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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학회> 온지논총> 조선 후기 고소설에 나타난 죄벌(罪罰)을 통해 본 소수자 혐오 양상과 그 의미 ― 추모(醜貌)·귀물(鬼物)·유충(幼蟲)·병신(病身)의 형상화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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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소설에 나타난 죄벌(罪罰)을 통해 본 소수자 혐오 양상과 그 의미 ― 추모(醜貌)·귀물(鬼物)·유충(幼蟲)·병신(病身)의 형상화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Disgustof the Minorities in theView of the Punishment in Late JoseonFictin - ugly, Monstrous, worm, disabilities

구선정 ( Koo-sun-jung )
  • : 온지학회
  • : 온지논총 6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10월
  • : 77-109(33pages)
온지논총

DOI

10.16900/ONJI.2021.69.03.077


목차

Ⅰ. 조선 후기 소수자 집단, 여성과 장애인
Ⅱ. 죄벌(罪罰)의 방식을 통한 괴물화(怪物化) 양상
Ⅲ. 조선 후기 소수자 혐오에 담긴 의미-결론을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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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조선 후기 고소설에 나타나는 죄벌(罪罰)의 방식인 추모(醜貌)·귀물(鬼物)·유충(幼蟲)·병신(病身)의 형상화를 통해 조선 후기 고소설 속 갈등의 방식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원인을 고찰하는 것이다.
고소설은 일반적으로 권선징악을 세계관으로 삼아 선악(善惡)을 중심으로 한 갈등과 악행에 대한 죄과(罪科)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고소설 속에서 가문의 질서를 따르는 인물을 선인으로, 가문의 질서를 위협하는 인물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문의 질서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물에게는 징벌이 내려지는데 그 대상이 권력 관계 속에서 열세에 있는 소수자인 여성과 장애인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들은 죄벌로 인해 못생긴 외모(醜貌)로 태어나고(<한조삼성기봉>), 몸에서 수많은 벌레(幼蟲)를 쏟아내며(<완월회맹연>), 흉악한 귀물(鬼物)이 되어 돌아오고(<완월회맹연>) 맹인·앉은뱅이·성불구자와 같은 병신(病身)이 된다.(<한후룡전>·<유화기연>) 소수자를 악취·유충·버러지·더러움·우두나찰·귀신·잔나비·흉계망측·병신·일무가취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의 전쟁으로 인해 신분 질서의 동요 등이 일어났던 조선 후기 사회에서 사대부 남성들은 흔들리는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윤리를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종법 의식을 강화하여 가문 중심의 질서로 사회를 재편하려 했는데 이러한 움직임 이면에는 주체 남성의 은폐된 욕망과 자신들이 만든 공동체가 새로운 사고에 의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반(反)이데올로기, 성적 욕망, 신체적 불완전성에 대한 주체 집단의 원초적 두려움이 소수자를 괴물화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주체가 만들어낸 괴물이 사실은 폭력적인 권력자가 아니라 사회 권력의 희생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is aimed at examining and considering the formats of conflicts and the causes of abhorrence against minorities displayed thereof during the latter part of the Joseon Dynasty through the embodiment of hideous appearance, evil spirits, vermin, and physical deformation, which are the formats of punishment, illustrated in the old novels of the time.
Old novels generally employ ‘encouragement of good and punishment for evil’ as the worldly values, thereby focusing on depicting the conflicts centered around good and evil, as well as the punishment of evil deeds most importantly. What should be noted is the trend of the distinction between goodness and evilness of the characters appearing in the novels becoming even more definitive towards the latter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In particular, there had been a marked increase of novels that depicted those who safeguard the orderliness within the family clan as virtuous persons and those who threatened such orderliness as evil persons. Accordingly, those who failed to comply with the orderliness of the family clan were subjected to an extensive range of punishments. Moreover, women and disabled persons who were the minorities deemed to be inferior amidst of the power dynamics within the family clan become the targets of abhorrence. Accordingly, they were borne with hideous appearances (< Hanjosamsunggibong >), countless vermin gushing out of their bodies (< Wanwolhoemaengyeon >), returning as atrocious evil spirits (< Wanwolhoemaengyeon >), and becoming blind, paralyzed in the lower body, sexually impotent, and intellectually disabled as the results of punishments for their crimes committed. (< Hanhuryongjeon >, < Yuhwagiyeon >) depict the images of minorities with descriptions such as foul odors, larva, insects, foulness, ghosts with bull’s heads, evil spirits, monkeys, physical deformations, worthless persons to incite strong senses of abhorrence. They were then either eliminated or reformed into persons who were in compliance with the ideologies of the ruling group to be incorporated into such group
Depiction of women and disabled persons as monstrous characters as well as displays of abhorrence against them could be seen as the results of reflection of the uneasy consciousness of the male principals with power and their psychological horrors of being castrated from the status quo they enjoyed. Monsters are the manifestation of the internal impulses of principals that are difficult to understand from the moral viewpoint of humanity. Therefore,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monsters created by the principals are in fact the victims of the social powers rather than violent authority. It was possible to deduce the mentality of the social classes striving to continue to enjoy their status quo in the latter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towards hideous appearances that underwent hierarchical changes through the aforementioned punishments for what they considered crimes.

UCI(KEPA)

I410-ECN-0102-2022-800-000904270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598-1444
  • : 2384-2253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5-2022
  • :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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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권0호(2022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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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曺文秀의 시로 쓴 瀋陽使行

