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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적인 것의 기원과 K차별 - 차별 대응 제도와 교육, 사회통념 개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

The Origin of ‘the K(Korean style)’ and K-discrimination

권명아 ( Kwon Myoung-a )
  •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 석당논총 80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7월
  • : 129-160(32pages)
석당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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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조선적인 것에서 K의 시대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의 열망과 불안의 역사
Ⅱ. 천황제 국가에서 세속국가의 정치 종교까지: 사회통념 개념의 역사와 차별 비판의 역사성
Ⅲ. 미투운동의 시대, ‘신사회운동’ 패러다임을 반복하는 법, 제도, 정책
Ⅳ.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절차적 합리성’
Ⅴ.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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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나 차별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담론적으로 확장된 것과 달리 정책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라는 문턱에서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또 차별과 혐오에 대한 정책 기조가 일관성이 없고 정파적 이해관계나 특정 사안을 돌파하기 위한 타협과 절충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정부가 차별을 더욱 부추기는 경향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차별과 혐오 대응에 있어 중요한 지점은 차별과 관련한 전문가 그룹(인권 활동가, 지원 단체, 관련된 연구자 등)의 지속적인 담론 형성과 구체적 사안을 널리 알리는 일 그리고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제를 통해 정책 일관성을 형성하는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하여 차별에 대응하는 정책, 교육, 대안을 연구해온 전문 기관의 공통된 진단은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 통념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차별 통념은 차별을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생각해서 차별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사회적 인식 구조를 뜻한다. 전문가들의 이런 상황 진단과 달리 정부는 줄곧 ‘사회적 통념’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사회적 통념’을 절충이나 타협의 근거로 내세우고 강조하는 정책 기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어긋남은 정책의 모순을 일으킬 뿐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차별 선동을 합법화하는 근거를 국가가 제공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Unlike the discourse expansion of academic discussions on hatred or discrimination, politically, it is repeated to stop at the threshold of “social consensus.” In addition, the government's tendency to further encourage discrimination is increasing as its policy stance on discrimination and disgust is inconsistent and has degenerated into a means of compromise to break through political interests or certain issues. At this point, the key point in responding to discrimination and hatred is the formation of continuous discourse by groups of experts (human rights activists, support groups, related researchers, etc.) and policy consistency through critical checks on national policies. The common diagnosis of specialized institutions that have studied policies, education, and alternatives to cope with discrimination, including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is to change the prevailing concept of discrimination in Korean society. Discrimination is a social perception structure in which discrimination is not recognized as discrimination, or recognizes discrimination because it is natural and familiar. Unlike expert's diagnosis of the situation, the government has been repeating its policy stance of emphasizing “social conventional wisdom” as a basis for compromise or compromise without trying to change “social conventional wisdom.” This contradiction not only creates a contradiction in policy, but also leads to a serious problem that the state provides a basis for justifying discrimination or legalizing discrimination inci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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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3회
  • : 1738-6578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7-2021
  • : 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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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권0호(2021년 07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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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장관전서』를 통해 살펴본 조선후기 서얼 문인들 - 이덕무의 벗들을 중심으로 -

저자 : 권정원 ( Kwon Jung-Wo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4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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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덕무의 문집 『청장관전서』에 언급된 몇몇의 서얼문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문학 세계의 일단을 고찰하였다.
이덕무(1741~1793)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서얼문인으로, 그와 교유했던 인물들도 대부분이 서얼이었다. 서얼들은 사대부 적자들과는 달리 문헌에 기록이 남는 경우가 드물고 개인문집을 남기는 일도 쉽지 않았기에, 그들의 문학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이덕무의 경우는 사후 정조의 명으로 그의 문집이 간행되는 행운을 얻었는데, 『청장관전서』가 그것이다. 『청장관전서』는 71권 33책의 방대한 분량의 문집으로, 이덕무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교유했던 서얼문인들에 대한 기록 또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장관전서』에 언급된 서얼문인은 대략 65명 정도이다. 본고에서는 이들 중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청장관전서』에 실제 작품과 비평이 남아 있는 서얼문인을 대상으로 삼았다. 본 기준에 부합하는 문인은 이광석, 변일휴, 박종산, 윤가기, 이공무, 김홍운, 이형상, 이규승, 8명 정도로 간추릴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확인되는 이들의 작품은 이광석의 시 9수, 변일휴의 시 7수, 박종산의 시 5수, 윤가기의 시 3수 그리고 나머지는 시 1~2수 정도이다. 남아 있는 작품 수가 많지 않기에 그들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몇몇 서얼문인에게서 공안파와 경릉파의 시풍을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이광석의 경우는 경릉파에, 변일휴와 박종산의 경우는 공안파에 깊이 경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들의 시에서도 그러한 시풍의 영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공무와 이규승의 시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보이나, 작품 수가 너무 적어서 단언할 수는 없다. 이 밖에도 김홍운의 경우는 고풍스런 시풍을, 이형상의 경우는 온화하고 평이한 시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청장관전서』에 소개된 서얼문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기에, 대상이 이덕무와 교유한 벗들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이덕무에 의해 기억되고 기록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자칫 잊힐 수 있었던 서얼문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This thesis introduced some of the Seoeol(庶孼) writers in Lee Duk-moo's 『Chungjangkwan Junseo(靑莊館全書)』, and considered a piece of their literary world.
Lee Duk-moo was one of the most famous Seoeol writers of the late Joseon Dynasty, most of his friends were Seoeol. Since it was not easy for Seoeol to leave a collection of works or related records, there is not much data to look at their literary world. Lee Deok-moo's 『Chungjangkwan Junseo』 is a vast collection of writings, which contains some of the works and criticisms of the writers who have been acquainted with him.
Approximately 65 Seoeolwriters were mentioned in 『Chungjangkwan Junseo』. Among them, it was not well known yet, and it is targeted at cases where works and criticism remain in 『Chungjangkwan Junseo』. There are seven writers in total, Lee Kwang-seok(李光錫), Byun Il-Hue(邊日休), Park Jong-san(朴宗山), Lee Gong-moo(李功懋), Kim Hong-woon(金洪運), Lee Hyeong-sang(李亨祥) and so on. There are not many of these works left, but only 9 poems by Lee Gwang-seok, 7 poems by Byun Il-min, 5 poems by Park Jong-san, and 1~2 poems by others. These poems were generally found to be of a tendency to pursue novelty and eccentricity, which can be understood to have been influenced by Angong clique(公安派) and Jingling Coterie(竟陵派).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the Seoeolwriters had been exposed to and actively accepted the literary flow of Ming and Qing literrature clique from China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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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세기 한문단편소설집 『기설(奇說)』의 성격과 고전소설 교육의 방향

