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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고전문헌의 기계번역 평가방안 탐색

A Study on the Evaluation Method of Machine Translation in Classical Chinese

정성훈 ( Jung¸ Sunghoon ) , 하지영 ( Ha¸ Jiyoung ) , 김우정 ( Kim¸ Woojeong )
  • : 근역한문학회
  • : 한문학논집 60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0월
  • : 105-155(51pages)
한문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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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기계번역 자동평가
3. 기계번역 수동평가
4.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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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계번역을 이용한 한문고전 번역물의 품질평가 방법을 살펴보고, 품질평가의 객관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번역품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고립어인 한문 고전문언문은 문체가 다양하고 문법상의 변화도 복잡하다. 또한 기계번역은 평가기준·평가목적·평가비용·텍스트의 종류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하므로 신뢰성이 높고 간편한 번역 품질 평가모델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자동평가는 기계번역의 어떤 요소가 번역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점수가 가장 높은 기계번역 모델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기계번역 품질에 대한 타당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평가기준도 평가모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대량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수동평가가 필요한데, 평가자 각각의 경험이나 수준이 존재하고, 평가기준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으며, 평가 환경이나 차수에 따른 차이 등 주관에 치우칠 우려도 불식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동평가와 수동평가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기계번역기의 성격과 목적에 맞는 평가방법을 찾아 적용하되, 기계번역 모델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하여야 하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평가방법이 기계번역 모델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several methods of translation quality evaluation on the classical chinese using machine translation, and suggest some ways to increase the objectivity of quality evaluation and improve the quality of translation. The classical chinese, an isolated language, have diverse styles and complicated grammatical changes. In addition, it is not easy to develop a reliable and easy translation quality evaluation model because machine translation should also consider evaluation standards, evaluation purposes, evaluation costs, and types of text. Automatic evaluation does not know which elements of machine translation affect translation quality, and although it can show the highest scoring machine translation model, it does not guarantee validity for machine translation quality. In addition, evaluation criteria may vary depending on the evaluation model and may require a large amount of data. To compensate for this problem, manual evaluation is required, which may have different results depending on the experience or level of the appraiser, understanding of the criteria, and the environment or number of evaluations. Therefore, considering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automatic and manual evaluation, an evaluation method suitable for the purpose of the machine translator shall be found and applied, but a measure shall be developed to objectively evaluate the performance of the machine translation model. And ultimately, these evaluation methods should help identify and improve the problems of the machine translation model.

UCI(KEPA)

I410-ECN-0102-2022-800-000863843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연3회
  • : 1225-1313
  • : 2713-9905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3-2022
  • :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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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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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9세기 제갈량 초상 담론의 제양상(諸樣相)

저자 : 김기완 ( Kim Kiwa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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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선행 연구들에 이어 한문학과 회화 방면의 한 연구 의제로서 '제갈량 초상'을 주제화하고, 제갈량 초상 수용사의 중간 거점으로서의 '주희'에 다시 주목하는 작업을 시도해 보았다. 본고에서는 우선 송시열의 사례를 중심으로 주희에 연원을 둔 제갈량 초상 담론의 주요 논점과 전형적 언술 지표들을 정리하였다. 제갈량 초상과 관련된 송시열과 김수증의 사례는 노론계 제갈량 초상 담론의 한 전형이라 할 만한 것인데, 그 이후에 이것이 큰 이견 없이 노론 내부에서 계승, 확산되는 양상을 유한준의 사례에서 볼 수 있었다. 한편 주희의 시문에 기반한 노론계 제갈량 초상 담론의 구심력 내지 표상 체계의 결속력이 약화되는 요인들로는, 노론 외부의 시선이라든가, 세대가 지나고 관점이 유연해진 결과 청을 더 이상 '오랑캐'로만 인지하지 않는 대중국 인식의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본고에서는 전자의 사례로 정약용을, 후대의 사례로 홍한주를 예시하였는데, 물론 이는 논의의 편의상 일부 대표적인 사례를 선별한 것이므로 본고에서 시도한 서술방식과 관점을 여타 작가들을 아울러 보다 촘촘하게 재구하는 작업이 향후 과제로 남았다. 때로 여러 당파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제갈량 초상 이미지를 둘러싼 상징의 혼란 내지 비동조 현상이 야기되기도 했기에, 이러한 측면은 제갈량 초상과 관련 시문을 일종의 정치적 텍스트로 읽어낼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또한 본 연구는 주희와 관련된 시각 문화와 주희 문학의 수용에 대한 연구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Following the previous research, this paper again tried to focus on 'Zhuge Liang's portrait' as an research between classical literature and painting, and tried to focus on 'Zhu Hui' as an intermediate base in the history of acceptance toward Zhuge Liang's portrait. This paper first summarizes the main points and typical indicators of Zhuge Liang's portrait discourse based on Song Si-yeol's case. Song Si-yeol's case was typical type of discourse in No-ron group, and Yoo Han-joon followed Song's texts as one of No-ron literary person. On the other hand, eyes from the outside(not as a No-ron) or changes of perception toward Qing China allowed different point of view about representation system related to Zhuge Liang's portrait. In this paper, Jeong Yak-yong was cited as the former case, and Hong Han-ju was cited as the latter case. Of course, this paper selected some representative cases for convenience of discussion so we need to search and analyze much more samples. Sometimes when the interests of various parties clashed with each other, there were confusion and inconsistency in the image or symbol of Zhuge Liang, and this suggests us to read poems and writings about Zhuge Liang's portrait as political texts. In addition, this study has a value as a study on the visual culture related to Zhu Hui and the acceptance about Zhu Hui's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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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蟾窩 李玄煥의 繪畫 관련 '說' 작품 분석

저자 : 정은진 ( Jeoung Eun-j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7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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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문학 문체 가운데 說을 주목하여 繪畫와 說 문학의 관계를 점검하고, 이현환의 「崔北畵說」·「謹齋書畫說」·「圖章說」을 분석하였다. 알려진 대로 회화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한문학 문체는 書畫題跋이다. 서화제발이 주로 해당 서화작품에 관한 단형의 비평이 주를 이룬다면, 설은 보다 전문적인 시각에서 작자와 대상의 관계와 일화, 대상에 대한 작자의 주장과 평가 등이 통시적으로 조망된다. 그렇다보니 조선후기 소품의 발달과 함께 양적 증가를 보였던 서화제발에 비해, 설로 표현된 회화 담론 수는 현격하게 적었다.
그런데 강세황·최북과 가까웠던 남인계 이현환은 설이란 문체를 통해 18세기 근기지역의 문화적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본고에서 논한 이현환의 「崔北畵說」·「謹齋書畫說」·「圖章說」은 최북의 회화, 이관휴의 서화수장, 회화에 첨부되는 도장과 이를 전각하는 인물 강세황을 다룬 작품이다. 제목을 '회화 관련 설'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회화의 중심과 외연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이현환은 이 작품을 통해 서화에 대한 가치 부여, 최북·이관휴·강세황이라는 세 인물의 고도의 예술적 경지, 그들을 향한 짙은 공감을 표현하였다. 곧 회화 창작의 주변인이라 할 수 있는 이현환은 조선후기 경기도 안산에서 활동했던 회화 창작 주체들의 회화관과 이념을 '설'을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해 내었던 것이다.


