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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긴키지역의 고대 백제계(韓系) 이주민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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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지역의 고대 백제계(韓系) 이주민의 연구

A study on the ancient immigrants from Baekje(Korean peninsula) in the Kinki region

中久保 辰夫 ( Nakakubo Tatsuo )
  •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 백제연구 74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8월
  • : 81-134(54pages)
백제연구

DOI


목차

Ⅰ. 머 리 말
Ⅱ. 도래계 문물에 대하여
Ⅲ. 3~4세기 동아시아 세계와 교역망
Ⅳ. 「왜 오왕」시대와 도래인의 주소
Ⅴ. 신도유적 : 한반도계 이주민과 수공업 생산, 지역개발 시작시기
Ⅵ. 후루유적 : 취락유적으로 본 고대 호족들의 권력기반
Ⅶ. 하리마 지역: 긴키 주변부의 양상
Ⅷ. 6세기의 한반도계 이주민
Ⅸ. 맺 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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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은 서기 3세기에서 6세기를 대상으로 한반도와의 문화적 교류와 이주민이 일본 열도의 사회와 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한다. 토기 자료를 중심으로 한일 이주민이 수행한 역할을 정리하면, 이주민의 역사적 역할은 3세기에서 4세기 초엽의 교역에서 5·6세기의 인적 교류와 정착을 통한 기술과 지식의 도입으로 이행된다. 또한, 중기 말부터 후기 사이에는 백제를 통한 한반도계 이주민의 존재도 뚜렷해지고 있다.
한인 이주민들이 재래사회에 끼친 영향은 취락유적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실증할 수 있다. 본론에서는 奈良縣의 新堂유적, 布留유적, 兵庫縣 남서부의 播磨지역을 다루었다. 新堂유적에서는 수륜연대보정분석을 통해 5세기 초엽을 나타내는 河道 출토 항렬과 풍부한 한반도계 토기가 출토되었고, 鍛冶 관련유물과 말뼈 등이 수반되었다. 수공업 식산과 한반도계 이주민의 밀접한 관계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布留유적 사례연구에서는 5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수공업 생산의 확충과 지역개발을 권력기반으로 유력 호족들이 대두하는 과정이 밝혀졌다. 또 播磨지역 분석으로는 한반도계 이주민들의 거주 유적이 훗날 고대 육로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러한 이주민을 통한 문화교류와 사회 자본투자는 왜의 고대국가 형성에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In this paper, the author considers the effects that cultural interaction wit h and immigration from the Korean peninsula had on the society and culture of the Japanese archipelago from the 3rd to 6th century AD. Consideration of the historical role of immigration from the Korean peninsula based on an analysis of pottery reveals that while trade was prominent in the 3rd to early 4th centuries, the 5th and 6th centuries witnessed a significant shift to the actual movement and settling down of people, leading to the introduction of new technology and knowledge. Additionally, from the end of the Middle Kofun period to the Late Kofun period, the existence of immigrants from China, through Baekje, has come to light in recent years.
The influence of immigrants from the peninsula on local society can be a scertained through archaeological excavation of and research on settlement sites. In this paper, the author considers the Shindō site (Nara Prefecture), Furu site (Nara Prefecture), and the sites of Harima province in the southwestern Hyogo Prefecture. At the Shindō site, analysis of the tree-ring oxyge n isotope ratios of a row of wooden spikes from a river revealed that the a ccompanying Korean-style stoneware, ironworking objects, and horse bones belonged to the first third of the 5th century, suggesting an intimate relationship between the spread of craft production and immigrants from the Kore an peninsula. At the Furu site, the process by which a powerful elite group rose to power in the 5th and 6th centuries based on the expansion of craft production and regional development has been greatly clarified. Additionally, the Harima case study reveals the possibility that settlement sites populated by peninsular immigrants had strong connections to ancient roadways.
The author proposes that this cultural interaction and investment in infra structure supported by immigrants had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ancient state formation of the Japanese archipelago.

UCI(KEPA)

I410-ECN-0102-2022-900-000755338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226-6906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0-2022
  • :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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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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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삼한 분묘 출토 유개대부토기 연구