저자 : 김일환 ( Kim Ilhwa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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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문수가 1643년 冬至兼年貢行에서 작성한 16제 18수의 한시로 구성된 「西征錄」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조문수가 심양을 다녀오면서 작성한 일련의 한시는 문집으로 편찬되면서 詩體에 따라 흩어져 있었다. 이를 노정에 따라 다시 배치함으로써 「西征錄」의 본래 모습을 재구했고, 이를 통해 청의 입관 전 심양을 다녀온 조문수의 당시 상황 인식과 감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문수는 병자호란 중 남한산성에서 독전어사로서 농성전에 참여했다. 그의 아들 조한영은 척화파로 몰려 심양에서 2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청나라를 적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던 조문수였기에 심양에 다녀오는 속내가 복잡했다.
조문수는 칠언절구 위주로 국내노정의 감흥을 적고, 통군정이라는 조선과 청의 경계에서 칠언율시로 긴장감을 고조시킨 뒤에, 다시 칠언절구로 최종 목적지인 심양까지의 노정을 정리했다. 심양에서 칠언고시로 이번 사행의 의미와 가치를 길게 노래한 뒤에, 다시 칠언절구로 귀로를 정리했다. 친구인 朴遾와의 만남을 노래한 오언절구로 수미쌍관의 구조를 의도하기도 했다. 압록강 이전의 국내노정에서는 자연물과 유적을 적절히 사용하여 명나라의 부재와 대명사행의 흥성스러운 기억을 소환하였다. 심양에서는 실질적으로 명과 청이 교체되는 국제 정세를 길게 읊었다. 귀로에 올라서는 심양에 억류되었거나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지인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한편, 국내 영역에 들어온 이후에는 여느 때 사행이 보여주었던 기녀들과의 만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명청교체가 주는 의식 영역에서의 충격과 이와 별개로 지방에 나선 관료들의 관행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In 1643, Jo Mun-su became the second-in-command of the diplomatic mission and went to Shenyang. He fought the enemy on the front line of Namhansanseong Fortress during the Byeongja Horan, and his son Han-young Jo was taken as a hard-liner and captured and detained in Shenyang. In this way, Jo Moon-su, who had no choice but to be hostile to the Qing Dynasty, named his diplomatic process “Seo Jeong-rok” and left it in 20 poems. They were grouped together as a collection of poems and scattered here and there according to the type of poetry. I rearranged these scattered works in chronological order, and in the process, I was able to check the detailed composition of Jo Moon-soo's works.
After starting with five words, Jo Moon-soo wrote down the inspiration of the domestic route in Seven line stanzas. At the border between Joseon and Qing Dynasty, after heightening tension with Seven-Syllabic Code Verse, and then arranging the route to the final destination Shenyang again with the Seven line stanzas, after sang the meaning and value of this meandering from Shenyang for a long time to the Seven line stanzas poems, We are arranging the return route with , and ending it with five words like the beginning.
In terms of content, the domestic route before the Yalu River used natural objects and relics appropriately to recall the splendid memories of the absence of the Ming dynasty and the dynasty. In Shenyang,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n which Ming and Qing were actually replaced was recounted for a long time. On his way home, he expressed his longing for acquaintances who were detained in Shenyang or who were in a similar situation. It was confirmed that the practice of bureaucrats who went out to the provinces was still continuing, apart from the impact on the consciousness area of the Ming-Qing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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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복사저포기> 공간의 지리적 특성과 의미

저자 : 신희경 ( Heekyung Shi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6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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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현지 답사와 고문헌, 지도 등을 통해 <만복사저포기>의 개령동과 보련사의 실제 위치를 비정하고 <만복사저포기>의 세 공간-만복사·개령동·보련사의 설정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고찰하였다.
<만복사저포기>에 등장하는 '開寧洞'과 '開寧寺'는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조사 결과 개령사는 현재 남원시 수지면 견두산 아래 용주암이며 개령동은 용주암 서편 가랑수골부터 양촌 마을에 이르는 계곡 일대를 말한다. 보련사는 현재 남원 지역에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료에서도 찾아 볼 수 없지만 보련산으로 불렸던 현재 남원의 고리봉에 있던 절로 현재 폐사되어 남원시 고리봉의 만학동 계곡에 절터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이 되는 만복사는 기린산을 뒤로 하고 주변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작품의 개령동인 현재 용주암은 마을 입구에서 약 1km 떨어져 있으며 마을 입구를 제외한 모든 방향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보련사터는 만복사터처럼 평지를 앞에 두고 있지만 만복사가 평지에 위치한데 비해 산에 위치한다. 이러한 입지 차이는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으로서 각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만복사가 대중적이고 개방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두 주인공의 만남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개령사터인 용주암은 마을에서 떨어져 있고 계곡 사이에 위치하여 산으로 둘러쌓인 고립된 형태를 보인다. 고립되고 황폐한 입지는 작품 안에서 죽은 자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보련사는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는 점에서 만복사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지만 개령동처럼 외부와 단절된 공간은 아니다. 만복사가 산자의 공간이며 개령동이 죽은 자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그 입지에 있어 중간적 성격을 보이는 보련사는 죽은 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곳으로 나타난다. 보련사는 죽은 이들이 중심이 되는 개령동이나 산자가 중심이 되는 만복사에 비해 죽은 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그 입지의 중간적 성격으로 나타난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은 만복사라는 한 공간에서 보여주지 않고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인 만복사, 여자가 임시로 매장된 개령동 그리고 대상을 치르는 보련사가 따로 설정된 것은 두 사람의 인연과 삼세의 시간관을 구체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만복사저포기>에서는 만복사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과거가 서쪽에는 미래가 설정됨으로써 과거·현재· 미래의 세 시간이 삼각형을 이루는 세 개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만복사저포기>의 세 공간은 죽은자와 산자의 만남과 해원을 불교의 연기설을 기반으로 삼세의 시간을 공간으로 보여주며 각각의 공간은 그 성격에 부합하는 입지와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여 설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In this study, the actual locations of Gaeryung-dong and Boryunsa in < Manbogsajeopogi > determine through field visits, old documents, and maps.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meaning of the three spatial settings in < Manbogsajeopogi > Gaeryeongsa is currently Yongjuam under Gyeondusan in Suji-myeon, Namwon-si. Gaeryeong-dong refers to the valley area from Garangsu-gol on the west side of Yongjuam to Yangchon Village. Boryunsa, located on Goribong in Namwon, is now extinct, and the name Jeolteo remains in the valley of Manhak-dong.
A broad plain surrounds Manboksa with Mt. Kirin behind it. It is about 1km away from the entrance to the village of Gaeryeong-dong, and mountains surround all directions except the entrance to the village. The Boryunsa site is located on a hill with flat land in front. This location difference reflects the events' characteristics in each space as the background of < Manbogsajeopogi >. The fact that Manboksa has a popular and open location is meaningful because it is a space for the two main characters to meet. The isolated and devastated site of the Gaeryeongsa site functions as a space for the dead in work. While Manboksa is a space for the living and Gaeryeong-dong is a space for the dead, Boryunsa, which has an intermediate location, appears as a place where the dead and the living coexist.
In < Manbogsajeopogi >, Manboksa and Gaeryeong-dong, Boryunsa were set separately to show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people and the view of the three generations in a concrete way. As such, in < Manboksa Jeopogi >, Gaeryeong-dong, meaning the past, was set to the east of Manboksa, and Boryunsa, meaning the future, was set to the west. As a space of 'connection' between health and women, it represents the three generations of time, past, present, and future, based on the Buddhist theory of reunification and meeting between the dead and the 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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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딱지본 <최고운젼>과 <홍길동젼> 속 '家庭'의 表象 ― 得男의 恐怖와 父子葛藤의 向方―

