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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중국 청명절 축제의 전통 체육 활동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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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명절 축제의 전통 체육 활동에 관한 고찰

A Study on Traditional Sports Activities in Chinese Qing Ming Festival Celebrations

장초맹 ( Zhang Chao-Meng ) , 김달우 ( Kim Dal-woo ) , 린천풍 ( Lin Qian-Feng )
  • : 한국체육사학회
  • : 체육사학회지 26권3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9월
  • : 89-101(13pages)
체육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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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청명절의 기원
Ⅲ. 청명절 축제의 전통 체육 활동
Ⅳ. 청명절 축제에서 전통 체육 활동의 의미
Ⅴ.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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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법을 활용해서 중국 고대 세시풍속에 내려오는 청명절(淸明節)을 파악한다. 중국 정부는 역사와 전통활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3대 명절보다 체육 활동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청명절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청명절의 기원과 변천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청명절 축제에 행해지는 체육활동을 집중적으로 고찰하는데 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체육적 의미를 찾아봤다. 현재 청명절 축제는 춘추전국시대의 청명절 행사에서 유래하고, 북송시대에는 큰 발전이 이루어지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부 인정된 유일한 공식적 전통 축제이다. 청명절 축제에서 등장하는 5개의 체육 종목은 공차기, 씨름, 줄넘기, 거석쇠(舉石鎖), 굴렁쇠 굴리기다. 이런 체육 종목은 중국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기원과 변천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체육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데 의미가 있다.
To grasp Qingming Festival, which has been handed down in ancient Chinese customs. The Chinese government is increasingly interested in Qingming Festival to protect history and traditional activities. Because Qingming Festival has the most sports contents compared to the other three Festivals. Therefore, we grasp the origin and change of Qingming Festival, examine the concentration of sports activities in Qingming Festival, find out its historical, cultural and sports significance. Qingming Festival, orginated in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and made a tremendous development during the Northern Song Dynasty. In modern times, it has become the only official traditional festival certified by the Chinese government. The five sports that appeared in the Qingming Festival were Cuju, Ergui wrestling, rope skipping, stone lock lifting and iron ring pushing. Because these sports activities contain traditional Chinese characteristics, examine their origins and changes in order to find out the essence of Chinese sports.

UCI(KEPA)

I410-ECN-0102-2022-600-000910289

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2
  • :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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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권2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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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초의 솔각 전문서적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산 ( Kim S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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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근대 중국 무예교습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의 내용과 의미를 문헌고찰의 방법으로 고찰함에 있다. 중국의 근대화 기간이라 할 수 있는 민국시대 중국 무술을 서양의 병식체조적 요소로 분류하고 조합하여 단계적 교수체계를 만든 마량의 중화신무술 체계는 중국 체육의 근대화에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그중 중국식 씨름이나 레슬링이라 할 수 있는 솔각에 관한 서적인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은 솔각 기술을 전문적으로 기술한 첫 서적이면서 중화신무술 체계의 서술 방법으로 인해 전문적 신체 문화였던 솔각을 일반적 교육체계로의 첫 시도로서 의미 있는 서적이라 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ontents and meaning of 『Chinese New Martial Arts Solgak and Sangpyeon』, which is in an important position in modern Chinese martial arts teaching, through a literature review method. Maryang's new Chinese martial arts system, which created a step-by-step teaching system by classifying and combining the Chinese martial arts of the Republic of China, which can be said to be the period of China's modernization, into Western byeongsik gymnastics elements, is a meaningful attempt to modernize Chinese physical education. Among them, 『Chinese New Martial Art Solgak Sangpyeon』, a book about Solgak, which can be called Chinese style wrestling or ssireum, is the first book to professionally describe the Solgak technique. It can be said that it is a meaningful book as the first attempt at th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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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금슬 『춤동작』에 내재한 무용치료 가치 탐구

저자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25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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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박금슬 『춤동작』에 내재한 무용치료의 가치 탐색을 목적으로 사적 고찰 및 음악, 춤사위에 대한 질적 연구를 진행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첫째, 춤동작은 박금슬의 삶이 투영되어 종교적 모티브, 한국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기교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한국 문화와 정서를 체험할 수 있음이 탐색 되었다. 둘째,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를 통해 완성된 움직임으로 다양한 운동성을 내포하여 워밍업에서 필요한 기본무로써 자연스러운 신체 움직임을 유도하고 폭넓은 신체 표현을 가능하게 하여 예술치료 및 움직임을 통한 치료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이 탐색되었다. 셋째, 독특한 용어 정립으로 쉽게 동작을 익힐 수 있게 하고 용어 자체에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어 한국적 무용치료 연구 및 실제에 교육 자료로써의 활용이 가능함이 탐색 되었다. 후속 연구로 이러한 우리 고유의 것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치료 도구 개발 및 그에 따른 결과에 과학적 연구를 제언하였다.


