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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한국복식> 《화성행행도(華城行幸圖)》의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 복식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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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행도(華城行幸圖)》의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 복식 연구

The study of Nacnamheonyangnoyeondo in Hwasunghaenghaendo

박선영 ( Sunyoung Park ) , 이경미 ( Kyungmee Lee )
  •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 : 한국복식 4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2월
  • : 5-24(20pages)
한국복식

DOI

10.47597/KDS.46.1


목차

Ⅰ. 머리말
Ⅱ. 양로연의 연혁과 조선시대 양로연 의례의 제도화
Ⅲ. 1795년 정조의 화성낙남헌친림양로연의
Ⅳ. 화성능행도의 낙남헌양로연도 복식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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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보기

1795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행궁에 행차하여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였고 혜경궁의 회갑연을 열었다. 을묘년 화성행행의 기록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통해 상세히 정리되었다. 최초의 목판본 의궤를 대량으로 인쇄하여 배포하였고, 부족한 채색화를 보완하는 병풍 형태의 기록화(<화성행행도>)도 따로 제작하였다. 본 연구는 병풍의 네 번째 화제인 <낙남헌양로연도>의 복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첫째, 조선시대 양로연의 시행에 대한 배경과 내용을 살펴보았고, 둘째, 1795년 시행된 양로연의 내용을 살펴보았으며, 셋째, <낙남헌양로연도>에 표현된 복식을 정리하였다. 이를 위해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양로연 관련문서를 검토하여 양로연 참여자의 명단 및 계급을 확인하고, 양로연 참여 인물들의 자리배치와 그들의 복식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 분석한 <화성행행도>는 선행연구에서 보고된 유물 중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본이 이 시기 제작본일 가능성이 가장 크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우학문화재단 소장본은 19세기 후모본으로 추정된다고 하여 삼성본을 기준으로 연구하였다. 또한 『원행정리의궤도』, ≪화성원행반차도≫ 등도 함께 비교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였다.
<낙남헌양로연도>에는 가장 위쪽에 낙남헌 건물이 그려져 있고 그 전각 안에 어좌와 노인 관원이 그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조와 관직자는 융복을 입었다 하니 모두 융복을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단 아래에는 줄을 지어 서 있는 관원들과 옷감 등을 나누어주고 있는 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중앙을 기준으로 홍철릭을 입은 인물은 왕의 명령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고 그 뒤로 비단 등을 나누어주는 집사자가 있으며 악공아래 상을 나누어 주는 인물은 화성부의 서리로 홍색 협수와 전복에 전대, 전립 차림이다. 그 아래에는 화성부 노인들이 마당을 꽉 채워 앉아있다. 융복을 입은 1명 외에는 대부분 단령, 도포 차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구장(鳩杖)에 황색 천을 매달고 있다. 그 뒤에 아세악수, 악사, 세악수로 구성된 악공들이 있으며 낙남헌의 담장 밖에는 초대받지 못한 노인들이 단령, 도포, 중치막 차림으로 앉아있다. 전각 안쪽에는 붉은 옷을 입은 군인들이 중앙을 바라보며 사열하고 있고 가장 바깥쪽에는 총기를 든 군인들이 사열하고 있다. 가장 아래쪽에는 관광인들이 서서 행사를 구경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It is 1795, King Jeongjo visited the tomb of his father Sado - also known as the crown prince, and he held a feast in Hwaseong Haenggung Palace to celebrate his mother Hyegyeongung Hong’s sixtieth birthday. The fine details of Hwaseong’s activities were described in the book of 『Wonhaengeulmyojeongrieuigwe (later Euiqwe)』 for the first time. It was printed on the woodblocks and distributed in large quantities. The focus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drawings of costumes on < Naknamheonyangroyeondo(Later Picture) >, the fourth topic of the folding screens.
This study was conducted as follows. The first topic is the background and contents of the Joseon Dynasty’s senior feast, the second topic is the contents of the senior feast conducted in 1795, and the third topic is the analysis of costumes depicted in < Picture >. The list of participants and their class in the senior feast were checked against the documents in 『Euiqwe』. The costumes and the placement of the participants in the senior feast were analyzed as well. Among the relics reported in previous studies, < Hwaseonghaengdo > from the collection of the Samsung Museum of Art is most likely to be the one that was produced at this time. Other copies from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the collection of Woohak Cultural Foundation are estimated as a copy of the 19th century. Lastly, this < Picture > was compared with 『Wonhangjeonrieuiguedo』 and 『Hwaseongwonhang banchado』 to supplement the studies.
At the top of < Picture >, there is a roof of the Naknamheon building and a throne is placed in the center without Jeongjo. However, based on the recording of < Yeonseol > in 『Euiqwe』, King Jeongjo attended the senior feast wearing a Yungbok. Therefore their attire is assumed a Yungbok. Under the stairs, from the center, there are two lines of three people in red Cheolik and feather decorated black Rip. Then, two lines of six people in military uniforms on each side. They are waiting for orders from the king nearby. Both sides of these lines, Jipsaja (集士者) with simple outfit are distributing the silk. Those carrying the food at the bottom of the orchestra are the Seori of Hwaseong-bu. They are dressed in purple Hyeupsu and Jeonbok, Jeonmo. The seniors with the government positions are wearing Yongbok and commoners are wearing casual clothes(regular clothes). One of the seniors are wearing a red Cheolik and putting a feather decorated black Rip which is another type of Yungbok. The rest are wearing a Danryong and a Rip, Dopo. They all holding Gujang (鳩杖) with yellow ribon. Under them, the orchestra consist of Aesaksu (兒細樂手), Aksa, Seaksu. Outside the courtyard, uninvited seniors seem to be wearing Danryong and Dopo. which is pants are shown between the split is Jungchimak. A group of guards are lined up and watching the courtyard, and another group guards are lined up and facing outward of Hap (閤) with rifle. At the bottom of < Picture >, there are “Sightseers” watching the feast over the gu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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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기타(예체능)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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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2005-3959
  • : 2713-9077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3-2022
  • :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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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권0호(2022년 05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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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전기 순창 단오성황제 재현을 위한 무속제의 참여자 복식 제안

