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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들의 발해지리 고증 ―안정복·유득공·한진서를 중심으로―

The Historical Examination of the Geography of Balhae by Silhak Scholars - Focusing on An Jeong-bok, Yu Deuk-gong, and Han Jin-seo -

김종복 ( Kim Jong-bok )
  • : 한국실학학회
  • : 한국실학연구 42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2월
  • : 113-146(34pages)
한국실학연구

DOI

10.23945/KSS.42.113.146


목차

1. 머리말
2. 『동사강목』과 초고본 『발해고』의 발해지리 고증
3. 수정본 『발해고』와 『해동역사속』의 발해지리 고증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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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실학자들은 발해사에 관심을 갖고 발해의 역사지리를 규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안정복의 『동사강목』, 유득공의 초고본 『발해고』는 인용 자료의 한계로 인해 발해의 주요 지역을 요동에 비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이는 『요사』 지리지 및 이를 전재한 『성경통지』를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정본 『발해고』는 『요사』 지리지 의 오류를 본격적으로 비판하고 발해의 주요 지역을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 비정하였다. 이는 『요사』 지리지 의 오류를 부분적이나마 처음으로 지적한 『대청일통지』를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정본 『발해고』는 한두군데에서 『요사』 지리지 의 오류를 간과하였고, (발해의) 서경 압록부에 대해서는 국내 문헌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는 오류도 범하였다. 한진서의 『해동역사속』은 수정본 『발해고』를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때로는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수정본 『발해고』의 부분적 오류는 읍루나 고구려 등 발해의 선행 역사에 소홀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해동역사속』은 한국사의 모든 시기의 역사지리를 다루었기 때문에 수정본 『발해고』의 부분적 오류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로써 조선후기 실학자에 의한 발해지리 고증은 근대역사학의 수준에 근접하게 되었다.
Silhak scholars in the late Joseon period aimed at identifying the historical geography of Balhae with an interest in the history of Balhae. However, An Jeong-bok(安鼎福)'s Dongsa-gangmok(東史綱目) and Yu Deuk-gong(柳得 恭)'s first edition of Balhae-go(渤海考) made the mistake of appointing the main areas of Balhae as Liaodong due to an error in the cited material. Both books cited Liaoshi(遼史)’s account of geography and Shengjingtongzhi(盛京通志) that reprinted it. After that, the revised edition of Balhae-go criticized the errors of Liaosh in earnest and the major areas of Balhae were appointed to the nor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northeastern part of the Manchuria. This is because the book cited Daqingyitongzhi(大清一统志), which was the first book that partially pointed out the error of Liaosh.
However, the revised edition of Balhae-go overlooked the error of Liaosh in several points, and also made a mistake of uncritically citing the Korean records about Seogyeong(西京) Amnokbu(鴨綠府). Han Jin-seo(韓鎭書)'s Haedong-yeoksasok(海東繹史續) was greatly influenced by the revised edition of Balhae-go, but sometimes took a critical stance on it. Partial errors in the revised edition of Balhae-go resulted from neglect of the preceding history of Balhae, such as Eumnu(挹婁) and Goguryeo. However, Haedong-yeoksasok was able to overcome the partial errors of the revised edition because it deals with the historical geography of all periods in Korean history. Thus, the historical examination of the geography of Balhae by Silhak scholars in the late Joseon period came close to the level of modern histor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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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22-100-001041464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598-0928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9-2022
  • :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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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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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磻溪隨錄의 方法과 體系

저자 : 안병직 ( Ahn Byong-jic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4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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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실학적 학풍은 栗谷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율곡은 軍役, 進上 및 貢物 등 부세수취과정에서 발생하는 隣徵族徵 및 胥吏의 苛斂誅求 등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한 제도개혁 즉 務實을 강조함으로써 經學중심의 유학적 학풍을 經世學으로 크게 회전시켰다. 임진왜란이후 개혁을 하지 않고서는 이제 더 이상 국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芝峯, 久菴및 浦渚 등도 務實力行을 강조하고, 그러한 분위기속에서 1608년에 경기도에서 대동법이 실시되었으며, 於于堂은 화폐의 유통과 상업·광업·어염·축산·수렵·채집 등 산업의 장려를 주장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磻溪는, 집안의 世業이던 관계로의 진출을 단념하고, 조상의 賜牌地가 있던 부안에서 농장을 경영하면서 도탄에 빠진 인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저술에 몰두하기로 했다. 그 결과가 31세에 起草하여 별세하기 3년전인 49세에 탈고한 『반계수록』이다. 『반계수록』의 저술에 있어서는, 小康社會가 실현되었다고 일컬어지는 중국三代의 경전에서 개혁의 이론적 모형을 찾고 조선의 역대개혁방안에서 시대적 개혁과제를 모색했다. 이러한 점에서 『반계수록』은 조선후기의 최대의 개혁서의 하나일 뿐만이 아니라 조선후기의 실상 을 잘 알려주는 저서이기도 하다.
반계의 인식론은, 이기론으로 출발했으나, '實理論'으로 귀결했다. 그 배후에는 사물를 움직이는 기본요인이 이기론의 太極·陰陽이 아니라 유학의 전통적 관점인 '誠'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즉 '성은 하늘의 道이요, 성을 이루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반계는, '성이 곧 진실이다'는 선행의 실학적 학풍을 이어받아, 성실하면 만물과 만사가 진실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 결과 '천지의 理는 만물에서 드러나니 物이 아니면 이치가 드러날 데가 없고, 성인의 道는 만사에서 행해지니 일이 아니면 도가 행하여질 데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반계는, 삼대의 古經은 '천지의 理'와 '성인의 道'를 기초로 저술된 것이므로, 지금은 비록 삼대의 典章이 각 고경에 흩어져서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古人이 진실로 그 일을 일로 삼는' 자세로 고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면 그 全體像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古人이 진실로 그 일을 일로 삼는' 탐구의 방법은 『漢書』河閒獻王德傳의 '학문을 닦는데 있어서 옛 것을 좋아하되 사실을 核實해서 옳은 것을 밝힌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고경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訓故·義理·條理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반계수록』의 서술방법은 節目과 攷說로 구성되어있다. 절목이 『반계수록』의 주된 서술방법인데, 반계는 절목에서 경세학의 조리를 절목별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획득된 삼대의 경세학체계가 井田制 및 賦貢制와 관제이다. 정전제는 公田·經田·田稅·軍役의 문제를 일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이며, 부공제는 화폐의 유통과 각종산업의 진흥방안이며, 관제는 이러한 국정과제를 수행할 과료기구의 정비이다. 이렇게 보면, 『반계수록』에서 비로소 조선후기실학의 기본특징인 실사구시라는 방법과 경세학의 체계가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반계는 조선후기실학의 鼻祖라 일컬어질만하다.


