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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의 문학과 정치 -「도정」과 「새벽」을 중심으로-

韩国解放空间的文学与政治 -以《道程》和《拂晓》为中心-

진연 , 이해영
  •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한국학연구 6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5월
  • : 169-200(32pages)
한국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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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해방공간에서 좌익문단에 대한 남로당의 절대적 우위
3. 자기비판 및 당의 건설 요구에 부합되는 「도정」
4. 참혹한 현실 및 투쟁 요구에 어긋나는 「새벽」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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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비슷한 주인공과 주제를 다룬 지하련의 「도정」(1946.07)과 전홍준의 「새벽」(1948.04)을 중심으로 해방공간에서의 정치이념과 문학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두 편의 소설은 모두 그 나름의 문학성을 인정받아 해방공간에서 문단의 최고 위상을 자랑하던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문학』에 게재되었지만 발표 당시 사뭇 다른 운명에 처하고 있었다. 지하련의 「도정」은 발표 당시에 좌익문단으로부터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았으나 전홍준의 「새벽」은 당시의 좌익문단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그나마 극소수의 평론도 주로 비판 일색이었다.
정치 논리가 우위인 해방공간에서 문학작품들의 운명 역시 정치와 직결되어 있었다. 소설을 게재한 『문학』을 비롯하여 작품「새벽」에 관한 비평을 게재한 잡지들은 모두 좌익문단의 강력한 영향과 자장 속에 있었으며 당시 좌익문단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던 남로당의 정치이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도정」은 당시 남로당의 정치이념에 상당히 부합되는 작품이다. 반면 「새벽」은 남조선노동당의 정치적 이념과 투쟁목표를 적시적으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표 당시 좌익문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 것이다. 이처럼 「도정」과 「새벽」은 정치의 시대 즉 해방공간이라는 이념 우위의 시대에 문학작품의 운명이 정치에 의해 좌우된 대표적인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本文旨在以池河连的《道程》与全洪俊的《拂晓》为中心、探究韩国解放期政治与文学的关联性。这两部作品都刊登在左翼领导的朝鲜文学家同盟机关杂志《文学》上、在主人公设置和主题方面存在相似性、但《道程》在当时广受好评、而《拂晓》在当时不仅没有受到太多关注、仅有的-些文学评论也以负面为主。
政治的时代中、作品和作家的命运往往也被政治支配。结合当时南朝鲜劳动党的相关资料、《道程》的成功可以说是必然、因为其情节设定高度符合南劳党的政治主张; 而全洪俊的《拂晓》与当时南劳党的政治理念不够贴合、所以在当时主要受到左翼文坛的批判。
政治的时代中、是否符合要求、决定了作品和作家命运的成败。从这种角度出发、《道程》和《拂晓》可被视为韩国解放空间这-特殊时期被政治左右命运的实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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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469X
  • : 2734-035X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9-2022
  • :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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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권0호(2022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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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27~1637년 조선의 遼民 대책과 토벌론

저자 : 우경섭 ( 禹景燮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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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이후 청천강 이북에서 벌어진 東江鎭과 遼民의 작폐는 호란 이전보다 한층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毛文龍은 가도 인근 해안을 넘어 내륙까지 진출하여 군사를 주둔시켰고, 요민들은 피난한 조선인들의 땅을 차지하고 눌러앉으려 하였다. 또한 그들은 조선의 관리와 군인들을 공격하고 사신 일행까지 습격하는 등 조선의 공권력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모문룡은 조선인들까지 동강진에 편입함으로써, 청천강 이북 일대를 자신의 통치 아래 두고자 하였다.
1629년 모문룡이 요동경략 袁崇煥에 의해 처형된 뒤, 명 조정은 가도의 일부 병력 및 요민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동강진의 내분이 지속되면서 그동안 요민들에게 의식을 공급하고 작폐를 단속하던 최소한의 기능조차 마비되자,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요민들은 동강진의 통제에서 벗어나 내륙을 횡행하며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요민의 登州 송환을 기본 방침으로 고수하던 조선 조정에서는 두 가지 방책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동강진과 요민을 무력으로 제어하려는 토벌론과 청천강 이북의 통치를 잠시 유보하자는 청북포기론이었다. 특히 1630년 劉興治의 반란 이후 요민을 대하는 조선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조선 조정은 요민들이 명을 배신하고 후금과 내통할 가능성을 명분으로 삼아, 가도에 대한 식량 지원을 중단하고 군사를 보내 가도를 공격했다.
그러나 명 조정은 여전히 동강진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했고, 요민의 작폐는 계속되었다. 또한 후금은 동강진의 내분을 틈타 가도를 공격하며 재침을 위협했다. 이러한 상황 아래 조선은 청북의 방어체제를 완비하지 못한 채 병자호란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1637년 청에 항복한 직후 수군을 파견해 가도 공격에 동참하여 요민을 토벌하고, 남한산성에서 맺은 약조에 따라 요민을 수색하여 청으로 송환하기 시작했다. 이제 명나라 백성으로 조선이 보살펴야 할 요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체포하여 북송해야 할 청의 백성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1627年丁卯胡乱以后, 在清川江以北发生的东江镇和辽民的扰民事件比起胡乱之前更具组织性。毛文龙超出皮岛临近海岸地区的范围进发到内陆, 并驻军, 辽民有意在朝鲜避难民的家园里安家。再加上, 他们还攻击朝鲜的官吏和军人, 袭击朝鲜使团, 公然向朝鲜政府的权威挑战。毛文龙更是把朝鲜人也编入到东江镇, 企图把清川江以北地区置于自己的统治之下。
1629年毛文龙被辽东经略袁崇焕处死, 明朝撤走了皮岛的部分兵力以及辽民。可是毛文龙的后继者之间的内部纷争不断, 东江镇再也起不了曾向辽民提供衣食和防止其作乱的起码的作用, 陷入困境的辽民脱离东江镇的控制, 为了自谋生路横行于内陆。
朝鲜朝廷原来的基本方针是把辽民送还到明朝的邓州。在此情况之下, 朝鲜朝廷开始考虑两种对策, 即主张以武力制服东江镇以及辽民的讨伐论和主张暂停对清川江以北地区管理的清北放弃论。尤其是1630年刘兴治的叛乱之后, 朝鲜王朝对待东江镇和辽民的态度有了明显的变化。朝鲜朝廷以辽民有可能背判明朝而内通后金为名分, 中断了对皮岛的粮食支援, 还派军攻打了皮岛。
然而, 明朝依然重视东江镇的战略价值, 辽民的扰民事件依旧。而且后金趁东江镇内讧之机攻打皮岛, 发出再次入侵朝鲜的威胁。在此情况之下, 朝鲜政府事实上放置不管清川江以北的状态之下遭到丙子胡乱。1637年向清朝投降之后, 朝鲜派出水军与后金一同攻打皮岛, 讨伐了辽民。还根据丁丑和约搜捕辽民向清朝送还。辽民不再是做为明朝的子民朝鲜应该照顾的对象, 而是应该搜捕并向清朝送还的清朝的子民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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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후반~효종 초반 대외전략상의 위기에 대한 검토

