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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문화연구> 사사무애(事事無礙)와 무한으로 열린 법계원융(法界圓融) - 사(事)·리(理)·법계(法界)의 개념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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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무애(事事無礙)와 무한으로 열린 법계원융(法界圓融) - 사(事)·리(理)·법계(法界)의 개념을 중심으로 -

‘Non - obstruction among individual phenomena’ and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 open to infinity. - with the focus on the concept of phenomena, principle, and dharma realm -

박수현 ( Park Su-Hyun )
  •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 선문화연구 30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6월
  • : 141-177(37pages)
선문화연구

DOI

10.24956/SSC.30.5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사종법계설에서의 이법계의 방편적 역할
Ⅲ. 사사무애법계와 현상에 대한 긍정
Ⅳ. 법계의 중중무진한 중첩관계
Ⅴ.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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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화엄불교의 중요 이론인 사종법계설 중의 사사무애의 의미에 대해서 고찰하며, 그것이 ‘특정한 관점이나 종파’가 아니라는 것과, ‘모든 관점과 종파가 원융무애하게 활용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논할 것이다. 우선 사(事)·리(理)·법계(法界)의 개념을 중관과 유식을 융합한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한 후, 그것들을 사종법계의 각 단계에 적응해 본다. 구체적으로 사법계를 ‘자성(自性)을 가진 개별적인 현상들’로, 이법계를 ‘단멸공’ 혹은 ‘세속제를 배제한 승의제’로, 이사무애법계를 유식적인 입장에서 ‘일체 사법을 포괄하는 진여문 · 일심’으로, 사사무애법계를 ‘세속제의 적극적인 활용으로서의 승의제’로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사사무애는 각기 다른 관점들과 교파들을 하나의 방편으로 보고, 다시 그것들의 특유의 위치와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수단임을 밝힌다. 또한 사사무애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관점’과 ‘무한으로 열려 있는 다양한 관점들의 체계’임을 보이고, 그것을 일승사상과 연결하여, ‘모든 관점을 포괄하여 무한으로 연결해주는 가장 큰 관점’은 동교일승이며, ‘무한으로 열려진 관점의 실체 없음’은 별교일승임을 논한다.
This paper will examine the meaning of ‘the realm of non - obstruction between phenomena’ in the core theory of Huayan Buddhist, the theory of the ‘Four realms of Reality’. And it will argue that it is not concepts as entities implying a specific point of view or sect, but merely an expression of a state in which all perspectives and sects use indefinitely. It will begin by analyzing the meanings of the concepts such as phenomena(事), principle(理), and the dharma realm(法界) from a new perspective that combines the Madhyamika and the Yogācāra, and will discusses how they can be applied to each stages of the ‘Four realms of reality’. Specifically, interpret ‘the realm of individual phenomena(事法界)’ as individual phenomena with intrinsic nature(自性), ‘the realm of the one principle(理法界)’ as ‘Annihilistic denial of emptiness(斷滅空)’ or ‘the ultimate truth(勝義諦) excludes the conventional truth(世俗諦)’, ‘the realm of non - obstruction between principle and phenomena(理事無礙法界)’ as ‘the true thusness aspect(眞如門)’ or ‘one mind(一心)’, and ‘the realm of non - obstruction between phenomena(事事無礙法界)’ as ‘the ultimate truth(勝義諦) as an active use of the conventional truth(世俗諦)’. In conclusion, ‘the realm of non - obstruction between phenomena’ is a way of recognizing different viewpoints and denominations as a comprehensive method for explaining the phenomenon, and again, as a mechanism allowing them to accurately occupy their position and play a unique role. And it will argue that this realm is 'the perspective that can explain everything' and' the system of infinitely open various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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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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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975-857x
  • : 2671-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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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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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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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님'의 시적 표상과 타고르 - 1920년대 시의 언어와 한용운의 '님' -

저자 : 김춘식 ( Kim Chun-si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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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최초로 '몸'의 담론인 문학(연애)과 형이상학인 '종교적 신념'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시집이다. 이런 결합은 종교의 세속화나 문학의 정신주의, '초월 지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님의 침묵』은 감각과 형이상학의 대립성을 초월한 새로운 언어를 이 '양자[불교와 문학]'에게 되돌려주었다. 『님의 침묵』의 '님'에 대한 해석을 부처, 조국, 연인으로 해석해 온 지금까지의 생각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님'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한정해서 읽은 혐의가 있다. '님'의 의미만큼이나 '님'이라는 호칭과 그것의 시적 사용이 만드는 새로운 감각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첫<키쓰>의 追憶”이라는 구절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키쓰'의 감각과 '님'의 관계를 종교적인 '믿음'으로 연결시키는 『님의 침묵』의 화법은 '육체성'을 '정신성'으로 환기하는 새로운 방식의 담론이다. 육체, 일상적 체험, 현실과 정신, 형이상학, 종교적 믿음 사이의 차이를 무너뜨림으로써 『님의 침묵』은 '님'이 지닌 전통적 의미에 종교성과 형이상학적 상징을 덧보태고, 추상적 종교인 불교에 '구체성과 육체성'을 부여한다.


