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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의 본질과 위격 이해에 관한 연구: 카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그리고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A Study on “ousia” and “hypostasis” in the Doctrine of the Trinity: Centered on Karl Barth, Jurgen Moltmann, and Herman Bavinck

유태화 ( Yoo Tae Wha )
  • : 개혁신학회
  • : 개혁논총 5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6월
  • : 123-159(37pages)
개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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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글
2 카를 바르트의 삼위일체 이해에 있어서 본질과 위격과 그 관계
3 위르겐 몰트만의 삼위일체 이해에 있어서 본질과 위격과 그 관계
4 헤르만 바빙크의 삼위일체 이해에 있어서 본질과 위격과 그 관계
5 나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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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삼위일체론의 골격으로서 본질과 위격을 카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카를 바르트는 본질에 인격성을 직접 귀속시킴으로써 한 인격적인 하나님만이 남고 위격이 실제로 소실되었다. 몰트만은 인격성을 세 위격에 배정하고, 신적인 본질의 원천을 성부의 본질에서 찾았다. 본질이 동질인 세 위격들의 상호교제를 강조하게 되었다. 바빙크는 세 위격 배후에서 신적 본질을 찾지 않고 실제적으로 성부의 본질에서 찾은 니케아신앙고백서를 따름으로써 세 위격이 공유한 신적인 본질의 단순성에서 삼위일체론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바르트는 양태론으로 빠지게 되었고, 몰트만은 아리우스적인 삼신론과 사벨리우스적인 양태론을 극복하였으며, 바빙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본질 이해를 딛고 세 위격의 본질의 동일성에서 찾음으로써 양태론과 삼신론을 동시에 극복하였다. 바빙크와 몰트만은 사실상 동일한 삼위일체론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바빙크는 삼위일체론을 언약론의 근간으로 보았으나, 몰트만은 범재신론적인 착상에로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This article aimed to study Karl Barth, Jurgen Motlmann, and Herman Bavinck’s understanding of “ousia” and “hypostasis” in the doctrine of the Trinity. For Barth, there is one personal God, for he alloted personality directly to the ousia behind three persons. As a result of this, three persons are really dissolved and disappeared. Moltmann alloted the foundation of the Godhead to the Father who shared the Godhead with the Son by way of “begotten” and with the Spirit by way of “proceeding.” As a result of this there are three persons who shared the same essence(homoousia). In Moltmann’s understantding the same essence is not divided in three parts. Three persons themselves who share the same essence are real persons respectively, and they are in the interpenetrate communion. Bavinck alloted the foundation of the Godhead to the Father according to the Nicene Creed. Thus for him there is no way to say the Godhead behind the essence of the Father. And also according the Nicene- Constantinople Creed, he admitted the real personality of three persons respectively. In short, Barth followed the Sabellianistic and Hegelian understanding, Moltmann avoided the Sabellianistic as well as the tritheistic way, Bavinck overcomed the Augustinian way of understanding, and furthermore represented the Nicene-Constantinoplian way of understanding. Although Moltmann and Bavinck shared almost the same understanding of the Trinity, Moltmann aimed to unfold a panentheistic theology, Bavinck to develope a covenant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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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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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2010-2021
  • :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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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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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세기 개혁신학의 유산: 워필드와 바빙크의 신학사상 이해와 평가

저자 : 김길성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60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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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훈(Didactic)과 변증(Polemic)': 벤자민 B. 워필드의 중보자 그리스도의 인격에 있어서의 신인양성의 위격적 연합 이해

저자 : 문병호 ( Byung Ho Moon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1-9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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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필드는 자기 시대의 신학이 합리주의나 경험주의 및 그 극단인 관념주의나 유물주의에 경도되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잣대로 성경의 규범성과 역사성을 자의적으로 각색하며, 성경의 절대 가치를 실용적 편향성에 매몰시키는 극한 오류에 빠져 있음을 엄정하게 비판하면서, 이러한 사조에 휩쓸린 '자유주의(Liberalism)'에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Christless Christianity)'가 남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논점은 이러하다. 기독교의 본질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의 인격과 그 인격이 주체가 되는 사역, 그리고 그 사역에 따른 대속의 의의 전가에 있다. 이를 도외시하고는 기독론이 서지 못함을 물론 삼위일체론이나 구원론도 서지 못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의 정점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있으며, 구원론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로서 다 이루신 의의 전가의 법정성에 있기 때문이다. 워필드는 이러한 삼위일체론적-기독론적-구원론적 관점을 시종 견지한다. 그 결과 교리의 폭과 함께 변증의 폭이 함께 넓어지고 깊어진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는,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주”라는 세 이름이 이러한 관점에 부합하게 서로 긴밀하게 자주 언급된다.


