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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조희룡(趙熙龍)의 임자도 유배기 한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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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趙熙龍)의 임자도 유배기 한시 연구

A Study 0n Cho Hee-ryong’s Exile poetry in Imja-do

강혜선 ( Kang¸ Hyesun )
  • : 한국한시학회
  • : 한국한시연구 2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0월
  • : 157-187(31pages)
한국한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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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절구 연작의 화인적(畵人的) 계승
3. 일상 정감과 희작(戲作) 성향
4. 한시로 표현한 예술론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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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 회화의 예술적 성취와 예술론(시서화론)이 일찍부터 조명받은 것에 비해, 그의 한시는 해설 차원에 머문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본고는 한시 작품론의 측면에서 그의 유배기 한시를 재조명하였다. 조희룡은 만년에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되어 3년 동안 살았는데, 유배기의 한시를 수록한 『우해악암고』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양상을 분석하였다. 조희룡은 조선 후기 성행한 절구 연작시를 선호하였다. 유배 도중과 유배지에서 직접 바라본 풍경을 그린 사경시(寫景詩)에서 소폭의 산수화 같은 정경을 만들어 보였으며, 회인시(懷人詩)의 전통을 계승한 <회인절구>에서는 특히 화가의 안목으로 대상 화가의 본령을 서정적으로 품평하였다. 한편, 조희룡은 유배 생활의 일상 정감을 유쾌한 어조로 토로하였는바, 스스로 희작(戲作)이라 칭한 작품들을 주목해 보았다. 희작 성향의 한시에서는 불교의 언어가 농담과 해학의 언어로 바뀌는 등 시어의 활용이 돋보였는데, 이는 암울한 유배지에서도 즐겁고 유쾌하게 살려고 한 그의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배지에서 조희룡이 몰두한 세계는 바로 시화(詩畫)였다. 그가 주장한 시화일체론(詩畫一體論)의 핵심은 화의(畫意)로 시정(詩情)이나 시경(詩境)을 만드는 창작 방법이라 할 수 있고, 그는 그러한 실례를 자신의 한시 창작에서 구현해 보였다. 조희룡이 문인의 시와 차별되는 화가의 시를 추구하였던 것이라 보인다. 유배지에서 시화에 몰두하여 자유자재로 창작하는 희열을 조희룡은 유희삼매(遊戲三昧)라는 말로 지칭하였으며, 그러한 경지에 이른 자신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Cho Hee-ryong's artistic achievements and art theory have been under the spotlight from an early age. On the other hand, I think that his Chinese poems stayed at the level of commentary. Therefore, this paper tried to re-examine his exile poetr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analysis of works. Cho Hee-ryong was exiled to Imja-do, Jeolla-do in his later years and lived there for three years. I analyzed the personality and characteristics of his exile poetry using 『Uhaeakamgo』, which contains the works of poetry from this period. He preferred to write a series of short poems popu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his poems depicting the scenery he saw during his exile and directly from the place of exile, he made a small landscape like a landscape painting. In addition, in < Hoein Jeolgu (懷人絶句) >, which inherits the tradition of his Hoein poetry(懷人詩), he especially lyrically evaluates the essence of a specific painter based on his own perspective as a painter. His poems narrated in a pleasant tone the daily feelings of exile, and he called himself a playful poem. Even in his poems, Buddhist language was used for jokes and humor. This seems to reflect the attitude of his life that he tried to live happily in exile. The world that Cho Hee-ryong was immersed in in exile was poetry and painting. He insisted on the traditional theory that poetry and painting are one, and further suggested a creative method of writing poetry through painting. This is a method of borrowing the meaning of a painting(畫意) and creating a poetry scene(詩境). He embodied such a creative method in his own poetry. Cho Hee-ryong pursued the poetry of a painter that was different from that of a writer. He referred to the joy of creating freely by immersing himself in poetry and painting with the word 'Playing Sammae(遊戲三昧)', and he also embodied himself in such a state of joy in his poems.

UCI(KEPA)

I410-ECN-0102-2022-800-000904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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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연간
  • : 1598-0545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3-2022
  • :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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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권0호(2022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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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西州 曺夏望의 삶과 시세계

저자 : 강석중 ( Kang Suk-jung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2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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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州 曺夏望(1682~1747)은 肅宗朝와 英祖朝에 걸쳐 활동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11년 進士試에 壯元及第하여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1734년경 결성된 西泉梅花社라는 詩社에서 중심인물로 활동한 바 있다. 1742년 江陵府使로 부임하여 鏡浦臺를 중수하고 上樑文을 지었는데, 뛰어난 문장으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1746년 寧越府使로 전임하였다가 병으로 사퇴하고 驪州로 돌아와 요양하다가 생을 마쳤다. 문집으로는 1826년 申綽이 편차하고 1854년 고손자 曺錫雨가 간행한 『西州集』이 전한다. 총 11권 중 권2, 권3, 권4에 시가 실려 있다. 권2에 「模擬錄」, 「軟香錄」, 「菟裘錄」, 「龜城塤唱錄」, 권3에 「西遊錄」, 「南征錄」, 「龍蛇錄」, 「宜城錄」, 「梅社酬唱錄」, 「赤城錄」, 「嶽海錄」, 「臨瀛錄」, 「會稽錄」, 권4에 「傷悼錄」이 편차되어 있다.
「模擬錄」에 실린 <相逢行>, <靑樓曲>, 「軟香錄」에 실린 <赤城倅朴季良師漢別語>, 「菟裘錄」에 실린 <任士強用杜韻寄來, 依韻却寄>, 「臨瀛錄」에 실린 <鏡浦㙜>, 「會稽錄」에 실린 <越山志感> 등 6수가 『大東詩選』에 선입되어 후대의 高評을 받았다. <鏡浦㙜>는 특히 높이 평가를 받아 鏡浦臺와 大關嶺을 노래한 역대의 훌륭한 작품 가운데 한 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746년에서 1748년 사이 江原道觀察使 金尙星이 주관하여 十境圖와 66수의 題詠詩를 合帖하여 엮은 『關東十境』에 조하망의 시 9수가 실려 있다. 두 수는 문집에 실리지 않았고, 여섯 수가 1739년 金剛山 유람 시기의 작품을 모은 「嶽海錄」에, 한 수가 「會稽錄」에 실려 있다.


