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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역사신학 논총> 해방정국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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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와 기독교

Large Anti-trusteeship Meeting and Christianity under the political situation of Liberation

이영식 ( Young Sik Lee )
  •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 : 역사신학 논총 3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2월
  • : 176-218(43pages)
역사신학 논총

DOI

10.26427/JHT.39.5


목차

Ⅰ. 시작하는 말
Ⅱ. 신탁통치론의 대두와 국내 반응
Ⅲ.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의 태동과 전개
Ⅳ.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와 정국의 동향
Ⅴ.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와 기독교
Ⅵ. 맺는 말: 평가 및 제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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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환희 그 이면에는 한반도의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더구나 신탁통치안이 발표되면서 독립을 염원했던 한민족은 낙심과 혼란이 가중되었다. 조국이 직면한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국민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의 의사를 결집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가장래에 있어서 참으로 중대한 일이었다. 여기에 “민족적 총의”를 이끌었던 전국적운동이 바로 국민대회였으며,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이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라고 사료된다.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는 서울운동장에서 발화하여 지방의 도시 및 읍·면까지 확산되었다. 수만에서 수천의 군중이 모여 “신탁통치절대반대”, “완전자주독립” 등을 외쳤다. 또한 강연회와 언론을 통해서 반탁운동을 고취했다. 여기에 각 정당과 수많은 단체들이 합류했으며, 김구, 이승만 등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청년대학부 학생들이 일어났으며, 관공서 직원들이 사직을 하고, 기생들도 파업을 하며 이 대열에 동참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에 참여했다. 반탁국민대회는 대한민국 국가건설 과정에 의견과 힘을 결집하고 민족의 방향을 제시했던 국민소통의 장이었으며, 정국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기독교가 개인적이든 단체로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해방정국에서, 기독교는 나름대로 민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했다고 사료된다. 조만식, 김구, 이승만, 오화영 등 반탁국민대회 및 운동 이끌었던 다수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을 주축으로 신탁통치반대총동원위원회, 독립촉성국민회, 민족통일총본부 등 단체를 구성하여 지도력을 발휘했다. 또한 여자 국민당,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등 기독교인 임원으로 구성된 여성단체들과 다양한 기독교 연합회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제 우리는 지난날의 역사를 성찰하면서도, 그 격동과 혼란의 시대에 살면서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던 선진들을,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의 관점에서 과소평가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 시대적 상황을 인식하면서, 선진들이 기도와 피와 눈물로 기초를 놓고 세운 소중한 가치들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Behind the joy of liberation in 1945, the history of division in Korean peninsula was beginning. Moreover, the announcement of the trusteeship added to the disappointment and confusion of the Korean people who wished for independence. It was very important to recognize the international circumstance and the situation of the country, to present directions to the nation, and to unite the public’s opinions. I think in the process, the national movements that led “national consensus” was the national meetings, and one of the most notable was ‘The Large anti-trusteeship Meetings.’ The anti-trusteeship national convention was ignited at the Seoul Stadium and spread to local cities, towns and villages. Thousands to tens of thousands of people gathered to shout “absolute opposition to the trusteeship” and “complete Independence” Various political parties and numerous groups joined, leaders supported by the public such as Gu Kim and Syngman Rhee took the lead, youth college students arose, government officials resigned, and gisaengs also joined the ranks by going on strike. The national rallies were places for public communication, where opinions and power were gathered on the construc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gave the direction of the nation to the people.
In the process of the Anti-Trusteeship National Congress, Christianity played a leading role, whether individually or as a group. In the liberation regime, Christianity is considered to have fulfilled its own responsibility and mission to the nation and society. Many of the leaders who led the anti-trusteeship meetings and movement were Christians, such as Mansik Cho, Koo Kim, Syngman Rhee etc. They exercised their leadership by individual qualification or by organizing political organizations such as the National Mobilization Committee against trusteeship, National Society for the Rapid Realization of Korean Independence. In addition, Christian communities and Christian women leaders participated the movement actively. Today we have to not only reflect on the history of the past, but also preserve and develop the precious values established by advanced people’s prayer, blood, and tears.

