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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사학회> 한국교육사학> 1891·1894년 사마방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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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1894년 사마방목 연구

Analytic study on the List of Passers of Scholarly Degrees in 1891·1894

김경용 ( Kim Gyungyong )
  • : 한국교육사학회
  • : 한국교육사학 43권2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6월
  • : 1-37(37pages)
한국교육사학

DOI

10.15704/kjhe.43.2.202106.1


목차

Ⅰ. 서 론
Ⅱ. 조선조 마지막 사마방목의 인쇄
Ⅲ. 1891년 증광시 사마방목 분석
Ⅳ. 1891년 식년시 사마방목 분석
Ⅴ. 1894년 식년시 사마방목 분석
Ⅵ. 논의 및 부수적인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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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891년 증광·식년시 및 1894년 식년시 사마방목은 그 원본이 소실된 탓에 1899년 전국에 훈령을 내려 해당 시기에 입격한 생원·진사를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한 다음 뒤늦게 1902년에야 인쇄되었으며, 특히 1891년 식년시 사마방목은 원방(原榜) 필사본만 현전할 뿐 정원외 입격자까지 기재한 온전한 인쇄본의 행방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착수한 것이다. 세 사마방목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방목의 기재내용에 착오·누락 등의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였고, 종래에 모르고 있던 생원·진사 입격자를 상당수 찾아내었으며(아직 밝혀내지 못한 입격자가 더 있다는 것도 확인함), 입격당시의 나이를 산정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심각한 착오를 범하게 되며, 실제로 60년 적게 산정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뒤늦게 출간된 사마방목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정원외 입격자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정원외 입격자 가운데 성균관과시 출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고, 성균관과시에서 소과 관련 은사(생진방말 또는 감시초시방말)가 처음으로 주어진 1790년(정조14) 이후 1894년 마지막 사마시까지의 내력을 상세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이해부족은 특이하게 여겨지는 현상, 예컨대 문과급제 이후에 진사에 입격한 경우를 접했을 때, 부조리 또는 일탈 현상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성균관과시를 통해서 생진방말의 은사가 시행된 데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었으며, 특이하기는 했으나 부조리한 현상이 아니었다. 나아가 성균관과시 자체에 대한 체계적이고 치밀한 연구가 요구된다. 이런 시도는 양란 이후 조선후기에서 경술국치 직전까지의 인재 양성 및 선발 체제에 대한 색다른 안목을 제공할 것이며, 전반적으로 조선의 인재 양성 및 선발 체제를 재조명하는 데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This study is an interpretation on three Lists of Passers of Scholarly Degrees(SaengWon生員, JinSa進士) in 1891·1894. There are several problems and faults in three Lists of Passers of Scholarly Degrees. I show some implications of the results of this study and suggest later task subjects. First of all, informations in these three Lists of Passer of Scholarly Degrees are not exactly same with the fact. There are some errors in name, and no names of so many hidden passers in three Lists of Passers. I correct it and find them. Second of all, we may pay very careful attention to calculating birth year of passers. If not, we would make fault in calculation over 60 years. I found 68 passers 60 years older than present calculation. Third of all, we must perform a later subject on the meaning of begin and lasting the system of Literary Test of Grand School(太學課試) to the oppressive end of Chosen Dynasty by Japanese Invasion in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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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사회과학분야  > 교육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1461
  • : 2713-6019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8-2021
  • :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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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권3호(2021년 09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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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총독부 고등보통학교수신서의 불규칙적 발행과 동화주의의 변천

저자 : 나카바야시히로카즈 ( Nakabayashi Hirokazu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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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을 자신이 원하는 인간유형으로 양성하기 위하여 수신과 교육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1910년대에는 일본본국으로부터의 재정적 독립방침으로 학부행정에 할당될 재원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고등보통학교수신서 편찬에 지장을 초래하였다. 또 3ㆍ1운동도 수신서편찬 진행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1910~ 1920년대 수신서들의 내용은 제국민화적 동화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 조선총독부는 다시 조선인 고등보통교육용 수신서를 편찬하였다. 이 책은,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의 영향 아래에서 기본적으로 제국민화적 동화주의를 계승하였지만 국체 명징이라는 새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권3까지 발행되었을 때에 조선총독부는 학무국장 시오바라 도키사부로의 주도로 수신서 편찬방침을 일본민족화적 동화주의로 전환하였다.


The Government General of Chosen emphasized self-discipline and education to cultivate generations of Korean nationals in line with their ideals. In the 1910s, however, the policy of seeking financial independence from the Japanese mainland caused a lack of funds to be allocated to the academic administration, which led to problems in publishing a self-discipline textbook for secondary schools. In addition, the March 1st movement influenced the publication of the textbook. The contents of the self-discipline textbook in the 1910s and 1920s were based on the type of assimilationism that emphasized turning the Korean nationals into Imperial subjects. The Government General resumed publication of self-discipline textbooks for the Korean nationals in secondary schools in the 1930s. Under the auspices of Governor General Ugaki Kazushige, the textbook fundamentally reflected the type of assimilationism by which Korean nationals were transformed into Imperial subjects; however, they also had an additional characteristic corresponding to Gukchemyeongjing (Kokutaimeichou in Japanese), a political statement that emphasized the sovereignty of the Emperor in the Japanese state. When the third volume of the textbook was published, however, the Government General of Chosen changed its direction, led by the Director of Academic Affairs, Shiobara Tokisaburo, in publishing the textbook to the type of assimilationism that turned Korean nationals into members of the Japanes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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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 전통 교육에서 '학우(學友)' 개념 검토: 유가(儒家) 교유(交遊)관을 중심으로