Seoju(西州) Jo Ha-mang(曺夏望, 1682~1747) is a writer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o was active throughout the Sukjong dynasty and Yeongjo dynasty. In 1711, he passed as senior in Jinsa examination, where his literary competence was recognized. He served as a central figure in a poetry company called Seocheonmahwasa(西泉梅花社) which was formed around 1734. In 1742, he was appointed as the governor of Kangreung(江陵), repaired the Kyeongpodae(鏡浦臺) and wrote the introduction. In 1746, he transferred to the governor of Yeongweol(寧越), but resigned due to illness. As his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Shin jak(申綽) deviated in 1826, and published in 1854 by his great-grandson Jo Seok-woo(曺錫雨), 『Seojujip(西州集)』 is reported. Out of a total of 11 volumes, Volume 2, Volume 3, and Volume 4 contain poems.
Four poems including < sangbonghaeng(相逢行) > in Volume 2, Two poems including < Kyeongpodae > in Volume 3, were selected for the 『Daedongsiseon(大東詩選)』 and received high praise from later generations. < Kyeongpodae > was particularly praised and was selected as one of the greatest works of all time that sang Kyeongpodae and Daekwanryeong(大關嶺).
Nine poems by Jo Ha-mang are included in the 『Kwandongsipkyeong(關東十境)』, a compilation of poems, organized by Kim Sanh-seong(金尙星) between 1746 and 1748. Two numbers are not included in the collection of literature. Six numbers are listed in 「Haeakrok(嶽海錄)」, a collection of works from the visit to Mt. Geumgang in 1739. And one number is listed in 「Hoigyerok(会稽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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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凌壺觀 李麟祥의 한시 세계

저자 : 강혜선 ( Kang Hye-su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5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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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8세기 文人畵의 대가로 알려진 李麟祥의 한시작품을 조명하였다. 삶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 순간의 심회를 서정적으로 토로하는 한시야말로 이인상이 스스로 밝힌 삶의 면면들이고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그가 14년의 관직 생활 중 쓴 작품들을 보면, 이인상은 大明義理와 排淸意識을 기반으로 당대의 정치 현실을 강렬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미관말직에 매인 자신을 자탄하고 자조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悲感은 궁극적으로 산수 간 은거를 꿈꾸게 하였다. 가난한 처지에 친구들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서울 남산 자락에 마련한 집 凌壺觀에서 쓴 한시작품들은 대체로 생활의 여유와 운치를 발휘하였다. 뜻과 취향을 같이하는 벗들과 교유하거나 雅會에 참석하여 쓴 시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을 잠시 멈추고, 문인으로서 화가로서의 즐거움과 취향을 마음껏 구사하였다. 꽃과 나무를 가꾸는 생활, 능호관 주변의 산수를 즐기는 일상을 유쾌하게 읊었으며, 연꽃이나 매화를 독특한 심미적 방식으로 감상하는가 하면, 시서화를 한자리에서 벗들과 함께 창작하고, 서화·골동품을 감상, 품평하는 예술·문화 활동을 자세하게 읊고 있다. 한편, 이인상이 잘못된 현실을 벗어나 온전하게 자신을 지키는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 산수 여행과 은거였다. 그는 금강산, 여주, 단양 등을 여행하며 많은 기행시를 창작하였고, 특히 그가 최종 은거지로 생각한 단양에 잠시 머물며 龜潭의 勝景을 노래하였다. 이인상의 산수기행시는 경물의 감각적,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기보다 성리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산수와 내면의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This thesis illuminated on the poetic works of Lee Insang, known as the master of literary painting in the 18th century. Poetry captures meaningful moments in life and lyrically expresses the feelings of those moments. In this respect, Lee Insang's poems are the aspects of life that he revealed himself, and can be said to be a confession of himself. Looking at the poetic works he wrote during his 14 years of public service, Lee Insang strongly criticized the political reality of the time based on the Loyalty to the Ming Dynasty and antipathy for the Qing dynasty. In addition, he lamented his condition of not being able to quit a low-ranking office and ridiculed himself. Such a feeling of sadness ultimately led him to dream of hiding in nature. With financial help from his friends, he got a house called Neung Hogwan in Namsan, Seoul. In general, the works written in that house are full of leisure and fun of life. The poems he wrote while interacting with friends who share his will and taste, or attending a meeting, stopped criticizing reality for a while and expressed his enjoyment and taste as an artist as a writer. He delightfully recites the daily life of caring for flowers and trees, and enjoying the landscape around the house. In addition, he wrote in detail about artistic and cultural activities such as appreciating lotus and plum blossoms with his friends in a unique aesthetic way, creating paintings and poems in one place, and appreciating calligraphy, paintings, and antiques. Meanwhile, he enjoyed traveling to escape the political realities of his time. He traveled to Mt. Geumgang, Yeoju, and Danyang, and wrote many travel poems. Finally, he stayed for a while in Gudam, Danyang, the land of retreat he had dreamed of from early on, and wrote poetry about the beautiful scenery there. His travel poetry has a strong tendency to pursue harmony between nature and human beings based on Neo-Confucian thinking rather than focusing on the sensuous and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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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로 그린 풍속화-李奎象의 詩世界

