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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선도문화> 삼한시기 방제경(倣製鏡)의 형식과 변천과정 - 연구사 검토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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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기 방제경(倣製鏡)의 형식과 변천과정 - 연구사 검토를 중심으로

The Types and Changing process of Imitated Bronze Mirror in the Period of the Three Hans - Focusing on the research reviews

홍인국 ( Hong¸ In Gook )
  •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 : 선도문화 31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8월
  • : 379-410(32pages)
선도문화

DOI

10.35573/JKSC.31.8


목차

Ⅰ. 머리말
Ⅱ. 한반도 방제경에 대한 선행연구
Ⅲ. 방제경 형식의 재검토
Ⅳ. 삼한-중국의 교역과 방제경의 변화양상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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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반도에서 출토된 동경과 관련하여 일정 수준의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방제경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개념과 계보 및 형식분류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삼한시기에 한정하여 지금까지 확인된 방제경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한반도 방제경의 출현과 변천과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방제경(倣製鏡)이란 용어는 대체로 기원전후한 시기에 중국의 한경(漢鏡)을 모본(模本)으로 이를 모방하여 만들어 일명 ‘본뜬 거울’이라고 설명된다. 특히 기원 전후에서 3세기 이전의 삼한시기에 걸쳐 한반도 영남지역에서 주로 제작되었는데 낙동강 유역인 대구, 영천, 경주, 김해지역으로 변ㆍ진한의 유력한 소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삼한의 발전과정에서 대외교류는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기원 전후에서 3세기 이전까지 변ㆍ진한에서 제작된 방제경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시기별로 제작양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Ⅰ기는 1세기 전후 사로국이 초기국가로성장하던 시기로, 낙랑군으로부터 유입된 한경을 모방하여 대구, 영천지역에서 재지화한 초기 중권문계와 연호문계인 ⅠA1∼ⅠA4, ⅡA식이 처음 출현하게 되었다. Ⅱ기는 1세기 후엽에서 2세기 전엽으로 사로국을 대신하여 경남 남해안 일대에 걸쳐 성장한 변한에서 등장하게 된다. 후한경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변화를 준 연호문계의 ⅡB, ⅡC식이 유행하는데 김해지역 구야국의 독창적인 요소가 합쳐진 창작품이라 할 수 있다. Ⅲ기는 2세기 중엽에서 후엽까지로, 동북아지역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방제경은 나름대로 문양과 제작기법 등에 변화를 보여준다. 이전의 ⅡB와 ⅡC식이 존속하지만 새롭게 창조된 삼한식 방제경의 진일보한 특징을 보인다. 이후 국제교역을 통해 구야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자 신분과 경제적 부를 표시하는 후한경이 새로운 상징으로 대체되며 방제경은 사라지게 되었다.
Although there is a certain level of research about bronze mirrors excavated from the Korean Peninsula, this article is based on the recognition that the concept, genealogy, and type classification of imitated bronze mirror have not yet been comprehensively reviewed. Therefore, I want to analyze the control landscape identified only in the period of the Three Han Dynasty to reveal the emergence and transformation of the control landscape of the Korean Peninsula.
The term ‘Imitated Bronze Mirror(倣製鏡)’ is generally described as ‘a model mirror’ by imitating the Han Dynasty’s mirror(漢鏡) during the period BC. In particular, it was mainly produced in the Yeongnam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from around A.D. to before the third century A.D., which is considered to be Daegu, Yeongcheon, Gyeongju, and Gimhae, which are the Nakdonggang River basin. It is believed that mirrors were produced in the leading small countries of Byeonhan and Jinhan in this area.
Foreign exchanges were an important axis of the development of Samhan, and the Imitated Bronze Mirror, produced in Byeonjin and Jinhan from before the 3rd century AD, influenced the production patterns of each period in relation to China. The I period was the period when Saro-guk(斯盧國) grew into an early state in the 1st century, and the early Consecutive arcs design series and Concentric rings design series IA1∼IA4 and IIA type, which were re-established in Daegu and Yeongcheon areas, were first introduced. The II period is from the late 1st century to the early 2nd century, and appears in Byeonhan, which grew on the southern coast of Gyeongsangnam-do, replacing Saro-guk. The type of IIB and IIC in the Consecutive arcs design series, which made a new change under the influence of the Later Han-Mirror, is popular, and it is a creative work that combines the original elements of the old and old country in Gimhae. The III period is from the mid to late 2nd century, and amid the political turmoil in Northeast Asia, Imitated Bronze Mirror shows changes in patterns and production techniques. Although the IIB and IIC types still exist, they show the advanced characteristics of the newly created Samhan-style fire protection mirror. Later, as the Guya-guk(狗邪國) grew economically through international trade, the Later Han-Mirror, which marked status and economic wealth, was replaced by a new symbol, and the Imitated Bronze Mirror disappe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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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975-5813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06-2022
  • :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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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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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구화, 지구시민, 그리고 홍익인간사상: 상생과 조화의 지구촌을 향하여

저자 : 김광린 ( Kim Kwang Ri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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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문제 혹은 코로나-19사태가 잘 보여주듯이,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범지구적 이슈들은 개별국가의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인류가 당면한 엄중한 현실을 타개하고 지구촌을 상생과 조화의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려면, 개별국가의 국민이라는 의식을 넘어 지구를 시야에 넣는 지구시민의식이 형성 및 확산해야 한다. 즉 자기자신 및 자국만 생각하는 분리의식에서 벗어나 지구촌 시민으로서의 주권자의식, 곧 인류의식으로서의 지구시민의식 형성과 확산이 현재 인류가 당면한 최우선의 과제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지구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범세계적 협력이 긴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자기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분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사태 하에서도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미중간 갈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고 하는 지구촌 전체의 위기 상황 하에서도 자국 이기주의에 입각하여 전개되고 있는 현재 국제사회의 갈등은 마치 지구촌을 공존공영해야 할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지구화의 흐름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려는 듯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지구화의 흐름과 과정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며, 지구촌 공동의 번영을 시야에 넣는 지구화의 패러다임은 바람직하며, 따라서 인류문명은 궁극적으로 지구화의 과정을 거쳐 공존공영의 새로운 문명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세계시민 교육이 중시하는 교양교육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근본적 변화의 추구, 그리고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공동의 이슈들에 대한 통섭적이고 포괄적인 해결 노력 등이 가미된 교육을 지구시민교육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지구시민교육 차원의 접근법에 바탕하여 모든 생명의 삶의 터전으로서 지구가 갖고 있는 건강한 자연질서를 회복, 사람과 자연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장하려는 노력, 이것이 지구화 시대의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구시민교육의 토대사상으로 한민족 고유의 홍익인간사상을 들 수 있다. 조화와 상생을 중시하는 홍익인간사상의 본질적 특성은 자연과 사람이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로서 공히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로 보는 데에 기인한다.
'홍익'의 대상과 범위는 사람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등 우주 내 모든 존재를 포괄한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단어 본래의 어의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 이외의 자연이 함께 얽혀 형성되는 세상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즉 홍익인간사상은 본시 지구를 넘어 우주적 범위의 조화를 시야에 넣고 있는 사상이다.
그리고 홍익을 펼치는 주체로서의 사람을 홍익인간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이 때의 홍익인간은 자신 속에 본원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상생과 조화의 가치를 발현하고 삶 속에서 편견없이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홍익인간은 현대판 지구시민과 동일어라 할 수 있다.


