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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이당(彛堂) 조병헌(趙秉憲)(1876~1938) 집안 전래 회화(繪畫) ―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과 전북 근대 화단의 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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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彛堂) 조병헌(趙秉憲)(1876~1938) 집안 전래 회화(繪畫) ―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과 전북 근대 화단의 일면

Jo Byung-heon(1876~1938) Family Collection of Calligraphy and Paintings

閔吉泓 ( Min¸ Gil-hong )
  •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 대동문화연구 11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9월
  • : 135-156(22pages)
대동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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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조병헌·조송 집안 전래 유물의 구성
Ⅲ. 이당 조병헌의 회화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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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화 전통의 맥은 전라북도 근대 서화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전북 지역에 서화로 이름난 인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石亭 李定稷(1841~1910)은 마땅히 그림을 배울 스승을 찾지 못해 독학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藝鄕’으로 전라북도를 꼽게 된 것은, 이정직이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고자 이정직을 찾아왔고, 그렇게 점점 커진 물결은 근대 전북 화단을 만들었다.
彛堂 趙秉憲(1876-1938)은 김제 출신으로, 이정직의 제자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지만, 다른 제자들에 비해 생애에 대해 알려진 기록이 많지 않고 현전하는 작품도 거의 없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서화가다. 족보와 관련 기록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 서화가들과 官界 인물들과 교유를 했고 느즈막히 고향 김제로 내려와 聲慶廟 參奉에 제수되었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었다.
본고에서는 집안에 전래되어 온 유물들을 통해 전북을 넘어서 서울화단까지 이르는 조병헌 일가의 교유관계를 확인하고, 조병헌이 서예와 묵죽에 특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장내력이 확인되는 유물들이라는 점에서 유물 자체가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넘어서 시공간적으로 서로 관계맺음 속에서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컬렉션 전체를 통해 조병헌과 조송 부자의 서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전북 예술사의 큰 흐름에서 한 조각 비어있던 부분인 조병헌을 찾아내어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It can be said that the tradition of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Joseon Dynasty was carried on to modern calligraphy and painting in Jeollabuk-do. There was no one famous for calligraphy and painting in Jeollabuk-do in Joseon Dynasty. Therefore, Yi Jeong- Jik would have been self-taught because he could not find a teacher to teach painting for him.
At the beginning of the selection of Jeollabuk-do as ‘Art town(藝鄕)’, there was Yi Jeong-jik(1841~1910). Many people came to him to become a disciple, and the growing wave created the modern Jeonbuk art history.
Jo Byeong-heon趙秉憲 (1876~1938) was born in Gimje and has been known as one of Lee Jeong-jik’s pupils. According to genealogy records and related records, it was known that he went to Seoul to interact with calligraphers and related officials, and he in later years, came down to his hometown of Gimje and enjoyed his life reading books and so on.
In this paper, through the relics handed down through the family,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e extensive relationship of the Jo Byung-hun family from Jeollabuk-do to the Seoul art gallery and it was found that Jo Byung-hun was specially good at his calligraphy and bamboo painting.
The importance of this study lies in solving the puzzle in the large flow of art history in Jeonbuk from the modern era to the present, by finding the missing piece, Cho Byung-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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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3820
  • : 2714-0040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64-2021
  • :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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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권0호(2021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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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국정운(東國正韻)』과 『규장전운(奎章全韻)』의 참고문헌 유형 비교 고찰

저자 : 林茶英 ( Lim Da-yŏ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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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조선 전·후기 학자들의 문자언어학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韻書 편찬자들이 참고로 했던 문헌들의 유형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東國正韻』과 『奎章全韻』의 체재 및 한자음의 차이를 비교 고찰하였다. 『東國正韻』의 참고문헌은 그 수가 적을뿐 아니라 유형도 正音을 규정한 韻書와 중국 전통의 韻圖, 그리고 성리학적 언어관으로 語音을 분석한 이론서에 한정되어 있었다. 반면 『奎章全韻』의 참고문헌의 수는 전부 100종이 넘었으며, 그 유형을 살펴보면 韻書類와 字書類 등의 문자언어학 관련 서적뿐 아니라 외국어 학습서 및 백과사전과 같은 실용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참고문헌 유형의 차이는 正音을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東國正韻』과 詩作에 실제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奎章全韻』의 형식과 내용상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This study is to clarify how the tendency of linguistic studies in the early and late Joseon Dynasty was realized in the form and content of Tongkukchŏngun(1448) and Kyuchangchŏnun(1796). To clarify this, first, the books referenced by the pronunciation dictionaries' editors were classified by type using the literature records of the two dictionaries. Next, by compar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ferences in the two pronunciation dictionaries, the flow of linguistic research in the Joseon Dynasty was examined diachronically. And how the academic tendencies of each period were actually realized in the contents and forms of the two dictionaries were examined.
References in Tongkukchŏngun were not only few, but the content was limited to traditional Chinese linguistics. In contrast, the total number of references in Kyuchangchŏnun was over 100, and the types were very diverse. It was confirmed that these differences in the types of references lead to differences in the form and content of Tongkukchŏngun and Kyuchangchŏn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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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南北相違集(南北相違抄)』에 가점(加點)된 자음주(字音注)의 일단면(一端面) ― 통섭(通攝)에 보이는 오음(吳音)의 전승(傳承)을 중심으로

