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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전북지역의 발레 도입 및 변천과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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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의 발레 도입 및 변천과정 연구

A Research on the Introduction and Change of Ballet in Jeollabuk-do

김은경 ( Kim Eun Kyoung ) , 김달우 ( Kim Dal Woo ) , 이정숙 ( Lee Jeong Sug )
  • : 한국체육사학회
  • : 체육사학회지 26권3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9월
  • : 103-116(14pages)
체육사학회지

DOI


목차

Ⅰ. 서 론
Ⅱ. 전북지역의 발레도입 및 전개
Ⅲ. 전북지역 대학 발레무용단 활동
Ⅳ.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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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보기

본 연구는 전북지역 발레교육의 양태 및 활동 양상을 고찰하였다. 연구결과 전북지역에서는 1945년 김미화무용연구소가 개설되어 발레가 도입되었으며 1949년 성심여학교에서 외국무용교육이 이루어졌고 특히 발레의 경우 활발하게 교육해왔던 것으로 고찰되었다. 1980년 원광대학교를 필두로 1988년 전북대학교 그리고 1989년 우석대학교 무용과가 개설 되어 대학에서의 발레교육이 이루어졌다. 대학발레단 활동은 원광대 백의선 발레단, 전북대 손윤숙 발레단 및 동문발레단인 발레라인즈 그리고 우석대 손정자 발레단이 1986년부터의 활동으로 발레공연이 활성화되었으나 현재에 이르러는 전북대 중심의 발레단만이 활동함이 드러났다. 대학 교육에 있어도 원광대는 무용교육과정이 없고 우석대학교의 경우 체육학과에서 무용교육과정 만이 교육되고 있으며 전북대학교만이 발레교육의 명맥을 유지함이 보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look at the history and activities of ballet education in Jeonbuk province, south korea. As a result of the study, it was realized that in Jeonbuk province, Ballet was introduced with the opening of the Kim-Mi Wha Dance Research Institute in 1945 and then a serious of foreign dance education had been conducted in Sungshim girl high school and In particular, ballet education had been most actively carried out. After that, Wonkwang University in 1980, Jeonbuk National University in 1988, and then Woosuk University in 1989, the Department of Dance was opened, and ballet education began in earnest at the university. In case of performance of ballet in regional universities, from 1986 Baek Ui Sun ballet company in Wonkwang University, Son Yun Shook ballet company and Ballerines consisting of university alumni in Jeonbuk University and Son Jeong Jag ballet company in Woosuk University had been actively performed but only the Jeonbuk National University-centered ballet companies are in activity these days. In the university curriculum, Wonkwang University did not have a dance curriculum anymore, and in the case of Woosuk University, only the dance curriculum has been taught in the physical education department, and only Jeonbuk National University has maintained the legacy of ballet education.

UCI(KEPA)

I410-ECN-0102-2022-600-000910294

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2
  • :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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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권3호(2022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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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여자탁구의 세계제패 과정에 관한 연구(1954∼1973)

저자 : 이선애 ( Lee Sun-ae ) , 최흥희 ( Choi Heung-hee ) , 김재우 ( Kim Jae-w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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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여자탁구가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1973) 단체전에서 우승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제3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1954, 싱가포르)에 처음 출전한 여자탁구는 오랫동안 홍콩과 일본의 벽에 부딪혀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러한 벽을 허물고 여자탁구가 아시아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제9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1968, 인도네시아)였다. 제2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1956, 일본 동경)에 처음 참가한 여자탁구는 제25회 대회(1959, 서독 도르트문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여자탁구는 이념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인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 만인 1969년 제30회 대회(서독 뮌헨)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여자탁구는 6위를 차지했다. 다음 대회인 31회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렸다. 마침내 여자탁구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탁구의 우승에는 1970년부터 추진된 대한탁구협회의 인프라 구축과 상비군제도 정착, 그리고 훈련의 체계화가 뒷받침되었다.


