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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周易』 「繫辭傳」의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一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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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繫辭傳」의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一考

A Study on Korean Scholars' Commentary to Zhouyi 周易

서혜준 ( Seo Hye-joon )
  • : 한국한문학회
  • : 한국한문학연구 84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4월
  • : 223-250(28pages)
한국한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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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에 대한 『周易大全』의 주석
3.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4.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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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 학자들의 『주역』 이해의 양상을 살펴보려는 취지로 『周易』 「繫辭上傳」 제5장의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이하 ‘一陰一陽’,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을 일별하였다.
程朱는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을 성리학적 理氣論에 입각하여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해석은 『周易大全』에 수록되어 조선 학자들에게 전해졌으며, 이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본고에서는 『周易大全』의 주석과 비교하여 『韓國經學資料集成』에 수록된 조선 학자들의 주석을 살펴보았다.
程朱는 ‘一陰一陽之謂道’에서 陰陽과 道를 각각 氣와 理의 차원으로 나누었으며, ‘繼之者善’과 ‘成之者性’은 이러한 道가 유행하여 陰陽이 운행되어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해석하였고, 이 과정을 氣와 理의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이와 비교하여 살펴본 결과, 조선 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대체로 수용하되 天道와 人性이 연결되는 지점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으며, 이를 性善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하였다. 또 程朱의 성리학적 해석과는 전혀 다르게, 理에 대한 논의 없이 이 구절을 해석한 주석도 존재했다.
The Zhouyi 周易 or Book of Changes is one of the Chinese philosophical canon, and Xici 繫辭 is one of its canonical commentaries made in ancient period. In Song 宋 dynasty, the Cheng brothers (Cheng Hao 程顥 and Cheng Yi 程頤) and Zhu Xi 朱熹 interpreted Zhouyi with the view of Neo-Confucianism. Korean scholars in Joseon 朝鮮 dynasty understood Zhouyi based on the Neo-Confucian view, but there were also some differences between them, which reflected Korean scholars' own unique interests.
This paper examined the Korean scholars' commentary to Xici, comparing to the Cheng brothers and Zhu Xi. This paper especially focused on several phrases of Xici, which are highly abstract : "the alternation of yin and yang called dao" (yiyin yiyang zhiwei dao 一陰一陽之謂道), "carrying on with it is good" (jizhizhe shan 繼之者善) and "completing it is nature" (chengzhizhe xing 成之者性).
The Cheng brothers and Zhu Xi divided the world into physical world and metaphysical world. According to them, yin and yang 陰陽 belongs to the physical world, while dao 道 belongs to the metaphysical world. They thought that the world has created by yin and yang, and dao is the principle of yin and yang. This is how they understand the abstract phrases above.
Korean scholars mostly accepted this point of view, while they were more focused on the theory of human nature than the principle of nature. On the other hand, among Korean scholars' commentaries-although it's a minority view-there was also an opinion that interpreted these phrases in a way other than metaphysics, which is a far different perspective from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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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8-128x
  • : 2733-4910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6-2022
  • :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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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권0호(2022년 08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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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한문학연구 85집 목차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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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항문학총서속집≫ 수록 자료의 성격과 의의

저자 : 김영진 ( Kim Young-j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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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 구자균(1912~1964)에 의해 일제시기에 여항문학에 대한 연구가 처음 시작되었고 『이조후기 여항문학총서』 1, 2차분(1986/1991, 임형택 외 편, 전10책 총 86종 수록)의 출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여항 관련 신자료가 꽤 많이 발굴되었기에 자료의 수집과 公刊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이 인식하고 있었다. 필자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자료 수집ㆍ해제 및 DB구축' (한국학 기초자료 조사사업, 2019.6-2022.5)의 연구 책임자로 성과를 마무리하여 그 결과로 금년에 ≪여항문학총서속집≫ 제1ㆍ2권(27종 수록)이 막 출간되었다. 제3ㆍ4권(40종 수록 예정)은 2023년 2월 출간 예정이고, 제5권(30종 이상 수록 예정)은 2024년 2월 출간 예정인 바, 본고에서는 제1ㆍ2권에 수록된 18세기 시문집과 제3ㆍ4권에 수록될 19세기 시문집을 중심으로 그 성격과 의의를 소개한다.
우선 제1ㆍ2권에 수록된 자료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18세기 핵심 여항시사의 대표 시인들의 시문집이 대거 발굴된 점이다. 둘째, 여항인들이 주도한 조선 후기의 시가사, 음악사, 회화사, 서예사 관련 자료의 확충이다. 셋째, 여항문학 또는 여항문화를 주도한 인물들을 대거 확충했다는 점이다. 넷째, 여항 시사나 특정 교유 그룹이 확인되지 않는 중요 개별 문인 자료의 발굴이다. 다섯째, 善本 자료의 확정과 출판문화사 연구에의 일조이다.
제3ㆍ4권에 수록될 19세기 시문집의 주요 특징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송석원 시사의 핵심 멤버인 노윤적의 시집과 아직 저자 고증은 되지 않았지만, 송석원시사 명단 속에 있는 시인이 분명한 인물의 『詩抄』 가 있다. 또 송석원시사 구성원은 아니지만 이 시기 중인 최고의 시인이라 할 조수삼의 미발굴 시집 『妙杏園詩集抄』가 주목된다. 둘째, 송석원시사 다음 세대의 시인들로 여항시단의 주축이자 또 한편 추사 김정희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문인들인 오창렬, 박기열, 조술증, 유최진, 함진숭 등의 자료 발굴이다. 셋째, 역시 추사와의 교유가 확인되나 중인으로의 뚜렷한 직무(관직)가 확인되지 않은 인물인 이기하, 이구하, 신광현 등의 자료들이다. 넷째, 이상적을 중심으로 한 역관 시인들(부친 이정직, 숙부 이정주, 후배 및 제자 김석준, 변원규, 고영주)의 시문집이다. 김석준과 변원규는 개별 시집 외에 역관 6인 시선인 『해객시초』가 따로 전한다. 6인 중 한 명인 김병선이 편찬한 『화동창수집』도 큰 의미를 갖는 저작이다. 다섯째, 의원의 문집 속에 실린 序跋 및 편지 내용에 언급된 자료들이다. 이현양과 홍현보의 문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섯째, 갑오경장으로 여항인 또는 중인이라는 신분의 구분은 다소 퇴색되었지만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에도 여전히 중인출신 인물의 문화적 활약은 지속되었다. 蘭垞 李琦를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제5권은 尺牘, 遊記, 自傳, 筆記, 詩話, 畫帖, 契會, 詩選 등의 문체가 수록될 예정이다. 다만 본고에서는 자료 목록만 제시하고 그 구체적 내용과 의의에 대해서는 후고로 미룬다.
30여 년 전에 영인된 『여항문학총서』가 86종을 수록하였는 바, 『속집『은 근 100종에 육박한다. 질과 양 모두 비등한 수준을 담보한다고 자신한다. 이전의 『여항문학총서』가한문학, 국문 시가, 예술 문화사, 서울학 등의 연구에 자료의 반석이 되고 연구의 기폭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이번 『속집』 역시 한국학은 물론 동아시아 비교사의 보다 넓은 시각에서 연구, 그리고 문화 컨텐츠로의 활용 등 큰 반향이 있기를 기대한다.