저자 : 宋在漢 ( Song Jae-ha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77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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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日本 中近世 시기 佛家 讀誦音의 宗派간 차이를 기록한 『南北相違集(南北相違抄)』의 字音 중 通攝에 속한 글자들을 대상으로 吳音의 學習 傳承을 검토하였다. 필자는 최근 논의에서 吳音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重層性」에 대해 中古音의 수용 시기 이외에 宗派간에 傳承된 「變容」이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南北相違集(南北相違抄)』의 通攝에 해당하는 글자를 佛典 자료 및 韻鏡類 등과 비교 검토한 결과 東冬韻과 東鍾韻에 보이는 字音 양상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宗派간 長短音의 混在이다. 이는 通攝의 鼻音韻尾 -ŋ을 諸宗派에 있어서 어떻게 수용하고 傳承하는지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3等韻의 경우 讀誦音은 長音을 유지하는 반면 韻鏡類에서는 漢音의 長音을 의식하여 短音을 吳音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長短音의 混在와 함께 中古音과 淸濁이 일치하지 않는 글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용례는 佛典 讀誦音에서 散見되는 것으로 宗派간 傳承이 다르며 『補忘記』에도 잘 드러나 있다.
『南北相違集(南北相違抄)』는 吳音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字音의 變容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變容은 共時的으로는 이미 宗派 혹은 流派에 따라 그리고 經文의 어휘에 따라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정해진 표기 형식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산발적 혹은 편향적인 경향이 인정된다. 본 자료는 中近世에 있어서의 吳音 傳承의 一端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서 파생되는 諸問題를 位相論적 관점에서 漢字音史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This paper discussed the transmission of 'Go-on' from the Chinese characters of 『南北相違集(Nambokusouisyū)』 which records the differences between sects of Buddhist pronunciation in the Middle and Modern Period of Japan. In recent discussions, the author pointed out that Go-on's characteristic "multilayer" is important because of the "transformation" that has been handed down from sect to sect except during the acceptance period of Middle Chinese. Comparing the characters corresponding to the notice of 『南北相違集(Nambokusouisyū)』 with Buddhist scriptures and 『韻鏡(Yunjing)』, the most prominent characteristic of the characters in Grade Ⅰ and Grade Ⅲ is the mixing of sectarian long and short notes. This can be thought of as a result of the acceptance and transmission of the common rhyme nasal rhyme ending in various sects. In particular, in the case of Grade Ⅲ, the reading sound maintains a long sound, while in 『韻鏡(Yunjing)』, the short sound is often defined as Go-on because of the long sound of Chinese characters. Along with the mixing of long and short sounds, there are characters that do not match characters that are not consistent on 「淸濁(Sei-Daku)」 with middle chinese. Such examples are often found in Buddhist scriptures, different sectarian legends, and are often found in 『補忘記(Bumōki)』. The 『南北相違集(Nambokusouisyū)』 shows the transformation of the phonetic sounds that occurred during the settlement of Go-on, which can be understood to have been determined by sects and by the vocabulary of sutras. This form of notation is not systematic, but rather sporadic or biased. This material shows a part of transmission of Go-on in the Middle and Modern Period, and it is necessary to approach the history of Chinese characters from a topological point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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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정조(正祖) 친찬(親撰) 『팔가수권(八家手圈)』의 편찬(編纂)에 관한 소고(小考)

저자 : 尹炫晶 ( Yoon Hyun-jo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9-12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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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家手圈』은 茅坤의 『唐宋八大家文鈔』를 底本으로 하여 正祖가 직접 節錄한 구절들을 문인별로 분류하여 엮은 문헌으로, 정조의 親撰 抄本 『四部手圈』중 하나이다. 본고는 정조가 이전에 같은 저본을 대상으로 選本 『八子百選』을 편찬하고서 재차 초본을 편찬하였다는 사실에 집중하여, 두 문헌을 비교하고, 『팔가수권』의 절록 내용을 분석하는 연구방법을 통해 그 편찬 의도를 추측하였고, 그 결과 선행연구에서 제시한 바와 달리 『팔가수권』은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정조 본인이 중요한 구절을 완전히 외워 체득하는 암송공부를 위해 편찬한 문헌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 근거로는 첫째, 정조의 선본과 초본은 초록과 암송을 중시하는 그의 학문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기능에 따라 구분된다. 둘째, 정조는 『팔가수권』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권점을 치는 행위 자체를 朱子를 계승하는 것으로 인식하였으며, 이에 초록한 구절에 대한 논평은 일체 생략하였다. 셋째, 『팔가수권』은 문체와 문인, 작품명 등의 정보보다 초록된 구절을 강조하고, 작품명 중 인명이나 직위명, 지명 등에 해당하는 글자는 생략하였으며, 목차 없는 구성으로 편찬되었다. 이러한 구성상의 특징은 『팔자백선』과 상반되는 부분으로, 정조가 이 문헌을 편찬할 때에 독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넷째, 절록 양상에 있어 정조 특유의 과감한 절록 방식은 『팔가수권』이 지닌 학습서로서의 완성도를 낮추고 있으며, 반면 排比句의 선호는 이 문헌의 편찬 목적이 암송용 도구라는 점을 추측케 한다. 절록 내용 분석 결과로는, 정조가 이상향으로 여긴 시대와 인물들의 고사가 구체적으로 묘사된 구절과 治世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을 다수 수록하고 있었다. 이는 임금인 정조 본인에게 유용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신하 입장의 문인들이 읽었을 때 도움이 되는 내용을 주로 선별한 『팔자백선』과 반대의 면모에 해당한다.
이처럼 『팔가수권』은 그 편찬 의도가 『팔자백선』과 다르며, 단순히 저본이 동일하다는 사실로 인해 이 두 문헌을 같은 선상에 두고 논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정조의 선본과 초본이 차이를 지닌다는 점을 규명하고 문헌 내적 분석을 통해 그 편찬 의도를 추측한 것에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Palga-sugwon is an abridgment book extracted from the Dangsong-paldaega-muncho: the Selected Works of Literary of Eight Masters in Tang and Ming Dynasty. King Jeongjo abstracted it by himself and categorized by writers. In this study, Palga-sugwon is compared with Palja-baekseon because it is not clear why King Jeongjo made them from the same origin in a similar way but in two different sets. As results of this study, it is discovered that the Palga-sugwon was compilated as a personal study tool for King Jeongjo himself to recite, which is different from the result of previous research, based on four reasons as follow.
First, anthology and abridgment book have different functions especially if they were edited by King Jeongjo since he considered abstract and recitation as important ways of study. Anthology was made as a group of abstracts from the original book, but abridgment book was made for the recitation. Second, the King Jeongjo treated a performance of circle on a good text as a way of respect to Zhu Xi, and he deleted all of critic commentaries. Third, it is hard to find information of writer, title, writing style because they are written by small sized text on the Palga-sugwon. Also, there is no table of contents although a great volume. The construction of this book shows King Jeongjo did not consider other people as readers. Last, it turns out that there is the unique characteristic of Jeongjo's abridgment by contrasting between chosen writings pieces of the Palga-sugwon and the criticism of commentaries from the Dangsong-paldaega-muncho. He chose the instructive ones which might be helpful for king, not for students.
For these reasons, it is a necessary to reconsider the argument which said the Palga-sugwon and the Palja-baekseon have the same function and purpose just because they both were extracted from the Dangsong-paldaega-muncho. This research has an academic significance because it points out the clear difference between the Palga-sugwon and the Palja-baekseon by comparing them as anthology and abridgment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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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자하(紫霞) 신위(申緯)와 청 문단의 교유 양상 ― 1812년 연행 이후를 중심으로

