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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석유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Current Status and Prospect of Chinese Oil History Research

김택경 ( Kim Taek-kyung )
  •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 : 동국사학 70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4월
  • : 215-245(31pages)
동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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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民國시대~1970년대의 연구
Ⅲ. 1980~1990년대의 연구
Ⅳ. 2000~2010년대의 연구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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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 중국의 석유에 관한 선행연구를 ①민국시대~1970년대, ②1980~1990년대, ③2000~2010년대 이상 세 시기로 구분하여 검토해봄으로써 중국 석유사 연구의 가능성을 가늠해보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는 오랜 기간 자료와 연구의 축적을 통해 이제 막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는 민국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에도 일부 이루어졌지만, 2000~2020년 기간 집중적으로 진척되었다. 2000~2010년대 중국에서 석유사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석유사 연구의 환경이 이전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고 중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석유의 확보가 경제는 물론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로 사회적인 인식이 제고된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또 2000~2020년 기간 중국이 ‘세계 속의 중국’과 ‘국제화’를 추구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을 전환시킨 점 역시 석유사 연구가 활성화되는 데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가 심화되기 위해서는 사료 방면에서 다음과 같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1차 자료의 발굴이 지속되어야 한다. 둘째, 기존에 출판된 자료집에서 석유사 관련 자료를 추출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각종 정부기관물이나 年鑒, 地方誌, 신문, 잡지, 연구저서 등의 자료도 시급히 정리를 요한다. 넷째, 영미 국가의 외교 아카이브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업했던 메이저 석유회사 자료의 소재 파악과 정리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현안이다
This paper examined the possibility of research on petroleum history by dividing the prior research on oil in modern China into three periods: ①the period of the Republic of China∼1970s, ②1980∼1990s, and ③2000∼2010s. Overall, it can be assessed that modern Chinese oil history research has just reached the stage of full-fledged research through the accumulation of data and research for a long time. Research on the history of modern Chinese oil began in the period of the Republic of China and partly carried out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period, but it was intensively studied between 2000 and 2020. The following factors were working in the background of the activation of oil history research in China in the 2000-2010s. First, the environment for research on oil history has improved significantly compared to before. Second, as China continued to grow its economy, securing oil was a problem that is directly related to the economy as well as security, which has led to increased social awareness. In addition, the shift in foreign policy to realize “China that affects the world” rather than pursuing of “China in the world” and “globalization” between 2000 and 2020 also contributed to revitalizing the research on oil history.
In order for modern Chinese oil history research to become more active in the future, the following complements must be made in the field of historical sources. First, excavation of primary data should be continuously carried out. Second, it is necessary to extract oil historyrelated data from already published archives. Third, it is urgently necessary to organize materials such as various government data, almanacs, local chronicles, newspapers, magazines, and research books. Fourth, the diplomatic archives of British and American countries and the identification and organization of materials for major oil companies operating in the Asia-Pacific region are also prior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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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225-0376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55-2021
  • :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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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권0호(2021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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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세기 탐라국(耽羅國)의 대외교류와 진상·조공 품목

저자 : 이승호 ( Lee Seung-ho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4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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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5~8세기 耽羅國의 대외교류 전개 양상을 살펴보고, 주변국과 교류 과정에서 전달한 탐라국의 진상·조공품에 대하여 접근해 보았다. 특히 탐라국 대외교류에 대한 그간의 연구가 백제사나 신라사 혹은 일본사의 관점에서 접근되어 온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5~8세기 탐라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탐라국 중심의 시선에서 조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대외 교섭에 활용되었던 탐라국 특산품은 무엇이었는지 검토하였다.
먼저 5~6세기 탐라국의 대외교섭은 백제와 고구려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교섭의 동인과 전개 과정은 탐라국의 주체적인 정세 판단과 대외교섭 노력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476년 백제와의 첫 교섭을 계기로 5세기 후반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인지한 탐라국이 5세기 말경에 백제가 아닌 고구려를 주요 교섭 대상으로 설정하고 '珂'를 진상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한편, 660년 백제 멸망을 기점으로 탐라가 신라와 일본 및 당을 상대로 다각적인 교섭을 진행하며 급변하는 정세에 대응하고 있었음도 확인하였다. 특히 일본과의 교섭 과정에서 탐라국은 耽羅方脯·耽羅鰒 등의 자국 특산물을 활용하였으며, 이와 함께 牛·鹿·鰒·海藻 등이 당시 탐라의 주요 산물이자 대외교섭에 활용된 진상·조공품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보았다.


This study examines the development of Tamra(耽羅) Kingdom's foreign exchange in the 5th to 8th century and also its diplomatic gifts(進上品) delivered to neighboring countries through the exchange. In particular, this author points out the fact that research on Tamra Kingdom's foreign exchange has tended to be approached from the perspective of Baekje(百濟), Silla(新羅), or Japanese history and attempts to investigate international situations around Jeju Island(濟州島) in the 5th to 8th century from the standpoint of Tamra Kingdom.
First of all, Tamra Kingdom's foreign negotiation was carried out to Baekje and Goguryeo(高句麗) in the 5th to 6th century, and the motive of such negotiation and process of its development have been found to be grounded on Tamra Kingdom's independent judgment about the conditions and effort for foreign negotiation. Particularly with the chance of its first negotiation with Baekje in 476, Tamra Kingdom recognized the dramatically changing situations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late 5th century, and around the end of the 5th century, it is supposed that it established not Baekje but Goguryeo as its main target of negotiation and offered 'Okga(玉珂)' as a diplomatic gift.
Meanwhile, it is also found that with Baekje's collapse in 660 as a starting point, Tamra performed multilateral negotiation with Silla, Japan, and Tang(唐) Dynasty to cope with the rapidly changing situations. Especially in the process of its negotiation with Japan, Tamra Kingdom used its national specialties such as Tamra-Stockfish(耽羅方脯) and Tamra-Abalone(耽羅鰒), and supposedly, along with those, items like cowhide(牛皮), deer skin(鹿皮), or seaweed(海藻) should have been adopted not only as Tamra's main products but diplomatic gifts for foreign negotiation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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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세기 탐라의 대외교류