This study is about the process of The Korean women's table tennis team winning the gold medal in the 32rd World Table Tennis Championships(WTTC) in 1973. The first overseas competition for the Korean women's table tennis team was the 3rd Asian Table Tennis Championships(ATTC) held in Singapore(1954). After competing against Hong Kong and Japan, they only won the silver medal. Until the 9rd ATTC held in Indonesia(1968), Korean women won the gold medal for the first time in Asia. The first world-level competition for the Korean women's table tennis team was the 23rd World Table Tennis Championships (WTTC). But it was not until the 25rd WTTC that they won a silver medal. This boosted their confidence in winning the championship. However, women's table tennis failed to continue to participate in the WTTC due to ideological, social, and economic reasons. 10 years later (1969), they participated in the 30th WTTC (Munich) and won sixth place. And in the 31th WTTC, they won the bronze medal. Finally, women's table tennis won the championship at the 32rd WTTC(Saraj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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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 해군사관학교의 해양체육프로그램 변천사(1946-2021)

저자 : 이태희 ( Lee Tae-hui ) , 안진규 ( An Jin-k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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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문헌분석방법을 사용하여 1946년 해군사관학교 개교부터 2021년까지의 해양체육프로그램의 변천 과정과 그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도입·적용기(1946-1978)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해군 장교 육성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관생도에게 해군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해양성 강화와 해상 생존능력을 높이고, 협동심 및 도전정신 등의 리더십을 배양하여 최정예 해군 장교로 성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둘째, 성장기(1979-2009)는 해양체육과를 신설하는 등 수업으로서의 해양체육프로그램 강화와 함께 사관생도 개인의 적성에 맞는 해양스포츠를 선택하도록 다양한 해양체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해양스포츠에 유능한 해군 장교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셋째, 정착기(2010-2021)는 도입·적용기와 성장기의 해양체육프로그램 성격과 내용을 포함하고, 보다 체계적이며 강화된 해양체육 수업 운영과 함께 군사훈련으로의 해양체육프로그램 확장을 통해,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며,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세계 일류 해군 장교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transition process of marine sports from the opening of the Korea Naval Academy in 1946 to 2021. The following conclusion was reached. First, in order to achieve the purpose of fostering naval officers, the introduction and enemy courage (1946-1978) focused on strengthening the maritime nature and the ability to survive in the sea, and cultivating leadership such as cooperation to grow into the best naval officer. Second, the growth period (1979-2009) focused on fostering competent naval officers in marine sports, such as strengthening marine sports as a class, and providing various marine sports programs. Third, the 2010-2021) focuses on fostering world-class naval officers who live up to the era of globalization in the 21st century, protecting maritime sovereignty and contributing to international peace through the operation of more systematic and strengthened marine sports cl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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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텍스트마이닝과 네트워크 분석으로 본 한국체육사학회지(1996∼2022) 연구동향과 과제

저자 : 김미숙 ( Kim Misuk ) , 변현 ( Byun Hyun ) , 전상완 ( Jeon Sang-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7-50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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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1996∼2022년까지 한국체육사학회가 발행하는 한국체육사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의 연구동향을 분석하고 과제를 제시하는 데에 있다. 연구대상은 27여 년간 발표된 총 478편의 논문으로 제목과 초록을 발췌하였다. 소셜 매트릭스 프로그램 텍스톰을 활용하여 텍스트마이닝을 그리고 Ucinet6과 NetDraw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 및 시각화하였다. 분석한 결과, 첫째, 1996∼2011년까지 발표된 논문에서는 스포츠, 한국, 연구, 올림픽, 체육, 경기 등에서 높은 중심성 값이 나타났다. 또한 군집분석 결과는 '시공간 및 집단', '스포츠의 내재화와 세계화', '움직임과 지향점', '시대·지역별 스포츠의 다양성' 등 4가지 범주로 분류되었다. 둘째, 2012∼2022년까지 발표된 논문에서는 한국, 올림픽, 스포츠, 태권도, 중국 등에서 높은 중심성 값이 나타났다. 또한 군집분석 결과는 '종목과 대회의 확장', '체육인의 등장과 활약', '근대 및 확산', '전통과 무예', '지역 체육 및 인물', '국제 무대로의 도전', '스포츠와 민족주의', '스포츠의 대중화와 체계 확립' 등 8가지 범주로 분류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research trends of papers published in the Journal of history for physical education, sport, and dance from 1996 to 2022. The subjects of this study are the titles and abstracts of 478 papers published during the period. Text mining was analyzed using the social matrix program Textom, and analyzed and visualized through Ucinet6 and NetDraw programs. As a result of the analysis, first, the papers from 1996 to 2011 showed high centrality values in sports, Korea, research, Olympics, physical education, and competition. In addition, the results of cluster analysis were classified into four categories: 'Time and space and group', 'Sports Internalization and Globalization', 'Movement and orientation', and 'Diversity of sports by era and region'. Second, the papers from 2012 to 2022 showed high centrality values in Korea, Olympics, sports, taekwondo, and China. In addition, the results of cluster analysis were classified into eight categories: 'expansion of events and competitions', 'appearance and activity of athletes', 'creation and spread', 'Modernity and diffusion', 'local sports and people', 'challenge to international competition', 'nationalism in sports' and 'popularization of sports and establishment of a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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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김영기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연구

