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상세보기

온지학회> 온지논총> 현감직에 대한 황윤석의 갈망과 소회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

KCI등재

현감직에 대한 황윤석의 갈망과 소회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

Hwang Yun-seok's longing and feeling for prefect(현감) - Focusing on his poetry

이상봉 ( Lee Sangbong )
  • : 온지학회
  • : 온지논총 71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4월
  • : 93-119(27pages)
온지논총

DOI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현감: 경세와 봉양을 위한 최선의 선택
Ⅲ. 목천과 전의의 현감이 되다: 현감이 된 기쁨과 성찰
Ⅳ. 현감 파직 이후: 감사와 警戒
Ⅴ. 나오는 말

키워드 보기


초록 보기

황윤석은 호남의 선비가문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능으로 주위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학업에 열중하던 10대말과 20대 초에는 순수학문의 추구와 과거시험 준비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1세가 되어서야 진사시에 합격할 수 있었고 38세가 되어서야 장릉 참봉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강원도 영월의 장릉에서 첫 벼슬살이를 하게 된 황윤석은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처음 장릉 참봉에 낙점을 받았을 때 고향집과 가까운 경기전과 임지를 바꿀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었다. 이처럼 그는 부모님의 봉양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정경순은 황윤석이 장릉참봉을 시작한 이후 60개월의 기한을 채우면 현감이 될 자격이 되니 그러면 부모님을 모시면서 벼슬생활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경세의 꿈을 펼치는 것과 부모님 봉양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황윤석에게 현감직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갈망하던 현감 직위를 두 번이나 얻게 되지만 둘 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파직 당했다. 전 생애를 현감 직위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그의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황윤석은 안타까운 마음을 삼키면서 후손들을 위해 현감이 된 과정과 파직의 전말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해 두었다.
부동산과 주식이 들썩이면 많은 사람들이 일희일비한다. 정치권·재계·연예계 등에서 이슈가 터지면 그 사건에 주의를 빼앗기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들은 다사다난한 일상에 휩싸여서 소중한 나 자신의 행복과 내 가족의 평안을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혹은 나의 꿈을 위해서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 치열한 삶 속에서도 자신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황윤석의 삶 속에서 반조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Hwang Yun-seok was born to a scholarly family in Honam, and grew up receiving expectations from those around him with his innate talent. In his late teens and early twenties, when he was immersed in his studies, he struggled between pursuing pure studies and preparing for state examination but none gave up. It was not until the age of 31 that he was able to pass the Jinsa exam, and it was not until the age of 38 that he could become a Jangneung Chambong.
Hwang Yun-seok, who started his first post at Jangneung in Yeongwol, Gangwon-do, was worried about not being able to take care of his parents. So, when he first became Jangneung Chambong, he also looked to see if he could change his work place to gyeong-gijeong, which is close to his hometown. As such, he always had in mind the issue of supporting his parents.
Jeong Gyeong-soon, who knew this, informed Hwang Yun-seok that if he met the 60-month deadline after starting Jangneung Chambong, he would be eligible to become a prefect, and then he would be able to lead a public life while supporting his parents. For Hwang Yun-seok, who didn't want to miss out on both Gyeongse(經世)'s dream and raising his parents, prefect seems to be the most realistic option.
Since then, he has been awarded the post of prefect twice, which he longed for, but both were dismissed after less than a year. It was such a futile ending compared to his efforts, who spent his entire life looking only at the title of prefect.
However, Hwang Yun-seok swallowed his sorrowful heart and wrote down the process of becoming prefect and the reason for his resignation in poetry and prose to show to his descendants.
When real estate and stocks fluctuate, many people shudder. When an issue arises in the political, business, or entertainment world, attention is focused on the incident. As such, we are engulfed in our daily life, and there are many cases in which we lose sight of our precious happiness and the peace of our family.
People live in pursuit of money, power, or fame for a living or for their dreams. Even in such a fierce life, I hope that we can reflect on what makes us truly happy in Hwang Yun-seok's life.

UCI(KEPA)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598-1444
  • : 2384-2253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5-2022
  • : 781


저작권 안내

한국학술정보㈜의 모든 학술 자료는 각 학회 및 기관과 저작권 계약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자료를 상업적 이용, 무단 배포 등 불법적으로 이용할 시에는 저작권법 및 관계법령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1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 : 17세기 통신사 사행록의 필담 및 시문창화 수록 양상