In a situation in which the general trend of the “Dong - in - zee(同人誌)” literature in the 1920s was largely focused on Tagore, who was award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as an Oriental poet at the time, it can be said that Manhae's interest in “Tagor” was rather natural. In particular, unlike Tagore's 'divine' - centered thinking, Manhae represents a new metaphysical value that is given to physicality and humanity by representing 'NEEM', which is distinct from Tagore's second - person pronoun 'thou', through 'The Silence of NEEM '. It embodies the concept of 'love'.
“The silence of NEEM” was the first collection of poems in Korea's modern literary history that successfully have “discourse of body”, combines to “religious beliefs”. Transcending the confrontation between sensibility and metaphysics, it returned the new language to the《Buddhist and Literature.》The idea of “NEEM”, which has been intrepreted as the “Buddha, homeland, lover”, is not wrong, however the possibility of a different allegorical interpretation of “NEEM” always has been, too.' So, it's also very important to take note to the new sense of poetic words as much as to intreprete the 'ideas' of “N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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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용운의 시와 '선외선'의 사상

저자 : 김익균 ( Kim Ig-Ky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7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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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분야의 범용한 지식인을 양산하는 근대 이행기를 살아야 했던 한용운의 위대함은 시인, 선사, 정치가의 일체화를 이룬 데 있다. 이는 근대를 체험한 보통 사람의 위대함이다.
선사이면서 시인, 정치가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선학원 시절의 산물인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희박한 언표'로서 당대의 담론, 언표들과 넓고도 깊은 상호작용을 수행했다. 이것을 문학의 자율성에 가둘 수도 없고, '일본 - 중국 - 조선'의 일직선적인 '사상연쇄'로 제한할 수도 없다. 또한 이것은 전통으로의 회귀를 꾀하고 있지도 않다.
한용운은 량치차오를 통해 칸트를 접하지만, 량치차오와 칸트의 한계를 상즉상리(相卽相離)의 원리로 넘어서며 이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선사로서 당대의 중생에게 '선외선' 사상을 제시한다.
희박한 언표인 『님의 침묵』이 '선외선' 사상과 당대의 자유연애 담론의 상호작용의 양태의 각도에서 읽힐 때 그것은 지금, 여기의 한국적 근대문명을 사유할 수 있도록 곁을 내어 줄 것이다.


The greatness of Han Yong - un, who lived in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to mass - produce general - purpose intellectuals in specific fields, lies in the unification of poets, prehistory, and politicians. This is the greatness of ordinary people who have experienced modernity.
Han Yong - woon's 『Silence of Nim (님의 침묵)』 was a 'rarity of the utterances', which performed a wide and profound interaction with the discourses and expressions of the times in which Han Yong - un lived. It cannot be confined to the autonomy of literature, nor can it be limited to a straight “ideal chain” of “Japan - China - Chosun”. Also, it is not seeking a return to tradition.
Although Han Yong - un encounters Kant through Lianm Qi - chao, he overcomes the limitations of Lianm Qi - chao and Kant with the principle of Sangjeoksang - ri(相卽相離), and presents the idea of “zen outside zen(선외선)” to the rebirth of the time as a ship in order to realize this in reality.
When 『Silence of Nim (님의 침묵)』, which is a 'rarity of the utterances', is read from the angle of interaction between the 'zen outside zen' idea and the discourse of free love of the time, it will provide a side to contemplate the Korean modern civilization here and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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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허응 보우(虛應普雨)의 선교일체관(禪敎一體觀)

저자 : 한선옥 ( Han Sun-O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1-10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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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태동은 신라 법랑의 선법 전래로 시작되어 교와 선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대각 의천이 교종일색이던 때에 천태를 선종으로 하는 교주선종(敎主禪從)의 교선일치(敎禪一致)를 본격적으로 주창하여 교선융합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후에 보조 지눌은 이통현의 화엄사상 중에서 원융사상에 기반 한 선주교종(禪主敎從)의 선교일치를 수용함으로서 교주선종에서 선주교종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허응 보우는 이러한 선교차별의 양상을 극복하고자 '선 중심의 교'나 '교 중심의 선'의 차별을 전제로 하는 일치가 아니라 선과 교는 본래 평등한 일체라는 상즉의 원리와 원융무애사상 그리고 선교불이의 관점에서 '선교일체관'을 주창하여 변혁하려 하였다.
허응 보우의 '선교일체관'의 사상적 기반은 화엄사상 중에서 상즉원융관(相卽圓融觀)과 본래성불사상(本來成佛思想)에 근거하고 있다. 내용상으로 『화엄경(華嚴經)』의 돈교(頓敎)와 원융무애에 입각한 불이사상(不二思想)과 묘체와 묘용이 곧 하나의 체이면서 용이라는 상즉원리에 근거한 선교일체론을 주창하고 있다. 선교일체의 관점의 변화는 대각 의천의 교선일치에서 보조 지눌의 선교일치의 불일치를 넘어 선·교가 원융무애한 일불의 평등관계로 합일하는 원융불이, 체용일체의 관점으로 방법상 원관의 상즉원융관의 입장에서 주창하는 특징은 완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


Heo Eung Bow's an ideological foundation of Seon - Gyo Ilchegwan(禪敎一體觀) is Won - Yung - Mu - Ae(圓融無碍) and an idea of being Buddha originally(本來成佛思想).
Heo Eung Bow explained the Buddhist ideas based on Don - Gyo(頓敎), Won - Yung of Hwaeom - Gyeong (華嚴經, Buddhāvataṃsaka - mahāvaipulya - sūtra), and an original nature(本性). In the thought of Seon and Gyo, While Daegak Uicheon(大覺義天, 1055 - 1101) advocated the Gyoju - Seonjong(敎主禪從), Bojo Jinul(普照知訥, 1158 - 1210) advocated Seonju - Gyojong(禪主敎從). However, The change in Bow's view of Seon - Gyo - Ilchi(禪敎一致) is not an inconsistency on Union of Seon - Gyo claimed by Bojo Jinul, but rather an equal relationship that harmonizes with each other. As such, his ideas are Won - yung - Bul - ie(圓融不二), Che - yong - Il - che(體用一體). In addition, Sang - Jeuk - Won - Yung - Gwan(相卽圓融觀) in the methodology have a complementary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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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측을 통해 본 궁극적 진리의 언어 초월성의 함축