Benjamin B. Warfield strictly criticizes a 'new Christology' that has been pursued by liberal theologians of his time in various ways, for dramatizing arbitrarily the normative and historic character of the Bible according to their own subjective and relative criteria based on the 19-20th century rationalism or empiricism, and their ultimate types of idealism or materialism, and for making a crucial error to convert absolute value of the Bible to pragmatic bias of contemporary philosophies. Warfield argues that none other than 'Christless Christianity' will be left if we are caught up in liberalism. Warfield finds an essence of Christianity in the doctrines of the hypostatic union of Christ the Mediator's two natures, His works of redemption, and the federal imputation of His righteousness, which was fulfilled on the cross. In dealing with this, Warfield highlights three names of Christ the Mediator, “Son of God,” “Son of Man,” and “Lord,” which correspond to Trinitarianism, Christology, and Soteriology respectively. This is why for Warfield the width and range of systematic theology and apologetics become widen and broaden and their interrelationship becomes dynamic and intimate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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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헤르만 바빙크의 성육신 이해: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저자 : 김성태 ( Sungtae Kim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12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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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성육신 이해를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하나님의 성육신은 가능한가? 하나님과 세계를 분리하는 이신론과 하나님과 세계를 혼합하는 범신론은 성육신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이 이 세계에 들어온 유일무이한 성육신 사건을 인정한다. 성육신은 어떤 방식일까?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한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일치시킨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을 지지한다. 성육신은 필연적인가? 펠라기우스(Pelagius)는 성육신의 우연성을 주장한다. 오시안더(Osiander)는 성육신의 필연성을 주장한다. 반면, 바빙크는 속죄를 위한 성육신의 필연성을 주장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존재론적 구별과 관계론적 연합을 확보한다. 또한 바빙크 신학 전체의 통일성을 지지한다.


This study discusses Herman Bavinck's understanding of Christ's incarnation,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the world. Is God's incarnation possible? Deism separates God from the world, and pantheism mixes God and the world. Both of them deny the possibility of the incarnation. However, Reformed theology recognizes God's unique incarnation. What is the way of the incarnation? The Antiochene school separates the divinity and humanity of Christ based on deism. The Alexandrian school unites the divinity and humanity of Christ based on pantheism. However, Reformed theology supports hypostatic union of divinity and humanity. The incarnation, is it necessary? Pelagius argues for the contingency of the incarnation. Osiander claims the necessity of the incarnation. But Bavinck insists on the necessity for the purpose of atonement. It secures the ontological distinction and relational union between Christ and saints, furthermore supports the unity of the whole Bavinck's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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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삼위일체론의 본질과 위격 이해에 관한 연구: 카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그리고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저자 : 유태화 ( Yoo Tae Wha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3-15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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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삼위일체론의 골격으로서 본질과 위격을 카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카를 바르트는 본질에 인격성을 직접 귀속시킴으로써 한 인격적인 하나님만이 남고 위격이 실제로 소실되었다. 몰트만은 인격성을 세 위격에 배정하고, 신적인 본질의 원천을 성부의 본질에서 찾았다. 본질이 동질인 세 위격들의 상호교제를 강조하게 되었다. 바빙크는 세 위격 배후에서 신적 본질을 찾지 않고 실제적으로 성부의 본질에서 찾은 니케아신앙고백서를 따름으로써 세 위격이 공유한 신적인 본질의 단순성에서 삼위일체론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바르트는 양태론으로 빠지게 되었고, 몰트만은 아리우스적인 삼신론과 사벨리우스적인 양태론을 극복하였으며, 바빙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본질 이해를 딛고 세 위격의 본질의 동일성에서 찾음으로써 양태론과 삼신론을 동시에 극복하였다. 바빙크와 몰트만은 사실상 동일한 삼위일체론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바빙크는 삼위일체론을 언약론의 근간으로 보았으나, 몰트만은 범재신론적인 착상에로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This article aimed to study Karl Barth, Jurgen Motlmann, and Herman Bavinck's understanding of “ousia” and “hypostasis” in the doctrine of the Trinity. For Barth, there is one personal God, for he alloted personality directly to the ousia behind three persons. As a result of this, three persons are really dissolved and disappeared. Moltmann alloted the foundation of the Godhead to the Father who shared the Godhead with the Son by way of “begotten” and with the Spirit by way of “proceeding.” As a result of this there are three persons who shared the same essence(homoousia). In Moltmann's understantding the same essence is not divided in three parts. Three persons themselves who share the same essence are real persons respectively, and they are in the interpenetrate communion. Bavinck alloted the foundation of the Godhead to the Father according to the Nicene Creed. Thus for him there is no way to say the Godhead behind the essence of the Father. And also according the Nicene- Constantinople Creed, he admitted the real personality of three persons respectively. In short, Barth followed the Sabellianistic and Hegelian understanding, Moltmann avoided the Sabellianistic as well as the tritheistic way, Bavinck overcomed the Augustinian way of understanding, and furthermore represented the Nicene-Constantinoplian way of understanding. Although Moltmann and Bavinck shared almost the same understanding of the Trinity, Moltmann aimed to unfold a panentheistic theology, Bavinck to develope a covenant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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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바빙크 신학에서의 제도적 교회와 유기체적 교회 구별에 대한 고찰