UCI(KEPA)

I410-ECN-0102-2022-200-000940509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229-7593
  • : 2671-5783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9-2021
  • :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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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권0호(2021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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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언약사상에 나타난 쌍무성: 중세 후기의 언약개념과 종교개혁자들의 언약사상 비교

저자 : 김효남 ( Kim Hyo-nam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5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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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신학이 개혁파 신학에서 중요한 신학적 개념 혹은 교리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언약신학을 보편교회의 교리적 궤적 속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16세기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의 사상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교리로 보는 경향이 있어 왔다. 더욱이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개혁자들의 언약사상의 뿌리를 중세, 특히 중세 후기의 언약사상에서 찾는 일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개혁자들의 언약사상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이어지는 보편교회의 교리적 궤적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심지어 중세 후기에 있었던 언약사상과 일정한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두 신학적 그룹은 서로 상반되는 언약론을 전개했다. 신어거스틴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에 따라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에 유명론자들은 중세에 자취를 감췄던 구원론적인 언약사상을 부활시켰으나 그 강조점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내적인 능력과 공로에 둠으로써 서로 대조되는 흐름을 형성했다.
결국 유명론자들은 인간에게 구원 공로를 일정부분 부여했고, 신어거스틴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인간의 역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종교개혁자들은 신어거스틴주의자들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강조하는 부분을 수용하고 유명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약을 구원론적으로 보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동시에 신어거스틴주의자들에게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언약 안에서의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유명론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여하는 언약론을 전개했다.


There seems to be few scholars who challenge the argument that covenant theology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doctrines in Reformed theology. This led to the tendency that covenant theology has been considered to be an almost brand new doctrine newly found in the theology of the sixteenth century Reformed Reformers rather than being regarded as a doctrine in the theological trajectory of the universal church since the apostolic period. What is more, some scholars, who focused on discontinuity between the medieval and the Reformation churches, have barely paid attention to the middle ages, particularly the late medieval period, in search of the root of the covenant concept of the Reformers.
The covenant idea of the Reformers, however, was included in the theological trajectory of the universal church from the early church, and have both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with the late medieval covenant ideas. In particular, there were two different theological lines having quite contradicting covenant concepts. Neo-Augustinian theologians put their emphasis on God's action that grants the grace of salvation to the elect-according to His promise. In contrast, many Nominalists revived a soteriological covenant concept which had disappeared in the church, and yet their focus was not on God's grace, but on the human inherent ability and the merit achieved by sinners.
Consequently, the Nominalists partly acknowledged human merit for salvation, whereas the Neo-Augustinians succeeded in revealing divine grace though human responsibility was not properly explained. The Reformers, who had covenant concept in their theology, accommodated the Neo-Augustinian emphasis on the divine promise and grace and understood the divine covenant in a soteriological way as Nominalists did. At the same time, they resolved the problem of the absence of both human responsibility and role in salvation, which was often regarded as the weak points of the Neo-Augustinian idea of the covenant, in a different way from the Nominalist understanding within the boundary of not harming divine grace and sovereignty in the covenant relationship with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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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고백과 헌신: 제2스위스 신앙고백(1566)의 교회론 연구