This thesis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painting and 說 by paying attention to 說 among the styles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and analyzes Lee Hyeon-hwan's 「崔北畵說」, 「謹齋書畫說」 and 「圖章說」. As is known, the style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that is closely related to painting is 書畫題跋. While 書畫題跋 mainly criticizes the short-form criticism on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works, 說 sees diachronically the relationship and anecdotes between the author and the subject, and the author's assertion and evaluation of the subject from a more specialized perspective. Therefore, the number of discourses expressed in 說 was significantly less compared to Calligraphy and Painting, which showed a quantitative increase with the development of short literary works in the late Joseon Dynasty. However, Namin-Party Lee Hyeon-hwan, who was close to Kang Se-hwang and Choi buk, conveys the cultural atmosphere of the 18th century Geungi region through the style of 說. Lee Hyeon-hwan's 「崔北畵說」, 「謹齋書畫說」 and 「圖章說」 deal with Choi buk's paintings, Lee Gwan-hye's calligraphy and painting collection, the seal attached to the paintings, and Kang Se-hwang who engraved them. Although the title is 'Painting-related Theory', strictly speaking, the center and extension of the painting are expressed together. Through these works, Lee Hyeon-Hwan expressed the value of calligraphy and painting, the high artistic status of the three figures, Choi Buk, Lee Gwan-Hyu, and Kang Se-Hwang, and deep sympathy for them. Lee Hyeon-Hwan, who can be said to be a peripheral figure in painting creation, three-dimensionally expressed the views and ideas of painting creators who were active in Ansan, Gyeonggi-do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rough 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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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정재(靜齋) 오일영(吳一英, 1890-1960)의 행적과 회화 -일제 강점기의 창작 활동을 중심으로-

저자 : 송희경 ( Song Hee-kyu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0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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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전통화단에서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입장에서 새로운 조형성을 수용한 동양화가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 서화의 제재와 양식, 제화시의 형식을 계승하며 시서화 일치를 실현하려는 화가도 존재하였다. 바로 정재(靜齋) 오일영(吳一英, 1890-1960)이 이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오일영은 근대기의 대표적인 미술교육 기관인 서화미술회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고, 서화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왕실 회사인 창덕궁 부벽화를 포함한 왕실 헌상 회화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오일영은 서화미술회 교수로 활동한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화미술회의 동학 및 당시 활동한 화가들이 새로운 화법과 형식의 동양화를 모색하고자 한 반면, 오일영은 스승의 화풍을 계승하여 평생 '전통' 서화만을 고집하였다. 또한 오일영은 주문자, 소재 등을 불문하고 그림을 그린 후 반드시 제화시를 적어 넣었다. 오일영에게 제화시란 동아시아 회화의 오랜 형식인 시서화 일치와 삼절을 실천하는 방식이자 화가 본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전통이었던 셈이다.


In the early 20th century, oriental paintings that embraced new types of formativeness from the standpoint of combining Eastern techniques and Western tools began to spread in the traditional art circles. However, there were still some painters who maintained the traditional methodologies in their work. Oh Il-Young (1890-1960), art name Jeong-Jae, was one of such figures. Oh Il-Young mainly attempted to realize the unity of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by inheriting the material and style of calligraphy and those of painting as well as the form of painting poetry bequeathed from the past. Oh Il-Young studied painting at Seohwa Misulhoe (Calligraphy and Painting Art Association) - one of the representative art education institutions during the modern era - and worked actively as a member of Seohwa Hyeophoe(Calligraphy and Painting Association). He also participated in the creation of royal tribute paintings, including the royally-commissioned buttress paintings in the Changdeok Palace. In particular, Oh Il-Young was profoundly influenced by Ahn Jung-Sik, a professor at Seohwa Misulhoe. While the fellow artists of Seohwa Misulhoe and other contemporarily active painters wanted to explore a new style and form of oriental painting, Oh Il-Young persisted throughout his entire life in inheriting his master's style and insisted on only 'traditional' approaches wherein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coexisted. Also, upon drawing a picture, Oh Il-Young always wrote coordinating painting poetry into it regardless of its orderer, material, etc. For Oh Il-Young, painting poetry was a way of implementing the accord of three perfections in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 the long-standing forms of East Asian painting - as well as a tradition of confirming his own artist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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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고려후기 명시(銘詩)·만시(挽詩)의 특성과 장르적 상관성

저자 : 김보경 ( Kim Bo Kye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4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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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애도시의 관점에서 고려후기 銘詩·挽詩 두 양식의 양상과 특성을 밝히고 그 장르적 상관성 문제를 검토하였다.
고려후기에는 묘지명의 명시가 활발히 지어지는 가운데 만시 창작도 증가했다. 두 양식은 죽음이란 사건에서 비롯되고 애도를 기본 속성으로 한다는 점에선 공통되나 애도의 층위와 표현, 죽음 인식과 이미지에서는 대조를 이룬다. 명시는 망자를 공적 영역에서 다루고 칭양을 위주로 하는 데 대해 만시는 공적 영역과 개인적 관계에 걸쳐서 망자를 이야기하고 생자의 비탄을 위주로 한다. 명시의 시간은 영속적이고 미래를 향하며 그 어휘와 어조는 확신에 차고 당당하고 상승의 기세를 드러낸다. 반면 만시의 시간은 현재에 머물고 머뭇거리며 어휘와 어조는 침울하고 하강하는 경향을 보인다.
죽음 인식과 이미지에서도 대조적인 면이 드러난다. 명시에는 무덤이나 저승에 대한 언급이 자주 보이고 만시에는 장례 의식이나 장례와 관련된 용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명시는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이름이나 업적, 자손, 또 誠의 理法과 같은 인간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노력으로 초극하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만시는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 사태에 직면해 사/생의 격리, 인생의 유한함에 대한 허무와 절망감을 토로하고 신선사상이나 비교적 자유로운 내세관을 드러낸다.
두 양식은 애도시로서 역할 분담을 하면서 상호 보완적 관계를 이루었다. 그런데 고려후기에는 이런 분담의 경계가 흐려지는 양상도 나타난다. 이것은 상장례의 정착, 묘지명 문화의 쇠퇴, 그리고 三首連章體와 같은 만시 자체의 변화, 여기에 작자의식의 성장이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요인이 만시를 서서히 애도시의 주류의 위치로 밀어올린 것으로 생각된다.


