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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과 전망> 해태제과 여성들의 ‘8시간 노동제’ 실현 : 삶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체제에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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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제과 여성들의 ‘8시간 노동제’ 실현 : 삶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체제에 저항하다

Haitai Confectionery Women’s Eight Hour Day Movement : Resistance against the Reduction of Life into Labor

김보현 ( Kim Bo-hyeon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기억과 전망 4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2월
  • : 55-91(37pages)
기억과 전망

DOI

10.31008/MV.45.2


목차

1. 머리말
2. 자본주의 정신
3. 신체의 한계와 의미 없는 삶
4. 매개된 탄압
5. 승리와 투쟁의 의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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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79년 7월 - 1980년 2월 중에 해태제과 여성들이 실천한 ‘8시간 노동’ 투쟁의 조건과 내용, 관련 행위자들을 서술한다. 서술은 문헌자료 조사와 구술자료 수집을 통해 파악한 사실관계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특히 다음의 세 부분들에 무게를 둔다. ① ‘자본주의 정신’과 ‘시간’의 위상(투쟁의 발단 조건), ② 근로기준법(투쟁의 무기), ③ 남성 통치(억압의 질서). 서술은 그 투쟁의 의미와 함께 박정희 정부 시기 노동운동, 경제성장의 조건 및 성격에 관한 논의·성찰과 연결된다.
This study describes the conditions, details, and actors of eight-hour day movement waged by the women at the Haitai Confectionery from July 1979 to February 1980 based on the facts identified from existing literature and through oral data collection. In particular, this study emphasizes the following three aspects: ① the ‘spirit of capitalism’ and the status of ‘time’ (the conditions that gave rise to the movement), ② the Labor Standards Act (the main weapon wielded by the actors of the movement), ③ masculine governance(the order of oppression). In doing so, this study connects to the discussion and reflection on the meaning of the eight-hour day movement as well as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the labor movement and economic growth during the Park Chung-hee administration.

UCI(KEPA)

I410-ECN-0102-2022-300-000983570

간행물정보

  • : 사회과학분야  > 정치/외교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599-712X
  • : 2733-955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02-2021
  • :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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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권0호(2021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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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정희 시대 민족주의적 통치성과 대항 담론 및 저항 주체

저자 : 홍태영 ( Hong Taiyoung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54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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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민족주의는 통치 세력과 저항 세력 모두에게 유용한 정치적 동원 자원으로 존재해 왔다. 4·19와 5·16을 거치면서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민족주의는 근대화를 통한 '잘살기'와 부국강병이 목표였다는 점에서 여타의 자유주의 세력들도 동의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였다. 민족주의, 특히 경제적 민족주의는 남한 사회 다양한 세력들로부터 일정한 동의를 받을 수 있었고, 그러한 민족주의는 국민의 삶 전체를 규율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이른바 '민족주의적 통치성'의 형성이었다. 박정희의 민족주의에 대항해 형성된 저항 담론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경제적 민족주의를 통해 경제개발이 만들어낸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에 대한 추구의 시도(2절)이며, 다른 하나는 박정희의 민족주의 및 박정희가 추구한 '민족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대항 담론의 형성(3절)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항 담론이 민족주의적 통치성의 자장 속에 위치했지만, 서서히 박정희 시기 형성된 대항 담론은 이러한 대항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에 대한 탐구(4절)로 이어지면서 균열을 발생시킨다.


In South Korea, nationalism has consistently been a valuable political resource for both the government and its oppositions. After the April 19 Revolution and the May 16 Coup d'Etat, the nationalist ideology purported by the Park Chung Hee government aimed to realize a strong, prospering nation through modernization, which were goals shared by its liberalist oppositions. As such, this nationalist ideology, especially economic nationalism, was accepted by almost all groups of South Korean society to a certain degree, to eventually govern the people's everyday life - thereby establishing the so-called 'nationalist governmentality.' The counter-discourses formed in resistance to Park Chung Hee's nationalism could be understood largely in two levels. Firstly, there were the criticisms of the South Korean economy built through Park Chung Hee government's economic nationalism and attempts to pursue alternative approaches (Section II). Secondly, there were the criticisms of Park Chung Hee's nationalism and what he understood as national, against which there formed resistance discourses (Section III). Although these resistance discourses were located under the larger umbrella of nationalist governmentality, they began to explore new actors of resistance to create clevages of governmentality (Section IV) during Park Chung Hee's rule. The formation of new actors, the study of new social order, and socio-political movements result in the collapse of Park's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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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해태제과 여성들의 '8시간 노동제' 실현 : 삶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체제에 저항하다

저자 : 김보현 ( Kim Bo-hyeon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5-9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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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79년 7월 - 1980년 2월 중에 해태제과 여성들이 실천한 '8시간 노동' 투쟁의 조건과 내용, 관련 행위자들을 서술한다. 서술은 문헌자료 조사와 구술자료 수집을 통해 파악한 사실관계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특히 다음의 세 부분들에 무게를 둔다. ① '자본주의 정신'과 '시간'의 위상(투쟁의 발단 조건), ② 근로기준법(투쟁의 무기), ③ 남성 통치(억압의 질서). 서술은 그 투쟁의 의미와 함께 박정희 정부 시기 노동운동, 경제성장의 조건 및 성격에 관한 논의·성찰과 연결된다.