저자 : 金希玲 ( Kim Heeryeong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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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세기대를 중심으로 경기, 호서, 영남지역의 분묘에서 확인되는 유개대부토기의 속성을 검토하여 형식 변천 과정과 기원 및 확산 과정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유개대부토기는 대각 위 동체부의 형태에 따라 유개대부호, 유개대부발, 유개대부배로 분류하였으며 각 기종별로 유효한 속성을 파악하여 형식을 분류하였다.
유개대부토기와 공반 출토되는 원저 및 평저심발형토기, 철모, 철검을 검토하여 유개대부토기를 5단계로 나누었다. 2세기 전반에 가장 이른 형식인 유개대부호와 유개대부발 1식이 확인되며 2단계는 2세기 후반으로 유개대부호 2식①과, 유개대부발 2식, 3단계는 3세기 전반으로 유개대부호 2식②, ③과 유개대부발 3식, 유개대부배 1식, 4단계는 3세기 중반으로 유개대부호 3식②, 유개대부호 4식, 유개대부발 4식, 유개대부배 2식과 3식이 확인된다. 5단계는 4단계가 지속되는 단계로 유개대부토기와 평저심발형토기의 공반 출토 사례를 하한으로 3세기 후반으로 설정하였다.
유개대부토기의 기원은 기존 집단에서 발생했다기보다는 중국, 낙랑 등의 영향으로'유개대부토기'라는 토기 속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집단이 호서 북부지역으로 유입된 후, 유개대부토기를 제작하였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외부 집단은 기존 집단으로 유입되어 공존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기존 집단과는 다른 묘제 및 부장품을 선택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유개대부토기는 호서 북부지역에서 경기 및 영남지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호서 북부지역인 아산 용두리 진터 유적에서 가장 이른 형식이 확인되고 경기 남부지역의 평택 마두리 유적에 영향을 미쳤으며, 동쪽으로 이동하여 천안, 청주, 세종시로 확산된 것으로 생각된다. 호서와 영남 내륙지역을 연결할 수 있는 유적의 자료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 경상북도 상주시, 김천시, 구미시 등에서 두 지역을 연결할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한다.


This study is aimed at understanding the characteristics of mounted potteries with lid by examining the changes in the attributes of mounted potteries with lid from the Proto Three Kingdoms Period, categorizing them according to their styles, and reviewing the changes in the styles, the origin of mounted potteries with lid, and the patterns of their dissemination.
Mounted potteries with lid made by Mahan and Jinpyonhan-the confederacies that existed in the Proto Three Kingdoms Period-were earthenware used for ritualistic purposes. They are exclusively found in ancient tombs. Mounted potteries with lid are jars, bows, and dishes with lids in the shape of a hat or a mushroom, with trumpet-shaped horns attached to the body. They are found in the Gyeonggi region, the Hoseo region (Chungcheongnam-do and Chungcheongbuk-do), and the Yeongnam region (Gyeongsangnam-do and Gyeongsangbuk-do).
This study classified mounted potteries with lid into five stages, depending on their styles and whether they are excavated with round-bottomed bowl and/or iron spearheads. Stage 1 potteries consist of a mounted jar with lid (①, ②) and a mounted bowl with lid. Stage 2 potteries consist of two mounted jars with lid① and two mounted bowls with lid. All three forms of potteries are found in Stage 3, which consist of three mounted jars with lid, three mounted bowls with lid, and a mounted dish with lid. Stage 4 potteries include four mounted jars with lid, four mounted bowls with lid, and two mounted dishes with lid. Stage 5 potteries consist of four mounted dishes with lid.
Mounted potteries with lid were created under the influence of the burial styles of Han Dynasty tombs. The potteries spread from the coastal areas in the Hoseo region to the Gyeonggi region in the north, and Cheonan and Cheongju in the east. Exchanges among the Gyeonggi, Hoseo, and Yeongnam regions seem to have taken either inland routes or coastal routes. As for the origin of mounted potteries with lid, they seem to have spread from the Gyeonggi region to the Hoseo region, and then to the Yeongnam region. While it is difficult to clearly identify the origin and spread of mounted potteries with lid, in the Proto Three Kingdoms Period, Mahan and Jinpyonhan are likely to have shared common elements of the pottery culture, with different areas producing and developing their own styles of potteries. Identification of the origin and dissemination of the potteries is restricted by the scarcity of evidence found so far, which will be hopefully addressed by further studies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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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제 용봉문 환두대도의 전파 양상