저자 : 이은주 ( Lee Eun-joo ) , 김수진 ( Kim Suji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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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명종대에 연행되었을 순창 단오성황제 중 무속제의(巫俗祭儀)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복식을 문헌 자료와 유물을 바탕으로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순창 단오성황제의 무속제의를 주관하는 헌관(獻官) 호장과 향리는 『경국대전(經國大典)』 기록에 근거하여 공복(公服)인 복두(幞頭), 녹포(綠袍), 흑각대(黑角帶), 목홀(木笏), 흑피혜(黑皮鞋) 차림을 하고 호장은 인신(印信)을 패용하여 일반 향리와 구분되도록 하였다.
둘째, 무녀의 복식은 감로탱에 나타난 복식을 참고하여 수식(首飾)과 치마ㆍ저고리에 홍장삼(紅長衫), 황대(黃帶), 단혜(段鞋) 차림으로 제안하였다.
셋째, 악사의 복식은 흑립(黑笠)에 홍철릭[紅帖裏], 청대(靑帶), 행전(行纏), 초혜(草鞋)로 제안하였다.
넷째, 정재복을 착용하는 관기는 고계(高髻)에 대요(臺腰)와 장잠(長簪)을 장식하고 황장삼(黃長衫)에 남대(藍帶), 단혜(段鞋) 차림을 하고, 황장삼을 착용하지 않는 관기는 상복(常服)인 가리마(加里亇)에 녹색이나 남색 장저고리에 치마를 착용하는 것으로 제안하였다.
다섯째, 남자 연희패는 감투[甘土]를 쓰고 직령(直領)이나 철릭 등에 포대(布帶)를 두르고 행전과 피혜를 착용하고 부채ㆍ악기 등을 든 모습으로 제안하였으며, 여자 연희패는 고계(高髻)에 홍색 머리띠를 두르고 반비(半臂)에 치마ㆍ저고리, 한삼, 단혜 등의 차림으로 제안하였다.
여섯째, 기치 및 의물 봉지군은 조선전기 군사복식인 흑죽립(黑竹笠), 청철릭[靑帖裏], 청대, 행전, 초혜를 착용하는 것으로 제안하였다.
일곱째, 성황제에 참여하는 군민은 16세기 복식을 갖추도록 하였다. 남자는 흑립ㆍ감투, 바지ㆍ저고리에 방의(方衣, 方領), 액주름[脥注音], 철릭, 답호(褡胡), 직령 등을, 여자는 다양한 색상의 치마·저고리를 착용하며 때에 따라 반비나 장옷을 착용하는 것으로 제안하였다.