저자 : 김요섭 ( Yosep Kim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1-91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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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1566년 스위스 개혁파 교회가 제정하고 공인한 제2스위스 신앙고백의 교회론 관련 진술들을 이 신앙고백과 연관성이 있는 여러 개혁파 신앙고백들과 비교함으로써 각 지역의 서로 다른 역사적 상황 가운데에서도 개혁교회들이 동일하게 강조한 교회론적 강조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먼저 제2스위스 신앙고백 작성에 영향을 준 주된 역사적 배경을 이 신앙고백의 제정 목적과 관련해 고찰한 후, 개혁파 신앙고백으로서의 구조적 특징들을 검토한 후 이 신앙고백의 교회론 관련 조항들을 다른 개혁파 신앙고백들의 해당 내용과 비교하며 분석한다. 신앙고백의 17장은 교회를 정의하고 교회의 다양한 구분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유일한 주권이라는 원리 위에서 종교개혁의 대의를 변호하고 개혁교회의 연대를 추구한다. 또 참된 교회의 표지와 관련해서도 같은 교회론적 원리 위에서 잘못된 교회론에 맞서 개혁교회가 함께 추구해야 할 방향을 천명한다. 신앙고백의 18장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교회 제도의 기초라고 강조하면서 특히 목사직과 관련한 교회 제도 개혁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위의 비교 분석을 통해 제2스위스 신앙고백들 비롯한 16세기 여러 나라의 개혁교회들은 공통적으로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확립하는 것을 개혁의 목적으로 삼았고, 그 위에서 참된 교회들 사이의 일치와 연대를 추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manifest the key ideas of the church among sixteenth-century reformed churched by comparing the ecclesiological statements of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with the other reformed confessions: the First Helvetic Confession(1537), Genevan Confession(1536), French Confession(1559), Scottish Confession(1560), and Belgic Confession(1561). Comparative examination of the ecclesiological statements in those confessions shows the common and consistent understanding of the Church and its reformation, even though each reformed church in the sixteenth-century Europe faced the diverse political challenges in the specific situations.
In the first place, this study investigate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concerning its aims, and then reviews its structural features as a reformed confession. The seventeenth chapter of this confession, which discusses the definition and the classification of the Church, attempts to defend the cause of reformation and pursue the solidarity of the reformed churches. The theological principle of Solus Christus plays a pivotal role in the ecclesiological statements of this confession. In the same chapter,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deals with the marks of the true church for same purses on the same theological ground of Solus Christus. In the eighteenth chapter, the confession states the church government and its reformation. The sovereign authority of Christ is emphasized not only as the foundation of the church government, but also as the standard of reforming the church. Accordingly, the same chapter of the confession suggests the practical measures for church reformation especially concerning the office of pastors.
As the ecclesiological statements of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clarify, sixteenth-century reformed churches shared the common theological principle of Solus Christus for their understanding of the Church. Furthermore, this ecclesiological principle helped them to form the solidarity for reforming their churches against the criticism and threat of the Roman Catholic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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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혁주의신학 관점에서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天主實義』 분석

저자 : 안수강 ( Ahn Su-kang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2-136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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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마테오 리치(利馬竇)의 역작 『天主實義』(T'ien-chu Shih-i)를 개혁주의신학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 저작은 조선 중후기 천주교의 사상을 분석해볼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초기 문헌들 중의 하나로 꼽힌다. 마테오 리치의 『天主實義』에 적용된 논증 양상은 보유론(補儒論)에 바탕을 두어 방법론적인 면에서 세 방면으로 전개되어 있으며 중국 유학자(서광계)의 다양한 질문 내용들, 서광계의 질문에 서양 학자(마테오 리치)가 논리적으로 답변한 내용들과 담론들, 그리고 질의응답한 핵심들을 간추려 정리한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 이 연구에서는 마테오 리치가 『天主實義』에 논증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문헌의 각 편(篇/章)에 진술된 요지들과 신학적 의미들, 그의 보유론 관점 등에 주안점을 두어 고찰했다.
마테오 리치의 『天主實義』에 편성되어 있는 여덟 가지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천주가 만유를 창조하여 주재하시며 안량(安養)하심을 논함; 세상 사람들이 천주에 대해 곡해하고 있는 점을 설명함; 인간의 영혼불멸을 논하고 영혼이 동물의 각혼(覺魂)과 다름을 설명함; 귀신과 사람의 혼에 대한 이론점(異論點)을 설명하고 만유를 한 몸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논함; 윤회(輪回)의 여섯 방도와 살생을 금하는 오류를 논박하며 재계(齋戒)와 소식(素食)을 올리는 올바른 뜻을 설명함; 의지가 소멸되지 않음을 설명하고 사후 반드시 천당과 지옥의 상벌로 세인들이 행한 선악에 응보(應報)가 있음을 밝힘; 인간본성의 본래적인 선을 논하고 천주신자의 바른 배움을 서술함; 서양풍속이 숭상하는 바를 일괄하고 성직자의 독신생활이 갖는 의미를 논하며 천주께서 강생(降生)하심을 밝힘.


