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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학회>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백수 양응수의 삶에 대한 가치 의식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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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양응수의 삶에 대한 가치 의식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Baeksu(白水) Yang eung-soo(楊應秀)’s sense of value for life - Focusing on his Hansi(漢詩)

이상봉 ( Lee Sang-bong )
  • : 한국시가문화학회
  •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8월
  • : 173-198(26pages)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DOI

10.5253/kpac.2021.48.6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경전의 내용에 충실한 자세: 경전의 복응(服膺)
3.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음: 천리의 순응을 추구
4. 나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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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연구는 양응수의 독서법이나 그가 스승의 상을 당해 심상 1년을 실천했던 사실, 그리고 그가 화담학에 대해 가졌던 인식 등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독서법이나 그가 남긴 <축장일기> 속 내용, 그리고 화담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모두 그가 가졌던 삶과 학문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사상적 기반을 그가 남긴 한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양응수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할 만큼 학자적 성품을 갖추고 있었고, 이러한 그의 성향은 많지 않은 그의 한시작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가 남긴 한시작품의 주요 주제 중에는 경전의 내용에 충실할 것을 노래한 것이 많았는데, 특히 말로만 인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학』 등의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몸소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고 공평하다.’는 『서경』과 『예기』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그의 한시에서 표현하기도 했고, 이런 마음가짐은 ‘하늘과 사람은 원래 하나’라는 『주역』·『예기』·『심경』 등의 내용으로 발전되어 그의 한시에서 노래되기도 했다.
양응수는 경전에서 말하는 ‘천무사(天無私)’·‘천인일야(天人一也)’의 가르침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그의 한시 속에서도 인심과 도심이 둘이 아닌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인욕을 제거해야 된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서 성현의 경지를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에 몰두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를 수양하고 절제해왔지만 여전히 공부하고 실천해야할 것들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만년의 그는 자신의 인욕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늘이 준 초심만은 잃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는 내용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Existing studies focused on Yang Eung-soo's reading method, the fact that he practiced mindfulness for one year to miss the deceased the death of his teacher, and the perception he had about the study of Hwadam(花潭). His reading method, the contents of the < Chukjang Diary(築場日記) > that he left behind, and his views on the study of Hwadam(flowers) can all be seen as a reflection of his perception of life and learning.
Therefore, in this paper, I looked at his ideological basis that made such a life possible, focusing on the hansi-korean poem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he left. Yang Eung-soo gave up the civil service exam at the young age of 24 and had a scholarly personality to devote himself to his studies, and this inclination remained intact in his few poems.
Among the themes of the poems he left behind, many sang about being faithful to the contents of the scriptures. In particular, he emphasized not only insisting on benevolence and justice with words, but also putting into practice the contents of the scriptures such as 『Sohak(小學)』. In addition, he inherited the teachings of 『Seokyung(書經)』 and 『Book of Rites(禮記)』 that 'the sky is unselfish and fair' and expressed a free mind in his poems, free from greed for one's own destiny. And this mindset was developed into the content of 'Heaven and Man are originally one', which appears in 『Book of Change(易)』·『Book of Rites(禮記)』·『Book of Mind(心經)』 did.
Yang Eung-su thought that it was important to get rid of '人慾' from the human mind in order to achieve the teachings of '天無私' and '天人一也' in the scriptures. So even in his poems, he expressed that in order to realize that the human heart(人心) and the dao heart(道心) are not two, we need to get rid of greed.
However, it was not easy to achieve the state of the sage by making steady efforts. After immersing himself in Neo-Confucianism, he has cultivated and restrained himself for a long time, but there are still many things that need to be studied and practiced.
Therefore, in his later years, even if he could not completely get rid of his greed, he also wrote a poem that pays attention not to lose the original intention given by heaven. Not only in modern society but also in the 18th century, when Yang Eung-su was active, social success represented by rising in the world and gaining fame was what most scholars were aiming for.
However, Yang Eung-soo gave up such social achievements and jumped into the academic path of Neo-Confucianism, making it the most important goal of his life to achieve mental and physical training and academic achievement. His attitude toward life is reflected in his poems as well, so his poetry seems to leave a deep impression compared to the works of other ordinary po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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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2466-1759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3-2021
  • :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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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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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말(麗末) 선초(鮮初)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과 그 의미