저자 : 김태훈 ( Kim Taehoo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6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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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병자호란 이후 새로운 대외 전략이 모색되고, 그 과정에서 창출된 외교적 논리·명분이었던 備倭論과 朝·淸和親論이, 청의 입관 및 효종의 즉위 등 대내외적 환경 변화를 계기로 그 효용성을 잃고 폐기의 수순을 밟게 되는 과정을 인조 후반~효종 초반의 대외전략상 위기라는 관점에서 검토한 연구이다.
인조대 후반 대청 왜정 보고를 통해 전개된 비왜론은 조·청 간 전략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졌고, 청·일 간 연계를 차단하면서 대일정책상 독자성을 유지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청의 입관 이후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완화된 상황, 효종 즉위 이후 반청적 인사의 기용에 대한 청의 견제 등과 맞물리면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조·청화친론은 병자호란에서 패전하여 청에 稱臣하게 된 사실을 일본 측에 은폐하는 전략이었다. 그 한계가 매우 분명하고 불완전한 대응책이었던 조·청화친론은 청의 입관 이후 조선에 대한 견제가 완화되면서 사실상 폐기 처분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시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던 이러한 외교 전략의 용도 폐기는, 이후 새로운 대응 전략이 출현하지 않음으로써 대외전략상 위기 국면으로 이어졌다.


This is a study that new external strategy was sought after the Manchu War of 1636, and its usefulness in the wake of changes in the internal and external environment such as the diplomatic logic and justification created in the process, such as 備倭論 and 朝·淸和親論, the entry of the Qing Dynasty and the enthronement of Hyojong. And this thesis examines the process of losing and undergoing the process of abolition from the point of view of a crisis in external strategy between the late Injo and early Hyojong.
'Diplomatic justification that prepare for the provocation of Japan'(備倭論) was embodied in reporting Japan's movements to the Qing Dynasty. The Joseon government was able to form a strategic consensus between Joseon and Qing by delivering the message of threatening Japan's move and maintain independence in policy toward Japan while blocking the link between China and Japan. However, the limitations were revealed as the Qing dynasty took over Beijing, and it was intertwined with the situation in which wariness toward Japan was eased, and the Qing check against the use of anti-Qing personnel after Hyojong's accession.
'Hiding the real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Qing'(朝·淸和親論) was a strategy to conceal from the Japanese side the fact that it had surrendered to the Qing Dynasty after being defeated in the Manchu War of 1636. It was a very clear and incomplete countermeasure, which was practically discarded as the checks on Joseon were eased after Establishment of “Mainland” Qing.
The abandonment of the use of this diplomatic strategy, which had achieved certain results in the period after the Manchu War of 1636, led to a crisis in foreign strategy as no new countermeasures emerged after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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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찬출(撰出)된 악한: 정명수와 『인조실록』의 개찬

저자 : 조일수 ( Cho Ilso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9-9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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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후금에 귀의하여 끝내 조선에 파견된 칙사의 지위까지 오른 정명수는 아마도 한국사상 최악의 매국노이자 악한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적개심에 가득 차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끝까지 괴롭혔다고 기억되는 정명수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과도할 지라도 원전(原典)을 찾아보면 실록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많은 자료에 근거해 있다. 이 글에서는 인조대 『승정원일기』를 효종의 시대에 편찬된 『인조실록』과 대비해 읽는 방법을 이용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명수의 모습이 효종대의 정치적 의제 하에 만들어졌고 오늘날까지 재생산 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사료적 가치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실록을 역사적 사실들을 명백하게 나타낸다는 식으로 과도하게 이상화(理想化) 하거나 『승정원일기』가 후대에 개수되었으니 개수 당시의 정치적 의제를 반영한다는 주장들의 문제를 검토하여 이에 대한 반론을 내놓는다.


Chŏng Myŏngsu, a Korean lowborn who submitted to the Later Jin (later the Qing empire) and arose to the position of an imperial envoy sent to Korea, is remembered to this day as perhaps the worst traitor and villain in Korean history. While certainly excessive and unrealistic, his image as someone who persistently tormented his country of birth is still rooted in many source materials dating from the Chosŏn period, including the Veritable Records of the Chosŏn Dynasty. This article comparatively analyzes the Journal of the Royal Secretariat of the Injo period vis-a-vis the Veritable Records to argue that the image of Chŏng Myŏngsu has been fabricated in line with the political agenda of the subsequent Hyojong period and reproduced to this day. Lastly, this article clarifies the author's position on the recent debates surrounding the relevant source materials. Some argue that the Veritable Records remain faithful to all historical facts. Others have insisted that the Journal of Royal Secretariat reflects the political agendas of a later period since it has been partially restored due to damages. This article concludes with the author's rebuttals against such arg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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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유.엔. 마주르(Ю.Н. Мазур)의 생애와 한국어의 품사 체계

