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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논집> 정약용이 목격한 도덕적 불구자 ― 비인(非人)의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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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목격한 도덕적 불구자 ― 비인(非人)의 발견 ―

Jeong Yagyong’s understanding of amoral personality - What is nonhumanness in Mencius?

오세진 ( Oh Se-jin )
  • : 한국철학사연구회
  • : 한국철학논집 73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5월
  • : 181-214(34pages)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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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인금지변(人禽之辨)과 비인(非人)의 문제
Ⅲ. 맹자와 정약용의 ‘사단’, ‘비인’ 개념
Ⅳ. 도덕적 불구자들의 사례― 측은지심이 없는 살인마
Ⅴ.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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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에 나오는 ‘사단(四端)’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마음/감정은 도덕적 행위의 기초이자 인간 본성이 선하다는 근거로 동아시아 사회에 오랜 기간 학습되었다. 맹자는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비인(非人)’, 곧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맹자는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을 금수(禽獸)라고 표현했고,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맹자』를 비판적으로 독해한 조선 후기의 학자/관료인 정약용은 네 가지 마음, 즉 사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곧 금수(禽獸)라는 조기의 『맹자』 해석을 수용하되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있으면 사람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맹자와 차이를 보인다.
정약용은 살인 사건의 조사 보고서, 규범, 판례, 해석을 담은 책인 『흠흠신서』를 쓰면서 사단이 없는 살인범의 사례를 수집하고 그 조사 과정과 판결에 대해 비평을 썼지만, 이를 『맹자』 중의 ‘사단’, ‘비인’ 개념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흠흠신서』에 나온 선천적 정신이상자가 일으킨 두 살인 사건에 대한 정약용의 상이한 견해를 분석해 보면 그가 생각한 인간의 조건, 인간 도덕의 기초에 대해 알 수 있다. 정약용은 한명은 확실한 정신병자라는 점에서 처벌을 경감해 주어야 하고, 다른 한명은 간헐적인 정신병을 가진 사람으로 적어도 수오지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人)으로 취급되어 보통사람과 똑같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두 실제 사례는 정약용의 『맹자』 이해와 연결되어 해석된 적이 없었다.
본고는 정약용의 ‘사단’, ‘비인’ 개념 이해를 분석하고 『흠흠신서』에 담긴 그의 사법적 판단을 분석하여, 그의 인성론과 그것의 적용인 형정 사상이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Four Sprouts’ (siduan 四端) in the Mencius, which refers to the feeling of compassion, the feeling of disdain, the feeling of deference, feeling of approval and disapproval, are considered the grounds for Mencius’ argument that human nature is good. Mencius claims that one is nonhuman (feiren 非人) if he or she does not have the four spouts. In the Mencius 2A6, he also states that all humans have hearts that are not unfeeling toward others (ceyinzhixin 惻隱之心). However, Mencius never fully explained what it meant to be human and nonhuman.
Jeong Yagyong, who was a prominent scholar-official in the late Joseon period, critically understands Mencius’s ideas of ‘Four sprouts’ and ‘nonhuman’. According to him, one could be regarded as a human being when he or she has at least one moral feeling of Four Sprouts.
His book Heumheumsinseo, which contains investigation reports, norms, precedents, interpretations of murder cases in China and Joseon, addresses many murder cases of nonhuman whose actions seem to lack some of Four Sprouts or all. However, Jeong never linked these murder cases in the Heumheumsinseo into his understanding of ‘nonhuman’ in the Mencius. This paper seeks to resolve this disconnectedness. By analyzing his understanding of ‘Four Sprouts,’ ‘nonhuman,’ and interpreting his judgment on murder cases in the Heumheumsinseo, we can have a better understanding of what makes humans distinguished from animals in his moral thought.
This study analyses two concepts of the Mencius, ‘Four Sprouts’ and ‘nonhuman’, and Jeong’s judicial judgments in the Heumheumsinseo. This preliminary study is expected to relate Jeong’s Confucian moral thought to real amoral personality cases in Jose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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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598-5024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1-2022
  • :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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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권0호(2022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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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두 「천명도(天命圖)」의 제작 배경과 김안국·김정국 형제

저자 : 崔英成 ( Choi Young-s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61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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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정지운(鄭之雲: 1509∼1561)과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천명도」가 제작된 배경에 이들의 스승인 김안국(金安國)·김정국(金正國) 형제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학문적 사상적 영향 관계를 고찰하였다. 정지운의 「천명도」는 조선 성리학의 방향을 제시한 기념비적 저술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정지운과 상의하여 수정 보완한 「천명신도(天命新圖)」가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의 발단이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지운과 김인후는 한 스승 아래서 배운 동문(同門)으로서 학술상으로 상호 교류하였을 것이다. 정지운이 「천명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김인후에게 견해를 물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지운의 「천명도」가 일찍 세상에 알려진 데 비해 김인후의 「천명도」는 미완성의 것이라 하여 세상에 내놓지 않음으로써 그동안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두 「천명도」는 같은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기본 관점이 다르다. 정지운의 경우 송대(宋代) 성리학자들의 학설을 따랐고, 김인후는 철저할 정도로 『중용(中庸)』의 이론에 입각하였다. 정지운의 「천명도」가 나온 뒤 김인후가 「천명도」를 다시 만든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안국·김정국 형제의 문하에서 김인후·정지운 같은 걸출한 성리학자가 배출되었고, 또 두 제자가 서로 약속이라도 하듯이 「천명도」를 각각 제작한 것은 예사로 보아넘기거나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두 「천명도」의 제작에 담겼을 김안국·김정국의 학문적 영향 관계를 고찰하여 두 학자의 학문적 위상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는 점이 본고의 주지(主旨)다.