Research on Yeohang literature was first started by Iloh Gu Jakyun( 1912~1964)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full-fledged research was conducted with the publication of the first and second editions of the ≪Yeohang Literature Collection in the late Yi Jo period≫. Over the past 30 years, many researchers have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collecting this basic data and publication because quite a lot of new data related to Yeohang have been discovered.
Now, ahead of the publication of the 1st and 2nd volumes of the ≪Supplementary volume of Yeohang Literature Collection≫, I would like to introduce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new materials contained here. First, A large number of collections of poems by representative poets of the 18th century's core Yeohang Poetry have been excavated. Second, it is an expansion of materials related to poetry, music, painting, and calligraphy in the late Joseon Dynasty led by Yeohang people. Third, it is an expansion of the class in charge of Yeohang Literature. Forth, it is the discovery of important individual literary materials that do not confirm the Yeohang realm or specific group of friends. Fifth, it is a contribution to the determination of the original data and the study of the history of publishing culture.
Next, the main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19th century poetry collection to be included in the 3rd and 4th volumes are as follows. First, the collection of poems by Noh Yun-jeok, a key member of Song Seok-won's poetry group, and Jo Su-sam's unexcavated poems. Second, the next juniors, the mainstay of the Yeohang Poetry group and the writers who were under the influence of Chusa Kim Jung-hee, and the collection of writings such as Oh Chang-ryul, Park Ki-yeol, Jo Sul-jeung, Yoo Choi-jin, and Ham Jin-sung. Third, although the connection with Chusa is also confirmed, Lee Ki-ha, Lee Gu-ha, Shin Kwang-hyun, and Heo Ryeon are the figures who do not have a clear job as middle school. Fourth, Interpreter poets' collection of works centered on Lee Shangjeok. In other words, it is a collection of poems by his father and uncle Lee Jung-jik and Lee Jung-joo, and there are collections of poems by his juniors and disciples Kim Seok-joon, Byun Won-gyu, and Ko Young-joo. In addition to individual poetry collections, Kim Seok-jun and others have been selected from a collection of poems by six interpreters under the name of HaeGekShiCho.
The 5th volume is specifically referred to as other than general poetry collections as follows: literary letter writings, the autobiography, poetic collections and miscellaneous records, a travelogue etc.
This collection is also expected to have a great impact, such as research and use as cultural content from a broader perspective of comparative history in East Asia as well as Korea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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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 후기 가집의 여항인 항목에 대한 재검토

저자 : 권순회 ( Kwon Soon-hoi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77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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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 후기 가집에서 여항인 작가의 작품을 수록한 '여항인 항목'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도하였다. 19세기 전반 이전에 출현한 가집 가운데 이삭대엽 유명씨부에 여항인 작가가 등장하는 가집을 대상으로 여항인 항목의 특성을 살폈다. 총 23종의 가집을 대상으로 살펴본 결과 여항인 38인의 작품 411수를 확인하였다.
여항인 항목은 18세기 초 김천택에 의해 『청구영언』(김천택 편)에 '여항육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정되었다. '여항육인'은 작가명 표기가 유지되는 19세기 전반까지 여항인 항목의 핵심으로 자리하면서 정전화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가운데 18세기 중반 『청구영언』(김천택 편) 다음에 등장한 가집의 여항인 항목에서는 의도적으로 김천택을 배제하고 대신에 사대부인 박인로를 포함했다. 새로운 여항인은 조응현 단 1인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반면에 김수장은 이후 등장한 『해동가요』 계열 가집에서 김천택의 흔적을 되살리며 여항가객의 정통적 맥락을 다시 확립한다. 동시에 김수장 시대에 활동했던 여항인 11인의 작품을 『청구가요』에 별도로 수록하여 여항인 항목의 외연을 확장한다.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여항인 항목이 다양하게 분화된다. '여항육인'과 『청구가요』에 등장했던 작가들이 통합되고 여기에 새로운 여항가객들이 더해진다. 총 20인의 여항가객이 새로 출현하였다. 여항인 항목의 수록 형태도 달라진다. 여항인들이 사대부와 뒤섞여 분산 수록되는가 하면, 항목명을 별도로 부여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가집의 편제가 전면적인 악곡 편제로 전환되고 노랫말이 악곡별로 재배치되는 19세기 전반에 오면 그 규모는 대폭 축소되고 여항인 항목은 점차 자취를 감춘다.


In this paper, an attempt was made to comprehensively review the 'Yeohang-in item', which contains the works of artist Yeohang-in in the late Joseon songbook. Among the songbooks that appeared before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the characteristics of the Yeohang-in item were investigated for the songbooks in which Yeohang-in appeared in the part where the author of Isaacdaeyeop(二數大葉) was known. As a result of examining a total of 23 songbooks, 441 works by 38 Yeohang-in were confirmed.
The Yeohang-in item was first set under the name of 'Yeohang-yukin(閭巷六人)' in Cheongguyoungeon(靑丘永言) by Kim Cheon-taek(金天澤) in the early 18th century. Until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when the artist's name was maintained, 'Yeohang-yukin' became the core of Yeohang-in item, showing a tendency to become canonized.
Among these, the Yeohang-in item of the songbook that appeared after Cheongguyoungeon(edited by Kim Cheon-taek) in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deliberately excluded Kim Cheon-taek and included Park In-ro(朴仁老), a Sadaebu(士大夫), instead. In the new Yeohang-in, only one person, Jo Eung-hyun(趙應顯), was added. On the other hand, in the songbook of the series Haedonggayo(海東歌謠) that appeared later, Kim Soo-jang(金壽長) restores the traces of Kim Cheon-taek and establishes the orthodox context of Yeohang-in. At the same time, the works of 11 Yeohang-in who were active during the Kim Su-jang era are separately recorded in Cheonggugayo(靑邱歌謠) to expand the scope of the Yeohang-in item.
After the late 18th century, Yeohang-in items were differentiated in various ways. Writers who appeared in 'Yeohang-yukin' and Cheonggugayo are integrated into one, and a new Yeohang-in is added here. A total of 18 new Yeohang-ins have appeared. The format of the Yeohang-in items is also different. There are not many cases where Yeohang-in is mixed with Sadaebu, and the name of the item is not given, except for some songbooks. In the midst of this,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when the composition of the songbook is converted into a comprehensive piece of music and the lyrics are rearranged accordingly, the scale is greatly reduced and the Yeohang-in item gradually disapp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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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항문화 연구와 데이터 모델링

