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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대항미디어 운동 연구(1) -선언을 통한 창립에서 『실천문학』의 창간에 이르는 과정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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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대항미디어 운동 연구(1) -선언을 통한 창립에서 『실천문학』의 창간에 이르는 과정을 중심으로-

(A) Study on Counter-Media Movement of the Council of Writers for Freedom and Practice(1) -Centered on the process from founding by the manifesto to the first issue of Practice Literature-

이종호 ( Yi Jong Ho )
  •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한국학연구 6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5월
  • : 201-238(38pages)
한국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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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미디어
2. ‘선언’이라는 미디어를 통한 정체성 확립
3. 공연미디어와 인쇄미디어의 절합: ‘민족문학의 밤’과 『광장에 서서』
4. 『실천문학』의 창간과 지식인집단의 연대
5. 나오며: 대항미디어 운동으로서의 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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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는 1974년 11월 18일 광화문 거리에서 선언을 통해 창립된 후 1984년 재창립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미디어 활동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다른 지식인집단과 연대하며 그 지향을 대중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이에 본 논문은 자실의 미디어 활동을 선언문의 연쇄, 공연 및 인쇄 미디어의 절합, 『실천문학』의 창간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을 검토하고 그 의의를 고찰해 보았다.
이 시기 자실은 표현의 자유와 반유신을 주장하는 선언문을 계속해서 발표함으로써 조직을 정비하고 회원을 증원하면서 내부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를 통해 자실은 교수ㆍ언론인ㆍ학생 등의 지식인집단과 접속하여 강한 연대감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ㆍ민중과의 연결고리 또한 마련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자실은 ‘민족문학의 밤’이라는 공연미디어와 『광장에 서서』라는 인쇄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과 문학적 실천을 대중적으로 확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실은 민족ㆍ민중 등으로 수렴되는 문학론을 정비하면서 주요 필진들을 결집하여 향후 실천문학론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졌다. 나아가 다층적 미디어 활동으로 축적된 역량은 무크지 『실천문학』의 창간을 견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실의 미디어 활동은 문인들이 주도하기는 했지만, 유신체제로 인해 존재 기반을 상실했던 문인ㆍ대학교수ㆍ대학생ㆍ언론인 등 다양한 지식인들이 협력하고 연대하며 구축한 ‘저항전선’이자 새로운 주체성 생성을 지향한 ‘대항미디어 운동’으로서의 성격과 위상을 지닌다.
The Council of Writers for Freedom and Practice(referred to as Jasil hereinafter), from its founding by the issue of the manifesto on the Gwanghwamun street on Nov., 18, 1974 to the reestablishment in 1984, has strengthened its internal solidarity and banded together with other intellectuals through multi-layered media activities, sharing its orientation with the public readers. Hence, this paper examined media activities by Jasil and pondered upon their significance, dividing them into a series of the manifestos, articulation of performance and printing media, and the foundation of Practice Literature.
In those days, Jasil aligned its organization and established the internal identity with the increased members by constantly issuing the manifestos for freedom of speech and anti-Yushin. Therefore, Jasil not only accessed the intellectual groups such as professorsㆍjournalistsㆍstudents and formed the strong solidarity with them but prepared the link with the people. laborers. In addition, Jasil pursued extending its political planning and literary practice to the public through the performance media of ‘The Night of National Literature’ and printing media of Standing in the Square. In such a process, while reorganizing the literary theories converged to the nation and the people and rallying main writers, Jasil laid the foundations going toward the theory of practice literature. Furthermore, the capabilities accumulated by these multi-layered media activities led to the first issue of the mook Practice Literature.
These media activities by Jasil has the characteristic and status both as the ‘Resistant Front’ which was constructed by various intellectuals such as writer sㆍprofessorsㆍuniversity studentsㆍjournalists who lost their basis for existence under the Yushin regime with cooperation and solidarity, though it was mainly led by writers, and as the ‘Counter-Media Movement’ which pursued the creation of the new subje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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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469X
  • : 2734-035X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9-2022
  • :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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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권0호(2022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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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두에 대한 북한 학자들의 개념과 인식 -홍기문, 김영황, 류렬, 오희복을 중심으로-

저자 : 문현수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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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이두의 개념이 학자들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도 관찰되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북한의 대표적인 이두 연구서에서 이두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고찰해 보고 그 결과를 남한의 국어학계의 견해와 비교해 보았다.
북한의 이두에 대한 개념은 홍기문(1957)에서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는 이두를 조선어의 문법 구조에 따라 개편된 조선 한문을 독송한 결과를 기사(記寫)하는 데서 기원하고 발전한 서사어로 정의한다. 김영황(1978)은 홍기문(1957)의 이두 개념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였다. 그는 고유명사 표기를 '이두식 표기'로 지칭하며 이두의 논의 범주로 끌어들였으며, 이두음을 이두식 표기를 이두식으로 읽은 음으로 새롭게 정의하였다. 류렬(1983)에 이르러서는 고유명사 표기에 쓰인 글자들도 이두자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두자를 이두의 필수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두자는 중국의 한자와 다른 우리만의 형태, 소리, 뜻을 갖는 우리의 글자로서, 여기에는 한국 고유 한자처럼 새로 만들어낸 글자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 외형상 한자와 동일하더라도 그 소리와 뜻이 한자 본래의 소리와 뜻과 달라지면 그 글자를 모두 이두자로 보게 되었다. 이두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오희복(1999)에서도 관찰된다.
이에 반해 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이두자를 이와 같이 정의하지 않는다. 박성종(2016)처럼 이두자를 이두토 표기에 쓰인 글자로 한정하거나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는 이두자로 보는 새로 만든 글자를 한국 고유한자로서 따로 다루고 있다. 더욱이 이숭녕(1955) 이후로 어휘 표기법을 문장 표기법과 구별하는 경향이 강하였기에 고유명사 표기에 쓰이는 글자를 이두자로 보지 않는다.
또한 구결에 대한 개념과 인식도 남과 북의 학계는 차이를 보인다. 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석독구결의 존재로 인해 구결을 우리말 문장 표기법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는 음독구결만을 구결로 보아 구결을 우리말 문장 표기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자를 차용하여 우리말 문장을 표기하는 표기법을 지칭하는 이두의 하위 유형에 구결을 넣지 않는다.