저자 : 조지형 ( Cho Ji-hyou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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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여말 선초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을 살펴보았다. 여말 선초는 시조의 형성기로서 역사 전환기의 주체였던 신흥사대부들이 그 담당층이었다. 이 같은 국면에서 귀화인들 역시 시조를 창작하여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 및 지향을 시조를 통해 드러내었다. 우리말에 서툴 수밖에 없던 귀화인들이 우리 고유의 노래 형식인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심양 출신으로 공민왕을 호종하며 귀화한 변안열은 역성혁명의 기로에서 <불굴가>를 지어 무장으로서의 굳건한 충절을 드러내었다. 위구르 출신으로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로 귀화한 설장수는 대명외교를 전담하는 사신으로 활약하며 정치적 부침 속에서 <신언가>를 지어 언행 처신에 조심할 것을 경계하였다. 여진 출신으로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왕족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지란은 조선 건국 후 왕자의 난이 지속되는 국면에서 왕위의 향방과 조선의 운명에 대한 염려 섞인 걱정을 <축록가>를 통해 드러내었다.
이처럼 여말 선초에 귀화인을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의 인물들이 한시와 더불어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점은 여말 선초 사대부들의 문학장 안에서 시조가 중요한 문학적 행위의 일환으로 인식되었으며 작가로서 일종의 긍지를 가질 만한 성격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시조 창작의 개방성은 이미 형성기부터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d the creation of Sijo by naturalized poets from the late Goryeo Dynasty to the early Joseon Dynasty. From the late Goryeo to the early Joseon Dynasty, it was the formation of Sijo, where Shinheung-Sadaebu was the main creative class of Sijo. In this phase, naturalized poets also created Sijo, revealing their political position and world awareness. The fact that naturalized poets, who had no choice but to speak poor Korean, created Sijo, a unique Korean song format, is very special in itself.
General Byeon An-yeol from Shenyang, wrote the lyrics of < Bulgulga不屈歌 > during the process of replacing the dynasty, expressing his strong loyalty to the Goryeo Dynasty. Seol Jang-su, a native of Uighur who was in charge of diplomacy to Ming China, wrote the lyrics of < Shineonga愼言歌 > and warned against caution in his speech and conduct. Lee Ji-ran, who was born in Jurchen and rose to the rank of the Joseon royal family, wrote the lyrics of < Chukrokga逐鹿歌 >, expressing concern about the fate of Joseon.
The fact that naturalized poets and high-ranking politicians created Sijo with Chinese poetry from the late Goryeo to the early Joseon indicates that Sijo was recognized as an important literary act in the literary field at that time. At the same time, it can be said that Sijo's creation has a personality that deserves pride as a writer. In addition, the openness of the creation of the sijo was already in place from the formati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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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공가> 연작과 조선중기 노비농장의 우의적 형상

저자 : 김용철 ( Kim Yong-cheol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76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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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600년 전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이하 <고공가> 연작)를 대상으로 하여 작품 속의 노비농장에 표현되어 있는 우의적 형상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방향은 1600년 전후 지어진 <고공가> 연작이라는 가사 작품에서 노비농장과 당쟁을 형상화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문명사적 의미이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 바로 직후에 지어진 <고공가> 연작이 조선후기라는 새로운 문학사의 시대를 열어젖힌 의의의 한 부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연구에서는 <고공가> 연작 속에 등장하는 주인과 고공들이 서로 작품에서 형상화한 내용을 주고받는 자리를 1600년 전후 당시 양반들이 노비를 부려 농사를 짓던 노비농장으로 보고 작품에 나타나는 고공을 노비로 보고 이를 여러가지 증거로 증명하려 노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1600년 당시 전쟁을 겪으면서 흐트러지고 여러모로 위기에 봉착한 노비농장을 제자리로 복구하는 것이 왕인 선조나 정승 이원익 같은 사람들의 최우선 과제였으며 이것을 나타낸 것이 바로 <고공가> 연작의 작품 내용임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노비 내지 노비농장을
형상화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고공가> 연작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내지 문명사적 의의가 상당히 무겁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작품 속 노비농장이 가리키는 작품 밖 현실세계인 당쟁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고공가> 연작이 단순하게 당쟁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당쟁을 없애려 노력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을 살펴보고 이것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문명사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meaning of the allegorical configuration expressed on the slave farm in the work, targeting the < Gogong-ga > and < Gogongdapjuin-ga > (hereinafter referred to as < Gogong-ga > series), which are believed to have been composed around 1600 years ago. The main direction of this study is the research of meaning of literary history and civilization that configured slave farms and factional strife in < Gogong-ga > series. Through this, it is expected that < Gogong-ga > series, which was built right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Imjin-wairan), will reveal a part of the significance that opened up a new era of literary history called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is study, room of the master and the slave in < Gogong-ga > series considered a slave farm. The restoration of the slave farm, which was disrupted and faced with crisis after Japanese Invasion, was a top issue of King Seonjo and Leewonik. It was the contents of the < Gogong-ga > series. In addition, it was confirmed that the literary and civilization historical significance of < Gogong-ga > series was quite heavy, given that there were few works that embodied the slave(Nobi) or slave farms in korean history.
Next, I looked at factional strife that the real world outside of the work indicated by slave farm. In the process, I looked at the fact that < Gogong-ga > series was not simply criticizing factional strife, but the only work that tried to eliminate it. And I looked at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literary history and civilization of this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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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최경창(崔慶昌)의 시세계와 특성

