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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문학회> 한문학보> 조선 후기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 탐색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1734~1799)의 「염절부전(廉節婦傳)」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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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 탐색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1734~1799)의 「염절부전(廉節婦傳)」을 중심으로-

Exploring the desires of Sadaebu(士大夫) who were projected in the yeolnyeoje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Focusing on ParkJeoljeon by Park Yun-won, Geunjae-

이홍식 ( Lee Hong-shik )
  • : 우리한문학회
  • : 한문학보 4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2월
  • : 347-375(29pages)
한문학보

DOI

10.35496/HAN.45.10


목차

1. 들어가며
2. 廉烈婦의 죽음과 기록의 다양성
3. 『염절부전』의 서사 變改와 박윤원의 시선
4. 『염절부전』의 서사와 박윤원의 투사된 욕망
5.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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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 烈女傳에 투사된 士大夫의 욕망을 천착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은 사대부의 烈인식과 시대 인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여성의 실제상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위하여 본고에서는 18세기 중후반 烈婦廉氏의 죽음을 다룬 近齋 朴胤源의 「廉節婦傳」에 주목하였다. 박윤원은 노론 낙론계 대표 학자로 조선 후기 사대부의 한 전형을 보여주어 사대부의 욕망을 천착하는 데 좋은 대상이 되고, 「염절부전」은 비교 대상이 될 만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서 염씨의 삶과 그 속에 투사된 박윤원의 욕망을 분리하여 읽는 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실록 소재 사건 기록 및 曺兢燮과 李承熙의 열녀전 등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박윤원의「염절부전」을 분석하였다. 특히 염 열부의 죽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 서사의 방법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박윤원이 서사를 적극적으로 變改하여 염씨의 烈行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 列聖의 敎養을 칭송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러한 의도적 서사 變改에 염씨의 죽음을 통해 조선 후기 열 윤리의 일상성과 지리적ㆍ계급적ㆍ상징적 확장성 및 보편성을 확인시키려는 박윤원의 욕망이 잠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욕망은 조선 후기 노론 낙론계 학자의 열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그들이 유교적 교화를 통해 완성하려 한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염절부전」에 투사된 박윤원의 욕망을 벗겨내고 변개된 서사를 되돌리면, 염 열부의 죽음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열리게 된다. 특히 박윤원이 확인시키려고 한 조선 후기의 열녀상이 만들어진 것이자 불완전한 것임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이 균열의 지점에서 제대로 된 여성상을 구축할 수 있는 만큼, 향후 다양한 비교 연구를 통해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을 천착하여 여기에서 분리된 여성상을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조선 후기 여성들이 열이라는 윤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구체적 실체에 조금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을 것이다.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desire of Sadaebu(士大夫) who were project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desire of Sadaebu projected on the Yeolnyeojeon(烈女傳) are significant in that they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for constructing the real image of women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well as concretely showing Sadaebu’s perceptions of the age and perceptions of the times.
To this end, this paper paid attention to the Yeomjeolbujeon built by Park Yoon-won, a foundation that deals with the death of Yeolnyeo(烈女) Yeom, in the mid-to-late 18th century. Park Yoon-won is a representative scholar of Noron(老論) Nakron(洛論), who shows a model of the Sadaebu in the late Joseon Dynasty, making it a good object to observe the Sadaebu’s desire, and Yeomjeolbujeon(廉節婦傳) has many comparable records, which are effective in separating Yeom’s life and Park Yoon-won’s desire projected into them.
Therefore, in this paper, the Yeolnyeobujeon built by Park Yoon-won was analyzed by comparing the records of the events in the Annals and the Yeolnyeojeon built by Cho Geung-seop and Lee Seung-hee. In particular, we focused on how to deal with the death of Yeolnyeo Yeom and the method of the narrative. As a result, it was clearly confirmed that Park Yoon-won actively changed the narrative to dramatically reveal Yeom's passion, and through this, he praised the teachings of various kings. Furthermore, it was confirmed that Park Yoon-won's desire to confirm the daily life, scalability, and universality of Yeol(烈) ethic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latent through Yeom’s death in this intentional narrative change.
This desire is meaningful in that it shows a cross-section of Yeol(烈) ethics of Noron schola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shows the times they tried to complete through Confucian edification. However, if you remove Park Yoon-won’s desire projected on Yeomjeolbujeon and reverse the altered narrative, The death of Yeolnyeo (烈女) Yeom opens up room for other interpretations. In particular, it is clearly revealed that Park Yoon-won’s attempt to confirm the image of Yeolnyeo(烈女)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created and incomplete.
At the point of this crack, you can build a proper female image. Therefore, through various comparative studies in the future,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a new female image separated from this by observing the desires of the noblemen projected on the Yeolnyeojeon. Only then will it be possible to get a little closer to the concrete reality of how women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sponded to the ethics of Yeol(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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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22-800-000944176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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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9-4136
  • : 2734-1925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9-2021
  • :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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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권0호(2021년 12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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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종직의 사제관계와 도학사적 위상

저자 : 정출헌 ( Chung Chul-heo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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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국시로 내걸고 건국된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일 터다 조선 초기 道學. 지식계층들은 고려후기에 전래된 신유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아 사회 전반에 걸쳐 유교문명으로의 전환을 모색해갔다. 그런 과정에서 학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점필재 김종직을 꼽을 수 있다. 세조대에 출사하여 성종 말년까지 활동했던 그의 행적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성리학적 학문세계를 부친 김숙자로부터 배워서 김굉필ㆍ이심원ㆍ남효온과 같은 제자들에게 전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김종직은 젊은 제자들로부터 생전에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학문[正心之學]'으로 자신을 이끌어준 스승으로 존중되고, 사후에는 文忠이란 시호를 올려 기려질 정도였다. 실제로 사림정권이 자리를 잡게 된 선조대에 이르게 되면,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라는 道統이 정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전승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고, 심지어 후대에 재구된 假像의 계보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 학문의 授受關係에 대한 실상을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은 채, 정설처럼 통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본고에서는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반성적 차원에서 김종직과 그 제자들의 사제관계에 대해 후대인의 부연이나 추앙이 아니라 당대인의 직접적 증언이라든가 김종직 자신의 기록을 통해 그 실상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보이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김종직이 성리학을 새로운 학문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터득한 바를 후학들에게 힘써 가르쳤으며, 나아가 유교지식인으로서 자세를 가다듬고 실천해가던 역동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사제 간의 공감과 갈등, 또는 제자들 간의 분화와 새 길의 모색은 그렇게 해서 가능할 수 있었다.


One of the keywords to understand Joseon, which claimed to be a Confucian state, is Taois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ntellectuals sought a transition to Confucian civilization by using the new Confucianism introduced in the late Goryeo Dynasty as a dominant ideology. Kim Jong-jik occupy an important position in the process. The most important activity for him, who began to serve in the reign of King Sejo until the end of King Seongjong, is the fact that he taught many disciples about studying abroad. They are disciples such as Kim Goeng-pil, Lee Shim-won, and Nam Hyo-on.
Thus, Kim Jong-jik was respected by his young disciples as a teacher who led him to “disciplinary learning that makes his mind right.” Thus, it is said to be one of the members of the line “Jung Mong-ju→Giljae→Kim Sook-ja→Kim Jong-jik→Kim Goeng-pil→Jo Gwang-jo.” However, suspicions are raised about this genealogy. In fact, there is also criticism that it did not closely examine the reality of the academic transmission process.
This paper attempted to examine in detail the priest-teacher relationship between Kim Jong-jik and his disciples in a reflective dimension to this criticism. In particular, he tried to objectively reveal the reality through the testimony of the person of the time and Kim Jong-jik's own records. As a result, Kim Jong-jik accepted new study as a new study, and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e specific aspect of teaching younger stu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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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전기 元好問 『遺山樂府』의 수용에 대하여: 金時習의 예를 중심으로