The results of examining the dress of people who participated in the shamanic ritual at Sunchang (淳昌) Dano-Seonghwangje (端午城隍祭)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ased on literature data and relics are as follows.
First, the shamanic ritual at Dano-Seonghwangje was supervised by hojang (戶長) and hyangri (鄕吏). Their dresses are proper to wear gongbok (公服) in this ritual. According to the record of Gyeonggukdaejeon (經國大典), the gongbok of hyangri consists of bokdu (幞頭), nokpo (綠袍), heukgakdae (黑角帶), mokhol (木笏) and heukpihye (黑皮鞋). Hojang was distinguished by wearing a seal for approval(印信).
Second, the shaman is proposed to wear susik (首飾), hongjangsam (紅長衫), a yellow belt made of cloth and shoes made of silk(段鞋).
Third, the musicians are proposed to wear heuklip (黑笠), red-colored cheollik (帖裏), cheongdae (靑帶), leggings(行纏), and straw shoes(草鞋).
Fourth, gwangi (官妓) is proposed to dress up daeyo (臺腰), jangjam (長箴), hwangjangsam (黃長衫), various colored skirts, namdae (藍帶), and shoes made of silk. Her everyday clothes consist of garima (加里麻), the indigo-colored or green-colored jangjeogori (長赤古里), and various colored skirts.
Fifth, the performers are proposed to wear gamtu [甘土], jikryeong (直領) or cheorlik, podae (布帶), leggings and shoes made of silk. Female performers can also dress up gogye (高髻) with ribbon, banbi (半臂), various colored skirt and jacket, shoes made of silk.
Sixth, dresses for the honor guard are proposed to wear heukjuklip (黑竹笠), blue-colored cheollik, blue-colored belt made of cloth, and straw shoes.
Seventh, country residents are proposed to wear men's and women's clothing in the 16th century. Men can wear heuklip or gamtu, pants and jeogori, bangui (方衣), eakjureum (腋注音), cheollik, dapho (褡胡), and jikryeong. Women can wear various colored skirts and jeogori, and banbi or jangot (長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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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세기 해주오씨(海州吳氏) 묘 말군의 재현에 관한 연구

