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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唐代) 형요(邢窯) 자기에 보이는 서역의 영향과 특징

A Study on the influence of Western factors and characteristics in the Tang Dynasty Xingware

신현진 ( Shin¸ Hyeon-jin )
  • : 동양미술사학회
  • : 동양미술사학 13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9월
  • : 207-226(20pages)
동양미술사학

DOI


목차

Ⅰ. 머리말
Ⅱ. 당대 서역문물의 유입 배경
Ⅲ. 당대 형요 자기에서 보이는 서역적 요소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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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唐代)는 고대 중국 사회 발전의 전성기로 대외교류가 매우 활발하였고 도자기도 빠른 속도로 발전한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요장들이 각지에 널리 퍼졌으며 생산 규모가 방대하고 그 기술 수준 또한 높았다. 그 중 가장 저명한 요장은 남방의 청자를 대표하는 월주요(越州窯)와 북방의 백자를 대표하는 형요(邢窯)였다. 형요는 남북조(南北朝)시기에 개요한 후 초기에는 청자가 주를 이루다가 북조 후기 중국에서 백자를 가장 먼저 생산하였다. 그 후 수대(隋代)에 빠른 속도의 발전을 거쳐 당대에 가장 성행하여 중국 백자 생산의 중심이 되었으며 만당(晩唐)시기에 대규모의 홍수와 전란으로 요업이 쇠퇴하여 오대(五代)시기에 요업이 정지되었다.
당대는 형요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기로 청자가 주도하던 발전 방향을 변화시켜 “남청북백(南青北白)”의 국면을 맞을 만큼 자기의 수준이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기 형요는 중앙아시아를 통한 서역과의 대외교류를 통해 유입된 문물들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조형의 기물들을 생산함으로써 당대의 국제성과 개방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국적인 기형들의 기원은 그 계통에 따라 로마-비잔틴, 사산, 소그드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들은 유입 경로나 발전 과정에서 문화 요소들이 융합되면서 양식 변천을 보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형요 자기가 각지에서 출토되고 80년대 이후 발굴이 진행되면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한국에서는 형요 백자가 월주요 청자와 비교되거나 함께 사용되었던 간략한 사례 정도로 다루어져 왔을 뿐 형요 자기 자체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형요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기인 당대에 주목하여 형요 자기에 보이는 서역의 영향과 특징에 집중하였으며 경제, 문화, 무역이 번영하였던 당대가 가지는 개방성과 국제성을 형요 자기를 통해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다.
The Tang Dynasty is the heyday of ancient Chinese social development when economy prospered and active foreign exchanges took place and it was also a time when ceramic industry made rapid development. During this period, facilities for producing porcelain were springing up everywhere and quantity and quality of production were immense and advanced. The most famous facilities for producing porcelain were Yue kiln representing the celadon of the southern region and Xing kiln representing the white porcelain of the northern region. Xingware was mainly comprised of celadon in the initial stage after it began to be manufactured from the Period of Northern and Southern Dynasty. However, in the late Northern Dynasty, white porcelain began to be produced for the first time. Afterwards, after undergoing rapid development in the Sui Dynasty, Xingware dominated the Tang Dynasty and became the center of white porcelain production in China. When the ceramic industry degraded due to large_scale flood and war in the late Tang Dynasty, the industry ultimately came to a close in the period of Five Dynasties period.
The Tang Dynasty was the period when Xingware was the most prosperous and the level of Xingware was at its climax and new chapter of Chinese porcelain development began at a time when development direction led by celadon transformed into the phase of “Southern Region is celadon and Northern Region is white porcelain”. Furthermore, the Tang Dynasty Xingware gave rise to unique sculptures after being influenced by culture from active exchanges with the Western countries through Central Asia and displayed internationality and openness of the Tang Dynasty. The origins of works produced after the influence of Western factors were classified into Sogdiana, Sasanian Persia and Byzantium based on their descent and changes in style occurred after cultural factors united in influx channel or development process.
In China, the studies on Xingware began from a basic level after they began to be excavated from everywhere from the 1950s and comprehensive studies began to be conducted through excavated Xingware from the 1980s. However, Xingware have been treated as simple cases being compared with celadon of Yue kiln or being used along with Yue kiln and not a single comprehensive study on Xingware has been conducted until now.
Thus, this study began to accurately look into detailed aspects of the Tang Dynasty Xingware. In particular, Western sculptures and exported Xingware reflect the Tang Dynasty’s global and open nature.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e sense that it understood unique form and decorating style influenced by Western factors after analyzing their ori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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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권0호(2021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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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创造异域-普朗克“执伞夫人”瓷盘研究-

