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상세보기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현지지도 기록영화로 본 김정은 이미지 연구

KCI등재

현지지도 기록영화로 본 김정은 이미지 연구

A Study on Kim Jong Un’s lmage in the Korean Documentary Films of Field Guidance

박소혜 ( Sohye Park )
  •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1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8월
  • : 135-167(33pages)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DOI


목차

I. 서론
II. 이론적 배경
III. 김정은 현지지도 기록영화 분석
IV. 기록영화에 나타난 김정은 이미지 특징과 의미
V. 결론
참고문헌

키워드 보기


초록 보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미지 특성과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현지지도를 담은 기록영화 3편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의미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김정은 현지지도 기록영화는 ‘인민생활향상’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시기에 따라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재현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정권 초기에는 지도자가 인민에게 사랑을 베푸는 어버이로 형상화되었지만, 7차 당대회를 거치며 인민의 자력갱생을 끌어내는 지도자로 재현된다. 외부환경이 악화하면서 김정은은 인민이 지도자의 헌신에 보답하여 ‘정면돌파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끄는 지도자로 형상화된다.
둘째, 김정은은 정권 초기 선대 수령의 흔적을 배경으로 현지지도 현장을 다니며 수령의 권위에 의존해 김정일의 유훈을 실천하는 지도자로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7차 당대회를 즈음하여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 얼굴이 담긴 ‘초상휘장’을 떼고 선대 수령의 업적을 넘어서는 독자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셋째, 영상시대 경향에 맞는 감성정치를 재현하는 지도자 이미지로의 변화다. 김정은은 수령의 무오류성에서 벗어나는 인간적인 면모로 인민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가며 실리를 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변모해 왔다. 이에 따라 기록영화도 다양한 영상기법을 활용하며 감각적 이미지 재현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The results of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Kim Jong Un’s image by analyzing Korean documentary films of field guidance of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are as follows.
First, the documentary films deal with ‘improving people’s living,’ but the method of reproducing ‘people’s firstism’ is changing depending on the time. In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the leader was portrayed as a parent who showed love to the people, but through the 7th Party Congress, he is recreated as a leader who leads the people to self-reliance.
Second, Kim Jong Un was embodied as a leader who practiced the legacy of Kim Jong Il by visiting the fields for guidance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traces of his predecessors in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However, around the 7th Party Congress, Kim Jong Un takes off the “portrait badge” with the faces of Kim Il Sung and Kim Jong Il and is pictured as building an independent leadership that goes beyond the achievements of his predecessors.
Third, it is a change to the image of a leader that reproduces emotional politics in line with the trend of the video age. With a human aspect that escapes from the infallibility of the leader, he approaches the people emotionally and differentiates himself with a leader’s tendency to pursue practical matters. As a result, it is expected that documentary films will also use various editor methods and continue to reproduce humane images.

UCI(KEPA)

간행물정보

  • : 사회과학분야  > 정치/외교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2005-4432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9-2021
  • : 464


저작권 안내

한국학술정보㈜의 모든 학술 자료는 각 학회 및 기관과 저작권 계약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자료를 상업적 이용, 무단 배포 등 불법적으로 이용할 시에는 저작권법 및 관계법령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36권1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정치체제와 코로나 팬데믹: 세계보건기구 데이터 분석

저자 : 윤성민 ( Sungmin Yun ) , 변영학 ( Young Hark Byun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7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각국 정치 체제적 특성(민주주의, 분권화, 비례대표제, 연방제, 양원제)이 코로나-19 방역조치의 효과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세계보건기구가 178개국을 대상으로 약 1년간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통계 분석한 결과, 민주주의, 비례대표제, 연방제, 양원제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유의미한 인과적 관계가 없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는, 지방정부의 분권화 수준이 높을수록 확진자 수가 증가하였다. 지방자치와 분권화는 제도적 이점이 있지만, 효과적인 방역 거버넌스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긴밀한 정책 공조와 협조가 필요하다.


This research aims to analyze the relationships between political institutions and the pervasion of COVID-19. To proceed with empirical research, we set democracy, decentralization of local government, proportional representation, federalism, and bicameralism as independent variables. We employed OLS multiple linear regression based on the cumulative COVID-positive cases of 178 countries from 2020 to early 2021. The results shows that democracy, proportional representation, federalism, and bicameralism do not have statistical significance. We found strong evidence that the more a country is decentralized, the more cases of COVID-19 are expected. Regardless of many institutional advantages decentralization has, our research argues that more coordinated anti-pandemic policy process and measures between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will be encouraged.