저자 : 梁晋碩 ( Yang Jinseok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6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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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5~6세기 한반도 중부 및 남부지역과 일본에서 발견되는 용봉문 환두대도를 살펴보았다. 연구 목적은 백제지역에서 출토된 용봉문 환두대도가 다른 지역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며 전파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세분된 제작기법으로 용봉문 환두대도의 제작지를 검토하는 연구에서 다양한 제작기술이 중복된 사례의 경우 제작지를 특정할 수 없다는 한계가 확인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확연히 구분되는 제작기술과 더불어 용봉문 도상의 중요성이 크다고 인지하고 단순히 도상 종류를 파악하는 것에서 도상의 비교를 통해 용봉문 환두대도의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지역성이 뚜렷한 제작기법을 선별하기 위해 유물을 실견하고 분류된 속성들을 형식별로 구분하였다. 이들의 시간성을 확인하기 위해 선행 편년 연구를 참고하여 형식별 연대를 파악하였다. 그 결과 각 형식 연대가 뚜렷한 경계를 보이지 않아 출현기와 확립기라는 두 단계를 설정하였다.
출현기에는 백제 지역 출토품에서 외환 근교형(筋交型) 주룡문과 환내 중앙장식인 단봉문은 문양의 퇴화라는 측면에서 백제 지역 내에서 뿐만 아니라 가야지역까지 형식학적 연속성이 확인된다.
확립기에는 환내 중앙장식 단룡문과 외환 식합형(喰合型) 주룡문은 무령왕릉 출토품에서 시작돼 왜 지역에 문양 퇴화 측면에서 형식학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가야지역에는 고령 지산동 구(舊)39호분(현 5호분)의 단룡 환두대도 외에 도상적 측면에서 연속성이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확립기 이후 가야지역에서 가야만의 독창적인 용봉문 환두대도 문화를 전개함과 동시에 백제지역에서 아직까지 비교 대상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하기에 차후 자료가 보완된다면 확립기 단계에서 백제와 가야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This paper reviewed iron swords with dragon and phoenix-decorated ring pommel discovered in the 5th-6th century, central and southern regions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confirm how iron swords with dragon and phoenix-decorated ring pommel excavated in the Baekje region in the Korean Peninsula affected and spread to other areas.
In addition, it is noted that in the research to examine the places where iron swords with dragon and phoenix-decorated ring pommel were manufactured with the manufacturing techniques sub-divided until recently, there is a limitation that it is not possible to specify the places of production if there are overlapping various production techniques. Thus, Along with the clearly distinguished production technique, this study recognized that the image of the pattern of dragon and phoenix is of great importance, and breaking from simple assessment of the type of the images, this study investigated iron swords with dragon and phoenix-decorated ring pommel through a comparison of the images.
First, this study actually inspected the relics and divided the properties classified to select the production technique with the distinct locality. To check their temporality, this study assessed the period of each form, referring to the preceding chronological studies. As a result, there was no clear boundary of chronology between forms, so this study set up two stages, the stage of emergence and the stage of establishment.
In the stage of emergence, in the objects excavated in the Baekje region, outer bracing type two-dragon motif in sword with ring pommel and inner central decoration type single phoenix motif in terms of the degeneration of the pattern, formal continuity is found in the Kaya region as well as in the Baekje region.
In the stage of establishment, inner central decoration single dragon motif and outer eating type two-dragon motif in sword with ring pommel started in the objects excavated in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so formal continuity is found in the Wa (Japan) region in terms of the degeneration of the pattern. In the Kaya region, no continuity is found in terms of the image, except for a single dragon pattern sword with ring pommel in former Tomb No. 39 of Jisandong in Goryeong (Tomb No. 5). And yet, after the stage of establishment, the Kaya region developed its own original culture of an iron sword with dragon and phoenix-decorated ring pommel, and no comparable relics were discovered yet in the Baekje region. Thus, it is expected that it would be possible to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Kaya more clearly in the stage of establishment if data are supplem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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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공주 정지산유적 출토 백제 수키와의 연구

저자 : 李炳鎬 ( Lee Byongho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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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지산유적에서 출토된 유단식수키와의 기술적인 특징과 조합 양상, 계통, 제작시기 등을 명확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Ⅱ장에서는 정지산유적에서 출토된 유단식수키와의 기술적인 특징을 검토하고 제작기법을 추정하였다. 선행 연구에서 부족했던 수키와의 제작 기법에 대한 이해를 위해 부여나 경주, 일본의 유사 사례를 참고하여 크게 2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2유형의 제작과정을 【도면 6】과 같이 복원할 수 있었다. 정지산유적의 유단식수키와는 【도면 3】의 A1기법과 A2기법이 모두 확인되지만 양자는 태토나 크기 등이 달라 서로 다른 공방이나 공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Ⅲ장에서는 정지산유적의 유단식수키와와 연화문수막새의 조합 관계 등을 검토하여 그 제작시기를 추정하였다. 정지산유적의 연화문수막새는 부여 동남리사지나 관현리가마터 출토품과 同笵品으로 6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연화문수막새가 유단식수키와와 서로 연결된 기와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정지산유적의 유단식수키와들은 대통사지로 추정되는 반죽동 197-4번지나 204-1번지 출토 유단식수키와들과 기술적인 특징이 상통한다. 또 무령왕릉 출토 벽돌과 동일한 문양 전이 함께 출토된 점을 감안하면 그 제작시기는 웅진기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단식수키와들은 중국 南京 지역 유단식수키와가 A1기법으로 제작되고 회전물손질한 흔적이 남아 있는 점을 볼 때 남조의 영향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A2기법의 경우 일부 백제적인 변형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to examine the technical characteristics, interlocking system, genealogy and production dates of the stepped convex roof tiles discovered at the Jeongjisan Archaeological Site. Chapter II presents the main discussion, which is focused on the technical characteristics and production methods of the stepped convex tiles excavated at this site. The roof tiles are classified into two types by comparing them with similar items discovered in Buyeo, Gyeongju and Japan, and their production process, now restored, is shown in Fig. 6.
The stepped convex roof tiles from the Jeongjisan Site show the use of methods A1 and A2 illustrated in Plan 3, but differences in their size and the clay used to make them suggest that they were produced by different artisans or at different workshops.
The discussion presented in Chapter III addresses the relationship between, and the production dates of, the stepped convex roof tiles and the convex roof-end tiles with lotus design from the Jeongjisan Site, the latter of which are known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mid or late sixth century from the same mold that was used to produce the tiles discovered at the Dongnamni Temple Site and the Gwanhyeolli Kiln Site in Buyeo. However, it seems very unlikely that lotus-designed roof-end tiles with a lotus design were used along with stepped roof tiles (See Fig. 10). The stepped roof tiles from the Jeongjisan Site show the same technical features as those used in the production of the stepped convex roof tiles discovered at Sites #197-4 and #204-1 at Banjuk-dong, which are believed to have formed the site of Daetongsa Temple. Considering that the site also yielded tiles bearing the same decorative design as the ornamented bricks of the tomb of King Muryeong, these roof tiles must date back to the Ungjin-Baekje period (475-538). An analysis of the stepped convex tile roofs unearthed at the site showed that they were made using the same method (A1) as that used to produce the stepped convex tiles in the Nanjing area in China, and also revealed traces of wet polishing, suggesting that they were produced under the influence of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The use of method A2, however, suggests that Baekje also played a considerable part in the production of the t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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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제 명문토기 연구