This study describes the conditions, details, and actors of eight-hour day movement waged by the women at the Haitai Confectionery from July 1979 to February 1980 based on the facts identified from existing literature and through oral data collection. In particular, this study emphasizes the following three aspects: ① the 'spirit of capitalism' and the status of 'time' (the conditions that gave rise to the movement), ② the Labor Standards Act (the main weapon wielded by the actors of the movement), ③ masculine governance(the order of oppression). In doing so, this study connects to the discussion and reflection on the meaning of the eight-hour day movement as well as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the labor movement and economic growth during the Park Chung-hee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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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86년 개헌운동과 '5·3인천민주항쟁'

저자 : 이재성 ( Lee Jae Seong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2-138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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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운동은 헌법 개정이라는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70년대에도 개헌 운동이 있었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도 헌법 개정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개헌운동의 저항 주기와 현실 정치의 논리는 독재정권과 야당의 정치적 선택에 제약을 부과하였다. 그러나 새롭게 성장한 민중운동 진영은 그러한 현실 정치의 논리로부터 자유롭게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는 1980년대 개헌운동이 정권 교체의 차원을 넘어설 수도 있는 정치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6년 3월부터 시작된 개헌 서명 운동은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전개되었다. 수만 명이 운집한 대중집회를 통해서 독재 정권은 정치적 위기감을 느꼈고, 민주화운동은 점차 세력을 넓혀갔다. 그러나 빠르게 급진화되어 가는 민중운동 진영은 야당의 정치 행위를 기회주의로 판단하였고, 독재 정권과의 비타협적인 투쟁을 추구했다. 1986년 5월 3일에 열리려 했던 '인천대회'는 민주화운동진영 내부의 갈등과 논쟁점이 드러난 투쟁이었다.
'인천대회' 직후 독재 정권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포정치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5·3인천민주항쟁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급진 이념과 민중운동 진영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전개된 독재정권에 대한 직접적 투쟁, 급진적 이념과 폭력을 불사한 투쟁은 직선제 문제를 뛰어넘는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숙고를 요청하고 있다.


TSouth Korea's democratization movement is closely related to constitutional amendments. There was also a constitutional amendment movement in the 1970s, and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n the 1980s also developed around the issue of constitutional amendment. The constitutional amendment movement's cycles of protest in the 1970s and 1980s and the logic of real politics imposed restrictions on the political choices of the dictatorship and opposition parties. However, the newly arising Minjung Movement group developed a resistance strategy free from the logic of real politics, revealing the political potential for the constitutional amendment movement in the 1980s to go beyond regime change.
A signature campaign for constitutional amendment began in March 1986, circulating major cities across the country, including Busan, Gwangju, Daegu, and Daejeon. Through mass gatherings of tens of thousands of people, the dictatorship felt a sense of political crisis, and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gradually expanded its power. However, the rapidly radicalizing Minjung Movement camp judged the the opposition party's political actions as opportunism and pursued an uncompromising struggle against the dictatorship. The Incheon Convention scheduled on May 3, 1986, to organize the Incheon and Gyeonggi branches of the Shinhan Democratic Party was canceled due to violent protests demanding constitutional amendments and the convening of the People's Assembly, revealing the existence of conflicts and points of contention among the various groups within the camp for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mmediately after the May 3 Incheon Democratic Uprising, the dictatorship began a massive crackdown on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And just like in the 1970s, the government tried to maintain political power through anti-communist ideology and the reign of terror. The May 3 Incheon Democratic Uprising demands a fair evaluation of the radical ideology and the contributive role of the Minjung Movement camp in South Korea's democratization movement. This direct struggle against the dictatorship engaging radical ideology and violence requires us to look beyond the failed demands for direct elections at the time and further reflect on the movement's role in the country's democratization and constitutional amend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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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생운동 세력의 도심 시위 전술과 경찰의 진압 작전 : 1991년 '5월 투쟁'을 중심으로

