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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확산과 영국 성공회의 선교활동

A Spread of Korean soccer and missionary work of the Anglican Church

박경호 ( Park Kyoung-ho )
  • : 한국체육사학회
  • : 체육사학회지 26권2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6월
  • : 49-60(12pages)
체육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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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강화학당 축구팀에 투영된 축구 확산의 시사점
Ⅲ. 영국 성공회의 선교활동에 나타난 축구 확산의 흔적
Ⅳ.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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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강화학당 축구팀에 대한 사료를 토대로 영국 성공회가 한국 축구의 확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조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었다. 이를 위해 ‘Morning Calm’을 비롯하여 한국 축구, 성공회의 선교활동과 관련된 각종 문헌을 분석하였으며,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1897년에 설립된 강화학당은 다양한 신식 교육과정의 일부로 축구가 운영되었다. 브라이들 등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이 축구를 지도하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축구가 확산되어 갔다. 둘째, 초창기 한국 축구의 확산과정에는 영국에서 온 성공회 선교사들의 역할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강화학당 축구팀, 수원, 진천 등에 설립된 성공회 계열 학교인 진명학교에서는 신식 교육과 함께 체육활동으로 축구가 행해졌다. 또한 진천교회와 수원교회의 축구 교류전의 사례를 통해 각 지역의 성공회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축구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축구가 확산되어 갔다고 분석할 수 있다.
This study is aimed to illuminate the impact of the Anglican Church on the spread of Korean soccer based on historical data on the Ganghwa school soccer team. To this end, in this study analyzed various documents related to the Morning Calm, Korean football, and Anglican missionary activities, and used interviews with officials. The research outcomes are as follows. First, Ganghwa school, established in 1897, operated soccer as part of various new education. Anglican missionaries, including Bridle, coached soccer, and soccer spread to students around them. Second, the role of Anglican missionaries from England influenced the spread of Korean soccer in the early days. Jin-Myeong School, an Anglican-affiliated school established in Ganghwa school's soccer team, Suwon and Jincheon, played soccer as a sports activity along with new education. In addition, the case of soccer exchange between Jincheon Church and Suwon Church confirmed that soccer exchanges were centered on Anglican churches and schools in each region, and it can be analyzed that soccer naturally spread in this process.

UCI(KEPA)

I410-ECN-0102-2022-600-000629081

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6-2022
  • :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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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권2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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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초의 솔각 전문서적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산 ( Kim S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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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근대 중국 무예교습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의 내용과 의미를 문헌고찰의 방법으로 고찰함에 있다. 중국의 근대화 기간이라 할 수 있는 민국시대 중국 무술을 서양의 병식체조적 요소로 분류하고 조합하여 단계적 교수체계를 만든 마량의 중화신무술 체계는 중국 체육의 근대화에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그중 중국식 씨름이나 레슬링이라 할 수 있는 솔각에 관한 서적인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은 솔각 기술을 전문적으로 기술한 첫 서적이면서 중화신무술 체계의 서술 방법으로 인해 전문적 신체 문화였던 솔각을 일반적 교육체계로의 첫 시도로서 의미 있는 서적이라 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ontents and meaning of 『Chinese New Martial Arts Solgak and Sangpyeon』, which is in an important position in modern Chinese martial arts teaching, through a literature review method. Maryang's new Chinese martial arts system, which created a step-by-step teaching system by classifying and combining the Chinese martial arts of the Republic of China, which can be said to be the period of China's modernization, into Western byeongsik gymnastics elements, is a meaningful attempt to modernize Chinese physical education. Among them, 『Chinese New Martial Art Solgak Sangpyeon』, a book about Solgak, which can be called Chinese style wrestling or ssireum, is the first book to professionally describe the Solgak technique. It can be said that it is a meaningful book as the first attempt at th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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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금슬 『춤동작』에 내재한 무용치료 가치 탐구

저자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25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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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박금슬 『춤동작』에 내재한 무용치료의 가치 탐색을 목적으로 사적 고찰 및 음악, 춤사위에 대한 질적 연구를 진행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첫째, 춤동작은 박금슬의 삶이 투영되어 종교적 모티브, 한국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기교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한국 문화와 정서를 체험할 수 있음이 탐색 되었다. 둘째,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를 통해 완성된 움직임으로 다양한 운동성을 내포하여 워밍업에서 필요한 기본무로써 자연스러운 신체 움직임을 유도하고 폭넓은 신체 표현을 가능하게 하여 예술치료 및 움직임을 통한 치료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이 탐색되었다. 셋째, 독특한 용어 정립으로 쉽게 동작을 익힐 수 있게 하고 용어 자체에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어 한국적 무용치료 연구 및 실제에 교육 자료로써의 활용이 가능함이 탐색 되었다. 후속 연구로 이러한 우리 고유의 것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치료 도구 개발 및 그에 따른 결과에 과학적 연구를 제언하였다.