저자 : 선지영 ( Sun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7-11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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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이 생활했던 시기는 사대사화로 인한 붕당정치와 훈구파를 중심으로 화려한 시적 기교와 난삽한 수식으로 관료적 문학관이 배태되었고 신진 사림파를 중심으로는 기교를 반대하고 청징한 처사적(處士的) 문학의 정신세계를 추구하였으나, 이들은 도학적 자유로운 성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시기다.
본 논문에서는 최경창의 작품세계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생관 및 가치관을 알아보고자 하며, 이를 통해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풍격(風格)을 구하고자 한다. 풍격이란 작가의 인품이나 사상 등이 작품 속에 복합적으로 구체화 된 양상이기 때문에 최경창의 문학적 위상도 규명될 수 있다고 본다. 작품세계는 주제에 따라 연모에 정한, 선경의 동경,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분류해 살펴보았다.
먼저 최경창의 작품 속에는 연정(戀情)을 대상으로 한 시가 상당히 있는데 이와같은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는 아마 풍부하고 섬세한 여성의 감정에 자신의 낭만적 감정을 표출하는데 부합되어 자연스럽게 시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계(仙界)를 동경하게 된 것은 당시 문단의 하나인 유선시(遊仙詩)를 모작(模作)하게 된 소단(騷壇)의 흐름과 관계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며, 현실의 좌절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월적 선계를 동경하고 찬미하였다고 본다.
최경창(崔慶昌)시의 풍격(風格)은 청신(淸新)한 풍격에 있다. 청(淸)은 대체로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산뜻하며 순수한 자연의 산천경개, 나아가 일상세계를 초월한 선경(仙境)이나 선취(仙趣)를 느낄 수 있는 맑고 아름다운 정경을 묘사한 것과 관련된 시의 풍격(風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에 쓰인 시어(詩語)는 일반적으로 2자의 용어법, 이미지 어휘의 사용, 악부시(樂府詩)계열 작품의 일상어 활용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본다.


The Old Meritorious Faction had bureaucratic literary view because of factional politics due to elite society splendid poetic techniques and difficult and distracted modification and new Neo-Confucian literati were opposed to techniques and sought the spiritual world of clear and clean literature of reclusive scholars (處士的) in the period that Gojuk (孤竹) Choi, Gyeongchang (崔慶昌,1539∼1583) lived. However, they tried to express ethical and free nature in the period.
This thesis tried to examine the situations of the time, people's view of life, and values through Choi, Gyeongchang's works and seek his style (風格) shown in them. Because styles are the aspect that writers' personality or ideas are complexly embodied in their works, it is thought to investigate and reveal writers' literary status The works were examined by classifying them into a limited time of love, longing for fairylands, and criticism on reality according to subjects.
First, there are many poems targeting love (戀情) in the works by Choi, Gyeongchang. The motive for creating the works like this is thought that women's delicate and rich feelings are naturally target of poetic expression because they accord with expression of his own romantic feelings. And the point that he longed for the heavenly world (仙界) is thought to be related to the flow of Sodan (騷壇) that got to imitate (模作) poems of wandering immortals (遊仙詩), one of literary circles of the time. And it is thought that he longed for and praised the transcendental realm as a way to solve frustrations and conflicts of reality.
Choi, Gyeongchang (崔慶昌)'s poems have a clean and new (淸新) style (風格). Cleanness (淸) is generally fresh as well as clear and clean and is the style (風格) of poems related to descriptions of scenery or landscape or pure nature and furthermore, clear and beautiful scenes to feel the realm of immortals (仙境) or Seonchwi (仙趣) that transcended the everyday world. And poetic diction (詩語) used in the poems is thought to be characterized by the general use of pleonasm of two letters and image vocabularies and the utilization of everyday words in the works of music bureau ballad (樂府詩)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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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횡청류의 분화와 분화의 의의

