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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학 저변으로 바라 본 덕촌 양득중 - 남겨진 유적 현황과 과제를 중심으로 -

Deokchon Yang Deuk-jung, Viewed from the Base of Regional Studies - The present condition and assignments of the Remains -

김승대 ( Kim Seung-dae )
  • : 한국실학학회
  • : 한국실학연구 41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6월
  • : 259-300(42pages)
한국실학연구

DOI

10.23945/KSS.41.259.300


목차

1. 머리말
2. 해남, 화순 지역의 유적
3. 공주, 부안 지역의 유적
4. 남겨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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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촌 양득중은 조선후기 실학과 양명학에 있어서 매우 비중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의 삶과 사상을 조망하고 그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위해서는 지역학적 차원에서의 체계적인 접근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존하는 그의 문집인 『덕촌집』 이외에 관련 저작물의 집적화와 최근 발굴된 고문서의 번역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덕촌의 생장과 활동, 추숭 관련 유적에 대한 면밀한 지역학적 차원의 연구가 요망된다. 특히 그 대상지역으로 해남 영신리, 영암 구림, 화순 일원, 보성 박실, 공주 덕촌, 노성 유봉, 부안 일원 등이 주목된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으로서의 덕촌 양득중에 대한 실학자 연구를 넘어서 당대 학맥과 인물 교유, 문화콘텐츠화 등에 대한 ‘한국실학’, ‘호남실학’ 차원의 외연 확장이라 여겨진다. 실례로 해남 영신리의 ‘실사구시 마을’ 조성, 영암 구림의 아천 박태초 연구, 공주 덕촌과 명재 윤증의 학맥 조사, 덕촌과 부안의 반계 유형원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Deokchon(德村) Yang Deuk-jung(梁得中) is considered to be a very meaningful figure in the late Joseon Period in Shilhak(實學) and Yang-ming Studies(陽明學). However, it is believed that a systematic approach at the regional studies level should precede the view of his life and ideas and the extensive study of them.
To this end, in addition to his literary collection, 『Deokchonjib(德村集)』, his collection of related works and translation work on the recently excavated archaic documents of Deokchon(德村) should be preceded. In addition, a close regional study of Deokchon(德村)'s hometown, the area of his activities, and the remains left in his memory is needed. In particular, the target areas include Haenam Yeongsin-ri, Yeongam Gurim, Hwasun, Boseong Baksil, Gongju Deokchon, Noseong Yubong, and Buan.
This is not just a survey of Deokchon(德村) Yang Deuk-jung(梁得中) as an individual. In terms of ‘Hankook Silhak(韓國實學)’ and ‘Honam Silhak(湖南實學)’ it is necessary to expand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where various measures such as academic relationships, exchanges between characters, and cultural content are derived. For example, the creation of a ‘Silsagusi(實事求是)’ village in Yeongsin-ri, Haenam-gun and the study of Acheon(鵝川) Park Tae-cho(朴泰初) in Gurim, Yeongam-gun were also included. It is also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personal relationship between Deokchon and his teacher, Myeongjae(明齋) Yeun Jeung(尹拯). In addition, this includes research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angue(磻溪) Yu Hyeong-won(柳馨遠) and Deokchon(德村) who lived in Buan-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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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598-0928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9-2021
  • :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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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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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실학담론의 재구성과 양득중의 실사구시론

저자 : 김태희 ( Kim Tae-heui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4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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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담론은 역사적 소산이다.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실학담론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종래 실학으로 파악했던 내용을 세 가지 명제로 재구성해 보았다.
첫째 道器不相離論. 道와 器(또는 修己와 治人)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보완 관계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경세치용론'과 '이용후생론'의 기술개발, 제도개혁, 민생개선 주장에 주목해왔다. 이것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물질적인 부분만 강조할 수는 없다. 정신과 물질의 조화와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둘째 華夷一也論. 모든 공동체와 문명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관점이다. 그동안 탈중국중심주의 경향과 북학론 등을 실학으로 파악해왔다. 주체성의 강조가 자칫 자폐에 빠질 수 있고, 보편성 추구가 자칫 종속으로 흐를 수 있다. 양 편향을 극복하고, 세계의 보편성과 주체의 고유성을 조화롭게 결합해야 한다. 이것은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프레임 자체를 극복한 '華夷一' 사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셋째 實事求是論. 진리와 실천의 준거를 實心과 實事에서 찾는 자세 또는 作風이다. 실사구시의 의미는 덕촌 양득중의 실사구시론에서 구해야 한다. 덕촌은 '실사구시'의 제창과 함께, 『반계수록』을 추천함으로써 실학의 역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본고는 새로운 실학담론 논의에 일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 논의에는 法古創新의 정신이 필요하다.


Silhak discourse is a historical product. Silhak discourse oriented towards modernism and nationalism has now reached its limit. I have reconstructed the contents that had been grasped as Silhak into three propositions.
The first is 'Dogi Inseparability Theory(道器不相離論)'. It is the idea is that Do[道] and Gi[器](or Sugi[修己] and Chiin[治人]) are complementary to each other. In the meantime, we have been paying attention to the claims of technology development, institutional reform, and improvement of people's livelihoods in 'Gyeongsechiyong Theory(經世致用論)' and 'Iyonghusaeng Theory[利用厚生論]'. This is still important, but now we can't just focus on material things. We must seek harmony and balance between the spiritual and the material.
The second is 'Civilization and Barbarian's Equality Theory(Hwaiilya Theory(華夷一也論))'. It is the viewpoint that all communities and civilizations have equal values. In the meantime, we have grasped the De-Sinocentrism(脫-中華主義) tendency and the 'Bukhak Theory(北學論)' as Silhak. The emphasis on subjectivity could fall into autism, and the pursuit of universality could lead to subordination. We must overcome both biases and harmonize the universality of the world with the uniqueness of the subject. This should start with the idea of 'Hwaiil(華夷一)' that overcomes the frame itself that separates civilization from barbarism.
The third is 'Silsagusi Theory(實事求是論)'. 'Silsagusi' is an attitude or style that seeks the basis of truth and practice in sincerity and reality. The meaning of 'Silsagusi' should be drawn from the argument of Yang Deuk-joong(梁得中). He made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the history of Silhak by recommending < Bangyesurok(磻溪隨錄) > along with the proposition of 'Silsagusi'.
This paper is intended to contribute to the discussion of a new Silhak discourse. This discussion requires the spirit of 'Beopgochangshin(法古創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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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예학(禮學)과 『상체편람(常體便覽)』

