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상세보기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식민 권력의 통제, 우회 전략으로서의 개작 ― 『아동가요곡선 삼백곡』을 중심으로

KCI등재

식민 권력의 통제, 우회 전략으로서의 개작 ― 『아동가요곡선 삼백곡』을 중심으로

Control of Colonial Power, Rewriting as a Detour Strategy ― Focusing on “Three Hundred Songs for Children’s Songs”

康泳美 ( Kang¸ Young-mi )
  •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 대동문화연구 11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9월
  • : 251-281(31pages)
대동문화연구

DOI


목차

Ⅰ. 서론
Ⅱ. 판본별 구성 방식
Ⅲ. 판본별 수록곡의 특징
Ⅳ. 식민지 조선의 불온성
Ⅴ. 결론

키워드 보기


초록 보기

이 연구에서는 小竹 姜信明(1909~1985)이 편찬한 『兒童歌謠曲選 三百曲』의 세 종의 판본을 비교하여 일제의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일부 노래를 삭제하고 다시 수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폈다. 『아동가요곡집 삼백곡』은 일제의 검열 지침에 의해 일부 노래가 삭제된 것이 아니다. 불온 창가라는 일제의 외적 규정 속에서 기독교계 관련자들이 자체 검열을 통해 일부 노래를 삭제한 것이다. 삭제곡은 대부분 조선을 환기하는 단어가 있는 노래였다. 식민지인에게 조국을 환기하는 단어가 일제의 검열 당국에게는 불온한 것으로, 반일의 상징으로 읽히리라 판단한 것이다.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부르는 금주 금연 등의 절제가 류의 노래도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의미에 주목하여 삭제했다. 이처럼 일제가 규정한 ‘불온 창가’의 내포를 상상하며 미국인 선교사와 교회 관련자가 일부 노래를 삭제하는 과정, 식민지 평양에서 제국의 동경으로 지역을 옮겨 삭제곡의 일부를 편찬자 강신명이 직접 복구하는 과정은 1936~1940년까지의 시차, 미국인과 조선인이라는 국적의 차이, 식민과 제국이라는 공간의 차이, 아동가요 운동을 전개하는 지향의 차이가 ‘불온’의 해석에 영향을 끼쳤음을 드러낸다. 그 결과 일제가 규정하고 조선인이 구성한 아동가요의 불온성은 일시적이고 자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In this study, I compared the editions of Kang Shin-myeong’s ‘Three hundred songs for children’s songs(『아동가요곡선 삼백곡』)’. Through this, I examined a series of processes of deleting and re-publishing some songs in order to bypass the censorship of the Japanese Empire. I looked at the process of voluntarily deleting some of the songs while imagining the meaning of ‘resistance’ defined by the Japanese Empire. And the process of restoring some of the deleted songs by changing the publishing area from colonial Pyongyang to Tokyo, the capital of the empire, was investigat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original version of the first edition and the restored version of the second edition revealed that the process of deleting some songs by an American missionary and church related people imagining the connotations of the ‘resistance’ stipulated by the Japanese imperialists, and the process of moving the region from colonial Pyongyang to the Imperial Tokyo and recovering part of the deleted songs by the editor Kang Shin-myeong himself. It reveals that the time difference between 1936 and 1940, the difference in space between colonization and empire, the difference in nationality between Americans and Koreans, and the difference in orientation to develop a children’s song movement influenced the interpretation of ‘resistance’ influenced the interpretation of ‘resistance.’ It was confirmed that the ‘resistance’ defin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reconstructed by the Koreans was temporary and arbitrary.

UCI(KEPA)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3820
  • : 2714-0040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64-2021
  • : 1488


저작권 안내

한국학술정보㈜의 모든 학술 자료는 각 학회 및 기관과 저작권 계약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자료를 상업적 이용, 무단 배포 등 불법적으로 이용할 시에는 저작권법 및 관계법령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15권0호(2021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생애(生涯)와 저술(著述) 및 교유관계(交遊關係)

저자 : 朴徹庠 ( Park¸ Chul-s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8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석정 이정직은 조선 말기의 書畵家이자 學者이다. 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그의 서화를 소개하는 전시회 또한 여러 차례 열렸다. 그러나 이들 연구와 전시회에 소개된 이정직에 관한 정보는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이정직이 주로 전주와 김제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교유 인물들에 관한 정보도 빈약했다. 이는 이정직 연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먼저 이정직의 생애와 저술에 관해 검토하였다. 새로운 자료를 통해 이정직에 관한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다음으로 이정직의 교유관계를 살펴봤다. 기존에는 黃玹과 李沂를 중심으로 이정직의 교유관계를 다뤘지만, 여기서는 이들을 제외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특히 이건창과의 교유는 새롭게 소개되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이정직의 교유 인물을 지역별로 간략히 정리하였다.


Seokjeong(石亭) Lee Jeong-Jik(李定稷) was a calligrapher, painter and scholar of the late Joseon Dynasty. A lot of research was done on him, and exhibitions introducing his paintings were also held several times. However, the information about Lee Jeong-Jik introduced in these studies and exhibitions contains many errors. Furthermore, information on Social Intercourse was poor as he was mainly active in Jeonju and Gimje. This is a stumbling block to the research of Lee Jeong-Jik. In this essay, I first reviewed the life of Lee Jung-jik and his writings. I used new data to provide more accurate and rich information about Lee Jeong-Jik. Next, I looked at the social intercourse of Lee Jung-jik. Previous studies focused on the relationship of Lee Jung-jik with Hwang Hyeon(黃玹) and Lee Ki(李沂), but I introduced people except them. In particular, it introduced the relationship with Lee Geon-chang(李建昌) for the first time. In addition, a brief summary of social intercourse of Lee Jung-jik was compiled by region.

