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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간찰로 본 圭南 河百源의 仕宦期 양상 -자식에게 보낸 간찰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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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로 본 圭南 河百源의 仕宦期 양상 -자식에게 보낸 간찰을 중심으로-

Aspect in the Official Life of Gyu-Nam Ha Baek-won Seen through letters-Focusing on letters sent to his sons-

나상필 ( Na¸ Sang-pil )
  •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 : 동방학 4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8월
  • : 117-148(32pages)
동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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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간찰 자료의 형태
Ⅲ. 관직 생활의 양상
Ⅳ. 부모의 리더십
Ⅴ.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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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남 하백원은 성리학적 이론을 학문의 근간으로 확립하고 실리를 강조하여 실학을 연구하며 한 평생을 보냈던 실학자이다. 그런데 50대 이후 관직 생활로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본고는 규남박물관에 소장된 간찰 중에 사환기부터 세 아들에게 보낸 초서 간찰 63통과 『규남문집』에 수록된 간찰 2통을 탐구하여 그의 관직 생활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규남의 관직 생활은 중앙 직과 지방 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834년부터 창릉참봉, 의금부 도사, 순릉 직장, 형조 좌랑까지 중앙에서 관직을 역임했고, 1840년 경기전 령, 석성 현감까지 지방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1842년에 충남 보령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해배된다. 약 9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던 간찰을 통해 안부 및 처지, 근무지의 상황, 조정의 사건사고 등 관직 생활 중 경험하였던 소식을 전달하지만, 자신이 부재중인 상태에서 일어난 집안의 문제, 자식의 성장, 전통의 계승 등 많은 일에 관여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규남이 자식에게 보낸 간찰을 분석하여 규남의 관직 생활 중 다양한 양상을 논구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부모의 리더십을 발휘한 점에 살펴보았다.
Gyu-Nam Ha Baek-won is a Silhak scholar who has studied Silhak for the rest of his life, emphasizing practicality, based on Neo-Confucian theories. However, after the age of 50, he has a second life due to his public office.
This paper was studied using 63 cursive letters that he sent to his three sons from the beginning of his public office and two letters from the Collection of Gyu-Nam's Works from among the many other letters in the collection of the Gyunam Museum.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understand the life of his official life and to consider how he leads his family as the head of a family.
His official life is divided into central and local positions. From 1834, he served as a central government official from Changneung Chambong, Uigeum Budosa, Sunneung Jikjang, and Hyeongjo Jwarang. In 1840, he served as an official in the provinces until Gyeonggi Jeonyeong and Seokseong Hyeon-gam. In 1842, he was exiled to Boryeong, South Chungcheong Province, and released the following year.
While away from his family for about 9 years, he conveyed news he had experienced during his official life, such as his safety and situation, the situation at work, and incidents and accidents at the royal court, through letters, which were the only means of communication. In addition, he was involved in many matters such as family problems that occurred while he was absent, the growth of children, and the succession of traditions.
From this point of view, he analyzed the letters he sent to his children, studied and explained various aspects of his official life, and studied the aspects of his parents' leadership as the head of a family.

UCI(KEPA)

I410-ECN-0102-2022-800-000766941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598-1452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2
  • :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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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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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초(明初)의 말 수급체계와 거래가격 ― 女眞·高麗·朝鮮에 대한 말 수매가를 중심으로 ―

저자 : 임경준 ( Lim Gyungjune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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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朝는 몽골~北元 세력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던 까닭에 軍馬의 지속적인 확보에 몰두하였다. 명을 건국한 洪武帝는 官馬의 관리기구로서 太僕寺를 설치하고 수도인 南京일대의 人戶를 養馬戶로 편성하여 말의 사육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洪武帝 사후 발발한 靖難의 役을 거치면서 방목지는 황폐해지고 국가의 官馬는 빠르게 고갈되었다. 靖難의 役에서 승리한 永樂帝는 女眞과 朝鮮에서 말을 수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永樂帝는 遼東의 접경지역에 馬市를 설치하고 女眞과 말을 거래하였고, 조선에 대해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말 거래를 제안하였다.
15세기를 전후한 시기 明의 말 수매가를 지역별로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고려말에 비하여 조선초에는 가격이 대폭 하락하였는데, 이는 조선에 대한 홍무제의 부정적인 태도가 반영된 결과라 판단된다. 그러나 靖難의 役이 발발하고 수세에 몰린 建文帝가 제안한 말 가격은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가격이었다. 이후 永樂帝가 즉위하자 말 1필당 가격은 견직물 3필과 면직물 2필이란 수매가로 귀착된다.
한편 女眞의 경우 遼東馬市에서 거래된 말의 평균 수매가가 永樂3년에 견직물 3.6필·면직물 14.6필이었고 이후 永樂15년에는 米5석과 견직물·면직물 각 3.2필이었던 것과 비교한다면, 명은 고려나 조선에 비해 女眞을 더 우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명과 고려~조선 간의 국가관계가 말의 거래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The Ming Dynasty, which was in military conflict with Mongolia, tried to secure a military horse. Hongwu Emperor installed Taipusi as a horse management organization to encourage horse breeding. However, after the Jingnan campaign, horses became scarce. Accordingly, Yongle Emperor promoted a policy to purchase horses from the Jurchen people and the Joseon Dynasty. Yongle Emperor established a market for horse trading in the border area of Liaodung to trade horses with Jurchen people, and sent envoys to Joseon to trade horses.
An interesting trend can be found by comparing the horse purchase prices of the Ming Dynasty by region around the 15th century. Compared to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he price of horses fell sharpl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reflecting Hongwu Emperor's negative attitude to Joseon. However, Jianwen Emperor, who was on the defensive at Jingnan Campaign, bought horses from Joseon at a much higher price than before. After Yongle Emperor ascended the throne, the price per horse resulted in three silk and two cotton fabrics.
Meanwhile, in the case of Jurchen, the average purchase price of horses traded in Liaodung was initially 3.6 rolls of silk and 14.6 rolls of cotton fabrics, and then changed to 5 seoks of rice, 3.2 rolls of silk, and 3.2 rolls of cotton fabrics. Comparing Jurchen with Goryeo and Joseon, it can be said that the Ming Dynasty gave preferential treatment to Jurchen compared to Goryeo or Joseon. The national relationship between Ming and Goryeo and Joseon was affecting the horse's transaction p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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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0세기 동유라시아 모피 무역의 실상