저자 : 김용선 ( Kim Yong-su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7-10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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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한 존재의 탄생은 '축복'으로 여겨질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 '저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만연한 '기아(棄兒)'의 사연은 옛 서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우리의 오랜 서사 중에 <최고운전>과 <홍길동전>이 있다. 두 작품은 고소설의 서책으로 익숙하다. 이들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필사본에 집중되어 있으나 본고는 울긋불긋한 표지에서 붙여진 '딱지본' 판본에 주목한다. 연구자가 소장한 딱지본 <최고운젼>은 신태삼이 다듬고 발행한 1961년의 것으로 가로 13.1cm, 세로 19.1cm의 물리적 크기를 지닌 20세기의 기록물이다. <홍길동젼>의 경우 아단문고가 복간한 1956년 경의 판본을 대상으로 삼았다. 세창서관본 <최고운젼>은 간행 기간은 물론 활자본의 저자라 할 출판인의 의식등의 면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경성서관본 <홍길동젼> 역시 마찬가지이다. <홍길동젼>과 <최고운젼>은 두 작품 모두 ①'부모의 임신-출산', ②'소년의 비범한 출생', ③'가정으로부터의 추방 혹은 탈주', ④'비범한 영웅성', ⑤'부자갈등', ⑥'국가와의 대치' 등의 여섯 패턴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이를 토대로 두 작품 속 '가정(家庭)'이라는 공간성의 표상을 알아보고 '득남(得男)'이 작품 내부에서 어떤 심리작용을 일으키며 이것이 '부자갈등'의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살폈다. 아들을 버린 매정한 아비의 심리 이면에는 '득남의 공포'가, 회귀한 기아가 주변 세계와 벌이는 갈등 이면에는 '확장된 부자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나아가 두 서사 모두 공포와 갈등의 문턱에 공식적 성적 결합인 '혼인'이 있기에 심리 기저의 작동원리로 조르쥬 바타유의 에로티즘(érotisme) 개념을 빌려 두 작품을 읽어 보았다.


The birth of a being at any time and any place will be considered a 'blessing', but in some cases it is also considered a 'curse'. The story of 'orphan (棄兒)', which is prevalent even today, is not difficult to confirm in ancient narratives. Among our long-standing narratives, there are < Choegounjeon > and < Honggildongjeon >. Both works are familiar as books of old novels. Research on these is mostly focused on manuscripts, but this paper focuses on the 'Takjibon' version attached to the reddish cover. The book, < Choegounjeon > which the researcher owns, is a document of the 20th century with a physical size of 13.1 cm in width and 19.1 cm in height, which was edited and published by Shin Tae-sam in 1961. In the case of < Honggildongjeon >, the edition of circa 1956, which was republished by Adanmungo, was used. The Sechang Seogwanbon Edition < Cheonggeun > has a special meaning in terms of the publication period as well as the consciousness of the publisher who is the author of the typeface. This is also the case with the Gyeongseong Seogwan version of < Honggildongjeon >. < Honggildongjeon > and < Choegounjeon > have a common denominator in the six patterns such as ①'Parents' Pregnancy- Birth', ②'Extraordinary Birth of a Boy', ③'Expulsion or Escape from the Family', ④'Extraordinary Heroism', ⑤'Conflicts between the Father and Son' and ⑥'Confrontation with the State'. Based on this, I investigated the representation of spatiality of 'family' in the two works, and examined what kind of psychological action 'childbirth(得男)' causes inside the works and how this leads to 'the conflicts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Behind the mentality of a cold blooded father who abandoned his son, there is an 'extended father-son conflict' behind the conflict between the hunger and the world around the son, which is a reflection of the 'fear of a childbirth'. Furthermore, since both narratives have 'marriage', a formal sexual union at the threshold of fear and conflict, I borrowed Georges Bataille's concept of érotisme as a psychological working principle and read both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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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창란호연록>의 '양난주' 연구

저자 : 최수현 ( Choi Sue-hyu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4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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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문장편소설 <창란호연록> 속 장우의 차실(次室) 양난주의 형상화 양상을 살펴보고 그러한 형상화 방식의 의미와 기능을 규명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사대부 출신 여성임에도 창기로 팔렸다가 속량을 통해 신분을 회복하는 양난주를 주목하고자 한다. 양난주는 신분 회복을 위해 손님으로 온 이와 적극적으로 결연하는 창기로도 그려지기도 하며, 속량시켜준 남성과 그 정실의 부부 관계를 위해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남성을 치료해주는 길 위의 여성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또한 혼인을 통해 가문 안으로 편입된 후에도 죽을 위기에 처한 정실을 구하기 위해 집밖 공간으로 나가는 것을 감행하는 차실(次室)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창란호연록> 속 양난주의 형상은 이 작품이 정조(貞操)보다 생명을 중시하는 실리를 추구하는 사고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또한 이 같은 양난주의 형상은 일부다처 상황 속에서 남성이 마음을 나누어 제가(齊家)를 바로 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부장제 사회에서 투기하지 않는 여성의 고통을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양난주 형상은 현실적 방법을 조력의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실감 조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상층 여성인물과 하층 여성인물의 조력 방식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에서 여성 인물의 역할 확장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The objectives of this study were to examine the figuration pattern of Nan-ju Yang, the second wife of Jang-woo in the Korean novel “Changranhoyeonrok” and to understand the meaning and function of such a figuration method. This article focused on Nan-ju Yang who was sold as a prostitute even though she was born in a noble family and then recovered her status through redemption. Yang Nan-ju was described as a prostitute who actively formed a relationship with a customer to recover her social status. Moreover, she was portrayed as a prostitute who took care of a man who was in danger of dying while she was hiding for the marital relationship between the man who redeemed her social status and his first wife. She was also depicted as the second wife who left the house to rescue the first wife even after she was a part of the family through marriage. The figure of Nan-juYangin “Changranhoyeonrok” emphasized life than fidelity(貞操), which revealed that this novel valued practical interest. It also showed that this work was associated with the Yeohang class among various readers. The figure of Nan-ju Yang was meaningful in terms of revealing the difficulty of men in managing the wife and concubine peacefully and the hardship of women who had not to be jealous in a patriarchal society at the same time. The figure of Nan-ju Yang used a realistic method to assist others, which contributed to making it more realistic. Moreover, it was meaningful in terms of expanding the role of female characters because she simultaneously carried out the assistance methods of the upper and lower cl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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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고조선 및 고구려의 疆域에 대한 고찰과 辨正