저자 : 김지선 ( Kim Ji-sun ) , 류인태 ( Ryu In-ta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9-11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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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항문학 분야의 본격적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 연구로서 졸고 '김지선(2019), 「19세기 여항전기집 수록 인물 관계망 구현 및 분석 연구 -『호산외사』, 『이향견문록』, 『희조일사』를 중심으로」'에서 제안한 여항문학 데이터 모델을 바탕으로, 더욱 확장된 범위의 '여항문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개념적 데이터 모델링을 전개하고 그 고민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였다.
데이터 모델링(data modeling)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로 재현하기 위한 일종의 설계도로서 데이터 모델(data model)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물리적 현실로서 아날로그 환경과 전자적 재현으로서 디지털 환경은 근본적 속성이 다르기에, 연속하는 현실의 대상을 디지털 세계에 분절된 것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이러한 고민이 인문학적 문제의식과 결합할 경우 대상을 개념화하는 절차로서 '개념적 데이터 모델링' 과정은 복잡한 사유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인문학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꼼꼼한 읽기와 해석 그리고 분명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데이터 모델링 과정은, 정교한 인문학 데이터를 구축하게 하는 바탕이자 그로부터 다양한 디지털 인문학적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적 단서에 해당한다.
다종다양한 기록을 매개로 수많은 정보가 복합적 관계를 맺고 있는 '여항문화'의 세계를 디지털 환경에서 입체적인 데이터로 정리ㆍ표현하기 위한 모델의 일환으로서, 본 연구에서 정리한 클래스(Class)는 '인물(Person)', '시사(Community)', '단체(Group)', '기록(Writing)', '서화(Object)', '저서(Book)', '장소(Place)', '공간(Site)', '사건(Event)', '가문(Clan)', '관서(Office)'이며, 개별 클래스에 속한 개체들 사이의 의미적 연결로서 정의한 대표적 관계(Relationship)로는 '저자이다(author)', '지은이다(writer)', '쓴 사람이다(calligrapher)', '그린 사람이다(painter)', '언급하다(mentions)', '수록하다(contains)', '구성원이다(member)' 등이 있다. 해당 클래스와 관계는 '여항문화'와 관련된 지식을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매개로서 한문학, 사회사, 미술사, 문화사 등의 전공 간 장벽을 넘나드는 유효한 채널이 될 수 있다.
추후 여항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문헌을 매개로 조선후기 다양한 직능을 향유한 중인들의 신분적 감각과 그들의 폭넓은 예술 활동까지 다채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여항문화' 데이터베이스를 편찬하기 위해서는, 문학-역사-예술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성격의 논의-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며 그와 같은 행보(movement)를 위한 기초 단서로서 본 연구에서 정리한 내용이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This paper focused on organizing various information about conceptual data modeling for the building of a more extended range of 'Yeohang Culture' database based on the data model of Yeohang Literature proposed by 'Kim Ji-sun(2019), A Study on the Design and Analysis of the Human Network in 19th-century Collections of Biographies of the Commoner Class(Yeohangjeongijip) -Focusing on Hosanoesa, Ihyanggyeonmunnok, and Huijoilsa', a full-fledged digital humanities study in the field of Yeohang Literature.
Data modeling refers to the process of designing a data model as a kind of blueprint for representing objects existing in the real world as data in the digital environment. Since the analog environment as a physical reality and the digital environment as an electronic representation have fundamentally different properties, the transforming an inseparable object of reality into a segmented one in the digital environment is not simple. When these concerns are combined with the humanistic awareness, the process of 'conceptual data modeling' as a method of conceptualizing objects inevitably entails complicated reasoning. On the other hand, the data modeling process based on micro reading and interpretation of humanities texts and clear humanistic awareness is the basis for creating sophisticated humanities data and the basic clue for enabling varied digital humanities study from it.
As part of a model for organizing and portraying the world of 'Yeohang Culture', in which a large amount lot of information is in a complicated relationship through a variety of records, as three-dimensional data in a digital environment, The Class designed through this research includes 'Person', 'Community', 'Group', 'Writing', 'Object', 'Book', 'Place', 'Site', 'Event', 'Clan' and 'Office'. The representative Relationship defined as semantic links between entities belonging to individual classes includes 'A author B', 'A writer B', 'A calligrapher B', 'A painter B', 'A mentions B', 'A contains B' and 'A member B'. As a medium that comprehensively connects knowledge related to 'Yeohang culture', The Class and Relationship can be an effective channel that bridges the barriers between majors such as Sino-Korean Literature, Social History, Art History and Cultural History.
In the future, a comprehensive discussion-research that crosses the fields of Literature-History-Art should be conducted in order to compile a 'Yeohang Culture' database that can extensively look into the status consciousness and artistic activities of the commoner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rough the literature directly or indirectly related to them. it is hoped that the contents summarized in this study might be meaningfully used as a basic clue for such a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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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청시기 행정막부의 사야집단과 왕휘조의 자서전 『병탑몽흔록』

저자 : 김정숙 ( Kim Jeong-su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6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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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아시아 문학사 속 중간층의 성장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작성된 것이다. 한국한문학계의 독자가 조선의 중인계층과 대조하여 살펴볼 수 있도록, 청대 사야집단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모하였다. 지방행정 사회에 유입한 행정막부의 사야를 '중간계층'으로 설정하고, 사야집단의 형성과 역할, 이어서 그 개별 사례로써 왕휘조와 그의 자서전 『병탑몽흔록』 등을 개괄하고 정리하였다.
18세기 청대 사야 집단의 형성 배경은 우선 지방행정 전문가의 결핍이 거시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틈새에서 생계를 해결하고자 한 사람들은 대체로 생원계층이었다. 과거시험에 편중된 관리선발제도는 그 경직성으로 인해 무수한 생원을 양산하였고, 그들 중의 일부가 호구지책으로 행정사야의 공급원이 된 것이다. 행정사야의 역할은 관원의 행정업무를 보좌함은 물론이고 구실아치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사야는 지방관원이 사적으로 초빙한 행정 전문가였으므로, 사야와 主官의 관계는 서로 대등하고 독립적이었으며 상당히 존대를 받았다.
개별 사례로써 소흥사야 왕휘조와 그의 자서전을 대상으로, 왕휘조의 유막생활 및 『병탑몽흔록』의 저술 동기ㆍ내용ㆍ체재, 그리고 당시 주류 학풍과의 관련성 등을 살펴 보았다. 자전적 연보라는 형식은 건륭ㆍ가경시기에 유행한 보첩학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병탑몽흔록『의 편찬은 외적 배경보다 내적원인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덕을 축낸다'라는 아버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야의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형명사야는 왕휘조의 심적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심적 태도가 毋自欺와 실사구시의 삶을 추구하도록 만들었고, 그러한 삶의 내용이 '연보'라는 형식과 결합된 것이다.


This essay has been written to illuminate the motif of the middle class's growing up in the history of east-asian literature. In this paper, I probed whole area for comprehension on the shiye group in Ching china, so that readers of the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can compare readily it to the middle class of Joseon. I firstly set up the shiye who entered the local administrative society as 'the middle class', and then examined the formation and the role of the shiye group in turn, finally analyzed Wang hui-zu's autobiography BingTa-MengHen-Lu as an individual case.
The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shiye group in the 18th. of the Qing dynasty was from a macro-environment which created the lack of local administrative experts. The people who tried to make a living in this niche were mostly the official school students Qing-china. The official-selecting system which was biased towards the imperial examination produced countless the official school studens due to its rigidity, and some of them became a source of administrative affairs as means for livelihood themselves. The role of shiye as the administrative was not only to assist the officials in administrative work, but also to monitor and control sub-assistants of officials. Since shiye was administrative experts invited by local government officials personally,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shiye and the officials was equal as well as independent, and they were highly respected each other.
The Wang hui-zu and his autobiography as an individual case were examined to consider Wang Hui-zu's life of career of governor office, the motive, the content and the format of his writing 'BingTa-MengHen-Lu', and its relevance to the mainstream academic style of the time. The form of his personal annals BingTa-MengHen-Lu had been rooted in the study of family geneology which was popular during the Qianlong/Jiaqing period. However, in the compilation of his writing, the internal cause acted as a bigger factor than the external background.
Because despite of his father's worry about decreasing person's virtue and descendant's portion, Wang selected a legal adviser' path finally, so throughout his whole life as the legal adviser greatly influenced on his attitude of mind, plus on his words and on his actions. His mental attitude made his works and the content of his life to pursue the Wuziqi (毋自欺, no self deceiving) and Shishiqiushi(實事求是, seeking truth in actual facts), and his autobiography combined his such life with the form of 'An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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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79년 간행된 『白雲遺集』 硏究