저자 : 林映吉 ( Yim Young-gil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1-14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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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신위(1769~1847)와 청 문단의 교유 양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신위는 1812년 진주 겸 주청 사행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가서 당대 문단의 종장이던 翁方綱과 그의 아들 翁樹崐을 만나 깊은 교분을 맺었으며, 옹방강의 서재를 방문하여 옹방강 문하의 葉志詵, 王汝翰, 朱鶴年 등과도 교유하였다. 신위는 추사 김정희의 뒤를 이어 북경 학예의 중심에 있던 문사들과 교류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향후 조·청 양국의 인적 교류망이 확장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1812년 연행 이후 신위는 沈象奎, 韓致應, 洪義浩, 朴宗薰, 南尙敎, 申在植 등 연행을 떠나는 지인들을 적극 활용하여 북경 문단의 최신 동향을 입수하는 한편, 서신과 시문을 통해서 옹방강의 제자 吳嵩梁을 비롯하여 蔣詩, 錢林, 陳文述, 熊昻碧, 陳用光, 鄧傳密, 周達, 張深 등과 교분을 맺었다. 이들과의 교유는 182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신위의 교류망이 확대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장시이다. 신위는 장시를 매개로 전림, 웅앙벽, 진문술 등과 교분을 맺은 것으로 파악된다.
1830~1840년대에는 주로 역관 李尙迪을 통해서 儀克中, 韓韻海, 端木國瑚, 王鴻 등에게 시문을 지어 보내며 간접적으로 교유하였다. 신위는 북경 문단과의 소통의 최전선에 서서 조선의 문예 수준을 청 문단에 전파하는 역할을 자처하였다. 동시에 자신의 주변 문인들을 북경의 벗들에게 소개함으로써 대청 교류망을 확장해나갔다. 신위의 연행은 노론 경화세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소론·남인계 문인들과 중인층 시인들이 북경 문단과 소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This paper is a comprehensive summary of the aspects of communication between Shin Wi and Chinese litterateurs. In 1812, Shin Wi went to Beijing as the secretary of envoy, and met Weng Fanggang, who was the chief of the literary troupe of the time, and his son Weng Shukun, then had friendship with them. Also he visited Weng Fanggang's study and had a companionship with Ye Zhishen, Wang Ruhan and Zhu Henian under Weng Fanggang. Following Kim Jeong-hui, Shin Wi laid the foundation for expanding the human exchange network not only for himself but also for Joseon and China in the future by exchanging with scholars who were at the center of Beijing's literary.
After the travel in 1812, Shin Wi actively utilized Sim Sang-gyu, Han Chi-ung, Hong Ui-ho, Bak Jong-hun, Nam Sang-gyo, Sin Jae-sik, etc., the acquaintances, who were leaving to Beijing to get the latest trends in Beijing litterateurs. Meanwhile, he made friendship with Wu Songliang, the student of Weng Fanggang, as well as Jiang Shi, Qian Lin, Xiong Yangbi, Chen Wenshu, Chen Yongguang, Deng Chuanmi, Zhou Da, Zhang Shen, and etc. by exchanging letters. The acquaintance with them was intensive in the 1820s, and among them, Jiang Shi played the biggest role in expanding Shin Wi's exchange network. It is figured out that Shin Wi had ties with Qian Lin, Xiong Yangbi and Chen Wenshu through Jiang Shi.
Afterwards, in the 1830s and 40s, he wrote poems to Yi Kezhong, Han Yunhai, Duanmu Guohu, Wang Hong, etc., through I Sang-jeok, a Chinese interpreter, and indirectly communicated with them. Shin Wi took the role of being at the forefront of communication with the Beijing litterateurs and spreading Joseon's literary level to Chinese litterateurs. At the same time, he expanded the exchange network toward China, by introducing his neighboring literati to his friends in Beijing. Shin Wi's travel provided a platform for not only the Noron Gyonghwasejok, but also Soron and Namin literati and middle-class poets to communicate with the Beijing litterate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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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후기 도망록(悼亡錄)의 편찬과 그 의미

