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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 대한 조선 경학자들의 변석 -‘察’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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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 대한 조선 경학자들의 변석 -‘察’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The Discussed Interpretations about the Chapter of Jeongsimsusin in Daehak Jangggu of Confucian Scholars of the Joeson Dynasty -Focusing on the Issues Raised on 'Observing(察)' -

이영호 ( Lee Young-ho )
  • : 한국한문학회
  • : 한국한문학연구 84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2년 04월
  • : 165-190(26pages)
한국한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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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주자의 ‘察’에 관한 주석
3. 퇴계의 「정심수신」장 해석의 문제의식
4. 「정심수신」장에 관한 조선 경학자들의 변석
5.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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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중용장구』 「서문」에서 제시한 ‘16字 心傳’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유학의 중요이념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16자 심전에서 ‘정밀하게 살핌[精察]’은 핵심적 가치였다. 이 살핌으로서의 마음에는 살핌의 대상으로서의 人欲과 살핌의 주체로서의 道心이 공존한다. 주자의 이러한 논의는 『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이후 조선 경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퇴계는 ‘살핌[察]’으로서의 마음을 거론하면서, 주재성과 작용성을 동시에 고려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살핌의 주체로서의 도심과 살피는 대상으로서의 인욕을 통섭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 이후, 조선경학사에서는 그 주재성과 작용성의 한쪽에 치우치거나 이 둘을 통섭하는 논의가 일어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조선 경학, 더 나아가 마음을 중심에 둔 조선유학의 양상을 다채롭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The 16-character teaching in the introduction chapter of Zhu Xi’s Jungyong Janggu was appeared as an important ideology of Confucianism in three countries in East Asia. In particular, ‘observing closely(精察)’ in the 16-character teaching was an essential value. Humility as an object of ‘observing’ and the mind of the Way as a subject of ‘observing’ coexist in the mind through ‘observing.’ Zhu Xi’s discussion on this matter was encapsulated in the chapter of Jeongsimsusin in Daehak Janggu, which later influenced on Kyunghak of the Joeson dynasty.
Toegye simultaneously considered both the substance and the function along with discussing the mind as ‘observing(察).’ This actually can be understood as an opinion which joins both humility as an object of ‘observing’ and the mind of Tao as a subject of ‘observing.’ Since Toegye, there have been discussions on supporting either the substance or the function or on supporting consillience of both of these in the history of Kyunghak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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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8-128x
  • : 2733-4910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6-2022
  • :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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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권0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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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한문학연구 84집 목차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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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倣中國의 안과 밖 - 자기비판과 자기존중

저자 : 김홍백 ( Kim Hong-bae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6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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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중기의 지식인 柳夢寅(1559∼1623)의 자타인식에 대한 연구이다. 유몽인의 중국 인식과 관련한 담론을 '倣中國論'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여 방중국론의 안과 밖에서 드러나는 그의 자타인식을 정리하고 그 구체적 양상과 의미를 조선 중후기 지성사 안에서 조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유몽인이 인식하는 중국은 지역과 종족에 따른 북방(후금)과 중원(명조), 시차와 위상에 따른 고대 중국(동아시아 문명)과 당대 중국(명조 현실)의 다양한 부면이 교착되어 있으며 방중국의 대상 또한 군사적ㆍ사회경제적 영역인가 언어적ㆍ문화적 영역인가에 따라 조선의 자기비판과 자기존중이라는 자기인식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의 자기비판이 군사와 경제의 영역에서 타자를 참조해 더 나은 주체를 구축하고자 하는 '자기향상으로서의 자기비판(자기성찰)'이라면, 그의 자기존중은 언어와 문화의 영역에서 타자와 차이나는 주체의 고유성을 소중히 여기는 '자기긍정으로서의 자기존중(자기수용)'이라 할 수 있다.
곧 조선과 중국에 대한 유몽인의 자타인식은 후금과 명조, 고대 중국과 당대 중국, 군사적인 것과 사회경제적인 것, 문화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문명적 보편성과 지역적 고유성 등의 이항적 관계를 가로지르면서 형성된 자기비판과 자기존중이라는 중층의 자기인식과 교직되어 있는 것이다. 자국의 것이라도 비판해야 할 경우가 있고 자국의 것이기에 존중해야 할 경우가 있다. 타국의 것이라도 수용해야 할 경우가 있고 타국의 것이기에 거리를 두어야 할 경우가 있다. 무엇을 비판하고 존중할 것인가? 무엇을 수용하고 거리 둘 것인가? 유몽인의 중국 담론에는 중세 동아시아 전환기의 조선 지성사에서 첨예화되었던 자국과 타국, 주체와 타자 간의 긴장과 균형에 대한 나름의 사상적 고투가 담겨 있다.


This paper examines inter-subjective consciousness of Yu Mong-in(柳夢寅, 1559~1623) in the Middle Period Chosŏn. The discourse related to Yu Mong-in's perception of China is captured with the concept of Bang-Junggug(倣中國, to emulate China), examining his perception of the Inside and Outside, and shedding light on its meaning in the Middle and the Late Chosŏn Dynasty. For Yu Mong-in, China is a mixture of various aspects of Northern China(Later Jin) and China-centered(Ming Dynasty) according to region and race, ancient China(East Asian civilization) and contemporary China(Ming Dynasty reality) according to time difference and status. In addition, the target of Bang-Junggug(倣中國) is closely related to the self-consciousness of self-criticism and self-respect in Chosŏn, depending on whether it is a military/socioeconomic field or a linguistic/cultural field. This paper analyzes that his self-criticism is self-criticism as self-improvement(self-reflection) to build a better subject by referring to others in the military and economic domains. Along with this, his self-respect is also considered as self-affirmation(self-acceptance) that values ​​the uniqueness of the subject who is different from others in the domains of ​​language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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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艮齋 崔演의 산문 연구 -「雜著」 소재 작품을 중심으로-