韓国の国語学界では、吏読の概念は学者により大きな違いを見せる。このような現象は北朝鮮の朝鮮語学界にも同じであろうか。本稿では、北朝鮮の代表的な吏読の研究書においての吏読の概念を検討し、その結果を韓国の国語学界の見解と比べてみた。
北朝鮮において吏読に対する概念は、洪起文(1957)で基本的な土台が設けられた。彼は漢文を朝鮮語の文法構造により改編した朝鮮漢文という概念を提唱し、それを読送した結果を記すことにより誕生した書写語が吏読であると主張する。金荣晃(1978)は、洪起文(1957)の吏読に対する概念を発展的に継承した。彼は固有名詞表記を吏読式表記と呼び、それを吏読の範疇に引き入れた。そして、吏読音を、吏読式表記を吏読式に読んだ音と改めて定義した。柳烈(1983)に至っては、固有名詞表記に使われた文字も吏読字として認識し、それを吏読の必須要素とした。それで、吏読字は中国の漢字とは違う朝鮮だけの形態、音、意味を持つ朝鮮の文字になり、ここには韓国固有漢字のように新しく作り出した文字が含まれる。そして、外形上漢字と同じでもその音や意味が漢字本来の音や意味とは違うと、その文字をすべて吏読字と見做すようになった。吏読字に対するこのような認識は、オㆍヒボク(1999)でも観察される。
これに対し、韓国の国語学界では、吏読字をこのように定義しない。たとえば、朴盛鐘(2016)は吏読字を吏読吐の表記に使われた文字に限定する。そして北朝鮮の朝鮮語学界では吏読字と見做す新しく作られた文字を韓国固有漢字と定義して別に扱っている。さらに、李崇寧(1955)以降、語彙表記法と文章表記法とを区別しているため、固有名詞表記に使われる文字を吏読字と認めない。
また、口訣に対する概念や認識も南北の学界では違いを見せる。韓国の国語学界では、釈読口訣のの存在により口訣を韓国語の文章表記法の-種と認識している。-方、北朝鮮の朝鮮語学界では、音読口訣だけを口訣と見做し、口訣を朝鮮語の文章表記法としては認めない。したがって、口訣は、漢字を借用して朝鮮語の文章を表記する表記法を意味する吏読の下位類型には含まれてい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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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헝가리 투란주의자의 한국 인식 -버라토시의 『새벽의 나라 한국』(1929)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미 ( Lee Yeong-mi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7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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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토시(Baráthosi Balogh Benedek, 1870~1945)는 20세기 전반 부다페스트에서 사와 민족지학자, 저술가로 활동한 헝가리인이다. 헝가리에서 그는 19세기 후반에 발아하여 20세기 전반까지 유행한 투란주의(Turanism)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헝가리인, 머저르족(Magyars)의 친족을 찾기 위하여 주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매달렸고, 한국과 관련해서는 1907년과 1921년 두 번의 방문을 바탕으로 『새벽의 나라 한국(Korea, a ajnalpir országa)』(1929)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헝가리인이 한국을 단독으로 다룬 최초의 저술이지만, 인쇄소에서 극소량 출판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헝가리에서조차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본 논문은 버라토시의 생애를 소개하고 그의 책 『새벽의 나라 한국』을 분석하였다. 첫 번째 장에서는 그가 투란주의자가 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헝가리 민족의 동방기원설부터 헝가리 투란주의의 형성까지를 서술하여 다소 장황하지만, 투란주의가 그의 한국 인식에 명백히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두 번째 장에서는 투란주의자이자 민족지학자로서 그의 동아시아 여행과 관련 활동을 다루었는데, 1차 자료가 모두 헝가리어이고 입수 자체가 쉽지 않아 해외 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의존하였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에서는 『새벽의 나라 한국』을 텍스트로 삼아 1907년 그의 첫 번째 한국 여행을 소개하고, 그가 동시대 다른 서양인들과 달리 한국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한 원인을 분석하였다. 텍스트 분석에 사용된 책은 헝가리어 원본이 아닌 초머의 번역본 『코리아,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지만, 본 논문에서 이 책을 지칭할 때는 원제를 따라 『새벽의 나라 한국』이라고 쓰겠다. 필자는 본 논문이 가진 방법론적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동안 우리 가까이에 있었으나 학문적으로는 거의 검토되지 않은 자료를 소개하는 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Baráthosi Balogh Benedek (1870~1945) was a Hungarian teacher, ethnographer, and writer in Budapest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He was known as a supporter of Turanism, which arose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prevailed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He was mainly interested in the east of the Eurasian continent in order to find the relatives of the Hungarian people. Regarding Korea, he wrote a book titled “Korea, a hajnalpir országa (Korea, the Country of Dawn),” based on two visits in 1907 and 1921. Although it was the first book in Hungary to deal exclusively with Korea, it was not widely known not only in Korea but also in Hungary, as only a very small number of copies were published in the printing house.
This paper introduces the life of Baráthosi and analyzes his above-mentioned book. The first chapter explains the background that led him to become a Turanist. It describes from the theory of the Eastern origin of the Hungarian nation to the formation of Hungarian Turanism. The second chapter deals with his travels to East Asia and related activities as a Turanist and ethnographer, depending on the research results of overseas scholars. The most important final chapter introduces his first trip to Korea in 1907, using his book as a text, and reveals that he viewed Korea very positively, unlikely other Westerners of his time. While admitting the methodological limitations of this paper, the author introduces materials that have been close to us but rarely reviewed and urges further research.
In Korea, a hajnalpir országa, Baráthosi refuted the negative remarks that have been repeated in many Western writings. He introduced Korea as positively as possible, taking Hungary as the object of comparison and Japan as the object of of contrast. His perception of Korea is unique in that he viewed Korea only from a positive point of view, emphasized the homogeneity between Hungary and Korea, and perceived Japan in a negative way.
It seems that three factors may have influenced his perception of Korea. The first is the basic kindness that he could show to Korea as a Turanist. The second is his antipathy to Japanese colonial rule in Korea. The third is his sympathy for colonial Korea. However, it is highly unlikely that he thought the situation in Hungary and Korea was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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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ㆍ중 여성작가 작품에 드러난 양처현모론 인식의 자기모순적 양상과 그 의미