저자 : 고수미 ( Ko Su-m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84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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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0∼12세기 탐라의 대외교류 양상을 분석하여 당시 탐라의 해양성과 해양활동의 실체를 모색하였다. 그간 고려전기 탐라와 고려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정치적 복속 여부, 복속 시기, 성격, 지배형태 등 수장체들간의 교섭관계를 다룬 논의였다. 하지만 '탐라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또한 생업과 삶의 확장을 위해 바다로 나아갔다. 전근대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고 한정된 제주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였다. 당시 바다를 매개로 한 동아시아 교역 시스템 안에서 탐라는 나름의 모색을 통해 송-일본-고려 등 주변 국가와 교류를 하였으며 이들로부터 받아들인 선진문물은 탐라사회에 자극을 주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었다.
고려는 건국 후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으며 이는 팔관회의 외국인 조하의식에서 구체화되었다. 宋, 거란, 여진, 탐라, 일본, 대식국 등과 함께 팔관회의 진헌의례와 하사를 통해 조공무역으로 고려의 다원적 천하관을 구현하였다. 탐라는 이를 활용해 고려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고려를 찾은 타 국가와의 무역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탐라는 고려의 번국으로 조공-책봉 질서 안에서 기미지배권에 놓여 있었지만 독립국으로 존재하면서며 해양을 통한 교류활동을 지속하였다. 그 와중에 기상악화와 선박 파손 등으로 표류하여 송이나 일본에 표착하였는데 이는 의도하지 않았던 또 다른 교류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탐라는 12세기 중반 고려의 지방으로 편제되면서 독립국으로의 지위를 잃음과 동시에 해상활동 범위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고려정부의 과도한 공부와 수탈은 탐라인들의 반발을 불러와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This dissertation analyzes Tamra's exchanges with other countries in the 10th and 12th centuries to explore the maritime characteristics and the nature of Tamra's maritime activities. The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amla and Goryeo, which had been held between the 10th and 12th centuries, was mainly focused on the political part. However, people called the Tamra people also went to the sea to make a living and expand their lives. The nameless Tamra people risked trading across the sea to neighboring countries. The pre-modern sea was a place of life and a world of possibility to expand the limited area of Jeju.
At that time, Tamra interacted with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Song, Japan, and Goryeo through its search in East Asia trade system based on the sea, and advanced civilization accepted from them stimulated Tamra's culture and became the foundation for a new culture.
After the foundation of Korea, Goryeo wanted to enhance the international status embodied in the Palgwanhoe's(八關會) foreign participation event. Merchants who visited Goryeo from Song(송), Kitani(거란), Durchin(여진), Tamra, Japan, and Arabia(大食國) strengthened their tribute Trade and embodied the multi-pronged worldview of Goryeo through a gift-giving event to the king at Palgwanhoe. Tamra took advantage of this and actively participated in relations with Goryeo, earning economic benefits from trade with neighboring countries that visited Goryeo. Although Tamra was ruled by Goryeo, it continued its exchange activities through the sea as it existed as an independent country under the system of appointing tributes and kings. The weather deteriorated and the ship was damaged and drifted to Sung(宋) and Japan, which also gave another opportunity for exchange.
Tamra became a province of Goryeo in the mid-12th century, losing its status as an independent country, and the scope and appearance of maritime activities were greatly reduced. The Goryeo government's heavy tax collection and exploitation caused opposition from Tom Line, which led to a rebe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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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세(近世) 동북아시아 해역질서와 '전복(全鰒)'의 길 -원명교체기(元明交替期)의 제주도(濟州島) 특산물의 교역과 진상-

저자 : 임경준 ( Lim Gyungjune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5-11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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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元明交替 이후 동북아시아 해역질서의 변화 속에서 제주도 사회경제가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특히 제주도의 특산품인 전복을 비롯한 해산물이 이동한 길에 주목하여 살펴보는 데 있다. 15세기 이전 제주도의 사회경제는 海産物의 채취와 교역이 기층에 자리 하면서 大元의 지배 이후 말 목장 경영이 활발해짐에 따라 말의 進上과 교역이 그 위에 표층을 이루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바다와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에 더하여 열악한 토지 생산성이라는 자연환경적 요인이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다시 말해 15세기 이전 제주도는 '交易品'과 '進上品'이라는 두 갈레의 길 위를 교차하는 '물품'들에 의해 사회경제의 기본구조가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북아시아 해역 속에서 제주도의 위치가 변화를 맞이하는 계기는 元·明 교체에 의한 朝貢-海禁 체제의 구축이다. 종래 국가 간의 公貿易 뿐만 아니라 민간 간의 私貿易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던 동북아시아 해역은 새롭게 성립된 明朝 정권의 강고한 정책 전환으로 인하여 일체의 대외교역이 국가 간의 公貿易으로 일원화된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의 영유권을 차지한 朝鮮王朝는 이 지역에 貢納制에 기반을 둔 수취체제를 시행하면서 제주도 지배를 관철해 나간다. 그 결과 이제까지 제주도산 전복이 이동하던 주요한 '길'이었던 '交易品의 길'과 '進上品의 길' 중에서 전자가 역내 교역으로 축소되며 후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동북아시아 해상교역의 결절점으로서 제주도가 갖고 있던 지위의 상실을 '전복의 길'의 변화를 통해 간취할 수 있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what changes have occurred in the socioeconomy of Jeju Island in the context of changes in the maritime order of Northeast Asia since the 15th century, especially focusing on the migration path of marine products such as abalone. Before the 15 century, the trade of marine products was the foundation of the socioeconomic structure of Jeju Island. However, after the Mongol Empire established its rule over Jeju Island, tributes became more important. In addition to the geographical condition of Jeju Island surrounded by the sea, the environmental condition of poor land productivity also affected the background. In other words, before the 15 century, the basic socioeconomic structure of Jeju Island was established through the movement of trade goods and tributes.
The establishment of the system of maritime exclusion-tribute for the court by the Ming Dynasty can be a clue to the changing position of Jeju Island in Northeast Asian sea areas. Traditionally, not only public trade but also private trade was freely carried out in the Northeast Asian sea areas. However, as the Ming Dynasty changed its policy to severely restrict private trade, the foreign trade of Northeast Asia changed drastically. However, by the Ming Dynasty's policy of severely restricting private trade, foreign trade in Northeast Asia would be unified into public trade. Under such circumstances, Joseon Dynasty, which took control of Jeju Island, established a tax collection system based on the tributary system. As a result, the nature of marine products such as abalone that have been collected from Jeju Island will be changed from trading goods to tributary goods. At the same time, the way these things moved was also changed from the way of trade goods to the way of tribute goods.
In other words, Jeju Island's position in the maritime world of Northeast Asia can be read from the change in the path where abalones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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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アイヌの北方交易と蝦夷錦という中国製の絹織物