저자 : 이준영 ( Lee Jun-young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184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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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학생운동 세력의 도심 시위 전술과 그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 진압 작전의 변화상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5·16쿠데타 이래 도심 공간은 군사정권의 물리적 폭력이 관철되는 '지배의 공간'이었다. 1980년대 대학생을 중심으로한 가두시위는 권력이 강제하는 금기에 도전하는 행위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빈발한 가두시위는 공간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했고, 내용적으로도 급진화·체계화 되었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1980년대 이래의 시위 경험, 특히 6월 항쟁기의 경험을 통해 대규모화·조직화된 도심 시위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되자 집회·시위에 대한 당국의 대응도 달라졌다. 1980년대 후반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빈발하자 정권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한편,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한 진압 방침을 천명했다. 도심 시위를 진압해야 했던 당국은 제도적으로 공안체제를 정비하고, 물리적으로는 시위에 대응하는 진압경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가두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대공·정보경찰과 경비경찰이 확충되었으며, 시위 진압을 위한 경찰력이 대폭 증가하고 진압 장비가 현대화되었다.
그 결과 거리에서 발생한 시위대와 진압경찰의 충돌은 점차 격화되었으며, 그 필연적인 귀결로서 1991년 '5월 투쟁'의 비극이 배태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시위의 빈발과 시위 대오의 조직화·무장화, 그리고 경찰 진압 장비 확충과 진압 전술의 공격적 운용이라는 순환 구조가 정점에 달했던 시점이 바로 1991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식 진압 장비와 '백골단'으로 무장한 데다 공격적인 진압 교리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경찰은 국가폭력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This paper seeks to historically reconstruct the downtown protest tactics of the expanded and organized student movement groups after the June Democratic Uprising in 1987 and the changes in the police's operations to suppress the protests with the focus on the Struggle in May 1991. Since the May 16 Coup, urban centers became 'spaces of domination' controlled by the military regime's violent authority. As such, the street protests led by university students in the 1980s were actions of defiance against the taboos enforced by political powers. These street protests became more frequent after the mid-1980s, expanding in spatial scope and becoming more radical and organized in substance.
As the protests grew in scale and became more organized and tactical in the late 1980s through the accumulated experience in holding demonstrations, especially the 1987 June Democratic Uprising, the state's response to demonstrations and protests also evolved. The government created a climate of fear, declared a war against crime, and announced a strong suppression plan against rallies and protests. To suppress the street protests, the government authorities reorganized its public security system and strengthened the frontline police forces. Accordingly, the police power against demonstrations was significantly reinforced with larger numbers of the anti-communist intelligence policemen and defense police in charge of controlling the street protests equipped with modernized riot gears.
As a result, the collision between protesters and the police continued to escalate, and the tragic "Struggle in May 1991" was its inevitable outcome. The police expanded their riot control equipment and engaged in aggressive suppression tactics in proportion to the growing frequency of large-scale demonstrations which became more organized and militarized over time. This cycle of escalation peaked in 1991. In this situation, coupled with the use of modern riot control equipment, the violent tactics deployed by the Baekgoldan (Special Riot Police Unit), and an aggressive riot control doctrine, the police had no choice but to become the incarnation of state vio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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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합 열광 이후의 집합 의례 : 의례이론으로 본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저자 : 최규연 ( Choi Kyu Youn ) , 박한비 ( Park Han Bi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6-229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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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19년 시작된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의례이론의 관점으로 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홍콩 시위의 절정에서 수행된 집합 의례의 산물은 무엇이며, 이는 시위가 억압되는 현재 상황에 무엇을 남겼는가? 뒤르켐과 뒤르켐주의 의례이론은 성속이분법, 리미널리티, 집합 열광 개념을 통해 사회운동에서 나타나는 탈경계적 참여자 포섭과 격동적 집합 정서가 생성하는 사회 변혁적 에너지를 설명한다. 본고는 이 개념들을 통해서 홍콩 시위의 절정기와 시위가 억압된 후속기 동안 진행된 의례 활동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홍콩 시위의 정점이었던 2019년 6월 시위에는 영국/중국과 민주주의/사회주의의 성속 대립을 중심으로 강렬한 집합 열광이 산출되었다. 2020년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인들은 열기로 가득 찼던 과거 시위에 대한 기념의 의례를 수행하며, 억압을 피해 세계로 흩어진 이주 홍콩인들은 다원적 거점에서 집합 의례를 지속하고 민주주의 가치라는 성의 세계화를 도모한다. 이 분석에 기반하여, 본고는 집합 열광으로 생성되는 사회 변혁의 에너지가 집합 행동이 억압된 상황에서 '성스러움의 집합 기억'으로 의례 참가자 내부에 각인되어 집합 흥분과 무관한 사회 변혁의 동인으로 영속화되며, 세계 시민사회와의 조우를 통해 성스러운 가치의 세계 종교적 확장으로 진전된다고 주장한다.