This study explores the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myeongsi (銘詩) and mansi (挽詩), two poetry styles in the late Goryeo dynasty, from the perspective of mourning poetry and examines the issue of their genre correlations.
In the late Goryeo dynasty, a number of myeongsi of epitaphs were written and mansi writing was also on the rise. The two styles had commonalities, such as being written after death events and having condolences as a basic property. However, they have different layers of condolences and are in contrast with each other in terms of the perception and image of death. Myeongsi deal with and mainly admires the dead in the public realm, while mansi tell of the dead in a range covering the public realm and personal relationships and focus on the grief of the living. The time of myeongsi is permanent and future-oriented, and its vocabulary and tone are confident and dignified, showing the spirit of ascent. On the other hand, the time of mansi stays and hesitates in the present and its vocabulary and tone tend to be gloomy and descending.
The two styles are in contrast to each other in terms of the perception and image of death, as well. Graves and the afterlife are often mentioned in myeongsi, while words related to funeral rituals or funerals frequently appear in mansi. Myeongsi's view of the world is characterized by accepting but trying to overcome death with efforts that can be made in the realm of humans, such as reputation, feat, descendants and the rules and principles of the sincerity (誠). Mansi are characterized by the expression of futility and despair as to the separation between life and death and a finite life in the face of death and hold a relatively free view of afterlife, such as Taoism.
The two styles were in a complementary relationship by playing their respective roles as mourning poems. But the boundary between their respective roles became less clear in the late Goryeo dynasty. This could be the results of such factors as the establishment of funeral rites, the decline of the epitaph culture, and changes in mansi itself, including change into a three-poem series (三首連章体), and the growth of authors' consciousness. These factors are assumed to have gradually elevated mansi to the mainstream position of mourning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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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산운 이양연 한시에 나타난 허무 의식 연구

저자 : 박동욱 ( Pak Dong-uk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3-16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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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운의 한시를 읽어보면 누구라도 쉽게 삶에 대한 짙은 허무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시 전편에는 비애와 우수가 관류하고 있다. 먼저 그의 삶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들이 그의 허무의식을 織造하고 있는지를 알아본 후, 그의 시에 나타난 허무 의식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허무는 타고난 기질과 주어진 상황에 의해 형성된다. 그의 삶 속에서 허무를 심화시킨 세 가지 상황을 찾아내어 정리했다. 어려서 겪었던 養子의 체험과, 養父 · 親父의 죽음을 연이어 맞으면서 유년기의 상처는 내재되었다. 철이 들고는 出仕를 포기함으로 인해 심한 방황을 경험하게 되고, 노년에는 가족의 상실을 여러 차례 겪으며 그의 시에는 허무감이 짙게 깔리게 된다.
산운의 시에서 허무 의식은 다음과 같이 발현된다. 첫째, 定住하지 못하고 浮游하는 삶을 택했다. 그는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데, 그것은 실제 여행과 상상 속의 여행으로 나뉜다. 이러한 여행은 단순한 방황이 아니라 자아 찾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둘째, 狂飮하며 醉歌를 불렀다. 出仕에 대한 포기로 삶의 좌표를 상실하고 痛飮에 빠져 살았다. 유람이 심리적 불화의 외적 표출이었다면 음주는 심리적 불화의 내적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소멸하는 것들에 대해 응시했다. 모든 것은 시간의 장단만 있을 뿐 사라지기 마련이다. 장소도 기억도 예외는 없다. 소멸하는 것에 대한 응시는 소멸하고 싶다는 욕구보다 소멸해 가는 모든 것에 안타까운 시선을 담고 있다.


Anyone can easily feel the deep emptiness of life by reading Sanwoon's poems. Sorrow and excellence permeate all of his poems. First, we investigated what events in his life were contributing to his consciousness of emptiness, and then examined how the consciousness of emptiness expressed in his poetry was expressed.
The emptiness is formed by innate temperament and given circumstances. He found and organized three situations that deepened the emptiness in his life. The wounds of childhood were inherent as they faced the experiences of foster child as a child and the deaths of foster father and real father. When he grows old, he experiences a severe wandering due to giving up on 出仕, and in old age he experiences the loss of his family several times.
In Sanun's poetry, the consciousness of emptiness is expressed as follows. First, he chose to live a life that was unpredictable and unpredictable. He travels constantly, which is divided into real travel and imaginary travel. Such a journey can be seen as a part of self-discovery rather than just wandering. Second, he sang crazy drink and Sing while drunk. He lost the coordinates of his life by giving up on government post and was immersed in crazy drink. If excursion was an external expression of psychological discord, drinking could be said to be an internal expression of psychological discord. Third, he gazed at things that perish. Everything has only the pros and cons of time, and it tends to disappear. Places and memories are no exception. The gaze on the disappearing thing contains a sad gaze on everything that is disappearing rather than the desire to disap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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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용익 문학론 보유(補遺) -『壺谷漫筆』과 『詩話叢林』 內 『壺谷詩話』의 대비를 중심으로-

