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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학회> 연민학지> 연민 이가원의 학문연원과 외재 정태진 -교류서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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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이가원의 학문연원과 외재 정태진 -교류서신을 중심으로-

Academic Background of Yeonmin Lee Ga-won and Oejae Jeong Tae-jin - Focusing on the letters exchanged between them -

함영대 ( Ham Young-dae )
  • : 연민학회
  • : 연민학지 3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8월
  • : 13-34(22pages)
연민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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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제 제기
2. 교류서신으로 본 학술문답
3. 문학과 경학, 또는 文章一路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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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래 한문학 연구의 1세대 학자인 연민 이가원(1917~2000) 선생의 업적과 끼친 학덕은 퇴계학과 성호학, 다산학을 이은 연민학이 성립하고 그를 연구하는 학회가 설립된 것에서 보듯 매우 뚜렷한 바가 있다. 연민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와 영향은 물론 그 개인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소산이지만 사우(師友)의 가르침과 연마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연민은 고향 안동의 향리에서 어려서부터 많은 스승들에게서 배우고 또 격려와 기대를 받았다. 그런데 여러 스승 가운데서도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1876~1956)은 매우 특별하다. 연민은 6살이 되지도 않았을 때 막 어머니의 품을 떠나 외재에게 나아가 글을 읽으며 사제간의 인연을 이어갔다. 연민은 외재의 제문(祭文)에서 “제가 선생을 따라 공부한 것이 전후 20여 년으로 가장 오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외재 정태진은 연민 이가원과의 학술문답을 통해 정당한 학문에 이르는 道에 대해 가르치며, 당시 맹자를 읽는 과정에 있었던 연민에게 전통적이면서도 철저하게 성리학적 이상을 견지한 경학을 중시하는 학문으로의 정도(正道)를 가르쳤다. 그러나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되는 격변기를 살아낸 연민은 변영만과 정인보 등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경학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학에 더욱 큰 관심을 보였고, 주목할 만한 성취를 발휘하기도 했다. 고전의 국역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고전의 현대화 초기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사제간에 학문 경로에 대한 견해차가 적지 않게 노출되었음에도 연민이 여전히 경학에 대한 향념을 가지고 중시한 것은 그의 경학 스승이었던 외재 정태진의 절대적인 영향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The achievements and also learning and virtue of Sir Yeonmin Lee Ga-won (1917~2000), one of the 1st generation scholars on Chinese classics after the emancipation, are absolutely noticeable when we consider the fact that Yeonmin-hak was established to succeed to Toegye-hak, Seongho-hak, and Dasan-hak and the society was founded to study him. Yeonmin’s superb academic outcome and influence were, of course, due to his individual backbreaking efforts, but the teachings and training from his mentors and friends are also indispensable.
Yeonmin was taught and also encouraged and expected a lot by many mentors in his hometown, Andong, from his childhood. Among those mentors, Oejae Jeong Tae-jin (1876~1956) was very special. Before six, Yeonmin left his mother to be with Oejae and then read materials and continue the relationship between a teacher and a pupil. According to the funeral oration of Oejae, Yeonmin confessed, “It has been 20 or so years after the war for me to study with this mentor, and it was the longest.” He also added, “I was loved by him the most.”
Through academic questions and answers, Oejae Jeong Tae-jin taught Yeonmin Lee Ga-won about Tao (道) to reach righteous sciences. To Yeonmin who was in the process of reading Mencius then, he taught the right path to sciences to value Chinese classics adhering to neo-Confucianism ideal traditionally as well as thoroughly. Going through the period of upheaval changing from modern to contemporary times, however, Yeonmin was also taught by other mentors like Byeon Yeong-man or Jeong In-bo and showed even keener interest in literature than in Chinese classics, which led to noteworthy achievements, too. Playing crucial roles in translating the classics into Korean, he contributed partly in the initial period of modernizing the classics.
In conclusion, although there was not inconsiderable opinion gap between the teacher and pupil about the paths of sciences, Yeonmin still valued Chinese classics with passion, and it is deemed that this must be attributed to the absolute influence of Oejae Jeong Tae-jin who was his mentor of Chinese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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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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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민 이가원의 학문연원과 외재 정태진 -교류서신을 중심으로-