저자 : 장진엽 ( Jang Jin-youp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63 (5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의 한 단계로서 17세기 통신사 사행록에 수록된 필담 및 시문창화 관련 기록의 현황 및 그 수록 양상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이 시기 사행록 21종을 대상으로 필담·서신·창화시 및 필담창화와 관련된 상황을 담고 있는 기록을 발췌하여 목록으로 작성하였다. 이시기 사행록은 필담보다는 창화시 위주인데, 이는 실제로 필담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상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사행록 집필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사행록에 기록된 필담은 저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된 것이다. 이는 창화시를 기록하는 것에 비해 어려운 일이며, 필담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의식이 생겨나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게 된다.
다음으로 시기별 사행록의 필담 수록 양상 및 그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17세기 통신사를 '필담 교류'의 진전 정도에 따라 '맹아기-성립기-발전기(초기)'의 세 단계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맹아기인 회답겸쇄환사 시기에는 주로 접반승들의 요청에 의해 시문창화가 이루어졌다. 필담 기록 역시 소략한 편이지만, 필담창화집에서 확인되지 않는 초기의 필담 교류 정황을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성립기는 제4차 병자사행(1636)부터 제6차 을미사행(1655)이다. 이 시기부터 통신사행은 문화사절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사신들 역시 시문창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사행록에 다량의 창화시를 수록하였고, 인상적인 필담 내용을 기록해 두기도 했다. 이 시기 기록 가운데 김세렴과 하야시 라잔의 대화, 조경과 라잔이 주고받은 편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세 번째 단계는 발전기(초기)에 해당하는 제7차 임술통신사(1682)이다. 임술사행 시기에는 필담 교류의 담당자인 제술관이 처음으로 파견되었고, 일본 내에서도 문인 계층이 성장하여 필담창화가 대폭 확대되었다. 그러나 사행록 소재 필담 기록은 오히려 양적인 면에서나 구체성의 측면에서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 시기 사행록 저자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일록 형식의 사행록을 저술한 홍우재와 김지남은 둘 다 역관으로서 필담창화의 중심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편 김지남의 사행록에는 우연한 필담 교류의 현장을 전하고 있는 기록이 있어 눈길을 끈다.
본고는 '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의 첫 단계로서 시도된 작업이다. 후속 작업으로 18세기 통신사 및 근대 수신사의 필담, 표류 필담, 그리고 연행사 필담의 현황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의 길항 속에서 동아시아 고전문헌 연구의 타당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데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As one step in the foundational research on East Asian brush talk literature, the aim of this research is to review the records pertaining to the brush talks (筆談) and poetry exchanges (唱和), in 17th century travel journals ('sahaengnok' 使行錄) produced by Chosŏn envoy to Tokugawa Japan ('tongsinsa' 通信使).
First, the accounts of the brush talks, letters, exchanged poetry, as well as the entries that feature the works or circumstances from brush talks and poetry exchanges have been pulled and tabulated from twenty one sahaengnok produced in this era. Sahaengnok of this era more prominently feature poems from poetry exchanges than brush talks; this partly has to do with the fact that not much brush talks have taken place at the time, and also has to do with the way in which sahaengnok is written. Since brush talks recorded in sahaengnok had to be recounted relying on the writer's recollection, it was more difficult to document them compared to the poems from the exchanges. In order to record the brush talk, the writer had to carry an specific intention to leave its account. This kind of consciousness only came to appear in 18th century.
Next, the contents and significance of brush talks recorded in sahaengnok is discussed per period. The progress in the exchanges via brush talks by 17th century tongsinsa could be organized into three stages: the inceptive stage, the founding stage, and the early developmental stage. In the inceptive stage of response-and-repatriations era, poetry exchange took place from the request of the escorting monks. The records of the brush talks tend to be terse, but they illuminate the circumstances of early brush talk exchanges. The founding stage refers to a period between the 4th tongsinsa of 1636 and the 6th tongsinsa of 1655; from this time on, tongsinsa became more of culture envoys, and the three envoys displayed a more eager attitude in poetry exchanges. They included a lot of poems from exchanges in their sahaengnok, and documented intriguing discussions from the brush talks. Particularly interesting of this period is the conversation between Kim Seryŏm and Hayashi Razan, and the letters exchanged between Cho Kyŏng and Razan. The third stage is the 7th tongsinsa of 1682, which constitutes an early developmental stage. An official in charge of documenting ('Chesulgwan' 製述官) was first dispatched during this time; and as a result of a growth in literati status in Japan, this era also saw a boom in brush talk and poetry exchange with tongsinsa. However, the records of the brush talks in sahaengnok show a contrasting decrease in their quantity and detailedness. This is linked to the then writers of sahaengnok; Hong Ujae and Kim Chinam, who wrote sahaengnok in a journal format, were both interpreters and therefore not the main agents of the brush talks. Yet, Kim Chinam's sahaengnok includes an incidental record that depicts the scene of a brush talk exchange, which warrants some attention.
This study was designed to be the first step for the fundamental research of brush talks writings in East Asia. What follows will be a probe on the brush talk of the 18th century tongsinsa and modern diplomatic envoys to Meiji Japan ('susinsa' 修信使), driftees, and Chosŏn envoy to Qing China ('yŏnhaengsa' 燕行使). It is the hope that these works would be able to contribute in developing a sound methodology in researching East Asian classical literature, between Korean studies and East Asian studies.