KCI등재

2후발 공업화에서 농업·농촌부문의 역할 ―대만의 경험과 정책적 함의

저자 : 조준현 ( Jun-hyeon Cho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71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공업화는 일반적으로 농업·농촌부문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공업화와 농업부문을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농업부문을 산업화의 장애요소로 간주하거나, 최소한 공업화에 불리한 요소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처럼 경제개발에 성공한 개발도상국들의 경험에서 보면 산업화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는 바로 농업에서의 생산력 증대다. 대만의 경우를 보면 본격적인 수출주도정책을 추진하기 이전인 수입대체기에 농업과 농촌부문의 성장이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다. 대만의 농업부문은 첫째, 도시거주자를 포함하여 전인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제공했고, 둘째, 외환획득이 가능한 잉여를 생산했으며, 마지막으로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대만의 농업정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던 데는 정책주체들이 농촌 엘리트계급의 요구와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이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경제개발을 위한 농업정책은 기득권 계급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대만의 정책주체들은 지주들의 요구보다 농민들의 요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한 농업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농업생산력의 향상은 물론 농민소득의 증대와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아직 경제개발의 과제를 안고 있는 후발 개발도상국들에게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One of the common problems of developing countries that have not yet started industrialization is the dual economy. In many developing countries, rural societies have a intensive socio-economic backwardness. Therefore, the economic development of these countries has the task of overcoming the backwardness of rural society and the task of connecting the potential of the agricultural sector to industrialization. The role of the rural and agricultural sectors in the industrialization of developing countries lies here. This role of the agricultural sector is evident in the experiences of developing countries that have succeeded in industrialization, such as Korea and Taiwan. It is very important that the policy makers were independent from the demands and pressures of landlords for the successful implementation of Taiwan's agricultural policy. Agricultural policies for economic development often conflict with the interests of the landlord class. In the case of Taiwan, policy makers promoted agricultural policy that reflected the needs of farmers more actively than those of landlords. As a result, it was possible not only to improve agricultural productivity, but also to increase farmers' income and gain political support from farmers for the government.

KCI등재

31980년대 냉전의 균열과 북한의 대응: '우리 식 사회주의'의 출현과 함의

저자 : 박아름 ( Ah Reum Park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99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1980년대 냉전의 해체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와해되고 있는 사회주의 진영과의 연대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정황을 주목하고, 그 양상과 함의를 고찰하고자 『대한민국 외교사료해제집』과 『조선중앙년감』을 중심으로 문헌분석을 시도하였다.
결과 첫째, 비동맹 운동에 주력했던 북한이 불리한 국제정세와 남북한 경쟁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주의 진영과의 연대를 회복하고자 노력한 양상을 확인하였다. 둘째, 외교관계 변화와 민족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 국내정치 담론인 '우리 식 사회주의'를 완성하는 흐름을 규명하였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북한의 대외관계 변화를 통해 북한 대외정책의 초점이 남북한 대결에서 김일성-김정일 중심의 체제수호와 내부결속으로 옮겨진 함의를 제안하였다.


This study provides a literature analysis centering 『Korean Diplomatic Historical Records Removal Collection』 and 『DPRK Yearbook』, paying attention on the circumstances of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 made an effort to recover the solidarity with the collapsing socialist camp at the situation of the breakup of cold war in 1980s.
This study, firstly finds that DPRK recognized international situation and the limitation of competition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disadvantageous to DPRK focused on non-alignment movement and made an effort to recover the solidarity with socialist camp. Secondly, this study investigates that DPRK completed 'Own Style of Socialism' as a domestic political discourse by the change of diplomatic relations and redefinition for the people. Lastly, this study suggests that DPRK moved the focus of foreign policy by the change of foreign relationship of DPRK in 1980s from confrontation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to system protection and internal unity centering Il-sung Kim and Jung-il Kim.