저자 : 배대웅 ( Bae Dae-u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1-13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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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청구영언』(김천택본)에 수록된 '만횡청류' 작품들의 분화 양상을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청김』의 '만횡청류' 작품들은 전승되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을 본고에서는 '만횡청류'의 분화라고 칭하였으며, '만횡청류' 작품들의 분화의 모습을 ① 가집 내 같은 악곡에 수록되지만 두 곡씩 수록되는 경우 ② 가집 내에 같은 작품이 수록되지만 다른 악곡으로 수록되는 경우 ③ 같은 악곡으로 전해지기는 하나 다른 군집으로 나눠질 정도로 내용이 분화한 경우로 나누어 보았다.
그 결과 '만횡청류'의 분화는 우선 ①, ② 분화 양상의 경우, 19세기까지 전해지던 '만횡청류'가 창자의 성별이 다르고, 불리는 악곡명이 다르다 할지라도 연행 현장 속에서 일부 만횡청류 작품들에 대한 애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먼저 인용한 작품처럼 최초 전해지던 '만횡청류' 작품을 연행연장의 애호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여 연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③ 분화 양상도 앞의 두 분화 양상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긴 하나 결국 이 경우에도 앞서 언급했던 향유자들의 애호나 취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분화 양상은 '만횡청류'의 내용 분화와 악곡 분화가 이뤄진 후 19세기에 이르러 그것들이 통일된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20세기 즈음에 이르러 연행 현장 속에서 불리는 노래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기존에 통일성을 보였던 노래들도, 악곡이 됐든 장르가 됐듯, 그것들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연행 현장의 변화도 충분히 그것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나 향유층의 애호·취향의 변화 역시도 예상해볼 수 있었다.


This thesis examined the aspect of differentiation and significance of 'Manhoengcheongryu' works contained in 『Cheongguyeongeon』(by Kim Cheon-Taek). The 'Manhoengcheongryu' works of 『Cheongguyeongeon』(by Kim Cheon-Taek) were changed into many different looks in the process of transmission. In this thesis, this changed look was called the differentiation of 'Manhoengcheongryu', and the differentiated looks of 'Manhoengcheongryu' works were divided into ① a case in which two songs were contained in the same musical piece within the collection of poems, ② a case in which the same work was contained as a different musical piece within the collection of poems, and ③ a case in which it was handed down as the same musical piece, but the contents were differentiated a lot enough to be classified into another group.
The results of examining the differentiation of 'Manhoengcheongryu' could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in case of the differentiation aspect shown in ① & ②, even when the 'Manhoengcheongryu' transmitted till the 19th century showed the different sex of singers, and the name of musical piece was different, it was possible to see the preference for some Manhoengchengryu works in the site of performance. Just as the work quoted earlier, the 'Manhoengcheongryu' work initially transmitted was performed after modifying its contents suitable for the preference in the site of performance. Even though the differentiation aspect shown in ③ was a bit different from those two above differentiation aspects, eventually, this case wa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preference or taste of the enjoyers mentioned earlier.
Those differentiation aspects showed the unified look in the 19th century after the contents and musical piece of 'Manhoengcheongryu' were differentiated. When the kinds of songs sung in the site of performance were diversified in the 20th century,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m just as the existing songs with the unity became a musical piece or a genre. Also, the changes in the site of performance and the changes in the preference/taste of enjoyers probably affecte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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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소고당 고단 <88올림픽찬가(讚歌)>의 내용과 작가의식

저자 : 김아연 ( Kim A-yun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3-17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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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당(紹古堂) 고단(高端, 1922~2009)은 제24회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Games of the XXIV Olympiad Seoul 1988, 이하 88올림픽)를 소재로 하여, 1988년 가을에 172행 분량의 가사 <88올림픽찬가(讚歌)>를 지었다. 이에 <88올림픽찬가>는 시기상 현대가사, 작가상 여성가사, 내용상 행사가사, 분량상 장편가사에 해당한다. <88올림픽찬가>의 내용은 88올림픽의 기본 이념, 참가 규모, 서울 유치, 준비 과정, 개회식, 경기 결과, 에피소드, 이슈, 폐회식, 성과 및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비에 대한 의지로 파악된다. <88올림픽찬가>의 작가의식은 사실 지향적 기록의식, 국제화 의식 및 세계시민 의식, 민족의식 및 남북통일에의 염원, 국가주의 세계관 등 네 가지로 대별된다.