저자 : 노요한 ( Noh Johan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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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孝溫(1454~1492)의 『秋江冷話』에는 元好問(1190 1257), 金時習(1435~1493)과 관련한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곧, 김시습은 독서할 때에 文義에 구애되지 않고 大旨를 보고 大義를 음미할 뿐이었는데 남효온이 「征夫怨」10수를 지어 元遺山의 시에 和韻하자 김시습의 그 시의 글자가 잘못되었다고 하며 실소하였다는 것이다. 원호문의 문집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權近(1352~1409)은 1390년에 지은 「題盾谷李公書室」의 自註에서 “집에 『元遺山集』이 있었으므로 그 詩韻을 썼으며, 折花雲山 두 그림이 또 진귀하였으므로 아울러 시를 지었다.”라고 하고 있어, 고려말에는 『원유산집』이 수입되어 문인들 사이에서 읽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원호문에게는 문집 외에 『遺山樂府』가 있어, 弘治5년(1492, 성종에 晉州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조선간본이 국내외에 전한다. 그렇다면 원호문의 시는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에 의해 어떻게 향유되었으며, 문인들의 문학창작에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었을까. 본고는 조선전기 원호문 『遺山樂府』의 간행 사실과 그 향유 양상에 대해 김시습의 예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자 보고자 한다.


Ch'ugang naenghwa (秋江冷話) by Nam Hyo'on (南孝溫, 1454-1492) contains an anecdote related to Yuan Haowen (元好問, 1190-1257) and Kim Sisŭp (金時習, 1435-1493). The story goes that when Kim reads, he only focuses on the general idea of the passages and savors its greater significance rather than adhering to the grammatical structure of the sentences, and that Kim laughed at Nam's poem indicating an error in his use of a letter when Nam wrote a series of “zhengfuyuan” (征夫怨) poem in ten pieces following the rhymes used by Yuan Haowen. It is not known when Yuan Haowen's collections of works was imported in Korea. However, it is assumed that this book was imported in the late Koryŏ period and was appreciated among literati, when considering the fact that Kwŏn Kŭn (權近, 1352-1409) mentioned in his own annotation for his “Che sun'gok Yigong sŏsil” (題盾谷李公書室, On the study of Sun'gok Yigong) composed in 1390 as such: “Since I owned Yuan yushan ji (元遺山集, the collecton of Yuan Yushan) at home I wrote a poem using the rhymes in that book, and as two paintings of 'Plucking flowers' and 'Cloudy mountains' were so valuable, I also wrote poems on these two pictures.” Except for his literary collection, his Yushan Yuefu (遺山樂府) was also published in woodblock in Chinju ( ) in 1492 and this Chosŏn editions 晉州 are housed in the domestic and foreign libraries. If so, how his poetry was savored among literati and what influence his works had on their literary works in the period of Koryŏ and Chosŏn? This paper explores how Yuan Haowen's Yushan Yuefu was published, accepted, and appreciated among literati in the early Chosŏn period focusing on the case of Kim Sisŭ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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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전기(朝鮮前期) 지리산(智異山) 유기(遊記) 발생에 관한 단견(短見)

저자 : 강정화 ( Kang Jeong-hwa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9-10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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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지리산 유산문학 연구의 선행 과정을 점검하고, 거칠게나마 새로운 연구시각을 제시하고자 기획되었다. 다만, 시기는 국내 유산기가 발생하는 15세기에 한해 살펴보았다. '15세기'인 이유는, 국내 각 산의 유산기가 이 시기 지리산에서 나타나고, 16세기에 이르면 이미 유산이 일반화될 뿐만 아니라 선현의 유산을 답습하는 관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리산 유산문학의 선행연구는 대개 '산과 유람자'의 이중구조에서 산이 아닌 오르는 유람자의 의식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산이고 오르는 유람자의 개인차에도 불구하고, 각 산의 유산문학 연구는 유람자인 조선조 士人의 士意識을 해명하는 대동소이한 결론에 이르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의 해결방안으로 유람자가 아닌 '그 산'에 집중하는 새로운 연구시각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나아가 본고에서는 15세기 지리산 유기를 중심으로 이의 해답을 찾아보았다. 곧 지리산의 '무엇'이 당시 지식인을 지리산으로 이끌었나를 살핀 것인데, 대략 두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지리산은 신라 시대부터 줄곧 南嶽으로서의 위상과 神聖性을 지켜온 국내 유일의 명산이다. 五嶽 중 여타 명산은 시대가 흘러오면서 바뀌었지만, 지리산만큼은 남악으로서의 명성을 고수해 왔고, 게다가 금강산 등과 달리 내 가까이에 있는 지역의 명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둘째, 지리산은 인간의 삶과 맞닿은 국내 유일의 명산이다. '산과 사람'의 관점에서 보아, 민간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산은 지리산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산은 그 아래 사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따라서 우리 국토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삶을 이해하려는 당대 지식인의 의식이 발현된 유일한 산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지리산만의 특징이고, 이런 점들이 당대 지식인을 지리산으로 불러들인 것이라 하겠다.


This paper was planned to examine the preceding process of studies on Jirisan Mountain hiking literature and to present a new study perspective, albeit roughly. However, as for the period, only the Jirisan Mountain hiking records in the 15th century when the domestic famous mountain hiking records appeared were examined. The reason for the '15th century' and 'Jirisan Mountain' is that the domestic famous mountain hiking records appeared intensively in this period. For your reference, in the 16th century, not only mountain hiking became popular already but also the practice to follow ancient sages' mountain hiking appeared.
Previous studies on Jirisan Mountain hiking literature were generally conducted according to the consciousness of hikers, not the mountain, in the dual structure of 'mountain and hiker'.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despite the different mountains and the individual differences among hikers that climbed the mountains, the studies on the mountain hiking for each mountain reached the same conclusion to elucidate the scholarly consciousness of the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who were the hikers. As a solution to this problem, the necessity of a new study perspective focusing on 'the mountain' rather than the hikers was raised.
Furthermore, in this paper, the solution was searched, focusing on the 15th century Jirisan Mountain hiking records. That is, 'what' of Jirisan Mountain led the intellectuals of the time to Jirisan Mountain was examined, and roughly two things were presented. First, Jirisan Mountain is the only famous mountain in Korea that has maintained its status and sanctity as a southern mountain since the Silla period. Other famous mountains among the five mountains have been changed over the years, but Jirisan Mountain has maintained its status as a southern mountain, and, unlike Geumgangsan Mountain, etc., it is more meaningful in that it is a famous mountain in the area close to us. Second, Jirisan Mountain is the only famous mountain in South Korea that touches human life. When seen from the point of view of 'mountain and people',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Jirisan Mountain is the only mountain in close contact with civilian life. Jirisan Mountain was the living foundation of the people living under it, and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it is the only mountain where the consciousness of the intellectuals of the time to understand our land and the life of humans living in it was expressed. These two characteristics are unique to Jirisan Mountain, and it can be said that these points brought the intellectuals of the time to Jirisan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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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전기의 사대부문학과 필기(筆記) -『청파극담(靑坡劇談)』 소재 '소화(笑話)'를 중심으로-