KCI등재

4해방 후 북한의 반소반공운동: 조선민주당과 북조선 천도교청우당

저자 : 기광서 ( Kwang-soo Kee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1-134 (3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해방 후 민족주의정당으로 탄생한 조선민주당과 북조선천도교청우당 내 반소반공 활동을 살핀 논문이다. 이 두 정당은 북한 정치무대에서 북조선공산당(로동당)과 협력하였고, 때로는 자당의 이익을 위해 공산측에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조선민주당의 본격적인 반소반공 움직임은 조만식의 퇴장 직후 반탁운동으로 표출하였다. 이후 토지개혁, 도시군인민위원회 선거 국면 등 주요 계기를 거치면서 북한 각지에서 단순한 반발로부터 테러활동에 이르기까지 당하부 조직들의 저항이 전개되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인위적으로 개편되어 '친공' 정당으로 변화한 반면 천도교청우당은 소련군 진주 직후부터 공산측에 협조적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청우당 지도부 내 일부 구성원들은 반공적인 입장을 고수하였고, 지방 당부에서의 반공적 활동은 공산당국에 많은 부담을 주었다.
해당 시기 두 정당 하부조직에서는 남쪽 우익세력과의 연계하에 지배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반발과 저항이 그치지 않았다. 이는 사적 소유에 기반한 정당이 이를 지양하는 구조 속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정서의 표현이자 남북한 반공세력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볼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anti-Soviet and anti-communist activities within the Korean(Chosun) Democratic Party and the Chondoist Chongu Party, which were created as nationalist parties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These two parties cooperated with the North Korean Communist Party (Labor Party) on the political arena of North Korea, and sometimes did not avoid the conflict for their own interests.
The full-fledged anti-Soviet and anti-communism movement of the Democratic Party was expressed as an anti-trust movement immediately after Cho Man-sik was ousted due to the trusteeship issue. Since then, through major events such as the Land Reform and the Election of the People's Committee, resistances from sub-party organizations ranging from simple protests to terrorist activities have developed in various parts of North Korea. While the Democratic Party leadership was artificially reorganized and transformed into a “pro-communist” party, the Chongu Party took a more cooperative stance with the communists immediately after Soviet troops had been stationed in the northern portion of Korea. However, some members of the party leadership adhered to an anti-communist stance, and anti-communist activities in the local party put a heavy burden on the communist authorities.
During that time, the two party sub-organizations continued to fight against the policies of communists in connection with the right wing forces from the southern Korea. It can be seen as an expression of the sentiment that a political party based on private ownership refuses to be incorporated into a structure that abstains from it, and a result of the influence of the anti-communist forces of the northern and southern Koreas.

KCI등재

5현지지도 기록영화로 본 김정은 이미지 연구

저자 : 박소혜 ( Sohye Park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67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미지 특성과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현지지도를 담은 기록영화 3편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의미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김정은 현지지도 기록영화는 '인민생활향상'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시기에 따라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재현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정권 초기에는 지도자가 인민에게 사랑을 베푸는 어버이로 형상화되었지만, 7차 당대회를 거치며 인민의 자력갱생을 끌어내는 지도자로 재현된다. 외부환경이 악화하면서 김정은은 인민이 지도자의 헌신에 보답하여 '정면돌파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끄는 지도자로 형상화된다.
둘째, 김정은은 정권 초기 선대 수령의 흔적을 배경으로 현지지도 현장을 다니며 수령의 권위에 의존해 김정일의 유훈을 실천하는 지도자로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7차 당대회를 즈음하여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 얼굴이 담긴 '초상휘장'을 떼고 선대 수령의 업적을 넘어서는 독자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셋째, 영상시대 경향에 맞는 감성정치를 재현하는 지도자 이미지로의 변화다. 김정은은 수령의 무오류성에서 벗어나는 인간적인 면모로 인민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가며 실리를 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변모해 왔다. 이에 따라 기록영화도 다양한 영상기법을 활용하며 감각적 이미지 재현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The results of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Kim Jong Un's image by analyzing Korean documentary films of field guidance of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are as follows.
First, the documentary films deal with 'improving people's living,' but the method of reproducing 'people's firstism' is changing depending on the time. In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the leader was portrayed as a parent who showed love to the people, but through the 7th Party Congress, he is recreated as a leader who leads the people to self-reliance.
Second, Kim Jong Un was embodied as a leader who practiced the legacy of Kim Jong Il by visiting the fields for guidance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traces of his predecessors in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However, around the 7th Party Congress, Kim Jong Un takes off the “portrait badge” with the faces of Kim Il Sung and Kim Jong Il and is pictured as building an independent leadership that goes beyond the achievements of his predecessors.
Third, it is a change to the image of a leader that reproduces emotional politics in line with the trend of the video age. With a human aspect that escapes from the infallibility of the leader, he approaches the people emotionally and differentiates himself with a leader's tendency to pursue practical matters. As a result, it is expected that documentary films will also use various editor methods and continue to reproduce humane images.