저자 : 허진석 ( Huh Jin-seo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1-6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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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는 한국 남자농구 역사상 광복 이후 등장한 첫 대중스타이다. 그는 1956년 멜버른올림픽과 1964년 프리올림픽,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명성을 얻었다. 국제무대에서 빛난 김영기의 경기력은 탁월한 개인기라는 특징으로 요약된다. 김영기는 트위스트 슛, 원 핸드 슛, 빠르고 다양한 드리블을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익혀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김영기는 은퇴 후 방송해설자와 코치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196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1970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은 은퇴 후 우리 농구계의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김영기는 농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유명인사(Celebrity)로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한국 스포츠가 대중적인 문화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기에 이른 지금 김영기의 선구자적 업적과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의 발전적 계승이 필요하다.


The Kim Young-Gi was the first Korean men's basketball star following the country's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Kim rose to prominence thanks to his outstanding performances at the 1956 Melbourne Olympics, the 1964 Pre-Olympic Basketball Tournament and the 1964 Tokyo Olympics. Kim leaned on his exceptional individual skills to shine on the international stage. He learned and developed his “twist shot” (double clutch shot), one-handed shot and quick dribbling skills without formal instruction. He used them with ease in competition. After retiring, Kim showcased his talent as a television commentator and also proved to be a great coach. In particular, he led South Korea to gold medals at the 1969 Asian Basketball Confederation Championships and at the 1970 Asian Games. Those that Kim had coached went on play integral roles in Korean basketball after their retirement. As a well-respected figure who transcended boundaries of basketball, Kim wielded a far-reaching influence on the Korean society. Kim's legacy as a pioneer can serve as the guiding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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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씨름 경기장의 역사적 변천 과정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8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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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씨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씨름 경기장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근대 이전의 씨름은 안정성이 확보되는 천연적인 환경에서 행해졌다. 강변의 모래 백사장과 들판의 풀밭과 같은 자연환경이나 짚이나 멍석을 깐 인공적인 공간이 곧 씨름 경기장이었다.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창설된 이후 최초로 모래를 기반으로 한 씨름 경기장의 설비 규정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씨름은 양질의 모래 수급과 일제의 감시 때문에 주로 실내의 사각 링이나 매트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광복 이후 대한씨름협회는 실내외로 구분된 경기장 시설 자원과 규격에 대한 지속적인 개정을 추진했다. 씨름 경기의 안정적인 개최와 역동적인 경기의 연출을 위함이었다. 이러한 규정의 변화 속에서 현재의 씨름 경기장은 모래 설비가 원칙이 되었다. 모래판이 씨름의 역사성과 정체성 유지를 위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기능한 결과이다.


In order to systematically establish the history of Korean ssireum, this study reviewed the historical transition process of the ssireum stadium,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Pre-modern wrestling was conducted in a natural environment where stability was ensured. Natural environments such as sandy beaches along rivers and grassy fields or artificial spaces covered with straw or rugs were the ssireum stadiums.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Ssireum Association in 1927, the first sand-based ssireum stadium facility regulations were prepared. However, ssireum was mainly played on indoor square rings or mats due to the supply and demand of high-quality sand and surveillance by the Japanese. After the liberation, the Korean Ssireum Association promoted continuous revision of the resources and standards for indoor and outdoor stadium facilities. This was for the stable holding of ssireum matches and the production of dynamic matches. In the midst of these changes in regulations, the current ssireum stadium is based on sand facilities. It is the result of mounded-sand functioning as a symbolic space to maintain the historical and identity of ssir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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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탁구인 김충용에 대한 사적 고찰