This study is about the contemplation and research of dance therapeutic value which is inherent in the contents of Choomdongjak sch as music and movements. The result is as follows. First, Choomdongjak is based on religious motif, techniqu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and modern dance. Thus, it enables people to experience Korean culture and feeling. Also, it helps people to learn the movements with only the terms, so it could be used as the materials for basic training and warm-up dance. Second, the movements of Choomdongjak are completed with scientific and systematic research, so it can stir up the natural physical movements and enables people to perform various body expressions. Therefore, it could be used efficiently as a tool of body and mental treatment through the art and dance therapy.In conclusion, Park Geum-seul's Choomdongjak is a basic dance that contains unique originality and character of Korean culture, and it could be used as a tool to develop diverse movements or dances such as warm-up dance. Hence, this study suggests research to seek more specific way to use it at the coal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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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64년 도쿄올림픽대회와 한국스포츠의 변화

저자 : 손환 ( Son H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39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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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가 한국스포츠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광복 후 한국의 올림픽 참가사,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의 참가와 교훈,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 후 한국스포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는 그때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무런 실정도 모르고 올림픽대회에 무모한 도전을 해온 한국스포츠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했다. 그 변혁의 중심에는 스포츠행정가이며 정치인이었던 민관식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한국스포츠는 민관식을 만나 그의 불도저와 같은 뚝심으로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의 건설 등 한국스포츠의 발전을 위한 스포츠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들 시설은 한국스포츠가 세계스포츠무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한국이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계스포츠계에 스포츠강국으로서 위상을 높이는데도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This paper examines how the 1964 Tokyo Olympic Games has affected the development of Korean sports by focusing on the history of Korea's participation in the Olympic Games, participation and lessons of the 1964 Tokyo Olympic Games, and the change after the 1964 Tokyo Olympic Games. The conclusions are as follows. 1964 Tokyo Olympic Games revolutionized the Korean sportsdom, which had taken reckless challenges to the Olympic Games without knowing anything about the real state like a babe in the woods. At the center of the transformation, there was an outstanding man Min Gwan Sik, a sports administrator and a politician. Korean sports were able to build a sports infrastructure such as a Sports Center and a Taereung National Training Center for their own development, with the stubbornness of Min Gwan Sik. These facilities paved the way for Korean sports to leap onto the world sports stage, and contributed a lot to performing well in various international competitions and raising its status as a sports power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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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근대 씨름의 영웅 김성률의 생애와 체육활동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5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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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대 씨름의 영웅 김성률의 생애와 관련된 신문, 잡지, 문헌, 인터뷰 등을 분석해 김성률이 한국 씨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마산 출신의 김성률은 어린 시절 담대한 기질과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다양한 운동에서 소질을 보였다. 마산상고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씨름판에 등장한 김성률은 60-70년대 공식적인 전국씨름대회를 거의 독식하면서도 뛰어난 기술로 한국 씨름의 대중화를 견인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 경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경남 지역의 씨름 인재 양성에 헌신한 결과 이만기를 비롯한 위대한 씨름인들이 마산에서 탄생했다. 또한, 씨름 행정가의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씨름의 제도화와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도 힘썼다. 이처럼 김성률은 한국 씨름의 대중적인 확신과 발전을 견인한 핵심적인 주체로 기억되어야 한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understand the influence of Kim Sung-ryul on Korean ssireum by analyzing newspapers, magazines, literature, and interviews related to the life of Kim Sung-ryul, the hero of modern ssireum. Kim Seong-ryul, from Masan, showed talent in various sports as a child with a bold temperament and excellent athleticism. Kim Seong-ryul, who appeared in the ssireum arena in earnest when he was a sophomore at Masan Commercial High School, led the popularization of Korean ssireum with his outstanding skills while almost taking over the official national ssireum competitions in the 60s and 70s. After his retirement, he served as a professor at Kyungnam University, and as a result of his dedication to nurturing ssireum talents in the Gyeongnam region, great ssireum people including Man-ki Lee were born in Masan. In addition, he served as a ssireum administrator and made efforts to institutionalize and revitalize Korean ssireum. As such, Kim Seong-ryul should be remembered as a key player who drove the popular conviction and development of Korean ssir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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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일보사 주최 전국 연날리기대회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 최흥희 ( Choi Heung-hee ) , 왕심위 ( Wang Xin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71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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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분석을 통해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전국 연날리기대회를 살펴보았다. 한국일보사는 전통문화의 부흥과 판매 수입 인상을 목적으로 연날리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회는 주로 정부청사 신축 공연지, 경마장, 서울운동장 야구장 등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개최하기 시작했고, 점차 지방 민속의 발전을 위해 지방에서도 개최되었다. 공무원, 군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연날리기대회에는 외국인을 포함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가했고, 학생부와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남녀노소가 참가하는 스포츠대회가 되었다. 또한 경기종목은 시대에 대응해 변화하여 지방의 전통연과 창조적 과학연 등이 선보이게 되었다.