KCI등재

2樗庵 申宅權의 老吟詩 一考察

저자 : 박종훈 ( Park Chongh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2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宋나라 劉克莊이 10수의 연작 老吟詩를 지은 이후, 조선 문인 역시 이를 토대로 적지 않은 연작 노음시를 창작했다. 그 중에서도 55수의 연작 노음시를 지은 신택권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申宅權(1722~1801)의 연작 노음시는 64세 전후에 지은 것인데, 그때까지 아직 벼슬살이를 하지 못한채 노년을 맞이하는 늙음의 인식이 담겨 있다.
신택권은 노음시의 전통적인 詩體인 칠언율시를 활용하면서도 '9→7→5→3→1→10→8→6→4→2'의 구조로 55수의 연작 노음시를 창작한 것이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내용면에서는 우선 자신과 자신의 신체를 대상으로 11수의 작품을 지은 것이 특징적 일면이다. 노음시의 출발점은 늙음에 대한 탄식이 될 수 밖에 없다. 신택권의 작품 역시 노년의 모습을 대면한 늙음의 탄식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의 고단했던 삶을 환기하면서 늙음의 비애감을 더욱 조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년의 탄식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노련함 혹은 원숙함을 갖춘 노년의 삶에 긍정적인 시선을 두면서, 스스로 노년의 존재 가치를 부여했다. 더 나아가 늙음은 자연스러운 이치이기에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경주했다. 마지막으로 신택권은 자신과 자신의 신체를 대상으로 11수의 작품을 지으면서 노년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이들 작품 역시 늙음에 대한 탄식이 주를 이룬다. 이밖에 노년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이를 수긍하려는 자세도 엿보인다.
이처럼 신택권의 노음시에는 變과 不變 사이를 넘나들면서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노년의 다단한 인식이 담겨있다. 64세의 나이에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한 신택권의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Song Dynasty Liu kezhuang(劉克莊) built 10 works on the theme of old age. Since then, the writers of Joseon have also built a series of prototypes with the theme of old age. Here, we looked at the works of Shin Taek-kwon(申宅權), who wrote 55 consecutive poems on the theme of old age. Shin Taek-kwon continued to build these works at the age of 64, and it contains his review of his old age without yet serving as a government official until then.
Shin Taek-kwon's works have a unique structure of '9→7→5→3→1→10→8→6→4→2'. This part is characteristic of the formal aspect. It is also characteristic that he created 11 works of himself and his body.
These works started from lamentations about old age. In such a state, he recalled the difficult life of his youth and doubled the sorrow of old age. However, it did not stop at the lamentation of old age. By placing a positive view on the life of an old man with old age or maturity, he gave the value of existence to old age by himself. Furthermore, since aging is a natural reason, he consciously tried to accept it calmly.
Finally, Shin Taek-kwon drew a self-portrait of old age while composing 11 works for himself and his body. These works also focus on lamenting about old age, and a conscious effort was made to accept it while calmly portraying such a life of old age.
As such, Shin Taek-kwon's works contain a strong perception that cannot be defined as either one, crossing between change and unchanging. These works appear to have occurred in the complex situation of Shin Taek-kwon, who is aging without serving as a government official even at the age of 64.

KCI등재

3현감직에 대한 황윤석의 갈망과 소회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

저자 : 이상봉 ( Lee Sangbo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119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황윤석은 호남의 선비가문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능으로 주위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학업에 열중하던 10대말과 20대 초에는 순수학문의 추구와 과거시험 준비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1세가 되어서야 진사시에 합격할 수 있었고 38세가 되어서야 장릉 참봉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강원도 영월의 장릉에서 첫 벼슬살이를 하게 된 황윤석은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처음 장릉 참봉에 낙점을 받았을 때 고향집과 가까운 경기전과 임지를 바꿀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었다. 이처럼 그는 부모님의 봉양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정경순은 황윤석이 장릉참봉을 시작한 이후 60개월의 기한을 채우면 현감이 될 자격이 되니 그러면 부모님을 모시면서 벼슬생활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경세의 꿈을 펼치는 것과 부모님 봉양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황윤석에게 현감직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갈망하던 현감 직위를 두 번이나 얻게 되지만 둘 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파직 당했다. 전 생애를 현감 직위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그의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황윤석은 안타까운 마음을 삼키면서 후손들을 위해 현감이 된 과정과 파직의 전말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해 두었다.
부동산과 주식이 들썩이면 많은 사람들이 일희일비한다. 정치권·재계·연예계 등에서 이슈가 터지면 그 사건에 주의를 빼앗기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들은 다사다난한 일상에 휩싸여서 소중한 나 자신의 행복과 내 가족의 평안을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혹은 나의 꿈을 위해서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 치열한 삶 속에서도 자신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황윤석의 삶 속에서 반조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Hwang Yun-seok was born to a scholarly family in Honam, and grew up receiving expectations from those around him with his innate talent. In his late teens and early twenties, when he was immersed in his studies, he struggled between pursuing pure studies and preparing for state examination but none gave up. It was not until the age of 31 that he was able to pass the Jinsa exam, and it was not until the age of 38 that he could become a Jangneung Chambong.
Hwang Yun-seok, who started his first post at Jangneung in Yeongwol, Gangwon-do, was worried about not being able to take care of his parents. So, when he first became Jangneung Chambong, he also looked to see if he could change his work place to gyeong-gijeong, which is close to his hometown. As such, he always had in mind the issue of supporting his parents.
Jeong Gyeong-soon, who knew this, informed Hwang Yun-seok that if he met the 60-month deadline after starting Jangneung Chambong, he would be eligible to become a prefect, and then he would be able to lead a public life while supporting his parents. For Hwang Yun-seok, who didn't want to miss out on both Gyeongse(經世)'s dream and raising his parents, prefect seems to be the most realistic option.
Since then, he has been awarded the post of prefect twice, which he longed for, but both were dismissed after less than a year. It was such a futile ending compared to his efforts, who spent his entire life looking only at the title of prefect.
However, Hwang Yun-seok swallowed his sorrowful heart and wrote down the process of becoming prefect and the reason for his resignation in poetry and prose to show to his descendants.
When real estate and stocks fluctuate, many people shudder. When an issue arises in the political, business, or entertainment world, attention is focused on the incident. As such, we are engulfed in our daily life, and there are many cases in which we lose sight of our precious happiness and the peace of our family.
People live in pursuit of money, power, or fame for a living or for their dreams. Even in such a fierce life, I hope that we can reflect on what makes us truly happy in Hwang Yun-seok's life.