저자 : 이종묵 ( Lee Jong-mook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8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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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는 18세기 무렵 자연스러움과 질박함이라는 고대 시의 정신을 배우되, 眞景과 眞情을 시에 담아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났다. 조선의 시인이 조선의 풍광을 직접 보고, 이에 대한 흥감을 적어내는 眞詩가 이 시기 한시사의 화두로 등장하였다. 이것이 18세기 한시사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창작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보여준 작가가 李奎象이다. 이규상은 농촌과 어촌의 풍경을 산수화가 아닌 풍속화처럼 아름답게 그렸다. 唐詩를 배웠지만 조선인의 정감으로 연결시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이규상이 시로 그린 풍속화는 金弘道의 그림에 어울릴 만하다. 鄭敾의 시대에 살았지만 김홍도의 그림을 시로 먼저 실현해 보인 것이 그의 시가 갖는 한시사의 성취라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이규상 시의 특징은 李瀰, 李亮淵 등의 시에서도 확인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In the 18th century, Korean poetry learned the spirit of ancient poetry such as naturalness and simplicity, but it was argued that poetry should contain the 景[Scenery] and Emotion[情] that the poet saw and felt. True poetry[眞詩], in which Joseon poets directly see Joseon's scenery and write down their excitement, emerged as a topic of conversation for poetry during this period. This was an important trend of poetry in the 18th century.
The author who best showed this trend through creation is Lee Gyu-sang李奎象. Lee Gyu-sang painted the scenery of rural and fishing villages beautifully like a genre painting, not a landscape painting. Although he learned Tang poetry, he opened a new stage by connecting it with the affection of the Joseon people. The genre paintings drawn by Lee Kyu-sang in poetry are suitable for the paintings of Kim Hong-do. Although he lived in the era of an artist named Jeong Seon, it is the achievement of his poem to realize Kim Hong-do's painting first with poetry. In addition, It is also noteworthy that the characteristics of Lee Kyu-sang's poems are confirmed in poems such as Lee Yang-yeon李亮淵 and Lee Mi李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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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餘窩 睦萬中의 삶과 시세계

저자 : 백승호 ( Baek Seung-ho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1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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睦萬中은 18세기 남인 문단에서 그 시적 성취를 인정받은 시인이다. 그는 2000수가 넘는 한시를 남겼는데, 본 논문에서는 그의 생애의 특징적 면모를 요약하고 한시의 문예미적 성취에 주목하였다.
그는 채제공과 함께 남인 문단의 시회를 이끌며 시사의 중심 문인으로 문학 활동을 하였다. 본 논문은 18세기 남인 문단에서 그의 핵심적 위상을 확인하는 논의를 정리하였다. 그의 한시는 백성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기속시에 장처를 보였다. 관조의 시선 속에 풍자의 뜻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강개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는 문과에 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인이라는 소수 정파 출신이라는 점, 당시 권력자의 눈 밖에 났다는 점, 채제공 등 남인의 정국 위상이 불리했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상당 기간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산인의 처지로 일생의 상당 기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는 산인의 처지에서도 경세 의지를 보이는 작품을 지었다.


Mog Manjung is a poet whose poetic achievement has been recognized in the Namin literati of the 18th century. He wrote more than 2,000 poems. In this thesis, the characteristic aspects of his life are summarized and attention is paid to the literary and artistic achievements of his poetry.
He led Namin literary society and engaged in literary activities as a central writer of current affairs with Chae Jegong. This thesis summarized the discussion that confirms his key status in the 18th century Namin literati. His poetry was good at calmly documenting the lives of the people. In the gaze of contemplation, the meaning of satire was contained, and at times, a strong heart was expressed. Even though he passed the Civil Exam, due to the fact that he came from a minority faction, that he was outside the eyes of those in power at the time, and that his political status was unfavorable, he was unable to advance to the post for a considerable period of time. So he stayed in the forest of outsiders, but he always has the will to manag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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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金鍾秀의 편찬 활동과 시세계의 또다른 국면