This study is about the contemplation and research of dance therapeutic value which is inherent in the contents of Choomdongjak sch as music and movements. The result is as follows. First, Choomdongjak is based on religious motif, techniqu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and modern dance. Thus, it enables people to experience Korean culture and feeling. Also, it helps people to learn the movements with only the terms, so it could be used as the materials for basic training and warm-up dance. Second, the movements of Choomdongjak are completed with scientific and systematic research, so it can stir up the natural physical movements and enables people to perform various body expressions. Therefore, it could be used efficiently as a tool of body and mental treatment through the art and dance therapy.In conclusion, Park Geum-seul's Choomdongjak is a basic dance that contains unique originality and character of Korean culture, and it could be used as a tool to develop diverse movements or dances such as warm-up dance. Hence, this study suggests research to seek more specific way to use it at the coal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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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64년 도쿄올림픽대회와 한국스포츠의 변화

저자 : 손환 ( Son H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39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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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가 한국스포츠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광복 후 한국의 올림픽 참가사,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의 참가와 교훈,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 후 한국스포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는 그때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무런 실정도 모르고 올림픽대회에 무모한 도전을 해온 한국스포츠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했다. 그 변혁의 중심에는 스포츠행정가이며 정치인이었던 민관식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한국스포츠는 민관식을 만나 그의 불도저와 같은 뚝심으로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의 건설 등 한국스포츠의 발전을 위한 스포츠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들 시설은 한국스포츠가 세계스포츠무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한국이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계스포츠계에 스포츠강국으로서 위상을 높이는데도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This paper examines how the 1964 Tokyo Olympic Games has affected the development of Korean sports by focusing on the history of Korea's participation in the Olympic Games, participation and lessons of the 1964 Tokyo Olympic Games, and the change after the 1964 Tokyo Olympic Games. The conclusions are as follows. 1964 Tokyo Olympic Games revolutionized the Korean sportsdom, which had taken reckless challenges to the Olympic Games without knowing anything about the real state like a babe in the woods. At the center of the transformation, there was an outstanding man Min Gwan Sik, a sports administrator and a politician. Korean sports were able to build a sports infrastructure such as a Sports Center and a Taereung National Training Center for their own development, with the stubbornness of Min Gwan Sik. These facilities paved the way for Korean sports to leap onto the world sports stage, and contributed a lot to performing well in various international competitions and raising its status as a sports power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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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근대 씨름의 영웅 김성률의 생애와 체육활동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5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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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대 씨름의 영웅 김성률의 생애와 관련된 신문, 잡지, 문헌, 인터뷰 등을 분석해 김성률이 한국 씨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마산 출신의 김성률은 어린 시절 담대한 기질과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다양한 운동에서 소질을 보였다. 마산상고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씨름판에 등장한 김성률은 60-70년대 공식적인 전국씨름대회를 거의 독식하면서도 뛰어난 기술로 한국 씨름의 대중화를 견인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 경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경남 지역의 씨름 인재 양성에 헌신한 결과 이만기를 비롯한 위대한 씨름인들이 마산에서 탄생했다. 또한, 씨름 행정가의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씨름의 제도화와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도 힘썼다. 이처럼 김성률은 한국 씨름의 대중적인 확신과 발전을 견인한 핵심적인 주체로 기억되어야 한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understand the influence of Kim Sung-ryul on Korean ssireum by analyzing newspapers, magazines, literature, and interviews related to the life of Kim Sung-ryul, the hero of modern ssireum. Kim Seong-ryul, from Masan, showed talent in various sports as a child with a bold temperament and excellent athleticism. Kim Seong-ryul, who appeared in the ssireum arena in earnest when he was a sophomore at Masan Commercial High School, led the popularization of Korean ssireum with his outstanding skills while almost taking over the official national ssireum competitions in the 60s and 70s. After his retirement, he served as a professor at Kyungnam University, and as a result of his dedication to nurturing ssireum talents in the Gyeongnam region, great ssireum people including Man-ki Lee were born in Masan. In addition, he served as a ssireum administrator and made efforts to institutionalize and revitalize Korean ssireum. As such, Kim Seong-ryul should be remembered as a key player who drove the popular conviction and development of Korean ssir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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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일보사 주최 전국 연날리기대회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 최흥희 ( Choi Heung-hee ) , 왕심위 ( Wang Xin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71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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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분석을 통해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전국 연날리기대회를 살펴보았다. 한국일보사는 전통문화의 부흥과 판매 수입 인상을 목적으로 연날리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회는 주로 정부청사 신축 공연지, 경마장, 서울운동장 야구장 등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개최하기 시작했고, 점차 지방 민속의 발전을 위해 지방에서도 개최되었다. 공무원, 군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연날리기대회에는 외국인을 포함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가했고, 학생부와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남녀노소가 참가하는 스포츠대회가 되었다. 또한 경기종목은 시대에 대응해 변화하여 지방의 전통연과 창조적 과학연 등이 선보이게 되었다.