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3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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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래 한문학 연구의 1세대 학자인 연민 이가원(1917~2000) 선생의 업적과 끼친 학덕은 퇴계학과 성호학, 다산학을 이은 연민학이 성립하고 그를 연구하는 학회가 설립된 것에서 보듯 매우 뚜렷한 바가 있다. 연민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와 영향은 물론 그 개인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소산이지만 사우(師友)의 가르침과 연마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연민은 고향 안동의 향리에서 어려서부터 많은 스승들에게서 배우고 또 격려와 기대를 받았다. 그런데 여러 스승 가운데서도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1876~1956)은 매우 특별하다. 연민은 6살이 되지도 않았을 때 막 어머니의 품을 떠나 외재에게 나아가 글을 읽으며 사제간의 인연을 이어갔다. 연민은 외재의 제문(祭文)에서 “제가 선생을 따라 공부한 것이 전후 20여 년으로 가장 오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외재 정태진은 연민 이가원과의 학술문답을 통해 정당한 학문에 이르는 道에 대해 가르치며, 당시 맹자를 읽는 과정에 있었던 연민에게 전통적이면서도 철저하게 성리학적 이상을 견지한 경학을 중시하는 학문으로의 정도(正道)를 가르쳤다. 그러나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되는 격변기를 살아낸 연민은 변영만과 정인보 등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경학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학에 더욱 큰 관심을 보였고, 주목할 만한 성취를 발휘하기도 했다. 고전의 국역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고전의 현대화 초기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사제간에 학문 경로에 대한 견해차가 적지 않게 노출되었음에도 연민이 여전히 경학에 대한 향념을 가지고 중시한 것은 그의 경학 스승이었던 외재 정태진의 절대적인 영향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The achievements and also learning and virtue of Sir Yeonmin Lee Ga-won (1917~2000), one of the 1st generation scholars on Chinese classics after the emancipation, are absolutely noticeable when we consider the fact that Yeonmin-hak was established to succeed to Toegye-hak, Seongho-hak, and Dasan-hak and the society was founded to study him. Yeonmin's superb academic outcome and influence were, of course, due to his individual backbreaking efforts, but the teachings and training from his mentors and friends are also indispensable.
Yeonmin was taught and also encouraged and expected a lot by many mentors in his hometown, Andong, from his childhood. Among those mentors, Oejae Jeong Tae-jin (1876~1956) was very special. Before six, Yeonmin left his mother to be with Oejae and then read materials and continue the relationship between a teacher and a pupil. According to the funeral oration of Oejae, Yeonmin confessed, “It has been 20 or so years after the war for me to study with this mentor, and it was the longest.” He also added, “I was loved by him the most.”
Through academic questions and answers, Oejae Jeong Tae-jin taught Yeonmin Lee Ga-won about Tao (道) to reach righteous sciences. To Yeonmin who was in the process of reading Mencius then, he taught the right path to sciences to value Chinese classics adhering to neo-Confucianism ideal traditionally as well as thoroughly. Going through the period of upheaval changing from modern to contemporary times, however, Yeonmin was also taught by other mentors like Byeon Yeong-man or Jeong In-bo and showed even keener interest in literature than in Chinese classics, which led to noteworthy achievements, too. Playing crucial roles in translating the classics into Korean, he contributed partly in the initial period of modernizing the classics.
In conclusion, although there was not inconsiderable opinion gap between the teacher and pupil about the paths of sciences, Yeonmin still valued Chinese classics with passion, and it is deemed that this must be attributed to the absolute influence of Oejae Jeong Tae-jin who was his mentor of Chinese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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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외재(畏齋)의 선유구곡시(仙遊九曲詩)에 나타난 산수 인식

저자 : 이정화 ( Lee Jeong-hwa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5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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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서 이루어진 외재의 강학(講學) 활동은 연민(淵民)을 위시하여 후학들에게 유도(儒道)를 전수한 것이 핵심이다. 퇴계와 퇴계학맥의 학자들이 선유동의 아홉 물굽이를 찬탄한 것은 천리(天理)를 체득할 수 있는 학문의 공간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외재는 선유구곡(仙遊九曲)을 경영함으로써 이러한 전현(前賢)들과 심정적으로 합치하였다. 문경에의 귀거래를 선택한 외재의 시 정신은 선유구곡의 명칭에 담겨있다. 이는 또한 산수(山水)에 둔 자신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외재시에는 선유구곡에서 함양할 수 있는 청정심이 담겨있다. 청정심이야말로 산수가 그에게 제공하는 시 정신의 핵심이다. 그의 산수 생활은 이러한 시 정신을 형상화하는 가운데에서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탁청대(濯淸臺)>에는 도의(道義)의 구현에 마음을 쓰는 학자의 시 정신이 담겨있는데, '완심(玩心)'이 그것이다. 이 시를 통해 손재의 구도적(求道的) 시 정신이 외재에게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심대(洗心臺)>에서는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수양의 공간이 바로 이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선유동의 아홉 물굽이를 유람한 후 이를 근거로 한 자신의 산수 체험을 시화하였다. 이는 자족(自足)의 마음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영귀암(詠歸巖)>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물을 관조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보인 작품이 <관란담(觀瀾潭)>이다. 또한 <옥하대(玉霞臺)>에는 백운(白雲)이 모였다 흩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내면을 관조하는 화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세속적인 욕망에 마음을 쓰지 않는 대인의 마음이 바로 초탈의 시경(詩境)을 형성하는 동인(動因)이라 하겠다. <옥석대(玉舃臺)>에 나타난 선취(仙趣)는 탈속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선유구곡시에서는 산수 자연을 묘사하기 위한 화려한 수식이 나타나 있지 않으며, 산수 자연에 둔 뜻을 밝히거나 덕성을 중시한 그의 지론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퇴계학맥의 시 정신과 동궤의 것이라 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investigate the perception of natural scenery in works related to the exploration of Sunyou Googog in the poems of Oejae. He poetized his friendship with a true friend. Through this, he expressed the importance of true friends and his affection for them.
To him, natural scenery was not an object of play, but an object of study. He taught his disciples because he wanted to live as a true person. His studies exist for practice. His talents were well aware of this teacher's heart. His learning and education set an example for his teacher. His creation of Sunyou Googog and completing the rest of his life there is not irrelevant to the academic spirit of Toegye.
He expressed the excitement caused by a clear state of mind. The natural landscape reminded him of the spiritual world that a Confucian scholar should pursue. His heart, which adored the natural scenery, expressed a clear and clean poet's spirit more deeply.
His image of all things in the universe is projected in the natural scenery of the Sunyou Googog. He expressed his inner sincerity rather than his portrayal of nature. His ungreedy mind expresses his self-sufficiency.
He expressed the noble heart of a person who could transcend the world. In particular, the appearance of the new line reflects the willingness to remove the secular mind. When the secular mind is removed, the spirit of a noble scholar can be maint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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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옥류산장시화(玉溜山莊詩話)』에 나타난 허난설헌의 문학사적 위상 -『조선문학사(朝鮮文學史)』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저자 : 최재원 ( Choi Jae-won ) , 구지현 ( Koo Jea-hyoun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1-9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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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허난설헌에 대한 제가의 평은 시에 대한 논평, 표절과 위작시비, 와전된 기록에 대한 수정으로 정리된다. 중국까지 널리 알려져 있던 만큼 허난설헌 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여성의 문학 창작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기반으로 표절과 위작시비나 인품에 대한 폄하도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시 외적인 측면에서의 부당한 평가로 인해 문학적 성취에 준하는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연민 이가원의 『옥류산장시화』는 저자 자신의 평가에 따른 산삭이 이루어진 전통적인 시화집으로 총 787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허난설헌 관련 시화는 25칙에 이르러, 여타 문인보다 많은 주목도를 보인다. 그런데 『옥류산장시화』는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은 채택하지 않는 산삭의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허난설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전문을 실어, 폄훼에 가까울 수 있는 정보는 누락시키고 독자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후 이 시화들은 『조선문학사』에 대부분 수용되어, 허난설헌을 평가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었다. 그와 동시에 기존 오류를 교정하고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았으며, 외적인 평가를 제거한 상태에서 허난설헌의 시풍을 고찰하였다. 생애와 작품, 기존의 평을 정리하는 것에 그친 근대 초기의 연구를 뛰어넘어 허난설헌을 시인으로 재조명하고 문학사적 위치를 자리매김한 것이다.
『옥류산장시화』는 '서언-본론-결어'라는 근대의 논문형식을 차용하였으나 전통적인 시화의 형식을 따르는 저작이고, 『조선문학사』는 연민의 만년에 저술된 문학사 연구가 집대성된 학술서이다. 『옥류산장시화』을 분기점으로 허난설헌의 기존 시화가 다시 정리되었고 『조선문학사』에서 실증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다. 연민에 이르러 허난설헌이 재발굴되어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문학적 위상이 재정립된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Sir Yeonmin Lee Ga-won's acceptance of poetry related to Heo Nanseolheon, who was cited in Okryusanjangsihwa(玉溜山莊詩話) and The History of Joseon Literature(朝鮮文學史), authored by Yeonmin, and looks at opinions regarding her literary and historical status.
The content of Okryusanjangsihwa is consistent with that of a traditional poetry collection. However, its format of “preface-main body-conclusion” is known as the modern thesis form. On average, each literary person covers about 5 rules, whereas in the case of Heo Nanseolheon, 25 rules are included. This part gives us a glimpse at Yeonmin's interest in Heo Nanseolheon, and this can be seen as a distinct aspect considering that not much significance was given to female poets in the preexisting poetic history. “The History of Joseon Literature” is a scholarly book in which the literary and historical research published by Yeonmin in his later years is compiled. It contains poems related to Heo Nanseolheon, which are included in the Okryusanjangsihwa, and a more direct assessment of the same is included.
The poems related to Heo Nanseolheon quoted in Okryusanjangsihwa were all reviewed by Yeonmin with an empirical attitude, and he withheld or excluded judgments about them from the poetry in cases where there was no clear evidence. This empirical attitude was also seen in The History of Joseon Literature. Yeonmin reviewed Heo Nanseolheon's poems as “Danpung'” (morale) by including his judgments in his previous work Okryusanjangsihwa, followed up by The History of Joseon Literature, and positioned her as an outstanding poet of Joseon, regardless of her gender.
Modern evaluations of Heo Nanseolheon have the limitations of being restricted to her life and works and organizing the preexisting reviews. However, as a fundamental source of data, Yeonmin organized the poetry regarding Heo Nanseolheon and reestablished that she was a prominent poet of Joseon with important literary and historical status, regardless of her g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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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서주(西洲) 김사진(金思鎭)의 삶과 학문성향