저자 : 곽미라 ( Kwak Mi-ra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4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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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본적으로 조선전기 한문학에서의 筆記의 성격과 기능을 따져 보려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다. 그 대상은 李陸의 『靑坡劇談』이다. 그 동안 필기는 문학성 도출에 경도된 연구 경향과 자유로운 형식과 체재, 내용의 방만함이 연구의 난점으로 작용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필기야말로 성립 저변에서부터 소재와 내용에 이르기까지 사대부 문인지식층과 긴밀하게 연결된 전형적인 조선전기의 사대부문학이라는 점에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기가 정연한 체계와 일관된 문제의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어떤 장르보다 士계층의 의식을 자유롭게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조선전기 지성들의 내면세계와 지향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필기의 장르적 성격 규정과도 깊이 연관된다. 따라서 필기에 관한 연구의 시각을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그간 주목 받지 못한 『청파극담』 소재 '笑話'를 중심으로 조선전기 필기-사대부소화의 양상과 의식지향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선 초 간본 『청파극담』은 초기 필기류 저술에서 주로 보이던 詩話가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작품집 전체에서 소화가 차지하는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조선전기 사대부 문인들이 '時事'를 중시하던 풍조와 맞물린 것으로, 『청파극담』의 경우 전반적으로 사대부소화로서의 성격이 특히 두드러진다. 비교하자면 오히려 『청파극담』이 『용재총화』 보다도 더 '滑稽'나 '奇異'의 측면에 주력한 것이다. 그런데 『청파극담』은 사대부소화에 민간소화가 섞여 들어간 조선전기 여타의 필기집들과는 달리 온전히 사대부의 시선에서 자기계층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승려와 무인을 비롯해 이미 이 시기 다른 작품집에서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일반 백성, 여성, 장애인 등 타 계층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같은 사 계층을 기록하더라도 차별적 시선을 통해 '우리'와 '남'을 구분하여 자기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고 '남'을 풍자함으로써 警戒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
이렇게 고급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親交와 연대'를 통해 단결된 자기 집단의 유희와 그로 인해 파생된 웃음(이완의 웃음), '남'으로 표상되는 '사대부 같지 않은 사대부'에 대한 풍자(비판적 웃음)와 경계는 『청파극담』의 전편을 관통하는 지향 의식임이 틀림 없다. 이는 조선전기의 필기가 표면적으로는 '破閑을 위한 잡다한 기록물'을 내세우더라도 실상은 사 계층의 자의식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기집단의 결속과 연대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을 검증한 셈이다.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nature and roles of Pilgi(筆記) in Chinese literature during the former half of Joseon with a focus on Cheongpa Geukdam (『靑坡劇談』).
The study reviewed the flow of Pilgi in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in its network with Sadaebu(士大夫) literary figures and intellectuals as the compilation subjects of Pilgi to understand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Pilgi during the former half of Joseon. It also examined Lee Yuk's(李陸) genealogy and friendship relations and checked the publication process, organization, and content of the first and third print of Cheongpajip(『靑坡集』) where Cheongpa Geukdam belonged. The findings shed light on a couple of important facts: first, the organization of Cheongpa Geukdam was changed completely in the publication process of the third print with 18 stories found in the first print gone altogether. Many of these stories were sohua(笑話); and secondly, the stories of Cheongpa Geukdam were mainly concentrated in sohua in terms of material and content and shared similar content with Taepyeonghanhwagolgyejeon(『太平閑話滑稽傳』) and Yongjaechonghwa(『慵齋叢話』) in many parts.
Based on these, the investigator analyzed individual works around the material sohua in Cheongpa Geukdam. Unlike other collections of works that featured a mix of Sadaebu sohua and folk sohua, Cheongpa Geukdam looked into their own class and otherized others completely in the viewpoint of Sadaebu, thus keeping the perspective of reinforcing the solidarity of their own group and being alert to others. They, for instance, revealed their “friendship” and “knowledge” as the basis of laughter through satire to grant a special meaning to the class of Confucian scholars and projected their exclusion and discrimination of other groups to solidify their own solidarity fur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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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필기(筆記)를 통해 본 조선전기 영남지역의 문화와 인물

저자 : 신상필 ( Shin Sang-phil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5-17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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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은 畿湖, 湖南, 嶺東, 關西와 함께 한반도의 지역에 대한 호칭이다. 이때 랜드 마크인 '嶺', '湖' 등에 방향을 더해 대체적인 지역을 특정한 것이다. 이 점에서 영남은 '큰 고개의 남쪽', 흔히 문경새재로 불리는 '鳥嶺의 남쪽 지방'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慶尙道지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경상도에는 낙동강이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江左·江右'의 구분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명칭은 지역을 편의적으로 구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해당 지역의 자연 지리적 여건에서 비롯한 물산과 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民生들의 삶이 일군 역사와 문화의 성격이 그 호칭에 함축적으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역에 대한 인식은 조선후기 李重煥(1690~1752)이 편찬한 『擇里志』의 卜居總論에 地理·生利·人心·山水등과 같은 문화·경제적 특징을 다룬 인문지리서의 출현으로 결실을 맺기도 하였다. 이는 이미 조선전기인 성종 12년(1481) 50권 분량의 『東國輿地勝覽』 간행에서 엿볼 수 있는 인식이기도 하다. 다만 이 경우 지역에 대한 연혁과 경개에 관련 題詠의 문화적 면모를 소개하고는 있으나 영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차이가 느껴진다.
본고는 조선전기의 영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인식과 그 형성 과정을 '筆記' 저술에 주목해 확인하고자 한다. 필기 양식이 고려후기로부터 조선전기에 등장하는 과정에서 문인들이 견문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 영남 지역에 대한 인식과 기억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중기 이후 허균과 같은 문인들의 지역에 대한 종합적 평가와 인식의 형성 과정을 조선전기 필기류에 그려진 영남 지역에 대한 단편적 기록과 언급들을 수습함으로써 추적해 보려는 것이다.
이에 본고는 먼저 고려후기 李仁老(1152~1220)의 『破閑集』과 李齊賢(1287~1367)의 『櫟翁稗說』을 통해 조선전기 이전의 영남 지역에 대한 언급들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조선전기 徐居正(1420~1488)의 『東人詩話』·『筆苑雜記』·『太平閑話滑稽傳』에서 양식적 완성을 이룬 필기들의 언급과 비교함으로써 영남의 인물과 문화에 대한 지역성의 형성 과정을 대비적으로 부조시켜 보고자 한다.


Yeongnam, along with Honam, Yeongdong, and Gwanseo, is a title for the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At this time, the general area is specified by adding directions to landmarks such as 'young' and 'ho'. In this regard, Yeongnam refers to the 'south of the great pass', the 'south region of Joryong', often called Mungyeongsaejae, and generally refers to the Gyeongsang-do region. Also, in Gyeongsang-do, the Nakdong River crosses from north to south, so the distinction between 'gangjwa' and 'gangwoo' is sometimes made. However, these names do not stop at distinguishing regions for convenience. This is because the name implies the nature of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people living on the basis of the natural and geographical conditions of the region. Such awareness of the region has come to fruition with the emergence of a human geography book dealing with cultural and economic characteristics such as geography, physiology, human mind, and arithmetic in the Chongron of Residence of < Taekriji > compiled by Lee Jung-hwan(1690- 1752)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is a perception that can already be seen in the publication of < Dongguk Yeojiseungram >, which is 50 volumes in the 12th year of King Seongjong(1481), in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However, in this case, although the cultural aspects of Korean poetry related to the history and development of the region are introduced, there is also a certain difference in that it is a national approach to the territory.
This paper intends to confirm the perception of Yeongna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e process of its formation by paying attention to the writings of 'handwriting'. In the process of writing style appearing from the late Goryeo to the early Joseon Dynasty, I would like to examine the perception and memory of the Yeongnam region, which was left behind by the writers. For example, it is intended to trace the process of comprehensive evaluation and formation of perceptions on the region of writers such as Heo Gyun after the mid-Joseon period by retrieving fragmentary records and references to the Yeongnam region drawn in the writing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Therefore, this paper first examines the mentions of the Yeongnam region before the early Joseon Dynasty through < Pahanjip > by Lee In-ro(1152-1220) and < The Story of Yeog-ong > by Lee Je-hyeon(1287-1367) in the late Goryeo period. From this, the process of forming locality for the people and culture of Yeongnam by comparing it with the mentions of the handwritings that achieved stylistic completion in < Dongin Poetry >, < Pilwonjapki >, and < Taepyeong Hanhwagolgyejeon > by Seo Geojeong(1420~1488) in the early Joseon Dynasty. We would like to emphasize the contr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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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영남 지역 시첩(詩帖)제작의 한 국면 - 구암(龜巖) 이정(李禎) 가문의 『수서시(壽瑞詩)』를 중심으로 -