저자 : 박광민 ( Park Kwang-mi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5-18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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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대사 연구는 중국 正史의 많은 기록과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서도 적지 않은 史實을 확인하고 行間을 읽을 수 있는데도 한반도 內한사군 존재설이라는 고착된 인식은 백년이 넘도록 우리고대사 연구의 족쇄가 되어 왔다.
朴趾源은 1780년 『熱河日記』 6월 28일 條에서, “오호라! 후세 사람들은 地境을 상세히 살피지도 않으면서 망녕되게도 漢四郡地를 모두 압록강 안쪽으로 국한하여 事實을 억지로 끌어다 맞추며, 구구하게 나누어 배치하고는 마침내 그 안에서 다시 패수를 찾는다. 어떤 이는 압록강이 패수라 하고 혹은 청천강을 패수라 하며 혹은 대동강을 패수라 하니 이는 조선의 옛 疆域을 싸워보지도 않고 쪼그라들게 한 것이다.”라고 한탄하였다.
金富軾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寶藏王7년 條에 柳公權(중국 788∼865)의 소설을 인용하여, “駐蹕의 戰役에 고구려가 말갈군과 바야흐로 40리에 잇닿으니 唐太宗은 이를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척후가 보고하기를, 六軍이 고구려 공격을 받아 거의 모두 떨치지 못할 때 英國公 휘하의 黑旗軍마저 포위당했다는 소식에 황제가 크게 두려워하여 마침내 스스로 벗어나고자 했다고 하니 두려워함이 저와 같았다.”라고 하였는데, 김부식이 사대주의자라면 어찌 감히 “황제가 크게 두려워했다”는 표현을 썼겠는가. 백제본기 온조왕 建國記끝에는, “처음에 帶方故地에서 나라를 세웠다. 요동태수 公孫度가 그 딸을 주어 처로 삼게 했다. (후에)東夷强國이 되었다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하여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김부식도 자료가 부족해 유공권의 소설까지 인용하며 史實을 밝히고자 노력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중국 正史를 비롯한 여러 기록을 교차 검증하면서 문장속에 담긴 行間을 읽어, 고조선과 고구려의 강역 및 패수와 鴨水의 위치 등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究明해 보고자 한다. 광개토태왕훈적비 기록에 근거해 본문 중의 고구려 '평양'은 '平穰'으로 표기한다.


A number of facts on the ancient Korean history are found in various texts of official Chinese history and in the articles of Samguk Sagi (『三國史記』) and Samguk Yusa (『三國遺事』). However, over more than a hundred year, the theory of Hansagun (漢四郡, Four Commanderies of Han) within the Korean peninsula has been widely accepted, even though it has major flaws.
In his book Yeolha Ilgi (『熱河日記』), on June 28th in 1780, Park Jiwon (朴趾源, 1737-1805) lamented, saying “Oh! The descendants limit the land boundary of Hansagun as under Amnok River (Yalu River), divide each part without checking its territory thoroughly, and designate Paesu River inside of it again. Some says Amnok River is Paesu, and others say it is Cheongcheon River or Daedong River. All diminish the domain of ancient Joseon(Gojoseon), without a battle.”
Kim Busik has been regarded as a figure who was obsequious to China and who diminished Korean history in his book Samguk-sagi (「三國史記」,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However, in the section/entry of the 7th year of King Bojang (寶藏王) in Goguryo Bongi (「高句麗本紀」), he quoted the novel of Liu Gongquan (柳公權, 788-865) and said, “At the Battle of Mount Jupil (駐蹕), Emperor Taizong looked nervous facing the Goguryeo force within 10 miles away. In addition, while six of his troops were attacked and pushed back, scouting soldiers reported that the troops under Duke of Ying (李世勣, Li Shiji) were surrounded by the Goguryeo. Then, the emperor was frightened and finally decided to retreat. It filled him with dread like that. This fact was neither mentioned in Xintangshu (『新唐書』) nor Sima Guang's Zizhitongjian (司馬溫公, 『通鑑』) and it was surely intended to avoid disgrace of their motherland.” If Kim Busik was truly an obsequious person, why did he use the expression “the emperor was frightened”? According to the end of the article on early King Onjo in「Baekje Bongi (百濟本紀)」, he quoted, “At first, a kingdom was established at Daebang Areas (帶方故地). Gongsun Du (公孫度), the administrator of Liaodong, gave his daughter as King Onjo's wife. (Later) it became a powerful kingdom of Eastern Yi (東夷强國). It is not certain which one is right.” He made it clear when he didn't know. Kim tried to clarify the facts even by quoting Liu Gongquan's novel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s. This article tries to reveal the facts on the Korean ancient history, such as the domains of ancient Joseon and Goguryeo, and the locations of Paesu (浿水) and Arisu (鴨水), by examining the various records in official Chinese history books and reading between the lines of each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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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홍순언 이야기>를 통해 본 조선의 임진전쟁과 외교

저자 : 김경록 ( Kim Kyeong Lok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3-21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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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쟁과 외교는 국가의 중요 행위로 안보와 국익이란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러한 국가행위는 시대를 경험한 조선인에게 강인하게 각인되었으며, 역사적 사실과 기억의 전승이란 측면에서 근거와 파생으로 이어졌다. 조선은 명 중심 국제질서에서 친명정책을 천명함으로써 안정적인 국가통치의 기반을 마련하고, 대외적인 위협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런 조명관계는 명에서 제시한 사행과 사신접대라는 외교제도에 의해 운영되었다. 사행과 사신접대는 실무 외교관이었던 역관이 활동했다.
홍순언 이야기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등장한 이후 다양한 전승과정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뛰어넘어 허구적인 문학의 표상으로 확대되었다. 이런 전승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점은 조선이 경험한 전쟁과 평화였다. 명군의 참전은 북경에서 이루어졌으며, 만력제의 최종결정이 중요했지만, 병부상서의 직책을 수행한 석성이 북경에서 활약하였다는 점이 감안되었다.
역사의 사실과 문학의 전승은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역사의 사실로 홍순언 이야기는 거의 허구에 가깝다. 그럼에도 임진전쟁을 경험한 조선인들이 기억하고 전승하려 하였던 시대의 정서와 감정은 전쟁을 극복하고 새로운 평화를 지향했다. 전쟁과 평화를 경험하고 기억하여 새로 전승하려 하였던 조선인의 시대정서는 자연스럽게 문학에서 홍순언 이야기와 같은 전승으로 이어졌다.