This paper sheds light on the 2019-2020 Hong Kong protests from the perspective of Durkheimian ritual theories. What were the outcomes of the collective rituals practiced during the peak of the protests, and what remains of those outcomes after the protests were forcefully suppressed? Durkheim and Durkheimian ritual theories elaborate on the transformative energies emerging from the collective sentiments and solidarity building of social movements, drawing on the sacred-profane dichotomy, collective effervescence, liminality, and communitas. Employing these concepts, our study analyzes the ritual practices performed both at the peak of the Hong Kong protests in 2019 and the period of suppression which followed in 2020. This analysis particularly focuses on the legacies of the mass demonstrations in 2019, advancing understanding of the far-reaching outcomes of collective rituals. Our findings reveal that the participants of the protests in June 2019 experienced intense collective effervescence centered on the sacred-profane dichotomies of Britain versus China and democracy versus socialism to reach liminality and develop communitas. In the subsequent period after the enactment of the new national security law for Hong Kong in 2020, the people of Hong Kong practiced commemorative rituals to perpetuate the memories of collective effervescence. Moreover, those who left Hong Kong to escape oppression continued to practice collective rituals in multiple locations around the world, expanding the sacred values of the Hong Kong protests as a part of the universal value of democracy. Based on this analysis, we argue that, when collective action is suppressed, transformative energy emerging from collective effervescence becomes embedded within those practicing collective rituals as the 'collective memory of the sacred' which consolidates over time. This collective memory becomes a perpetual driver that is independent from the collective effervescence, and through the entry into global civil society, evolves into the universal expansion of the sacred values held up by the collective rit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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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미얀마 '봄의 혁명' : 땃마도 수호자주의의 파국적 선택에 이르는 서사

저자 : 박은홍 ( Park Eunhong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0-270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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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땃마도는 미얀마 연방공화국의 역사보다도 긴 군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국민의 부모를 자처한다. 일본군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땃마도의 모토는 같은 피, 같은 목소리, 같은 명령에 산다이다. 땃마도의 비타협성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수호자주의(guardianship)'와 무관하지 않다. '신식민주의'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땃마도의 입장은 연방 해체 반대, 국가주권의 공고화이다.
이번 쿠데타는 정치 혼돈은 물론 경제 파국까지 감수하면서 테인 세인 정부 이전 고립 상태의 미얀마로의 회귀를 불사하겠다는 땃마도의 무모한 시도이자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NLD의 포퓰리즘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이다. '수호자주의'가 도덕적, 정치적 자산을 모두 상실함에 따라 마지막 남은 2008년 헌법과 물리적 억압 기구를 동원하여 '국가 안의 국가'로서의 계급적 이익을 폭력적으로 '수호'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는 땃마도가 예측하지 못한 내전 상황의 발발이다. 땃마도로서는 파국적 선택을 한 셈이다. 이 글은 1962년 쿠데타 이후 땃마도 수호자주의의 생성, 진화, 변형, 파국적 선택의 궤적(trajectories)을 보여주는 서사(narrative)이다.


The Myanmar Armed Forces, also known as the Tatmadaw, prides in the fact that its history is older than that of the state and voluntarily plays the role as the father and mother of the people of Myanmar. The Tatmadaw's motto, “One blood, one voice, one command,” originated from the Japanese armed forces. The idea of guardianship formed from this historical background is not completely irrelevant to the Tatmadaw's intransigence. The Tatmadaw exhibits an almost paranoid neocolonialism complex, continuously placing the need for security above all else. As such, it opposes the dissolution of the Union and believes in solidifying national sovereignty.
The February 1 coup can be seen as the Tatmadaw's reckless attempt to revert back to the state of isolation before the Thein Sein government regardless of the consequences, such as political chaos or even an economic meltdown. It also revealed the Tatmadaw's sense of crisis in the face of the challenges brought by the populism of the NLD led by Aung San Suu Kyi. As the Tatmadaw's guardianship lost both its moral and political assets, the Tatmadaw chose to 'guard' its privilege as a state within a state in a violent manner by mobilizing the 2008 constitution and the state apparatus of repression. In other words, the Tatmadaw decided to maintain its status as 'kedinsin (guardian),' which imply the reversion from democracy under military tutelage, where political power is shared by the civilians and the military, to full military rule. This reversion signify the retreat to a coercive military regime. This paper is a narrative following the trajectories of the creation, evolution, transformation, and destruction of guardianship under praetorianism in Myanmar after the 1962 c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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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민주적 방역, 혹은 권리 없는 자들과의 협치 :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이희영 ( Lee Heeyoung ) , 정다울 ( Cheong Dawool ) , 정성조 ( Jung Seong-jo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2-314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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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20년 5월 발생한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성소수자 '문제'가 한국의 생명정치적 방역 체제 내 합리성, 민주성, 시민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발생 초기, 한국의 방역 체제는 투명성, 개방성, 민주성 원칙에 근거한 이상적 방역 모델로 주목받았다. 그 결과 민주적 시민성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을 목표로 한 자발적 연대의 가입 여부에서 평가되곤 했다. 하지만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당시 성소수자들의 검사 기피 문제는 민주적 방역이 구조적으로 존재해 온 차별에 대응하는 데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심각성을 인지한 방역 당국은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과 거버넌스를 결성해 방역 위기를 해소했다. 하지만 이례적인 거버넌스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의 시민성은 방역 차원에서만 정의되었고 성(性)과 시민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또다시 지연되고 있다.