This study is about the National Kite-flying Festival held by Han-kook Ilbo. The Han-kook Ilbo held the festival with the aim of reviving traditional culture and increasing sales revenue. The festival was mainly held in Seoul, including the new government building square, racecourse, and baseball field in the Seoul Sports Complex. Furthermore, it was held in the provinces with the aim of developing the local folklore as well. Civil servants, soldiers, and foreigners all took part in this festival. It means all classes have a chance to take part in it.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women's and students' departments, it became a sports competition involving men and women of all ages. In addition, the festival is a combination of traditional folk culture and modern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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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씨름의 조직화 과정: 왼씨름 통일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8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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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씨름의 조직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씨름 경기방식이 통일되는 과정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8세기 샅바의 등장은 씨름 경기의 독창성과 역동성을 위한 동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20세기 초까지 지역적으로 다양한 경기방식의 출현을 추동했다. 씨름의 조직화를 위한 시발점은 1927년 조선 씨름협회 창설이었다. 일제강점기 협회 창설을 기반으로 개최된 전국적인 씨름대회는 주로 왼씨름 경기방식이 채택되면서도 오른씨름과 통씨름 경기가 분리되어 개최되면서 씨름의 과학화와 제도화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 협회는 학생부 경기를 왼씨름 경기방식으로 규정하면서 향후 씨름 경기방식의 통일을 위한 근간을 마련했다. 해방 이후 한국 씨름은 1961년 전국체육대회가 시금석이 되어 1962년부터 점차 왼씨름으로 통일되었다. 그 결과 씨름은 같은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근대적인 스포츠문화로 진화할 수 있었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process of unifying ssireum competition to understand the organization of ssireum in detail,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The appearance of the thigh band, also called satba in the 18th century provided a driving force for the originality and dynamism of the ssireum game, and at the same time drove the emergence of regionally diverse competition methods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Ssireum Association in 1927 was the starting point for the organization of ssireum. The national ssireum competitions, which were held based on the establishment of the Associ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mainly adopted the oen[left] ssireum match, but the oreun[right]-ssireum and tong[waistband]-ssireum games were held separately, laying the groundwork for the scientification and institutionalization of ssireum. In particular, at this time, the association laid the foundation for unification of the future ssireum competition by defining the student competition as a oen-ssireum competition. After liberation, the Korean ssireum was gradually unified into oen-ssireum in 1962, when the National Sports Festival in 1961 became the touchstone. As a result, Ssireum could evolve into a modern sports culture that competes under the same ru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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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영·호남 문화재 춤의 현황과 특색에 관한 비교 고찰