저자 : 김윤정 ( Kim Yun-jung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8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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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직은 망국의 시기에 강학과 간행사업을 통해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는데 주목한 지식인이었다. 허전의 제자로서 『사의』 간행에 참여하고 『상체편람』을 저술하는 등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또한 집성과 고증의 방식을 통해 허전 심의설의 특징과 정당성을 드러내는 「심의고증」을 저술했다. 그는 허전의 예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실천했지만, 다른 예설에 대한 배척이 아닌 통합의 측면을 강조하였다. 유학자들의 분열을 원치 않았던 노상직의 학문 경향을 토대로, 예학은 논쟁의 대상이기보다는 지켜야 할 가치로서 인식되었을 것이다.
노상직의 예서인 『상체편람』은 變節보다 예의 기본인 常體를 강조하는 행례서로서, 복잡다단한 예설 논쟁보다는 예의 근본을 지키는 것이 더 필요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상체편람』은 55개의 의절로 구성되었는데, 집안에서 날마다 행하는 관혼상제 중심의 가례 관련 의절이 51개에 해당된다. 『가례』의 내용을 행례 단위로 의절화하면서, 『사의』의 書式과 祝文을 보충하였다. 사당제도와 오복제도 등은 과감하게 생략했고, 필요할 경우 『가례』에 없는 별도의 조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사의』의 예설을 중심으로, 「청기의」를 보충하고 「조석곡전」을 하나의 의절로 마련했다. 그러나 「기제의」의 考妣並祭와 「묘제의」의 親盡墓祭 문제에서는 자신의 예설을 드러내기도 했다.
『상체편람』은 가례뿐만 아니라 서당의 의례를 함께 수록함으로써 서당 중심의 예교에 주목했다. 「향음주의」와 「사상견의」는 서당의 행례에 맞게 변용되었고, 유교적 제향을 위한 「창주정사석채의」와 「문묘석전의」는 서당의 문생들이 지켜야할 지식으로 인식되었다. 망국의 시기에, 서당은 유학의 예교를 실천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고, 노상직은 서당의 예교를 통해 유학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끝까지 지켜나갔다.


Sonul Noh Sang-jik was an intellectual who focused on inheriting the tradition of studying abroad through lectures and publication projects during the period of his ruin. As a disciple of Heo Jeon, he was well versed in ritual study, participating in the publication of Saeui and writing Sangchepyunram. Through the method of aggregation and examination, he wrote Simeuigojeung which reveals the characteristics and merits of false examination theory. He practiced Heo Jeon's ritual theory and tried to verify its legitimacy through a Bibliographical Study, but did not mention them as controversial subjects. During the chaotic period of the country, Noh Sang-jik's academic tendency, which did not want to divide Confucian scholars, was reflected, and ritual study was recognized as a value to protect rather than as a subject of controversy.
Sangchepyunram emphasizes the basics of riual rather than the transformation, and it reflected the changes in the times when it was more necessary to keep the basics of ritual than the complex debate. Sangchepyunram consisted of 55 Protocols, 51 of them were about the family rituals. The contents of Family Rituals were made on a ritual basis, supplementing the forms and written prayer of Saeui. Sangchepyunram focused on the Confucianism centered on the Seodang by incorporating not only the cases but also the rituals of the Seodang. The Seodang was recognized as the last bastion of Confucianism, and Noh Sang-jik maintained his social role as a Confucian scholar until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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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의 『전례유집(全禮類輯)』과 예설 교류

저자 : 남재주 ( Nam Jae-ju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1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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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堂 柳疇睦은 경상북도 尙州에서 활동하면서 退溪學派의 西厓學統을 계승한 학자이다. 그는 300여 명이 넘는 제자를 배출하였고 학술 진흥, 특히 禮學 분야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가 편찬한 『全禮類輯』은 家禮와 邦禮를 전체적으로 아우른 禮書로, 조선시대 예학 저술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면밀한 것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는 官撰이 아니라 한 개인의 학문적 열정으로 편찬한 私撰 '예설 종합서'로 그의 사후에 제자들과 지역 유림의 협조로 최종 정리되었다. 그가 가례뿐만 아니라 방례까지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은 西厓 柳成龍과 洛波 柳厚祚 등으로 이어져 家學전통으로 자리매김한 '世臣之義'의 가르침을 출처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였던 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류주목의 제자로서 近畿南人 性齋 許傳의 제자 명단에 함께 수록된 인물이 20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 특히 『전례유집』에 수록된 '師服' 조목은 영남남인 東巖 柳長源의 『常變通攷』 자료를 기초로 하여 편찬하였는데, 류주목의 제자이자 허전의 제자인 克齋 盧佖淵의 아들 小訥 盧相稷이 「師服考」라는 저술에서 이들 자료를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경상북도 상주 중심의 류주목 제자와 경상남도 중심의 허전 제자 간에 학술적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Ryu Ju-mok was a scholar who succeeded Seoae Studies(西厓學) among the Toegye School(退溪學派) and was active in Sangju(尙州) Gyeongsangbuk-do(慶尙北道). He produced more than 300 disciples and contributed greatly to the promotion of Yehak(禮學). In particular, he compiled the 『JeonRyeYooJip(全禮類輯)』 by incorporating the custom of the family and the rites of the country, and this book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extensive and detailed among the Joseon Dynasty's ritual books. The reason he was able to make excellent results by studying the rites of the family and the state is because the teachings of Sesinjiui(世臣之義) have been handed down to the traditional theory of the family from Ryu Seong-ryong(柳成龍) and Ryu Hu-jo(柳厚祚).
By the way, among the disciples of Ryu-jumok there are 20 people whose names were recorded on the list of Heo Jeon(許傳)'s disciples, Noh Pil-yeon(盧佖淵) was one of them. And Noh-Pilyeon's son Noh Sang-jik(盧相稷) wrote Sabokgo(師服考) which inherited theory of 『JeonRyeYooJip』's Sabok(師服). Based on the fact that the theory of 『JeonRyeYooJip』's Sabok began with 『SangbyeonTonggo(常變通攷)』, we can see that there was active academic exchange and communication between the disciples of Ryu ju-mok in Sangju Gyeongsangbuk-do and Heo jeon in Gyeongsangnam-do(慶尙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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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의(士儀)』의 체제와 예설의 학파적 성격