저자 : 장규언 ( Jang Gyu-E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3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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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해심밀경(解深密經)』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에서 '승의제(勝義諦)'의 특징[相] 중 하나로 제시된 '불가언설(不可言說)'에 대한 원측(圓測, 613 - 696)의 해석을 통해 궁극적 진리의 '언어 초월성[離名言]'이 함축하는 다양한 측면을 포괄적으로 밝히려는 시도이다. 원측에 따르면, 궁극적 진리의 '언어 초월성'은 다음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삼성(三性)의 관점에서 '언어 초월성'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인 언어적 특징[相]의 부정을 통해 드러나는 의타기성(依他起性)의 본성을 의미한다. 둘째 수행론적 측면에서 '언어 초월성'은 분별(分別)을 초월한 성자(聖者)의 무분별지(無分別智) 또는 직접 지각[現量]의 인식 대상을 지칭한다. 셋째 존재론적 측면에서 '무상(無相)'의 동의어인 '언어 초월성'은 모든 현상의 본성인 '공성(空性)'을 의미한다. 넷째 의미론적 측면에서 '언어 초월성'은 언어와 실재의 비대칭성을 함축한다. 다섯째 인식론적 측면에서 '언어 초월성'은 궁극적 진리가 '궁극적으로' 언어적 인식을 초월함을 의미한다. 여섯째 구원론적 측면에서 '언어 초월성'은 세상적 삶과 열반의 고요함의 이분법을 초월함을 의미한다.


This paper is a exposition on meanings that the character of “Ineffability” of the Ultimate (paramārthasatya) could implicate, based on Woncheuk's (圓測 613 - 696, Ch. Yuance) interpretations in Haesimmilgyeong so (Ch. Jieshenmijing shu, Commentary on Saṃdhinirmocana - sūtra).
According to Woncheuk, “Ineffability” of the Ultimate could have various meanings as follow. First, in the scheme of tri - svabhāva it means the dharmatā of the dependent nature illuminated by the negation of the imaginary nature, viz, nimitta. Second, in the context of cultivation it also designate the object of nirvikalpajñāna or āryapratyakṣa featured by the elimination of vikalpa. Third, in the aspect of ontology it also means śūnyatā. Fourth, in the context of semantics, it implicates the referential abyss between language and reality. Fifth, in the context of epistemology it means the Utimate “ultimately” transcends all verbal cognitions, even envolving the words themselves which designate the Ultimate. Sixth, in the context of soteriology it means the transcendce of dichotomy between the mundane life and the peace of nirvāṇ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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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사무애(事事無礙)와 무한으로 열린 법계원융(法界圓融) - 사(事)·리(理)·법계(法界)의 개념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수현 ( Park Su-Hy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17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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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화엄불교의 중요 이론인 사종법계설 중의 사사무애의 의미에 대해서 고찰하며, 그것이 '특정한 관점이나 종파'가 아니라는 것과, '모든 관점과 종파가 원융무애하게 활용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논할 것이다. 우선 사(事)·리(理)·법계(法界)의 개념을 중관과 유식을 융합한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한 후, 그것들을 사종법계의 각 단계에 적응해 본다. 구체적으로 사법계를 '자성(自性)을 가진 개별적인 현상들'로, 이법계를 '단멸공' 혹은 '세속제를 배제한 승의제'로, 이사무애법계를 유식적인 입장에서 '일체 사법을 포괄하는 진여문 · 일심'으로, 사사무애법계를 '세속제의 적극적인 활용으로서의 승의제'로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사사무애는 각기 다른 관점들과 교파들을 하나의 방편으로 보고, 다시 그것들의 특유의 위치와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수단임을 밝힌다. 또한 사사무애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관점'과 '무한으로 열려 있는 다양한 관점들의 체계'임을 보이고, 그것을 일승사상과 연결하여, '모든 관점을 포괄하여 무한으로 연결해주는 가장 큰 관점'은 동교일승이며, '무한으로 열려진 관점의 실체 없음'은 별교일승임을 논한다.


This paper will examine the meaning of 'the realm of non - obstruction between phenomena' in the core theory of Huayan Buddhist, the theory of the 'Four realms of Reality'. And it will argue that it is not concepts as entities implying a specific point of view or sect, but merely an expression of a state in which all perspectives and sects use indefinitely. It will begin by analyzing the meanings of the concepts such as phenomena(事), principle(理), and the dharma realm(法界) from a new perspective that combines the Madhyamika and the Yogācāra, and will discusses how they can be applied to each stages of the 'Four realms of reality'. Specifically, interpret 'the realm of individual phenomena(事法界)' as individual phenomena with intrinsic nature(自性), 'the realm of the one principle(理法界)' as 'Annihilistic denial of emptiness(斷滅空)' or 'the ultimate truth(勝義諦) excludes the conventional truth(世俗諦)', 'the realm of non - obstruction between principle and phenomena(理事無礙法界)' as 'the true thusness aspect(眞如門)' or 'one mind(一心)', and 'the realm of non - obstruction between phenomena(事事無礙法界)' as 'the ultimate truth(勝義諦) as an active use of the conventional truth(世俗諦)'. In conclusion, 'the realm of non - obstruction between phenomena' is a way of recognizing different viewpoints and denominations as a comprehensive method for explaining the phenomenon, and again, as a mechanism allowing them to accurately occupy their position and play a unique role. And it will argue that this realm is 'the perspective that can explain everything' and' the system of infinitely open various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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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한불교조계종의 중흥조(中興祖) 인식에 대한 재검토