저자 : 칼리나 ( Kalina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12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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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니콜라예비치 마주르(Юрий Николаевич Мазур, 1924~1998)는 러시아 최고의 한국어학자 중의 한 명으로 평가된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모스크바 동양학연구소 극동학부 한국학과에서 한국어를 전공하였고 1953년에는 동 연구소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그는 모스크바 동양학연구소, 제1 모스크바 국립외국어대학교를 거쳐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동양언어연구소에 임용된 후 남은 인생을 이 연구소에서 보냈다. 마주르는 한국어와 관련해서 100편이 넘는 업적을 남겼다.
이 논문의 목적은 마주르의 생애와 연구 업적을 소개하고 그의 한국어 품사 체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본고는 러시아어로 집필된 마주르의 「현대 한국어 문법 개요(Краткий очерк грамматики современного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1954), 『한국어(Корейский язык)』(1960), 『한국어 문법. 형태론. 조어론(Грамматика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 Морфология. Словообразование)』(2001)을 대상으로 하였다. 러시아인 한국어학자 마주르는 러시아어 문법을 기반으로 한국어의 단어를 자립성 유무에 따라 품사와 보조어로 나누어 설명했다.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등과 같은 자립성이 있는 것들은 품사에 포함시키고 후치사, 접속사, 소사, 의존명사 등과 같은 보조적인 의미·기능을 나타내는 것들은 보조어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양상어의 설정, 러시아어의 전치사에 대응되는 후치사의 설정, 소사의 설정 등 러시아어의 문법 개념들을 한국어에 적용시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 조선어문법의 영향을 받아 관형사를 설정하였다. 마주르는 교착어인 한국어의 품사 체계를 러시아어의 품사 분류 기준으로 분류하여 모호한 면도 있지만 러시아인 한국어 학습자가 한국어를 이해하고 익히기에 최상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Yuri Nikolaevich Mazur(Юрий Николаевич Мазур, 1924~1998) is considered one of the best Korean language scholars of Russia. From 1945 to 1950 he majored in Korean at the Department of Korean Studies in Far Eastern Faculty of Moscow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After he completed the graduate course of the institute in 1953, he worked at Moscow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and the 1st Moscow State University of Foreign Languages, then he was employed by Institute of Oriental Languages of Moscow State University, where he spent the rest of his life. Mazur left over 100 works related to the Korean language.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give a brief account of the Mazur's life and his research achievements of Mazur, in the meantime, the classification of word class of Korean will also be analyzed in this paper. This paper is aimed at Краткий очерк грамматики современного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 (1954), Корейский язык(1960), Грамматика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 Морфология. Словообразование(2001) written in Russian by Mazur. As a Russian Korean language scholar, Mazur divided Korean words into word class and syntactic words based on Russian grammar. Those which can be used independently such as nouns, pronouns, numerals, verbs, adjectives were included in the word class, and those showing auxiliary meanings and functions such as postpositions, conjunctions, particles, auxiliary nouns were included in the syntactic words. In addition, it was confirmed that Russian grammatical concepts such as setting of modal words, setting of postpositions corresponding to prepositions in Russian, and setting of particles were applied to Korean. He also set the attributive modifiers by the influence of North Korean grammar. Although, it is ambiguous that Mazur classified the word class of Korean according to the Russian word class classification system, it must have been the best way for Russian Korean learners to understand and learn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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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어 감각형용사의 어근 파생 접미사와 어근 형성

저자 : 홍석준 ( Hong Seok-ju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9-17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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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서 고유어 감각형용사는 대부분 '복합어근 + -하다'의 구조를 띤다. 감각형용사의 어근을 형성하는 파생 접미사는 아직까지 그 목록이 정리되지 않았고 어근 형성 방법도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감각형용사를 시각, 미각, 촉각, 청각형용사로 구분하여 각 어휘장에서 분석되는 어근 파생 접미사 목록과 그 접미사에 의해 형성된 복합어근을 제시했다. 그리고 감각형용사 어휘장에서 파악되는 어근 형성 방법으로 파생, 합성, 내적 변화, 어간의 어근화, 유추 등이 있음을 밝혔다. 어근 파생 접미사는 시각형용사에 해당하는 색채형용사에서 24개 유형, 명암형용사에서 12개, 크기형용사에서 27개 유형, 모양형용사에서 16개 유형이 분석되었고, 미각형용사에서 13개 유형, 촉각형용사에서 33개 유형, 청각 형용사에서 3개가 확인되었다. 어근의 파생은 어간에 어근 파생 접미사가 결합(검- + -(으)ㅅ → 거뭇)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고, 합성은 동일 어근을 반복(거뭇거뭇)하거나 다른 어근을 결합(새콤달콤)시키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내적 변화에는 어근의 자음과 모음을 교체시키는 방법(불긋:볼긋:뿔긋)과 어근의 음절수를 확대(질컥:질커덕)하거나 축소(거머무트름:거무트름)시키는 방법이 있다. 어간의 어근화는 형용사나 동사의 어간이 형태 변화 없이 어근으로서 '-하다'와 결합하는 것(둥글다:둥글하다)이고, 유추는 기존 어근들의 형태와 닮은 꼴을 취함으로써 그것들과 비슷한 의미를 띠는 방법(뜨뜻무레 cf. 노르무레, 시그무레)이다.


In Korean, most sensory adjectives in native words have the structure of 'complex root + -hada'. Derivative suffixes that form the root of sensory adjectives have not yet been listed, and the method of forming the root has not been clarified in detail. In this paper, sensory adjectives are classified into sight, taste(including olfactory), tactile, and auditory adjectives, and a list of root derivational suffixes analyzed in each lexicon and complex roots formed by the suffixes are presented. And it was revealed that there are derivation, compounding, internal change, rooting of stem, analogy. In sight adjectives, root derivational suffixes were analyzed 24 in color adjectives, 12 in light and dark adjectives, 27 in size adjectives, and 16 in shape adjectives. For root derivational suffixes, 13 were analyzed in taste adjectives, 33 in tactile adjectives, and 3 in auditory adjectives. The most common method of derivation of a root is that the root derivational suffix is combined to the stem(geom- + -(eu)s → geomus), and commonly the compounding is composed of repeating the same root(geomus-geomus) or combining different roots(saekom-dalkom). There are two methods for internal change: a method of replacing the consonants and vowels of a root root(bulgeus:bolgeus:ppeulgeus), and a method of increasing the number of syllables at the root(jilkeog:jilkeodeog) or reducing (geomeomuteureum:geomuteureum). Rooting of the stem of adjective or verb is combining with '-hada' as a root without changing the form(dunggeul:dunggeulhada). The analogy is a method of taking a form that resembles the form of the existing roots, thereby giving a similar meaning to them(tteutteusmure cf. noreumure, sigeum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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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해조신문』의 「본국력사」 고찰