This research aims to analyze Matteo Ricci's masterpiece T'ien-chu Shih-i from the perspective of the Reformed Theology. T'ien-chu Shih-i is one of the most precious literature sources for the analysis of the early doctrinal thought of Catholicism in the middle and late Joseon. The methodology of arguments in Matteo Ricci's T'ien-chu Shih-i was found to consist of three parts, founded on Fu-ru-lun such as various questions of the Chinese scholar(Xu Guangqi), logical answers and discourses of the Western scholar(Matteo Ricci), and core summary of questions and answers. On the basis of Matteo Ricci's arguments, I focused on the major themes in eight chapters and theological meanings, his views of Fu-ru-lun, and so on.
The eight key themes of Matteo Ricci's T'ien-chu Shih-i could be summarized as follows: a discussion on the creation of heaven, and on the way He exercises authority and sustains them; an explanation of mistaken views concerning the Lord of Heaven current among men; the human soul is not extinguished and is greatly different from the souls of birds and beasts; a discussion on spiritual beings and the soul of man and an explanation as to why the phenomena of the world cannot be described as forming an organic unity; refutation of false teachings concerning reincarnation in the Six Directions and the taking of life, and an explanation of the true meaning of fasting; an explanation as to why man cannot be free of motives, and discussion of why the good and evil done on earth by man must be rewarded or punished in Heaven and Hell; a discussion on the Confucian teaching that human nature is fundamentally good, and an exposition of the orthodox Way of learning of those who adhere to the religion of the Lord of Heaven; a summary of Western customs, a discussion on the meaning and history of celibacy among the clergy, and an explanation of the reason why the Lord of Heaven was born in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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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혁주의 유산으로서의 칼빈주의 개념 고찰: 벤자민 B. 워필드의 칼빈주의 이해를 중심으로

저자 : 류길선 ( Ryu Gil Su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7-17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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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필드에게 칼빈주의는 넓은 의미에서 세 가지 용례로 사용될 수 있다. 먼저, 칼빈주의는 칼빈이 직접 가르친 내용들, 즉 다양한 신학적, 교회론적, 정치적 문제들에 관한 관점들을 가리킨다. 둘째, 칼빈주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칼빈과 아우구스티누스주의로부터 물려받아 발전시킨 교리 체계이며, 따라서 루터파와 구분된다. 칼빈주의의 세 번째 용법은 가장 넓은 방법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에서 칼빈주의는 신학, 윤리학, 철학,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교육학적인 관점들에 연관된다.
워필드는 두 번째 용법, 즉 개혁파 교회의 교리 체계로서의 칼빈주의를 선호하는 한편, 첫 번째와 세 번째 용법들을 간과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이는 워필드가 취하는 칼빈주의의 용례들이 한결 같이 모두 개혁파 내에서의 칼빈주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유산으로서의 칼빈주의에 대한 워필드의 관점은 네 가지 주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첫째, 그가 언급한 교리 체계는 예정론과 같은 특정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의 신학적 사상의 영향 가운데 경건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발전한 교리 체계, 더 쉽게 말하면 경건의 체계를 의미한다. 둘째, 그동안 잘못 이해되어 왔던 칼빈주의에 대한 오해들, 예를 들어 칼빈주의를 메마르고 구세대적이라는 비판들을 일축한다. 셋째, 칼빈주의가 협소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개신교 교파들과 연관성을 가지는 포괄적인 개념임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워필드는 보다 직접적으로 칼빈의 사상에 한 걸음 밀착하여 칼빈의 신학 가운데 나타난 기독교 유신론의 형식적 원리를 제공하고, 신학과 실천의 관계에 있어서 개혁주의 유산이 남긴 탁월성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현대의 만연한 무신론과 기독교 윤리 문제에 대한 올바른 대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Warfield believes that Calvinism could be used in the three usages. First, it means Calvin's own theological position, indicating various theological, ecclesial, political issues. The second option is the system of doctrine taught by Calvin and the Augustinianism associated with the whole body of the Reformers, in distinction from the Lutheran Churches. The third use of the term Calvinism designates the most broad way in which Calvinism is involved to Christian Worldview in terms of the entire body of conceptions including theological, ethical, philosophical, social, political, and educational perspectives.
While Warfield prefers the second usage of the term, he does not neglect the first and third ones. Warfield chooses the second usage of calvinism, and provides the focal point of the calvinistic view, by exploring the life and works of Calvin, considering the Christian theism, and differentiating it from Lutheranism and Arminianism.
Warfield's perspective of calvinism as the Reformed heritage implies four significant points of view. First, calvinism as the system of doctrine taught by the Reformed churches does not indicates the certain doctrine such as predestination, but rather signifies religion which encourages the Christian life in relation to God. Second, it terminates a misconception that calvinism is the dry and outmoded philosophy. Third, calvinsim for Worfield is not narrow but includes comprehensive perspective which shows a close relationship between other Protestant groups. Finally, he provides a fundamental framework the Christian theism in Calvin's theology, helping today's Reformed theologions who need an alternative to the modern context which is pervaded with athe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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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해방정국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와 기독교