This study is about the National Kite-flying Festival held by Han-kook Ilbo. The Han-kook Ilbo held the festival with the aim of reviving traditional culture and increasing sales revenue. The festival was mainly held in Seoul, including the new government building square, racecourse, and baseball field in the Seoul Sports Complex. Furthermore, it was held in the provinces with the aim of developing the local folklore as well. Civil servants, soldiers, and foreigners all took part in this festival. It means all classes have a chance to take part in it.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women's and students' departments, it became a sports competition involving men and women of all ages. In addition, the festival is a combination of traditional folk culture and modern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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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씨름의 조직화 과정: 왼씨름 통일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8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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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씨름의 조직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씨름 경기방식이 통일되는 과정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8세기 샅바의 등장은 씨름 경기의 독창성과 역동성을 위한 동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20세기 초까지 지역적으로 다양한 경기방식의 출현을 추동했다. 씨름의 조직화를 위한 시발점은 1927년 조선 씨름협회 창설이었다. 일제강점기 협회 창설을 기반으로 개최된 전국적인 씨름대회는 주로 왼씨름 경기방식이 채택되면서도 오른씨름과 통씨름 경기가 분리되어 개최되면서 씨름의 과학화와 제도화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 협회는 학생부 경기를 왼씨름 경기방식으로 규정하면서 향후 씨름 경기방식의 통일을 위한 근간을 마련했다. 해방 이후 한국 씨름은 1961년 전국체육대회가 시금석이 되어 1962년부터 점차 왼씨름으로 통일되었다. 그 결과 씨름은 같은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근대적인 스포츠문화로 진화할 수 있었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process of unifying ssireum competition to understand the organization of ssireum in detail,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The appearance of the thigh band, also called satba in the 18th century provided a driving force for the originality and dynamism of the ssireum game, and at the same time drove the emergence of regionally diverse competition methods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Ssireum Association in 1927 was the starting point for the organization of ssireum. The national ssireum competitions, which were held based on the establishment of the Associ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mainly adopted the oen[left] ssireum match, but the oreun[right]-ssireum and tong[waistband]-ssireum games were held separately, laying the groundwork for the scientification and institutionalization of ssireum. In particular, at this time, the association laid the foundation for unification of the future ssireum competition by defining the student competition as a oen-ssireum competition. After liberation, the Korean ssireum was gradually unified into oen-ssireum in 1962, when the National Sports Festival in 1961 became the touchstone. As a result, Ssireum could evolve into a modern sports culture that competes under the same ru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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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영·호남 문화재 춤의 현황과 특색에 관한 비교 고찰

