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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대순사상논총> 무속과 증산의 해원사상 비교를 통해 본 대순사상 연구 관점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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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증산의 해원사상 비교를 통해 본 대순사상 연구 관점의 문제

Problems with Comparative Research on Daesoon Thought and Shamanism as Related to Jeungsan’s Concept of Grievance-Resolution

차선근 ( Cha Seon-keun )
  •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 : 대순사상논총 38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8월
  • : 115-151(37pages)
대순사상논총

DOI


목차

Ⅰ. 논쟁의 전개 : 증산의 해원상생은 무속 해원의 답습인가?
Ⅱ. 논쟁을 들여다보기 전에
Ⅲ. 쟁점 검토
Ⅳ. 대순사상,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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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금은 무속에 해원과 상생 이념이 이미 있었으며, 증산은 그것을 답습하여 이론화하고 구체화했을 뿐이기에 그의 종교활동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차선근은 증산의 해원과 상생을 무속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그 내용이나 범주가 무속보다 더 크고 넓기에, 증산의 종교활동은 무속의 세계관과는 구별되는 나름의 독창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은 당사자들을 제외한 다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논쟁은 해원과 상생의 개념 해석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에 접근할 때 어떤 학술적 관점과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대순진리회 관점에서 그들의 논쟁에 발견되는 쟁점을 네 가지로 정리하여 검토하였다. 그것은 첫째, 증산이 무속의 해원 대상과 그 범주를 그대로 답습한 것인지, 확장한 것인지 하는 문제다. 둘째는 증산의 해원에 들어있는 상생과 보은의 윤리가 무속의 윤리를 재활용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셋째는 증산의 해원 방법이 무속 해원 방법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넷째는 증산의 종교 행위와 사상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이러한 쟁점 검토를 통해, 이영금과 차선근은 종교를 연구하는 태도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증산의 종교사상을 무속의 세계관 속에 가두어놓고 해석하려는 이영금의 접근법은 학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증산이 무속의 세계관, 불교의 교학, 도교의 사상, 기독교의 신학을 얼마나 충실히 잘 반영ㆍ재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 들기보다는, 증산을 증산 그 자체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무속ㆍ불교ㆍ유교ㆍ도교ㆍ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유형과 무형의 특정 요소들이 증산의 종교사상 내에서 관찰된다면 그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혹 재해석된 부분은 없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영금의 경우와 같이 유사점만 강조하는 방식은 과거의 낡은 학문으로 비판받는다. 현대 종교학은 차이점까지 동시에 살펴보고자 한다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According to Lee Young-geum, the ideas of grievance resolution and mutual beneficence were already present in shamanism. She also insists that Jeungsan merely theorized upon these ideas by inheriting them and his religious activities must be identified from within a shamanistic worldview. Contrary to Lee’s claim, Cha Seon-keun argues that the grievance resolution of Jeungsan is far beyond the contents and level of development found in shamanism. He also insists that Jeungsan’s religious activities must be identified as having a certain orderly uniqueness distinct from shamanism.
The argument between these two different perspectives has not attracted other researchers besides those who are directly involved. However, this debate deserves attention with regard to the problem of how one approaches a given religion and which academic perspective should be applied.
Based on the perspective of the Daesoon Jinrihoe, this study examines their debate by considering four issues. Firstly, whether Jeungsan inherited or expanded upon the subject of grievance resolution and its range remains undetermined. Secondly, the ethics of mutual beneficence and grateful reciprocation in Jeungsan’s concept of grievance resolution should be analyzed as to whether that idea reasserts the ethics of shamanism. Thirdly, it is necessary to study whether his method of grievance resolution fully embraced the methods of grievance resolution that exist in shamanism. Lastly, it should be determined whether or not Jeungsan’s religious activities and system of thought should be identified within a shamanistic worldview.
Through this review, Lee and Cha can be shown to have different opinions on the academic approach to research on religion. Accordingly, this study concludes that Lee’s method of only interpreting Jeungsan’s religious thought via a shamanic worldview is incompatible with academic methodology. A scholar of religious studies should discuss Jeungsan on his own merits rather than just imply that Jeungsan thoroughly reflects the worldview of shamanism, doctrinal studies of Buddhism, and Daoist thought as well as other theologies. In other words, if certain tangible and intangible elements found in shamanism, Buddhism, Confucianism, Daoism, and Christianity are also observed in Jeungsan’s religious thought, it is necessary to comprehend how different or similar those elements are or whether they are re-interpreted in any manner. In the case of Lee, her method of overemphasizing similarities is now criticized as outdated. Nowadays, it is necessary to demonstrate awareness of modern religious studies tendency to pay equal attention to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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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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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정기
  • : 1598-3439
  • : 2671-6313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1
  • :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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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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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순사상에 나타난 덕(德)과 그 실천수행 - 강증산의 '천지대덕(天地大德)'과 관련하여-