저자 : 刘朝晖 ( Zhaohui Liu ) , 戴若伟 ( Ruowei Dai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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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研究基于18世纪亚洲与欧洲之间的贸易, 尝试重新梳理和思考荷兰画家考奈利ㆍ普朗克设计的“执伞妇人”瓷器图样和相关外销瓷实物。“执伞妇人”是普朗克专门为荷兰东印度公司设计的定制瓷器图样, 在外销瓷研究中占有特殊地位。本文在前人研究基础上, 反思该图样的设计来源,分析这类瓷盘在中国、日本和欧洲的生产流变, 进而探究图像在跨文化交流中的生命史――即图像的产生、流通、生产、接收与改造, 以及文化相遇中有关“异域”的想象与创造。


Based on the trade between Europe and Asia in 18 th century, this essay offers are-evaluation of Lady with Parasol, a famous pattern on Chinese export porcelain by Dutch artist Cornelis Pronk. This pattern is designed for the Dutch East Indian Company for sending special porcelain order from China and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export porcelain. By rethinking the origin of Pronk's design and the transformation of it on porcelain plates produced in China, Japan and Europe, this case reveals the life cycle of an image from design, delivery, production, accommodation to appropriation in a perspective of global history and transcultural communication, highlighting the creation and imagination of Exotic in cultural encou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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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역(異域)의 창조-프롱크 '양산을 든 부인' 자기 접시 연구-

저자 : 류자오후이 ( Zhaohui Liu ) , 다이뤄웨이 ( Ruowei Dai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6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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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8세기 아시아와 유럽 간의 무역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화가 코르넬리스 프롱크(Cornelis Pronk)가 디자인한 '양산을 든 부인(Lady with Parasol)'자기의 도상과 이와 관련된 무역자기에 대한 문제를 재차 정리하고 고찰하려 시도한 것이다. '양산을 든 부인' 자기 도상은 프롱크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주문 제작자기 도상으로서 무역자기 연구에서 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본문은 관련 연구사를 기초로 하여, 도상의 유래를 재고찰하였으며, 중국ㆍ일본ㆍ유럽 등지에서 생산된 유사 자기들의 변형 양상을 분석하였다. 또한 국경을 넘나들며 지속된 도상의 탄생과 유통, 생산과 수용, 변형 및 타 문화권과의 조우에서 태동되는 '이역(異域)'의 상상과 그 창조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Based on the trade between Europe and Asia in 18 th century, this essay offers are-evaluation of Lady with Parasol, a famous pattern on Chinese export porcelain by Dutch artist Cornelis Pronk. This pattern is designed for the Dutch East Indian Company for sending special porcelain order from China and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export porcelain. By rethinking the origin of Pronk's design and the transformation of it on porcelain plates produced in China, Japan and Europe, this case reveals the life cycle of an image from design, delivery, production, accommodation to appropriation in a perspective of global history and transcultural communication, highlighting the creation and imagination of Exotic in cultural encou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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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玲瓏剔透-十七、十八世紀陶瓷東西交流的一個樣式

저자 : 余佩瑾 ( Pei-chin Yu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5-9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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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以同時出現於官窯和民窯兩類屬性不同窯口的玲瓏瓷為例, 首先討論這類作品流通於十七世紀上半葉東西貿易航道的情形, 其次探討相關樣式的起源與流變, 最後也反省了十八世紀乾隆朝官窯生產玲瓏鏤空雙層器的經過, 以及督陶官為皇帝重新轉譯的創新樣式。


The paper uses linglong porcelain wares existing at two different types of kilns- Guanyao (official kiln) and Minyao (folk kiln) as examples. Firstly it discusses the situation of this type of works circulating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during the 17 th century. Secondly it explores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its styles. Lastly, it reflects on the process of Qianlong official kilns producing linglong openworks with two layers and the pottery supervisor's innovative style made for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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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18세기 도자 동서교류 속의 영롱척투(玲瓏剔透)

저자 : 위페이진 ( Pei-chin Yu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1-12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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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속성이 다른 관요와 민요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영롱자기(玲瓏瓷器)의 예를 통해 먼저 17세기 전반 동서무역항로에 이런 작품들이 유통된 것을 검토하고, 이어 관련 양식에 대한 기원과 변화를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세기 건륭(乾隆)년간 관요에서 영롱투각쌍층기[玲瓏鏤空雙層器]를 생산하게 된 경위와 독도관(督陶官)이 황제를 위해 새롭게 해석한 신양식에 대하여 재고찰하고자 한다.