저자 : 中村和之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5-14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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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조 니시키는 일본의 선주민족인 아이누의 조상이 북방 교역을 통하여 입수한 중국제 견직물의 총칭이다. 아이누의 북방교역 루트는 홋카이도에서 사할린섬 및 아무르강 하류 일대를 경유하여 최종적으로 만추리아(오늘날의 중국 동북지방)에 이르고 있었다. 에조 니시키란 아이누의 비단이란 의미로 일본인은 아이누가 소지한 비단을 아이누 인들이 만든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으나, 본래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비단이었다. 현재 에조 니시키는 龍袍·蠎袍와 같이 봉제된 의복 형태나 옷감의 형태로 남아 있다.
중국제 비단이 아무르강 하류 지역에까지 운반된 것은 중국왕조가 조공 교역을 행하였던 게 기인한다. 13세기 후반 이 지역에 진출한 몽골제국·원조는 니브흐(구칭은 길랴크)를 지배하에 편입시키고 아이누와 단속적으로 전쟁을 벌였다. 이렇게 아이누는 원조의 모피 교역 네트워크에 편입되었다. 15세기 초 명조는 위소제를 아무르강 하류 유역에 가지 전개하였다. 또 17세기 후반에는 청조가 이 일대에 변민 지배를 행하였다. 1809년 아무르 강변의 데렌에 이른 마미야 린조는 청조의 관원과 필담을 통하여 의사소통하여 조공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있다. 여기에는 변민들이 흑담비의 모피를 공납하고 비단을 하사하는 모습도 묘사되어 있다. 이 비단이 바로 일본인에게 에조 니시키라 불렸던 비단이었다.


蝦夷錦とは、日本の先住民族であるアイヌの祖先が、北方交易で手に入れた中国製の絹織物の総称である。アイヌの北方交易のルートは、北海道からサハリン島およびアムール河の下流域を経由して、最終的にはマンチュリア (現在の中国東北地方) に至っていた。蝦夷錦とはアイヌの錦という意味で、日本人はアイヌが持つ錦をアイヌの人たちが作ったと誤解していたが、もともとは中国製の錦であった。現在、残っている蝦夷錦の資料には、龍袍·蠎袍などの服の形に縫製されたものと、布地の形のものがある。
中国製の錦が、アムール河下流域にまで運ばれたのは、中国王朝が朝貢交易を行っていたためであった。13世紀後半にこの地域に進出したモンゴル帝国·元朝は、ニヴフ(旧称はギリヤーク)を支配下に組み込み、アイヌとは断続的に戦いを交えた。その一方で、元朝の支配下にいたツングース系の野人とアイヌとは沈黙交易を行っていた。このようにアイヌは、元朝の毛皮交易のネットワークに組み込まれていた。15世紀の初めに、明朝は衛所制をアムール河下流域に展開した。また17世紀後半には、清朝が辺民支配をこの地域に及ぼした。明朝と清朝は、朝貢交易に際して中国製の絹織物を先住民に下賜した。1809年にアムール河畔のデレンに至った間宮林蔵は、清朝の役人と筆談で意思を通じ、朝貢の様子を絵に残している。そこには、辺民たちが黒貂の毛皮を貢納し、錦の布地を下賜される様子が描かれている。この錦が、日本人から蝦夷錦と呼ばれたも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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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석유와 미국역사가들의 기억전쟁(I)

저자 : 양홍석 ( Yang Hong-seuk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7-18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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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세기를 지나오면서 역사 서술의 방식은 놀랍게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인간을 역사의 중요한 행위 주체로 보고 그들 간의 의지와 갈등을 분석 조망하는 것은 여전히 주목받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날” 이후 역사 서술 방법론과 다양성을 결코 무시할 수도 없다. 특히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이용하는 자원이나 물류를 역사의 주체로 보고, 그 주위에 기생하는 인간들의 생활방식, 무역, 외교,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최근 빅 히스토리의 등장으로 훨씬 더 풍성해지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 논문은 20세기 석유 자원을 주목하여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 접근을 확인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부분에서의 지금까지의 역사적 연구의 축적과 방법론적 고찰은 무시 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지금까지의 선형적 시간 서술에서 벗어난 수평적 시간과 그 조망은 파노라마식 역사를 선사하고 있다. 여기에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이 검은 액체 연구는 각국사의 한계를 넘어서 글로벌 역사를 관전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해 줄 수 있다. 게다가 연구사를 조망하는 과정에서 얻은 의외의 수확은 지금까지의 이 분야의 접근 방식이었던 지정학적 접근에서 한 차원 진보한 역사가들의 수고를 확인 할 수도 있다. 더불어 이들 역사학자들의 통찰과 지혜를 통해서 미래 지구 생태학을 위한 해답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This essay aims to understand the recently American history of historiography on the oil study. Specially, I am interesting about why and how American historians could been approached and transformed in the oil and its many interesting-sub title in the long historical vistas. At the earlier time of oil study, they mainly focused on oil's strategic and tactical weapons to develop America friendly environmental condition in the world politics and economics. On the other hand, after the BP disaster in the Gulf of Mexico, they have turned to the effect on ecological terms. Finally, this turn is very significant because there's happened so many kinds of historical approaches on the oil history, but traditional strategic momentum has been weakened rela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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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본 석탄 연구사의 현황과 과제