저자 : 鄭雨峰 ( Chung Woo-bo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9-17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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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 남긴 저술 가운데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悼亡錄을 대상으로 悼亡詩文 창작 및 향유의 변화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悼亡錄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을 모아놓은 단행본 저술을 가리킨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悼亡文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도망문은 한시 형식의 悼亡詩이거나 祭文, 墓誌銘, 行狀 등의 형식을 취한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통상적인 애도의 방식과 다른 방향으로 도망문을 창작하고 향유하려는 경향이 새롭게 나타난다.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현상으로 도망록의 편찬에 주목하였다. 도망시나 도망문을 묶어서 하나의 단행본 형태로 편찬하는 것이 조선후기에 이르러 나타난 주목할 변화의 하나이다. 沈魯崇의 『枕上集』 및 『眉眼記』는 자신이 쓴 도망시와 도망문을 단행본의 형태로 묶은 것이다. 때로는 한문으로 작성된 도망문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책으로 묶기도 하고, 아내의 언행을 한글로 작성하여 책으로 엮기도 하였다. 金禮淵의 『壽名錄』은 한글로 쓴 부인언행록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任靖周가 아내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悼亡文을 한글로 번역하여 엮은 『癸酉錄』이 특별하다. 南一元은 悼亡詩 100수 연작시를 짓고, 兪萬柱에게서 서문을 받았다. 도망시를 모아놓은 『悼亡詩卷』은 현재 확인되지 않지만, 100수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도망시를 창작하고 이를 책으로 엮었다는 사실은 任再堂이 『갑진일록』에 102수에 이르는 도망시를 남긴 것과 함께 悼亡詩文의 문학사적 흐름 속에서 기억해야 할 점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reveal the characteristic aspects of the author's attitude toward his wife's death and his writing style with the main subject of Domanglog(悼亡錄) in the late Joseon Dynasty. Domanglog(悼亡錄) here refers to the writing of a book that mourns the death of his wife. Poems and prose mourning the death of his wife are called Domangmoon(悼亡文). Generally, Domangmoon is a Chinese poem, or takes the form of a prose, such as a jemun(祭文), myojimyeong(墓誌銘), haengjang(行狀). In addition, the condolence sentences written in Chinese were translated into Hangul, and they were bound in books, and the words and words of his wife were written in Hangul. This was distinguished from the previous condolence poetry and prose(悼亡詩文), and was named Domanglog(悼亡錄). From the 18th century onwards, the tendency to create Domangmoon(悼亡文) in a different direction from the usual way of mourning appears newly expanded. As an important phenomenon showing new changes, we would like to pay attention to the compilation of Domangmoon(悼亡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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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스쳐간 만세 '전'의 풍경 1 ― 일본의 철도와 부산 시가를 중심으로

저자 : 朴賢洙 ( Park Hyun-so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7-21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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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萬歲前」에서 이인화의 여로 가운데 일본 철도와 부산 시가에 주목해 그 실상과 의미를 해명하려 했다. 「萬歲前」의 여로에 관한 논의는 이루어진 바 있지만 여전히 미진한 느낌을 준다. 이인화는 동경에서 신호까지 완행 삼등칸을 타고 이동했는데, 그 노선은 동해도선이었다. 노선의 소요 시간, 좌석, 등급에 따른 시설 역시 확인하려 했다. 일본에서 초기의 철도 개발은 방적 산업의 원료나 연료를 수송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신호에서 하관까지의 이동은 산양선을 통해 이루어졌다. 신호에서 하관까지 가는 데는 급행이나 특별급행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연락선 출항 시간 때문이었다. 산양선의 검토를 통해서는 식당차나 도시락, 세면소의 특징과 이용 등을 해명했다. 일본의 철도는 1908년이 되면 북쪽으로 북해도에서 남쪽으로 구주까지 하나로 연결되었다. 부산에 도착한 이인화는 시가 구경에 나서는데, 일본인의 집으로 메워진 그곳은 부산항 매축공사를 통해 조성된 매축지였다. 이인화가 이동했던 동해도선과 산양선은 일본 철도의 핵심에 자리 잡은 노선이었다. 그 철도는 일본이 조선의 식민지 침탈과 대륙으로의 진출을 의도했던 노선이었으며 승차권의 등급에 따라 계급적인 위계를 내면화시킨 공간이기도 했다. 부두 시설을 준공하고 철도를 연장했던 부산항 매축공사의 온전한 목적 역시 부산에서 경성을 거쳐 안동, 봉천 등 대륙으로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었다.


In < Mansejeon(萬歲前) >, Lee In-Hwa took the train from Tokyo to Shimonoseki. Discussion about Lee In-Hwa's route in novel has been made, but it is not enough. < Mansejeon(萬歲前) > is a document that shows the details of Japanese railways at the time. Lee In-Hwa took a local train from Tokyo to Kobe, which was The Tōkaidō Line. This article demonstrated the travel time, seating, and rating of The Tōkaidō Line at the time. Early railroads in Japan were built to transport raw materials and fuel. Lee In-Hwa took the express train from Kobe to Shimonoseki, which was The Sanyo Line. Because Lee In-Hwa wanted to be on time for the departure of the railway ferry. This article also demonstrated the restaurant car, lunch box, and washroom of The Sanyo Line at the time. In 1908, Japanese railways were connected from Hokkaido to Kyushu. Arriving in Busan, Lee In-Hwa took a tour of the city. The place filled with Japanese houses was a reclaimed land created by the reclamation work of Busan Port. The Tōkaidō Line and The Sanyo Line were the core lines of Japanese railways. And The Tōkaidō Line and The Sanyo Line were also railway lines that Japan pioneered to advance into the continent. Within the train, the class distinctions was established according to the grade of the ticket. The purpose of the reclamation work of Busan Port was also to move smoothly from Busan to the mainland via G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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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식민지시기 책시장의 동향과 지식·문학의 관계 (1) ― 1910년대 중반 무렵의 변동 국면

