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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문화연구> 한·중 근현대불교의 서양철학 수용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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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근현대불교의 서양철학 수용과 비판

Acceptance and Criticism of Western Philosophy of Modern and Contemporary Buddhism in Korea and China

김제란 ( Kim Je-ran )
  •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 선문화연구 31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2월
  • : 43-82(40pages)
선문화연구

DOI

10.24956/SSC.32.2


목차

Ⅰ 머리말: 문제 제기
Ⅱ. 중국 현대신불교의 서양사상 수용
Ⅲ. 한국 근대불교의 서양사상 대응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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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중국·한국 근대불교에서 서양사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비판하였는가를 살펴보았다.
중국 근대불교에서는 웅십력(熊十力, 1885-1968)이 유식불교의 종자와 현행의 분리, ‘본체와 현상의 이분(二分)’을 비판하였는데, 이는 플라톤(Platon)으로 대표되는 서양 형이상학을 표적삼은 것이었다. 서양 생명철학인 베르그송(Bergson) 철학에 대해서는 우주 변화를 생명 에너지의 흐름으로 본 것을 긍정하였지만, 도덕적 성향이 없는 맹목적인 생명 충동을 중시한 점을 비판하였다.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칸트(I.Kant) 철학을 소개하고 유식불교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칸트의 감성·오성 개념을 유식불교의 전오식·제6의식에, 불교 ‘진여’를 칸트의 ‘진아’에, ‘무명’을 칸트의 ‘현상적 나’에 배대하였다. 그는 또한 자립적 국가로서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스펜서(Spencer)의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였다. 사회진화론과 불교의 일치성을 전제로 그 둘을 결합하였고, 유식불교의 종자설을 활용하여 진화를 국가와 개인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한국 근대불교에서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비판이라는 이중성이 존재하였다. 그는 사회진화론을 현실적 이데올로기로 긍정하여 불교계 계몽을 위해 활용하는 한편, 양계초식의 국가주의적 사회진화론을 비판하고 불성과 진여의 깨달음에 근거한 자유· 평등 사상을 제시하였다. 한국 근대 불교잡지에서는 서양 사상을 다양하게 수용하였는데, 그를 통해 불교를 철학화하고 실천적 종교로서의 불교를 모색하였다. 백성욱의 ‘불교순전철학’, 김소하의 쇼펜하우어 철학의 수용, 김창운의 ‘개인’의 발견 등이 그 예이다.
This article examines how Western thought was accepted and criticized in Chinese and Korean modern Buddhism.
In modern Chinese Buddhism, Xiong Xhi - li(熊十力, 1885-1968) criticized the separation between the seed and the present in Consciousness - Only Buddhism (唯識佛敎) and ‘the difference between subject and phenomenon’(體用二分), which targeted Western metaphysics represented by Platon. As for Bergson's philosophy, which is Western philosophy of life, he affirmed the view of cosmic change as a flow of life energy, but criticized the emphasis on blind life impulses without moral inclinations. Yang Qichao(梁啓超, 1873-1929) introduced I.Kant's philosophy and reinterpreted it in a Buddhist way. Kant's construct of sensibility and understanding was assigned to the all five consciousness and the sixth consciousness of enlightened Buddhism: Buddhism's ‘real’ to Kant's ‘true self’, and ‘ignorance’ to Kant's ‘phenomenal self.’ He also accepted Spencer's theory of social evolution, believing that it should develop its power as an independent state. He combined the social evolution theory and Buddhism on the premise of conformity, and descrived evolution a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tate and the individual using the seed theory of Consciousness - Only Buddhism.
In Korean modern Buddhism, Han Yong - un(韓龍雲, 1879-1944) had the duality of accepting and criticizing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He affirmed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as a realistic ideology and used it for the enlightenment of Buddhist monks, while criticizing the nationalistic social evolution theory of the poultry and herbivory system. He also presented the idea of freedom and equality based on the realization of Buddhahood and truth. Korean modern Buddhist magazines accepted Western ideas in various ways, and through them Buddhism was philosophicalized and Buddhism as a practical religion was sought. Examples include Baek Sung - wook's ‘Pure Buddhist Philosophy’, Kim So - ha's acceptance of Schopenhauer's philosophy, and Kim Chang - woon's discovery of the ‘individual.’

UCI(KEPA)

I410-ECN-0102-2022-200-001043714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975-857x
  • : 2671-5708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06-2022
  • :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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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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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萬海 韓龍雲의 晩年과 尋牛莊