저자 : 권오영 ( Kwon Oh-young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1-12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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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진(金思鎭. 1878~1954)은 근현대의 유학자로 이병호(李炳鎬)와 곽종석(郭鍾錫)의 문인이다. 그는 이진상(李震相)-곽종석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이어받아 지지하였다. 그는 심성이기(心性理氣) 등의 개념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여 정리하였고, 심지어 왕수인(王守仁)의 심즉리설까지 인정하였다.
김사진은 성리학의 전통을 이은 학자였지만, 한(漢)대의 훈고학(訓詁學)과 송(宋)대의 이학(理學)을 뛰어넘어 실심(實心)과 실사(實事)를 강조한 실학(實學)의 학문성향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육경(六經)을 중시하던 시대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인해 무너지고, 한대에 훈고를 중시하는 독서(讀書)의 시대가 열렸고, 송대에는 다시 담리(談理)의 시대가 열려 점점 경세(經世)를 중시하는 실학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이해했다. 그는 독서나 담리를 통한 지식보다는 덕성(德性)과 실사를 강조한 학풍을 지닌 학자였다. 그는 조선 후기 학자인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애독하고, 유형원을 '천년의 경제(經濟)의 대가'로 추존하였다. 그는 경세의 학(學)을 강조하면서 조선 근세 이후 자기 당대까지의 무용(無用)의 학을 개탄하였다.
이가원(李家源)은 김사진의 문인(門人)이다. 그는 조부 이중인(李中寅)이 김사진과 친한 관계로 인해 김사진의 문하에 30여 년간 출입하면서, 실심과 실사에 근거한 실학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박승진(朴勝振)과 김사진이 주고받은 편지와 김사진의 가르침을 통해 유형원ㆍ이익(李瀷)ㆍ박지원(朴趾源)의 경세의 학의 대강을 들었다. 이러한 학문적 계기로 그는 평생 실학을 즐겨 담론하였고 실학 관련 자료를 집성하였다. 그가 학문연구의 방향과 주제를 실학으로 정하여 평생 박지원 등의 실학파의 문학과 사상을 깊이 연구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김사진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학문적 영향이 컸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Kim Sajin(1878~1954) was a modern confucianism scholar who studied under Lee Byeongho and Kwak Jongseok. He followed Lee Jinsang and Kwak Jongseok in supporting the theory of mind as principle(心卽理說). He explored and wrote about concepts such as theory of mind as principle in depth, and even accepted theory of mind is the principle as proposed by Wang Suin(王守仁).
Despite following the tradition of Neo-Confucianism, Kim Sajin also showed academic characteristics of Practical Learning(實學), which emphasized pragmatic attitude and practices, stepping beyond the boundaries of philological learning(訓詁學) from the Han Dynasty and learning of principle(理學) from the Song Dynasty. He understood that the emphasis on Six Classics(六經) came to an end due to the anti-Confucianism imposed by Qin Shi Huang; the Han Dynasty opened the era of reading that places value on old books; and, during the Song Dynasty, the discourse has been shifted to theories again, thus, moving away from Practical Learning which emphasizes governance of the world. As a scholar, he was more focused on virtues and pragmatism than on reading or discussion of theories. He enjoyed reading Bangyesurok(磻溪隨錄. Occasional Writings of Pan Kye), written by late-Joseon scholar Yu Hyongwon(柳馨遠) who he revered as the 'master of the economics.' Kim Sajin placed emphasis on learning about the world and lamented the futility of the studies from late Joseon until his time.
Lee Gawon(李家源) was a scholar who studied Practical Learning based on the pragmatic attitude and facts under Kim Sajin for roughly three decades, as a result of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his grandfather Lee Jungin(李中寅) and Kim Sajin. Through letters exchanged between Park Seungjin(朴勝振) and Kim Sajin and from the teachings of the latter, he studied statecraft learning as proposed by Yu Hyongwon, Yi Ik(李瀷), and Pak Chiwon(朴趾源). As a result, Lee Gawon often discussed Practical Learning and wrote on the subject throughout his life. His scholastic focus on Practical Learning and study on scholars of Practical Learning including Park Jiwon was influenced largely by the teachings of Kim Sajin since his child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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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소원(小園) 문은희(文銀姬) 화백의 예술 작품과 연민(淵民) 선생의 화제(畫題)