KCI등재

2『연석산방미정고(燕石山房未定藁)』와 간본 『석정집(石亭集)』의 문헌학적 검토

저자 : 金榮鎭 ( Kim¸ Young-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82 (4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이정직(1841~1910)의 시문 자료에 대한 연구로 크게 다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석정 이정직의 필사본 『연석산방미정고』(후손가장본)와 간본 『석정집』(6권 3책)에 대한 비교이다. 필사본에는 한시 927제 1,279수와 문 273편이 수록되어 있고, 간본 『석정집』에는 한시 512수와 문 123편이 수록되어 있어 필사본에서 간본으로의 선택율은 대략 절반 가량된다. 다만 간본은 '잡저'를 전혀 수록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석정 이정직의 시문, 잡저, 편서 등을 추가 발굴하여 자료의 輯逸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금번 자료조사 과정 중에 『연석산방미정고』가 현재 통용되는 권질(20책)보다 더 많은 분량(최소 30책 이상)이 있었음을 추정·확인하게 되었고, 그 중 새로 발굴한 고려대 육당문고본(新舊折衷內篇, 外篇)은 석정의 제자 송기면의 『裕齋集』에 잡저 「망언(妄言)」으로 잘못 편입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정직의 잡저 논설들은 송기면의 「망언」 1, 2에 거의 다 수록되었음을 확인하였다(다만 「망언」 1의 가장 마지막 글인 <금일동서> 한편만은 송기면의 글임). 요컨대 향후 석정 이정직의 자료 휘집의 필요성이 전면적으로 대두된다 하겠다.


This article is divided into two parts: the one is a comparative philological research between the manuscript 『Yeonseoksanbangmijunggo』 and a published edition of 『Seokjeongjip』 by Seokjeong Lee Jung-jik (1841~1910). The manuscript contains 1,279 Chinese poems and 273 proses, while the published edition contains 512 Chinese poems and 123 proses. So the selection rate from manuscript to a published edition is about half. However the 『Seokjeongjip』 did not adopt “Essays” at all. The other is to conduct additional excavation of poems, essays, and compilation of Seokjeong Lee Jung-jik and to collect scattered and lost materials. During the current data survey, it was confirmed that the manuscript of 『Yeonseoksanbangmijunggo』 was much larger than the current quality. Also the newly discovered manuscript of 『Yeonseoksanbangmijunggo』 in YukdangMungo of Korea University was incorrectly incorporated into 『YuJaejip』 by Songgi-myeon, a disciple of Seokjeong. The essays of Lee Jung-jik is mostly included 「Mang-un 1,2」 at 『YuJaejip』. We need to collect scattered data in the future.

KCI등재

3석정 이정직의 『시경』론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 『시경일과(詩經日課)』 삼권(三卷)의 분석을 더하여

저자 : 金秀炅 ( Kim¸ Su-ky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12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詩經日課』 三卷의 분석을 더하여 석정의 『시경』 관련 저술 양상과 『시경』 인식의 특징을 개관하는 데 주요 목적을 두었다. 구체 분석에 있어서는 주석자의 해석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는 석정의 접근에 특히 주목하였다. 해석학적 각도에서 볼 때, 석정 『시경』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석정은 『시경』학의 맥락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시경』 해석의 계승과 변천 과정에서의 맥락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석정은 주자 『시경』 해석의 가치를 '獨創'에서보다는 '折衷'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주자 『시경』학을 漢代 『시경』학과 대립시키며 그 독창적인 면을 부각하고 다른 면을 배격하는 학문 태도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곧 진정한 獨創의 원동력이 전통과 기존설의 정밀한 비교, 분석을 통한 융합적 '折衷'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으로, 석정이 근대 전환기에도 왜 여전히 전통 학문과 시각을 중시하였는가를 이해하는 데 유효하게 참고될 수 있다. 둘째, 석정은 『시경』 해석의 타당성 여부와 내원을 세밀하게 추적하려는 면모를 보였는데, 이는 특정 주석가의 해석을 맹신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셋째, 석정은 해석자(주석자)의 인식 맥락에 초점을 두어 『시경』 해석의 同異를 변별하였다. 주석의 是非, 正誤에 대한 판단보다는, 주석자가 왜 이렇게 주석하였는지에 대한 의식의 흐름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시경』 해석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aspects of Sŏkchŏng's writings related to the Book of Song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perception of the Book of Songs by analyzing of the three volumes of Shigyŏngilgwa(詩經日課) which have not been made public yet. This paper pays special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 commentators' intention has a very important weight in Sŏkchŏng's commentary on the Book of Songs, and the related interpretation has a unique approach angle. From a hermeneutic angle, the significance of Sŏkchŏng's perception of the Book of Song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while recognizing the diversity of interpretations of the Book of Songs in its historical context, Sŏkchŏng paid attention to grasping the grounds and origins of the succession and transition process of the Book of Songs. In this process, Sŏkchŏng wanted to find the value of Zhuxi's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Songs in its 'eclectic character' rather than in its 'originality'. This view is in stark contrast to the academic attitude that emphasizes its original side and rejects its opposite side. This is attributed to the compromise through precise comparison and analysis of tradition and existing theories, which can be effectively referenced in understanding the reason why Sŏkchŏng still valued traditional learning and perspective even during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Second, Sŏkchŏng's approach to trace the validity and origin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Songs is significant in that he pursued an academic approach that did not blind or reject the interpretation of specific commentators. Third, Sŏkchŏng differentiated the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Songs by focusing o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er(or commentator)'s perception. It is considered to be of great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Songs in Korea in that he showed interest in capturing the flow of the interpreter's consciousness about the way he commented, rather than in judging whether the commentator's contents were right or wrong.