저자 : 최종진 ( Choi Jong-Ji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67 (6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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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은 1933년(55세)에 약 10년간 머물던 선학원을 떠나, 서울 성북동으로 옮기고 스스로 당호를 심우장이라 지었다. 늘 총독부의 감시를 받고 있었으므로 보다 자유롭게 일을 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식산은행이 만해에게 성북동 일대의 좋은 국유지를 주겠다며 매수하고자 했으나 만해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의미로 동북방향의 집을 지었다. 만해는 심우장에서 『유마경』을 번역했고, <불교>지를 속간하여 불교계의 청년들에게 독립운동과 불교혁신을 장려하였다. 또한 만주에서 독립투쟁을 하던 일송 김동삼을 위해 심우장에서 5일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고자 하는 등, 조선총독부의 심한 감시와 탄압으로 묶여있으면서도 그의 정신은 '님'을 향해 있었고, 나라의 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본 논문은 만해가 출옥 후 약 10년간 선학원에서 항일운동과 민족불교 회복운동을 하다가,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긴 만년 10년 동안의 삶과 활동을 검토하고자 한다. 일제의 엄혹한 감시로 운신의 폭이 좁았기에 만해의 행적과 관련된 기록을 찾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심우장 관련 연구는 그동안 소극적이었고, 2019년에 심우장이 국가사적 제550호로 지정되면서 학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선학원은 1944년 만해 입적 직후부터 유족들과 추모재를 꾸준하게 거행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선학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00년사 편찬을 통해 만해정신을 기리기도 하였다. 필자는 만해의 심우장 시절의 각종 활동과 동시대 인물들의 증언, 그리고 각종 기록을 정리하였다. 특히 어린 시절 부친인 만해와 심우장에서 동고 동락했던 여식 한영숙의 회고록을 통해 만해의 마지막 생을 입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In 1962,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conferred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ing to Manhae Han Yong - un for his patriotic deeds. As one of the 33 national representatives, he signed the 3.1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 1919. For about 10 years from 1922, he resided in Seonhakwon, devoting himself to anti - Japanese movements such as 6.10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public university building movement, Shinganhoe (新幹會), Gwangju Student Movement and recovery movements of national sovereignty as well. In particular, the representative independence movements of Korean Buddhism were carried out centering around Mandang (卍黨) which he had formed.
In 1933, at the age of 55, Manhae moved to Seongbuk - dong, Seoul and renamed himself Simwoojang, which was the name of his residence. Because he was always under the surveillance of the government general, he wanted to work more freely. At that time, Siksan Bank was abetted by the Japanese and tried to bribe him with the good state land in the Seongbuk - dong area. However, Manhae rejected the proposal and built a house facing northeast to resist Japanese imperialism. Manhae translated 'Yuma - gyeong' at Simwoojang and published 'New 1st Collection', resuming the journal, 'Buddhism' which was suspended in 1933 due to financial difficulties. He wrote “Revive the Buddhist Youth Movement” for the journal 'Buddhism', encouraging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Buddhist Reform among Korean young Buddhists. Besides, after hearing about the death of Ilsong, Kim Dong - sam, who was arrested and imprisoned at Mapo Prison while conducting the independence struggle in Manchuria, he arranged the five day funeral in Shimwoojang. He also wanted to build a tombstone for Danjae, Shin Chae - ho. Because of his leading the independence movements, Manhae Han Yong - un was under the severe surveillance and oppress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 - general and there were few visitors, but his spirit was always toward the Buddha and he was dreaming of the independence of the country.
This paper intends to review the life and activities of Manhae for 10 years after he moved to Seongbuk - dong. While residing at Seonhakwon for about 10 years, he led or participated in the ant - iJapanese movement and national Buddhism recovery movement after he was released from prison owing to his involvement in independence movement. It is not easy to find the records related to his deeds because the scope of his movements was narrow due to the surveillance of the Japanese. Therefore, research on Simwoojang, where Manhae spent his last years of life, has been passively conveying only fragments of it, but in 2019, Shimwoojang was designated as National Historic Site No.550. In particular, Seonhakwon has been consistently holding memorial rites with the bereaved family immediately since his demise in 1944. Since 2016, not only memorial rites but also academic festivals, art festivals, and youth literature festivals have been held to inherit Manhae's path to independence movement and national Buddhism. In 2021, to commemorate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establishment of Seonhakwon, its 100 - year history was compiled, which was also served to commemorate the spirit of Manhae. In this paper, I tried to compile the fragments of Manhae's later years' activities based on Shimwoojang, the testimonies of contemporaries, and various records. In particular, I intend to review Manhae's later life specifically through the memoirs of his daughter, Han Young - sook who lived together in Simwoojang as a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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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용운의 지적 흐름과 실천, 그리고 근대 불교적 가치

저자 : 고병철 ( Ko Byoung-Chul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9-109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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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만해 한용운의 불교적·사회적 실천을 '근대 불교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에 있다. 이 목적은 종교인의 활동에 대해 종교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목적은 '불교와 무관해 보이는 만해의 사회적 실천도 불교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맥락으로 조명하여, 만해에 대한 분절적 이해를 해소'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주요 연구 내용은 '만해의 지적 흐름(Ⅱ장), 불교적 실천과 가치(Ⅲ장), 사회적 실천과 가치(Ⅵ장)'로 구성된다. 이 내용은 만해가 중층적인 지적 흐름(유교·불교·근대지)을 토대로 불교적·사회적 차원에서 실천했고, 근대 불교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부분이 이러한 실천들을 관통한다는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이 연구에서 주목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만해의 지적 흐름('유교, 불교, 근대지 차원')이 중층적 또는 복합적 사유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다만, 『조선불교유신론』 이후 유교적 사유를 명확히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는 만해에게 자유·평등·구세 개념이 불교와 근대 사회의 접점이 되는 근대 불교적 가치였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만해의 불교적·사회적 실천이 근대 불교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고, 특히 사회적 실천은 자유·평등·구세 개념을 독립·평화·해방론으로 확장해 구세론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만해의 사회적 실천에 근대 불교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맥락을 부여하면, 만해의 활동을 불교의 맥락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연구가 종교인의 사회적 활동을 종교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Han Yong-un (hereafter Manhae)'s Buddhistic and social practices in the context of "the realization of modern Buddhistic values." This purpose is based on the perspective that the activities of religious people need to be illuminated in the context of the realization of religious values.
The main contents of this study are divided into "Manhae's Intellectual Currents (Chapter II), Buddhistic Practices and Values (Chapter III), Social Practices and Values (Chapter VI)". This table of contents contains the structure that Manhae practiced at the Buddhistic and social dimensions based on his complex intellectual currents (Confucianism, Buddhism, and Modernism), and that these practices can b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the realization of modern Buddhistic values. This study tried to elucidate the following aspects. The first is that Manhae's thoughts were complex, intertwined with Confucianism, Buddhism, and modernity. Second, Manhae's notions of freedom, equality, and salvation were modern Buddhistic values that mediated Buddhism and modern society. Third, Manhae's Buddhistic and social practices were for the realization of modern Buddhistic values. Moreover, Manhae's social practices lead to Buddhistic salvationism as the concepts of freedom, equality, and salvation are expanded to the concepts of independence, peace, and liberation.
With this study focusing on the realization of modern Buddhistic values, it is expected that Manhae's various practices will b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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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법계원융(法界圓融)의 시간적 해석과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 - 다수의 법계들의 시간적 중첩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수현 ( Park Su-Hy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14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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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화엄의 주요 개념인 초발심시변정각과 법계원융이 철학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논한다. 법계원융은 인식주체에 의해 관찰되는 객체로서의법계들이 서로 상입·상즉하여 배척하지 않고 융합하는 것이다. 인식주관에 드러난 일군의 현상이 있고,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그것을 법계라고 한다. 전체의 법계는 이런 다양한 법계들이 무한히 중첩되어 이루어진다. 이러한 법계의 중첩은 가장 미세한 것 안에 가장 거대한 것이 들어갈 수 있다는 역설적인 방법으로 설명된다. 십현문에서는 이것을 일(一)과 다(多)의 상입·상즉으로 설명하는데, 일이 다에 포함될 뿐 아니라 다 역시 일 안에 포함된다. 육상원융의 개념에서는 총별(總別)·동이(同異)·성괴(成壞)의 대립되는 개념들이 서로가 상입·상즉하며, 서로 반대되는 개념을 그 안에 포함된다. 이런 법계의 중첩은 다만 동일한 시간 내의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것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으며, 서로 다른 시간에 속해 있는 법계들 사이에서도 성립한다. 그것은 십현문에서는 '긴 겁과 짧은 겁'의 상입·상즉으로, 육상원융에서는 '전(前)과 후(後), 시(始)와 종(終)'의 상입·상즉으로 나타난다. 초발심시변정각의 개념은 이런 시간적으로 변형된 법계원융과 관련이 있다. 과거와 미래의 상입·상즉은 초발심과 정각의 두 순간의 법계를 상입·상즉하게 하고, 일념과 영겁의 상입·상즉은 오랜 시간의 수련과 순간의 깨달음의 두 법계를 상입·상즉하게 한다.