저자 : 반재유 ( Ban Jae-yu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1-19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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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신문』은 1908년 2월 26일부터 5월 26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海參崴, Vladivostok)에서 발행된 한인신문이다. 당시 『황성신문』의 주필로서 인지도가 높았던 장지연을 창간초기부터 주필로 영입하였으며, 러시아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수많은 발매소를 설치하여 신문을 보급한 사실을 통해, 단순히 러시아 지역 내 한인교포를 위한 신문이 아닌 국내여론의 형성과 국권회복의 일익을 담당하던 매체로서 중요한 사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해조신문』에 실린 개별 연재물들은 『해조신문』의 성향이나 주필의 편찬의식 등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 창간 초기부터 연재된 「본국력사」는 국민정신의 배양 및 민족교육을 위해 상고사 연재를 시도했다는 점과 함께, 개신유학자의 상고사 인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본국력사」는 저자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 해당 연재물에 대한 집필 배경이나 의미 등을 논의하는데 어려움이 존재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본국력사」의 연재 시기와 출전, 내용상의 특징 등을 근거로 장지연을 저자로 추정하고, 그가 상고사의 풍속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던 문답식표기 등 독특한 서술방식들을 검토하며 『해조신문』 속 상고사 연재의 의미를 논의해 보았다.
「본국력사」의 연재 속에 담으려 했던 상고사의 풍속과 이를 전달하기 위한 서술방식 등은 당대 일제의 국내 신문 규제에 대항하여 민지의 계발 및 민족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려 했던 장지연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기획이며, 『해조신문』의 성격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 「본국력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The Haejo Sinmun was a Korean newspaper published in Vladivostok, Russia, from February 26 to May 26, 1908. It recruited Jang Ji-yeon as the main writer from the beginning of its foundation, who was well-known as the main writer of the Hwangseong Sinmun. The Haejo Sinmun was not just a newspaper for Korean residents in Russia but an important media for the formation of domestic public opinion and the restoration of national sovereignty.
The individual serials in The Haejo Sinmun showed the tendency of the newspaper and its main writer's intention. Among its serials, Bongungnyeoksa, which was serialized since its inception, is noteworthy in that not only it attempted to serialize Korean ancient history in order to cultivate the national spirit and raise national consciousness, but also it is possible to examine how protestant Confucianists recognize Korean ancient history. However, since Bongungnyeoksa did not specify its author, there is difficulty in discussing its background or meaning. Therefore, estimating Jang Ji-yeon as the author based on the timing, reference, and content characteristics of Bongungnyeoksa, this paper reviews the unique narrative methods such as catechetical prose that he employed to effectively convey the customs of the Korean ancient history, and consequently discusses the meaning of serializing Korean ancient history in The Haejo Sinmun.
The customs of the Korean ancient history that was contained in Bongungnyeoksa and the narrative methods to convey them are designs, through which we can see Jang Ji-yeon's intention to enhance the wisdom of Koreans and awaken their national consciousness against regulating newspapers in Korea by Japanese Empire. This is why we should pay attention to Bongungnyeoksa as an important historical material, from which we can see the nature of the Haejo Si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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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신생활』의 역사적 의미 재론 -잡지사의 사회적 실천을 중심으로-

저자 : 정윤성 ( Jung Yoonsung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7-22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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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 조선의 최초의 사회주의 잡지를 발간하고, 최초의 필화 사건의 당사자로 알려진 신생활사의 여러 대외적 활동에 주목했다. 사학계와 국문학계의 선행연구들은 사회주의 지식과 관련한 잡지의 번역·수용 양상과 그것의 당대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신생활사의 주요 필진들은 사회주의 담론을 보급하면서도 동시에 사회 현안에 즉각적으로 개입했다. 예컨대 신생활사는 1922년의 '신석현 학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내 언론·사회단체들과 제휴하여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했고, 잡지사의 주도적인 움직임은 기미년의 민족적 궐기를 환기할 만큼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생활사는 체육대회, 강연회를 개최하며 지식과 담론의 차원과는 다른 경로로 민중과 접촉했고, 강력한 인쇄 역량을 기반으로 여타 사회운동단체와 연계된다. 이른바 '신생활사 필화 사건' 당시 잡지사를 둘러싼 전방위적 행정·사법 조치는 사회주의 지식체계의 유통지이자 '활동기지'로서의 신생활사의 면모를 방증한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New Life, which is known as the first “socialist magazine” of colonial Korea and the first magazine to be indicted for writing. Previous studies have been conducted with a focus on the translation of the socialist ideology and its contemporary meaning. Proliferating socialist ideas, key members of New Life also responded to social issues. In the wake of the so-called Shin Seok-hyun(新潟県, Niiagata in Japanese) massacre in 1922, New Life planned collective actions by forging a relationship with media and social groups both in Colonial Korea and Imperial Japan. The magazine's attempt to criticize Japanese colonial rule was considered formidable. Furthermore, The New Life did not only remain in the domain of knowledge and discourse, but also sought to have a direct contact with the public. Sports competitions and public lectureswere carried out as means to directly appeal to the people. Based on its strong printing capabilities along with a wide network of media, regions, and religions, The New Life could function as a pivotal base for activists. Indiscriminative judicial measures aimed at magazines prove its significance in the society. By reviewing The New Life's social participation, it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sphere of socialism in the early 1920's of Colonial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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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용운·유산과 전통·애국주의