KCI등재

4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저술(著述) 『소시주선(蘇詩註選)』 연구(硏究)

저자 : 白丞鎬 ( Baek¸ Seung-h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3-134 (2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石亭 李定稷의 저술 『蘇詩註選』에 대한 개괄적인 정리와 소개의 성격을 띤 글이다. 『蘇詩註選』의 구성과 체계를 정리하여, 이 책이 『增刊校正王狀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를 모본으로 하여 주석을 중점적으로 초록한 성격의 책임을 밝혔다. 다만 책의 편차와 내용 구성을 고려할 때, 李定稷이 모본에 해당하는 책을 부분부분 다른 시기에 입수하여 주석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초록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시 이해를 위한 類書로서 시가 아니라 주석을 중심으로 초록하였다. 李定稷은 시학 연구 과정에서 모본이 되는 원서를 자신의 관점에서 다시 이해하고 재편집하여 새로운 저술을 편찬하였다. 그는 『律髓刊誤精選』에서 方回의 『瀛奎律髓』, 紀昀의 『瀛奎律髓刊誤』의 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비평”을 초록하여 『律髓刊誤精選』을 편찬한 바 있다. 이와 유사한 저술 방법으로 『蘇詩註選』은 『分類東坡先生詩』 주석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분문 아래 초록하여, 시 이해를 위해 유용한 정보들을 모아 놓은 筆記 내지 類書의 성격을 지닌 저술이 되었다. 李定稷은 평소 시를 엄밀하게 분석적으로 이해하였는데, 詩法에 대한 관심, 두보시에 대한 치밀한 이해 추구 경향이 『蘇詩註選』에서 보인다. 그는 본인의 관점을 세우고 제가의 설을 두루 참조하는 과정에서 『蘇詩註選』을 편찬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학 연구 방법론은 「六絶義解」에서 언급한 “遞相祖述과 轉益多師”의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This paper is a comprehensive summary and introduction of Seogjeong Yi Jeongjig's Sosijuseon. By analyzing the composition and system of Sosijuseon, the book was modeled after Bunlyudongpaseonsangsi and abstracted it with focusing on annotations. However, considering the deviation and content structure of the book, he obtained Bunlyudongpaseonsangsi at different times in part. It seems that the annotations were carefully reviewed and the abstract work was done. This book is a kind of notebook for understanding poetry. The abstract was centered on the commentary, not the poem. In the course of his poetic research, he re-understood and re-edited the original manuscript from his point of view and compiled a new work. He critically reviewed Banghoi's Yeonggyuyulsu and Giyun's Yeonggyuyulsugano, and By abstracting the words of criticism. He wrote Yulsuganojeongseon. A similar case is the case with Sosijuseon, meaning that meaningful information is extracted from the commentary. Yi usually understood poetry rigorously and analytically, Yugjeoluihae is a prime example. He compiled the Sosijuseon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his own point of view and referencing the poetic theories of various scholars. His poetic research methodology can be summarized as a process of alternately going back and exploring the source with finding more and more teachers.

KCI등재

5이당(彛堂) 조병헌(趙秉憲)(1876~1938) 집안 전래 회화(繪畫) ―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과 전북 근대 화단의 일면

저자 : 閔吉泓 ( Min¸ Gil-ho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56 (2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조선시대 서화 전통의 맥은 전라북도 근대 서화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전북 지역에 서화로 이름난 인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石亭 李定稷(1841~1910)은 마땅히 그림을 배울 스승을 찾지 못해 독학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藝鄕'으로 전라북도를 꼽게 된 것은, 이정직이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고자 이정직을 찾아왔고, 그렇게 점점 커진 물결은 근대 전북 화단을 만들었다.
彛堂 趙秉憲(1876-1938)은 김제 출신으로, 이정직의 제자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지만, 다른 제자들에 비해 생애에 대해 알려진 기록이 많지 않고 현전하는 작품도 거의 없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서화가다. 족보와 관련 기록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 서화가들과 官界 인물들과 교유를 했고 느즈막히 고향 김제로 내려와 聲慶廟 參奉에 제수되었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었다.
본고에서는 집안에 전래되어 온 유물들을 통해 전북을 넘어서 서울화단까지 이르는 조병헌 일가의 교유관계를 확인하고, 조병헌이 서예와 묵죽에 특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장내력이 확인되는 유물들이라는 점에서 유물 자체가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넘어서 시공간적으로 서로 관계맺음 속에서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컬렉션 전체를 통해 조병헌과 조송 부자의 서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전북 예술사의 큰 흐름에서 한 조각 비어있던 부분인 조병헌을 찾아내어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It can be said that the tradition of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Joseon Dynasty was carried on to modern calligraphy and painting in Jeollabuk-do. There was no one famous for calligraphy and painting in Jeollabuk-do in Joseon Dynasty. Therefore, Yi Jeong- Jik would have been self-taught because he could not find a teacher to teach painting for him.
At the beginning of the selection of Jeollabuk-do as 'Art town(藝鄕)', there was Yi Jeong-jik(1841~1910). Many people came to him to become a disciple, and the growing wave created the modern Jeonbuk art history.
Jo Byeong-heon趙秉憲 (1876~1938) was born in Gimje and has been known as one of Lee Jeong-jik's pupils. According to genealogy records and related records, it was known that he went to Seoul to interact with calligraphers and related officials, and he in later years, came down to his hometown of Gimje and enjoyed his life reading books and so on.
In this paper, through the relics handed down through the family,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e extensive relationship of the Jo Byung-hun family from Jeollabuk-do to the Seoul art gallery and it was found that Jo Byung-hun was specially good at his calligraphy and bamboo painting.
The importance of this study lies in solving the puzzle in the large flow of art history in Jeonbuk from the modern era to the present, by finding the missing piece, Cho Byung-hun.