저자 : 서록지 ( Xu Luzhi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0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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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20년대 한국과 중국의 대표 여성작가들을 대상으로 근대 여성작가 소설에 드러난 양처현모론(賢母良妻論) 인식의 자기모순적 양상과 그 의미를 비교ㆍ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양처현모론과 신현모양처론은 당대 양국의 주류 여성 교육정책으로써 여성 담론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신여성을 모범적인 신식 가정의 경영자로 간주함으로써 남편을 성공시키는 내조자의 역할 뿐 아니라 자녀의 양육자와 교육자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1920년대 한국과 중국의 여성작가들은 사회의 분위기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양처현모론에 상이한 태도를 취하였다.
긍정론의 경우 양처현모 사상의 영향을 받은 나혜석과 빙신(冰心)이 그것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혜석은 양처현모사상과 개인적 성취 및 주체성과의 충돌을 발견하면서 내적 갈등을 겪었다. 반면 빙신은 여성의 개인 가치가 가정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비판론의 경우 김일엽과 링수화(淩叔華), 루인(廬隱) 등이 양처현모 정책이 여성의 개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기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 사상을 비판하였다. 김일엽은 그의 작품에서 양처현모론을 전복시켜야 한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꿈이라는 무의식 세계에서 마음 깊이 잠재된 모성애를 드러냈다. 링수화와 루인은 독신주의를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선책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모성을 언급하는 경우, 두 작가는 방황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양처현모론을 긍정하거나 비판하는 입장들은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선 시대에 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한 여성작가들의 다양한 모색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긍정론과 비판론을 각각 일정한 가치를 지닌 신여성 담론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was to compare and review the self-contradictory aspects and meanings of the recognition of the concept of a good wife and loving mother that revealed in the works of Korean and Chinese female writers in the 1920s. The Korean and Chinese Female writers took different attitudes toward the concept of good wife and loving mother according to the conditions of society or their own experiences. Positions affirming or criticizing the concept show the various seeking processes of female writers to realize female subjectivity in an era where the concept of new women is still unfamiliar. The affirmative position secured an opportunity to speak for new women even if it showed a gap between female subjectivity and the criticizing position was able to design a life worthwhile and personal life while experiencing internal conflicts with maternal instin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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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송화강ㆍ황량한 만지(蠻地) ㆍ개척된 낙토(樂土) -사진엽서 '송화강'과 만주국의 문화정치학-

저자 : 최현식 ( Choi Hyun-sik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68 (6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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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송화강'을 다룬 사진엽서의 탄생과 전개, 그것이 수행한 문화정치학의 본질과 성격을 탐구한다. 송화강은 동북 만주를 유유히 흘러가며 만주의 곡물 생산과 목재산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는 '공업일본, 농업만주'라는 기치 아래 만주의 개척과 식민화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송화강 일대의 도시, 예컨대 길림과 하얼빈은 만주를 대표하는 자연미와 이국정취, 신문명과 유흥문화의 집산지로 떠올랐다. 일제는 하얼빈과 길림을 '국책여행'의 핵심 공간으로 간주하여, 그곳에 대한 관광(여행)을 낯선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나 이국 정취의 즐김에만 빠지지 않도록 했다. 오히려 제국 일본의 우월함과 세계 팽창을 자신하는 내면의 심상지리를 확산, 심화할 수 있는 식민의 공간으로 규정했다. 『송화강천리』는 그 과정에서 발행된 사진엽서로, 여행 관련 엽서도 있지만, 역시 그것의 중심은 왕도낙토, 오족협화, 복지만리에 대한 프로파간다에 있었다. 본고는 그것을 식민주의와 군사주의의 산물로 보고, 『송화강천리』 엽서세트가 제국 일본의 신민을 포함한 만주국의 남성과 여성, 아동을 '총력전'의 도구로 징발하기 위해 제작, 유통되었음을 밝혔다. 그 과정에서 모든 가치를 일왕의 영원성과 그를 위한 헌신과 죽음에 두는 '전사자 숭배'가 공공연히 행해졌음도 밝혀냈다. 그런 점에서 『송화강천리』를 비롯한 '송화강' 엽서들은 비록 관광의 즐거움을 다뤘을지라도 결국은 죽음의 도구화를 통해 근대천황제를 절대화하는 도구적 매체, 바꿔 말해 '파시즘의 예술화'의 산물로 파악했다.


This study explores the birth and development of photo postcards dealing with 'the Songhua River' and also the essence and characteristics of cultural politics that it has performed. Flowing serenely along northeast Manchuria, the Songhua River influenced grain production and wood industry in Manchuria significantly. Under the flag of 'engineering in Japan, farming in Manchuria', the Japanese Empire strived to exploit and colonize Manchuria. In that process, cities around the Songhua River such as Kirin and Harbin rose as a hub for natural beauty, exoticism, new civilization, and culture of pleasure representing Manchuria. Regarding Harbin and Kirin as key space for 'state-run travel', the Japanese Empire tried to make tourism (traveling) in the places something more than having curiosity over new space or enjoying exoticism merely. Instead, they defined it as the space of colonization that could realize the extension and deepening of imaginary geography in the mind of the Japanese Empire being sure of its superiority and expansion over the world. 『The 1,000 Miles of the Songhua River』 is a collection of photo postcards issued in that process. There are tourism-related postcards, too, but the center of it is, of course, the propaganda associated with Wangdonakto, Ojokhyeophwa, or Bokjimanri. Considering it as the product of colonialism and militarism, this study has found the fact that the postcard collection of 『The 1,000 Miles of the Songhua River』 was produced and distributed by the Japanese Empire to appropriate not just its subjects but men and women and even children in Manchuria as a means of 'all-out war'. In the process, this author has also revealed the fact that 'worshiping those who died in battle' which puts all the value on the perpetuity of the emperor and devotion to him and death for him was done publicly. In this sense, although postcards about 'the Songhua River' including 『The 1,000 Miles of the Songhua River』 dealt with the pleasure of tourism, this researcher has understood that ultimately, they were instrumental media to make the modern emperor system of Japan absolute through the instrumentalization of death, that is to say the products of 'turning fascism into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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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해방공간에서의 문학과 정치 -「도정」과 「새벽」을 중심으로-