저자 : 김경옥 ( Kim Kyung-ok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5-21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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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업은 현대 일본의 경제적 발전의 토대가 된 산업으로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석탄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석탄 연구사도 국가와 산업의 관계, 특히 국가의 관리와 통제 등, 국가의 개입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및 국가와 기업간의 관계, 노동, 복지, 지역사와 같은 제반 연구영역과 폭넓은 관계를 보이며 연구사적 의미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일본 석탄 연구사의 현황과 과제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석탄'이라는 자원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보기 위해 시계열에 따른 사건별로 구분하여 시대적 특징 및 국가의 개입을 중심으로 연구사의 현황을 정리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근세 말과 메이지 초기의 광산(광업)사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아시아 태평양전쟁 시기, 점령기와 고도경제성장기, 그 외의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으로서의 광산 연구사로 구분하여 연구사의 현황을 검토한다. 석탄연구사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석탄업의 진입과 발전, 퇴출 등 모든 과정에 국가의 개입과 석탄업 간의 상관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마지막으로, 기존 석탄 연구사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여성노동자와 이미 폐광(폐산)되어 흔적조차 없어진 조선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지 기억의 방법적 측면을 생각해 보는 것을 연구과제로서 제의하는 바이다.


Modern Japan's economic development has been based on its coal industry, and its importance in modern Japanese history cannot be overemphasized. Likewise, coal research history concerns itself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ation and industry, especially that of the nation's intervention in the industry, including management and control, and its ties with business, labor, welfare, and a wide range of research areas such as local history. All these aspects can have great implications for the research history. This paper examines the current status and tasks of coal research history in Japan. To clearly examine the nation's involvement in the natural resource, we will classify each event according to a time series and examine the current status of research history, with a focus on the times and the nation's intervention. The events in the time series first look at the research status of mining history in the late modern and early Meiji periods, then research on coal during the Asian-Pacific War, followed by that of the period of occupation and high economic growth, and last, mines as cultural heritage and tourism resources. The data is then divided into private research and reviewing the current status of the research, by which the correlation between the nation's intervention and all processes of the coal industry, including its entry, development, and exit, can be examined. Finally, the paper suggests further research in the methods of remembering and documenting the lives of the female workers and the Korean workers who are fairly invisible in existing research in coal research history and whose traces cannot be found eas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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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중국 석유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저자 : 김택경 ( Kim Taek-kyung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4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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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 중국의 석유에 관한 선행연구를 ①민국시대~1970년대, ②1980~1990년대, ③2000~2010년대 이상 세 시기로 구분하여 검토해봄으로써 중국 석유사 연구의 가능성을 가늠해보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는 오랜 기간 자료와 연구의 축적을 통해 이제 막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는 민국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에도 일부 이루어졌지만, 2000~2020년 기간 집중적으로 진척되었다. 2000~2010년대 중국에서 석유사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석유사 연구의 환경이 이전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고 중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석유의 확보가 경제는 물론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로 사회적인 인식이 제고된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또 2000~2020년 기간 중국이 '세계 속의 중국'과 '국제화'를 추구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을 전환시킨 점 역시 석유사 연구가 활성화되는 데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가 심화되기 위해서는 사료 방면에서 다음과 같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1차 자료의 발굴이 지속되어야 한다. 둘째, 기존에 출판된 자료집에서 석유사 관련 자료를 추출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각종 정부기관물이나 年鑒, 地方誌, 신문, 잡지, 연구저서 등의 자료도 시급히 정리를 요한다. 넷째, 영미 국가의 외교 아카이브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업했던 메이저 석유회사 자료의 소재 파악과 정리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현안이다


This paper examined the possibility of research on petroleum history by dividing the prior research on oil in modern China into three periods: ①the period of the Republic of China∼1970s, ②1980∼1990s, and ③2000∼2010s. Overall, it can be assessed that modern Chinese oil history research has just reached the stage of full-fledged research through the accumulation of data and research for a long time. Research on the history of modern Chinese oil began in the period of the Republic of China and partly carried out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period, but it was intensively studied between 2000 and 2020. The following factors were working in the background of the activation of oil history research in China in the 2000-2010s. First, the environment for research on oil history has improved significantly compared to before. Second, as China continued to grow its economy, securing oil was a problem that is directly related to the economy as well as security, which has led to increased social awareness. In addition, the shift in foreign policy to realize “China that affects the world” rather than pursuing of “China in the world” and “globalization” between 2000 and 2020 also contributed to revitalizing the research on oil history.
In order for modern Chinese oil history research to become more active in the future, the following complements must be made in the field of historical sources. First, excavation of primary data should be continuously carried out. Second, it is necessary to extract oil historyrelated data from already published archives. Third, it is urgently necessary to organize materials such as various government data, almanacs, local chronicles, newspapers, magazines, and research books. Fourth, the diplomatic archives of British and American countries and the identification and organization of materials for major oil companies operating in the Asia-Pacific region are also prior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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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근현대 한국 석유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저자 : 권오수 ( Kwon Ohsoo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7-27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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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 석유사 연구는 1973년 석유 파동 직후 한국의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국 석유사에 대한 접근은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석유 전문가들의 정책적 제언을 위한 부수적인 차원에서 개괄적이고 간략하게 서술되었다. 연구 경향 또한 1964년 울산정유공장 준공으로부터 시작된 정유 산업의 발전 과정에 주로 집중되었다. 이후 한국 석유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1989년 해방 후 귀속기업체인 조선석유주식회사의 처리 과정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2010년 중반 이후 한국 석유의 제도사적 접근, 울산정유공장 건설 과정에 대한 다층적 접근,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석유 정책, 해방 후 미국의 대한 석유 정책 등 다각적으로 접근되고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석유사의 종합적 이해와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석유가 가지는 의의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직 밝혀져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한국 석유사 연구의 향후 연구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우선 한국 석유사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미국의 대한 석유 정책에 관한 연구를 심화해야 한다. 특히 미국 대외 석유 정책에서 가장 근간을 이루는 코포럿 리버럴리즘이 한국에 적용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근현대 한국 석유사 전개 과정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한 정책 연구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음으로 한국 석유사는 미국 중심의 국제 석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한 석유 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일본, 홍콩,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연구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석유 회사 관련 자료를 발굴함과 동시에 기업사 연구 또한 확대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석유 산업의 독자적인 발전 과정 또한 심화하고, 석유로 인해 나타난 사회적, 문화적 변화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지평의 확대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석유가 가지는 의미는 더욱 폭넓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Research on Korean oil history began shortly after the 1973 oil crisis, with the provision of measures to overcome Korean energy problems. However, the approaches to Korean oil history was outlined and briefly as a supplement to the policy recommendations by oil experts. The research trends also focused mainly on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oil refinery industry, after the completion of the Ulsan refinery in 1964. Since then, research on Korean oil history has been approached and expanded from multiple perspectives, such as the disposing process of the Vested, the institutional history, the construction plan of the Ulsan refinery, the oil policies during Japanese occupation, and the U.S. oil policy in Korea after the Liberation. However, there are still many subjects to be studied for a comprehensively understanding of Korean oil history. This article will present prospects of research on Korean oil history as follows. Firstly, It is necessary to be deepened research on the U.S. oil policy toward Korea, which exerted a strong influence on Korean oil history. In particular, it is important to analyze the process of applying the American corporate liberalism to Korean oil history. Secondly, since Korean oil history has developed around the international oil network, the spatial scope of research should be expanded. Lastly, it is necessary to be deepened the independent development of Korean oil industry, and analyzed the social and cultural changes caused by oil. This expansion of research will help to understand more broadly the meaning of oil in the development of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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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선 전기 의궤(儀軌) 편찬 관련 기록 검토