저자 : 김영봉 ( Kim Young-bong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5-15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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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小園) 문은희(文銀姬) 화백은 연민(淵民) 선생이 생전에 수십 년 간 친밀하게 교유했던 원로 여류 화가이다.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아 대중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년에 이미 감 그림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연민 선생은 생전에 문 화백과 깊은 예술적 교유를 하였으나 그 교유 역시 가까운 지인들이나 제자들에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교유가 학술적으로 중요한 것은, 문 화백의 수많은 작품에 연민 선생이 직접 화제(畫題)를 써서 남겼기 때문이다.
문은희 화백은 고등학교 때 남관(南寬) 화백에게 철저한 작가 정신을 배우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 천경자 등 당대 최고 대가들에게 그림을 배웠다. 중년까지 감 그림으로 일가를 이루고, 중년 이후에 누드 크로키 분야를 개척하여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일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를 계기로 프랑스 파리에도 진출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연민 선생과는 일찍이 1970년대 초반에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교유를 시작하여 수십 년 간 그림과 화제로 예술적 만남을 지속하였다. 문 화백의 그림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누드 크로키라고 할 수 있으며, 연민 선생의 화제도 누드 크로키에 대한 것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이 화제가 여태까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고 문 화백 개인 소장으로만 잠자고 있었는데, 이에 이 작품을 소개하여 연민학(淵民學)의 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한다.
연민 선생의 화제에서 일관되게 표현한 것은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의 내면에 흐르는 고독, 우수, 고통 등이다. 이는 문 화백이 그림 인생에서 몸소 겪은 삶의 여정과 일치한다. 그런 면에서 연민 선생은 문 화백의 진정한 지음(知音)이었다.
연민기념관 등에 아직 정리하지 못한 연민 선생의 화제가 더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조사, 수합하여 미공개 유묵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거장의 예술을 통한 역사적 교유가 우리 인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빛낼 수 있을 것이다.


Artist Sowon Moon Eun-hee is a senior female painter. She has been intimate with Yonmin Lee Ga-won for decades when he was alive. She is not well known to the public because she is not active in public activities. But in the middle of her life, she was already famous for his work of persimmon painting. The friendship between the two is very important academically, because Yonmin wrote his own comments in her art works.
Moon Eun-hee learned painting from the greatest masters of her time. After middle age, she pioneered the field of nude croquis and reached a unique position. Her art works are highly acclaimed, especially in Japan. With this opportunity, she also entered Paris, France, and received favorable reviews.
In the early 1970s, Moon Eun-hee and Yonmin began to become friends while working on ceramics. For several decades after that, they continued their artistic encounters through her paintings and his comments written in her works.
Moon's most prominent achievement in painting is nude croquis, and Yonmin's comments written in her works are also remain the most about nude croquis. But the comments are not known anywhere until now. Therefore, I would like to supplement a part of Yonminhak(淵民學) by introducing these comments.
What Yonmin consistently mentioned in these comments are solitude, anxiety, and pain flowing within the artist. These are consistent with the experiences Moon Eun-hee experienced in her painting life. In that respect, Yonmin was a true friend who recognized Moon Eun-hee's heart.
There will be more works of Yonmin in the 'Yonmin memorial hall(淵民記念館)' and others that have yet to be organized. It is necessary to investigate them and organize undisclosed works. That way, the artistic interaction between the two masters will shine a page in our humanities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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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홍대용 연행 일행과 청대 문인 간 교류 시문의 창작과 개변 양상 고찰