This paper will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first arousal of the determination for enlightenment' and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法界圓融)'.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法界圓融)' means that 'the dharma realm(法界)' as an object observed by the recognition subject converges without rejecting each other through 'mutual entry(相入)' and 'mutual identification(相卽)'. If there is a group of phenomena revealed in the subject of perception, and it is explained by consistent laws, it is called 'the dharma realm (法界)'. The whole dharma realm is made by infinitely overlapping these various dharma realms. This overlapping of the dharma realms is explained in a paradoxical way in which the largest can fit within the smallest. Such overlapping of dharma realm system cannot be interpreted as occurring only in the same space within the same time, and is also established between dharma realm belonging to different times. It appears as the penetration of long kalpa and short kalpa in 'the ten profound approaches(十玄門)', and it appears as the penetration of 'before and after(前後)' and 'beginning and end(始終)' in 'six characteristics of conditioned phenomena(六相圓融)'. The concept of a 'first arousal of the determination for enlightenment(初發心是便正覺)' is related to this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法界圓融)'. The penetration of the past and the future let the two moment dharma realms of the past and the future penetrate each other, and the penetration of 'the thought-moment(一念)' and 'the everlasting eon(永劫)' let the two moment dharma realm of the long period of training and the enlightenment of moment penetrate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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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규기의 주장에 대한 원효의 견해, 그리고 원측과의 접점(Ⅰ)

저자 : 이민성 ( Lee Min-s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9-17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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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원효가 7세기 동아시아 불교에서 큰 화제였던 종성론과 공유논쟁에 참여한 사실을 밝힌다. 『대혜도경종요』의 서문에는 현장의 마지막 번역서인 『대반야바라밀다경』에 관한 요지를 설명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핵심 내용은 유식의 삼성설, 여래장 등 반야와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연구의 결과로 이 내용은 모두 규기의 주장과 관련이 있음을 밝혔고, 이에 필자는 원효의 저술에 대해 규기와 원측의 논쟁점을 중심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The Taehyedogyŏng chongyo attributed to Wŏnhyo is a commentary of Xuanzang's last translation, Da bore boluomiduo jing (Skt. Mahāprajñāpāramitā Sūtra). However, the main contents consist of somewhat far from prajñā, such as the three natures and tathāgatagarbha. This study reveals that these contents are critique of Kuiji's arguments; that is to say, Wŏnhyo directly took part in the debate on 'the 'Distinctiveness of the Five Natures(五性各別說)' and on 'Emptiness and Having / Existence(空有)', which were big issues in 7th century East Asia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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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大日經』에 나타난 밀교의 보리심관 연구 - 삼매야계를 중심으로 -

저자 : 오현희 ( Oh Hyun-hee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9-20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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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경전에는 진언문을 수행하는 보살이 지켜야할 독자적인 계를 설한다. 『대일경』에는 이전의 대승계를 유위계(有爲戒)라 정의하고 아자관의 수습을 무위계(無爲戒)라 정의하였다. 최초 무위계는 아자문의 수습을 위해 지키는 내면적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대일경』은 그것을 구체화하였다. 즉, 유위계는 오계와 십선계, 무위계는 사중금계(四重禁戒)와 십중금계(十重禁戒)라 하였다. 『대일경』에서는 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오계를 수지한다고 하고, 십선계 또한 보리심을 지향한다고 설한다. 또한 유위계와 무위계 모두 보리심을 기반하고 있다고 설한다. 사중금계와 십중금계는 보리심을 계체로 하여 보리심의 실천이 강조된다. 보리심에 기반을 둔 교설은 무위계에 대해 삼매야계에서도 동일하다. 밀교는 보리심을 실천수행의 원리로 삼기에 현교의 계와는 명확한 차이를 보이며, 밀교의 보리심 사상은 삼구법문에서 그 실천원리를 엿볼 수 있다. 『대일경』에서 보이는 밀교의 계사상은 경전성립 당시 7세기전후 초기후기중관파의 보리심사상과 진언문의 아자관과 일체지지의 영향을 받은 시대적 배경을 전하는 것이다.