저자 : 이경호 ( Lee Ke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0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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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호남 지역에서 춤과 관련된 무형문화재의 전승현황과 발전을 비교 고찰한 것이다. 연구방법은 계보를 통한 질적 연구에 의하여 무형문화재와 관련된 자료를 위주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로 한국무용에 있어서 대표적인 문화재 춤인 승무는 영·호남 지역 모두 전승되고 있으며, 권번에서 활동한 악공과 보유자의 활동영역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살풀이춤은 호남지역의 춤 정서인 한을 담았는데, 그 흐름은 영남과 호남지역과 유사한 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호남 권번의 춤꾼들이 영남에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권번과 연관된 종목의 춤은 입춤의 경우 권번에서 기본이 되는 춤이고, 진주검무는 교방의 기녀들의 춤으로 권번에서 전승되었다. 그리고 산조춤과 예기무는 즉흥성이 강한 춤이다. 그러나 한량무는 권번 춤에 영향을 받은 영남지역의 남성 춤꾼의 춤으로 정착하였다. 이 춤들은 점차 지역적 특색이 융화되어 독특한 춤사위로 전승되었고,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정착하게 되었다.


This study compares and examines the transmission status and development of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related to dance in the Yeongnam and Honam regions. The research method was analyzed focusing on data related to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through qualitative research through genealogy. As a result of the analysis, Seungmu, a representative cultural property dance in Korean dance, has been passed down in both the Yeongnam and Honam regions, and this dance was related to the area of activities of musicians and holders. In the case of Salpuri, it contains the sentiment of Han as a dance in the Honam region, and in the Yeongnam region, it has a similar vein to that of the Honam region. The reason was that dancers from Honam Gwonbeon were introduced to Yeongnam. And the Ip dance is the basic dance in Gwonbeon. Jinju Geommu was a dance of the Gisaengs of Gyobang and was still held in Gwonbeon. Sanjo dance and Yijimu dance are highly improvised dances, and Hallyangmu has settled down as a male dance in Yeongnam. These dances are unique to each region, and they should be sought to develop into cultural properties containing local characteristics in trans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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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국 댄스스포츠의 대부(大父) 박영택의 생애사 연구

저자 : 곽애영 ( Kwak Ae-young ) , 이인정 ( Lee In-j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22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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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 라틴 아메리칸 댄스 초대 챔피언으로 댄스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온 원로전문인 박영택의 생애를 고찰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 발전사를 재조명 하는데 있다. 결과에 따르면 첫째, 춤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난 박영택은 원인화와의 인연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사교춤을 전문적으로 섭렵해 나가며 댄스스포츠계의 삼바가라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둘째, 국내 라틴 아메리칸 댄스의 초대 우승자가 된 박영택은 영국과 미국의 국제표준무도 교본을 입수·분석하여 라틴 아메리칸 댄스 전 종목을 정립·보급하는 개척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의 발전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셋째, 한국무도교육협회의 수장으로 댄스스포츠계의 행정을 일임해 온 박영택은 유럽 우수선수초청 시범 및 강습회 개최, 연수원 운영 및 지도자 양성, 학생선수의 발굴 등으로 한국 댄스스포츠의 위상을 높였고, 국내 최초의 통합단체를 발족하여 댄스스포츠계의 입지를 공고히 구축함으로써 2007년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인받는데 공헌했다.


This study is on the life and accomplishments of Park Young-taik, a Dancesport pioneer who has devoted himself to the development of Dancesport in Korea and the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Park was a dancer who displayed innate talent and skill, and after befriending Won In-hwa and mastering social dancing of various genre, became widely known as the 'Samba Garasu' in the Dancesport world. Second, As winner of Korea's inaugural Latin American Dance Competition, Park laid the foundation for the sound growth of Dancesport in Korea by systematically establishing the standards for every Latin American dance category and propagating it. Third, as a leader and an administrator, Park was instrumental in raising the status of Dancesport in Korea. In leading the Korea Association of Education DanceSport(KAEDS) Park operated training centers, nurtured leaders, and developed student athletes which culminated in unification of 8 associations of dancesport in Korea which later resulted in it becoming a member of the Korean Sport & Olympic Committee(KSOC) i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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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신문기사를 통해 본 한국 생활체육 배구 발달사