저자 : 태동열 ( Dongyaul Tae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204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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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로서의 교회와 유기체로서의 교회 구별은 신칼빈주의 교회론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런데 신칼빈주의의 이 구별은 그 공헌을 인정받기도 하지만 비판도 받고 있다. 이 구별에 대한 이런 상반된 평가 가운데 이 논문은 제도적/유기체적 교회 구별에 관한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이해를 하나의 중요한 사례연구로 삼아 이 구별에 대한 비판에 응답한다. 이 구별에 대한 비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이 구별에 따르면 제도적 교회가 유기체적 교회에 종속된다. (2) 이 구별은 성경적 개혁신학적 근거가 없다. (3) 그것은 결국 가시적 혹은 제도적 교회의 약화를 초래한다.
이 논문은 바빙크의 교회론에서 가시적 교회의 양 측면으로서 제도적 교회와 유기체적 교회 사이의 관계는 어떤 우월하거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등한 관계이며 긴밀히 연관되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라는 것을 논증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바빙크가 이 구별에 대한 성경적, 개혁신학적 근거를 적절히 제시하고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나아가서 이 논문은 그가 (직분과 은혜의 방편과 교회의 통치 형태를 가리키는) 제도적 교회와 (성도들의 고백과 삶을 가리키는) 유기체적 교회 사이의 구별을 통해 제도적 교회를 약화시키기보다는 강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을 제도적 교회에 대한 그의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논증할 것이다. 이는 이 구별이 제도적 교회의 약화를 초래하는가와 관련해서 그와 비판자들 사이의 견해 차이의 핵심이 결국 제도적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차이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연구는 앞에서 언급된 비판이 바빙크에게 해당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고 동시에 신칼빈주의의 제도적/유기체적 교회 구별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도 보여줄 것이다.


The distinction between the church as institution and the church as organism is an important feature of Neo-Calvinist ecclesiology. However, this distinction of Neo-Calvinism is not only recognized for its contribution, but also criticized. In this situation, this paper responds to the criticism of this distinction, taking Bavinck's understanding of the institutional/organic church distinction as an important case study. The critique of this distinction can be summed up as follows: (1) The institutional church is subordinated to the organic church. (2) This distinction has no biblical or Reformed theological basis. (3) It eventually leads to the weakening of the visible or institutional church.
This paper will demonstrate that in Bavinck's ecclesiolog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nstitutional and the organic church as both aspects of the visible church is not any superior or subordinate relationship, but a mutually equal relationship, and a relationship that is closely related and constantly interacting. In addition, this study will demonstrate that Bavinck adequately provides the biblical and Reformed theological basis for this distinction. Furthermore, this paper will demonstrate, focusing on Bavinck's understanding of the institutional church, that it can be said that he is strengthening rather than weakening the institutional church through the distinction between the institutional and the organic church.
In this context, this study will show that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 criticism mentioned above applies to Bavinck, and at the same time, it will also show that a more concrete and detailed evaluation of the institutional/organic church distinction of the Neo-Calvinism i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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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제임스 에글린턴의 Bavinck: A Critical Biography에 대한 비평적 고찰

저자 : 박재은 ( Jae-eun Park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5-2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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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임스 에글린턴(James Eglinton)에 의해 헤르만 바빙크 전기(biography)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전기의 부제는 다소 도발적인데 그 이유는 전기 작품의 제목으로는 흔하게 쓰이지 않는 표현인 '비평적'(critical)이란 표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전기 제목을 오해해서 에글린턴이 바빙크의 생애와 신학을 '비평적으로' 고찰했다고 단순히 부정적으로 인상 비평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에글린턴 전기의 부제인 비평적 고찰의 대상은 헤르만 바빙크 본인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바빙크 전기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기 때문이다. 결국 에글린턴의 전기는 그가 박사논문을 쓸 때부터 천착했던 해석 원리인 바빙크를 '새롭게 읽는' 작업의 또 다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바빙크 전기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후 그런 작업의 장단점의 토대 위에서 바빙크의 생애와 신학을 새롭게 재조망하려는 시도가 바로 최근에 출간된 에글린턴의 전기가 지향하는 집필 방향성이다.
본고의 목표는 이런 에글린턴의 Bavinck: A Critical Biography를 또다시 비평적으로 고찰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평적으로 고찰'한다는 의미는 에글린턴의 전기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장단점을 도출해내어 과연 어떤 시각이 바빙크의 생애와 신학을 평가함에 있어 보다 더 옳은 시각인가를 고민하는 작업이 포함된 의미이다. 무조건 새롭게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옳은 시각' 하에 새롭게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고의 논지 전개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에글린턴이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존의 바빙크 전기를 역사적으로 분석해본 후, 에글린턴의 A Critical Biography의 핵심 내용들을 분석할 것이다. 특히 에글린턴 전기의 장점과 기여, 단점과 아쉬운 점, 그리고 총평을 내려 볼 것이다. 그 후 바빙크 전기의 향후 방향성 및 신학적·실천적 고찰을 살핀 다음 총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전기'라는 옷을 입은 채 바빙크의 생애와 신학을 보다 더 올바르게 고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을 확신한다.