저자 : 陳瑾瑜 ( Chen Jinyu ) , 周裕興 ( Zhou Yuxing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3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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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한반도 전래는 중국의 전국(戰國)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 고고학적으로 밝혀졌다. 한반도 남서부에 있는 한국 고대 3국 중 하나인 백제는 북방 한사군(漢四郡)과 이웃 나라인 고구려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한자를 수용했으며 고고학 발굴에 의해 현재까지 다양한 문자자료가 확인되었다.
그중 명문토기는 수량이 많고 종류가 풍부하다. 명문의 형태와 표기방식에 따라 크게 인장과 각서(刻書)로 나눌 수 있는데, 내용적으로는 당시의 토기 생산처, 사용처, 그리고 역사적 기사(記事)나 사람들의 기원·사회적 유행 사상 등이 표현되어 있다. 명문을 통해 해당 토기의 생산과 유통, 소비 현황에 대한 접근도 가능하다. 따라서 명문토기는 문헌이 부족한 백제시대의 역사적인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백제 명문토기에는 당시 한반도의 다른 국가 및 중국 대륙, 일본에서 출토된 문자 유물과의 연관성이 반영되어 있어, 동아시아 한자 문화가 전파됐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있으므로 중요한 학술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Through archaeological discoveries, the introduction of Chinese characters into the Korean Peninsula can be traced back to the Warring States period in China. Baekje, one of the ancient three kingdoms of South Korea, located in the sou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 was influenced by the Four Commanderies of Han in the north and the neighboring Koguryo. It began to accept and use Chinese characters very early. Up to now, various unearthed written materials have been confirmed. Among them, the number of inscribed pottery is large and the types are rich. According to the form and marking method of the inscription, it can be roughly divided into seal and carving. In terms of content, it shows the nature related to the pottery production place, consumption place, some historical records or people's wishes and social popular ideas. The inscriptions also indicate the production, circulation and consumption of relevant pottery at that time. It can be seen that the inscribed pottery is a precious material to restore the historical and cultural face of Baekje, which is lack of literature. In addition, the correlation between the inscriptions reflected in other nations in the Korean Peninsula, the Chinese mainland and Japan, also revealed that Baekje inscribed pottery objectively confirms the historical fact of the development of Chinese character cultural circle in East Asia, which is of great academic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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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제부흥운동 전개 과정을 통해 본 주류성 위치 비정

저자 : 李孝媛 ( Lee Hyowo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5-16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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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부흥운동의 전체적인 전개 양상의 이해 속에서 주류성 위치 비정을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부흥운동 세력은 부흥운동 발발 이후 임존성을 중심으로 사비 탈환을 위한 노력에 나선다. 그리고 효율적인 사비·웅진지역 압박 및 세력 확장을 위해 주류성으로 거점을 옮긴다. 부흥운동 세력의 활동으로 당군이 고립되자 당군과 신라군은 이를 구원하기 위해 웅진강구와 두량윤성에서 부흥운동군과 전투를 하였다. 이후 신라군이 고구려 공격을 나서는 661년 8월~9월에는 대전 일대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이는 신라군이 고구려 공격을 나서면서도 부흥운동 세력, 특히 부흥운동과 고구려와의 연계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662년 7월~8월에 다시금 이 일대에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부흥운동 세력은 이 전투에서 패배하며 고립 당한다. 이에 어려움을 극복할 새로운 활로로 남쪽 지역을 선택해 이 지역의 경영을 위해 피성으로 거점을 이동한다. 하지만 663년 2월 신라군의 공격으로 신라군에게서 가까운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온다. 이후 최후의 결전인 백강 전투가 벌어진다. 백강은 기벌포 기사에 주목할 때 금강으로 파악된다.
부흥운동의 주요 지점과 각 전투의 주체 및 목적을 볼 때 현재 주류성 위치 비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부안은 주요 활동 지점과의 연결성을 찾아보기 어려워 주류성으로 위치 비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서천을 주목, 자연환경이나 건지산성·추동리 유적 등 주변 유적과의 관계, 주요 거점과의 연결성을 볼 때 주류성은 길산천 너머 동서천 일대에 자리했을 것으로 비정된다.