The Esoteric Buddhism has its own idea of precepts to be practiced by Bodhisattvas practicing Mantra Gate(眞言門) as described in the Mahāvairocana Sūtra (大日經) which describes an independent system that is different from the traditions of precepts of Mahayana Buddhism. The precepts in Mahāvairocana Sūtra are divided into saṃskrta śīla (有爲戒) and asaṃskrta śīla(無爲戒) which the saṃskrta śīla is composed of so called the Five Basic Precepts and the Ten Good Precepts and the asaṃskrta śīla includes the Four Major Prohibition precepts(四重禁戒) and the Ten Major Prohibitions Precepts(十重禁戒).
In Mahāvairocana Sūtra, it is said that the Five Precepts are used to save Bodhicitta and the Ten Commandments are also for the Bodhisattva. The doctrine based on the bodhisattva is also adopted in the asaṃskrta śīla in the Samaya vrata. The practice of Bodhicitta is also emphasized in Four Major prohibitions precepts and the Ten Major Prohibitions Precepts(十重禁戒).
Since Esoteric Buddhism takes the Bodhisattva as the principle of practices of Mantra Gate which it is clearly different from the precepts of Bodhisattvas practices of Exoteric Buddhism (顯敎). The principle of practice of the esoteric doctrine can be seen in the Teaching of Three Verses(三句法門) as it firstly emphasized on Bodhisattva. In this way this writer examined the thought of Bodhicitta appearing in Mahāvairocana Sūtra(大日經) which clarify the systems of Samaya vrata and it's relationship of Samaya vrata and Teaching of Three Verses (三句法門) which shows the backgrounds of Bodhicitta ideas and practices of Mantrayana which reflects the ideas of early stage of Madhyamaka - yagacarya school of 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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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도 고행론의 맥락에서 본 불교의 두타행(頭陀行)

저자 : 양영순 ( Yang Young-s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47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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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출가수행주의 전통을 발전시켰던 불교의 수행 덕목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이며 중요한 덕목인 두타를 인도 고행론의 맥락에서 고찰함으로서, 불교 두 타행의 특징들을 불교 밖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두타란 출가 수행자들이 일반적으로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끊는 행위로서, 수행에 전념하기 위한 고행의 일종이다. 이는 불교 뿐 아니라 자이나교와 같은 슈라마나 종교, 더 나아가 브라흐마나의 수행전통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고행 수행을 대표하는 용어로서 '두타(dhūta, dhuta)'를 강조하고 두타행으로 정형화시킨 것은 불교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한편 고행주의 전통이 더욱 엄격했던 자이나교에서도 두타라는 용어가 있었지만, 불교처럼 중시되지는 않았다. 자이나교와 마찬가지로 힌두교에서도 두타보다는 고행을 뜻하는 타파스(tapas)라는 용어가 통용된다.
Ⅱ장에서는 우선 고전 인도의 고행론을 고찰하였다. 고행의 대표적 개념인 tapas의 의미 변천사를 검토하여 두 차원의 타파스를 도출하였다. 즉, 세속적인 목적의 타파스(고행)와 출세간적인 목적의 타파스이다. 특히 이 후자는 자이나교와 불교에서 나타나는 출가 수행주의와 맥을 같이 하므로, 이 경우의 acesticism은 '수행주의'로 명명하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불교와 함께 슈라마나 종교이면서도, 대표적인 고행주의 종교인 자이나교의 고행론 고찰을 통해 자이나교의 타파스(tapas)와 두타(dhūta) 개념을 고찰한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이뿐 아니라 자제(Saṃyama)와 차단(Saṃvara)의 수행 이론이 발전되어 두타의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Ⅳ장에서는 불교의 두타개념과 12 두타행을 고찰하였으며, Ⅴ장에서 불교 두타행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불교 두타행은 인도 전반적인 고행주의 가운데 출세간적인 고행주의 즉, 수행주의에 있다. 둘째, 불교의 두타행은 나체 수행을 행한 자이나교와 비교할 때 '衣두타행'의 항목이 발전하였다. 셋째, 불교 두타행에서 떨치고자 하는 대상이 '심리적 번뇌'인 반면, 자이나교의 두타행 및 고행의 목적은 '실체적 카르마의 정화와 소멸'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이나교에서 수행의 핵심 과제인 업장(業障) 소멸이라는 문제는 초기부터 후대까지 중요하게 강조되어 이론화되어있는 반면, 불교에서는 이후에 업장소멸이라는 문제가 다시 소환되어 수행론화된 것으로 보인다.


This paper will examine the practice of dhūta(頭陀行) in Buddhism in relation to the asceticism of India.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Buddhist dhūta practice in a broad context outside of Buddhism.
Dhūta is an act of renunciation and cessation of obsession with food, clothing, and shelter by an ascetic in general. It is a form of asceticism to devote to the practice. It appears not only in Buddhism but also in Brahmanism and other religions such as Jainism. However, the emphasis on 'dhūta' as a term representing the practice of ascetic practice and the standardization of it as a form of dhūta is a character that appears only in Buddhism. However, in Jainism, where the asceticism tradition was more strict compared to Buddhism, the term dhūta was not without importance as in Buddhism. Like Jainism, Hinduism also uses the term tapas, meaning asceticism rather than dhūta.
To this end, Chapter II first examines the classical Indian theories of penance. Examining the history of changes in the meaning of tapas, a representative concept of asceticism, and the types of asceticism. Chapter Ⅲ examines the concepts of tapas and dhūta in Jainism by examining the penance theory of Jainism, which is a religion of Shuramana along with Buddhism but also a representative ascetic religion. Chapter Ⅳ examines the Buddhist concept of dhūta and various acts of dhūta and compares it with the concepts of tapas and dhūta in Jainism.
The characteristics of Buddhist dhūta practice can be derived as follows.
Firstly, the Buddhist Dhūta is in the context of Asceticism which seeks liberation among the Asceticism of India. Secondly, compared with Jainism, which practised nude practices, the category of 'cloth-dhūta(衣頭陀)' is developed in Buddhism. Thirdly, while the object that Buddhist dhūta practice seeks to overcome is 'psychological defilement', the purpose of Jain's penance practice is to 'purify and annihilate material karma.' In particular, in Jainism, the problem of the extinction of karma, which is the core task of practice, has been emphasised and theorised from the beginning. Whereas in Buddhism, the problem of extinction of karma has been recalled and theorised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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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설악무산의 <달마십면목(達摩十面目)>에 대한 연구