저자 : 정용건 ( Chung Yong-gu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104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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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6세기 중반의 문인 艮齋 崔演을 대상으로, 그 생애 이력과 문학적 위상을 소개하고 그가 구가한 산문 세계의 특징적 면모를 살핀 글이다.
최연은 젊은 시절부터 文才를 인정받아 賜暇讀書 관원으로 선발되고 주요 문한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明 사신을 맞이하는 遠接使 從事官로 선발되어 시문 수창의 국면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 각종 공문서의 제작을 담당하여 차기 文衡의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그는 '16세기 중반의 주요 관료 문인'으로서 견고한 위상을 점유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당시 조선에서 주변부로 인식되었던 '강릉 출신의 저명 문사'로서도 널리 기억되었다.
최연의 산문 창작 활동은 이와 같은 학적 배경과 지위를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그의 산문은 평생동안 유지된 관료로서의 삶을 반영하듯, 공적 성격을 띠는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다만 그중에서도 사적 영역에서 찬술된 『艮齋集』「雜著」 소재 작품들은 다양한 문학적 참고와 수사 활용을 바탕으로 성립되어, 그가 지닌 문예 지향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잡저」에서 먼저 눈에 띄는 점은, 「逐詩魔」, 「封管城子誥」, 「麴秀才傳」과 같은 擬人體 산문이 여럿 실려 있다는 것이다. 韓愈의 「送窮文」, 「毛穎傳」을 비롯한 다양한 중국 작품과 고려 말~조선 초 선배 문인들의 가전 작품에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 작품은, 前代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그 나름의 변용ㆍ확장과 문학적 수식을 거쳐 성립되었다. 그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문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고뇌, 자부심을 아울러 표출하였다. 또한 그는 「雁奴說」과 「貓捕鼠說」이라는 두 편의 '說'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들 역시 당ㆍ송 산문 및『太平廣記』 등 유서류 저작의 강력한 자장 위에서 산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최연은 제재와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는 과거의 성취에 기대었으면서도, 구체적인 작품 구성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들과 다소 변별된 방식을 취하며 국가 운영에 관한 논제를 풀어내었다.
이처럼 최연의 「잡저」 작품은 문사로서의 자기 정체성 피력 및 거대 담론의 문학적 구현이라는 주제ㆍ내용 상의 특징을 지니며, 중국 및 우리나라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계승과 변용이라는 형식적 특징을 지닌다. 이는 강릉 출신 문사로서 일생토록 중앙 조정에서 문한 활동에 전념한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는, 비록 그 수는 조선 후기에 비해 많지 않지만, 전대의 여러 성취를 두루 참고하고 응용하는 방식을 통해 文藝趣를 선명히 드러내고 작품의 다변화를 모색했던 16세기 중반 산문의 한 특성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This paper is a text that introduces the life history and literary status of Ganjae(艮齋) Choi Yeon(崔演), a writer in the mid-16th century, and examines the characteristic aspects of the prose world he admired.
Choi Yeon was recognized for his literary talent from a young age, and was served in various important literary positions. In particular, he was selected as a member of the Wonjeobsa(遠接使) Jongsagwan(從事官) to welcome the Ming(明) envoy and played an active part in the creation of poetry and prose. As such, he occupied a solid position as a 'main bureaucratic writer in the mid-16th century'. On the other hand, he was also widely remembered as a 'famous writer from Gangneung(江陵)' who was recognized as a marginal member in Joseon at the time.
Choi Yeon's prose were developed based on such academic background and position. Most of his prose is of a public nature. However, among them, the works of 「Japjeo(雜著)」 written in the private realm were established based on various literary references and use of rhetoric, showing his literary-oriented tendency well.
The first thing that stands out in his prose of 「Japjeo」 is that he wrote anthropomorphic works such as 「Chuksima(逐詩魔)」, 「Bonggwanseongj- ago(封管城子誥)」, and 「Guksujaejeon(麴秀才傳)」. These works, which seem to have been created under the influence of various Chinese and Korean works, including Han Yu(韓愈)'s 「Songgungmun(送窮文)」 and Lee Gyu-bo(李奎報)'「Moyeongjeon(毛穎傳)」, inherited previous achievements, but were established through their own transformation and expansion and literary modification. Through these works, he expressed his identity as a writer as well as his agony and pride. In addition, he also left two pieces of 'Seol(說)' works, 「Annoseol(雁奴說)」 and 「Myoposeoseol(貓捕鼠說)」. These are also presumed to have been created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the writings such as Tang(唐) and Song(宋) prose. However, while Choi Yeon leaned on past achievements in terms of subject matter and consciousness, in the composition of specific works, he took a somewhat differentiated method and solved the topic of state management.
Choi Yeon's prose of 「Japjeo」 has thematic and content characteristics of expressing self-identity as a writer and literary realization of grand discourse, and has formal characteristics of succession and transformation of China and Korea's literary achievements. This can be said to be the result of his tendency as a writer from Gangneung to devote his whole life to literary activities in the central stage. On the one hand, this is also a point that shows a characteristic of 16th-century prose, which sought to diversify its works by clearly revealing its literary prowess through the method of referring to and applying various achievements of its predecess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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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열하일기』에 나타난 중국인 형상화와 쓰기 전략 -곡정 왕민호를 중심으로-