저자 : 주소연 ( Joo So-yeon ) , 고남식 ( Ko Nam-sik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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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 대순사상에 나타난 덕과 관련해서 살펴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순사상에서 덕개념은 도와 관련 유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도와 덕은 음과 양의 관계처럼 밀접한데 도는 신격위(神格位)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인 강증산(姜甑山, 九天上帝, 姜一淳, 姜士玉, 1871~1909, 壽39歲)이 강세(降世)한 객망리(現 정읍)의 시루산 공부(1900) 후 대원사(大院寺)에서의 공부(1901)로 연 천지대도(天地大道)이며, 덕개념은 삼덕(三德)인 천덕(天德), 지덕(地德), 인덕(人德)의 대덕(大德)으로 나타난다. 이어서 신격위가 '조성옥황상제(趙聖玉皇上帝)'인 조정산(趙鼎山, 趙聖玉皇上帝, 趙哲濟, 道主, 1895~1958, 壽 64歲)은 강증산의 천지대도를 빛내고 이로부터 생성된 천지대덕(天地大德)을 계승해서 강증산의 대업(大業)을 홍포(弘布)하겠다고 하였다. 이는 천지대덕의 덕화로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여 도통군자를 이루고, 지구상에 이룩될 무량극락(無量極樂) 청화(淸華) 오(五)만년 용화선경(龍華仙境)으로 천하 창생들을 인도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삼계(三界)의 덕인 천덕, 지덕, 인덕은 각각 체용론적으로 보아 천용(天用), 지용(地用), 인용(人用)과 대응되며 인간은 천지자연과 유기적 관계이고 이 천지인의 용(用)은 구천상제인 강증산의 조화(造化)에 있다.
셋째, 인간이 베푸는 덕은 마음(心) 수양과 관계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심령을 구해서 궁리하며 선(善)을 실천하고 악을 없애는 실천 수양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마음으로 천지인의 용(用)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덕의 실천과 관련해서 보면, 호생의 덕은 살아있는 생명을 가진 만물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 그 승화된 모습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인존(人尊)사상에까지 닿아 있다. 언덕은 남에게 척을 짓지 않음으로써 인존세상을 실현할 수 있는 덕이다. 포덕은 강증산의 천지대도와 조정산의 봉교(奉敎) 및 포교(布敎)로부터 발현되는 덕을 세상에 펼치는 일에 인간이 동참하는 일이다. 강증산은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하에 그의 천지대도로부터 발현되는 천지대덕으로 인간의 복록 및 수명과 일상의 삶이 이루어짐을 말하였다. 이에 천하포덕은 인간에게 일상에서 복을 주고 신앙적 소원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며 원천이다. 공덕은 덕을 타인에게 실천수행하여 운수(運數)와 복(福)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Since ancient times, the word Deok (德, virtue) has been used as a term in ethics. In the east, it originally meant 'to acquire (得),' and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it was used to indicate 'personality' or 'value;' especially for political leaders. Then, in Confucianism, the word Deok developed into an ethical term suggesting that people should acquire Deok in their action so as to achieve human perfection.
In Daesoon Thought, Deok originates from the Dao, and the two are close in the same manner that Yin and Yang are close and interrelated. The Dao of Daesoon Thought indicates the Great Dao of Heaven and Earth, which Gucheon Sangje had opened when he performed his Gongbu (holy work) at Daewonsa Temple, is such that the Great Deok was divided into the Deok of Heaven, the Deok of Earth, and the Deok of Humanity. This allows for the realization of Deok in each of the Three Realms. Jo Jeongsan, the successor of Gucheon Sangje, said that he will inherit the Great Deok originated from the Great Dao and enlighten the world to the Dao. The cause of the accumulation of grievances in the Three Realms was due to the failure to sufficiently spread Deok throughout the Three Realms. The Later World is where Deok will be offered in its full extent as it was secured by the Cheonjigongsa (Reordering Works of Heaven and Earth) performed by Gucheon Sangje. However, as the main agent of spreading Deok is the heart-mind, humans need to cultivate their heart-mind in the correct way. When humans finally become Dotong-gunja (beings who are perfectly unified with the Dao) and generously practice Deok in the world, there will be no grievances anywhere in the Three Realms.
There are four ways of practicing Deok: Deok by caring for life, Eondeok (Deok of speech), Gongdeok (practicing meritorious Deok), and Podeok (spreading of Deok) to the world. Practicing the Deok by caring for life is to save and protect living beings based on the spirit of Jesaenguise (saving lives and curing the world).
Eondeok is practiced when people speak to others in a positive way that fosters widespread goodness based on the spirit of Sangsaeng (mutual beneficence). When people perform Gongdeok they will be rewarded for their actions. Podeok can be realized when the followers of Sangje spread the Great Dao of Heaven and Earth based on the teachings of Daesoon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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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산 송규의 사상 형성과정에 미친 증산의 영향

저자 : 김탁 ( Kim Tak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7-8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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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는 15세 때 증산교인들과 만나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정산은 그들의 권고로 가야산에서 3개월 동안 수행했으며, 가족들에게도 태을주(太乙呪) 수련을 하도록 포교했다. 이 후 정산은 18세 무렵에는 여러 이적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그 해 가을에는 증산의 행적을 좇아 멀리 전라도까지 찾아간다. 그곳에서 정산은 증산의 누이동생을 자신의 고향인 경상도 성주에 모셔와 백일치성을 드리는 정성을 보였다. 다시 증산의 생가를 찾아간 정산은 증산의 외동딸로부터 「정심요결」이라는 도교적 수련서를 전수받았고, 증산이 천지대도를 연 장소인 모악산 대원사에서 10개월간 공부를 행하였다. 대원사에서 만났던 증산교인과의 인연으로 그녀의 집에 머물던 정산은 그곳에서 비로소 소태산과 만났다. 소태산과의 만남이 있기 이전의 청년 정산은 증산교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정산은 원불교를 선언한 이후로도 제생의세(濟生醫世)라는 증산의 종교적 표어를 사용했고, 증산이 제자들에게 써주었던 글귀를 주문처럼 외웠으며, 증산이 짓거나 인용한 한시(漢詩)를 언급했다. 그리고 정산은 증산이 지은 『현무경(玄武經)』에 나오는 구절들을 독특하게 해석했으며, 증산이 했던 말을 자주 인용했다. 나아가 정산은 증산의 언행록에 나오는 글귀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했으며, 증산을 개벽을 주재하는 삼원(三元)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적극 인정했다.