저자 : 염중섭 ( Youm Jung-Seop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9-21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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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종헌」은 종조를 신라 말의 도의(道義)로 확정하고, 중천조(中闡祖)는 고려중기의 지눌로 삼고 있다. 이외에 중흥조(中興祖)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고려 말의 보우(普愚)를 제시한다.
그러나 조선불교는 '임제종의 계승' 및 '스승과 제자 간의 상속'을 중시한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도의와 지눌은 조계종의 시원자로는 합당하지 못한 면이 있다. 즉 조계종의 실질적인 종조는 고려 말의 보우인 셈이다. 이는 현대까지도 전해지는 모든 <조파도(祖派圖)>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조계종의 '스승과 제자 간의 상속' 구조 속에는, 보우 말고도 혼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보우 → 혼수'의 승계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수는 보우의 제자인 동시에 나옹의 제자이기도 하다. 특히 혼수 측의 기록에 따르면, 보우보다는 나옹과의 관계가 보다 두드러진다. 이런 점에서 조계종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인물을 보우로만 한정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즉 중흥조에 나옹도 추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옹은 중국 선불교의 계승자인 동시에, 인도승려인 지공(指空)을 통해 인도 선불교도 전수받은 인물이다. 이는 조계종이 나옹을 중흥조로 삼게 되면, 중국불교 외에도 인도불교적인 외연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계종은 선불교 중심이기는 하지만, 인도불교 이래의 모든 불교를 포괄하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다. 이런 점에서 나옹의 중흥조 편입은 높은 시대적 필연성을 확보한다.


Jogyejong's “Religious Constitution” is defining Doeui(道義) in the late Sila Age as its originator and Jinul in the middle Goryeo period as its prospering father. In addition, it suggests Bowu (普愚) in the late Goryeo as its reviving father.
However, Joseon's Buddhism emphasizes 'the succession of the Imjejong(臨濟宗)' and 'the inheritance between master and disciple'. In these standards, Doeui and Jinul are not worthy of being originators of the Jogye Order. In other words, the title of actual originator of Jogye Order should go to Bowu in the late Goryo. This can be confirmed through all the “Genealogical Charts(祖派圖)” handed down even to the present.
By the way, in the structure of 'the inheritance between master and disciple' of the Jogye Order, Honsu as well as Bowu occupies an important position. This is because there was a succession structure of 'Bowu → Honsu'. But Honsu was a disciple not only of Bowu but also of Naong. In particular, according to the records of Honsu himself, he was more intimate to Naong than Bowu. In this regard, it is not reasonable to limit Bowu as the reviving father of the Jogye Order. In other words, it is desirable to add Naong as a reviving father.
Naong was a successor of the Chinese Seon Buddhism and also one who was handed over the Indian Seon Buddhism through Jigong(指空), an Indian monk. If Jogyejong takes Naong as its reviving father, it means to secure its Buddhist outreach in addition to Chinese Buddhism.
Although Jogye - jong is the center of Seon Buddhism, it is a representative of Korean Buddhism that encompasses all kinds of Buddhism since the Indian Buddhism. In this respect, the inclusion of Naong in the reviving fathers can have a high necessity in this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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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신라 승려 심지(心地)에 대한 역사적 이해 - 『삼국유사(三國遺事)』 「심지계조(心地繼祖)」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선숙 ( Kim Sun-Soo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5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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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승려 심지는 헌덕왕의 아들이면서 경문왕대(861 - 875)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5살이 되던 해[志學之年]에 머리를 깎고 스승을 따라 불도(佛道)를 닦았다고 한다. 심지는 비록 헌덕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왕으로 등극하기 전 이미 출가를 하였기 때문에 왕위계승자인 태자(太子)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당시 격동하는 신라 하대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인 심지로서는 어려서부터 정치보다 종교에 좀더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만일 심지 외에 또다른 왕자가 존재했다면 전왕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헌덕왕의 정치적 야망은 물론 성향 등으로 미루어볼 때 헌덕왕으로서는 혼란스러운 당대 정국(政局) 및 반대세력이 강력히 버티고 있었다해도 즉위 이후 기존 왕위계승방식을 따라 자신의 아들을 태자에 임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료상에는 헌덕왕대에 있어서 왕위계승이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사건인 태자 임명 기록이 없고 대신 전례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동생 수종을 부군에 임명하여 왕위를 잇게 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심지는 팔공산에서 지내고 있다가 속리산에 머물고 있던 진표의 제자 심공(영심)이 법회를 연다는 소식에 찾아가 참례를 허락받았다. 그러나 정해진 날짜에 늦어졌다는 이유로 허락되지 않자 그는 돌아가지 않고 일반 대중들과 함께 예배하고 참회하였다. 심지 역시 참회를 통해 영심으로부터 간자를 전해 받았으며, 간자를 던져서 일어나는 신비한 현상을 접하고 동화사라는 절을 지었다.
이와 같이 진표의 사상과 간자는 심지에게 전수되었다. 그 법맥은 고려시대에 까지 이어졌는데 『삼국유사』, 「심지계조」조의 마지막 단락에 두 개의 불간자 및 『점찰경』에서 전하는 189간자 가운데 몇 개를 뽑아 설명한 기사가 실려 있고 여기에 '고려의 예종이 불골간자(佛骨簡子)를 가져와 궁궐 안으로 맞아 예를 갖추다가 문득 9간자 하나를 잃어버리고 상아로 만든 간자를 대신 본사(本寺)로 보내왔다'고 기술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