저자 : 이경호 ( Lee Ke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0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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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호남 지역에서 춤과 관련된 무형문화재의 전승현황과 발전을 비교 고찰한 것이다. 연구방법은 계보를 통한 질적 연구에 의하여 무형문화재와 관련된 자료를 위주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로 한국무용에 있어서 대표적인 문화재 춤인 승무는 영·호남 지역 모두 전승되고 있으며, 권번에서 활동한 악공과 보유자의 활동영역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살풀이춤은 호남지역의 춤 정서인 한을 담았는데, 그 흐름은 영남과 호남지역과 유사한 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호남 권번의 춤꾼들이 영남에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권번과 연관된 종목의 춤은 입춤의 경우 권번에서 기본이 되는 춤이고, 진주검무는 교방의 기녀들의 춤으로 권번에서 전승되었다. 그리고 산조춤과 예기무는 즉흥성이 강한 춤이다. 그러나 한량무는 권번 춤에 영향을 받은 영남지역의 남성 춤꾼의 춤으로 정착하였다. 이 춤들은 점차 지역적 특색이 융화되어 독특한 춤사위로 전승되었고,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정착하게 되었다.


This study compares and examines the transmission status and development of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related to dance in the Yeongnam and Honam regions. The research method was analyzed focusing on data related to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through qualitative research through genealogy. As a result of the analysis, Seungmu, a representative cultural property dance in Korean dance, has been passed down in both the Yeongnam and Honam regions, and this dance was related to the area of activities of musicians and holders. In the case of Salpuri, it contains the sentiment of Han as a dance in the Honam region, and in the Yeongnam region, it has a similar vein to that of the Honam region. The reason was that dancers from Honam Gwonbeon were introduced to Yeongnam. And the Ip dance is the basic dance in Gwonbeon. Jinju Geommu was a dance of the Gisaengs of Gyobang and was still held in Gwonbeon. Sanjo dance and Yijimu dance are highly improvised dances, and Hallyangmu has settled down as a male dance in Yeongnam. These dances are unique to each region, and they should be sought to develop into cultural properties containing local characteristics in trans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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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국 댄스스포츠의 대부(大父) 박영택의 생애사 연구

저자 : 곽애영 ( Kwak Ae-young ) , 이인정 ( Lee In-j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22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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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 라틴 아메리칸 댄스 초대 챔피언으로 댄스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온 원로전문인 박영택의 생애를 고찰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 발전사를 재조명 하는데 있다. 결과에 따르면 첫째, 춤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난 박영택은 원인화와의 인연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사교춤을 전문적으로 섭렵해 나가며 댄스스포츠계의 삼바가라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둘째, 국내 라틴 아메리칸 댄스의 초대 우승자가 된 박영택은 영국과 미국의 국제표준무도 교본을 입수·분석하여 라틴 아메리칸 댄스 전 종목을 정립·보급하는 개척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의 발전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셋째, 한국무도교육협회의 수장으로 댄스스포츠계의 행정을 일임해 온 박영택은 유럽 우수선수초청 시범 및 강습회 개최, 연수원 운영 및 지도자 양성, 학생선수의 발굴 등으로 한국 댄스스포츠의 위상을 높였고, 국내 최초의 통합단체를 발족하여 댄스스포츠계의 입지를 공고히 구축함으로써 2007년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인받는데 공헌했다.


This study is on the life and accomplishments of Park Young-taik, a Dancesport pioneer who has devoted himself to the development of Dancesport in Korea and the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Park was a dancer who displayed innate talent and skill, and after befriending Won In-hwa and mastering social dancing of various genre, became widely known as the 'Samba Garasu' in the Dancesport world. Second, As winner of Korea's inaugural Latin American Dance Competition, Park laid the foundation for the sound growth of Dancesport in Korea by systematically establishing the standards for every Latin American dance category and propagating it. Third, as a leader and an administrator, Park was instrumental in raising the status of Dancesport in Korea. In leading the Korea Association of Education DanceSport(KAEDS) Park operated training centers, nurtured leaders, and developed student athletes which culminated in unification of 8 associations of dancesport in Korea which later resulted in it becoming a member of the Korean Sport & Olympic Committee(KSOC) i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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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신문기사를 통해 본 한국 생활체육 배구 발달사