The paper uses linglong porcelain wares existing at two different types of kilns- Guanyao (official kiln) and Minyao (folk kiln) as examples. Firstly it discusses the situation of this type of works circulating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during the 17 th century. Secondly it explores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its styles. Lastly, it reflects on the process of Qianlong official kilns producing linglong openworks with two layers and the pottery supervisor's innovative style made for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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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청대 도자 중서(中西)교류의 전개와 확장-광채(廣彩)와 이슬람 세계-

저자 : 김은경 ( Kim¸ Eun-kyoung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1-14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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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채는 태생부터가 유럽시장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생산된 자기이지만, 18세기 후반 이후 이슬람 세계로의 소비정황이 확인되고, 19세기에 이르면 본격적인 이슬람 시장으로의 수출이 이루어져 광채자기의 생산과 수출과정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8세기의 대표적 예로 무굴제국에 유입된 광채 식기세트가 있으나 소량에 불과하다. 이는 아마도 당시 동인도회사가 중서무역에 절대적 우위를 선점하는 가운데, 영국 동인도회사령의 무굴제국에서 아시아 간 역내무역 형태로 소량 주문되어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아시아 역내무역의 주요 축이었던 인도 무굴제국과 중국과의 소규모 거래에 의한 것으로, 수출된 광채자기의 장식이 유럽 도기에서 주로 사용된 '백색 위의 백색(Bianco Sopra Bianco)' 기법이 상용된 것으로 보아 특정 계층을 위한 소량의 주문품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 광주의 요업계 역시 동인도회사를 통한 유럽으로의 대규모의 수출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는 핵심 시장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840년대 광동의 일항 체제가 종식되면서, 광채의 수출에도 드디어 변화가 감지된다. 19세기의 중국 요업계는 주요 고객을 잃으면서 새로운 시장으로의 개척이 필요했고, 광채 생산업계는 때마침 1840년대 난징조약에 의한 對중국의 자유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ㆍ이집트ㆍ오스만 제국 등 이슬람 세계에 의한 직접적 주문과 함께 이슬람 세계로의 본격적 수출이 이루어 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슬람 세계로 적지 않은 수량이 수출되면서, 카자르 왕조에서 생산된 채회도기의 다수가 광채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도 하였다. 즉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의 광채 수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Guangcai(廣彩) is a ceramics produced from birth to meet the demand of the European market, but after the late 18th century, the consumption situation to the Islamic world was confirmed and exported to the Islamic market in earnest in the 19th century. In other words, it can be inferred that there has been some kind of change in the production and export process of the radiant ceramics.
A typical example of the 18th century is the Guangcai Tableware set introduced into the Mughal Empire, but only in small quantities. Perhaps, with the East India Company gaining an absolute advantage in Chinese and Western trade at the time, it is believed to have been introduced in small quantities in the form of trade between Asia from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s Mughal Empire. This is probably due to the fact that the East India Company had an absolute advantage in trade between China and the West at the time, and imported only a small amount in the form of trade between Asia from the Mughal Empire dominated by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 This was due to small-scale deals with India's Mughal Empire and China, which were the main pillars of trade between Asia at the time. Given the use of the 'Bianco Sopra Bianco' technique, which is mainly used in European pottery, only a small amount must have been ordered for a particular class. However, the Islamic world was not a key market because Gwangju the ceramic industry at the time also focused on large-scale exports to Europe through the East India Company.
Then, with the end of one port system in Canton in the 1840s, a change in the export of Guangcai is finally detected. In the 19th century, China's pottery industry lost its main customers and had to open new markets, and China's free trade was boosted by the Treaty of Nanjing in the 1840s. At this time, the Islamic world, including the Persian Qazar dynasty, Egypt, and the Ottoman Empire, placed orders directly, and it is believed that exports to the Islamic world were made in earnest. As a result, exports to the Islamic world increased, and in fact, colored pottery produced by Qajar Dynasty followed the style of these radiance. It can be inferred that the import of Guangcai in the Islamic world reached a significant level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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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안선 출수 자기 고족배로 본 중ㆍ일 도자 교류의 일면-출수 현황 및 용례 검토를 중심으로-