This article studies the academic and ideological influences between the teachers Kim Ahn Kook and Kim Jeong Kook brother and their students Jeong Jee Woon (鄭之雲: 1509∼1561) and Kim Yin Hoo (金麟厚: 1510∼1560) on the creation background of each Drawing of Heaven's Order written by Jeong Jee Woon and Kim Yin Hoo focusing on the point that the teachers must have influenced their students of such. Jeong Jee Woon's Drawing of Heaven's Order is a historic work that showed the direction that Neo-Confucianism of Joseon should take. It is widely known that Neo-Drawing of Heaven's Order made by Lee Hwang though revision and supplement work with Jeong Jee Woon of Drawing of Heaven's Order triggered the dispute of SaDanChilJeong (四端七情: a famous Neo-Confucianism dispute about the nature of Heaven and human in Joseon era).
Jeong Jee Woon and Kim Yin Hoo were alumni, so they must have communicated each other academically. Jeong Jee Woon was likely to ask Kim Yin Hoo about his opinion while creating Drawing of Heaven's Order. However, Kim Yin Hoo's Drawing of Heaven's Order has rarely been made public so far because he did not expose it to the public thinking that it was not completely made whereas Jeong Jee Woon's Drawing of Heaven's Order was known in the society early.
Such two pieces of Drawing of Heaven's Order were made under the same purpose but not same in basic viewpoint. Jeong Jee Woon followed the theories claimed by the Confucians of Sung dynasty while Kim Yin Hoo strictly stood on the theory of Golden Mean (中庸). That could be why Kim Yin Hoo made Drawing of Heaven's Order again after Jeong Jee Woon's Drawing of Heaven's Order came out to the public. However, the fact that such outstanding Neo-Confucians as Kim Yin Hoo and Jeong Jee Woon grew under Kim Ahn Kook and Kim Jeong Kook brother and they made Drawing of Heaven's Order respectively as if they promised each other shall not be thought of nothing and not considered coincidence. Therefore, this article suggests that such two scholars' academic position be re-estimated thinking of the academic influences of Kim Ahn Kook and Kim Jeong Kook o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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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인(仁)에 대한 해석 연구 - 『논어석의』, 『연평답문』과 『연평답문질의』, 『성학십도』 「인설도」를 중심으로 -

저자 : 서근식 ( Seo Geun-sik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3-8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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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황이 인(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논어석의(論語釋義)』, 『연평답문(延平答問)』과 『연평답문질의(延平答問質疑)』, 『성학십도(聖學十圖)』 「인설도(仁說圖)」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 이황은 '경(敬)' 못지않게 '인(仁)'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황은 인(仁)에 대해서 공자(孔子)에게서 강조되었고, 주희가 성리학적 입장에서 다시 강조한 부분이므로 자신이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공자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인(仁)은 경(敬)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다.
『논어(論語)』에서 인(仁)이라는 글자가 109번 사용되었던 것에 비하여 『논어석의(論語釋義)』에서는 15번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논어석의』는 1590년에 발간된 『교본(校本) 논어언해(論語諺解)』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송나라의 의리(義理)뿐만 아니라 한나라, 당나라의 견해까지 받아들였고 당시 문인·제자들의 견해도 참작하고 있다. 조선에서 『연평답문』과 『연평답문질의』는 모두 이황의 손을 거친 것이다. 그 가운데 『연평답문』에서 이통(李侗)이 인(仁)과 지(智)가 관련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하였으나, 주희(朱熹)와 이황(李滉)은 「인설」과 『성학십도』 「인설도」를 통해 서로 관련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황에게 있어서 인(仁)은 특별하게 강조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자 때부터 강조되어온 인(仁)은 이황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강조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In this thesis, Yi Hwang(李滉) thoughts about In(仁) were examined focusing on Noneosukye(『論語釋義』), Yeonpyeongdapmun(『延平答問』) amd Yeonpyeongdapmungilyi(『延平答問質疑』),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聖學十圖』) “Insuldo(「仁說圖」)”. Through this, it has been proved that Yi Hwang(李滉) emphasized In(仁) as much as Gyeong(敬). Yi Hwang thought that he didn't need to highlight In(仁) himself because it had been stressed by Confucius(孔子) and Chu Hsi(朱熹) from a neo-Confucian viewpoint. Therefore, In(仁), which had been emphasized since Confucius, should be regarded important along with Gyeong(敬).
While the letter, In, was used 109 times in Noneo(『論語』), it was mentioned only 15 times in Noneosukye. Noneosukye had the biggest impact on Gyobon Noneoeonhae(『校本論語諺解』) published in 1590, accepted not only loyalty(義理) of Song Dynasty but also the opinions from Han Dynasty, and took the opinions of the literary men and followers of those times into consideration. In Joseon, both Yeonpyeongdapmun amd Yeonpyeongdapmungilyi were taken care of by Yi Hwang. In Yeonpyeongdapmun, Yi Tong(李侗) tried to help realize that In(仁) was related to Ji(智), but Chu Hsi and Yi Hwang said that they were not related through “Insul(「仁說」)” and “Insuldo(「仁說圖」)” of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
The explanations about In(仁) in “Insuldo” of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 followed Chu Hsi's “Insuldo” and “Insul” in many ways. Gyeong was important to Yi Hwang, but In(仁), which has been emphasized since Confucius, also needs to be considered important as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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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소론계(少論系) 학인 간 격물(格物) 논변의 배경과 향방