KCI등재

6청록(靑綠), 도가의 선약, 선계의 표상 ― 청록과 청록산수화의 행위자성(Agency)

저자 : 劉美那 ( Yu¸ Mi-na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88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는 청록산수화의 녹·청색 안료를 이루는 남동광과 공작석이 예로부터 의료용 약재이기도 하고 도가의 단약에 쓰이는 仙藥이기도 했던 점을 문헌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청록의 색채와 안료, 그리고 청록산수화에 함축된 도가적 상징을 고찰하였다. 石靑·石綠으로 대별되는 청록의 안료는 주요 本草書에 空靑·曾靑·扁靑·白靑 등의 石類 약재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輕身, 延年, 不老 등의 효능과 심지어 神仙으로 화한다는 효능이 명시되어 있어 예로부터 仙藥으로 인식되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金丹을 연조해서 수명을 연장시키고자 한 금단도에서 주요 선약으로 일컫는 五金八石에 空靑이 포함되어 중시되었던 점이 주목된다. 또한 조선시대 문학에서 선경을 묘사한 修辭 중에 유독 '碧'·'翠'·'蒼'·'靑'·'綠'의 색채어가 적극 사용된 점이 주목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청록산수화에 표현된 청록의 산과 바위는 공청·증청 등의 선약과 불로장생과 우화승선의 약효를 연상시켰을 것이고, 선계의 시각적 재현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이 연구는 미술의 사회적 관계망(Art Nexus) 속에서 물질 지표(Index)인 청록 안료와 청록산수화가 능동적 주체로서 화가와 감상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성(agency)에 대한 고찰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The Azurite and the Malachite consist the major pigments for the Blue-and-green Landscape, but they have also been the drugs and medicines for remedy and at the same time the Daoist Elixir to attain immortality. This paper tries to track the ancient records related to the azurite and the malachite and see how and when they were associated with the Daoist connotation. The study began with examining the color names and pigment names in the ancient writings, and then the medicine names in the classic medical books. The names kongqing(空靑)·zengqing(曾靑)·pianqing(扁靑)·baiqing(白靑) were listed in such medical books as Shennong-bencaojing(神農本草經)·Bencaojing-jizhu(本草經集注)·Materia Medica(Bencao gangmu, 本草綱目). They were cited as having such medicinal effects as 'light body', 'prolonged life', 'eternal youth' and even 'the transcendence to an immortal being'. This attests to the understanding that the above mentioned medicinal stones were also major ingredients for the Daoist Elixir. Moreover, in the poems and proses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characters belonging to blue and green such as bi(碧)·cui(翠)·cang(蒼)·qing(靑)·lu(綠) were frequently used to describe the immortals' land. In such circumstances, the blue and green colors applied on the mountains and rocks in the blue-and-green landscape must have been associated with the mystical medicines such as kongqing(空靑) and zengqing(曾靑) and their longivity effect, as well as the representation of the immortals' land. This study was designed to find out the material index blue-and-green pigments and the blue-and-green landscape serving as Agent in the Art Nexus and affecting the Recipients; painters and viewers.

KCI등재

7와전(瓦塼)을 그리다 ― 한국 근현대 예술과 와전(瓦塼)의 에이전시(Agency)

저자 : 金素延 ( Kim¸ So-ye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18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古代의 건축부재였던 瓦當과 塼이 20세기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으로 우리 문화에 새롭게 등장하여 행위력, 즉 에이전시(agency)를 발휘했음을 고찰하는 시도이며, 분석을 위해 알프레드 겔(Alfred Gell, 1945~1997)의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근현대 미술에서 瓦塼은 특히 文字瓦와 文字塼을 중심으로 재해석 되었다. 문자, 고동기의 金文을 임모·임서한 와전임모도는 그 대표적인 例이며, 본고는 와전임모도의 유형 및 제작배경을 거론하고 임모도의 직접적 원형(prototype)으로 淸代 『金石索』(1821)과 같은 금석관련 圖解書를 제시해 보았다. 와전 수집과 감상의 결과물인 와전탁본도를 논의하고, 吳世昌(1864~1953)의 경우에서 秦漢 와전의 모사형식을 우리 와전으로 확대하여 적용한 의의를 찾아보기도 했다. 덧붙여 해방 이후에는 와전이 자수병풍의 대표 도안으로 채택되어, 산업발전기 수출전선의 선두에서 한국 전통을 상징하는 기표로써 기능했음을 살펴보았다. 와전자수병풍은 와전임모도의 양식적 특징과 길상성을 계승하여 대중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것인데, 역설적이게도 일부 작품들은 문자와를 묘사했음에도 서양인 구매자라는 수령자(recipient)를 고려해 더 이상 한문 표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즉, 구매자가 지표(작품, index)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본래 와전임모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와전문의 가치가 변형되고 문화적 맥락이 흐릿해지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This paper, with the help of Alfred Gell's theory, aims to examine how the components of ancient architecture, roof-end tile and brick specifically, came to the fore in the 20th century of Korea as material agent that mediated agency in various artistic fields. Roof-end tile and brick and their inscribed letters became the object of re-investigation in the modern, contemporary art of Korea. Imitated paintings of roof-end tile and brick, which copied letters from the ancient bronze objects, stand as an exemplar. This paper provides the types and background of imitated paintings of roof-end tile brick, and further finds the prototype of these imitated paintings from the ethnography guide books―such as『Jinshisuo(金石索)』 (1821)―published during the Qing dynasty. Roof-end tile and brick were admired in various ways; while valuable collection of such objects gave birth to rubbed painting, O Se-chang 吳世昌(1864~1953) newly featured the Jin and Han dynasties' rubbed-inscription with the elements that comprise the cultural identity of Korea. Moreover,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roof-end tile and brick became a primary subject of embroidered folding-screen, which was usefully exported abroad as a signifier that ultimately represents Korean traditionality. Although embroidered folding screen of roof-end tile and brick was originally rendered to pursue auspiciousness by its letters, the buyers abroad, hence the recipient to which the screen's calligraphy is illegible, transforms the index into a medium of simple ornamentation. This demonstrates how the meaning and the cultural context of the letter inscribed within the roof-end tile and brick imitation have changed and waned in the course of time.