저자 : 김중섭 ( Kim Jung-seop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20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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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879년에 간행된 李奎報 遺集의 일종인 『白雲遺集』에 대하여 개관하고, 이 유집에 收錄되어 있는 「代仙人寄下界書」의 저자 문제에 관하여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이규보는 고려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그가 남긴 시문은 『東國李相國集』을 통해 전해지다 조선전기에 편찬된 』東文選』에도 상당수 실렸다. 또한 여러 차례 간행된 』동국이상국집』은 顯宗代에 이르러 또 한 번 간행될 정도로, 그의 시문은 조선 후기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규보가 세상을 떠난 지 600년이 더 지난 뒤에 이규보의 또 다른 유집이 출간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백운유집』이다.
『백운유집』은 木活字本 1책으로 간행된 책인데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서 누가 어떠한 경위로 간행하였는지 밝힐 만한 근거가 없다. 지금까지 『백운유집』에 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또한 거기에 수록된 「대선인기하계서」는 『東國李相國集』과 』東文選』에는 「代仙人寄予書」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학계에서는 이 작품을 이규보가 자기 자신에게 쓴 書簡이라고 통상적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백운유집』에는, 『동국이상국집』이나 『동문선』에 실려 있는 이규보의 작품과 對比해봤을 때 그 제목이 다르거나 내용이 다른 경우, 그리고 이규보의 작품이 아님에도 이규보의 작품으로 수록된 경우들이 있다. 더욱이 주목할 만한 내용은 「대선인기 하계서」의 제목 아래 夾註에서 저자를 이규보가 아닌 '林椿'이라고 特記하고 임춘이 이규보를 위로하기 위하여 써준 글이라고 서술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백운유집』에 관한 연구에 착수하여 소재 작품 전체를 살피고 이전의 문집들과 다르게 기록된 작품들에 관하여 자세히 언급하였다. 아울러, 「대선인기하계서」를 쓴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규명하면서 이규보와 임춘의 관계, 작품의 제목과 내용, 사용된 문체와 용어 등 여러 측면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 말 간행된 이규보 유집의 일종을 소개하고 『백운유집』에 나타난 變改 양상들을 파악하였으며 기존과 다른 관점들에 대해 살폈다.
『백운유집』의 내용 중에는 신뢰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규보의 문집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할 때 이규보의 해당 유집은 충분히 검토의 대상이 될 만하다. 또한 본고에서는 『백운유집』처럼 후대에 새롭게 간행된 고려 문인의 유집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力說하였다.


This research overviewed Baekun-yoojip(白雲遺集) which is one of Lee Gyu-bo(李奎報)'s collection of works printed in 1879, especially focusing on clarifying the author of Daeseoningihagyeseo(代仙人寄下界書) contained in Baekun-yoojip.
Lee Gyu-bo is the representative literatus of middle Goryo period. His literary works are compiled in his Dongkuk-leesangkukjip(東國李相國集), which were recognized as outstanding works even quite amount is included in Dongmunseon(東文選). After 600 years after his death, another Collection of works is published, which is Baekun-yoojip(白雲遺集).
Baekun-yoojip is a single volume book, printed in wooden type. However there are no introduction or epilogue, therefore it is hard to specify who published it for what reason. So far, no proper research has been conducted on Baekun-yoojip. Also, Daeseoningihagyeseo was published under the title of Daeseoningiyeoseo(代仙人寄予書) in Dongkuk-leesangkukjip pulished in Yeongjo period and Dongmunseon(東文選) published by Gyeongin publishing company. Academia has traditionally regarded this work as a letter written by Lee Gyu-bo to himself.
However in Baekun-yujip, some of the works are different in title or content if compared with Lee's Dongkuk-leesangkukjip or Dongmunseon, or even other person's work is suggested as Lee's writings. What is noteworthy is that in the annotation under the title of Daeseoningihageiseo, the author was specifically mentioned as Im Chun(林椿) not Lee Gyu-bo, and purpose of this letter was from Im Chun to comfort Lee Gyu-bo.
Accordingly, I began a study on Baekun-yoojip, looked up the whole book, and elaborated on the works that were written differently from the other editions from previous Collections. Moreover while specifying the author of Daeseoningihageiseo, it was required to analyze various aspects of the letter such as the relationship between Lee Gyu-bo and Im Chun, the title or the content of the work, and the style and terms used. From this, the research tried to deal with changes or revisions of Baekun-yoojip, Lee Gyu-bo's collection published in the late Joseon(朝鮮) Dynasty, with different perspective from previous researches.
Though there are some parts in Baekun-yoojip which is not yet credible, still this book is subject of research for synthetic philological understanding of Lee Gyu-bo. Also it is clear that conducting a study on the collections of Goryeo(高麗) writers which have revised edition published in later time is necessary, therefore emphasized through this research and hope that further researches will fo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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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 시대 '春王正月' 이해의 흐름

저자 : 김민구 ( Kim Min-ku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4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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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尊周大一統의 의미를 내포한 '春王正月'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파악하고자 하였다. “元年春王正月”은 『春秋』 경문의 첫머리에 적힌 글로, 시기는 봄, 1월을 가리킨다. 그런데 周曆을 따져보면, 실제로 이는 겨울 11월이다. 중국의 여러 학자들은 이 괴리를 포착하고 나름대로 근거를 붙여 이해하려 하였다.
胡安國ㆍ程頤ㆍ朱熹ㆍ王守仁ㆍ顧炎武 등 중국학자의 '春王正月'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의 『春秋』 이해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胡安國은 孔子가 본래 겨울인 子月을 의도를 갖고 '봄'이라고 표기했다는 일명 '以夏時冠周月'論을 주창하였는데 이는 『公羊傳』의 '大一統'의 의미와 程頤의 논의를 계승한 것이다. 朱熹는 胡安國의 의견과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그가 지은 『胡氏傳』을 높이 평가했다. 胡安國의 주장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공적인 논의에서 정설로 취급되었다. 王守仁은 胡ㆍ程ㆍ朱의 논의와 결을 달리하며 '孔子는 周의 역법에 쓰인 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張維와 조선의 일부 문인은 王守仁의 논리를 긍정적으로 수용했지만 宋時烈 등 여러 학자의 반론 또한 거셌다. 이 논리가 對策文과 같은 公的인 글에 등장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正祖 때에 이르러 顧炎武의 『日知錄』이 정조 및 당시의 핵심 관료들에게 유행하였는데, 이때부터 顧炎武의 '春王正月'에 대한 설은 常論이 되었다. 공적 영역의 정설과 학자 개인이 가진 이설의 충돌, 이들의 위치가 바뀌는 과정은 학술사적으로 흥미로운 영역이 아닐 수 없다. 본고는 '春王正月' 개념의 이해 과정을 추적하고자 노력하였다.