저자 : 진연 , 이해영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20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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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비슷한 주인공과 주제를 다룬 지하련의 「도정」(1946.07)과 전홍준의 「새벽」(1948.04)을 중심으로 해방공간에서의 정치이념과 문학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두 편의 소설은 모두 그 나름의 문학성을 인정받아 해방공간에서 문단의 최고 위상을 자랑하던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문학』에 게재되었지만 발표 당시 사뭇 다른 운명에 처하고 있었다. 지하련의 「도정」은 발표 당시에 좌익문단으로부터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았으나 전홍준의 「새벽」은 당시의 좌익문단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그나마 극소수의 평론도 주로 비판 일색이었다.
정치 논리가 우위인 해방공간에서 문학작품들의 운명 역시 정치와 직결되어 있었다. 소설을 게재한 『문학』을 비롯하여 작품「새벽」에 관한 비평을 게재한 잡지들은 모두 좌익문단의 강력한 영향과 자장 속에 있었으며 당시 좌익문단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던 남로당의 정치이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도정」은 당시 남로당의 정치이념에 상당히 부합되는 작품이다. 반면 「새벽」은 남조선노동당의 정치적 이념과 투쟁목표를 적시적으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표 당시 좌익문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 것이다. 이처럼 「도정」과 「새벽」은 정치의 시대 즉 해방공간이라는 이념 우위의 시대에 문학작품의 운명이 정치에 의해 좌우된 대표적인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本文旨在以池河连的《道程》与全洪俊的《拂晓》为中心、探究韩国解放期政治与文学的关联性。这两部作品都刊登在左翼领导的朝鲜文学家同盟机关杂志《文学》上、在主人公设置和主题方面存在相似性、但《道程》在当时广受好评、而《拂晓》在当时不仅没有受到太多关注、仅有的-些文学评论也以负面为主。
政治的时代中、作品和作家的命运往往也被政治支配。结合当时南朝鲜劳动党的相关资料、《道程》的成功可以说是必然、因为其情节设定高度符合南劳党的政治主张; 而全洪俊的《拂晓》与当时南劳党的政治理念不够贴合、所以在当时主要受到左翼文坛的批判。
政治的时代中、是否符合要求、决定了作品和作家命运的成败。从这种角度出发、《道程》和《拂晓》可被视为韩国解放空间这-特殊时期被政治左右命运的实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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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대항미디어 운동 연구(1) -선언을 통한 창립에서 『실천문학』의 창간에 이르는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이종호 ( Yi Jong 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1-23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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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는 1974년 11월 18일 광화문 거리에서 선언을 통해 창립된 후 1984년 재창립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미디어 활동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다른 지식인집단과 연대하며 그 지향을 대중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이에 본 논문은 자실의 미디어 활동을 선언문의 연쇄, 공연 및 인쇄 미디어의 절합, 『실천문학』의 창간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을 검토하고 그 의의를 고찰해 보았다.
이 시기 자실은 표현의 자유와 반유신을 주장하는 선언문을 계속해서 발표함으로써 조직을 정비하고 회원을 증원하면서 내부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를 통해 자실은 교수ㆍ언론인ㆍ학생 등의 지식인집단과 접속하여 강한 연대감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ㆍ민중과의 연결고리 또한 마련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자실은 '민족문학의 밤'이라는 공연미디어와 『광장에 서서』라는 인쇄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과 문학적 실천을 대중적으로 확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실은 민족ㆍ민중 등으로 수렴되는 문학론을 정비하면서 주요 필진들을 결집하여 향후 실천문학론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졌다. 나아가 다층적 미디어 활동으로 축적된 역량은 무크지 『실천문학』의 창간을 견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실의 미디어 활동은 문인들이 주도하기는 했지만, 유신체제로 인해 존재 기반을 상실했던 문인ㆍ대학교수ㆍ대학생ㆍ언론인 등 다양한 지식인들이 협력하고 연대하며 구축한 '저항전선'이자 새로운 주체성 생성을 지향한 '대항미디어 운동'으로서의 성격과 위상을 지닌다.


The Council of Writers for Freedom and Practice(referred to as Jasil hereinafter), from its founding by the issue of the manifesto on the Gwanghwamun street on Nov., 18, 1974 to the reestablishment in 1984, has strengthened its internal solidarity and banded together with other intellectuals through multi-layered media activities, sharing its orientation with the public readers. Hence, this paper examined media activities by Jasil and pondered upon their significance, dividing them into a series of the manifestos, articulation of performance and printing media, and the foundation of Practice Literature.
In those days, Jasil aligned its organization and established the internal identity with the increased members by constantly issuing the manifestos for freedom of speech and anti-Yushin. Therefore, Jasil not only accessed the intellectual groups such as professorsㆍjournalistsㆍstudents and formed the strong solidarity with them but prepared the link with the people. laborers. In addition, Jasil pursued extending its political planning and literary practice to the public through the performance media of 'The Night of National Literature' and printing media of Standing in the Square. In such a process, while reorganizing the literary theories converged to the nation and the people and rallying main writers, Jasil laid the foundations going toward the theory of practice literature. Furthermore, the capabilities accumulated by these multi-layered media activities led to the first issue of the mook Practice Literature.
These media activities by Jasil has the characteristic and status both as the 'Resistant Front' which was constructed by various intellectuals such as writer sㆍprofessorsㆍuniversity studentsㆍjournalists who lost their basis for existence under the Yushin regime with cooperation and solidarity, though it was mainly led by writers, and as the 'Counter-Media Movement' which pursued the creation of the new subje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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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후카사와 카이(深沢夏衣)의 글쓰기 의미 -소설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서-

저자 : 박성주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9-26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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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재일조선인여성작가 후카사와 카이(深沢夏衣, 1943~2014)에 주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녀가 소설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계간 잔소리』에서의 활동과 그녀의 데뷔작 『밤의 아이『에 초점을 맞춰 그녀의 글쓰기 의미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후카사와 카이가 『계간 잔소리』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1970년대는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기였으나, 2세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민족규범'에서 벗어나 일본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된 시기였다. 그녀는 편집위원으로서 다양한 글쓰기 활동을 시도하였으나, 주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쓰고자 한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계간 잔소리』가 폐간된 이후 그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펼치고자 소설을 쓰게 되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쓰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고자 한 그녀의 시도였다. 즉 그녀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펼치고자 한 자유로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녀의 글쓰기 의미는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本稿は、これまで等閑視かつ不可視化されてきた在日朝鮮人女性作家の深沢夏衣(1943~2014)に注目したものである。深沢夏衣は、日本国籍をもつ在日朝鮮人2世の女性作家である。彼女は寡作ながら平明ㆍ的確な文体で、市井に生きる在日朝鮮人の家族ㆍ女性を描いてきた。彼女は編集者としての一面ももち、様々な在日朝鮮人の雑誌を発信した。しかし、深沢夏衣に対する在日朝鮮人社会の評価は、「『帰化』した在日朝鮮人女性」であり、彼女はその言葉に敏感であった。
深沢夏衣が周囲からの視線に最も揺れているのは、デビュ-作『夜の子供』(講談社、1992)である。こうした揺らぎは在日朝鮮人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葛藤とも見られるが、深沢夏衣の「書き手」としての観点と、それを見定めようとする周囲の存在を踏まえてみると、自らの作家イメ-ジとの交渉過程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
そこで、本稿では、深沢夏衣の小説『夜の子供』を中心に、彼女が何と対岐し、いかなる名づけを回避し、その表現の世界を拓いていったかを考察することで、深沢夏衣における「書くこと」の意味について検討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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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천-김포지역 분구묘와 마한

