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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생활스포츠 문화사 연구 -에어로빅스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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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스포츠 문화사 연구 -에어로빅스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History of Sports for All -Focus on Aerobics-

이현정 ( Lee Hyun Jung ) , 곽애영 ( Kwak Ae Young )
  • : 한국체육사학회
  • : 체육사학회지 26권2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6월
  • : 75-90(16pages)
체육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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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에어로빅스의 보급과 확산(1974~1980년대)
Ⅲ. 에어로빅스의 대중화 정착(1990년대)
Ⅳ. 에어로빅스의 전문화(2000~2010년대)
Ⅴ.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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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된 에어로빅스 운동문화의 흐름과 핵심 내용을 규명하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첫째, 1975년 여성생활체육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1980년대 학생과 주부를 중심으로 확산된 에어로빅스는 점차 운동 본연의 목적이 변질되는 빗나간 운동문화를 초래하며 다소 발전이 정체되는 시기를 경험했다. 둘째, 1990년대는 올바른 운동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학계 및 현장의 협력으로 생활체육지도자 연수원의 개설, 안전과 효과를 고려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보급, 대중매체를 통한 지속적인 홍보활동이 이뤄지며 국민건강을 도모하는 대중스포츠로 정착하게 되었다. 셋째, 2000년부터 등장한 얼짱, 몸짱 신드롬은 맞춤형 운동 컨텐츠가 개발되고 그룹운동(G.X)이라는 미래 지향적인 전문영역으로의 발전을 도모했고, 2010년대에 이룬 대한체육회의 정가맹 승인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연계된 국민생활스포츠 종목으로 전문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flow and key points of aerobic exercise culture that has been changed along with the background of time and draw the significant meaning of it in terms of the history of physical education. First, Aerobics was first introduced to Korea in 1975 when women hardly enjoyed sports for all and spread among students and housewives in the 1980’s. Gradually, the culture of aerobic exercise became changed with the distortion of its original purpose, and it went through the period of stagnation in its development. Second, In the 1990’s, to repair the exercise culture righteously, they opened institutes to train instructors for sports for all through cooperation with academic circles and actual fields related, developed and distributed programs in consideration of safety and effect, and conducted publicity activities through the mass media, which allowed it to settle as pubic sports promoting people’s health. Third, Eoljjang and Momjjang syndromes appearing from 2000 did contribute to developing and distributing personalized exercise contents. Also, the Korean Olympic Committee(KOC)’s approval of adopting it as a regular member in the 2010’s worked as an opportunity for it to be specialized as one of the sports for all events associated with elite physical education.

UCI(KEPA)

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1
  • :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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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권3호(2021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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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최초의 운동장,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의 역사적 의미