During the Joseon, war and diplomacy were implemented as important acts of the state to achieve the national goals of security and national interest. These acts of state were strongly imprinted on Joseon peoples who experienced the war and led to the transmission of memories and facts of history. Joseon laid a stable foundation for national governance and prepared for war with pro-Myeong policies in the Ming-centered international order. This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the Ming was operated by the diplomatic system of envoys and envoys reception proposed by the Ming. The role of an interpreter, who was a working diplomat, was important in the diplomatic system of envoys and envoys reception.
The story of Hong Soon-eon has been handed down in various ways since its appearance in Yoo Mong-in(柳夢寅)'s < Eouyadam(於于野談) > and through the transmission process, the story has expanded beyond historical facts to represent fictional literature. What had a great influence on this transmission was the war and peace experienced by Joseon. The final decision of the Emperor Wanli(萬曆帝) in Beijing was important for Ming's participation, but the Shi Xing(石星) as minister of the Board of War was considered.
The facts of history and the transmission of literature are closely related to each other. As a fact of history, the story of Hong Soon-eon is almost fictional. Nevertheless, the emotions and emotions of the period that Joseon peoples who experienced the war tried to remember and inherit were aimed at overcoming the war and new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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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영조대 전경무신(專經武臣)의 친림전강(親臨殿講) 연구

저자 : 이연진 ( Lee Yeonji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5-24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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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영조대 현직무신에게 무경학습을 장려한 전경무신(專經武臣)의 친림전강(親臨殿講) 제도 규정과 그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전규정과 영조대 실제 운영사항이 기재된 『전강등록(殿講謄錄)』을 중심으로 세부운영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그 특징을 파악하고 영조대 전경무신 제도가 어떠한 배경에서 활성화되었는지 그 의미를 논의해보고자 하였다.
전경무신은 매년 분기별 4차례, 무경칠서(武經七書)에 대한 이해능력을 평가받아야 했다. 국왕은 친림전강의 방식을 통해 주기적으로 전경무신들과 대면하여 무경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묻고 자질이 있는 무신들을 계속해서 양성해갔다. 우등자에게는 누적성적에 따라 포상하였다. 연속 세 차례 우등자에게는 가자(加資)나 승륙(陞六)과 같은 인사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포상하였다. 연속적으로 우등한 경우가 아닌 경우, 숙마(熟馬) 등을 하사하는 방식으로 누적성적에 따라 차등 시상하여 학습을 장려하였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재시험을 시행하거나 정도에 따라 파직하였다.
당파 간의 싸움에서 왕위에 어렵게 즉위한 영조는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관료재교육 및 관리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영조는 직접 대면하여 관료들의 견식(見識)을 알아볼 수 있는 친림전강의 방식을 선택하였다. 친림전강은 관료를 계속 교육하고 몸소 군사(君師)로서의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었고, 영조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 결과는 영조대 각종 전강의 재정비 및 절목(節目)의 반포로 이어졌다.
무신재교육을 위해 영조는 전경무신 제도를 활성화하였다. 재능있는 젊은 무신을 선발하여 주기적인 평가를 통해 무경지식을 계속 배양해가는 시스템을 체계화하였다. 이러한 인재양성 시스템은 국왕의 학문적 탁월성과 조선사회의 학문적 성숙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explore a governmental policy called “Jeongyung-Mooshin (專經武臣,)” which is carried out by King Yeong-jo(英祖). The main text is based on 『Jeon'gang-dengrok(殿講謄錄)』 during King Yeong-jo(英祖) Regime. This research tried to find out the characteristics and discuss the meaning of the policy in what background it was activated.
Jeongyung-Mooshin(專經武臣) had to take oral tests regarding the Seven Military Classics(武經七書) every four seasons each year. If they achieve high scores, they could be rewarded with a horse or promotion. On the other hand, those who failed to the test, they could be punished even to losing their post.
In order to stabilize the unstable political situation such as a partisan fight, King Yeong-jo strengthened the royal authority and actively sought education measures for military officials. The king utilized Jeon'gang(殿講) carried out by king in which he could examine their knowledge and insight by face-to-face examination. Jeon'gang which took place every four time each year was the right method for the king to recognize their talent and make them study periodically. Such a in-service education for military officials would not have been possible without the king's academic excellence and academic maturity of Jose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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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선 초기 변계량의 역사의식

저자 : 정성식 ( Jeong Seong Sik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1-26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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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 초기에 삶을 영위한 변계량의 역사의식을 고찰하는 데 있다. 조선 초기는 혁명을 통한 창업기와 새로운 왕조의 건국 이념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수성기를 함께 맞이하는 때이다. 변계량은 고려 말 조선 초기라는 역사적 격동기를 맞이하여 특색있는 역량을 보이며 한 시대를 이끌었던 대표적 유학사상가들의 문하에서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학문을 습득함으로써 유학의 학통을 계승하며 연구에 노력을 기울였다.
변계량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대는 수성기로서 시대 여건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소중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명실상부하게 국가의 안정된 시스템 운영과 통치 질서의 확고한 모습을 정착시키는 것이 요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조가 개창되는 창업기에는 전반적으로 재상중심론이 우세했던 때였다. 이 시기 재상중심론을 주도하였던 사람이 정도전이었다. 그는 창업기라는 현실 상황에서 국가의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비하는 데 있어서 바로 현인정치에 입각한 민본정치의 사회적 구현을 기대하였다. 정도전은 임금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아무런 제한없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운용하는 전제정치 대신 현명하고 재능있는 인물이 모든 백성의 이익을 위해 정무를 관장하여야 한다는 믿음을 굳게 지켜나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변계량은 이와 달리 수성기라는 새로운 변화 현실을 바탕으로 강력한 군주인 태종이 즉위함에 따라 군주중심론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따라서 임금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야 하며, 권력의 집중을 통해서만이 왕조를 보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변계량은 왕실의 입장에서 가능한 모든 위험요인을 제거해야 했기 때문에 통치의 도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변계량은 인재의 선발을 정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인재가 얼마나 많고 적은지에 따라 세도의 척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재등용을 보다 치밀하게 진행하려면 불법으로 진입하는 길을 엄격히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of Byun Gye-ryang, who led life in the early Chosun Dynasty. The early Chosun Dynasty was the time to celebrate the founding period through the revolution and the Suseong period of inheriting and developing the founding ideology of the new dynasty.
In the wake of the historical upheaval of the early Chosun Dynasty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Byun Gye-ryang made efforts to study by acquiring studies through active activities under the leadership of representative Confucian thinkers who led the era.
In the era when Byun Gye-ryang was active in earnest, it was considered precious to promote stability due to the conditions of the times as the Suseong period.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it was required to establish a stable system operation of the country and a solid state of the governance order in name and reality. During the founding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the theory of minister-centeredness prevailed in general.
It was Jeong Do-jeon who led the theory of finance-centeredness during this period. He expected the social implementation of civilian politics based on sage politics in establishing a new political system of the country in the real situation of the founding period. Jeong Do-jeon tried to firmly maintain the belief that the most powerful and capable person should be in charge of political affairs for the benefit of all the people instead of the tyranny of hereditary monarchs.
However, Byun Gye-ryang strongly insisted on the theory of monarch-centeredness as Taejong, a powerful monarch, ascended the throne based on the new reality of the Suseong period. Therefore, all power must be concentrated on the king, and only through the concentration of power can the dynasty be preserved. Byun had to find ways to supplement the intention of governance because he had to remove all possible risk factors from the royal family's position.
Byun Gye-ryang thought that the selection of talent should be precise. This is because the scale of power depends on whether there are many or few talents. It was argued that in order to accurately select talent, it was necessary to block the path to illegal entry and omit to consider the number of years in government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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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사서(四書)”의 용례를 통해 본 대덕(大德)의 구조와 의미