저자 : 김경화 ( Kim Kyoung Hwa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5-29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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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김포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분구묘가 발견되었다. 이는 이 지역에 일정 규모의 세력을 가진 지배 집단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분구묘가 특히 집중적으로 발견된 지역은 인천 연희동 유적, 김포 운양동, 양촌 유적 등이다. 출토유물을 토대로 본 중심연대가 대략 3세기 전후반임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삼국지』 한조에 등장하는 마한 諸國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삼국지』 한조에는 56개의 소국이 등장한다. 문헌사적 연구성과에 따른다면 인천-김포지역에 해당하는 나라는 '우휴모탁국', '신분고국' 및 '속로불사국' 등이다. 이들은 마한연맹체의 일원으로 중국 군현과 경제적 교류를 통해 해상세력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또한 3세기 낙랑군과 벌인 기리영전투에도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천-김포지역의 정치세력은 “해상”을 매개로 하여 경제적,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형성된 마한의 지역연맹체적 특성을 가진다. 특히 연희동지역은 외부 세력이 한반도 내륙에 들어 오는 길목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대외무역에 종사하려는 서해 연안의 세력이라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김포 운양동 유적에는 오수전, 철경동촉, 낙랑계토기편 등 낙랑계유물과 함께 상당수의 철제무기류가 발견된다. 이는 기리영전투 등의 분쟁에 이 지역 세력들이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인천-김포지역은 군사적 동맹으로 맺어진 지역연맹체로 중국 군현과의 경제적 교섭은 물론 분쟁이 일어났을 때도 함께 행동하였고, 이 때문에 『삼국지』에서 국명을 열거할 때, 나란히 기재되었을 것이다.


Recently, a fairly large number of Bungu-tombs(墳丘墓) were discovered in the Incheon-Gimpo area. This means that a ruling group with a certain size of power has emerged in this region. Areas where Bungu-tombs have been found particularly intensively are the remains of Yeonhui-dong in Incheon and Unyang-dong, Yangchon. in Gimpo. Considering that the central age seen based on the excavated relics is around the first half of the 3rd century, it is highly probable that they are one of the Mahan countries appearing in the Hanjo(韓條) of 『The Three Kingdoms(三國志)』.
There are 56 small kingdoms in Hanjo(韓條) of 『The Three Kingdoms(三國志)』. According to the historical research results, the countries that fall under the Incheon-Gimpo region are 'Woohyumotakguk(優休牟涿國)', 'Sinbungoguk (臣濆沽國)', 'Soklobulsaguk(速盧不斯國)'. As a member of the Mahan Federation, they would have grown into a maritime power through economic exchanges with Chinese Gunhyeon(郡縣). It is also highly likely that he participated in the Battle of Giriyeong with Chinese Gunhyeon in the 3rd century.
The political forces in the Incheon-Gimpo region have the characteristics of a regional federation of Mahan formed by economic and military necessity through “sea” as a medium. In particular, the Yeonhui-dong area is a strategic military base located on the way to the inland of the Korean Peninsula. Therefore, if it is a power on the West Sea coast to engage in foreign trade, it is highly likely that it has formed an economic and military alliance with this region.
On the other hand, a significant number of iron weapons and relics of Nakrang, such as Osujeon(五銖錢), Cheolgyeongdongchok(鐵莖銅鏃), and Nakranggye earthenware(樂浪系土器片), are found at the Unyang-dong ruins in Gimpo. This shows the possibility that the local powers participated in conflicts such as the Battle of Giriyeong. In other words, the Incheon-Gimpo region is a regional alliance formed by a military alliance, and it acted together when conflicts occurred as well as economic negotiations with Chinese Gunhyeon(郡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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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요순 정치의 회복, 다산 정약용의 홍범(洪範)론

저자 : 김호 ( Kim 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3-32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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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사망 직전 『상서』에 대한 주석서를 완성하여, 조선후기 정치개혁에 대한 자신의 최종 견해를 제시했다. 고대의 이상 정치로 상징되는 요순통치에 대한 다산의 평가는 한마디로 '현능한 지도자가 부지런히 정무에 힘쓴 결과[有爲]'였다. 다산은 이른바 세속에서 말하는 무위이치(無爲而治)야말로 어리석은 견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현능한 지도자는 반드시 유능한 관리들을 선발하여 관직을 나누어주고 이들이 부지런히 과업을 수행하는지 철저하게 살폈다[考績]. 다산은 「홍범」이 바로 요순정치의 핵심 교훈이라고 정의하고 새롭게 재해석했다. 특히 「홍범」의 9개 범주에 붙은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황극[최고권력]을 중심으로 한 통치행위 전반으로 이해할 것을 제언했다. 오행은 단지 하늘이 내려준 자연의 '재료'에 불과하고 이를 활용[利用]하여 인간의 삶을 평안하게 하면[厚生] 그만이었다. 따라서 정치[八政]는 오직 국가의 세입과 지출에 해당하는 경제 및 재정 정책이 가장 중요했다. 한편, 「홍범」에는 왕과 함께 통치에 참여할 현능한 자들의 자질[三德]이 설명되어 있을뿐더러, 왕이 현능한 자들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스스로 몸가짐을 바로잡는 수신의 항목들[五事]이 기록되어 있었다. 왕의 지위[皇極]가 절대적인 것은 바로 상벌의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인데, 왕은 이 권한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능력있는 신하들에게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합당한 벌을 내려야만 했다[福極]. 왕이 이상의 통치행위를 지성으로 수행한다면 하늘이 감동하여 왕으로 하여금 선정의 기회를 허락할 것이었다. 다산은 조선의 왕들이 「홍범」의 가르침에 따라 현능한 관료를 등용하여[知人]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安民]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고전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經學]을 통해 자신이 주장하는 정치경제의 개혁안[經世論]이 본인의 억측이 아닌 '고대의 지혜[周禮]'를 밝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Dasan presented his final view on political reform in the late Joseon Dynasty, by completing a commentary on Classic of History(尙書) just before his death. His evaluation of Yao-Shun politics, which symbolized as ancient ideal politics, was in short, the result of a wise leader's diligent efforts[有爲] in political affairs. He dismissed idea of “governing without action[無爲而治]”, which is said to be a foolish view. A wise leader had to select competent officials to distribute government posts and thoroughly examine[考績] whether they are diligent in carrying out their tasks. Dasan defined “Great Plan(洪範)” as the core lesson of Yao-Shun politics and reinterpreted it anew. In particular, he suggested not to be misled by the numbers attached to the nine categories of Great Plan, but to understand the overall act of governing centered on the supreme power[皇極]. Five Phases[五行] were only a “material” of nature given by heaven, and it was enough to make human life peaceful[厚生] by utilizing[利用] them. Therefore, economic and fiscal policy-which correspond to the revenue and expenditure of the state- were the most important part in the politics[八政]. On the other hand, Great Plan described the qualities[三德] of the wise who would participate in the rule with the king, as well as the items of moral training[五事] that the king should first internalize to recognize the wise. The absoluteness of the king's position[皇極] was based on his power of reward and punishment. He had to faithfully carry out this power so that competent officials would have sufficient incentives while those who aren't be punished reasonably[福極]. It was certain that if the king carried out the above governing act with intelligence, heaven would be moved and allow the king a chance for just rule[善政]. Dasan argued that the kings of Joseon at that time should take the lead in reforming to make the people comfortable[安民] by appointing wise officials[知人] according to the teachings of Great Plan. In short, Dasan emphasized that his reform plan of politics and economics[經世論] was not his mere conjecture, but rediscovery of “ancient wisdom” through a new reinterpretation of classical literature[經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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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미완의 싱크탱크 혹은 이용희의 국토통일원 시절(1976~1979) -1970년대 후반 국토통일원의 연구 사업을 중심으로-