저자 : 이미진 ( Lee Mi-ji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214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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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壽瑞詩』는 李稵(1372~1495)의 장수를 기념하여 당시 右議政이었던 姜孟卿(1410~1461)이 지어준 祝壽詩및 후대의 次韻詩를 모아둔 詩帖이다. 이 시첩은 李稵의 후손인 龜巖李楨(1512~1571)이 제작을 주도하였는데, 여기에는 강맹경의 元韻이 지어진 作詩현장과 이후 여러 대에 걸쳐 지어진 次韻詩의 수습 과정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수서시』는 구암 한시를 모아둔 시집이 아니며, 문학적 완성도를 운운하기 위한 작품 선집도 아닌 만큼 이 시기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식인들의 한시 授受장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라 할 수 있다. 구암 이정이 오랜 기간 영남 지역에서 지방관을 역임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차운시를 수습했던 사실에 주목하여 『수서시』의 제작 경위 및 차운시 현황을 살펴본 결과 차운시는, 강맹경 생존 당시, 구암의 지방관 재직 시, 그리고 구암 사후 수습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구암은 영천군수(경북 영주)에 제수된 이후 경북 선산과 충북 청주를 거쳐 경북 경주와 전남 순천에 이르기까지 영남의 상하를 관통하면서 비교적 大邑의 수령을 지냈는데, 이 가운데 영주, 선산, 청주 지역에서 재직 시 요청하여 받은 차운시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대의 시문을 후손이 모아 제작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차운시의 대부분이 선조의 장수와 그의 후손들의 효행을 칭송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서시』는 명실상부한 구암 가문의 기록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The 『Suseosi(壽瑞詩)』 is Sicheop(album of poems, 詩帖) collecting Chuksusi(祝壽詩) created by Gang Maenggyeong(姜孟卿, 1410-1461), the contemporary Uuijeong(state councilor), which expresses the longevity of Lee Ja(李稵, 1372-1495) from Sachoen(泗川) Lee's family and Chaunsi(次韻詩) created by the next generation. This Sicheop, which was primarily created by Guam Leejeong (龜巖李楨, 1512-1571), a descendent of Lee Ja, shows the site in which Gang Maenggyeong's Wonun(元韻) was created and the process in which Chaunsi which had been created across many generations was learned. The 『Suseosi』 is neither the collection of Guam's Chinese poems nor an anthology with literary completion, but may be an interesting material with which it is possible to get a glimpse of the scenes in which intellectuals, who engaged in literary activities around Yeongnam province, exchange Chinese characters with each other. An analysis on the creation process of the 『Suseosi』 and the status of Chaunsi by focusing on the fact that Guam Lee Jeong served as a local official in Yeongnam province for a long time and learned Chaunsi in the process, shows that Chaunsi had been learned by his descendents, during the survival of Gang Maenggyeong and the period in which Guam served as an local official, and after the death of Guam. After being appointed as a Yeongcheon(Yeongju, Gyeongbuk) country headman, Guam held the post of a local governor in relatively bigger towns(大邑), by vertically penetrating Yeongnam, from Seonsan, Gyeongbuk and Cheongju, Chungbuk to Gyeongju, Gyeongbuk and Suncheon, Gyeongnam. The Chaunsi he asked to receive when he held office in Gyeongju, Seonsan and Cheongju was contained in the 『Suseosi』. The 『Suseosi』 is the de facto record of Guam's family, in that the descendants created it by collecting the ancestors' poetic works and most of Chaunsi praise the ancestors' longevity and his descendants' filial cond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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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천(鶴泉) 성여학(成汝學)의 삶과 시세계(詩世界)

저자 : 이현일 ( Lee Hyun-il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5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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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鶴泉 成汝學(1557~1636 이후)의 삶과 시세계를 본격적으로 살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鶴泉은 살아생전에 於于 柳夢寅(1559~1623)이나 芝峯 李睟光(1563~1628) 같은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들로부터 시인으로 인정받았지만, 평생 落拓한 신세로 살았듯이, 身後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문학사에서는 『續禦眠楯』의 작자로 稗說을 수집한 인물 정도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成汝學에게는 『鶴泉集』이라는 번듯한 문집이 유일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牛溪門徒)坡山及門諸賢集』(1982년), 『韓國文集叢刊』(1992년) 등에 거듭 영인되었지만, 그 뒤로 40여 년 동안 鶴泉의 문집을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본 이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鶴泉에 대해서는 墓誌나 行狀같은 傳記자료가 전하는 것이 없다. 이 글에서는 우선 『鶴泉集』에서 삶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토대로 해서, 교유한 인물들이 남긴 문집에서 鶴泉과 직접 관련된 詩文, 鶴泉과 酬唱한 시, 鶴泉의 詩文 및 『朝鮮王朝實錄』과 『司馬榜目』 등에서 관련 자료를 片言隻字라도 수습하여 그의 생애를 어렴풋하게 추적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이어서 『芝峯類說』과 『於于野談』을 비롯하여 여러 詩話에 실린 鶴泉의 詩에 대한 論評을 바탕으로 그의 詩世界를 '淸苦'라는 風格으로 정리하고, 鶴泉의 詩중에서 당시 가장 人口에 膾炙되었던 鰲城府院君 李恒福을 哀悼하는 挽詩의 전후 맥락을 짚어 보려 하였다. 그리고 『續禦眠楯』에 실린 笑話들에 활용된 '肉談風月'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였다. 다만 지면의 제약으로, 鶴泉의 詩世界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排律에 대한 탐구는 후속 연구로 미루기로 하였다.


This paper is to study, for the first time, the life of Seong Yeo-hak(成汝學, 1557~1636?) And his poetic world.
In his life time, Seong Yeo-hak regarded as poet persons as Liu Mong-in(柳夢寅), Lee Su-kwang(李睟光), representative contemperary poets. he lived poorly, After his death, he was little noted, in Sino-Korean literature, he was known as author of Continued Shield against Sleeping(『續禦眠楯』): A gaudy story-teller.
But to him The Collected Works of Crane Spring(『鶴泉集』) was catalogued in National Library.
No biographical materials transmitted to, this paper besides The Collected Works of Crane Spring, his social comrades' collection and in historical material, we tried to pursue this poor poet's life. Based on Several poetic dialogues this poetic characteristics arranged Cheonggo(淸苦, Claear and Sour). And Among his well-knowend poems Elegy on Lee hang-bok(李恒福)'s death, we tried to find besides story. And in Continued Shield against Sleeping, we comment on mischievou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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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선조(朝鮮朝) 후기(後期) 종적(縱的) 질서(秩序)와 학예(學藝)의 공론장(公論場) -지식의 생성ㆍ유통과 관련하여-

저자 : 진재교 ( Jin Jae-kyo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1-34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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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전란 이후 조선조는 종적 체계를 통한 사회 질서의 재구조화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서원과 사승 관계를 강조하고, 종법과 가학을 중시하는가 하면, 친족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고 다양한 족보편찬을 통해 종적 질서와 체계를 보여주었다. 종적 질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재 구조화하는 과정에서의 종적 질서와 체계는 순기능 보다 역기능이 많았다. 일부 횡적 질서를 위한 사유와 실천도 있었지만, 그 성과는 적었고, 그마저도 새로운 지식의 생성 공간을 형성하지 못하고, 공간마저도 경직성과 폐쇄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조선조 후기 지식의 생성 공간은 갈라파고스와 다름없었고, 필기와 유서는 이러한 갈라파고스 공간에서 다수의 독자를 쉽게 만나지 못하였다. 종적 질서와 체계는 지식·정보유통과 확산, 지식을 향한 다양한 시선을 가로막고,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지식의 확장에도 걸림돌로 작용하였으며, 신분과 관계없이 다양한 인물과 交遊하는 것도 제한하고 말았다. 이러한 종적 질서와 가치체계를 전복할 수 없었던 것은 횡적인 인적 관계망을 통한 학술과 문예 공론장의 부재가 조선조 후기 지식 장을 견인하였기 때문이다.