저자 : 박종식 ( Baag Jong-shi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9-289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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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무산의 <달마십면목(達摩十面目)>은 <호자무수(胡子無鬚)> 공안에 대한 답가에 해당한다. 무산은 '독살림'으로 시작하여 '상갓집 개'에 이르는 열 가지 답변을 함으로써 불교문학의 격조를 한글선시조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화엄경』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일문십답(一問十答) 형식을 준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무산은 『선문염송』으로부터 시적 이미지를 추출하였기에, 그의 작품은 한반도의 독자적 선수행의 가풍을 계승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만해 용운의 경우, <달마불식(達磨廓然)> 공안에서 찾아낸 시상을 <알 수 없어요[不識]>로 작품화하여 노현전체(露顯全體)의 수행가풍을 세운 것이라면, 무산은 <호자무수> 공안에 대하여 <달마십면목>으로 답하여 달마에 대한 선적 재해석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한국 선수행의 독자적인 분위기가 보여주는 전통 속에서 수행정신에 대한 가풍을 문학적으로 계승하려는 시도라고 평가된다. 그리고 중국선의 수행풍토로부터 탈피하여 한국선의 독자적인 경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오랜 전통에 입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달마십면목>은 기존의 공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형식을 활용함으로 한반도의 화엄선(華嚴禪)이라는 틀에서 제시하는 활구라고 할 만하다. 무산의 한글 선시조가 보여주는 문학적 성과는 불교문학의 형식적 가능성을 개진함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Seorak Musan(雪嶽霧山)'s Dalma-Sibmeonmok(達摩十面目) is the psalms that are presented as an answer to Hoza-Musoo(胡子無鬚) Gong-An(公案). Musan began with 'living alone(Doksallim)' in response to one question about Dalma. And He composed a total of ten psalms by composing the psalm, SangGaZiGu(喪 家之狗, The Dog of the Dead). Through Ilmoon-Sibdab(一問十答, One question, ten answers), Musan's Buddhist literature was completed.
SeonmoonYeomsong(『禪門拈頌』) is a Text of Seon practise that guarantees the atmosphere of independent Buddhist tradition on the Korean. Musan succeeded the poetic image from SeonmoonYeomsong, and achieved the result of Korean Buddhist literature. It can be evaluated that he boldly revealed the aspect and character of Buddhist practice. It is said that Musan fully inherited the spirituality of Jingak Hyeshim(眞覺慧諶) and Manhae Yongun(萬海龍雲)'s literary qualities. Musan is said to have secured his own status by breaking away from the performance climate that was introduced from China with the semiotic symbol Bulseek(不識, Unknown) through Dalma-Sibmeonmok. The literary achievement of Dalma-Sibmeonmok can be said to be a presentation of a new aspect of the Hangeul-Seonsizo(禪時調). In addition, by attaching sentences and psalms that commenting on Gong-An, it can be evaluated that it corresponds to the succession of Seon Text about the Korean Hwaeom Seon(華嚴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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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求禮 華嚴寺 覺皇殿 線描三世佛會圖 연구

저자 : 조은주 ( Cho Eun-ju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1-33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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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각황전에는 거대한 중층 불전에 걸맞는 <삼불사보살상>의 후불화로 1860년(철종 11년)에 조성된 <화엄사 선묘삼세불회도>가 봉안되어 있다. 본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각각의 화폭에 나누어 그렸는데 붉은 비단 바탕에 흰색 선으로 윤곽을 그렸고, 부분적인 채색으로 제작한 선묘불화이다. 이 작품은 당시 전라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화승 해운당 익찬(활동연대 1824-1862)을 비롯하여 30명의 화승들이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특히 <화엄사선묘삼세불회도>는 각 화폭의 길이가 6m가 넘는 대형의 선묘불화로 같은 시기 조성된 후불화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로 제작되어 대형의 후불화 제작을 주도한 수화승 익찬의 역량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에 본 연구는 작품이 봉안된 화엄사의 불사가 조선 후기 왕실 후원 사찰이라는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화엄사 선묘삼세불회도>의 자세한 조성 배경을 살펴보고, 작품 제작을 주도한 수화승 익찬이 전 생애에 걸쳐 작업한 작품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이 작품이 지니는 선묘불화의 특징과 불교회화사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작품의 조성과 관련하여 화기에 기록된 내용과 조선 왕실의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당시 왕실의 상황을 반영한 후사 발원과 왕실 일원의 축원을 위하여 대규모의 불화를 발원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 왕실 후원사찰로 재건된 화엄사의 불사 흐름 속에서 왕실을 위한 축원이 대규모 불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함께 살펴보았는데, <화엄사 선묘삼세불회도> 조성에 대시주자로 참여한 임응환과 이종무가 조선 왕실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인물임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또한 <화엄사 선묘삼세불회도>에 나타난 익찬의 선묘 불화 화풍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40여년에 이르는 익찬의 작품 활동 중, 현존하는 선묘불화로는 1835년에 제작한 <송광사 자정암 석가모니후불도>와 1860년 작 <화엄사 선묘삼세불회도> 두 작품이 전한다. 이에 익찬이 작품 활동 초기에 제작한 또 다른 선묘불화인 <송광사 자정암 석가모니후불도> 와의 비교를 통하여 <화엄사 선묘삼세불회도>가 익찬의 변화된 후기 화풍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익찬의 완숙한 필력과 채색기법 등 다채로운 화풍 경향이 잘 발휘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There is in Gakhwangjeon Hall of Hwaeomsa Temple in Gurye a linear painting of “Assembly of the Buddhas of Three Ages in Hwaeomsa Temple” which was painted in 1860 and enshrined as an altar painting for the statues of Three Buddhas and Four Bodhisattvas. Each of the three Buddhas is painted on a separate panel with the principal Buddha, Shakyamuni, placed at the center and flanked by Amitabha and Bhaisajyaguru. All the Buddhas are depicted with white lines on a red silk cloth and colored partially. The painting was made by a group of thirty monk painters led by Ikchan (a.k.a. Haeundang / fl. 1824-1862) who had been active in Jeolla-do area. The painting measures over 6 meters by 6 meters, significantly larger size than other altar paintings produced in the same period, highlighting the competence of Ikchan as the leader of the Buddhist art proje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get detailed information of the background of the altar painting, “Assembly of the Buddhas of Three Ages in Hwaeomsa Temple”, focusing on that the major religious events held at Hwaeomsa Temple in which this painting is enshrined were patronized by the royal family of late Joseon. The study is also aimed to examine the artistic characteristics of the Ikchan's linear Buddhist painting and its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t art by comparing it with other paintings produced by Ikchan throughout his career as the head monk artist.
The conclusion of the study is as follows: Considering the records about the production of the painting, religious vows honoring it and the situation surround the royal family, it suggests that the royal family of late Joseon financed a variety of large religious events held in Hwaeomsa Temple, praying for the birth of the royal heir and prosperity of the royal family. Following its restoration as a religious center receiving the patronage of the royal family after the Imjin Wars, Hwaeomsa Temple continued to host large-scale religious events praying for peace and prosperity of the royal family of Joseon. The study also revealed that two patrons, Im Eung-hwan and Yi Jong-mu, who made major contributions to the enshrinement of the “Assembly of the Buddhas of Three Ages in Hwaeomsa Temple” we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royal family of Joseon.
The study also includes a detailed discussion of the characteristic features of the linear Buddhist paintings by Ikchan. While his career as a monk painter was extended as long as to about 40 years, there are only two works remaining to offer tangible clues about his art, “Shakyamuni Altar Painting in Jajeongam Hermitage of Songgwangsa Temple” produced in 1835 and “Assembly of the Buddhas of Three Ages in Hwaeomsa Temple” produced in 1860. A comparison of the two paintings which respectively represent the early and later stages of the Ikchan's art revealed there had been significant development made between the different periods as the later work exhibits mature brush strokes, more refined coloring technique and combination of diverse painting sty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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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요 경주백탑 천궁 출토 칠불법사리탑의 유형과 봉안 의미