Sogodang Godan(高端, 1922~2009) composed on The 1988 Olympic Games Anthem, Games of the XXIV Olympiad Seoul 1988(The 1988 Olympic Games) in the fall of 1988, 172 lines of Gasa < The 1988 Olympic Games Anthem >. Accordingly, it is a Modern Gasa in terms of time, Women's Gasa in terms of author, Event Gasa in terms of content, and long-length Gasa in terms of volume. It has represented the basic ideology of the 1988 Olympic Games, the scale of participation in the Olympic Games, Seoul's bid to host the 1988 Olympic Games, preparation process, opening ceremony, first half game results, episodes, issues, closing ceremony, achievements of the 1988 Olympic Games and preparation for the 25th Barcelona Olympics understood as a will. The author's consciousness of it can be divided into four main categories: fact-oriented recording consciousness, internationalization and global citizenship, national consciousness and aspiration for the unification of South and North Korea, and pride in the success of the 1988 Olympic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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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수 양응수의 삶에 대한 가치 의식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저자 : 이상봉 ( Lee Sang-bo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19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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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연구는 양응수의 독서법이나 그가 스승의 상을 당해 심상 1년을 실천했던 사실, 그리고 그가 화담학에 대해 가졌던 인식 등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독서법이나 그가 남긴 <축장일기> 속 내용, 그리고 화담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모두 그가 가졌던 삶과 학문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사상적 기반을 그가 남긴 한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양응수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할 만큼 학자적 성품을 갖추고 있었고, 이러한 그의 성향은 많지 않은 그의 한시작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가 남긴 한시작품의 주요 주제 중에는 경전의 내용에 충실할 것을 노래한 것이 많았는데, 특히 말로만 인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학』 등의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몸소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고 공평하다.'는 『서경』과 『예기』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그의 한시에서 표현하기도 했고, 이런 마음가짐은 '하늘과 사람은 원래 하나'라는 『주역』·『예기』·『심경』 등의 내용으로 발전되어 그의 한시에서 노래되기도 했다.
양응수는 경전에서 말하는 '천무사(天無私)'·'천인일야(天人一也)'의 가르침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그의 한시 속에서도 인심과 도심이 둘이 아닌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인욕을 제거해야 된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서 성현의 경지를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에 몰두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를 수양하고 절제해왔지만 여전히 공부하고 실천해야할 것들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만년의 그는 자신의 인욕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늘이 준 초심만은 잃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는 내용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Existing studies focused on Yang Eung-soo's reading method, the fact that he practiced mindfulness for one year to miss the deceased the death of his teacher, and the perception he had about the study of Hwadam(花潭). His reading method, the contents of the < Chukjang Diary(築場日記) > that he left behind, and his views on the study of Hwadam(flowers) can all be seen as a reflection of his perception of life and learning.
Therefore, in this paper, I looked at his ideological basis that made such a life possible, focusing on the hansi-korean poem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he left. Yang Eung-soo gave up the civil service exam at the young age of 24 and had a scholarly personality to devote himself to his studies, and this inclination remained intact in his few poems.
Among the themes of the poems he left behind, many sang about being faithful to the contents of the scriptures. In particular, he emphasized not only insisting on benevolence and justice with words, but also putting into practice the contents of the scriptures such as 『Sohak(小學)』. In addition, he inherited the teachings of 『Seokyung(書經)』 and 『Book of Rites(禮記)』 that 'the sky is unselfish and fair' and expressed a free mind in his poems, free from greed for one's own destiny. And this mindset was developed into the content of 'Heaven and Man are originally one', which appears in 『Book of Change(易)』·『Book of Rites(禮記)』·『Book of Mind(心經)』 did.
Yang Eung-su thought that it was important to get rid of '人慾' from the human mind in order to achieve the teachings of '天無私' and '天人一也' in the scriptures. So even in his poems, he expressed that in order to realize that the human heart(人心) and the dao heart(道心) are not two, we need to get rid of greed.
However, it was not easy to achieve the state of the sage by making steady efforts. After immersing himself in Neo-Confucianism, he has cultivated and restrained himself for a long time, but there are still many things that need to be studied and practiced.
Therefore, in his later years, even if he could not completely get rid of his greed, he also wrote a poem that pays attention not to lose the original intention given by heaven. Not only in modern society but also in the 18th century, when Yang Eung-su was active, social success represented by rising in the world and gaining fame was what most scholars were aiming for.
However, Yang Eung-soo gave up such social achievements and jumped into the academic path of Neo-Confucianism, making it the most important goal of his life to achieve mental and physical training and academic achievement. His attitude toward life is reflected in his poems as well, so his poetry seems to leave a deep impression compared to the works of other ordinary po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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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잡가(단국대본)』2의 성격과 가집의 유형 분류

