은주 ( Lee Eun-joo ) , 김수진 ( Kim Suji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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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명종대에 연행되었을 순창 단오성황제 중 무속제의(巫俗祭儀)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복식을 문헌 자료와 유물을 바탕으로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순창 단오성황제의 무속제의를 주관하는 헌관(獻官) 호장과 향리는 『경국대전(經國大典)』 기록에 근거하여 공복(公服)인 복두(幞頭), 녹포(綠袍), 흑각대(黑角帶), 목홀(木笏), 흑피혜(黑皮鞋) 차림을 하고 호장은 인신(印信)을 패용하여 일반 향리와 구분되도록 하였다.
둘째, 무녀의 복식은 감로탱에 나타난 복식을 참고하여 수식(首飾)과 치마ㆍ저고리에 홍장삼(紅長衫), 황대(黃帶), 단혜(段鞋) 차림으로 제안하였다.
셋째, 악사의 복식은 흑립(黑笠)에 홍철릭[紅帖裏], 청대(靑帶), 행전(行纏), 초혜(草鞋)로 제안하였다.
넷째, 정재복을 착용하는 관기는 고계(高髻)에 대요(臺腰)와 장잠(長簪)을 장식하고 황장삼(黃長衫)에 남대(藍帶), 단혜(段鞋) 차림을 하고, 황장삼을 착용하지 않는 관기는 상복(常服)인 가리마(加里亇)에 녹색이나 남색 장저고리에 치마를 착용하는 것으로 제안하였다.
다섯째, 남자 연희패는 감투[甘土]를 쓰고 직령(直領)이나 철릭 등에 포대(布帶)를 두르고 행전과 피혜를 착용하고 부채ㆍ악기 등을 든 모습으로 제안하였으며, 여자 연희패는 고계(高髻)에 홍색 머리띠를 두르고 반비(半臂)에 치마ㆍ저고리, 한삼, 단혜 등의 차림으로 제안하였다.
여섯째, 기치 및 의물 봉지군은 조선전기 군사복식인 흑죽립(黑竹笠), 청철릭[靑帖裏], 청대, 행전, 초혜를 착용하는 것으로 제안하였다.
일곱째, 성황제에 참여하는 군민은 16세기 복식을 갖추도록 하였다. 남자는 흑립ㆍ감투, 바지ㆍ저고리에 방의(方衣, 方領), 액주름[脥注音], 철릭, 답호(褡胡), 직령 등을, 여자는 다양한 색상의 치마·저고리를 착용하며 때에 따라 반비나 장옷을 착용하는 것으로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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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세기 해주오씨(海州吳氏) 묘 말군의 재현에 관한 연구

저자 : 최윤희 ( Choi Yoon-hee ) , 이은주 ( Lee Eun-j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5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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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시대 여성용 말군에 관한 문헌기록을 고찰하고, 안동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해주오씨(海州吳氏, 미상~1520) 묘 말군을 재현하면서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장 석남동 말군의 형태와 구성법을 비교ㆍ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상의(馬上衣)인 말군은 왕실여성과 여관(女官, 상궁 이하 기행내인), 사대부가 부인이 착용한 옷임을 확인하였다.
둘째, 왕실여성의 말군은 복완(服玩)과 대렴(大殮)ㆍ소렴(小殮), 가례(嘉禮)에 사용하였는데 백릉(白綾), 백초(白綃), 백저포(白苧布), 백화문릉(白花紋綾), 백화사주(白花絲紬), 백금선(白錦線), 금선단(金線段) 슬란(膝欄) 등으로 제작하였다. 여관(女官)의 말군은 백주(白紬), 백정주(白鼎紬), 백면포(白綿布)로 제작하였으며 사대부가 부인의 말군은 백릉(白綾), 백초(白綃) 등으로 제작하였다. 이를 통해 신분별 재료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2005년에 보고된 인천 석남동 회곽묘 말군과 광산김씨 집안의 해주오씨 묘 말군 두 점의 제작 방법을 비교한 결과, 인천 석남동 말군은 70㎝ 폭 너비의 숙초(熟綃)로 제작한 것이고 해주오씨 말군은 32.5㎝ 폭 너비의 세주(細紬)를 사용하였다. 15~16세기로 추정되는 두 묘의 말군은 뒷트임의 개당고로, 바지가랑이 잇는 방법, 허리 맞주름, 바지부리 주름 접는 방법 등이 유사하였다. 반면에 해주오씨 말군의 바지가랑이 폭 너비는 석남동 말군에 비해 적었지만 주름개수가 많았으며 바느질 기법 또한 달랐다. 허리끈은 석남동 말군은 허리말기에 넣어 만든 흔적만 보였으나 동일한 방법으로 바느질한 해주오씨 말군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넷째, 온전한 형태로 출토된 해주오씨 말군을 재현하는 데에 사용된 옷감량은 1493년(성종 24) 『樂學軌範』의 포백척(布帛尺)을 기준으로 바지와 허리말기감이 세주(細紬) 32자(1,509㎝)와 허리끈감으로 주(紬)가 2.4자(114㎝)이 소요되었다. 이는 1638년(인조 16)부터 1744년(영조 20)까지의 『嘉禮都監儀軌』에 기록된 32~35자 분량의 여관용 백주(白紬) 말군 분량과 같아, 실물과 기록이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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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동아시아 전통모시의 제직 공정 비교