The new biography on Herman Bavinck has recently published by James Eglinton. The subtitle of this biography is somewhat provocative, inasmuch as it includes the expression 'critical' which is not usually used as the title of biography. As a result of misunderstanding on the subtitle, one would impressionistically criticize that Eglinton views Bavinck's life and theology in a critical sense. The fact, however, is not. For the object of Eglinton's criticism is not toward Bavinck himself, but toward the precedent biographers and their works on Bavinck's life and theology. Eglinton's biograpy, therefore, is a kind of biographical work, which tries to comprehend Bavinck in a new reading through analyzing the preceding biographies in an objective angl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view Eglinton's Bavinck: A Critical Biography critically once again. Here, the expression 'to view critically' means that, after analyzing Eglinton's biography and drawing its strengths and weaknesses in on objective outlook, one tries to find which viewpoint is more proper viewpoint to evaluate Bavinck's life and theology. For the most important thing is not unconditionally leaning toward a new reading, but toward a new reading in a proper perspective.
The study follows this order: First, after analyzing the earlier biographies historically, the core idea of Eglinton's biography will be examined. Second,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A Critical Biography will be viewed. Lastly, the biography's future direction, its theological and practical implication will be dealt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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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도르트 총회 연구의 새로운 전망과 시벨리우스의 일지(Journal)

저자 : 홍주현 ( Joohyun Hong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9-27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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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한 국제 개혁파 총회였음에도 도르트 총회(1618-19)는 지금껏 학계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그 연구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도르트 총회와 관련된 대부분 일차자료가 그 자체로 비평적인 판독작업이 필요한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도르트 총회 400주년을 맞이하여 도르트 총회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고, 도르트 총회에 관한 연구들이 이전에 비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일차자료에 학자들이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것들에 대한 비평적인 판독작업이 도르트 프로젝트 그룹에 의해 진행 중이며, Acta et Documenta Synodi Nationalis Dordrechtanae 시리즈의 출간으로 그 노력이 이제 결실을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새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된 자료들은 도르트 총회에 관한 연구의 지평을 넓혀 주고 있는데, 시벨리우스의 일지도 그런 자료 중 하나이다. 시벨리우스의 일지는 도르트 총회에 참석했던 오퍼레이설주 대리인 중 한 명인 카스파르 시벨리우스(Caspar Sibelius)에 의해 기록된 개인 저술로 대부분의 총회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으며, 다른 자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도르트 총회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시벨리우스의 일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도르트 총회에 관한 여러 가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훌륭한 보충 자료로서 다른 보충 자료들과 함께 총회의 회의록이 다 담아내지 못한 총회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Although it was the first and, presently, only international Reformed synod, the Synod of Dordt has suffered from undeserved indifference by scholars and the research on it has been quite limited. One of the reasons for this indifference is that most primary sources concerning the Synod of Dordt has remained untouched and needs critical transcription to make them available to scholars. Recently, however, there has been a growing interest in the Synod of Dordt and many scholarly researches on it has been proceeded on account of 400 anniversaries of the Synod of Dordt. In addition, most primary sources have been critically transcribed by the members of Dordt project group, and the result is highlighted by the publication of the Acta et Documenta Synodi Nationalis Dordrechtanae series (9 volumes planned). These newly available sources give better understanding on the Synod of Dordt, and the journal of Sibelius is one of them. The journal was a personal note written by Caspar Sibelius, who was a delegate of the Overijssel delegation, and it contains most records on the history of the Synod and unique materials which other sources do not have. Therefore, the journal of Sibelius is consider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complementary sources for the research of the Synod of Dordt. The journal of Sibelius, which has not been available due to its illegibility as other sources, is now available since it is just transcribed. Because the journal of Sibelius contains several unique materials which are not found in any other sources, and they can be also used to show other aspects of the Synod, it is and will be particularly useful for the research of the Synod of Dordt as one of good complementary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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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Critic on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Reason Suggested by Thomas Aquinas and Christian Educational Implications

저자 : Oh Kyunghwan ( 오경환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7-30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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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articulates the claims of the medieval theologian Thomas Aquinas who attempted to integrate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reason within Christian theology. Aquinas failed to synthesize faith and reason biblically because he failed to examine thoroughly the relationship as it relates to biblical anthropology. He refused to acknowledge man's total depravity, incompetence, and epistemological flaws. This paper discerns the correlation between faith and reason from a biblical perspective by examining general revelation and special revelation and the implications and significances of faith and reason to Christian education. This study concludes that Aquinas's attempts to integrate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reason are not based on biblical anthropology and epistemology as they prove that only the Holy Spirit leads fallen human beings to the true living God.