저자 : 이봉규 ( Lee Bong-kyoo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7-14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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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이 편성하였던 『사의』의 체제는 1870년에 간행된 목활자본에서 알 수 있다. 허전 사후 1909년에 간행된 목판본 『사의』는 제자와 영남 지역의 유학자들이 함께 활자본에 교정을 가하고 체제를 일부 새로 편성한 것이다. 그러나 목판본은 활자본 이후 허전과 제자들에 의해 가해진 수정을 일부만 반영하였다. 따라서 향후 『사의』의 정본을 편찬할 경우, 두주와 노필연의 「士儀考誤增註」 등을 교감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조선에서 편찬되는 가례서는 『가례』의 체제를 따르는 유형과, 독자적으로 의절을 수립하고 주석을 부가하는 유형으로 구분된다. 후자의 방식은 이익의 『星湖禮式』에서 시작되었고, 정약용의 『四禮家式』으로 이어졌다. 허전의 『사의』는 고례와 『가례』를 중심으로 의절을 세우고 독자적으로 주석을 부가하면서, 변례와 상관되는 쟁점에 대해서 “辨疑”의 항목을 두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였다. 허전은 사의도(106도)로 가례도(31도)를 대체하였고, 부고전 告廟, 成殯, 계후자에 대한 상복 등 『가례』에 없거나 『가례』와 다른 규정을 의절에 새로 추가하였다. 『사의』는 성호학파의 예학 전통을 계승하면서 당대 중국과 한국에서 논의된 예설까지 수렴하여 서민의 수준에서 가례를 실행할 수 있게 편성한 독자적인 가례서이다. 허전은 예설에서 『星湖禮說類編』의 설을 주로 계승하면서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견해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正體를 후계자가 아닌 부친과 조부에게 해당한다는 것, 적자가 생존해 있으면 적손의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조모나 모친이 생존해 있을 때 승중손의 처가 시조부에 대하여 중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호학파의 관점을 수렴하여 제시한 것이다. 반면, 입후한 뒤의 승계에서 계후자의 지위를 우선시하고, 환종을 반대한 것은 이이의 견해를 계승한 것이다. 또한 계후자의 상복을 의복이 아닌 正服으로 규정하면서 이익, 이상정, 권상하, 한원진, 이재 등의 견해를 원용하였다. 허전은 정약용의 『상례사전』의 견해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The original composition of Shiyi organized by Heo Jeon can be seen in the printed book published in 1870. The woodblock edition was published in 1909 by disciples who gave a proofreading and organized some new compositions. However, the woodblock copy only partially reflected the revisions of Heo and his disciples. Therefore, if the definitive edition of Shiyi is compiled in the future, it is necessary to reflect the Shiyi-Kaowu-Zengzhu(士儀考誤增註) of Noh Pil-yeon and the other documents of proofreading.
Books of family rituals, compiled in Joseon, is divided into two types: following the system of Jiali, and establishing and annotating rituals independently. The latter method began with Yi Ik's Xinghulishi(星湖禮式), followed by Jeong Yak-yong's Silijiashi(四禮家式). Heo Jeon established main items of ritual centered around the ancient rites and Jiali and independently annotated it, presenting his views on issues related to the variant li with a “Bianyi(辨疑, Argument on Variant Cases)” item. He replaced Diagram of Jiali(31) with Diagram of Shiyi(106), and added new regulations to the rite, such as ritual to report to the shrine, and morgue installation. The Shiyi is an independent book of family rituals, in which Heo Jeon succeeded the tradition of the Seongho School and discussed releated arguments in China and Korea at that time to practice the ritual at the level of ordinary people. He inherited the opinions of Xinghu-lishuo-leibian(星湖禮說類編) in relation to rituals, selectively accepting the views of the Kiho School and the Yeongnam School. The opinions that “zhengti(正體)” corresponds to the father and grandfather not to the heir, the concept of legal posterity does not exist if the eldest son is alive, and wife of the legal posterity does not three-year mourning to the grandfather when the grandmother or mother is alive, were presented on the tradition of Seongho School. On the other hand, it was Yi Yi's view that after his adopted son was established as his successor, he prioritized the status of successor in succession and opposed the dissolution of adoption. In addition, Yi Ik, Lee Sang-jeong, Kwon Sang-ha, Han Won-jin, and Lee Jae-yi's views were adopted by defining the adopted son's mourning as the one by kinship rather than by duty. Heo Jeon also optionally accepted Jeong Yak-yong's view of Sanglisij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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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常變通攷)』가 조선후기 예학사(禮學史)에 끼친 영향