저자 : 柳石桓 ( Yu Seok-hwa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3-257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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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 전반기 책시장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재검토한 글이다. 책시장의 교재 우선주의의 경향성은 한일강제병합을 경험하고 나서도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식민지시기 책시장의 첫 번째 획기적인 변동은 1910년대 중반 무렵에 발생했다. 조선총독부의 차별 정책 때문에 교재시장에서 식민지 출판기구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던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였다. 당시 출판기구들은 중국어책과 식민지 조선에서 생산된 한문책, 문학책 등을 활용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이는 식민지 출판기구들이 장기지속적인 사회적·문화적 구조물, 달리 말하자면, '한자권'을 새롭게 발견한 결과였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자권에 기초한 책시장의 중층성은 제국과 식민지의 역학 혹은 일본어책과 조선어책의 대립 구도 속에서 식민지시기 책시장의 운명을 설명한 기존 연구들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


This article is a review of the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of the book market in the first half of the colonial period in Korea. Even after the book market experienced the Japanese forced annexation of Korea, the tendency to prioritize textbooks was consistently maintained. The first epochal change in the colonial book market occurred around the mid-1910s. One of the reasons was that the colonial publishing organizations' position in the textbook market was getting narrower due to the discrimination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t that time, publishing organizations pioneered a new market through Chinese books, literary books, and the like. This was the result of the colonial publishing organizations' new discovery of long-lasting social and cultural structures, in other words, the 'sinographic sphere(漢字圈)'. Needless to say, the overdetermiantion of the book market based on sinographic sphere calls for a reconsideration of the studies that have explained the fate of the book market during the colonial period in the dynamics of empire and colony, or the conflicting design of Japanese books versus Korean language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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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벽사 『중국단편소설집』 번역자 소고

저자 : 崔昌竻 ( Choe Chang-ruk ) , 趙穎秋 ( Zhao Ying-qiu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9-29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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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동안 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한국 최초의 중국근대문학 작품집인 『中國短篇小說集』(개벽사, 1929.1.25)의 번역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실증적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에 중국어 원작의 출처 및 그 저자들과 북경 평민대학 교수진과의 관계, 번역서와 김홍선의 기타 한국어 작품들과의 주제·문체적 근접성, 김홍선과 개벽사 및 천도교와의 관계 등을 살펴봄으로써 베이징 평민대학에서 유학하였던 천도교인 김홍선이 번역자임을 밝혔다. 더불어 본고는 天友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김홍선이 바로 중국의 『京報副刊』, 『國聞週報』 등에서 활발한 문필활동을 펼친 翠生임을 고증하기도 하였다. 이는 천도교인 및 독립운동가들과 중국의 언론인 및 문학장과의 연동과정을 드러내 주고 한국의 중국 신문학 수용이 문학장을 넘어서서 혁명과 저항적 의지의 구현이기도 하였음을 보여준다.


This paper intends to reveal the mystery of who was the translator of Korea's first collection of modern Chinese literature The Collection of Chinese Short Stories (Gaebyuksa, 1929.1.25) through an empirical study.
The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ources and authorship of the Chinese originals included in the translation and the professors at Beijing Civilian University where Kim Hong-Seon attended, the thematic and stylistic proximity between the translation and Kim Hong-Seon's Korean works, as well as the relationship between Kim Hong-Seon, Gaebyuksa and Chondogyo, demonstrating that Kim Hong-Seon was the translator. In particular, this paper verifies that Kim Hong-Seon, who wrote under the pseudonym Ceonwoo, was the Korean student “Cuisheng” who was active in China's Supplement to Peking Daily (Jingbao Fukan) and Guowen Weekly (Guowen zhoubao).
The fact that the translator of The Collection of Chinese Short Stories is Kim Hong-Seon shows that the acceptance of the modern Chinese literature in Korea transcended the literature field as an expression of the will of “revolution” and resistance, and it reveals the process of linking the follower of Chondogyo and independence activist in Korea with the journalist and literature field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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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46년 성균관대 중건의 연속과 단절

저자 : 吳瑅淵 ( Oh Je-ye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5-31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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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인 1946년 성균관대가 중건되었다. '공간' 및 이에 속한 '시설'과 '학생'을 중심으로 성균관대의 역사를 바라보면 식민지기 명륜학원-명륜전문학원-명륜전문학교를 성균관대와 연속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성균관대는 식민지기 명륜학원-명륜전문학원-명륜전문학교와 단절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우선 식민지기 학교 관련자들이 해방 직후 명륜전문학교를 재건하려 했으나 이는 사실상 실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명륜전문학교는 조직적으로 성균관대 중건에 참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성균관대 중건의 주도권을 잡은 사람은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심산 김창숙이었다. 김창숙은 성균관대를 중건하면서 식민지기 명륜전문학교의 잔재를 최대한 청산하고자 했다. 성균관대가 전통시대 최고학부이자 관학이었던 성균관과 달리 사립대학으로 출발한 것 역시 관(국가)의 종속에 벗어나려 했던, 즉 식민지 경험의 청산, 극복, 단절의 결과였다.