저자 : 장세진 ( Chang Seiji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9-371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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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구의 근대 국제정치학을 한국에 제도적으로 안착시킨 창설자였던 이용희(李用熙, 1917~1997)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제 6대 국토통일원 장관으로서 재임한 시기(1976~1979)를 살펴보았다. 특히, 그가 국토통일원의 수장으로서 주도한 연구 사업의 특징을 그 한계부터 의의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시도는 구체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던 '관료-이용희'의 실천을 밝힌다는 점에서 그간의 공백을 메우는 전기적 연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가 몸담았던 국토통일원이라는 기관의 위상과 사업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이 글은 박정희 정권 말기의 통일 정책을 배경으로 한 냉전 제도사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띤다. 두 가지 접근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사실은 분단/통일의 문제를 대학에 소속된 학자로서 연구, 교육하는 일과 현실정치 한 가운데 위치한 정책 입안자가 접근하는 방식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자-이용희'와 '국토통일원 장관-이용희' 사이에 놓인 예기된 거리 내지 간극을 단지 확인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 글은 자신의 비판적 '앎'을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 기입하거나 실정화된 제도 속에서 실천하려 할 때 발생하는 불편한 균열과 긴장의 순간들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이 글은 이용희의 재임 시절 각종 제도 개선과 연구를 통해 새롭게 획득된 현실의 변화와 생산적 순간 또한 놓치지 않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period 1976~1979 when Lee Yong-hee (1917~1997), the founder of modern Western international politics in Korea, was politically active and served as the sixth President of the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search project he led during this time, including its limitations and significance. This biographical examination reveals his official practices. This article also examines the status and research conducted by the Institute in the context of the Cold War and unification policy at the end of the Park Chung-hee administration. The common fact that penetrates the two approaches is that there is a considerable gap between researching and educating the issue of division/unification as a university scholar and the approach of policymakers in the middle of real politics.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not just to show the expected differences between Lee Yong-hee as an international politician and as President of the Institute.
This article examines the uncomfortable cracks and moments of tension that occur when trying to apply what one knows in practice. It reconstructs both real changes and the productive moments that occurred as the result of institutional improvements and research conducted during Lee Yong-hee's tenure as the President of the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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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두에 대한 북한 학자들의 개념과 인식 -홍기문, 김영황, 류렬, 오희복을 중심으로-

저자 : 문현수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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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이두의 개념이 학자들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도 관찰되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북한의 대표적인 이두 연구서에서 이두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고찰해 보고 그 결과를 남한의 국어학계의 견해와 비교해 보았다.
북한의 이두에 대한 개념은 홍기문(1957)에서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는 이두를 조선어의 문법 구조에 따라 개편된 조선 한문을 독송한 결과를 기사(記寫)하는 데서 기원하고 발전한 서사어로 정의한다. 김영황(1978)은 홍기문(1957)의 이두 개념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였다. 그는 고유명사 표기를 '이두식 표기'로 지칭하며 이두의 논의 범주로 끌어들였으며, 이두음을 이두식 표기를 이두식으로 읽은 음으로 새롭게 정의하였다. 류렬(1983)에 이르러서는 고유명사 표기에 쓰인 글자들도 이두자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두자를 이두의 필수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두자는 중국의 한자와 다른 우리만의 형태, 소리, 뜻을 갖는 우리의 글자로서, 여기에는 한국 고유 한자처럼 새로 만들어낸 글자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 외형상 한자와 동일하더라도 그 소리와 뜻이 한자 본래의 소리와 뜻과 달라지면 그 글자를 모두 이두자로 보게 되었다. 이두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오희복(1999)에서도 관찰된다.
이에 반해 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이두자를 이와 같이 정의하지 않는다. 박성종(2016)처럼 이두자를 이두토 표기에 쓰인 글자로 한정하거나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는 이두자로 보는 새로 만든 글자를 한국 고유한자로서 따로 다루고 있다. 더욱이 이숭녕(1955) 이후로 어휘 표기법을 문장 표기법과 구별하는 경향이 강하였기에 고유명사 표기에 쓰이는 글자를 이두자로 보지 않는다.
또한 구결에 대한 개념과 인식도 남과 북의 학계는 차이를 보인다. 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석독구결의 존재로 인해 구결을 우리말 문장 표기법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는 음독구결만을 구결로 보아 구결을 우리말 문장 표기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자를 차용하여 우리말 문장을 표기하는 표기법을 지칭하는 이두의 하위 유형에 구결을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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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헝가리 투란주의자의 한국 인식 -버라토시의 『새벽의 나라 한국』(1929)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미 ( Lee Yeong-mi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7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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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토시(Baráthosi Balogh Benedek, 1870~1945)는 20세기 전반 부다페스트에서 사와 민족지학자, 저술가로 활동한 헝가리인이다. 헝가리에서 그는 19세기 후반에 발아하여 20세기 전반까지 유행한 투란주의(Turanism)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헝가리인, 머저르족(Magyars)의 친족을 찾기 위하여 주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매달렸고, 한국과 관련해서는 1907년과 1921년 두 번의 방문을 바탕으로 『새벽의 나라 한국(Korea, a ajnalpir országa)』(1929)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헝가리인이 한국을 단독으로 다룬 최초의 저술이지만, 인쇄소에서 극소량 출판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헝가리에서조차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본 논문은 버라토시의 생애를 소개하고 그의 책 『새벽의 나라 한국』을 분석하였다. 첫 번째 장에서는 그가 투란주의자가 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헝가리 민족의 동방기원설부터 헝가리 투란주의의 형성까지를 서술하여 다소 장황하지만, 투란주의가 그의 한국 인식에 명백히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두 번째 장에서는 투란주의자이자 민족지학자로서 그의 동아시아 여행과 관련 활동을 다루었는데, 1차 자료가 모두 헝가리어이고 입수 자체가 쉽지 않아 해외 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의존하였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에서는 『새벽의 나라 한국』을 텍스트로 삼아 1907년 그의 첫 번째 한국 여행을 소개하고, 그가 동시대 다른 서양인들과 달리 한국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한 원인을 분석하였다. 텍스트 분석에 사용된 책은 헝가리어 원본이 아닌 초머의 번역본 『코리아,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지만, 본 논문에서 이 책을 지칭할 때는 원제를 따라 『새벽의 나라 한국』이라고 쓰겠다. 필자는 본 논문이 가진 방법론적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동안 우리 가까이에 있었으나 학문적으로는 거의 검토되지 않은 자료를 소개하는 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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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ㆍ중 여성작가 작품에 드러난 양처현모론 인식의 자기모순적 양상과 그 의미