저자 : 정길연 ( Jeong Gil-yeo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9-18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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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세기 영남의 예학자 동암 류장원의 『상변통고』가 조선 후기 예학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였다. 『상변통고』는 처음 기획부터 주자의 『가례』를 표본으로 삼고, 그리고 『의례경전통해』의 방대함을 겸하는 것이 그 편찬 목적이었다. 이 책의 방대하고 면밀한 고증면에서는 영남의 예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방대한 『상변통고』는 나름의 문제도 안고 있었다. 그것은 방대함이 주는 불편함이었다. 이로 인해 素隱 柳炳文, 定齋 柳致明, 近庵 柳致德 등은 『상변통고』의 이러한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 각각 예서를 편찬하였다. 또한 『상변통고』는 영남 학자들은 물론이고 기호학파의 학자들에게까지 고증서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상변통고』를 참고한 학자들 중에는 서울의 性齋 許傳과 芸窓 朴性陽, 경기도 과천의 果齋 成近默, 충청도 보령의 肅齋 趙秉悳, 전라도 전주의 艮齋 田愚, 경주의 立軒 韓運聖 등 그 범위가 전국에 걸쳐있다. 이들 학자들은 모두 방대한 자료를 수록한 『상변통고』를 통해 의심스러운 禮說을 살피고 논단했다. 뿐만아니라 『상변통고』를 숙독한 나머지 그 미비점을 지적하는 데 까지 이르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inspect how 『Sangbyeon Tonggo(常變通攷)』 by Dongam(東巖) Ryu Jang-won(柳長源), a 18th-century scholar of Yeongnam region who academically specialized in rituals, affected the history of ritual studies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When first planned to be compiled, 『Sangbyeon Tonggo(상변통고)』 aimed to put itself out as an alternative literature to Zhu Xi's huge collection of ritual theories, 『Euirye Gyeongjeon Tonghae(儀禮經傳通解)』 while being fundamentally based on the Chinese Confucian scholar's 『Garye(家禮)』. After『Sangbyeon Tonggo(상변통고)』 was published, all of the then ritual scholars who were active in Yeongman region agreed that the book was really full-fledged and meticulously bibliographical. However, there was some limitation that 『Sangbyeon Tonggo(상변통고)』 had. It was that the literature is too much in content to be dealt with conveniently. To solve or reduce this problem, Soeun(素隱) Ryu Byeong-mun(柳炳文), Jeongjae(定齋) Ryu Chi-myeong(柳致明), and Geunam(近庵) Ryu Chi-deok(柳致德) respectively wrote and put out books about rituals. 『Sangbyeon Tonggo(상변통고)』 was a highly reputed bibliographic evidence for not only scholars of Yeongnam region, but also those of other regions, especially the Kiho School scholars.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here were many scholars across the country who often made references to 『Sangbyeon Tonggo』. Among them were Seongjae(性齋) Heo Jeon(許傳) and Unchang(芸窓) Park Seong-yang(朴性陽) in Seoul, Gwajae(果齋) Seong Geun-muk(成近默) in Gwacheon, Gyeonggi province, Sukjae(肅齋) Jo Byeong-deok(趙秉悳) in Boryeong, Chungcheong province, Ganjae(艮齋) Jeon Woo(田愚) in Jeonju, Jeolla province and Yipheon(立軒) Han Woon-seong(韓運聖) in Gyeongju. For those scholars, 『Sangbyeon Tonggo(상변통고)』 was a huge basis on which they discussed, pondered or judged ritual theories that they thought were doubtful. Meanwhile, they reviewed the book thoroughly, so they even could point out seemingly incomplete parts from the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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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성재(性齋) 허전(許傳)의 상복(喪服) 연구

저자 : 차서연 ( Cha Seo-yeo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2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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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애통한 심정을 표상하는 복식인 喪服에 대한 性齋 許傳의 해석을 고찰한 것이다. 성재는 옛 복식의 제도 중 후세까지 전해진 것은 深衣와 상복이고, 두 옷은 上衣와 下裳의 분리 여부만이 다를 뿐 전체적인 제도는 같다고 전제한다. 상복의 제도를 규정한 『儀禮』 「喪服」과 심의의 제도를 규정한 『禮記』 「玉藻」와 「深衣」는 상호 보완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는 성재의 해석적 입장은 그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古禮를 기준으로 상복의 제도를 복원한 성재는 이를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고례를 그대로 따르기 힘들 경우 『家禮』의 규정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고례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당시 조선에서 행해지던 시속을 적극 반영하였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대체품을 사용하도록 제시하면서, 무엇보다도 애통해하는 마음의 표상이라는 상복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형편에 맞추어 검소하게 마련할 것을 강조한다.
성재가 고례와 『가례』 그리고 조선의 시속까지 반영하여 상복의 형태를 논증하되 절검까지 고려하여 시행하도록 제안한 것은 상복의 의례적인 상징성과 실제적인 기능성을 회복해 상례의 수행 가능성을 높이려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 그는 상복이 가장 오래된 유교적 복식의 하나이고 애통한 심정을 표상하는 의례복이며 상례를 치르는 오랜 기간 실제로 입고 생활하는 일상복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 복식으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This paper is a study on Seongjae Heojeon(性齋許傳)'s interpretation of mourning as a dress code representing grief-stricken sorrow of a man who lost his loved one. Seongjae presupposes that the old clothing systems passed down to posterity are Simui(深衣) and mourning, which have the same overall design with only a difference in separation of top (上衣) from bottoms (下裳). Seongjae's interpretative position is that 'Sangbok(喪服)' in Uirye(儀禮) defining mourning clothes system and 'Okjo(玉藻)' and 'Simui (深衣)' in Yegi (禮記) defining Simui system are complementary.
Seongjae, who restored the mourning clothes system based on Old Manners (古禮) did not insist that this must be enforced as it was. He utilized the regulations in the Garye(家禮) selectively if it was difficult to follow the Old Manners and actively reflected the customs of Joseon Dynasty as long as it's not against the Old Manners. He stressed the spirituality of mourning as a manifestation of grieving heart and suggested to prepare the costume frugally depending the circumstances, recommending to use alternative items if there were materials difficult to obtain.
Seongjae's proposal to enforce the mourning clothes system by considering the Old Manners, Garye, and customs of Joseon Dynasty, shape of mourning dress up to frugality contains purpose to improve the practice of funeral rites by recovering the ceremonial symbolism and practical functionality of mourning. It's because mourning is one of the longest Confucian dresses and a dress code that simultaneously implies both a ceremonial costume representing grief-stricken heart and an everyday dress that is worn actually for a long time while holding a funeral 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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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의 예학(禮學)