KCI등재

8녹동 최연택의 언론출판활동과 딱지본 대중소설 연구 ― '사회소설' 『단소』와 『죄악의 씨』를 중심으로

저자 : 裵定祥 ( Bae¸ Jeong-s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49 (3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녹동 최연택은 1920년대 식민지 서적출판문화의 장 안에서 나름의 개성 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신문 매체에 수많은 글을 기고한 언론인이자, 출판사를 직접 설립하여 경영한 출판인이었으며, 몇 편의 특색 있는 소설 작품을 남긴 문학인이기도 했다. 예컨대, 그는 신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은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시도했으며, 문창사라는 출판사를 설립·운영하며 출판활동을 통한 사회적 소명을 다하고자 했다. 또한 『단소』, 『죄악의 씨』 등 '사회소설' 연작을 통해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딱지본 대중소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 및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처럼 경계인 녹동 최연택의 언론·출판 및 소설 창작 활동은 식민지 시기 서적출판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Nok-dong Choi Yeon-taek is a character who shows his own unique course in the colonial book publishing culture of the 1920s. He was a journalist who contributed numerous articles to newspapers, a publisher who founded and managed a publishing company himself, and was also a literary man who left several distinctive novels. For example, he tried various writing methods that contained his thoughts and philosophy through the media of newspapers, and tried to fulfill his social vocation through publishing activities by establishing and operating a publishing house called Munchangsa. He also attempted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Ttakjibon popular novels that were immersed in the pursuit of profit through a series of 'social novels' such as 『Danso』 and 『Seed of Sin』, and to present criticism and alternatives to social phenomena. As such, Marginal man Nokdong Choi Yeon-taek's media, publishing, and novel creation activities are an interesting example for understanding the book publishing culture during the colonial period.

KCI등재

9식민 권력의 통제, 우회 전략으로서의 개작 ― 『아동가요곡선 삼백곡』을 중심으로

저자 : 康泳美 ( Kang¸ Young-mi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1-281 (3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에서는 小竹 姜信明(1909~1985)이 편찬한 『兒童歌謠曲選 三百曲』의 세 종의 판본을 비교하여 일제의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일부 노래를 삭제하고 다시 수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폈다. 『아동가요곡집 삼백곡』은 일제의 검열 지침에 의해 일부 노래가 삭제된 것이 아니다. 불온 창가라는 일제의 외적 규정 속에서 기독교계 관련자들이 자체 검열을 통해 일부 노래를 삭제한 것이다. 삭제곡은 대부분 조선을 환기하는 단어가 있는 노래였다. 식민지인에게 조국을 환기하는 단어가 일제의 검열 당국에게는 불온한 것으로, 반일의 상징으로 읽히리라 판단한 것이다.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부르는 금주 금연 등의 절제가 류의 노래도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의미에 주목하여 삭제했다. 이처럼 일제가 규정한 '불온 창가'의 내포를 상상하며 미국인 선교사와 교회 관련자가 일부 노래를 삭제하는 과정, 식민지 평양에서 제국의 동경으로 지역을 옮겨 삭제곡의 일부를 편찬자 강신명이 직접 복구하는 과정은 1936~1940년까지의 시차, 미국인과 조선인이라는 국적의 차이, 식민과 제국이라는 공간의 차이, 아동가요 운동을 전개하는 지향의 차이가 '불온'의 해석에 영향을 끼쳤음을 드러낸다. 그 결과 일제가 규정하고 조선인이 구성한 아동가요의 불온성은 일시적이고 자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In this study, I compared the editions of Kang Shin-myeong's 'Three hundred songs for children's songs(『아동가요곡선 삼백곡』)'. Through this, I examined a series of processes of deleting and re-publishing some songs in order to bypass the censorship of the Japanese Empire. I looked at the process of voluntarily deleting some of the songs while imagining the meaning of 'resistance' defined by the Japanese Empire. And the process of restoring some of the deleted songs by changing the publishing area from colonial Pyongyang to Tokyo, the capital of the empire, was investigat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original version of the first edition and the restored version of the second edition revealed that the process of deleting some songs by an American missionary and church related people imagining the connotations of the 'resistance' stipulated by the Japanese imperialists, and the process of moving the region from colonial Pyongyang to the Imperial Tokyo and recovering part of the deleted songs by the editor Kang Shin-myeong himself. It reveals that the time difference between 1936 and 1940, the difference in space between colonization and empire, the difference in nationality between Americans and Koreans, and the difference in orientation to develop a children's song movement influenced the interpretation of 'resistance' influenced the interpretation of 'resistance.' It was confirmed that the 'resistance' defin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reconstructed by the Koreans was temporary and arbitrary.

KCI등재

10혼혈아 외부화 프로세스와 대중문화 ― 경제성장기 일본사회의 혼혈아 표상

저자 : 朴利鎭 ( Park¸ Yi-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3-311 (2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일본에서 1952년 '혼혈아논쟁' 이후부터 1960년대 일명 '혼혈 붐'의 시대를 거쳐 '하프 담론'이 등장하는 1970년대까지 20년간 일본사회에 유포된 혼혈아 표상은 그들에 대한 고착된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다. 특히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인론이 크게 유행하면서 일본인에 대한 새로운 의미화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단일민족으로서의 인종화가 강화되며 혼혈아들은 외부화되어 간다. 이러한 흐름을 본고에서는 현대 일본의 인종주의가 갖는 '전후적 기원'으로 파악하여 그 구체적인 특징을 다양한 대중문화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1970년대 혼혈아들이 하프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재탄생되는 구조에 작용하고 있는 대중들의 심급에 주목할 수 있었다. 점령의 기억이라는 과거의 상흔이 혼혈아의 상징체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고, 일본사회의 재건과 경제성장, 그리고 일본인론의 유행처럼 사회문화적 자신감의 회복이 혼혈아 표상의 변주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식 인종주의를 이루고 있는 기원적 문제를 통해 현대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종주의적 차별과 편견이 단순히 서양식 인종주의를 답습한 형태라고 설명하는 시각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안해 보았다.