The Silla Seung Shimji is the son of King Hunduk and person who worked until King Gyeongmun. In the 15th years, he shaved his head and performed Buddhist temples along with his teacher. Shimji was born as the son of King Hunduk, but he would not have been a prince because he had already left before his father came to the King, or was not his eldest son or could not be pitched.
Because if there was another prince besides the Shimji, even if the political ambitions of King Hundok, who killed the King Aejang of a fomer King and the political ambitions and propensity of the king, were in a confused state or opposition, he would have appointed his son to the prince according to the existing succession method after his accession. However, there is no record of appointing the prince of King Hunduk, but instead it seems that the appointed his brother, Sujong, to the Bugun in an unprecedeuted manner.
Shimji was staying in Palgongsan and tried to get permission to visit the news that Jinpyo's disciple Shimgong, who stayed in Sokrisan. However, when he was not allowed because of the delay on a given date, he did not return and worshiped and repented with the general public. Shimji also received the kanji from the heart through repentance, and built a temple called Donghwasa through the mysterious phenomenon that occurs by throwing the kanji.
In this way, Jinpyo's thought and kanza were passed down to Shimji. The law vein continued until the Goryeo Dynasty, and the last paragraph of the clause's Shimjigaejo by Samgukyusa contains several articles of 189 ganja from two Buddhists and Buddhist temple and took the example into the palace and suddenly lost one of the nine ganja and sent the ivory into the original temple inst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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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목조제석천상의 연구

저자 : 유근자 ( Yoo Geun-Ja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1-304 (5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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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목조제석천상에 관한 것으로 복장 유물의 분석과 조선 전기 불상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상원사 문수동자상과 함께 1466년에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추론한 것이다.
오대산 상원사 목조제석천상의 복장 유물을 분석하고 양식 특징을 비교·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하였다.
첫째, 상원사가 위치한 오대산의 오대(五臺)에서는 여러 존상 가운데 제석천상이 조선시대 이전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다.
둘째, 상원사 목조제석천상에서 수습된 복장 유물 중 경전은 15세기에 간행되었고, 후령통 내부에 납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보병의 물목(物目)과 납입 방식은 16세기에 왕실에서 발원한 불상과 유사하였다.
셋째, 「상원사중수기」에는 1644 - 1645년에 7구의 불보살상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고, 발원문(1645년)의 양공(良工)으로 참여한 승려들이 조각승이 아니라 화승이라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상원사 목조제석천상은 1645년에 처음 조성된 것이 아니라 중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수발원문(1645년)에는 소현세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내용과 왕실 인물들이 다수 시주자로 참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넷째, 상원사 목조제석천상의 조성 시기는 1466년으로 추정된다. 상원사 문수동자상 발원문(1466년)의 '천제석왕'을 조성했다는 기록과, 상원사 문수동자상 및 조선 전기 불상과의 양식 특징 등을 통해 상원사 문수동자상과 함께 1466년에 목조제석천상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This paper was written to reveal that the wooden Indra statue enshrined at the Manjushri Hall of Sangwonsa Temple was created in 1466 at the same time as the statue of youthful Manjushri.
The following facts were confirmed through analysis of the Bokjang of Indra (relics from the inside of the Indra statue) and comparative analysis of stylistic features of Indra with the youthful Manjushri in this temple and other Buddhist statues creat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n the Odae of Odaesan Mountain, among many Buddhist statues, Indra statue has been the object of faith since before the Joseon Dynasty.
Among the relics of Bokjang, Buddhist scriptures were printed in the 15th century, and the items contained in the Obobyung (presumed to have been put inside the Huryungtong) and the method of putting them in were similar to the Obobyeong of Buddist statues sponsored by the royal family in the 16th century.
In the “Repair Record” of Sangwonsa Temple, there is a record that when the Sangwonsa Temple was repaired between 1644 and 1645, seven statues of Budda and Bodhisattva were also repaired. According to the “Balwonmun on Maintenance and Repair (1645)” of Indra statue, the monks who participated in the repair work of statues were painter monks, not sculptors. Taken these facts together,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Indra statue was repaired in 1645 and not created at that time. In the “Balwonmun on Maintenance and Repair (1645)”, the wishes for Prince Sohyun's rebirth of paradise and the fact that many members of the royal family participated as sponsors are recorded.
It is believed that the Indra statue at the Manjushri Hall of Sangwonsa Temple was created in 1466. Through the record of the creation of '天帝釋王' in the “Balwonmun on Creation(1466)” of youthful Majushri and the comparison of stylistic features with other Buddhist statues created in the early Josen Dynasty, it was estimated that the wooden Indra statue enshrined at the Manjushri Hall of Sangwonsa Temple was created in 1466 at the same time as the statue of youthful Manjushri in this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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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중봉당 혜호(中峰堂 慧皓)의 작품과 화맥연구