저자 : 정영미 ( Jeong Young-m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9-31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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儀軌는 조선 전기부터 편찬되었지만, 편찬이 확인되는 몇 종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의궤가 편찬되었는지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전기의궤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자료이므로, 실록에 수록된 의궤 관련 기록을 검토하여 편찬된 의궤의 목록을 추출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에 편찬된 의궤 23종의 명칭을 확인하고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23종의 의궤를 주제별로 喪葬, 祔廟, 冊封, 嘉禮, 營建의 5가지 범주로 구분하면 상장 15종, 부묘 2종, 책봉 2종, 가례 3종, 영건 1종으로, 상장 관련 의궤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영건에 관한 『景福宮造成儀軌』를 제외한 22종이 모두 국왕을 비롯한 왕실 구성원과 관련된 국가 의례에 대한 의궤이다.
의궤의 내용을 주제별로 모아 살펴보면 상장 의궤에는 상장례의 기한, 襲과 小斂, 大斂에 사용한 의복의 수효, 祭奠의 종류, 제물의 종류와 수효, 百官의 服制, 국왕의 전교 등이 수록되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의 의궤 대부분이 '~도감의궤'라는 명칭을 가진 데 비해 조선 전기의 의궤 23종 가운데 '도감의궤'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편찬된 의궤와 특정 국가 의례 등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도감과의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3종을 제외한 20종의 의궤가 도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祭享의 祭文과 祝文을 모아 놓은 香室儀軌의 존재와 『忌晨齋儀軌』,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등의 불교 의궤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의궤는 필사본으로 3부를 제작하여 영구 보존을 위해 史庫에, 실무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예조 등에 나누어 보관하였으며, 의궤의 주제와 동일한 유형의 의례를 행할 때 前例를 확인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의궤의 편찬 목적이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사실대로 기록하여 참고로 삼기 위한 것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Uigwe was complied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but it is not clear which Uigwe was compiled except for a few confirmed ones. The Veritable Records of Joseon Dynasty contains the most information about the Uigwe, the complied list of Uigwe was extracted by reviewing the records relataed to Uigwe in The Veritable Records of Joseon Dynasty. Through this,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e names of the 23 types of Uigwe compil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estimate the period of compilation.
If 23 types of Uigwe are divided into five categories: funeral, enshrinement, installation, garye(royal weddings), and yeonggeon (construction of royal buildings). There are 15 cases of funeral, 2 cases of enshrinement, 2 cases of installation, 3 cases of garye, 1 cases of yeonggeon, funeral related Uigwe was most. And all 22 types, except for Gyeongbokgung Palcae josung Uigwe(『景福宮造成儀軌』) on yeonggeon, are Uigwe for national rites related to the king and other members of the royal family.
If we look a the contents of Uigwe by subject, we can see that the funeral Uigwe included funeral period, the numbers of shroud, the types of a sacrificial rite, the kinds and numbers of sacrifice, mourning of all the government officials, the order of king.
While most of Uigwe in the late Joseon period was named Dogam (都監) Uigwe, among the 23 types of Uigwe in early Joseon period, there is no name as Dogam Uigwe. However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omplied Uigwe and Dogam, temporarily installed for rites of specific country, it was confirmed that 20 types of Uigwe expect for 3 types are related to the Dogam. In addition to this, the existence of the Hyangsil(香室) Uigwe, a collection of the funeral oration and ritual prayer in ancestor worship and Buddhist Uigwe, Gishin-jae Uigwe(『忌晨齋儀軌』) and Beopgye Seongbeom Suryuk Seunghwe Sujae Uigwe(『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could also be identified.
The Uigwe was compiled 3 copies of handwritten and kept separate in History Archives for permanent preservation and Yejo(Ministry of Rites) for practical use.
To perform the same type of ritual as the subject of Uigwe, used as a reference to confirm the precedent. Therefore, it was confirmed that the purpose of compliment of Uigwe was to record of important national events and refer to the 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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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세기 율곡학파 내 성리설의 변화