KCI등재

4<육미당기>의 서사 구조와 가부장의 성장

저자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1-150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육미당기>는 독립성 강한 몇 편의 서사를 조합하여 만들어진 소설로, 소재원과 구조에 대해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왔다. 그러나 각기 다른 출처의 하위 서사를 포괄하는 소설 전체의 구성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못한 감이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육미당기>의 서사 구조를 읽는 하나의 시각으로 가부장의 성장을 제시한다. <육미당기>를 구성하는 하위 서사들의 목적의식과 배치 방식에는 가부장의 성장이라는 일정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육미당기>의 서사 축은 크게 소선의 출국-귀국 서사, 소선과 여섯 여성의 결연 서사로 구분된다. 두 서사 축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가부장의 성장을 보여준다. 출국-귀국 서사에서 소선은 부권의 계승자가 된다. 부왕의 적자인 소선은 서자인 형으로부터 패배하여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고, 고국을 떠나 표류한다. 소선에게 주어지는 소설적 과업은 형으로부터 정당한 부권 계승자의 지위를 돌려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보다 강한 힘과 정당성을 얻어야 하는데, 출국과 귀국 사이에 배치된 중국에서의 결연이 그 방법으로 기능한다. 해당 서사의 결과 소선은 형을 물리치고 신라 국왕으로 등극한다.
결연 서사에서 소선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권력을 획득한다. 결연 서사는 크게 세 편의 결연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연이 진행될수록 남녀 인물의 지위와 주도권이 단계적으로 역전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소선의 지위는 눈먼 거지 소년에서 부마이자 고위 관료로 상승하는 반면, 여성 인물의 지위는 공주에서 천애고아로 하락한다. 또한 소선은 수동적으로 여성의 애정을 따르는 존재에서 여성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반면, 여성은 관계를 주도하는 위치에서 소선에게 생존을 의존하는 위치로 추락한다. 결연의 결과 소선은 남성 시각에서의 이상적 가정인 육미당(六美堂)을 완성한다.


Yukmidanggi[六美堂記] is a fiction made by combining several independent narratives. Many studies have been focused on the original stories and narrative structure of this fiction. However, the principle of composition which encompasses entire sub-narratives, has not been sufficiently identified. In this essay, I will analyze the narrative structure of Yukmidanggi in the perspective of 'growth of the patriarch'. It is possible to find the principle of the growth of the patriarch in the sense of purpose and the composition of the sub-narratives.
Yukmidanggi consists of two narrative axes; a narrative of departure-return and a narrative of romance. These two narrative axes show how the protagonist grows into a patriarch in different level. In the narrative of departure-return, the protagonist, Soseon[簫仙], grows into a heir of patriarchal right. Soseon, the prince of Silla[新羅] is defeated by his bastard brother and left his homeland, losing the right to inherit the throne. The task given to Soseon is to get back the status of a legitimate heir. For that, he must acquire stronger strength and legitimacy than his brother. The romance in China functions for it. As a result of this narrative, Soseon defeats his brother and becomes the king of Silla.
In the narrative of romance, Soseon acquires power in relation to women. This narrative is a combination of three stories. Following each story, the status and leadership of male and female characters are reversed step by step. While the status of Soseon rises from blind beggar to high-ranking official, the status of female characters decreases from a princess to an orphan in distress. In addition, Soseon's position changes from following women's choice to influencing women's survival, while women character's position fall from leading Soseon to relying on Soseon for survival. As a result, Soseon completes the patriarch's paradise Yukmidang.

KCI등재

521세기 인문학과 한문학 연구의 향방

저자 : 박수밀 ( Park Sumil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1-178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은 대전환의 세기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문학으로서의 한문학의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본 것이다. 20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의 주요 흐름에 대해 살피고 21세기 지금의 현실에서 한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았다. 한문학은 학제 간 연구를 앞장서서 도모해야 하며 지금의 시대가 현실을 좇느라 잃어가는 가치를 살펴 인간다움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문화 현상 및 현실과 연계하여 한문학이 당면한 연구과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았다. 먼저는,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논하고 생태와 환경의 차이 및 고전의 생태 정신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전의 생태 정신은 자연 친화를 이야기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관계론과 존재론의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문화콘텐츠와 고전의 가치에 대해 살폈다. 문화콘텐츠는 고전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교육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고전 전공자가 문화콘텐츠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원형 소스의 발굴과 개발이라고 보고 그 예를 제시해 보았다. 나아가 21세기는 문학에서 문화로, 이데올로기에서 일상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그와 같은 문화 변동의 세기에 한문학이 지금 시대와 호응하고 소통하기 위해 무엇에 주목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인문학으로서의 한문학에 대해 논의하면서 문화적 측면에 주목한 것은 총체적 시야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한문학은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해가는 동시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 지금 시대의 당면 과제와 대화적 소통을 해나가야 한다.