저자 : 이원준 ( Lee Won-ju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1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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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690년을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진행된 소론계(少論系) 학인 간 격물(格物) 논변의 사상사적 배경과 그 전개 방향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 소론계 학인들이 상대 계파보다 이른 시기에 격물설 논변을 전개한 동인(動因)을 확인하고, 논변에서 포착되는 소론계 학인들의 학문적 자세와 그 사상사적 의의를 시론해 보고자 한다. 소론계 학인들이 격물을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이전 학계에서 쟁점화되었던 물격(物格)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신속하게 일단락된 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의 물격관은 이이의 학설에 기반한 이황의 이도설(理到說) 비판으로, 노소분당 이전 기호학맥의 관점을 계승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소론계 학인들은 기존 학계에서 쟁점화되지 않았던 '격물'에 대한 논의를 남인계보다 먼저 진행할 수 있었다.
소론계 학인들의 격물 논변은 크게 자의(字義) 분석을 바탕으로 한 자가설 논변과 탈주자학적 격물설과 관련된 논변으로 나뉘어진다. 자의 논변은 '격(格)'자의 해석 방식과 관계된 '격무궁의(格無窮義)' 논변과 '사지격(使之格)' 논변이 있으며, 탈주자학적 격물설 관련 논변으로는 양명학적 격물설을 둘러싼 논변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선배 학자들이 주자의 해석에 따른다는 명목으로 별다른 이의 없이 수용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격물' 그 자체를 철저히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하였으며, 이에 한국성리학의 독자적 격물 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This study outlines the thought historical background and development of Gyeokmul格物(Investigation of things) discussions that occurred intensively among the scholars of Soron少論(Disciple's Faction) around 1690. Through this process, I will check the causes of their discussions earlier than the other faction, and examine the academic attitudes of Soron scholars revealed in each discussions and their thought historical significance. The background that scholars in Soron Faction were able to actively discuss Gyeokmul can be attributed to the fact that the discussions on Mulgyeok物格that had been controversial in the previous academia ended relatively quickly between them. The point of view they share on Mulgyeok is a critique of Toegye Yi Hwang's view on Li理based on the doctrine of Yulgok Yi Yi. This agreement had already been concluded before the the division of the Westerners(Seoin西人) into the Noron老論(Patriarch's Faction) and the Soron. For this reason, their discussions of Gyeokmul, which had not been relatively controversial in the past, was able to proceed ahead of the other faction, the Southerners(Namin南人).
Discussions for Gyeokmul by Soron scholars are largely divided into the discussion of self-theory based on the analysis of literal meaning and the discussion related to understanding Gyeomul outside the scope of the learning of Zhu Xi. Discussions on the meaning of letters is mainly related to the interpretation of the Chinese character 'Gyeok格', and the discussion related to the anti-Zhu Xi learning includes the argument surrounding the learning of Wang Yangming. Soron scholars began to thoroughly analyze Gyeokmul itself, which had not been accepted without any objection by the senior scholars in the name of following the interpretation of the Zhu Xi. In addition, various methodologies were used in the argumentation process, and accordingly, they showed the possibility of forming an unique Geukmul theory of Korean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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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임녹문과 맹자

저자 : 이장희 ( Lee Jang-hee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4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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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문 임성주(鹿門任聖周, 1711-1788)의 사상을 연구하면 누구나 녹문에게 『맹자』에서의 「생지위성장」(生之謂性章)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기록과 마주하게 된다. 조선 중후기 성리학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에서 녹문은 스승인 도암 이재(陶庵李縡, 1680-1746)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의 입장에 동조하다가 이 '생지위성장'으로 말미암아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의 입장으로 바꾸었다는 것인데, '생지위성장'에서 맹자가 강조한 내용을 인성과 물성과의 차별성으로 이해하는 일반적인 독법을 생각하더라도 이러한 녹문의 입장 변화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논문은 녹문의 「생지위성장」 독해가 단순히 낙론에서 호론으로의 입장 전향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녹문의 기일원론적 성리학의 구조를 성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더 정확히는 「생지위성장」을 비롯해서 「부동심장(不動心章)」 등, 맹자의 철학이 녹문 사상의 근거이자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맹자』와 같은 유학의 경전이 유학자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동어반복과 같은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 관점을 달리 하면 맹자의 철학이 녹문이 구축하고 있는 기일원론에 매우 가깝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자학의 '이기이원론적(理氣二元論的)' 구도가 전통적인 '일원론적(一元論的)' 세계관과 부딪히며 빚어낸 문제들을 녹문은 맹자를 통해 다시 일원론적 구도로 돌아감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은 녹문의 이러한 해결방안이 어떻게 호락논쟁의 문제를 해소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In exploring the prominent late Joseon Confucian scholar, Nokmun Im Seongju (1711-1788), one unavoidably comes across the fact that the 'sheng zhi wei sheng' chapter in the Mencius had a decisive influence on Nokmun. In the debate over the sameness or difference between 'human nature' and 'the nature of things,' which was the hottest philosophical issue in the mid-to-late Joseon Dynasty, Nokmun originally agreed with the position of his teacher, Doam Lee Jae (1680-1746), that human nature and the natures of things are the same. The aforementioned chapter in the Mencius changed Nogmun's mind. Given the general understanding of the chapter that Mencius try to emphasize the aspect of human nature distinct from the nature of things, Nogmun's change of position in the Horak Debate can be easily understood.
This paper aims to show that Nokmun's reading of the 'sheng zhi wei sheng' chapter did not merely bring about a shift from Nakron to Horon, but played a pivotal role in establishing the structure of Nokmun's monistic Neo-Confucianism. More precisely, I would like to say that Mencius's philosophy provide the basis for the development of Nokmun's philosophy. The fact that a Confucian cannon such as the Mencius influence a Confucian scholar's philosophical thinking may sound like tautology. However, seen from a different angle, it also means that Mencius's philosophy can be interpreted very closely to the ki-centered monistic philosophy advocated by Nokmun. Nokmun seems to have had the idea that the problem caused by the clash between the dualistic structure of Zhuxi's philosophy and 'monistic' Chinese traditional worldview could be solved by returning to the monistic structure via the Mencian philosophy. This paper will examine how such an attempt appears to solve the problem of Horak De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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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서수석(徐壽錫)의 『춘추』 경학을 통해 본 19세기 조선조 춘추학의 연구방법론

저자 : 김동민 ( Kim Dong-mi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3-17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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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석은 『춘추』의 성격을 '역사서 중의 경서[史中之經]'라고 규정하고, 『춘추』라는 책 자체의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가치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것은 『춘추』가 단순히 책 속의 이론이 아니라 현실의 역사를 추동하는 살아 있는 진리임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그는 크게 두 가지의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첫째, 『춘추』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춘추』가 시대적 요청의 산물임을 밝히는 작업이다. 춘추시대의 정치적 혼란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춘추』의 출현이 시대적 요청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규명함으로써 『춘추』의 필수불가결한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드러내 밝혔다. 둘째, 『춘추』의 천자로서의 역할을 탐색함으로써 정치 현실에서 발휘된 『춘추』의 실질적 공능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먼저 당시 천자의 위상 추락과 역할 부재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춘추』가 천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리고 『춘추』가 천자로서 현실 정치에 개입한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춘추』의 실질적인 존재 가치를 제고시켰다. 그의 연구방법은 역사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춘추』에 담긴 시대의식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Seo Suseok defined Chunqiu as a 'Confucian classic among history books [史中之經]' and tried to clarify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values of the book Chunqiu itself. It is to prove that Chunqiu is simply not a theory in a book but a living truth driving history in reality. For this purpose, he largely applied two sets of research methodology. First, he analyzed historical background in which Chunqiu was destined to be written in order to clarify that Chunqiu was a result from the demands of the times. He objectively analyzed political chaos of Chunqiu period and clarified that advent of Chunqiu was an unavoidable choice due to the demands of the times, which was to reveal the reason why Chunqiu was the essential. Second, he explored the role of Chunqiu as a son of Heaven to identify actual effect of Chunqiu exerted in political reality. He realistically analyzed the fallen status of son of Heaven and absence of that role in order to examine the background in which Chunqiu came to serve as the role of son of Heaven. In addition, he specifically investigated the aspects that Chunqiu intervened in realistic politics as son of Heaven, which consequently improved the actual values of existence of Chunqiu. The primary aim of his methodology is to grasp substance in consciousness of the times demonstrated in Chunqiu through objective analysis o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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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정약용이 목격한 도덕적 불구자 ― 비인(非人)의 발견 ―