저자 : 한의숭 ( Han Eui-soo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1-6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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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문단편소설집인 『奇說』에 수록된 여섯 작품을 통해 야담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한문단편소설로 재편되면서 변화된 성격을 재검토하고,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로 포착된 '奇'를 19세기 문화 지형과 관련하여 분석해 보고자 기획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한문단편소설집이란 자료를 통해 고전소설 교육의 새로운 접근 시각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기설』에 수록된 여섯 작품은 조선후기 한문단편 서사양식을 대표하는 장르의 성격이 혼효된 서술 방식이 활용되고 있었다. 이는 『기설』의 편찬자가 조선후기 한문단편 서사양식의 주류적 흐름을 이해한 바탕 아래 이야기를 가공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설』은 야담에 원천을 둔 이야기가 당대 서사 문화의 반영을 통해 한문단편소설집으로 편찬된 것으로, 야담에서 소설로 전변하는 서사의 변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기설』은 19세기에 편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록 작품에 드러난 기이는 자극적이거나 초현실적인 환상성이 극도로 발현되는 형태로 표현되지 않았다. 수록된 작품에 표출된 기이는 이물로 대표되는 비현실지향과 인간으로 대표되는 현실지향이 『기설』 내부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이가 서술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비현실적 요소의 배치를 통해 환상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아닌 현실적 인물과 시공간의 배치, 그리고 대화 장면 서술과 내면 묘사를 통해 인과성과 현실성을 강화한 형태를 지향하는 특징이 간취되었다.
이러한 측면을 바탕으로 고전소설 교육에서 『기설』과 같은 소설집의 존재는 고전소설을 향유하던 문화 환경과 작품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실증적 자료로 주목된다. 이는 야담과 소설의 장르 이동 양상의 실체를 확인하는데 활용될 수 있고, 한문소설선집이라는 자료 영역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부각시킬 수 있다. 아울러 개별 작품론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특정 주제나 개념 중심 고전소설 교육 방법론을 제안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고전소설 교육이 작품론 중심에서 벗어나 문화론적 시각을 선취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This paper was designed to review the nature of the story based on Yadam through six works in the collection of Chinese short stories, 『Gi-seol』 and analyze the theme of 'Gi', which penetrates the novel book, in relation to the 19th century cultural landscape. Along with this, a collection of short stories in Chinese literature discussed a new approach to classical fiction education.
The six works in 『Gi-seol』 were used to describe the genre representing the narrative style of Chinese short stori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is understood that the compilers of 『Gi-seol』 intended to process the story based on their understanding of the mainstream flow of the Chinese short story style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Gi-seol』 is a compilation of stories based on Ya-dam into a collection of short stories in Chinese literature, reflecting the narrative culture of the time, and is meaningful in that it can confirm the transformation of Ya-dam into a novel.
In addition, despite the fact that 『Gi-seol』 was compiled in the 19th century, the eccentricity revealed in the works was not expressed in the form of extreme sensational or surreal fantasies. The chi expressed in the work was coexisting within the 『Gi-seol』 with the unrealistic orientation represented by foreign objects and the reality orientation represented by humans. In addition, the way in which the eccentricity is described, rather than emphasizing fantasy through the placement of unrealistic elements, the layout of real people and space, and the form of enhanced causality and realism through dialogue scene description and internal description.
Based on this aspect, the existence of novel collections such as 『Gi-seol』 in the education of classical novels is noted as an empirical material to read the cultural environment and changes in works enjoyed by classical novels. This can be used to identify the true nature of the genre shift of ya-dam and novels, and to highlight a new interest in the data field of Chinese literature fiction selection. In addition, it is meaningful in that it proposes a classical novel education methodology centered on a specific topic or concept, away from education centered on individual works. This also raises the need for the education of classical novels to shift away from the focus of work theory and take a cultural perspective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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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물와(勿窩) 김상욱(金相頊)의 「중주기행(中州記行)」 고찰 - 북경행의 배경과 기행시의 시정(詩情)을 중심으로 -