저자 : 서록지 ( Xu Luzhi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0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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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20년대 한국과 중국의 대표 여성작가들을 대상으로 근대 여성작가 소설에 드러난 양처현모론(賢母良妻論) 인식의 자기모순적 양상과 그 의미를 비교ㆍ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양처현모론과 신현모양처론은 당대 양국의 주류 여성 교육정책으로써 여성 담론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신여성을 모범적인 신식 가정의 경영자로 간주함으로써 남편을 성공시키는 내조자의 역할 뿐 아니라 자녀의 양육자와 교육자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1920년대 한국과 중국의 여성작가들은 사회의 분위기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양처현모론에 상이한 태도를 취하였다.
긍정론의 경우 양처현모 사상의 영향을 받은 나혜석과 빙신(冰心)이 그것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혜석은 양처현모사상과 개인적 성취 및 주체성과의 충돌을 발견하면서 내적 갈등을 겪었다. 반면 빙신은 여성의 개인 가치가 가정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비판론의 경우 김일엽과 링수화(淩叔華), 루인(廬隱) 등이 양처현모 정책이 여성의 개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기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 사상을 비판하였다. 김일엽은 그의 작품에서 양처현모론을 전복시켜야 한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꿈이라는 무의식 세계에서 마음 깊이 잠재된 모성애를 드러냈다. 링수화와 루인은 독신주의를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선책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모성을 언급하는 경우, 두 작가는 방황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양처현모론을 긍정하거나 비판하는 입장들은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선 시대에 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한 여성작가들의 다양한 모색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긍정론과 비판론을 각각 일정한 가치를 지닌 신여성 담론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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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송화강ㆍ황량한 만지(蠻地) ㆍ개척된 낙토(樂土) -사진엽서 '송화강'과 만주국의 문화정치학-

저자 : 최현식 ( Choi Hyun-sik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68 (6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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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송화강'을 다룬 사진엽서의 탄생과 전개, 그것이 수행한 문화정치학의 본질과 성격을 탐구한다. 송화강은 동북 만주를 유유히 흘러가며 만주의 곡물 생산과 목재산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는 '공업일본, 농업만주'라는 기치 아래 만주의 개척과 식민화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송화강 일대의 도시, 예컨대 길림과 하얼빈은 만주를 대표하는 자연미와 이국정취, 신문명과 유흥문화의 집산지로 떠올랐다. 일제는 하얼빈과 길림을 '국책여행'의 핵심 공간으로 간주하여, 그곳에 대한 관광(여행)을 낯선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나 이국 정취의 즐김에만 빠지지 않도록 했다. 오히려 제국 일본의 우월함과 세계 팽창을 자신하는 내면의 심상지리를 확산, 심화할 수 있는 식민의 공간으로 규정했다. 『송화강천리』는 그 과정에서 발행된 사진엽서로, 여행 관련 엽서도 있지만, 역시 그것의 중심은 왕도낙토, 오족협화, 복지만리에 대한 프로파간다에 있었다. 본고는 그것을 식민주의와 군사주의의 산물로 보고, 『송화강천리』 엽서세트가 제국 일본의 신민을 포함한 만주국의 남성과 여성, 아동을 '총력전'의 도구로 징발하기 위해 제작, 유통되었음을 밝혔다. 그 과정에서 모든 가치를 일왕의 영원성과 그를 위한 헌신과 죽음에 두는 '전사자 숭배'가 공공연히 행해졌음도 밝혀냈다. 그런 점에서 『송화강천리』를 비롯한 '송화강' 엽서들은 비록 관광의 즐거움을 다뤘을지라도 결국은 죽음의 도구화를 통해 근대천황제를 절대화하는 도구적 매체, 바꿔 말해 '파시즘의 예술화'의 산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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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해방공간에서의 문학과 정치 -「도정」과 「새벽」을 중심으로-

저자 : 진연 , 이해영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20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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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비슷한 주인공과 주제를 다룬 지하련의 「도정」(1946.07)과 전홍준의 「새벽」(1948.04)을 중심으로 해방공간에서의 정치이념과 문학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두 편의 소설은 모두 그 나름의 문학성을 인정받아 해방공간에서 문단의 최고 위상을 자랑하던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문학』에 게재되었지만 발표 당시 사뭇 다른 운명에 처하고 있었다. 지하련의 「도정」은 발표 당시에 좌익문단으로부터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았으나 전홍준의 「새벽」은 당시의 좌익문단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그나마 극소수의 평론도 주로 비판 일색이었다.
정치 논리가 우위인 해방공간에서 문학작품들의 운명 역시 정치와 직결되어 있었다. 소설을 게재한 『문학』을 비롯하여 작품「새벽」에 관한 비평을 게재한 잡지들은 모두 좌익문단의 강력한 영향과 자장 속에 있었으며 당시 좌익문단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던 남로당의 정치이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도정」은 당시 남로당의 정치이념에 상당히 부합되는 작품이다. 반면 「새벽」은 남조선노동당의 정치적 이념과 투쟁목표를 적시적으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표 당시 좌익문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 것이다. 이처럼 「도정」과 「새벽」은 정치의 시대 즉 해방공간이라는 이념 우위의 시대에 문학작품의 운명이 정치에 의해 좌우된 대표적인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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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대항미디어 운동 연구(1) -선언을 통한 창립에서 『실천문학』의 창간에 이르는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이종호 ( Yi Jong 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1-23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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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는 1974년 11월 18일 광화문 거리에서 선언을 통해 창립된 후 1984년 재창립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미디어 활동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다른 지식인집단과 연대하며 그 지향을 대중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이에 본 논문은 자실의 미디어 활동을 선언문의 연쇄, 공연 및 인쇄 미디어의 절합, 『실천문학』의 창간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을 검토하고 그 의의를 고찰해 보았다.
이 시기 자실은 표현의 자유와 반유신을 주장하는 선언문을 계속해서 발표함으로써 조직을 정비하고 회원을 증원하면서 내부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를 통해 자실은 교수ㆍ언론인ㆍ학생 등의 지식인집단과 접속하여 강한 연대감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ㆍ민중과의 연결고리 또한 마련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자실은 '민족문학의 밤'이라는 공연미디어와 『광장에 서서』라는 인쇄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과 문학적 실천을 대중적으로 확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실은 민족ㆍ민중 등으로 수렴되는 문학론을 정비하면서 주요 필진들을 결집하여 향후 실천문학론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졌다. 나아가 다층적 미디어 활동으로 축적된 역량은 무크지 『실천문학』의 창간을 견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실의 미디어 활동은 문인들이 주도하기는 했지만, 유신체제로 인해 존재 기반을 상실했던 문인ㆍ대학교수ㆍ대학생ㆍ언론인 등 다양한 지식인들이 협력하고 연대하며 구축한 '저항전선'이자 새로운 주체성 생성을 지향한 '대항미디어 운동'으로서의 성격과 위상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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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후카사와 카이(深沢夏衣)의 글쓰기 의미 -소설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서-