In 1946, after liberation, Sungkyunkwan University was re-established. If we look at the history of Sungkyunkwan University with a focus on 'space', it is possible to connect Myeongryunhagwon(明倫學院)-Myeongryun Professional School(明倫專門學校), which functioned as educational institutions in the same space during the colonial period, with Sungkyunkwan University. But overall, Sungkyunkwan University has a strong disconnection from Myeongryunhagwon(明倫學院)-Myeongryun Professional School(明倫專門學校). The person who took the lead in the re-establishment of Sungkyunkwan University was Shimsan Kim Chang-sook, who devoted his life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When Kim Chang-sook re-established Sungkyunkwan University, he tried to liquidate as much as possible the remnants of Myeongryun College during the colonial period. Also, Kim Chang-sook re-established Sungkyunkwan University as a private university in order to avoid government interference as in th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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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79년 보르헤스(Borges, 1899~1986)의 일본 방문과 문화교류, 번역 수용

저자 : 楊아람 ( Yang Ah-lam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21-35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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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르헨티나 작가인 보르헤스의 1979년 일본 방문과 일본 수용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일본에서 보르헤스 문학은 1950년 후반부터 번역되기 시작해 '전집'에 편입하면서 일본 독자들과 대면했다. '환상문학 작가', '미궁의 작가'로 일본에서 알려진 보르헤스의 방일은 그의 문학뿐만 아니라 일본 인식을 고찰할 수 있는 문화적 이벤트였다. 보르헤스를 초청한 일본국제교류기금은 29일 일정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보르헤스를 배려해 주로 휴식여행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그의 방일은 환상문학의 수용이면서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좀 더 대중화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요컨대 이 글은 일본의 보르헤스 초청사업을 통한 문화교류 및 확대, 일본의 보르헤스 번역 수용의 문화사적 의미를 다층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번역문화사연구이다.


The article seeks to examine the social and cultural significance of the Argentine writer Borges' Japanese translation and his visit to Japan in 1979. Borges literature began to be translated in the late 1950s in Japan and began to be incorporated into the complete collection, facing Japanese readers. Borges' visit to Japan, known in Japan as the Fantastic and mysterious writer was the biggest cultural event to understand not only his literature but also his Japanese perceptions. The Japan Foundation, which invited Borges, organized the 29days program mainly focusing on rest trips in consideration of Borges, who was not well-seen. His visit to Japan was an acceptance of fantastic literature and an opportunity to further popularize Argentine and Latin American literature. In short, this article is a study on translation and cultural history to examine the cultural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cultural exchanges and expansion of Japan's acceptance of Borges' translation through the invitation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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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생애(生涯)와 저술(著述) 및 교유관계(交遊關係)

저자 : 朴徹庠 ( Park¸ Chul-s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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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 이정직은 조선 말기의 書畵家이자 學者이다. 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그의 서화를 소개하는 전시회 또한 여러 차례 열렸다. 그러나 이들 연구와 전시회에 소개된 이정직에 관한 정보는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이정직이 주로 전주와 김제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교유 인물들에 관한 정보도 빈약했다. 이는 이정직 연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먼저 이정직의 생애와 저술에 관해 검토하였다. 새로운 자료를 통해 이정직에 관한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다음으로 이정직의 교유관계를 살펴봤다. 기존에는 黃玹과 李沂를 중심으로 이정직의 교유관계를 다뤘지만, 여기서는 이들을 제외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특히 이건창과의 교유는 새롭게 소개되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이정직의 교유 인물을 지역별로 간략히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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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석산방미정고(燕石山房未定藁)』와 간본 『석정집(石亭集)』의 문헌학적 검토

저자 : 金榮鎭 ( Kim¸ Young-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82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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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정직(1841~1910)의 시문 자료에 대한 연구로 크게 다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석정 이정직의 필사본 『연석산방미정고』(후손가장본)와 간본 『석정집』(6권 3책)에 대한 비교이다. 필사본에는 한시 927제 1,279수와 문 273편이 수록되어 있고, 간본 『석정집』에는 한시 512수와 문 123편이 수록되어 있어 필사본에서 간본으로의 선택율은 대략 절반 가량된다. 다만 간본은 '잡저'를 전혀 수록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석정 이정직의 시문, 잡저, 편서 등을 추가 발굴하여 자료의 輯逸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금번 자료조사 과정 중에 『연석산방미정고』가 현재 통용되는 권질(20책)보다 더 많은 분량(최소 30책 이상)이 있었음을 추정·확인하게 되었고, 그 중 새로 발굴한 고려대 육당문고본(新舊折衷內篇, 外篇)은 석정의 제자 송기면의 『裕齋集』에 잡저 「망언(妄言)」으로 잘못 편입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정직의 잡저 논설들은 송기면의 「망언」 1, 2에 거의 다 수록되었음을 확인하였다(다만 「망언」 1의 가장 마지막 글인 <금일동서> 한편만은 송기면의 글임). 요컨대 향후 석정 이정직의 자료 휘집의 필요성이 전면적으로 대두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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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석정 이정직의 『시경』론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 『시경일과(詩經日課)』 삼권(三卷)의 분석을 더하여

저자 : 金秀炅 ( Kim¸ Su-ky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1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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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詩經日課』 三卷의 분석을 더하여 석정의 『시경』 관련 저술 양상과 『시경』 인식의 특징을 개관하는 데 주요 목적을 두었다. 구체 분석에 있어서는 주석자의 해석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는 석정의 접근에 특히 주목하였다. 해석학적 각도에서 볼 때, 석정 『시경』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석정은 『시경』학의 맥락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시경』 해석의 계승과 변천 과정에서의 맥락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석정은 주자 『시경』 해석의 가치를 '獨創'에서보다는 '折衷'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주자 『시경』학을 漢代 『시경』학과 대립시키며 그 독창적인 면을 부각하고 다른 면을 배격하는 학문 태도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곧 진정한 獨創의 원동력이 전통과 기존설의 정밀한 비교, 분석을 통한 융합적 '折衷'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으로, 석정이 근대 전환기에도 왜 여전히 전통 학문과 시각을 중시하였는가를 이해하는 데 유효하게 참고될 수 있다. 둘째, 석정은 『시경』 해석의 타당성 여부와 내원을 세밀하게 추적하려는 면모를 보였는데, 이는 특정 주석가의 해석을 맹신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셋째, 석정은 해석자(주석자)의 인식 맥락에 초점을 두어 『시경』 해석의 同異를 변별하였다. 주석의 是非, 正誤에 대한 판단보다는, 주석자가 왜 이렇게 주석하였는지에 대한 의식의 흐름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시경』 해석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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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저술(著述) 『소시주선(蘇詩註選)』 연구(硏究)