저자 : 장유승 ( Jang Yoo-seung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4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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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필사본 『夢梧集』 발굴 이후로 본격화된 김종수 연구에 일조하는 의미에서 산견되는 그의 저술을 정리하는 한편, 만년작을 중심으로 그의 시를 검토함으로써 선행연구의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고자 한다.
김종수는 정조 연간에 정승을 역임하며 외척의 정치 개입에 반대하고 이른바 청류 정치를 주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여 종 이상의 저술을 남겼으며, 그 대부분은 국왕의 명 또는 국정 운영의 필요에 의해 편찬한 것이었다. 김종수는 300편 이상의 시를 남겼으며, 그중 대부분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지은 것으로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무가 바빠지거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시에 기울인 관심은 저조해졌다. 은거 지향의 의지가 뚜렷한 초년작과 달리, 그의 만년작에서는 출사를 후회하거나 은거를 지향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활자본 『몽오집』은 근대적 문학관에 따라 선별한 시문을 엮은 것이며, 관각문인으로서 김종수의 진면목은 필사본 『몽오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This thesis aims to supplement previous studies of Kim Jongsoo by discover his literature and the another aspect of his poerty. Kim Jongsoo was a minister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He opposed the the political intervention of the maternal relatives, and advocated politics by clean stream. There are more than 20 types of writings that he has been involved in compiling. These writings were compiled by the king's orders or by the needs of state affairs.
Kim Jongsoo wrote more than 300 poems, and most of his poems were written naturally in everyday life, and it is hard to find anything to convey a special message. As public affairs became busier or political status increased, interest in the poerty decreased. Kim Jongsoo's collection of writings was distorted by the editor during the compilation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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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醉松 李羲師 詩의 一考察-詩癖과 酒癖을 중심으로-

저자 : 최상근 ( Choi Sang-keu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7-193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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醉松 李羲師(1728~1811)는 楊根을 기반으로 살았던 시인이다. 그는 타고난 詩才를 지녔을 뿐 아니라, 家學의 전통과 다양한 교유 등을 통해 문학을 성취하였다. 가학으로는 '小北五君子'라 불리는 耻庵 宋瓆과 悔軒 李庭綽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睦萬中, 丁範祖, 申光洙·申光河 형제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취송의 제자인 趙彦林은 『二四齋記聞錄』에서 취송을 '근세의 종장'이라 불렀으며, 강준흠의 『三溟詩話』에서는 '山野詩의 일인자'로 지칭하였다. 취송은 '조선의 杜甫'로 불릴 만큼 杜詩를 좋아하고 두시에 정통하였다.
취송은 다양한 주제를 가진 시 740여 수를 남겼는데, 일상의 애환을 다룬시,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시뿐 아니라 詠物詩와 哀悼詩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 논문에서는 그의 영물시 몇 편을 소개하였다. 특히 그가 일생 동안 영물시를 창작했으며, 생애 중요한 시기마다 영물시를 남긴 점에 주목하여, 영물시를 통해 그의 일생을 개관해 보고자 하였다.
취송은 평생 벼슬하지 못하고 궁벽한 시골에서 경제적 궁핍 속에 생활했으며, 중년 이후 아들과 아우, 아내, 친구들과 잇달아 사별하는 등 일생이 평탄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궁핍과 고통을 시와 술을 통해 이겨내려 했다. 그는 詩癖과 酒癖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할 만큼 시와 술을 사랑했다. 그가 시와 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에게 시와 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의 작품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Chwisong Lee Hui-sa(醉松 李羲師, 1728~1811) was a poet who has lived in Yang-geun(楊根). He had a natural gift for poetry, and achieved his literature through the tradition of family scholarship and various social intercourse. As for family scholarship, he was greatly affected by Chiam(耻庵) Song Jil(宋瓆) and Whoiheon(悔軒) Lee Jeong-jak(李庭綽), who were called 'Sobuk-Ogunja(小北五君子)'. And he associated himself with celebrities of his time, including Mok Man-jung(睦萬中), Jeong Beom-jo(丁範祖), Shin Gwang-soo(申光洙), Shin Gwang-ha(申光河) etc.
Chwisong's student Jo Eon-lim(趙彦林) called him 'A master of the near era' in 『Isajaegimunrok(二四齋記聞錄)』, and Gang Jun-heum(姜浚欽) called him 'The chief of natural poetry' in 『Sammyeong-Sihwa(三溟詩話)』. Chwisong liked and so versed in Du Fu's poetry that he was called 'Du Fu of Joseon'.
Chwisong left about 740 poems with various themes. He left poems dealing with daily joys and sorrows, and poems exchanged with others, also left many notable works in Yeongmul-shi(詠物詩) and Aedo-shi(哀悼詩). I introduced some of his Yeongmul-shi in this paper. Especially, I note that he wrote Yeongmul-shi throughout his life and left Yeongmul-shi at every important time of his life. So I tried to outline his life through his Yeongmul-shi. Chwisong's life was not smooth, because all his life he lived in poverty in the countryside where he could not hold office, and he lost his son, brother, wife, and friends one after another after his middle age. He tried to overcome poverty and suffering with poetry and alcohol. He loved poetry and alcohol so much that he admitted himself that his love of poetry and alcohol was a chronic disease. I'd like to examine how much he loved poetry and alcohol, and what poetry and alcohol mean to him through hi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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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朴胤源 한시 연구