저자 : 안진규 ( An Jin-kyu ) , 조문기 ( Cho Moon-gi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3-133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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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국내의 신문기사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생활체육 배구의 변천사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광복 이후 1950년대는 조선배구협회를 창립하고, 1959년 4월 서울시 종별배구리그전에서 첫 국제식 6인제 배구경기를 갖게 된다. 둘째, 1960년대는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는 극동식 9인제 경기를 지양하게 된다. 셋째, 1970년대는 제1회 어머니배구대회를 시작으로 극동식 9인제 배구가 생활체육 배구로 도약한다. 넷째, 1980년대는 한국 어머니 배구연맹 등 9인제 생활체육 배구 단체가 조직된다. 1990년대는 지역사회 및 직장에서 친목경기로 큰 인기를 누린다. 2000년대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생활체육 배구대회의 창설이 급진적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2010년대는 소프트 발리볼 등 기존 9인제 틀에서 벗어난 생활체육 배구의 다양화가 나타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changes and meaning of Korea's daily sports volleyball in domestic newspaper articles. Therefore,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First, in the 1950s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the Joseon Volleyball Association was founded and the first international six-person volleyball game was held in April 1959 in Seoul. Second, in the 1960s, starting with the 18th Tokyo Olympics in 1964, Korea avoided the Far East 9-man event. Third, starting with the first Mother's Volleyball Competition in the 1970s, Far East 9-person volleyball leaps into daily sports volleyball. Fourth, in the 1980s, a nine-member daily sports volleyball organization was organized. The 1990s were very popular in the community and in the workplace. In the 2000s, the creation of sports volleyball competitions for the revitalization of the local economy appears radical. Finally, in the 2010s, the diversification of daily sports volleyball, which deviated from the existing nine-member framework such as soft volleyball, app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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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최초의 운동장,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의 역사적 의미

저자 : 손환 ( Son Hwan ) , 하정희 ( Ha Jung-hee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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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운동장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을 알아보기 위해 대정공원 운동장의 건설과 개장, 구조, 각종 경기대회에 초점을 맞추어 그 실태를 파악하고 한국스포츠사에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은 부산의 체육발전을 위해 일본 천황의 연호를 붙여 운동장의 명칭으로 사용했다. 운동장에는 야구장, 정구장, 스모장, 부속수영장의 설치 외에 가족동반으로 즐길 수 있는 각종 운동기구를 갖추어 운동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공원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운동장에서 개최된 대부분의 경기대회는 일본인들이 주최하거나 후원했다는 사실에서 일본인들을 위한 행사에 지나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즉 부산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동장을 건설하고 각종 경기대회를 개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운동장으로서 건설된 대정공원 운동장은 부산근대스포츠, 나아가 한국근대스포츠의 보급, 발전의 전체상을 고려할 때 일정부분 포지티브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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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 양궁의 LA올림픽(1984) 참가과정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 왕심위 ( Wang Xin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3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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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양궁팀의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살펴보고, 그들이 첫 출전한 LA올림픽에서의 대표선발과정, 훈련과정과 성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71년의 한국 양궁은 전국체전 시범종목으로 실시되었지만 국제교류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1972년 뮌헨올림픽 참가를 승인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동년의 장애인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둘째, 체육입국이라는 정책 하에 KOC와 대한양궁협회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은 한국 양궁팀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 경기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셋째, 1984년 LA올림픽 출전 이전에 중국과 일본 선수들이 주는 위기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유례없이 엄격한 3차례의 선발전을 실시하였다. 양궁 국가대표선수들은 올림픽을 대비하여 최면요법, 참선, 새벽명상 등 심리훈련을 통해 경기전에 컨디션을 조절하였다. 넷째, LA올림픽의 쾌거는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전망을 한층 밝게 해 주었다. 게다가 대한체육회는 양궁 중목에 대해 집중 투자하는 한편, 스포츠과학의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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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올림픽위원회(KOC)의 설립과 활동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미경 ( Kim Mi-kyung ) , 손환 ( Son H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52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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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정부수립 이전 IOC의 인준을 받은 국가올림픽위원회인 조선올림픽위원회(이하 KOC)의 설립과 활동에 대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KOC는 광복 후 불안한 정세와 어려움 속에서도 IOC의 회원국으로 인준을 받고 런던올림픽대회와, 생모리츠동계올림픽대회에 초청받게 되었다. KOC는 올림픽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조선올림픽준비위원회, 올림픽후원회를 조직했다. 조선올림픽준비위원회는 런던올림픽대회 7개 종목 68명의 선수단, 생모리츠동계 올림픽대회 1개 종목 6명의 선수단을 구성하고 선수훈련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올림픽후원회는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후원권 발행, 기부금 모금, 영화, 가극 상영 등을 통해 올림픽경비를 마련했다. 이밖에도 KOC는 올림픽정신에 입각하여 한국의 아마추어 규정을 심의·확정했다. 이처럼 KOC는 한국의 국제올림픽대회의 참가의 길을 개척하였고 신생 독립국으로서 한국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구심체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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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 스켈레톤의 올림픽 참가사: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중심으로