저자 : 지준호 ( Chi Chun-ho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9-29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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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보편적인 성품이며 자질을 의미하는 덕(德)은 공자(孔子) 사상을 비롯한 유학(儒學)의 도덕적 실천성을 규명하는 핵심 범주이자 개념이다.
『논어』를 비롯한 “사서(四書)”에서는 덕(德)에 관한 매우 다양한 용례들이 제시되어 있다. 특히, 덕(德)과 관련하여 『논어』에서는 다양한 수사적 표현이 등장하고, 『맹자』 등 후대의 사상사적인 발전과정에서 덕(德)은 보다 세분화되고 구체화되고 있다.
또한, 덕(德)은 도(道)와 구별되는 범주이기 때문에 양자는 상대적인 측면에서 엄격히 차별화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구별을 이끌어내는 기준이나 경계가 일부 모호하기도 하다. 따라서 용례 분석을 기초로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여야만 덕(德)에 관한 종합적인 개념과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사서”에서 제기되는 대덕(大德)은 덕(德)이 지향하는 가치이자 대인(大人)이 체득한 핵심적인 최고의 도덕적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대덕(大德)은 천리(天理)를 이해하고 천(天)과 합일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천덕(天德)의 의미를 포괄하고도 있다.
“사서”는 유학의 중심적인 사유 전거로서 도덕철학으로서의 유학의 학문적 위상을 보여준다. “사서”의 용례 분석으로부터 도출되는 “대덕(大德)”이 표방하는 대(大)와 소(小)의 의미는 전체와 개별이라는 형식적인 구분으로부터,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 또는 지향점과 지양점을 차별화하여 학자가 그 근본에 뜻을 두는 것이 학문의 관건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Virtue, which means a universal character and quality of human beings, is a key category and concept that investigates the moral practicality of Confucianism, including Confucius' ideas.
A wide variety of examples of virtue are presented in 'Sishu', including 'Analects'. In particular, in relation to virtue, various rhetorical expressions appear in 'Analects', and they are more subdivided and embodied in later ideological developments such as 'Mencius'.
In addition, since virtue is a distinct category from Tao, the two should be strictly differentiated in terms of relative, but rather, the criteria or boundaries that lead to such distinction are somewhat ambiguous, so the overall structure must be understood based on case analysis to derive a comprehensive concept and meaning.
The great virtue, which is raised in 'Sishu', describes the value that virtue aims for and the core and highest moral level that the great person has learned. In addition, the great virtue also encompasses the meaning of haven's virtue by suggesting that it can understand the reason of haven and it can be united with haven
'Sishu' is the central reason for Confucianism and shows the academic status of Confucianism as a moral philosophy. The meaning of 'great' and 'small', which are advocated by 'the great virtue', derived from the analysis of the use cases of 'Sishu', also emphasizes that the key to learning is for scholars to put their will at the root by differentiating moral and immoral or a point of direction and a point of avoidance from the formal distinction between the whole and individ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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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희의 중과 부중의 미발과 정(靜)의 관계 및 그 공부

저자 : 이종우 ( Yi Jongwoo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1-31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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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는 미발과 정(靜)의 관계에 대하여 양자가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미발을 정중동(靜中動)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본래 미발은 『중용』, 정은 『예기』의 「악기」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그러한 미발과 정에 대하여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이라고 주희가 해석하여 서로 연결시켰다. 이러한 미발과 정의 관계는 중의 상태에 있을 때를 의미하지만, 그는 미발뿐만 아니라 정시에도 부중(不中)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발의 중은 41세, 부중은 50세 이후에 말했는데 그것은 중이 있다면 부중도 있다고 훗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중의 미발과 정의 상태에서 공부가 필요한데 그것이 존양이라고 말했고, 이와 마찬가지로 부중의 미발과 정의 상태에서도 공부가 필요한데 그것이 함양이라고 말했다. 중의 미발시 공부로서 존양의 구체적인 공부가 계신공구라고 주희는 여겼다. 하지만 그는 미발시에 공부가 가능하지 않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한 미발은 최상의 경지로서 중의 미발을 의미하고 순선이 보존되어[존양(存養)]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것은 요순과 같은 성인 뿐만 아니라 중인도 본래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일지라도 이발과 동의 상태가 되면서 부중절로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이 다시 미발과 정의 상태에서 부중으로 될 수 있기 때문에 존양공부가 필요하다고 주희는 여겼다.