저자 : 나종현 ( Na Jonghy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19-35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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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로부터의 유산을 기반으로 17세기 율곡학파는 학파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율곡 이이의 저서 간행 작업을 통해 그의 성리설을 하나의 학술 전통으로 확립시켰고 주자성리학의 정통으로 인정받고자 하였다. 퇴계학파와의 대립 속에서 이이 이론의 정당성 문제가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비화함에 따라, 율곡학파에서는 이이의 이론이 주희로부터 내려오는 성리학의 정통을 이었으며 어떠한 문제점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7세기 율곡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송시열은 이이의 이론 구조 속에서 理의 역할에 대해 해명하여 학파의 이론적 과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전통의 공고화는 역설적으로 전통의 해석을 둘러싼 학술적 분기를 가져왔다. 율곡학파의 이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은 다양한 학술적 모색으로 이어져 학파의 학술적 분기를 가속화하였다. 김창협은 理의 주도적 역할을 받아들이면서 율곡학파의 이론적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고, 그의 견해는 학파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김창협과 달리, 권상하는 현실에서 氣의 발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율곡학파의 입장을 더욱 강하게 적용하여, 현실의 모든 국면에 氣質이 영향을 준다는 전제에 따라 학파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이는 일견 학술 전통의 墨守로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 그는 이이나 송시열보다 氣의 작용을 더욱 철저히 적용하여 학술 전통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In the 17th century, Yulgok's successors began to form a school, based on the heritage from the previous generation. They established Yulgok's theory as an academic tradition through the publication of Yulgok's book and sought to be recognized as an orthodox of Neoconfucianism tradition. As the issue of legitimacy of Yulgok's theory had escalated into a political debate in the confrontation with Toegye School, Yulgok School emphasized that this theory was the orthodoxy of Neo-Confucianism from Zhu xi and there was no problematic matters. Song Si-yeol, a representative figure of the Yulgok School in the 17th century, explained the role of li(理) within the theoretical structure of his school to solve the theoretical problems of the school, while supporting his theory of reform by using Heavenly Principle(天理) as an example.
Reinforcement of tradition ironically brought about academic division over interpretation of tradition. Especially, since the theory of Yulgok School clashed with previous Neo-Confucian tradition in many ways, their academic division accelerated over how to solve that theoretical task. Kim Ch'ang-hy p tried to solve this task by fully accepting the leading role of li(理), which was actually a deviation from the basic idea of Yulgok School. Different from Kim, Kw n Sang-ha further elaborated the school's theory by emphasizing the role of qi(氣) and by claiming that Physical Substance affects every condition in rea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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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세기 탐라국(耽羅國)의 대외교류와 진상·조공 품목

저자 : 이승호 ( Lee Seung-ho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4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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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5~8세기 耽羅國의 대외교류 전개 양상을 살펴보고, 주변국과 교류 과정에서 전달한 탐라국의 진상·조공품에 대하여 접근해 보았다. 특히 탐라국 대외교류에 대한 그간의 연구가 백제사나 신라사 혹은 일본사의 관점에서 접근되어 온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5~8세기 탐라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탐라국 중심의 시선에서 조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대외 교섭에 활용되었던 탐라국 특산품은 무엇이었는지 검토하였다.
먼저 5~6세기 탐라국의 대외교섭은 백제와 고구려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교섭의 동인과 전개 과정은 탐라국의 주체적인 정세 판단과 대외교섭 노력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476년 백제와의 첫 교섭을 계기로 5세기 후반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인지한 탐라국이 5세기 말경에 백제가 아닌 고구려를 주요 교섭 대상으로 설정하고 '珂'를 진상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한편, 660년 백제 멸망을 기점으로 탐라가 신라와 일본 및 당을 상대로 다각적인 교섭을 진행하며 급변하는 정세에 대응하고 있었음도 확인하였다. 특히 일본과의 교섭 과정에서 탐라국은 耽羅方脯·耽羅鰒 등의 자국 특산물을 활용하였으며, 이와 함께 牛·鹿·鰒·海藻 등이 당시 탐라의 주요 산물이자 대외교섭에 활용된 진상·조공품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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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세기 탐라의 대외교류

저자 : 고수미 ( Ko Su-m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84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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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0∼12세기 탐라의 대외교류 양상을 분석하여 당시 탐라의 해양성과 해양활동의 실체를 모색하였다. 그간 고려전기 탐라와 고려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정치적 복속 여부, 복속 시기, 성격, 지배형태 등 수장체들간의 교섭관계를 다룬 논의였다. 하지만 '탐라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또한 생업과 삶의 확장을 위해 바다로 나아갔다. 전근대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고 한정된 제주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였다. 당시 바다를 매개로 한 동아시아 교역 시스템 안에서 탐라는 나름의 모색을 통해 송-일본-고려 등 주변 국가와 교류를 하였으며 이들로부터 받아들인 선진문물은 탐라사회에 자극을 주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었다.
고려는 건국 후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으며 이는 팔관회의 외국인 조하의식에서 구체화되었다. 宋, 거란, 여진, 탐라, 일본, 대식국 등과 함께 팔관회의 진헌의례와 하사를 통해 조공무역으로 고려의 다원적 천하관을 구현하였다. 탐라는 이를 활용해 고려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고려를 찾은 타 국가와의 무역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탐라는 고려의 번국으로 조공-책봉 질서 안에서 기미지배권에 놓여 있었지만 독립국으로 존재하면서며 해양을 통한 교류활동을 지속하였다. 그 와중에 기상악화와 선박 파손 등으로 표류하여 송이나 일본에 표착하였는데 이는 의도하지 않았던 또 다른 교류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탐라는 12세기 중반 고려의 지방으로 편제되면서 독립국으로의 지위를 잃음과 동시에 해상활동 범위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고려정부의 과도한 공부와 수탈은 탐라인들의 반발을 불러와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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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세(近世) 동북아시아 해역질서와 '전복(全鰒)'의 길 -원명교체기(元明交替期)의 제주도(濟州島) 특산물의 교역과 진상-