저자 : 박성주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9-26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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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재일조선인여성작가 후카사와 카이(深沢夏衣, 1943~2014)에 주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녀가 소설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계간 잔소리』에서의 활동과 그녀의 데뷔작 『밤의 아이『에 초점을 맞춰 그녀의 글쓰기 의미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후카사와 카이가 『계간 잔소리』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1970년대는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기였으나, 2세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민족규범'에서 벗어나 일본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된 시기였다. 그녀는 편집위원으로서 다양한 글쓰기 활동을 시도하였으나, 주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쓰고자 한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계간 잔소리』가 폐간된 이후 그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펼치고자 소설을 쓰게 되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쓰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고자 한 그녀의 시도였다. 즉 그녀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펼치고자 한 자유로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녀의 글쓰기 의미는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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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천-김포지역 분구묘와 마한

저자 : 김경화 ( Kim Kyoung Hwa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5-29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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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김포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분구묘가 발견되었다. 이는 이 지역에 일정 규모의 세력을 가진 지배 집단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분구묘가 특히 집중적으로 발견된 지역은 인천 연희동 유적, 김포 운양동, 양촌 유적 등이다. 출토유물을 토대로 본 중심연대가 대략 3세기 전후반임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삼국지』 한조에 등장하는 마한 諸國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삼국지』 한조에는 56개의 소국이 등장한다. 문헌사적 연구성과에 따른다면 인천-김포지역에 해당하는 나라는 '우휴모탁국', '신분고국' 및 '속로불사국' 등이다. 이들은 마한연맹체의 일원으로 중국 군현과 경제적 교류를 통해 해상세력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또한 3세기 낙랑군과 벌인 기리영전투에도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천-김포지역의 정치세력은 “해상”을 매개로 하여 경제적,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형성된 마한의 지역연맹체적 특성을 가진다. 특히 연희동지역은 외부 세력이 한반도 내륙에 들어 오는 길목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대외무역에 종사하려는 서해 연안의 세력이라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김포 운양동 유적에는 오수전, 철경동촉, 낙랑계토기편 등 낙랑계유물과 함께 상당수의 철제무기류가 발견된다. 이는 기리영전투 등의 분쟁에 이 지역 세력들이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인천-김포지역은 군사적 동맹으로 맺어진 지역연맹체로 중국 군현과의 경제적 교섭은 물론 분쟁이 일어났을 때도 함께 행동하였고, 이 때문에 『삼국지』에서 국명을 열거할 때, 나란히 기재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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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요순 정치의 회복, 다산 정약용의 홍범(洪範)론

저자 : 김호 ( Kim 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3-32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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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사망 직전 『상서』에 대한 주석서를 완성하여, 조선후기 정치개혁에 대한 자신의 최종 견해를 제시했다. 고대의 이상 정치로 상징되는 요순통치에 대한 다산의 평가는 한마디로 '현능한 지도자가 부지런히 정무에 힘쓴 결과[有爲]'였다. 다산은 이른바 세속에서 말하는 무위이치(無爲而治)야말로 어리석은 견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현능한 지도자는 반드시 유능한 관리들을 선발하여 관직을 나누어주고 이들이 부지런히 과업을 수행하는지 철저하게 살폈다[考績]. 다산은 「홍범」이 바로 요순정치의 핵심 교훈이라고 정의하고 새롭게 재해석했다. 특히 「홍범」의 9개 범주에 붙은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황극[최고권력]을 중심으로 한 통치행위 전반으로 이해할 것을 제언했다. 오행은 단지 하늘이 내려준 자연의 '재료'에 불과하고 이를 활용[利用]하여 인간의 삶을 평안하게 하면[厚生] 그만이었다. 따라서 정치[八政]는 오직 국가의 세입과 지출에 해당하는 경제 및 재정 정책이 가장 중요했다. 한편, 「홍범」에는 왕과 함께 통치에 참여할 현능한 자들의 자질[三德]이 설명되어 있을뿐더러, 왕이 현능한 자들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스스로 몸가짐을 바로잡는 수신의 항목들[五事]이 기록되어 있었다. 왕의 지위[皇極]가 절대적인 것은 바로 상벌의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인데, 왕은 이 권한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능력있는 신하들에게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합당한 벌을 내려야만 했다[福極]. 왕이 이상의 통치행위를 지성으로 수행한다면 하늘이 감동하여 왕으로 하여금 선정의 기회를 허락할 것이었다. 다산은 조선의 왕들이 「홍범」의 가르침에 따라 현능한 관료를 등용하여[知人]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安民]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고전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經學]을 통해 자신이 주장하는 정치경제의 개혁안[經世論]이 본인의 억측이 아닌 '고대의 지혜[周禮]'를 밝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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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미완의 싱크탱크 혹은 이용희의 국토통일원 시절(1976~1979) -1970년대 후반 국토통일원의 연구 사업을 중심으로-

저자 : 장세진 ( Chang Seiji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9-371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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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구의 근대 국제정치학을 한국에 제도적으로 안착시킨 창설자였던 이용희(李用熙, 1917~1997)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제 6대 국토통일원 장관으로서 재임한 시기(1976~1979)를 살펴보았다. 특히, 그가 국토통일원의 수장으로서 주도한 연구 사업의 특징을 그 한계부터 의의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시도는 구체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던 '관료-이용희'의 실천을 밝힌다는 점에서 그간의 공백을 메우는 전기적 연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가 몸담았던 국토통일원이라는 기관의 위상과 사업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이 글은 박정희 정권 말기의 통일 정책을 배경으로 한 냉전 제도사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띤다. 두 가지 접근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사실은 분단/통일의 문제를 대학에 소속된 학자로서 연구, 교육하는 일과 현실정치 한 가운데 위치한 정책 입안자가 접근하는 방식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자-이용희'와 '국토통일원 장관-이용희' 사이에 놓인 예기된 거리 내지 간극을 단지 확인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 글은 자신의 비판적 '앎'을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 기입하거나 실정화된 제도 속에서 실천하려 할 때 발생하는 불편한 균열과 긴장의 순간들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이 글은 이용희의 재임 시절 각종 제도 개선과 연구를 통해 새롭게 획득된 현실의 변화와 생산적 순간 또한 놓치지 않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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