This paper argues that the sexual minority 'problem' in South Korean society raises fundamental questions about the rationality, democracy, and definition of citizenship embedded in South Korea's biopolitical responses to COVID-19 through the case of the Itaewon 'gay club' mass infection in May 2020. During the early stages of the COVID-19 pandemic, South Korea's quarantine and isolation strategy was praised as an ideal model for infectious disease control that is transparent, open, and democratic. As a result, democratic citizenship became reconciled with the voluntary engagement in anti-virus solidarity. However, the Itaewon 'gay club' outbreak and the avoidance of COVID-19 tests among sexual minorities revealed that South Korea's democratic disease control system could not operate properly in the face of pre-existing, systemic discrimination. Recognizing the seriousness of this situation, the government established an extraordinary governance in collaboration with LGBTQ rights groups to address the obstacles faced by the quarantine measures. Yet, this one-of-a-kind event merely defined the sexual minorities' citizenship in terms of infectious disease control, and the questions regarding relationship between sexuality and citizenship continue to remain unansw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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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제주 제2공항 반대 제주도청 앞 천막촌운동 : 네트워크된 사회운동의 성격을 가지는 커먼즈운동

저자 : 박서현 ( Park Suh-hyun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15-35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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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면서 제주도청 앞에 세워진 '천막촌'이 전개한 운동의 성격을 분석한다. 천막촌운동은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의 주민이나 제주 시민사회활동가를 포함하는 새로운 주체가 참여하고 주도했던 운동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주체는 제주의 기존 사회운동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아울러 천막촌운동은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이 연대하여 전개했던 제주의 기존 사회운동만이 아닌 기타 환경운동과도 차이를 보인다. 본 논문은 천막촌운동을 세 시기로 구분하여 각각의 특징을 확인한 다음 '공통적인 것의 구성', '공동체 기반 민주주의', '예시적 정치'라는 논점을 중심으로 천막촌운동의 성격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천막촌운동이 네트워크된 사회운동의 성격을 가지는 커먼즈운동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This study analyzes the features of the movement opposing the construction of the second Jeju Airport that took form as a tent village set up at the front gate of the Jeju Provincial Office. The Tent Village movement was initiated and led by new actors who had not been part of previous social movements in Jeju. Moreover, the Tent Village movement is notably different not only from previous social movements in Jeju led by environmental organizations and locals but also other environmental movements. This paper divides the Tent Village movement into three periods and identifies the movement's characteristics by period. Then, the features of the Tent Village movement are examined focusing on “the constitution of the common,” “community-based democracy,” and “prefigurative politics.” Finally, this paper suggests that the Tent Village movement can be understood as a commons movement with the characteristics of a networked social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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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청산'과 '탈출'의 기로에서 : 경산코발트광산 과거사 청산 담론의 변동과 의미 분석

저자 : 노용석 ( Noh Yongseok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1-39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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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를 분석함에 있어서 경산코발트광산의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경산코발트광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역사와 해방 후 근대 국민국가 수립에서의 갈등이 특화되어 있어서, 한국의 주요한 사회문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코발트광산은 일제강점기 기간 동안 일본의 '조선반도' 수탈과 강제 징용의 역사를 투영하고 있으며, 또한 이 광산은 1950년 많은 민간인들이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학살된 장소로서, 한국 현대사의 과거사청산기에 유해 발굴 등이 이루어지면서 주목을 받은 곳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현대사 시기별로 각각 변해온 경산코발트광산에 대한 담론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러한 담론들이 발생하게 된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담론 역사의 분석 결과를 통해, 현재 경산코발트광산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는 '한국 과거사 청산의 올바른 방향성'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The Gyeongsan cobalt mine is a meaningful case to examine in analyzing the modern history of South Korea as its history symbolically represents the country's major social and cultural changes, including the country's history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e conflicts surrounding the establishment of a modern nation-state after liberation. In particular, the Gyeongsan cobalt mine is an embodiment of the exploitation and forced labor that occurred on the Joseon Peninsul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mine was also the site of a massive civilian massacre by the Korean military and police in 1950, which received significant attention when the bodies of the victims were exhumed as a part of the efforts to purge the past. This study historically reconstructs the changes in the discourses surrounding the Gyeongsan cobalt mine in the course of South Korea's modern history to explain the historical background from which such discourses were born. Through this analysis, this paper presents what the case of the Gyeongsan cobalt mine suggests as the proper direction for clearing up South Korea's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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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 『반일종족주의』까지 : 한국에서 '신우파 경제학'의 퇴행적 진화