The Sirhak trend of late Joseon seems originated from Yulgok(栗谷) Yi-yi(李珥). Yulgok turned philosophy-centered Joseon Confucianism into a governance-centered one by focusing on systemic reform [務實] to remedy the abuse of taxation including military taxation and local tribute to the king. After the Japanese Invasion, with the emergent need for reform to sustain the state, Jibong(芝峯) Lee Su-kwang(李睟光), Gu-am(久菴) Han Baek-kyum(韓百謙) and Po-Jeo(浦渚) Jo-ik(趙翼) also advocated “practical action for systemic reform[務實力行].” In this atmosphere, Taedong tribute tax was forced in Kyong-gi Province in 1608, and Eoudang(於于堂) Yu Mongin(柳夢寅) insisted to promote monetary economy as well as commerce and industries of mining, fishery, livestock, hunting, and gathering.
It was the time of Bangye(磻溪) Yu Hyeoung-won(柳馨遠). He abandoned the road to be a governmental official like his predecessors and decided to write to save the miserable. Bangye Surok, which he started at age 31 and finished at age 49 just 3 years before his death, was the result of his efforts. Bangye found his theoretical ideal of reform in the Classics of Ancient Three Kingdoms in China which was so-called a small but solid state [小康社會] and found the social agenda of his time reviewing reform politics in Joseon history. With this regard, Bangye Surok is not only one of the best books on reform plans in late Joseon, but also the book that shows the reality of the time.
Bangye's epistemic premise started from the li/ki dualism but concluded with “the practical li (實理論)”. He thought the first causes and principles were not the Supreme Pole (太極) or yin-yang (陰陽) of li/ki dualism, but “Sung(誠)” in traditional Confucianism, expressed as “Sung is the way of heaven, and to be Sung is the way of man.” Here, Bangye successes the Sirhak thinking of “Sung is the practical” and thought that everything becomes practical when you realize “Sung.” “Because li of the universe is expressed in everything, without material, Li can't be disclosed ; Because the way of Sage is performed in everywhere, without administration, the right way can't be demonstrated.” he concluded.
In this regard, Bangye thought that he can restore the whole image of Ancient Classics by comprehensive studying modeling “the way the sages do the work” because the Classics were based on the 'li of the universe' and 'the way of sage', even though the book was scattered in all directions. “The way the sages do the work” is the same method as “Studying classics but searching for the truth from real facts” in『漢書』河閒獻王德傳, which aims to study Classics with the approach of philology, philosophy, and logic.
Bangye Surok's description method is using Julmok(節目) and Goseol(攷說). The most part of Bangye Surok is written in Julmok style, to explain the governing principles categorically. Bangye suggested the well-field system (井田制), royal contribute taxation (賦貢制), and bureau system (官制) as the governing system in the Ancient Kingdoms. The well-field system can total solution to the problem of land and military taxation in 公田·經田·田稅·軍役. The royal contribute taxation (賦貢制) is the way to promote the monetary economy and various industries, while the bureau system (官制) is needed to optimize the governmental offices to perform the projects. As a result, we can say the essential characteristics of the late Joseon Sirhak, “Searching for truth from real facts (實事求是)” and the governance principle was finally established in Bangye Surok, and that Bangye was the progenitor of Joseon Sir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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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형원 연구의 시각과 『반계수록』 읽기의 방향

저자 : 송양섭 ( Song Yang-seop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7-87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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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진행된 내재적 발전론의 흐름에서 실학의 발견과 함께 본격화한 유형원에 대한 연구는 최근 조선후기사 분야별 성과의 축적으로 여타 부문사와 심각한 부정합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실학 일변도로 진행되어 온 유형원 연구에 새로운 고민과 발상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거니와 실학의 담론이 보편의 외피로 서구의 근대를 모델로 삼아 이와 유사한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추출하여 斷章取義의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근대'를 기준으로 조선후기 사상계를 보수와 진보로 가르는 방식도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반계수록』의 내용은 특정 학파의 전유물로 단정하기 힘든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유형원의 경세론이 지역과 당색을 불문하고 많은 지식인들에게 공감을 얻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형원의 개혁론은 철학적 심성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원래 송대 성리학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집중했던 것도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개혁을 통한 도덕사회의 건설이었다. 유형원이 퇴계학파의 세례를 받은 이기심성론적 철학적 토대 위에 국가·사회에 대한 방대한 개혁론을 펼쳐내고 있는 것은 『반계수록』의 경세론이 修己治人·內聖外王의 성리학적 사상체계에서 파악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유형원은 보편문명으로서 삼대의 이상을 꿈꾸면서 송대 성리학자들에 대한 탐구를 통해 조선의 현실을 분석·비판하고 새롭게 국가체제를 쇄신하고자 했다. 바로 조선의 성리학이 특유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풍부하게 담아낸 독자적인 사상으로 추상적·사변적 철학을 논구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국가체제를 모색하는 단계로 새롭게 진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좌였다. 『반계수록』의 개혁안은 국초의 제도를 모델로 철저하게 당대의 제도를 수정·보완하는 차원에서 구상되었으며 이념형의 형태를 강하게 띤 공전제 외에 왕조체제를 부정한 '근본적 개혁'을 지향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찾기 힘들다. 따라서 『반계수록』에 대한 독해에서 일차적으로 밝혀져야 할 지점은 유형원이 딛고 선 현실에 대한 엄밀한 이해와 여기에 규정된 사상의 당대성이다. 유형원의 학문적 현실개입은 무엇보다도 17세기 시공간의 고유한 맥락에서 의미와 역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반계수록『이라는 텍스트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훼손없이 스스로의 문법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안으로부터의 관점'은 선입견이나 현대적 해석을 배제한 채 유형원의 관점에서 『반계수록』의 내적 논리구성을 온전히 인정하고 복원해주는데서 시작한다. 이러한 『반계수록』 내부의 구조와 문법이 밖으로부터 보기와 만날 때 비로소 역사성을 가진 실체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유형원의 눈을 통해 시대를 보고 시대의 규정 속에서 유형원을 읽는 작업이다. 유형원의 구상이 고제의 이상에 비추어 중국과 조선의 역대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와 평가를 수행하였던 만큼 중층적 내용성과 복합적 해석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유형원 개혁론에 대한 이해도 그것이 가진 층위별 차별성과 그것이 하나의 개혁론으로 구축되었을 때 나타나는 경세학적 의미를 고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바로 조선후기 경세론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위한 '방법으로서 유형원'에 대한 인식론적 모색이다.