저자 : 박수밀 ( Park Su-mil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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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熱河日記』에 나타난 중국인 형상화 양상을 살피고 연암과 곡정 왕민호와의 대화를 통해 연암의 쓰기 전략과 사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중국인 중에는 연암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상화된 인간이 많다. 그 가운데 곡정은 비분강개한 선비의 전형으로 창조한 인간형이자 연암의 자아를 많이 투영한 인물이다. 곡정의 형상은 연민을 느끼게 하고 친밀감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독자가 거부감 없이 다가서도록 한다.
이를 바탕으로 연암과 곡정과의 필담 가운데 두 가지 話題에 주목해 보았다. 효와 열녀에 관한 필담에서, 연암과 곡정은 열녀와 효자 풍속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서로 호응해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열녀와 효자 윤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 속에서 연암이 그 폐해를 직접 비판하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연암은 곡정의 입을 빌려 열녀와 효자 만들기의 폐단을 비판하였다. 반면 유학과 의리에 관한 대화는 서로 대립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의리는 고정되어 있다는 연암의 발언은 솔직한 생각이 아니었다. 「伯夷論」上ㆍ下와 『열하일기』 7월 27일자 백이 관련 기사를 살핀 결과, 연암은 의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했다. 곡정의 말을 연암이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곡정의 말이 연암의 본심이었다. 둘의 대화는 연암 자신은 숨고 상대방인 곡정의 언어를 통해 작가의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각종 인간에 대한 형상화 전략을 살펴 연암의 인간에 대한 태도를 종합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the aspects of embodying Chinese people in Yeolha's Diary, and to understand YeonAm's writing strategies and ideas more deeply through conversations with YeonAm and Gokjeong, Wang Minho. Among the Chinese appearing in the Diary, there are many human beings intentionally shaped by YeonAm. Among them, Gokjeong is a person created as the prototype of an scholar of resenting sorrowfully, and a person who projects much of Yeon-Am's ego. The shape of Gokjeong makes readers feel pity and builds a sense of intimacy, so that they can approach Gokjeong without repulsion. Among the written talks of Yeon-Am and Gokjeong, I paid attention to two main topics.
In the written talks about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YeonAm and Gokjeong continued their conversation by responding to each other while negatively recognizing the customs of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It was difficult for YeonAm to directly criticize the harmful effects in a trend that took the ethics of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for granted. Thus, YeonAm used Gokjeong's voice to criticize the evils of making the tradition of the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On the other hand, the conversations about Confucianism and loyalty developed in opposite directions. YeonAm's voice that loyalty is fixed was not an honest opinion.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two books of 'Baek-Yi Theory 伯夷論' and the articles related to Baek-Yi in the 'Yeolha Diary 熱河日記' on July 27th, YeonAm thought that loyalty is not fixed, it is a relative value that changes according to the times and circumstances. Although YeonAm took the form of refusing Gokjeong's words, in reality, Gokjeong's words were YeonAm's true intentions. The conversation between the two took the method of revealing the author's truth through the language of Gokjeong, who is the other person, while YeonAm hides himself. By continuously examining various strategies for shaping human beings appearing in Yeolha's Diary, YeonAm's attitude toward humans will be comprehensively summar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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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세기 후반 서울 양반과 빈곤의 문제 -도저동 金履中 家를 중심으로-

저자 : 김하라 ( Kim Ha-ra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92 (5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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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8세기 후반의 서울에 거주한 金履中(1740~1787)의 생애와 가계를 추적해 조선후기 양반이 직면한 빈곤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김이중의 외사촌동생인 兪晩柱의 일기 『欽英』의 기록을 기초 자료로 삼았다.
김이중은 조선후기 노론계의 유력한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안동김씨의 구성원으로 淸風溪 주인 金尙容의 6대손이다. 서울에 세거하던 김상용의 직계 후손들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충청도 오두리와 덕산현 등지에서 새로운 생활의 기반을 찾았고, 김이중의 증조부인 金盛達의 대에 이르러 오두리에 정착하게 된다. 김성달의 5남 金時淨이 백부에게 입양되어 삶의 터전을 덕산현으로 옮긴 이래 김이중의 先代는 가난한 충청도 양반으로 몰락할 조짐을 보였다. 이후 김시정의 차남 金礪行이 32세로 사망하자 유가족인 그 아내 杞溪俞氏와 두 아들 김이중 및 金履弘은 생계를 이을 방법이 없었다. 이에 기계유씨의 친정에 의지하여 살아가기 위해 세 모자는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얼마 후 기계유씨가 사망하자 완전히 고아가 된 김이중 형제는 전적으로 외삼촌 俞漢雋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그들은 끝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했다.
김이중은 龍仁李氏와 혼인하여 2남 3녀를 둔 가장이 되었고, 『흠영』에 기록된 13년간 그의 가족은 서대문 밖 둥그재와 용산 확교동, 남대문 밖 도저동 등지에 거주했다. 이 가족의 주거지가 늘 도성 밖에 있었다는 점은 그들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처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 가족의 빈곤은 잦은 질병과도 관련을 갖는데, 김이중의 자녀 중 2명은 1786년 서울에 유행한 홍역을 앓았으며, 1명은 그 시기에 사망했다. 또한 김이중은 질병에 시달리다 40대 후반에 사망했다. 김이중을 포함한 가난한 양반의 삶을 지켜본 유만주는 조선의 양반에게 가난이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이중 사후 15년 된 1801년 그 장남 金伯淳이 천주교도로서 처형된 것은, 부친으로부터 계승된 가난의 경로를 따른 귀결이 아닌가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trace the life and family line of Kim Yi-jung, a gentry who lived in Seoul in the late 18th century. Through this work, I intend to analyze in detail the problems faced by the gentry class of the poor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basic data of this paper is Heumyeong, the diary of Yu Man-ju, Kim Yi-jung's maternal cousin.
Kim Yi-jung is a member of the Andong Kim Clan, an influential fami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is the 6th generation descendant of Kim Sang-yong. The direct descendants of Kim Sang-yong, who lived in Seoul, went through the Second Manchu Invasion of Korea and found a new basis for life in Odu-ri and Deoksan-hyeon, Chungcheong-do. This lineage has been settled in Odu-ri since the time of Kim Seong-dal, the great-grandfather of Kim Yi-jung. Since Kim Seong-dal's fifth son, Kim Si-jeong, was adopted by his uncle and moved to Deoksan-hyeon, Kim Yi-jung's ancestors showed signs of declining as poor Chungcheong-do gentry. When Kim Si-jeong's second son, Kim Yeo-haeng, died at the age of 32, the bereaved family, his wife and his two sons, had no way to make ends meet. So, the three families went to Seoul to live by relying on Mrs. Yu's younger brother Yu Han-Jun. Shortly after, when Mrs. Yu died, the completely orphaned brothers became completely dependent on their uncle Yu Han-jun, and they were unable to stand on their own financially.
Kim Yi-jung got married and became the head of the household with two sons and three daughters. For the 13 years recorded in Heumyeong, the Kim family lived in Dunggeujae outside Seodaemun, Hwakgyo-dong in Yongsan, and Dojeo-dong outside Namdaemun. The fact that this family's residence was always outside the four gates of Seoul shows their poor socio-economic situation. The family's poverty is also related to frequent illnesses: two of Kim Yi-jung's children suffered from the measles epidemic in Seoul in 1786, and one died around the same time. Kim Yi-jung suffered from a disease and died in his late 40s. Yu Man-ju, who observed the lives of poor noblemen, including Kim Yi-jung, came to the conclusion that poverty is like a death sentence for the gentry in Joseon. The fact that the eldest son Kim Baek-sun was executed as a Catholic in 1801, 15 years after the death of Kim Yi-jung, is judged to be the result of following the path of poverty inherited from his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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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선후기 문인들의 청ㆍ장년기 齋號와 자아정체성