After the war in the 17th century, the Joseon Dynasty pursued a restructuring of social order through a vertical system. In such a political and social atmosphere, he emphasized the relationship between 'Seowon(書院)' and master-disciple relationship, emphasized religious practices and 'Gahak(家學)', promoted a sense of kinship community, and showed vertical order and system through various genealogy compilations. In the process of restructuring society in a way that builds vertical order, the vertical order and system had more dysfunctional functions than good functions. There were some thoughts and practices for horizontal order, but the results were small, and even that did not form a space for generating new knowledge, and even the space revealed rigidity and closedness.
The space for generation of knowledge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no different from that of the Galapagos, and 'Yuseo(類書)' and 'Pilgi(筆記)' could not easily meet a large number of readers in this space of Galapagos. The vertical order and system blocked the distribution and diffusion of knowledge and information and various viewpoints toward knowledge, and acted as a stumbling block to the expansion of knowledge through human networks. This vertical order and value system could not be overturned because the absence of a public forum for academics and literature through a horizontal human-relationship network led the knowledge field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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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선 후기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 탐색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1734~1799)의 「염절부전(廉節婦傳)」을 중심으로-

저자 : 이홍식 ( Lee Hong-shik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47-3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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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 烈女傳에 투사된 士大夫의 욕망을 천착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은 사대부의 烈인식과 시대 인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여성의 실제상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위하여 본고에서는 18세기 중후반 烈婦廉氏의 죽음을 다룬 近齋 朴胤源의 「廉節婦傳」에 주목하였다. 박윤원은 노론 낙론계 대표 학자로 조선 후기 사대부의 한 전형을 보여주어 사대부의 욕망을 천착하는 데 좋은 대상이 되고, 「염절부전」은 비교 대상이 될 만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서 염씨의 삶과 그 속에 투사된 박윤원의 욕망을 분리하여 읽는 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실록 소재 사건 기록 및 曺兢燮과 李承熙의 열녀전 등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박윤원의「염절부전」을 분석하였다. 특히 염 열부의 죽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 서사의 방법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박윤원이 서사를 적극적으로 變改하여 염씨의 烈行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 列聖의 敎養을 칭송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러한 의도적 서사 變改에 염씨의 죽음을 통해 조선 후기 열 윤리의 일상성과 지리적ㆍ계급적ㆍ상징적 확장성 및 보편성을 확인시키려는 박윤원의 욕망이 잠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욕망은 조선 후기 노론 낙론계 학자의 열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그들이 유교적 교화를 통해 완성하려 한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염절부전」에 투사된 박윤원의 욕망을 벗겨내고 변개된 서사를 되돌리면, 염 열부의 죽음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열리게 된다. 특히 박윤원이 확인시키려고 한 조선 후기의 열녀상이 만들어진 것이자 불완전한 것임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이 균열의 지점에서 제대로 된 여성상을 구축할 수 있는 만큼, 향후 다양한 비교 연구를 통해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을 천착하여 여기에서 분리된 여성상을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조선 후기 여성들이 열이라는 윤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구체적 실체에 조금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을 것이다.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desire of Sadaebu(士大夫) who were project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desire of Sadaebu projected on the Yeolnyeojeon(烈女傳) are significant in that they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for constructing the real image of women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well as concretely showing Sadaebu's perceptions of the age and perceptions of the times.
To this end, this paper paid attention to the Yeomjeolbujeon built by Park Yoon-won, a foundation that deals with the death of Yeolnyeo(烈女) Yeom, in the mid-to-late 18th century. Park Yoon-won is a representative scholar of Noron(老論) Nakron(洛論), who shows a model of the Sadaebu in the late Joseon Dynasty, making it a good object to observe the Sadaebu's desire, and Yeomjeolbujeon(廉節婦傳) has many comparable records, which are effective in separating Yeom's life and Park Yoon-won's desire projected into them.
Therefore, in this paper, the Yeolnyeobujeon built by Park Yoon-won was analyzed by comparing the records of the events in the Annals and the Yeolnyeojeon built by Cho Geung-seop and Lee Seung-hee. In particular, we focused on how to deal with the death of Yeolnyeo Yeom and the method of the narrative. As a result, it was clearly confirmed that Park Yoon-won actively changed the narrative to dramatically reveal Yeom's passion, and through this, he praised the teachings of various kings. Furthermore, it was confirmed that Park Yoon-won's desire to confirm the daily life, scalability, and universality of Yeol(烈) ethic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latent through Yeom's death in this intentional narrative change.
This desire is meaningful in that it shows a cross-section of Yeol(烈) ethics of Noron schola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shows the times they tried to complete through Confucian edification. However, if you remove Park Yoon-won's desire projected on Yeomjeolbujeon and reverse the altered narrative, The death of Yeolnyeo (烈女) Yeom opens up room for other interpretations. In particular, it is clearly revealed that Park Yoon-won's attempt to confirm the image of Yeolnyeo(烈女)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created and incomplete.
At the point of this crack, you can build a proper female image. Therefore, through various comparative studies in the future,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a new female image separated from this by observing the desires of the noblemen projected on the Yeolnyeojeon. Only then will it be possible to get a little closer to the concrete reality of how women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sponded to the ethics of Yeol(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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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계곡 장유의 논설류 산문 연구