Urgent global issues such as global warming, environmental pollution, and Corona-19 pandemic, which we are presently faced with, cannot be solved by capability and effort of any one country.
To break through the rigorous situation that is confronting to humankind and construct mutual-properity and harmonious global community, it is essntial to cultivate, above all, global citizenship beyond national citizenship.
Nevertheless most states still give priority to state egoism. Though, the globalization process cannot be irreversable. We continue to pursuit globalization process firmly for co-properous global village.
Meanwhile the conventional world citizenship education which is centered on liberal arts education,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additionally emphasize the enlightment which leads to fundamental change of man and the consilience approach towards global issues. By means of the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we should make our best endeavors to recover healthy natural order of earth.
Finally, as ideological base for the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you can recommend the Hong-ik-in-gan thought, which is the founding ideology of Bae-dal, the first country that was established about 6 thousands years ago by Korea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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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뫼 안호상의 회고록을 통해서 본 민족주의와 파시즘론 재고(再考)

저자 : 조덕제 ( Cho Deok Je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5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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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안호상의 민족주의 사상의 본질에 대한 평가를 다루었다. 안호상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하나는 민족주의자로 평가되며, 다른 하나는 파시스트로 평가된다. 대한민국의 건국기에 수행된 안호상의 행적은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라는 지점에서 전개된 안호상의 행적은 민족주의 또는 파시즘의 형태로 이해되었다. 본 논문은 안호상에 대한 파시즘 평가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며,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해명을 위해서는 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회고록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한 세대를 살아간 인물로서 회한이 담겨 있는 저술이다. 그가 보여준 사상적 행보는 대종교가 추구한 세계를 완성하는 것으로 집중되고 있다. 대종교의 이념은 단군사상으로 귀결되며, 이는 조화에 근거한 민족주의이며 세계주의이다. 안호상은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 이를 접목했던 것이며 이를 위해 정치적 실천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사상적 이해를 달리하는 이승만 세력과 투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승만의 역사적 평가가 정권의 부침에 따라 달라짐으로써 안호상의 평가도 부침하게 되었다. 안호상의 파시즘 평가는 기본적으로 이승만 정권의 패착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호상 사상의 본질을 재조명하는 것이 안호상 사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대한민국이 안호상과 같은 민족의 독립과 백성의 주체를 주장한 대종교인들의 희생과 그 이념에 발 딛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The evaluation of Ahn Ho-sang's idea is clearly divided. One is evaluated as a nationalist, and the other is evaluated as a fascist. The activities of Ahn Ho-sang during the founding of the Republic of Korea are clues to the current Republic of Korea. Ahn Ho-sang's activities in the period of new national construction were understood as nationalism or fascism. This paper is a counterargument to evaluate the idea of Ahn Ho-sang as fascism. And I would like to explain it. For this explanation, we have to listen to his inner story. His memoir contains the memories of a person who lived in a generation of Korea. His ideological practice is focused on the world pursued by “Dae jong gyo(大倧敎)”. “Dae jong gyo”'s ideology results in “Dangun(檀君)” ideology, which is nationalism and globalism based on harmony. Ahn Ho-sang carried out political practice for the construction of a new state. In this process, he fought against Syngman Rhee, who had different political and ideological interests. In addition, as Rhee Syng-man's historical evaluation changed according to the ups and downs of the regime, the evaluation of Ahn Ho-sang also became ups and downs. Ahn Ho-sang's evaluation of fascism is basically based on the defeat of the Syngman Rhee regime. Therefore, it would be said that re-examining the nature of Ahn Ho-sang's idea objectively evaluates the idea of safety. Furthermore, it should not be forgotten that the current Republic of Korea is stepping on the sacrifices and ideologies of the “Dae jong gyo”'s people who insisted on the independence of the people such as Ahn Ho-sang and the subject of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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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흑수백산지구 소남산문화의 옥·석기 조합 연구

저자 : 정경희 ( Jung Kyung Hee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131 (7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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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산문화 2기(B.C.7200년∼B.C.6600년경)의 적석단총인 옥기묘·제1묘지·제2묘지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단총은 제1묘지 Ⅲ구역의 적석묘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옥·석기의 주요 기종은 '벽·부·관류(관·석무저통형기)'였다. 특히 관류중 석무저통형기는 훗날 요서지구 홍산문화의 도무저통형기로 이어졌다. 일반 기종은 도구류 '부·촉', 기본 기종은 '부'였다. 또한 구석기 후기 말타문화의 '벽+도구류 권장(골모)'이 '벽+도구류 권장(부)'으로 이어졌다.
제1묘지 Ⅲ구역의 적석묘보다 늦은 시기의 단총이자 소남산유적의 최상급 단총인 옥기묘의 4대 옥·석기 기종은 '[벽류(벽·환·결)+도구류(부·비·촉 위주)]+관류+태아형기'였다. 제1묘지 Ⅲ구역의 주요 기종인 '벽·부·관류'가 옥기묘에서도 '벽류(벽·환·결)·도구류(부·비·촉 위주)·관류'로 이어졌다. 더하여 벽과 함께 구석기 시대 이래의 대표적인 생명표상물이었던 태아형기도 나타났다. 또한 말타문화의 '벽+도구류 권장(골모)'이 제1묘지 Ⅲ구역의 '벽+도구류 권장(부)'으로 이어졌다가, 옥기묘의 '벽류(벽·환·결)+도구류 권장(부·비)'으로 이어졌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소재나 형태는 달라져갔지만 '벽류+도구류 권장'의 기본 구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소남산문화의 4대 옥·석기 기종에는 '천·지·인 삼원조화론'이라는 선도의 세계관, '성통→공완→조천론'이라는 선도의 생사관, '지감·조식·금촉론'이라는 선도의 수행관이 반영되어 있었다. 특히 '벽류·도구류·태아형기' 3종은 단군조선에 이르러 '청동거울·청동검·태아형기(또는 청동방울)'의 청동제 제천의기 3종, 곧 '천부삼인'으로 전승되었다. 이렇듯 소남산 옥·석기문화는 동북아 신석기∼청동기 옥·석기문화로 면면히 계승, 동북아 신석기∼청동기 옥·석기문화의 원형을 소남산문화로 바라보게 된다.