본 논문은 기독교 신학 내에서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통합하려고 시도했던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에 대해 연구한다.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을 종합하려고 했지만 인간의 전적 타락과 무능 및 인간의 성경적 인간론을 거부함으로 이 둘의 관계를 철저하게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 이 연구는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기독교적 관점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다룰 뿐 아니라, 기독교 교육의 시사점과 중요성 및 함의에 대해 다루며 동시에 성경적 인간의 이해가 무엇인지를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통해 연구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성경적 인간론 및 인식론에 기반하지 못한 아퀴나스의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통합한 시도에 대해 비평 및 고찰을 시도하며,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무능하고 타락한 인간을 살아계신 진리의 하나님께로 인도한다는 것을 확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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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Νήπιοι인지 또는 ἤπιοι인지(살전 2:7)에 관한 사본학적 고찰

저자 : 이기운 ( Kiwoon Lee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3-33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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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데살로니가전서 2:7에 나오는 짧은 한 절에 나타나는 사본학적 논의를 한다. 학자들은 그동안 “유순한”(ἤπιοι)인지 또는 “어린 아이들”(νήπιοι)인지에 대한 외적 및 내적 증거를 두고 여러 논의를 진행해 왔다. νήπιοι를 선호하는 학자들은 중자탈락(haplography)으로 인하여 “유순한”이란 의미를 지니는 ἤπιοι로 필사되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ἤπιοι가 바울의 본래적인 어휘 선택으로 여기는 학자들은 중복오사(dittography)로 인하여 “유아”를 나타내는 νήπιοι로 표기되었다고 주장한다. 외적인 증거로 볼 때 많은 학자들은 νήπιοι(“어린 아이들”)를 지지하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에는 ἤπιοι(“유순한”)가 자연스럽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원문에 포함되었는지를 결정할지가 쉽지 않다. 본 연구는 이러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살로니가전서 2:7의 각기 다른 이문인 ἤπιοι와 νήπιοι를 지지하는 사본학적인 외적 및 내적 증거가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 해석적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지를 살펴본다. 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본학적인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유모”(τροφός) 메타포와의 연결성을 어떻게 생각해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7의 난해함은 유모 또는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기르는 행위가 각각 ἤπιοι 및 νήπιοι와 연결되어 복합적인 은유를 형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은 지금까지 제안되어 온 ἤπιοι에 대한 내적 증거에 비해 다소 주목받지 못했던 νήπιοι에 대한 내적 증거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본 연구자는 헬라문헌, 신약성경, 칠십인역과 같은 다양한 용례에 비추어 νήπιοι가 은유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제시하며, 또한 이러한 독법이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바울의 논조와 어울릴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This study shows a textual-critical discussion revolving around 1 Thessalonians 2:7, which is one of the difficult texts to grasp its meaning. Scholars have discussed the external and internal evidence as to whether this text originally included ἤπιοι or νήπιοι. Scholars who prefer νήπιοι claim that due to haplography, it was erroneously transcribed as ἤπιοι (gentle). Other scholars who regard ἤπιοι as Paul's original vocabulary choice argue that due to dittography, some scribes transcribed it as νήπιοι (infant). Based on various reliable manuscripts, many scholars support νήπιοι, but it is difficult to determine which one is the original reading since ἤπιοι seems to be more fitted into the context. Thus, this study examines both external and internal evidence that can substantiate respectively ἤπιοι and νήπιοι and how each consideration can be directed and concluded. Further, the question as to how to draw the conclusion of this textual-critical issue has to do with understanding a connection with the metaphor of τροφός. The difficulty of 1 Thessalonians 2:7 arises from the fact that nurturing behavior of τροφός and ἤπιοι or νήπιοι shape a combined metaphor. Thus, this study's major goal is to establish internal evidence for νήπιοι that has been at disadvantage compared to internal evidence for ἤπιοι. In this process, this researcher examines the meaning of νήπιοι in light of various usages of Greek resources, when it is used in a metaphorical sense. It is also required to explore whether this reading is fitted into Paul's tone of argument in 1 Thessalonian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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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새 관점의 칭의론을 극복하려는 최갑종의 시도에 대한 개혁주의 구원론 관점의 평가