저자 : 안세현 ( Ahn Se-huy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22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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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후기 문인들이 20∼30대 청ㆍ장년기에 齋號를 짓고 記文을 창작한 것에 주목하여, 이것에 담긴 의미와 청ㆍ장년기 자아정체성의 일면을 고찰하였다. 조선시대 자신의 서재에 붙인 기문 중에서 20∼35세에 지은 글은 37편 가량 되며, 20대 초반에 지은 것도 10편 가까이 된다. 이러한 기문은 대부분 17세기 이후에 창작되었으며, 당쟁이 격화된 숙종 연간 이후의 글들이 많다. 당쟁이 극심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조선후기 문인들은 청ㆍ장년기에 자신의 존재와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자아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에 더욱 고투했던 것이다. 조선후기 청ㆍ장년기 문인들은 재호를 지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였으며, 기문을 지어서 자기 삶을 반성하고 인생의 진로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그들은 사회를 향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인정받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고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자아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In this paper, I explored the meaning of the actions of writ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o named their study and created Gimun in their 20s and 30s. In addition, I considered one aspect of the search for youth self-identity contained in these gimuns.
Among the gimuns based on his study creat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bout 37 were built at the age of 20-35, and nearly 10 were built in the early 20s. Most of these gimuns were created after the 17th century, and there were many works after King Sukjong, when the conflict between factions began to intensify. In the late Joseon Dynasty, young writers named their study to reflect on their own lives and to establish the course of their lives by writing a gimun. Furthermore, they wanted to actively reveal their identity and be recognized by society.
In this regard, this paper will have many messages from young people living today to establish self-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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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조집> 소재 '여성 致富ㆍ治産談'의 서사적 특성과 의미 -구비설화와의 교섭 양상을 중심으로-

저자 : 임이랑 ( Im Lee-la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9-25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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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조집> 소재 치부ㆍ치산담 가운데 여성이 제반 행위를 주도하는 자료를 선별하여 그 서사적 특성과 의미를 규명한 것이다. 특히 구비설화와 한문 단편의 교섭 양상을 살펴 여성 주도형 치부ㆍ치산담의 서사적 계승 관계와 변전 양상을 추적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우선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구비설화 <내 복에 산다>류에서 발견되는 '현명한 내조자'의 원형적 여성을 계승하여 치부 행위 주도하기, 名馬 알아보기, 남편 출세시키기 등 민담의 상징적 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민담에서는 다루지 않은 현실적 치부 및 치산 행위의 전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즉,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전통적 현모양처와 생존형 여성 異人 사이에서 집안 살림의 소박한 일꾼이자 가업과 가문의 번영을 주도하는 선도자로서의 여성 형상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들이 다양한 민담적 화소를 수용했더라도 종국에는 구비설화가 추구하는 '환상성'과는 다른 길을 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정 경제의 실질적 운용자로서 당대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여 그들의 치부 및 치산 행위를 핍진하게 기술한 '교술성'이 오히려 공고해진 것이다. 따라서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과부와 같은 여성 가부장, 자신의 신분 해방을 위해 남성의 킹메이커를 자처한 여종, 남편이 소속된 직업 세계의 각종 위험 요소들을 치밀한 계획과 현명한 처세로 소거한 서리의 처 등 입체적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로서의 흥미와 교훈을 두루 성취한 서사적 자산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은 <이조집> 소재 치부ㆍ치산담 가운데 여성이 제반 행위를 주도하는 자료를 선별하여 그 서사적 특성과 의미를 규명한 것이다. 특히 구비설화와 한문 단편의 교섭 양상을 살펴 여성 주도형 치부ㆍ치산담의 서사적 계승 관계와 변전 양상을 추적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우선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구비설화 <내 복에 산다>류에서 발견되는 '현명한 내조자'의 원형적 여성을 계승하여 치부 행위 주도하기, 名馬 알아보기, 남편 출세시키기 등 민담의 상징적 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민담에서는 다루지 않은 현실적 치부 및 치산 행위의 전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즉,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전통적 현모양처와 생존형 여성 異人 사이에서 집안 살림의 소박한 일꾼이자 가업과 가문의 번영을 주도하는 선도자로서의 여성 형상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들이 다양한 민담적 화소를 수용했더라도 종국에는 구비설화가 추구하는 '환상성'과는 다른 길을 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정 경제의 실질적 운용자로서 당대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여 그들의 치부 및 치산 행위를 핍진하게 기술한 '교술성'이 오히려 공고해진 것이다. 따라서 여성 치부ㆍ치산담은 과부와 같은 여성 가부장, 자신의 신분 해방을 위해 남성의 킹메이커를 자처한 여종, 남편이 소속된 직업 세계의 각종 위험 요소들을 치밀한 계획과 현명한 처세로 소거한 서리의 처 등 입체적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로서의 흥미와 교훈을 두루 성취한 서사적 자산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narrativ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women's leading activities among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located in "Ijo Collection". In particular, they focused on tracking the narrative succession relationship and transformation patterns of women-led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by examining the negotiation patterns of folktales and short stories of Chinese characters. As a result, first of all, it was confirmed that the female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actively accept the symbolic pixels of folk tales such as leading the chibu behavior, recognizing famous horses, and making her husband succeed. At the same time, he revealed the full extent of realistic 'becoming and managing wealthy' that was not covered in folk tales. In other words, women-led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show a complex image of a woman as a simple worker of family life and a leader in the prosperity of the family business and family between a traditional wife and a stranger woman for survival. Therefore, even if they accepted various folktales, it could be seen that they eventually chose a different path from the "fantasy" pursued by the folktales. By highlighting the role of women at the time as practical operators of the family economy, the "didactic characteristics" has rather been solidified. Therefore, 'the story of accumulating a wealth' and 'the story of managing wealth' of the female can be seen as narrative assets that have achieved interest and lessons through three-dimensional female characters such as widows, maidservants, and Seo-ri's w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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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李鈺의 「頖村四旌閭記」에 대한 우의적 독해