저자 : 박경호 ( Park Kyo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02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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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탁구 최초 국제대회 금메달리스트인 탁구인 김충용의 성장 과정과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 과정을 조명하고자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한국 탁구, 방콕 아시안게임, 김충용과 관련된 다양한 문헌고찰을 실시하였으며 김충용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스토리를 확보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김충용은 한국전쟁 이후 탁구가 성행하던 대구 지역에서 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진보된 탁구 문화를 경험하였고, 우리나라의 전문적인 체육 시스템이 정착되기 이전의 상황 속에서도 당대 탁구의 엘리트 코스를 거치면서 성장해 온 준비된 챔피언이었다. 둘째, 1966년 김충용이 획득한 금메달은 우리나라 탁구사에 있어서 첫 번째 국제대회 금메달이라는 '최초'의 기록이었으며, 중국과 일본에 밀려 국제대회에서의 자존감이 상실되어 있던 우리나라 탁구계에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문화적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shed light on the growth process of table tennis player Kim Chung-yong, the first Korean table tennis gold medalist, and the process of winning a medal at the 1966 Bangkok Asian Games. To this end, various literature reviews related to Korean table tennis, Bangkok Asian Games, and Kim Chung-yong were conducted, and unrecorded stories were secured through interviews with Kim Chung-yong. The research outcomes are as follows. First, Kim Chung-yong experienced a relatively advanced table tennis culture as he grew up in Daegu, where table tennis was prevalent after the Korean War, and He was a prepared champion who had grown through the elite course of table tennis at the time even before Korea's professional sports system was established. Second, the gold medal Kim Chung-yong won in 1966 was the first international gold medal in Korea's table tennis history, and served as a cultural driving force that inspired confidence in the Korean table tennis world, which had lost self-esteem in international competitions due to Chin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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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구술사로 통해 본 태권도의 일본 진출과 확산

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3-11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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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본의 태권도 진출과 확산에 관한 연구로 문헌연구와 일본에 진출했던 태권도 사범 면담내용을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일본에 태권도 보급이 이루어졌으며, 오사카대학에서 태권도부의 창설과 태권도가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었다. 둘째, 일본 태권도의 체계적 보급이 이루어졌으며, 일본태권도협회가 7년 만에 일본올림픽위원회(JOC)의 준가맹 단체로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태권도 국가 대표 팀은 국제적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해나갔다. 셋째, 일본태권도연맹은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선수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카모토 선수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러한 결과 일본에서 태권도의 이미지 상승과 태권도 인구가 증가되었다.


This study is a study on the advancement and spread of Taekwondo in Japan,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as a result of studying the literature and interview contents of Taekwondo instructors who entered Japan.taekwondo. First, taekwondo was spread to Japan centered on Koreans in Japan,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Taekwondo Department at Osaka University and Taekwondo were adopted as official subjects. Second, Japanese Taekwondo was systematically distributed, and the Japan Taekwondo Association was approved as an associate affiliate of the Japan Olympic Committee (JOC) for the first time in 7 years. And the national Taekwondo team showed off their skills on the international stage. Third, in a situation where it was difficult for athletes to perform normal activities due to division within the Japan Taekwondo Federation, Okamoto won the bronze medal at the 2000 Sydney Olympics. As a result, the image of taekwondo in Japan and the population of taekwondo incre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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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제강점기 상해 조선체육인 현창운(玄彰運)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병중 ( Kim Byung-jung ) , 조준호 ( Cho Jun-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3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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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상해에서 활약한 조선체육인 현창운의 생애와 체육활동을 분석했다. 그에 관한 선행연구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서는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에서 1차 사료를 입수하여 번역, 해석을 통한 문헌분석법을 사용하였고, 각 사료의 교차검증을 통해 내용의 정확도를 높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10년 일본 제국주의의 한일병탄(韓日倂呑)에 의한 주권상실은 일제강점기 상해 조선 체육인 형성의 시대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에 그들은 민족의 울분을 원동운동대회의 참가, 체육활동을 통해 분출했다. 둘째, 조선의 야구선수 현창운은 1915년 제2회 상해 원동운동대회에 상해야구단 대표로 참가했다. 이는 한국 근대체육사에서 최초로 조선체육인이 국제종합경기대회에 참가한 것이었다. 이후 현창운은 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 고려공산당 등의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귀국한 후에는 조선의 야구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현창운의 제2회 상해 원동운동대회 참가는 근대 한국체육의 대외지향성을 상징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근대 조선체육의 국제성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국제체육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높은 위상의 첫 출발점이었다.