Among the Jade tomb, the first cemetery, and the second cemetery, which were the stone mound altar·tomb of the second period of Xiaonanshan Culture(from B.C.7200 to around B.C.6600) belonging to Whanguk(桓國) period, the earliest altar·tombs were the stone mound altar·tombs in the first cemetery-district III. The main types of the jade·stoneware excavated here were 'Byeog(璧)·Bu(斧)·Guans(管類)(Guan·the bottomless tubeshaped stoneware石無底筒形器)'. In particular, the bottomless tube-shaped stoneware of Guans later led to the bottomless tube-shaped pottery(陶無底筒 形器) of Hungsan culture in Liaoxi(遼西) areas. And the general types were 'Bu·Chok(鏃)' and among them, the status of 'Bu' was high. Also 'Byeog+Power cane among Tools(Bone pointer)' tradition of Malta culture in the late Paleolithic period led to 'Byeog+Power cane among Tools(Bu)' tradition in the first cemetery-III district.
The four major types of the jadeㆍstonewares of the Jade tomb, which was later than the first cemetery-district III and was the highest-class tomb, were '[Byeogs(ByeogㆍHwan環ㆍGyeol玦) + Tools(BuㆍBi匕ㆍChok)] + Guans + Taeahyeong-gi(胎芽形器, 曲玉). As the main types of the first cemeterydistrict III were 'ByeogㆍBuㆍGuans' and the main types of the Jade tomb were 'Byeogs(ByeogㆍHwanㆍGyeol), Tools(BuㆍBiㆍChok), Guans', we can understand that the main types had continued unchanged. In addition, Taeahyeong-gi, which had been a representative energy symbols since the Paleolithic period along with Byeog, also appeared. In addition, 'Byeog+Power cane among Tools(Bone pointer)' tradition of Malta culture and 'Byeog+Power cane among Tools(Bu)' tradition of the first cemetery-district III led to 'Byeogs(ByeogㆍHwanㆍGyeol)+Tools(BuㆍBi)' of the Jade tomb. Over time, the material and form had changed, but the basic composition of 'Byeogs+Power cane among Tools' had not changed.
The four major types of the jadeㆍstonewares of the Jade tomb had been passed down to the jadeㆍstoneware culture of Neolithic era to Bronze Age in Northeast Asia, so we can see the prototype of the jadeㆍstoneware culture of Northeast Asia as Xiaonanshan culture.
In the four major types of the jadeㆍstonewares of Xiaonanshan culture, the worldview of Sundo(仙道) called 'the harmony idea of Cheon(天)ㆍJi(地)ㆍ In(人)' and the birth and death view of Sundo called 'Seongtong(性通) → Gongwan(功完) → Jocheon(朝天)', and the practice view of Sundo called 'Jigam(止感)ㆍJosik(調息)ㆍGeumchok(禁觸)' were reflected. Among the jadeㆍ stonewares of Xiaonanshan culture, the three types of 'ByeogsㆍPower cane among ToolsㆍTaeahyeong-gi' were handed down to Dangun Joseon(檀君朝 鮮) as three bronze vessels for Sundo heaven ritual(仙道祭天), namely 'Cheonbu Samin(天符三印: tree symbols of Sundo, Bronze mirrorㆍBronze swordㆍTaeahyeong-gi(or Bronze 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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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고조선의 패수와 왕검성

저자 : 윤병모 ( Yoon Byoung Mo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3-16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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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조선열전에 의하면 위만의 이동방향은 요동고새→패수→진고공지 상하장→왕검성의 순서로 되어 있다. 패수가 어떤 강인지를 알기 위해『사기』조선열전에 등장하는 요동고새와 진고공지 상하장의 의미를 알아보았다. 『사기』조선열전에 나오는 요동은 오늘날 요하 이동이라기보다는 요서 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진고공지는 오늘날 대릉하 하구와 요하 하구 일대로 해석하였다. 만번한은 패수라고 인정된다. 여기서 패는 늪지 또는 습지의 의미로 대릉하 하구부터 요하 하구에 걸쳐 있는 요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요하 서쪽에 있는 요양하가 한대의 패수라고 인정되며 패수가 요양하라면 왕검성은 요양하 동쪽과 요하의 서쪽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험독은 요하를 끼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오늘날 험독의 위치는 요하 서쪽에 있는 대안현의 손성자고성으로 비정된다. 또한 왕검성은 바다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고 보여 진다.


In order to find out what kind of river Paesu is, I looked up the old Castle of Liaodong that is appeared to 『Shiji』. I also checked Qingukongdishangxiazhang.
Liaodong in 『Shiji』 is Liaoxi area. Qingukongdishangxiazhang is today the Dalinghe mouth of the river and the Liaohe mouth of the river.
In 『Shiji』, it is indicated as 'dongzou'. Weiman's direction of travel is west to east. That river is Paesu. Therefore, Paesu is a river in the north-south direction. Manfanhan stands for bog or wetland. After all, Manfanhan is Paesu. The Raoyanghe in the west of Liaohe is Paesu.
Wanggeomsung was to the east of Raoyanghe and west of Liaohe. Xiandu was wearing Liaohe. The location of Xiandu is Sunchengzi old castle west of Liaohe. This corresponds to the Liaohe downstream delta.
Liaohe downstream is an earth and sand spill formed by a sedimentary layer. So the land continues to increase. This is connected with Zengdi and Zengtu of 『Hanshu』. A Han soldier advances without any hurdle up to Xiandu. So reach the south of Wanggeomsung. Therefore, Wanggeomsung was located in an area close to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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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임나 7국의 위치에 대한 재론