This study would assume the location of Juryu-seong in an understanding of the aspects of the overall development of the Revival Movement.
The Revival Movement Forces come to make an effort to recapture the Sabi Fortress, centering around Imjon-seong since the Revival Movement broke out. In addition, the Forces move their base to Juryu-seong in order to efficiently put pressure on the Sabi area and extend their power. As the Tang Armed Forces are isolated with this activity, the Tang Armed Forces and the Silla Armed Forces have battles with the Armed Forces for Revival Movement in Ungjin-gang-gu and Duryangyun-seong to save the areas. Later, in August through September in 661 when Silla Armed Forces head an attack on Goguryeo, a battle takes place in the Daejeon area. It is judged that this happened in the process in which Silla Armed Forces held the connection of the Revival Movement Forces, in particular, the Revival Movement in check with Goguryeo while heading an attack on Goguryeo.
From July through August in 662, battles take place in this area, and the Revival Movement Forces are defeated and isolated. Thus, as a new route to overcome the difficulty, the southern region is chosen, and they move the base to Pi-seong to manage this area. However, with the attack of Silla Armed Forces in February 663, they leave Pi-seong which was close to Silla Armed Forces and return to Juryu-seong. Later, the final battle, the battle of Baek-gang, takes place. Baek-gang is judged to be the Geum-gang River when attention is paid to the report on Gibeol-po.
Concerning the major bases of the Revival Movement and the subject and purpose of each battle, it is difficult to assume Buan, to which the most attention is drawn currently as the location of Juryu-seong since it is hard to find connectivity with the point of the main activity. Thus, in this study, focusing on Seocheon, the location of Juryu-seong was assumed to be in the East Seocheon area across Gilsancheon, judging from the natural environment, relations with the surrounding remains like Geonji-sanseong and Chudong-ri remains, or the connectivity with the major b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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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무령왕릉 출토 동경의 계보와 연대

저자 : 福永伸哉 ( Fukunaga Shinya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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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 위치한 무령왕릉에서는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3점의 동경이 부장되었다. 본고에서는 특히 변형방격규구경에 주목하여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경의 계보와 제작 연대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 동경은 후한의 방격규구경을 눌러떼기기법으로 제작하고 여기에 인수상 1개, 짐승상 4개를 더한 특이한 도상을 지니고 있다. 본 논문은 이 동경의 제작기법과 인수상 표현에 주목을 하였다.
동경의 표현상태를 관찰한 결과 제작기법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공정으로 복원하였다. 먼저 후한경을 본떠 제작한 1차 거푸집에 납을 넣어 밀랍으로 만든 경체를 만든다. 그 다음 표면에 밀랍으로 만든 입체적인 인수상을 입혀 전체가 밀랍으로 만들어진 원형을 만든다. 그리고 이 납원형을 주형토로 감싸고 가열을 하여 2차 주형을 제작하고 청동을 흘려 넣어 완성품인 동경이 완성된다. 이러한 제작기법은 '실랍주조법'이라 불리는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서 수경이나 당경의 제작에 사용되었다고 밝혀지고 있다.
인수상은 긴 자루의 무기를 든 인물과 네 마리 짐승이 질주하는 모습을 표현한 사냥문이라 할 수 있다. 사냥문의 모티브나 인수의 방향 등은 당경(唐鏡)과 가장 유사하다.
이상과 관련하여 필자는 이 동경이 수경이나 당경으로 이어지는 계보상의 중국거울이며, 그 제작연대는 무령왕이 재위한 6세기 1분기라고 추정하였다. 무령왕이 남조(南朝) 양(梁)에 파견한 512년과 521년이 그 입수시기로 보았다. 이것이 인정된다면 역시 후한경을 눌러떼기기법으로 제작된 다른 두 점도 양(梁) 대의 동형경일 가능성이 있다.
후한경의 복제경은 일본의 5~6세기 고분에서 약 130점이 출토된다. 일본고고학에서는 이들이 5세기 중엽에 왜 왕권이 교섭관계에 있던 남조 송나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보고, 그 일부가 왜 왕권으로부터 백제에도 제공되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무령왕릉 동경이 양나라의 것이라면, 왜와 남조의 관계가 끊어진 6세기에 백제를 경유하여 왜 왕권에 가져다준 반환경일 가능성이 생긴다.
이처럼 무령왕릉 출토 동경은 일본에서 출토되는 복제원의 역사적 평가를 재검토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지니고 있다. 필자는 향후 무령왕릉 출토 동경의 제작기법이나 도문에 대한 연구가 한층 더 진전될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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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문헌으로 읽은 일본열도 내 백제계·중국계 이주민