This study analyzed Hyun Chang-un, a towering figure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an iconic Joseon athletes in Shanghai. It obtained primary data from the United States, Japan, China, and Korea, used literary analysis through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and improved the accuracy of historical descriptions through cross-validation of data. The results of the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ly, the loss of sovereignty due to the Annexation of Korea by Japanese imperialism in 1910 birthed much national angst - and so athletes in both Shanghai and Joseon vented their national anger via participation in the Far Eastern Championship Games. Secondly, Joseon baseball player Hyun Chang-un participated in the 2nd Shanghai FECGs in 1915 as a representative of the Shanghai baseball team. It was the first time a Joseon athlete participated in an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Joseon Modern and Alternative Athletics. Since then, Hyun Chang-un worked hard towards developing baseball in Joseon after returning there. Hyun Chang-un's participation in the 2nd Shanghai FECGs symbolized the external orientation of modern Korean physical education. Furthermore, it launched an international dimension of Joseon's modern sports under the Japanese deduction system. Also, it enabled the prestige Korea enjoys in the global sports arena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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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북미스포츠역사학계의 연구 동향과 시사점: 학술지 「Journal of Sport History」(1974-2000)를 중심으로

저자 : 김방출 ( Kim Bang-chool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5-15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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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북미스포츠역사학계의 연구 동향을 소개하는 작업으로, 학술지 Journal of Sport History에 1974년부터 2000년까지 게재된 연구들에 초점을 두고 그 내용과 성격을 정리하였다. 연구방법의 측면에서, 모든 연구들의 현황, 패턴, 양태 등을 정밀하게 분류, 구분하여 객관적 수치로 제시하기보다는, 역사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성격들을 포착하여 해석함으로써, 연구 동향을 대표하는 몇 가지 징후들을 뽑아서 제시하는 것이다. 연구결과는, 연구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실증적 연구에서 사회사적 연구로 확장되어 공존하고 있다는 점, 스포츠 관련 이데올로기, 담론 등을 탐구하는 지성(사상)사 연구가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는 점, 학회 창립 초기부터 스포츠역사학의 학문적 본질, 성격, 실제 등을 검토하고 성찰하고 논의하는 관심들이 지속적으로 표명되어 왔다는 점, 과거 스포츠의 역사적 주체에 대한 관심이 백인 남성에 초점이 있었던 것에서 점점 여성 주체와 소수 인종 및 민족들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연구의 주제, 대상, 실제 등이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에서는 한국의 체육사학회 및 학술 구성원들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introduces the research trends of the North American sports history community and summarizes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research published from 1974 to 2000 in the Journal of Sports History. Rather than objectively classifying and presenting all research status, patterns, and forms, several signs representing research trends were selected and presented by capturing and interpreting historical philosophical and theoretical characteristics. Major findings include extending the dominant paradigm from empirical to social and historical studies, continuing to publish intellectual studies exploring sports-related ideologies and discourse, continuing to review, reflect on, and discuss sports historical subjects, increasing focus on women and ethnic minorities, and expanding diversity in the academic subjects, approaches, and methods. In conclusion, the desirable direction for the Korean Physical Education History Association and academic members was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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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한국 최초의 올림픽 참가 과정 연구: 국내 단체결성 및 활동을 중심으로

저자 : 김영남 ( Kim Young Nam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5-168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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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체육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최초 올림픽 참가에 주목하여 국내에 창설되어 활동했던 관련 단체들의 행적을 고증하는 것에 연구의 목적이 있다. 광복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주로 올림픽 관련 단체의 결성과 활동을 토대로 올림픽 참가 승인과 출전 준비가 이루어졌다. 먼저 올림픽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NOC 조직 준비와 올림픽 참가 제반 마련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올림픽대책위원회의 임무를 계승하여 올림픽위원회, 올림픽준비위원회, 올림픽후원회가 순차적으로 결성되어 활동했다. 올림픽위원회는 IOC와의 문서연락 등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했고, 올림픽준비위원회는 올림픽 출전에 대한 종목선정, 선수선발, 기술향상 등에 목적을 두고 결성되어 활동했다. 올림픽후원회는 올림픽 출전에 소요되는 경비조달을 목표로 결성되어 활동했다.