저자 : 성서영 ( Sung Suh-yo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1-383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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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대 사리장엄의 주된 특징은 법사리탑 안치이다. 대표 사례가 바로 중희18년 경주백탑 천궁 오실에 안치된 108좌의 법사리탑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중 105좌가 칠불이 새겨진 칠불법사리탑이라는 점이다. 본문에서는 칠불법사리탑의 현황과 칠불이 새겨진 배경과 의미를 분석하였으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05좌의 칠불법사리탑은 1좌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동일한 규격이다. 모두 사전에 제작되었지만, 7월 15일과 20일에 나누어 안치되었다. 칠불첩금채회법사리대탑에 안치된 『묘법연화경』은 나머지 104좌에 안치된 3종의 다라니선집의 내용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둘째, 불사는 역대 선조들을 추선하는 7월 15일 우란분절에 거행되었으며, 과거 칠불은 육도 중생의 죄업을 소멸하고 성불하게 할 수 있는 공능이 있다. 105좌의 칠불법사리탑 탑신에는 총 735존의 과거불이 새겨졌으며, 이는 『묘법연화경』 「견보탑품」 중의 다보불과 마찬가지로 불법의 진실성을 증명한다. 또한 이와 함께 안치된 석가모니불, 미륵불과 같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불법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The main characteristic of the Buddhist Relic Cult in the Liao Dynasty is the enshrinement of Dharma-Sarira Pagodas(after this, referred to as DSP). A typical example is the 108 DSP enshrined in the Heavenly Place of the Qingzhou White Pagoda in the 18th year of Chongxi. What is noteworthy is that artisans carved Seven Past Buddhas on the body of 105 DSPs. This paper researched these 105 Sutra Pagodas and analyzed the religious background and meaning of caring for Seven Past Buddhas on these Pagodas. The summary of this study is as follows.
First, 104 DSPs are the same size except for one DSP. Although artisans made 108 DSPs in advance, they were enshrined separately on July 15 and 20. The Lotus Sutra was enshrined in the above-stated one DSP and encompassed the contents of all three types of Darani collections enshrined in the 104 DSP.
Second, The Liao imperial family held the Buddhist Ritual on July 15th. During this Buddhist Yulanpen Festival, descendants worshiped and reposed the soul of their ancestors. Seven Past Buddhas can extinguish the sins of all the people and make them attain Buddhahood. Artisans carved 735 Past Buddhas on the body of the 105 DSP, which proves the authenticity of the Buddha Dharma, just like the Prabhutaratna in the Lotus Sutra. In addition, along with the Sakyamuni Buddha and Maitreya Buddha enshrined, it symbolizes the permanence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Buddha Dh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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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향곡 혜림의 선사상 - 『향곡선사 법어』를 중심으로 -

저자 : 김방룡 ( Kim Bang-ryo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4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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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곡 혜림(香谷蕙林)은 효봉, 청담, 성철 등과 더불어 근·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 가운데 한 분으로서, 1971년에서 1973년까지 선학원의 제11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향곡은 성철과 더불어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사선의 선풍을 바로 드러낸 대표적인 선사이다.
본고는 1998년에 출판된 『향곡선사법어』를 중심으로 향곡의 선사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향곡은 선의 진정한 생명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자각하였는데, 그 핵심은 공안 참구를 통해 조사의 관문을 뚫고 대자유의 무사인(無事人)·무위진인(無位眞人)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즉 임제선과 조사선을 통하여 근·현대 한국선을 부흥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향곡의 법어집은 상당(上堂)·시중(示衆)·거량(擧揚)·송구(頌句)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조사어록의 체제를 복원한 것이다. 자신의 깨달음을 토대로 하여 전통적인 임제종의 조사선풍을 현대에 맞게 구현하고자 하였다.
향곡이 묘관음사를 선학원에 소속시키고, '임제종찰'임을 표방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임제와 태고와 경허로 이어지는 조사선과 임제선풍의 복원을 위하여 한평생 진력하였다. 또한 경허와 혜월과 운봉을 통하여 자신에게 이어진 법맥이 임제의 정맥임을 확신하고, 본분납자로서의 올곧은 삶과 법맥의 올바른 계승을 통하여 한국선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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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중 근현대불교의 서양철학 수용과 비판