KCI등재

65·18과 군대: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하여

저자 : 공진성 ( Jin Sung Gong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9-194 (2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지난 40여 년간 5·18을 보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시각은 변해왔다. 초기에 5·18을 '폭동'으로 보는 군부의 시각이 지배적이었다면, 그에 맞서는 사회주의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이 경쟁하다가 민주화 이후 5·18이 민주화운동으로서 공식 인정되면서 자유주의적 시각이 지배적인 시각이 되었다. 최근에는 5·18에 대한 평화주의적 해석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데, 이 최근의 해석들은 모두 일정한 반군사적 편향을 보이고 있다. 공화주의적 시민군의 이념에 입각해 보았을 때, 5·18을 탈군사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5·18을 탈정치화하는 것으로서, '시민=군인'의 이상이 현실로 나타난 5·18에 대한 객관적 해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민의 군사적 및 정치적 소외를 야기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해석이다. 반군사적 편견을 버리고 군사적인 것을 수용할 때, 그리고 군사적인 것의 의미를 현대 사회에 맞게 확장할 때, 5·18의 정치적 의미가 온전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Over the past 40 years, the dominant view on the May 18 has changed in South Korea. The view of the military authorities on the May 18 as a 'riot' had been dominant in the beginning. The socialist view and the liberalist view competed against it, and the liberalist view became dominant when the May 18 was officially recognized as a 'democratic movement' after democratization of South Korea. Recently, the pacifist interpretations of the May 18 are presented strongly, all of which show a certain anti-militarist bias. However, based on the idea of the republican 'citizen-soldier', de-militarizing the May 18 is ultimately de-politicizing the May 18, which is not an objective interpretation of the May 18 as actually an event in which the idea of 'citizen-soldier' came in reality, but a very dangerous interpretation that could lead to military and political alienation of citizens.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May 18 could be fully revealed when it abandons anti-militarist prejudice, and accepts the military and extends the meaning of 'the military' adjustable to the contemporary Korean society.

1
권호별 보기
같은 권호 다른 논문
| | | | 다운로드

KCI등재

1정치체제와 코로나 팬데믹: 세계보건기구 데이터 분석

저자 : 윤성민 ( Sungmin Yun ) , 변영학 ( Young Hark Byun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7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각국 정치 체제적 특성(민주주의, 분권화, 비례대표제, 연방제, 양원제)이 코로나-19 방역조치의 효과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세계보건기구가 178개국을 대상으로 약 1년간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통계 분석한 결과, 민주주의, 비례대표제, 연방제, 양원제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유의미한 인과적 관계가 없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는, 지방정부의 분권화 수준이 높을수록 확진자 수가 증가하였다. 지방자치와 분권화는 제도적 이점이 있지만, 효과적인 방역 거버넌스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긴밀한 정책 공조와 협조가 필요하다.

KCI등재

2후발 공업화에서 농업·농촌부문의 역할 ―대만의 경험과 정책적 함의

저자 : 조준현 ( Jun-hyeon Cho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71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공업화는 일반적으로 농업·농촌부문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공업화와 농업부문을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농업부문을 산업화의 장애요소로 간주하거나, 최소한 공업화에 불리한 요소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처럼 경제개발에 성공한 개발도상국들의 경험에서 보면 산업화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는 바로 농업에서의 생산력 증대다. 대만의 경우를 보면 본격적인 수출주도정책을 추진하기 이전인 수입대체기에 농업과 농촌부문의 성장이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다. 대만의 농업부문은 첫째, 도시거주자를 포함하여 전인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제공했고, 둘째, 외환획득이 가능한 잉여를 생산했으며, 마지막으로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대만의 농업정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던 데는 정책주체들이 농촌 엘리트계급의 요구와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이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경제개발을 위한 농업정책은 기득권 계급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대만의 정책주체들은 지주들의 요구보다 농민들의 요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한 농업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농업생산력의 향상은 물론 농민소득의 증대와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아직 경제개발의 과제를 안고 있는 후발 개발도상국들에게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KCI등재

31980년대 냉전의 균열과 북한의 대응: '우리 식 사회주의'의 출현과 함의

저자 : 박아름 ( Ah Reum Park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99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1980년대 냉전의 해체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와해되고 있는 사회주의 진영과의 연대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정황을 주목하고, 그 양상과 함의를 고찰하고자 『대한민국 외교사료해제집』과 『조선중앙년감』을 중심으로 문헌분석을 시도하였다.
결과 첫째, 비동맹 운동에 주력했던 북한이 불리한 국제정세와 남북한 경쟁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주의 진영과의 연대를 회복하고자 노력한 양상을 확인하였다. 둘째, 외교관계 변화와 민족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 국내정치 담론인 '우리 식 사회주의'를 완성하는 흐름을 규명하였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북한의 대외관계 변화를 통해 북한 대외정책의 초점이 남북한 대결에서 김일성-김정일 중심의 체제수호와 내부결속으로 옮겨진 함의를 제안하였다.