This research has the purpose of ascertaining the traces of organizations founded in Korea related to the first ever participation in the Olympics, which was an important turning point in the development of sports in Korea. After independence, authorization for participating in the Olympics and preparations for competitions were happening domestically basing on the related activities of new associations. First, the Olympic Task Force was formed, prepared the NOC, and made arrangements for the Olympics. Later, to succeed the roles of the Olympic Task Force, the Olympic Committee, Olympic Preparation Committee, and the Olympic Sponsers' Association were founded in that order. The Olympic Committee took the role of communicating with the IOC, and handled the administrative business, while the Olympic Preparation Committee focused on selecting events and athletes that would participate, and improving techniques. The Olympic Sponsers' Committee was responsible for cost procurement needed for the Olympic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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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최초의 운동장,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의 역사적 의미

저자 : 손환 ( Son Hwan ) , 하정희 ( Ha Jung-hee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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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운동장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을 알아보기 위해 대정공원 운동장의 건설과 개장, 구조, 각종 경기대회에 초점을 맞추어 그 실태를 파악하고 한국스포츠사에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은 부산의 체육발전을 위해 일본 천황의 연호를 붙여 운동장의 명칭으로 사용했다. 운동장에는 야구장, 정구장, 스모장, 부속수영장의 설치 외에 가족동반으로 즐길 수 있는 각종 운동기구를 갖추어 운동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공원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운동장에서 개최된 대부분의 경기대회는 일본인들이 주최하거나 후원했다는 사실에서 일본인들을 위한 행사에 지나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즉 부산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동장을 건설하고 각종 경기대회를 개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운동장으로서 건설된 대정공원 운동장은 부산근대스포츠, 나아가 한국근대스포츠의 보급, 발전의 전체상을 고려할 때 일정부분 포지티브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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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 양궁의 LA올림픽(1984) 참가과정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 왕심위 ( Wang Xin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3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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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양궁팀의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살펴보고, 그들이 첫 출전한 LA올림픽에서의 대표선발과정, 훈련과정과 성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71년의 한국 양궁은 전국체전 시범종목으로 실시되었지만 국제교류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1972년 뮌헨올림픽 참가를 승인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동년의 장애인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둘째, 체육입국이라는 정책 하에 KOC와 대한양궁협회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은 한국 양궁팀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 경기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셋째, 1984년 LA올림픽 출전 이전에 중국과 일본 선수들이 주는 위기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유례없이 엄격한 3차례의 선발전을 실시하였다. 양궁 국가대표선수들은 올림픽을 대비하여 최면요법, 참선, 새벽명상 등 심리훈련을 통해 경기전에 컨디션을 조절하였다. 넷째, LA올림픽의 쾌거는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전망을 한층 밝게 해 주었다. 게다가 대한체육회는 양궁 중목에 대해 집중 투자하는 한편, 스포츠과학의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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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올림픽위원회(KOC)의 설립과 활동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미경 ( Kim Mi-kyung ) , 손환 ( Son H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52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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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정부수립 이전 IOC의 인준을 받은 국가올림픽위원회인 조선올림픽위원회(이하 KOC)의 설립과 활동에 대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KOC는 광복 후 불안한 정세와 어려움 속에서도 IOC의 회원국으로 인준을 받고 런던올림픽대회와, 생모리츠동계올림픽대회에 초청받게 되었다. KOC는 올림픽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조선올림픽준비위원회, 올림픽후원회를 조직했다. 조선올림픽준비위원회는 런던올림픽대회 7개 종목 68명의 선수단, 생모리츠동계 올림픽대회 1개 종목 6명의 선수단을 구성하고 선수훈련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올림픽후원회는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후원권 발행, 기부금 모금, 영화, 가극 상영 등을 통해 올림픽경비를 마련했다. 이밖에도 KOC는 올림픽정신에 입각하여 한국의 아마추어 규정을 심의·확정했다. 이처럼 KOC는 한국의 국제올림픽대회의 참가의 길을 개척하였고 신생 독립국으로서 한국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구심체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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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 스켈레톤의 올림픽 참가사: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중심으로