This study is to review the direction of Chinese classics as humanities study in this post-Covid era of great transformation. Firstly it reveals the main stream of humanities study till 21th century from the 20th century, then proposes the future direction of Chinese classics according to current situation. The Chinese classics should lead the interdisciplinary approach and deeply contemplate humanism, considering the value lost today because of realistic trends. On this base, the current tasks of Chinese classics is to be taken, being connected with cultural phenomenon and reality. For this, firstly climate crisis and serious environmental destruction are dealt with, the difference between ecology and environment, the importance of ecology spirit in classics are reviewed. The ecology spirit of classics is not to be limited to talk about nature friendly, should be considered in terms of relationship theory and ontology. And further more, culture contents and the value of classics are to be reviewed. The culture contents are meaningful not only in the study of classical literature, but also in education itself. The classics scholars might dedicate to the invention and development of sources, in this sense the examples are represented at once. Lastly in the 21th century the culture rather than literature, daily living rather than ideology are to be pursued. In this great transformation era, it is stressed to what point Chinese classics should pay attention in order to respond to and communicate with this era. Till today the key point of focusing the cultural aspects in Chinese classics as humanities is to secure the general point of view. The Chinese classics has own role so far, at the same time should follow the spirit of Ongojeesin - reviewing the old, learning the new -, with communication with current tasks and issues.

KCI등재

6사서(四書)의 심성론적 연구

저자 : 임헌규 ( Lim Heongyu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9-205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세계의 보편적인 철학 혹은 종교로 인정된 여러 학파에는 고유의 경전이 존재한다. 유교에서도 시대별로 그 강조점을 달리했지만, 五經에서 十三經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경전들이 존숭되어 왔다. 그런데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朱子(1130~1200)가 여러 경전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하고(新注), 특히 四書(三經)를 정립한 이래, 四書는 그 이후 신유학에서 근본 경전으로 존숭되고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이 논문의 과제는 “'四書'란 문명사적으로 볼 때, 어떤 성격의 책이며,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때,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가?”하는 것에 대해 하나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四書란 인간에 근본을 두고, 금수와 구별되는 인간의 본성을 정립하여, 인간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人文사회를 구현할 방도를 제안한 체계이며, 따라서 四書란 심성론(인성론)으로 접근할 때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따라서 四書에 대한 연구에서 심성론적 탐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 논문은 그 기초 연구로서 『논어』에서 시작하여 『대학』·『중용』을 거쳐 『맹자』에서 정립된 心·性·情·意란 글자가 나타난 용례와 의미를 드러내고, 그 체계화 과정을 살폈다. 그리고 이렇게 사서의 심성론적 용어의 의미와 체계화 과정을 살피면서, 그것이 지니는 인간관의 특징과 그 문명사적인 의미를 탐색하였다. 나아가 四書에 나타난 심성론을 통해 인간을 재조명할 때, 오늘날과 같은 AI시대에서 위기의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유교적 인간관이 지니는 의미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제안한다.


In this paper, I'd like to study of four book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doctrine of human nature. Confucius & his successor(four books) regarded human-being and human nature(人性) with importance more than any other schools at the time.
It is known that Confucius was the first one to present the doctrine of human nature in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Confucius said, “By nature, human-being are nearly alike; by practice, human-being get to be wide apart.” C onfucius's successor spread the doctrine of human nature's nature to block heterodoxy after succeeding the theory by Confucius. The Great Learning said : “What the Great Learning teaches, is -- to illustrate illustrious virtue; to renovate the people; and to rest in the highest excellence.” The Doctrine of the Mean said :
“What Heaven has conferred is called The Nature(性); an accordance with this Nature is called The Way(道) ; the regulation of this Way is called Teaching(敎).” Mencius was the founder to present the doctrine of human nature systematically in the history of Confucianism. He said : “He who has exhausted all his mind knows his human nature. Knowing his human nature, he knows Heaven. To preserve one's mind, and nourish one's human nature, is the way to serve Heaven.” Confucius & his successor's four books was interpreted and reestablished by Chu Hsi.

KCI등재

7집옥재(集玉齋) 소장 서화(書畵)·금석(金石) 자료와 고종대 문화변동 연구

저자 : 유순영 ( Yoo Soonyou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46 (4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집옥재 수집 서화·금석 자료를 조사, 분석하고 19세기 말 동아시아의 서화와 서적 유통 측면에서 집옥재 자료의 국제성을 살피며, 수집 자료의 성격과 시각 이미지에 근거하여 고종대 미술현상의 변화를 고찰한 것이다.
집옥재에 수집된 서화·금석 자료는 畵史와 畵論書, 畵譜, 명승도류, 인물 판화, 통치 및 교화, 신문물과 근대 시각 지식, 일본 자료, 금석서, 서예와 회화 자료로 이루어져 있다. 서화와 금석 관련 저록, 화보, 서예와 판화, 통치와 개화 관련 서적이 수집되었고, 일본 자료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중국의 전통 지식과 동시대 상해의 서화 경향을 담은 石印本이 대종을 이루는 것은 淸의 변화를 모델로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고자 한 고종의 시대 인식과 상통한다.
집옥재 수집 서화·금석 자료는 點石齋, 申報館, 同文書局, 行素艸堂, 江左書林에서 출판된 것이 다수를 이루며, 점석재와 동문서국 발간본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서구 자본으로 운영된 점석재와 중국인이 경영한 동문서국의 출판 경쟁은 서화 자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 판본의 유통과 서화 유통 공간으로서 상해 서점의 역할도 주목된다.
집옥재 수집 자료의 성격과 시각 이미지에 근거하여 미술문화의 변동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화조, 영모, 사군자에서 상해 화보의 유입과 해상화파 화풍의 확산을 새로 파악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며, 금석학과 골동취미, 길상적 욕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각물과 궁궐 주련을 대상으로 궁중의 서화 취향이 변화된 측면을 고찰하였다.