저자 : 유정 ( Liu Jing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8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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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홍대용 연행 일행이 청대 문인들과 북경에서 직접 교류한 시문 작품의 창작 내용과 형식, 관련 시문 작품을 각자 편집하는 과정에서 개편(改編)한 양상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홍대용 일행은 1766년 2월 중국 북경에 도착하여 항주(杭州)에서 온 3명의 선비들과 만나서 시문 수창과 서찰을 통해서 교류를 전개하였다. 그들이 교류한 시문 작품은 창화시(唱和詩). 제화시(題畫詩), 영물시(詠物詩), 집구시(集句詩), 또는 서찰(書札)과 기문(記文)이 있으며, 시문 작품의 대부분은 절구(絶句)와 율시(律詩)로 창작된 것이었다. 홍대용 일행이 조선으로 귀국하여 그들이 가져온 시문의 원고를 서찰첩(書札帖), 재편집본인 ≪건정부편(乾凈附編)≫과 ≪건정후편(乾凈後編)≫ 등 여러 문헌들로 편집하였고, 청대 문인인 엄성(嚴誠)이 보관한 시문 작품은 주문조(朱文藻)에 의하여 ≪일하제금집(日下題襟集)≫으로 편집되었다. 이러한 문헌들은 각자 재편하는 과정에서 다시 수정하고 개편되었는데, 예를 들면, 제목(題目)의 수정(修訂), 구절(句節)의 삭제 및 증보(增補) 등 여러 양상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는 홍대용 일행이 북경에서 청나라 문인들과 만나서 주고받은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을 파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텍스트들은 원본(原本)부터 정본(定本)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개편된 여러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학문적 가치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향후 홍대용과 청대 문인의 문학과 학술 등 분야를 연구하는데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사료된다.


This study focused on the creation and format of poetry works that Hong Da Rong and his Yeon Hang(燕行) group exchanged directly with Qing's scholars in Beijing, and the reorganization of related poetry works in the process of editing them separately. Hong Da Rong arrived in Beijing in February 1766 and frequently met with three scholars from Hangzhou, China, to engage in scholarly exchanges through poetries and letters. The poetry that Hong Da Rong and his group interacted with these Chinese scholars was called the the poetry of Changhe(唱和詩), the poetry of the subject with pictures(題畫詩), the natural poetry(詠物詩), the poetry of JiJu(集句詩), or letters and writings. most of the poems were created with mortar and verse. Hong Da Rong and his Yeon Hang(燕行) group returned to Chosun and edited the manuscripts of the exchange poems into various literature, including the book of exchange letters between him and Qing's scholars, the re-edited version of the Ganjingfubian(乾凈附編) and Ganjinghoubian(乾凈後編), and the works of poetry kept by Qing's scholars Yan Cheng(嚴誠), were edited as Rixia tijinji(日下題襟集) by Zhu Wen Zao(朱文藻), who was a friend. These texts were re-modified and edited in their respective reorganizations, for instance, there were many aspects to the title, correction, deletion, and extension of the phrase. This study focused on identifying the specific contents and forms of Hong Da Rong's group who had the meeting with Qing's scholars in Beijing and interacting directly with them, and the text of the works interacted with these scholars has an academic value that allows them to identify various aspects that have changed in the process of proceeding from the original to the original. Therefore, this study offers as valuable data for future research on Hong Da Rong and Qing Dynasty's literatures and academic fi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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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19년 조선 통신사와 중국의 왜정 탐사

저자 : 니엔쉬 ( Nian Xu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7-205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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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이하쿠고시 신레이(海舶互市新例)≫가 도입된 후 청나라 내부에서는 일본의 신패(信牌)를 받아들일지 여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1717년 청나라는 강희제의 강력한 주장으로 마지못해 신패를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1719년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게 되자 청나라는 이 사행을 통해 일본의 정세를 탐지하고자 했고, 결국 일본은 외국을 침략할 야욕이 없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719년 통신사(기해통신사)를 통해 청나라는 일본에 대한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고, 이로써 중일 신패 무역제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 볼 때 조선 통신사는 조일 관계뿐 아니라 중일 관계사의 한 부분으로서 중국이 일본을 이해하고 대일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근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통신사가 동아시아의 범위에서 더 넓은 함의를 갖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When Qing dynasty learned about Japanese new trade policy called Kaihakugoshi Shinrei in 1716 year, a heated debate took place within the Qing dynasty untill 1717 year. In order to maintain the Qing-Japan trade, Qing accepted Japanese new policy, but still had some doubts for Japan. Soon after, Joseon tongsinsa would go to Japan in 1719 year, so Qing once again used Joseon route to explore the situation of Japan, and finally learned that Japan had no aggressive ambition, no need to worry. From here we can see that Joseon tongsinsa is not only between Japan and Joseon, but also is a part of the history of China-Japan relations, is an important pillar for China to understand Japan and formulate policies towards Japan, Joseon tongsinsa has more broader significance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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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공동체문화, 그 역사적 사실 근거로서의 비평 -손무의 5사(事) 7계(計), 그 정치원칙 및 자연환경의 변화를 중심으로-