저자 : 손환 ( Son Hwan ) , 하정희 ( Ha Jung-hee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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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운동장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을 알아보기 위해 대정공원 운동장의 건설과 개장, 구조, 각종 경기대회에 초점을 맞추어 그 실태를 파악하고 한국스포츠사에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은 부산의 체육발전을 위해 일본 천황의 연호를 붙여 운동장의 명칭으로 사용했다. 운동장에는 야구장, 정구장, 스모장, 부속수영장의 설치 외에 가족동반으로 즐길 수 있는 각종 운동기구를 갖추어 운동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공원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운동장에서 개최된 대부분의 경기대회는 일본인들이 주최하거나 후원했다는 사실에서 일본인들을 위한 행사에 지나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즉 부산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동장을 건설하고 각종 경기대회를 개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운동장으로서 건설된 대정공원 운동장은 부산근대스포츠, 나아가 한국근대스포츠의 보급, 발전의 전체상을 고려할 때 일정부분 포지티브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In order to learn about Korea's first ground, Busan Daejeong Park Ground(BDPG), this study has recognized the actual situation focusing on the construction, opening, structure, and various competitions and reviewe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Korean sports history. BDPG was named after the era of the Japanese emperor for the development of sports in Busan. Besides the baseball field, tennis court, sumo field, and swimming pools, the ground had various sports equipment that could enjoy with family, which makes the ground also function as a park. Most of the games held in the ground had limitations that events were just for the Japanese people, given that those were hosted or sponsored by the Japanese. In order words, the construction of the ground and holding various competitions were means of governing Busan. However, it is undeniable that BDPG, which was built as Korea's first ground, acts as a positive role in some aspects, considering the overall dissemination and development of Busan's modern sports and even Korea's modern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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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 양궁의 LA올림픽(1984) 참가과정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 왕심위 ( Wang Xin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3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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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양궁팀의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살펴보고, 그들이 첫 출전한 LA올림픽에서의 대표선발과정, 훈련과정과 성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71년의 한국 양궁은 전국체전 시범종목으로 실시되었지만 국제교류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1972년 뮌헨올림픽 참가를 승인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동년의 장애인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둘째, 체육입국이라는 정책 하에 KOC와 대한양궁협회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은 한국 양궁팀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 경기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셋째, 1984년 LA올림픽 출전 이전에 중국과 일본 선수들이 주는 위기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유례없이 엄격한 3차례의 선발전을 실시하였다. 양궁 국가대표선수들은 올림픽을 대비하여 최면요법, 참선, 새벽명상 등 심리훈련을 통해 경기전에 컨디션을 조절하였다. 넷째, LA올림픽의 쾌거는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전망을 한층 밝게 해 주었다. 게다가 대한체육회는 양궁 중목에 대해 집중 투자하는 한편, 스포츠과학의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였다.


The goal of this work is to examine the preparation and effort of the Korean archery (KA) team to participate in the Olympic game including the selection, training process, and the score of the LA Olympic game. The main contribution is as follows: First, although it was not approved to participate in the Munich Olympics in 1972 due to lack experience in international experience, it won the first gold medal at the Paralympic Games. Second, the financial support of KOC and the KAA under the policy of the Korean government became a solid foundation for the KA team. Third, Korean conduct three selections. To prepare the Olympics, athletes adjusted their condition through psychological training such as hypnosis, etc. Finally, the splendid achievements of the LA Olympics further brightened the prospects for gold medals in the 1986 Asian Games and the 88 Seoul Oly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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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올림픽위원회(KOC)의 설립과 활동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미경 ( Kim Mi-kyung ) , 손환 ( Son H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52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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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정부수립 이전 IOC의 인준을 받은 국가올림픽위원회인 조선올림픽위원회(이하 KOC)의 설립과 활동에 대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KOC는 광복 후 불안한 정세와 어려움 속에서도 IOC의 회원국으로 인준을 받고 런던올림픽대회와, 생모리츠동계올림픽대회에 초청받게 되었다. KOC는 올림픽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조선올림픽준비위원회, 올림픽후원회를 조직했다. 조선올림픽준비위원회는 런던올림픽대회 7개 종목 68명의 선수단, 생모리츠동계 올림픽대회 1개 종목 6명의 선수단을 구성하고 선수훈련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올림픽후원회는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후원권 발행, 기부금 모금, 영화, 가극 상영 등을 통해 올림픽경비를 마련했다. 이밖에도 KOC는 올림픽정신에 입각하여 한국의 아마추어 규정을 심의·확정했다. 이처럼 KOC는 한국의 국제올림픽대회의 참가의 길을 개척하였고 신생 독립국으로서 한국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구심체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This study reviewed the establishment and activities of the KOC, the National Olympic Committee that was approved by the IOC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and drew the following conclusions. Despite the unstable situation and difficulties after liberation, the KOC was recognized as a member of the IOC and was invited to the London Olympic Games (LOG) and the St. Mortz Winter Olympic Games (SMWOG). The KOC organized the Chosun Olympic Preparatory Committee (COPC) and the Olympic Supporters Association (OSA) to fully prepare for the Olympic Games. The COPC formed a team of 68 athletes from 7 sports at the LOG and 6 athletes from each event at the SMWOG, and played a role in training athletes. Thanks to the support of the people, the OSA raised the cost of the Olympics by issuing sponsorship tickets, raising donations, and screening films and operas. The KOC established the Korean amateur regulations based on the Olympic spirit. As such, the KOC paved the way for Korea to participate in the International Olympic Games and played a central role in promoting Korea to the world as a new independent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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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 스켈레톤의 올림픽 참가사: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중심으로