저자 : 박덕규 ( Park Duck Gyu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1-210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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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시대에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는 『신찬성씨록』길전련(吉田連) 가전(家傳)으로 전하는 '임나 기문'을 '가야 기문'으로 개변하여 임나부(任那府)의 기원으로 설명했고,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는 염승진(塩乘津) 설화와 숭신기를 연결하여 임나 일본부는 '대가야에 설치된 야마토의 일본부'라고 주장했다. 대일항쟁기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를 가야와 동일시하여 『일본서기』의 임나 국명을 한국의 지명에 비정하였는데 이들의 임나=가야설은 지금까지 일반설이 되어있다. 스에마츠 야스카즈(末松保和)는 『임나흥망사』에서 음상사(音相似)에 기반하여 『일본서기』 신공기에 나오는 '임나 7국'을 한반도 남부와 가야 지역에 비정하였다. 그의 지명 비정을 재검토하면 『일본서기』와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삼서'에 보이는 임나의 역사지 리적 특징과 한국 문헌의 '가야'와는 정합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광개토대왕릉비와 강수열전, 진경대사탑비 등 한국 자료에 등장하는 '임나' 관련 기록들도 기존의 연구에서처럼 임나가 가야를 뜻한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는 없다. 「양직공도」 등 중국 자료에 보이는 임나도 마찬가지여서 이때의 임나는 대마도나 북규슈 등 백제의 해양진출과 일본 열도 진출을 보여주는 흔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임나=가야설은 재검토가 필요하며 더욱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In the Edo period of Japan, Arai Hakuseki(新井白石) described Imna Gi-mun, which was passed down from the family of Gil-jeon(吉田連), as the origin of Imna-bu(任那府), and Daisuke Hayashi(林泰輔) connected the story of Yeom Seung-jin(塩乘津) and『Nihon Shoki(日本書紀)』 Sungshin-gi, claiming that Mimana Nihon-fu(任那日本府) is the Japanese part of Yamato installed in Dae-gaya.
In Japanese colonial era, Japanese colonial historians equated Imna described in『Nihon Shoki』 with Gaya and designated the country names of『Nihon Shoki』 in the Gaya area of Korean land, and their theory of Imna=Gaya has been a general theory so far.
Yasukazu Suematsu(末松保和) designated 'Imna Seven Kingdoms' in the『Nihon Shoki』 Sungshin-gi in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Gaya area based on Eumsangsa(音相似: a method of matching similar notes with each other). Reviewing his nomination, it can be seen that Imna's historical and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shown in Baekje Samseo(百濟三書) cited in『Nihon Shoki』 or『Nihon Shoki』 do not match the historical and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Gaya in Korean literature data. After all, his appointment of Imna was not reasonable. In addition, records related to Imna appearing in Korean historical records such as the Stele of King Gwanggaeto, the Gangsu-yeoljeon, and the Jinkyeong Daesa Pagoda cannot be found as solid evidence that Imna means Gaya as in previous studies.
The same goes for Imna, which is seen in Chinese historical records such as 「Yangjikgongdo(梁職貢圖)」, so it can be seen that Imna at that time shows the advancement of Baekje into the sea such as Tsushima and Northern kyushu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Therefore, the Imna=Gaya theory needs to be reviewed and more in-depth research i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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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훈민정음 해례(解例)와 천부경(天符經)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저자 : 송옥진 ( Song Ok Ji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1-23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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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있어 사상과 철학, 문학을 아우르는 최고의 산물은 단연코 훈민정음이라 할 수 있다. 창제자와 창제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데다가 당시 최고의 지성인을 뛰어넘는 세종이 창제하여 창제자와 창제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데다가, 제자원리에 언어학적 완벽함은 물론 철학적 사유체계까지 담은 범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훈민정음의 가치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온 이후 더욱 견고하게 연구되어 왔다. 단순히 옛 글자를 모방하고 음양오행으로 대표되는 중국 전통사상을 성리학적 서술체계를 따라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놓아야만 했던 세종의 본의가 해례본에는 담겨 있다. 그 핵심을 본고에서는 천부경의 사상에 기반한 것으로 본다. 이에 해례본과 천부경사이에 어떠한 유사점이 있는지를 해례본 제자원리에 나온 키워드를 바탕으로 다음의 부분에서 설명한다. 하나는 중성 11자의 제자원리에서 '·, ㅡ, ㅣ' 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각각 '천(天)·지(地)·인(人)'을 본뜬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성자를 음양오행으로 풀어 설명한 것에서 'ㅣ'는 정해진 자리와 수로 논할 수 없는데 이는 천부경에서 인(人)의 역할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초성, 중성, 종성을 결합함에 있어 초성이 중성을 중심으로 종성으로 다시 사용되는 것은 순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천부경(天符經)이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에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마치는 것과 결을 함께 한다.


Hunminjeongeum Haerye is written by King Sejong and his companion Jeong Inji. In the Haeryebon, Hunminjeongeum was created based on the Yin-Yang and Five-Elements and the Three-Elements Theory. However, Haerye is thought to have originated from the thought of Cheonbugyeong. So, I will try to find any similarities between Haeryebon and Cheonbugyeong based on the keywords found in the original Haeryebon. The medial(of a Korean orthographic syllable) 11 neutrals are based on '·, ㅡ, ㅣ' and modeled after the shape of 'haeven, earth, and human'. It was said that vowels do not have a fixed place and number. It can be explained by the role of a person in the Cheonbugyeong. The use of the initial consonant again when combining the initial, neutral and final consonants signifies a cycle. It is the same as Cheonbu-gyeong, which starts with a one and ends with th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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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은평구 '천부지모비'의 성격과 변천 과정 연구

저자 : 박지영 ( Park Ji Young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1-26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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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불광중학교 운동장에 있다가 1975년에 불광중학교가 운동장을 넓히면서 지금 있는 불광중학교 뒷산으로 옮긴 은평구 천부지모비(天父地母碑)의 성격과 변천과정을 살펴본 연구이다.
우리나라 도처에는 수많은 서낭당이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시골 마을 입구나 마을 중심에 서낭당 혹은 신목이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의 밝음과 자신 안의 밝음이 하나 되어 그 밝음을 세상에 펼치고자 하였고 그것이 제천수행, 제천의례라는 형식을 통하여 이어져 내려왔다. 처음엔 산 정상에서 행해지던 제천의례가 점점 마을로 내려오면서 제천을 행하는 장소가 서낭당이 되었고 서낭당 이외에도 신목, 장승, 솟대, 선돌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었다.
은평구 천부지모비는 마을제당이 서낭당 같은 제천사의 모습이 아닌 비석의 형태로 전해지는 사례이다. 당초 불광중학교 운동장 자리에 있을 때에는 제당 안에 비석을 모신 상태였다가 1975년에 불광중학교가 운동장을 넓히면서 지금 있는 불광중학교 뒷산으로 제당은 없애고 비석만 옮겼다고 한다.
천부지모비를 연구해 본 결과 천부지모비는 지리적으로 북한산 올라가는 산중턱에 위치하고 불광천이라는 하천이 자연환호 역할을 하는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 중 제천사 유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천단의 원형인 백두산 서편 고제단군과 우하량 제단군의 위치 또한 높지 않은 산구릉에 위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천부지모비는 그 일대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제천하기 좋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적으로도 천부지모비는 한민족의 삼원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천(天)과 지(地) 그리고 김매월로 대표되는 인(人)을 비석에 새겨 우리 민족 전통의 천ㆍ지ㆍ인 삼원사상을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한 밥할머니 전승과의 연계성으로 천부지모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천부지모비는 밥할머니를 신격으로 하는 한민족의 제천의례와 관련 있는 제천단이었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서기전 4000년 전부터 면면히 이어온 한민족 제천단의 최적의 입지인 '환호를 두른 구릉성' 입지에 '천ㆍ지ㆍ인' 삼원사상을 내포하고 비석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 천부지모비의 제천단으로서의 문화재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천단의 모습이 아닌 천부지모비와 같은 비석 혹은 신목, 장승, 솟대, 선돌 등 여러 형태로라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적은 전국 도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많은 제천단의 변형적인 형태가 민속이나 무속적인 시각을 넘어 선도적인 해석으로 그 문화재적인 가치가 재인식되고 복원하는 사례가 많아지길 희망한다.