저자 : 田中史生 ( Tanaka Fumio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8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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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백제와 고구려에서는 華北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 이주한 중국계 지식인과 그 후손들이 활약했다. 또한 백제는 이들 중 일부를 왜 왕권 아래로 보내 왜국과의 동맹 강화를 꾀하였다. 중국계 이주민들은 중국에서 유래한 '家'를 바탕으로 그 姓과 문화를 후손에게 계승해 각지에서 정치적 지위를 얻었다.
그런데 왜국에서는 중국계 이주민의 姓과 문화가 6세기에 계승되지 않고 왜 왕권이 편성한 씨족 조직으로 흡수되어 간다. 한편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중국계 인사들의 姓과 문화가 6세기 이후에도 계승되는 데, 이러한 차이는 왜국과 백제나 고구려의 對中 외교 자세 차이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중국계 이주민과 그 후손들은 특히 對中 외교에서의 활약이 기대되었는데, 왜국에서는 5세기 후반을 마지막으로 중국 왕조와의 직접교류를 오래 중단하면서 그 필요성이 현저히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왜국으로는 6세기 이후에도 중국에서 유래한 문화가 한반도에서 유입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백제가 왜국에 보낸 여러 博士와 승려들이다. 이 중 박사에 대해서는 중국적인 姓을 가진 사람이 많아 5세기 이전에 백제에 포섭된 중국계 이주민의 후손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에서 건너온 박사·승려들은 著書로 그 지식을 왜인에게 전수하였다. 또 백제에서 이주한 수공업자도 그 기술을 왜인에게 전수했다.
7세기 후반 왜국에는 멸망한 백제로부터 많은 이주자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때 백제계 이주민들은 계층적인 확산과 다민족적 구성을 통해 멸망 이전 백제의 사회 구성을 대체로 반영한 것이었다. 또한 본국 멸망을 계기로 이주한 舊백제 지배층은 왜 왕권 하에서 官人으로 포섭되자 백제시대에 축적한 지식과 능력을 이용하여 이후의 일본역사를 규정하는 왜국에서 일본 율령국가로의 탈바꿈에 크게 뒷받침하였다. 그 실상은 6세기 백제 이주민의 양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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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긴키지역의 고대 백제계(韓系) 이주민의 연구

저자 : 中久保 辰夫 ( Nakakubo Tatsuo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1-134 (5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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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은 서기 3세기에서 6세기를 대상으로 한반도와의 문화적 교류와 이주민이 일본 열도의 사회와 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한다. 토기 자료를 중심으로 한일 이주민이 수행한 역할을 정리하면, 이주민의 역사적 역할은 3세기에서 4세기 초엽의 교역에서 5·6세기의 인적 교류와 정착을 통한 기술과 지식의 도입으로 이행된다. 또한, 중기 말부터 후기 사이에는 백제를 통한 한반도계 이주민의 존재도 뚜렷해지고 있다.
한인 이주민들이 재래사회에 끼친 영향은 취락유적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실증할 수 있다. 본론에서는 奈良縣의 新堂유적, 布留유적, 兵庫縣 남서부의 播磨지역을 다루었다. 新堂유적에서는 수륜연대보정분석을 통해 5세기 초엽을 나타내는 河道 출토 항렬과 풍부한 한반도계 토기가 출토되었고, 鍛冶 관련유물과 말뼈 등이 수반되었다. 수공업 식산과 한반도계 이주민의 밀접한 관계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布留유적 사례연구에서는 5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수공업 생산의 확충과 지역개발을 권력기반으로 유력 호족들이 대두하는 과정이 밝혀졌다. 또 播磨지역 분석으로는 한반도계 이주민들의 거주 유적이 훗날 고대 육로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러한 이주민을 통한 문화교류와 사회 자본투자는 왜의 고대국가 형성에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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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고대 일본의 등화구