저자 : 한길로 ( Han Gil-ro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9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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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남 창원의 유림 물와(勿窩) 김상욱(金相頊, 1857~1936)이 남긴 「중주기행(中州記行)」에 주목한 연구이다. 「중주기행」은 지우들의 제안으로 1913년 4월, 동경하던 이상향과 같았던 '중국'행에 올라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유람한 소회를 서술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른바 '장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중국행을 결정했지만 당대의 중국과 유교의 면모는 과거의 것과 상이하였고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했기에 그의 시에는 기대보다는 회한과 탄식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국치와 이민족의 압제를 피해 압록강 너머의 서간도 일대에 머물고 있던 국내의 유림들과 함께하고, 또 '화인(華人)'과 교류하면서는 다소간의 기대와 긍정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회한과 기대감 속에 북경에 당도했지만 그곳은 '구제(舊制)'의 면모와 중화의 위용을 찾기 어려운 공간으로 변했고 오히려 쇠망과 무상(無常)의 흔적을 보지하고 있는, 탄식을 그치기 어려운 곳이 되어 있었다. 요컨대 「중주기행」은 이주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유림이 아닌, 국내에 남아 있던 유림들의 내면과 대외 인식의 일면을 잘 담고 있다. 또한 그의 기록은 연행시의 전통에 자리하면서 변혁이 일던 '중화민국' 기행의 소회 역시 잘 드러나 있어, 20세기 구지식인의 근대 중국 기행문의 특징적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구지식인에게 근대 중국과 북경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인지되고 있는지와 함께 중국 기행을 통한 당시의 시대상과 현실인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This paper is a study of the 「Joongju-Gihaeng(中州記行)」 created by Mulwa Kim Sang-wook(勿窩 金相頊, 1857~1936). This document describes his thoughts on traveling across the 'Ap-lok river' to Beijing in April 1913 at the suggestion of his friends. At that time, the state became a colony, so his poetry had many sentiments of sadness and sorrow. There, he met Confucian scholars who stayed in Seo-gando, Manchuria, who lived there to escape the humiliation and immigration rule of the country, and also had a conversation by writing(筆談) with the Han Chinese(漢族, 華人), which revealed some expectations and optimism. However, he was disappointed when he arrived in Beijing. Because Beijing was hard to find its past and the traces of the Ming(明) Empire were hard to find. In other words, there was a big difference between his ideal and the actual appearance of Beijing. Against this backdrop, the sentiment of his poem went from remorse to expectation and ultimately to futility. In short, his work records the travel of modern Confucian intellectuals to China and shows the sorrow of the early 20th century. In particular, the view of China and the encounter with Korean intellectuals in China are among the most important features of travel records during this period, which are different from Yeonhaengrok(燕行錄) of the past. This text reflects the landscape of Beijing during the modern period and the perception of Confucian intellectuals in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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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첫째로 이데올로기론을 넘어서 그동안 거의 분석되지 않았던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남한과 북한 첩보영화의 비교분석을 통해 이떻게 (냉전) 아시아-주로 일본-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졌는 지 살펴 보고자 한다. 예를 들면 남한 첩보영화, <엑스포 70 동경작전>(최인현, 1970)에서는 도쿄가 경제번영의 도시로 재현되고 북한 첩보영화, <매화꽃은 떨어졌다>(1970)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앞잡이인 부패한 자본주의 국가로 표상되며, 오히려 북한이 자주경제를 이루어 낸 이상적인 국가로 표상되는 것은 징후적이다. 다시 말하면 미첼 딘(Michell Dean)이 말한 정치경제학의 틀 안에서의 “경제개발”을 강조한 “권위주의적 통치성”과 결합되어 냉전시기 남북한 첩보영화에서 일본에 대한 인식은 각각 자유주의에 입각한 친일과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반일의 경향이 나타난다. 둘째로 분단된 민족 간의 기존의 금지된 경제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한 동시대 첩보영화, <강철비>(2017)와 <공작>(2018)을 통해 냉전시기, '냉전 블록으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이 '민족적 정치경제학'으로 전환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전환을 백낙청과 백영서가 말하는 '분단체제극복론'과 '복합국가론'의 틀로 읽음으로써, 탈식민지적 사유를 조망한다. 하지만 이들 위의 첩보영화에서 남성민족주의라는 접근방식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은 문제적이며, 특히 동시대 영화는 분명 탈식민지적 사유에 천착하면서도 동시에 아시아 간의 연대나 소통을 보여주는 인터-아시아에 대한 사고를 전적으로 제외시킨다. 따라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러한 남성중심적인 친일/반일 냉전 프로파간다 및 반일 민족주의의 대중장르의 한계를 재일조선인 여성감독 금선희의 다큐멘터리 영화, <외국의 하늘>(2005)과 <짐승이 되어서도>(2005)를 통해 극복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금선희 영화들은 탈식민주의의 가능성을 가지면서도 인터 아시아적 궤적-일본과의 소통가능성-과 젠더 문제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First, this paper aims to see how (Cold War) Asia-mainly Japan-was represented through comparative analysis of South and North Korean spy films from a political economic perspective that has not been analyzed much in the past, beyond ideological approach. It is symptomatic that in the South Korean spy film, Expo 70 Tokyo Operation (Choi In-hyun, 1970), Tokyo is represented as a city of economic prosperity and in North Korean spy film, A Plum Blossom Fell (1970), Japan as a corrupt capitalist country that is the pawn of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as an ideal country that has achieved an independent economic prosperity. In other words, combined with “authoritarian governmentality” that emphasizes “economic development” within the framework of political economy as Michell Dean said, during the Cold War, the perception of Asia (Japan) in South Korean spy film has pro-Japanese tendencies based on liberalism and that in North Korean spy film has Anti-Japanese tendencies based on anti-imperialism. Second, through the contemporary spy films Steel Rain (2017) and The Espionage Operations (2018), which emphasize the necessity of the previously forbidden economic exchanges between divided ethnic groups during the Cold War period, I'd like to show that “political economy made up of Cold War Asian Blocs” was transformed into “ethnic political economy.” By reading this transition into the framework of the 'overcoming division of the system' and 'the theory of a complex state' that Baek Nak-cheong and Baek Young-seo spoke of, I look at the post-colonial thinking. However, it is problematic that the above-mentioned spy films prioritize the approach of male-oriented nationalism. In particular, while contemporary films clearly focus on post-colonial thinking, at the same time they completely exclude the idea of Inter-Asia, which shows solidarity and communication between Asia. Therefore, in the last part of this paper, I try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these male-centered pro-Japanese/anti-Japanese Cold War propaganda and anti-Japanese nationalism in the popular genre through the documentary films Foreign Sky and Beast of Me by Soni, Kum, a female Zainichi Korean director. In other words, Soni Kum's films will be a good example of possibiity of communication with Asia (Japan) and ethical attitudes toward gender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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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K적인 것의 기원과 K차별 - 차별 대응 제도와 교육, 사회통념 개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