저자 : 장효진 ( Jang¸ Hyo-jin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1-17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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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신안해저문화재 가운데 자기 고족배(高足杯)에 주목하여 출수 현황과 조형특징을 정리하고, 중국 내 생산 및 소비 유적 출토품과 비교를 통해 그 성격과 특징을 살펴 보았다. 필자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신안선에서 고족배가 60 여점 발견되었는데 이는 전체 도자기 수량의 0.3% 미만을 차지하는 매우 적은 수량이다. 그러나 청자와 백자가 모두 확인되며 특히 일부 백자 고족배의 경우 부량자국이 관할한 우수한 민간 요장에서 생산된 고급 생산품이기에 일부는 특별한 목적성을 갖고 교역된 기종으로 여겨진다.
즉 일부 고족배는 높은 위상을 가진 고급 무역품으로 당시 중국 민간 요장에서 중앙으로 공납했던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원나라 관에 공납ㆍ유통되었던 것과 유사한 양식을 갖춘 것이 무역에서 통제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고급 상품성을 가지고 지역적ㆍ계층적으로 폭넓게 유통되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따라서 신안선에서 발견된 고족배분석으로 원대 도자무역의 개방된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각종 회화와 문헌 자료를 통해 고족배의 용례에 대해 살펴본 결과 중국에서 술잔 혹은 찻잔, 공양구로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일본에서는 신안선에서 발견된 고족배의 비율을 반영하듯 소비지역에서 출토사례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도 일부 선종 사찰에서 고족배가 출토되었다는 점은 소비지 성격을 이해하는데 참고자료로 도움이 된다. 일본의 용례를 살펴본 결과 술잔, 과일이나 음식 등을 바치는 공양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으며, 오랫동안 전세되어 내려오면서 그 용도가 바뀌어 다실에서 향로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에도시대 중국 청자 고족배가 재현 대상이 되었던 사례를 확인하여, 일본 일부에서는 중국 고족배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또 소장 대상으로서 애호했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article summarizes the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ceramic cups(Gojeokbae) excavated from the shipwreck in Shinan. The characteristics of Gojeokbae were studied compared to those excavated from China. According to the research so far, the number of cups(Gojeokbae) excavated from the shipwreck in Sinan is about 60 pieces. It is very small amount, less than 0.3% of the total number of ceramics excavated from the wreck. For that reason, cups(Gojeokbae) have not been actively studied in export ceramics research. However, the cups(Gojeokbae) excavated from the shipwreck in Shinan contain both celadon and white porcelain. There are also several white porcelain with the highest quality and inscriptions. Thus, cups(Gojeokbae) are considered to be an object of study, although the excavated quantity is small.
Various paintings and literature materials were used to examine the usage of cups(Gojeokbae). They are used as teacup, or winecup, and as a buddhist relics in China. And they are most likely used for drink in Japan. And its purpose used to have changed while its long-term usage. Cups(Gojeokbae) are also used as incense burners in tea rooms. There is the case that the imitations of Chinese celadon cups(Gojeokbae) were produced in Japan during the Edo period. Therefore, it can be known that Japan clearly recognized the Chinese cup and loved it as a collectible.
Until now, ceramic excavated from the shipwreck in Sinan was studied mainly from Celadon in Longquan Kiln and Black-Glazed ware in the Fujian Area, which accounted for the largest quantity. In order to comprehensively understand the meaning of ceramics excavated from the shipwreck in Shinan as a trade item, it must be studied regardless of the excavation rate. Close analysis of detailed types and models and extended attention are continuously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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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출토 유물로 본 조선 후기 한양도성 유입 외국 자기의 면모와 특징

저자 : 박정민 ( Park¸ Jung-min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9-20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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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瓷器)는 조선의 중요한 대외 교역 물품이 아니었다. 조선은 전국에 걸쳐 자리하는 가마에서 필요한 백자를 생산했으므로 자기를 만들지 못한 나라들과는 수입해서 사용하는 그릇의 종류와 크기, 수량이 달랐다. 유럽 등지에서는 새롭고 이국적인 동아시아의 자기가 여러 왕실과 귀족들의 수집품이 되었지만 조선은 자기 자체를 이미 수 세기 동안 일상의 그릇으로 사용해왔으므로 다양한 문양이 장식된 일부 청화백자나 오채자기 위주로 중국과 일본의 자기를 들여왔다.
서울 시내 출토양상을 보자면 조선 후기 한양도성에 유입된 외국 자기의 수량은 조선 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모양새다.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유상채 자기의 증가 현상이 추가되지만 청화백자로 만든 발과 접시 등 반상기가 외국 자기의 주류를 이루는 특징은 조선 전기 이래로 계속 이어졌다.
조선시대 해외 교역이 사행이나 일부 상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중국과 일본의 물산은 자연스럽게 왕실과 사행에 직접 참여하는 관리, 역관 혹은 상인 계층을 시작으로 소비의 흐름이 마련되었다. 서울 시내에서 조선 후기 외국 자기들이 출토되는 유적이 궁궐이나 그 주변 혹은 시전행랑이 자리하는 종로대로 일대에 주로 위치하는 것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Focusing just with the excavated objects, porcelain was not the important foreign trade goods of the Joseon Dynasty. The Joseon Dynasty produced the necessary porcelains in kilns located throughout the country, thereby having been different in type, size and quantity of porcelains, which are imported and used, from countries that could not make porcelain. In Europe and elsewhere, new and exotic porcelains became the collections of various royal families and aristocrats. However the Joseon Dynasty had already used porcelain itself as a daily utensil for centuries. For this reason, the porcelains from the Qing Dynasty and Japan were brought including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in high demand or the multicolored porcelain.
Considering the excavation patterns in downtown Seoul, the amount of foreign porcelains which were consumed in the Capital City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seem to be decreasing significantly compared to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Moreover, the increasing consumption phenomenon in the porcelain with overglazed decoration is added after the late 19th century. However, the characteristic in which the tableware such as bowls and plates forms the mainstream is continued after the 17th century. This excavation pattern can be understood as the outcome of having reflected the consumption aspect of foreign porcelain in the Capital City at that time.
Overseas trade during the Joseon Dynasty was carried out in conjunction with official diplomatic visits. As a result, the local products in China and Japan were arranged a flow of consumption starting from the diplomat, interpreter and merchant who directly participate in diplomatic visits with the royal family. This situation can be grasped to be reflected by even what the foreign porcelains in the late Joseon Dynasty of being excavated in downtown Seoul concentrate on the palace and the vicinity of Jongno[鐘路]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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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당대(唐代) 형요(邢窯) 자기에 보이는 서역의 영향과 특징