저자 : 神野恵 ( Jino Megumi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7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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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화구(燈火具)의 존재는 야간(夜間) 인류의 지적(知的) 활동 시간을 주고, 그야말로 문명을 밝히는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일본 등화구 출현의 확실한 사례로는 고고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7세기 전반의 식기(食器) 전용 등화구와 조합식의 스에키(須恵器)에 사용 자국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문헌자료로는 651년에 아지후노미야(味經宮)의 연등공양(燃燈供養) 기사가 처음 확인되었다.
고대 일본의 등화구는 왕권의 위신재로 도입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이에대한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하였다. 등화구가 일정한 고위 계층에 보급되는 것은 불교의 전래와 황족·귀족층에 대한 반영일 것이다. 나라시대 전반인 8세기 제2/4분기에는 불교가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가는 과정에서 등화구가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궁도(宮都)의 등화구 증가는 율령제도에 기초한 국가 형성 및 궁인(官人)의 증가가 그 배경에 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등화구는 중국과 한국의 등화구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발달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등화구는 고대 동아시아의 교류사를 웅변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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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문헌으로 본 일본 고대 등잔

저자 : 桑田訓也 ( Kuwata Kuniya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21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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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고대 일본에서 등불의 전반적인 양상과 그 속에서 등잔이 차지하는 위치 및 등잔을 사용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문헌을 통해 검토하였다.
우선, 일본 고대의 등불과 등잔에 대해 개관하고, 등잔을 이용하는 것은 고대의 등불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며 실내에서 고정적인 등불로 사용하는 상황에 한정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또한 등잔을 나타내는 용어로 '등잔', '유배', '등배' 등을 포함하여 보다 넓은 자료를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등잔을 이용하는 상황을 궁궐·관아와 사원로 나누어 소개했다. 궁궐·관아에서는 일상생활의 등불, 仕事의 등불, 의식·연중행사의 등불로 사례를 분류하였고, 사원에서는 숙직, 연등공양, 개인 헌등을 거론했다. 또한, 문자자료로 본 조명도구의 구조, 등잔의 규격과 기름·심지의 소재, 등잔과 기름·심지의 사용 비율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관아·사원에서 특징적인 등잔의 양상에 대해 전망하였다. 관아에서는 등잔을 사용하는 상황이 많은 반면 상황별 사용수는 대체로 적지만 사원에서는 1회에 대량으로 사용(소비)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 또한 등잔의 기본적인 성격을 굳이 종교적 도구인지 조명용 도구인지 양자택일로 생각할 경우 관아에서는 조명용 도구, 사원에서는 종교적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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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국 3~6세기 출토 청동 조명도구 연구

저자 : 韓茗 ( Han Ming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3-256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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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국대륙에서 출토된 3~6세기 청동 조명도구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형태의 차이에 따라 수병등(豎柄燈), 연지등(連枝燈), 횡병등(橫柄燈), 제등(提燈), 녹로등(轆轤燈), 치등(卮燈), 촉반(燭盤), 촉삽좌(燭插座)의 8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나라 이후부터 수나라 이전까지의 청동 조명도구의 변천양상을 파악해보았다. 또, 동시대의 도자기 조명도구의 형태와 비교하여 육조시대 조명도구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았다.
비록 한나라 이후 청동 조명도구 제작이 쇠퇴하였지만, 도자기 수공업이 발달하면서 조명도구 장식에 높은 예술적 표현력과 역외(域外) 문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특히 촉삽좌 같은 조명도구의 발전으로 같은 시기의 조명도구 장식을 풍부하게 하고 새로운 시대적인 특징도 더하였다. 초(燭)의 보급으로 조명연료가 변하게 된 것은 한나라 이후 조명도구의 형태변화의 가장 중요한 계기이며, 육조시대는 중국 고대 조명도구의 전환기로 되었다.
본고에서는 한당시대(漢唐時代) 조명도구의 연구과 분류기준을 참고하여 육조시대 조명도구의 특별한 성격에 알아보았다. 또한, 현재 조명도구의 형식학적 연구에 대해 복잡한 분류와 자료의 부족에서 문제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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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제 파수부 등잔 연구

저자 : 李相日 ( Lee Sangil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7-28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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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기에는 다양한 유적에서 등잔이 출토되고 있어 당시 활발한 조명문화가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등잔들은 대부분 종지형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독특한 형태의 등잔이 사비기에 공존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 등잔은 동체에 파수(把手)와 덧붙여진 칸이 조합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체의 경우 소형 완(盌)의 형태와 유사하여 일반적인 종지형 등잔에 비해서는 크다. 파수의 경우 따로 제작한 점토를 부착하고 이를 90°로 접어 측면에서 보았을 때, 'ᄀ'자 형태를 띤다. 마지막으로 덧붙여진 칸은 세종류로 구분된다. 먼저 작은 귀(耳)를 동체 중간부터 부착한 것과 같은 Ⅰ형식, 장방형의 칸을 동체에 연접하여 부착한 Ⅱ형식, 작은 완을 동체에 연접하여 부착한 것과 같은 Ⅲ형식이 있다.
파수부 등잔의 편년을 살펴보면, 7세기 초엽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기점이 되는 유적이 부여 관북리 유적과 청산성, 동남리사지를 주목할 수 있다. Ⅰ형식과 Ⅱ형식이 주를 이루며 Ⅲ형식은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7세기 중엽에 들어서면 파수부 등잔의 출토 유적이 증가하는데, 익산 왕궁리에서도 확인된다. Ⅲ형식도 보급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 세가지 형태가 백제 말기까지 그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파수부 등잔의 출현 배경으로는 중국의 영향, 고구려의 영향, 자체 발생을 고려해볼 수 있는데, 중국 문화의 수용과 중국 자기의 번안(飜案)을 고려하면 중국 조명도구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파수부 등잔은 동체에 연료를 담고, 덧붙여진 칸에 심지를 놓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이는 동체에서 기름이 담겼던 흔적이 확인되고 있으며, 덧붙여진 칸에는 그을음이 다량 흡착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심지의 고정을 향상하기 위해 동체와 덧붙여진 칸 사이에 작은 원공(圓孔)을 설정한 사례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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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두계 이병도의 백제사연구 -그 업적과 한계-