저자 : 이윤석 ( Yoonseok Lee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7-36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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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최갑종의 칭의론을 개혁주의 구원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는 칭의론에 대한 전통적 관점과 새 관점 및 김세윤의 관점과의 절충점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칭의론은 새 관점의 전형적인 주장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 구원론 관점에서 볼 때 네 가지 점에서 그의 칭의론은 문제가 있다. 첫째, 칭의의 정의에 법정적 의미 외에 다른 개념을 더 넣어서 확장시킨다. 둘째, 칭의와 성화를 개념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셋째, 전통적인 전가 개념을 인정한다 하면서 그 의미를 왜곡시킨다. 넷째, 참된 신자들의 견인을 부인하며, 최종 칭의가 최후 심판 때에야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의 칭의론이 갖는 이런 특징들은 그의 관점이 김세윤과 새 관점의 칭의론과 유사하며, 전통적인 개혁주의 구원론의 관점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This paper critically reviewed Gab-Jong Choi's understanding about justification in terms of reformed soteriology. He tried to find a compromise between the traditional perspective of justification and the New perspective and Seyoon Kim's perspective. His theory of justification differs from the typical claim of the New perspective. However, in terms of reformed soteriology, his theory of justification is problematic in four respects. First, he extends the concept of justification by adding other meanings beyond the forensic meaning. Second, he considers that there is no need to conceptually distinguish between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Third, he acknowledges the traditional concept of imputation, but actually distorts its meaning. Fourth, he denies the perseverance of true believers and considers that the final justification is made only at the final judgement. Therefore, these characteristics of his theory of justification show that his viewpoint is similar to that of Seyoon Kim and the New perspective, and is different from the viewpoint of traditional reformed soteri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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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세기 개혁신학의 유산: 워필드와 바빙크의 신학사상 이해와 평가

저자 : 김길성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60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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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훈(Didactic)과 변증(Polemic)': 벤자민 B. 워필드의 중보자 그리스도의 인격에 있어서의 신인양성의 위격적 연합 이해

저자 : 문병호 ( Byung Ho Moon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1-9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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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필드는 자기 시대의 신학이 합리주의나 경험주의 및 그 극단인 관념주의나 유물주의에 경도되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잣대로 성경의 규범성과 역사성을 자의적으로 각색하며, 성경의 절대 가치를 실용적 편향성에 매몰시키는 극한 오류에 빠져 있음을 엄정하게 비판하면서, 이러한 사조에 휩쓸린 '자유주의(Liberalism)'에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Christless Christianity)'가 남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논점은 이러하다. 기독교의 본질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의 인격과 그 인격이 주체가 되는 사역, 그리고 그 사역에 따른 대속의 의의 전가에 있다. 이를 도외시하고는 기독론이 서지 못함을 물론 삼위일체론이나 구원론도 서지 못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의 정점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있으며, 구원론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로서 다 이루신 의의 전가의 법정성에 있기 때문이다. 워필드는 이러한 삼위일체론적-기독론적-구원론적 관점을 시종 견지한다. 그 결과 교리의 폭과 함께 변증의 폭이 함께 넓어지고 깊어진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는,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주”라는 세 이름이 이러한 관점에 부합하게 서로 긴밀하게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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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헤르만 바빙크의 성육신 이해: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저자 : 김성태 ( Sungtae Kim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12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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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성육신 이해를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하나님의 성육신은 가능한가? 하나님과 세계를 분리하는 이신론과 하나님과 세계를 혼합하는 범신론은 성육신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이 이 세계에 들어온 유일무이한 성육신 사건을 인정한다. 성육신은 어떤 방식일까?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한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일치시킨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을 지지한다. 성육신은 필연적인가? 펠라기우스(Pelagius)는 성육신의 우연성을 주장한다. 오시안더(Osiander)는 성육신의 필연성을 주장한다. 반면, 바빙크는 속죄를 위한 성육신의 필연성을 주장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존재론적 구별과 관계론적 연합을 확보한다. 또한 바빙크 신학 전체의 통일성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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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삼위일체론의 본질과 위격 이해에 관한 연구: 카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그리고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저자 : 유태화 ( Yoo Tae Wha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3-15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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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삼위일체론의 골격으로서 본질과 위격을 카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헤르만 바빙크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카를 바르트는 본질에 인격성을 직접 귀속시킴으로써 한 인격적인 하나님만이 남고 위격이 실제로 소실되었다. 몰트만은 인격성을 세 위격에 배정하고, 신적인 본질의 원천을 성부의 본질에서 찾았다. 본질이 동질인 세 위격들의 상호교제를 강조하게 되었다. 바빙크는 세 위격 배후에서 신적 본질을 찾지 않고 실제적으로 성부의 본질에서 찾은 니케아신앙고백서를 따름으로써 세 위격이 공유한 신적인 본질의 단순성에서 삼위일체론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바르트는 양태론으로 빠지게 되었고, 몰트만은 아리우스적인 삼신론과 사벨리우스적인 양태론을 극복하였으며, 바빙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본질 이해를 딛고 세 위격의 본질의 동일성에서 찾음으로써 양태론과 삼신론을 동시에 극복하였다. 바빙크와 몰트만은 사실상 동일한 삼위일체론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바빙크는 삼위일체론을 언약론의 근간으로 보았으나, 몰트만은 범재신론적인 착상에로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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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바빙크 신학에서의 제도적 교회와 유기체적 교회 구별에 대한 고찰