저자 : 이정미 ( Lee Jung-mi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7-23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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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무의 5사(事) 7계(計) 승리의 원칙에서는, 단위의 일체화, 권역의 다원화, 영역의 범주화로서 그 공동체문화 관련 군사정치에서의 조건, 특성, 다양성 등에 의하여 시대사조 흐름과 그 지시적 가능성으로 원화(圓化)한다. 이때 그 각각의 문화권에서는, 후대 지식인들에 의하여 사회형태 요소와 그 요인에 의한 인문, 예술, 철학, 사회과학 학제 간 융합의 성격으로 공통적 가치관과 그 이념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군사정치 공동체문화와 그 문화공동체 범주 및 영역의 분별에서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혹은 세부 단위 공동의 역할로서, 그리고 특정집단화 한, 그 군사정치 질서화에 기여하며 동시에 이에 대한 전략, 교육, 법제, 훈련 등의 이론, 실행, 실천의 문제로 논의한다. 그것은 우주자연의 법칙에 위배하는 전쟁의 잔혹성을 말하는 것이며 인간의 본질이 공동체 의식을 인식하는 범주 안에서 그 본질과 가치가 사회로 회귀하는 데에서 발전적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인류문명공동체 시야에서의 세계 안전은 공공안전 문화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는 전통성과 비전통성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데에서 그 주지적 견해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것의 최종 목표는 도덕 실천으로서 간지역의 습속, 풍속, 의례, 이념, 가치 등 그 유구한 역사 과정에서 고찰할 수 있는 공동체문화의 본질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밝히는 문화 기술 비평 작업이다. 요컨대 인간은 누구나 일종의 도덕의식으로서 그 삶을 영위한다. 보편적 도덕의식이 완전히 결핍되어 있는 인간은 드물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으로서 인생의 여정에서 최소한 혹은 최대한의 양심적 삶의 행위와 행동으로 사회적 실천적 생활의 경제적 활동을 한다. 여기에서 도덕적 삶의 경제 활동 혹은 경제적 삶의 도덕적 활동의 분류에서는 양자의 도덕성과 경제성의 동일적(同一的) 동이적(同異的) 개념으로 논하고자 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의 바탕이 되는 도덕적 경계에서의 유용(有用), 순수(純粹), 효용(效用), 기술(技術), 이기(利己)의 개념으로 대립, 확장, 발전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The principle of Sun Wu's “five causes and seven strategies” is the integration of units, the diversification of circles, and the categorization of fields. According to the conditions, characteristics, and diversity of military politics related to his community culture, the trend of thought of the times and its indicative possibility can be realized. At this time, in their respective cultural circles, according to the social form elements and their factors of future generations of intellectuals, the fusion character among humanities, art, philosophy and social science educational system influences the common values and ideas.
In other words, the culture of the military political community and the distinction between its categories and fields of cultural community play a common role as social members or as detailed units, and contribute to the specific collectivization and its military political order. At the same time, it also contributes to the theory, practice and practice of strategy, education, legal system and training It is discussed as a practical problem.
It emphasizes the cruelty of war against the natural laws of the universe. Within the scope of the awareness of the community of human nature, its essence and value are developing in returning to the society.
Nevertheless, the world security in the vision of human civilization community also proves its main view in overcoming and restoring the traditional and non- traditional aspects that contribute to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public security culture. Its ultimate goal is to explore what the essence of community culture means in the long historical process of moral practice, such as the customs, customs, etiquette, ideology, values and so on.
In a word, everyone lives with a moral consciousness. Few people are completely devoid of universal moral consciousness. Therefore, as human beings, in the journey of life, human beings carry out economic activities of social practice life with the least or maximum conscience life behavior and action. Here, the classification of economic activities or moral activities of economic life is discussed in the same concepts of morality and economics of both, and on the basis of politics, society, culture and art, the concepts of useful, pure, effective, technical, lucrative and wisdom in moral boundaries emphasize the possibility of confrontation, expansion, and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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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민 이가원의 학문연원과 외재 정태진 -교류서신을 중심으로-

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3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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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래 한문학 연구의 1세대 학자인 연민 이가원(1917~2000) 선생의 업적과 끼친 학덕은 퇴계학과 성호학, 다산학을 이은 연민학이 성립하고 그를 연구하는 학회가 설립된 것에서 보듯 매우 뚜렷한 바가 있다. 연민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와 영향은 물론 그 개인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소산이지만 사우(師友)의 가르침과 연마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연민은 고향 안동의 향리에서 어려서부터 많은 스승들에게서 배우고 또 격려와 기대를 받았다. 그런데 여러 스승 가운데서도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 1876~1956)은 매우 특별하다. 연민은 6살이 되지도 않았을 때 막 어머니의 품을 떠나 외재에게 나아가 글을 읽으며 사제간의 인연을 이어갔다. 연민은 외재의 제문(祭文)에서 “제가 선생을 따라 공부한 것이 전후 20여 년으로 가장 오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외재 정태진은 연민 이가원과의 학술문답을 통해 정당한 학문에 이르는 道에 대해 가르치며, 당시 맹자를 읽는 과정에 있었던 연민에게 전통적이면서도 철저하게 성리학적 이상을 견지한 경학을 중시하는 학문으로의 정도(正道)를 가르쳤다. 그러나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되는 격변기를 살아낸 연민은 변영만과 정인보 등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경학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학에 더욱 큰 관심을 보였고, 주목할 만한 성취를 발휘하기도 했다. 고전의 국역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고전의 현대화 초기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사제간에 학문 경로에 대한 견해차가 적지 않게 노출되었음에도 연민이 여전히 경학에 대한 향념을 가지고 중시한 것은 그의 경학 스승이었던 외재 정태진의 절대적인 영향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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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외재(畏齋)의 선유구곡시(仙遊九曲詩)에 나타난 산수 인식