저자 : 안현효 ( Ahn Hyeon Hyo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1-41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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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반일종족주의』에서 발견되는 한국에서의 '신우파 경제학'의 퇴행적 진화 과정을 분석한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좌파 민족주의 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보수주의적 국가주의와 반동적 낭만주의 이데올로기를 결합한다. 한편 『반일종족주의』는 좌파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데올로기는 천황제종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두 저술은 '신우파 경제학'이 다양한 이론적 기반을 포섭하여 수행한 초기의 좌파 민족주의 비판에서 민족주의를 종족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접근하는 퇴행적 진화과정을 보여준다. 이 글은 이러한 퇴행의 원인으로서 '신우파 경제학'이 사실과 실증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중진자본주의론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기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지목한다. 퇴행적 민족주의로 진보적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자가당착 때문에 '신우파 경제학'의 이론적 기획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This paper examines the devolutionary development of new-right economics in South Korea based on the readings of Reinterpretation of the Contemporary History of Liberation and Anti-Japan Tribalism. Reinterpretation of the Contemporary History of Liberation attempts to combine conservative statism and reactionary romanticism in order to criticize left-wing nationalism. On the other hand, Anti-Japan Tribalism interprets left-wing nationalism as a kind of tribalism, while, at the same time, its own ideology fails to move away from to the imperialistic tribalism of Japanese right-wing nationalism. Both works reveal the devolutionary process of new-right economics from a grand project employing various theories to criticize left-wing nationalism to a regressive approach of interpreting nationalism as tribalism. This study highlights the failure of new-right economics to move beyond the middle capitalism theory, which was its ideological origin despite emphasizing facts and empirical evidence as the cause behind such devolution. The self-contradictory criticism of progressive nationalism as being regressive made it inevitable for the new-right economics' theoretical project to colla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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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정희 시대 민족주의적 통치성과 대항 담론 및 저항 주체

저자 : 홍태영 ( Hong Taiyoung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54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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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민족주의는 통치 세력과 저항 세력 모두에게 유용한 정치적 동원 자원으로 존재해 왔다. 4·19와 5·16을 거치면서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민족주의는 근대화를 통한 '잘살기'와 부국강병이 목표였다는 점에서 여타의 자유주의 세력들도 동의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였다. 민족주의, 특히 경제적 민족주의는 남한 사회 다양한 세력들로부터 일정한 동의를 받을 수 있었고, 그러한 민족주의는 국민의 삶 전체를 규율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이른바 '민족주의적 통치성'의 형성이었다. 박정희의 민족주의에 대항해 형성된 저항 담론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경제적 민족주의를 통해 경제개발이 만들어낸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에 대한 추구의 시도(2절)이며, 다른 하나는 박정희의 민족주의 및 박정희가 추구한 '민족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대항 담론의 형성(3절)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항 담론이 민족주의적 통치성의 자장 속에 위치했지만, 서서히 박정희 시기 형성된 대항 담론은 이러한 대항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에 대한 탐구(4절)로 이어지면서 균열을 발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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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해태제과 여성들의 '8시간 노동제' 실현 : 삶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체제에 저항하다

저자 : 김보현 ( Kim Bo-hyeon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5-9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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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79년 7월 - 1980년 2월 중에 해태제과 여성들이 실천한 '8시간 노동' 투쟁의 조건과 내용, 관련 행위자들을 서술한다. 서술은 문헌자료 조사와 구술자료 수집을 통해 파악한 사실관계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특히 다음의 세 부분들에 무게를 둔다. ① '자본주의 정신'과 '시간'의 위상(투쟁의 발단 조건), ② 근로기준법(투쟁의 무기), ③ 남성 통치(억압의 질서). 서술은 그 투쟁의 의미와 함께 박정희 정부 시기 노동운동, 경제성장의 조건 및 성격에 관한 논의·성찰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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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86년 개헌운동과 '5·3인천민주항쟁'

저자 : 이재성 ( Lee Jae Seong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2-138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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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운동은 헌법 개정이라는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70년대에도 개헌 운동이 있었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도 헌법 개정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개헌운동의 저항 주기와 현실 정치의 논리는 독재정권과 야당의 정치적 선택에 제약을 부과하였다. 그러나 새롭게 성장한 민중운동 진영은 그러한 현실 정치의 논리로부터 자유롭게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는 1980년대 개헌운동이 정권 교체의 차원을 넘어설 수도 있는 정치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6년 3월부터 시작된 개헌 서명 운동은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전개되었다. 수만 명이 운집한 대중집회를 통해서 독재 정권은 정치적 위기감을 느꼈고, 민주화운동은 점차 세력을 넓혀갔다. 그러나 빠르게 급진화되어 가는 민중운동 진영은 야당의 정치 행위를 기회주의로 판단하였고, 독재 정권과의 비타협적인 투쟁을 추구했다. 1986년 5월 3일에 열리려 했던 '인천대회'는 민주화운동진영 내부의 갈등과 논쟁점이 드러난 투쟁이었다.
'인천대회' 직후 독재 정권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포정치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5·3인천민주항쟁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급진 이념과 민중운동 진영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전개된 독재정권에 대한 직접적 투쟁, 급진적 이념과 폭력을 불사한 투쟁은 직선제 문제를 뛰어넘는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숙고를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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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생운동 세력의 도심 시위 전술과 경찰의 진압 작전 : 1991년 '5월 투쟁'을 중심으로