저자 : 최승아 ( Choi Seung-ah ) , 천호준 ( Cheon Ho-j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66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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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를 계기로 관심을 받아오고 있는 한국 스켈레톤의 초기 올림픽 참가사를 확인하는데 연구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에 스켈레톤 선수와 지도자로 참여했던 참가자들의 기억을 기록화하고 관련 기록을 확인하여 한국 스켈레톤의 올림픽 참가사를 파악하였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1995년 썰매 종목을 시작으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썰매 종목의 모든 종목에 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때 당시 한국 스켈레톤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둘째,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정부 및 연맹의 지원과 선수와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셋째,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영광은 사라지고 현실을 걱정해야 하는 현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early Olympic participants of Korean skeleton, which has been attracting attention since the 2018 PyeongChang Winter Olympics. To this end, the memories of participants who participated as skeleton athletes and leaders at the 2018 Pyeongchang Winter Olympics were recorded and related records were checked to determine the Olympic participants of Korean skeleton.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through the above research. First, when looking at the process from sledding events in 1995 to participating in all events of sledding events at the 2010 Vancouver Winter Olympics, Korean skeleton was in a poor situation at the time. Second, at the 2018 Pyeongchang Winter Olympics, excellent results were achieved with the support of the government and federation and the efforts of athletes and leaders. Third, we were able to confirm the current situation in which the glory of the 2018 Pyeongchang Winter Olympics disappeared and we had to worry about the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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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시아의 물개, 조오련(趙五連)의 삶에 관한 연구

저자 : 김동혁 ( Kim Dong Hyeok ) , 조준호 ( Cho Jun 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8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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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오련의 삶을 연구하여 그의 체육사적 발자취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오련은 전남해남에서 5남 5녀의 막내로 태어나 고1 때 서울로 상경, YMCA 수영장에서 장형숙의 지도로 수영계에 입문했다.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그는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1위를 차지, 민관식에게 발탁되었다. 둘째,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그는 꾸준히 성장하여 아시아경기대회의 국가대표로 선발, 1970년과 197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2관왕, 2연패하였다. 1978년 아시아경기대회의 접영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현역선수 시절 총 50개의 신기록을 작성하고 은퇴하였다. 셋째, 그는 대한해협 횡단, 도버해협 횡단, 한강 700리 종주, 울릉도 독도 횡단, 독도 33회 회영 등에 성공하며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을 드높였다. 그는 국민이 어렵던 시절, 수영을 통해 국위를 선양했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준 아시아의 물개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life of Cho Oh-Ryun, and to examine his footsteps on the history of athletics. The followings are the results. First, he was born as the youngest of five sons and five daughters in Haenam, Jeollanam-do. He came to Seoul when he was a first grader at a high school and entered the world of swimming under the guidance of Jang Hyung-sook at the YMCA swimming pool. He participated in the Competition to select a swimmer representing Seoul Team for the National Athletic Meeting. He won the first place in the 400M and 1500M freestyle and got an opportunity to be patronized by Min Gwan-sik. Second, After entering the Taereung Athlete's Village, he grew steadily and was selected as the national swimmer at the Asian Games, winning two gold medals in two consecutive Asian Games in the 1970 and 1974. After winning the bronze medal in the butterfly at the 1978 Asian Games, he retired with a total of 50 new records in his career. Third, Since then, he has succeeded in crossing the Korea Strait, the Dover Strait, traversing the Han River 274.9km, crossing Ulleungdo and Dokdo, and swimming to Dokdo 33 times, raising patriotism and national pride. He is a swimmer who raised national prestige through swimming during difficult times for the people and gave the people dream and confidence as his nickname such as the Asian S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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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국 청명절 축제의 전통 체육 활동에 관한 고찰