저자 : 이정화 ( Lee Jeong-hwa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5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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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서 이루어진 외재의 강학(講學) 활동은 연민(淵民)을 위시하여 후학들에게 유도(儒道)를 전수한 것이 핵심이다. 퇴계와 퇴계학맥의 학자들이 선유동의 아홉 물굽이를 찬탄한 것은 천리(天理)를 체득할 수 있는 학문의 공간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외재는 선유구곡(仙遊九曲)을 경영함으로써 이러한 전현(前賢)들과 심정적으로 합치하였다. 문경에의 귀거래를 선택한 외재의 시 정신은 선유구곡의 명칭에 담겨있다. 이는 또한 산수(山水)에 둔 자신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외재시에는 선유구곡에서 함양할 수 있는 청정심이 담겨있다. 청정심이야말로 산수가 그에게 제공하는 시 정신의 핵심이다. 그의 산수 생활은 이러한 시 정신을 형상화하는 가운데에서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탁청대(濯淸臺)>에는 도의(道義)의 구현에 마음을 쓰는 학자의 시 정신이 담겨있는데, '완심(玩心)'이 그것이다. 이 시를 통해 손재의 구도적(求道的) 시 정신이 외재에게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심대(洗心臺)>에서는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수양의 공간이 바로 이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선유동의 아홉 물굽이를 유람한 후 이를 근거로 한 자신의 산수 체험을 시화하였다. 이는 자족(自足)의 마음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영귀암(詠歸巖)>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물을 관조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보인 작품이 <관란담(觀瀾潭)>이다. 또한 <옥하대(玉霞臺)>에는 백운(白雲)이 모였다 흩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내면을 관조하는 화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세속적인 욕망에 마음을 쓰지 않는 대인의 마음이 바로 초탈의 시경(詩境)을 형성하는 동인(動因)이라 하겠다. <옥석대(玉舃臺)>에 나타난 선취(仙趣)는 탈속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선유구곡시에서는 산수 자연을 묘사하기 위한 화려한 수식이 나타나 있지 않으며, 산수 자연에 둔 뜻을 밝히거나 덕성을 중시한 그의 지론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퇴계학맥의 시 정신과 동궤의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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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옥류산장시화(玉溜山莊詩話)』에 나타난 허난설헌의 문학사적 위상 -『조선문학사(朝鮮文學史)』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저자 : 최재원 ( Choi Jae-won ) , 구지현 ( Koo Jea-hyoun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1-9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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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허난설헌에 대한 제가의 평은 시에 대한 논평, 표절과 위작시비, 와전된 기록에 대한 수정으로 정리된다. 중국까지 널리 알려져 있던 만큼 허난설헌 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여성의 문학 창작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기반으로 표절과 위작시비나 인품에 대한 폄하도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시 외적인 측면에서의 부당한 평가로 인해 문학적 성취에 준하는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연민 이가원의 『옥류산장시화』는 저자 자신의 평가에 따른 산삭이 이루어진 전통적인 시화집으로 총 787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허난설헌 관련 시화는 25칙에 이르러, 여타 문인보다 많은 주목도를 보인다. 그런데 『옥류산장시화』는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은 채택하지 않는 산삭의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허난설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전문을 실어, 폄훼에 가까울 수 있는 정보는 누락시키고 독자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후 이 시화들은 『조선문학사』에 대부분 수용되어, 허난설헌을 평가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었다. 그와 동시에 기존 오류를 교정하고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았으며, 외적인 평가를 제거한 상태에서 허난설헌의 시풍을 고찰하였다. 생애와 작품, 기존의 평을 정리하는 것에 그친 근대 초기의 연구를 뛰어넘어 허난설헌을 시인으로 재조명하고 문학사적 위치를 자리매김한 것이다.
『옥류산장시화』는 '서언-본론-결어'라는 근대의 논문형식을 차용하였으나 전통적인 시화의 형식을 따르는 저작이고, 『조선문학사』는 연민의 만년에 저술된 문학사 연구가 집대성된 학술서이다. 『옥류산장시화』을 분기점으로 허난설헌의 기존 시화가 다시 정리되었고 『조선문학사』에서 실증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다. 연민에 이르러 허난설헌이 재발굴되어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문학적 위상이 재정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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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서주(西洲) 김사진(金思鎭)의 삶과 학문성향

저자 : 권오영 ( Kwon Oh-young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1-12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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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진(金思鎭. 1878~1954)은 근현대의 유학자로 이병호(李炳鎬)와 곽종석(郭鍾錫)의 문인이다. 그는 이진상(李震相)-곽종석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이어받아 지지하였다. 그는 심성이기(心性理氣) 등의 개념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여 정리하였고, 심지어 왕수인(王守仁)의 심즉리설까지 인정하였다.
김사진은 성리학의 전통을 이은 학자였지만, 한(漢)대의 훈고학(訓詁學)과 송(宋)대의 이학(理學)을 뛰어넘어 실심(實心)과 실사(實事)를 강조한 실학(實學)의 학문성향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육경(六經)을 중시하던 시대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인해 무너지고, 한대에 훈고를 중시하는 독서(讀書)의 시대가 열렸고, 송대에는 다시 담리(談理)의 시대가 열려 점점 경세(經世)를 중시하는 실학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이해했다. 그는 독서나 담리를 통한 지식보다는 덕성(德性)과 실사를 강조한 학풍을 지닌 학자였다. 그는 조선 후기 학자인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애독하고, 유형원을 '천년의 경제(經濟)의 대가'로 추존하였다. 그는 경세의 학(學)을 강조하면서 조선 근세 이후 자기 당대까지의 무용(無用)의 학을 개탄하였다.
이가원(李家源)은 김사진의 문인(門人)이다. 그는 조부 이중인(李中寅)이 김사진과 친한 관계로 인해 김사진의 문하에 30여 년간 출입하면서, 실심과 실사에 근거한 실학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박승진(朴勝振)과 김사진이 주고받은 편지와 김사진의 가르침을 통해 유형원ㆍ이익(李瀷)ㆍ박지원(朴趾源)의 경세의 학의 대강을 들었다. 이러한 학문적 계기로 그는 평생 실학을 즐겨 담론하였고 실학 관련 자료를 집성하였다. 그가 학문연구의 방향과 주제를 실학으로 정하여 평생 박지원 등의 실학파의 문학과 사상을 깊이 연구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김사진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학문적 영향이 컸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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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소원(小園) 문은희(文銀姬) 화백의 예술 작품과 연민(淵民) 선생의 화제(畫題)