저자 : 임경준 ( Lim Gyungjune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5-11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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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元明交替 이후 동북아시아 해역질서의 변화 속에서 제주도 사회경제가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특히 제주도의 특산품인 전복을 비롯한 해산물이 이동한 길에 주목하여 살펴보는 데 있다. 15세기 이전 제주도의 사회경제는 海産物의 채취와 교역이 기층에 자리 하면서 大元의 지배 이후 말 목장 경영이 활발해짐에 따라 말의 進上과 교역이 그 위에 표층을 이루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바다와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에 더하여 열악한 토지 생산성이라는 자연환경적 요인이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다시 말해 15세기 이전 제주도는 '交易品'과 '進上品'이라는 두 갈레의 길 위를 교차하는 '물품'들에 의해 사회경제의 기본구조가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북아시아 해역 속에서 제주도의 위치가 변화를 맞이하는 계기는 元·明 교체에 의한 朝貢-海禁 체제의 구축이다. 종래 국가 간의 公貿易 뿐만 아니라 민간 간의 私貿易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던 동북아시아 해역은 새롭게 성립된 明朝 정권의 강고한 정책 전환으로 인하여 일체의 대외교역이 국가 간의 公貿易으로 일원화된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의 영유권을 차지한 朝鮮王朝는 이 지역에 貢納制에 기반을 둔 수취체제를 시행하면서 제주도 지배를 관철해 나간다. 그 결과 이제까지 제주도산 전복이 이동하던 주요한 '길'이었던 '交易品의 길'과 '進上品의 길' 중에서 전자가 역내 교역으로 축소되며 후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동북아시아 해상교역의 결절점으로서 제주도가 갖고 있던 지위의 상실을 '전복의 길'의 변화를 통해 간취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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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アイヌの北方交易と蝦夷錦という中国製の絹織物

저자 : 中村和之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5-14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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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조 니시키는 일본의 선주민족인 아이누의 조상이 북방 교역을 통하여 입수한 중국제 견직물의 총칭이다. 아이누의 북방교역 루트는 홋카이도에서 사할린섬 및 아무르강 하류 일대를 경유하여 최종적으로 만추리아(오늘날의 중국 동북지방)에 이르고 있었다. 에조 니시키란 아이누의 비단이란 의미로 일본인은 아이누가 소지한 비단을 아이누 인들이 만든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으나, 본래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비단이었다. 현재 에조 니시키는 龍袍·蠎袍와 같이 봉제된 의복 형태나 옷감의 형태로 남아 있다.
중국제 비단이 아무르강 하류 지역에까지 운반된 것은 중국왕조가 조공 교역을 행하였던 게 기인한다. 13세기 후반 이 지역에 진출한 몽골제국·원조는 니브흐(구칭은 길랴크)를 지배하에 편입시키고 아이누와 단속적으로 전쟁을 벌였다. 이렇게 아이누는 원조의 모피 교역 네트워크에 편입되었다. 15세기 초 명조는 위소제를 아무르강 하류 유역에 가지 전개하였다. 또 17세기 후반에는 청조가 이 일대에 변민 지배를 행하였다. 1809년 아무르 강변의 데렌에 이른 마미야 린조는 청조의 관원과 필담을 통하여 의사소통하여 조공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있다. 여기에는 변민들이 흑담비의 모피를 공납하고 비단을 하사하는 모습도 묘사되어 있다. 이 비단이 바로 일본인에게 에조 니시키라 불렸던 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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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석유와 미국역사가들의 기억전쟁(I)

저자 : 양홍석 ( Yang Hong-seuk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7-18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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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세기를 지나오면서 역사 서술의 방식은 놀랍게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인간을 역사의 중요한 행위 주체로 보고 그들 간의 의지와 갈등을 분석 조망하는 것은 여전히 주목받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날” 이후 역사 서술 방법론과 다양성을 결코 무시할 수도 없다. 특히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이용하는 자원이나 물류를 역사의 주체로 보고, 그 주위에 기생하는 인간들의 생활방식, 무역, 외교,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최근 빅 히스토리의 등장으로 훨씬 더 풍성해지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 논문은 20세기 석유 자원을 주목하여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 접근을 확인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부분에서의 지금까지의 역사적 연구의 축적과 방법론적 고찰은 무시 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지금까지의 선형적 시간 서술에서 벗어난 수평적 시간과 그 조망은 파노라마식 역사를 선사하고 있다. 여기에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이 검은 액체 연구는 각국사의 한계를 넘어서 글로벌 역사를 관전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해 줄 수 있다. 게다가 연구사를 조망하는 과정에서 얻은 의외의 수확은 지금까지의 이 분야의 접근 방식이었던 지정학적 접근에서 한 차원 진보한 역사가들의 수고를 확인 할 수도 있다. 더불어 이들 역사학자들의 통찰과 지혜를 통해서 미래 지구 생태학을 위한 해답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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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본 석탄 연구사의 현황과 과제