저자 : 장초맹 ( Zhang Chao-Meng ) , 김달우 ( Kim Dal-woo ) , 린천풍 ( Lin Qian-Fe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9-101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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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법을 활용해서 중국 고대 세시풍속에 내려오는 청명절(淸明節)을 파악한다. 중국 정부는 역사와 전통활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3대 명절보다 체육 활동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청명절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청명절의 기원과 변천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청명절 축제에 행해지는 체육활동을 집중적으로 고찰하는데 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체육적 의미를 찾아봤다. 현재 청명절 축제는 춘추전국시대의 청명절 행사에서 유래하고, 북송시대에는 큰 발전이 이루어지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부 인정된 유일한 공식적 전통 축제이다. 청명절 축제에서 등장하는 5개의 체육 종목은 공차기, 씨름, 줄넘기, 거석쇠(舉石鎖), 굴렁쇠 굴리기다. 이런 체육 종목은 중국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기원과 변천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체육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데 의미가 있다.


To grasp Qingming Festival, which has been handed down in ancient Chinese customs. The Chinese government is increasingly interested in Qingming Festival to protect history and traditional activities. Because Qingming Festival has the most sports contents compared to the other three Festivals. Therefore, we grasp the origin and change of Qingming Festival, examine the concentration of sports activities in Qingming Festival, find out its historical, cultural and sports significance. Qingming Festival, orginated in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and made a tremendous development during the Northern Song Dynasty. In modern times, it has become the only official traditional festival certified by the Chinese government. The five sports that appeared in the Qingming Festival were Cuju, Ergui wrestling, rope skipping, stone lock lifting and iron ring pushing. Because these sports activities contain traditional Chinese characteristics, examine their origins and changes in order to find out the essence of Chinese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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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북지역의 발레 도입 및 변천과정 연구

저자 : 김은경 ( Kim Eun Kyoung ) , 김달우 ( Kim Dal Woo )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16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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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북지역 발레교육의 양태 및 활동 양상을 고찰하였다. 연구결과 전북지역에서는 1945년 김미화무용연구소가 개설되어 발레가 도입되었으며 1949년 성심여학교에서 외국무용교육이 이루어졌고 특히 발레의 경우 활발하게 교육해왔던 것으로 고찰되었다. 1980년 원광대학교를 필두로 1988년 전북대학교 그리고 1989년 우석대학교 무용과가 개설 되어 대학에서의 발레교육이 이루어졌다. 대학발레단 활동은 원광대 백의선 발레단, 전북대 손윤숙 발레단 및 동문발레단인 발레라인즈 그리고 우석대 손정자 발레단이 1986년부터의 활동으로 발레공연이 활성화되었으나 현재에 이르러는 전북대 중심의 발레단만이 활동함이 드러났다. 대학 교육에 있어도 원광대는 무용교육과정이 없고 우석대학교의 경우 체육학과에서 무용교육과정 만이 교육되고 있으며 전북대학교만이 발레교육의 명맥을 유지함이 보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look at the history and activities of ballet education in Jeonbuk province, south korea. As a result of the study, it was realized that in Jeonbuk province, Ballet was introduced with the opening of the Kim-Mi Wha Dance Research Institute in 1945 and then a serious of foreign dance education had been conducted in Sungshim girl high school and In particular, ballet education had been most actively carried out. After that, Wonkwang University in 1980, Jeonbuk National University in 1988, and then Woosuk University in 1989, the Department of Dance was opened, and ballet education began in earnest at the university. In case of performance of ballet in regional universities, from 1986 Baek Ui Sun ballet company in Wonkwang University, Son Yun Shook ballet company and Ballerines consisting of university alumni in Jeonbuk University and Son Jeong Jag ballet company in Woosuk University had been actively performed but only the Jeonbuk National University-centered ballet companies are in activity these days. In the university curriculum, Wonkwang University did not have a dance curriculum anymore, and in the case of Woosuk University, only the dance curriculum has been taught in the physical education department, and only Jeonbuk National University has maintained the legacy of ballet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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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서울올림픽대회 관련 제4차 남북체육회담과 종결과정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8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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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88서울올림픽대회 관련 제4차 남북체육회담과 종결과정에 관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제3차 회담 이후, IOC는 중재안을 마련하여 남과 북에 제4차 회담 개최를 제안하였다. 남한은 IOC의 제안에 대해 '무조건적 수락'을 하였던 반면, 북한은 '원칙적 수락'을 하면서 종목 추가 배정과 관련한 토의를 제4차 회담에서 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를 IOC가 받아들이면서 회담 개최가 결정되었다. 제4차 회담을 통해 IOC는 '수정 중재안'을 남과 북에 제안하면서 제5차 회담 개최를 촉구하였다. IOC의 제안에 대해 남한은 흔쾌히 받아들였으나, 북한은 IOC의 중재안 수락을 거부하면서 제5차 회담 개최를 요구하였다. 노태우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로 남한 내에서 올림픽의 남북 공동개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촉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북한의 올림픽 불참 선언으로 88서울올림픽대회 관련 회담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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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종하의 행보를 통해 본 서울올림픽 개최