저자 : 장진엽 ( Jang Jin-youp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1-399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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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谿谷張維의 論說類 산문을 검토하여 그 특징을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장유의 논설류 산문을 개관하고, 작품의 주제의식 및 그 구현 방식에 나타나는 특징적 양상을 세 가지 측면에서 논하였다.
장유의 논설류 작품은 권3 雜著에 수록된 辯3편, 論3편, 解1편, 그리고 권4 說에 수록된 10편의 설까지 모두 18편이다. 이 중 두 편은 字號說로서 논설류로서의 성격이 미약하며, 「設孟莊論辯」 역시 작가의 견해가 제시되지 않은 가상의 대화로서 논설류로 보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이 3편을 제외한 나머지 15편은 형식 및 내용의 측면에서 명백히 논설류 산문의 범주에 속한다.
장유 논설류 산문의 주제의식 및 그 구현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양상이 나타난다. 첫째, 인물에 대한 논평의 글에서 인물의 성격 및 그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그 심리를 세세하게 분석해 나가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漢祖不錄紀信論」이 그러한 작품인데, 같은 주제를 다룬 주세붕 및 어유봉의 작품과 비교할 때 이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靑白眼說」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인물 분석이 나타난다. 둘째, 文의 불후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확고히 표명되고 있다. 「柳宗元死而爲神論」에서는 천지의 精英한 기운이 文章에 깃들어 있는데 유종원은 間氣를 받아 그러한 재주를 지니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죽어서 신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詩能窮人辨」에서는 시인의 재주는 元精이 그 靈性을 부여한 것으로, 大化와 더불어 流通하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또, 「覆醬瓿解」에서는 군자와 達人은 비록 현실에서 곤궁함을 겪더라도 의연한 태도로 글을 남겨 道를 밝힐 뿐이라고 하였다. 셋째,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자아에 대한 지향이 나타나고 있다. 「風竹說」에서는 感應無心하는 대나무의 형상을 통해 현실의 온갖 변화 앞에서 의연히 자신의 본 모습을 지켜나가는 자아의 모습을 구체화하였다. 이 글에서는 성리학의 마음공부가 필요함을 강조했는데, 「福田說」에서는 불교적 깨달음을 통해 그러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복전설」에는 齊物의 인식이, 「海鷗不下說」에는 逍遙遊의 경지가 나타난다. 외물의 구애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자아상은 장유 산문에 나타나는 주된 이상이며, 그에 이르는 방법은 성리학이기도, 불교이기도, 또 장자적 초탈이기도 한 것이다.
이상 제시한 몇 가지 양상은 장유 논설류 산문의 전체 특징을 모두 아우른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특징들은 증서류나 서발류 등 장유의 다른 文類들과 연결 지어 논할 필요가 있다. 여러 한계가 있지만, 장유 산문 세계의 한 측면을 선명하게 읽어내는 데 본고의 논의가 작으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This study analyzes the persuasive style proses (論說類) of Kyekok (谿谷) Chang Yu (張維), with an aim to identify their traits. Chang Yu's persuasive style proses will be first surveyed before proceeding to the discussion on three characteristic aspects visible in the subject matters of the writings, as well as the employed methods of expressions.
There are eighteen works in persuasive style proses by Chang Yu: three assessments (辯), three arguments (論), one explanation (解), and ten theories (說). Among those writings, two works do not show as strong character of persuasive style prose as others; and “An Assessment on the Hypothetical Argument between Mencius and Zhuang Zhou (設孟莊論辯)”, being an imaginary conversation which does not convey the author's opinion, could be hardly distinguished as a persuasive style prose. Fifteen works, except these three works, overtly belong in the persuasive style prose category in terms of their format and their contents.
The subject matter and the modes of expressions in Chang Yu's persuasive style proses reveal following key characteristics. First, commentary on a person carefully takes into consideration one's personality and their circumstances when analyzing their psychology. An Argument on “Why Emperor Gaozu of Han Did Not Honor Ji Xin (漢祖不錄紀信論)” is one of such works; when compared with the thematically identical writings by Chu Sepung and Ŏ Yupong, this trait becomes more apparent. Similar method of profiling is also apparent in “A Theory on Blue and White Eyes ( )”. Secondly, Chang Yu expresses his firm belief 靑白眼說in the immortal value of literature (文) in his writings. In “The Argument that Liu Zongyuan Died and Became a Deity (柳宗元死而爲神論)”, he argues that the extraordinary energy of the heaven and earth is embodied within 'the literature (文章)', and that the talent and postmortem deification of Liu Zongyuan had been possible for he was bestowed with unprecedented energy (間氣). In “An Assessment on Whether Poetry Impoverishes a Man (詩能窮人辨)”, he claims that the talent of a poet is constituted by the spiritual energy bestowed by the spirit of heaven and earth, and that the poetic talent circulates alongside the force of universe (大化). Also, in “An Explanation on the Lid of a Pickle Jar (覆醬瓿解)”, he contends that in the face of adversity, a junzi (君子) or daren (達人) merely illuminates the Way (道) through unwavering writing. Thirdly, his writings feature a pursuit of a dispassionate ego, which remains unaffected by external objects. In “A Theory about Bamboo Swaying in the Wind (風竹說)”, the bamboo tree materializes the self which soberly preserves one's true colors despite varied changes. This work also emphasizes the need for the Neo-confucian way of cultivating one's mind. Yet, “A Theory on the Soil for Fortune (福田說)” argued that the advancement to such stage is possible through Buddhist enlightenment. Furthermore, A Theory on the Soil for Fortune features the notion of seeing all things equally (濟物), while “A Theory on the Seagull that did not Descend (海鷗不下說)” features the stage of Enjoyment in Untroubled Ease (逍遙遊). The self which is independent and irrespective of external objects is the main ideal featured in Chang Yu's proses; and the paths to the ideal take from in Confucian, Buddhist, and Taoist transcendence.
The suggested traits do not completely encapsulate the characteristics of Chang Yu's persuasive style proses. Also, these traits should be discussed in connection to the other writings- such as farewells writings (贈序類) or prefaces and postscripts (序跋類)- by Chang Yu. Despite the limitations, hopefully the findings presented in this study would be of help in scrutinizing an aspect of the Chang Yu's wri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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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종직의 사제관계와 도학사적 위상

저자 : 정출헌 ( Chung Chul-heo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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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국시로 내걸고 건국된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일 터다 조선 초기 道學. 지식계층들은 고려후기에 전래된 신유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아 사회 전반에 걸쳐 유교문명으로의 전환을 모색해갔다. 그런 과정에서 학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점필재 김종직을 꼽을 수 있다. 세조대에 출사하여 성종 말년까지 활동했던 그의 행적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성리학적 학문세계를 부친 김숙자로부터 배워서 김굉필ㆍ이심원ㆍ남효온과 같은 제자들에게 전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김종직은 젊은 제자들로부터 생전에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학문[正心之學]'으로 자신을 이끌어준 스승으로 존중되고, 사후에는 文忠이란 시호를 올려 기려질 정도였다. 실제로 사림정권이 자리를 잡게 된 선조대에 이르게 되면,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라는 道統이 정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전승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고, 심지어 후대에 재구된 假像의 계보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 학문의 授受關係에 대한 실상을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은 채, 정설처럼 통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본고에서는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반성적 차원에서 김종직과 그 제자들의 사제관계에 대해 후대인의 부연이나 추앙이 아니라 당대인의 직접적 증언이라든가 김종직 자신의 기록을 통해 그 실상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보이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김종직이 성리학을 새로운 학문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터득한 바를 후학들에게 힘써 가르쳤으며, 나아가 유교지식인으로서 자세를 가다듬고 실천해가던 역동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사제 간의 공감과 갈등, 또는 제자들 간의 분화와 새 길의 모색은 그렇게 해서 가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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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전기 元好問 『遺山樂府』의 수용에 대하여: 金時習의 예를 중심으로

저자 : 노요한 ( Noh Johan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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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孝溫(1454~1492)의 『秋江冷話』에는 元好問(1190 1257), 金時習(1435~1493)과 관련한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곧, 김시습은 독서할 때에 文義에 구애되지 않고 大旨를 보고 大義를 음미할 뿐이었는데 남효온이 「征夫怨」10수를 지어 元遺山의 시에 和韻하자 김시습의 그 시의 글자가 잘못되었다고 하며 실소하였다는 것이다. 원호문의 문집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權近(1352~1409)은 1390년에 지은 「題盾谷李公書室」의 自註에서 “집에 『元遺山集』이 있었으므로 그 詩韻을 썼으며, 折花雲山 두 그림이 또 진귀하였으므로 아울러 시를 지었다.”라고 하고 있어, 고려말에는 『원유산집』이 수입되어 문인들 사이에서 읽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원호문에게는 문집 외에 『遺山樂府』가 있어, 弘治5년(1492, 성종에 晉州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조선간본이 국내외에 전한다. 그렇다면 원호문의 시는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에 의해 어떻게 향유되었으며, 문인들의 문학창작에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었을까. 본고는 조선전기 원호문 『遺山樂府』의 간행 사실과 그 향유 양상에 대해 김시습의 예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자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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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전기(朝鮮前期) 지리산(智異山) 유기(遊記) 발생에 관한 단견(短見)

저자 : 강정화 ( Kang Jeong-hwa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9-10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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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지리산 유산문학 연구의 선행 과정을 점검하고, 거칠게나마 새로운 연구시각을 제시하고자 기획되었다. 다만, 시기는 국내 유산기가 발생하는 15세기에 한해 살펴보았다. '15세기'인 이유는, 국내 각 산의 유산기가 이 시기 지리산에서 나타나고, 16세기에 이르면 이미 유산이 일반화될 뿐만 아니라 선현의 유산을 답습하는 관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리산 유산문학의 선행연구는 대개 '산과 유람자'의 이중구조에서 산이 아닌 오르는 유람자의 의식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산이고 오르는 유람자의 개인차에도 불구하고, 각 산의 유산문학 연구는 유람자인 조선조 士人의 士意識을 해명하는 대동소이한 결론에 이르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의 해결방안으로 유람자가 아닌 '그 산'에 집중하는 새로운 연구시각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나아가 본고에서는 15세기 지리산 유기를 중심으로 이의 해답을 찾아보았다. 곧 지리산의 '무엇'이 당시 지식인을 지리산으로 이끌었나를 살핀 것인데, 대략 두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지리산은 신라 시대부터 줄곧 南嶽으로서의 위상과 神聖性을 지켜온 국내 유일의 명산이다. 五嶽 중 여타 명산은 시대가 흘러오면서 바뀌었지만, 지리산만큼은 남악으로서의 명성을 고수해 왔고, 게다가 금강산 등과 달리 내 가까이에 있는 지역의 명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둘째, 지리산은 인간의 삶과 맞닿은 국내 유일의 명산이다. '산과 사람'의 관점에서 보아, 민간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산은 지리산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산은 그 아래 사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따라서 우리 국토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삶을 이해하려는 당대 지식인의 의식이 발현된 유일한 산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지리산만의 특징이고, 이런 점들이 당대 지식인을 지리산으로 불러들인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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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전기의 사대부문학과 필기(筆記) -『청파극담(靑坡劇談)』 소재 '소화(笑話)'를 중심으로-