저자 : 최윤희 ( Choi Yoon-hee ) , 이은주 ( Lee Eun-j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5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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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시대 여성용 말군에 관한 문헌기록을 고찰하고, 안동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해주오씨(海州吳氏, 미상~1520) 묘 말군을 재현하면서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장 석남동 말군의 형태와 구성법을 비교ㆍ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상의(馬上衣)인 말군은 왕실여성과 여관(女官, 상궁 이하 기행내인), 사대부가 부인이 착용한 옷임을 확인하였다.
둘째, 왕실여성의 말군은 복완(服玩)과 대렴(大殮)ㆍ소렴(小殮), 가례(嘉禮)에 사용하였는데 백릉(白綾), 백초(白綃), 백저포(白苧布), 백화문릉(白花紋綾), 백화사주(白花絲紬), 백금선(白錦線), 금선단(金線段) 슬란(膝欄) 등으로 제작하였다. 여관(女官)의 말군은 백주(白紬), 백정주(白鼎紬), 백면포(白綿布)로 제작하였으며 사대부가 부인의 말군은 백릉(白綾), 백초(白綃) 등으로 제작하였다. 이를 통해 신분별 재료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2005년에 보고된 인천 석남동 회곽묘 말군과 광산김씨 집안의 해주오씨 묘 말군 두 점의 제작 방법을 비교한 결과, 인천 석남동 말군은 70㎝ 폭 너비의 숙초(熟綃)로 제작한 것이고 해주오씨 말군은 32.5㎝ 폭 너비의 세주(細紬)를 사용하였다. 15~16세기로 추정되는 두 묘의 말군은 뒷트임의 개당고로, 바지가랑이 잇는 방법, 허리 맞주름, 바지부리 주름 접는 방법 등이 유사하였다. 반면에 해주오씨 말군의 바지가랑이 폭 너비는 석남동 말군에 비해 적었지만 주름개수가 많았으며 바느질 기법 또한 달랐다. 허리끈은 석남동 말군은 허리말기에 넣어 만든 흔적만 보였으나 동일한 방법으로 바느질한 해주오씨 말군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넷째, 온전한 형태로 출토된 해주오씨 말군을 재현하는 데에 사용된 옷감량은 1493년(성종 24) 『樂學軌範』의 포백척(布帛尺)을 기준으로 바지와 허리말기감이 세주(細紬) 32자(1,509㎝)와 허리끈감으로 주(紬)가 2.4자(114㎝)이 소요되었다. 이는 1638년(인조 16)부터 1744년(영조 20)까지의 『嘉禮都監儀軌』에 기록된 32~35자 분량의 여관용 백주(白紬) 말군 분량과 같아, 실물과 기록이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examines the literature on female Malgun (襪裙, 袜裙)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reproduces the Malgun excavated from Mrs. Haeju Oh's tomb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Malgun of clothes for riding horses(馬上衣) was worn by a royal woman and a woman in the household of government officials, was a court maid whose position.
Second, the last group of royal women were used for cerements and ornament at a funeral and the wedding ceremonies and was made of white twill(白綾), white thin silk tabby(白綃), white ramie(白苧布), a white pattern of twill(白花紋綾), Hwasaju (白花絲紬), Geumsun (白錦線), Geumsundan (金線段) Slan (膝 欄). A woman in the household of government officials was made of white twill(白綾), white thin silk tabby(白綃), a court's maid position can check the difference in materials by using white silk tabby(白 紬), a white Jeongju (白鼎紬), white cotton(白綿布) weres such as silk and cotton cloth.
Third, the results of comparing the manufacturing methods of the tomb in Seok-Nam-dong, Incheon, reported in 2005, and the tomb of Mrs. Haeju-Oh's in Gwangsan Kim's family released this time are as follows. In the Malgun in Seok-Nam-dong, Incheon is made of thin, Sookcho (熟綃), which is the fabric is 70㎝, and in the Malgun of Mrs. Haeju Oh's tomb is made of filament silk tabby(細紬) which is the of the fabric is 32.5㎝. The Malgun of the two tombs, estimated from the 15th to 16th centuries, had similar to the back opening Gaedanggo (開襠袴), the method of joining respectively for the pants, the waist fold, and the folding method of the pleats at the bottom of p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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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동아시아 전통모시의 제직 공정 비교