저자 : 윤재운 ( Yun Jae Woo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6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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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8~10세기 동유라시아 무역에서 비단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 모피 무역의 실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작성하였다. 이를 위해 모피의 산지와 유통과정, 그리고 소비를 통해 모피 무역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해 보았다.
이를 통해, 첫째로 8~10세기 자료상에 보이는 동유라시아 모피는 발해의 경우 貂皮, 大蟲皮, 羆皮, 熊皮, 豹皮, 海豹皮이며, 신라는 海豹皮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피는 주로 발해 동부와 북부의 어업 수렵 구역에서 생산되었는데 소흥안령과 삼강평원 지구로 懷遠府, 鐵利府, 安遠府, 率濱府에 해당한다. 이 지역에는 拂涅, 越喜, 虞婁, 鐵利靺鞨등이 살았다. 다른 산지로는 발해 중부 어업 수렵 구역으로 장백산맥 지역이다. 이 지역 외에도 흑수말갈이 거주하던 지금의 연해주 일대에도 모피의 주된 산지가 있었다.
다음으로 8~10세기 동유라시아의 모피는 주요 산지였던 발해 북동지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동쪽으로는 일본 열도에까지 이어지는 교통로를 통해 유통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발해는 재지세력인 수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모피무역에 힘썼으며, 소그드상인에 의한 모피무역도 이루어 졌음을 알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당, 일본, 신라의 모피 소비 관련 자료를 통해 보았을 때, 모피는 신분을 구분하는, 신분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결국 8~10세기 동유라시아의 모피는 세계상품으로서의 선구적인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was prepared to examine the fact of fur trade, which has an important meaning along with silk in East Eurasian trade in the 8~10th centuries. To this en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fur trade was investigated through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process of fur, and consumption.
Through this, first, it can be seen that the East Eurasian fur shown in the 8th and 10th centuries data is fur of sable, tiger, Ursus arctos, Ursus thibetanus, panther, and seal in Balhae, and Silla only shows seals' fur. Fur was mainly produced in fishing hunting areas in eastern and northern Balhae, and it corresponds to Heowon-bu(懷遠府), Cheolli-bu(鐵利府), Anwon-bu(安遠府), and Solbin-bu(率賓府), as Lesser Khingan Mountains(小興安嶺) and Samgang Plain (三江平原) districts. In this area, there lived Funie Mohe(拂涅靺鞨), Yuexi Mohe(越喜靺鞨), Yulou Mohe(虞婁靺鞨), and Tieli Mohe(鐵利靺鞨), etc. Another mountain area is the fishing hunting area in central Balhae, which is the Jangbaek(長白) Mountain Range. In addition to this area, there was also a major production area for fur in the current coastal area where Heishui Mohe(黑水靺鞨) lived.
Next, it was confirmed that the fur of East Eurasia in the 8~10th centuries was distributed through transportation routes leading to Central Asia to the west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to the east, centering on the northeastern region of Balhae, which was a major mountain area. It can be seen that Balhae actively utilized the receiving of the ruling power to make efforts in fur trade, and that fur trade was also carried out by Sogd merchants.
Finally, when viewed from data on fur consumption in Tang, Japan, and Silla, it can be seen that fur was a symbol of status that distinguished status.
In the end, the fur of East Eurasia in the 8~10th centuries can be said to have a pioneering historical significance as a world prod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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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10-1911년 旱獺皮와 만주 페스트 유행

저자 : 김현선 ( Kim Hyun Su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3-8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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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淸末 旱獺皮의 유행과 무분별한 旱獺 사냥으로 인해 1910년 만주 페스트가 폭발하여 유행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20세기 초 세계 각국에서 旱獺皮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旱獺皮 인기가 높아지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많은 중국인 쿨리들은 동북지역으로 가서 旱獺을 사냥하며 경제적 이익을 도모했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旱獺을 사냥했고, 그 과정에서 페스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설치류 사이에서 유행하던 페스트는 인간에게 전파되면서, 인간은 페스트 전파 순환에 들어가게 되었다.
1910년 만주 페스트가 유행하기 이전에도 旱獺이 서식하는 지역에서 페스트가 인간에게 전파된 사례가 종종 확인되었다. 설령 페스트가 사람에게 전파되었을지라도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건설된 철도는 사람들의 이동뿐 아니라 페스트 병균 역시 빠르게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철도를 따라 페스트가 전파되면서 동북지역에서 대규모 유행이 일어났다.
旱獺皮 유행으로 인한 旱獺 포획과 페스트 유행은 1910~1911년 만주 페스트 유행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더하여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SARS, 코로나19(COVID-19) 등 신종전염병이 동물과 접촉하여 발생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현재의 이슈들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occurrence and spread of the Manchurian plague due to the fashion of marmot fur and the indiscriminate hunting in 1910-1911 at the end of the Qing Dynasty.
In the early 20th century, marmot fur began to very popular in countries around the world. As the popularity of marmot fur increased, demand surged, and prices began to rise. This motivated many Chinese coolies to rush to the northeast areas, such as Manchurian highland, where marmots were abundant, and hunting marmots for their fur indiscriminately. However, this economic benefit that attracted people from much farther areas resulted in an unintended consequence, the outbreak of bubonic plague.
Previously, there have been cases of the plague being transmitted to humans by local people eating infectious marmots. However, any spread of infection would have remained limited due to the remoteness of the area and the limited interaction of inhabitants with a wider population beyond the region. In contrast, the lure of the economic benefit on one hand, and the development of the Railway on the other hand, changed this situation. Not only did the Railway make the movement convenient, but it also spread the plague quickly and far away, resulting in plague spreading around the northeast along the railway.
This study will provide a diverse perspective on the outbreak of the Manchurian Plague in 1910-1911. Particularly, this study allows us to reflect on the current pandemic, given that the COVID-19, SARS, and some other recent outbreaks that plagued us have been connected to the human contact with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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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우환의 서사에서 본 주역의 역도와 성인사관 ― 서사주의의 역사콘텐츠 ―