저자 : 신영미 ( Shin Youngmi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19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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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詩話叢林』 內 『壺谷詩話』와 그 원본인 『壺谷漫筆』을 대조하여 『호곡시화』에 누락 된 내용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南龍翼(1628~1692)의 문학적 견해를 제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원론적으로, '작가 개인의 고유한 문학론이 있는가?'의 문제는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지만, 그간 '문학론'의 범주에서 남용익의 문학 비평과 시론이 제출되고 인정된 것이 사실이다. 品格 批評, 格論, 體論, 復古論, 尊唐論, 主氣論, 優劣 비평 등으로 알려진 그의 비평과 詩論은 當代 문단을 견인했던 논의와 일치하여, 남용익을 명실상부 17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문학 비평가로 자리매김 시켰다.
'문학론'이라는 주제는 때로 문학 비평가가 작품과 작가를 대하는 실제 태도를 간과하게 만들곤 한다. 특별한 문학론의 입론 여부에 집중하여, 비평가가 지닌 구체적 견해와 태도에 조명할 필요를 못 느끼게 만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간 남용익에 관한 연구 다수는 초록본인 『시화총림』 內 『호곡시화』를 통해 진행되었기에, 원본의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본고는 이에 집중하여, '문학론'이라는 범주로 원고를 작성하였으나, 실상은 작가, 작품, 문단에 대한 남용익의 구체적 견해와 태도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남용익은 事大 文翰을 高評하고, 自國 문단을 재단하려는 태도를 지녔으며, 任叔英에 대해 높은 관심을 둔 인물이다. 또한 문학사에 관한 通時的 시각을 바탕으로 중국 문학사를 기술했고, 이를 토대로 作詩의 典範을 제시했다. 전범에서 빈출된 소재인 봄, 가을, 달, 술 등은 『壺谷集』 내 漢詩에서도 상당 수 등장하여 전범의 제시와 作詩가 연관됨을 유추할 수 있다. 이상에서 도출된 사실은 작가론의 관점 뿐 아니라 실제 남용익 한시 작품 분석의 관점에서도 일정 부분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더불어 남용익 전후 시기의 비평, 당대 문학사의 이해에 부족하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This paper was written to derive the missing contents in Hogok-Sihwa(壺谷詩話) and to present views and attitudes on literature of Nam Yong-Ik(南龍翼, 1628-1692). The way is the contrast between Hogok-Sihwa in the Sihwa-Chonglim(詩話叢林) and Hogok-Manpil(壺谷漫筆). Although the issue of 'Is there a unique literary theory of an individual writer?' requires careful consideration, Nam Yong-ik's literary criticism and poetry have been submitted and accepted in the category of 'literary theory'. Nam Yong-ik is one of the recognized literary figures representing the 17th century in name and reality.
However, the research category of 'Literary Theory' resulted in a somewhat overlooked aspect of Nam Yong-ik's actual attitude toward his works and writers. In order to understand his actual appearance as a literary artist, it is necessary to find out what kind of views and attitudes Yong-Ik Nam has toward writers, works, and paragraphs. In the meantime, most of the research on Nam Yong-Ik has been done through the summary version Sihwa- Chonglim. So, there are some unknowns about him.
Nam Yong-Ik highly valued literature related to diplomacy, had an attitude to tailor his own country's literature, and was highly interested in Lim Sook-Young(任叔英). He also described the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based on a historical perspective on literature, and presented an example of writing poetry based on this. Spring, autumn, moon, and alcohol, which frequently appear in the examples, also appear in a significant number of Chinese poems in Hogok-Jip(壺谷集), so it can be inferred that the presentation of the examples and the his poetry are related. It is expected that the facts derived from the above can be used meaningfully to some extent not only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author's theory, but also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actual analysis of Nam Yong-Ik's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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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 후기 伯夷·叔齊에 대한 인식과 淸聖廟 건립의 含意 -「淸聖廟碑」와 「淸聖廟重修碑」를 중심으로 살펴본 小中華 의식과 華夷觀-

저자 : 김융창 ( Kim Yoongcha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5-21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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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 海州 首陽山에 淸聖廟를 건립하고 伯夷·叔齊를 추모하는 새로운 전통이 탄생한 사실에 주목하고, 그 배경과 의의를 고찰하였다.
청성묘는 백이·숙제에게 제향하는 賜額 祠宇이므로, 우선 조선 후기 백이·숙제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이·숙제는 조선 전반기부터 개인의 忠節을 顯彰하기 위한 表象으로 활용되었다가, 倭亂과 胡亂을 겪으면서 對明義理가 대두되었던 조선 후기에는 '조선'이라는 국가 집단의 의리를 드러내는 表象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립되어 賜額을 받은 청성묘는 萬東廟, 大報壇 등과 더불어 조선의 對明義理 및 尊周 의식의 産物이라 할 수 있다.
해주 수양산의 청성묘는 백이·숙제와 동시대의 인물로 여겨지는 箕子와도 무관하지 않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기자를 禮敎와 文明의 전달자로 인식하였고, 이를 小中華의 근거이자 자부심으로 삼았다. 이는 백이·숙제 역시 의리상 周의 疆域을 벗어나 동시대에 기자가 이주한 조선으로 함께 귀의하였을 것이라는 인식으로 확장되었고, 해주 수양산을 이제의 은거지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청성묘의 건립과 인식 제고에는 조선 후기 小中華 의식이 일정 부분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청성묘 건립에 對明義理 및 尊周 의식, 小中華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은 崔錫鼎의 「淸聖廟碑」와 金祖淳의 「淸聖廟重修碑」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최석정의 「청성묘비」는 청성묘가 사액 받은 것을 기념하여 작성된 비문이고, 김조순의 「청성묘중수비」는 청성묘가 사액받은 후 120여년 뒤에 작성된 비문이다. 「청성묘비」와 「청성묘중수비」는 儒家의 人文과 制度를 각각 '明'과 '中國'이라는 초월적 中華로 관념화하고, 조선 그 자신이 小中華로서 기존의 중화를 계승 혹은 대체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백이·숙제는 조선의 海州 首陽山에 은거함으로써 조선에 '의리'의 전통을 뿌리내리게 한 鼻祖가 되었고, 그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청성묘는 문명 국가로서의 자존심과 오랑캐와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규정되었다. 두 작품 사이에는 120여년의 시간적 간극이 존재하였지만 華夷觀에 기반한 소중화주의가 변함없이 작동하고 있었고, 청성묘는 백이·숙제를 통해 조선의 정체성, 곧 '의리[義]'를 表明하는 새로운 전통의 공간으로서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다.


This study focuses on new tradition of establishment The Cheongseong- Shrine(淸聖廟) in Mt.Suyang(首陽山) in Haeju(海州) in the Late Joseon Period to commemorate the Baek-Yi(伯夷) & Suk-Je(叔齊), and examines its cause and significance.
Baek-Yi & Suk-Je were a representations of a individual loyalty for dynasty in early Joseon Period. Then, after Japanese Invasion(倭亂) and Qing Invasion(胡亂), Baek-Yi & Suk-Je were used as representations of a national group called Joseon. In this respect, The Cheongseong-Shrine is the product of loyalty for ming(明) dynasty and respect for the Zhou(周) Dynasty, such as The Mandong- Shrine(萬東廟), The Daebo-Altar(大報壇).
Baek-Yi & Suk-Je are related to Gija(箕子).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tellectuals recognized Gija as a messenger of civilization, which was the basis and pride of Little Sinocentrism. In this notion, intellectuals perception expanded that Baek Yi and Suk-je also migrated to Chosun like a Gija, leaving the Zhou region in order to defend loyalty.
Choi-Seokjeong(崔錫鼎)'s The Epigraph of The Cheongseong-Shrine(淸聖廟碑) and Kim-Josoon(金祖淳)'s The Epigraph of repairing The Cheongseong- Shrine(淸聖廟重修碑) show Sinocentrism and View of Civilized man-Barbarian. These two epigraphs conceptualized the humanities and institutions of Confucianism and called them Ming(明) and China(中國), and suggested the view that Joseon could inherit or replace existing Sinocentrism as a Little Sinocentrism.
As a result, Baek-Yi & Suk-Je became the ancestor of the tradition of loyalty, who lived in Mt.Suyang in Haeju. In addition, The Cheongseong-Shrine established for Baek-Yi & Suk-Je became a pride of Joseon civilization and a space to show the difference from Barbarians.
In conclusion, The Cheongseong-Shrine was created by the combination of Baek-Yi & Suk-Je and Sinocentrism and View of Civilized man-Barbarian, remained as a new traditional space that reveals Joseon's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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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程門 『중용』 주석의 신비화 경향에 대한 주자의 비판