저자 : 최승아 ( Choi Seung-ah ) , 천호준 ( Cheon Ho-j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66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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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를 계기로 관심을 받아오고 있는 한국 스켈레톤의 초기 올림픽 참가사를 확인하는데 연구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에 스켈레톤 선수와 지도자로 참여했던 참가자들의 기억을 기록화하고 관련 기록을 확인하여 한국 스켈레톤의 올림픽 참가사를 파악하였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1995년 썰매 종목을 시작으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썰매 종목의 모든 종목에 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때 당시 한국 스켈레톤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둘째,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정부 및 연맹의 지원과 선수와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셋째,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영광은 사라지고 현실을 걱정해야 하는 현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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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시아의 물개, 조오련(趙五連)의 삶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동혁 ( Kim Dong Hyeok ) , 조준호 ( Cho Jun 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8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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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오련의 삶을 연구하여 그의 체육사적 발자취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오련은 전남해남에서 5남 5녀의 막내로 태어나 고1 때 서울로 상경, YMCA 수영장에서 장형숙의 지도로 수영계에 입문했다.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그는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1위를 차지, 민관식에게 발탁되었다. 둘째,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그는 꾸준히 성장하여 아시아경기대회의 국가대표로 선발, 1970년과 197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2관왕, 2연패하였다. 1978년 아시아경기대회의 접영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현역선수 시절 총 50개의 신기록을 작성하고 은퇴하였다. 셋째, 그는 대한해협 횡단, 도버해협 횡단, 한강 700리 종주, 울릉도 독도 횡단, 독도 33회 회영 등에 성공하며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을 드높였다. 그는 국민이 어렵던 시절, 수영을 통해 국위를 선양했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준 아시아의 물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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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국 청명절 축제의 전통 체육 활동에 관한 고찰

저자 : 장초맹 ( Zhang Chao-Meng ) , 김달우 ( Kim Dal-woo ) , 린천풍 ( Lin Qian-Fe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9-101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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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법을 활용해서 중국 고대 세시풍속에 내려오는 청명절(淸明節)을 파악한다. 중국 정부는 역사와 전통활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3대 명절보다 체육 활동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청명절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청명절의 기원과 변천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청명절 축제에 행해지는 체육활동을 집중적으로 고찰하는데 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체육적 의미를 찾아봤다. 현재 청명절 축제는 춘추전국시대의 청명절 행사에서 유래하고, 북송시대에는 큰 발전이 이루어지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부 인정된 유일한 공식적 전통 축제이다. 청명절 축제에서 등장하는 5개의 체육 종목은 공차기, 씨름, 줄넘기, 거석쇠(舉石鎖), 굴렁쇠 굴리기다. 이런 체육 종목은 중국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기원과 변천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체육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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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북지역의 발레 도입 및 변천과정 연구

저자 : 김은경 ( Kim Eun Kyoung ) , 김달우 ( Kim Dal Woo )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16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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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북지역 발레교육의 양태 및 활동 양상을 고찰하였다. 연구결과 전북지역에서는 1945년 김미화무용연구소가 개설되어 발레가 도입되었으며 1949년 성심여학교에서 외국무용교육이 이루어졌고 특히 발레의 경우 활발하게 교육해왔던 것으로 고찰되었다. 1980년 원광대학교를 필두로 1988년 전북대학교 그리고 1989년 우석대학교 무용과가 개설 되어 대학에서의 발레교육이 이루어졌다. 대학발레단 활동은 원광대 백의선 발레단, 전북대 손윤숙 발레단 및 동문발레단인 발레라인즈 그리고 우석대 손정자 발레단이 1986년부터의 활동으로 발레공연이 활성화되었으나 현재에 이르러는 전북대 중심의 발레단만이 활동함이 드러났다. 대학 교육에 있어도 원광대는 무용교육과정이 없고 우석대학교의 경우 체육학과에서 무용교육과정 만이 교육되고 있으며 전북대학교만이 발레교육의 명맥을 유지함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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