This thesis is a study examining the nature and transition process of Cheonbujimobi(天父地母碑) in Eunpyeong-gu(恩平區), which was located in the playground of Bulgwang Middle School and was moved to the mountain behind Bulgwang Middle School in 1975.
There are numerous village guardian deity shrines everywhere in Korea. Although it has disappeared a lot now, Seonangdang(shrine to the village deity) or Sinmok(a tree sacred to the gods) is still often built at the entrance to rural villages or in the center of the village. Since ancient times, the Korean people have tried to spread the brightness of the sky and the brightness within themselves to the world, and it has been passed down through the form of Heavenly ritual practice and Heavenly rituals. As Heavenly Ritual, which was initially practiced at the top of the mountain, gradually came down to the village, the place where Heavenly Ritual was practiced became Seonangdang, and in addition to Seonangdang, various behaviors such as Sinmok, Jangseung(Korean traditional totem pole), Sotdae(a pole signifying prayer for a good harvest), and Seondol(Menhir) were changed.
The Cheonbujimobi Monument in Eunpyeong-gu is an example in which a village shrine is transmitted in the form of a monument, not in the form of Heavenly ritual shrine like Seonangdang. Initially, when it was located in the playground of Bulgwang Middle School, a monument was enshrined in the shrine, but in 1975, when Bulgwang Middle School expanded the playground, the shrine was removed and only the monument was moved to the mountain behind Bulgwang Middle School.
As a result of studying Cheonbujimobi, it was confirmed that Cheonbujimobi is a type of Heavenly ritual shrine among the "hilly Heavenly ritual facilities with surround lake" located in the middle of the mountain that goes up Bukhansan Mountain geographically and acts as a natural surround lake. Considering that the locations of old Altars on the west side of Baekdusan Mountain, which are the prototype of Heavenly ritual Altar, and Niuheliang (牛河梁) Altars, are also located in a good place for many people to gather and perform in Heavenly ritual.
In terms of content, Cheonbujimobi contains the idea of the Korean people's Samwon(三元). The monument is carved with people represented by heaven and earth and Kim Mae-wol so that they do not forget the idea of Samwon, the heaven and earth of our nation. In addition, the value of Cheonbujimobi was confirmed by the connection with the transmission of Bob-Halmoni(Cooked-rice Grandmother).
In other words, it was confirmed that Cheonbujimobi was the Heavenly ritual Altar, which was related to the Heavenly ritual of the Korean people, which was dedicated to Bob-Halmoni. It can be said that the cultural value as a Heavenly ritual Altar of Cheonbujimobi, which is handed down in the form of a monument, is sufficient for the "hilly Heavenly ritual facilities with surround lake" the best location of the Korean Heavenly ritual Altar since 4,000 years before AD. In the meantime, relics such as Cheonbujimobi, which have remained so far, can be easily found throughout the country, even in the form of a monument, not in the form of Heavenly ritual Altar. It is hoped that there will be more cases in which the value of the cultural heritage is re-recognized and restored as a Korean SunDo's interpre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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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북아 고고학에 나타난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와 민족종교의 원형 회복

저자 : 정경희 ( Jung , Kyung Hee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71 (6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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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등장한 동북아 상고문화의 표지인 '단(제천단)·묘(모신사당)·총(무덤)' 유적 및 '옥기' 유물은 B.C.4000년∼B.C.2400년경 요동∼요서지역 신석기 후기∼동석병용기 문화가 맥족(예맥족, 한민족)에 의한 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였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재의 한국학계에서는 배달국시기나 배달국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한국사의 출발점을 단군조선, 또 한국문화의 요체를 샤머니즘으로 바라보는 경향이다. 샤머니즘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후대 한국사회의 민속 · 무속, 또 민족종교에 준하고 있다. 그러나 민속ㆍ무속, 또 민족종교는 선도제천문화의 후대적 변형태일 뿐, 선도문화의 원형은 아니다. 배달국시기 선도제천문화의 전형이 등장하였다면 이것이 후대에 이르러 민속ㆍ무속화하였고, 또 이렇게 변질된 민속ㆍ무속문화를 계승한 것이 근대 이후의 민족종교이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동북아 고고학 성과에 의거하여 배달국 선도제천문화의 원형을 제시한 후 이것이 후대에 이르러 민속ㆍ무속화하고 근대 이후 다시 민족종교화하는 대체적 흐름을 살펴보았다. 특히 배달국 선도제천문화를 ① 선도제천을 통한 천인합일 수행[성통], ② 선도정치(선도 천자제후제)를 통한 홍익인간ㆍ재세이화적 사회실천[공완] 두 방면으로 나누어 보았고 그 계승형태로서의 민속ㆍ무속문화도 이러한 양대 기준을 적용하여 고찰하였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한국의 민족종교나 민속ㆍ무속문화가 그 첫출발점으로서의 배달국시기 선도문화의 원형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더 나아가 그 원형성을 회복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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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근대 이후 한국선도 전통의 회복 과정과 '선교' 등장

저자 : 석상순 ( Seok , Sang Soon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122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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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 이후 한국선도 전통의 회복 과정과 '선교' 등장의 의미에 관해 살펴본 글이다. 배달국·단군조선 시대의 선도제천문화(선도수행문화)가 단군조선 폐관 이후 유·불·도 삼교의 유입으로 인해 점차 중심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약 2천여 년 간에 걸쳐 저락되어 민속·무속 신앙으로 변질되어 왔다. 민속·무속 형태로 변질된 선도는 19세기말·20세기초에 민족종교의 방식으로 재등장하였는데, 그 중 대종교가 선도의 원형성에 가장 접근하였다. 그러나 곧이은 경술국치로 인한 국망의 시기, 광복 후의 혼란과 남북 전쟁, 이후 지나친 서구화 및 자문화에 대한 폄하적 인식 등으로 인해 상고시대의 선도제천문화의 원형성을 온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측면을 보였다.
1980년대에 이르자 지나친 서구화에 대한 반성 및 고유문화에 대한 재인식의 사회적 흐름이 나타났다. 이에 여러 선도수련단체들이 등장하여 기(氣)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선도수련법을 보급하였다. 이들에 의해 한국선도의 수행문화가 되살아나기 시작하였고, 특히 단학은 전통적인 수련법을 현대화하여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타고 1990년대에 민족종교 방식으로 선도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가 등장하였다.
선교는 한국선도의 선맥을 이어받아 창교하였고, 선도경전 및 선도사서를 그대로 채택하였으며, 선도성인이자 사제왕으로서 수행의 스승 역할을 하는 단군(삼성)을 모시고 천제를 올리며, 선도수행의 기본 방법인 지감ㆍ조식ㆍ금촉의 삼수행법으로 성통(개인적 깨달음)하여 본성광명ㆍ신인합일(천인합일)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문화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성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다양한 공완(깨달음의 대사회적 실천) 활동을 통하여 홍익인간ㆍ이화세계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선교는 수행과 실천을 중시하는 한국선도의 본령에 접근하여 상고시대 선도문화의 원형성 회복 및 민족종교가 나아갈 새로운 종교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의 한국 민족종교는 내세구원이나 기복 등의 신앙 방식보다는 수행과 실천 중심의 수행문화로 나아가, 상고시기 이래 연면히 이어온 한민족의 고유한 선도수행문화의 원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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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선도의 신인합일 전통으로 바라본 '선교'의 신인합일론