This thesis investigates the visual, calligraphic, epigraphic materials in the Jibokjae library, and examines the internationality of the materials of Jibokjae in terms of painting, calligraphy and book distribution in East Asia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Furthermore, I examines the changes in the art phenomenon of the Gojong era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and visual images of the collected materials in the Jibokjae library.
The visual, calligraphic, epigraphic materials in the Jibokjae library consist of painting history and picture theory books, painting manuals, scenic prints, character prints, books about government-education and new culture-modern visual knowledge, Japanese materials, epigraphic books, calligraphy and painting prints. The lithography prints containing traditional knowledge of China and the trend of contemporary Shanghai calligraphy and painting occupy a large part. This is connected with King Gojong's perception of the era, who tried to respond to a new era by using the Qing change as a model.
Large number of materials collected in Jipokjae were published in Dianshizhai, Shenbaoguan, Tongwenshuju, Xingsucaotang, and Jiangzuoshulin. Especially, publications of Dianshizhai and Tongwenshuju occupy a high proportion. The publication competition between Dianshizhai and Shenbaoguan is confirmed. The role of the Shanghai bookstores as a space of the circulation of Japanese editions and Chinese calligraphies and paintings is also noted.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and visual image of the materials collected from Jipokjae, the change of art culture is researched from two aspects. The spread of Shanghai painting style in the flower-birds, animals, and four gentlemen paintings is examined focusing on newly researched contents. The change in the taste of painting and calligraphy at the court is targeted at visual objects that acted on epigraphic studies, antique tastes, and auspicious desires. A verse couplet carved on a plank which is put on a pillar in palace is also the subject.

1
권호별 보기
같은 권호 다른 논문
| | | | 다운로드

KCI등재

1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 : 17세기 통신사 사행록의 필담 및 시문창화 수록 양상

저자 : 장진엽 ( Jang Jin-youp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63 (5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의 한 단계로서 17세기 통신사 사행록에 수록된 필담 및 시문창화 관련 기록의 현황 및 그 수록 양상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이 시기 사행록 21종을 대상으로 필담·서신·창화시 및 필담창화와 관련된 상황을 담고 있는 기록을 발췌하여 목록으로 작성하였다. 이시기 사행록은 필담보다는 창화시 위주인데, 이는 실제로 필담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상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사행록 집필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사행록에 기록된 필담은 저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된 것이다. 이는 창화시를 기록하는 것에 비해 어려운 일이며, 필담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의식이 생겨나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게 된다.
다음으로 시기별 사행록의 필담 수록 양상 및 그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17세기 통신사를 '필담 교류'의 진전 정도에 따라 '맹아기-성립기-발전기(초기)'의 세 단계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맹아기인 회답겸쇄환사 시기에는 주로 접반승들의 요청에 의해 시문창화가 이루어졌다. 필담 기록 역시 소략한 편이지만, 필담창화집에서 확인되지 않는 초기의 필담 교류 정황을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성립기는 제4차 병자사행(1636)부터 제6차 을미사행(1655)이다. 이 시기부터 통신사행은 문화사절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사신들 역시 시문창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사행록에 다량의 창화시를 수록하였고, 인상적인 필담 내용을 기록해 두기도 했다. 이 시기 기록 가운데 김세렴과 하야시 라잔의 대화, 조경과 라잔이 주고받은 편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세 번째 단계는 발전기(초기)에 해당하는 제7차 임술통신사(1682)이다. 임술사행 시기에는 필담 교류의 담당자인 제술관이 처음으로 파견되었고, 일본 내에서도 문인 계층이 성장하여 필담창화가 대폭 확대되었다. 그러나 사행록 소재 필담 기록은 오히려 양적인 면에서나 구체성의 측면에서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 시기 사행록 저자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일록 형식의 사행록을 저술한 홍우재와 김지남은 둘 다 역관으로서 필담창화의 중심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편 김지남의 사행록에는 우연한 필담 교류의 현장을 전하고 있는 기록이 있어 눈길을 끈다.
본고는 '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의 첫 단계로서 시도된 작업이다. 후속 작업으로 18세기 통신사 및 근대 수신사의 필담, 표류 필담, 그리고 연행사 필담의 현황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의 길항 속에서 동아시아 고전문헌 연구의 타당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데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KCI등재