저자 : 한재훈 ( Han Jae-hoo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9-25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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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堂 李南珪(1855∼1907)의 禮學은 조선시대 예학의 마지막 장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예학은 지속적인 연구의 축적과 함께 시기별로 특징적 진전을 이루었으며, 수당의 예학은 이와 같은 성취 위에서 전개되었다. 그중에서도 이러한 진전을 주도했던 인물로서 수당의 예학에 지속적으로 소환되는 인물은 退溪 李滉(1501∼1570)과 沙溪 金長生(1548∼1631) 그리고 星湖 李瀷(1681∼1763)이다. 특히 수당의 예학이 퇴계와 사계에 연결되는 통로는 성호였다. 성호는 일찍이 퇴계의 예학을 『李先生禮說類編』으로 정리했고, 사계의 예학에 대해서는 疑禮問解辨疑를 통해 폭넓게 변증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당이 성호의 예학을 묵수하거나 답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讀書劄記 형식의 여러 저술을 통해 성호 예학에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수당의 문집이 남아서 전하기는 하지만, 日兵에 의해 1907년 아들(李忠求)과 함께 순국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저술이 충분히 수습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런 추측은 그의 예학 관련 자료 역시 현재 전하는 것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본 논문은 남아 있는 자료들 중에서 「讀星湖疑禮問解辨疑」와 「爲妻無練說」 그리고 「讀星湖禮說」을 중심으로 수당의 예학을 검토했다. 검토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수당의 예학은 기본적으로 성호 예학의 자장 내에서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호를 통해 퇴계와 사계의 예학까지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위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성호의 예학을 그저 묵수하거나 답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냉정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성호가 비판적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사계를 옹호하고 성호를 비판하는 면까지 보여주었다. 이는 수당의 예학적 특성이 성호의 예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Yi Nam Gyu's study on li appears in the final scene of study on li during the Joseon Dynasty. In other words, study on li during the Joseon Dynasty made characteristic progress by period with the accumulation of continuous research, and Yi Nam-gyu's study on li of allowances developed on this achievement. His study on li was greatly influenced by Yi Hwang, Kim Jang Saeng, and Yi Ik. In particular, Yi Ik served as the basis for his research to connect Yi Hwang and Kim Jang Saeng. Furthermore, his study on li was basically formed within the magnetic field of Yi Ik's study on li. As such, it is true that his study on li has been absolutely influenced by Yi Ik, but that does not mean that he has only ignored or followed Yi Ik's study on li. At times, he criticized Yi Ik's claims, and even criticized Yi Ik, defending Kim Jang Saeng, whom Yi Ik criticized. His intention to conduct this type of research was to develop Yi Ik's study on li cri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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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지역학 저변으로 바라 본 덕촌 양득중 - 남겨진 유적 현황과 과제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승대 ( Kim Seung-da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9-30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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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촌 양득중은 조선후기 실학과 양명학에 있어서 매우 비중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의 삶과 사상을 조망하고 그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위해서는 지역학적 차원에서의 체계적인 접근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존하는 그의 문집인 『덕촌집』 이외에 관련 저작물의 집적화와 최근 발굴된 고문서의 번역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덕촌의 생장과 활동, 추숭 관련 유적에 대한 면밀한 지역학적 차원의 연구가 요망된다. 특히 그 대상지역으로 해남 영신리, 영암 구림, 화순 일원, 보성 박실, 공주 덕촌, 노성 유봉, 부안 일원 등이 주목된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으로서의 덕촌 양득중에 대한 실학자 연구를 넘어서 당대 학맥과 인물 교유, 문화콘텐츠화 등에 대한 '한국실학', '호남실학' 차원의 외연 확장이라 여겨진다. 실례로 해남 영신리의 '실사구시 마을' 조성, 영암 구림의 아천 박태초 연구, 공주 덕촌과 명재 윤증의 학맥 조사, 덕촌과 부안의 반계 유형원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Deokchon(德村) Yang Deuk-jung(梁得中) is considered to be a very meaningful figure in the late Joseon Period in Shilhak(實學) and Yang-ming Studies(陽明學). However, it is believed that a systematic approach at the regional studies level should precede the view of his life and ideas and the extensive study of them.
To this end, in addition to his literary collection, 『Deokchonjib(德村集)』, his collection of related works and translation work on the recently excavated archaic documents of Deokchon(德村) should be preceded. In addition, a close regional study of Deokchon(德村)'s hometown, the area of his activities, and the remains left in his memory is needed. In particular, the target areas include Haenam Yeongsin-ri, Yeongam Gurim, Hwasun, Boseong Baksil, Gongju Deokchon, Noseong Yubong, and Buan.
This is not just a survey of Deokchon(德村) Yang Deuk-jung(梁得中) as an individual. In terms of 'Hankook Silhak(韓國實學)' and 'Honam Silhak(湖南實學)' it is necessary to expand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where various measures such as academic relationships, exchanges between characters, and cultural content are derived. For example, the creation of a 'Silsagusi(實事求是)' village in Yeongsin-ri, Haenam-gun and the study of Acheon(鵝川) Park Tae-cho(朴泰初) in Gurim, Yeongam-gun were also included. It is also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personal relationship between Deokchon and his teacher, Myeongjae(明齋) Yeun Jeung(尹拯). In addition, this includes research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angue(磻溪) Yu Hyeong-won(柳馨遠) and Deokchon(德村) who lived in Buan-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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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덕촌 양득중 초상의 제작과 봉안