저자 : 안순태 ( An Soon-tae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5-22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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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세기 후반 조선의 대표적인 도학자이자 산림인 朴胤源의 문학관과 한시에 대해 살핀 것이다. 박윤원은 김창협, 이재, 김원행을 잇는 노론 낙론의 종장이자 예학의 대가이며 수빈박씨의 백부이기도 하다.
학문적 외연을 고려하면 그의 문학론 내지 시론은 재도론적 문장관이나 '觀物察己'의 시론과 같은 전형적인 도학자의 입장을 내세웠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도학과 문장이 하나라는 입장에서 '文以載道'를 강조했고 詩는 문장보다 더 하찮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의 詩作의 실상은 이러한 구호와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
이언적 등 조선의 도학자들은 邵雍의 '관물찰기' 시론을 받아들여 수양 과정을 시로 읊조리기도 하고 李珥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성정을 바르게 하여 자연스럽게 읊조리는 '吟詠性情'의 도구로 시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박윤원 또한 '관물찰기'의 과정을 담은 시, '음영성정'의 특징을 보이는 시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도학자적 시의 특징보다 박윤원 시의 대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은 '遣興', 즉 시어를 조탁하지 아니하고 흥이 일면 그것을 여과 없이 시로 형상화한 것이었다. 특히 아내를 잃고 나서 더욱 곤궁해진 처지에 지은 시들은 자탄과 비애의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여기에 이르면 도학자라는 정체성이 더욱 희미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literary views and Cino-Korean poetry of Park Yun-won, a representative moralist of Joseon in the late 18th century. Park Yun-won is the culmination of the Noron(老論) succession between Yi Jae(李縡)-Kim Won-haeng(金元行), a master of moralist in the latter Joseon Dynasty, and is also the uncle of Soo-bin Park, mother of King Sunjo.
Considering his academic characteristics, it can be expected that his literary theory or poetry would have insisted on those of a typical Taoist, such as the literary view of Jaedo(載道) theory and the poem of 'Gwanmulchalgi(觀物察己)'. In fact, he emphasized the 'Munyijaedo(文以載道)' from the standpoint that the Tao[道] and the sentence are one, and poetry is more trivial than Tao or prose. However, when we check the reality of his poems, it is difficult to simply accept these claims as they are written.
Joseon scholars such as Lee Eon-jeok(李彦迪) accepted Shao Yong(邵雍)'s 'Gwanmulchalgi' poem and recite the process of cultivation into poetry, and like Yi Yi (李珥), they used poetry as a tool for 'Reciting Heart(吟詠性情)'. Park Yoon-Won also consistently reveals 'Gwanmulchalgi' and 'Reciting Heart' through his poems. However, most of Park Yun-won's poems are characterized by 'Gyeonheung(遣興)' rather than the poetic characteristics of these Taoists. It was intended to form poetry without filtration if there was excitement without arranging poetry. In particular, the poems written in a situation that became more difficult after the loss of his wife stand out for their bitterness and s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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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燕巖 朴趾源論

저자 : 박수천 ( Park Soo-cheo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3-25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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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 朴趾源은 조선 후기의 손꼽히는 문장가이다. 박지원의 문장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이미 최고의 수준을 인정받아 학계의 연구 성과도 별도의 연구사를 정리할 만큼 많이 축적되었다. 여기서는 박지원의 문장이 아닌 시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그의 한시 작가적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박지원은 20세 되던 해부터 수년간에 걸쳐 보통의 사대부 집안 자제들처럼 과거 준비에 힘을 쏟았는데 이 시기에도 많은 한시 작품을 썼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20대의 시기에 과거를 준비하면서 학문과 문장의 역량이 점차 성숙해졌다. 이와 함께 자신이 살고 있던 당대의 사회와 정치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은 1780년에 進賀別使로 선발된 朴明源을 따라 燕行의 체험을 할 기회를 얻었다. 시 쓰기를 그리 즐겨하지 않았던 박지원이었으나 이 燕行 기간 동안에는 비교적 많은 시작품을 지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의 한시 작품은 그 수준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호방한 기풍의 문장가이면서도 한시 작품에서는 세밀한 관찰력과 공교로운 묘사의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燕行 시기의 한시 작품이 지금 『燕巖集』에 남겨진 작품들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나, 현존 자료로는 그런 정황만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박지원은 1786년 50세 되던 해에 兪彦鎬의 천거로 처음 出仕를 하게 된다. 1791년에는 漢城府 判官으로 옮겼다가 이해 12월에 경상도 安義縣監에 보임되었다. 그는 沔川郡守로 3년 정도 재임했다가 1800년 64세 때에 襄陽府使로 승진하였다. 이후 지병이 점차 위중해져 69세를 일기로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런 仕宦의 시기에도 틈틈이 그의 심회를 담은 여러 편의 한시 작품을 남기고 있어 주목이 된다.
박지원의 현존 한시 작품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가 율조에 얽매이는 근체시 짓기를 그리 즐겨하지 않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燕巖集』과 여타 관련 자료들에 전해진 그의 한시 작품들이 상당한 수준을 보여 주고 있는 점은 매우 示唆的이다. 더욱이 그의 北京과 熱河의 紀行 시기에는 새로운 異國 체험을 여러 시편으로 작시했을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자료의 발굴과 연구가 절실하다.


Park Ji-won is one of the most famous vers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Here, I will examine his poetic aspect of Chinese poetry, targeting the beginnings, not the sentences of Park Ji-won. Although Park Ji-won left a few poems, it is regarded as a literary achievement that can never be overlooked in his works.
As he began his studies, he was already literary enough to write his views in a long editorial. The writings left at this time show that Park Ji-won's sentence ability has already reached a very high level. Park Ji-won has been concentrating on preparations for the Taking Bureaucratic Selection Test for many years since he was 20 years old, and it seems that he left many poem works at this time.
Park Ji-won finally got a traveling Beijing chance to experience when he was 44 years old. Park Ji-won, who did not enjoy writing poetry very much, seems to have made a lot of works during the period. Park Ji-won did not write much poetry, but the level of the works created was never so good. It is a sentence of a brilliant style, but it shows the skill of detailed observation and coherent description in the poem.
Park Ji-won first made his debut at the age of 50, and he moved to Gyeongsang-do Aneu in December 1791. It is noteworthy that he leaves several poems containing his thinking in various periods of official time.
Park Ji-won's poems are not many left behind, and it is also true that he did not enjoy making new-form poems tied to the rhythm. However, it is very difficult to see that his poems left in and other related materials show a considerable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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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錦帶 李家煥의 삶과 詩