저자 : 태동열 ( Dongyaul Tae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204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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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로서의 교회와 유기체로서의 교회 구별은 신칼빈주의 교회론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런데 신칼빈주의의 이 구별은 그 공헌을 인정받기도 하지만 비판도 받고 있다. 이 구별에 대한 이런 상반된 평가 가운데 이 논문은 제도적/유기체적 교회 구별에 관한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이해를 하나의 중요한 사례연구로 삼아 이 구별에 대한 비판에 응답한다. 이 구별에 대한 비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이 구별에 따르면 제도적 교회가 유기체적 교회에 종속된다. (2) 이 구별은 성경적 개혁신학적 근거가 없다. (3) 그것은 결국 가시적 혹은 제도적 교회의 약화를 초래한다.
이 논문은 바빙크의 교회론에서 가시적 교회의 양 측면으로서 제도적 교회와 유기체적 교회 사이의 관계는 어떤 우월하거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등한 관계이며 긴밀히 연관되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라는 것을 논증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바빙크가 이 구별에 대한 성경적, 개혁신학적 근거를 적절히 제시하고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나아가서 이 논문은 그가 (직분과 은혜의 방편과 교회의 통치 형태를 가리키는) 제도적 교회와 (성도들의 고백과 삶을 가리키는) 유기체적 교회 사이의 구별을 통해 제도적 교회를 약화시키기보다는 강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을 제도적 교회에 대한 그의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논증할 것이다. 이는 이 구별이 제도적 교회의 약화를 초래하는가와 관련해서 그와 비판자들 사이의 견해 차이의 핵심이 결국 제도적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차이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연구는 앞에서 언급된 비판이 바빙크에게 해당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고 동시에 신칼빈주의의 제도적/유기체적 교회 구별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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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제임스 에글린턴의 Bavinck: A Critical Biography에 대한 비평적 고찰

저자 : 박재은 ( Jae-eun Park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5-2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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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임스 에글린턴(James Eglinton)에 의해 헤르만 바빙크 전기(biography)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전기의 부제는 다소 도발적인데 그 이유는 전기 작품의 제목으로는 흔하게 쓰이지 않는 표현인 '비평적'(critical)이란 표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전기 제목을 오해해서 에글린턴이 바빙크의 생애와 신학을 '비평적으로' 고찰했다고 단순히 부정적으로 인상 비평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에글린턴 전기의 부제인 비평적 고찰의 대상은 헤르만 바빙크 본인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바빙크 전기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기 때문이다. 결국 에글린턴의 전기는 그가 박사논문을 쓸 때부터 천착했던 해석 원리인 바빙크를 '새롭게 읽는' 작업의 또 다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바빙크 전기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후 그런 작업의 장단점의 토대 위에서 바빙크의 생애와 신학을 새롭게 재조망하려는 시도가 바로 최근에 출간된 에글린턴의 전기가 지향하는 집필 방향성이다.
본고의 목표는 이런 에글린턴의 Bavinck: A Critical Biography를 또다시 비평적으로 고찰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평적으로 고찰'한다는 의미는 에글린턴의 전기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장단점을 도출해내어 과연 어떤 시각이 바빙크의 생애와 신학을 평가함에 있어 보다 더 옳은 시각인가를 고민하는 작업이 포함된 의미이다. 무조건 새롭게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옳은 시각' 하에 새롭게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고의 논지 전개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에글린턴이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존의 바빙크 전기를 역사적으로 분석해본 후, 에글린턴의 A Critical Biography의 핵심 내용들을 분석할 것이다. 특히 에글린턴 전기의 장점과 기여, 단점과 아쉬운 점, 그리고 총평을 내려 볼 것이다. 그 후 바빙크 전기의 향후 방향성 및 신학적·실천적 고찰을 살핀 다음 총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전기'라는 옷을 입은 채 바빙크의 생애와 신학을 보다 더 올바르게 고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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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도르트 총회 연구의 새로운 전망과 시벨리우스의 일지(Journal)