저자 : 권명아 ( Kwon Myoung-a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9-16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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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나 차별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담론적으로 확장된 것과 달리 정책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라는 문턱에서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또 차별과 혐오에 대한 정책 기조가 일관성이 없고 정파적 이해관계나 특정 사안을 돌파하기 위한 타협과 절충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정부가 차별을 더욱 부추기는 경향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차별과 혐오 대응에 있어 중요한 지점은 차별과 관련한 전문가 그룹(인권 활동가, 지원 단체, 관련된 연구자 등)의 지속적인 담론 형성과 구체적 사안을 널리 알리는 일 그리고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제를 통해 정책 일관성을 형성하는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하여 차별에 대응하는 정책, 교육, 대안을 연구해온 전문 기관의 공통된 진단은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 통념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차별 통념은 차별을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생각해서 차별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사회적 인식 구조를 뜻한다. 전문가들의 이런 상황 진단과 달리 정부는 줄곧 '사회적 통념'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사회적 통념'을 절충이나 타협의 근거로 내세우고 강조하는 정책 기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어긋남은 정책의 모순을 일으킬 뿐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차별 선동을 합법화하는 근거를 국가가 제공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Unlike the discourse expansion of academic discussions on hatred or discrimination, politically, it is repeated to stop at the threshold of “social consensus.” In addition, the government's tendency to further encourage discrimination is increasing as its policy stance on discrimination and disgust is inconsistent and has degenerated into a means of compromise to break through political interests or certain issues. At this point, the key point in responding to discrimination and hatred is the formation of continuous discourse by groups of experts (human rights activists, support groups, related researchers, etc.) and policy consistency through critical checks on national policies. The common diagnosis of specialized institutions that have studied policies, education, and alternatives to cope with discrimination, including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is to change the prevailing concept of discrimination in Korean society. Discrimination is a social perception structure in which discrimination is not recognized as discrimination, or recognizes discrimination because it is natural and familiar. Unlike expert's diagnosis of the situation, the government has been repeating its policy stance of emphasizing “social conventional wisdom” as a basis for compromise or compromise without trying to change “social conventional wisdom.” This contradiction not only creates a contradiction in policy, but also leads to a serious problem that the state provides a basis for justifying discrimination or legalizing discrimination inci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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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려 무신집권기 왕권과 의례 - 왕실 조상 숭배의례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아네스 ( Kim Agnes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9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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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 무신집권기 국왕이 주재한 주요 의례를 왕권의 위상과 관련하여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왕실 조상에 대한 숭배 의례인 왕실제사와 국휼의례를 중심으로 정치의 두 구심, 즉 국왕과 무신집정의 시각에서 의례의 설행 의도 및 의례 개정과 참용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명종은 왕실 조상에 대한 숭배의례를 국왕의 위상을 확인하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 활용하였다. 재위 초반 명종은 경령전과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서, 자신이 태조의 후계 왕이며 왕정의 최고 책임자임을 과시하였다. 재위 후반 명종은 공예태후의 국휼을 주관하면서 신민과 구별되는 왕실의 존엄을 드러내고 왕권의 위상을 높이려 하였다.
최씨정권이 성립하면서 국왕의 권력은 미약해졌다. 왕권을 표상하는 왕실 조상 숭배의례를 주관하는 일은 국왕의 권리였지만 최충헌은 국휼의 상기를 단축하고 예식을 격하시켰다. 최씨집정은 국왕의 폐위와 옹립을 좌우하며 태묘에 봉안할 신주를 정하고 소목의 위차를 개정하였다. 왕통을 상징하는 의례를 개정함으로써 국왕의 실질적 권위가 향상되는 것을 제어하였다. 최우가 집권자가 되면서 최씨 집정 집안의 상장례에 국휼의 왕례와 왕후례를 참용하였다. 이에 따라 왕실의례가 가지는 특수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최항집정기에 고종은 최씨집정이 권력을 승계한 것을 기념하며 왕실 조상에게 시호를 가상하였다. 최씨정권 아래서 왕들은 의례를 주재하는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였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royal rituals hosted by the kings during Goryeo dynasty under the military regime. The study focuses on royal ancestral worship ceremonies and funerals. It explores the administration and the alteration of rituals, and the abuse of power, from the perspectives of the two major powers in the dynasty: the king and the military rulers. King Myeong-jong utilized the royal ancestral worship rituals to affirm his status as the highest ruler in the royal court and to also establish the royal power. King Myeong-jong, in his early years of reign, conducted ancestral ritual ceremonies at Gyeong-ryeong-jeon and Royal Ancestral Shrine in order to worship the founding King Taejo. Through these ritual ceremonies, the king affirmed that he was a part of King Taejo's royal lineage, and he had the highest status in the dynasty. Later, when King Myeong-jong hosted the funeral of his mother, Empress Dower Gong-ye, he dignified the royal family over the common people.
When Choe military regime established, the king's power dwindled. It was the king's right to command royal ancestral ceremonies and funerals. However, Choe Chung-heon downgraded royal rituals by shortening the mourning period for royal funerals. Choe clan rulers exerted their power by enthroning or dethroning the king in addition to selecting the ancestral tablets along with their placement in the Royal Ancestral Shrine. The Choe rulers rewrote the royal rituals that signified royal lineage in order to prevent the kings from possessing heightened royal power. After Choe Woo, son of Choe Chung-heon, became the second ruler of the military regime, the funerals of the Choe family were conducted as if they were royal rituals. During Choe Hang's regime, the third generation of Choe, King Gojong conducted a congratulatory ceremony celebrating the succession of power in the Choe clan. The significance of the royal rituals hosted by the king during the military regime has changed based on the power structures and the circumstances of the ritual. The significance of the royal rituals and the king's status and power has changed as the Choe clan took over the military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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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고려후기 및 조선전기 불전류(佛傳類)의 간행과 유통