저자 : 곽미라 ( Kwak Mi-ra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4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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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본적으로 조선전기 한문학에서의 筆記의 성격과 기능을 따져 보려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다. 그 대상은 李陸의 『靑坡劇談』이다. 그 동안 필기는 문학성 도출에 경도된 연구 경향과 자유로운 형식과 체재, 내용의 방만함이 연구의 난점으로 작용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필기야말로 성립 저변에서부터 소재와 내용에 이르기까지 사대부 문인지식층과 긴밀하게 연결된 전형적인 조선전기의 사대부문학이라는 점에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기가 정연한 체계와 일관된 문제의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어떤 장르보다 士계층의 의식을 자유롭게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조선전기 지성들의 내면세계와 지향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필기의 장르적 성격 규정과도 깊이 연관된다. 따라서 필기에 관한 연구의 시각을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그간 주목 받지 못한 『청파극담』 소재 '笑話'를 중심으로 조선전기 필기-사대부소화의 양상과 의식지향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선 초 간본 『청파극담』은 초기 필기류 저술에서 주로 보이던 詩話가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작품집 전체에서 소화가 차지하는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조선전기 사대부 문인들이 '時事'를 중시하던 풍조와 맞물린 것으로, 『청파극담』의 경우 전반적으로 사대부소화로서의 성격이 특히 두드러진다. 비교하자면 오히려 『청파극담』이 『용재총화』 보다도 더 '滑稽'나 '奇異'의 측면에 주력한 것이다. 그런데 『청파극담』은 사대부소화에 민간소화가 섞여 들어간 조선전기 여타의 필기집들과는 달리 온전히 사대부의 시선에서 자기계층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승려와 무인을 비롯해 이미 이 시기 다른 작품집에서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일반 백성, 여성, 장애인 등 타 계층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같은 사 계층을 기록하더라도 차별적 시선을 통해 '우리'와 '남'을 구분하여 자기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고 '남'을 풍자함으로써 警戒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
이렇게 고급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親交와 연대'를 통해 단결된 자기 집단의 유희와 그로 인해 파생된 웃음(이완의 웃음), '남'으로 표상되는 '사대부 같지 않은 사대부'에 대한 풍자(비판적 웃음)와 경계는 『청파극담』의 전편을 관통하는 지향 의식임이 틀림 없다. 이는 조선전기의 필기가 표면적으로는 '破閑을 위한 잡다한 기록물'을 내세우더라도 실상은 사 계층의 자의식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기집단의 결속과 연대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을 검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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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필기(筆記)를 통해 본 조선전기 영남지역의 문화와 인물

저자 : 신상필 ( Shin Sang-phil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5-17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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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은 畿湖, 湖南, 嶺東, 關西와 함께 한반도의 지역에 대한 호칭이다. 이때 랜드 마크인 '嶺', '湖' 등에 방향을 더해 대체적인 지역을 특정한 것이다. 이 점에서 영남은 '큰 고개의 남쪽', 흔히 문경새재로 불리는 '鳥嶺의 남쪽 지방'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慶尙道지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경상도에는 낙동강이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江左·江右'의 구분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명칭은 지역을 편의적으로 구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해당 지역의 자연 지리적 여건에서 비롯한 물산과 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民生들의 삶이 일군 역사와 문화의 성격이 그 호칭에 함축적으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역에 대한 인식은 조선후기 李重煥(1690~1752)이 편찬한 『擇里志』의 卜居總論에 地理·生利·人心·山水등과 같은 문화·경제적 특징을 다룬 인문지리서의 출현으로 결실을 맺기도 하였다. 이는 이미 조선전기인 성종 12년(1481) 50권 분량의 『東國輿地勝覽』 간행에서 엿볼 수 있는 인식이기도 하다. 다만 이 경우 지역에 대한 연혁과 경개에 관련 題詠의 문화적 면모를 소개하고는 있으나 영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차이가 느껴진다.
본고는 조선전기의 영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인식과 그 형성 과정을 '筆記' 저술에 주목해 확인하고자 한다. 필기 양식이 고려후기로부터 조선전기에 등장하는 과정에서 문인들이 견문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 영남 지역에 대한 인식과 기억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중기 이후 허균과 같은 문인들의 지역에 대한 종합적 평가와 인식의 형성 과정을 조선전기 필기류에 그려진 영남 지역에 대한 단편적 기록과 언급들을 수습함으로써 추적해 보려는 것이다.
이에 본고는 먼저 고려후기 李仁老(1152~1220)의 『破閑集』과 李齊賢(1287~1367)의 『櫟翁稗說』을 통해 조선전기 이전의 영남 지역에 대한 언급들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조선전기 徐居正(1420~1488)의 『東人詩話』·『筆苑雜記』·『太平閑話滑稽傳』에서 양식적 완성을 이룬 필기들의 언급과 비교함으로써 영남의 인물과 문화에 대한 지역성의 형성 과정을 대비적으로 부조시켜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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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영남 지역 시첩(詩帖)제작의 한 국면 - 구암(龜巖) 이정(李禎) 가문의 『수서시(壽瑞詩)』를 중심으로 -

저자 : 이미진 ( Lee Mi-jin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214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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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壽瑞詩』는 李稵(1372~1495)의 장수를 기념하여 당시 右議政이었던 姜孟卿(1410~1461)이 지어준 祝壽詩및 후대의 次韻詩를 모아둔 詩帖이다. 이 시첩은 李稵의 후손인 龜巖李楨(1512~1571)이 제작을 주도하였는데, 여기에는 강맹경의 元韻이 지어진 作詩현장과 이후 여러 대에 걸쳐 지어진 次韻詩의 수습 과정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수서시』는 구암 한시를 모아둔 시집이 아니며, 문학적 완성도를 운운하기 위한 작품 선집도 아닌 만큼 이 시기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식인들의 한시 授受장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라 할 수 있다. 구암 이정이 오랜 기간 영남 지역에서 지방관을 역임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차운시를 수습했던 사실에 주목하여 『수서시』의 제작 경위 및 차운시 현황을 살펴본 결과 차운시는, 강맹경 생존 당시, 구암의 지방관 재직 시, 그리고 구암 사후 수습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구암은 영천군수(경북 영주)에 제수된 이후 경북 선산과 충북 청주를 거쳐 경북 경주와 전남 순천에 이르기까지 영남의 상하를 관통하면서 비교적 大邑의 수령을 지냈는데, 이 가운데 영주, 선산, 청주 지역에서 재직 시 요청하여 받은 차운시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대의 시문을 후손이 모아 제작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차운시의 대부분이 선조의 장수와 그의 후손들의 효행을 칭송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서시』는 명실상부한 구암 가문의 기록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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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천(鶴泉) 성여학(成汝學)의 삶과 시세계(詩世界)