At the age of 15, Song Gyu, the second patriarch of Won Buddhism, met Jeungsan-gyo members and was substantially influenced by them. Jeongsan cultivated himself for three months in Mount Gaya based on their recommendations. He instructed his family members to practice reciting the Tae-eul Mantra. Henceforth, Jeongsan was said to attain supernatural power when he was around 18 years old, and he pursued the traces left by Jeungsan in Jeolla Province.
Once there, he asked Jeungsan's younger sister to move to his hometown, Seongju, Gyeongsang Province, and he served her with his utmost sincerity. He went back to the birthplace of Jeungsan and received a Daoist book from Jeungsan's daughter titled, Essentials for an Upright Mind (正心要訣). Jeongsan practiced holy works for 10 months at Daewon-sa Temple in Mount Moak where Jeungsan was said to have attained unification with the Dao. After he had met Jeungsan-gyo members at the temple, he was able to stay in her house where he ended up meeting So Taesan. Before their meeting, it is obvious that Jeongsan was a member of Jeungsan-gyo.
Afterward, Jeongsan entered into Won Buddhism and used the passage, 'saving lives by curing the world (濟生醫世).' He recited the writing of Jeungsan, which had been given to his disciples, as if it had been a mantra. In addition, he mentioned Jeungsan's poems or the Chinese poems that he had quoted many times. Jeongsan also interpreted passages from The Hyunmu Scripture (玄武經) written by Jeungsan in a unique manner. Jeongsan answered his disciples in his own way when they asked questions on the teachings of Jeungsan. He recognized Jeungsan as one of the Three Primes, who presided over the Great 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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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자와 증산의 상생이론 비교 고찰

저자 : 안유경 ( An Yoo-kyoung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1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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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주자(1130~1200)와 증산(1871~1909)의 상생이론의 의미를 비교 고찰함으로써 이들의 이론적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생존뿐만 아니라 물질ㆍ명예ㆍ권력 등에 대해서도 무한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한편으로 생존을 위해서 화합ㆍ공생을 도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대립ㆍ갈등하고 경쟁한다. 이로써 인간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는 화합을 도모하는 상생의 동반자가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경쟁의 적인 것이다. 동시에 인간은 무한한 욕망을 극복하고 도덕성을 실현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경쟁구도의 다양한 사회문제는 인간의 노력과 반성을 통해서 해결해나갈 수 있는데, 이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지혜를 동원하여 사회문제의 해결에 주력하게 된다.
증산은 상생을 대순사상 종지의 하나로서 강조한다. 주자의 성리학에도 대순사상의 상생에 버금하는 이념이 존재하니 그것이 바로 인(仁)이다. 성리학에서는 '인'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보살피고 양육)함으로써 조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상생'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어떠한 갈등이나 원한이 없이 오로지 화해와 공존의 후천선경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또한 주자는 사욕을 제거함으로써 인(천리)을 실현해나갈 것을 강조한다. 이때 '인'과 '사욕'의 관계는 대순사상의 '상생'과 '원한'의 관계와 유사하다. 사욕이 제거되면 곧장 '인'의 원리가 실현되어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루듯이, 원한이 해소되면 곧장 '상생'의 원리가 실현되어 무궁한 후천선경이 이룩된다.


This paper identifies what the theoretical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re in the concept of Sangsaeng held by Zhuxi (1130~1200) and Jeungsan (1871~1909). Human beings cannot live alone. For humans to survive, they must live with others.
However, humans have an infinite desire not only for survival but also for material things, honor, and power. In other words, humans, on the one hand, seek harmony and symbiosis for survival, and on the other, constantly confront, conflict and compete with one another to satisfy their infinite desires. Thus, human-to-human interrelationship is not a co-prosperity that creates partnerships for harmony but one of adversaries within competition that must be fought and defeated.
At the same time, humans can achieve harmony and cooperation by overcoming their infinite desires and realizing morality. Therefore, various social problems that originate from competitive structure, which are dominated by confrontation and conflict, can be solved through human effort and reflection, so that humans can focus on solving social problems by mobilizing their own wisdom.
Jeungsan emphasized Sangsaeng as mutual beneficence and it became one of the creeds of Daesoon Thought. In the Neo-Confucianism of Zhuxi, there is an ideology of Sangsaeng as co-prosperity and this is comparable to mutual beneficence in Daesoon Thought. In Zhuxi's terminology it is called 'In (仁), humanity.' In Neo-Confucianism, a harmonious world is achieved by loving people and caring for and nurturing all things when the principles of humanity are realized. This means that when the principle of co-prosperity is realized in Daesoon Thought, there will be no conflict or grudges, and only an acquired vision of reconciliation and mutual beneficence will be achieved. Zhuxi also emphasizes the realization of humanity (cheonli) by eliminating self-interest. At this time,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ity and 'self-interest' is similar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utual beneficence and grievances in Daesoon Thought. Just as the principle of 'In' fosters love among people and the benefit of things immediately after self-interest is removed, the principle of mutual beneficence is realized immediately after grudges are resolved. This achieves an endless of paradise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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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무속과 증산의 해원사상 비교를 통해 본 대순사상 연구 관점의 문제