저자 : 김연재 ( Kim Yon-jae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1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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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서술의 독특한 방식은 점술의 효험을 64가지 괘명과 그에 따른 괘효사의 내용으로 사례화한 것이다. 이러한 점술의 사례집에서 괘효사에는 상고시대에 성인의 행적이나 업적이 시사적으로 담겨있다. 괘효사는 상고 시대의 사실적 단면을 서술한 역사적 서사의 성격을 지니며, 그 속에 성인의 행적이나 업적과 같은 역사적 내용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괘효사의 역사적 서사는 성인사관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내용을 해석하는 데에 역사학의 서사주의적 논법이 활용될 수 있다.
괘효사의 내용을 역사적 서사를 통해 해석하는 방법은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서술한다기보다는 서사의 상상력을 통해 역사의 교훈이나 계도를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는 역사적 사실의 불가역적(不可逆的) 시간은 변용되어 역사정신의 가역적(可逆的) 시간으로 활용된다.
또한 괘효사의 서사에 응축된 역도(易道)의 강령은 성인정신의 경계로 구현된다. 그것은 인식과 실천의 지속가능한 여정 속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지향하는, 결코 완결되거나 완성되지 않는 자아실현의 목표가 있다. 그러므로 괘효사의 서사에 반영된 성인사관에는 과거의 사건을 다루지만 '과거만을 의미하지 않는 과거'라는 역설(逆說)이 존재한다. 그 서사주의적 서술은 성인의 행적과 업적에 관한 진실성을 담은 역사의 이야기로서, 역사적 사실보다 더 역사같은 진실의 이야기를 담겨있다.
이러한 점에서 괘효사의 서사에 반영된 성인사관과 성인정신의 경계는 점술의 신비주의적 혹은 비이성적 방식을 넘어서 문명사회의 지속가능한 이정표가 되었으며,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 문화의 원형을 형성하고 그 정신적 기질을 발휘할 수 있는 상당한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This essay is to explicate the issue how can Yijing be approached as a book of historical event. The main point is Gua-yao-ci as the understanding of historical narratives. Here is a horizon of comprehending a history of Zhou dynasty according to a narrative imagination. Narrative anecdotes of Gua-yao-ci in Yijing, as so-called changeological narrative, has the words of describing the historical events of happening in Zhou dynasty. Particularly, the historical view of sagehood implicatively reflects typical exemplifications individual events and situations in sequence over time. A narrativism of historical exemplifications implicatively results in the canon of Yidao. What is called Yidao is oriented toward extracting the value of morality from the principle of life. It is concretized into the horizon of sage-spirit. In this context, it is possible to say that, in the historical view of sagehood, the irreversible time of the past is elevated to the reversible time of the present. Consequently, the historical view of sagehood has a narrative of being more truly historical than a history of Zhou dynasty, and thus implicates such a kind of paradox as the past of describing but not simply meaning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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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노자(老子)』의 '물[水]'의 메타포와 『정역(正易)』의 '십(十)'의 상징

저자 : 권기완 ( Kwon Ki-wa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5-13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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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1세기의 새로운 화두라 할 수 있는 음양론과 양성평등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노자(老子)』의 '물[水]'의 메타포와 『정역(正易)』의 무극수(無極數) '십(十)'의 상징에 대하여 비교하여 고찰해 본 것이다.
유교의 양(陽) 중심적 사유에 대해서 노자는 '물'이 가지는 다양한 상선(上善)의 가치들을 제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음(陰)의 존재를 일찌감치 강조한 바 있다.
19세기 말 한반도 계룡산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에는 복희팔괘나 문왕팔괘에 보이지 않았던 무극수인 '십(十)'이 등장함으로써 음의 가치와 다양한 상징이 대두되었다.
『노자』의 '물'의 메타포와 『정역』의 '10'의 상징은 모두 양에 대한 음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확립한 동양학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텍스트는 음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어주고 억음존양(抑陰尊陽)에서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변모하는 역학적인 시운(時運)의 복합적인 작용을 통찰하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노자』와 『정역』이 이처럼 긴 시간차를 두고 유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음양관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동양학계가 깊이 비교하여 고찰해 봐야 할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동양학의 한 분과인 『노자』와 『정역』의 지혜를 통해 현대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음양관계론을 진단해 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모종의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This study compared the metaphor of Laozi's Water and the symbols of ten ultimatelessness(十無極) of the JeongYeok(正易) with the problems of gender equality, which are the new topics of the 21st century.
Confucianism is an idea centered on yang(陽), while Taoism emphasized the value of yin(陰) early on by presenting various values of Water. In the late 19th century, Jeongyeok's eight trigram(正易八卦) appeared on Gyeryongsan Mountain in Korea. The number 10 that did not appear in the the sage Fuxi's eight trigram(伏犧八卦) and King of Wen's eight trigram(文王八卦) were first introduced, and the value of sound was raised again. Laozi and JeongYeok suggest a view of gender equality that has been around for thousands of years.
In the future, I think that if we compare and analyze the metaphors and symbols of the Laozi and JeongYeok, various studies on gender issues between men and women, which are an important problem in modern society, can come out. This study is only the beginning, and many follow-up studies will be available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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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실학의 실천적 계승과 대중적 소통 방안 ― 민족 전통 지식의 사회적 적용 ―