저자 : 김보연 ( Kim Boyeu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8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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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동아시아 삼국 전통모시의 제직 공정을 비교한 것으로, 국가급 무형문화재로서 각 국을 대표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였다. 한국의 한산모시, 중국의 완자이시아뿌(万载夏布), 일본의 오지야치지미ㆍ에치고조후(小千谷縮ㆍ越後上布)가 이에 속하며, 한산모시와 오지야치지미ㆍ에치고조후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사 방법은 철저한 현장조사를 기반으로, 현시점에 실제로 작업되고 있거나 시연 가능한 공정의 관찰과 구술 확인을 중심으로 비교하였다.
삼국에서 모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만큼 원시적인 요소 및 고대 문헌의 원형적 공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 중국의 모시 채취 방식, 한국의 모시굿 형태 그대로 직조 공정으로 이어지는 특성, 일본의 모싯대와 태모시 수침 공정 및 직기와 도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과 중국의 전통모시와 일본이 가장 크게 대별되는 지점은 문양 표현의 유무로, 이는 일본 모시실의 경우 방적 후 꼬임을 추가하는 공정에 기인한 것이다. 한국은 방적 공정이 삼국 가운데 인피섬유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정교하게 발달하여, 무늬없는 평직에도 가장 흠 없는 바탕 제직을 숙련된 솜씨로 제직하고 있다. 중국은 직기 너비의 요인뿐 아니라 대외 수요를 위해 다양한 규격의 모시가 제직되고 있으며, 대량생산을 위해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전반적인 질적 저하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일본은 섬유를 얻는 과정에서부터 섬세한 작업물을 얻는 방향으로 전 공정이 발달하였으며, 풀을 낱 올에 미리 먹이는 작업 특성으로 모시실이 인피섬유가 아닌 명주실의 성격으로 변모되어 후 공정에 영향을 미치며, 후처리에 이르기까지 기술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여 관리하고 있다.
삼국 모두 큰 틀에서 각기 고유한 공정의 특성과 미감을 유지하면서 고대 원형적 요소 위에 현대의 개량된 요소의 적용이 확대되는 가운데, 전통 제직 공정을 중심으로 비교하여 전승의 방향을 고려하도록 하였다.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weaving characteristics of Hansan Mosi through a comparison of the traditional ramie weaving processes among three countries in East Asia, Korea, Japan and China.
Three National degre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re examined, which is Korea's Hansan Mosi, China's Wanzai Xiabu 万载夏布, Japan's Ojiya-Chijimi and Echigo-Jofu 小千谷縮ㆍ越後上布. Among them, Korea and Japan's have also been designated by UNESCO as a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s they have taken important roles since ancient times, some ancient character or factors from old writing, such as ramie harvesting from wild in China, warping directly from the connected threads form in Korea, ramie stem and outer stems soaking plus loom and shuttle shape in Japan. The most unusual characteristic of the Ojiya-Chijimi and Echigo-Jofu different from Korea and China is pictorial expressions due to its thread making process that the twist is applied to ramie threads to increase its strength. China produces various widths of ramie textiles with the wide traditional loom, but overall to meet the needs for outside, it succeeds mass production but faces quality problems. Hansan Mosi's thread-making process can be pointed to as being the most developed and subdivided process among the three countries, it is the most developed to overcome the limitation of the bast fiber length to create the most clean and neat woven surface. Japan has developed the delicate process from the harvest to the final stage and pre-starching process applied to single thread made ramie threads similar to silk threads to effect the rest process. Overall, three countries carry their own characters throughout the process and to the final visual textile surface. Preserving tradition and implying the modern factors to find the balance is the main key to succession of ramie weaving culture and techniques for all 3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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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신경유(申景裕:1581~1633년) 조복(朝服)의 후수(後綬) 연구

저자 : 장정윤 ( Jang Jung-youn ) , 박윤미 ( Park Yoon-mee ) , 최연우 ( Choi Yeon-w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1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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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과 명의 문헌에 규정된 관원의 후수 제도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17세기 무관 신경유 조복 후수의 유물에 관해 고찰하였다. 연구를 위해 총 두 차례의 유물 실견이 이루어졌다. 비록 직물 표면의 상태가 좋지 않아 완전한 형태를 복원하는 데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선행연구보다 한 발더 진전된 연구성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태종 16년(1416) 3월 제정된 조선의 조복제도는 『홍무예제』와 당시 시행되고 있던 조선의 제복제도를 종합한 것이다. 『홍무예제』에 수록된 제도는 홍무 24년(1391) 제정된 것이다. 태종 16년(1416) 마련된 조복제도는 명의 제도에 비해 이등체강 원칙을 적용한 것이지만, 세부내용에서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면도 나타난다. 품급에 따라 운학, 반조, 연작, 계칙을 표현하는 조선전기의 이 제도는 문헌에서 대한제국까지 변화없이 이어지지만, 조선후기 실제 사용된 후수는 제도와 달리 운학을 표현했고, 17세기 권우 조복 후수의 경우는 노사(鷺鷥)문양이다. 신경유 후수는 정2품 관원의 후수인데, 겉감은 총 5종의 조직이 혼합된 문직물이고, 안감은 3매 능직의 무문능이다. 무늬는 가로줄 등 몇 가지가 있는데 주 무늬 부분에는 일부 구름으로 추정되는 무늬가 있으나 무늬 전체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하였다. 무늬는 지위사와 별도로 굵은 문위사(supplentary weft)를 넣어 이중직(double weave)으로 짰다.