저자 : 정진희 ( Jung Jin-Hee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5-350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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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그리는 것을 수련의 한 방법으로 여겼던 전통은 근대기 늘어난 불화의 수요에 맞춰 단지 화업을 업으로 삼으면서 작업을 위해 모이고 흩어졌던 제작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혜호는 근대화라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전통의 맥을 이어 후대에 전했던 화승이다. 조선 후기 불화의 제작은 화업을 위주로 생활하였던 화승들에 의해 행해졌고 그들은 화맥에 따라 유파를 이루어 작품활동에 임하였다. 화승이자 선승이었던 중봉당 혜호의 화연 관계는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말년에는 강원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서울과 경기지역의 불화특징이 강원지역에 전달되는데 역할을 다하였다.
단아한 이목구비와 화려하고 공교한 문양 등이 특징인 혜호의 전성기 불화는 서양화법에 영향을 받은 신경향 불화와는 차별되는 전통적인 표현기법과 유사성을 보인다. 혜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그의 특징적인 화풍은 승가의 법맥과 선맥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후 흥국사, 봉은사, 건봉사 등을 중심으로 문중의 인연으로 맺어진 화연관계에 따라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혜호가 이루어낸 전통에 기초한 화풍은 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하는 신경향 불화와 차이를 나타내는 제자 화승들의 작품을 통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또 하나의 양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Buddhist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Dynasty were produced by monks who painted paintings. They participated in the work according to the relationship of the monk's. Jungbongdang Hyeho is a Zen priest and a painter who paints the outstanding Buddhist painting in Seoul. His work began with the families of monks living i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The late - life work played a role in spreading Buddhist painting i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while living in Gangwon Province.
Hyeho's style of Buddhist painting in his heyday is different from that of neurotic styles influenced by Western painting methods. He composed his work based on traditional techniques. His works show that his painting style is based on the relationship of the monk family and has since been handed down to his juniors on the same route. He created a new style based on tradition. The results can be seen that the Buddhist painting painted by his disciples, who have a conservative tendency to differ from the neurotic discord, was established and passed on in a singl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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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님'의 시적 표상과 타고르 - 1920년대 시의 언어와 한용운의 '님' -

저자 : 김춘식 ( Kim Chun-si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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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최초로 '몸'의 담론인 문학(연애)과 형이상학인 '종교적 신념'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시집이다. 이런 결합은 종교의 세속화나 문학의 정신주의, '초월 지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님의 침묵』은 감각과 형이상학의 대립성을 초월한 새로운 언어를 이 '양자[불교와 문학]'에게 되돌려주었다. 『님의 침묵』의 '님'에 대한 해석을 부처, 조국, 연인으로 해석해 온 지금까지의 생각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님'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한정해서 읽은 혐의가 있다. '님'의 의미만큼이나 '님'이라는 호칭과 그것의 시적 사용이 만드는 새로운 감각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첫<키쓰>의 追憶”이라는 구절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키쓰'의 감각과 '님'의 관계를 종교적인 '믿음'으로 연결시키는 『님의 침묵』의 화법은 '육체성'을 '정신성'으로 환기하는 새로운 방식의 담론이다. 육체, 일상적 체험, 현실과 정신, 형이상학, 종교적 믿음 사이의 차이를 무너뜨림으로써 『님의 침묵』은 '님'이 지닌 전통적 의미에 종교성과 형이상학적 상징을 덧보태고, 추상적 종교인 불교에 '구체성과 육체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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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용운의 시와 '선외선'의 사상

저자 : 김익균 ( Kim Ig-Ky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7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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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분야의 범용한 지식인을 양산하는 근대 이행기를 살아야 했던 한용운의 위대함은 시인, 선사, 정치가의 일체화를 이룬 데 있다. 이는 근대를 체험한 보통 사람의 위대함이다.
선사이면서 시인, 정치가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선학원 시절의 산물인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희박한 언표'로서 당대의 담론, 언표들과 넓고도 깊은 상호작용을 수행했다. 이것을 문학의 자율성에 가둘 수도 없고, '일본 - 중국 - 조선'의 일직선적인 '사상연쇄'로 제한할 수도 없다. 또한 이것은 전통으로의 회귀를 꾀하고 있지도 않다.
한용운은 량치차오를 통해 칸트를 접하지만, 량치차오와 칸트의 한계를 상즉상리(相卽相離)의 원리로 넘어서며 이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선사로서 당대의 중생에게 '선외선' 사상을 제시한다.
희박한 언표인 『님의 침묵』이 '선외선' 사상과 당대의 자유연애 담론의 상호작용의 양태의 각도에서 읽힐 때 그것은 지금, 여기의 한국적 근대문명을 사유할 수 있도록 곁을 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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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허응 보우(虛應普雨)의 선교일체관(禪敎一體觀)