저자 : 이영식 ( Young Sik Le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6-218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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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환희 그 이면에는 한반도의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더구나 신탁통치안이 발표되면서 독립을 염원했던 한민족은 낙심과 혼란이 가중되었다. 조국이 직면한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국민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의 의사를 결집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가장래에 있어서 참으로 중대한 일이었다. 여기에 “민족적 총의”를 이끌었던 전국적운동이 바로 국민대회였으며,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이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라고 사료된다.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는 서울운동장에서 발화하여 지방의 도시 및 읍·면까지 확산되었다. 수만에서 수천의 군중이 모여 “신탁통치절대반대”, “완전자주독립” 등을 외쳤다. 또한 강연회와 언론을 통해서 반탁운동을 고취했다. 여기에 각 정당과 수많은 단체들이 합류했으며, 김구, 이승만 등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청년대학부 학생들이 일어났으며, 관공서 직원들이 사직을 하고, 기생들도 파업을 하며 이 대열에 동참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에 참여했다. 반탁국민대회는 대한민국 국가건설 과정에 의견과 힘을 결집하고 민족의 방향을 제시했던 국민소통의 장이었으며, 정국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기독교가 개인적이든 단체로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해방정국에서, 기독교는 나름대로 민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했다고 사료된다. 조만식, 김구, 이승만, 오화영 등 반탁국민대회 및 운동 이끌었던 다수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을 주축으로 신탁통치반대총동원위원회, 독립촉성국민회, 민족통일총본부 등 단체를 구성하여 지도력을 발휘했다. 또한 여자 국민당,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등 기독교인 임원으로 구성된 여성단체들과 다양한 기독교 연합회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제 우리는 지난날의 역사를 성찰하면서도, 그 격동과 혼란의 시대에 살면서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던 선진들을,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의 관점에서 과소평가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 시대적 상황을 인식하면서, 선진들이 기도와 피와 눈물로 기초를 놓고 세운 소중한 가치들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Behind the joy of liberation in 1945, the history of division in Korean peninsula was beginning. Moreover, the announcement of the trusteeship added to the disappointment and confusion of the Korean people who wished for independence. It was very important to recognize the international circumstance and the situation of the country, to present directions to the nation, and to unite the public's opinions. I think in the process, the national movements that led “national consensus” was the national meetings, and one of the most notable was 'The Large anti-trusteeship Meetings.' The anti-trusteeship national convention was ignited at the Seoul Stadium and spread to local cities, towns and villages. Thousands to tens of thousands of people gathered to shout “absolute opposition to the trusteeship” and “complete Independence” Various political parties and numerous groups joined, leaders supported by the public such as Gu Kim and Syngman Rhee took the lead, youth college students arose, government officials resigned, and gisaengs also joined the ranks by going on strike. The national rallies were places for public communication, where opinions and power were gathered on the construc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gave the direction of the nation to the people.
In the process of the Anti-Trusteeship National Congress, Christianity played a leading role, whether individually or as a group. In the liberation regime, Christianity is considered to have fulfilled its own responsibility and mission to the nation and society. Many of the leaders who led the anti-trusteeship meetings and movement were Christians, such as Mansik Cho, Koo Kim, Syngman Rhee etc. They exercised their leadership by individual qualification or by organizing political organizations such as the National Mobilization Committee against trusteeship, National Society for the Rapid Realization of Korean Independence. In addition, Christian communities and Christian women leaders participated the movement actively. Today we have to not only reflect on the history of the past, but also preserve and develop the precious values established by advanced people's prayer, blood, and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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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국 교회의 아프리카 선교사역과 한국문화의 국제화