저자 : 정순희 ( Jeong Sun-he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7-29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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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촌사정려기」는 성균관의 일을 하는 반촌 주민 5 사람이 유가 이념을 실현한 것을 다룬 글이다. 총 5 사람의 삶을 다룬 것에 비해 글은 비교적 짧다. 게다가 글의 본론에 해당하는 네 旌閭記는 600여자에 불과하고, 서두와 결미에 붙인 작가의 논평은 400 여자로 전체의 반 가까운 분량을 차지한다. 분량뿐만이 아니다. 네 정려기의 내용은 간략하면서 서술 방식에서도 비교적 단순하게 통일돼 있다. 그에 반해 글의 서두와 결미에 붙인 작가 논평은 매우 자세하다.
이옥은 서두와 결미에서, 성균관에 종사하는 반촌의 사람들이 유가 이념적으로 교화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 반박한다. 곧 이옥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中人들에게서는 정려문이 거의 없고 양반들의 거주지에 정려문이 많다고 하며, 사회 최하층의 반촌에 있는 4 개의 정려문을 이러한 반박의 근거로 든다.
「반촌사정려기」는 글의 무게 중심이 글의 서두와 결미의 작가 논평에 있다. 그러다 보니 4 정려기는 실재하는 사실이면서도 작가의 논평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 것으로 보이게 된다. 특히 서술 내용을 간략히 하고 서술 방식을 통일시키면서 네 정려기가 각각 유가 이념의 寓意로 일반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 Banchonsajeongryeogi > is an article about the realization of Confucianism by five Banchon residents who work for Sungkyunkwan. Given that the article dealt with the lives of a total of five persons, the article is relatively short. In addition, the number of characters of Jeongryeogi (旌閭記) corresponding to the body of the article is only about 600, and the number of characters of the author's comments attached to the beginning and the end are about 400, accounting for nearly half of the entire article.
The foregoing applies to not just the amount. The contents of the four Jeongryeogis are concise, and the methods of description are relatively simply unified. On the other hand, the author's comments attached to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article are very detailed. At the beginning and end, the author refutes the criticism that the people of Banchon, who are engaged in Sungkyunkwan, do not seem to be ideologically edified in Confucianism.
At the basis for his refutation is the following thought. That is, examples of the realization of the Confucian ideology are rather rarely seen among economically affluent middle-class people, and it is natural for the yangbans, the greatest beneficiaries of the Confucian ideology, to realize the Confucian ideology. The artist cites the four Jeongryeomun in Banchon, a village of the lowest class of society, as the basis for this objection.
In < Banchonsajeongryeogi >, the center of gravity of the article lies in the author's comments at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article. Therefore, the four Jeongryeogis seem to have been mobilized as a means for the author's comments while being subsistent facts. In particular, as the contents of description were simplified and the methods of description were unified, the four Jeongryeogis are respectively generalized into the allegories of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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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峿堂 李象秀의 「中庸章句序」 讀法

저자 : 신재식 ( Shin Jae-si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5-32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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峿堂 李象秀(1820~1882)는 조선 19세기 農巖系 문인으로 唐宋派 문학가이다. 그의 「中庸章句序讀法」은 唐宋派 문학론을 朱子의 「中庸章句序」 독해에 적용한 것으로, 조선후기 당송파의 계승과 발전 뿐 아니라 그 구체적 실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상수는 「中庸章句序」에 문학적 기법이 활용된 점을 간파하고, 大註와 小註를 통해 그 역할을 정밀하게 분석 해설하여 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후학에게 구체적 독해의 지침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독해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구성과 주제의 유기성 파악, 수사와 표현의 정합성 분석 등이 그것이다. 즉 「中庸章句序」의 주제와 주요 문구를 찾고, 그 호응 관계를 단서로 삼아서 그 전체의 문단 구성(1단 中庸의 정의, 2단 堯舜의 '中'자 전수, 3단 孔子 문하의 中庸 전수, 4단 子思의 中庸 저술, 5단 中庸의 실전, 6단 二程의 中庸 발명, 7단 朱子의 章句 저술)을 파악한 것, 그 과정에서 작자가 활용한 다양한 수사법(對照, 照應, 接引, 頓挫 등)을 포착하여 작자의 의도(道學의 대의 해명, 子思 『中庸』의 역할, 道統의 계보 확립, 道學의 실전 경위)를 파악하는 단서로 삼은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이상수는 문학의 독해 방식을 학문의 영역에까지 적용시켜 그 활용성을 극대화시켰다. 그러므로 이는 단지 조선후기 문학사적 의의 뿐 아니라 교육사적 의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역대 중국과 조선의 經說을 집대성한 『七書詳說』의 저자 朴文鎬의 스승으로 그 경전 해석의 방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경학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Lee Sang-soo(1820~1882) is a writer of the old doctrine faction who developed theories on Tang-Sung literatures. His 「Method of Reading the Preface of the Commentary on the Doctrine of the Mean」 is an application of the literary theory of Tang-Sung literatures to the reading of Zhuzi's 「the Preface of the Commentary on the Doctrine of the Mean」. This is an example that can confirm the succession and development of Tang-Sung literatur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well as its concrete practice. Lee Sang-soo saw the use of literary techniques in 「the Preface of the Commentary on the Doctrine of the Mean」. by accurately analyzing and explaining its role and using it as a means to understand the author's intentions, he has provided specific guidelines for reading comprehension to younger students. The reconstruction of the analytical process of his method of reading revealed its characteristics, broadly divided into two: Understanding the organicity of composition and subject matter, Analysis of the consistency of rhetoric and expression. First, find the topic and main phrase, and use the correspondence as a clue to figure out the composition of the entire paragraph. Second, the various rhetorical methods used by the author are captured and used as a clue to understand the author's intentions. By applying the reading comprehension method of literature to the realm of scholarship, its utility was maximized. It can be said that it has significance not only in the literary history of the late Joseon Dynasty, but also in the history of education. In addition, it can be said to have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it influenced the disciple's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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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세기 전반 서유영의 新興寺 행적과 詩交