저자 : 주광호 ( Joo Kwangh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1-24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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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程門의 『중용』 주석에서 보이는 신비화 경향에 대한 주자의 비판을 추적 분석하고, 그 사상사적 의미를 구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주자는 자신의 『사서장구집주』에서 정문의 관점을 대대적으로 인용한다. 이 때문에 程朱 계열의 연속성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주자 사서학의 형성과정을 추적해보면, 그가 오히려 정문 주석을 적극 비판한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의 내용은 주로 '이단' 혹은 '불교'라는 것이다.
정문의 『중용』 주석에서 주자가 비판하는 내용은 주로 신비화 경향과 내면화 경향이다. 여기서 신비화 경향에 대한 비판이란 정문 주석이 『중용』의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을 지나치게 어려운 것으로 관념화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특히 내면의 도덕성을 찾아서 확보할 것을 주장하는 도남학과 호상학의 내면화 경향과 연결된다. 주자는 정문의 이러한 경향을 불교와 비슷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단'이라고 비판한다. 일상의 구체적인 현실을 떠나 초월적인 도덕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모두 유학의 본질적인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track and analyze Zhuxi's criticism of The tendency to mystify of Cheng School's Zhongyong Comments and to investigate its historical meaning. In his book, Zhuxi extensively cites the perspective of the Cheng school. For this reason, the continuity of the Cheng-Zhu series is generally recognized. However, tracking the formation process of Zhuxi's Study of Four Books, it can be easily confirmed that he actively criticizes the commentary of the Cheng school. And the content of the criticism is mainly about 'heresy' or 'Buddhism'.
In the commentary on Zhongyong of the Cheng School, what Zhuxi criticizes is mainly about the tendency to mystify, internalize, and indifference to norms. Zhuxi's criticism of the trend of mystification means that the commentator of the Cheng school conceptualizes the everyday and common sense contents of Zhongyong as too difficult. This is particularly linked to the trend of internalization of Daonan School(道南學) and Hushang School(湖湘學) to find and secure inner morality. All attempts to find transcendent morality regardless of everyday reality are not consistent with the essential character of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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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養性堂題詠』攷

저자 : 李東宰 ( Lee Dong-jae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9-27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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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돈암서원의 모태가 되는 양성당과 관련된 시문의 편록집인 『養性堂題詠』을 검토하여, 이 책이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서 생긴 여러 오류를 바로잡아서 관련 연구의 활성화와 문화사업의 활용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다.
『양성당제영』은 김장생이 양성당을 짓고 자신의 동문들과 제자 등 당대 문사들에게 시문을 구하여 수집해 놓은 것을 그의 막내아들인 金棐가 1636년 인멸될까 두려워서 다시 編錄한 뒤 1672년 송시열의 발문을 붙여 成冊한 책이다.
책의 목차는 8경시의 소표제만 제시하여 뒤의 「양성당십영」의 시제와 일치하지 않는다. 산문은 1602년 김장생 본인이 지은 「養性堂記」와 1603년 정엽이 지은 「養性堂記」, 1672년 송시열이 지은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양성당 이전의 정자였던 雅閑亭을 대상으로 한 송익필의 시 3수, 양성당을 대상으로 읊은 김상용 외 15인의 시 34수, 홍천경 외 3인의 「양성당십영」 시 40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성당제영』의 내용은 『여지도서』에 내용의 일부가 전재되어 있고, 『돈암서원지』에는 송시열이 지은 발문과 일부 시의 小序를 제외하고 모두 전재되어 있다. 또한 『양성당제영』에 수록된 시 77수 가운데 각 개인의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는 홍천경 외 4인의 시 29수이다.
申欽의 시 등 일부 시는 개인 문집과 글자의 出入이 있고, 송익필, 김상용, 양경우의 시는 작시 시기 표기가 오류이며, 黃赫 시의 작시 시기인 '白駒'는 '白狗'의 오기이다. 또한 일부 소개 자료의 '松磵'은 李端夏가 아닌 洪天璟이고, 趙翼은 '趙翊'으로, '鄭弘湜'은 '鄭弘溟'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This study examined 『YangseongdangJeyeong(養性堂題詠)』, a compilation of poems related to Yangseongdang, which is the matrix of Donamseowon, designat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in 2019, and contributed to vitalization of related research and utilization of cultural projects by correcting various errors that occurred because this book was not released to the public.
A collection of poems Kim Jang-saeng(金長生) who built Yangseongdang and collected poems from his alumni and literary men of the time is the 『YangseongdangJeyeong』, a book compiled by his youngest son, Kim Bi(金棐), who edited and recorded again owing to his fear that the collection would be extinct in 1636 after that was completed with Song Shi-yeol in 1672 after putting an epilogue of Song Shi-yeol.
The table of contents of the book does not match the title of the later 「Yangseongdangsipyeong(養性堂十詠」 as only the titles of the eight scenery poems are presented. The proses include 「Yangseongdanggi(養性堂記)」 by Kim Jang-saeng himself in 1602, 「Yangseongdanggi」 by Jeong Yeop(鄭曄) in 1603, and the epilogue written by Song Shi-yeol(宋時烈) in 1672. It is composed of Song Ik-pil(宋翼弼)'s three poems for Ahanjeong(雅閑亭), which was a pavilion before Yangseongdang, 34 poems written by Kim Sang-yong(金尙容) and 15 others. for Yangseongdang, and 40 poems of “Yangseongdangsipyeong” by Hong Cheon-gyeong(洪天璟) and 3 others.
The contents of 『YangseongdangJeyeong』 are partially reprinted in 『Yeojidoseo(輿地圖書)』, and in 『Donamseowonji(遯巖書院誌)』, except for the epilogue written by Song Shi-yeol and the short prefaces of some poems, all are reprinted. Also, of the 77 poems included in 『YangseongdangJeyeong』, 29 poems by Hong Cheon-gyeong and 4 others are not included in each individual's anthology.
In 『YangseongdangJeyeong』, dates of poems such as Song Ik-pil(宋翼弼)'s and Kim Sang-yong(金尙容)'s, Yang Gyeong-wu(梁慶遇)'s Chinese poems are written in error, 'Baekgu(白駒)', the date when Hwang Hyeok(黃赫)'s poem was written, is an incorrect spelling of 'Baekgu(白狗)'. Also, 'Songgan(松磵)' is Hong Cheon-gyeong, not Lee Dan-ha(李端夏), and Cho Ik(趙翼) is 'Cho Ik(趙翊)', and 'Jeong Hong-shik(鄭弘湜)' should be corrected to 'Jeong Hong-myeong(鄭弘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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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邵南이 星湖에게 보낸 서간의 성격과 家藏 書簡의 중요성