저자 : 한선옥 ( Han Sun-O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1-10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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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태동은 신라 법랑의 선법 전래로 시작되어 교와 선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대각 의천이 교종일색이던 때에 천태를 선종으로 하는 교주선종(敎主禪從)의 교선일치(敎禪一致)를 본격적으로 주창하여 교선융합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후에 보조 지눌은 이통현의 화엄사상 중에서 원융사상에 기반 한 선주교종(禪主敎從)의 선교일치를 수용함으로서 교주선종에서 선주교종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허응 보우는 이러한 선교차별의 양상을 극복하고자 '선 중심의 교'나 '교 중심의 선'의 차별을 전제로 하는 일치가 아니라 선과 교는 본래 평등한 일체라는 상즉의 원리와 원융무애사상 그리고 선교불이의 관점에서 '선교일체관'을 주창하여 변혁하려 하였다.
허응 보우의 '선교일체관'의 사상적 기반은 화엄사상 중에서 상즉원융관(相卽圓融觀)과 본래성불사상(本來成佛思想)에 근거하고 있다. 내용상으로 『화엄경(華嚴經)』의 돈교(頓敎)와 원융무애에 입각한 불이사상(不二思想)과 묘체와 묘용이 곧 하나의 체이면서 용이라는 상즉원리에 근거한 선교일체론을 주창하고 있다. 선교일체의 관점의 변화는 대각 의천의 교선일치에서 보조 지눌의 선교일치의 불일치를 넘어 선·교가 원융무애한 일불의 평등관계로 합일하는 원융불이, 체용일체의 관점으로 방법상 원관의 상즉원융관의 입장에서 주창하는 특징은 완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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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측을 통해 본 궁극적 진리의 언어 초월성의 함축

저자 : 장규언 ( Jang Gyu-E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3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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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해심밀경(解深密經)』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에서 '승의제(勝義諦)'의 특징[相] 중 하나로 제시된 '불가언설(不可言說)'에 대한 원측(圓測, 613 - 696)의 해석을 통해 궁극적 진리의 '언어 초월성[離名言]'이 함축하는 다양한 측면을 포괄적으로 밝히려는 시도이다. 원측에 따르면, 궁극적 진리의 '언어 초월성'은 다음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삼성(三性)의 관점에서 '언어 초월성'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인 언어적 특징[相]의 부정을 통해 드러나는 의타기성(依他起性)의 본성을 의미한다. 둘째 수행론적 측면에서 '언어 초월성'은 분별(分別)을 초월한 성자(聖者)의 무분별지(無分別智) 또는 직접 지각[現量]의 인식 대상을 지칭한다. 셋째 존재론적 측면에서 '무상(無相)'의 동의어인 '언어 초월성'은 모든 현상의 본성인 '공성(空性)'을 의미한다. 넷째 의미론적 측면에서 '언어 초월성'은 언어와 실재의 비대칭성을 함축한다. 다섯째 인식론적 측면에서 '언어 초월성'은 궁극적 진리가 '궁극적으로' 언어적 인식을 초월함을 의미한다. 여섯째 구원론적 측면에서 '언어 초월성'은 세상적 삶과 열반의 고요함의 이분법을 초월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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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사무애(事事無礙)와 무한으로 열린 법계원융(法界圓融) - 사(事)·리(理)·법계(法界)의 개념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수현 ( Park Su-Hy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17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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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화엄불교의 중요 이론인 사종법계설 중의 사사무애의 의미에 대해서 고찰하며, 그것이 '특정한 관점이나 종파'가 아니라는 것과, '모든 관점과 종파가 원융무애하게 활용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논할 것이다. 우선 사(事)·리(理)·법계(法界)의 개념을 중관과 유식을 융합한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한 후, 그것들을 사종법계의 각 단계에 적응해 본다. 구체적으로 사법계를 '자성(自性)을 가진 개별적인 현상들'로, 이법계를 '단멸공' 혹은 '세속제를 배제한 승의제'로, 이사무애법계를 유식적인 입장에서 '일체 사법을 포괄하는 진여문 · 일심'으로, 사사무애법계를 '세속제의 적극적인 활용으로서의 승의제'로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사사무애는 각기 다른 관점들과 교파들을 하나의 방편으로 보고, 다시 그것들의 특유의 위치와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수단임을 밝힌다. 또한 사사무애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관점'과 '무한으로 열려 있는 다양한 관점들의 체계'임을 보이고, 그것을 일승사상과 연결하여, '모든 관점을 포괄하여 무한으로 연결해주는 가장 큰 관점'은 동교일승이며, '무한으로 열려진 관점의 실체 없음'은 별교일승임을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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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한불교조계종의 중흥조(中興祖) 인식에 대한 재검토