저자 : 이상원 ( Lee Sang-won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9-23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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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에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가사집인 『잡가』 외에 동명의 책이 하나 더 소장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를 기존의 『잡가』(『잡가』1)와 구별하기 위해 『잡가』2로 명명하고 이 책의 특성을 자세히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가집의 유형 분류와 관련된 시각 교정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잡가』2는 시조창 사설 186수, 가사 4편, 잡가 2편을 수록한 가집이다. 이 책에서 포착되는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실제 연행 현장에서 불린 사설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남훈태평가』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남훈태평가』 계열 가집과 기타 가집을 아우르는 특성을 보인다. 이에 따라 단독출현 작품이 꽤 많은 편이다. 셋째 이 책의 편찬 연대는 1900년을 전후로 한 시기로 추정된다. 넷째 <춘면곡> 이하에서는 가사와 잡가가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수록하였다.
『잡가』2는 시조, 가사, 잡가가 어우러진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기존에는 시조창 가집으로 규정하였다. 『남훈태평가』를 대표적인 시조창 가집이라 부르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 후기 가집을 가곡창 가집과 시조창 가집으로 양분하여 이해하는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런 이분법은 시조와 가사의 역동적 변모상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조와 가사는 정가(正歌)와 속가(俗歌)를 넘나들면서 역동적으로 변모해갔기 때문에 이런 변모상을 엿볼 수 있는 가집 이해의 구도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시조와 가사가 가곡과 잡가 중 어떤 것과 결합하는지 그 결합의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시조와 가사가 가곡과 결합된 경우 정가 가집일 가능성이 크지만, 시조와 가사가 잡가와 결합된 경우는 속가 가집일 가능성이 크다. 『잡가』2의 제목이 '잡가'로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중요하다. 여기 '잡가'는 '속가'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잡가』2는 시조창 가집이 아니라 속가 가집의 일종으로 이해된다.


The Yulgok Library of Dankook University houses Japga, a well-known collection of Gasa works, and another book with the same title. This study called it Japga 2 to tell it from the old Japga(Japga 1) and investigated its characteristics in details, highlighting a need to revise the viewpoints in the classification of collections of songs by the type.
Japga 2 is a collection of songs including 186 Sijochang Saseols, four Gasas, and two Japgas. It has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 the works in this collection seem to record Saseols sung at real sites of performance as they were; second, it is similar to Namhuntaepyeongga on the surface, but its characteristics encompass those of the collections of songs in the line of Namhuntaepyeongga and other collections of songs. This collection thus includes a good number of exclusive works; third, the publication of the collection is estimated around 1900; and fourth, it makes no distinction between Gasas and Japgas even though they are mixed under Chunmyeongok.
Japga 2 offers harmony between Sijos, Gasas, and Japgas. Such a case used to be categorized as a collection of Sijochangs, which is demonstrated by the practice of calling Namhuntaepyeongga as a representative collection of Sijochangs. This derived from a practice of dividing collections of songs from the latter part of Joseon into collections of Gagokchangs and collections of Sijochangs. This dichotomy, however, has limitations with explaining the dynamic changes of Sijos and Gasa. As Sijos and Gasas underwent dynamic changes between Jeongga and Sokga, there is a need for a structure to understand collections of songs to peek at these changes. Such a structure should focus on the ways that Sijos and Gasas were combined with Gagoks or Japgas. A combination of Sijos and Gasas with Gagoks poses a high possibility of a Jeongga collection of songs. A combination of Sijos and Gasas with Japgas poses a big possibility of a Sokga collection of songs. This places importance on the reason behind "Japga" in the title Japga 2. In this case, "Japga" was used to signify "Sokga," which means that Japga 2 should be classified as a Sokga collection of songs rather than a collection of Sijocha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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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국시가문화학회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2-258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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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말(麗末) 선초(鮮初)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과 그 의미

저자 : 조지형 ( Cho Ji-hyou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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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여말 선초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을 살펴보았다. 여말 선초는 시조의 형성기로서 역사 전환기의 주체였던 신흥사대부들이 그 담당층이었다. 이 같은 국면에서 귀화인들 역시 시조를 창작하여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 및 지향을 시조를 통해 드러내었다. 우리말에 서툴 수밖에 없던 귀화인들이 우리 고유의 노래 형식인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심양 출신으로 공민왕을 호종하며 귀화한 변안열은 역성혁명의 기로에서 <불굴가>를 지어 무장으로서의 굳건한 충절을 드러내었다. 위구르 출신으로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로 귀화한 설장수는 대명외교를 전담하는 사신으로 활약하며 정치적 부침 속에서 <신언가>를 지어 언행 처신에 조심할 것을 경계하였다. 여진 출신으로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왕족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지란은 조선 건국 후 왕자의 난이 지속되는 국면에서 왕위의 향방과 조선의 운명에 대한 염려 섞인 걱정을 <축록가>를 통해 드러내었다.
이처럼 여말 선초에 귀화인을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의 인물들이 한시와 더불어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점은 여말 선초 사대부들의 문학장 안에서 시조가 중요한 문학적 행위의 일환으로 인식되었으며 작가로서 일종의 긍지를 가질 만한 성격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시조 창작의 개방성은 이미 형성기부터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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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공가> 연작과 조선중기 노비농장의 우의적 형상