저자 : 차선근 ( Cha Seon-keun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5-15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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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금은 무속에 해원과 상생 이념이 이미 있었으며, 증산은 그것을 답습하여 이론화하고 구체화했을 뿐이기에 그의 종교활동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차선근은 증산의 해원과 상생을 무속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그 내용이나 범주가 무속보다 더 크고 넓기에, 증산의 종교활동은 무속의 세계관과는 구별되는 나름의 독창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은 당사자들을 제외한 다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논쟁은 해원과 상생의 개념 해석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에 접근할 때 어떤 학술적 관점과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대순진리회 관점에서 그들의 논쟁에 발견되는 쟁점을 네 가지로 정리하여 검토하였다. 그것은 첫째, 증산이 무속의 해원 대상과 그 범주를 그대로 답습한 것인지, 확장한 것인지 하는 문제다. 둘째는 증산의 해원에 들어있는 상생과 보은의 윤리가 무속의 윤리를 재활용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셋째는 증산의 해원 방법이 무속 해원 방법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넷째는 증산의 종교 행위와 사상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이러한 쟁점 검토를 통해, 이영금과 차선근은 종교를 연구하는 태도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증산의 종교사상을 무속의 세계관 속에 가두어놓고 해석하려는 이영금의 접근법은 학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증산이 무속의 세계관, 불교의 교학, 도교의 사상, 기독교의 신학을 얼마나 충실히 잘 반영ㆍ재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 들기보다는, 증산을 증산 그 자체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무속ㆍ불교ㆍ유교ㆍ도교ㆍ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유형과 무형의 특정 요소들이 증산의 종교사상 내에서 관찰된다면 그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혹 재해석된 부분은 없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영금의 경우와 같이 유사점만 강조하는 방식은 과거의 낡은 학문으로 비판받는다. 현대 종교학은 차이점까지 동시에 살펴보고자 한다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According to Lee Young-geum, the ideas of grievance resolution and mutual beneficence were already present in shamanism. She also insists that Jeungsan merely theorized upon these ideas by inheriting them and his religious activities must be identified from within a shamanistic worldview. Contrary to Lee's claim, Cha Seon-keun argues that the grievance resolution of Jeungsan is far beyond the contents and level of development found in shamanism. He also insists that Jeungsan's religious activities must be identified as having a certain orderly uniqueness distinct from shamanism.
The argument between these two different perspectives has not attracted other researchers besides those who are directly involved. However, this debate deserves attention with regard to the problem of how one approaches a given religion and which academic perspective should be applied.
Based on the perspective of the Daesoon Jinrihoe, this study examines their debate by considering four issues. Firstly, whether Jeungsan inherited or expanded upon the subject of grievance resolution and its range remains undetermined. Secondly, the ethics of mutual beneficence and grateful reciprocation in Jeungsan's concept of grievance resolution should be analyzed as to whether that idea reasserts the ethics of shamanism. Thirdly, it is necessary to study whether his method of grievance resolution fully embraced the methods of grievance resolution that exist in shamanism. Lastly, it should be determined whether or not Jeungsan's religious activities and system of thought should be identified within a shamanistic worldview.
Through this review, Lee and Cha can be shown to have different opinions on the academic approach to research on religion. Accordingly, this study concludes that Lee's method of only interpreting Jeungsan's religious thought via a shamanic worldview is incompatible with academic methodology. A scholar of religious studies should discuss Jeungsan on his own merits rather than just imply that Jeungsan thoroughly reflects the worldview of shamanism, doctrinal studies of Buddhism, and Daoist thought as well as other theologies. In other words, if certain tangible and intangible elements found in shamanism, Buddhism, Confucianism, Daoism, and Christianity are also observed in Jeungsan's religious thought, it is necessary to comprehend how different or similar those elements are or whether they are re-interpreted in any manner. In the case of Lee, her method of overemphasizing similarities is now criticized as outdated. Nowadays, it is necessary to demonstrate awareness of modern religious studies tendency to pay equal attention to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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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라승 김지장(金地藏)의 지장보살화(地藏菩薩化) 과정

저자 : 안양규 ( An Yang-gyu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3-18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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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출신인 김지장(金地藏)은 현재까지도 중국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불교에서 김지장의 보살화(菩薩化)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특이하다. 첫째 자국인 신라가 아니라 타국인 중국에서 보살화가 비롯되고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역사적 실존 인물이 신화적 존재인 지장보살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지장의 보살화 과정은 크게 3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시기는 중국의 구화산에 들어가서 수행하고 중생들을 교화하는 기간으로 지장보살처럼 추앙받는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김지장이 입적직후부터 입멸 후 3년까지의 시기로 김지장의 전신사리(全身舍利)를 모시는 탑과 탑묘(塔廟)가 만들어진 시기로 지장보살로 동일시되는 시기이다. 셋째 시기는 입적 후 3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장보살로 유지되는 시기이다.
김지장의 보살화 과정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내적 보살화 과정이다. 김지장의 수행과 교화가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지옥 중생을 포함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대원을 실천한 것이다. 중생 교화는 철저한 자기 수행과 엄격한 수행 생활에 근거하고 있다. 김지장의 덕화를 입은 사람들은 김지장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보살화 과정에는 보은(報恩) 심리가 내재해 있다. 대중들의 심리 속에 은혜를 베푼 인물을 잊지 않고 존경해야겠다는 심리가 있다. 김지장이라는 은인(恩人)을 기억하려는 의도가 김지장의 지장보살화를 촉진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외적 보살화 과정이다. 신비적인 현상도 보살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입적 시 나타난 신이나 입적 후 3년에 육신불의 화현은 보살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육신불의 화현은 역사적인 인물에서 초역사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이런 육신불에 보시를 하면 공덕이 발생한다는 신념은 대중들에게 지속해서 김지장을 지장보살로 경배하도록 하였다. 이런 대중들의 신앙심에 발맞추어 중국 황실에서 수시로 김지장의 전신사리를 모신 육신보전을 보수하고 지원함으로써 김지장을 국가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김지장의 지장보살화 과정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분석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재세시 김지장의 수행과 덕화(德化)에 기인한 것이다.


The Buddhist monk, Kim Ji-jang (金地藏), a native of Silla, is still revered as Ksitigarbha Bodhisattva in China. In Chinese Buddhism, Kim Ji-jang's becoming Ksitigarbha Bodhisattva is unique in at least two ways. First, it is said that his becoming the bodhisattva originated not in Silla, but in China, a foreign country. Second, it is said that the historical person became regarded as a mythical being, Ksitigarbha Bodhisattva.
The process of Kim Ji-jang's becoming Bodhisattva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The first period is the period of entering and practicing at Mount Jiuhua in China, and this also includes the period wherein he was first revered as Ksitigarbha Bodhisattva. The second period begins immediately after Kim Ji-jang's death and ends three years later. In this period he became regarded as Ksitigarbha Bodhisattva. The third period spans three years after his death to the present age. His status as Ksitigarbha Bodhisattva carries on at present.
There are two main causes for Kim Ji-jang's transformation into the bodhisattva. The first is an internal bodhisattva process. According to Ksitigarbha Bodhisattva's main vow, Kim Ji-jang's practice and edification impressed the public. The second is an external bodhisattva process. The miracles that appeared at the time of his death or the manifestation of the incorruptible relics three years after his death played a decisive role in the process of Kim Ji-jang becoming a bodhisattva. In line with the public's devotion, the Chinese imperial family repaired and supported the temple that enshrined the relics of Kim Ji-jang. Various factors could be analyzed in the process of Kim Ji-jang's becoming Ksitigarbha Bodhisattva, but more than anything else, it was Kim Ji-jang's severe ascetic practices and his virtuous edification of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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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호익(曺好益) 『역상설(易象說)』의 상수학적 연원