저자 : 신현진 ( Shin¸ Hyeon-jin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7-22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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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唐代)는 고대 중국 사회 발전의 전성기로 대외교류가 매우 활발하였고 도자기도 빠른 속도로 발전한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요장들이 각지에 널리 퍼졌으며 생산 규모가 방대하고 그 기술 수준 또한 높았다. 그 중 가장 저명한 요장은 남방의 청자를 대표하는 월주요(越州窯)와 북방의 백자를 대표하는 형요(邢窯)였다. 형요는 남북조(南北朝)시기에 개요한 후 초기에는 청자가 주를 이루다가 북조 후기 중국에서 백자를 가장 먼저 생산하였다. 그 후 수대(隋代)에 빠른 속도의 발전을 거쳐 당대에 가장 성행하여 중국 백자 생산의 중심이 되었으며 만당(晩唐)시기에 대규모의 홍수와 전란으로 요업이 쇠퇴하여 오대(五代)시기에 요업이 정지되었다.
당대는 형요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기로 청자가 주도하던 발전 방향을 변화시켜 “남청북백(南青北白)”의 국면을 맞을 만큼 자기의 수준이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기 형요는 중앙아시아를 통한 서역과의 대외교류를 통해 유입된 문물들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조형의 기물들을 생산함으로써 당대의 국제성과 개방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국적인 기형들의 기원은 그 계통에 따라 로마-비잔틴, 사산, 소그드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들은 유입 경로나 발전 과정에서 문화 요소들이 융합되면서 양식 변천을 보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형요 자기가 각지에서 출토되고 80년대 이후 발굴이 진행되면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한국에서는 형요 백자가 월주요 청자와 비교되거나 함께 사용되었던 간략한 사례 정도로 다루어져 왔을 뿐 형요 자기 자체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형요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기인 당대에 주목하여 형요 자기에 보이는 서역의 영향과 특징에 집중하였으며 경제, 문화, 무역이 번영하였던 당대가 가지는 개방성과 국제성을 형요 자기를 통해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다.


The Tang Dynasty is the heyday of ancient Chinese social development when economy prospered and active foreign exchanges took place and it was also a time when ceramic industry made rapid development. During this period, facilities for producing porcelain were springing up everywhere and quantity and quality of production were immense and advanced. The most famous facilities for producing porcelain were Yue kiln representing the celadon of the southern region and Xing kiln representing the white porcelain of the northern region. Xingware was mainly comprised of celadon in the initial stage after it began to be manufactured from the Period of Northern and Southern Dynasty. However, in the late Northern Dynasty, white porcelain began to be produced for the first time. Afterwards, after undergoing rapid development in the Sui Dynasty, Xingware dominated the Tang Dynasty and became the center of white porcelain production in China. When the ceramic industry degraded due to large_scale flood and war in the late Tang Dynasty, the industry ultimately came to a close in the period of Five Dynasties period.
The Tang Dynasty was the period when Xingware was the most prosperous and the level of Xingware was at its climax and new chapter of Chinese porcelain development began at a time when development direction led by celadon transformed into the phase of “Southern Region is celadon and Northern Region is white porcelain”. Furthermore, the Tang Dynasty Xingware gave rise to unique sculptures after being influenced by culture from active exchanges with the Western countries through Central Asia and displayed internationality and openness of the Tang Dynasty. The origins of works produced after the influence of Western factors were classified into Sogdiana, Sasanian Persia and Byzantium based on their descent and changes in style occurred after cultural factors united in influx channel or development process.
In China, the studies on Xingware began from a basic level after they began to be excavated from everywhere from the 1950s and comprehensive studies began to be conducted through excavated Xingware from the 1980s. However, Xingware have been treated as simple cases being compared with celadon of Yue kiln or being used along with Yue kiln and not a single comprehensive study on Xingware has been conducted until now.
Thus, this study began to accurately look into detailed aspects of the Tang Dynasty Xingware. In particular, Western sculptures and exported Xingware reflect the Tang Dynasty's global and open nature.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e sense that it understood unique form and decorating style influenced by Western factors after analyzing their ori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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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선 전기 자기(磁器) 쌍이잔(雙耳盞)의 제작과 전개양상