저자 : 구지현 ( Koo Jeahyo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5-29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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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은 근기 남인을 대표하는 실학자이다. 소남 윤동규는 성호 이익의 첫 번째 제자로서 성호학파의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학자이다. 성호와 소남은 평생 서간을 주고받으며 실제 생활에서 예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교환되기도 하였고 경전에 관한 학술적인 토론이 오갔으며, 사제 간에 관심을 공유하고 확대시켜 나가면서 학파 내에 학문적인 진전을 이루어나가기도 하였다. 정치적인 문제 및 학파의 분열로 인해 성호의 문집이 불완전한 데 비해 소남의 가장 문집은 간행되기 전 초고의 상태이므로 원형에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성호학파의 사상 및 학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효한 자료이다.
그런데 소남 집안에 소장된 원찰과 소남 문집에 실린 서간을 비교해 보면 사적인 내용이 제외된 채 학술적인 내용만이 선별되어 실렸고, 문집이 편집된 후에도 개인적인 내용은 대부분 산삭하도록 표기되어 있다. 편집자가 소남의 학문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거듭해서 선별하고 산삭해 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집에 실리지 않은 내용 및 원찰을 포괄하여 연구하여만 성호학파의 실제에 접근할 수 있다.
소남 문집에 실리지 않은 원찰 28편을 살펴보면 사회적인 교유나 학문의 전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가장 서간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상시적으로 안부를 묻는 서간의 내용 속에 여타 제자들과 성호와의 교유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소남의 개인사를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성호와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친밀감을 지니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다.
성호학파에서의 소남의 역할과 학문을 연구한다면 학문적인 면뿐 아니라 구체적인 실제 교유의 모습과 사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가장 서간의 연구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Seongho I-ik was a scholar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represented by Namin at Geungi region. Sonam Yun Dong-gyu was a scholar who had played a main role to lay a foundation of Seongho school as a first student of Seongho I-ik. Seongho and Sonam had exchanged letters and the idea of how to apply a matter of courtesy to a real life throughout their whole life and had scientific discussion about sacred book. Additionally having a teacher and a student relationship, they had accomplished academic progress as sharing and expanding their interest. Compared with Seongho anthology, it was imperfect due to a political matter and the split within school, however, the Letter Owned by Sonam Family is a meaningful material to understand Seongho school's idea and study because it was a rough draft before the publication, which was relatively similar with the original form.
However when we compare with two materials which are the original form of the letter owned by Sonam family and the letter published in a Sonam anthology, chosen scientific content was only published as excepted personal content. After the anthology was edited, most of the personal content is marked to delete. Because editor have been selecting and deleting focusing on the scientific work of Sonam. Therefore only if we study the content and the original form of the letter which were not published in anthology could be possible to get near to the substance of Seongho school.
Looking at the twenty-eight original form of letter which were not published in Sonam anthology, we could figure out the fact that the Letter Owned by Sonam Family shows in a concrete way how social association or instruction of one's study had been progressed. We could also check the substance of exchange with Seongho and other students out in the letter about asking about welfare at all time. Moreover, it could be possible to see not only Sonam's personal affairs, but also personal intimacy with Seongho as much as they have.
Should the role and study of Sonam in Seongho school be researched, it will be essential to research the Letter owned by Sonam Family, which shows not only a side of study but also the aspect of real exchange and personal ma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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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초 서적간행의 토대 구축과 종이의 공급

저자 : 노요한 ( Johann Noh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4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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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즉위 초부터 명나라로부터 經史子集을 아우르는 학문 제방면의 서적을 수입하고자 부심하였다. 책은 당대에 지식전파의 가장 유력한 미디어로서 다양한 지식정보를 싣고서 조선으로 건너왔으며, 조선조정은 책에 실려서 건너온 지식정보를 연찬함으로써 국가 경영과 관련된 최신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중국으로부터 당대의 주요 서적을 구득하고 이를 경연에서 연찬함으로써 그 서적에 담겨 있는 학술문화의 성과를 섭취하고, 섭취한 학술문화를 국내에 다시 확산함으로써 유교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그런데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된, 서적의 편찬 및 간행을 통한 지식정보의 재확산을 위해서는 책을 만들어낼 물질적 기술적 준비와 함께 이를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산시킬 행정적 준비가 요구되었다. 그렇다면 건국 초기 조선조정은 이러한 책이라는 미디어를 통한 지식정보의 축적과 재생산, 확산을 위해 어떠한 행정적 기반을 마련하였을까. 또 그러한 지식정보의 전달자로서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조선조정은 어떤 인적 물적 토대를 구축하였을까. 본고는 조선초 세종의 명으로 이루어진 『사서오경대전』과 『성리대전』의 복각 사례를 중심으로 조선초 서적 출판을 위해 구축된 행정 체계와 여러 물적 토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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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물질로서의 책과 유만주(兪晩柱)의 도서 구매 책주릅 조씨(曺氏)와의 거래를 중심으로