저자 : 임재규 ( Im Jae-kyu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3-20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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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익(曺好益) 『역상설(易象說)』의 상수학적 연원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周易本義附録纂注)』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호일계는 주자의 『주역본의』를 기본으로 하고, 주자의 문집과 어록 등의 관련 내용을 찾아 부록이라 하였고, 그리고 제유의 역설 중 『주역본의『의 뜻에 부합하는 주석을 모아서 찬주로 하였다. 여기에다 호일계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의 '우위(愚謂)'나 '우안(愚案)' 등이 있다. 이러한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 체제는 사실상 조호익의 역학 저서 체제와 거의 일치한다. 즉 조호익은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의 부록, 찬주의 내용에 해당하는 저서로 『역전변해(易傳辨解)』, 『주역석해(周易釋解)』를 지은 듯하다. 이러한 저서는 주자의 『주역본의』의 단상을 정밀하게 밝힌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주역본의부록찬주』 '우위'나 '우안'에 해당하는 저서로 『역상설』이 있다. 『역상설』은 원래 독립적인 역학 저서가 아니라 『주역』의 두주 형태로 기록된 것을 후인들이 모아 편찬한 것이다. 따라서 『역상설』은 『주역본의부록찬주』의 '우위'나 '우안'과 거의 같은 형식이다. 그리고 조호익의 『역상설』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주역본의부록찬주』의 '우위'나 '우안'의 역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한편,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연원을 검토하기 위해서 주진의 역학을 간과할 수 없다. 『역상설』이 주진을 인용하고 있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큰 이유는 『역상설』과 주진 역학의 골간적 측면 때문이다. 본론에서도 증명했지만, 『역상설』의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과 『한상역전(漢上易傳)』의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이 거의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연원은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와 주진의 『한상역전』에서 모두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주역본의부록찬주』의 '우위'나 '우안' 부분, 그리고 『한상역전』의 한대(漢代) 상수학적 체례에 그 연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In order to examine the origin of Image-Number Theory in Cho Hoik (曺好益)'s Yixiangshuo (易象說), it is necessary to review Hu Yigui (胡一桂)'s Zhouyi Benyi Fulu Zuanzhu (周易本義附録纂注). Hu Yigui based his work on Zhu Xi's Zhouyi Benyi, he took related contents such as the Zhu Xi's writings and phrases and organized them into a fulu (附録), and he collected commentaries that matched the meaning of Zhouyi Benyi among the theories of many Confucian scholars and produced a zuanzhu (纂注). In addition to these, there are 'Yuwei (愚謂)' and 'Yuan (愚案)' which allowed him to add his own opinion. The system of Hu Yigui's Zhouyi Benyi Fulu Zuanzhu almost coincides with Cho Hoik's Yi-ological writing system. In other words, Cho Hoik appears to have written Yizhuan Bianjie (易傳辨解) and Zhouyi Shijie (周易釋解) as a fulu and zuanzhu of Zhouyi Benyi Fulu Zuanzhu. And there is Yixiangshuo which corresponds to 'Yuwei' and 'Yuan' of Zhouyi Benyi Fulu Zuanzhu. Yixiangshuo was not originally an independent Yi-ological book, but was compiled by later generations from what was recorded in the form of the head notes of Zhouyi (周易). Thus, Yixiangshuo takes almost the same form as the 'Yuwei' and 'Yuan' of Zhouyi Benyi Fulu Zuanzhu. In addition, Cho Hoik's Yixiangshuo cites many contents from 'Yuwei' and 'Yuan' of Zhouyi Benyi Fulu Zuanzhu.
On the other hand, in order to examine the origin of Image-Number Theory in Cho Hoik's Yixiangshuo, the Yi-ology of Zhu Zhen (朱震) cannot be overlooked. This is true not only due to the fact that Yixiangshuo is quoting Zhu Zhen. The more significant reason is Yixiangshuo is a fundamental aspect of Zhu Zhen's Yi-ology. As demonstrated in the main body of this article, the methodology of Image-Number Theory in Yixiangshuo and its counterpart in Hanshang Yizhuan (漢上易傳) are almost identical.
In conclusion, the origin of Image-Number Theory in Cho Hoik's Yixiangshuo can be found in both the Hu Yigui's Zhouyi Benyi Fulu Zuanzhu and Zhu Zhen's Hanshang Yizhuan. In particular, it can be said that its origin can be found in both the 'Yuwei' and 'Yuan' of Zhouyi Benyi Fulu Zuanzhu and the methodlogy of Image-Number Theory in Hanshang Yizh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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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의 불교인식