This study examines the Husu(back decoration) of the 17th century military officer Shin Gyung-yoo's Jobok (relics of the Ceremonial Attires) which is kept in Seokjusun Memorial Museum of Dankook University and compares the Husu system of ceremonial attires for government officials stipulated in the literature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Ming Dynasty. Husu is worn on the back when wearing Jobok. The surface of the Husu of Shin Gyung-yoo was in a poor condition and only parts of the pattern could be examined.
The Jobok system for government officials enacted in March of King Taejong's 16th year combines the Hongmuyeje and system in place at the time. The system in Hongmuyeje was established in the 24th year of Hongmu. The Jobok system established in the 16th year of Taejong applied the principle of two-rank downgrading compared to the system of the Ming Dynasty. However, this principle did not apply to some detailed parts. The Jobok syste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xpressed different patterns according to the officials rank such as clouds with cranes, eagles, mapgies and mergansers and this system continued on, in literature, to the Korean Empire without any change. However, only clouds with cranes were actually used on Husu for Jobok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case of 17th century Kwon Woo's ceremonial attire, white heron patterns were used.
The Husu of Shin Gyung-yoo, who was a 2nd rank official, is made of polychrome woven silk mixed with five types of weaving techniques on the outside and the lining was a three-fold 2.1 twill. As for the patterns, a few patterns including horizontal lines were examined. A part of the main pattern could be assumed as cloud patterns. However not all the patterns could be identified. The patterns were woven with supplementary weft in a double we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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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성행행도(華城行幸圖)》의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 복식 연구

저자 : 박선영 ( Sunyoung Park ) , 이경미 ( Kyungmee Lee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24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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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행궁에 행차하여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였고 혜경궁의 회갑연을 열었다. 을묘년 화성행행의 기록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통해 상세히 정리되었다. 최초의 목판본 의궤를 대량으로 인쇄하여 배포하였고, 부족한 채색화를 보완하는 병풍 형태의 기록화(<화성행행도>)도 따로 제작하였다. 본 연구는 병풍의 네 번째 화제인 <낙남헌양로연도>의 복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첫째, 조선시대 양로연의 시행에 대한 배경과 내용을 살펴보았고, 둘째, 1795년 시행된 양로연의 내용을 살펴보았으며, 셋째, <낙남헌양로연도>에 표현된 복식을 정리하였다. 이를 위해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양로연 관련문서를 검토하여 양로연 참여자의 명단 및 계급을 확인하고, 양로연 참여 인물들의 자리배치와 그들의 복식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 분석한 <화성행행도>는 선행연구에서 보고된 유물 중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본이 이 시기 제작본일 가능성이 가장 크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우학문화재단 소장본은 19세기 후모본으로 추정된다고 하여 삼성본을 기준으로 연구하였다. 또한 『원행정리의궤도』, ≪화성원행반차도≫ 등도 함께 비교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였다.
<낙남헌양로연도>에는 가장 위쪽에 낙남헌 건물이 그려져 있고 그 전각 안에 어좌와 노인 관원이 그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조와 관직자는 융복을 입었다 하니 모두 융복을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단 아래에는 줄을 지어 서 있는 관원들과 옷감 등을 나누어주고 있는 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중앙을 기준으로 홍철릭을 입은 인물은 왕의 명령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고 그 뒤로 비단 등을 나누어주는 집사자가 있으며 악공아래 상을 나누어 주는 인물은 화성부의 서리로 홍색 협수와 전복에 전대, 전립 차림이다. 그 아래에는 화성부 노인들이 마당을 꽉 채워 앉아있다. 융복을 입은 1명 외에는 대부분 단령, 도포 차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구장(鳩杖)에 황색 천을 매달고 있다. 그 뒤에 아세악수, 악사, 세악수로 구성된 악공들이 있으며 낙남헌의 담장 밖에는 초대받지 못한 노인들이 단령, 도포, 중치막 차림으로 앉아있다. 전각 안쪽에는 붉은 옷을 입은 군인들이 중앙을 바라보며 사열하고 있고 가장 바깥쪽에는 총기를 든 군인들이 사열하고 있다. 가장 아래쪽에는 관광인들이 서서 행사를 구경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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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을묘년(1795) 화성 원행 시 정조의 군융복식 고증