저자 : 김하라 ( Kim Hara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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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서울 남촌의 독서인 兪晩柱가 책주릅[冊儈] 曺氏와의 서적 거래를 기록한 『欽英』의 자료를 분석해 18세기 조선에서 책이라는 재화가 갖는 물질성의 문제에 접근해 보았다.
유만주는 1784년 4월부터 1785년 7월까지 고가의 도서를 여러 종류 구매했다. 당시 그가 주로 거래한 책주릅 조씨는 조수삼과 정약용 등 동시대인이 목격한 '조신선'과 동일인이다. 1784년 4월 23일 유만주의 倉洞 집을 처음 방문한 조씨는 『珮文韻府』 등 4종의 책을 의뢰받았고, 유만주가 明洞의 고급주택으로 이주한 1784년 8월 이후로도 계속 그를 방문해 『文選』, 『패문운부』, 『人外脞史』, 『思辨錄輯要』, 『資治通鑑綱目』 및 그 시리즈에 해당하는 『續資治通鑑綱目』과 『資治通鑑綱目發明』 등 3종의 역사서 『合綱』까지 160냥 어치의 책을 차례로 판매했다. 한편 유만주는 책값을 융통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였고, 조씨는 요청받은 도서목록집이나 중국본 역사서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의 거래가 갈등을 보인 1784년 11월 이래 유만주는 도서목록집 『浙江書目』을 소유한 '書客'과의 교유를 시작하며 호혜적 교환의 방식으로 원하는 책을 빌려 보기 시작했다. 이 서객은 『輸廫故人錄』과 『三朝要典』 寫本, 그리고 閔聖徽의 장서인이 압인된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추후 『흠영』에서 '凜'으로 불리게 되는 교유인물 閔景涑이 확실하다.
유만주와 민경속 사이의 교유가 본격화되며, 유만주와 책주릅 조씨의 거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유만주는 1784년 12월 22일에 『西遊記』를 구매하고 『합강』의 잔금을 지불했으며, 1785년 2월 3일에 『汪南溟集』 등 1냥 어치의 책을 구입했다. 그가 조씨에게 마지막으로 산 책은 『松雪學士全集』인데 이때 그는 돈 대신 해주 먹 20개를 지불했다. 조씨는 1785년 7월 18일에 유만주의 명동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고, 유만주는 이틀 후인 7월 20일에 도로 창동으로 집을 옮겼는데 이 이주는 유만주 가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닥쳤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책주릅 조씨는 물질적 형편이 나빠진 유만주를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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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세기 연행록에 나타난 아편, 아편전쟁

저자 : 임영길 ( Yim¸ Young-gil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7-10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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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은 본래 설사와 복통의 치료제로 알려졌으나 그 환각 작용과 중독성으로 인해 기호품으로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조선에서 아편이라는 물질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병증을 치료하는 약재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 상품으로서의 아편은 유통된 적이 없었으며, 그에 대한 지식도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조선의 연행 사절단이 아편으로 인해 내우외환을 겪는 중국의 상황을 접하게 되면서 아편의 유래, 아편 흡연도구와 방식, 아편의 효용과 중독에 따른 폐해, 아편전쟁의 경위와 내막 등에 관한 정보들을 입수하기 시작하였다. 1848년에는 역관 박희영이 아편 흡연 도구를 국내로 들여오다 적발되는가 하면, 이 일을 계기로 조정에서 아편연에 대한 금령을 내렸으나 결국 조선 내부에도 아편이 침투하여 심각한 위해 물질로 자리하게 된다.
아편(연)에 관한 기록은 19세기에 저술된 시화나 필기 등 일부 자료에 산재해 있는데, 특히 연행록에서 조선 사절단이 중국 현지에서 직접 견문한 아편 중독의 실태, 당보나 전언 등을 통해 입수한 영국과의 분쟁 상황, 아편 정책을 둘러싼 만주족과 한족 관원의 정치적 대립 등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포착하고 있어 주목된다. 李圭景의 鴉片煙辨證說 에는 1820년대부터 연행을 통해 수집된 아편 관련 정보들이 조선 사회에 공유된 정황이 드러나 있다. 또한 尹程의 『西行錄』(1844), 權時亨의 『石湍燕記』(1850)에 수록된 한족 지식인들과의 필담에는 아편의 해독성 및 조선에의 유입을 경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영국의 강한 군사력, 청 관료 사회의 부패, 은 유출로 인한 재정 고갈, 아편 금지책의 혼선 등의 내밀한 사정까지 생생하게 보고되어 있다. 아편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관심이 서양 세력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으로 전환된 배경에 연행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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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문고전문헌의 기계번역 평가방안 탐색

저자 : 정성훈 ( Jung¸ Sunghoon ) , 하지영 ( Ha¸ Jiyoung ) , 김우정 ( Kim¸ Wooje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55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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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계번역을 이용한 한문고전 번역물의 품질평가 방법을 살펴보고, 품질평가의 객관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번역품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고립어인 한문 고전문언문은 문체가 다양하고 문법상의 변화도 복잡하다. 또한 기계번역은 평가기준·평가목적·평가비용·텍스트의 종류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하므로 신뢰성이 높고 간편한 번역 품질 평가모델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자동평가는 기계번역의 어떤 요소가 번역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점수가 가장 높은 기계번역 모델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기계번역 품질에 대한 타당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평가기준도 평가모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대량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수동평가가 필요한데, 평가자 각각의 경험이나 수준이 존재하고, 평가기준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으며, 평가 환경이나 차수에 따른 차이 등 주관에 치우칠 우려도 불식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동평가와 수동평가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기계번역기의 성격과 목적에 맞는 평가방법을 찾아 적용하되, 기계번역 모델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하여야 하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평가방법이 기계번역 모델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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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데이터 정제의 관점에서 본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 검토

저자 : 최지연 ( Choi¸ Ji Yeon ) , 조성덕 ( Cho¸ Sung Duk ) , 최동빈 ( Choi¸ Dong B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9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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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단순한 데이터베이스의 서비스보다 DB의 재가공 또는 DB 융합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 서비스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본고는 데이터 정제의 관점에서 현재 구축된 한국 고전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한국고전종합 DB의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를 검토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삼국 시대부터 대한제국 말기까지 저작된 한국의 문집 중에서 주요 문집을 선정하고, 표점·영인하여 간행한 것으로, 한국고전번역원은 지난 1999년부터 2021년까지 전체 1,259종 500책에 대한 DB 구축 사업을 진행하였다. 본 연구진은 한국문집총간 DB를 기초데이터로 사용하는 과제를 진행하면서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를 검토하였다. 데이터 정제에 영향을 주는 장애요인을 '페이지 번호 불일치', '데이터 추가', '데이터 누락', '원문 이미지와 XML 한자의 불일치'의 네가지로 나누고 그 원인을 고찰해 보았다. 본고에서 살펴본 한국문집총간 XML에 대한 논의가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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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디지털화된 이종 언어자원의 연계와 인문학 연구의 확장성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과 KorLex의 연동 가능성 검토를 통해 -