저자 : 최현식 ( Choi Hyun-sik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7-26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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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80년대 후반 북한 문단에서 극적으로 복권되고 새롭게 가치화된 한용운 문학의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된다. 당시까지 한용운 문학은 부르주아지의 문학형식과 불교 중심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 아래 북한문단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김정일이 주도한 주체문학에 의해 애국주의와 인민주의에 대한 헌신, 항일혁명운동의 적극적 실천을 새롭게 평가받았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한용운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 전제는 한용운 문학이 김일성의 항일혁명운동과 그 문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진보적 전통과 유산에 해당된다는 당문학(주체문예)의 결정이었다. 본고는 이런 정황에 기반한 한용운 시의 복권과 재평가를 첫째, 북한 인민들을 독자대중으로 설정하는 문학잡지와 현대시선집, 문학신문의 논문과 기사, 둘째, 『조선문학사』로 대표되는 학계의 공식 입장과 평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용운 문학은 김일성의 혁명운동과 항일문학을 절대화하기 위해 조국=임에 대한 애국심과 인민에 대한 사랑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문단이 진보적 이념과 애국주의를 더욱 입체화하기 위해 문학적 형식과 수사법 등에 대해서도 자세한 검토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의 한계로 지적되던 불교적 사유와 상상력도 주체철학과의 연관 속에서 새롭게 평가되어 그 부정적 가치를 거의 넘어서게 되었다. 현재 한용운의 작품은 북한판 조선문학사에서 확고한 지위와 탁월한 평가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그의 독립 운동과 작품 활동이 문학사를 넘어 김정일의 『주체문학론』과 북한의 필독서이자 유훈통치의 교서인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등재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This study is written to examine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Han Yong-woon's literature which was dramatically restored and newly valuated in the literary circles of North Korea in the late 1980's. Until then, Han Yong-woon's literature was rarely mentioned in the literary world of North Korea under the criticism that it adhered to the literary patterns of the bourgeoisie and contents oriented to Buddhism. By Juche Literature led by Kim Jong-il in the mid-1980's, however, he was newly evaluated for his patriotism, devotion to populism, and active practice of anti-Japanese revolutionary movement. Of course, this change stemmed from a new perception of Han Yong-woon's literature. However, the definite premise was the decision of the party literature (Juche Literature) that Han Yong-woon's literature corresponded to the progressive tradition and legacy that could support Kim Il-sung's anti-Japanese revolutionary movement and the literature. This study investigates the reinstatement and reevaluation of Han Yong-un's poetry grounded on the situations focusing on first, literary magazines, contemporary collections of poems, and theses and articles contained in literary newspapers having North Korean people as their readers and second, the official position and evaluation of academic circles represented by 『Chosun History of Literature』. According to the findings, Han Yong-woon's literature was appreciated highly in terms of love towards the nation (sweetheart) and affection towards the people as it could be used to make Kim Il-sung's revolutionary movement and anti-Japanese literature absolute. More importantly, however, to make progressive ideology and patriotism even more noticeable, the literary circles of North Korea did conduct a precise review on it regarding literary forms and rhetoric, too. In addition, Buddhist thinking and imagination which had been pointed out as his limitations came to be newly evaluated in connection with Juche Philosophy, which made it get over the negative value nearly. Currently, Han Yong-woon's works are considered to have risen to a solid status and excellent evaluation in terms of Chosun history of literature in North Korea. It is because his independence movement and work activities went beyond literary history and became listed in Kim Jong-il's 『Juche Theory of Literature』 and Kim Il-sung's memoir, 『Along with the Century』, one of the must-read books in North Korea and a textbook about the spirit of Kim Il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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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칸트와 함께 만해를 -『님의 침묵』의 자유의 이념과 사상 번역의 흔적-

저자 : 강동호 ( Kang Dong-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5-30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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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님의 침묵』에서 구현되는 '님'에 대한 '사랑'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자유'에 관한 사유를 규명하는 데 있어 한용운과 서구 근대철학과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밝히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만해와 칸트의 만남이다. 칸트의 철학과 더불어 만해의 시를 읽는 작업의 정당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서 마련될 수 있다. 한용운의 주요 텍스트들에는 단편적으로나마 칸트 철학에 대한 앎을 암시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그러한 흔적이 중요한 이유는 칸트의 도덕 철학에서 피력되는 자유에 대한 논의와 『님의 침묵』이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님의 침묵』에서 발견되는 만해와 칸트 사이의 사상적 유사성과 차이는 중요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자유와 법칙의 일치라는 절대적 원리를 추구하지만, 그것의 구체적 실현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만해는 칸트와는 다른 사유의 경로를 택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님'이라는 시적 표상으로 전개되는 한용운의 세계관이 서구적 근대성과 전통적 사유가 갈등하고 교차하는 과정 속에서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해와 칸트 사이의 이러한 단순하지 않는 연결 고리에 집중할 때, 우리는 전통과 근대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 속에서 온전히 의미화 될 수 없는 『님의 침묵』의 독특하고도 이중적 성격에 대해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vestigate the philosophy of 'freedom' in “The Silence of My Beloved” and to reveal the philosophical connection between Han Yong-un and modern philosophy. In this respect, the focus of this article is to illuminate the relationship between Manhae and Kant. It is possible to read Manhae along with Kant's philosophy for the following reasons. Kant's influence can be found throughout Han Yong-un's texts. This is important because Kant's idea on freedom in his moral philosophy and “the Silence of My Beloved” seem to share a similar philosophical vision.
In “The Silence of My Beloved”, there are traces of Manhae's confrontation with the modern ideology of freedom established by Kant. Although it pursues the absolute principle of unity of freedom and law, Manhae takes a different path of thought from Kant. The difference between Kant and Manhae is significant so that confirms the philosophy of Manhae had been established on the ambiguity formulated by the confliction between modernity and tradition. “The Silence of My Beloved” has a unique and ambiguous aspects which cannot be fully understood in terms of dichotomous perspective on modernity a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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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냉전기 북한 지식인의 아시아 인식 -서만일의 『인도기행』(1957)을 중심으로-

저자 : 고자연 ( Ko Ja-yeo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09-33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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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50년대 중후반의 북한 기행문들을 바탕으로 당시 아시아 지식인들의 문화교류 양상을 파악하고, 그들의 아시아 인식을 규명하며, 그들이 구성해나간 문화교통을 아시아적 지평에서 맥락화하여 냉전 아시아의 실제적 맥락을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동안 북한 문학 연구에서도 기행문, 특히 아시아 기행문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실정으로, 이에 1950년대 중후반 북한의 아시아 기행문들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본고는 그 첫 번째 연구에 해당하며, 주 텍스트는 서만일의 『인도기행』이다.
서만일의 『인도기행』은 1950년대 중반에 본격화되기 시작한 '아시아 연대'의 주요 행사 중 하나인 '아세아 작가대회'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텍스트이다. 또한, 서만일은 조선작가동맹 산하 외국문학분과위원회 위원장,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 조선-인도 문화협회부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희곡·시·동시·평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창작했으며, 북한의 1세대 소련유학파 출신으로 러시아어에 능통하여 번역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중요한 작가이다. 그러나 1959년 숙청 이후 복권되지 못했고,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는데, 본고는 서만일을 재조명하는 연구이기도 하다.
본고는 『인도기행』을 중심으로 다음의 내용들을 고찰했다. 먼저, 그간 제대로 연구된 바 없는 '아세아 작가대회'를 정리했다. '아세아 작가대회'는 전후 최초 아시아 작가대회로서 반둥회의 이후 아시아 연대를 위한 실질적인 실천의 첫 행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다음으로 『인도기행』은 북한에서 처음 발표된 '자본주의 방문기'였던 만큼 동시기의 다른 북한 기행문들과 그 여행 경로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본고는 사회주의 진영(북한, 중국)에서 자본주의 진영(버마, 인도)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냉전의 횡단'이라는 시각으로 고찰하였다. 이어 서만일의 눈에 비친 인도를 살펴보며 그의 인도 인식과 그에 따른 아시아 인식을 살펴보았다. 그는 인도를 여행한 다른 외국인들과는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cultural exchange patterns of Asian intellectuals at the time based on the North Korean travelogues in the mid to late 1950s, to clarify their perceptions of Asia, and to contextualize the cultural communication they constructed on the Asian new prospect. In addition, it will be possible to elucidate the practical context of Cold War Asia. In the meantime, travelogues, especially Asian travelogues, have received little attention in North Korean literature research and have not been properly identified. Therefore, this study was intended to examine North Korean travelogues in Asia in the mid to late 1950s. This paper corresponds to the first study, and the main text is Seo Man-il's Travel to India.
Seo Man-il's Travel to India is an important text in that it deals with the 'Asian Writers' Convention, one of the major events of the 'Asian Solidarity' that began in earnest in the mid-1950s. In addition, Seo Man-il has served as chairman of the Foreign Literature Subcommittee under the Joseon Writers' League, vice-chairman of the Chosun(North Korea) Writers' League, and vice-chairman of the Chosun-Indian Cultural Association. Seo Man-il served as chairman of the Foreign Literature Subcommittee under the Chosun Writers' Alliance, vice chairman of the Joseon-India Culture Association, and was an important writer in North Korea in the 1950s, creating works of various genres such as plays, poems, children's poems, and reviews. And because he was one of the first students to study abroad in the Soviet Union from North Korea, so was fluent in Russian and active as a translator. However, after the purge in 1959, it was not reinstated, and it was not studied properly.
Through Travel to India, the following contents were considered. First, the 'Asia Writers Contest', which has not been studied properly, has been summarized. Next, Travel to India was North Korea's first “visit to capitalist country,” so the travel route was inevitably different from the existing North Korean travelogues. In this study, the process of entering the capitalist camp (Burma, India) from the socialist camp (North Korea, China) was considered from the perspective of 'traversing the Cold War'. Then, looking at India reflected in Seo Man-il's eyes, we investigated his perception of India and his perception of Asia. It is characteristic that he showed a different perspective from other foreigners who traveled to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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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두에 대한 북한 학자들의 개념과 인식 -홍기문, 김영황, 류렬, 오희복을 중심으로-