저자 : 박용진 ( Park Yong-ji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3-22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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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려후기 및 조선전기 석가 전기류의 간행과 유통을 검토한 것이다. 고려대장경에 입장된 漢譯 佛傳은 약 18종이며, 고려시대에는 이들 불전의 단독 간행이나 유통은 잘 찾아지지 않고, 『교장총록』에 수록된 불전류의 간행이나 유통 역시 잘 확인되지 않는다.
고려후기 불전류를 살펴보면, 한국 찬술 불전류로는 최초의 약기인 『해동고승전』의 기술이 있고, 최초의 한국 찬술 불전으로 평가되는 『석가여래행적송』이 있다. 기타 불전류로는 『주석가여래성도기』, 『대장일람집』이 있고, 『석가여래행적송』의 편찬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불전은 아니지만 『조당집』, 『경덕전등록』 등 선종의 등사류, 『선문염송』 등 선종의 어록류에서도 석가의 생애를 찾을 수 있다.
조선전기 불전류의 간행과 유통을 살펴보면, 『석가보』와 『석가씨보』가 중심이 되었고, 史傳部 佛傳類의 『증수석가보』, 『석보상절』, 『월인천강』, 『월인석보』, 『석가여래성도기』, 『석가여래행적송』, 사전부 불교사의 『석씨통감』, 『불조역대통재』, 사전부 禪宗傳의 『조당집』, 『경덕전등록』, 『연등회요』, 사휘부의 『대장일람집』 등이 간행·유통되었다.
고려후기와 조선전기 불전류의 간행과 유통의 특징을 정리하면, 첫째, 직접기에 해당하는 『석가보』와 『석가씨보』가 중심이 되었고, 고려후기의 『행적송』이나 조선전기의 『석보상절』의 편찬에 활용되었다. 둘째, 한국 찬술 불전류로는 고려 시대의 『석가여래행적송』이 있고, 조선전기에 편찬된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는 자국의 언어와 문자로 편찬되고 간행된 불전이라는 점에 있어 획기적이다. 『석가여래행적송』이나 『석보상절』 등의 인용서 역시 석가의 생애를 기술하고 있고, 당시 유통된 불전류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셋째, 불전의 간접기와 약기는 사전부나 사휘류, 선종의 등사류와 어록류의 찬술이 있다. 본고를 통하여 고려 및 조선시대의 석가관이나 불교 인식 등을 분석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reviews the publication and distribution of Buddha's biography(佛傳) i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Dynasty.
In the late Goryeo Dynasty, the first Korean Buddha's biography(佛傳) is the Seokgayeorae Haengjeoksong. In addition, there are Zhushijiarulai chengdaoji and Dazang yilanji, and books of the Seon sect such as Zutangji, Jingde zhuandenglu, etc.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publication and distribution of Buddha's biography centered on Shijiapu and Shijia shipu, and there were Seokbosangjeol and Wolinseokbo and Shijiarulai chengdaoji in the Buddha's biography, Shishi tongjian and Fozu lidai tongzai in Buddhist history, and a biography and a written record of priest's word in Zen sect.
The Buddha's biography of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 were centered on Shijiapu and Shijia shipu, and were used in the compilation of Haengjeoksong in the late Goryeo and Seokbosangjeol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first compilation of Buddha's biography in Korea was the Seokgayeorae Haengjeoksong of the Goryeo Dynast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Seokbosangjeol, Wolincheongangjigok, and Wolinseokbo were epoch-making in that they were Buddha's biographies compiled and published in Korean language and script. In addition, books cited in Seokbosangjeol are significant in that they can know the situation of Buddha's biographies in circulation at the time.
A brief record of the life of Buddha can be found in a biography and a written record of priest's word in Seon sect and a buddhist history. It is significant in that it is possible to review the cult of Śākyamuni at that time through these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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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성 옥천사 대웅전 불석제(佛石製) 불상 연구

저자 : 이희정 ( Lee Hee-Ju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3-25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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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는 의상 대사 창건 사찰로, 화엄 10찰중 하나이며, 오랫동안 많은 고승 대덕이 주석했었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에 전소되어 1639년 학명과 의오의 주도하에 복구되기 시작했으며 차차로 대웅전, 명부전 등의 새 전각과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 시기 불상의 주재료는 목재였지만 이곳은 불석제의 석재 상이 지금의 대웅전과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상들은 신체비례, 얼굴 등 조선후기 보편적인 석조불상의 조형성을 따르면서도 17세기 후반의 대표적 석조 조각승 경옥과 그의 작풍을 계승하는 조각승들이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조선후기 불석제 불상은 고성 옥천사와 같이 부산, 울산 등 해안과 가까운 사찰에 봉안된 사례가 많다. 불석불상은 조선 전기 15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때는 청옥(靑玉)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옥석(玉石)으로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돌은 지금의 경주 함월산과 천태산 2곳에서 채석되어 불상이 만들어졌는데 당시 사람은 불령산(佛靈山), 불석산(佛石山)으로 불렀으며, 이렇게 조성된 불상은 동해천과 감포 앞 바다의 바다 루트를 통해 이운되었다.