저자 : 여운필 ( Yeo Woon Pil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3-29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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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기 이후의 작품만 남고 5언시의 비중이 높은 錦帶 李家煥의 시는 질박과 眞을 추구하고 淸新에 힘써야 한다는 시론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에는 경물에 대한 시각, 사회적 모순과 백성의 삶에 대한 관심, 자아·현실·역사에 대한 의식, 知舊, 先進, 君王에 대한 소회, 정국의 추이에 따른 감정 등이 두루 드러나 있다. 그러한 시편들에는 높은 사회적 관심, 정경의 일치, 비분강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의미 또는 정서의 특성과 新奇·奇詭의 풍격이 두드러진다. 이런 특징은 그를 정조대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자리매김되게 할 만한 것이다.


Geumdae Yi Gahwan's poems only remain in his later years. Among the poems, the proportion of five words is high. His poetry seeks simplicity and truth. His theory of poetry is based on the theory that we should focus on purity and novelty. His poems show a wide range of views on things, social contradictions and interest in people's lives, awareness of ego, reality, and history, feelings toward friends, seniors, and the king. Also he expressed his feelings about the political situation in poetry.
Such poems have a new and bizarre style and meaning or emotional characteristics that can be summarized into high social interest, the concordance of the scenery and emotion, sadness and resentment. This characteristic is worthy of establishing himself as a representative poet of the reign of King Jeo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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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而已广 張混 漢詩의 특성과 가치에 대한 보완적 고찰

저자 : 김동준 ( Kim Dong-ju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1-344 (5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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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본 연구 성과를 보완하기 위하여 세 가지 방면에서 而已广 張混의 시문학을 재조명한 결과이다. 그 셋은 (1) 장혼 시문학에 내포된 자기 서사의 여정 (2) 詩社 활동과 공동체 만들기의 욕망 (3) 장혼 시문학의 대표작과 그 성격이었다. (1)에서는 <述貧詩> 계통의 작품을 검토했으며, (2)에서는 聯句의 현황 및 陶淵明의 用事 양상에 초점을 맞추었고, (3)에서는 『風謠續選』, 『大東詩選』 등의 선발 작품에 유의하되 장혼의 삶에 밀착된 시 작품의 특성을 살폈다.
3장 본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3장 1절 「자기 서사의 행로와 이루지 못한 은퇴」에서는 그가 한평생 <述貧詩>(30대작), <自述>(40세작), <客至>(노년작)를 비롯하여 자기 서사적인 작품을 지속적으로 남겼으며, 가난이 초래한 고난 및 은퇴에의 염원 등을 중심 소재로 삼았음을 파악하게 되었다. 가난을 벗어나 평화로운 은퇴를 바랐던 꿈은 그러나 생을 마칠 때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단계까지 경제적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고 그 노력이 여러 시편에 편재되어 있다. 3장 2절 「시사 활동과 공동체 만들기의 욕망」에서는, 그가 玉溪社 및 松石園 詩社의 구성원들과 합작한 聯句를 통해 중인 시인들의 유대 양상을 검토했으며, 여기에서 나아가 평화로운 마을 만들기의 욕망이 여러 시편에 점철되어 있음을 조명하였다. 여기에는 도연명의 남촌 마을 이미지가 투사되어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3장 3절 「장혼 한시의 대표작과 핵심적 경향」에서는 시선집에 선발된 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대표작이 지닌 경향을 분석했는데, 憂·樂이 동반된 내용과 시적 형상화 능력이 능숙하게 결합되어 있었음을 추출할 수 있었다. 늘 모자라고 고생스러운 현실에서 주어진 결함을 수용하며 의연해지고 너그러워지려는 자세가 장혼 한시의 진수라고 보았다.
본고는 개별 존재로서의 고투가 저마다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는 입장에서 장혼 한시의 긍정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했다. 그는 가난·신분·불구의 삼중고가 짓누르는 생존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으며 많은 수량의 시를 그 안에서 생산해 내었다. 매일매일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생애 내내 희망을 찾으려 노력했던 장혼의 시문학은, 직업과 가족과 개인의 꿈 사이에서 존재의 이유를 되물어야 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준다고 하겠다.