저자 : 김주연 ( Kim Joo-yo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32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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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 스포츠의 성장 동력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 연구는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에 대한체육회장이었던 김종하(金宗河)의 행보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으며, 이를 위해서 구술 자료 및 회고록과 월간 『체육』 등을 참고하였다. 김종하는 고등학교 때부터 송구(핸드볼) 선수로 활동하였고, 육군사관학교 재학 중에 전국체육대회 우승 등의 체육 활동을 하면서 선배인 전두환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제29대 대한체육회장으로 취임한 이후에 경기인 출신 최초의 대한체육회장으로서 상근직 업무를 실행하였고,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서울올림픽 개최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정권 교체와 대회 중의 불상사로 인해서 서울올림픽 이후의 활동은 한정되었다. 이러한 김종하의 행보를 통하여 제5공화국 체육 정책의 지향점과 그로 인한 명암을 짚어 볼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주로 서울올림픽의 대외적인 성과에 이목을 집중하였지만, 앞으로는 대내적인 과정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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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라예보 주역 정현숙의 은퇴이후 삶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47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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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사라예보의 주역인 정현숙의 은퇴 이후의 삶을 조명하여 체육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으며 구술 채록 및 문헌 고찰을 통해서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현숙은 은퇴 후 방송활동을 하며 왕년의 탁구스타에서 인기 방송인으로 여성스포츠스타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둘째, 정현숙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탁구교실을 열어 체계적으로 강습을 실시함으로써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셋째, 정현숙은 대한탁구협회 홍보이사, 충북 단양군청 여자 탁구단 총감독, 도하하계아시안게임에서는 최초로 여성단장으로 선임되었으며 한국여성스포츠회의 회장으로 선출이 되었다. 이러한 연구 참여자의 구술채록을 통해서 은퇴이후 탁구 선수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으며, 반세기 동안 탁구 한 분야에서 엘리트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여 한국 체육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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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 축구의 확산과 영국 성공회의 선교활동