저자 : 김윤숙 ( Kim¸ Yoon Sook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3-183 (6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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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문화 전통인 한국선도, 그 핵심사상인 신인합일사상은 사람 안에 신의 씨앗이 신성으로 내려와 있으며 선도수행으로 그 신성을 밝히고 신성과 하나 되어 홍익하는 삶으로 공을 완수한 후 신(하늘)과 완전한 합일을 이룬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한국선도 원경인 『천부경』과 그 해석서인 『삼일신고』에 나타나 있다.
모든 존재가 비롯된 『천부경』의 '일(一)'이 『삼일신고』에서는 의인화되어 '신(□)'이 되었지만 인격신은 아니며 근원의 기에너지, 근원의 생명력을 말한다. 이 '일'은 '천·지·인' 삼원(『천부경』) 또는 '성·명·정' 삼진(『삼일신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신)'은 3차에 걸친(삼진·삼망·삼도)전변과정을 통해 현상세계를 만들게 된다. 만물 중 삼진을 제대로 받은 유일한 존재인 인간은 수행으로 이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 순수한 에너지상태 삼진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신인합일'인데 삼진 중 특히 존재생성의 출발점인 천차원의 '성'이 신성을 회복한 것을 '성통'이라 한다.
성통은 신인합일 과정의 시작점일 뿐으로, 성통으로 자기 안의 신성을 깨달은 인간은 깨달음을 세상에서 펼치게 되는데 이를 '공완'이라고 한다. 공완하는 홍익의 삶으로 몸을 가지고 이룰 수 있는 사명을 다한 뒤 인간은 몸을 벗고 신(하늘)과 하나가 된다(조천). 이것이 완전한 신인합일이다.
『징심록』 「부도지」의 창세신화인 마고신화에는 인간의 존재이유(수증)와 삼진·삼망·삼도의 과정이 비유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선도는 마고성에서 살던 인류의 시조(人祖), 삼진상태의 인간들을 신인합일 된 신인(□人)으로 이상시하고 인간이 회복해야(復本) 할 본래의 모습으로 삼고 있다. 복본을 위한 수행 방법이 선도이다.
단군조선 와해 이후 쇠퇴일로를 걸었던 한국선도는 조선이 유교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뒤, 금압의 대상이 되어 민간으로 잠복하면서 본령인 수행문화를 잃고 저속화ㆍ저류화되어 민속ㆍ무속의 형태로 남게 된다. 더구나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온 서양문화는 우리 것을 더욱 홀대하게 만들었는데, 1980년대에 이르자 새로운 바람이 불며 선도가 지친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심신수련문화로 부활하게 된다. 선도의 본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1990년대에는 단군의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을 이어 받았다고 밝힌 '선교'가 만월 손정은에 의해 창교된다. 민족종교를 표방하고 있지만, 민족에 머무르지 않고,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이 시대의 실천종교임을 강조하고 있다. 본고는 먼저 한국선도의 신인합일론을 살펴본 뒤 선교에서 말하는 신인합일론과의 관련성을 점검하고 선교 나름의 신인합일론 '불광삼신론'과 '용신론'을 살펴보았다.
'불광삼신론'은 신인합일의 단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광선인'이 수행자의 불광신불과 불광신명을 이어주는 중심이다. '용신론'에서는 선도의 '공완'을 '신을 쓴다'는 뜻의 '용신'으로 풀고 있다.
하여 선교는 한국선도의 중심적 존재인 선도스승을 '불광선인'으로 중심에 모시고 있으며 선도의 '강재이뇌신' 사상을 계승함에 그치지 않고 머릿골에 계신 그 신을 활용하여 홍익의 삶을 창조하라는 더 적극적인 '용신'의 개념으로 한국선도를 진일보시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수행하는 실천종교로서 한국선도의 원형을 완전히 회복하고, '믿음'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시대에서 수행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는 시대로 이끌며 민족종교를 선도하고 있는 선교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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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선도의 지감·조식·금촉 수행 전통으로 바라본 '선교'의 제천수행

저자 : 조채영 ( Cho¸ Chae Young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5-231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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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도는 모든 존재의 시작을 '기(氣)'로 보았고, 기의 움직임에 의하여 현상계가 만들어졌다는 기학적세계관을 가졌다. 기학적세계관은 기를 느낄 수 있어야 했기에 한국선도는 기를 느낄 수 있는 수행이 사상에 우선하였고, 매우 중시되었다. 그래서 한국선도의 수행은 '기수행'이라 하며, 한국선도 문화는 기수행을 근간으로 한다. 한국선도의 기수행은 근원의 생명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수행자의 간절한 마음(중단전)이 우주에 편만히 존재하는 존재 본질의 기를 인체로 불러들여 수행자 내기의 순도변화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한국선도 수행에 대하여 선도 경전 『삼일신고』에서는 '지감·조식·금촉'으로 정리하고 있다.
한국선도 수행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제천의례로, 최근 중국 요서 지역에서 발굴된 홍산문화기 유물과 유적을 통해 그 신격과 성격이 밝혀지고 있다. 한국선도 제천의 신격은 모든 존재를 있게 한 원리이자 법칙인 기로 바라볼 수 있으며, 제천의례의 성격 역시 존재 본질의 기를 만나기 위한 수행으로 정리된다. 따라서 제천의례는 의례의 형식을 가졌으나 본질은 수행임을 뜻하며, 큰 범주 안에서 존재 본질의 기, 근원의 생명력과 합일이 되기 위한 수행은 모두 제천이다.
선교의 창교주이자 도전인 만월 손정은은 선교의 신은 인격신이 아니며, 모든 생명의 근원인 '기'로, '나'라는 개체는 여기에서 나왔기에 양자는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선도수행을 통해 느끼고 만나는 것을 신인합일이라 하였다. 만월은 선교 수행의 방법을 지감ㆍ조식ㆍ금촉으로 정리하였는데, 개별적이고 별도의 작용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합일적인 작용임을 밝혔다.
선교 수행은 '천제'라고 불려지는 제천의례를 그 대표로 둔다. '천제'의 신격과 그 성격을 살펴보면, 신격은 '불광하느님'으로 불광신명ㆍ불광신불ㆍ불광선인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이들은 각각 존재의 본질을 이루는 기, 그 기가 사람 속에 내재 되어있는 신성, 수행을 통해 양자가 합일된 역사 속의 선인을 말한다. 그중 개체의 생명력을 뜻하는 신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선교 천제가 신인합일을 위한 수행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의 제천의례인 '천제'는 수행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수행자 내면의 근원의 생명력을 깨우기 위한 모든 수행을 천제라 보아 선교수행의 제천일원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격은 그 구체적인 수행법들에서도 나타난다. 구체적인 수행법인 절수행, 불광활법 수행, 불광성언 수행 모두 존재 근원의 생명력이 백회혈을 통하여 인체로 들어와서 신성과 만나는 신인합일의 기수행이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아 선교의 수행은 한국선도 수행의 현대적 계승형태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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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선도의 성통·공완 전통으로 바라본 '선교'의 실천운동