This article is the result of reexamining Jang Hon(張混: 1759-1828, pseudonym is Yiyieom 而已广)'s poetry literature in three ways to supplement the basic research results. The three are (1) the journey of self-description contained in Jang Hon's poetry literature (2) activities of poetry society and the desire to create a community (3) Jang Hon's representative work of poetry literature and its character.
The content of the body is summarized as follows. In the first chapter of the body, "The Path of Self-Description and Unfulfilled Retirement," I found that he continued to leave his narrative works throughout his life, and focused on the hardships caused by poverty and the desire for retirement. Here, I also mentioned that, despite his aspirations, he did not achieve his dream of retirement until old age, and that his efforts to solve economic difficulties until his death were left in many poems. In the second chapter of the body, "Activities of Poetry Society and the Desire to Create a Community," I reviewed the ties of Jungin (中人: middle class people) poets through couplet poems, which he collaborated with poetry society members of Okgyesa (玉溪社) and Songseokwon (松石園), and highlighted his desire to create a peaceful village in many poems. I could see that the image of Tao Qian (陶潛: 365-427)'s southern village was projected in these poems. In the third verse of the main body, "Representative Works of Jang Hon's Poems in the Chinese Style and Their Core Trends," I analyzed the trends of his representative works by focusing on the works contained in his anthology of poem, revealing that the mixture of anxiety and delight is closely combined with the expressive ability of the work. I saw that the attitude to accept and be generous with a given defect in the insufficient and painful reality was the high level of Jang Hon's poems in the Chinese style.
This article attempted to shed light on the positive value of Jang Hon's poems in the Chinese style from the standpoint that each individual being has a special value. He lived faithfully and honestly in a survival environment weighed down by various hardships and produced many poems in it. Jang Hon's poetry literature, which has tried to find hope throughout its life while protecting small but precious things, also deeply sympathizes with us today, who have to ask the reason for existence between jobs and family and individual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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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시대 여성 한시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저자 : 이종묵 ( Lee¸ Jong-mook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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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한시를 지은 여성 작가가 왜 적은가?' '조선시대 여성은 어떻게 시를 배웠는가?', '조선 여성이 지은 시는 어떻게 전해지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첫째, 조선시대 여성은『시경』과 『주역』 등에서 글을 짓는 것이 여성의 직분이 아니라는 편견에다 한문을 알아도 한글로 문필활동을 해야 한다는 문자생활사의 제약으로 작가 배출 자체가 적었다. 여성의 작품을 외부에 노출하는 것을 꺼리는 풍조도 작품의 전승을 막았을 것이다.
둘째, 조선시대 여성들은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시집가기 전 부친이나 오빠에게 시를 배웠고 결혼 후 남편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기녀의 경우 남성 사족과의 시로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기녀 수업에서 한시가 당연히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조선 말기에는 한시가 상당 정도 대중화됨에 따라 한시를 배울 수 있는 교재가 등장하였고 한글로 번역된 시집이 나옴으로써 독학이 가능해지기도 하였다.
셋째, 조선시대 여성의 한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집안의 문집을 정리한 世藁나 남편의 문집에 부록으로 얹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독립된 시집의 간행이 이루어진 것은 여성의 문학을 인정하게 된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이로 인하여 문집을 남기지 못한 대부분의 여성 한시는 남성들의 사랑방 '이야깃거리'로 전승되다가 시화나 야담, 잡록 등에 기록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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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안동지역 효 관련 누정과 시판에 담긴 의미

저자 : 황만기 ( Hwang¸ Man-ki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6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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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안동의 누정(樓亭) 가운데 효(孝)와 관련한 것과 시를 그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다. 안동은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널리 알려진 유학의 본산이자 퇴계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인재의 고장이다. 유학자를 많이 배출한 안동에는 산과 강, 골짝과 냇가 등에 수많은 누정들이 즐비하게 산재해 있다. 이들 정자는 유상이나 학문을 목적으로 건립되기도 하였으나, 삼구정(三龜亭), 애일당(愛日堂), 백운정(白雲亭)은 효를 중심이 두고 건립된 누정이라는 점에서 일반 정자와 차별성을 지닌다. 안동의 서쪽인 풍산(豐山)에 위치한 삼구정은 아름다운 풍광보다는 어머니 예천권씨의 축수를 기원하는 효심으로 건립된 정자이다. 말하자면 효행이 서려 있는 정자인 셈이다. 삼구정에 서려 있는 효사상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정신의 귀감이 되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다시금 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안동의 북동쪽인 예안 가송리에 위치한 애일당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가 효를 실천한 무대이다. 평생 '효'라는 가치관을 최우선으로 여긴 그의 효심은 농암 후손가의 삶의 철학이자 에너지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노래자가 70세의 나이에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던 고사를 직접 자신의 부모를 위해 실천한 예는 지행일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실천의지이자 행동철학이다. 안동의 동쪽에 위치한 백운정은 당나라 적인걸과 송나라 나종언의 고사가 서려 있는 정자로, 청계(靑溪) 김진(金璡)이 부친 김예범(金禮範)의 묘소가 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그의 차자(次子)가 김진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건립하였다. 이를테면 백운정에는 효사(孝思) 정신이 깃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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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질병 소재 한시에 나타난 달관의 양상

저자 : 김형술 ( Kim Hyoung Sool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9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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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질병 소재 한시에 나타나는 달관의 양상을 살피고 그러한 시적 달관이 가능하게 한 인식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질병을 소재로 한 한시에서 우선 발견되는 것은 질병을 기존의 일상을 멈추거나 이탈하여 새로운 일상으로의 전환하게 되는 계기로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질병을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질병으로 야기된 부정적 상황에 비관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질병에 걸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질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질병에서 고통 대신 장점을 찾는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못 듣고 못 보는 고통을 나쁜 소리, 안 좋은 모습과 연결시키면서 불편함을 못 들어서 더 좋고 못 보아서 더 좋은 것으로 반전시켜내었다. 한편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삶의 본질을 직시하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형상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 달관은 어떤 존재도 질병을 피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오히려 마음을 편히 가지고 수용하는 것이 낫다는 질병에 대한 인식 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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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진암(晉菴) 이천보(李天輔)의 한시의 특징적 경향과 그 시문학적 위상