저자 : 김경미 ( Kim Kyoung Mi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19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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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민족의 지평에서 본 전통지식에 현실과의 소통 구조를 확보해 보고자 문ㆍ사ㆍ철 통합 학문이었던 실학을 대상으로 주체적인 '적용(Anwendung)'을 하려는 시도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학문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산업화, 시장화라고 하는 학문의 재생산구조 변동에 기인하고 있다. 위와 같은 문제점 진단과 분석을 기반으로 우리 학계의 전통지식 연구 활동과 교육 활동의 방향성, 그리고 제도적인 문제들을 검토한다.
인문학의 궁극적 목표는 진리의 추구에 있지만 이러한 진리가 현실 생활과 직접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실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으며, 실학의 문화적 복합성은 오히려 현재의 우리에게 실천 가능한 다양한 방식으로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 주고 있다.
실학을 오늘날의 언어로 해석하고 번역하여 자기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면 심화된 개인 연구 뿐 아니라 협동적 연찬(硏鑽)을 통해 확대된 학적 성과물을 실학의 실천적 재생산 운동으로 환원하는 대중화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이제 민족 전통지식의 사회적 확산을 목표로 하여 학문과 사회, 구체적인 삶을 분리시켰던 자기중심적인 학문 태도를 반성하고 저작 선집과 교양 평전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실학하기'라는 '소통 인문학(Trans-humanities)'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모색해 본다.
이로써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적용 학문을 실현하고 실학의 사회적 실천 방안과 적용 가능성, 그리고 대중적 공유와 활용을 통한 사회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is an attempt on Practical Learning(sirhak), humanistic tradition of Korea based on literature, history and philosophy-coordinate learning in the point of view of Korean people. To get inspirations for conducting these tasks, we may turn to the revival and reinterpretation of the humanistic tradition of Korea based on the Practical Learning.
The scholarly orientation of the sirhak scholars was toward constructing subjective view of human beings based on the self-awareness to foster spirits of humanism. The rediscovery of the Practical Learning will prove to be useful in producing new perspectives to understand the humanistic tradition of Korea, and also in creating a practical philosophy required by the future.
Humanities are desirable when it is created as 'Trans-humanities' which it can suggest the ideal direction of human life at the same time it affirms actual problems in this society and historical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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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수당 이남규의 교육사상 고찰 ― 유학의 전통교육 계승을 중심으로 ―

저자 : 신창호 ( Shin Chang Ho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21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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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구한말의 학자인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 1855∼1907)의 교육사상을 검토한 것이다. 이남규는 정통 유학자로서 의리(義理)에 충실한 삶을 통해 국권회복과 민생안정, 그리고 외세침략에 대처한 애국지사이다. 수동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의탁(依託)하기보다 세상의 이치를 능동적이고 구체적으로 파악하며 적극적으로 처신한 관료였다. 교육의 기초를 '스스로 닦으며 탐구'하는 '자수(自修)'에 두고,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중시하며, 유학의 전통을 강화하는 교육을 펼쳤다. 유학 교육의 핵심인 '문(文)·언(言)·충(忠)ㆍ신(信)ㆍ독(篤)ㆍ경(敬)'을 강조하며, 마음을 보존하는 '존심(存心)'의 실학(實學)을 철저히 옹호하였다. 특히, 교육의 핵심을 꿰뚫는 「성의잠(誠意箴)」을 만들어 몸소 실천하고, 『대학』의 '성의-정심'의 학문 단계를 재 강조하였다. 이는 자기조절 및 성찰과 함양을 통한 인격의 확립과 체득으로 '신독(愼獨)'의 실천을 유도한다. 이러한 이남규의 교육사상은 19세기 말∼20세기 초반 전통 유학 교육의 특성을 대변한다.


The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educational ideology of Nam-gyu Lee, a scholar of the late Korean Empire. He, as a faithful patriot and an orthodox Confucian scholar, endeavored to restore national sovereignty, stabilize the lives of the people, and defend against foreign invasion. He was a bureaucrat who fully comprehended how the world works. He laid the foundations of education on Cìxìù(自修'self-cultivation'), and emphasized Chéngyì(誠意'sincerity') and Zhèng-xīn(正心'righteousness'). His aim in education was meant to strengthen the tradition of Confucianism, including its core principles, such as 'Wén (文)·Yán(言)·Zhōng(忠) ㆍXìn(信) ㆍDǔ(篤) ㆍJìng(敬)', and deeply respected the Silhak(實學). He developed “Chéngyì zhēn”(「誠意箴」) and carried it out by himself, and re-emphasized the Chéngyì and Zhèng-xīn in 'The Great Learning' (大學) which induces Shèndú(愼獨'self-examination') through cultivating selfregulation, reflection, and establishment of proper character. Lee's educational ideology represents the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Confucian education from the end of 19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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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도천수대비가>와 '아이'에 대한 두 시선