저자 : 오세진 ( Oh Se-ji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1-21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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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에 나오는 '사단(四端)'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마음/감정은 도덕적 행위의 기초이자 인간 본성이 선하다는 근거로 동아시아 사회에 오랜 기간 학습되었다. 맹자는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비인(非人)', 곧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맹자는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을 금수(禽獸)라고 표현했고,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맹자』를 비판적으로 독해한 조선 후기의 학자/관료인 정약용은 네 가지 마음, 즉 사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곧 금수(禽獸)라는 조기의 『맹자』 해석을 수용하되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있으면 사람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맹자와 차이를 보인다.
정약용은 살인 사건의 조사 보고서, 규범, 판례, 해석을 담은 책인 『흠흠신서』를 쓰면서 사단이 없는 살인범의 사례를 수집하고 그 조사 과정과 판결에 대해 비평을 썼지만, 이를 『맹자』 중의 '사단', '비인' 개념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흠흠신서』에 나온 선천적 정신이상자가 일으킨 두 살인 사건에 대한 정약용의 상이한 견해를 분석해 보면 그가 생각한 인간의 조건, 인간 도덕의 기초에 대해 알 수 있다. 정약용은 한명은 확실한 정신병자라는 점에서 처벌을 경감해 주어야 하고, 다른 한명은 간헐적인 정신병을 가진 사람으로 적어도 수오지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人)으로 취급되어 보통사람과 똑같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두 실제 사례는 정약용의 『맹자』 이해와 연결되어 해석된 적이 없었다.
본고는 정약용의 '사단', '비인' 개념 이해를 분석하고 『흠흠신서』에 담긴 그의 사법적 판단을 분석하여, 그의 인성론과 그것의 적용인 형정 사상이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Four Sprouts' (siduan 四端) in the Mencius, which refers to the feeling of compassion, the feeling of disdain, the feeling of deference, feeling of approval and disapproval, are considered the grounds for Mencius' argument that human nature is good. Mencius claims that one is nonhuman (feiren 非人) if he or she does not have the four spouts. In the Mencius 2A6, he also states that all humans have hearts that are not unfeeling toward others (ceyinzhixin 惻隱之心). However, Mencius never fully explained what it meant to be human and nonhuman.
Jeong Yagyong, who was a prominent scholar-official in the late Joseon period, critically understands Mencius's ideas of 'Four sprouts' and 'nonhuman'. According to him, one could be regarded as a human being when he or she has at least one moral feeling of Four Sprouts.
His book Heumheumsinseo, which contains investigation reports, norms, precedents, interpretations of murder cases in China and Joseon, addresses many murder cases of nonhuman whose actions seem to lack some of Four Sprouts or all. However, Jeong never linked these murder cases in the Heumheumsinseo into his understanding of 'nonhuman' in the Mencius. This paper seeks to resolve this disconnectedness. By analyzing his understanding of 'Four Sprouts,' 'nonhuman,' and interpreting his judgment on murder cases in the Heumheumsinseo, we can have a better understanding of what makes humans distinguished from animals in his moral thought.
This study analyses two concepts of the Mencius, 'Four Sprouts' and 'nonhuman', and Jeong's judicial judgments in the Heumheumsinseo. This preliminary study is expected to relate Jeong's Confucian moral thought to real amoral personality cases in Jose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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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간재 전우의 수양론에 관한 소고 ― 성사심제에 기반한 경(敬)의 실천을 중심으로 ―

저자 : 강보승 ( Kang Bo-se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5-24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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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 전우 연구는 화서·노사·한주학파의 성리설과 비교를 통한 이기·심성론 위주로 이루어져 학문의 연원과 논리적 특징을 밝히는 데에 공헌하였으나, 실천가로서 그의 면모를 밝히는 데에는 소홀하였다.
간재는 심시기(心是氣)를 주장하면서 기의 본선함과 본일성(本一性)을 강조하였다. 리를 준거로 기의 순수성을 확보, 유지하는 것을 수양의 핵심으로 파악하였고 '성사심제(性師心弟)'를 주장하여 수양의 심성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기는 선악을 겸하여 리를 언제나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문제가 생기므로 이의 해결을 위해 간재는 심 곧 기의 순수성을 담보하여 도덕 주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간재의 이러한 주장은 리와 기의 무분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을 리, 심을 기로 보고 기가 리에 따라 자신을 실현시켜야 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간재는 율곡의 이통기국에 의한 이기의 구분을 엄격히 하였다. 이것이 성을 기준으로 심을 통제하는 간재 성사심제설의 이론적 배경이다.
불완전한 도덕 주체인 심이 언제나 성을 지각하고 배워서 일신을 주재해야 한다는 간재의 심성 인식은 도덕 주체 확립을 위한 '심본성(心本性)', '성사심제'로 응축·귀결되어 심성론의 중추가 된다.
간재는 성이 심의 준거가 되고 심이 일신의 주재가 되듯 경이 심을 주재해야 한다고 하면서, 경 없이는 '심본성'을 실현할 수 없다고 한다. 기질 변화를 수양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 간재는 율곡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경을 강조하고 치지, 구방심, 야기함양, 독서, 정좌를 통한 수양의 삶을 보면 퇴계의 수양론을 따랐다고 볼 수도 있다. 「시동서사의」에도 퇴계의 길을 걷고자 하였던 간재의 일상과 수양이 잘 드러나 있다.