저자 : 이경화 ( Lee Kyung-hwa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1-33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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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村 梁得中(1665∼1742)은 英祖(재위 1724∼1776)에게 『磻溪隧錄』의 진강을 건의하고 實事求是의 개념을 전하여 실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그는 양명학과 실학적 소양을 겸비한 尹拯(1629∼1714)의 문인이었으며 영조의 신임을 받는 소론계 학자관료이기도 하였다. 1864년 영암의 사림들은 그의 고향 영암에 영당을 건립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하였다. 현재까지도 덕촌 영당은 양득중의 영정을 배향하며 선조와 후손들이 조우하는 공간으로서 운영되고 있다. 본 연구는 덕촌 영당 및 영정과 관련된 현존 자료를 취합하고 영당의 건립과 영정의 봉안 과정을 살피고자 하였다. 아울러 초상의 회화적 면모를 검토하고 관련 의문점을 논의하였다.
초상 속에서 양득중은 심의에 복건을 착용하였으며 무릎을 꿇고 공수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가 착용한 심의복건은 본래 朱子(1130∼1200) 초상의 의상이었다. 심의복건은 宋時烈(1607∼1689) 초상에 선택된 이후 서인-노소론계 문인의 초상에서 빈번하게 재현된 의상으로서 유학자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圖像이기도 하였다. 양득중 초상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특징은 跪坐와 拱手, 즉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마주잡은 경건하고 신중한 태도일 것이다. 예의를 갖춘 유학자의 자세인 궤좌는 조선 초상화에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도상으로서 무엇보다 그의 스승 윤증의 초상을 특징짓는 자세였다. 스승 윤증의 도상을 차용함으로서 양득중은 윤증의 학문적·정치적 계승자로서의 의지를 표상한 것으로 이해된다.
양득중의 영당과 영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이들이 제작 당시 원형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당과 영정은 그간에 보수와 재제작을 통해 변형이 더해진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촌 영정에서 관찰되는 비전통적인 표현 요소는 이것이 근대의 이모본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문중에는 1910년 근대 초상화의 거장 蔡龍臣(1850∼1941)을 초청하여 초상을 다시 제작하였다는 이모 이력이 구전되고 있다. 그러나 초상의 회화적 면모는 채용신의 필치와 상이하며 오히려 당시 전남 지역에서 활약한 지역 화가의 화풍과 긴밀한 관계를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양득중의 경우에 한정하지 않고 근대기 지방에서 활동한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함을 의미할 것이다. 향후에 지속적인 고찰을 통해 양득중 영정 이모의 실재가 분명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이 초상이 지닌 의의를 더욱 분명하게 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Yang Deukjung(梁得中, 1665∼1742, sobriquet Deokchon '德村') is regarded as a pioneer of Silhak(實學), the reformative intellectual movement rising during the late Joseon Korea, who as an official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governance to be grounded in reality to King Yeongjo(r. 1724∼1776). He was a disciple of Yun Jeung(尹拯, 1629∼1714) as a leading scholar of Soron(少論: young learning) faction, and had a profound knowledge of both aspects of Yangmingism(陽明學) and Silhak. In 1864, the heir of Soron wanted to commemorate Yang's remarkable achievements by building the portrait hall at Yeongam(靈巖) in Jeolla(全羅) province, which the village of Yang's clan located in. Deokchon-sa(德村祠), the portrait hall called after Yang's literati name, exists as the enshrining site of Yang's portrait and as the encountering place of ancestor and descendants. The study explores the process of production and enshrinement of the portrait of Yang Deukjung with Deokchon-sa. It also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Yang's portrait and discuss the issues in relation to its provenance.
In the portrait, Yang Deukjung is described as a scholar wearing Simeui(深衣: a plain robe with black border) on his body and Bokgeon(幅巾: a black scarf) on his head. Simeui-Bokgeon is defined as an authoritative attire for Confucian scholar by Zhu Xi(朱熹, 1130∼1200), an eminent Neo-Confucian scholar in the Southern Song, Simeui-Bokgeon painted in portrait allows Yang to embody efficiently his identity as a Confucian scholar following the tradition of Zhu Xi's philosophy. Yang's pose kneeling down and holding two hands together in front of his body is a very decent posture of Neo-Confucian scholar emphasized by Zhu Xi. The kneeling down is also a distinctive pose chosen in the portrait of Yun Jeung. Yang intended to revival his teacher's posture in his own portrait and establish himself as an heir of Yun's academic legacy.
It is noteworthy that the current condition of both Deokchon portrait hall and Yang's portrait are different from what they were originally produced. As the hall had been restored and the portrait had been reproduced, they have undergone many changes over the years. Yang's descendants in Yeongam region tell the story that Chae Yongsin(蔡龍臣, 1850∼1941), the renowned portraitist in his time, reproduced it there in 1910. However, the pictorial characteristics of Yang's portrait is significantly different from those of Chae and it has more common with the portrait of a local painter. It is expected to clarify obviously the reality of the reproduction story, and to reveal the local portraitists active in the Jolla province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n it would become possible to shed more light on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Yang Deukjung's portrait and its enshrin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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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실학담론의 재구성과 양득중의 실사구시론

저자 : 김태희 ( Kim Tae-heui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4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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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담론은 역사적 소산이다.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실학담론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종래 실학으로 파악했던 내용을 세 가지 명제로 재구성해 보았다.
첫째 道器不相離論. 道와 器(또는 修己와 治人)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보완 관계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경세치용론'과 '이용후생론'의 기술개발, 제도개혁, 민생개선 주장에 주목해왔다. 이것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물질적인 부분만 강조할 수는 없다. 정신과 물질의 조화와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둘째 華夷一也論. 모든 공동체와 문명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관점이다. 그동안 탈중국중심주의 경향과 북학론 등을 실학으로 파악해왔다. 주체성의 강조가 자칫 자폐에 빠질 수 있고, 보편성 추구가 자칫 종속으로 흐를 수 있다. 양 편향을 극복하고, 세계의 보편성과 주체의 고유성을 조화롭게 결합해야 한다. 이것은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프레임 자체를 극복한 '華夷一' 사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셋째 實事求是論. 진리와 실천의 준거를 實心과 實事에서 찾는 자세 또는 作風이다. 실사구시의 의미는 덕촌 양득중의 실사구시론에서 구해야 한다. 덕촌은 '실사구시'의 제창과 함께, 『반계수록』을 추천함으로써 실학의 역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본고는 새로운 실학담론 논의에 일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 논의에는 法古創新의 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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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예학(禮學)과 『상체편람(常體便覽)』

저자 : 김윤정 ( Kim Yun-jung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8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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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직은 망국의 시기에 강학과 간행사업을 통해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는데 주목한 지식인이었다. 허전의 제자로서 『사의』 간행에 참여하고 『상체편람』을 저술하는 등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또한 집성과 고증의 방식을 통해 허전 심의설의 특징과 정당성을 드러내는 「심의고증」을 저술했다. 그는 허전의 예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실천했지만, 다른 예설에 대한 배척이 아닌 통합의 측면을 강조하였다. 유학자들의 분열을 원치 않았던 노상직의 학문 경향을 토대로, 예학은 논쟁의 대상이기보다는 지켜야 할 가치로서 인식되었을 것이다.
노상직의 예서인 『상체편람』은 變節보다 예의 기본인 常體를 강조하는 행례서로서, 복잡다단한 예설 논쟁보다는 예의 근본을 지키는 것이 더 필요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상체편람』은 55개의 의절로 구성되었는데, 집안에서 날마다 행하는 관혼상제 중심의 가례 관련 의절이 51개에 해당된다. 『가례』의 내용을 행례 단위로 의절화하면서, 『사의』의 書式과 祝文을 보충하였다. 사당제도와 오복제도 등은 과감하게 생략했고, 필요할 경우 『가례』에 없는 별도의 조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사의』의 예설을 중심으로, 「청기의」를 보충하고 「조석곡전」을 하나의 의절로 마련했다. 그러나 「기제의」의 考妣並祭와 「묘제의」의 親盡墓祭 문제에서는 자신의 예설을 드러내기도 했다.
『상체편람』은 가례뿐만 아니라 서당의 의례를 함께 수록함으로써 서당 중심의 예교에 주목했다. 「향음주의」와 「사상견의」는 서당의 행례에 맞게 변용되었고, 유교적 제향을 위한 「창주정사석채의」와 「문묘석전의」는 서당의 문생들이 지켜야할 지식으로 인식되었다. 망국의 시기에, 서당은 유학의 예교를 실천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고, 노상직은 서당의 예교를 통해 유학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끝까지 지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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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의 『전례유집(全禮類輯)』과 예설 교류