저자 : 안진규 ( An Jin-kyu ) , 조문기 ( Cho Moon-gi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3-133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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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국내의 신문기사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생활체육 배구의 변천사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광복 이후 1950년대는 조선배구협회를 창립하고, 1959년 4월 서울시 종별배구리그전에서 첫 국제식 6인제 배구경기를 갖게 된다. 둘째, 1960년대는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는 극동식 9인제 경기를 지양하게 된다. 셋째, 1970년대는 제1회 어머니배구대회를 시작으로 극동식 9인제 배구가 생활체육 배구로 도약한다. 넷째, 1980년대는 한국 어머니 배구연맹 등 9인제 생활체육 배구 단체가 조직된다. 1990년대는 지역사회 및 직장에서 친목경기로 큰 인기를 누린다. 2000년대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생활체육 배구대회의 창설이 급진적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2010년대는 소프트 발리볼 등 기존 9인제 틀에서 벗어난 생활체육 배구의 다양화가 나타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changes and meaning of Korea's daily sports volleyball in domestic newspaper articles. Therefore,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First, in the 1950s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the Joseon Volleyball Association was founded and the first international six-person volleyball game was held in April 1959 in Seoul. Second, in the 1960s, starting with the 18th Tokyo Olympics in 1964, Korea avoided the Far East 9-man event. Third, starting with the first Mother's Volleyball Competition in the 1970s, Far East 9-person volleyball leaps into daily sports volleyball. Fourth, in the 1980s, a nine-member daily sports volleyball organization was organized. The 1990s were very popular in the community and in the workplace. In the 2000s, the creation of sports volleyball competitions for the revitalization of the local economy appears radical. Finally, in the 2010s, the diversification of daily sports volleyball, which deviated from the existing nine-member framework such as soft volleyball, app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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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서울올림픽대회 관련 제4차 남북체육회담과 종결과정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8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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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88서울올림픽대회 관련 제4차 남북체육회담과 종결과정에 관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제3차 회담 이후, IOC는 중재안을 마련하여 남과 북에 제4차 회담 개최를 제안하였다. 남한은 IOC의 제안에 대해 '무조건적 수락'을 하였던 반면, 북한은 '원칙적 수락'을 하면서 종목 추가 배정과 관련한 토의를 제4차 회담에서 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를 IOC가 받아들이면서 회담 개최가 결정되었다. 제4차 회담을 통해 IOC는 '수정 중재안'을 남과 북에 제안하면서 제5차 회담 개최를 촉구하였다. IOC의 제안에 대해 남한은 흔쾌히 받아들였으나, 북한은 IOC의 중재안 수락을 거부하면서 제5차 회담 개최를 요구하였다. 노태우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로 남한 내에서 올림픽의 남북 공동개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촉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북한의 올림픽 불참 선언으로 88서울올림픽대회 관련 회담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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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종하의 행보를 통해 본 서울올림픽 개최

저자 : 김주연 ( Kim Joo-you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32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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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 스포츠의 성장 동력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 연구는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에 대한체육회장이었던 김종하(金宗河)의 행보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으며, 이를 위해서 구술 자료 및 회고록과 월간 『체육』 등을 참고하였다. 김종하는 고등학교 때부터 송구(핸드볼) 선수로 활동하였고, 육군사관학교 재학 중에 전국체육대회 우승 등의 체육 활동을 하면서 선배인 전두환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제29대 대한체육회장으로 취임한 이후에 경기인 출신 최초의 대한체육회장으로서 상근직 업무를 실행하였고,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서울올림픽 개최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정권 교체와 대회 중의 불상사로 인해서 서울올림픽 이후의 활동은 한정되었다. 이러한 김종하의 행보를 통하여 제5공화국 체육 정책의 지향점과 그로 인한 명암을 짚어 볼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주로 서울올림픽의 대외적인 성과에 이목을 집중하였지만, 앞으로는 대내적인 과정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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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라예보 주역 정현숙의 은퇴이후 삶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47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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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사라예보의 주역인 정현숙의 은퇴 이후의 삶을 조명하여 체육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으며 구술 채록 및 문헌 고찰을 통해서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현숙은 은퇴 후 방송활동을 하며 왕년의 탁구스타에서 인기 방송인으로 여성스포츠스타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둘째, 정현숙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탁구교실을 열어 체계적으로 강습을 실시함으로써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셋째, 정현숙은 대한탁구협회 홍보이사, 충북 단양군청 여자 탁구단 총감독, 도하하계아시안게임에서는 최초로 여성단장으로 선임되었으며 한국여성스포츠회의 회장으로 선출이 되었다. 이러한 연구 참여자의 구술채록을 통해서 은퇴이후 탁구 선수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으며, 반세기 동안 탁구 한 분야에서 엘리트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여 한국 체육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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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 축구의 확산과 영국 성공회의 선교활동