This paper studied to understand how the word “春王正月”, which implies the meaning of 尊周大一統, was understood in the Joseon dynasty era. “元年春王正月” is written at the beginning of Spring and Autumn Annals(春秋), which refers to spring and January. However, considering the calendar of the Zhou Dynasty, “春王正月” is actually winter and November, not spring and January. Several Chinese scholars have captured this gap and tried to understand it with their own grounds.
The discussion of understanding “春王正月” by Chinese scholars such as 胡安國ㆍ程頤ㆍ朱熹ㆍ王守仁 and 顧炎武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understanding of Spring and Autumn Annals in Korea.
胡安國 advocated the so-called “以夏時冠周月”. This is the content that 孔子 changed the original season and calendar through his unknown intentions, which inherits the consciousness The Commentary of Gongyang (公羊傳) and 程頤. Although 朱熹 has a subtle difference from 胡安國's opinion, he praised The Commentary of Hu(胡氏傳), which 胡安國 wrote. 胡安國's argument was treated as an established theory in public discussions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to the late Joseon Dynasty.
王守仁 argued that '孔子 was just written as it was used in the calendar of the Zhou Dynasty,' different from the discussions and results from the previous scholars. Some scholars of Joseon, such as 張維, positively accepted 王守仁's argument, but many scholars, such as 宋時烈, also argued strongly. It seems that it took a long time for this argument to appear in public discussion.
By the time of King Jeongjo, a book named Ri Zhi Lu(日知錄) by 顧炎武 was popular with key officials of King Jeongjo and the time, and from then on, 顧炎武's theory of “春王正月” became a general theory.
The conflict between the established theory of the public domain and the dissenting theory of individual scholars, and the process of changing their positions are interesting areas in academic history. This paper tried to track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the short word “春王正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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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선 중종대 간행 호불 논서 『東吳沙門隱夫顯正論』에 대하여

저자 : 박기완 ( Park Ki-wa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7-290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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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부현정론』은 조선 중종대 조정의 불교 관련 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던 무렵, 지방의 사찰이 증가하고 목판본 불서 간행이 급증하던 때에 간행된 호불 논서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 호불 논서인 『유석질의론』과 『은부현정론』은 모두 연기사에서 최초로 간행되었는데, 전 시기 간행된 기화의 『현정론』이 수세적 차원의 호교론을 펼치는 것과 달리, 이 두 책은 각 저자가 개성적 필치로 다양한 논거를 사용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불교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문답의 구조를 띠고 있는 『은부현정론』은 기타 호불 논서와 달리 가탁이라는 문학적 형식을 빌려 가상의 시공간을 설정했고, 마지막 부분에서 『장자』와 「노자한비열전」 등에 나오는 표현을 이용해 불교가 유학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다 문학적으로 구현해내었다.
『은부현정론』은 儒佛을 막론하고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전거로 활용하였다. 다만 불경의 표현보다는 유학서의 표현을 사용한 경우가 더 많으며, 이는 저자의 박학과 화려한 문장 구사를 보여준다.
이 시기 불교는 그 전통이 단절되기보다는 오히려 강학용 저서를 출간함으로써 전통을 더욱 공고히 다져가거나, 다양한 개성적 저술을 출간하는 면모를 보인다. 연기사에서 최초로 간행한 『은부현정론』의 문체적 특징과 저술 형식은 그 자체로 조선 시대 불교의 새로운 역사상을 보여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The discussion on illuminating the Orthodox Dharma of Dongoeunboo is a treatise professing to protect Buddhism published when governmental discussions concerning Buddhism were not proceeded effectively in the Jungjong period during which constructions of Buddhist temples increased and publication of Buddhist books was sharply rising. The discussion between Confucian and Buddhist and The discussion on illuminating the Orthodox Dharma of Dongoeunboo, representative Buddhism protecting treatises in that period, were published in Yeonki temple initially. Whereas The discussion on illuminating the Orthodox Dharma of Kiwha in the preceding period claimed to protect Buddhism in a passive way, these two publications emphasized the superiority of Buddhism more actively as each authors utilized one's characteristic style of writing and presented various reasons.
Unlike other Buddhism protecting treatises, The discussion on illuminating the Orthodox Dharma of Dongoeunboo comprising question-answer format embodied literarily that Buddhism is superior to Confucianism establishing imaginary setting and referring to expressions in Zhuangzi and Laozi Han Fei Biography in the last part adopting the form of literature.
The discussion on illuminating the Orthodox Dharma of Dongoeunboo utilized considerably large pools of publications as references regardless of whether it is Confucian or Buddhistic. Merely, it gave preference to expressions in Confucian publications and this aspect demonstrates the author's erudition and his splendid writing skills.
During this era, Buddhism manifested its aspect to embrace Confucianism publishing diverse types of publications rather than severing its tradition. Concerning The discussion on illuminating the Orthodox Dharma of Dongoeunboo published in Yeonki temple, stylistic features of it and the aspects concerning its appreciation are meaningful in that they reveal the novel aspect of history of Buddhism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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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동학골남씨와 수락산 玉流洞의 주인 남용익 -한문학 자료가 지닌 인문 유산 콘텐츠로써의 활용 방안을 겸하여-

저자 : 신영미 ( Shin Young-mi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1-347 (5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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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壺谷 南龍翼(1628∼1692)과 그의 世系가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일대에 남긴 자취를 탐구하고 그것을 인문 유산 콘텐츠로 활용하는 데 있다. 남용익과 의령남씨는 한 지역에 뚜렷한 종적을 남긴 인물과 가문의 예시로, 특정 개인과 특정 가문을 드높이는 데 이 글의 취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남양주시 별내면은 楊州 松山에 속했고 청학리 일대는 東鶴골, 東海谷, 陶谷 등으로 불렸다. 의령남씨와 양주 송산의 인연은 조선조 개국공신인 南在 때부터지만, 이들이 청학리를 근거지로 둔 '동학골남씨'로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는 16세기 南孝義 때부터이다. 남효의의 6세손인 남용익은 근기 서인에서 노론이 되었고, 그 후손들은 18세기부터 구한말까지 경화세족으로 명성을 유지하였다.
별내면 청학리 일대는 구한말까지 田莊으로 기능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남씨가 아직도 많은 이유는 先塋과 땅을 비롯한 선조들의 유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자취를 찾아 답사하던 중 茂朱公 南復始 묘소가 남용익의 묘소로 誤認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간 도난이라 추정된 남복시 묘소의 문인석 머리를 발굴하고, 별내면 청학리 청학근린공원에 남용익의 世系가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에 관해서도 조사하였다.
수락산 玉流洞은 동학골의 명소로 남용익이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이는 『호곡집』 내 숱한 시로 증명된다. 더욱이 남용익과 그곳을 찾았던 李喜朝가 훗날 옥류동 암벽에 玉流洞 글자를 새겼는데, 최근 이 글자가 발견됨에 따라 구체적인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현재 옥류폭포가 있는 곳으로 여전히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다. 한문학 자료를 매개로 시민들에게 향유될 필요가 있다고 보아 관련된 시와 기록을 소개하였다.
자연경관과 역사 경관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수락산 옥류동은 명승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이에 인문 유산의 콘텐츠화 방안으로 표석 설치와 QR 활용 등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묘소 고증과 유물 발견과정을 거치며 체감한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안전 신문고 Application”을 모델로 한 “문화재 신문고 Application”의 개발을 제안하였다. 이상의 약소한 아이디어가 관, 시민, 연구자, 문화재 소유주 등 다양한 주체가 협조할 수 있는 유연한 형태의 플랫폼 구축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plore the traces left by Hogok(壺谷) Nam-Yong-Ik(南龍翼, 1628∼1692 and his extended family(世系) in the area of Cheong-Hak-ri, Byeol-Nae-Myeon, Nam-Yang-Ju-Si and to use them as a humanities heritage. Nam-Yong-Ik and Dong-Hak-Gol-Nam's are examples of people and families who left distinct traces in a region. The focus of this article is not on raising a specific individual and a specific family.
In the past, Byeol-Nae-Myeon belonged to Song Mountain(松山), and the area of Cheong-Hak-ri, was called Dong-Hak-Gol(東鶴골), Dong-Hae- Gok(東海谷), and Do-Gok(陶谷). The relationship between Ui-Ryeong- Nam-Ga(宜寧南氏) and Song Mountain in Yang-Ju dates from Nam-Jae(南在), the founding contributor of the Joseon(朝鮮) Dynasty. But it was from Nam-Hyo-Ui(南孝義) in the 16th century when they revealed their presence as Dong-Hak-Gol-Nam-Ga(東鶴골南氏) based in Cheong-Hak-Ri. Nam-Hyo-Ui's sixth-generation descendant, Nam-Yong-Ik, changed from Seo-In(西人) to No-Ron(老論), and with the closing of the 17th century, his descendants rose to the ranks of the Gyeong-Hwa-Se-Jok(京華世族) and maintained the reputation of a prestigious family.
Cheong-Hak-ri, Byeol-Nae-Myeon, served as their manor until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he reason why there are still many Nam's inhabitants here is that the heritage of their ancestors, including family grave(先塋) and land, remains.
While searching for its traces, I discovered that the grave of Nam- Yong-Ik's Great-grandfather was being misinformed as grave of Nam- Yong-Ik and correct it. In addition, I found the head of Moon-In-Seok(文人石), a grave in Nam-Bok-Si(南復始), which was presumed to be stolen, and described the related information. Also I mentioned the last traces of Nam-Yong-Ik's descendant at Cheong-Hak-Neighborhood Park in Cheong-Hak-ri.
Ok-Ryu-Dong(玉流洞) of Su-Rak Mountain(水落山), a famous place in Dong-Hak-Gol is a place where Nam-Yong-Ik visited for life. Furthermore, the letters of “Ok-Ryu-Dong” engraved on the rock wall were recently discovered, allowing the specific tourist attractions of Nam-Yong-Ik to be specified. This area is still visited by many due to its beautiful natural landscape. Seeing that Korean literary materials need to be used here, I have introduced the poems and related records left behind by Nam- Yong-Ik.
Ok-Ryu-Dong of Su-Rak Mountain is scenic spot. Accordingly, several opinions were presented, including the installation of a cultural heritage sign and the use of QR. In addition, I proposed the development of the "Cultural Heritage Notify Application" modeled after the "Safety Notify Application" and presented ideas on a platform for various subjects such as government offices, citizens, researchers, and cultural property owners to coope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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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19세기 북경 유리창 오류거 서점과 조선 지식인