저자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7-36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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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문인 雲皐 徐有英과 그의 벗 洪翰周, 李承元이 新興寺를 배경으로 지은 21제 34수의 시에 주목하여, 당시 서유영의 행적과 詩交를 추적한 것이다. 먼저 시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기를 고증했다. 신흥사는 현재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릉 인근에 있는 흥천사이다. 서유영은 1839년 봄 39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신흥사를 유람하고, 같은 해 늦봄부터 늦여름까지 3개월가량 신흥사에서 사찰 독서에 들어갔다. 이후 1850년대에 신흥사를 재방문하여 마지막 유람을 즐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서유영과 벗들의 신흥사 시를 시기별로 구분하여 서유영의 행적과 감회를 분석하였다. 첫 유람, 서유영의 시에선 관광객의 설렘이 나타나며 그에게 신흥사는 불교적 신비가 흐르는 청정 지대였다. 사찰 독서 기간, 친구들과 떨어져 고립되자 경탄의 감정은 그리움으로 바뀌고 신흥사는 외로운 유배지가 되었다. 마지막 유람, 벗과 동행하여 다시 찾은 신흥사에서 서유영은 첫 유람 때와 같은 평온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 같은 감정 변화의 기준은 벗과의 동행 여부에 있었다. 그에게 신흥사는 벗이 있으면 황홀한 낙원, 벗이 부재하면 황량한 유배지였다. 이는 그와 동행했던 홍한주와 이승원의 시에서 신흥사가 일관적으로 경탄의 공간인 것과 대비되었다. 신흥사 시는 서유영과 벗들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며, 이때의 벗은 대등하게 시를 논할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흥사 시는 시와 벗과 낙원의 기록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글의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연구에서 충분히 규명되지 못했던 修學期 서유영의 생애에 접근할 수 있었다. 둘째, 19세기 초 서울․경기 문인 시사의 끈끈한 우정의 현장을 엿볼 수 있었다. 셋째, 시 속에 형상화된 과거 신흥사의 정경을 복원함으로써 신흥사를 한국문학의 영역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This article traces Seo Yoo-young's deeds and poetry in Sinheungsa in the 19th century by analyzing 21 poems of him, Hong Han-ju, and Lee Seung-won.
First, I proved the place and period of the poem. Sinheungsa is Heungcheonsa located near Jeongneung in Donam-dong, Seongbuk-gu, Seoul. Seo Yoo-young first visited here in the late spring of 1839, began temple reading for about three months from late spring to late summer in the same year, and revisited here in the 50s and enjoyed the last tour.
I analyzed Seo Yoo-young's activities and emotions shown in poem. In the first tour, the excitement of tourists appeared, and Shinheungsa was a clean area with Buddhist mysteries. During the temple reading period, as separated from friends, the feeling of wonder changed to longing, and Sinheungsa became a lonely exile. In the last tour, the same peaceful joy returned, because he was with his friends.
The criterion for such emotional change was whether to accompany friends. Sinheungsa was an ecstatic paradise with friends, and a desolate exile without friends. This change contrasts with Hong Han-joo and Lee Seung-won's consistent wonder. Sinheungsa poem shows Seo Yoo-young's friendship. The friends at this time means someone who can discuss poetry equally. Therefore, Sinheungsa poem can be defined as a record of poetry, friends, and paradise.
The achievements of this article are as follows: first, it was possible to supplement Seo Yoo-young's life in the studying period, which was not sufficiently identified in previous studies. Second, we could get a glimpse of the strong friendship of literature club in the early 19th century, in Seoul. Third, by restoring the scene of Sinheungsa that appeared in the poem, Sinheungsa could be invited to the realm of Korea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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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집 목차

저자 : 한국한문학회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 (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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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효전 심노숭의 역병 체험과 질병 서사

저자 : 정우봉 ( Chung Woo-b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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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 疫病이 유행하던 상황에서 역병 체험을 다룬 글을 질병 서사의 관점을 활용하여 분석하였다. 특히 역병 체험을 다룬 많은 인물들 가운데 풍부한 자료를 남긴 孝田 沈魯崇(1762~1837)에 주목하였다. 심노숭의 글에서 역병과 관련한 질병 서사의 양상을 크게 '육체의 증언으로서의 질병 서사', '말하는 몸을 통한 공감의 질병 서사', '육체의 소멸과 애도의 질병 서사'로 구분하였다. 세 가지 양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육체가 반응하는 양상 및 그 변화의 과정을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 육체적 고통만을 서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고통까지 함께 서술하였으며, '말하는 몸'을 통해 주체를 재발견하였다는 점, 이와 같은 육체 증언으로서의 질병 서사는 심노숭의 육체에 대한 인식과 연관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또한 심노숭에게 있어 성적인 욕망에 대한 긍정, 음식에 대한 감각과 취향 등은 모두 육체적 욕구와 욕망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와 연결된다. 인간을 살아있는 감각적 주체, 육체적 주체로 인식하는 연장선 위에서 심노숭은 역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육체적 반응을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육체적 고통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자아에 대해 새롭게 성찰할 수 있었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로서, 욕망과 감정을 지닌 개별적 자아로서 긍정하였던 일련의 사고와의 관련 속에서 우리는 역병 체험 서사에 나타난 육체의 증언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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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질, 학을 떼게 만드는 고통의 기억 -심원열의 「침질기」를 중심으로-

저자 : 박동욱 ( Pak Dong-u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7-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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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遠悅(1792∼1866)은 학질에 대한 인상적인 기록인 「寢疾記」(권5)를 문집에 남겼다. 「침질기」는 총 118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인 沈魯巖(1766∼1811)의 發病부터 시작하여 투병과 臨終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일기 형태로 상세히 기록했다. 이 기록은 病錄을 첨부한 임종 일기로 보아야 한다. 「침질기」는 병세가 심각해진 6개월을 그 대상으로 했으니 임종 장례 일기 중에 가장 긴 시간과 분량을 기록한 자료 중 하나다. 학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여러 명의 의원을 찾아 나서고 그들로부터 처방을 받아 이루어졌던 다양한 투약이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가족의 대응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내용은 당일에 있었던 일화, 담당 의원과 각종 처방, 아버지의 몸 상태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루에 1-2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그날 중요한 변화가 있을 경우에는 여러 칙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당일의 기록을 적고 있지만 그 일에 대해 훗날에 느꼈던 감회를 追思, 追念, 追書 같은 형식으로 보충해 놓았다. 중간중간에 먹으로 지운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정돈되지 않은 초고의 상태로 보인다.
등장 인물은 심노숭, 심노암 형제와 심원열 그리고 의원 등으로 한정했다. 통상 내방객들을 다루는 다른 기록들과 달리 「침질기」에서는 다른 인물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을 확실히 하여 온전히 아버지 병과 관련된 일에만 중심을 두고 있다. 있었던 일들을 대화의 형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런 기록의 특성상 감정을 상당히 절제해서 건조하게 기술되기 마련이지만, 「침질기」는 서정적인 면모나 위트가 드러나서 문학성 또한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침질기」는 어떤 기록보다 학질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관련된 의원과 처방들이 매우 소상히 남겨져 있어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투약에 대한 기록은 훗날 처방의 근거나 중복 투약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이러한 객관적인 기록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환자 본인과 환자 가족들의 대처와 반응이었다. 심노숭과 심노암의 우애는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침질기」에서 두 사람의 형제애를 다시금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병세가 심각해질수록 안타까워하고 스스로 자책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일어날 죽음이란 사건을 인정하고 자신의 부재 속에 남겨질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을 드러낸다. 부자가 죽음이란 사건을 함께 앞에 두고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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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년의 홍역-權相一의 『淸臺日記』에 기록된 감염병의 시간