저자 : 이은선 ( Lee Eun Seo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6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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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선교사 파송은 1969년에 시작되어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선교사 파송이 이루어졌고, 현재는 2,0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다. 아프리카 선교사들 가운데 태권도, 새마을운동, 한글 등의 한국문화를 매개로 활용하며 선교사역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선교사들이 한국문화를 아프리카에서 활용하는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그들과의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용을 통해 여러 가지 한국문화가 아프리카에서 뿌리는 내리는 국제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한 한국문화의 국제화의 가장 중요한 분야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태권도이다. 아프리카에서 태권도는 이슬람을 믿는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통로이고, 그들에게 올바른 정신 자세를 심어주고, 더 나아가 태권도 사범이란 새로운 직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운동에 필요한 지도자들을 육성하고, 마을 사람들의 협력을 통한 자립의 길을 찾아가며 소득을 증대시켜 복음전파의 길이 열리고 있다. 한글 교육 사업은 한류의 확산에 따라 아프리카인들이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면서 교육 기회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국립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한국인들이 세운 탄자니아연합대학과 쿠미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에서 한글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한국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태권도, 새마을운동, 한글 보급을 통해 복음전파의 접촉점을 만들면서 한국문화의 국제화와 한국의 국위선양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금까지의 다양한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앞으로의 효율적인 선교방안으로 활용하면서 한국문화의 국제화에도 기여하는 역할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Missionary dispatch to Africa began in 1969 and began in earnest in the 1980s. Currently, more than 2,000 missionaries are working. An increasing number of African missionaries are doing missionary work using Korean culture such as Taekwondo, Saemaul Undong, and Hangeul as a medium. One of the important purposes of missionaries using Korean culture in Africa is to establish a point of contact with them. And through such utilization, the path of internationalization was opened, where various Korean cultures took root in Africa.
The most important field of such internationalization of Korean culture is Taekwondo, which is popular all over the world. In Africa, Taekwondo is a natural way to contact local Muslims, instilling in them the right mental attitude, and furthermore, providing a new job opportunity as a Taekwondo instructor. Saemaul Undong has been well received in Tanzania, Uganda, Rwanda and other countries. The Saemaul Undong is opening the way for the spread of the gospel by nurturing leaders necessary for the movement, finding a way to self-reliance through the cooperation of villagers, and increasing income. In the Korean language education project, educational opportunities are spreading as Africans have a desire to learn Hangeul as the Korean Wave spreads. In Zimbabwe, Korean language is taught at national university, and Korean language education is being implemented at several universities including United African University of Tanzania and Kumi University established by Koreans.
In the process of preaching the gospel in Africa, Korean missionaries are contributing to the internationalization of Korean culture and the promotion of Korea's national prestige by creating a point of contact through Taekwondo, Saemaul Undong, and the spread of Hangeul. Therefore, the role of contributing to the internationalization of Korean culture should be prepared by comprehensively studying these various cases so far and utilizing them as an effective missionary plan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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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언약사상에 나타난 쌍무성: 중세 후기의 언약개념과 종교개혁자들의 언약사상 비교

저자 : 김효남 ( Kim Hyo-nam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5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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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신학이 개혁파 신학에서 중요한 신학적 개념 혹은 교리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언약신학을 보편교회의 교리적 궤적 속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16세기 개혁파 종교개혁자들의 사상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교리로 보는 경향이 있어 왔다. 더욱이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개혁자들의 언약사상의 뿌리를 중세, 특히 중세 후기의 언약사상에서 찾는 일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개혁자들의 언약사상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이어지는 보편교회의 교리적 궤적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심지어 중세 후기에 있었던 언약사상과 일정한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두 신학적 그룹은 서로 상반되는 언약론을 전개했다. 신어거스틴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에 따라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에 유명론자들은 중세에 자취를 감췄던 구원론적인 언약사상을 부활시켰으나 그 강조점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내적인 능력과 공로에 둠으로써 서로 대조되는 흐름을 형성했다.
결국 유명론자들은 인간에게 구원 공로를 일정부분 부여했고, 신어거스틴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인간의 역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종교개혁자들은 신어거스틴주의자들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강조하는 부분을 수용하고 유명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약을 구원론적으로 보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동시에 신어거스틴주의자들에게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언약 안에서의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유명론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여하는 언약론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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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고백과 헌신: 제2스위스 신앙고백(1566)의 교회론 연구