The mixed-race representations which is disseminated in Japanese society for 20 years from the 1952 'Mixed-Race Controversy' to the 1970s, when the 'Half Discourse' appeared after the 'Mixed-Race Boom' in the 1960s, have instilled in the public a fixed perception of mixed-race children. Especially from the latter half of the 1960s, when the theories about the Japanese(Nihonjinron) became very popular, a new meaning was given to the Japanese. At the same time that racialization as a single ethnic group was strengthened, mixed-race children were externalized. This paper grasped such a trend as the 'postwar origin' of racism in contemporary Japanese, and examined its specific characteristics through various popular cultures.
As a result, this paper was able to focus on the public sympathy acting on the structure in which mixed-race children were reborn with the new concept of half in the 1970s. The memory of the occupation, which is a scar of the past, was deeply involved in the symbolic system of mixed-race children. Like the reconstruction and economic growth of Japanese society and the epidemic of Japanese theory, the restoration of sociocultural self-confidence was dominated by changes in the representation of mixed-race children. Through these originating issues of Japanese racism, this paper attempts to refute the argument that racist discrimination and prejudice in contemporary Japan just follows Western racism.

12
권호별 보기
같은 권호 다른 논문
| | | | 다운로드

KCI등재

1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생애(生涯)와 저술(著述) 및 교유관계(交遊關係)

저자 : 朴徹庠 ( Park¸ Chul-s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8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석정 이정직은 조선 말기의 書畵家이자 學者이다. 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그의 서화를 소개하는 전시회 또한 여러 차례 열렸다. 그러나 이들 연구와 전시회에 소개된 이정직에 관한 정보는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이정직이 주로 전주와 김제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교유 인물들에 관한 정보도 빈약했다. 이는 이정직 연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먼저 이정직의 생애와 저술에 관해 검토하였다. 새로운 자료를 통해 이정직에 관한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다음으로 이정직의 교유관계를 살펴봤다. 기존에는 黃玹과 李沂를 중심으로 이정직의 교유관계를 다뤘지만, 여기서는 이들을 제외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특히 이건창과의 교유는 새롭게 소개되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이정직의 교유 인물을 지역별로 간략히 정리하였다.

KCI등재

2『연석산방미정고(燕石山房未定藁)』와 간본 『석정집(石亭集)』의 문헌학적 검토

저자 : 金榮鎭 ( Kim¸ Young-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82 (4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이정직(1841~1910)의 시문 자료에 대한 연구로 크게 다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석정 이정직의 필사본 『연석산방미정고』(후손가장본)와 간본 『석정집』(6권 3책)에 대한 비교이다. 필사본에는 한시 927제 1,279수와 문 273편이 수록되어 있고, 간본 『석정집』에는 한시 512수와 문 123편이 수록되어 있어 필사본에서 간본으로의 선택율은 대략 절반 가량된다. 다만 간본은 '잡저'를 전혀 수록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석정 이정직의 시문, 잡저, 편서 등을 추가 발굴하여 자료의 輯逸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금번 자료조사 과정 중에 『연석산방미정고』가 현재 통용되는 권질(20책)보다 더 많은 분량(최소 30책 이상)이 있었음을 추정·확인하게 되었고, 그 중 새로 발굴한 고려대 육당문고본(新舊折衷內篇, 外篇)은 석정의 제자 송기면의 『裕齋集』에 잡저 「망언(妄言)」으로 잘못 편입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정직의 잡저 논설들은 송기면의 「망언」 1, 2에 거의 다 수록되었음을 확인하였다(다만 「망언」 1의 가장 마지막 글인 <금일동서> 한편만은 송기면의 글임). 요컨대 향후 석정 이정직의 자료 휘집의 필요성이 전면적으로 대두된다 하겠다.

KCI등재

3석정 이정직의 『시경』론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 『시경일과(詩經日課)』 삼권(三卷)의 분석을 더하여

저자 : 金秀炅 ( Kim¸ Su-ky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12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詩經日課』 三卷의 분석을 더하여 석정의 『시경』 관련 저술 양상과 『시경』 인식의 특징을 개관하는 데 주요 목적을 두었다. 구체 분석에 있어서는 주석자의 해석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는 석정의 접근에 특히 주목하였다. 해석학적 각도에서 볼 때, 석정 『시경』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석정은 『시경』학의 맥락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시경』 해석의 계승과 변천 과정에서의 맥락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석정은 주자 『시경』 해석의 가치를 '獨創'에서보다는 '折衷'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주자 『시경』학을 漢代 『시경』학과 대립시키며 그 독창적인 면을 부각하고 다른 면을 배격하는 학문 태도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곧 진정한 獨創의 원동력이 전통과 기존설의 정밀한 비교, 분석을 통한 융합적 '折衷'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으로, 석정이 근대 전환기에도 왜 여전히 전통 학문과 시각을 중시하였는가를 이해하는 데 유효하게 참고될 수 있다. 둘째, 석정은 『시경』 해석의 타당성 여부와 내원을 세밀하게 추적하려는 면모를 보였는데, 이는 특정 주석가의 해석을 맹신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셋째, 석정은 해석자(주석자)의 인식 맥락에 초점을 두어 『시경』 해석의 同異를 변별하였다. 주석의 是非, 正誤에 대한 판단보다는, 주석자가 왜 이렇게 주석하였는지에 대한 의식의 흐름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시경』 해석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KCI등재

4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저술(著述) 『소시주선(蘇詩註選)』 연구(硏究)