저자 : 문현수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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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이두의 개념이 학자들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도 관찰되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북한의 대표적인 이두 연구서에서 이두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고찰해 보고 그 결과를 남한의 국어학계의 견해와 비교해 보았다.
북한의 이두에 대한 개념은 홍기문(1957)에서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는 이두를 조선어의 문법 구조에 따라 개편된 조선 한문을 독송한 결과를 기사(記寫)하는 데서 기원하고 발전한 서사어로 정의한다. 김영황(1978)은 홍기문(1957)의 이두 개념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였다. 그는 고유명사 표기를 '이두식 표기'로 지칭하며 이두의 논의 범주로 끌어들였으며, 이두음을 이두식 표기를 이두식으로 읽은 음으로 새롭게 정의하였다. 류렬(1983)에 이르러서는 고유명사 표기에 쓰인 글자들도 이두자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두자를 이두의 필수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두자는 중국의 한자와 다른 우리만의 형태, 소리, 뜻을 갖는 우리의 글자로서, 여기에는 한국 고유 한자처럼 새로 만들어낸 글자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 외형상 한자와 동일하더라도 그 소리와 뜻이 한자 본래의 소리와 뜻과 달라지면 그 글자를 모두 이두자로 보게 되었다. 이두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오희복(1999)에서도 관찰된다.
이에 반해 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이두자를 이와 같이 정의하지 않는다. 박성종(2016)처럼 이두자를 이두토 표기에 쓰인 글자로 한정하거나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는 이두자로 보는 새로 만든 글자를 한국 고유한자로서 따로 다루고 있다. 더욱이 이숭녕(1955) 이후로 어휘 표기법을 문장 표기법과 구별하는 경향이 강하였기에 고유명사 표기에 쓰이는 글자를 이두자로 보지 않는다.
또한 구결에 대한 개념과 인식도 남과 북의 학계는 차이를 보인다. 남한의 국어학계에서는 석독구결의 존재로 인해 구결을 우리말 문장 표기법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의 조선어학계에서는 음독구결만을 구결로 보아 구결을 우리말 문장 표기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자를 차용하여 우리말 문장을 표기하는 표기법을 지칭하는 이두의 하위 유형에 구결을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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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헝가리 투란주의자의 한국 인식 -버라토시의 『새벽의 나라 한국』(1929)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미 ( Lee Yeong-mi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7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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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토시(Baráthosi Balogh Benedek, 1870~1945)는 20세기 전반 부다페스트에서 사와 민족지학자, 저술가로 활동한 헝가리인이다. 헝가리에서 그는 19세기 후반에 발아하여 20세기 전반까지 유행한 투란주의(Turanism)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헝가리인, 머저르족(Magyars)의 친족을 찾기 위하여 주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매달렸고, 한국과 관련해서는 1907년과 1921년 두 번의 방문을 바탕으로 『새벽의 나라 한국(Korea, a ajnalpir országa)』(1929)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헝가리인이 한국을 단독으로 다룬 최초의 저술이지만, 인쇄소에서 극소량 출판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헝가리에서조차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본 논문은 버라토시의 생애를 소개하고 그의 책 『새벽의 나라 한국』을 분석하였다. 첫 번째 장에서는 그가 투란주의자가 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헝가리 민족의 동방기원설부터 헝가리 투란주의의 형성까지를 서술하여 다소 장황하지만, 투란주의가 그의 한국 인식에 명백히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두 번째 장에서는 투란주의자이자 민족지학자로서 그의 동아시아 여행과 관련 활동을 다루었는데, 1차 자료가 모두 헝가리어이고 입수 자체가 쉽지 않아 해외 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의존하였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에서는 『새벽의 나라 한국』을 텍스트로 삼아 1907년 그의 첫 번째 한국 여행을 소개하고, 그가 동시대 다른 서양인들과 달리 한국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한 원인을 분석하였다. 텍스트 분석에 사용된 책은 헝가리어 원본이 아닌 초머의 번역본 『코리아,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지만, 본 논문에서 이 책을 지칭할 때는 원제를 따라 『새벽의 나라 한국』이라고 쓰겠다. 필자는 본 논문이 가진 방법론적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동안 우리 가까이에 있었으나 학문적으로는 거의 검토되지 않은 자료를 소개하는 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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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ㆍ중 여성작가 작품에 드러난 양처현모론 인식의 자기모순적 양상과 그 의미