저자 : 왕연 ( Wang Jua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49-38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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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는 동아시아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였고, 서적의 유통과 매매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서적 유통과 매매의 집중지로서의 유리창 서점가는 문화교류의 중심지가 됐다. 서점가의 서점과 서적상도 서적의 유통 과정에서 문인들과 인연을 맺어 문화교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건륭제 때 『사고전서』의 편찬을 위해 사고전서관이 생기면서 민간 善本을 찾아주는 오류거 서점의 역할이 특히 활성화되었다. 오류거 서점 주인은 청나라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했을 뿐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과도 오랜 기간 밀접히 친분을 유지해 왔다.
이 논문에서는 청나라 문인들의 史料와 조선 사신의 연행록 관련 자료를 조사하여 오류거 서점의 당시 위상과 영향을 정리하였다. 오류거 서점의 경영이념, 판매방식, 서적 서목, 문인들과의 교유 등에 관한 내용을 한중 양국 지식인의 기록을 통해 상세하게 검토하여, 오류거 서점이 서적을 매개로 어떻게 당시 문화교류의 가교역할을 했는지와 이덕무ㆍ박지원ㆍ박제가ㆍ유득공ㆍ남공철로 대표되는 조선 사신들과 어떻게 밀접한 연계를 지속해 왔는지 살펴보았다.
오류거 서점 주인인 도씨 부자는 紳商의 고상한 품성으로 한중 지식인의 찬사를 받았고, 결국 오류거 서점을 한중 지식인이 신뢰하는 문화교류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 명성은 조선 사신들이 연행록에 상세히 기록하여 조선 지식인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북경에 간 조선 사신들도 오류거 서점을 청나라 문인들과 교류의 거점으로 삼고 오류거 서점에서 청나라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The 18th and 19th centuries were a period of active cultural exchanges in East Asia, and the flow of books was also an important part. The Liulichang Bookstore Street, as a concentration of books, has naturally become a center of cultural exchange. Bookstores and book dealers in Bookstore Street have also become connected with literati due to the flow of books, and have become an important link in cultural exchanges. With the establishment of Institute of Sikuquanshu, Wuliuju Bookstore, which searched for rare folk books for Institute of Sikuquanshu, was particularly active during this period. Not only did Wuliuju Bookstore make extensive contacts with the literati of the Qing Dynasty, but also maintained a long-term close relationship with the Chosun intellectuals.
This article sorts out the influence of Wuliuju Bookstore at that time by examining the historical materials of Qing literati and relevant materials of Yeonhaengrok燕行錄. Focusing on the business philosophy of Wuliuju Bookstore, sales methods, book lists, and contacts with literati, carefully searched the records of Chosun and Qing literati, and explored the role of Wuliuju Bookstore as a bridge in cultural exchanges at that time, using books as a medium. And close ties with The Chosun envoys represented by Lee Deok-mu(李德懋), Park Ji-won(朴趾源), Park che-ga (朴齊家), and Yoo Deuk-Kong(柳得恭), and Nam Gong-cheol(南公轍).
The owner of Wuliuju Bookstore, Tao and his son, won the praise of Chosun and Qing literati with the noble character of Confucian businessmen, and finally made Wuliuju Bookstore to be the cultural exchange place trusted by Chosun and Qing literati. Its reputation was widely circulated among Chosun Intellectuals because of the detailed records of Wuliuju Bookstore in the Yeonhaengrok, so the Chosun envoys to Beijing also regarded the Wuliuju Bookstore as a base for exchanges with the Qing Dynasty literati. At the Wuliuju Bookstore, the Chosun envoys had In-depth and extensive communication with the Literati of the Q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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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집 목차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 (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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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효전 심노숭의 역병 체험과 질병 서사

저자 : 정우봉 ( Chung Woo-b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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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 疫病이 유행하던 상황에서 역병 체험을 다룬 글을 질병 서사의 관점을 활용하여 분석하였다. 특히 역병 체험을 다룬 많은 인물들 가운데 풍부한 자료를 남긴 孝田 沈魯崇(1762~1837)에 주목하였다. 심노숭의 글에서 역병과 관련한 질병 서사의 양상을 크게 '육체의 증언으로서의 질병 서사', '말하는 몸을 통한 공감의 질병 서사', '육체의 소멸과 애도의 질병 서사'로 구분하였다. 세 가지 양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육체가 반응하는 양상 및 그 변화의 과정을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 육체적 고통만을 서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고통까지 함께 서술하였으며, '말하는 몸'을 통해 주체를 재발견하였다는 점, 이와 같은 육체 증언으로서의 질병 서사는 심노숭의 육체에 대한 인식과 연관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또한 심노숭에게 있어 성적인 욕망에 대한 긍정, 음식에 대한 감각과 취향 등은 모두 육체적 욕구와 욕망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와 연결된다. 인간을 살아있는 감각적 주체, 육체적 주체로 인식하는 연장선 위에서 심노숭은 역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육체적 반응을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육체적 고통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자아에 대해 새롭게 성찰할 수 있었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로서, 욕망과 감정을 지닌 개별적 자아로서 긍정하였던 일련의 사고와의 관련 속에서 우리는 역병 체험 서사에 나타난 육체의 증언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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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질, 학을 떼게 만드는 고통의 기억 -심원열의 「침질기」를 중심으로-