저자 : 김소연 ( Kim¸ So-yeon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7-25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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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전기에 한하여 제작된 특수기종 '자기 쌍이잔'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들어서며 유교적 재정비가 이루어졌고, 기명을 제작함에 있어서도 역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기종들이 등장한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전기'라는 특정시기에 한하여 제작된 자기 쌍이잔의 현전 사례와 관련 기록을 살핌으로써, 시기별 제작 양상 및 변화 과정을 살피고 나아가 제작배경과 용도,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특히 조선전기에만 제작되었다는 특징을 통해 조선 전기 도자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피는 데에 그 의의가 더해질 것으로 보았다.
조선 전기 생산유적의 출토현황을 통해 자기 쌍이잔의 제작양상을 살핀 결과 지방요의 경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각 지역별로 나타나는 양상이 달랐으며, 관요에서의 제작양상역시 이러한 지역별 제작양상은 시기별 제작양상과도 연결되었다. 즉 본 연구에서는 Ⅰ-Ⅲ기의 각 시기에 따른 변화양상을 통하여 자기 쌍이잔이 조선 전기 도자사의 표지적인 유물로써 그 연구가치가 충분하며, 앞으로의 조선 전기 도자사 연구에 있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 할 것으로 기대해보았다.


The porcelain Double-Handled Cup(雙耳盞) is one of the special types produced only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With the establishment of a new country called Joseon, reorganization took place. There are also new models that have not been seen before in the production of the name. This study examined the actual cases and related records of magnetic pairs of glasses, which were produced only during certain period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It is intended to examine the patterns of production and changes in each period, and further investigate the background, purpose, and character of production. In particular, I think the significance will be added to the overall flow of Porcelain histor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rough the characteristics made only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First, we examined the production patterns through the excavation status of each production site. As a result, in the case of local points, the patterns of production in each region, such as Gyeongsang-do, Jeolla-do, and Chungcheong-do, were different, and the production patterns in Royal Kiln(官窯) were also confirmed to be different from those in the local areas. This regional production pattern is linked to the periodical production pattern.
In other words, in this study, the Double-Handled Cup is a symbolic artifact of the history of pottery in the early Joseon Period, and the value of the research value is sufficient. It is expected to produce significant results in future research on pottery history in the early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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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创造异域-普朗克“执伞夫人”瓷盘研究-

저자 : 刘朝晖 ( Zhaohui Liu ) , 戴若伟 ( Ruowei Dai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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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研究基于18世纪亚洲与欧洲之间的贸易, 尝试重新梳理和思考荷兰画家考奈利ㆍ普朗克设计的“执伞妇人”瓷器图样和相关外销瓷实物。“执伞妇人”是普朗克专门为荷兰东印度公司设计的定制瓷器图样, 在外销瓷研究中占有特殊地位。本文在前人研究基础上, 反思该图样的设计来源,分析这类瓷盘在中国、日本和欧洲的生产流变, 进而探究图像在跨文化交流中的生命史――即图像的产生、流通、生产、接收与改造, 以及文化相遇中有关“异域”的想象与创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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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역(異域)의 창조-프롱크 '양산을 든 부인' 자기 접시 연구-

저자 : 류자오후이 ( Zhaohui Liu ) , 다이뤄웨이 ( Ruowei Dai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6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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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8세기 아시아와 유럽 간의 무역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화가 코르넬리스 프롱크(Cornelis Pronk)가 디자인한 '양산을 든 부인(Lady with Parasol)'자기의 도상과 이와 관련된 무역자기에 대한 문제를 재차 정리하고 고찰하려 시도한 것이다. '양산을 든 부인' 자기 도상은 프롱크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주문 제작자기 도상으로서 무역자기 연구에서 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본문은 관련 연구사를 기초로 하여, 도상의 유래를 재고찰하였으며, 중국ㆍ일본ㆍ유럽 등지에서 생산된 유사 자기들의 변형 양상을 분석하였다. 또한 국경을 넘나들며 지속된 도상의 탄생과 유통, 생산과 수용, 변형 및 타 문화권과의 조우에서 태동되는 '이역(異域)'의 상상과 그 창조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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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玲瓏剔透-十七、十八世紀陶瓷東西交流的一個樣式

저자 : 余佩瑾 ( Pei-chin Yu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5-9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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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以同時出現於官窯和民窯兩類屬性不同窯口的玲瓏瓷為例, 首先討論這類作品流通於十七世紀上半葉東西貿易航道的情形, 其次探討相關樣式的起源與流變, 最後也反省了十八世紀乾隆朝官窯生產玲瓏鏤空雙層器的經過, 以及督陶官為皇帝重新轉譯的創新樣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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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18세기 도자 동서교류 속의 영롱척투(玲瓏剔透)