저자 : 白丞鎬 ( Baek¸ Seung-h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3-134 (2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石亭 李定稷의 저술 『蘇詩註選』에 대한 개괄적인 정리와 소개의 성격을 띤 글이다. 『蘇詩註選』의 구성과 체계를 정리하여, 이 책이 『增刊校正王狀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를 모본으로 하여 주석을 중점적으로 초록한 성격의 책임을 밝혔다. 다만 책의 편차와 내용 구성을 고려할 때, 李定稷이 모본에 해당하는 책을 부분부분 다른 시기에 입수하여 주석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초록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시 이해를 위한 類書로서 시가 아니라 주석을 중심으로 초록하였다. 李定稷은 시학 연구 과정에서 모본이 되는 원서를 자신의 관점에서 다시 이해하고 재편집하여 새로운 저술을 편찬하였다. 그는 『律髓刊誤精選』에서 方回의 『瀛奎律髓』, 紀昀의 『瀛奎律髓刊誤』의 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비평”을 초록하여 『律髓刊誤精選』을 편찬한 바 있다. 이와 유사한 저술 방법으로 『蘇詩註選』은 『分類東坡先生詩』 주석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분문 아래 초록하여, 시 이해를 위해 유용한 정보들을 모아 놓은 筆記 내지 類書의 성격을 지닌 저술이 되었다. 李定稷은 평소 시를 엄밀하게 분석적으로 이해하였는데, 詩法에 대한 관심, 두보시에 대한 치밀한 이해 추구 경향이 『蘇詩註選』에서 보인다. 그는 본인의 관점을 세우고 제가의 설을 두루 참조하는 과정에서 『蘇詩註選』을 편찬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학 연구 방법론은 「六絶義解」에서 언급한 “遞相祖述과 轉益多師”의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KCI등재

5이당(彛堂) 조병헌(趙秉憲)(1876~1938) 집안 전래 회화(繪畫) ―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과 전북 근대 화단의 일면

저자 : 閔吉泓 ( Min¸ Gil-ho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56 (2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조선시대 서화 전통의 맥은 전라북도 근대 서화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전북 지역에 서화로 이름난 인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石亭 李定稷(1841~1910)은 마땅히 그림을 배울 스승을 찾지 못해 독학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藝鄕'으로 전라북도를 꼽게 된 것은, 이정직이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고자 이정직을 찾아왔고, 그렇게 점점 커진 물결은 근대 전북 화단을 만들었다.
彛堂 趙秉憲(1876-1938)은 김제 출신으로, 이정직의 제자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지만, 다른 제자들에 비해 생애에 대해 알려진 기록이 많지 않고 현전하는 작품도 거의 없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서화가다. 족보와 관련 기록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 서화가들과 官界 인물들과 교유를 했고 느즈막히 고향 김제로 내려와 聲慶廟 參奉에 제수되었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었다.
본고에서는 집안에 전래되어 온 유물들을 통해 전북을 넘어서 서울화단까지 이르는 조병헌 일가의 교유관계를 확인하고, 조병헌이 서예와 묵죽에 특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장내력이 확인되는 유물들이라는 점에서 유물 자체가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넘어서 시공간적으로 서로 관계맺음 속에서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컬렉션 전체를 통해 조병헌과 조송 부자의 서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전북 예술사의 큰 흐름에서 한 조각 비어있던 부분인 조병헌을 찾아내어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KCI등재

6청록(靑綠), 도가의 선약, 선계의 표상 ― 청록과 청록산수화의 행위자성(Agency)

저자 : 劉美那 ( Yu¸ Mi-na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88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는 청록산수화의 녹·청색 안료를 이루는 남동광과 공작석이 예로부터 의료용 약재이기도 하고 도가의 단약에 쓰이는 仙藥이기도 했던 점을 문헌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청록의 색채와 안료, 그리고 청록산수화에 함축된 도가적 상징을 고찰하였다. 石靑·石綠으로 대별되는 청록의 안료는 주요 本草書에 空靑·曾靑·扁靑·白靑 등의 石類 약재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輕身, 延年, 不老 등의 효능과 심지어 神仙으로 화한다는 효능이 명시되어 있어 예로부터 仙藥으로 인식되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金丹을 연조해서 수명을 연장시키고자 한 금단도에서 주요 선약으로 일컫는 五金八石에 空靑이 포함되어 중시되었던 점이 주목된다. 또한 조선시대 문학에서 선경을 묘사한 修辭 중에 유독 '碧'·'翠'·'蒼'·'靑'·'綠'의 색채어가 적극 사용된 점이 주목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청록산수화에 표현된 청록의 산과 바위는 공청·증청 등의 선약과 불로장생과 우화승선의 약효를 연상시켰을 것이고, 선계의 시각적 재현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이 연구는 미술의 사회적 관계망(Art Nexus) 속에서 물질 지표(Index)인 청록 안료와 청록산수화가 능동적 주체로서 화가와 감상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성(agency)에 대한 고찰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KCI등재

7와전(瓦塼)을 그리다 ― 한국 근현대 예술과 와전(瓦塼)의 에이전시(Agency)