저자 : 김인숙 ( Kim In-suk ) , 이은주 ( Lee Eun-j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5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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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1795년 정조의 8일 간 화성 원행 동안 착용한 융복과 군복, 갑주의 제도와 형태, 소재와 색상, 문양을 고증함으로써 재현행사에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함에 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는 출궁과 환궁, 그리고 봉수당 진찬을 포함한 화성에서의 의례적인 행사에 융복 차림으로 참여하였다. 정조의 융복은 자립(紫笠)과 곤룡철릭[袞龍帖裏], 광다회(廣多繪), 수화자(水靴子)로 구성되는데, 연구자는 신하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무예도보통지』 「격구관복도설」의 융복 차림에 사용한 '과두(裹肚)'와 정조의 염습의 기록을 참고하여 금선용문단(金線龍紋緞) 요대(腰帶)를 추가할 것을 제안하였다. 주립에는 호수와 벌월지우를 장식하고 가늘고 긴 밀화· 금패 등의 패영을 한 쪽 귀 옆에 감아 고리를 만들어 고정시켰다. 철릭은 직경 28cm 정도의 금사오조룡보를 부착한 대홍운문단철릭을 입되, 받침옷으로 초록색 가문라를 착용하도록 하였으나 형태를 밝히지는 못했다.
둘째, 정조는 노량진과 화성 구간의 이동이나 그 외 화성 내에서 이동할 때, 또한 활쏘기 등의 행사에서 활동적인 군복을 착용하였다. 군복은 전립, 협수, 괘자, 전대, 요대, 수화자로 구성되는데, 전립은 죽전립이나 모전립 모두 가능하지만 모정이 뾰족한 원뿔형 죽전립을 제안하였다. 모정의 옥봉정자에는 청우(靑羽)와 공작우(孔雀羽), 붉은 상모(象毛)를 장식하였다. 전립의 앞면에는 1쌍의 승룡문을 새긴 옥 면판(面板)을 붙이고 양태 안쪽에는 S자 모양의 은영자(銀纓子) 고리에 굵은 밀화나 호박, 금패 사이에 산호를 끼운 짧은 패영을 달았다. 협수는 정조 염습의 기록에 근거하여 토색(土色) 대접문단 겉감에 남색 안감을 넣고 4~5치 길이의 홍수를 달았다. 협수위에는 금사오조룡보의 아청색 대접문단의 괘자(안감 진홍운문단)를 입되, 괘자 앞면의 흉배는 중심선이 갈라진 금사오조룡 흉배를 달도록 하였으며 금선용문단 요대 위에 남색 전대를 두르는 것으로 제안하였다.
셋째, 정조는 주조(晝操)와 야조(夜操)에 참여할 때 군복 위에 갑주를 착용하였다. 『(정조)국장도감의궤』의 명기(明器)를 참조하여 투구는 첨주(簷冑)로 제안하였고 갑옷은 황금 두정(頭釘)을 박은 보병용 갑옷과 마병용 갑옷 두 종류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상에서 고증한 내용을 토대로, 정조의 융복, 군복, 갑주의 앞면 착장도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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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기남(李箕南, 1533~1605) 묘와 이서용(李瑞龍, 1557~1619) 묘 출토복식을 통해 본 17세기 초 남자복식