저자 : 박경호 ( Park Kyo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9-60 (1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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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강화학당 축구팀에 대한 사료를 토대로 영국 성공회가 한국 축구의 확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조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었다. 이를 위해 'Morning Calm'을 비롯하여 한국 축구, 성공회의 선교활동과 관련된 각종 문헌을 분석하였으며,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1897년에 설립된 강화학당은 다양한 신식 교육과정의 일부로 축구가 운영되었다. 브라이들 등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이 축구를 지도하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축구가 확산되어 갔다. 둘째, 초창기 한국 축구의 확산과정에는 영국에서 온 성공회 선교사들의 역할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강화학당 축구팀, 수원, 진천 등에 설립된 성공회 계열 학교인 진명학교에서는 신식 교육과 함께 체육활동으로 축구가 행해졌다. 또한 진천교회와 수원교회의 축구 교류전의 사례를 통해 각 지역의 성공회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축구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축구가 확산되어 갔다고 분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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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주 종합경기장의 체육사적 의미 고찰

저자 : 김산 ( Kim San ) , 조정규 ( Jo Jeong Kuy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1-7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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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발전에 있어 장소라는 공간적 요소는 체육발전에 중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 체육사 연구에 있어 종합경기장에 대한 고찰은 불가결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1963년 이전의 전북지역 스포츠의 활동과 제44회 전국체육대회, 그리고 전주 종합경기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전주종합경기장이 준공되기 이전 전라북도의 체육활동은 사람들이 다수 모일 수 있는 공간(이리역전광장, 전주덕진지, 학교 운동장)을 중심으로 스포츠 발전과 저변확대가 이루어졌고, 44회 전국 체육대회 개최를 위한 지역민들의 성금모금과 인근 주민의 민박 제공은 전국대회 개최를 위한 전라북도만의 특색을 갖으며 지역 체육사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KCI등재

6생활스포츠 문화사 연구 -에어로빅스를 중심으로-

저자 : 이현정 ( Lee Hyun Jung ) , 곽애영 ( Kwak Ae 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5-90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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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된 에어로빅스 운동문화의 흐름과 핵심 내용을 규명하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첫째, 1975년 여성생활체육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1980년대 학생과 주부를 중심으로 확산된 에어로빅스는 점차 운동 본연의 목적이 변질되는 빗나간 운동문화를 초래하며 다소 발전이 정체되는 시기를 경험했다. 둘째, 1990년대는 올바른 운동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학계 및 현장의 협력으로 생활체육지도자 연수원의 개설, 안전과 효과를 고려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보급, 대중매체를 통한 지속적인 홍보활동이 이뤄지며 국민건강을 도모하는 대중스포츠로 정착하게 되었다. 셋째, 2000년부터 등장한 얼짱, 몸짱 신드롬은 맞춤형 운동 컨텐츠가 개발되고 그룹운동(G.X)이라는 미래 지향적인 전문영역으로의 발전을 도모했고, 2010년대에 이룬 대한체육회의 정가맹 승인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연계된 국민생활스포츠 종목으로 전문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KCI등재

7생활스포츠 문화사 연구: 댄스스포츠를 중심으로

저자 : 이인정 ( Lee In-jung ) , 이현정 ( Lee Hyun-j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1-105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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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 댄스스포츠 운동문화가 생활스포츠로서 대중화되고 전문화된 과정을 규명하는 연구로 문헌고찰방법을 활용해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댄스스포츠 운동문화의 참여 환경 및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같은 사회·문화적 여건의 변화가 나타났다. 또한 1990년대 중반을 기해 '댄스스포츠'로 명칭이 전환됨에 따라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면서 마침내 국내 댄스스포츠는 생활스포츠로서의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둘째, 2000년대 초부터 이루어진 학교체육으로서의 진입과 국내 엘리트스포츠 종목으로의 인정은 전국적인 댄스스포츠 활동 여건 구축 및 경연의 장 활성화와 같은 제도적 지원에 의한 생활스포츠로서의 영역 확대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201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된 국가 공인 지도자의 양성과 스포츠복지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댄스스포츠 지원 사업 등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체계화를 통해 마침내 국내 댄스스포츠는 생활스포츠로서 전문화된 운동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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