저자 : 김요섭 ( Yosep Kim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1-91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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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1566년 스위스 개혁파 교회가 제정하고 공인한 제2스위스 신앙고백의 교회론 관련 진술들을 이 신앙고백과 연관성이 있는 여러 개혁파 신앙고백들과 비교함으로써 각 지역의 서로 다른 역사적 상황 가운데에서도 개혁교회들이 동일하게 강조한 교회론적 강조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먼저 제2스위스 신앙고백 작성에 영향을 준 주된 역사적 배경을 이 신앙고백의 제정 목적과 관련해 고찰한 후, 개혁파 신앙고백으로서의 구조적 특징들을 검토한 후 이 신앙고백의 교회론 관련 조항들을 다른 개혁파 신앙고백들의 해당 내용과 비교하며 분석한다. 신앙고백의 17장은 교회를 정의하고 교회의 다양한 구분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유일한 주권이라는 원리 위에서 종교개혁의 대의를 변호하고 개혁교회의 연대를 추구한다. 또 참된 교회의 표지와 관련해서도 같은 교회론적 원리 위에서 잘못된 교회론에 맞서 개혁교회가 함께 추구해야 할 방향을 천명한다. 신앙고백의 18장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교회 제도의 기초라고 강조하면서 특히 목사직과 관련한 교회 제도 개혁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위의 비교 분석을 통해 제2스위스 신앙고백들 비롯한 16세기 여러 나라의 개혁교회들은 공통적으로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확립하는 것을 개혁의 목적으로 삼았고, 그 위에서 참된 교회들 사이의 일치와 연대를 추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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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혁주의신학 관점에서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天主實義』 분석

저자 : 안수강 ( Ahn Su-kang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2-136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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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마테오 리치(利馬竇)의 역작 『天主實義』(T'ien-chu Shih-i)를 개혁주의신학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 저작은 조선 중후기 천주교의 사상을 분석해볼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초기 문헌들 중의 하나로 꼽힌다. 마테오 리치의 『天主實義』에 적용된 논증 양상은 보유론(補儒論)에 바탕을 두어 방법론적인 면에서 세 방면으로 전개되어 있으며 중국 유학자(서광계)의 다양한 질문 내용들, 서광계의 질문에 서양 학자(마테오 리치)가 논리적으로 답변한 내용들과 담론들, 그리고 질의응답한 핵심들을 간추려 정리한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 이 연구에서는 마테오 리치가 『天主實義』에 논증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문헌의 각 편(篇/章)에 진술된 요지들과 신학적 의미들, 그의 보유론 관점 등에 주안점을 두어 고찰했다.
마테오 리치의 『天主實義』에 편성되어 있는 여덟 가지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천주가 만유를 창조하여 주재하시며 안량(安養)하심을 논함; 세상 사람들이 천주에 대해 곡해하고 있는 점을 설명함; 인간의 영혼불멸을 논하고 영혼이 동물의 각혼(覺魂)과 다름을 설명함; 귀신과 사람의 혼에 대한 이론점(異論點)을 설명하고 만유를 한 몸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논함; 윤회(輪回)의 여섯 방도와 살생을 금하는 오류를 논박하며 재계(齋戒)와 소식(素食)을 올리는 올바른 뜻을 설명함; 의지가 소멸되지 않음을 설명하고 사후 반드시 천당과 지옥의 상벌로 세인들이 행한 선악에 응보(應報)가 있음을 밝힘; 인간본성의 본래적인 선을 논하고 천주신자의 바른 배움을 서술함; 서양풍속이 숭상하는 바를 일괄하고 성직자의 독신생활이 갖는 의미를 논하며 천주께서 강생(降生)하심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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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혁주의 유산으로서의 칼빈주의 개념 고찰: 벤자민 B. 워필드의 칼빈주의 이해를 중심으로

저자 : 류길선 ( Ryu Gil Su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7-17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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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필드에게 칼빈주의는 넓은 의미에서 세 가지 용례로 사용될 수 있다. 먼저, 칼빈주의는 칼빈이 직접 가르친 내용들, 즉 다양한 신학적, 교회론적, 정치적 문제들에 관한 관점들을 가리킨다. 둘째, 칼빈주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칼빈과 아우구스티누스주의로부터 물려받아 발전시킨 교리 체계이며, 따라서 루터파와 구분된다. 칼빈주의의 세 번째 용법은 가장 넓은 방법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에서 칼빈주의는 신학, 윤리학, 철학,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교육학적인 관점들에 연관된다.
워필드는 두 번째 용법, 즉 개혁파 교회의 교리 체계로서의 칼빈주의를 선호하는 한편, 첫 번째와 세 번째 용법들을 간과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이는 워필드가 취하는 칼빈주의의 용례들이 한결 같이 모두 개혁파 내에서의 칼빈주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유산으로서의 칼빈주의에 대한 워필드의 관점은 네 가지 주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첫째, 그가 언급한 교리 체계는 예정론과 같은 특정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의 신학적 사상의 영향 가운데 경건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발전한 교리 체계, 더 쉽게 말하면 경건의 체계를 의미한다. 둘째, 그동안 잘못 이해되어 왔던 칼빈주의에 대한 오해들, 예를 들어 칼빈주의를 메마르고 구세대적이라는 비판들을 일축한다. 셋째, 칼빈주의가 협소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개신교 교파들과 연관성을 가지는 포괄적인 개념임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워필드는 보다 직접적으로 칼빈의 사상에 한 걸음 밀착하여 칼빈의 신학 가운데 나타난 기독교 유신론의 형식적 원리를 제공하고, 신학과 실천의 관계에 있어서 개혁주의 유산이 남긴 탁월성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현대의 만연한 무신론과 기독교 윤리 문제에 대한 올바른 대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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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해방정국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와 기독교