저자 : 金素延 ( Kim¸ So-ye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18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古代의 건축부재였던 瓦當과 塼이 20세기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으로 우리 문화에 새롭게 등장하여 행위력, 즉 에이전시(agency)를 발휘했음을 고찰하는 시도이며, 분석을 위해 알프레드 겔(Alfred Gell, 1945~1997)의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근현대 미술에서 瓦塼은 특히 文字瓦와 文字塼을 중심으로 재해석 되었다. 문자, 고동기의 金文을 임모·임서한 와전임모도는 그 대표적인 例이며, 본고는 와전임모도의 유형 및 제작배경을 거론하고 임모도의 직접적 원형(prototype)으로 淸代 『金石索』(1821)과 같은 금석관련 圖解書를 제시해 보았다. 와전 수집과 감상의 결과물인 와전탁본도를 논의하고, 吳世昌(1864~1953)의 경우에서 秦漢 와전의 모사형식을 우리 와전으로 확대하여 적용한 의의를 찾아보기도 했다. 덧붙여 해방 이후에는 와전이 자수병풍의 대표 도안으로 채택되어, 산업발전기 수출전선의 선두에서 한국 전통을 상징하는 기표로써 기능했음을 살펴보았다. 와전자수병풍은 와전임모도의 양식적 특징과 길상성을 계승하여 대중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것인데, 역설적이게도 일부 작품들은 문자와를 묘사했음에도 서양인 구매자라는 수령자(recipient)를 고려해 더 이상 한문 표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즉, 구매자가 지표(작품, index)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본래 와전임모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와전문의 가치가 변형되고 문화적 맥락이 흐릿해지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KCI등재

8녹동 최연택의 언론출판활동과 딱지본 대중소설 연구 ― '사회소설' 『단소』와 『죄악의 씨』를 중심으로

저자 : 裵定祥 ( Bae¸ Jeong-s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49 (3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녹동 최연택은 1920년대 식민지 서적출판문화의 장 안에서 나름의 개성 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신문 매체에 수많은 글을 기고한 언론인이자, 출판사를 직접 설립하여 경영한 출판인이었으며, 몇 편의 특색 있는 소설 작품을 남긴 문학인이기도 했다. 예컨대, 그는 신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은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시도했으며, 문창사라는 출판사를 설립·운영하며 출판활동을 통한 사회적 소명을 다하고자 했다. 또한 『단소』, 『죄악의 씨』 등 '사회소설' 연작을 통해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딱지본 대중소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 및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처럼 경계인 녹동 최연택의 언론·출판 및 소설 창작 활동은 식민지 시기 서적출판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KCI등재

9식민 권력의 통제, 우회 전략으로서의 개작 ― 『아동가요곡선 삼백곡』을 중심으로

저자 : 康泳美 ( Kang¸ Young-mi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1-281 (3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에서는 小竹 姜信明(1909~1985)이 편찬한 『兒童歌謠曲選 三百曲』의 세 종의 판본을 비교하여 일제의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일부 노래를 삭제하고 다시 수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폈다. 『아동가요곡집 삼백곡』은 일제의 검열 지침에 의해 일부 노래가 삭제된 것이 아니다. 불온 창가라는 일제의 외적 규정 속에서 기독교계 관련자들이 자체 검열을 통해 일부 노래를 삭제한 것이다. 삭제곡은 대부분 조선을 환기하는 단어가 있는 노래였다. 식민지인에게 조국을 환기하는 단어가 일제의 검열 당국에게는 불온한 것으로, 반일의 상징으로 읽히리라 판단한 것이다.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부르는 금주 금연 등의 절제가 류의 노래도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의미에 주목하여 삭제했다. 이처럼 일제가 규정한 '불온 창가'의 내포를 상상하며 미국인 선교사와 교회 관련자가 일부 노래를 삭제하는 과정, 식민지 평양에서 제국의 동경으로 지역을 옮겨 삭제곡의 일부를 편찬자 강신명이 직접 복구하는 과정은 1936~1940년까지의 시차, 미국인과 조선인이라는 국적의 차이, 식민과 제국이라는 공간의 차이, 아동가요 운동을 전개하는 지향의 차이가 '불온'의 해석에 영향을 끼쳤음을 드러낸다. 그 결과 일제가 규정하고 조선인이 구성한 아동가요의 불온성은 일시적이고 자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KCI등재

10혼혈아 외부화 프로세스와 대중문화 ― 경제성장기 일본사회의 혼혈아 표상

저자 : 朴利鎭 ( Park¸ Yi-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3-311 (2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일본에서 1952년 '혼혈아논쟁' 이후부터 1960년대 일명 '혼혈 붐'의 시대를 거쳐 '하프 담론'이 등장하는 1970년대까지 20년간 일본사회에 유포된 혼혈아 표상은 그들에 대한 고착된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다. 특히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인론이 크게 유행하면서 일본인에 대한 새로운 의미화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단일민족으로서의 인종화가 강화되며 혼혈아들은 외부화되어 간다. 이러한 흐름을 본고에서는 현대 일본의 인종주의가 갖는 '전후적 기원'으로 파악하여 그 구체적인 특징을 다양한 대중문화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1970년대 혼혈아들이 하프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재탄생되는 구조에 작용하고 있는 대중들의 심급에 주목할 수 있었다. 점령의 기억이라는 과거의 상흔이 혼혈아의 상징체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고, 일본사회의 재건과 경제성장, 그리고 일본인론의 유행처럼 사회문화적 자신감의 회복이 혼혈아 표상의 변주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식 인종주의를 이루고 있는 기원적 문제를 통해 현대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종주의적 차별과 편견이 단순히 서양식 인종주의를 답습한 형태라고 설명하는 시각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안해 보았다.

12
주제별 간행물
간행물명 최신권호

KCI등재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84권 0호

KCI등재

지역과 역사
49권 0호

KCI등재

역사교육논집
78권 0호

한국사론
67권 0호

KCI등재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KCI등재

선도문화
31권 0호

KCI등재

백제문화
65권 0호

KCI등재

백제연구
74권 0호

KCI등재

민족문화연구
92권 0호

KCI등재

백제학보
37권 0호

KCI등재

한국학논총
56권 0호

KCI등재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83권 0호

KCI후보

청람사학
33권 0호

KCI등재

한국문화연구
40권 0호

KCI등재

역사교육논집
77권 0호

KCI등재 SCOUPUS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34권 1호

KCI등재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조선사연구
29권 0호

KCI등재

민족문화연구
91권 0호

KCI등재

백제학보
36권 0호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