저자 : 김동준 ( Kim Dongju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12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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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진암집(晉菴集)』완역을 앞둔 상황을 맞아 이천보(李天輔) 한시의 분포와 작중 동선, 주요 경향과 특징적 양상, 그리고 그 시문학적 가치를 검토한 결과이다. 한평생 국왕 영조와 동시대를 살았던 그는 연안이씨 노론 가문의 자양분과 영조대의 관료 경험이라는 양대 조건에 기초하여 활동한 시인이다. 영조대 사가(四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당대의 시단에서 주의 깊게 조명받아 마땅한 작가이기도 하다.
연구의 결과는 대략 다음과 같다. 현전하는 504수의 한시는 풍부한 수량은 아니지만 이천보의 삶과 직결되는 이천보만의 특수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504수의 시 형식을 점검해본 결과 그는 압도적으로 근체 율시, 그중에서도 칠언율시를 선호하였다. 이는 이천보 시문학의 중핵이 칠언율시였음을 의미하는바, 그의 시는 율시 장르의 안정감에 걸맞도록 감정과 시상을 조절하는 양상을 보였다. 가행(歌行)과 고시(古詩), 희작(戲作)과 속작(速作)이 이례적일 만큼 드문 그의 한시 문학은 그런 점에서 율시를 토대로 수립된 정서 절제의 시세계였다고 요약될 만하다.
율시 중심의 절제된 서정 내부에서, 그의 시문학은 노론 문인으로의 입지와 시대 인식을 담은 시편들이 한 갈래를 이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청광준일(淸曠雋逸)하고 사려심원(思慮深遠)한 계통의 작품들이 주목할 만한 경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노년기 시편의 특징을 이루는 '思慮深遠'의 시편들이든, 시도(詩道)를 자문하며 나아간 '淸曠雋逸'의 작품이든, 18세기의 다채로운 시단에서 이천보가 구현한 시문학은 작가 고유의 위상과 문학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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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행시(燕行詩)에 대한 반성적 검토

저자 : 안순태 ( An¸ Soon-tae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2-136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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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연행시(燕行詩)의 개념과 명칭, 범주 등에 대해 재검토하고 연행시 연구의 경향성을 살핀 후 연행시가 갖추어야 할 요건, 그리고 인구에 회자된 연행시들이 그 요건을 어떻게 충족하고 있는가를 살핀 것이다.
연행록의 일종인 연행시는 '우리나라 사행원이 북경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지은 시'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 전기에 명조(明朝)에 다녀오는 과정에서의 기록은 '조천록', 조선 후기에 청조(淸朝)에 다녀오는 과정에서의 기록은 '연행록'이라 한다. 조천록과 연행록을 포괄하여 '사행록'이라 칭할 수도 있으나 현전하는 문헌들 대부분은 청조에 다녀오는 과정에서의 기록인 점, 1421년 명의 연경 천도 이전부터 조선 사행단이 연경으로 향했던 점, 애초에 조천록이라 했던 것을 조선 후기 이래 연행록으로 통칭했다는 점, 사행록은 일본 사신단의 기록을 칭하기도 한다는 점 등으로 조선조 중국 사행기록을 '연행록'이라 통칭하여도 좋지 않을까 한다. 또 한시만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시를 포함하고 있는 일록 등에도 '연행록'이라 칭하였으므로 연행시도 연행가사, 연행일기 등과 함께 연행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목만중은 연행시가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자료적 가치와 시적 성취를 든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연행시 연구는 주로 연행시의 자료적 가치에만 주안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연행록에 대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시인의 시적 개성 내지 성취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였다. 향후 연행시 연구에서는 연행시의 '자료적 가치'와 함께 '시적 성취'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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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희룡(趙熙龍)의 임자도 유배기 한시 연구

저자 : 강혜선 ( Kang¸ Hyesu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8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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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 회화의 예술적 성취와 예술론(시서화론)이 일찍부터 조명받은 것에 비해, 그의 한시는 해설 차원에 머문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본고는 한시 작품론의 측면에서 그의 유배기 한시를 재조명하였다. 조희룡은 만년에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되어 3년 동안 살았는데, 유배기의 한시를 수록한 『우해악암고』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양상을 분석하였다. 조희룡은 조선 후기 성행한 절구 연작시를 선호하였다. 유배 도중과 유배지에서 직접 바라본 풍경을 그린 사경시(寫景詩)에서 소폭의 산수화 같은 정경을 만들어 보였으며, 회인시(懷人詩)의 전통을 계승한 <회인절구>에서는 특히 화가의 안목으로 대상 화가의 본령을 서정적으로 품평하였다. 한편, 조희룡은 유배 생활의 일상 정감을 유쾌한 어조로 토로하였는바, 스스로 희작(戲作)이라 칭한 작품들을 주목해 보았다. 희작 성향의 한시에서는 불교의 언어가 농담과 해학의 언어로 바뀌는 등 시어의 활용이 돋보였는데, 이는 암울한 유배지에서도 즐겁고 유쾌하게 살려고 한 그의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배지에서 조희룡이 몰두한 세계는 바로 시화(詩畫)였다. 그가 주장한 시화일체론(詩畫一體論)의 핵심은 화의(畫意)로 시정(詩情)이나 시경(詩境)을 만드는 창작 방법이라 할 수 있고, 그는 그러한 실례를 자신의 한시 창작에서 구현해 보였다. 조희룡이 문인의 시와 차별되는 화가의 시를 추구하였던 것이라 보인다. 유배지에서 시화에 몰두하여 자유자재로 창작하는 희열을 조희룡은 유희삼매(遊戲三昧)라는 말로 지칭하였으며, 그러한 경지에 이른 자신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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