Studies on Yu Hyeongwon, started with the discovery of Silhak, the Practical Learning amid the discourse of the Internal Development Theory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are showing unconformity with other fields of history, where many products of historical research are accumulated. This tells us that we need new inspirations and concerns for the study on Yu Hyeongwon, which was exclusive to Practical Learning. Moreover, the discourse of Practical Learning is hard to avoid the criticism that it was modeled after the 'Western Modern' as the skin of universality and similar elements were extracted selectively to support this, not to mention that the historiography has had the same problem of dividing 'conservatives' and 'progressives' based on 'Modern'. The contents of Bangye Surok have a complex characteristic that cannot be judged as a property of a certain school of thoughts, and this was the factor why the statecraft of Yu Hyeongwon earned support regardless of region and political party.
The reformations suggested by Yu Hyeongwon are inseparable from philosophical theory on the nature of humanity. Originally, the reason for Neo-Confucianism in the Song dynasty to concentrate on metaphysical matters was to prepare for establishing a new social order, and the ultimate goal of the Song Neo-Confucianism was to build a moral society based on social reform. The fact that Yu Hyeongwon articulated his idea on vast reformation on the state and society based on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Principle-Material-Mind-Nature (理氣心性) influenced by Toegye school shows that the statecraft of Bangye Surok needs to be understood on the basis of Neo-Confucian ideal structure centered on the ideas of Cultivating one's Self and Governing the Others (修己治人) and Internally being the Saint and Externally being the Sovereign (內聖外王). Yu dreamt the ideal of Three Dynasties of Ancient China and explored the theories of Song dynasty Neo-Confucian scholars. By doing so, he analyzed and criticized the reality of Joseon, and attempted to renew the system of the state. This was the evidence that Neo-Confucianism in Joseon, as an independent idea abundant with its unique placeness and historicity, was entering a new phase, where they criticized the social realities and sought a new state system, beyond arguing abstract and speculative philosophy.
The reformations in Bangye Surok were modeled after the initial system of Joseon and were designed to amend and supplement the system of the time. Other than the Public Land System, which strongly showed the ideal form, there is no reason to judge that Bangye oriented for the 'foundational reformation' denying the dynastic system. Therefore, when reading Bangye Surok, the foremost point of clarification is the strict understanding on the reality which Yu Hyeongwon lived in, and the contemporaneity of the idea regulated in his writings. Most of all, Yu's academic involvement in his reality has nothing to do but have its significance and historicity in the unique context of time and space in the 17th century. What is most important is to reconstruct its own grammar without harming the general context, by accepting the texts of Bangye Surok without any bias. The 'perspective from the inside' starts from admitting and restoring the inner logics of Bangye Surok from the perspective of Yu Hyeongwon, excluding any prejudice and modern contemporary view. When the inner structure and grammar of Bangye Surok meet the eyes from the outside, the substance with the historicity reveals itself. That is, it is the work to read Yu Hyeongwon in his time through his eyes. Since Yu Hyeongwon reviewed and evaluated vast systems of all times in China and Joseon Korea reflecting the ideal of the 'Ancien Regime', his design has multi-layered substances and a possibility of multiple interpretations. Thus, I think that when we understand his reformation, we ought to consider the significance of statecraft revealed when distinct layers of his idea are converged into one reformation. This is the epistemological quest for 'Yu Hyeongwon as a method' to understand statecraft in late Joseon period d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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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반계 유형원의 부안 우반동 이주와 『반계수록』 편찬

저자 : 이동희 ( Lee Dong-he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1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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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반계 유형원이 부안 우반동에 왜 내려오게 되었고, 우반동은 어떤 곳이었으며, 그의 우반동 생활은 어떠했는지 『반계수록』의 편찬과 관련해 고찰해 본 것이다. 우반동은 서해안 변산 자락으로, 산자락 안쪽에 너른 들녘이 자리하고, 그 앞으로 바다가 펼쳐진 포구이다.
우반동에는 반계의 선조 유관의 사패지가 있었다. 오랫동안 묵혀져 있던 이 우반동 땅을 반계의 조부 유성민이 내려와 논밭을 만들고 경작하기 시작하였다. 조부 유성민이 죽자 반계는 삼년상을 치르고 조부에 이어 우반동 농장을 경작하기 위해 내려왔다. 반계의 우반동 이거는 은둔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였다.
반계는 우반동에 거주하면서 1.7년에 한 번꼴로 서울 일원을 자주 왕래하였다. 서울에 머문 기간도 짧지 않았다. 반계는 농촌현실을 목도하고 중앙과 소통하면서 개혁론을 완성하였다. 반계는 낙향하였지만, 현실정치 참여 의지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반계는 현실정치 참여에 깊은 관심을 두고 개혁론을 구상하였다.
반계는 농장경영을 위해 우반동으로 내려왔고, 중앙과 소통하며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반계의 개혁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반계 개혁론의 토대가 부안 우반동이었음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Uban-dong is a port town between a field and Yellow sea in Byeonsan, one of the ten safety places(Utopia) in Korea. There was a land bestowed by the king on his ancestor, Yu Gwan. His grandfather, Yu Seong-min went down to cultivate this land after a long time. After his grandfather was dead, he went there as well and succeeded grandfather. His migration is not escapism, but the problem in hand.
He visited Seoul once 18 months while residing Uban-dong. He did not give up to take part in politics even though he went back to his hometown. He was more interested in a participation in politics and planed reformism by experiencing the reality of farming villages and communicating with politicians in Seoul. So It is need to approach from this standpoint for understanding his reformism wholly, and keep in mind that Uban-dong is the foundation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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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Yu Hyeongwon, James Palais, and the Definition of Silhak

저자 : Donald Baker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5-14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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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팔레(James Palais, 1934∼2006)는 영어권 학계에 유형원(1622∼ 1673)의 정치철학과 개혁 제안을 널리 알리는 데 있어 누구보다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팔레(Palais)의 방대한 연구인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 유형원 과 조선 후기』는 영어로 저술된 조선 시대 연구의 가장 영향력 있는 단행본중 하나이다. 이 저서는 유형원이 조선 후기 실학파 학자라는 통념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팔레는 17세기 조선이 직면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학자가 바로 유형원임을 인정했지만, 유형원의 개혁 제안이 이른바 근대 적 요소를 보여준다는 점은 부정하였다. 예컨대 팔레는 보다 공정한 토지의 재분 배에 대한 유형원의 제안이 근대성의 맹아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전통적인 유교 적 假定의 반영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유형원의 개혁제안에 대한 팔레의 논의 에서 팔레가 유형원이 문제를 진단하고 있음에는 동의하지만, 이러한 문제의 원 인에 대해 적절하게 진단하고, 이를 해결할 만한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 는 유형원이 실패했다고 구분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James Palais (1934-2006) did more than anyone else has done in English-language academia to publicize the political philosophy and reform proposals of Yu Hyeongwon (1622-1673). Palais' massive study, Confucian Statecraft and Korean Institutions : Yu Hyŏngwŏn and the Late Chosŏn Dynasty, remain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works on Korea's Joseon era written in English. This work is particularly important for its challenge to the widely-accepted view that Yu was part of a silhak (“practical learning”) school which arose in the second half of the Joseŏn period. Even though he recognized that Yu was the first scholar in Joseon to produce a comprehensive analysis of the problems Joseon faced in the 17th century, Palais denied that Yu's reform proposals display the modernizing elements he is often credited with. Instead, Palais argued that, for example, Yu's proposal for more equitable land redistribution was more a reflection of traditional Confucian assumptions than it was a manifestation of a budding modernity. We see in Palais's discussion of Yu Hyeongwon's reform proposals a distinction between identifying problems, which Palais agrees Yu did, and correctly identifying the causes of those problems and well as coming up with effective ways to solve them, none of which Palais believed Yu d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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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형원, 제임스 팔레, 그리고 실학의 정의

저자 : 도널드베이커 , 심규식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7-16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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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雜同散異』의 異本과 特徵