저자 : 이완형 ( Lee Wan Hyung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9-24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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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수대비가>는 아이에 대한 '善鄕歌능력과 그 효험성 선양'의 두 시선에서 다른 향가와의 특이성이 드러난다. 『三國遺事』 향가 대부분이 왕, 승려, 화랑에 의한 창작이면서 그들의 신통력이나 영웅성을 예찬하고 있음에 반해 <도천수대비가>는 미천한 아녀자의 불심과 향가 신봉은 물론, 아이까지도 향가를 향유하고 善歌모습을 통해 그 영험함까지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천수대비가>와 '분황사천수대비 맹아득안'조에 얹혀진 아이에 대한 두 시선은 다음과 같은 기대에 부응한다. 첫째, <도천수대비가>는 아이까지도 善鄕歌모습을 광포함으로써 민족적 우월성과 문화적 우수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둘째, 일연이 『三國遺事』를 통해 드러내려 했던 향가의 우수성에 대한 또 다른 기제이자 도구를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의의를 가진다. 셋째, 여염집 아낙인 희명과 그 아이의 향가에 대한 기대심리를 통해 신라사회에 확장ㆍ신봉되었던 향가의 가치와 영험성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준다. 이러한 의도는 영험한 사찰 정보를 제시하고 광명의 장치로 활용함으로써 표면적 의미체계를 구축하는 1차적 층위와 '천수관음의 대자대비', '향가의 신통력' 등을 '천수관음의 응현 신봉', '향가의 신효성 인지' 등과 연관시킴으로써 '민족적 우위성ㆍ문화적 우수성ㆍ역사적 대등성 고취', '몽고의 침략으로 피폐된 민족자긍심 회복', '국권 피탈 경계' 등을 재구성하는 2차적 층위를 통해서 확인된다.


< Docheonsudaebiga > shows its uniqueness with other Hyangga in that it promotes the child's ability to sing Hyangga well and its efficacy. While most of the Hyangga in Samgukyusa were built by kings, monks, and Hwarang, their heroic or an occult power, "Docheonsudebiga" depicts the mercy of the lowly woman's, the Hyangga Faith, and even the child is because the appearance of singing Hyangga well. Therefore, the two gazes on the child placed on the section “Docheonsudaebiga” and “Bunhwangsa Chunsudaebi Mangadukan” meet the expected effects as follows. First, < Docheonsudaebiga > is significant in that it secures national superiority and cultural excellence by spreading the appearance of even children singing Hyangga well. Second, it is meaningful in terms of understanding the tool and another mechanism for Hyangga's excellence that Liyeon tried to reveal through 『Samgukyusa』. Third, through the expectation psychology of Heumyeong, an ignoble oman, and the child's ability to sing Hyangga well, the value and spirituality of Hyangga, which was expanded and entrusted to the Silla society, and furthermore, broadened the range of recognition of its efficacy. Fourth, writing Liyeon's historical and cultural equivalence or superiority with China in < Docheonsudaebiga > and its background article makes it possible to prepare another analytical frame and critical preparation of Defense Consciousness against foreign tribes through Hyan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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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세기 초 금강산 표상 연구 ― 최남선의 「풍악기유」와 『금강예찬』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은정 ( Park Eun Jung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5-26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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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금강산의 상징 변화를 추적하는 일환으로 최남선의 「풍악기유」와 『금강예찬』에 주목했고, 「풍악기유」와 『금강예찬』을 통해 최남선이 의도적으로 금강산 상징 만들기에 주력했음을 밝히고 그 이유를 고찰하였다.
「풍악기유」와 『금강예찬』 속에서 최남선은 금강산에 네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첫째, 최남선은 금강산을 세계 명산 중의 제왕으로 자리매김한다. 둘째, 최남선은 금강산을 조선심과 조선 정신의 표상으로 규정한다. 셋째, 최남선은 금강산을 조선 사상의 성지로 삼는다. 넷째, 최남선은 금강산을 고대 신도의 영산으로 상징 짓는다. 이렇듯 1920년대 최남선은 도드라지게 금강산을 조선의 표상이라 주장했고, 의도적으로 금강산의 의미 만들기에 주력했다.
일본이 조선의 금강산을 개발하여 일본의 풍경, 일본의 관광지, 식민지의 상징으로 삼으려 하는 데 반하여, 최남선은 금강산을 조선, 조선심, 조선 정신의 표상이라고 선언했다. 최남선의 금강산 조선 표상화는 금강산이 조선의 것이라는 적극적인 선언이었으며, 일제로부터 조선의 금강산을 지키려는 최남선의 구체적인 행위였다.


This paper paid attention to Choi Nam-seon's 「Pungakgiyu」 and 『Geumgang Yechan』 as part of tracking the symbol change of Geumgangsan in the process of transitioning from pre-modern to modern times. Through 「Pungakgiyu」 and 『Geumgang Yechan』, it was revealed that Choi Nam-seon intentionally focused on creating the symbol of Geumgangsan and the reason was considered.
In 「Pungakgiyu」 and 『Geumgang Yechan』, Choi Nam-seon gives new meanings to Geumgangsan in four aspects. First, Choi Nam-seon establishes Geumgangsan as the king of the world's famous mountains. Second, Choi Nam-seon defines Geumgangsan as a symbol of Joseon spirit. Third, Choi Nam-seon uses Geumgangsan as a sacred place for Joseon ideology. Fourth, Choi Nam-seon symbolizes Geumgangsan as the spiritual mountain of ancient Shinto.
Choi Nam-seon's claim that Geumgangsan is a symbol of Joseon was an active declaration that Geumgangsan belonged to Joseon and a concrete act to protect Geumgangsan in Jose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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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정지용 시론(時論)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 속의 대만(臺灣) 원주민족(原住民族) 서술 연구