저자 : 최승아 ( Choi Seung-ah ) , 천호준 ( Cheon Ho-j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66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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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를 계기로 관심을 받아오고 있는 한국 스켈레톤의 초기 올림픽 참가사를 확인하는데 연구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에 스켈레톤 선수와 지도자로 참여했던 참가자들의 기억을 기록화하고 관련 기록을 확인하여 한국 스켈레톤의 올림픽 참가사를 파악하였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1995년 썰매 종목을 시작으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썰매 종목의 모든 종목에 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때 당시 한국 스켈레톤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둘째,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정부 및 연맹의 지원과 선수와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셋째,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영광은 사라지고 현실을 걱정해야 하는 현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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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시아의 물개, 조오련(趙五連)의 삶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동혁 ( Kim Dong Hyeok ) , 조준호 ( Cho Jun 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8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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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오련의 삶을 연구하여 그의 체육사적 발자취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오련은 전남해남에서 5남 5녀의 막내로 태어나 고1 때 서울로 상경, YMCA 수영장에서 장형숙의 지도로 수영계에 입문했다.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그는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1위를 차지, 민관식에게 발탁되었다. 둘째,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그는 꾸준히 성장하여 아시아경기대회의 국가대표로 선발, 1970년과 197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2관왕, 2연패하였다. 1978년 아시아경기대회의 접영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현역선수 시절 총 50개의 신기록을 작성하고 은퇴하였다. 셋째, 그는 대한해협 횡단, 도버해협 횡단, 한강 700리 종주, 울릉도 독도 횡단, 독도 33회 회영 등에 성공하며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을 드높였다. 그는 국민이 어렵던 시절, 수영을 통해 국위를 선양했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준 아시아의 물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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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국 청명절 축제의 전통 체육 활동에 관한 고찰

저자 : 장초맹 ( Zhang Chao-Meng ) , 김달우 ( Kim Dal-woo ) , 린천풍 ( Lin Qian-Fe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9-101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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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법을 활용해서 중국 고대 세시풍속에 내려오는 청명절(淸明節)을 파악한다. 중국 정부는 역사와 전통활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3대 명절보다 체육 활동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청명절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청명절의 기원과 변천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청명절 축제에 행해지는 체육활동을 집중적으로 고찰하는데 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체육적 의미를 찾아봤다. 현재 청명절 축제는 춘추전국시대의 청명절 행사에서 유래하고, 북송시대에는 큰 발전이 이루어지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부 인정된 유일한 공식적 전통 축제이다. 청명절 축제에서 등장하는 5개의 체육 종목은 공차기, 씨름, 줄넘기, 거석쇠(舉石鎖), 굴렁쇠 굴리기다. 이런 체육 종목은 중국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기원과 변천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체육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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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북지역의 발레 도입 및 변천과정 연구

저자 : 김은경 ( Kim Eun Kyoung ) , 김달우 ( Kim Dal Woo )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16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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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북지역 발레교육의 양태 및 활동 양상을 고찰하였다. 연구결과 전북지역에서는 1945년 김미화무용연구소가 개설되어 발레가 도입되었으며 1949년 성심여학교에서 외국무용교육이 이루어졌고 특히 발레의 경우 활발하게 교육해왔던 것으로 고찰되었다. 1980년 원광대학교를 필두로 1988년 전북대학교 그리고 1989년 우석대학교 무용과가 개설 되어 대학에서의 발레교육이 이루어졌다. 대학발레단 활동은 원광대 백의선 발레단, 전북대 손윤숙 발레단 및 동문발레단인 발레라인즈 그리고 우석대 손정자 발레단이 1986년부터의 활동으로 발레공연이 활성화되었으나 현재에 이르러는 전북대 중심의 발레단만이 활동함이 드러났다. 대학 교육에 있어도 원광대는 무용교육과정이 없고 우석대학교의 경우 체육학과에서 무용교육과정 만이 교육되고 있으며 전북대학교만이 발레교육의 명맥을 유지함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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