저자 : 염중섭 ( Youm Jung-Seop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9-21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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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종헌」은 종조를 신라 말의 도의(道義)로 확정하고, 중천조(中闡祖)는 고려중기의 지눌로 삼고 있다. 이외에 중흥조(中興祖)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고려 말의 보우(普愚)를 제시한다.
그러나 조선불교는 '임제종의 계승' 및 '스승과 제자 간의 상속'을 중시한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도의와 지눌은 조계종의 시원자로는 합당하지 못한 면이 있다. 즉 조계종의 실질적인 종조는 고려 말의 보우인 셈이다. 이는 현대까지도 전해지는 모든 <조파도(祖派圖)>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조계종의 '스승과 제자 간의 상속' 구조 속에는, 보우 말고도 혼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보우 → 혼수'의 승계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수는 보우의 제자인 동시에 나옹의 제자이기도 하다. 특히 혼수 측의 기록에 따르면, 보우보다는 나옹과의 관계가 보다 두드러진다. 이런 점에서 조계종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인물을 보우로만 한정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즉 중흥조에 나옹도 추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옹은 중국 선불교의 계승자인 동시에, 인도승려인 지공(指空)을 통해 인도 선불교도 전수받은 인물이다. 이는 조계종이 나옹을 중흥조로 삼게 되면, 중국불교 외에도 인도불교적인 외연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계종은 선불교 중심이기는 하지만, 인도불교 이래의 모든 불교를 포괄하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다. 이런 점에서 나옹의 중흥조 편입은 높은 시대적 필연성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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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신라 승려 심지(心地)에 대한 역사적 이해 - 『삼국유사(三國遺事)』 「심지계조(心地繼祖)」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선숙 ( Kim Sun-Soo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5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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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승려 심지는 헌덕왕의 아들이면서 경문왕대(861 - 875)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5살이 되던 해[志學之年]에 머리를 깎고 스승을 따라 불도(佛道)를 닦았다고 한다. 심지는 비록 헌덕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왕으로 등극하기 전 이미 출가를 하였기 때문에 왕위계승자인 태자(太子)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당시 격동하는 신라 하대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인 심지로서는 어려서부터 정치보다 종교에 좀더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만일 심지 외에 또다른 왕자가 존재했다면 전왕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헌덕왕의 정치적 야망은 물론 성향 등으로 미루어볼 때 헌덕왕으로서는 혼란스러운 당대 정국(政局) 및 반대세력이 강력히 버티고 있었다해도 즉위 이후 기존 왕위계승방식을 따라 자신의 아들을 태자에 임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료상에는 헌덕왕대에 있어서 왕위계승이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사건인 태자 임명 기록이 없고 대신 전례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동생 수종을 부군에 임명하여 왕위를 잇게 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심지는 팔공산에서 지내고 있다가 속리산에 머물고 있던 진표의 제자 심공(영심)이 법회를 연다는 소식에 찾아가 참례를 허락받았다. 그러나 정해진 날짜에 늦어졌다는 이유로 허락되지 않자 그는 돌아가지 않고 일반 대중들과 함께 예배하고 참회하였다. 심지 역시 참회를 통해 영심으로부터 간자를 전해 받았으며, 간자를 던져서 일어나는 신비한 현상을 접하고 동화사라는 절을 지었다.
이와 같이 진표의 사상과 간자는 심지에게 전수되었다. 그 법맥은 고려시대에 까지 이어졌는데 『삼국유사』, 「심지계조」조의 마지막 단락에 두 개의 불간자 및 『점찰경』에서 전하는 189간자 가운데 몇 개를 뽑아 설명한 기사가 실려 있고 여기에 '고려의 예종이 불골간자(佛骨簡子)를 가져와 궁궐 안으로 맞아 예를 갖추다가 문득 9간자 하나를 잃어버리고 상아로 만든 간자를 대신 본사(本寺)로 보내왔다'고 기술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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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목조제석천상의 연구

저자 : 유근자 ( Yoo Geun-Ja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1-304 (5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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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목조제석천상에 관한 것으로 복장 유물의 분석과 조선 전기 불상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상원사 문수동자상과 함께 1466년에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추론한 것이다.
오대산 상원사 목조제석천상의 복장 유물을 분석하고 양식 특징을 비교·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하였다.
첫째, 상원사가 위치한 오대산의 오대(五臺)에서는 여러 존상 가운데 제석천상이 조선시대 이전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다.
둘째, 상원사 목조제석천상에서 수습된 복장 유물 중 경전은 15세기에 간행되었고, 후령통 내부에 납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보병의 물목(物目)과 납입 방식은 16세기에 왕실에서 발원한 불상과 유사하였다.
셋째, 「상원사중수기」에는 1644 - 1645년에 7구의 불보살상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고, 발원문(1645년)의 양공(良工)으로 참여한 승려들이 조각승이 아니라 화승이라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상원사 목조제석천상은 1645년에 처음 조성된 것이 아니라 중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수발원문(1645년)에는 소현세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내용과 왕실 인물들이 다수 시주자로 참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넷째, 상원사 목조제석천상의 조성 시기는 1466년으로 추정된다. 상원사 문수동자상 발원문(1466년)의 '천제석왕'을 조성했다는 기록과, 상원사 문수동자상 및 조선 전기 불상과의 양식 특징 등을 통해 상원사 문수동자상과 함께 1466년에 목조제석천상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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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중봉당 혜호(中峰堂 慧皓)의 작품과 화맥연구

저자 : 정진희 ( Jung Jin-Hee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5-350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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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그리는 것을 수련의 한 방법으로 여겼던 전통은 근대기 늘어난 불화의 수요에 맞춰 단지 화업을 업으로 삼으면서 작업을 위해 모이고 흩어졌던 제작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혜호는 근대화라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전통의 맥을 이어 후대에 전했던 화승이다. 조선 후기 불화의 제작은 화업을 위주로 생활하였던 화승들에 의해 행해졌고 그들은 화맥에 따라 유파를 이루어 작품활동에 임하였다. 화승이자 선승이었던 중봉당 혜호의 화연 관계는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말년에는 강원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서울과 경기지역의 불화특징이 강원지역에 전달되는데 역할을 다하였다.
단아한 이목구비와 화려하고 공교한 문양 등이 특징인 혜호의 전성기 불화는 서양화법에 영향을 받은 신경향 불화와는 차별되는 전통적인 표현기법과 유사성을 보인다. 혜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그의 특징적인 화풍은 승가의 법맥과 선맥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후 흥국사, 봉은사, 건봉사 등을 중심으로 문중의 인연으로 맺어진 화연관계에 따라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혜호가 이루어낸 전통에 기초한 화풍은 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하는 신경향 불화와 차이를 나타내는 제자 화승들의 작품을 통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또 하나의 양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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