저자 : 최식 ( Choi Si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20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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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잡동산이』 초고본 42권과 정서본 53권을 바탕으로 『잡동산이』의 이본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잡동산이』의 저자와 관련하여 『안정복일기』52에는 '『잡동산이·소설고』를 汝精이 빌려 갔다.[雜同散異小說考汝精借去.]'는 구절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또한 『안정복일기』51에는 안정복의 초서와 저서가 주변 지인들에게 널리 유통·향유되었음을 시사하는 자료가 전하는데, 14종의 서명과 일시 및 빌려 간 사람까지 매우 상세하다.
「순암장서목록」에 따르면, 『잡동산이』는 33권과 42권 등 2종이 등장하는데, 42권의 초고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전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정서본 53권에는 총 13권을 누락하고, 초고본에 없는 科文 12편·『浙江鄕試硃卷』(陸飛/嚴誠/潘庭筠)·『黃江問答』(韓弘祚)·「黑衣人傳(孟學士傳)」 등을 수록하고 있다. 더욱이 정서본은 초고본을 차례대로 정서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정서하여 권차가 뒤죽박죽 뒤섞여 있다.
『잡동산이』 초고본은 몇 가지 특징이 포착된다. 먼저 '잡동산이'의 표제 하단에 副題를 기록한 경우가 상당수이다. 또한 표지에 해당 권의 수록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하여 목차를 대신하거나, 내지에 목차를 상세하게 기록하기도 한다. 더욱이 해당 권의 이면에도 내용을 수록한 경우, 표지에는 간략한 목차를 기록하고 내지에는 이면의 목차를 부기한다. 이는 『잡동산이』가 일정한 분류 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를 의식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한편 정서본의 『절강향시주권』은 안정복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입수하여 수록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잡동산이』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순암장서목록」에 등장하는 『잡동산이』의 일부로 추정할 수도 있고, '조선총독부취조국'에서 『잡동산이』의 일부를 입수하여 수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황강문답』은 노론과 송시열을 옹호하는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전체가 아닌 그 일부를 수록하고 있다. 당시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견해로 논란을 초래한 사안으로, 안정복은 근기 남인으로 『황강문답』을 입수하여 초서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정서본은 『절강향시주권』과 『황강문답』에서 알 수 있듯이, 초고본에 누락된 『잡동산이』의 일부로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This article has taken a look at the different version and characteristics of 『Japdongsani (written record of miscellaneous matters written by An Jeong-bok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of Joseon Dynasty)』 on the basis of 『Japdongsani』 with 42 volumes of initially-drafted version and 63 volumes of fair copy version that are known to this time.
With respect to the author of 『Japdongsani』, 『Diary of An Jeong-bok』 52 still clearly retains the phrase of 'Yeojeong borrowed 『Japdongsani·Soseolgo』 [Japdongsani Soseolgoye9jeongjajeo.]'. In addition, 『Diary of An Jeong-bok』 51 displays the data that implicates that the initial draft and published book of An Jeong-bok have been broadly distributed and shares with the surrounding acquittances and it provides extremely detailed data with the signature of 14 kinds, date and time and persons who borrowed such information.
According to 「Sunam Jangseo Mokrok」, 『Japdongsani』 is emerged with two types in Vol. 33 and Vol. 42, and only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of Vol. 42 is presented in Gyujang-gak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the meantime, Vol. 53 of the fair copy version deletes a total of 13 volumes and it recorded 12 pieces of Gwamun (contents of discourse, 『Jeolganghyangsijugwon』 (Ryukbi/Eomseong/Ban Jeong-gyun), 『Hwanggang Mundap』 (Han Hong-jo)·「Heukuiinjeon (Maenghaksajeon)」 and others that do not have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Furthermore, the fair copy version has a number of persons published without the sequential referenced to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to have the sequence of publishing all mixed up.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of 『Japdongsani』 contains a few characteristics. First of all, there is a significant number of cases where the lower part of the title for 'Japdongsani' has recorded the sub-title. Also, the cover has brief record of contents recorded in the applicable volume to replace the index or detailed record of index on the inner page. Henceforth, for any case of recording the contents on the rear part of the applicable volume, the cover records the brief index and the inner marks the index of the rear side. This would be the case of verifying that 『Japdongsani』 is aware of readers as well as having certain classification system.
In the meantime, there is no indication of how An Jeong-bok acquired and record the same from the fair copy version of 『Jeolganghyangsijugwon』 for any confirmation, and it is also difficult to determine if it is not related to 『Japdongsani』 at all. It may be assumed as part of Japdongsani』 that is emerged in 「Sunamjangseo Mokrok」 and there is a possibility for 'Bureau of Inquiry, Joseon Government General' to acquire and record part of 『Japdongsani』. In addition, 『Hwanggang Mundap』 depicts its opinion to defend Noron Faction and Song Si-yeol that it covers not its entirety but only a fraction of it. At the time, as an agenda that caused the conflict from political preference by Noron Faction and Soron Faction, An Jeong-bok was a member of Namin Faction to acquire 『Hwanggang Mundap』 for Therefore, the fair copy version, as shown in 『Jeolganghyangsijugwon』 and the initial draft. 『Hwanggang Mundap』, is part of 『Japdongsani』 that is deleted from the initially-drafted version that contains significant data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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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잡동산이』 소재 眉叟遺文에 대한 고찰

저자 : 김대중 ( Kim Dae-joong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3-24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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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安鼎福(1712∼1791)의 『잡동산이』 제10책에 수록된 '세 편의 眉叟遺文'을 발굴하여 상세하게 소개한다. 그 세 편의 글은 「『성학집요』 뒤에 쓰다」(書聖學輯要後), 「학술을 논함」(論學術), 「출처를 논함」(論出處)이다. 모두 刊本 『記言』에는 빠진 글들이다. 일단 본 논문은 『잡동산이』 내 '미수유문'의 수습 양상 및 관련 문헌을 검토한다. 그런 다음 '세 편의 미수유문' 각각의 전문을 소개한다.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제시하는 것은 물론, 본문 원문에 대해서는 이본 대조 및 표점 정리 작업을 하고 출전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붙이며, 글의 내용적 특징, 허목의 다른 글들과의 연관성, 남인 당론서와의 관련성 등을 두루 짚어본다. '세 편의 미수유문'은 眉叟 古學의 당파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학집요』 뒤에 쓰다」와 「학술을 논함」은 李珥에 대한 이단 공격을 한 글이다. 이이의 실체가 유학자의 탈을 쓴 불교도라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출처를 논함」은 임진왜란 초에 成渾이 국왕을 호종하지 않아 출처의 의리를 어긴 것을 비판한 글이다.