저자 : 장정해 ( Chang Chung-hae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9-29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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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대만 원주민족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을 살펴보면 대부분 그들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종족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는데, 이는 일본식민지 통치자들의 시선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해방 이후의 지식인들은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좀 더 주체적인 시각으로 외국 문물과 시사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해방 직후 한국의 대표적인 문인 정지용은 그의 시론(時論) ―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에서 대만 원주민족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에 대한 견해를 서술하였다. 그는 여기에서 대만 원주민족이 교화의 대상이나 미개한 종족이 아닌 자유를 추구하는 도덕적인 존재임을 밝혔는데, 이는 당시 대만이나 일본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대만 원주민족의 자유와 독립 의지를 선구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본 논문은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의 내용 분석을 통하여 정지용이 대만 원주민족에 대해서 어떻게 서술하고 인식했는지 살펴보았다. 이 글에 나타난 정지용의 대만 원주민족(생번)에 대한 인식을 종합해 보면 그는 대만 원주민족을 첫째,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존재', 둘째, '도덕적인 존재', 셋째, 그들을 한민족(韓民族)과 닮은 '남 같지 않은 존재'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지용은 이 글을 통해서 당시 해방과 남북분단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민족이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드러내었다.


If we examine Joseon intellectuals' perception of Taiwanese aborigines before the liberation, we can see that they were conceived as uncivilized and barbaric tribals, which is in line with the perspectives of the colonial rulers.
However, intellectuals after the liberation were able to escape the historical perspective of colonialism while expressing their own opinions on foreign cultures and affairs with a more autonomous viewpoint. Jeong Ji-yong, a representative writer in Korea right after liberation, went against the existing prejudice in describing his view about Taiwanese aborigines with a new perspective in his essay, "A Story that does not Sound Like Others." He made it clear that Taiwanese aborigines are not the object of edification or uncivilized tribes but moral beings that pursue freedom. This argument has great historical significance as it sheds the first light on their will for freedom and independence, which had not been recognized either in Taiwan or Japan.
In that regard, this article examines how Jeong Ji-Yong describes and perceives Taiwanese aborigines by analyzing the contents of his essay, "A Story that does not Sound Like Others." Putting together Jeong Ji-Yong's perception of Taiwanese aborigines in this essay, it can be seen that he regarded Taiwanese aborigines as first, “beings seeking freedom and independence," second, “moral beings," and third, "similar to the Korean people”. Through this essay, it can be said that Jeong Ji-yong expressed his will to overcome the nation's challenges in the period of liberation and the divis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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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근세 한일관계 관련 물품교류 연구 현황과 과제

저자 : 이승민 ( Lee¸ Seung Mi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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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세를 대상으로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조선과 일본 사이의 물품교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연구의 현황과 특징,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의 물품교류 관련 연구는 통신사·문위행 등의 외교사행과 왜관에 도항하는 일본사신 관련 물품교류 및 공·사무역 등을 통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최근에는 그동안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개별 물품에 관한 연구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데, 물품의 종류는 구체적으로는 약재류·동물류·음식류·문방구류·서적류·피물류·직물류·도자류·회화류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본고에서는 주로 역사학계에서 이루어진 물품교류 현황에 대해 검토했지만, 사실 물품이라는 주제는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귀속되기 어렵다. 물품은 인간의 모든 생활과 상호 교류에 쓰인 도구의 총체로서, 물품에 내재된 특징과 역사성에 따라 다양한 학문분과 간의 연구 협력을 전개할 수 있는 주제가 된다. 따라서 물품을 키워드로 폭넓은 학제적 융합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과 일본이라는 단일지역에서 탈피해 한·중·일과 더 나아가서는 동유라시아 차원으로 연구 대상 지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순한 생산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어 어떤 경로를 통해 교역·유통되고 어느 지역의 어느 계층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는지에 관한 총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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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시대 교(膠)의 명칭 분화와 제조·생산된 교의 종류

저자 : 김병모 ( Kim¸ Byoung-mo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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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리나라 교 문화 발전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는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관찬서와 개인 저술에 나타난 교의 명칭, 명칭의 분화, 명명법 특징, 제조·생산된 교의 종류 등에 관해 검토를 진행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 문화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교에 관한 명칭이 어떠한 역사적 전개 과정을 거쳐 정착, 분화되었는지 분명히 알기 어렵지만 삼국시대에 이미 몇몇 종류의 교를 출현시키며 일정한 교 문화를 형성시킨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양상은 고려시대도 지속되어 보다 다양한 교 명칭 및 종류가 출현하고, 중국식 명명법의 수용 역시 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에 비해 교 관련 기록이 크게 증가하고 교 명칭 및 종류 역시 교려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약적 증가가 나타난다. 즉 관찬서와 개인 저술에서 각각 7종 내외의 교 명칭과 10종 내외의 교 제조 사실을 확인시킨다. 명명법의 경우 중국식 명명법의 지속적 수용 및 운용을 강하게 내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선 나름의 특징적 요소를 적극 반영하는 모습도 강하게 내비친다. 한마디로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종, 다양의 토대 위에서 교 문화를 형성, 전개시켜간 것으로 파악되며, 그러한 다양, 다종의 교 문화 형성에 국가와 민간 영역 모두 상당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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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혜적 공감의 문화정전 『논어』와 『맹자』