Okcheonsa is a temple built by Veneral Uisang upon his return from his study under Zhiyan in Tang dynasty. The temple is one of ten Hwaeom temple designated by Uisang himself. The temple was bestowed on many great masters, however, was burnt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1592) in the Joseon Dynasty. In the aftermath of the war, pavillions and Buddha statues for ceremonial obeisance destructed in flames were recreated and enshrined as perspectives on monks started to change. In particular, restoration of Okcheonsa Temple was initiated under the guidance of Hakmyeong and Uio in 1639, and many Buddha statues and pavillions including the Hall of Utmost Bliss, Great Hero Hall and Hall of Ksitigarbah Bodhisattva were rebuilt in the process. Most statues were made of wood at the time, however, the statues enshrined in the Great Hero Hall and Hall of Ksitigarbah Bodhisattva were made with zeolite stones. Such statues have common formative featur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including body ratio and face. However, the statues also demonstrate unique features made by Keongok, most reknowned monk sculptor of the time, and others who suceeded his style. Many zeolite Buddha statues creat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were enshrined in temples located near the coast such as Busan and Ulsan, as Okcheonsa Temple in Goseong. Zeolite Buddha statues were first created in the 15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called Cheong-ok(靑玉, sapphire) at that time which the present name Ok-seok(jade) originates from. Zeolites for such Buddha statues were cut from the present Hamwolsan Mountain and Cheontaesan Mountain in Gyeongju. Back in the Joseon Dynasty, the mountains were called Bulyeongsan Mountain(佛靈山) or Bulseoksan Mountain(佛石山), and the statues were shipped on the sea route connected from Donghaecheon stream to the sea in Ga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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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장관전서』를 통해 살펴본 조선후기 서얼 문인들 - 이덕무의 벗들을 중심으로 -

저자 : 권정원 ( Kwon Jung-Wo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4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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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덕무의 문집 『청장관전서』에 언급된 몇몇의 서얼문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문학 세계의 일단을 고찰하였다.
이덕무(1741~1793)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서얼문인으로, 그와 교유했던 인물들도 대부분이 서얼이었다. 서얼들은 사대부 적자들과는 달리 문헌에 기록이 남는 경우가 드물고 개인문집을 남기는 일도 쉽지 않았기에, 그들의 문학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이덕무의 경우는 사후 정조의 명으로 그의 문집이 간행되는 행운을 얻었는데, 『청장관전서』가 그것이다. 『청장관전서』는 71권 33책의 방대한 분량의 문집으로, 이덕무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교유했던 서얼문인들에 대한 기록 또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장관전서』에 언급된 서얼문인은 대략 65명 정도이다. 본고에서는 이들 중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청장관전서』에 실제 작품과 비평이 남아 있는 서얼문인을 대상으로 삼았다. 본 기준에 부합하는 문인은 이광석, 변일휴, 박종산, 윤가기, 이공무, 김홍운, 이형상, 이규승, 8명 정도로 간추릴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확인되는 이들의 작품은 이광석의 시 9수, 변일휴의 시 7수, 박종산의 시 5수, 윤가기의 시 3수 그리고 나머지는 시 1~2수 정도이다. 남아 있는 작품 수가 많지 않기에 그들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몇몇 서얼문인에게서 공안파와 경릉파의 시풍을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이광석의 경우는 경릉파에, 변일휴와 박종산의 경우는 공안파에 깊이 경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들의 시에서도 그러한 시풍의 영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공무와 이규승의 시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보이나, 작품 수가 너무 적어서 단언할 수는 없다. 이 밖에도 김홍운의 경우는 고풍스런 시풍을, 이형상의 경우는 온화하고 평이한 시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청장관전서』에 소개된 서얼문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기에, 대상이 이덕무와 교유한 벗들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이덕무에 의해 기억되고 기록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자칫 잊힐 수 있었던 서얼문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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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세기 한문단편소설집 『기설(奇說)』의 성격과 고전소설 교육의 방향

저자 : 한의숭 ( Han Eui-soo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1-6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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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문단편소설집인 『奇說』에 수록된 여섯 작품을 통해 야담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한문단편소설로 재편되면서 변화된 성격을 재검토하고,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로 포착된 '奇'를 19세기 문화 지형과 관련하여 분석해 보고자 기획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한문단편소설집이란 자료를 통해 고전소설 교육의 새로운 접근 시각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기설』에 수록된 여섯 작품은 조선후기 한문단편 서사양식을 대표하는 장르의 성격이 혼효된 서술 방식이 활용되고 있었다. 이는 『기설』의 편찬자가 조선후기 한문단편 서사양식의 주류적 흐름을 이해한 바탕 아래 이야기를 가공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설』은 야담에 원천을 둔 이야기가 당대 서사 문화의 반영을 통해 한문단편소설집으로 편찬된 것으로, 야담에서 소설로 전변하는 서사의 변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기설』은 19세기에 편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록 작품에 드러난 기이는 자극적이거나 초현실적인 환상성이 극도로 발현되는 형태로 표현되지 않았다. 수록된 작품에 표출된 기이는 이물로 대표되는 비현실지향과 인간으로 대표되는 현실지향이 『기설』 내부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이가 서술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비현실적 요소의 배치를 통해 환상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아닌 현실적 인물과 시공간의 배치, 그리고 대화 장면 서술과 내면 묘사를 통해 인과성과 현실성을 강화한 형태를 지향하는 특징이 간취되었다.
이러한 측면을 바탕으로 고전소설 교육에서 『기설』과 같은 소설집의 존재는 고전소설을 향유하던 문화 환경과 작품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실증적 자료로 주목된다. 이는 야담과 소설의 장르 이동 양상의 실체를 확인하는데 활용될 수 있고, 한문소설선집이라는 자료 영역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부각시킬 수 있다. 아울러 개별 작품론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특정 주제나 개념 중심 고전소설 교육 방법론을 제안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고전소설 교육이 작품론 중심에서 벗어나 문화론적 시각을 선취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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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물와(勿窩) 김상욱(金相頊)의 「중주기행(中州記行)」 고찰 - 북경행의 배경과 기행시의 시정(詩情)을 중심으로 -