저자 : 홍주현 ( Joohyun Hong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9-27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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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한 국제 개혁파 총회였음에도 도르트 총회(1618-19)는 지금껏 학계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그 연구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도르트 총회와 관련된 대부분 일차자료가 그 자체로 비평적인 판독작업이 필요한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도르트 총회 400주년을 맞이하여 도르트 총회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고, 도르트 총회에 관한 연구들이 이전에 비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일차자료에 학자들이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것들에 대한 비평적인 판독작업이 도르트 프로젝트 그룹에 의해 진행 중이며, Acta et Documenta Synodi Nationalis Dordrechtanae 시리즈의 출간으로 그 노력이 이제 결실을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새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된 자료들은 도르트 총회에 관한 연구의 지평을 넓혀 주고 있는데, 시벨리우스의 일지도 그런 자료 중 하나이다. 시벨리우스의 일지는 도르트 총회에 참석했던 오퍼레이설주 대리인 중 한 명인 카스파르 시벨리우스(Caspar Sibelius)에 의해 기록된 개인 저술로 대부분의 총회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으며, 다른 자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도르트 총회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시벨리우스의 일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도르트 총회에 관한 여러 가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훌륭한 보충 자료로서 다른 보충 자료들과 함께 총회의 회의록이 다 담아내지 못한 총회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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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Critic on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Reason Suggested by Thomas Aquinas and Christian Educational Implications

저자 : Oh Kyunghwan ( 오경환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7-30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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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articulates the claims of the medieval theologian Thomas Aquinas who attempted to integrate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reason within Christian theology. Aquinas failed to synthesize faith and reason biblically because he failed to examine thoroughly the relationship as it relates to biblical anthropology. He refused to acknowledge man's total depravity, incompetence, and epistemological flaws. This paper discerns the correlation between faith and reason from a biblical perspective by examining general revelation and special revelation and the implications and significances of faith and reason to Christian education. This study concludes that Aquinas's attempts to integrate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reason are not based on biblical anthropology and epistemology as they prove that only the Holy Spirit leads fallen human beings to the true living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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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Νήπιοι인지 또는 ἤπιοι인지(살전 2:7)에 관한 사본학적 고찰

저자 : 이기운 ( Kiwoon Lee )

발행기관 : 개혁신학회 간행물 : 개혁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3-33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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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데살로니가전서 2:7에 나오는 짧은 한 절에 나타나는 사본학적 논의를 한다. 학자들은 그동안 “유순한”(ἤπιοι)인지 또는 “어린 아이들”(νήπιοι)인지에 대한 외적 및 내적 증거를 두고 여러 논의를 진행해 왔다. νήπιοι를 선호하는 학자들은 중자탈락(haplography)으로 인하여 “유순한”이란 의미를 지니는 ἤπιοι로 필사되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ἤπιοι가 바울의 본래적인 어휘 선택으로 여기는 학자들은 중복오사(dittography)로 인하여 “유아”를 나타내는 νήπιοι로 표기되었다고 주장한다. 외적인 증거로 볼 때 많은 학자들은 νήπιοι(“어린 아이들”)를 지지하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에는 ἤπιοι(“유순한”)가 자연스럽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원문에 포함되었는지를 결정할지가 쉽지 않다. 본 연구는 이러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살로니가전서 2:7의 각기 다른 이문인 ἤπιοι와 νήπιοι를 지지하는 사본학적인 외적 및 내적 증거가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 해석적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지를 살펴본다. 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본학적인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유모”(τροφός) 메타포와의 연결성을 어떻게 생각해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7의 난해함은 유모 또는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기르는 행위가 각각 ἤπιοι 및 νήπιοι와 연결되어 복합적인 은유를 형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은 지금까지 제안되어 온 ἤπιοι에 대한 내적 증거에 비해 다소 주목받지 못했던 νήπιοι에 대한 내적 증거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본 연구자는 헬라문헌, 신약성경, 칠십인역과 같은 다양한 용례에 비추어 νήπιοι가 은유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제시하며, 또한 이러한 독법이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바울의 논조와 어울릴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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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새 관점의 칭의론을 극복하려는 최갑종의 시도에 대한 개혁주의 구원론 관점의 평가

저자 : 이윤석 ( Yoonseok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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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최갑종의 칭의론을 개혁주의 구원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는 칭의론에 대한 전통적 관점과 새 관점 및 김세윤의 관점과의 절충점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칭의론은 새 관점의 전형적인 주장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 구원론 관점에서 볼 때 네 가지 점에서 그의 칭의론은 문제가 있다. 첫째, 칭의의 정의에 법정적 의미 외에 다른 개념을 더 넣어서 확장시킨다. 둘째, 칭의와 성화를 개념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셋째, 전통적인 전가 개념을 인정한다 하면서 그 의미를 왜곡시킨다. 넷째, 참된 신자들의 견인을 부인하며, 최종 칭의가 최후 심판 때에야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의 칭의론이 갖는 이런 특징들은 그의 관점이 김세윤과 새 관점의 칭의론과 유사하며, 전통적인 개혁주의 구원론의 관점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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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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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선교
55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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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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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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