저자 : 송미경 ( Song Mi Ky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5-8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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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라남도 장성군의 청안이씨 문중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이기남(李箕南, 중종 28년 1533~선조38년 1605) 부부와 그들의 2남인 이서용(李瑞龍, 명종 12년 1557~광해군 11년 1619)의 묘에서 복식이 수습되었다. 이 복식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었고,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하였다.
부자(父子)인 이기남과 이서용은 몰년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각 묘에서 수습된 복식의 종류와 형태는 차이가 크다. 속옷 상의인 한삼(汗衫)은 목판깃에 겨드랑이 삼각무가 있는 형태에서 칼깃의 무가 없고, 옆트임이 있는 소형화되기 시작하는 변화를 보인다. 남자바지는 합당고(合襠袴)와 개당고(開襠袴)에서 사폭바지로 변화하였다. 이기남의 묘에서 액주름· 철릭· 답호· 단령이 수습되었고, 이서용 묘에서는 중치막과 단령이 수습되었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 답호와 액주름은 점차 사라지고, 중치막이 등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기남 묘에서 수습된 단령과 답호는 전단후장형이나 이서용 묘에서 수습된 단령은 앞뒤길이가 같다. 이기남 묘와 이서용 묘에서 수습된 포류를 비교하면 깃너비가 좁아지고, 옷길이는 길이지고, 품은 길어지는 변화가 있다. 옷감은 이기남 묘에서는 견직물이 50% 이상 사용되었지만, 이서용 묘에서는 면직물이 60% 사용되어, 임진란 이후 변화를 알 수 있다. 이들 출토복식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의 남자복식 변화를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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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 전통복식 문화에 기반한 크라우드 펀딩 사례 연구

저자 : 한재휘 ( Jaehwi Han ) , 이은진 ( Eunjin Lee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간행물 : 한국복식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1-10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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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현재 각광받고 있는 국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국 전통복식 문화에 기반한 크라우드 펀딩의 변천 과정과 현황, 특징을 고찰하는 것이다. 연구 방법은 문헌연구와 사례연구로, 먼저 크라우드 펀딩을 이루는 구성요소, 플랫폼의 특징 등을 조사하였다. 이후 와디즈와 텀블벅에서 전통복식 문화 관련 키워드 검색을 통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전통복식 문화가 활용된 크라우드 펀딩 사례 580건을 분석하였다.
2014년에서 2016년에는 전시· 행사· 캠페인에서 한국 전통복식 문화가 중점적으로 활용되었다. 2016년에서 2017년 경에는 한복을 패션으로 입기 시작하며 저고리, 허리치마, 철릭원피스 등 여자 한복이 펀딩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전통 매듭이나 소재를 활용한 패션 잡화, 홈· 리빙 콘텐츠 등이 나타났다. 2018년 경부터는 사회문화적으로 한복이 주목을 받았고, 이러한 영향으로 크라우드 펀딩에서 활용되는 한국 전통복식 문화도 다양해졌다. 철릭, 치마저고리 외에 두루마기, 창의 등의 복식이 다양해졌고, 누구나 편안하게 입는 남녀 공용 한복이 등장하면서 여자 한복 중심에서 점차 젠더리스화 되었다. 2019년 경부터는 전통복식 문화를 기반으로 한 펀딩이 급속도로 증가하며 새로운 메이커들이 유입되었다. 이때부터 서양복에 무늬나 장식 등 전통복식의 일부만을 결합한 복식도 트렌디하고 힙한 전통복식으로 여겨졌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 19 상황으로 시장이 급변하며, 웹툰· 일러스트 리소스 분야에서 전통복식이 콘텐츠로 다루어졌고,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 '한복 홈웨어', '한복 라운지 웨어'가 등장했다. 이후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과 편안한 전통복식을 표현함에 있어 한복의 시대적 범위가 삼국시대까지 확장되었다.
현재 크라우드 펀딩은 가장 주목받는 시장으로 본 연구는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한국전통복식 문화를 기반으로 한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기초자료를 제공하였음에 의의가 있고, 나아가 국내 크라우드 펀딩과 전통복식 시장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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