저자 : 김보연 ( Kim Boyeu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8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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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동아시아 삼국 전통모시의 제직 공정을 비교한 것으로, 국가급 무형문화재로서 각 국을 대표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였다. 한국의 한산모시, 중국의 완자이시아뿌(万载夏布), 일본의 오지야치지미ㆍ에치고조후(小千谷縮ㆍ越後上布)가 이에 속하며, 한산모시와 오지야치지미ㆍ에치고조후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사 방법은 철저한 현장조사를 기반으로, 현시점에 실제로 작업되고 있거나 시연 가능한 공정의 관찰과 구술 확인을 중심으로 비교하였다.
삼국에서 모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만큼 원시적인 요소 및 고대 문헌의 원형적 공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 중국의 모시 채취 방식, 한국의 모시굿 형태 그대로 직조 공정으로 이어지는 특성, 일본의 모싯대와 태모시 수침 공정 및 직기와 도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과 중국의 전통모시와 일본이 가장 크게 대별되는 지점은 문양 표현의 유무로, 이는 일본 모시실의 경우 방적 후 꼬임을 추가하는 공정에 기인한 것이다. 한국은 방적 공정이 삼국 가운데 인피섬유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정교하게 발달하여, 무늬없는 평직에도 가장 흠 없는 바탕 제직을 숙련된 솜씨로 제직하고 있다. 중국은 직기 너비의 요인뿐 아니라 대외 수요를 위해 다양한 규격의 모시가 제직되고 있으며, 대량생산을 위해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전반적인 질적 저하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일본은 섬유를 얻는 과정에서부터 섬세한 작업물을 얻는 방향으로 전 공정이 발달하였으며, 풀을 낱 올에 미리 먹이는 작업 특성으로 모시실이 인피섬유가 아닌 명주실의 성격으로 변모되어 후 공정에 영향을 미치며, 후처리에 이르기까지 기술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여 관리하고 있다.
삼국 모두 큰 틀에서 각기 고유한 공정의 특성과 미감을 유지하면서 고대 원형적 요소 위에 현대의 개량된 요소의 적용이 확대되는 가운데, 전통 제직 공정을 중심으로 비교하여 전승의 방향을 고려하도록 하였다.

KCI등재

4신경유(申景裕:1581~1633년) 조복(朝服)의 후수(後綬) 연구

저자 : 장정윤 ( Jang Jung-youn ) , 박윤미 ( Park Yoon-mee ) , 최연우 ( Choi Yeon-w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1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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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과 명의 문헌에 규정된 관원의 후수 제도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17세기 무관 신경유 조복 후수의 유물에 관해 고찰하였다. 연구를 위해 총 두 차례의 유물 실견이 이루어졌다. 비록 직물 표면의 상태가 좋지 않아 완전한 형태를 복원하는 데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선행연구보다 한 발더 진전된 연구성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태종 16년(1416) 3월 제정된 조선의 조복제도는 『홍무예제』와 당시 시행되고 있던 조선의 제복제도를 종합한 것이다. 『홍무예제』에 수록된 제도는 홍무 24년(1391) 제정된 것이다. 태종 16년(1416) 마련된 조복제도는 명의 제도에 비해 이등체강 원칙을 적용한 것이지만, 세부내용에서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면도 나타난다. 품급에 따라 운학, 반조, 연작, 계칙을 표현하는 조선전기의 이 제도는 문헌에서 대한제국까지 변화없이 이어지지만, 조선후기 실제 사용된 후수는 제도와 달리 운학을 표현했고, 17세기 권우 조복 후수의 경우는 노사(鷺鷥)문양이다. 신경유 후수는 정2품 관원의 후수인데, 겉감은 총 5종의 조직이 혼합된 문직물이고, 안감은 3매 능직의 무문능이다. 무늬는 가로줄 등 몇 가지가 있는데 주 무늬 부분에는 일부 구름으로 추정되는 무늬가 있으나 무늬 전체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하였다. 무늬는 지위사와 별도로 굵은 문위사(supplentary weft)를 넣어 이중직(double weave)으로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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