저자 : 위페이진 ( Pei-chin Yu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1-12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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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속성이 다른 관요와 민요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영롱자기(玲瓏瓷器)의 예를 통해 먼저 17세기 전반 동서무역항로에 이런 작품들이 유통된 것을 검토하고, 이어 관련 양식에 대한 기원과 변화를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세기 건륭(乾隆)년간 관요에서 영롱투각쌍층기[玲瓏鏤空雙層器]를 생산하게 된 경위와 독도관(督陶官)이 황제를 위해 새롭게 해석한 신양식에 대하여 재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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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청대 도자 중서(中西)교류의 전개와 확장-광채(廣彩)와 이슬람 세계-

저자 : 김은경 ( Kim¸ Eun-kyoung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1-14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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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채는 태생부터가 유럽시장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생산된 자기이지만, 18세기 후반 이후 이슬람 세계로의 소비정황이 확인되고, 19세기에 이르면 본격적인 이슬람 시장으로의 수출이 이루어져 광채자기의 생산과 수출과정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8세기의 대표적 예로 무굴제국에 유입된 광채 식기세트가 있으나 소량에 불과하다. 이는 아마도 당시 동인도회사가 중서무역에 절대적 우위를 선점하는 가운데, 영국 동인도회사령의 무굴제국에서 아시아 간 역내무역 형태로 소량 주문되어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아시아 역내무역의 주요 축이었던 인도 무굴제국과 중국과의 소규모 거래에 의한 것으로, 수출된 광채자기의 장식이 유럽 도기에서 주로 사용된 '백색 위의 백색(Bianco Sopra Bianco)' 기법이 상용된 것으로 보아 특정 계층을 위한 소량의 주문품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 광주의 요업계 역시 동인도회사를 통한 유럽으로의 대규모의 수출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는 핵심 시장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840년대 광동의 일항 체제가 종식되면서, 광채의 수출에도 드디어 변화가 감지된다. 19세기의 중국 요업계는 주요 고객을 잃으면서 새로운 시장으로의 개척이 필요했고, 광채 생산업계는 때마침 1840년대 난징조약에 의한 對중국의 자유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ㆍ이집트ㆍ오스만 제국 등 이슬람 세계에 의한 직접적 주문과 함께 이슬람 세계로의 본격적 수출이 이루어 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슬람 세계로 적지 않은 수량이 수출되면서, 카자르 왕조에서 생산된 채회도기의 다수가 광채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도 하였다. 즉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의 광채 수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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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안선 출수 자기 고족배로 본 중ㆍ일 도자 교류의 일면-출수 현황 및 용례 검토를 중심으로-

저자 : 장효진 ( Jang¸ Hyo-jin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1-17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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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신안해저문화재 가운데 자기 고족배(高足杯)에 주목하여 출수 현황과 조형특징을 정리하고, 중국 내 생산 및 소비 유적 출토품과 비교를 통해 그 성격과 특징을 살펴 보았다. 필자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신안선에서 고족배가 60 여점 발견되었는데 이는 전체 도자기 수량의 0.3% 미만을 차지하는 매우 적은 수량이다. 그러나 청자와 백자가 모두 확인되며 특히 일부 백자 고족배의 경우 부량자국이 관할한 우수한 민간 요장에서 생산된 고급 생산품이기에 일부는 특별한 목적성을 갖고 교역된 기종으로 여겨진다.
즉 일부 고족배는 높은 위상을 가진 고급 무역품으로 당시 중국 민간 요장에서 중앙으로 공납했던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원나라 관에 공납ㆍ유통되었던 것과 유사한 양식을 갖춘 것이 무역에서 통제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고급 상품성을 가지고 지역적ㆍ계층적으로 폭넓게 유통되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따라서 신안선에서 발견된 고족배분석으로 원대 도자무역의 개방된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각종 회화와 문헌 자료를 통해 고족배의 용례에 대해 살펴본 결과 중국에서 술잔 혹은 찻잔, 공양구로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일본에서는 신안선에서 발견된 고족배의 비율을 반영하듯 소비지역에서 출토사례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도 일부 선종 사찰에서 고족배가 출토되었다는 점은 소비지 성격을 이해하는데 참고자료로 도움이 된다. 일본의 용례를 살펴본 결과 술잔, 과일이나 음식 등을 바치는 공양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으며, 오랫동안 전세되어 내려오면서 그 용도가 바뀌어 다실에서 향로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에도시대 중국 청자 고족배가 재현 대상이 되었던 사례를 확인하여, 일본 일부에서는 중국 고족배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또 소장 대상으로서 애호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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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출토 유물로 본 조선 후기 한양도성 유입 외국 자기의 면모와 특징