저자 : 남재주 ( Nam Jae-ju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1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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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堂 柳疇睦은 경상북도 尙州에서 활동하면서 退溪學派의 西厓學統을 계승한 학자이다. 그는 300여 명이 넘는 제자를 배출하였고 학술 진흥, 특히 禮學 분야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가 편찬한 『全禮類輯』은 家禮와 邦禮를 전체적으로 아우른 禮書로, 조선시대 예학 저술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면밀한 것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는 官撰이 아니라 한 개인의 학문적 열정으로 편찬한 私撰 '예설 종합서'로 그의 사후에 제자들과 지역 유림의 협조로 최종 정리되었다. 그가 가례뿐만 아니라 방례까지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은 西厓 柳成龍과 洛波 柳厚祚 등으로 이어져 家學전통으로 자리매김한 '世臣之義'의 가르침을 출처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였던 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류주목의 제자로서 近畿南人 性齋 許傳의 제자 명단에 함께 수록된 인물이 20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 특히 『전례유집』에 수록된 '師服' 조목은 영남남인 東巖 柳長源의 『常變通攷』 자료를 기초로 하여 편찬하였는데, 류주목의 제자이자 허전의 제자인 克齋 盧佖淵의 아들 小訥 盧相稷이 「師服考」라는 저술에서 이들 자료를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경상북도 상주 중심의 류주목 제자와 경상남도 중심의 허전 제자 간에 학술적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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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의(士儀)』의 체제와 예설의 학파적 성격

저자 : 이봉규 ( Lee Bong-kyoo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7-14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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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이 편성하였던 『사의』의 체제는 1870년에 간행된 목활자본에서 알 수 있다. 허전 사후 1909년에 간행된 목판본 『사의』는 제자와 영남 지역의 유학자들이 함께 활자본에 교정을 가하고 체제를 일부 새로 편성한 것이다. 그러나 목판본은 활자본 이후 허전과 제자들에 의해 가해진 수정을 일부만 반영하였다. 따라서 향후 『사의』의 정본을 편찬할 경우, 두주와 노필연의 「士儀考誤增註」 등을 교감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조선에서 편찬되는 가례서는 『가례』의 체제를 따르는 유형과, 독자적으로 의절을 수립하고 주석을 부가하는 유형으로 구분된다. 후자의 방식은 이익의 『星湖禮式』에서 시작되었고, 정약용의 『四禮家式』으로 이어졌다. 허전의 『사의』는 고례와 『가례』를 중심으로 의절을 세우고 독자적으로 주석을 부가하면서, 변례와 상관되는 쟁점에 대해서 “辨疑”의 항목을 두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였다. 허전은 사의도(106도)로 가례도(31도)를 대체하였고, 부고전 告廟, 成殯, 계후자에 대한 상복 등 『가례』에 없거나 『가례』와 다른 규정을 의절에 새로 추가하였다. 『사의』는 성호학파의 예학 전통을 계승하면서 당대 중국과 한국에서 논의된 예설까지 수렴하여 서민의 수준에서 가례를 실행할 수 있게 편성한 독자적인 가례서이다. 허전은 예설에서 『星湖禮說類編』의 설을 주로 계승하면서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견해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正體를 후계자가 아닌 부친과 조부에게 해당한다는 것, 적자가 생존해 있으면 적손의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조모나 모친이 생존해 있을 때 승중손의 처가 시조부에 대하여 중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호학파의 관점을 수렴하여 제시한 것이다. 반면, 입후한 뒤의 승계에서 계후자의 지위를 우선시하고, 환종을 반대한 것은 이이의 견해를 계승한 것이다. 또한 계후자의 상복을 의복이 아닌 正服으로 규정하면서 이익, 이상정, 권상하, 한원진, 이재 등의 견해를 원용하였다. 허전은 정약용의 『상례사전』의 견해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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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常變通攷)』가 조선후기 예학사(禮學史)에 끼친 영향

저자 : 정길연 ( Jeong Gil-yeo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9-18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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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세기 영남의 예학자 동암 류장원의 『상변통고』가 조선 후기 예학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였다. 『상변통고』는 처음 기획부터 주자의 『가례』를 표본으로 삼고, 그리고 『의례경전통해』의 방대함을 겸하는 것이 그 편찬 목적이었다. 이 책의 방대하고 면밀한 고증면에서는 영남의 예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방대한 『상변통고』는 나름의 문제도 안고 있었다. 그것은 방대함이 주는 불편함이었다. 이로 인해 素隱 柳炳文, 定齋 柳致明, 近庵 柳致德 등은 『상변통고』의 이러한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 각각 예서를 편찬하였다. 또한 『상변통고』는 영남 학자들은 물론이고 기호학파의 학자들에게까지 고증서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상변통고』를 참고한 학자들 중에는 서울의 性齋 許傳과 芸窓 朴性陽, 경기도 과천의 果齋 成近默, 충청도 보령의 肅齋 趙秉悳, 전라도 전주의 艮齋 田愚, 경주의 立軒 韓運聖 등 그 범위가 전국에 걸쳐있다. 이들 학자들은 모두 방대한 자료를 수록한 『상변통고』를 통해 의심스러운 禮說을 살피고 논단했다. 뿐만아니라 『상변통고』를 숙독한 나머지 그 미비점을 지적하는 데 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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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성재(性齋) 허전(許傳)의 상복(喪服) 연구

저자 : 차서연 ( Cha Seo-yeo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2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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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애통한 심정을 표상하는 복식인 喪服에 대한 性齋 許傳의 해석을 고찰한 것이다. 성재는 옛 복식의 제도 중 후세까지 전해진 것은 深衣와 상복이고, 두 옷은 上衣와 下裳의 분리 여부만이 다를 뿐 전체적인 제도는 같다고 전제한다. 상복의 제도를 규정한 『儀禮』 「喪服」과 심의의 제도를 규정한 『禮記』 「玉藻」와 「深衣」는 상호 보완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는 성재의 해석적 입장은 그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古禮를 기준으로 상복의 제도를 복원한 성재는 이를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고례를 그대로 따르기 힘들 경우 『家禮』의 규정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고례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당시 조선에서 행해지던 시속을 적극 반영하였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대체품을 사용하도록 제시하면서, 무엇보다도 애통해하는 마음의 표상이라는 상복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형편에 맞추어 검소하게 마련할 것을 강조한다.
성재가 고례와 『가례』 그리고 조선의 시속까지 반영하여 상복의 형태를 논증하되 절검까지 고려하여 시행하도록 제안한 것은 상복의 의례적인 상징성과 실제적인 기능성을 회복해 상례의 수행 가능성을 높이려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 그는 상복이 가장 오래된 유교적 복식의 하나이고 애통한 심정을 표상하는 의례복이며 상례를 치르는 오랜 기간 실제로 입고 생활하는 일상복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 복식으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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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의 예학(禮學)