This paper discovers and introduces in detail the 'three pieces of Misu(眉叟)' collected in the 10th book of Japdongsani(雜同散異). The 'three pieces of Misu' are “An article on the back of Seonghakjipyo(聖學輯要)”(書聖學輯要後), “An article on scholarship”(論學術) and “An article on conduct”(論出處), which are all missing in the printed edition of Gieon(記言).
This paper introduces the full text of each of the 'three pieces of Misu', presents the original text and the translation together, gives detailed commentaries to the original, and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articles, the relevance of Heo Mok(許穆)'s other writings and the relationship with Namin(南人) Party's documents.
The 'three pieces of Misu' clearly show the partisanship of Heo Mok. “An article on the back of Seonghakjipyo” and “An article on scholarship” attack Lee-I(李珥)'s ideas as heresy. “An article on conduct” criticizes Seong Hon(成渾) for not following the king at the beginning of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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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순암 안정복의 「國朝典故雜錄」 분석 ―『잡동산이』의 성격과 그 항목화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3-26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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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잡동산이』에 대해서는 진작에 안정복의 작품으로 간주되어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총독부 정리본과 순암 안정복의 친필본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곧 총독부 정리본은 행초본의 원본을 精寫하여 정리한 공로가 없지 않으나 '조선의 식민화 작업에 소용되는 자료의 정리'라는 총독부의 입장에서 요긴한 것을 발췌하여 편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원자료는 훼손되었다. 그러므로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순암 안정복의 친필본 『잡동산이』에 대한 대강의 검토와 그 성격에 대한 이해는 매우 요청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순암의 『잡동산이』라는 저술이 지닌 성격을 전체적으로 검토하되 구체적인 사례연구로 제16책 『국조전고잡록』에 수습된 국조전고에 대한 자료를 분석해 보았다. 순암이 수습하고자 한 자료의 성격과 그 편집 방향의 일단을 짐작해 보려는 것이다.
검토 결과 순암 안정복의 『잡동산이』는 순암의 관심사가 집약된 필사노트로서 순암의 표현을 빌자면 '초서롱'계열에 해당하는 저작임을 확인했다. 『잡동산이』는 체계적인 분류에 의해 계획적으로 필사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사한 내용들이 해당 단위별로 적지 않은 분량들을 차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類編의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잡동산이'가 된 것이다.
국고전장에 대한 기록을 모은 「국조전고잡록」의 경우, 그것이 사전에 기획된 주제에 의해 선별적으로 모은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집중된 주제, 이를테면 관방이나 국조전례에 대한 일관성있는 주제의 배열은 이 기록들 자체로 편집적인 기능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관련 자료 자체가 상당히 해당 주제에 있어 긴요한 것을 선별하여 수록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顧問의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잡동산이』는 순암의 저서가 이룩되는 충실한 중간단계로서의 초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분류의 방법과 서술된 내용이 매우 다양하고 흥미로운 자료이기 때문에 이 자체로 당대 지식의 지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With respect to 『Japdongsani (record of miscellaneous matters written by An Jeong-bok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of Joseon Dynasty)』 that is kept in Gujanggak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studies have been acknowledged the work as the work of An Jeong-bok already, but it has been affirmed that there are significant discrepancies in the summarized version from the Government General and personally written copy of Sunan An Jeong-bok. The summarized version from the Government General has certain merit to fine copy the original copy of the first draft to summarize as its merit, but it is clear that the critical part was excerpted and compiled in the position of the Government General in 'summary of data that required in the colonization scheme of Joseon' and the original data was consequently damaged. Therefore, there is an extremely appealing on review of 대강 and understanding on its characteristics for the personally-written copy of 『Japdongsani』 by Sunam An Jeong-bok that could be considered as the original copy.
In this article, on the basis of such an awareness of issues, the characteristics contained in the publication of Sunam, 『Japdongsani』, is to be reviewed, but the data on Gukjojeongo that is specified on 16 books of 『Gukjojeongo-japrok』 is to be structured for the feature of the data for Sunam to collect along with its direction.
As result of such review, 『Japdongsani』 of Sunam An Jeong-bok is a copied note with the intensified interests of Sunam that, in the expression of Sunam, it is confirmed to be the publication applicable for the 'initial draft' line of work. It is not the copy with a plan under the systematic classification, but the unit of the copy takes significant volume that part of it could have certain effect naturally and this is an incidental effect not specifically intended.
For the case of 「Gukgojeongo-japrok」 that gathered the record on Gukgo-jeonjang, even if it is not the collection by sorting out under a theme that is planned in advance, it may be considered that the arrangement of consistent theme on Gwanbang or Gukgojeonrye with the theme intensified to a degree to have the independent compilation function from its records. In addition, since the ones required for the applicable theme with the pertinent data sorted out and recorded, it may be assessed to be meaningful as the advisory data in and itself.
In such implication, 『Japdongsani』 may be assessed as an extremely diverse and interesting data that displays the initial draft as a substantive intermediary phase that could be accomplished by the Sunam's published book. This fact alone carries out the function to assume the graphical drawing of knowledge on certain discourse of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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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안정복의 명나라 유민에 대한 기록과 인식 - 『잡동산이』를 중심으로 -

저자 : 손혜리 ( Son Hye-ri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1-30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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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安鼎福(1712~1791)의 『雜同散異』 제17책에 수록된 「明季遺聞抄」와 「啓禎野乗抄」를 중심으로 명나라 유민에 대한 기록과 인식에 대하여 살펴본 글이다.
안정복은 명과 청의 교체기에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 南明의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를 기록하였다. 그 방법으로 '抄書'를 활용하였으니, 명말 청초의 학자인 鄒漪가 편찬한 『明季遺聞』과 『啓禎野乘』에서 「명계유문초」와 「계정야승초」를 초록해 둔 것이다. 특히 「명계유문초」의 경우 『명계유문』에서 일부 내용을 선별하여 초록하고 따로 제목을 붙인 만큼 안정복의 작가의식이 적극적으로 발현되어 있다. 『명계유문』에 대한 지식 정보를 수집하고 인용하면서 자기화하는 과정을 추적한 결과 『잡동산이』의 자료적 가치뿐만 아니라 성격 및 특징의 한 양상을 규명할 수 있었다. 이는 『잡동산이』가 잡박하기만 한 초서 집적물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잡동산이』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안정복의 명과 청에 대한 대외인식을 고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records and perceptions of the people of the Ming Dynasty, focusing on the 『Myeonggyeyumun(明季遺聞)』 and 『Kyechongyasŭng(啓禎野乘)』, which are included in the 17th book of 『Jabdongsani(雜同散異)』 written by An Chongpok(安鼎福, 1712~1791)
An Chongpok recorded with interest in the characters and historical sites of Nammyeong, who kept their loyalty to the order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In that way, Chaucer was used, and 『Myeonggyeyumuncho(明季遺聞抄)』 and 『Kyechongyasŭngcho(啓禎野乘抄)』 were written in 『Myeonggyeyumun』 and 『Kyechongyasŭng』 compiled by Chu Yi(鄒漪), a scholar from the late Ming to the early Qing Dynasty. In particular, as some of the contents of 『Myeonggyeyumuncho』 were selected and recorded, and the title was given separately, An Chongpok's sense of writing was actively expressed.
As a result of tracking the process of collecting, quoting, and further magnetizing knowledge information on 『Myeonggyeyumun』, it was possible to identify not only the material value of 『Japdongsani』 but also one aspect of its character and characteristics. It has implications for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Japdongsani』, showing that 『Japdongsani』 is not just a small Chaucer aggregation. Through this, it is expected that it will help to enhance the external perception of Ahn Chongpok's name and Ch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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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하빈 신후담의 자득과 성호 성리설의 비판적 계승 - 사단칠정론과 인물성론을 중심으로 -