Zhu Xi said that the Not-Yet Aroused (wei-fa, 未發)state, (the state of the Heart&Mind before expressing) and quiet of Mind (the Heart&Mind) are the same, by contrast, also different, meaning motion inside quiet. The Not-Yet Aroused State of the Heart&Mind was firstly written in the Doctrine of Mean and quiet in the “the Article of Music” in the Book of Rites, and Zhu Xi related them. Their relationship means zhong 中(to become centered), by contrast, he thought that they have buzhong 不中(not to become centered). Zhong was written at age 41 and buzhong said since at age 50. This means that if the stat has zhong, will also has buzhong, according to his thought. Therefore, he thought that caution and apprehension is necessary at the state, and careful sincerity at the motion is also necessary at the quiet. As Way is never separated with me, caution and apprehension and careful sincerity cannot so. Also, quiet and motion are not divide and so they are related. But he supposed that self-cultivation at the Not-Yet Aroused State of the Heart&Mind is not necessary. This is at zhong and pure good, so he said so. Both at the Not-Yet Aroused State and quiet of the Heart&Mind are not necessary. However, he said preservation of original mind at the state because zhong at the state can be change to buz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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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근재(謹齋) 안축(安軸)(1282~1348)의 관동(關東) 체험 고찰 ― 가정(稼亭) 이곡(李穀)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저자 : 裴圭範 ( Bae Kuybeom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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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謹齋 安軸과 稼亭 李穀이 경험한 關東 체험을 비교 분석하여 그들의 삶과 이 시기 시문에 드러난 주제 의식을 확인하고자 진행되었다. 安軸-安輔 형제와 李穀-李穡 부자의 인연은 학문을 토대로 전개되었고, 科擧라는 매개를 통해 더욱 깊어졌다. 특히 元 制科에 형제와 부자가 동시에 급제하여 一身은 물론 家門을 일으킴으로써 新進士大夫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어지러운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 진행된 그들의 관동 체험은 안축이 江陵道存撫使에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19년 뒤 이곡은 그런 안축의 발자취를 뒤따라감으로써 그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시에 담았다. 시문에 드러난 주제 의식은 두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안축이 암담한 현실을 비판적이며 풍자적인 논조로 노래한 반면, 이곡은 낙관적이며 조금은 피상적으로 이해하여 현실감각이 떨어져 보인다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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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창협(金昌協)의 <동유기(東游記)> 연구

저자 : 정영문 ( Jeong¸ Young-m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7-7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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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金昌協)은 17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문장가이면서 유람객이다. 그는 21살 되던 1671년 8월 11일부터 9월 11일까지 1달동안 관동지역(금강산과 동해)을 유람하였다. 금강산만 유람하고 돌아오려던 여행이었지만, 권세경(權世經)의 권유로 동해안으로까지 유람 지역을 확대한 것이다. 이때의 유람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 <동유기(東遊記)>이다.
<동유기>에 나타나는 서술상의 특징으로는 첫째, 김창협은 『농암집(農巖集)』에 567題의 한시를 남겼지만, <동유기>에는 한시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동유기>가 12편의 짧은 기(記)를 결합하여 완성했다는 점이다. 김창협은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산수에서 흥취(興趣), 유묵에서 아취(雅趣), 승려와의 관계에서 정취(情趣)를 느꼈다. 이러한 감정은 유람을 떠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현상이지만, 각인각색의 정감이기 때문에 단순화시켜 말하기는 어렵다.
김창협은 금강산을 유람한 이후에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잊지 못하여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애당초 보지 못했던 때보다 더 간절해진다.”고 말할 정도로 잊지 못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유산(遊山)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또한, 김창협은 유람지에 있는 바위나 누정 등에 적혀있는 이름과 유묵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제명(題名)을 남기려고 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흥취를 즐기는 여흥인 동시에 동류들과 소통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을 유람하는 동안 김창협은 이전의 사대부들과는 달리 승려들과 성리학에 관해 논쟁하기보다 불교와 승려에 대해 긍정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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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조선 후기 고소설에 나타나는 죄벌(罪罰)의 방식인 추모(醜貌)·귀물(鬼物)·유충(幼蟲)·병신(病身)의 형상화를 통해 조선 후기 고소설 속 갈등의 방식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원인을 고찰하는 것이다.
고소설은 일반적으로 권선징악을 세계관으로 삼아 선악(善惡)을 중심으로 한 갈등과 악행에 대한 죄과(罪科)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고소설 속에서 가문의 질서를 따르는 인물을 선인으로, 가문의 질서를 위협하는 인물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문의 질서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물에게는 징벌이 내려지는데 그 대상이 권력 관계 속에서 열세에 있는 소수자인 여성과 장애인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들은 죄벌로 인해 못생긴 외모(醜貌)로 태어나고(<한조삼성기봉>), 몸에서 수많은 벌레(幼蟲)를 쏟아내며(<완월회맹연>), 흉악한 귀물(鬼物)이 되어 돌아오고(<완월회맹연>) 맹인·앉은뱅이·성불구자와 같은 병신(病身)이 된다.(<한후룡전>·<유화기연>) 소수자를 악취·유충·버러지·더러움·우두나찰·귀신·잔나비·흉계망측·병신·일무가취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의 전쟁으로 인해 신분 질서의 동요 등이 일어났던 조선 후기 사회에서 사대부 남성들은 흔들리는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윤리를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종법 의식을 강화하여 가문 중심의 질서로 사회를 재편하려 했는데 이러한 움직임 이면에는 주체 남성의 은폐된 욕망과 자신들이 만든 공동체가 새로운 사고에 의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반(反)이데올로기, 성적 욕망, 신체적 불완전성에 대한 주체 집단의 원초적 두려움이 소수자를 괴물화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주체가 만들어낸 괴물이 사실은 폭력적인 권력자가 아니라 사회 권력의 희생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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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렁덩덩 신선비>와 <두꺼비 신랑> 속 '허물'과 '아내 고행'의 의미 ― 동물 토템에서 기인한 가부장제로의 이행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용선 ( Kim Yong-su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1-13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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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의 오랜 관계는 구전설화에서도 즐겨 다루는 주제의 하나이다. 설화 속 이물은 대체로 동물이며 이물교혼은 동물과 사람 간의 혼인을 다루는 서사로서 <구렁덩덩 신선비>와 <두꺼비 신랑>은 남성 배우자가 이물 즉 동물이다. 동물 신랑과 사람 각시가 만나 부부가 되는 이야기. 두 서사는 나란히 이물교혼을 다루며 비슷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이를 갖기 어려운 부모나 노파가 구렁이 아들, 혹은 두꺼비 아들을 얻고 이웃집 세 딸 중 막내딸과 혼사를 이룬다. 첫날밤 동물신랑은 허물을 벗고 미남자가 되며 아내에게 허물간수를 부탁하고 멀리 떠난다. 언니들의 방해로 허물을 태우자 냄새가 신랑에게 닿고 신랑은 새 각시를 만난다. 아내는 남편을 찾아 떠나 고행을 겪고 끝내 두 처가 겨루어 아내는 집 나간 남편과 재결합 한다. 여기까지 구조는 두 서사 모두 동일하나 <두꺼비 신랑>의 경우 동물 신랑이 처가로부터 시험을 겪는 각 편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두 설화는 모두 민담의 구조를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말하는 동물과 이를 놀라워하지 않는 사람. 성과 속의 세계는 평면적 서사 세계에 함께 놓여 있고 교차된다. 민담 속 구렁이와 두꺼비는 고대의 동물 토템 흔적을, 변신과 혼인의 과정은 민간 신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처가에서 남편 가정으로의 서사 공간이 이동되고 아내의 입장이 남편의 시험과정을 통해 승인된다는 점에서 두 서사는 모권제에서 가부장제로의 이행을 서사적으로 드러낸다. '허물'은 신성성의 탈각이며 아내의 고행은 동물 토템에의 숭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두꺼비 신랑의 처가 승인 과정은 일종의 변이형으로 이물의 비범한 능력을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된다. 이는 동물 토템이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이기보다 도리어 우월한 입장인 '신격'에 놓여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두 민담은 토템과 민간 신격의 흔적, 그리고 가부장제의 학습을 남편의 '허물'과 아내의 '고행'을 통해 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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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수석>에 구현된 국가의 존망과 가문의 존재 양상