저자 : 白丞鎬 ( Baek¸ Seung-h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3-13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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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石亭 李定稷의 저술 『蘇詩註選』에 대한 개괄적인 정리와 소개의 성격을 띤 글이다. 『蘇詩註選』의 구성과 체계를 정리하여, 이 책이 『增刊校正王狀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를 모본으로 하여 주석을 중점적으로 초록한 성격의 책임을 밝혔다. 다만 책의 편차와 내용 구성을 고려할 때, 李定稷이 모본에 해당하는 책을 부분부분 다른 시기에 입수하여 주석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초록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시 이해를 위한 類書로서 시가 아니라 주석을 중심으로 초록하였다. 李定稷은 시학 연구 과정에서 모본이 되는 원서를 자신의 관점에서 다시 이해하고 재편집하여 새로운 저술을 편찬하였다. 그는 『律髓刊誤精選』에서 方回의 『瀛奎律髓』, 紀昀의 『瀛奎律髓刊誤』의 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비평”을 초록하여 『律髓刊誤精選』을 편찬한 바 있다. 이와 유사한 저술 방법으로 『蘇詩註選』은 『分類東坡先生詩』 주석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분문 아래 초록하여, 시 이해를 위해 유용한 정보들을 모아 놓은 筆記 내지 類書의 성격을 지닌 저술이 되었다. 李定稷은 평소 시를 엄밀하게 분석적으로 이해하였는데, 詩法에 대한 관심, 두보시에 대한 치밀한 이해 추구 경향이 『蘇詩註選』에서 보인다. 그는 본인의 관점을 세우고 제가의 설을 두루 참조하는 과정에서 『蘇詩註選』을 편찬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학 연구 방법론은 「六絶義解」에서 언급한 “遞相祖述과 轉益多師”의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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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당(彛堂) 조병헌(趙秉憲)(1876~1938) 집안 전래 회화(繪畫) ―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과 전북 근대 화단의 일면

저자 : 閔吉泓 ( Min¸ Gil-ho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5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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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화 전통의 맥은 전라북도 근대 서화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전북 지역에 서화로 이름난 인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石亭 李定稷(1841~1910)은 마땅히 그림을 배울 스승을 찾지 못해 독학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藝鄕'으로 전라북도를 꼽게 된 것은, 이정직이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고자 이정직을 찾아왔고, 그렇게 점점 커진 물결은 근대 전북 화단을 만들었다.
彛堂 趙秉憲(1876-1938)은 김제 출신으로, 이정직의 제자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지만, 다른 제자들에 비해 생애에 대해 알려진 기록이 많지 않고 현전하는 작품도 거의 없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서화가다. 족보와 관련 기록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 서화가들과 官界 인물들과 교유를 했고 느즈막히 고향 김제로 내려와 聲慶廟 參奉에 제수되었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었다.
본고에서는 집안에 전래되어 온 유물들을 통해 전북을 넘어서 서울화단까지 이르는 조병헌 일가의 교유관계를 확인하고, 조병헌이 서예와 묵죽에 특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장내력이 확인되는 유물들이라는 점에서 유물 자체가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넘어서 시공간적으로 서로 관계맺음 속에서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컬렉션 전체를 통해 조병헌과 조송 부자의 서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전북 예술사의 큰 흐름에서 한 조각 비어있던 부분인 조병헌을 찾아내어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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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청록(靑綠), 도가의 선약, 선계의 표상 ― 청록과 청록산수화의 행위자성(Agency)

저자 : 劉美那 ( Yu¸ Mi-na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8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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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청록산수화의 녹·청색 안료를 이루는 남동광과 공작석이 예로부터 의료용 약재이기도 하고 도가의 단약에 쓰이는 仙藥이기도 했던 점을 문헌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청록의 색채와 안료, 그리고 청록산수화에 함축된 도가적 상징을 고찰하였다. 石靑·石綠으로 대별되는 청록의 안료는 주요 本草書에 空靑·曾靑·扁靑·白靑 등의 石類 약재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輕身, 延年, 不老 등의 효능과 심지어 神仙으로 화한다는 효능이 명시되어 있어 예로부터 仙藥으로 인식되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金丹을 연조해서 수명을 연장시키고자 한 금단도에서 주요 선약으로 일컫는 五金八石에 空靑이 포함되어 중시되었던 점이 주목된다. 또한 조선시대 문학에서 선경을 묘사한 修辭 중에 유독 '碧'·'翠'·'蒼'·'靑'·'綠'의 색채어가 적극 사용된 점이 주목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청록산수화에 표현된 청록의 산과 바위는 공청·증청 등의 선약과 불로장생과 우화승선의 약효를 연상시켰을 것이고, 선계의 시각적 재현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이 연구는 미술의 사회적 관계망(Art Nexus) 속에서 물질 지표(Index)인 청록 안료와 청록산수화가 능동적 주체로서 화가와 감상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성(agency)에 대한 고찰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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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와전(瓦塼)을 그리다 ― 한국 근현대 예술과 와전(瓦塼)의 에이전시(Agency)