The study of jeon Wu (1841-1922, pen name Ganjae) was mainly conducted on on ontology and psychology through comparison with the theories of Huaseo, Nosa, and Hanju schools. These studies have contributed to finding the logical characteristics of Ganjae's studies. However, it was not well studied how Ganjae practiced Confucian philosophy. This paper attempts to find the characteristics of Ganjae's philosophy centering on cultivation theory.
Ganjae argued that "Heart is qi(氣)." And it was emphasized that qi was originally good and unified as one. Ganjae identified keeping qi pure as the core of Confucian practice with li(理) as the standard. Therefore, he argued the theory that 'the human nature is a teacher and the mind is a student'.
Ganjae's argument does not mean that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li and qi. Ganjae recognized human nature as li and mind as qi, and saw that qi should emulate li, which was the same as Yulgok's theory. Therefore, Ganjae argued that incomplete 'heart' should always be led by recognizing and learning 'human nature'. Ganjae made this argument because he wanted people to develop inner power to do moral behavior.
Ganjae argued that nature should be the standard of the mind, the mind should be the standard of the body, and that Kyung(敬) should lead the mind. This is because without Kyung, the mind is disturbed and human nature cannot be the standard of the mind. Ganjae agreed with Yulgok's view and argued that individual temperamental characteristics should be changed. However, Ganjae also emphasized Kyung, and he always practiced acquiring knowledge, controlling his mind, restoring his pure body and mind through rest, reading, and sitting still and upright, so it can be said that he followed the training method suggested by Toe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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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병헌의 작역원위 연구 ― 『역경금문고』를 중심으로 ―

저자 : 배영섭 ( Bae Young-sub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5-26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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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대 경학가이자 종교사상가인 이병헌의 역학관을 금문경학 사상과 연관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이병헌은 '역원위'를 복희와 공자로 규정한다. 복희의 십언·육계를 근간으로 공자가 『역경』의 64괘를 완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왕·주공을 작역자로 보는 삼성설과 사성설을 부정했다. 공자역 계승 적통은 시·맹·양구씨역으로부터 경방역을 통해 전해지는 금문 계보로 보았다. 공자의 미언대의가 약화된 것은 고문 계열인 고씨·비직역과 유흠의 공자관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다. 종합해보면, 복희역 → 공자역 → 시·맹·양구씨역 → 경방역의 금문 계보를 정통으로 인정한 반면, 복희역 → 문왕·주공역 → 공자역 → 고씨·비직역의 고문 계보를 비판했다. 작역원위는 역경의 저자이자 창교자로서 공자의 위상을 밝히고, 금문경학의 계보를 공자역의 적통으로 하여 공교의 당위성을 세우는 논리로 귀착한다. 고문경학에 대한 이병헌의 비판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비판이 아니라 원천과 근본에 대한 비판이다. 근대기 경학 사상가의 마지막 세대인 이병헌은 고문경학의 『춘추좌씨전』과 송학의 도서상수역학에 경도된 조선후기 사회에 금문경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is a research that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ncept of Yi-study(易學) to 'The explanation of making Yi' and the historical implications of Lee Byung-hun's(李炳憲) study appear in the book Yeok-gyeong geum-mun-go(易經今文考). Regarding 'the origin of Yi'(易源), it derived from Fuxi(伏羲) and was completed by Confucius(孔子). King Wen(文王) and Ju-Gong, generally accepted in history is not recognized as the person who wrote the 'book of change'. The development of 'the origin of Yi' is the genealogy of direct connections from Fuxi to Confucius. The pedigree of Yi after Confucius was passed down from Fuxi Yi to Confucius Yi and then to Shi, Meng, Liang, Qiu Yi(施孟良邱易) to Jingfang Yi(京房易) which is the 'New Text Confucianism Genealogy(今文系谱)'. It could be said that the logical construction of Lee Byung-hun's 'The explanation of making Yi' is to establish that the 'Yi' is the only Bible of Confucianism and Confucius(孔子) claims to be the only saint of Confucianism. Through this, Lee Byung-hun tried to turn the Bible of 'Confucianism as a Religion' into a 'Yi'. And he wanted to lay the groundwork for making Confucius the head of 'Confucianism as a Religion'. Lee Byung-hun's 'The explanation of making Yi' is an effort to revive the 'Geum mun sang su Yi(今文象数易)' of the Han dynasty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was focused on 'Do-seo-sang-su Yi Study(圖書象數易學)' and 'Treatment of Zuo Zhuan(春秋左氏傳)' of the Song dynasty. Furthermore, the establishment of the 'Geum mun Yi(今文經學)' system that he achieved can be said to be an undeniable great contribution to the balanced development and diversity of Korean dynamic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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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대 유학의 정초자, 조단 학술사상의 종합적 고찰

저자 : 선병삼 ( Sun Byeong-sam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1-29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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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月川) 조단(曹端, 1376-1434)은 한국 학계에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조단은 명대 전기 유학사를 다룬 저서들이나 개괄적인 논문들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학자이다. 역대의 평가가 말하듯 조단은 명대 유학의 정초자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조단의 이학사상을 실천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으로 나누어 종합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첫째, 실천적 고찰은 조단의 생애와 그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조단의 생애를 살필 적에 그가 활동한 명대 건국 초기 상황과 평생 유학학정으로 봉직하면서 유생들을 교육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둘째, 이론적 고찰은 주돈이 이학사상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펴보았다. 조단은 「태극도설술해(太極圖說述解)」와 「통서술해(通書述解)」를 지어 주돈이 사상을 명대에 본격적으로 현창한 첫 번째 인물이다. 본 논문은 명대 유학의 정초자라는 평가를 중심에 두고, 조단 이학사상의 주자학적 본질과 심학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명대 이학 특히 명대 심학의 시대 정신과 방향성과의 연속성 위에서 고찰한 본 연구가 향후 소위 창신(創新)보다는 법고(法古)의 흔적이 농후한 조단 이학사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Cao Duan(1376-1434) isn't well known to the Korean academic world concerning Confucianism, but he is all mentioned in many books and essays studying on the early Confucianism in Ming Dynasty because he is appreciated as a founder in Confucianism in Ming Dynasty.
In this paper, I do a comprehensive review on Cao Duan's Lixue in terms of practical aspects and theoretical aspects. The first, I lay a stress on his life and the estimation by other scholars in terms of practical aspects. It is important to take into consideration two factors such as his times of the early stage of Ming Dynasty and his occupation of a master in regional school. The second, I focus on his understanding on Zhou Dunyi's Lixue in terms of theoretical aspects. He is recognized as a first person to enhance the understanding Zhou Dunyi's Lixue completing his notes of tai ji tu shuo shu jie(太極圖說述解) and tong shu shu jie(通書述解). Furthermore, it is inevitable task how to connect Cao's Lixue into Yangmingxue, because he is a descendant of Zhuzixue and recognized as a founder of neo-Confucianism in Ming Dynasty al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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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강정인의 '동·서 통섭(通涉)'에 대한 비판적 고찰