저자 : 이현일 ( Lee Hyun-il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5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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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鶴泉 成汝學(1557~1636 이후)의 삶과 시세계를 본격적으로 살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鶴泉은 살아생전에 於于 柳夢寅(1559~1623)이나 芝峯 李睟光(1563~1628) 같은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들로부터 시인으로 인정받았지만, 평생 落拓한 신세로 살았듯이, 身後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문학사에서는 『續禦眠楯』의 작자로 稗說을 수집한 인물 정도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成汝學에게는 『鶴泉集』이라는 번듯한 문집이 유일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牛溪門徒)坡山及門諸賢集』(1982년), 『韓國文集叢刊』(1992년) 등에 거듭 영인되었지만, 그 뒤로 40여 년 동안 鶴泉의 문집을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본 이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鶴泉에 대해서는 墓誌나 行狀같은 傳記자료가 전하는 것이 없다. 이 글에서는 우선 『鶴泉集』에서 삶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토대로 해서, 교유한 인물들이 남긴 문집에서 鶴泉과 직접 관련된 詩文, 鶴泉과 酬唱한 시, 鶴泉의 詩文 및 『朝鮮王朝實錄』과 『司馬榜目』 등에서 관련 자료를 片言隻字라도 수습하여 그의 생애를 어렴풋하게 추적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이어서 『芝峯類說』과 『於于野談』을 비롯하여 여러 詩話에 실린 鶴泉의 詩에 대한 論評을 바탕으로 그의 詩世界를 '淸苦'라는 風格으로 정리하고, 鶴泉의 詩중에서 당시 가장 人口에 膾炙되었던 鰲城府院君 李恒福을 哀悼하는 挽詩의 전후 맥락을 짚어 보려 하였다. 그리고 『續禦眠楯』에 실린 笑話들에 활용된 '肉談風月'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였다. 다만 지면의 제약으로, 鶴泉의 詩世界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排律에 대한 탐구는 후속 연구로 미루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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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선조(朝鮮朝) 후기(後期) 종적(縱的) 질서(秩序)와 학예(學藝)의 공론장(公論場) -지식의 생성ㆍ유통과 관련하여-

저자 : 진재교 ( Jin Jae-kyo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1-34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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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전란 이후 조선조는 종적 체계를 통한 사회 질서의 재구조화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서원과 사승 관계를 강조하고, 종법과 가학을 중시하는가 하면, 친족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고 다양한 족보편찬을 통해 종적 질서와 체계를 보여주었다. 종적 질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재 구조화하는 과정에서의 종적 질서와 체계는 순기능 보다 역기능이 많았다. 일부 횡적 질서를 위한 사유와 실천도 있었지만, 그 성과는 적었고, 그마저도 새로운 지식의 생성 공간을 형성하지 못하고, 공간마저도 경직성과 폐쇄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조선조 후기 지식의 생성 공간은 갈라파고스와 다름없었고, 필기와 유서는 이러한 갈라파고스 공간에서 다수의 독자를 쉽게 만나지 못하였다. 종적 질서와 체계는 지식·정보유통과 확산, 지식을 향한 다양한 시선을 가로막고,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지식의 확장에도 걸림돌로 작용하였으며, 신분과 관계없이 다양한 인물과 交遊하는 것도 제한하고 말았다. 이러한 종적 질서와 가치체계를 전복할 수 없었던 것은 횡적인 인적 관계망을 통한 학술과 문예 공론장의 부재가 조선조 후기 지식 장을 견인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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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선 후기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 탐색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1734~1799)의 「염절부전(廉節婦傳)」을 중심으로-

저자 : 이홍식 ( Lee Hong-shik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47-3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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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 烈女傳에 투사된 士大夫의 욕망을 천착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은 사대부의 烈인식과 시대 인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여성의 실제상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위하여 본고에서는 18세기 중후반 烈婦廉氏의 죽음을 다룬 近齋 朴胤源의 「廉節婦傳」에 주목하였다. 박윤원은 노론 낙론계 대표 학자로 조선 후기 사대부의 한 전형을 보여주어 사대부의 욕망을 천착하는 데 좋은 대상이 되고, 「염절부전」은 비교 대상이 될 만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서 염씨의 삶과 그 속에 투사된 박윤원의 욕망을 분리하여 읽는 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실록 소재 사건 기록 및 曺兢燮과 李承熙의 열녀전 등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박윤원의「염절부전」을 분석하였다. 특히 염 열부의 죽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 서사의 방법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박윤원이 서사를 적극적으로 變改하여 염씨의 烈行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 列聖의 敎養을 칭송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러한 의도적 서사 變改에 염씨의 죽음을 통해 조선 후기 열 윤리의 일상성과 지리적ㆍ계급적ㆍ상징적 확장성 및 보편성을 확인시키려는 박윤원의 욕망이 잠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욕망은 조선 후기 노론 낙론계 학자의 열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그들이 유교적 교화를 통해 완성하려 한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염절부전」에 투사된 박윤원의 욕망을 벗겨내고 변개된 서사를 되돌리면, 염 열부의 죽음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열리게 된다. 특히 박윤원이 확인시키려고 한 조선 후기의 열녀상이 만들어진 것이자 불완전한 것임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이 균열의 지점에서 제대로 된 여성상을 구축할 수 있는 만큼, 향후 다양한 비교 연구를 통해 열녀전에 투사된 사대부의 욕망을 천착하여 여기에서 분리된 여성상을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조선 후기 여성들이 열이라는 윤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구체적 실체에 조금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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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계곡 장유의 논설류 산문 연구

저자 : 장진엽 ( Jang Jin-youp )

발행기관 : 우리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보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1-399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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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谿谷張維의 論說類 산문을 검토하여 그 특징을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장유의 논설류 산문을 개관하고, 작품의 주제의식 및 그 구현 방식에 나타나는 특징적 양상을 세 가지 측면에서 논하였다.
장유의 논설류 작품은 권3 雜著에 수록된 辯3편, 論3편, 解1편, 그리고 권4 說에 수록된 10편의 설까지 모두 18편이다. 이 중 두 편은 字號說로서 논설류로서의 성격이 미약하며, 「設孟莊論辯」 역시 작가의 견해가 제시되지 않은 가상의 대화로서 논설류로 보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이 3편을 제외한 나머지 15편은 형식 및 내용의 측면에서 명백히 논설류 산문의 범주에 속한다.
장유 논설류 산문의 주제의식 및 그 구현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양상이 나타난다. 첫째, 인물에 대한 논평의 글에서 인물의 성격 및 그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그 심리를 세세하게 분석해 나가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漢祖不錄紀信論」이 그러한 작품인데, 같은 주제를 다룬 주세붕 및 어유봉의 작품과 비교할 때 이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靑白眼說」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인물 분석이 나타난다. 둘째, 文의 불후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확고히 표명되고 있다. 「柳宗元死而爲神論」에서는 천지의 精英한 기운이 文章에 깃들어 있는데 유종원은 間氣를 받아 그러한 재주를 지니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죽어서 신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詩能窮人辨」에서는 시인의 재주는 元精이 그 靈性을 부여한 것으로, 大化와 더불어 流通하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또, 「覆醬瓿解」에서는 군자와 達人은 비록 현실에서 곤궁함을 겪더라도 의연한 태도로 글을 남겨 道를 밝힐 뿐이라고 하였다. 셋째,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자아에 대한 지향이 나타나고 있다. 「風竹說」에서는 感應無心하는 대나무의 형상을 통해 현실의 온갖 변화 앞에서 의연히 자신의 본 모습을 지켜나가는 자아의 모습을 구체화하였다. 이 글에서는 성리학의 마음공부가 필요함을 강조했는데, 「福田說」에서는 불교적 깨달음을 통해 그러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복전설」에는 齊物의 인식이, 「海鷗不下說」에는 逍遙遊의 경지가 나타난다. 외물의 구애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자아상은 장유 산문에 나타나는 주된 이상이며, 그에 이르는 방법은 성리학이기도, 불교이기도, 또 장자적 초탈이기도 한 것이다.
이상 제시한 몇 가지 양상은 장유 논설류 산문의 전체 특징을 모두 아우른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특징들은 증서류나 서발류 등 장유의 다른 文類들과 연결 지어 논할 필요가 있다. 여러 한계가 있지만, 장유 산문 세계의 한 측면을 선명하게 읽어내는 데 본고의 논의가 작으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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