KCI등재

4해방 후 북한의 반소반공운동: 조선민주당과 북조선 천도교청우당

저자 : 기광서 ( Kwang-soo Kee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1-134 (3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해방 후 민족주의정당으로 탄생한 조선민주당과 북조선천도교청우당 내 반소반공 활동을 살핀 논문이다. 이 두 정당은 북한 정치무대에서 북조선공산당(로동당)과 협력하였고, 때로는 자당의 이익을 위해 공산측에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조선민주당의 본격적인 반소반공 움직임은 조만식의 퇴장 직후 반탁운동으로 표출하였다. 이후 토지개혁, 도시군인민위원회 선거 국면 등 주요 계기를 거치면서 북한 각지에서 단순한 반발로부터 테러활동에 이르기까지 당하부 조직들의 저항이 전개되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인위적으로 개편되어 '친공' 정당으로 변화한 반면 천도교청우당은 소련군 진주 직후부터 공산측에 협조적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청우당 지도부 내 일부 구성원들은 반공적인 입장을 고수하였고, 지방 당부에서의 반공적 활동은 공산당국에 많은 부담을 주었다.
해당 시기 두 정당 하부조직에서는 남쪽 우익세력과의 연계하에 지배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반발과 저항이 그치지 않았다. 이는 사적 소유에 기반한 정당이 이를 지양하는 구조 속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정서의 표현이자 남북한 반공세력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볼 수 있다.

KCI등재

5현지지도 기록영화로 본 김정은 이미지 연구

저자 : 박소혜 ( Sohye Park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67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미지 특성과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현지지도를 담은 기록영화 3편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의미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김정은 현지지도 기록영화는 '인민생활향상'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시기에 따라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재현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정권 초기에는 지도자가 인민에게 사랑을 베푸는 어버이로 형상화되었지만, 7차 당대회를 거치며 인민의 자력갱생을 끌어내는 지도자로 재현된다. 외부환경이 악화하면서 김정은은 인민이 지도자의 헌신에 보답하여 '정면돌파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끄는 지도자로 형상화된다.
둘째, 김정은은 정권 초기 선대 수령의 흔적을 배경으로 현지지도 현장을 다니며 수령의 권위에 의존해 김정일의 유훈을 실천하는 지도자로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7차 당대회를 즈음하여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 얼굴이 담긴 '초상휘장'을 떼고 선대 수령의 업적을 넘어서는 독자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셋째, 영상시대 경향에 맞는 감성정치를 재현하는 지도자 이미지로의 변화다. 김정은은 수령의 무오류성에서 벗어나는 인간적인 면모로 인민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가며 실리를 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변모해 왔다. 이에 따라 기록영화도 다양한 영상기법을 활용하며 감각적 이미지 재현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KCI등재

65·18과 군대: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하여

저자 : 공진성 ( Jin Sung Gong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36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9-194 (2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지난 40여 년간 5·18을 보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시각은 변해왔다. 초기에 5·18을 '폭동'으로 보는 군부의 시각이 지배적이었다면, 그에 맞서는 사회주의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이 경쟁하다가 민주화 이후 5·18이 민주화운동으로서 공식 인정되면서 자유주의적 시각이 지배적인 시각이 되었다. 최근에는 5·18에 대한 평화주의적 해석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데, 이 최근의 해석들은 모두 일정한 반군사적 편향을 보이고 있다. 공화주의적 시민군의 이념에 입각해 보았을 때, 5·18을 탈군사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5·18을 탈정치화하는 것으로서, '시민=군인'의 이상이 현실로 나타난 5·18에 대한 객관적 해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민의 군사적 및 정치적 소외를 야기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해석이다. 반군사적 편견을 버리고 군사적인 것을 수용할 때, 그리고 군사적인 것의 의미를 현대 사회에 맞게 확장할 때, 5·18의 정치적 의미가 온전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1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