저자 : 김종수 ( Kim Jong-soo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9-24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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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초반 무렵을 전후로 한 시기를 활동기로 삼았던 노론 내 호론 계열의 종장인 성담 송환기의 불교인식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우암 송시열의 5대손인 송환기는 우암학을 전승하기 위한 가전의 사명감에 충만한 가운데, 엄정한 유학적 도통론과 그 가지 담론인 벽이단론을 동시에 견지했던 유학자다. 자연히 대표적인 이단 그룹에 속하는 불교 방면에 관한 송환기의 인식 정도가 궁금해졌고, 이에 승려를 대상으로 한 호칭법 구사 문제와 교학체계에 대한 소양 정도 및 불교적 설화를 둘러싼 비판적 언술 등과 같은 세 국면에 걸친 검토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송환기는 정주학과 춘추학을 주축으로 하여 구축된 우암학의 진정한 계승자답게, 요ㆍ순에서 공ㆍ맹 및 정자ㆍ주자로 맥이 이어져 왔던 유학적 도통 상전의 계보를 매우 중시했던 인물로, 호교론적 담론의 성격을 띤 기존 벽이단론의 기조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 범주인 '범칭ㆍ존칭어ㆍ가마[輿] 관련 호칭ㆍ기타 호칭어' 등으로 이뤄진 승려에 대한 호칭어들은, 송환기가 견지한 불교 친화적인 면모의 일단을 확인시켜 주고 있음이 주목된다. 물론 '담승(擔僧)ㆍ여승(輿僧)'이라는 호칭어가 암시해 주듯이, 송환기는 명산ㆍ대첩을 유람할 때 가마꾼 승려들의 도움을 당연시했던 정황도 아울러 포착된다. 이는 전근대 시기 사회에서 저명한 사족층 출신의 일원인 송환기가 기득권을 옹호했던 정황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편 송환기의 경우, 『금강경』과 『화엄경』ㆍ『능엄경』으로 대변되는 불교교학 방면의 소양은 그다지 심오한 수준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불법승 삼보에 대한 종교적 귀의심이 결여되었던 송환기가 <청량산유람록>과 <동유일기>가 방증해 주듯이, 청량산ㆍ금강산유람 시에 접했던 불교적 설화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인식을 토로해 보인 것은 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반면에 송환기는 황폐해진 사찰ㆍ암자의 고적들을 접할 때면 심히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 보였다. 이는 불교적 문화재들에 대한 송환기의 애정 어린 시선을 확인시켜 준다. 결과적으로 송환기의 불교인식은 긍정과 부정, 수용과 배척이라는 상이한 두 시각이 교차하고 있는 초점 불일치 양상을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This manuscript started with the purpose of producing research that investigated and verified how Buddhism was understood by Seongdam (性潭) Song Hwan-gi (宋煥箕), the founder (宗匠) of Horon (湖論) who was active around the early 19th century. Song Hwan-gi, Uam (尤菴) Song Si-yeol (宋時烈)'s fifth generation, was a scholar who had a deep sense of duty to inherit the Theory of Uam (尤菴學), and he adhered to the Confucian theory of genealogy (道統論) and Anti-Heresy Discourses. Thus, this manuscript expressed curiosity about Song Hwan-gi's understanding of Buddhism, which was the representative heresy. This manuscript examined the naming method of Buddhist clergy (僧侶), degree of pedagogical knowledge, and critical statements that were made concerning Buddhist tales (說話).
Meanwhile, it is noticeable that the terms of address for Buddhist clergy were composed of four categories: general terms, honorific forms, palanquins [輿], and miscellaneous terms of address. This scheme conforms to the Buddhist-friendly aspects of Song Hwan-gi.
Examples of these terms of address include Danseung (擔僧) and Yeoseung (輿僧), both of which were Buddhist clergy who carried palanquins. Naturally, Song Hwan-gi was helped by Buddhist clergy when he went sightseeing on famous mountains.
In the meantime, Song Hwan-gi's pedagogical knowledge can be shown to be not especially profound based on his understanding of The Diamond Sutra, The Avatamska Sutra, and The Shurangama Sutra. Cheongnyansan Travel Records (淸凉山遊覽錄) and Dongyu Diary (東遊日記) make it clear that Song Hwan-gi had no interest in taking refuge in the three treasures of Buddhism (佛法僧 三寶). It is rather the case that he was deeply critical of Buddhism. On the other hand, Song Hwan-gi expressed profound sadness when he encountered the dilapidated remains (古蹟) of Buddhist temples and hermitages. Consequentially, it can be concluded that Song Hwan-gi's understanding of Buddhism contained examples of affirmation, acceptance, denial, and ex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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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순사상에 나타난 덕(德)과 그 실천수행 - 강증산의 '천지대덕(天地大德)'과 관련하여-

저자 : 주소연 ( Joo So-yeon ) , 고남식 ( Ko Nam-sik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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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 대순사상에 나타난 덕과 관련해서 살펴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순사상에서 덕개념은 도와 관련 유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도와 덕은 음과 양의 관계처럼 밀접한데 도는 신격위(神格位)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인 강증산(姜甑山, 九天上帝, 姜一淳, 姜士玉, 1871~1909, 壽39歲)이 강세(降世)한 객망리(現 정읍)의 시루산 공부(1900) 후 대원사(大院寺)에서의 공부(1901)로 연 천지대도(天地大道)이며, 덕개념은 삼덕(三德)인 천덕(天德), 지덕(地德), 인덕(人德)의 대덕(大德)으로 나타난다. 이어서 신격위가 '조성옥황상제(趙聖玉皇上帝)'인 조정산(趙鼎山, 趙聖玉皇上帝, 趙哲濟, 道主, 1895~1958, 壽 64歲)은 강증산의 천지대도를 빛내고 이로부터 생성된 천지대덕(天地大德)을 계승해서 강증산의 대업(大業)을 홍포(弘布)하겠다고 하였다. 이는 천지대덕의 덕화로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여 도통군자를 이루고, 지구상에 이룩될 무량극락(無量極樂) 청화(淸華) 오(五)만년 용화선경(龍華仙境)으로 천하 창생들을 인도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삼계(三界)의 덕인 천덕, 지덕, 인덕은 각각 체용론적으로 보아 천용(天用), 지용(地用), 인용(人用)과 대응되며 인간은 천지자연과 유기적 관계이고 이 천지인의 용(用)은 구천상제인 강증산의 조화(造化)에 있다.
셋째, 인간이 베푸는 덕은 마음(心) 수양과 관계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심령을 구해서 궁리하며 선(善)을 실천하고 악을 없애는 실천 수양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마음으로 천지인의 용(用)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덕의 실천과 관련해서 보면, 호생의 덕은 살아있는 생명을 가진 만물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 그 승화된 모습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인존(人尊)사상에까지 닿아 있다. 언덕은 남에게 척을 짓지 않음으로써 인존세상을 실현할 수 있는 덕이다. 포덕은 강증산의 천지대도와 조정산의 봉교(奉敎) 및 포교(布敎)로부터 발현되는 덕을 세상에 펼치는 일에 인간이 동참하는 일이다. 강증산은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하에 그의 천지대도로부터 발현되는 천지대덕으로 인간의 복록 및 수명과 일상의 삶이 이루어짐을 말하였다. 이에 천하포덕은 인간에게 일상에서 복을 주고 신앙적 소원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며 원천이다. 공덕은 덕을 타인에게 실천수행하여 운수(運數)와 복(福)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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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산 송규의 사상 형성과정에 미친 증산의 영향