저자 : 서록지 ( Xu Luzhi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0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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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20년대 한국과 중국의 대표 여성작가들을 대상으로 근대 여성작가 소설에 드러난 양처현모론(賢母良妻論) 인식의 자기모순적 양상과 그 의미를 비교ㆍ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양처현모론과 신현모양처론은 당대 양국의 주류 여성 교육정책으로써 여성 담론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신여성을 모범적인 신식 가정의 경영자로 간주함으로써 남편을 성공시키는 내조자의 역할 뿐 아니라 자녀의 양육자와 교육자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1920년대 한국과 중국의 여성작가들은 사회의 분위기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양처현모론에 상이한 태도를 취하였다.
긍정론의 경우 양처현모 사상의 영향을 받은 나혜석과 빙신(冰心)이 그것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혜석은 양처현모사상과 개인적 성취 및 주체성과의 충돌을 발견하면서 내적 갈등을 겪었다. 반면 빙신은 여성의 개인 가치가 가정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비판론의 경우 김일엽과 링수화(淩叔華), 루인(廬隱) 등이 양처현모 정책이 여성의 개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기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 사상을 비판하였다. 김일엽은 그의 작품에서 양처현모론을 전복시켜야 한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꿈이라는 무의식 세계에서 마음 깊이 잠재된 모성애를 드러냈다. 링수화와 루인은 독신주의를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선책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모성을 언급하는 경우, 두 작가는 방황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양처현모론을 긍정하거나 비판하는 입장들은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선 시대에 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한 여성작가들의 다양한 모색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긍정론과 비판론을 각각 일정한 가치를 지닌 신여성 담론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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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송화강ㆍ황량한 만지(蠻地) ㆍ개척된 낙토(樂土) -사진엽서 '송화강'과 만주국의 문화정치학-

저자 : 최현식 ( Choi Hyun-sik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68 (6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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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송화강'을 다룬 사진엽서의 탄생과 전개, 그것이 수행한 문화정치학의 본질과 성격을 탐구한다. 송화강은 동북 만주를 유유히 흘러가며 만주의 곡물 생산과 목재산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는 '공업일본, 농업만주'라는 기치 아래 만주의 개척과 식민화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송화강 일대의 도시, 예컨대 길림과 하얼빈은 만주를 대표하는 자연미와 이국정취, 신문명과 유흥문화의 집산지로 떠올랐다. 일제는 하얼빈과 길림을 '국책여행'의 핵심 공간으로 간주하여, 그곳에 대한 관광(여행)을 낯선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나 이국 정취의 즐김에만 빠지지 않도록 했다. 오히려 제국 일본의 우월함과 세계 팽창을 자신하는 내면의 심상지리를 확산, 심화할 수 있는 식민의 공간으로 규정했다. 『송화강천리』는 그 과정에서 발행된 사진엽서로, 여행 관련 엽서도 있지만, 역시 그것의 중심은 왕도낙토, 오족협화, 복지만리에 대한 프로파간다에 있었다. 본고는 그것을 식민주의와 군사주의의 산물로 보고, 『송화강천리』 엽서세트가 제국 일본의 신민을 포함한 만주국의 남성과 여성, 아동을 '총력전'의 도구로 징발하기 위해 제작, 유통되었음을 밝혔다. 그 과정에서 모든 가치를 일왕의 영원성과 그를 위한 헌신과 죽음에 두는 '전사자 숭배'가 공공연히 행해졌음도 밝혀냈다. 그런 점에서 『송화강천리』를 비롯한 '송화강' 엽서들은 비록 관광의 즐거움을 다뤘을지라도 결국은 죽음의 도구화를 통해 근대천황제를 절대화하는 도구적 매체, 바꿔 말해 '파시즘의 예술화'의 산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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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해방공간에서의 문학과 정치 -「도정」과 「새벽」을 중심으로-

저자 : 진연 , 이해영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20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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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비슷한 주인공과 주제를 다룬 지하련의 「도정」(1946.07)과 전홍준의 「새벽」(1948.04)을 중심으로 해방공간에서의 정치이념과 문학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두 편의 소설은 모두 그 나름의 문학성을 인정받아 해방공간에서 문단의 최고 위상을 자랑하던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문학』에 게재되었지만 발표 당시 사뭇 다른 운명에 처하고 있었다. 지하련의 「도정」은 발표 당시에 좌익문단으로부터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았으나 전홍준의 「새벽」은 당시의 좌익문단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그나마 극소수의 평론도 주로 비판 일색이었다.
정치 논리가 우위인 해방공간에서 문학작품들의 운명 역시 정치와 직결되어 있었다. 소설을 게재한 『문학』을 비롯하여 작품「새벽」에 관한 비평을 게재한 잡지들은 모두 좌익문단의 강력한 영향과 자장 속에 있었으며 당시 좌익문단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던 남로당의 정치이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도정」은 당시 남로당의 정치이념에 상당히 부합되는 작품이다. 반면 「새벽」은 남조선노동당의 정치적 이념과 투쟁목표를 적시적으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표 당시 좌익문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 것이다. 이처럼 「도정」과 「새벽」은 정치의 시대 즉 해방공간이라는 이념 우위의 시대에 문학작품의 운명이 정치에 의해 좌우된 대표적인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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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대항미디어 운동 연구(1) -선언을 통한 창립에서 『실천문학』의 창간에 이르는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이종호 ( Yi Jong 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1-23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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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는 1974년 11월 18일 광화문 거리에서 선언을 통해 창립된 후 1984년 재창립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미디어 활동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다른 지식인집단과 연대하며 그 지향을 대중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이에 본 논문은 자실의 미디어 활동을 선언문의 연쇄, 공연 및 인쇄 미디어의 절합, 『실천문학』의 창간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을 검토하고 그 의의를 고찰해 보았다.
이 시기 자실은 표현의 자유와 반유신을 주장하는 선언문을 계속해서 발표함으로써 조직을 정비하고 회원을 증원하면서 내부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를 통해 자실은 교수ㆍ언론인ㆍ학생 등의 지식인집단과 접속하여 강한 연대감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ㆍ민중과의 연결고리 또한 마련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자실은 '민족문학의 밤'이라는 공연미디어와 『광장에 서서』라는 인쇄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과 문학적 실천을 대중적으로 확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실은 민족ㆍ민중 등으로 수렴되는 문학론을 정비하면서 주요 필진들을 결집하여 향후 실천문학론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졌다. 나아가 다층적 미디어 활동으로 축적된 역량은 무크지 『실천문학』의 창간을 견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실의 미디어 활동은 문인들이 주도하기는 했지만, 유신체제로 인해 존재 기반을 상실했던 문인ㆍ대학교수ㆍ대학생ㆍ언론인 등 다양한 지식인들이 협력하고 연대하며 구축한 '저항전선'이자 새로운 주체성 생성을 지향한 '대항미디어 운동'으로서의 성격과 위상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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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후카사와 카이(深沢夏衣)의 글쓰기 의미 -소설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서-