저자 : 최명희 ( Choi¸ Myung Hee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3-287 (5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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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선도의 실천사상인 성통·공완론, 구체적으로는 홍익인간·재세이화의 전체완성을 지향하는 실천사상을 살펴보고 1990년대 민족종교를 주창하며 창교된 선교의 실천관과 실천운동을 한국선도의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한국선도는 수행을 통해 인간 내면에 밝게 빛나는 신성을 밝혀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심신수련법을 기반으로 하며 개체의 깨달음을 전체차원의 깨달음으로 확대해 나가는 대사회적 실천지향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Ⅱ장에서는 경전과 사서를 통해 한국선도의 성통ㆍ공완론과 전체완성을 지향하는 실천사상을 살펴보았다. _삼일신고_에는 성통ㆍ공완ㆍ조천의 3단계 인간완성의 과정이 제시되는데 성통은 개인차원의 깨달음이고 이를 대사회적으로 실천해 가는 과정이 공완이다. 성통ㆍ공완의 실천사상은 단군신화를 비롯한 고대사서에 '홍익인간ㆍ재세이화'의 통치이념으로 구체화되었다. 배달국ㆍ단군조선 시기 찬란하게 꽃 피운 선도문화는 오랜 역사를 통해 한국인의 문화정체성의 뿌리를 형성하여 한민족이 위기에 닥칠 때마다 강력한 실천사상으로 되살아났다.
Ⅲ장에서는 한국선도의 성통ㆍ공완론의 관점에서 선교의 실천관을 살펴보았다. 한국선도의 맥을 이은 민족종교를 기치로 창교된 선교는 3대 종지로 본성광명ㆍ홍익인간ㆍ이화세계를 채택하고 있다.
만월은 선도문화의 가치는 생명존중사상으로 민족이나 나라에 국한된 홍익이 아니라 인류 전체, 지구라는 생명공동체 전체를 이롭게 하는 정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전체의식을 나라나 민족을 넘어 인류차원의 의식으로 확장된 '인류혼'으로 이름하였다. 한민족 고유의 홍익인간ㆍ이화세계의 정신을 인류혼으로 확장시켜 한국선도 본연의 전체완성의 실천정신에 다가서고 있다고 보여진다.
Ⅳ장에서는 창교이래 선교에서 추진해온 실천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시기별로 살펴보았다. 1단계는 국혼부활운동으로 통칭될 수 있는데 전국 주요도시에 국조전을 건립하고 선도수행문화의 정수인 개천절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여 국조 단군의 위상제고에 기여한 바가 적지않다고 평가된다.
2단계 실천운동은 홍익생활실천운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한민족 고유의 선도문화를 생활문화로 정착시켜 삶의 변화를 직접 체율체득 할 수 있는 다양한 생활문화활동을 전개하였다. 한민족의 오랜 수행문화의 전통이 어렵거나 일부 특수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현대인의 생활문화로 정착되기 위해 선도수행방 활동, 선도문화 강연회, 상고사 그림전시회 등 다채로운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3단계 실천운동은 인류혼부활운동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선교는 2016년 선불교(仙佛敎)에서 '선교'로의 개칭을 단행하고 동시에 선교 수행처에 모셔졌던 불광선인상을 근원의 생명기(氣) 표상인 천부인 표상으로 대체하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한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 있는 시기에 선교는 '인류혼의 부활'을 제시하고 인류의 영적진화를 위한 천일기도를 시작하였다.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수행문화의 생활화를 통해 인류의 영적진화와 공생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여 선교가 한국선도 실천사상의 본령인 전체완성에 근접해 가고 있다고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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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국 민족사학의 원형, '선도사학'

저자 : 소대봉 ( So¸ Dae Bong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9-345 (5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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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1999년까지 이어진 요동·요서 일대의 고고학 성과는 위서시비에 걸려 있던 선도사서들의 기록[신시배달국의 선도제천문화]과 대체로 합치하였기에, 선도사서를 통하여 유교사관으로 왜곡되기 이전의 한국상고·고대사를 바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 글에서는 중화주의 유교사학으로 왜곡되기 이전의 한민족 고유의 사상ㆍ문화ㆍ역사인식에 기반한 한국 상고ㆍ고대사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선도적 세계관에 의한 역사인식[선도사관]에 의해 편찬되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선도사서를 모두 검토하여 선도사학에서 보이는 한국 상고ㆍ고대사 상을 종합ㆍ정리하였다.
다만 검토의 범위는, 한민족 고유의 사유체계와 제천의례ㆍ한민족 역사의 시작ㆍ단군조선의 문화수준ㆍ역사 정통의 계승ㆍ한국고대사의 중심무대인 고대 평양의 위치에 국한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유교사서에 기록된 한국고대사와는 전혀 다른 한국 상고ㆍ고대사의 실상을 거칠게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유교사관에 의해 배제되고 덧칠되고 왜곡된 한국 상고ㆍ고대사를 정립(正立)할 수 있는 기준점을 세운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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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풍류화랑의 도덕교육 활용에 관한 기반 연구

저자 : 신동의 ( Sin¸ Dong Eui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47-37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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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풍류화랑의 도덕교육 활용방안을 연구한 글이다. 풍류화랑의 도덕교육 활용방안을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풍류화랑이 나타난 『난랑비서(鸞郞碑序)』 텍스트를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풍류화랑의 도덕교육 기능을 탐색한다. 또한 현묘지도(玄妙之道)의 도의(道義) 교육 지식을 살펴보고 풍류화랑의 교육 지평을 고찰하며, 접화군생(接化群生)의 덕화(德化) 핵심 가치를 인격함양에서 탐색하여 인격교육의 명료화를 꾀하고자 한다.
고운 최치원 저술, 『난랑비서』는 분량 면에서 비록 짧지만, 우리나라에 고유한 풍류도가 있음을 밝혀 준 소중한 자료이다. 일찍이 『난랑비서』에 나타난 풍류도에 관해서는 신채호, 최남선, 김범부 등이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1925) 「고운선생사적(孤雲先生事蹟)」편에는 「천부경(天符經)」과 「난랑비서」가 나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풍류화랑의 도덕교육 활용방안을 규명하기 위해서 현묘지도의 도의, 접화군생의 덕화, 그리고 천지인 삼재(天地人三才) 교육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전통적 풍류화랑의 도덕교육 활용방안을 밝히고자 한다.
유(儒)ㆍ불(佛)ㆍ선(仙)에서 충효ㆍ무위ㆍ선행의 실천 덕목을 서로 매개함으로 풍류도가 추구하는 접화군생 덕화의 공공생명 작용이 치화ㆍ조화ㆍ교화 도리의 공공연대 체계라고 할 것이다. 일찍부터 풍류화랑은 명산대천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학술과 기예를 함께 연마한 공공 주체로서 삶을 영위하였다. 고운이 풍류가 유ㆍ불ㆍ선 삼교를 포함한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심신수련ㆍ심신연마를 통해 국가적으로 리더십을 갖춘 군자로서 교육하고, 천지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참사람으로 훈육하며, 반야지혜(般若智慧)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의 길을 닦아 더불어 살아가는 천지인 삼재 묘리 체득의 인격함양으로 도덕교육에 기여함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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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삼한시기 방제경(倣製鏡)의 형식과 변천과정 - 연구사 검토를 중심으로