저자 : 김강은 ( Kim¸ Kang-eu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17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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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석>은 당말오대라는 역사적 배경을 활용하면서도 비극적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국문장편소설 중 특이한 작품으로 일컬어져 왔다. 당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차용한 작품이 드물기도 하지만, 가문 번영에 중점을 두는 여타의 국문장편소설과 달리 <천수석>은 국가와 가문의 쇠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러한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어, <천수석>에 나타난 국가의 존망과 가문의 존재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천수석>은 실존 인물인 위보형과 위부를 중심으로, 국가와 명운을 함께하게 된 가문이 번영하였다가 쇠락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사 가문이었던 위부가 공주혼을 통해 당 왕실과 운명을 함께하고, 당이 멸망하자 다시 처사 가문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 작품은 이극용과 동창공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위부의 명맥을 계승하고 당과 후당의 연결성 또한 확보한다. 이는 난세에 가문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거시적인 역사를 문학적 범주에서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천수석>의 지향은 대내적으로는 가문의 생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국문장편소설과 역사적 배경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상당수의 국문장편소설이 역사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활용하면서도 가상의 역사에 머물거나 역사적 사건을 주변화시키는 것과 달리, <천수석>은 시대 배경이 작품을 좌우하며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때로는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가의 멸망이라는 큰 사건을 한 가문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이 스스로 역사의 빈 공간을 상상하고, 국가가 멸망할 때 가문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서사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천수석>은 가문의 존속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은 물론, 고소설에서의 역사 활용 방식을 검토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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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광개토태왕훈적비(廣開土太王勳績碑) 제3·4면 해독(解讀)과 수묘제(守墓制) 고찰(考察)

저자 : 朴光敏 ( Park¸ Kwang-mi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223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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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開土太王勳績碑연구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비문에 대한 解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많은 연구자의 선행 연구에 의해 대부분의 글자는 해독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글자의 해독에는 논란이 많고, 아직 읽지 못한 부분도 상당히 남아 있다. 필자는 제1면과 제2면을 다룬 논문에서 광개토태왕훈적비의 글자와 古代의 金石文 자료들을 한 글자 한 글자 對比하여 그간 논란이 되어 왔던 일부 글자를 새롭게 해독한 바 있는데, 본고에서도 古代 금석문 자료들을 활용하여 3-5-10의 '挺', 3-7-29의 '抺', 3-10-9와 3-10-16의 '契', 3-11-37의 '岺' 등을 새롭게 解讀 하였다. 碑面이 완전히 깨져나간 4-1-1∼4-1-3, 碑面이 훼손된 4-1-4∼4-1-7도 문맥으로 헤아려 일부 글자를 해독하였다.
제3면의 討倭 기사 중 “侵入帶方界”라는 내용은 몇 글자 아래의 “王躬率住(왕)討徙平穰”과 연결되어 高句麗 平穰의 위치에 대하여 새로운 논의를 요한다. 본고에서는 중국 『二十四史』 중 『新唐書』와 『遼史』, 『元史』 등의 기록을 詳察하여 高句麗 平穰의 遼東 존재설에 대하여 문제 제기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3-8-16∼4-9-41은 守墓制에 관한 기사다. 4-1-41∼4-2-10에는 “百殘의 남쪽에 사는 韓은 國烟 1家 간연 5家”라고 기록해 있는데, 이는 濊貊을 비롯한 北方 韓系와 남쪽의 馬韓系 등 韓이 여러 곳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三國志』 『魏書-동이전』에, “景初 연간(237년∼239년)에 辰韓 여덟 개 나라를 나누어 樂浪에 주었는데, 吏讀(이두) 번역의 轉音에 같은 것과 다른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魏書』에서 말한 '辰韓 여덟 개 나라'는 古代의 요동에 존재했던 北方系 韓을 가리킨 것이다.
제4면의 “烟戶매매를 금지했다.”는 내용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墓直이(>묘지기)에 관한 필사본 자료를 처음 발굴하여 '연호 매매'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國烟과 看烟의 의미는 무엇인지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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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誠)'의 도덕적 이해 방식에 관한 고찰 ―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을 중심으로 ―

저자 : 홍한얼 ( Hong¸ Han Eol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5-24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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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성실(誠實)'은 '부지런함'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여기서 '부지런함'은 '어떤 일을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태도'로 정의(定義)된다. 또 '정성(精誠)'은 '마음을 다함'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부지런함'이나 '마음을 다함'을 곧바로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동양고전에 나타난 '성(誠)'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이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의 개념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알아보고, '부지런함'과 '마음을 다함'이 '성실(誠實)' 그리고 '정성(精誠)'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이유를 탐구해 보고자 했다.
이 연구는 '성(誠)'의 의미를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으로 한정한다거나 정형화 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첩된 의미 구조로 이해되는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의 개념을 보다 선명하게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부지런함'과 '마음을 다함'은 그 대상과 목적이 도덕적 자기완성에 있어야만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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