저자 : 최정연 ( Choi Jeong-yeo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05-34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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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河濱) 신후담(愼後聃, 1702∼1761)은 투철한 懷疑와 自得의 자세로 유교 경전을 기존과 다르게 해석했다. 특히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理氣四七설을 수용하여 자신의 논리 하에 정교하게 다듬어갔는데, 그 성과가 『사칠동이변』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빈은 이 책을 저술한 그해 여름에 당시의 正說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여 구설에 올랐고, 사후에도 정론에서 벗어나 리기설과 경전을 자의로 해석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하빈의 해석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그가 기존과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글에서는 하빈이 피력한 이질적인 리기사칠설이 성호설을 세밀하게 보완하여 산출된 이론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문 2장에서는 하빈이 『사칠신편』을 입수한 경위를 간략히 제시하고, 그가 『사칠동이변』에서 성호에게 제기한 세 가지 이견을 소개했다. 그리고 3장에서 5장까지는 그가 성호설과 해석을 달리한 쟁점 셋을 차례로 점검했다. 3장에서는 사단과 칠정의 성을 별개로 구분한 하빈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 이론적 토대를 밝혔다. 4장에서는 앞 장에서 밝힌 이론적 토대를 근거로, 그가 인간성과 동물성을 구분한 논리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5장에서는 사단과 칠정이 서로 다른 성의 발현이라는 하빈의 주장을 기초로 그의 공칠정설을 검토했다.
성호가 자득과 회의의 정신을 중시하면서도 주자설과 퇴계설의 보전이라는 학파적 과제에 주안점을 두어 해석에 신중히 한계선을 그었다면, 하빈은 자득과 회의를 동력으로 삼아 자유로운 경전 해석과 학술 발전에 중점을 두고 그 선을 넘어서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러한 학문 태도는 정산(貞山) 이병휴(李秉休, 1710∼1776)의 지지를 받았고 정산을 추종하던 문인들에게도 이어졌다. 이들 사이에 서학의 적극적 수용과 과감한 경전 해석이 나타나며 성리학의 지식체계를 뒤흔들게 된 것도, 성호조차 우려할만한 학술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Shin Hudam(愼後聃, 1702-1761) interpreted Confucian canons differently from the past with a thorough the attitude of suspicions and self-acquirement. In particular, he accepted Li Ik(李瀷, 1681-1763)'s theory of li and qi and theory of four-seven and elaborated them under his own logic, the results are clearly revealed in his Sachildongibyeon(四七同異辯).
In the summer of the year when Habin wrote this, he put forward different opinions from the established theories, so even after he died, he was evaluated as “a person who voluntarily interpreted the theories and the canons.” However, negative looks at Habin's interpretation disproves that he offered different interpretations.
When Seongho emphasizes the spirit of suspicion and self-acquirement, but focuses on the school of thought of the conservation of Toegye Theory and Zhuxi Theory, and draws a limit to the interpretation, Habin seems to have tried to cross the line by focusing on free interpretation of canons and academic development, using suspicion and self-acquirement as the driving force. His scholarly attitude was supported by Lee Byeong-hue and followed by the literaries who followed him. It is speculated that it was possible that the unprecedented interpretation of the canons emerged among them and shook arguments of Seongnihak(性理學) because a free academic atmosphere was created within the school, which even Seongho was concerned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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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약용과 최한기의 위민론(爲民論) 비교 고찰

저자 : 김경수 ( Kim Kyung-soo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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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그간 민주주의와 관련지어 평가되어온 다산과 혜강의 정치철학적 특징을 유가 민본사상으로 조망하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다산의 原牧과 湯論에 나타난 下而上의 정치권력 발생론과 혜강의 民願과 共治등의 개념은 민주주의적 함의를 갖는 것으로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이러한 특징들이 근본적으로는 유가 민본사상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나타난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의 정치철학을 분석할 것이다.
민본사상은 크게 위민론과 애민론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본고에서는 위민론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다산과 혜강의 同異를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들의 정치철학이 유가 위민론의 계승과 발전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다산과 혜강은 모두 위민정치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하이상의 정치권력 발생론에 두고 있으며, 이것은 목민관의 존립이유를 위민으로 규정할 수 있는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근거로서 작동한다. 아울러 이러한 특징은 위민 정책의 수립과 실천에 있어 민의의 수렴을 사전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민의에 대한 사전적 수렴작용 없이, 천과 성인에 의해 덕치가 민을 위한 정치형태로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유가 위민론과의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차별성은 당시 다원화되고 구체화되던 민의를 유가의 위민정치로 묶기 위해 발생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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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피(西陂) 유희(柳僖)의 『중용장구보설(中庸章句補說)』 연구 - 구조 분석 특징과 主氣的 학설 비판을 중심으로 -

저자 : 오보라 ( Oh Bo-ra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1-8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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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유희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희의 경학관과 학맥에 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중용장구보설』을 살펴보았다.
유희는 道를 밝혀 일상생활에 실천하는 것이 儒學의 本領이라고 여겼으며, 여러 분야에 통달한 '通儒'가 되는 것이 儒者의 진정한 本分이라 여겼다. 따라서 유희의 경전 해석은 주자학의 학문 방법론을 토대로 도를 실현하는 것을 큰 틀로 삼되, 세부적인 文義해석에 있어서는 다양한 설을 폭넓게 검토하고자 했다. 이처럼 유희는 주자학의 학문 방법론을 종지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유연한 경전해석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전 해석 태도를 지닌 유희의 저술에서 理氣心性論의 존재 양상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저술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유희의 경전 해석은 주로 유학의 실천성과 文義의 치밀한 고증에 방점을 두고 있으며, 전자는 補說類저술에 후자는 訓詁類저술에 각각 드러난다. 유희의 『중용장구보설』은 補說類에 속하는 저술로, 여기서 유희는 『중용장구』의 각 장절에 대한 견해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서술했다.
본고는 유희의 『중용』 해석 특징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구조분석의 측면에서 보면, 유희는 程子의 三分說을 수용하여 1장과 33장이 『중용』의 핵심, 즉 道의 本然을 말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2∼32장은 도의 본연이 萬事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보았다. 유희는 정자의 삼분설에 의거해 『중용』의 구조를 분석하여, '中庸'을 인간이 행해야 할 핵심 규범으로서 강조했다.
내용 분석에 있어 가장 큰 특징은 유희가 主氣的해석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희는 큰 틀에서는 栗谷의 학설을 수용하되, 지나친 氣의 강조가 가져올 수 있는 理의 주재성 약화를 우려하여 氣에 대한 理의 우위를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을 지닌 유희는 氣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韓元震의 학설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희는 한원진의 설이 심성 수양에 의한 도의 윤리적 실천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아울러 유희는 한원진이 氣를 강조해 새로운 설을 수립함으로써 지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한다고 여겼다.
경전 해석에서 유학의 실천적 측면을 중시한 유희는 인간 세상의 萬事에 적용되는 윤리 규범으로서 『중용』을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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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정조(正祖)의 『사서대전(四書大全)』에 관한 비판적 인식에 대하여 - 『사서집석(四書輯釋)』의 재구성을 중심으로 -