저자 : 한재훈 ( Han Jae-hoo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9-25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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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堂 李南珪(1855∼1907)의 禮學은 조선시대 예학의 마지막 장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예학은 지속적인 연구의 축적과 함께 시기별로 특징적 진전을 이루었으며, 수당의 예학은 이와 같은 성취 위에서 전개되었다. 그중에서도 이러한 진전을 주도했던 인물로서 수당의 예학에 지속적으로 소환되는 인물은 退溪 李滉(1501∼1570)과 沙溪 金長生(1548∼1631) 그리고 星湖 李瀷(1681∼1763)이다. 특히 수당의 예학이 퇴계와 사계에 연결되는 통로는 성호였다. 성호는 일찍이 퇴계의 예학을 『李先生禮說類編』으로 정리했고, 사계의 예학에 대해서는 疑禮問解辨疑를 통해 폭넓게 변증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당이 성호의 예학을 묵수하거나 답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讀書劄記 형식의 여러 저술을 통해 성호 예학에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수당의 문집이 남아서 전하기는 하지만, 日兵에 의해 1907년 아들(李忠求)과 함께 순국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저술이 충분히 수습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런 추측은 그의 예학 관련 자료 역시 현재 전하는 것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본 논문은 남아 있는 자료들 중에서 「讀星湖疑禮問解辨疑」와 「爲妻無練說」 그리고 「讀星湖禮說」을 중심으로 수당의 예학을 검토했다. 검토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수당의 예학은 기본적으로 성호 예학의 자장 내에서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호를 통해 퇴계와 사계의 예학까지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위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성호의 예학을 그저 묵수하거나 답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냉정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성호가 비판적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사계를 옹호하고 성호를 비판하는 면까지 보여주었다. 이는 수당의 예학적 특성이 성호의 예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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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지역학 저변으로 바라 본 덕촌 양득중 - 남겨진 유적 현황과 과제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승대 ( Kim Seung-da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9-30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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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촌 양득중은 조선후기 실학과 양명학에 있어서 매우 비중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의 삶과 사상을 조망하고 그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위해서는 지역학적 차원에서의 체계적인 접근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존하는 그의 문집인 『덕촌집』 이외에 관련 저작물의 집적화와 최근 발굴된 고문서의 번역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덕촌의 생장과 활동, 추숭 관련 유적에 대한 면밀한 지역학적 차원의 연구가 요망된다. 특히 그 대상지역으로 해남 영신리, 영암 구림, 화순 일원, 보성 박실, 공주 덕촌, 노성 유봉, 부안 일원 등이 주목된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으로서의 덕촌 양득중에 대한 실학자 연구를 넘어서 당대 학맥과 인물 교유, 문화콘텐츠화 등에 대한 '한국실학', '호남실학' 차원의 외연 확장이라 여겨진다. 실례로 해남 영신리의 '실사구시 마을' 조성, 영암 구림의 아천 박태초 연구, 공주 덕촌과 명재 윤증의 학맥 조사, 덕촌과 부안의 반계 유형원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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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덕촌 양득중 초상의 제작과 봉안

저자 : 이경화 ( Lee Kyung-hwa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1-33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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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村 梁得中(1665∼1742)은 英祖(재위 1724∼1776)에게 『磻溪隧錄』의 진강을 건의하고 實事求是의 개념을 전하여 실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그는 양명학과 실학적 소양을 겸비한 尹拯(1629∼1714)의 문인이었으며 영조의 신임을 받는 소론계 학자관료이기도 하였다. 1864년 영암의 사림들은 그의 고향 영암에 영당을 건립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하였다. 현재까지도 덕촌 영당은 양득중의 영정을 배향하며 선조와 후손들이 조우하는 공간으로서 운영되고 있다. 본 연구는 덕촌 영당 및 영정과 관련된 현존 자료를 취합하고 영당의 건립과 영정의 봉안 과정을 살피고자 하였다. 아울러 초상의 회화적 면모를 검토하고 관련 의문점을 논의하였다.
초상 속에서 양득중은 심의에 복건을 착용하였으며 무릎을 꿇고 공수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가 착용한 심의복건은 본래 朱子(1130∼1200) 초상의 의상이었다. 심의복건은 宋時烈(1607∼1689) 초상에 선택된 이후 서인-노소론계 문인의 초상에서 빈번하게 재현된 의상으로서 유학자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圖像이기도 하였다. 양득중 초상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특징은 跪坐와 拱手, 즉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마주잡은 경건하고 신중한 태도일 것이다. 예의를 갖춘 유학자의 자세인 궤좌는 조선 초상화에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도상으로서 무엇보다 그의 스승 윤증의 초상을 특징짓는 자세였다. 스승 윤증의 도상을 차용함으로서 양득중은 윤증의 학문적·정치적 계승자로서의 의지를 표상한 것으로 이해된다.
양득중의 영당과 영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이들이 제작 당시 원형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당과 영정은 그간에 보수와 재제작을 통해 변형이 더해진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촌 영정에서 관찰되는 비전통적인 표현 요소는 이것이 근대의 이모본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문중에는 1910년 근대 초상화의 거장 蔡龍臣(1850∼1941)을 초청하여 초상을 다시 제작하였다는 이모 이력이 구전되고 있다. 그러나 초상의 회화적 면모는 채용신의 필치와 상이하며 오히려 당시 전남 지역에서 활약한 지역 화가의 화풍과 긴밀한 관계를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양득중의 경우에 한정하지 않고 근대기 지방에서 활동한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함을 의미할 것이다. 향후에 지속적인 고찰을 통해 양득중 영정 이모의 실재가 분명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이 초상이 지닌 의의를 더욱 분명하게 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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