저자 : 김제란 ( Kim Je-ra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8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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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중국·한국 근대불교에서 서양사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비판하였는가를 살펴보았다.
중국 근대불교에서는 웅십력(熊十力, 1885-1968)이 유식불교의 종자와 현행의 분리, '본체와 현상의 이분(二分)'을 비판하였는데, 이는 플라톤(Platon)으로 대표되는 서양 형이상학을 표적삼은 것이었다. 서양 생명철학인 베르그송(Bergson) 철학에 대해서는 우주 변화를 생명 에너지의 흐름으로 본 것을 긍정하였지만, 도덕적 성향이 없는 맹목적인 생명 충동을 중시한 점을 비판하였다.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칸트(I.Kant) 철학을 소개하고 유식불교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칸트의 감성·오성 개념을 유식불교의 전오식·제6의식에, 불교 '진여'를 칸트의 '진아'에, '무명'을 칸트의 '현상적 나'에 배대하였다. 그는 또한 자립적 국가로서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스펜서(Spencer)의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였다. 사회진화론과 불교의 일치성을 전제로 그 둘을 결합하였고, 유식불교의 종자설을 활용하여 진화를 국가와 개인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한국 근대불교에서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비판이라는 이중성이 존재하였다. 그는 사회진화론을 현실적 이데올로기로 긍정하여 불교계 계몽을 위해 활용하는 한편, 양계초식의 국가주의적 사회진화론을 비판하고 불성과 진여의 깨달음에 근거한 자유· 평등 사상을 제시하였다. 한국 근대 불교잡지에서는 서양 사상을 다양하게 수용하였는데, 그를 통해 불교를 철학화하고 실천적 종교로서의 불교를 모색하였다. 백성욱의 '불교순전철학', 김소하의 쇼펜하우어 철학의 수용, 김창운의 '개인'의 발견 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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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드 코로나 시대, 불교 기반 인권의 필요성과 그 의미 -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을 중심으로 -

저자 : 이명호 ( Lee Myoung-ho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2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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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야기된 사회변화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것은 비대면 생활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생활 곳곳에 ICT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생활은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그 중심에는 디지털 플랫폼이 있다. 초기에는 디지털 플랫폼이 온라인 공간과 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관계망을 활용하여 '공유경제'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대 /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즉 ICT 기술을 활용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존재하는 시·공간의 한계를 허물고, 오프라인에서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 공감을 방해하는 다양한 장애물을 무력화할 것이라 기대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은 혁신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 디지털 플랫폼은 여러 사회문제와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비판받고 있으며 갑질과 불공정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반전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디지털 플랫폼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지 못했다. 관계를 단절시키고 사람들을 단자화시켰다. 그로 인해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아파트 입주민과 배달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다. 이 두 집단은 배달이라는 일거리로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플랫폼 노동의 구조에서 이들 사이에는 커다란 해자(垓字)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안전권'을 이유로 충돌하고 있다. 인권이 개체 – 지향적으로 이해되는 환경에서 분리되고 단절된 이들의 인권은 서로 관계 맺지 못하고 원자처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권충돌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연구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분리되고 단절된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 해결을 위해 불교 기반 인권 개념을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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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지론학파의 법계연기(法界緣起) - 돈황출토 지론문헌 S.4303을 중심으로 -

저자 : 이상민 ( Lee Sang-mi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3-15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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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돈황출토지론문헌 S.4303을 중심으로 지론학파의 법계연기 사상을 고찰하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S.4303은 불교의 교리를 삼종교판의 구도로 논하면서 그중 최상위에 위치한 통종대승(通宗大乘)의 입장을 '법계연기(法界緣起)'로 설명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법계연기란 모든 개별 교리들간의 완전한 관계성, 무차별, 평등을 의미한다. S.4303은 이러한 교리의 완전한 관계성을 지론학파의 독자적인 관점이라고 선언하였다.
2) S.4303에 나타난 법계연기의 해석을 보면 후대 화엄교학에서 법계연기를 설명하는 주요 논의들이 이미 지론학파에서부터 형성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3) 기존 연구에서는 법계연기를 설명할 때 '법계'에 중심을 두고 논의하였으나, S.4303의 내용은 '연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론문헌을 살펴보았을 때, 지론학파의 또 다른 연기설인 연집(緣集)과 연기가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기원은 지론학파가 4권 능가의 삼성설(三性說)을 해석하면서 의타기성[緣起]을 원성실성[眞如]의 발현으로 보았던 여래장연기 사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다만 법계연기가 여래장연기에 기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론문헌 내에서 그 용어의 출현을 추적해보면 법계연기가 여래장연기에 선행한다. 나아가 지론학파 내 사상의 진전에 따라 법계연기는 여래장연기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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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법상종의 사중출체(四重出體) 고찰 - 『성유식론술기』와 『대승법원의림장』의 비교를 통하여 -

저자 : 박재용 ( Park Jae-yo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9-196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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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중출체(四重出體)는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교체론(敎體論)으로서 『성유식론술기』와 『대승법원의림장』 등의 법상유식 문헌에 전해지고 있다. 불교의 교체론은 부파불교 이후 논해져왔는데 법상유식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 사중출체이다.
각각은 섭상귀성(攝相歸性), 섭경종심(攝境從心), 섭가수실(攝假隨實), 성용별론(性用別論)의 네 가지로서,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좁혀지는 형태로 법상종의 교체를 정리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사중출체가 등장한 배경과 각각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성유식론술기』와 『대승법원의림장』의 해당 부분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그동안 행해진 국내외의 선행연구를 보면 규기가 호법(護法)의 '부처 설법설' 대신 '부처는 설법하지 않았다'고 하는 무성(無性)의 설을 지지하였다는 연구도 있고, 사중출체에 대한 논의에 호법 뿐 아니라 무성 등의 유식논사도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 연구도 있었다. 본고에서 『성유식론술기』와 『대승법원의림장』을 비교분석한 결과 규기가 '부처는 설법했다'고 하는 호법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으며, 사중출체 논의에 무성 등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사중출체를 논할 때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좁혀지는 방식을 참고하여 규기가 오중유식(五重唯識)을 주창했음을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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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능가경』의 불신관(佛身觀)에 대한 고찰 - 유가행 유식학파와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