2樗庵 申宅權의 老吟詩 一考察

저자 : 박종훈 ( Park Chongh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2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宋나라 劉克莊이 10수의 연작 老吟詩를 지은 이후, 조선 문인 역시 이를 토대로 적지 않은 연작 노음시를 창작했다. 그 중에서도 55수의 연작 노음시를 지은 신택권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申宅權(1722~1801)의 연작 노음시는 64세 전후에 지은 것인데, 그때까지 아직 벼슬살이를 하지 못한채 노년을 맞이하는 늙음의 인식이 담겨 있다.
신택권은 노음시의 전통적인 詩體인 칠언율시를 활용하면서도 '9→7→5→3→1→10→8→6→4→2'의 구조로 55수의 연작 노음시를 창작한 것이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내용면에서는 우선 자신과 자신의 신체를 대상으로 11수의 작품을 지은 것이 특징적 일면이다. 노음시의 출발점은 늙음에 대한 탄식이 될 수 밖에 없다. 신택권의 작품 역시 노년의 모습을 대면한 늙음의 탄식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의 고단했던 삶을 환기하면서 늙음의 비애감을 더욱 조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년의 탄식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노련함 혹은 원숙함을 갖춘 노년의 삶에 긍정적인 시선을 두면서, 스스로 노년의 존재 가치를 부여했다. 더 나아가 늙음은 자연스러운 이치이기에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경주했다. 마지막으로 신택권은 자신과 자신의 신체를 대상으로 11수의 작품을 지으면서 노년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이들 작품 역시 늙음에 대한 탄식이 주를 이룬다. 이밖에 노년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이를 수긍하려는 자세도 엿보인다.
이처럼 신택권의 노음시에는 變과 不變 사이를 넘나들면서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노년의 다단한 인식이 담겨있다. 64세의 나이에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한 신택권의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KCI등재

3현감직에 대한 황윤석의 갈망과 소회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

저자 : 이상봉 ( Lee Sangbo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119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황윤석은 호남의 선비가문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능으로 주위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학업에 열중하던 10대말과 20대 초에는 순수학문의 추구와 과거시험 준비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1세가 되어서야 진사시에 합격할 수 있었고 38세가 되어서야 장릉 참봉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강원도 영월의 장릉에서 첫 벼슬살이를 하게 된 황윤석은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처음 장릉 참봉에 낙점을 받았을 때 고향집과 가까운 경기전과 임지를 바꿀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었다. 이처럼 그는 부모님의 봉양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정경순은 황윤석이 장릉참봉을 시작한 이후 60개월의 기한을 채우면 현감이 될 자격이 되니 그러면 부모님을 모시면서 벼슬생활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경세의 꿈을 펼치는 것과 부모님 봉양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황윤석에게 현감직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갈망하던 현감 직위를 두 번이나 얻게 되지만 둘 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파직 당했다. 전 생애를 현감 직위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그의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황윤석은 안타까운 마음을 삼키면서 후손들을 위해 현감이 된 과정과 파직의 전말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해 두었다.
부동산과 주식이 들썩이면 많은 사람들이 일희일비한다. 정치권·재계·연예계 등에서 이슈가 터지면 그 사건에 주의를 빼앗기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들은 다사다난한 일상에 휩싸여서 소중한 나 자신의 행복과 내 가족의 평안을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혹은 나의 꿈을 위해서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 치열한 삶 속에서도 자신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황윤석의 삶 속에서 반조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KCI등재

4<육미당기>의 서사 구조와 가부장의 성장

저자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1-150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육미당기>는 독립성 강한 몇 편의 서사를 조합하여 만들어진 소설로, 소재원과 구조에 대해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왔다. 그러나 각기 다른 출처의 하위 서사를 포괄하는 소설 전체의 구성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못한 감이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육미당기>의 서사 구조를 읽는 하나의 시각으로 가부장의 성장을 제시한다. <육미당기>를 구성하는 하위 서사들의 목적의식과 배치 방식에는 가부장의 성장이라는 일정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육미당기>의 서사 축은 크게 소선의 출국-귀국 서사, 소선과 여섯 여성의 결연 서사로 구분된다. 두 서사 축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가부장의 성장을 보여준다. 출국-귀국 서사에서 소선은 부권의 계승자가 된다. 부왕의 적자인 소선은 서자인 형으로부터 패배하여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고, 고국을 떠나 표류한다. 소선에게 주어지는 소설적 과업은 형으로부터 정당한 부권 계승자의 지위를 돌려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보다 강한 힘과 정당성을 얻어야 하는데, 출국과 귀국 사이에 배치된 중국에서의 결연이 그 방법으로 기능한다. 해당 서사의 결과 소선은 형을 물리치고 신라 국왕으로 등극한다.
결연 서사에서 소선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권력을 획득한다. 결연 서사는 크게 세 편의 결연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연이 진행될수록 남녀 인물의 지위와 주도권이 단계적으로 역전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소선의 지위는 눈먼 거지 소년에서 부마이자 고위 관료로 상승하는 반면, 여성 인물의 지위는 공주에서 천애고아로 하락한다. 또한 소선은 수동적으로 여성의 애정을 따르는 존재에서 여성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반면, 여성은 관계를 주도하는 위치에서 소선에게 생존을 의존하는 위치로 추락한다. 결연의 결과 소선은 남성 시각에서의 이상적 가정인 육미당(六美堂)을 완성한다.