저자 : 홍인국 ( Hong¸ In Gook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9-41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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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반도에서 출토된 동경과 관련하여 일정 수준의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방제경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개념과 계보 및 형식분류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삼한시기에 한정하여 지금까지 확인된 방제경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한반도 방제경의 출현과 변천과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방제경(倣製鏡)이란 용어는 대체로 기원전후한 시기에 중국의 한경(漢鏡)을 모본(模本)으로 이를 모방하여 만들어 일명 '본뜬 거울'이라고 설명된다. 특히 기원 전후에서 3세기 이전의 삼한시기에 걸쳐 한반도 영남지역에서 주로 제작되었는데 낙동강 유역인 대구, 영천, 경주, 김해지역으로 변ㆍ진한의 유력한 소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삼한의 발전과정에서 대외교류는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기원 전후에서 3세기 이전까지 변ㆍ진한에서 제작된 방제경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시기별로 제작양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Ⅰ기는 1세기 전후 사로국이 초기국가로성장하던 시기로, 낙랑군으로부터 유입된 한경을 모방하여 대구, 영천지역에서 재지화한 초기 중권문계와 연호문계인 ⅠA1∼ⅠA4, ⅡA식이 처음 출현하게 되었다. Ⅱ기는 1세기 후엽에서 2세기 전엽으로 사로국을 대신하여 경남 남해안 일대에 걸쳐 성장한 변한에서 등장하게 된다. 후한경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변화를 준 연호문계의 ⅡB, ⅡC식이 유행하는데 김해지역 구야국의 독창적인 요소가 합쳐진 창작품이라 할 수 있다. Ⅲ기는 2세기 중엽에서 후엽까지로, 동북아지역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방제경은 나름대로 문양과 제작기법 등에 변화를 보여준다. 이전의 ⅡB와 ⅡC식이 존속하지만 새롭게 창조된 삼한식 방제경의 진일보한 특징을 보인다. 이후 국제교역을 통해 구야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자 신분과 경제적 부를 표시하는 후한경이 새로운 상징으로 대체되며 방제경은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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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고대 평양의 위치를 통해서 본 발해 중경현덕부의 위치에 관한 연구

저자 : 민성욱 ( Min¸ Sung Woog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11-43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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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는 한국사에서 평양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었다. 그것은 역사지리 연구의 어려움을 간파한 것이었다. 일본이 식민주의사관의 일환으로 심어준 반도사관 등의 영향으로 패수를 지금의 대동강으로, 고대 평양을 지금의 북한 평양으로 인식함으로써 고구려 평양성뿐만 아니라 단군조선과 위만국의 왕검성까지 지금의 압록강 이남으로 설정, 민족의 강역을 반도 안에 갇히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한사군도 한반도 안에 설정, 식민지배의 역사성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여기에서부터 기인한다.
고대 평양은 고유 명사라기보다는 도읍지로 할 만한 넓은 평야지역을 일컬었던 일반명사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기록으로 본 고구려 천도의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말갈은 고구려를 구성하는 주요 종족 중 하나로 고구려가 건국되기 전부터 존재했었고, 특히 고구려 초기 건국지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말갈집단은 갈등도 있었지만 고구려에 흡수되어 그 이후 고구려의 주요한 군사자원이 되어 주었고 고구려가 멸망하자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진국, 곧 발해를 건국하게 이른다.
이러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기 위해서 장수왕 때 고구려 수도였던 평양으로 도읍지를 옮기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발해 3대 문왕 때 옮긴 도읍지, 중경현덕부다. 이것은 발해 5경 중 하나이며, 요나라 때는 동경요양부로 지금의 요령성 요양지역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고대 만주지역에서 발원한 국가들은 평양지역을 거점으로 삼았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고구려가 있고,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한 발해가 있다.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과 발해 문왕이 천도한 중경이 지금의 요양으로 같은 곳이었다. 고대 평양성을 매개로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고구려의 구성원으로서 발해 건국의 주체이기도 한 말갈의 위치를 헤아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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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홍익인간사상과 홍익가족문화 - 고구려의 서옥제를 중심으로

저자 : 이용수 ( Lee¸ Yong Soo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5-46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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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국가가 멸망하더라도 그 국가의 국민들이 견지해 오던 풍속과 문화는 쉽사리 변화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고구려의 서옥제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통치사상으로 삼았던 단군조선시대의 풍속과 깊은 연관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익인간사상의 이상은 남녀노소, 인종 및 국적, 그리고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뛰어넘어, 가족을 포함한 제반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상호 존중하며 상생과 조화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홍익인간사상에 의하면, 사람을 포함하는 우주 내 모든 존재는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으며, 이런 점에서 사람을 포함하는 우주 내 모든 존재는 단일의 우주공동체(일가, 一家)를 이룬다. 우주 내 모든 존재 중 사람은 특히 근원자인 '하나'의 속성을 온전히 내재한 존재이다. 곧 홍익인간사상에서 사람은 하나님 그 자체이며, 이와 같은 점에서 남녀노소 모든 사람은 서로를 존중해야 할 원천적 의무를 지닌다.
홍익인간사상이 강조하는 주요 내용의 하나는, 사람은 자신에 내재해 있는 근원자의 품성과 속성을 깨달아 근원자와 합일을 이루고(성통), 이러한 깨달음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조화로운 공동체를 실현하고 이끌어 나가는 책무(공완)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홍익인간사상의 이상 혹은 이를 구현할 사람의 책무는 가족공동체를 통해서도 구현되고 실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민족 선조들이 배달국 등 공동체를 이루고 홍익인사상의 이상을 실천하던 과정에 관한 기록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환웅과 웅녀 간 결합 또한 인종과 문화와 지위를 뛰어 넘는 상호 존중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홍익인간의 이상을 잘 표상해 주고 있다.
홍익인간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단군조선의 후계국가의 하나인 고구려의 서옥제 등 우리민족 고유의 가족문화 속에서 가족구성원이라면 친가와 외가를 막론하고, 심지어 재산 상속과 같은 중요한 가족문제에서조차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았으며, 배우자 선택에서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고, 심지어 홀로된 여성의 재가 또한 완전한 자유선택에 맡겨져 있었음을 각종 문헌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고려는 물론 17세기 이전 시기의 조선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는 혼인 후에 딸이 친정에서 오랫동안 지내는 까닭에 딸은 물론, 사위 및 외손까지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각자의 자유 선택 및 구성원간 상호 존중의 이와 같은 홍익가족문화는 오늘날의 시점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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