저자 : 이준영 ( Lee Jun-young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184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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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학생운동 세력의 도심 시위 전술과 그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 진압 작전의 변화상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5·16쿠데타 이래 도심 공간은 군사정권의 물리적 폭력이 관철되는 '지배의 공간'이었다. 1980년대 대학생을 중심으로한 가두시위는 권력이 강제하는 금기에 도전하는 행위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빈발한 가두시위는 공간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했고, 내용적으로도 급진화·체계화 되었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1980년대 이래의 시위 경험, 특히 6월 항쟁기의 경험을 통해 대규모화·조직화된 도심 시위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되자 집회·시위에 대한 당국의 대응도 달라졌다. 1980년대 후반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빈발하자 정권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한편,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한 진압 방침을 천명했다. 도심 시위를 진압해야 했던 당국은 제도적으로 공안체제를 정비하고, 물리적으로는 시위에 대응하는 진압경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가두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대공·정보경찰과 경비경찰이 확충되었으며, 시위 진압을 위한 경찰력이 대폭 증가하고 진압 장비가 현대화되었다.
그 결과 거리에서 발생한 시위대와 진압경찰의 충돌은 점차 격화되었으며, 그 필연적인 귀결로서 1991년 '5월 투쟁'의 비극이 배태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시위의 빈발과 시위 대오의 조직화·무장화, 그리고 경찰 진압 장비 확충과 진압 전술의 공격적 운용이라는 순환 구조가 정점에 달했던 시점이 바로 1991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식 진압 장비와 '백골단'으로 무장한 데다 공격적인 진압 교리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경찰은 국가폭력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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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합 열광 이후의 집합 의례 : 의례이론으로 본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저자 : 최규연 ( Choi Kyu Youn ) , 박한비 ( Park Han Bi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6-229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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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19년 시작된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의례이론의 관점으로 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홍콩 시위의 절정에서 수행된 집합 의례의 산물은 무엇이며, 이는 시위가 억압되는 현재 상황에 무엇을 남겼는가? 뒤르켐과 뒤르켐주의 의례이론은 성속이분법, 리미널리티, 집합 열광 개념을 통해 사회운동에서 나타나는 탈경계적 참여자 포섭과 격동적 집합 정서가 생성하는 사회 변혁적 에너지를 설명한다. 본고는 이 개념들을 통해서 홍콩 시위의 절정기와 시위가 억압된 후속기 동안 진행된 의례 활동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홍콩 시위의 정점이었던 2019년 6월 시위에는 영국/중국과 민주주의/사회주의의 성속 대립을 중심으로 강렬한 집합 열광이 산출되었다. 2020년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인들은 열기로 가득 찼던 과거 시위에 대한 기념의 의례를 수행하며, 억압을 피해 세계로 흩어진 이주 홍콩인들은 다원적 거점에서 집합 의례를 지속하고 민주주의 가치라는 성의 세계화를 도모한다. 이 분석에 기반하여, 본고는 집합 열광으로 생성되는 사회 변혁의 에너지가 집합 행동이 억압된 상황에서 '성스러움의 집합 기억'으로 의례 참가자 내부에 각인되어 집합 흥분과 무관한 사회 변혁의 동인으로 영속화되며, 세계 시민사회와의 조우를 통해 성스러운 가치의 세계 종교적 확장으로 진전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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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미얀마 '봄의 혁명' : 땃마도 수호자주의의 파국적 선택에 이르는 서사