저자 : 김하라 ( Kim Ha-ra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7-125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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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의 하나인 홍역에 초점을 두고 『淸臺日記』의 질병 서사를 구축하고자 했다. 46년간 홍역을 의식하며 살았던 저자 權相一(1679∼1759)의 생애를 다음 세 국면으로 나눠 기술했다.
1707년, 경상도 尙州에 거주하는 29세의 擧子 권상일은 홍역이 유행하는 가운데 향시에 응시하기 위해 昌寧까지 불안한 여정을 왕복했다. 홍역의 '未疫者'였던 그는 안전을 위해 감염병에 오염된 지역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이동 경로를 통해 창녕 이북의 玄風과 善山, 金泉, 상주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홍역이 유행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1719년과 1720년, 40대 중앙관료 권상일은 서울 倉洞의 우거와 상주의 고향집 사이를 오가며 홍역이 유행하는 양상을 기록했다. 권상일의 아들 權煜, 왕세자 李昀 등 어린이와 젊은이 들이 경향 각지에서 홍역을 치른 사례를 볼 수 있으며, 감염병에 오염된 구역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미역자' 권상일의 행동원칙이 관철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1752년과 1753년, 상주의 고향집에 머물던 70대 노인 권상일은 조정의 출사 요청을 거듭 거절해야 하는 명망 있는 노학자였다. 노년까지 홍역의 '미역자'였던 권상일은, 자신을 돌보고 가정과 지역 공동체를 보살피며 감염병 상황에서 관혼상제의 일상을 가능한 한 안전하게 이어나가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감염병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조심한지 46년 된 1753년 정초에 75세의 권상일은 마침내 홍역을 잘 치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여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46년간의 홍역을 기록한 권상일의 『청대일기』는 오랜 감염병 시절을 통과하는 개인 및 공동체의 삶의 모습과 그 시간에서 얻게 된 질병과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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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후기 살 곳 찾기 현상의 동인과 다층성 -십승지와 『택리지』 그리고 그 주변-

저자 : 양승목 ( Yang Seung-mok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7-16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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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살 곳 찾기'라 명명한 조선후기 유력한 문화현상을 추동한 배경 및 그 성격과 양태를 탐구해본 것이다. 살 곳 찾기 현상은 17세기 전란 직후 소위 십승지로 대표되는 當亂保身의 땅을 찾는 움직임으로부터 태동한 것으로, 조선후기를 관통하여 20세기 초반까지도 상존하였다. 먼저 이러한 지속과 만연에 대해 인민이 마주한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그 실질적인 동인을 고찰해보았다. 군사행동이 동반된 역모, 이상기후에 따른 천변재이와 그로 인한 기근과 역병, 세금의 부과와 징수에 있어서 만연했던 비위 등 국가적 차원의 전란이 종국된 뒤로도 개인으로서 극복하기 어려운 위난의 상황은 끊임없이 박도하였으며, 이러한 자연적/사회적 재난 요소 및 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야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을 희구하게 한 동력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어 살 곳 찾기 현상이 가진 다층적 면모에 대해 상론하였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논제에 대한 검토로 구성하였다. 하나는 십승지와 『택리지』의 긴밀하고도 상호적인 관계를 고구한 것이다. 재난을 피해 살 수 있는 곳을 찾던 움직임은 사대부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만한 고장을 물색하는 계기와 문법을 제공하였으며, 이로부터 탄생한 고 품질의 결과물은 다시 피란ㆍ보신의 공간을 찾는 관심과 시선이 진화되는 양분이 되었다는 것, 따라서 살 곳 찾기 현상은 기층의 可生處 찾기와 상층의 可居處 찾기라는 복수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음을 특기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또 하나는 이러한 살 곳 찾기 현상에 대한 반류, 즉 대척점에 있었던 주장과 사유를 살펴본 것이다. 자신의 거처를 버리고 '살 곳'을 찾아 떠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은 실로 다양한 자료에서 확인 되는데, 이러한 비판의식은 결국 樂土在心, 곧 진정 살기 좋은 곳이란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유가의 전통적인 福地論으로 수렴됨을 짚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재난과 십승지, 십승지와 『택리지』, 이로부터 큰 조류를 형성했던 살 곳 찾기 현상, 그리고 그 반류에 이르기까지 각각이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를 하나의 입체적인 문화현상으로서 보아야 함을 논구하였다. 이는 재난과 십승지 그리고 『택리지』를 맥락화하여 이해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조선후기 다양한 형태의 공간탐색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동향을 조망하는 시좌와 논리를 마련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번 논의에서 수립한 살 곳 찾기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문화사와 문학사의 연동 또 역동을 드러내는 것을 차후의 과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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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 대한 조선 경학자들의 변석 -'察'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호 ( Lee Young-ho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5-19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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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중용장구』 「서문」에서 제시한 '16字 心傳'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유학의 중요이념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16자 심전에서 '정밀하게 살핌[精察]'은 핵심적 가치였다. 이 살핌으로서의 마음에는 살핌의 대상으로서의 人欲과 살핌의 주체로서의 道心이 공존한다. 주자의 이러한 논의는 『대학장구』 「정심수신」장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이후 조선 경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퇴계는 '살핌[察]'으로서의 마음을 거론하면서, 주재성과 작용성을 동시에 고려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살핌의 주체로서의 도심과 살피는 대상으로서의 인욕을 통섭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 이후, 조선경학사에서는 그 주재성과 작용성의 한쪽에 치우치거나 이 둘을 통섭하는 논의가 일어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조선 경학, 더 나아가 마음을 중심에 둔 조선유학의 양상을 다채롭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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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18세기 조선맹자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정전제 논의를 중심으로-