저자 : 박동욱 ( Pak Dong-u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7-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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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遠悅(1792∼1866)은 학질에 대한 인상적인 기록인 「寢疾記」(권5)를 문집에 남겼다. 「침질기」는 총 118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인 沈魯巖(1766∼1811)의 發病부터 시작하여 투병과 臨終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일기 형태로 상세히 기록했다. 이 기록은 病錄을 첨부한 임종 일기로 보아야 한다. 「침질기」는 병세가 심각해진 6개월을 그 대상으로 했으니 임종 장례 일기 중에 가장 긴 시간과 분량을 기록한 자료 중 하나다. 학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여러 명의 의원을 찾아 나서고 그들로부터 처방을 받아 이루어졌던 다양한 투약이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가족의 대응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내용은 당일에 있었던 일화, 담당 의원과 각종 처방, 아버지의 몸 상태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루에 1-2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그날 중요한 변화가 있을 경우에는 여러 칙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당일의 기록을 적고 있지만 그 일에 대해 훗날에 느꼈던 감회를 追思, 追念, 追書 같은 형식으로 보충해 놓았다. 중간중간에 먹으로 지운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정돈되지 않은 초고의 상태로 보인다.
등장 인물은 심노숭, 심노암 형제와 심원열 그리고 의원 등으로 한정했다. 통상 내방객들을 다루는 다른 기록들과 달리 「침질기」에서는 다른 인물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을 확실히 하여 온전히 아버지 병과 관련된 일에만 중심을 두고 있다. 있었던 일들을 대화의 형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런 기록의 특성상 감정을 상당히 절제해서 건조하게 기술되기 마련이지만, 「침질기」는 서정적인 면모나 위트가 드러나서 문학성 또한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침질기」는 어떤 기록보다 학질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관련된 의원과 처방들이 매우 소상히 남겨져 있어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투약에 대한 기록은 훗날 처방의 근거나 중복 투약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이러한 객관적인 기록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환자 본인과 환자 가족들의 대처와 반응이었다. 심노숭과 심노암의 우애는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침질기」에서 두 사람의 형제애를 다시금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병세가 심각해질수록 안타까워하고 스스로 자책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일어날 죽음이란 사건을 인정하고 자신의 부재 속에 남겨질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을 드러낸다. 부자가 죽음이란 사건을 함께 앞에 두고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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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년의 홍역-權相一의 『淸臺日記』에 기록된 감염병의 시간

저자 : 김하라 ( Kim Ha-ra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7-125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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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의 하나인 홍역에 초점을 두고 『淸臺日記』의 질병 서사를 구축하고자 했다. 46년간 홍역을 의식하며 살았던 저자 權相一(1679∼1759)의 생애를 다음 세 국면으로 나눠 기술했다.
1707년, 경상도 尙州에 거주하는 29세의 擧子 권상일은 홍역이 유행하는 가운데 향시에 응시하기 위해 昌寧까지 불안한 여정을 왕복했다. 홍역의 '未疫者'였던 그는 안전을 위해 감염병에 오염된 지역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이동 경로를 통해 창녕 이북의 玄風과 善山, 金泉, 상주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홍역이 유행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1719년과 1720년, 40대 중앙관료 권상일은 서울 倉洞의 우거와 상주의 고향집 사이를 오가며 홍역이 유행하는 양상을 기록했다. 권상일의 아들 權煜, 왕세자 李昀 등 어린이와 젊은이 들이 경향 각지에서 홍역을 치른 사례를 볼 수 있으며, 감염병에 오염된 구역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미역자' 권상일의 행동원칙이 관철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1752년과 1753년, 상주의 고향집에 머물던 70대 노인 권상일은 조정의 출사 요청을 거듭 거절해야 하는 명망 있는 노학자였다. 노년까지 홍역의 '미역자'였던 권상일은, 자신을 돌보고 가정과 지역 공동체를 보살피며 감염병 상황에서 관혼상제의 일상을 가능한 한 안전하게 이어나가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감염병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조심한지 46년 된 1753년 정초에 75세의 권상일은 마침내 홍역을 잘 치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여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46년간의 홍역을 기록한 권상일의 『청대일기』는 오랜 감염병 시절을 통과하는 개인 및 공동체의 삶의 모습과 그 시간에서 얻게 된 질병과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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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후기 살 곳 찾기 현상의 동인과 다층성 -십승지와 『택리지』 그리고 그 주변-

저자 : 양승목 ( Yang Seung-mo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7-16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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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살 곳 찾기'라 명명한 조선후기 유력한 문화현상을 추동한 배경 및 그 성격과 양태를 탐구해본 것이다. 살 곳 찾기 현상은 17세기 전란 직후 소위 십승지로 대표되는 當亂保身의 땅을 찾는 움직임으로부터 태동한 것으로, 조선후기를 관통하여 20세기 초반까지도 상존하였다. 먼저 이러한 지속과 만연에 대해 인민이 마주한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그 실질적인 동인을 고찰해보았다. 군사행동이 동반된 역모, 이상기후에 따른 천변재이와 그로 인한 기근과 역병, 세금의 부과와 징수에 있어서 만연했던 비위 등 국가적 차원의 전란이 종국된 뒤로도 개인으로서 극복하기 어려운 위난의 상황은 끊임없이 박도하였으며, 이러한 자연적/사회적 재난 요소 및 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야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을 희구하게 한 동력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어 살 곳 찾기 현상이 가진 다층적 면모에 대해 상론하였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논제에 대한 검토로 구성하였다. 하나는 십승지와 『택리지』의 긴밀하고도 상호적인 관계를 고구한 것이다. 재난을 피해 살 수 있는 곳을 찾던 움직임은 사대부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만한 고장을 물색하는 계기와 문법을 제공하였으며, 이로부터 탄생한 고 품질의 결과물은 다시 피란ㆍ보신의 공간을 찾는 관심과 시선이 진화되는 양분이 되었다는 것, 따라서 살 곳 찾기 현상은 기층의 可生處 찾기와 상층의 可居處 찾기라는 복수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음을 특기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또 하나는 이러한 살 곳 찾기 현상에 대한 반류, 즉 대척점에 있었던 주장과 사유를 살펴본 것이다. 자신의 거처를 버리고 '살 곳'을 찾아 떠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은 실로 다양한 자료에서 확인 되는데, 이러한 비판의식은 결국 樂土在心, 곧 진정 살기 좋은 곳이란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유가의 전통적인 福地論으로 수렴됨을 짚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재난과 십승지, 십승지와 『택리지』, 이로부터 큰 조류를 형성했던 살 곳 찾기 현상, 그리고 그 반류에 이르기까지 각각이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를 하나의 입체적인 문화현상으로서 보아야 함을 논구하였다. 이는 재난과 십승지 그리고 『택리지』를 맥락화하여 이해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조선후기 다양한 형태의 공간탐색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동향을 조망하는 시좌와 논리를 마련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번 논의에서 수립한 살 곳 찾기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문화사와 문학사의 연동 또 역동을 드러내는 것을 차후의 과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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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 대한 조선 경학자들의 변석 -'察'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호 ( Lee Young-ho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5-19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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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중용장구』 「서문」에서 제시한 '16字 心傳'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유학의 중요이념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16자 심전에서 '정밀하게 살핌[精察]'은 핵심적 가치였다. 이 살핌으로서의 마음에는 살핌의 대상으로서의 人欲과 살핌의 주체로서의 道心이 공존한다. 주자의 이러한 논의는 『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이후 조선 경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퇴계는 '살핌[察]'으로서의 마음을 거론하면서, 주재성과 작용성을 동시에 고려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살핌의 주체로서의 도심과 살피는 대상으로서의 인욕을 통섭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 이후, 조선경학사에서는 그 주재성과 작용성의 한쪽에 치우치거나 이 둘을 통섭하는 논의가 일어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조선 경학, 더 나아가 마음을 중심에 둔 조선유학의 양상을 다채롭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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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18세기 조선맹자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정전제 논의를 중심으로-