저자 : 박은홍 ( Park Eunhong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0-270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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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땃마도는 미얀마 연방공화국의 역사보다도 긴 군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국민의 부모를 자처한다. 일본군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땃마도의 모토는 같은 피, 같은 목소리, 같은 명령에 산다이다. 땃마도의 비타협성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수호자주의(guardianship)'와 무관하지 않다. '신식민주의'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땃마도의 입장은 연방 해체 반대, 국가주권의 공고화이다.
이번 쿠데타는 정치 혼돈은 물론 경제 파국까지 감수하면서 테인 세인 정부 이전 고립 상태의 미얀마로의 회귀를 불사하겠다는 땃마도의 무모한 시도이자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NLD의 포퓰리즘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이다. '수호자주의'가 도덕적, 정치적 자산을 모두 상실함에 따라 마지막 남은 2008년 헌법과 물리적 억압 기구를 동원하여 '국가 안의 국가'로서의 계급적 이익을 폭력적으로 '수호'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는 땃마도가 예측하지 못한 내전 상황의 발발이다. 땃마도로서는 파국적 선택을 한 셈이다. 이 글은 1962년 쿠데타 이후 땃마도 수호자주의의 생성, 진화, 변형, 파국적 선택의 궤적(trajectories)을 보여주는 서사(narrativ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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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민주적 방역, 혹은 권리 없는 자들과의 협치 :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이희영 ( Lee Heeyoung ) , 정다울 ( Cheong Dawool ) , 정성조 ( Jung Seong-jo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2-314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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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20년 5월 발생한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성소수자 '문제'가 한국의 생명정치적 방역 체제 내 합리성, 민주성, 시민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발생 초기, 한국의 방역 체제는 투명성, 개방성, 민주성 원칙에 근거한 이상적 방역 모델로 주목받았다. 그 결과 민주적 시민성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을 목표로 한 자발적 연대의 가입 여부에서 평가되곤 했다. 하지만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당시 성소수자들의 검사 기피 문제는 민주적 방역이 구조적으로 존재해 온 차별에 대응하는 데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심각성을 인지한 방역 당국은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과 거버넌스를 결성해 방역 위기를 해소했다. 하지만 이례적인 거버넌스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의 시민성은 방역 차원에서만 정의되었고 성(性)과 시민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또다시 지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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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제주 제2공항 반대 제주도청 앞 천막촌운동 : 네트워크된 사회운동의 성격을 가지는 커먼즈운동

저자 : 박서현 ( Park Suh-hyun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15-35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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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면서 제주도청 앞에 세워진 '천막촌'이 전개한 운동의 성격을 분석한다. 천막촌운동은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의 주민이나 제주 시민사회활동가를 포함하는 새로운 주체가 참여하고 주도했던 운동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주체는 제주의 기존 사회운동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아울러 천막촌운동은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이 연대하여 전개했던 제주의 기존 사회운동만이 아닌 기타 환경운동과도 차이를 보인다. 본 논문은 천막촌운동을 세 시기로 구분하여 각각의 특징을 확인한 다음 '공통적인 것의 구성', '공동체 기반 민주주의', '예시적 정치'라는 논점을 중심으로 천막촌운동의 성격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천막촌운동이 네트워크된 사회운동의 성격을 가지는 커먼즈운동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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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청산'과 '탈출'의 기로에서 : 경산코발트광산 과거사 청산 담론의 변동과 의미 분석

저자 : 노용석 ( Noh Yongseok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1-39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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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를 분석함에 있어서 경산코발트광산의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경산코발트광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역사와 해방 후 근대 국민국가 수립에서의 갈등이 특화되어 있어서, 한국의 주요한 사회문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코발트광산은 일제강점기 기간 동안 일본의 '조선반도' 수탈과 강제 징용의 역사를 투영하고 있으며, 또한 이 광산은 1950년 많은 민간인들이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학살된 장소로서, 한국 현대사의 과거사청산기에 유해 발굴 등이 이루어지면서 주목을 받은 곳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현대사 시기별로 각각 변해온 경산코발트광산에 대한 담론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러한 담론들이 발생하게 된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담론 역사의 분석 결과를 통해, 현재 경산코발트광산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는 '한국 과거사 청산의 올바른 방향성'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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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 『반일종족주의』까지 : 한국에서 '신우파 경제학'의 퇴행적 진화

저자 : 안현효 ( Ahn Hyeon Hyo )

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행물 : 기억과 전망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1-41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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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반일종족주의』에서 발견되는 한국에서의 '신우파 경제학'의 퇴행적 진화 과정을 분석한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좌파 민족주의 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보수주의적 국가주의와 반동적 낭만주의 이데올로기를 결합한다. 한편 『반일종족주의』는 좌파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데올로기는 천황제종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두 저술은 '신우파 경제학'이 다양한 이론적 기반을 포섭하여 수행한 초기의 좌파 민족주의 비판에서 민족주의를 종족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접근하는 퇴행적 진화과정을 보여준다. 이 글은 이러한 퇴행의 원인으로서 '신우파 경제학'이 사실과 실증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중진자본주의론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기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지목한다. 퇴행적 민족주의로 진보적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자가당착 때문에 '신우파 경제학'의 이론적 기획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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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ANS FOCUS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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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권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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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연구
46권 1호

국제정세전망
2022권 0호

IFANS FOCUS (영문)
2021권 9호

IFANS PERSPECTIVES
2022권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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