저자 : 안외순 ( Ahn¸ Woe Soo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1-11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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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논어』와 『맹자』의 유교 정전으로서의 위상 확립과정을 소개하고 그 위상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공자와 맹자 두 사상가는 이전 문명의 정전화(正典化)에 기여한 공헌으로 스스로의 작업들도 정전(正典)의 반열에 올랐다. 즉 공자는 중국 고대문화 텍스트들인 <육경>을 정전으로 형성하면서 자신도 그 공헌으로 유교문명권의 최고 지성과 정전의 반열에 올랐고, 맹자 역시 공자의 업적을 체계화/심화시키고 『논어』의 정전 형성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공자 다음가는 성인(聖人)이라는 의미에서 아성(亞聖)이라 일컬어지고 그의 저작 『맹자』도 경전(經傳), 곧 정전이 되었다. 두 정전은 이전 업적을 문화정전으로서 '온고(溫古)'하고 새로이 개척한 가치와 문화를 '지신(知新)'함으로써 새로운 유교문명권을 창조하였다. 그 핵심에 인(仁)이라는 호혜적 공잠의 가치와 그 확장논리인 인정(仁政) 이론과 외교론, 그리고 그 근본을 형성하는 인간의 도덕(감정)론을 새로이 구축하였다. 두 저서의 정전화 과정은 단순히 고전의 정전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전환 과정이기도 했다. 곧 패권 중심의 춘추전국시대의 현실을 극복하고 호혜적 공감의 가치, 인(仁)에 입각한 새로운 문명질서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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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간찰로 본 圭南 河百源의 仕宦期 양상 -자식에게 보낸 간찰을 중심으로-

저자 : 나상필 ( Na¸ Sang-pil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7-14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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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남 하백원은 성리학적 이론을 학문의 근간으로 확립하고 실리를 강조하여 실학을 연구하며 한 평생을 보냈던 실학자이다. 그런데 50대 이후 관직 생활로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본고는 규남박물관에 소장된 간찰 중에 사환기부터 세 아들에게 보낸 초서 간찰 63통과 『규남문집』에 수록된 간찰 2통을 탐구하여 그의 관직 생활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규남의 관직 생활은 중앙 직과 지방 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834년부터 창릉참봉, 의금부 도사, 순릉 직장, 형조 좌랑까지 중앙에서 관직을 역임했고, 1840년 경기전 령, 석성 현감까지 지방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1842년에 충남 보령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해배된다. 약 9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던 간찰을 통해 안부 및 처지, 근무지의 상황, 조정의 사건사고 등 관직 생활 중 경험하였던 소식을 전달하지만, 자신이 부재중인 상태에서 일어난 집안의 문제, 자식의 성장, 전통의 계승 등 많은 일에 관여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규남이 자식에게 보낸 간찰을 분석하여 규남의 관직 생활 중 다양한 양상을 논구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부모의 리더십을 발휘한 점에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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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충청지역 십승지지의 고찰

저자 : 한종구 ( Han¸ Jong-koo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9-18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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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십승지지에 대한 연구는 일부 이루어졌으나, 충청지역의 십승지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 고는 충청지역 십승지지의 올바른 이해를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충청지역 십승지지의 위치에 대한 비결의 기록을 문헌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록된 십승지의 현 위치를 고지도 분석 및 현장답사를 통해 비정하였다. 그리고 비정된 현 위치를 대상으로 도참서가 의존하고 있는 풍수이론을 활용하여 입지를 분석하였다.
비결 중 『감결』, 『남경암십승지』, 『서계이선생가장결』에서 한 번이라도 언급된 충청지역은 단춘, 공주, 정산, 마곡 골짜기, 계룡산 밖의 네 고을, 보은 속리산 네 증항 근처, 공주 계룡산, 유구 마곡사 사이의 8곳을 들 수 있으며 세 비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곳은 속리산 증항 근처와 공주의 유구와 마곡 사이 두 곳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들 두 지역의 대상지를 문헌 및 고지도 분석 그리고 현장답사를 통해 속리산 사증항 근처 중 적암리와 공주의 유구와 마곡사 사이의 서양골 두 곳으로 비정하고 분석하였다.
이들 지역은 본 연구를 통해서 지적했듯이 풍수적인 측면에서 부합되는 바도 많지만, 마을이 입지하는 양기풍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풍요로운 삶을 위한 합리적인 취락의 입지로서는 불리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지역은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의 서얼, 정치적으로 누명을 쓴 죄인들이나 굶주린 농민들 등이 풍수적인 길 지라는 측면보다 우선적으로 삶을 연명하기 위한 도피처로서 찾았던 곳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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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엄의 사부에서 나타난 정감

저자 : 양승덕 ( Yang¸ Seoung Duk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7-21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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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엄은 남조(南朝) 사부사(辭賦史)의 명가로 현존하는 부가 28편인데, 모두 서정 영물부이다. 강엄의 사부는 고부에서 변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의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부에는 한위(漢魏) 고부(古賦)의 순박함과 후세 변부(騈賦)의 화려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강엄의 사부는 한부의 “현인실지(贤人失志)”와 “영물(詠物)” 두 가지 주제를 계승하여 내재적인 감정 묘사를 주로 하는 서정(抒情)소부와 정감 표현으로 뛰어난 체물(體物)소부로 발전시켰다. 그는 한부(漢賦)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그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슬픔을 사부에 융합시켜 슬픈 정감을 묘사하는 데에 뛰어났다.
강엄은 구체적인 유형의 정감 묘사에 뛰어나 심오한 정감을 세밀하게 나타냈고, 또한 그의 부는 진실한 감정과 현실 인생의 조우로 인한 강건하고 구슬픈 정취 때문에 사람들에게 늘 감동을 준다.
강엄은 사부에서 사도의 실의로 인한 고통과 인생의 실의로 인한 슬픔을 남김없이 다 드러냈고, 정감과 사물에 대한 묘사에는 작자의 심사와 철학적 사고가 내재하여있어 비정(悲情)의 풍격이 나타나 몽롱하고 심원하며 떨쳐 버릴 수 없는 근심과 이별의 정이 가득 차 있어 감상적이지만, 강건한 기세 역시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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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춘정 변계량의 삶의 자세와 학문의 목표-한시를 통해 본 여말선초 지식인의 학적 지향과 내면 행로-