저자 : 김탁 ( Kim Tak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7-8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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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는 15세 때 증산교인들과 만나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정산은 그들의 권고로 가야산에서 3개월 동안 수행했으며, 가족들에게도 태을주(太乙呪) 수련을 하도록 포교했다. 이 후 정산은 18세 무렵에는 여러 이적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그 해 가을에는 증산의 행적을 좇아 멀리 전라도까지 찾아간다. 그곳에서 정산은 증산의 누이동생을 자신의 고향인 경상도 성주에 모셔와 백일치성을 드리는 정성을 보였다. 다시 증산의 생가를 찾아간 정산은 증산의 외동딸로부터 「정심요결」이라는 도교적 수련서를 전수받았고, 증산이 천지대도를 연 장소인 모악산 대원사에서 10개월간 공부를 행하였다. 대원사에서 만났던 증산교인과의 인연으로 그녀의 집에 머물던 정산은 그곳에서 비로소 소태산과 만났다. 소태산과의 만남이 있기 이전의 청년 정산은 증산교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정산은 원불교를 선언한 이후로도 제생의세(濟生醫世)라는 증산의 종교적 표어를 사용했고, 증산이 제자들에게 써주었던 글귀를 주문처럼 외웠으며, 증산이 짓거나 인용한 한시(漢詩)를 언급했다. 그리고 정산은 증산이 지은 『현무경(玄武經)』에 나오는 구절들을 독특하게 해석했으며, 증산이 했던 말을 자주 인용했다. 나아가 정산은 증산의 언행록에 나오는 글귀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했으며, 증산을 개벽을 주재하는 삼원(三元)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적극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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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자와 증산의 상생이론 비교 고찰

저자 : 안유경 ( An Yoo-kyoung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1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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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주자(1130~1200)와 증산(1871~1909)의 상생이론의 의미를 비교 고찰함으로써 이들의 이론적 유사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생존뿐만 아니라 물질ㆍ명예ㆍ권력 등에 대해서도 무한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한편으로 생존을 위해서 화합ㆍ공생을 도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대립ㆍ갈등하고 경쟁한다. 이로써 인간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는 화합을 도모하는 상생의 동반자가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경쟁의 적인 것이다. 동시에 인간은 무한한 욕망을 극복하고 도덕성을 실현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경쟁구도의 다양한 사회문제는 인간의 노력과 반성을 통해서 해결해나갈 수 있는데, 이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지혜를 동원하여 사회문제의 해결에 주력하게 된다.
증산은 상생을 대순사상 종지의 하나로서 강조한다. 주자의 성리학에도 대순사상의 상생에 버금하는 이념이 존재하니 그것이 바로 인(仁)이다. 성리학에서는 '인'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보살피고 양육)함으로써 조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대순사상에서 '상생'의 원리가 실현될 때에 어떠한 갈등이나 원한이 없이 오로지 화해와 공존의 후천선경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또한 주자는 사욕을 제거함으로써 인(천리)을 실현해나갈 것을 강조한다. 이때 '인'과 '사욕'의 관계는 대순사상의 '상생'과 '원한'의 관계와 유사하다. 사욕이 제거되면 곧장 '인'의 원리가 실현되어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루듯이, 원한이 해소되면 곧장 '상생'의 원리가 실현되어 무궁한 후천선경이 이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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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무속과 증산의 해원사상 비교를 통해 본 대순사상 연구 관점의 문제

저자 : 차선근 ( Cha Seon-keun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5-15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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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금은 무속에 해원과 상생 이념이 이미 있었으며, 증산은 그것을 답습하여 이론화하고 구체화했을 뿐이기에 그의 종교활동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차선근은 증산의 해원과 상생을 무속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그 내용이나 범주가 무속보다 더 크고 넓기에, 증산의 종교활동은 무속의 세계관과는 구별되는 나름의 독창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은 당사자들을 제외한 다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논쟁은 해원과 상생의 개념 해석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에 접근할 때 어떤 학술적 관점과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대순진리회 관점에서 그들의 논쟁에 발견되는 쟁점을 네 가지로 정리하여 검토하였다. 그것은 첫째, 증산이 무속의 해원 대상과 그 범주를 그대로 답습한 것인지, 확장한 것인지 하는 문제다. 둘째는 증산의 해원에 들어있는 상생과 보은의 윤리가 무속의 윤리를 재활용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셋째는 증산의 해원 방법이 무속 해원 방법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넷째는 증산의 종교 행위와 사상은 무속의 세계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이러한 쟁점 검토를 통해, 이영금과 차선근은 종교를 연구하는 태도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증산의 종교사상을 무속의 세계관 속에 가두어놓고 해석하려는 이영금의 접근법은 학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증산이 무속의 세계관, 불교의 교학, 도교의 사상, 기독교의 신학을 얼마나 충실히 잘 반영ㆍ재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 들기보다는, 증산을 증산 그 자체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무속ㆍ불교ㆍ유교ㆍ도교ㆍ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유형과 무형의 특정 요소들이 증산의 종교사상 내에서 관찰된다면 그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혹 재해석된 부분은 없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영금의 경우와 같이 유사점만 강조하는 방식은 과거의 낡은 학문으로 비판받는다. 현대 종교학은 차이점까지 동시에 살펴보고자 한다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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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라승 김지장(金地藏)의 지장보살화(地藏菩薩化) 과정