저자 : 崔章烈 ( Choi JangYeal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9-32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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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학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두계 이병도(1896~1989)는 일반적으로 실증사학을 대표하는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다. 두계가 역사연구 방법론으로 평생 동안 실증적 방법을 중요시한 것은 적어도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시절 일본인 스승과의 만남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두계는 긴 생애를 통해 역사가로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겼는데, 한국 고대사는 스스로 가장 큰 성과를 이룬 분야로 자부하였다. 두계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쓴 고대사 논문을 모아『한국고대사연구』(1976)를 출간하였고, 이 책에 일제강점기부터 개별적으로 발표한 백제사 관련 논문도 재수록하였다. 두계가 고이왕대와 근초고왕대를 중요한 획기로 설정한 백제사 체계의 큰 틀은 지금까지도 통설이 되어 유지되고 있다. 백제사 연구는 두계를 제1세대로 하여 그 기반이 이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두계가 제시한 백제사 관련 여러 견해들, 이를테면 삼한의 위치 비정, 하남위례성 비정, 미륵사 창건연대 재해석 등은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두계의 연구가 부실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간 신자료의 발굴 및 관련 연구의 심화 등 학문적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두계는 근대적 역사연구 방법에 입각한 연구로 한국사학이 역사학으로 정립하고, 그 학문적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고 평가받는다. 한편으로는 식민주의 사학자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의 한국사 연구가 일본인들이 만든 식민사관을 추종한다는 것이다. 두계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주로 고대사 분야에 집중되어 왔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연구자의 연구가 내포하고 있던 한계, 즉 일본인들이 설정하고 이끌고 간 문제의식이나 연구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두계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두계가 쌓아왔던 연구업적을 평가 절하할 수는 없다. 역사가에 대한 사학사적 평가는 그의 학술 활동과 학문적 업적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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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사카모토타로(坂本太郞)의 백제사 연구

저자 : 朴宰用 ( Park JaeYong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27-343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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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있어서 최대의 난관은 잔존 사료의 편재성과 그 성격의 문제이다. 고대 한일관계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4~7세기 사료는 압도적으로 일본측에 의해 편찬되었다. 그것도 『일본서기』에 편중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서기』에 대한 사료적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천황중심적 이념에 의해 윤색되어 있는 부분을 제거하고 그로부터 사실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가 진실에 가장 잘 접근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본서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단초를 연 인물이 바로 坂本太郞이다. 坂本은 사료 중심의 실증주의적 사관에 입각해 가능한 객관적 해석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일본서기』사료에 신뢰를 두고 원전 및 인용방식을 검토하는 과정을 중시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연구는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坂本의 『일본서기』 백제관계 기사에 대한 연구방법 및 이해방식은 선구적이었으며, 이후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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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청파靑坡 노도양盧道陽(1909~2004)의 백제사 연구

저자 : 金榮官 ( Kim Youngkwa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45-36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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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양은 대한지리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해방 후 한국지리학계를 이끈 핵심적인 인물이었고, 역사 연구에 지리학적 연구 방법론을 도입한 학자로 중요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그가 남긴 백제역사지리 연구업적은 3편에 불과하지만, 결코 경시할 수 없다.
노도양의 백제사 연구는 모두 명지대 재직시절인 60대에 집필되었다. 그의 역사지리 연구는 일본고마자와대학에서 역사지리학을 전공한 것이 기반이 되었다. 특히 백제 역사지리에 대한 연구는 충남부여보통학교 교원으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겪은 경험과 1952년부터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도중인 1958년에 만든 백제연구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
노도양의 백제사 연구는 지명 비정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三國史記』와 『三國遺事』 등 각종 역사기록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비판, 『新增東國輿地勝覽』 등과 같은 지리지 기록과 고지도 및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를 활용한 지리학적 연구 방법과 국어학적 연구 방법론까지 활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장 답사를 중시했다. 이러한 연구 방법론은 오늘날의 역사연구 방법론으로도 매우 유용하고 타당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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