저자 : 한길로 ( Han Gil-ro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9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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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남 창원의 유림 물와(勿窩) 김상욱(金相頊, 1857~1936)이 남긴 「중주기행(中州記行)」에 주목한 연구이다. 「중주기행」은 지우들의 제안으로 1913년 4월, 동경하던 이상향과 같았던 '중국'행에 올라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유람한 소회를 서술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른바 '장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중국행을 결정했지만 당대의 중국과 유교의 면모는 과거의 것과 상이하였고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했기에 그의 시에는 기대보다는 회한과 탄식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국치와 이민족의 압제를 피해 압록강 너머의 서간도 일대에 머물고 있던 국내의 유림들과 함께하고, 또 '화인(華人)'과 교류하면서는 다소간의 기대와 긍정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회한과 기대감 속에 북경에 당도했지만 그곳은 '구제(舊制)'의 면모와 중화의 위용을 찾기 어려운 공간으로 변했고 오히려 쇠망과 무상(無常)의 흔적을 보지하고 있는, 탄식을 그치기 어려운 곳이 되어 있었다. 요컨대 「중주기행」은 이주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유림이 아닌, 국내에 남아 있던 유림들의 내면과 대외 인식의 일면을 잘 담고 있다. 또한 그의 기록은 연행시의 전통에 자리하면서 변혁이 일던 '중화민국' 기행의 소회 역시 잘 드러나 있어, 20세기 구지식인의 근대 중국 기행문의 특징적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구지식인에게 근대 중국과 북경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인지되고 있는지와 함께 중국 기행을 통한 당시의 시대상과 현실인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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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첫째로 이데올로기론을 넘어서 그동안 거의 분석되지 않았던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남한과 북한 첩보영화의 비교분석을 통해 이떻게 (냉전) 아시아-주로 일본-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졌는 지 살펴 보고자 한다. 예를 들면 남한 첩보영화, <엑스포 70 동경작전>(최인현, 1970)에서는 도쿄가 경제번영의 도시로 재현되고 북한 첩보영화, <매화꽃은 떨어졌다>(1970)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앞잡이인 부패한 자본주의 국가로 표상되며, 오히려 북한이 자주경제를 이루어 낸 이상적인 국가로 표상되는 것은 징후적이다. 다시 말하면 미첼 딘(Michell Dean)이 말한 정치경제학의 틀 안에서의 “경제개발”을 강조한 “권위주의적 통치성”과 결합되어 냉전시기 남북한 첩보영화에서 일본에 대한 인식은 각각 자유주의에 입각한 친일과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반일의 경향이 나타난다. 둘째로 분단된 민족 간의 기존의 금지된 경제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한 동시대 첩보영화, <강철비>(2017)와 <공작>(2018)을 통해 냉전시기, '냉전 블록으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이 '민족적 정치경제학'으로 전환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전환을 백낙청과 백영서가 말하는 '분단체제극복론'과 '복합국가론'의 틀로 읽음으로써, 탈식민지적 사유를 조망한다. 하지만 이들 위의 첩보영화에서 남성민족주의라는 접근방식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은 문제적이며, 특히 동시대 영화는 분명 탈식민지적 사유에 천착하면서도 동시에 아시아 간의 연대나 소통을 보여주는 인터-아시아에 대한 사고를 전적으로 제외시킨다. 따라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러한 남성중심적인 친일/반일 냉전 프로파간다 및 반일 민족주의의 대중장르의 한계를 재일조선인 여성감독 금선희의 다큐멘터리 영화, <외국의 하늘>(2005)과 <짐승이 되어서도>(2005)를 통해 극복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금선희 영화들은 탈식민주의의 가능성을 가지면서도 인터 아시아적 궤적-일본과의 소통가능성-과 젠더 문제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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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K적인 것의 기원과 K차별 - 차별 대응 제도와 교육, 사회통념 개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