저자 : 이상익 ( Lee Sang-ik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7-32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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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인은 본래 서양 정치사상을 공부하여 입신(立身)하였으면서도, '동양과 서양의 통섭(通涉)'을 기치로 내걸고 동양 정치사상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동양 정치사상에 대해 정당한 위상을 부여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강정인은 특히 유가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선보였다. 논자는 강정인의 유가 정치사상에 대한 연구 성과 가운데 특히 다음 두 가지를 높이 평가한다.
첫째는 『서경』 <홍범>의 '대동(大同, great consensus)'이라는 용어를 주목하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적극 발굴하여 '대동 민주주의의'라는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기존의 연구자들은 '『예기』의 대동'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강정인은 '『서경』의 대동'을 주목하고 마침내 '위대한 합의(great consensus)로서의 대동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율곡이 『성학집요』 <성현도통(聖賢道統)> 편에서 『예기』의 '대동(大同, great harmony)' 개념을 혁신했다는 사실을 간파해낸 것이다. 기존의 연구자들은 율곡의 대동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기존의 대동 개념을 계승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왔을 뿐, 양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주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강정인은 『예기』의 대동 개념과 『성학집요』 <성현도통> 편의 대동 개념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 차이를 정확하게 분석해낸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강정인이 이러한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원전의 자료를 지나치게 작위적(作爲的)으로 해석했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


Professor Kang Jung In became renowned for his specialty in Western political philosophy at the beginning. Later, for the consilience of East and West, he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of the Eastern political philosophy with an endeavor for the recovery of its due respect. Especially he focused on the Confucian political thoughts that earned him two academic achievements.
First, Prof. Kang conceptualized 'the great consensus democracy' by unearthing related materials. While previous literature has paid attention narrowly to the great consensus that appears in the Book of Rites, he noticed that 'the great consensus(大同)' appears in the Book of Document's Hongbeom Chapter as well, and finally theorized the concept as a democratic model. Second, Prof. Kang found that Yulgok had renovated the Book of Rites' concept of 'the great harmony(大同)' in his treatise, Seonghakjibyo (Collection and Summary of Sage Learning). Prof. Kang revealed the difference in conceptions of the great harmony between the Book of Rites and Seonghakjibyo, of which previously unaware by scholars. Although he was arbitrary in his interpretation of the Confucian classics to some extent, it is his contribution that the clear difference between the two conceptions came into our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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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두 「천명도(天命圖)」의 제작 배경과 김안국·김정국 형제

저자 : 崔英成 ( Choi Young-s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61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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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정지운(鄭之雲: 1509∼1561)과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천명도」가 제작된 배경에 이들의 스승인 김안국(金安國)·김정국(金正國) 형제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학문적 사상적 영향 관계를 고찰하였다. 정지운의 「천명도」는 조선 성리학의 방향을 제시한 기념비적 저술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정지운과 상의하여 수정 보완한 「천명신도(天命新圖)」가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의 발단이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지운과 김인후는 한 스승 아래서 배운 동문(同門)으로서 학술상으로 상호 교류하였을 것이다. 정지운이 「천명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김인후에게 견해를 물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지운의 「천명도」가 일찍 세상에 알려진 데 비해 김인후의 「천명도」는 미완성의 것이라 하여 세상에 내놓지 않음으로써 그동안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두 「천명도」는 같은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기본 관점이 다르다. 정지운의 경우 송대(宋代) 성리학자들의 학설을 따랐고, 김인후는 철저할 정도로 『중용(中庸)』의 이론에 입각하였다. 정지운의 「천명도」가 나온 뒤 김인후가 「천명도」를 다시 만든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안국·김정국 형제의 문하에서 김인후·정지운 같은 걸출한 성리학자가 배출되었고, 또 두 제자가 서로 약속이라도 하듯이 「천명도」를 각각 제작한 것은 예사로 보아넘기거나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두 「천명도」의 제작에 담겼을 김안국·김정국의 학문적 영향 관계를 고찰하여 두 학자의 학문적 위상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는 점이 본고의 주지(主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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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황이 인(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논어석의(論語釋義)』, 『연평답문(延平答問)』과 『연평답문질의(延平答問質疑)』, 『성학십도(聖學十圖)』 「인설도(仁說圖)」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 이황은 '경(敬)' 못지않게 '인(仁)'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황은 인(仁)에 대해서 공자(孔子)에게서 강조되었고, 주희가 성리학적 입장에서 다시 강조한 부분이므로 자신이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공자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인(仁)은 경(敬)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다.
『논어(論語)』에서 인(仁)이라는 글자가 109번 사용되었던 것에 비하여 『논어석의(論語釋義)』에서는 15번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논어석의』는 1590년에 발간된 『교본(校本) 논어언해(論語諺解)』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송나라의 의리(義理)뿐만 아니라 한나라, 당나라의 견해까지 받아들였고 당시 문인·제자들의 견해도 참작하고 있다. 조선에서 『연평답문』과 『연평답문질의』는 모두 이황의 손을 거친 것이다. 그 가운데 『연평답문』에서 이통(李侗)이 인(仁)과 지(智)가 관련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하였으나, 주희(朱熹)와 이황(李滉)은 「인설」과 『성학십도』 「인설도」를 통해 서로 관련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황에게 있어서 인(仁)은 특별하게 강조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자 때부터 강조되어온 인(仁)은 이황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강조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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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소론계(少論系) 학인 간 격물(格物) 논변의 배경과 향방