저자 : 신돈각 ( Shin Don-ga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7-23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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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능가경』의 불신관(佛身觀)에 대하여 유가행 유식학파와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능가경』과 유가행 유식학파의 불신관에 대한 상관성을 고찰한 선행 연구는 없다. 『능가경』은 유식사상과 관련하여 세친(世親) 이전의 편찬과 이후의 편찬으로, 주장이 나뉘어 논쟁되고 있는 경전이기도 하다.
유식학파의 주요 논서인 『대승장엄경론』·『섭대승론』·『성유식론』·『섭대승론석』·『불지경론』에 의하면, 유가행 유식학파의 불신관은 자성신이 수용신과 변화신의 의지처로서, 일체법의 평등하고 진실한 성품, 즉 자성(自性)의 법신을 의미한다. 수용신은 법락(法樂)을 받아 수용하는 자리(自利)의 자수용(自受用)과 지상(地上)의 보살들에게 법락(法樂)을 누릴 수 있게 향수(享受)하는 이타(利他)의 타수용(他受用)으로 분리된 형태를 보인다. 수용신은 보신불을 의미한다. 그리고 변화신은 지전(地前)보살과 이승(二乘), 그리고 범부를 교화하는 화신불이다. 이러한 유가행 유식학파의 불신관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용(受用)과 향수(享受)의 불신인 수용신에 중점을 둔 불신관이다.
반면, 『능가경』은 법신(法身)이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을 통해 직접 광명으로 나투어 교화한다. 법신을 근본으로 보신은 색구경천에서 화신은 색신을 통해 이승과 범부 중생을 교화한다. 그리고 경전상의 많은 부분에서 법신 중심의 불신관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능가경』의 불신관은 법신이 교화의 주체적 불신으로 묘사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능가경』의 불신관에서 유가행 유식학파의 불신관과 상응되는 내용이 다소 보이고 있다. 또한 불신의 명칭도 자성신·수용신·변화신으로 유가행파와 동일하게 호칭하는 게송을 설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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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보살계본지범요기』의 유가계본·범망계본 중심 논쟁에 대한 연구(Ⅰ) - 선행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 -

저자 : 한명숙 ( Han Myung-soo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7-280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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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보살계본지범요기』의 성격과 관련하여 유가계본 중심설(이기영, 김호성), 범망계본 중심설(기무라 센쇼, 최원식, 남동신, 김상현), 비(非)중심적 조화설(최유진), 중심설·비중심적 조화설의 불성립설(박광연)이 제기되어 왔다. 필자는 본논문에서 기존의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 자신이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필자가 본논문에서 행한 연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행연구를 면밀히 검토하여, 범망계본 중심설과 유가계본 중심설에서 제시한 근거를 낱낱이 정리하였다. 유가계본 중심설의 근거는 네 가지【ⓐ-ⓓ】가 제시되었고 범망계본 중심설의 근거는 아홉가지【A-I】가 제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전자와 후자를 통틀어서 아직 누구에 의해서도 비판된 적이 없는 것 네가지【ⓒⓓCH)】에 대해 필자 자신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셋째, 범망계본 중심설 중 이미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졌지만 그 비판 자체에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 네 가지【(B-1, D-1, F-1, G-1】에 대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필자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넷째, 비중심적 조화설에 입각한 중심설 비판은 원효의 교판론(敎判論)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임을 밝혔다. 최유진은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에 입각하여 그 교판론을 관점의 차이에 따른 가치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였는데, 원효의 교판론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관점에 따른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밝혔다.
다섯째, 중심설·비중심적 조화설의 불성립설은 기존의 중심설 논쟁을 무화(無化)시키는 주장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화의 의미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검토하여 그 문제점을 밝혔다. 이 주장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반론은 조화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지면관계상 다음 논문에서 다루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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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유심안락도』의 정토관에 대한 고찰

저자 : 김연강 ( Kim Yeon-ga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1-31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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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저자를 둘러싼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유심안락도』 텍스트 자체에 대한 성격을 규명하여 함축된 정토관(부처님의 본원력과 타방정토관)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유심안락도』 저자의 문장을 검토하여 이 텍스트의 편찬 목적과 저자의 정토관에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선행연구에서 밝힌 이 텍스트의 정토관에 대한 오해를 푸는 시도였다. 『유심안락도』는 정토문의 가장 간편한 개론서이나, 원효의 진찬 논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텍스트의 성격과 편찬된 동기, 저자가 강조하고자 한 사상 등에는 관심이 높지 않았다. 논의가 이루어졌더라도 원효와 관련된 측면에서 다루어져, 텍스트 자체에 대한 독립적인 해석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유심안락도』의 저자가 불식시키고자 한 정토문의 오해에 접근하여, 정토관의 재해석을 통해 그 오해를 풀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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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에 나타난 호법(護法)과 호국(護國)의 상즉성(相卽性)

저자 : 오경후 ( Oh Kyeong-hwo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17-35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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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폐석교소는 백곡 처능이 조선왕조의 불교탄압정책을 지적한 상소문이다. 처능은 승려를 환속시키고, 왕실의 조상을 추모하고 위로하는 사찰을 폐쇄하는 등 전례 없는 불교탄압을 목격하였다. 왕조는 공자의 가르침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사찰을 헐고 학교를 세웠다. 불교는 이단이고, 이단은 조선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기조는 건국 이후부터 굳건히 지속되고 있었다. 때문에 「간폐석교소」는 조선 전시기의 불합리한 불교탄압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였다. 처능은 왕조가 내세운 6가지의 불교탄압 명분을 유교의 이론으로 반박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충효와 국가사회적 기여를 강조하여 불교존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사실 조선의 불교계는 두 차례의 전란 이후 왕조가 직면한 총체적인 위기를 극복하는데 공헌하였다. 당시 조선은 전쟁과 굶주림, 자연재해 등으로 생산구조가 파괴되었다. 승려들은 국방강화를 위해 요충지에 산성을 쌓고 수호하였다. 전쟁으로 파괴된 궁궐 등을 복원하고, 왕릉을 조성하는 토목공사에도 참여하였다.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서 도토리나 버섯을 채취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전쟁 이후 불교계는 조선이 국력을 회복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하였다. 백성들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 개편은 불교계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실제적인 대가가 없어 불교계의 사회경제는 참혹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처능의 상소는 조선불교의 정체성과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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