저자 : 윤애선 ( Yoon Aes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5-24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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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이종언어자원인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이하, 『통합』)과 한국어 어휘 의미망인KorLex 의 연동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상이한 동기와 배경에서 개발된 두 언어자원은 양립하기 어려운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구조를 갖고 있다. 2절과 3절에서는 각각 KorLex 와 『통합』의 특성을 살펴보고, 4절에서는 두 이종 언어자원 간 연계 가능한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또한 현 단계에서 극복해야 할 한계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향후 한국어 사전연구의 활성화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두 언어자원의 유일한 연계점은 한자로 된 표제어휘인데, 접점의 그물코가 매우 크고 성글기 때문에 현 상태의 그물로 당장 거둬 올릴 수 있는 유용한 결과는 크지 않다. 하지만, 두 언어자원에 연계점을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과 『통합』의 연동성은 좀 더 가시적이고, 기존 한국어 사전의 보완 또는 편찬 방향에 시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통합』의 풍부한 정보를 이용하면, 한국어 사전에서 아직 결여된 부분인 어휘의 역사문화정보를 상당히 보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편찬될 사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디지털화된 다양한 한국어 관련 사전이 동참한다면 좀 더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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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李奎報 詔令類 散文 硏究

저자 : 김중섭 ( Kim¸ Jungseop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5-27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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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李奎報의 詔令類 散文에 내재되어 있는 글쓰기 방식을 살피고 의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규보가 작성한 조령류 산문에는 敎書, 批答, 制誥 등이 있다. 당시 관각문의 대다수를 변려문체로 지었기 때문에 이규보의 조령류 산문 역시 변려문체로 이루어진 것이 상당수이다. 하지만 이규보는 前代와 當代의 문풍에 대한 반발심과 문풍을 개혁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므로, 모든 유형을 변려문체만 활용하여 지은 것은 아니다. 그의 조령류 산문에는 변려문체와 산문체가 공존하며 변려문체와 산문체가 혼재되어 있는 형식도 있다.
이규보는 다양한 전고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장중한 풍격을 이루었고, 옛 문인이 사용한 구절을 알맞게 변용하였으며, 전고를 적게 써가며 자신만의 용어를 고안해내기도 하였다. 또한 자신의 뜻을 절실히 전달하기 위하여 문체에 변화를 주는 등 의도적인 글쓰기를 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이규보의 조령류 산문에도 그가 사적으로 지은 문장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문학적 성취와 글쓰기 방식, 그리고 좋은 문장을 짓기 위한 고뇌가 담겨 있음을 방증한다. 이규보와 그의 문학에 대하여 보다 입체적인 파악을 하기 위해서 조령류 산문을 비롯한 관각문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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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식민지시기 경향(京鄕)한학자들의 교유 - 변영만, 조긍섭과 정인보, 하겸진의 교유를 중심으로

저자 : 김진균 ( Kim Jin-ky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5-29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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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식민지시기에 전근대 학술을 표방하는 한학자들은 상심과 소외감을 품고, 상심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아 결속을 강화하였다. 구시대에 귀속되는 한학을 표방하며 도학과 문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상심의 원인이 크게 다르지 않았겠으나, 한학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 전망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씩 결이 달랐다. 그것은 한학을 표방하면서도 어느 방향으로 변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며, 그 사람의 성향 혹은 체질과 관련될 것이다. 상심을 공유하며 넓은 의미의 교유의 자장에 함께 묶인 사람들도 이 전망의 결에 따라 친분의 농담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조긍섭이 특히 변영만과 각별한 교유를 갖게 되고, 정인보가 하겸진과 더욱 긴밀한 교유를 하게 된 것은 상대방에게 전망의 공유 영역을 더 많이 발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망 공유 가능성을 보고 적극적으로 교유를 청하는 것도 각각의 주목할 만한 점이지만, 영남권에서 활동하던 같은 세대의 거유들과 서울의 문화계에서 활동하던 한 세대 아래의 명망가들이 쌍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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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三國遺事』 「古朝鮮 條」 기록에서 '古'의 의미와 그 시간적 범위

저자 : 李鏡淑 ( Lee¸ Keoungsuk ) , 文致雄 ( Moon¸ Chiu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1-3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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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古의 시간사적 의미인 昔과 古代에 대한 논의이며, 특히 『三國遺事』「古朝鮮條」에서 古朝鮮이라 칭한 그 古의 의미와 시기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정리에 중점을 두었다. 연구의 방법은 우선 고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주요 문헌의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古의 시기와 그 구체적인 시대를 세분화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三國遺事』「古朝鮮條」에서 해당 시기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 古의 시대와 비교하고 구분, 정리하였다.
「古朝鮮條」에서 『古記』를 인용하여 기록한 “昔有桓國”에서 桓國이 있었던 昔의 시대는 上古에 해당함을 보였다.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당시의 관직명인 “風伯, 雨師, 雲師”에 대해 『山海經』, 『史記』등을 포함한 고대를 기록한 문헌 분석 결과 그 시기가 上古시대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문헌 분석을 통해 나타나는 古에 대한 시간적 구분은 上古, 中古, 近古(後古, 下古)의 세 구간으로 나누고 있는데, 上古와 中古사이에 治水라고 하는 막대한 사건과 이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대를 古의 중심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본 연구에서는 이를 구분하여 本古로 하였다. 『玉篇』에 보면, 古는 “久也, 始也”라 하여 오래전 처음 시작하던 때라 한 내용이 보이는데, 本古를 본격적인 古의 시작으로 보고, 이보다 앞선 시대의 上古를 昔으로 하였다. 이렇게, 昔이라고도 하는 上古와 中古사이의 本古시대를 따로 분류하여 시대 구분의 한 기간으로 삼아, 단군조선을 건국한 시기를 本古로 하였다. 이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伏羲神農, 蚩尤'로 대표되는 시기는 昔인 上古시대로, 堯舜時代를 비롯한 虞夏, 殷과 고조선 건국 시기는 上古와 구분하여 本古의 시기로 분리하였다. 『三國遺事』의 “與高同時”가 의미하는 시대는 바로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바로 堯舜시대와 같은 古의 시대인 本古라고 구분할 수 있다.
中古는 보통 周文王시대로, 『三國遺事』「古朝鮮條」의 “周虎王卽位己卯(周나라 虎王이 즉위한 己卯년)”에 보이는 시기를 말한다. 近古에 해당하는 기록은, “壇君乃移於藏唐京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壽一千九百八歲。(단군이 藏唐京으로 옮겨 살다가 후에 살 곳을 아사달의 산에 만든 때는 단군이 命을 할 때부터 1908년이 된다)”의 내용 중에서 “壽一千九百八歲”이라고 한 것을 근거로 나라를 건립하고 1908년이 지난 시점은 단군 조선이 건국된 B.C. 2333년으로부터 1908년이 지난 시기인 B.C. 425년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C. 425년은 공자가 사망한 B.C. 475년 보다 50년 後의 시대로, 이 의미는 이때까지도 왕검 조선이 존속하였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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