저자 : 김용철 ( Kim Yong-cheol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76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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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600년 전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이하 <고공가> 연작)를 대상으로 하여 작품 속의 노비농장에 표현되어 있는 우의적 형상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방향은 1600년 전후 지어진 <고공가> 연작이라는 가사 작품에서 노비농장과 당쟁을 형상화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문명사적 의미이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 바로 직후에 지어진 <고공가> 연작이 조선후기라는 새로운 문학사의 시대를 열어젖힌 의의의 한 부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연구에서는 <고공가> 연작 속에 등장하는 주인과 고공들이 서로 작품에서 형상화한 내용을 주고받는 자리를 1600년 전후 당시 양반들이 노비를 부려 농사를 짓던 노비농장으로 보고 작품에 나타나는 고공을 노비로 보고 이를 여러가지 증거로 증명하려 노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1600년 당시 전쟁을 겪으면서 흐트러지고 여러모로 위기에 봉착한 노비농장을 제자리로 복구하는 것이 왕인 선조나 정승 이원익 같은 사람들의 최우선 과제였으며 이것을 나타낸 것이 바로 <고공가> 연작의 작품 내용임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노비 내지 노비농장을
형상화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고공가> 연작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내지 문명사적 의의가 상당히 무겁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작품 속 노비농장이 가리키는 작품 밖 현실세계인 당쟁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고공가> 연작이 단순하게 당쟁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당쟁을 없애려 노력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을 살펴보고 이것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문명사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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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최경창(崔慶昌)의 시세계와 특성

저자 : 선지영 ( Sun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7-11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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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이 생활했던 시기는 사대사화로 인한 붕당정치와 훈구파를 중심으로 화려한 시적 기교와 난삽한 수식으로 관료적 문학관이 배태되었고 신진 사림파를 중심으로는 기교를 반대하고 청징한 처사적(處士的) 문학의 정신세계를 추구하였으나, 이들은 도학적 자유로운 성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시기다.
본 논문에서는 최경창의 작품세계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생관 및 가치관을 알아보고자 하며, 이를 통해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풍격(風格)을 구하고자 한다. 풍격이란 작가의 인품이나 사상 등이 작품 속에 복합적으로 구체화 된 양상이기 때문에 최경창의 문학적 위상도 규명될 수 있다고 본다. 작품세계는 주제에 따라 연모에 정한, 선경의 동경,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분류해 살펴보았다.
먼저 최경창의 작품 속에는 연정(戀情)을 대상으로 한 시가 상당히 있는데 이와같은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는 아마 풍부하고 섬세한 여성의 감정에 자신의 낭만적 감정을 표출하는데 부합되어 자연스럽게 시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계(仙界)를 동경하게 된 것은 당시 문단의 하나인 유선시(遊仙詩)를 모작(模作)하게 된 소단(騷壇)의 흐름과 관계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며, 현실의 좌절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월적 선계를 동경하고 찬미하였다고 본다.
최경창(崔慶昌)시의 풍격(風格)은 청신(淸新)한 풍격에 있다. 청(淸)은 대체로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산뜻하며 순수한 자연의 산천경개, 나아가 일상세계를 초월한 선경(仙境)이나 선취(仙趣)를 느낄 수 있는 맑고 아름다운 정경을 묘사한 것과 관련된 시의 풍격(風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에 쓰인 시어(詩語)는 일반적으로 2자의 용어법, 이미지 어휘의 사용, 악부시(樂府詩)계열 작품의 일상어 활용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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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횡청류의 분화와 분화의 의의