저자 : 김남이 ( Kim¸ Nam Yi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4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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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표는 여말 선초의 격변기를 살았던 관료 문인으로서 춘정 변계량의 면모를 보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설정한 주요 논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춘정집』에 부쳐진 서발문자를 자료로 하여 춘정의 학문과 문학을 당대 및 후대에 어떻게 평가했는지 살피는 것이다. 둘째, 춘정 생애의 중요한 국면과 그때 쓰여진 작품들을 연계하여 내적 행로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몇 개의 필기 잡록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내내 재생산되었던 춘정에 대한 편향된 평가의 실체를 재검토하고, 그의 상(像)을 다시 재구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였다. Ⅱ장에서는 『춘정집』의 서발문을 자료로 춘정에 대한 평가를 살폈다. 춘정의 학문 계보는 정몽주-이숭인-권근으로 표명되는데, 특히 『대학』 『중용』이 강조되었다. 이는 양촌-춘정 사이에 계승된 학맥의 실체를 보여준다. Ⅲ장에서는 춘정의 한시 중 연대를 추적할 수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의 내면 행로와 가치관을 분석하였다. 고려-조선의 역사적 변혁에서 춘정은 대의와 애민이라는 유교적 명분을 자신의 행로를 결정하는 가치로 삼으면서 유학자로서 실천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관료로서의 생활은 자기 내면의 지향과 현실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뚜렷했다. 그러나 이 또한 철저한 학적 자세를 견지한 반본(返本)과 경세의 강한 의지로 해소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여말 선초 역사의 갈림길에서, 자기 내면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유학적 가치를 근간으로 현실과 분투했던 한 지식인의 내면 행로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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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韓·中·日 고전문학 속의 여성(女性)과 바다

저자 : 이경미 ( Lee¸ Kyung Mi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3-26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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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가부장제가 사회의 근간이었던 고대 한중일 삼국에서 바다는 '금녀(禁女)의 공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남성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한중일 고전문학 작품 속의 일부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바다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다에 도달한 여성들에게 그곳은 어느 하나로 규정 될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로 펼쳐졌다. 가부장사회로부터 추방되어 마주한 바다는 이별과 죽음이라는 단절의 공간이기도 하였지만. 한편 당시 사회의 현실적 제약과 금기를 허물고 주도적으로 바다로 나아갔던 여성들에게는 새로운 만남과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고, 때로는 고난을 극복하여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재생과 구제의 기적까지도 이루어 내기도 하였다. 이 땅에 태어난 순간부터 '효녀', '열부', '현모양처'라는 가부장체제의 규획된 틀 속에서 소리 없이 흑백의 삶을 살았던 고대 한중일 여성들에게 바다는 역동적이며 출렁이는 물소리와 함께 총천연색으로 펼쳐진 문학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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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윤희순 의사의 작품을 통해 본 의병활동과 선비정신의 상관성

저자 : 이학주 ( Lee¸ Hak Ju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7-29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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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윤희순 의사가 생전에 남긴 16편의 작품을 통해서 의병활동과 선비정신의 상관성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다. 작품을 분석해 본 결과 윤희순 의사는 선비정신인 공동체의 사랑과 의리를 실천하기 위해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윤희순 의사는 기존에 갖고 있던 조선 선비의 정신이 아니라, 윤희순식의 선비정신으로 의병활동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윤희순 의사가 노래를 지어 민중들이 의병의식을 갖도록 했으며, 경고문을 통해 조선 선비의 아내가 일제에 저항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희순과 함께 의병활동을 한 사람들이 안사람 위주였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어렵지 않은 일상어를 사실적으로 사용하였다. 노래의 양식도 일상에서 많이 불러봤던 강원도아리랑조였을 것이고, 긴 것은 가사처럼 읊조렸을 것이다.
윤희순은 글의 작성자란에 '조선선비의 아내 윤희순', '조선 안사람 대표' 등의 문구를 넣었다. 그리고 노래와 경고문 내용에 '선비'라는 표현이 있음에 착안하여 윤희순의 의병활동 정신과 방식을 살폈다. 윤희순은 일본인에게는 '조선 선비'라 하여 '조선'이라는 말을 넣고, 일제앞잡이에게는 '선비'라는 표현을 썼다. 아울러 선학(先學)들의 연구에 따라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결과에 따라 윤희순도 같은 선비정신으로 임했는데, 그는 선비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조선선비의 안사람'자격으로 의병을 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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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사(歌辭)에 수용된 속담(俗談)의 성격과 의미

저자 : 서보현 ( Seo¸ Bohyeon )

발행기관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간행물 : 동방학 4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5-31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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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가사에 수용된 속담들을 문맥 안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성격에 따라 구분하여 살피고 그 의미를 밝힌 것이다. 속담은 간결한 표현으로 일상 체험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를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텍스트 내에 수용된 속담의 성격은 작품의 문체적 특성에 따라 차별화되어 나타난다. 이에 따라 2장에서는 가사의 장르적 특성을 염두하여 가사에 수용된 속담을 제시되는 전후 상황에 밀착하여 다음 서술을 전개하는 '서술 확장적 속담'과 상황을 요약·정리하고 그 상황의 요점을 기술함으로써 그 성격을 규정하는 '서술 집약적 속담'으로 분류하여 텍스트 내 수용된 양상을 분석하였다. 3장에서는 신문이라는 매체에 기반하여 창작된 계몽가사에 쓰인 속담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인쇄매체의 특성에 따라 문어적 성격이 강화된 속담의 양상과 속담이 근대적 자각을 고취하고 대중적 설득을 얻기 위한 표현기법으로 사용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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