저자 : 박경호 ( Park Kyo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9-60 (1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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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강화학당 축구팀에 대한 사료를 토대로 영국 성공회가 한국 축구의 확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조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었다. 이를 위해 'Morning Calm'을 비롯하여 한국 축구, 성공회의 선교활동과 관련된 각종 문헌을 분석하였으며,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1897년에 설립된 강화학당은 다양한 신식 교육과정의 일부로 축구가 운영되었다. 브라이들 등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이 축구를 지도하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축구가 확산되어 갔다. 둘째, 초창기 한국 축구의 확산과정에는 영국에서 온 성공회 선교사들의 역할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강화학당 축구팀, 수원, 진천 등에 설립된 성공회 계열 학교인 진명학교에서는 신식 교육과 함께 체육활동으로 축구가 행해졌다. 또한 진천교회와 수원교회의 축구 교류전의 사례를 통해 각 지역의 성공회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축구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축구가 확산되어 갔다고 분석할 수 있다.

KCI등재

5전주 종합경기장의 체육사적 의미 고찰

저자 : 김산 ( Kim San ) , 조정규 ( Jo Jeong Kuy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1-7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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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발전에 있어 장소라는 공간적 요소는 체육발전에 중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 체육사 연구에 있어 종합경기장에 대한 고찰은 불가결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1963년 이전의 전북지역 스포츠의 활동과 제44회 전국체육대회, 그리고 전주 종합경기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전주종합경기장이 준공되기 이전 전라북도의 체육활동은 사람들이 다수 모일 수 있는 공간(이리역전광장, 전주덕진지, 학교 운동장)을 중심으로 스포츠 발전과 저변확대가 이루어졌고, 44회 전국 체육대회 개최를 위한 지역민들의 성금모금과 인근 주민의 민박 제공은 전국대회 개최를 위한 전라북도만의 특색을 갖으며 지역 체육사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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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생활스포츠 문화사 연구 -에어로빅스를 중심으로-

저자 : 이현정 ( Lee Hyun Jung ) , 곽애영 ( Kwak Ae 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5-90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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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된 에어로빅스 운동문화의 흐름과 핵심 내용을 규명하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첫째, 1975년 여성생활체육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1980년대 학생과 주부를 중심으로 확산된 에어로빅스는 점차 운동 본연의 목적이 변질되는 빗나간 운동문화를 초래하며 다소 발전이 정체되는 시기를 경험했다. 둘째, 1990년대는 올바른 운동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학계 및 현장의 협력으로 생활체육지도자 연수원의 개설, 안전과 효과를 고려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보급, 대중매체를 통한 지속적인 홍보활동이 이뤄지며 국민건강을 도모하는 대중스포츠로 정착하게 되었다. 셋째, 2000년부터 등장한 얼짱, 몸짱 신드롬은 맞춤형 운동 컨텐츠가 개발되고 그룹운동(G.X)이라는 미래 지향적인 전문영역으로의 발전을 도모했고, 2010년대에 이룬 대한체육회의 정가맹 승인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연계된 국민생활스포츠 종목으로 전문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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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생활스포츠 문화사 연구: 댄스스포츠를 중심으로

저자 : 이인정 ( Lee In-jung ) , 이현정 ( Lee Hyun-j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6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1-105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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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 댄스스포츠 운동문화가 생활스포츠로서 대중화되고 전문화된 과정을 규명하는 연구로 문헌고찰방법을 활용해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댄스스포츠 운동문화의 참여 환경 및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같은 사회·문화적 여건의 변화가 나타났다. 또한 1990년대 중반을 기해 '댄스스포츠'로 명칭이 전환됨에 따라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면서 마침내 국내 댄스스포츠는 생활스포츠로서의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둘째, 2000년대 초부터 이루어진 학교체육으로서의 진입과 국내 엘리트스포츠 종목으로의 인정은 전국적인 댄스스포츠 활동 여건 구축 및 경연의 장 활성화와 같은 제도적 지원에 의한 생활스포츠로서의 영역 확대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201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된 국가 공인 지도자의 양성과 스포츠복지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댄스스포츠 지원 사업 등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체계화를 통해 마침내 국내 댄스스포츠는 생활스포츠로서 전문화된 운동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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