저자 : 김경옥 ( Kim Kyung-ok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5-21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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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업은 현대 일본의 경제적 발전의 토대가 된 산업으로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석탄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석탄 연구사도 국가와 산업의 관계, 특히 국가의 관리와 통제 등, 국가의 개입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및 국가와 기업간의 관계, 노동, 복지, 지역사와 같은 제반 연구영역과 폭넓은 관계를 보이며 연구사적 의미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일본 석탄 연구사의 현황과 과제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석탄'이라는 자원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보기 위해 시계열에 따른 사건별로 구분하여 시대적 특징 및 국가의 개입을 중심으로 연구사의 현황을 정리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근세 말과 메이지 초기의 광산(광업)사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아시아 태평양전쟁 시기, 점령기와 고도경제성장기, 그 외의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으로서의 광산 연구사로 구분하여 연구사의 현황을 검토한다. 석탄연구사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석탄업의 진입과 발전, 퇴출 등 모든 과정에 국가의 개입과 석탄업 간의 상관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마지막으로, 기존 석탄 연구사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여성노동자와 이미 폐광(폐산)되어 흔적조차 없어진 조선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지 기억의 방법적 측면을 생각해 보는 것을 연구과제로서 제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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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중국 석유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저자 : 김택경 ( Kim Taek-kyung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4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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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 중국의 석유에 관한 선행연구를 ①민국시대~1970년대, ②1980~1990년대, ③2000~2010년대 이상 세 시기로 구분하여 검토해봄으로써 중국 석유사 연구의 가능성을 가늠해보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는 오랜 기간 자료와 연구의 축적을 통해 이제 막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는 민국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에도 일부 이루어졌지만, 2000~2020년 기간 집중적으로 진척되었다. 2000~2010년대 중국에서 석유사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석유사 연구의 환경이 이전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고 중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석유의 확보가 경제는 물론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로 사회적인 인식이 제고된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또 2000~2020년 기간 중국이 '세계 속의 중국'과 '국제화'를 추구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을 전환시킨 점 역시 석유사 연구가 활성화되는 데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근대 중국 석유사 연구가 심화되기 위해서는 사료 방면에서 다음과 같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1차 자료의 발굴이 지속되어야 한다. 둘째, 기존에 출판된 자료집에서 석유사 관련 자료를 추출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각종 정부기관물이나 年鑒, 地方誌, 신문, 잡지, 연구저서 등의 자료도 시급히 정리를 요한다. 넷째, 영미 국가의 외교 아카이브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업했던 메이저 석유회사 자료의 소재 파악과 정리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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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근현대 한국 석유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저자 : 권오수 ( Kwon Ohsoo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7-27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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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 석유사 연구는 1973년 석유 파동 직후 한국의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국 석유사에 대한 접근은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석유 전문가들의 정책적 제언을 위한 부수적인 차원에서 개괄적이고 간략하게 서술되었다. 연구 경향 또한 1964년 울산정유공장 준공으로부터 시작된 정유 산업의 발전 과정에 주로 집중되었다. 이후 한국 석유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1989년 해방 후 귀속기업체인 조선석유주식회사의 처리 과정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2010년 중반 이후 한국 석유의 제도사적 접근, 울산정유공장 건설 과정에 대한 다층적 접근,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석유 정책, 해방 후 미국의 대한 석유 정책 등 다각적으로 접근되고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석유사의 종합적 이해와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석유가 가지는 의의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직 밝혀져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한국 석유사 연구의 향후 연구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우선 한국 석유사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미국의 대한 석유 정책에 관한 연구를 심화해야 한다. 특히 미국 대외 석유 정책에서 가장 근간을 이루는 코포럿 리버럴리즘이 한국에 적용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근현대 한국 석유사 전개 과정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한 정책 연구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음으로 한국 석유사는 미국 중심의 국제 석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한 석유 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일본, 홍콩,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연구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석유 회사 관련 자료를 발굴함과 동시에 기업사 연구 또한 확대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석유 산업의 독자적인 발전 과정 또한 심화하고, 석유로 인해 나타난 사회적, 문화적 변화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지평의 확대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석유가 가지는 의미는 더욱 폭넓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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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선 전기 의궤(儀軌) 편찬 관련 기록 검토

저자 : 정영미 ( Jeong Young-m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9-31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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儀軌는 조선 전기부터 편찬되었지만, 편찬이 확인되는 몇 종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의궤가 편찬되었는지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전기의궤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자료이므로, 실록에 수록된 의궤 관련 기록을 검토하여 편찬된 의궤의 목록을 추출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에 편찬된 의궤 23종의 명칭을 확인하고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23종의 의궤를 주제별로 喪葬, 祔廟, 冊封, 嘉禮, 營建의 5가지 범주로 구분하면 상장 15종, 부묘 2종, 책봉 2종, 가례 3종, 영건 1종으로, 상장 관련 의궤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영건에 관한 『景福宮造成儀軌』를 제외한 22종이 모두 국왕을 비롯한 왕실 구성원과 관련된 국가 의례에 대한 의궤이다.
의궤의 내용을 주제별로 모아 살펴보면 상장 의궤에는 상장례의 기한, 襲과 小斂, 大斂에 사용한 의복의 수효, 祭奠의 종류, 제물의 종류와 수효, 百官의 服制, 국왕의 전교 등이 수록되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의 의궤 대부분이 '~도감의궤'라는 명칭을 가진 데 비해 조선 전기의 의궤 23종 가운데 '도감의궤'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편찬된 의궤와 특정 국가 의례 등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도감과의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3종을 제외한 20종의 의궤가 도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祭享의 祭文과 祝文을 모아 놓은 香室儀軌의 존재와 『忌晨齋儀軌』,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등의 불교 의궤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의궤는 필사본으로 3부를 제작하여 영구 보존을 위해 史庫에, 실무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예조 등에 나누어 보관하였으며, 의궤의 주제와 동일한 유형의 의례를 행할 때 前例를 확인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의궤의 편찬 목적이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사실대로 기록하여 참고로 삼기 위한 것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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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세기 율곡학파 내 성리설의 변화

저자 : 나종현 ( Na Jonghy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국사학 7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19-35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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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로부터의 유산을 기반으로 17세기 율곡학파는 학파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율곡 이이의 저서 간행 작업을 통해 그의 성리설을 하나의 학술 전통으로 확립시켰고 주자성리학의 정통으로 인정받고자 하였다. 퇴계학파와의 대립 속에서 이이 이론의 정당성 문제가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비화함에 따라, 율곡학파에서는 이이의 이론이 주희로부터 내려오는 성리학의 정통을 이었으며 어떠한 문제점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7세기 율곡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송시열은 이이의 이론 구조 속에서 理의 역할에 대해 해명하여 학파의 이론적 과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전통의 공고화는 역설적으로 전통의 해석을 둘러싼 학술적 분기를 가져왔다. 율곡학파의 이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은 다양한 학술적 모색으로 이어져 학파의 학술적 분기를 가속화하였다. 김창협은 理의 주도적 역할을 받아들이면서 율곡학파의 이론적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고, 그의 견해는 학파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김창협과 달리, 권상하는 현실에서 氣의 발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율곡학파의 입장을 더욱 강하게 적용하여, 현실의 모든 국면에 氣質이 영향을 준다는 전제에 따라 학파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이는 일견 학술 전통의 墨守로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 그는 이이나 송시열보다 氣의 작용을 더욱 철저히 적용하여 학술 전통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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