저자 : 이영준 ( Lee Young-jun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7-11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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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正祖의 『四書輯釋』 재구성을 통하여 『四書大全』에 관한 그의 인식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大全』은 조선조의 公認된 註釋書인 만큼 정조의 經學에 있어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정조의 경전 해석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전』에 관한 그의 인식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기에 본고는 試論으로서 우선 『사서대전』에 관한 정조의 인식을 고찰하였다. 정조는 東宮시절부터 『대전』에 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이후 『대전』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취하였다. 『사서』에 있어서는 『사서대전』의 底本인 『사서집석』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1799년(정조23)에 38권 『重訂四書輯釋』을 완성함으로써 『사서집석』의 원형을 회복하였지만 결국 印頒하지는 못하였다. 『사서대전』에 관한 정조의 비판적 인식은 『사서집석』을 재구성하여 인반하려고 한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드러났다. 『사서집석』의 재구성은 徐命膺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서대전』의 한계와 문제를 인지함과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 해결하려고 한 정조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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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실학자들의 발해지리 고증 ―안정복·유득공·한진서를 중심으로―

저자 : 김종복 ( Kim Jong-bo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3-14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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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실학자들은 발해사에 관심을 갖고 발해의 역사지리를 규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안정복의 『동사강목』, 유득공의 초고본 『발해고』는 인용 자료의 한계로 인해 발해의 주요 지역을 요동에 비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이는 『요사』 지리지 및 이를 전재한 『성경통지』를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정본 『발해고』는 『요사』 지리지 의 오류를 본격적으로 비판하고 발해의 주요 지역을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 비정하였다. 이는 『요사』 지리지 의 오류를 부분적이나마 처음으로 지적한 『대청일통지』를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정본 『발해고』는 한두군데에서 『요사』 지리지 의 오류를 간과하였고, (발해의) 서경 압록부에 대해서는 국내 문헌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는 오류도 범하였다. 한진서의 『해동역사속』은 수정본 『발해고』를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때로는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수정본 『발해고』의 부분적 오류는 읍루나 고구려 등 발해의 선행 역사에 소홀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해동역사속』은 한국사의 모든 시기의 역사지리를 다루었기 때문에 수정본 『발해고』의 부분적 오류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로써 조선후기 실학자에 의한 발해지리 고증은 근대역사학의 수준에 근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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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득공 『발해고』의 사료인용 양상과 역사서술 방법

저자 : 노요한 ( Noh Johan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7-18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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泠齋柳得恭(1748∼1807)의 『발해고』는 유득공이 당시 조선 역사에서 망각되어 있던 발해사를 복원하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의 여러 역사서와 기타 문헌에 단편적으로 전하는 발해 관련 사료들을 수집하여 편찬한 것이다. 『발해고』는 이처럼 조선 후기에 이루어진 발해사에 대한 최초의 역사 저술이라는 점과 함께 자서에서 신라와 발해가 양립한 南北國시대라는 역사 개념을 처음으로 제출하였다는 점, 국가 간 영토 경계의 문제에서 실증적 역사 서술 가지는 중요성을 환기했다는 점 등 발해사 연구와 조선후기 북방지역에 대한 역사지리 연구에 있어 선구적 성과를 제출하였다는 데에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발해고』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과 자국의 역사서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발해의 사적을 어떠한 방식으로 집적하여 撰次하고 있으며 그 인용 양상은 어떠할까. 또한 유득공은 서문의 말미에서 이 책을 '발해고'라고 한 것은 아직 역사를 완성하지 못하여 감히 역사로 자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유득공이 구상한 발해 역사는 어떠한 역사서술의 체제를 가지는 것이었으며, 그 역사관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본고는 이러한 점을 중심으로 유득공 『발해고』의 諸寫本을 점검하고 『발해고』의 사료인용 양상과 역사서술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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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순암 안정복의 북방 인식

저자 : 박인호 ( Park In-ho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7-229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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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반도에게 가장 논란이 되는 공간이고 또한 그 공간에 대한 해석에 따라 상고사를 보는 시각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북방 지역의 공간에 대한 안정복의 인식을 살펴본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북방 영역에서의 문명의 흐름을 안정복이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를 정리하였다. 안정복은 삼한정통론의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지만 오히려 북방 공간에서의 문명의 흐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안정복은 고조선에서 당대에 이르는 공간의 행방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북방강토의 행방에 대한 안정복의 관심은 『동사강목』 지리고 에 잘 드러나고 있다.
『동사강목』의 강역도는 안정복의 북방 지역에 대한 인식관을 시각적으로 확인해 주고 있다. 『동사강목』에서 우리나라와 연결하는데 고심하는 태도를 보였던 부여나 발해 등 열국에 대한 안정복의 공간적 입장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강역도에서 현재 우리의 영토를 압록강과 두만강 선으로 확정한 위에 역사적 변동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영역관은 오랑캐의 침입에 대한 위기의식과 결합되어 있다. 안정복이 대명의리의식 속에서 북쪽의 오랑캐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서북 지역에 대한 방비론으로 나타났다.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변경을 지키고 침략에 대비하려는 대책으로 국경에 성책을 쌓거나 수레 사용에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의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역사 기술에서도 침구의 사실만 적는 것이 아니라 풍속, 기후, 연대, 사실의 측면에서 종합적인 배경을 확인하여 대비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 연구는 안정복의 북방 지역에서 전개된 문명의 흐름과 현실에 대한 인식이 『동사강목』 내의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에 대한 기술과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으로 실학자들의 역사서 편찬에 대한 학문적 기초를 해명할 수 있는 한 사례를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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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정약용(丁若鏞)의 기자(箕子) 인식(認識) - 고법(古法)탐구와의 연동(連動)을 중심으로 -

저자 : 윤석호 ( Yoon Suk-ho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1-269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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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기자 인식은 비균질적이면서도 전환적으로 변화했다. 또한 보편적 유교문화의 시원으로서 기자를 정위한다는 기조를 공유했으되, 기자로부터 전래된 보편문화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당시의 유자들과 상이한 견해를 가졌다. 이에 본고는 다산의 기자 인식이 古法에 대한 독법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양자를 계기적으로 논증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사료적 가치에 있어 후대의 역사서보다 經書를 우선했다는 점, 경서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유교의 보편적 전장을 궁구했다는 점, 또한 이것이 기자의 역사성을 판단하는 준거로 활용되었다는 점 등은 다산의 기자 인식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었다.
그럼에도 다산의 기자 인식은 유배기 전후로 크게 달랐는데, 이는 고법과 기자에 대한 경전적 해명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먼저 사환기까지의 다산은 기자의 동래와 그로 인한 행적 전반에 대한 경학적 전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단군이 한반도를 다스렸고 '朝鮮'이라는 명칭도 이때부터 있어왔다고 보았던 한편으로, 기자의 동래 나아가 평양에 도읍을 세웠다는 것에는 강한 의문을 표했다. 이러한 입장은 당시 '기자정전'으로 운위되던 평양의 격자형 유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지의 구획는 '井'자가 아닌 '田'자였는데, 이와 같은 형태는 『맹자』의 정전에 대한 경문과는 부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다산이 '기자정전'을 인정하지 않았던, 대신 이를 당나라의 이세적이 운영했던 둔전의 유지로 추정케 했던 경학적 근거였다.
그러던 다산에게 강진 유배기는 유학의 보편적 전장을 본격적으로 궁구할 시공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산은 『周易』의 明夷卦를 역사적으로 재해석하여, 기자 동래에 대한 경전적 근거로 삼았다. 또한 『주역』의 坤卦, 『尙書』의 洪範九疇와 六鄕制, 『周禮』의 營國원리 등을 재해석했다. 그리고 '井'자가 토지제도에서부터 도성[읍성]건설, 나아가 통치 이념에 이르는 삼대 전장에서의 보편적 원리였음을 추론했다.
이와 같은 고법 독법 하에서 다산은 기자의 흔적을 평양의 유적 가운데에서 해명했다. 그런데 그가 주목한 것은 평양성 밖의 이른바 '기자정전'이 아닌 평양성 내부의 격자형 유지였다. 동래한 기자가 고법에 의거해 평양성을 조영했으니, 내부에 남아 있는 '井'자 형태의 공간 구조가 바로 그 증거라는 것이다. 이로써 다산은 고대의 한반도를 유학의 보편적 전장이 시행된 시공으로, 그와 같은 경학적·역사적 추론에 대한 실증적 근거로서 평양성을 위치시켰다.
이처럼 다산에게는 보편적 전장의 해명이라는 학술적 목표가 일관되게 저류하고 있었다. 특히 유배기 이후로는 경전의 재해석을 통해 고법에 대한 기왕의 독법을 조정했으며, 그 논점을 통치체제의 차원으로 확대했다. 다산의 이러한 학술적 경과 속에서 고법은 기자와의 주요한 교점이 되었다. 그리고 고법 독법의 변화에 근거해 기자에 대한 인식 또한 연동했고, 이 과정에서 기자는 고대 한반도에서의 문명사적 실체로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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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김제학(金濟學)의 관서(關西) 죽지사(竹枝詞)에 나타난 역사 인식