저자 : 박성주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9-26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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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재일조선인여성작가 후카사와 카이(深沢夏衣, 1943~2014)에 주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녀가 소설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계간 잔소리』에서의 활동과 그녀의 데뷔작 『밤의 아이『에 초점을 맞춰 그녀의 글쓰기 의미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후카사와 카이가 『계간 잔소리』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1970년대는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기였으나, 2세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민족규범'에서 벗어나 일본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된 시기였다. 그녀는 편집위원으로서 다양한 글쓰기 활동을 시도하였으나, 주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쓰고자 한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계간 잔소리』가 폐간된 이후 그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펼치고자 소설을 쓰게 되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쓰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고자 한 그녀의 시도였다. 즉 그녀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펼치고자 한 자유로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녀의 글쓰기 의미는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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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천-김포지역 분구묘와 마한

저자 : 김경화 ( Kim Kyoung Hwa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5-29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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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김포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분구묘가 발견되었다. 이는 이 지역에 일정 규모의 세력을 가진 지배 집단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분구묘가 특히 집중적으로 발견된 지역은 인천 연희동 유적, 김포 운양동, 양촌 유적 등이다. 출토유물을 토대로 본 중심연대가 대략 3세기 전후반임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삼국지』 한조에 등장하는 마한 諸國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삼국지』 한조에는 56개의 소국이 등장한다. 문헌사적 연구성과에 따른다면 인천-김포지역에 해당하는 나라는 '우휴모탁국', '신분고국' 및 '속로불사국' 등이다. 이들은 마한연맹체의 일원으로 중국 군현과 경제적 교류를 통해 해상세력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또한 3세기 낙랑군과 벌인 기리영전투에도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천-김포지역의 정치세력은 “해상”을 매개로 하여 경제적,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형성된 마한의 지역연맹체적 특성을 가진다. 특히 연희동지역은 외부 세력이 한반도 내륙에 들어 오는 길목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대외무역에 종사하려는 서해 연안의 세력이라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김포 운양동 유적에는 오수전, 철경동촉, 낙랑계토기편 등 낙랑계유물과 함께 상당수의 철제무기류가 발견된다. 이는 기리영전투 등의 분쟁에 이 지역 세력들이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인천-김포지역은 군사적 동맹으로 맺어진 지역연맹체로 중국 군현과의 경제적 교섭은 물론 분쟁이 일어났을 때도 함께 행동하였고, 이 때문에 『삼국지』에서 국명을 열거할 때, 나란히 기재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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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요순 정치의 회복, 다산 정약용의 홍범(洪範)론

저자 : 김호 ( Kim Ho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3-32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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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사망 직전 『상서』에 대한 주석서를 완성하여, 조선후기 정치개혁에 대한 자신의 최종 견해를 제시했다. 고대의 이상 정치로 상징되는 요순통치에 대한 다산의 평가는 한마디로 '현능한 지도자가 부지런히 정무에 힘쓴 결과[有爲]'였다. 다산은 이른바 세속에서 말하는 무위이치(無爲而治)야말로 어리석은 견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현능한 지도자는 반드시 유능한 관리들을 선발하여 관직을 나누어주고 이들이 부지런히 과업을 수행하는지 철저하게 살폈다[考績]. 다산은 「홍범」이 바로 요순정치의 핵심 교훈이라고 정의하고 새롭게 재해석했다. 특히 「홍범」의 9개 범주에 붙은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황극[최고권력]을 중심으로 한 통치행위 전반으로 이해할 것을 제언했다. 오행은 단지 하늘이 내려준 자연의 '재료'에 불과하고 이를 활용[利用]하여 인간의 삶을 평안하게 하면[厚生] 그만이었다. 따라서 정치[八政]는 오직 국가의 세입과 지출에 해당하는 경제 및 재정 정책이 가장 중요했다. 한편, 「홍범」에는 왕과 함께 통치에 참여할 현능한 자들의 자질[三德]이 설명되어 있을뿐더러, 왕이 현능한 자들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스스로 몸가짐을 바로잡는 수신의 항목들[五事]이 기록되어 있었다. 왕의 지위[皇極]가 절대적인 것은 바로 상벌의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인데, 왕은 이 권한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능력있는 신하들에게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합당한 벌을 내려야만 했다[福極]. 왕이 이상의 통치행위를 지성으로 수행한다면 하늘이 감동하여 왕으로 하여금 선정의 기회를 허락할 것이었다. 다산은 조선의 왕들이 「홍범」의 가르침에 따라 현능한 관료를 등용하여[知人]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安民]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고전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經學]을 통해 자신이 주장하는 정치경제의 개혁안[經世論]이 본인의 억측이 아닌 '고대의 지혜[周禮]'를 밝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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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미완의 싱크탱크 혹은 이용희의 국토통일원 시절(1976~1979) -1970년대 후반 국토통일원의 연구 사업을 중심으로-

저자 : 장세진 ( Chang Seijin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학연구 6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9-371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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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구의 근대 국제정치학을 한국에 제도적으로 안착시킨 창설자였던 이용희(李用熙, 1917~1997)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제 6대 국토통일원 장관으로서 재임한 시기(1976~1979)를 살펴보았다. 특히, 그가 국토통일원의 수장으로서 주도한 연구 사업의 특징을 그 한계부터 의의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시도는 구체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던 '관료-이용희'의 실천을 밝힌다는 점에서 그간의 공백을 메우는 전기적 연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가 몸담았던 국토통일원이라는 기관의 위상과 사업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이 글은 박정희 정권 말기의 통일 정책을 배경으로 한 냉전 제도사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띤다. 두 가지 접근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사실은 분단/통일의 문제를 대학에 소속된 학자로서 연구, 교육하는 일과 현실정치 한 가운데 위치한 정책 입안자가 접근하는 방식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자-이용희'와 '국토통일원 장관-이용희' 사이에 놓인 예기된 거리 내지 간극을 단지 확인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 글은 자신의 비판적 '앎'을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 기입하거나 실정화된 제도 속에서 실천하려 할 때 발생하는 불편한 균열과 긴장의 순간들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이 글은 이용희의 재임 시절 각종 제도 개선과 연구를 통해 새롭게 획득된 현실의 변화와 생산적 순간 또한 놓치지 않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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