저자 : 이원준 ( Lee Won-ju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1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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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690년을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진행된 소론계(少論系) 학인 간 격물(格物) 논변의 사상사적 배경과 그 전개 방향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 소론계 학인들이 상대 계파보다 이른 시기에 격물설 논변을 전개한 동인(動因)을 확인하고, 논변에서 포착되는 소론계 학인들의 학문적 자세와 그 사상사적 의의를 시론해 보고자 한다. 소론계 학인들이 격물을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이전 학계에서 쟁점화되었던 물격(物格)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신속하게 일단락된 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의 물격관은 이이의 학설에 기반한 이황의 이도설(理到說) 비판으로, 노소분당 이전 기호학맥의 관점을 계승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소론계 학인들은 기존 학계에서 쟁점화되지 않았던 '격물'에 대한 논의를 남인계보다 먼저 진행할 수 있었다.
소론계 학인들의 격물 논변은 크게 자의(字義) 분석을 바탕으로 한 자가설 논변과 탈주자학적 격물설과 관련된 논변으로 나뉘어진다. 자의 논변은 '격(格)'자의 해석 방식과 관계된 '격무궁의(格無窮義)' 논변과 '사지격(使之格)' 논변이 있으며, 탈주자학적 격물설 관련 논변으로는 양명학적 격물설을 둘러싼 논변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선배 학자들이 주자의 해석에 따른다는 명목으로 별다른 이의 없이 수용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격물' 그 자체를 철저히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하였으며, 이에 한국성리학의 독자적 격물 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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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임녹문과 맹자

저자 : 이장희 ( Lee Jang-hee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4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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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문 임성주(鹿門任聖周, 1711-1788)의 사상을 연구하면 누구나 녹문에게 『맹자』에서의 「생지위성장」(生之謂性章)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기록과 마주하게 된다. 조선 중후기 성리학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에서 녹문은 스승인 도암 이재(陶庵李縡, 1680-1746)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의 입장에 동조하다가 이 '생지위성장'으로 말미암아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의 입장으로 바꾸었다는 것인데, '생지위성장'에서 맹자가 강조한 내용을 인성과 물성과의 차별성으로 이해하는 일반적인 독법을 생각하더라도 이러한 녹문의 입장 변화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논문은 녹문의 「생지위성장」 독해가 단순히 낙론에서 호론으로의 입장 전향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녹문의 기일원론적 성리학의 구조를 성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더 정확히는 「생지위성장」을 비롯해서 「부동심장(不動心章)」 등, 맹자의 철학이 녹문 사상의 근거이자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맹자』와 같은 유학의 경전이 유학자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동어반복과 같은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 관점을 달리 하면 맹자의 철학이 녹문이 구축하고 있는 기일원론에 매우 가깝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자학의 '이기이원론적(理氣二元論的)' 구도가 전통적인 '일원론적(一元論的)' 세계관과 부딪히며 빚어낸 문제들을 녹문은 맹자를 통해 다시 일원론적 구도로 돌아감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은 녹문의 이러한 해결방안이 어떻게 호락논쟁의 문제를 해소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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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서수석(徐壽錫)의 『춘추』 경학을 통해 본 19세기 조선조 춘추학의 연구방법론

저자 : 김동민 ( Kim Dong-mi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3-17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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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석은 『춘추』의 성격을 '역사서 중의 경서[史中之經]'라고 규정하고, 『춘추』라는 책 자체의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가치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것은 『춘추』가 단순히 책 속의 이론이 아니라 현실의 역사를 추동하는 살아 있는 진리임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그는 크게 두 가지의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첫째, 『춘추』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춘추』가 시대적 요청의 산물임을 밝히는 작업이다. 춘추시대의 정치적 혼란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춘추』의 출현이 시대적 요청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규명함으로써 『춘추』의 필수불가결한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드러내 밝혔다. 둘째, 『춘추』의 천자로서의 역할을 탐색함으로써 정치 현실에서 발휘된 『춘추』의 실질적 공능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먼저 당시 천자의 위상 추락과 역할 부재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춘추』가 천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리고 『춘추』가 천자로서 현실 정치에 개입한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춘추』의 실질적인 존재 가치를 제고시켰다. 그의 연구방법은 역사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춘추』에 담긴 시대의식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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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정약용이 목격한 도덕적 불구자 ― 비인(非人)의 발견 ―

저자 : 오세진 ( Oh Se-ji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1-21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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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에 나오는 '사단(四端)'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마음/감정은 도덕적 행위의 기초이자 인간 본성이 선하다는 근거로 동아시아 사회에 오랜 기간 학습되었다. 맹자는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비인(非人)', 곧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맹자는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을 금수(禽獸)라고 표현했고,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맹자』를 비판적으로 독해한 조선 후기의 학자/관료인 정약용은 네 가지 마음, 즉 사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곧 금수(禽獸)라는 조기의 『맹자』 해석을 수용하되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있으면 사람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맹자와 차이를 보인다.
정약용은 살인 사건의 조사 보고서, 규범, 판례, 해석을 담은 책인 『흠흠신서』를 쓰면서 사단이 없는 살인범의 사례를 수집하고 그 조사 과정과 판결에 대해 비평을 썼지만, 이를 『맹자』 중의 '사단', '비인' 개념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글을 남기지 않았다. 『흠흠신서』에 나온 선천적 정신이상자가 일으킨 두 살인 사건에 대한 정약용의 상이한 견해를 분석해 보면 그가 생각한 인간의 조건, 인간 도덕의 기초에 대해 알 수 있다. 정약용은 한명은 확실한 정신병자라는 점에서 처벌을 경감해 주어야 하고, 다른 한명은 간헐적인 정신병을 가진 사람으로 적어도 수오지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人)으로 취급되어 보통사람과 똑같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두 실제 사례는 정약용의 『맹자』 이해와 연결되어 해석된 적이 없었다.
본고는 정약용의 '사단', '비인' 개념 이해를 분석하고 『흠흠신서』에 담긴 그의 사법적 판단을 분석하여, 그의 인성론과 그것의 적용인 형정 사상이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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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간재 전우의 수양론에 관한 소고 ― 성사심제에 기반한 경(敬)의 실천을 중심으로 ―