KCI등재

521세기 인문학과 한문학 연구의 향방

저자 : 박수밀 ( Park Sumil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1-178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은 대전환의 세기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문학으로서의 한문학의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본 것이다. 20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의 주요 흐름에 대해 살피고 21세기 지금의 현실에서 한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았다. 한문학은 학제 간 연구를 앞장서서 도모해야 하며 지금의 시대가 현실을 좇느라 잃어가는 가치를 살펴 인간다움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문화 현상 및 현실과 연계하여 한문학이 당면한 연구과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았다. 먼저는,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논하고 생태와 환경의 차이 및 고전의 생태 정신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전의 생태 정신은 자연 친화를 이야기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관계론과 존재론의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문화콘텐츠와 고전의 가치에 대해 살폈다. 문화콘텐츠는 고전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교육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고전 전공자가 문화콘텐츠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원형 소스의 발굴과 개발이라고 보고 그 예를 제시해 보았다. 나아가 21세기는 문학에서 문화로, 이데올로기에서 일상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그와 같은 문화 변동의 세기에 한문학이 지금 시대와 호응하고 소통하기 위해 무엇에 주목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인문학으로서의 한문학에 대해 논의하면서 문화적 측면에 주목한 것은 총체적 시야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한문학은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해가는 동시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 지금 시대의 당면 과제와 대화적 소통을 해나가야 한다.

KCI등재

6사서(四書)의 심성론적 연구

저자 : 임헌규 ( Lim Heongyu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9-205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세계의 보편적인 철학 혹은 종교로 인정된 여러 학파에는 고유의 경전이 존재한다. 유교에서도 시대별로 그 강조점을 달리했지만, 五經에서 十三經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경전들이 존숭되어 왔다. 그런데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朱子(1130~1200)가 여러 경전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하고(新注), 특히 四書(三經)를 정립한 이래, 四書는 그 이후 신유학에서 근본 경전으로 존숭되고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이 논문의 과제는 “'四書'란 문명사적으로 볼 때, 어떤 성격의 책이며,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때,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가?”하는 것에 대해 하나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四書란 인간에 근본을 두고, 금수와 구별되는 인간의 본성을 정립하여, 인간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人文사회를 구현할 방도를 제안한 체계이며, 따라서 四書란 심성론(인성론)으로 접근할 때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따라서 四書에 대한 연구에서 심성론적 탐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 논문은 그 기초 연구로서 『논어』에서 시작하여 『대학』·『중용』을 거쳐 『맹자』에서 정립된 心·性·情·意란 글자가 나타난 용례와 의미를 드러내고, 그 체계화 과정을 살폈다. 그리고 이렇게 사서의 심성론적 용어의 의미와 체계화 과정을 살피면서, 그것이 지니는 인간관의 특징과 그 문명사적인 의미를 탐색하였다. 나아가 四書에 나타난 심성론을 통해 인간을 재조명할 때, 오늘날과 같은 AI시대에서 위기의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유교적 인간관이 지니는 의미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제안한다.

KCI등재

7집옥재(集玉齋) 소장 서화(書畵)·금석(金石) 자료와 고종대 문화변동 연구

저자 : 유순영 ( Yoo Soonyou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46 (4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집옥재 수집 서화·금석 자료를 조사, 분석하고 19세기 말 동아시아의 서화와 서적 유통 측면에서 집옥재 자료의 국제성을 살피며, 수집 자료의 성격과 시각 이미지에 근거하여 고종대 미술현상의 변화를 고찰한 것이다.
집옥재에 수집된 서화·금석 자료는 畵史와 畵論書, 畵譜, 명승도류, 인물 판화, 통치 및 교화, 신문물과 근대 시각 지식, 일본 자료, 금석서, 서예와 회화 자료로 이루어져 있다. 서화와 금석 관련 저록, 화보, 서예와 판화, 통치와 개화 관련 서적이 수집되었고, 일본 자료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중국의 전통 지식과 동시대 상해의 서화 경향을 담은 石印本이 대종을 이루는 것은 淸의 변화를 모델로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고자 한 고종의 시대 인식과 상통한다.
집옥재 수집 서화·금석 자료는 點石齋, 申報館, 同文書局, 行素艸堂, 江左書林에서 출판된 것이 다수를 이루며, 점석재와 동문서국 발간본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서구 자본으로 운영된 점석재와 중국인이 경영한 동문서국의 출판 경쟁은 서화 자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 판본의 유통과 서화 유통 공간으로서 상해 서점의 역할도 주목된다.
집옥재 수집 자료의 성격과 시각 이미지에 근거하여 미술문화의 변동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화조, 영모, 사군자에서 상해 화보의 유입과 해상화파 화풍의 확산을 새로 파악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며, 금석학과 골동취미, 길상적 욕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각물과 궁궐 주련을 대상으로 궁중의 서화 취향이 변화된 측면을 고찰하였다.

1
주제별 간행물
간행물명 최신권호

KCI등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95권 0호

KCI등재

사이間SAI
32권 0호

KCI등재

한국시가연구
56권 0호

KCI등재

온지논총
71권 0호

KCI등재

민족문학사연구
78권 0호

KCI등재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KCI등재

반교어문연구
60권 0호

KCI등재

어문론총
91권 0호

KCI등재

한국문예비평연구
73권 0호

KCI등재

동방한문학
90권 0호

KCI등재

현대문학이론연구
88권 0호

KCI등재

세계문학비교연구
78권 0호

KCI등재

한민족어문학
95권 0호

KCI등재

국제어문
92권 0호

KCI후보

한국문화기술
32권 0호

KCI후보

방정환연구
7권 0호

KCI등재

어문연구
50권 1호

KCI등재

한민족문화연구
77권 0호

KCI등재

구비문학연구
64권 0호

KCI등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94권 0호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