저자 : 이영식 ( Young Sik Le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6-218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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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환희 그 이면에는 한반도의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더구나 신탁통치안이 발표되면서 독립을 염원했던 한민족은 낙심과 혼란이 가중되었다. 조국이 직면한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국민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의 의사를 결집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가장래에 있어서 참으로 중대한 일이었다. 여기에 “민족적 총의”를 이끌었던 전국적운동이 바로 국민대회였으며,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이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라고 사료된다.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는 서울운동장에서 발화하여 지방의 도시 및 읍·면까지 확산되었다. 수만에서 수천의 군중이 모여 “신탁통치절대반대”, “완전자주독립” 등을 외쳤다. 또한 강연회와 언론을 통해서 반탁운동을 고취했다. 여기에 각 정당과 수많은 단체들이 합류했으며, 김구, 이승만 등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청년대학부 학생들이 일어났으며, 관공서 직원들이 사직을 하고, 기생들도 파업을 하며 이 대열에 동참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에 참여했다. 반탁국민대회는 대한민국 국가건설 과정에 의견과 힘을 결집하고 민족의 방향을 제시했던 국민소통의 장이었으며, 정국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신탁통치반대국민대회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기독교가 개인적이든 단체로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해방정국에서, 기독교는 나름대로 민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했다고 사료된다. 조만식, 김구, 이승만, 오화영 등 반탁국민대회 및 운동 이끌었던 다수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을 주축으로 신탁통치반대총동원위원회, 독립촉성국민회, 민족통일총본부 등 단체를 구성하여 지도력을 발휘했다. 또한 여자 국민당,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등 기독교인 임원으로 구성된 여성단체들과 다양한 기독교 연합회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제 우리는 지난날의 역사를 성찰하면서도, 그 격동과 혼란의 시대에 살면서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던 선진들을,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의 관점에서 과소평가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 시대적 상황을 인식하면서, 선진들이 기도와 피와 눈물로 기초를 놓고 세운 소중한 가치들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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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국 교회의 아프리카 선교사역과 한국문화의 국제화

저자 : 이은선 ( Lee Eun Seo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간행물 : 역사신학 논총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6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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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선교사 파송은 1969년에 시작되어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선교사 파송이 이루어졌고, 현재는 2,0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다. 아프리카 선교사들 가운데 태권도, 새마을운동, 한글 등의 한국문화를 매개로 활용하며 선교사역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선교사들이 한국문화를 아프리카에서 활용하는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그들과의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용을 통해 여러 가지 한국문화가 아프리카에서 뿌리는 내리는 국제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한 한국문화의 국제화의 가장 중요한 분야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태권도이다. 아프리카에서 태권도는 이슬람을 믿는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통로이고, 그들에게 올바른 정신 자세를 심어주고, 더 나아가 태권도 사범이란 새로운 직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운동에 필요한 지도자들을 육성하고, 마을 사람들의 협력을 통한 자립의 길을 찾아가며 소득을 증대시켜 복음전파의 길이 열리고 있다. 한글 교육 사업은 한류의 확산에 따라 아프리카인들이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면서 교육 기회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국립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한국인들이 세운 탄자니아연합대학과 쿠미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에서 한글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한국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태권도, 새마을운동, 한글 보급을 통해 복음전파의 접촉점을 만들면서 한국문화의 국제화와 한국의 국위선양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금까지의 다양한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앞으로의 효율적인 선교방안으로 활용하면서 한국문화의 국제화에도 기여하는 역할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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