저자 : 권명아 ( Kwon Myoung-a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9-16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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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나 차별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담론적으로 확장된 것과 달리 정책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라는 문턱에서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또 차별과 혐오에 대한 정책 기조가 일관성이 없고 정파적 이해관계나 특정 사안을 돌파하기 위한 타협과 절충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정부가 차별을 더욱 부추기는 경향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차별과 혐오 대응에 있어 중요한 지점은 차별과 관련한 전문가 그룹(인권 활동가, 지원 단체, 관련된 연구자 등)의 지속적인 담론 형성과 구체적 사안을 널리 알리는 일 그리고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제를 통해 정책 일관성을 형성하는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하여 차별에 대응하는 정책, 교육, 대안을 연구해온 전문 기관의 공통된 진단은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 통념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차별 통념은 차별을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생각해서 차별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사회적 인식 구조를 뜻한다. 전문가들의 이런 상황 진단과 달리 정부는 줄곧 '사회적 통념'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사회적 통념'을 절충이나 타협의 근거로 내세우고 강조하는 정책 기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어긋남은 정책의 모순을 일으킬 뿐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차별 선동을 합법화하는 근거를 국가가 제공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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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려 무신집권기 왕권과 의례 - 왕실 조상 숭배의례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아네스 ( Kim Agnes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9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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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 무신집권기 국왕이 주재한 주요 의례를 왕권의 위상과 관련하여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왕실 조상에 대한 숭배 의례인 왕실제사와 국휼의례를 중심으로 정치의 두 구심, 즉 국왕과 무신집정의 시각에서 의례의 설행 의도 및 의례 개정과 참용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명종은 왕실 조상에 대한 숭배의례를 국왕의 위상을 확인하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 활용하였다. 재위 초반 명종은 경령전과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서, 자신이 태조의 후계 왕이며 왕정의 최고 책임자임을 과시하였다. 재위 후반 명종은 공예태후의 국휼을 주관하면서 신민과 구별되는 왕실의 존엄을 드러내고 왕권의 위상을 높이려 하였다.
최씨정권이 성립하면서 국왕의 권력은 미약해졌다. 왕권을 표상하는 왕실 조상 숭배의례를 주관하는 일은 국왕의 권리였지만 최충헌은 국휼의 상기를 단축하고 예식을 격하시켰다. 최씨집정은 국왕의 폐위와 옹립을 좌우하며 태묘에 봉안할 신주를 정하고 소목의 위차를 개정하였다. 왕통을 상징하는 의례를 개정함으로써 국왕의 실질적 권위가 향상되는 것을 제어하였다. 최우가 집권자가 되면서 최씨 집정 집안의 상장례에 국휼의 왕례와 왕후례를 참용하였다. 이에 따라 왕실의례가 가지는 특수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최항집정기에 고종은 최씨집정이 권력을 승계한 것을 기념하며 왕실 조상에게 시호를 가상하였다. 최씨정권 아래서 왕들은 의례를 주재하는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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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고려후기 및 조선전기 불전류(佛傳類)의 간행과 유통

저자 : 박용진 ( Park Yong-ji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3-22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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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불전류를 살펴보면, 한국 찬술 불전류로는 최초의 약기인 『해동고승전』의 기술이 있고, 최초의 한국 찬술 불전으로 평가되는 『석가여래행적송』이 있다. 기타 불전류로는 『주석가여래성도기』, 『대장일람집』이 있고, 『석가여래행적송』의 편찬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불전은 아니지만 『조당집』, 『경덕전등록』 등 선종의 등사류, 『선문염송』 등 선종의 어록류에서도 석가의 생애를 찾을 수 있다.
조선전기 불전류의 간행과 유통을 살펴보면, 『석가보』와 『석가씨보』가 중심이 되었고, 史傳部 佛傳類의 『증수석가보』, 『석보상절』, 『월인천강』, 『월인석보』, 『석가여래성도기』, 『석가여래행적송』, 사전부 불교사의 『석씨통감』, 『불조역대통재』, 사전부 禪宗傳의 『조당집』, 『경덕전등록』, 『연등회요』, 사휘부의 『대장일람집』 등이 간행·유통되었다.
고려후기와 조선전기 불전류의 간행과 유통의 특징을 정리하면, 첫째, 직접기에 해당하는 『석가보』와 『석가씨보』가 중심이 되었고, 고려후기의 『행적송』이나 조선전기의 『석보상절』의 편찬에 활용되었다. 둘째, 한국 찬술 불전류로는 고려 시대의 『석가여래행적송』이 있고, 조선전기에 편찬된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는 자국의 언어와 문자로 편찬되고 간행된 불전이라는 점에 있어 획기적이다. 『석가여래행적송』이나 『석보상절』 등의 인용서 역시 석가의 생애를 기술하고 있고, 당시 유통된 불전류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셋째, 불전의 간접기와 약기는 사전부나 사휘류, 선종의 등사류와 어록류의 찬술이 있다. 본고를 통하여 고려 및 조선시대의 석가관이나 불교 인식 등을 분석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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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성 옥천사 대웅전 불석제(佛石製) 불상 연구

저자 : 이희정 ( Lee Hee-J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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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는 의상 대사 창건 사찰로, 화엄 10찰중 하나이며, 오랫동안 많은 고승 대덕이 주석했었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에 전소되어 1639년 학명과 의오의 주도하에 복구되기 시작했으며 차차로 대웅전, 명부전 등의 새 전각과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 시기 불상의 주재료는 목재였지만 이곳은 불석제의 석재 상이 지금의 대웅전과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상들은 신체비례, 얼굴 등 조선후기 보편적인 석조불상의 조형성을 따르면서도 17세기 후반의 대표적 석조 조각승 경옥과 그의 작풍을 계승하는 조각승들이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조선후기 불석제 불상은 고성 옥천사와 같이 부산, 울산 등 해안과 가까운 사찰에 봉안된 사례가 많다. 불석불상은 조선 전기 15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때는 청옥(靑玉)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옥석(玉石)으로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돌은 지금의 경주 함월산과 천태산 2곳에서 채석되어 불상이 만들어졌는데 당시 사람은 불령산(佛靈山), 불석산(佛石山)으로 불렀으며, 이렇게 조성된 불상은 동해천과 감포 앞 바다의 바다 루트를 통해 이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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