저자 : 안양규 ( An Yang-gyu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3-18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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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출신인 김지장(金地藏)은 현재까지도 중국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불교에서 김지장의 보살화(菩薩化)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특이하다. 첫째 자국인 신라가 아니라 타국인 중국에서 보살화가 비롯되고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역사적 실존 인물이 신화적 존재인 지장보살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지장의 보살화 과정은 크게 3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시기는 중국의 구화산에 들어가서 수행하고 중생들을 교화하는 기간으로 지장보살처럼 추앙받는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김지장이 입적직후부터 입멸 후 3년까지의 시기로 김지장의 전신사리(全身舍利)를 모시는 탑과 탑묘(塔廟)가 만들어진 시기로 지장보살로 동일시되는 시기이다. 셋째 시기는 입적 후 3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장보살로 유지되는 시기이다.
김지장의 보살화 과정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내적 보살화 과정이다. 김지장의 수행과 교화가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지옥 중생을 포함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대원을 실천한 것이다. 중생 교화는 철저한 자기 수행과 엄격한 수행 생활에 근거하고 있다. 김지장의 덕화를 입은 사람들은 김지장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보살화 과정에는 보은(報恩) 심리가 내재해 있다. 대중들의 심리 속에 은혜를 베푼 인물을 잊지 않고 존경해야겠다는 심리가 있다. 김지장이라는 은인(恩人)을 기억하려는 의도가 김지장의 지장보살화를 촉진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외적 보살화 과정이다. 신비적인 현상도 보살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입적 시 나타난 신이나 입적 후 3년에 육신불의 화현은 보살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육신불의 화현은 역사적인 인물에서 초역사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이런 육신불에 보시를 하면 공덕이 발생한다는 신념은 대중들에게 지속해서 김지장을 지장보살로 경배하도록 하였다. 이런 대중들의 신앙심에 발맞추어 중국 황실에서 수시로 김지장의 전신사리를 모신 육신보전을 보수하고 지원함으로써 김지장을 국가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김지장의 지장보살화 과정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분석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재세시 김지장의 수행과 덕화(德化)에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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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익(曺好益) 『역상설(易象說)』의 상수학적 연원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周易本義附録纂注)』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호일계는 주자의 『주역본의』를 기본으로 하고, 주자의 문집과 어록 등의 관련 내용을 찾아 부록이라 하였고, 그리고 제유의 역설 중 『주역본의『의 뜻에 부합하는 주석을 모아서 찬주로 하였다. 여기에다 호일계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의 '우위(愚謂)'나 '우안(愚案)' 등이 있다. 이러한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 체제는 사실상 조호익의 역학 저서 체제와 거의 일치한다. 즉 조호익은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의 부록, 찬주의 내용에 해당하는 저서로 『역전변해(易傳辨解)』, 『주역석해(周易釋解)』를 지은 듯하다. 이러한 저서는 주자의 『주역본의』의 단상을 정밀하게 밝힌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주역본의부록찬주』 '우위'나 '우안'에 해당하는 저서로 『역상설』이 있다. 『역상설』은 원래 독립적인 역학 저서가 아니라 『주역』의 두주 형태로 기록된 것을 후인들이 모아 편찬한 것이다. 따라서 『역상설』은 『주역본의부록찬주』의 '우위'나 '우안'과 거의 같은 형식이다. 그리고 조호익의 『역상설』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주역본의부록찬주』의 '우위'나 '우안'의 역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한편,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연원을 검토하기 위해서 주진의 역학을 간과할 수 없다. 『역상설』이 주진을 인용하고 있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큰 이유는 『역상설』과 주진 역학의 골간적 측면 때문이다. 본론에서도 증명했지만, 『역상설』의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과 『한상역전(漢上易傳)』의 상수학적 『주역』 해석 방법론이 거의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조호익 『역상설』의 상수학적 연원은 호일계의 『주역본의부록찬주』와 주진의 『한상역전』에서 모두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주역본의부록찬주』의 '우위'나 '우안' 부분, 그리고 『한상역전』의 한대(漢代) 상수학적 체례에 그 연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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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의 불교인식

저자 : 김종수 ( Kim Jong-soo )

발행기관 :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간행물 : 대순사상논총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9-24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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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초반 무렵을 전후로 한 시기를 활동기로 삼았던 노론 내 호론 계열의 종장인 성담 송환기의 불교인식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우암 송시열의 5대손인 송환기는 우암학을 전승하기 위한 가전의 사명감에 충만한 가운데, 엄정한 유학적 도통론과 그 가지 담론인 벽이단론을 동시에 견지했던 유학자다. 자연히 대표적인 이단 그룹에 속하는 불교 방면에 관한 송환기의 인식 정도가 궁금해졌고, 이에 승려를 대상으로 한 호칭법 구사 문제와 교학체계에 대한 소양 정도 및 불교적 설화를 둘러싼 비판적 언술 등과 같은 세 국면에 걸친 검토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송환기는 정주학과 춘추학을 주축으로 하여 구축된 우암학의 진정한 계승자답게, 요ㆍ순에서 공ㆍ맹 및 정자ㆍ주자로 맥이 이어져 왔던 유학적 도통 상전의 계보를 매우 중시했던 인물로, 호교론적 담론의 성격을 띤 기존 벽이단론의 기조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 범주인 '범칭ㆍ존칭어ㆍ가마[輿] 관련 호칭ㆍ기타 호칭어' 등으로 이뤄진 승려에 대한 호칭어들은, 송환기가 견지한 불교 친화적인 면모의 일단을 확인시켜 주고 있음이 주목된다. 물론 '담승(擔僧)ㆍ여승(輿僧)'이라는 호칭어가 암시해 주듯이, 송환기는 명산ㆍ대첩을 유람할 때 가마꾼 승려들의 도움을 당연시했던 정황도 아울러 포착된다. 이는 전근대 시기 사회에서 저명한 사족층 출신의 일원인 송환기가 기득권을 옹호했던 정황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편 송환기의 경우, 『금강경』과 『화엄경』ㆍ『능엄경』으로 대변되는 불교교학 방면의 소양은 그다지 심오한 수준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불법승 삼보에 대한 종교적 귀의심이 결여되었던 송환기가 <청량산유람록>과 <동유일기>가 방증해 주듯이, 청량산ㆍ금강산유람 시에 접했던 불교적 설화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인식을 토로해 보인 것은 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반면에 송환기는 황폐해진 사찰ㆍ암자의 고적들을 접할 때면 심히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 보였다. 이는 불교적 문화재들에 대한 송환기의 애정 어린 시선을 확인시켜 준다. 결과적으로 송환기의 불교인식은 긍정과 부정, 수용과 배척이라는 상이한 두 시각이 교차하고 있는 초점 불일치 양상을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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