저자 : 박정민 ( Park¸ Jung-min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9-20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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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瓷器)는 조선의 중요한 대외 교역 물품이 아니었다. 조선은 전국에 걸쳐 자리하는 가마에서 필요한 백자를 생산했으므로 자기를 만들지 못한 나라들과는 수입해서 사용하는 그릇의 종류와 크기, 수량이 달랐다. 유럽 등지에서는 새롭고 이국적인 동아시아의 자기가 여러 왕실과 귀족들의 수집품이 되었지만 조선은 자기 자체를 이미 수 세기 동안 일상의 그릇으로 사용해왔으므로 다양한 문양이 장식된 일부 청화백자나 오채자기 위주로 중국과 일본의 자기를 들여왔다.
서울 시내 출토양상을 보자면 조선 후기 한양도성에 유입된 외국 자기의 수량은 조선 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모양새다.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유상채 자기의 증가 현상이 추가되지만 청화백자로 만든 발과 접시 등 반상기가 외국 자기의 주류를 이루는 특징은 조선 전기 이래로 계속 이어졌다.
조선시대 해외 교역이 사행이나 일부 상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중국과 일본의 물산은 자연스럽게 왕실과 사행에 직접 참여하는 관리, 역관 혹은 상인 계층을 시작으로 소비의 흐름이 마련되었다. 서울 시내에서 조선 후기 외국 자기들이 출토되는 유적이 궁궐이나 그 주변 혹은 시전행랑이 자리하는 종로대로 일대에 주로 위치하는 것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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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당대(唐代) 형요(邢窯) 자기에 보이는 서역의 영향과 특징

저자 : 신현진 ( Shin¸ Hyeon-jin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7-22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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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唐代)는 고대 중국 사회 발전의 전성기로 대외교류가 매우 활발하였고 도자기도 빠른 속도로 발전한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요장들이 각지에 널리 퍼졌으며 생산 규모가 방대하고 그 기술 수준 또한 높았다. 그 중 가장 저명한 요장은 남방의 청자를 대표하는 월주요(越州窯)와 북방의 백자를 대표하는 형요(邢窯)였다. 형요는 남북조(南北朝)시기에 개요한 후 초기에는 청자가 주를 이루다가 북조 후기 중국에서 백자를 가장 먼저 생산하였다. 그 후 수대(隋代)에 빠른 속도의 발전을 거쳐 당대에 가장 성행하여 중국 백자 생산의 중심이 되었으며 만당(晩唐)시기에 대규모의 홍수와 전란으로 요업이 쇠퇴하여 오대(五代)시기에 요업이 정지되었다.
당대는 형요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기로 청자가 주도하던 발전 방향을 변화시켜 “남청북백(南青北白)”의 국면을 맞을 만큼 자기의 수준이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기 형요는 중앙아시아를 통한 서역과의 대외교류를 통해 유입된 문물들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조형의 기물들을 생산함으로써 당대의 국제성과 개방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국적인 기형들의 기원은 그 계통에 따라 로마-비잔틴, 사산, 소그드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들은 유입 경로나 발전 과정에서 문화 요소들이 융합되면서 양식 변천을 보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형요 자기가 각지에서 출토되고 80년대 이후 발굴이 진행되면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한국에서는 형요 백자가 월주요 청자와 비교되거나 함께 사용되었던 간략한 사례 정도로 다루어져 왔을 뿐 형요 자기 자체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형요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기인 당대에 주목하여 형요 자기에 보이는 서역의 영향과 특징에 집중하였으며 경제, 문화, 무역이 번영하였던 당대가 가지는 개방성과 국제성을 형요 자기를 통해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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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선 전기 자기(磁器) 쌍이잔(雙耳盞)의 제작과 전개양상

저자 : 김소연 ( Kim¸ So-yeon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1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7-25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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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전기에 한하여 제작된 특수기종 '자기 쌍이잔'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들어서며 유교적 재정비가 이루어졌고, 기명을 제작함에 있어서도 역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기종들이 등장한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전기'라는 특정시기에 한하여 제작된 자기 쌍이잔의 현전 사례와 관련 기록을 살핌으로써, 시기별 제작 양상 및 변화 과정을 살피고 나아가 제작배경과 용도,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특히 조선전기에만 제작되었다는 특징을 통해 조선 전기 도자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피는 데에 그 의의가 더해질 것으로 보았다.
조선 전기 생산유적의 출토현황을 통해 자기 쌍이잔의 제작양상을 살핀 결과 지방요의 경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각 지역별로 나타나는 양상이 달랐으며, 관요에서의 제작양상역시 이러한 지역별 제작양상은 시기별 제작양상과도 연결되었다. 즉 본 연구에서는 Ⅰ-Ⅲ기의 각 시기에 따른 변화양상을 통하여 자기 쌍이잔이 조선 전기 도자사의 표지적인 유물로써 그 연구가치가 충분하며, 앞으로의 조선 전기 도자사 연구에 있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 할 것으로 기대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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