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1-22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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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18세기 당대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조선 맹자학의 특징적인 국면을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맹자가 주장한 정치경제론의 중요한 논점을 이루는 「등문공상」 3장의 '井田制 논의'가 그 관찰 대상이다.
토지를 나누어 주는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한 정전제 논의는 '어진 정치는 경계를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견지했다. 그 때문에 이후 유교의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데 요청되는 최소한의 경제적인 토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식있는 경세가들에 의해 정전제는 꾸준히 호출되며 그 실현가능성이 검토되었다. 개인의 도덕수양이 아니라 국가를 다스리는 기본방략의 차원에서 논의되기 때문에 수기치인의 국면, 곧 경세적 실천인 治人의 맥락에서 이 논점은 그의 경전읽기가 얼마나 경세적 실천의 지향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에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정전제 논의에서 조선의 儒者들은 당대 동아시아의 지평에서도 그 문제의식의 심각성, 논의의 치밀함, 경세적 방략과의 연결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 문제는 굳이 주자의 어떠함과 비교하는 데서 그칠 필요없이 그 자체로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논제로 전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논의에서는 실현되지 않았던 경세적 기획의 진정성을 짚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접근법으로 '주석자의 지향과 태도'를 중시하여 그 부분을 좀 더 치밀하게 검토했다.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과 학술사적 전통을 지니는 나라들이 하나의 보편적인 주제로 학술을 논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하나의 경전을 주제로 서로 상이한 견해가 집결된 경학은 당대의 상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인 도덕수양의 논제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전제의 논의와 그에 대한 비교는 단순히 경학 뿐만이 아니라 당대 동아시아를 이해하는데 널리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정전제는 조선학자들이 실현을 염두에 두고 깊은 학술적 노력와 고투를 거듭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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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周易』 「繫辭傳」의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一考

저자 : 서혜준 ( Seo Hye-joo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3-25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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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 학자들의 『주역』 이해의 양상을 살펴보려는 취지로 『周易』 「繫辭上傳」 제5장의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이하 '一陰一陽', '繼善成性')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을 일별하였다.
程朱는 '一陰一陽'과 '繼善成性'을 성리학적 理氣論에 입각하여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해석은 『周易大全』에 수록되어 조선 학자들에게 전해졌으며, 이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주석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본고에서는 『周易大全』의 주석과 비교하여 『韓國經學資料集成』에 수록된 조선 학자들의 주석을 살펴보았다.
程朱는 '一陰一陽之謂道'에서 陰陽과 道를 각각 氣와 理의 차원으로 나누었으며, '繼之者善'과 '成之者性'은 이러한 道가 유행하여 陰陽이 운행되어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해석하였고, 이 과정을 氣와 理의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이와 비교하여 살펴본 결과, 조선 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대체로 수용하되 天道와 人性이 연결되는 지점에 보다 주의를 기울였으며, 이를 性善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하였다. 또 程朱의 성리학적 해석과는 전혀 다르게, 理에 대한 논의 없이 이 구절을 해석한 주석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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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한국 근대시기 독본류 교재로 바라본 한문고전교육의 의미 -일제시대 총독부 출간 『中等敎育 朝鮮語及漢文讀本』을 중심으로-

저자 : 홍유빈 ( Hong You-bin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1-28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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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본통치기에 출간된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시기 독본류 교재를 통해 한문고전교육의 의미를 돌아본 논문이다. 유구한 漢學의 전통이 이어져 온 한국에 있어서, 과거 조선시대의 서당 교육과 향교 등에서 가르쳤던 훈몽서나 儒家 서적들과 그에 대한 학습은 '한문고전교육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개화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교육에서의 한문교육은 개별 교과의 하나로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고 한문고전교육 역시 그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화기는 한학과 한문교육에 대한 열기가 여전히 유지되었던 시기였으며, 韓ㆍ日 병합에 의해 일본의 통치 하에 들어간 시기에도 어문정책에 있어서는 漢字ㆍ漢文의 몫이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 논의하는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은 그 이전에 사용되던 『보통학교 학도용 한문독본』이나 『(고본)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 등의 교재에 비해 한문의 비중은 적지만, 단문의 경우 우리말 번역을 붙이고 장문에는 제목과 출전을 밝히는 등 이전의 교과서에 비해 진일보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장문으로 수록된 글 역시, 일제시기의 초창기 독본류 교과서의 경우 경서류 위주의 중국 문장 일색으로 구성된 것에 비해, 『중등교육 조선어급한문독본』에서는 중국 고전을 포함하여 『삼국사기』나 『증보 산림경제』와 같은 조선의 고전 문장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예문들 위에 頭註의 형식으로 저자 소개나 서지 및 어려운 어구에 대한 풀이를 간략하게 적어놓아 한문고전에 대한 교양을 쌓는 데에 좋은 길잡이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서는 한문과 한문고전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재에 있어서도 일정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본서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본서에 수록된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자세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자 본서의 첫 권인 1권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한문고전 교육 교재로서의 특징과 의의를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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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45년 李穀의 上都 행로와 心迹

저자 : 이승수 ( Lee Seung-su )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4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7-32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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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345년 이곡의 상도 행로를 고찰한 것이다. 상도 행로를 논하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 14세기 중엽 麗元 관계와 이곡의 생애와 원대 兩都制의 운영과 大都 - 上都 사이의 교통로 운영 실태를 정리하였다. 당시 원의 大都와 上都 사이에는 네 개의 교통로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중 이곡이 이용한 길은 居庸關 - 八達嶺 - 岔道口 - 統幕站 - 槍竿嶺 - 李老谷 - 雕窠站 - 龍門峽 - 李陵臺 등을 잇는 驛路였다. 이곡이 이 길을 오가고 상도에 머문 체험은 9제 12수의 시로 남아있다. 이 시에는 북방 길을 걷는 여행자의 경이와 향수, 사방이 광막하게 펼쳐진 초원의 장관, 세계 제국의 위용과 황실 연회의 문화 등이 담겨 있다. 이곡의 상도 여행은 한 개인의 경험이며 동시에 역사의한 자취이다. 이곡이 여행에서 시를 지어 남겼으니 그곳은 또 우리 문학의 산실이며 배경이 된다. 이 글은 한국 역사의 현장이자 문학의 영토로써 오늘날 북경에서 내몽골 錫林郭勒盟 正藍旗 사이의 경로와 지리를 재구하고, 그 위에서 있었던 체험과 감회를 살펴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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