저자 : 강보승 ( Kang Bo-se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5-24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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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 전우 연구는 화서·노사·한주학파의 성리설과 비교를 통한 이기·심성론 위주로 이루어져 학문의 연원과 논리적 특징을 밝히는 데에 공헌하였으나, 실천가로서 그의 면모를 밝히는 데에는 소홀하였다.
간재는 심시기(心是氣)를 주장하면서 기의 본선함과 본일성(本一性)을 강조하였다. 리를 준거로 기의 순수성을 확보, 유지하는 것을 수양의 핵심으로 파악하였고 '성사심제(性師心弟)'를 주장하여 수양의 심성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기는 선악을 겸하여 리를 언제나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문제가 생기므로 이의 해결을 위해 간재는 심 곧 기의 순수성을 담보하여 도덕 주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간재의 이러한 주장은 리와 기의 무분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을 리, 심을 기로 보고 기가 리에 따라 자신을 실현시켜야 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간재는 율곡의 이통기국에 의한 이기의 구분을 엄격히 하였다. 이것이 성을 기준으로 심을 통제하는 간재 성사심제설의 이론적 배경이다.
불완전한 도덕 주체인 심이 언제나 성을 지각하고 배워서 일신을 주재해야 한다는 간재의 심성 인식은 도덕 주체 확립을 위한 '심본성(心本性)', '성사심제'로 응축·귀결되어 심성론의 중추가 된다.
간재는 성이 심의 준거가 되고 심이 일신의 주재가 되듯 경이 심을 주재해야 한다고 하면서, 경 없이는 '심본성'을 실현할 수 없다고 한다. 기질 변화를 수양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 간재는 율곡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경을 강조하고 치지, 구방심, 야기함양, 독서, 정좌를 통한 수양의 삶을 보면 퇴계의 수양론을 따랐다고 볼 수도 있다. 「시동서사의」에도 퇴계의 길을 걷고자 하였던 간재의 일상과 수양이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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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병헌의 작역원위 연구 ― 『역경금문고』를 중심으로 ―

저자 : 배영섭 ( Bae Young-sub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5-26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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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대 경학가이자 종교사상가인 이병헌의 역학관을 금문경학 사상과 연관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이병헌은 '역원위'를 복희와 공자로 규정한다. 복희의 십언·육계를 근간으로 공자가 『역경』의 64괘를 완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왕·주공을 작역자로 보는 삼성설과 사성설을 부정했다. 공자역 계승 적통은 시·맹·양구씨역으로부터 경방역을 통해 전해지는 금문 계보로 보았다. 공자의 미언대의가 약화된 것은 고문 계열인 고씨·비직역과 유흠의 공자관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다. 종합해보면, 복희역 → 공자역 → 시·맹·양구씨역 → 경방역의 금문 계보를 정통으로 인정한 반면, 복희역 → 문왕·주공역 → 공자역 → 고씨·비직역의 고문 계보를 비판했다. 작역원위는 역경의 저자이자 창교자로서 공자의 위상을 밝히고, 금문경학의 계보를 공자역의 적통으로 하여 공교의 당위성을 세우는 논리로 귀착한다. 고문경학에 대한 이병헌의 비판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비판이 아니라 원천과 근본에 대한 비판이다. 근대기 경학 사상가의 마지막 세대인 이병헌은 고문경학의 『춘추좌씨전』과 송학의 도서상수역학에 경도된 조선후기 사회에 금문경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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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대 유학의 정초자, 조단 학술사상의 종합적 고찰

저자 : 선병삼 ( Sun Byeong-sam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1-29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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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月川) 조단(曹端, 1376-1434)은 한국 학계에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조단은 명대 전기 유학사를 다룬 저서들이나 개괄적인 논문들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학자이다. 역대의 평가가 말하듯 조단은 명대 유학의 정초자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조단의 이학사상을 실천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으로 나누어 종합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첫째, 실천적 고찰은 조단의 생애와 그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조단의 생애를 살필 적에 그가 활동한 명대 건국 초기 상황과 평생 유학학정으로 봉직하면서 유생들을 교육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둘째, 이론적 고찰은 주돈이 이학사상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펴보았다. 조단은 「태극도설술해(太極圖說述解)」와 「통서술해(通書述解)」를 지어 주돈이 사상을 명대에 본격적으로 현창한 첫 번째 인물이다. 본 논문은 명대 유학의 정초자라는 평가를 중심에 두고, 조단 이학사상의 주자학적 본질과 심학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명대 이학 특히 명대 심학의 시대 정신과 방향성과의 연속성 위에서 고찰한 본 연구가 향후 소위 창신(創新)보다는 법고(法古)의 흔적이 농후한 조단 이학사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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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강정인의 '동·서 통섭(通涉)'에 대한 비판적 고찰

저자 : 이상익 ( Lee Sang-ik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7-32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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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인은 본래 서양 정치사상을 공부하여 입신(立身)하였으면서도, '동양과 서양의 통섭(通涉)'을 기치로 내걸고 동양 정치사상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동양 정치사상에 대해 정당한 위상을 부여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강정인은 특히 유가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선보였다. 논자는 강정인의 유가 정치사상에 대한 연구 성과 가운데 특히 다음 두 가지를 높이 평가한다.
첫째는 『서경』 <홍범>의 '대동(大同, great consensus)'이라는 용어를 주목하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적극 발굴하여 '대동 민주주의의'라는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기존의 연구자들은 '『예기』의 대동'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강정인은 '『서경』의 대동'을 주목하고 마침내 '위대한 합의(great consensus)로서의 대동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율곡이 『성학집요』 <성현도통(聖賢道統)> 편에서 『예기』의 '대동(大同, great harmony)' 개념을 혁신했다는 사실을 간파해낸 것이다. 기존의 연구자들은 율곡의 대동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기존의 대동 개념을 계승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왔을 뿐, 양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주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강정인은 『예기』의 대동 개념과 『성학집요』 <성현도통> 편의 대동 개념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 차이를 정확하게 분석해낸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강정인이 이러한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원전의 자료를 지나치게 작위적(作爲的)으로 해석했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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