저자 : 이은주 ( Yi Eun-ju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1-30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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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창작된 金濟學의 「次申石北關西樂府百八韻」은 申光洙의 「關西樂府」를 차운한 작품이다. 차운시의 특성상 원시의 다양한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평양보다는 평안도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이 시는 김제학이 접한 다양한 정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19세기 중엽 평안도의 여러 상황과 평안도를 바라보는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시는 평안도 지역사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이 시의 특이점을 짚어가면서 김제학이 어떤 관점에서 여러 지역의 사건들을 선별하여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 냈는지를 논의하였다. 예컨대 심하 전투, 최효일 사건 등을 보면 평안도의 유명 인물보다는 대명의리를 강조하는 시각이 두드러진다. 또 이 시는 홍경래의 난이 상당히 비중 있게 제시되어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전 시기부터 만연했던 영고탑 회귀설의 소환, 곧 홍경래의 난으로 변방의 위협이 고조된 맥락 속에서 과거 사건들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이 시에서 지역사를 바라보는 구도는 대명의리와 변방의 위협으로 양분되며 그런 맥락에서 국가의 수호, 충성, 절의 같은 것들이 강조되고 있다. 이 시에 나타난 평안도 지역사는 외부인이 평안도를 국경을 지키는 울타리로 인식하는 방법이자 평안도 지역민에게 기대했던 모습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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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유득공의 북방인식과 탈중화의 궤적

저자 : 이철희 ( Lee Chul-he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5-33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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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은 18세기 조선 지식인 중 옛 북방영토에 대한 인식과 중국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는 의식의 변화과정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20대 백탑 동인들과 소품문과 시문학에 열중하던 유득공은 1778년 북경의 청나라 문사들에게 보내기 위해 지은 『이십일도회고시』를 계기로 역사방면으로 관심을 돌려 이후 『발해고』와 『사군지』 등 북방영토와 역사의 연구에 큰 성과를 남겼다. 『이십일도회고시』는 민족적 역사의식이나 북방경략의 의지가 관철되어있다기보다 만주족 치하의 한족 지식인과 망국의 슬픔을 공감하기 위해 지은 작품이었다. 같은 해 심양에 사행을 다녀오며 요동에서 지은 시는 고구려 고토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 있지 않는 반면, 소중화 의식이나 정묘, 병자호란에 대한 울분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십일도회고시』는 단순한 회고시가 아니라 역사서의 성격도 지니게 되면서, 부여, 옥저 등 북방역사를 제외하고 조선의 역사적 영역을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판을 만회하기 위하여 유득공은 북방역사 탐구에 매진하여 『발해고』를 저술하며 고구려 고토회복 의식을 드러내었고, 몽고, 여진 등 동북아 제민족의 역사문화로 관심의 폭을 넓혀 나갔다. 1790년 12년 만에 두 번째 사행을 떠나 북경과 열하를 다녀온 유득공은 그의 여행기에서 만주족 인물과 통치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교만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한족지식인의 일면을 드러내기도 하여 양쪽에 대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취하였다. 그 결과 당시 여행기의 대단원이라 할 수 있는 <鳳城>에서 고구려 정통론과 고구려, 발해, 여진, 만주로 이어지는 동북아민족의 계통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소위 동북아 정세론이라 할 수 있는 이 주장은 5년 뒤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고구려의 강성함에 대비하여 신라를 倭문화에 물든 야만의 문화로 비하하였고, 고구려와 발해가 여진족과 만주족과 친밀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하나의 계보로 묶었는데, 이러한 주장은 당시 조선의 지식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득공의 동북아 정세론은 명나라의 패망원인을 북방 민족의 강성함과 남방 한족의 문약함을 대비하는 남북문화 비교론에서 찾았던 김창업과 이기지의 의론과 연계되며, 홍대용이 『의산문답』에서 제기하였던 중화문명의 숭문주의에 대한 懷疑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중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탈중화'의 궤적이라 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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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자연지식에 대한 성호학파(星湖學派)내부의 담론 - 윤동규(尹東奎)와 안정복(安鼎福)의 논의를 중심으로 -

저자 : 구만옥 ( Koo Mhan-oc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3-384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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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규와 안정복은 성호학파의 종장인 이익의 高弟이다. 이 글에서는 두 사람이 1756년부터 1759년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를 주요 자료로 삼아 성호학파 내부의 자연지식에 대한 담론을 검토하였다. 지금까지 성호학파의 자연지식에 대한 연구는 이익의 저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자료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星湖僿說』을 비롯한 이익의 저술에는 자연지식에 대한 풍부한 논의가 담겨 있는 반면 다른 구성원들의 논저에서는 이와 같은 자료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와 같은 한계를 윤동규와 안정복의 편지를 통해 일부 극복하고자 하였다.
대체로 양자의 논의는 안정복의 질문에 윤동규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두 사람의 나이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익의 문하에서 수학한 경력에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윤동규는 천문역산학을 비롯한 자연지식에 상당한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안정복으로서는 매우 적절한 토론 대상였던 셈이다. 두 사람의 논의는 歲差說, 서양의 천문역산학, 日躔表, 潮汐說등의 자연지식과 천주교의 교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들의 논의 과정에서는 다양한 西學관련 서적이 등장한다. 천문학 분야의 『天問略』이나 지리학 분야의 『坤輿圖說』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안정복과 윤동규의 논의를 통해 1750년대 후반 자연지식에 대한 성호학파 내부의 담론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논의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들의 논의는 西學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객관적 관점에서 서양인의 학문적 성과를 탐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물론 이들의 논의가 당시 자연지식 분야의 최신 문헌이라 할 수 있는 『律曆淵源』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이들이 참고한 서적은 『新法算書』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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