저자 : 金素延 ( Kim¸ So-ye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1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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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古代의 건축부재였던 瓦當과 塼이 20세기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으로 우리 문화에 새롭게 등장하여 행위력, 즉 에이전시(agency)를 발휘했음을 고찰하는 시도이며, 분석을 위해 알프레드 겔(Alfred Gell, 1945~1997)의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근현대 미술에서 瓦塼은 특히 文字瓦와 文字塼을 중심으로 재해석 되었다. 문자, 고동기의 金文을 임모·임서한 와전임모도는 그 대표적인 例이며, 본고는 와전임모도의 유형 및 제작배경을 거론하고 임모도의 직접적 원형(prototype)으로 淸代 『金石索』(1821)과 같은 금석관련 圖解書를 제시해 보았다. 와전 수집과 감상의 결과물인 와전탁본도를 논의하고, 吳世昌(1864~1953)의 경우에서 秦漢 와전의 모사형식을 우리 와전으로 확대하여 적용한 의의를 찾아보기도 했다. 덧붙여 해방 이후에는 와전이 자수병풍의 대표 도안으로 채택되어, 산업발전기 수출전선의 선두에서 한국 전통을 상징하는 기표로써 기능했음을 살펴보았다. 와전자수병풍은 와전임모도의 양식적 특징과 길상성을 계승하여 대중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것인데, 역설적이게도 일부 작품들은 문자와를 묘사했음에도 서양인 구매자라는 수령자(recipient)를 고려해 더 이상 한문 표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즉, 구매자가 지표(작품, index)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본래 와전임모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와전문의 가치가 변형되고 문화적 맥락이 흐릿해지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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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녹동 최연택의 언론출판활동과 딱지본 대중소설 연구 ― '사회소설' 『단소』와 『죄악의 씨』를 중심으로

저자 : 裵定祥 ( Bae¸ Jeong-s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4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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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동 최연택은 1920년대 식민지 서적출판문화의 장 안에서 나름의 개성 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신문 매체에 수많은 글을 기고한 언론인이자, 출판사를 직접 설립하여 경영한 출판인이었으며, 몇 편의 특색 있는 소설 작품을 남긴 문학인이기도 했다. 예컨대, 그는 신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은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시도했으며, 문창사라는 출판사를 설립·운영하며 출판활동을 통한 사회적 소명을 다하고자 했다. 또한 『단소』, 『죄악의 씨』 등 '사회소설' 연작을 통해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딱지본 대중소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 및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처럼 경계인 녹동 최연택의 언론·출판 및 소설 창작 활동은 식민지 시기 서적출판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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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식민 권력의 통제, 우회 전략으로서의 개작 ― 『아동가요곡선 삼백곡』을 중심으로

저자 : 康泳美 ( Kang¸ Young-mi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1-28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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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小竹 姜信明(1909~1985)이 편찬한 『兒童歌謠曲選 三百曲』의 세 종의 판본을 비교하여 일제의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일부 노래를 삭제하고 다시 수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폈다. 『아동가요곡집 삼백곡』은 일제의 검열 지침에 의해 일부 노래가 삭제된 것이 아니다. 불온 창가라는 일제의 외적 규정 속에서 기독교계 관련자들이 자체 검열을 통해 일부 노래를 삭제한 것이다. 삭제곡은 대부분 조선을 환기하는 단어가 있는 노래였다. 식민지인에게 조국을 환기하는 단어가 일제의 검열 당국에게는 불온한 것으로, 반일의 상징으로 읽히리라 판단한 것이다.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부르는 금주 금연 등의 절제가 류의 노래도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의미에 주목하여 삭제했다. 이처럼 일제가 규정한 '불온 창가'의 내포를 상상하며 미국인 선교사와 교회 관련자가 일부 노래를 삭제하는 과정, 식민지 평양에서 제국의 동경으로 지역을 옮겨 삭제곡의 일부를 편찬자 강신명이 직접 복구하는 과정은 1936~1940년까지의 시차, 미국인과 조선인이라는 국적의 차이, 식민과 제국이라는 공간의 차이, 아동가요 운동을 전개하는 지향의 차이가 '불온'의 해석에 영향을 끼쳤음을 드러낸다. 그 결과 일제가 규정하고 조선인이 구성한 아동가요의 불온성은 일시적이고 자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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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혼혈아 외부화 프로세스와 대중문화 ― 경제성장기 일본사회의 혼혈아 표상

저자 : 朴利鎭 ( Park¸ Yi-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3-31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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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1952년 '혼혈아논쟁' 이후부터 1960년대 일명 '혼혈 붐'의 시대를 거쳐 '하프 담론'이 등장하는 1970년대까지 20년간 일본사회에 유포된 혼혈아 표상은 그들에 대한 고착된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다. 특히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인론이 크게 유행하면서 일본인에 대한 새로운 의미화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단일민족으로서의 인종화가 강화되며 혼혈아들은 외부화되어 간다. 이러한 흐름을 본고에서는 현대 일본의 인종주의가 갖는 '전후적 기원'으로 파악하여 그 구체적인 특징을 다양한 대중문화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1970년대 혼혈아들이 하프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재탄생되는 구조에 작용하고 있는 대중들의 심급에 주목할 수 있었다. 점령의 기억이라는 과거의 상흔이 혼혈아의 상징체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고, 일본사회의 재건과 경제성장, 그리고 일본인론의 유행처럼 사회문화적 자신감의 회복이 혼혈아 표상의 변주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식 인종주의를 이루고 있는 기원적 문제를 통해 현대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종주의적 차별과 편견이 단순히 서양식 인종주의를 답습한 형태라고 설명하는 시각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안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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