저자 : 배대웅 ( Bae Dae-u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1-13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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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청구영언』(김천택본)에 수록된 '만횡청류' 작품들의 분화 양상을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청김』의 '만횡청류' 작품들은 전승되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을 본고에서는 '만횡청류'의 분화라고 칭하였으며, '만횡청류' 작품들의 분화의 모습을 ① 가집 내 같은 악곡에 수록되지만 두 곡씩 수록되는 경우 ② 가집 내에 같은 작품이 수록되지만 다른 악곡으로 수록되는 경우 ③ 같은 악곡으로 전해지기는 하나 다른 군집으로 나눠질 정도로 내용이 분화한 경우로 나누어 보았다.
그 결과 '만횡청류'의 분화는 우선 ①, ② 분화 양상의 경우, 19세기까지 전해지던 '만횡청류'가 창자의 성별이 다르고, 불리는 악곡명이 다르다 할지라도 연행 현장 속에서 일부 만횡청류 작품들에 대한 애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먼저 인용한 작품처럼 최초 전해지던 '만횡청류' 작품을 연행연장의 애호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여 연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③ 분화 양상도 앞의 두 분화 양상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긴 하나 결국 이 경우에도 앞서 언급했던 향유자들의 애호나 취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분화 양상은 '만횡청류'의 내용 분화와 악곡 분화가 이뤄진 후 19세기에 이르러 그것들이 통일된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20세기 즈음에 이르러 연행 현장 속에서 불리는 노래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기존에 통일성을 보였던 노래들도, 악곡이 됐든 장르가 됐듯, 그것들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연행 현장의 변화도 충분히 그것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나 향유층의 애호·취향의 변화 역시도 예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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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소고당 고단 <88올림픽찬가(讚歌)>의 내용과 작가의식

저자 : 김아연 ( Kim A-yun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3-17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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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당(紹古堂) 고단(高端, 1922~2009)은 제24회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Games of the XXIV Olympiad Seoul 1988, 이하 88올림픽)를 소재로 하여, 1988년 가을에 172행 분량의 가사 <88올림픽찬가(讚歌)>를 지었다. 이에 <88올림픽찬가>는 시기상 현대가사, 작가상 여성가사, 내용상 행사가사, 분량상 장편가사에 해당한다. <88올림픽찬가>의 내용은 88올림픽의 기본 이념, 참가 규모, 서울 유치, 준비 과정, 개회식, 경기 결과, 에피소드, 이슈, 폐회식, 성과 및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비에 대한 의지로 파악된다. <88올림픽찬가>의 작가의식은 사실 지향적 기록의식, 국제화 의식 및 세계시민 의식, 민족의식 및 남북통일에의 염원, 국가주의 세계관 등 네 가지로 대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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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수 양응수의 삶에 대한 가치 의식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저자 : 이상봉 ( Lee Sang-bo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19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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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연구는 양응수의 독서법이나 그가 스승의 상을 당해 심상 1년을 실천했던 사실, 그리고 그가 화담학에 대해 가졌던 인식 등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독서법이나 그가 남긴 <축장일기> 속 내용, 그리고 화담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모두 그가 가졌던 삶과 학문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사상적 기반을 그가 남긴 한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양응수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할 만큼 학자적 성품을 갖추고 있었고, 이러한 그의 성향은 많지 않은 그의 한시작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가 남긴 한시작품의 주요 주제 중에는 경전의 내용에 충실할 것을 노래한 것이 많았는데, 특히 말로만 인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학』 등의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몸소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고 공평하다.'는 『서경』과 『예기』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그의 한시에서 표현하기도 했고, 이런 마음가짐은 '하늘과 사람은 원래 하나'라는 『주역』·『예기』·『심경』 등의 내용으로 발전되어 그의 한시에서 노래되기도 했다.
양응수는 경전에서 말하는 '천무사(天無私)'·'천인일야(天人一也)'의 가르침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그의 한시 속에서도 인심과 도심이 둘이 아닌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인욕을 제거해야 된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서 성현의 경지를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에 몰두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를 수양하고 절제해왔지만 여전히 공부하고 실천해야할 것들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만년의 그는 자신의 인욕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늘이 준 초심만은 잃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는 내용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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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잡가(단국대본)』2의 성격과 가집의 유형 분류

저자 : 이상원 ( Lee Sang-won )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9-23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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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에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가사집인 『잡가』 외에 동명의 책이 하나 더 소장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를 기존의 『잡가』(『잡가』1)와 구별하기 위해 『잡가』2로 명명하고 이 책의 특성을 자세히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가집의 유형 분류와 관련된 시각 교정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잡가』2는 시조창 사설 186수, 가사 4편, 잡가 2편을 수록한 가집이다. 이 책에서 포착되는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실제 연행 현장에서 불린 사설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남훈태평가』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남훈태평가』 계열 가집과 기타 가집을 아우르는 특성을 보인다. 이에 따라 단독출현 작품이 꽤 많은 편이다. 셋째 이 책의 편찬 연대는 1900년을 전후로 한 시기로 추정된다. 넷째 <춘면곡> 이하에서는 가사와 잡가가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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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국시가문화학회

발행기관 : 한국시가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2-258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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