저자 : 김영봉 ( Kim Young-bong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5-15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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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小園) 문은희(文銀姬) 화백은 연민(淵民) 선생이 생전에 수십 년 간 친밀하게 교유했던 원로 여류 화가이다.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아 대중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년에 이미 감 그림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연민 선생은 생전에 문 화백과 깊은 예술적 교유를 하였으나 그 교유 역시 가까운 지인들이나 제자들에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교유가 학술적으로 중요한 것은, 문 화백의 수많은 작품에 연민 선생이 직접 화제(畫題)를 써서 남겼기 때문이다.
문은희 화백은 고등학교 때 남관(南寬) 화백에게 철저한 작가 정신을 배우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 천경자 등 당대 최고 대가들에게 그림을 배웠다. 중년까지 감 그림으로 일가를 이루고, 중년 이후에 누드 크로키 분야를 개척하여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일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를 계기로 프랑스 파리에도 진출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연민 선생과는 일찍이 1970년대 초반에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교유를 시작하여 수십 년 간 그림과 화제로 예술적 만남을 지속하였다. 문 화백의 그림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누드 크로키라고 할 수 있으며, 연민 선생의 화제도 누드 크로키에 대한 것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이 화제가 여태까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고 문 화백 개인 소장으로만 잠자고 있었는데, 이에 이 작품을 소개하여 연민학(淵民學)의 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한다.
연민 선생의 화제에서 일관되게 표현한 것은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의 내면에 흐르는 고독, 우수, 고통 등이다. 이는 문 화백이 그림 인생에서 몸소 겪은 삶의 여정과 일치한다. 그런 면에서 연민 선생은 문 화백의 진정한 지음(知音)이었다.
연민기념관 등에 아직 정리하지 못한 연민 선생의 화제가 더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조사, 수합하여 미공개 유묵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거장의 예술을 통한 역사적 교유가 우리 인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빛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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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홍대용 연행 일행과 청대 문인 간 교류 시문의 창작과 개변 양상 고찰

저자 : 유정 ( Liu Jing )

발행기관 : 연민학회 간행물 : 연민학지 3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8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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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홍대용 연행 일행이 청대 문인들과 북경에서 직접 교류한 시문 작품의 창작 내용과 형식, 관련 시문 작품을 각자 편집하는 과정에서 개편(改編)한 양상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홍대용 일행은 1766년 2월 중국 북경에 도착하여 항주(杭州)에서 온 3명의 선비들과 만나서 시문 수창과 서찰을 통해서 교류를 전개하였다. 그들이 교류한 시문 작품은 창화시(唱和詩). 제화시(題畫詩), 영물시(詠物詩), 집구시(集句詩), 또는 서찰(書札)과 기문(記文)이 있으며, 시문 작품의 대부분은 절구(絶句)와 율시(律詩)로 창작된 것이었다. 홍대용 일행이 조선으로 귀국하여 그들이 가져온 시문의 원고를 서찰첩(書札帖), 재편집본인 ≪건정부편(乾凈附編)≫과 ≪건정후편(乾凈後編)≫ 등 여러 문헌들로 편집하였고, 청대 문인인 엄성(嚴誠)이 보관한 시문 작품은 주문조(朱文藻)에 의하여 ≪일하제금집(日下題襟集)≫으로 편집되었다. 이러한 문헌들은 각자 재편하는 과정에서 다시 수정하고 개편되었는데, 예를 들면, 제목(題目)의 수정(修訂), 구절(句節)의 삭제 및 증보(增補) 등 여러 양상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는 홍대용 일행이 북경에서 청나라 문인들과 만나서 주고받은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을 파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텍스트들은 원본(原本)부터 정본(定本)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개편된 여러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학문적 가치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향후 홍대용과 청대 문인의 문학과 학술 등 분야를 연구하는데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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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니엔쉬 ( Nian X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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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공동체문화, 그 역사적 사실 근거로서의 비평 -손무의 5사(事) 7계(計), 그 정치원칙 및 자연환경의 변화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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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무의 5사(事) 7계(計) 승리의 원칙에서는, 단위의 일체화, 권역의 다원화, 영역의 범주화로서 그 공동체문화 관련 군사정치에서의 조건, 특성, 다양성 등에 의하여 시대사조 흐름과 그 지시적 가능성으로 원화(圓化)한다. 이때 그 각각의 문화권에서는, 후대 지식인들에 의하여 사회형태 요소와 그 요인에 의한 인문, 예술, 철학, 사회과학 학제 간 융합의 성격으로 공통적 가치관과 그 이념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군사정치 공동체문화와 그 문화공동체 범주 및 영역의 분별에서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혹은 세부 단위 공동의 역할로서, 그리고 특정집단화 한, 그 군사정치 질서화에 기여하며 동시에 이에 대한 전략, 교육, 법제, 훈련 등의 이론, 실행, 실천의 문제로 논의한다. 그것은 우주자연의 법칙에 위배하는 전쟁의 잔혹성을 말하는 것이며 인간의 본질이 공동체 의식을 인식하는 범주 안에서 그 본질과 가치가 사회로 회귀하는 데에서 발전적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인류문명공동체 시야에서의 세계 안전은 공공안전 문화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는 전통성과 비전통성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데에서 그 주지적 견해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것의 최종 목표는 도덕 실천으로서 간지역의 습속, 풍속, 의례, 이념, 가치 등 그 유구한 역사 과정에서 고찰할 수 있는 공동체문화의 본질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밝히는 문화 기술 비평 작업이다. 요컨대 인간은 누구나 일종의 도덕의식으로서 그 삶을 영위한다. 보편적 도덕의식이 완전히 결핍되어 있는 인간은 드물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으로서 인생의 여정에서 최소한 혹은 최대한의 양심적 삶의 행위와 행동으로 사회적 실천적 생활의 경제적 활동을 한다. 여기에서 도덕적 삶의 경제 활동 혹은 경제적 삶의 도덕적 활동의 분류에서는 양자의 도덕성과 경제성의 동일적(同一的) 동이적(同異的) 개념으로 논하고자 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의 바탕이 되는 도덕적 경계에서의 유용(有用), 순수(純粹), 효용(效用), 기술(技術), 이기(利己)의 개념으로 대립, 확장, 발전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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