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1-22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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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18세기 당대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조선 맹자학의 특징적인 국면을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맹자가 주장한 정치경제론의 중요한 논점을 이루는 「등문공상」 3장의 '井田制 논의'가 그 관찰 대상이다.
토지를 나누어 주는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한 정전제 논의는 '어진 정치는 경계를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견지했다. 그 때문에 이후 유교의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데 요청되는 최소한의 경제적인 토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식있는 경세가들에 의해 정전제는 꾸준히 호출되며 그 실현가능성이 검토되었다. 개인의 도덕수양이 아니라 국가를 다스리는 기본방략의 차원에서 논의되기 때문에 수기치인의 국면, 곧 경세적 실천인 治人의 맥락에서 이 논점은 그의 경전읽기가 얼마나 경세적 실천의 지향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에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정전제 논의에서 조선의 儒者들은 당대 동아시아의 지평에서도 그 문제의식의 심각성, 논의의 치밀함, 경세적 방략과의 연결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 문제는 굳이 주자의 어떠함과 비교하는 데서 그칠 필요없이 그 자체로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논제로 전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논의에서는 실현되지 않았던 경세적 기획의 진정성을 짚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접근법으로 '주석자의 지향과 태도'를 중시하여 그 부분을 좀 더 치밀하게 검토했다.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과 학술사적 전통을 지니는 나라들이 하나의 보편적인 주제로 학술을 논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하나의 경전을 주제로 서로 상이한 견해가 집결된 경학은 당대의 상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인 도덕수양의 논제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전제의 논의와 그에 대한 비교는 단순히 경학 뿐만이 아니라 당대 동아시아를 이해하는데 널리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정전제는 조선학자들이 실현을 염두에 두고 깊은 학술적 노력와 고투를 거듭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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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周易』 「繫辭傳」의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一考

저자 : 서혜준 ( Seo Hye-joo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3-25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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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 학자들의 『주역』 이해의 양상을 살펴보려는 취지로 『周易』 「繫辭上傳」 제5장의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이하 '一陰一陽',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을 일별하였다.
程朱는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을 성리학적 理氣論에 입각하여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해석은 『周易大全』에 수록되어 조선 학자들에게 전해졌으며, 이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본고에서는 『周易大全』의 주석과 비교하여 『韓國經學資料集成』에 수록된 조선 학자들의 주석을 살펴보았다.
程朱는 '一陰一陽之謂道'에서 陰陽과 道를 각각 氣와 理의 차원으로 나누었으며, '繼之者善'과 '成之者性'은 이러한 道가 유행하여 陰陽이 운행되어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해석하였고, 이 과정을 氣와 理의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이와 비교하여 살펴본 결과, 조선 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대체로 수용하되 天道와 人性이 연결되는 지점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으며, 이를 性善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하였다. 또 程朱의 성리학적 해석과는 전혀 다르게, 理에 대한 논의 없이 이 구절을 해석한 주석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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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한국 근대시기 독본류 교재로 바라본 한문고전교육의 의미 -일제시대 총독부 출간 『中等敎育 朝鮮語及漢文讀本』을 중심으로-

저자 : 홍유빈 ( Hong You-b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1-28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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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본통치기에 출간된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시기 독본류 교재를 통해 한문고전교육의 의미를 돌아본 논문이다. 유구한 漢學의 전통이 이어져 온 한국에 있어서, 과거 조선시대의 서당 교육과 향교 등에서 가르쳤던 훈몽서나 儒家 서적들과 그에 대한 학습은 '한문고전교육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개화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교육에서의 한문교육은 개별 교과의 하나로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고 한문고전교육 역시 그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화기는 한학과 한문교육에 대한 열기가 여전히 유지되었던 시기였으며, 韓ㆍ日 병합에 의해 일본의 통치 하에 들어간 시기에도 어문정책에 있어서는 漢字ㆍ漢文의 몫이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 논의하는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은 그 이전에 사용되던 『보통학교 학도용 한문독본』이나 『(고본)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 등의 교재에 비해 한문의 비중은 적지만, 단문의 경우 우리말 번역을 붙이고 장문에는 제목과 출전을 밝히는 등 이전의 교과서에 비해 진일보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장문으로 수록된 글 역시, 일제시기의 초창기 독본류 교과서의 경우 경서류 위주의 중국 문장 일색으로 구성된 것에 비해,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에서는 중국 고전을 포함하여 『삼국사기』나 『증보 산림경제』와 같은 조선의 고전 문장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예문들 위에 頭註의 형식으로 저자 소개나 서지 및 어려운 어구에 대한 풀이를 간략하게 적어놓아 한문고전에 대한 교양을 쌓는 데에 좋은 길잡이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서는 한문과 한문고전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재에 있어서도 일정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본서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본서에 수록된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자세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자 본서의 첫 권인 1권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한문고전 교육 교재로서의 특징과 의의를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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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45년 李穀의 上都 행로와 心迹

저자 : 이승수 ( Lee Seung-su )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7-32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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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345년 이곡의 상도 행로를 고찰한 것이다. 상도 행로를 논하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 14세기 중엽 麗元 관계와 이곡의 생애와 원대 兩都制의 운영과 大都 - 上都 사이의 교통로 운영 실태를 정리하였다. 당시 원의 大都와 上都 사이에는 네 개의 교통로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중 이곡이 이용한 길은 居庸關 - 八達嶺 - 岔道口 - 統幕站 - 槍竿嶺 - 李老谷 - 雕窠站 - 龍門峽 - 李陵臺 등을 잇는 驛路였다. 이곡이 이 길을 오가고 상도에 머문 체험은 9제 12수의 시로 남아있다. 이 시에는 북방 길을 걷는 여행자의 경이와 향수, 사방이 광막하게 펼쳐진 초원의 장관, 세계 제국의 위용과 황실 연회의 문화 등이 담겨 있다. 이곡의 상도 여행은 한 개인의 경험이며 동시에 역사의한 자취이다. 이곡이 여행에서 시를 지어 남겼으니 그곳은 또 우리 문학의 산실이며 배경이 된다. 이 글은 한국 역사의 현장이자 문학의 영토로써 오늘날 북경에서 내몽골 錫林郭勒盟 正藍旗 사이의 경로와 지리를 재구하고, 그 위에서 있었던 체험과 감회를 살펴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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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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