저자 : 송수진 ( Song¸ Su-jin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4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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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교육에서 '학우(學友)'란 단순히 감정에 이끌려 사귀는 친구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벗을 뜻한다. '학우'의 구체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공자 제자 집단에서 그 기원을 찾아봐야 한다. 공자 학단이 추구했던 배움은 단순한 정치 기술이 아닌, 인문(人文)을 지향하는 도학(道學)이었다. 여기에 '우(友)'란 전통적 봉건 질서 속에서 혈연적 친분 관계로 맺어진 특정 신분 계층 간의 사귐이 아니라, 비혈연적, 반계급적 성향을 지닌 만남을 전제로 맺어진 도우(道友)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전통 교육에서 '학우'의 실제적 사례는 화랑제도와 유학 교육 기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랑 집단에서 '학우'는 특정 사상을 공부하는 차원을 넘어 일상적 삶의 지침들도 함께 공유하는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화랑은 일상의 체험적인 공부를 통해 올바른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학우의 미덕은 전인적 삶의 모범에 있었다. 또한 조선 유교 사회에서 '학우'는 서로의 성학을 돕는 자라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여 학교 관련 규칙은 학우 간 교유 지도를 포함하였다. 이렇듯 전통 사회에서 '학우'는 배움이란 홀로 고립된 성격의 것이 아니라 지행일치를 통한 전인 교육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학우'와 관련하여 공자 제자 집단에서 안회의 위상, 자사와 자공이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는 오래된 미담으로 기억될 뿐, 집단의 사익을 내세우며 도(道)를 왜곡 또는 성찰과 검증 없이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반목하는 사례들을 남기고 있다.


In the Korean traditional education, 'Hakwu(學友)' does not mean a friend but a companion one studies with. To understand the correct meaning of 'Hakwu,' we need to find the origin of the concept from the group of disciples of Confucius. Learning pursued by his disciples was not about political skills but moral philosophy and humanities. Here, 'Wu(友)' indicates 'Dowu(道友)' established on the premise of meetings based on non-blood relationship and anti-hierarchical tendency, rather than the friendship between persons who are acquaintances or blood relations and belong to the same or similar classes in the traditional feudal order. Furthermore, in the Korean traditional education, actual examples of 'Hakwu' can be found in the Hwarang system and Confucian educational institutions. It can be seen that 'Hakwu' in the Hwarang group shared principles of daily life in addition to studying certain ideas together. It was possible for the members of Hwarang to establish proper goals of life and values through daily experiential learning. The virtue of 'Hakwu' for them was the presentation of the model for holistic life. In the Confucian society of Joseon, 'Hakwu' could be considered as persons who shared political beliefs as well as ideals of life. Therefore, 'Hakwu' in the traditional society signified that learning was not something to be pursued in alienation from others. Reflecting this, the school-related rules included instruction for peer-to-peer education. In the meantime, although the stories related to 'Hakwu' regarding the position of Yan Hui among the disciples of Confucius and the conversations between Zisi and Zigong are remembered as heartwarming ancient stories, there have been cases in which selfish collective interests were sought, getting in conflict with each other by distorting the truth or sticking stubbornly to one's own ideas without self-examination or ver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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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방정환의 아동예술교육의 내용과 교육적 의의

저자 : 이정아 ( Lee¸ Jung Ah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9-86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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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방정환의 아동예술교육의 교육내용과 특성이 무엇이고 그 교육적 의의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방정환은 어린이교육운동의 교육내용으로 어린이들의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아동예술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꽃피던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デモクラシー, 1912-1926)에 일본으로 개벽사 동경특파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일본으로 유학 온 천도교청년들과 함께 소통하고 민족의 자주독립의 주체로 어린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1920년대 초 천도교 개벽사 동경특파원으로 일본 유학을 간 일은 그에게 어린이를 위한 예술문화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안겨주었다. 실제 정식 학생으로 학과에 입학하진 못했지만 동경 도요대학 문화학과 청강생으로 수업을 들었다. 방정환은 이 시기 일본에서 유행하던 다이쇼시기 신교육 그리고 그 영향으로 인한 예술자유운동을 경험하였다. 일본체류 시기에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어린이문제연구회인 색동회를 창립하였고, 실천적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아동예술교육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잡지 『어린이』와 비교가 되는 대표적인 일본의 아동문예잡지인 『아카이토리』나, 『긴노후네』, 야마모토 가나에의 자유화 운동 등이 그가 경험한 일본의 근대적 아동예술장르였다. 그는 192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비교적 생경하였던 '어린이'에 주목하여 동화와 동요, 그림을 보급하고, 1923년 3월에는 최초의 본격적인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창간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잡지 『어린이』발간과 1920년대 조선의 동요황금시대를 이끌어 냈고,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가 조선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는 고래동화, 창작동화,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등을 통해 힘없고 약한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창가가 아닌 우리말 동요는 조선에 맞게 각색된 방정환의 아동예술교육의 예로서 예술성은 추구하되 식민지기 감상성을 넘어서는 데에 교육목적을 두었다. 한편 방정환의 아동예술교육의 특성은 형식적으로는 일본의 다이쇼신교육과 자유예술운동에 영향을 받았지만, 내용적으로는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데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정환의 아동예술교육의 특성은 첫째, 조선인의 원기를 회복하는 의미, 둘째, 조선 어린이로서 주체성을 확립하는 의미라는 교육적 의의를 함의하고 있었다고 본다.


This paper is an article on a study on Bang JungHwan's Children's Art Education and its educational implications. The Children's Art Education demanded the liberation of children and pursued the free and natural expression of emotion. H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movement for modernization in culture as well as in literature. For example, he played an active role as a correspondent of Gyaebyeok_(개벽) to Tokyo from 1920 to 1923. This was an important literary magazine of Cheondogyo. Historically, new education (in Europe) or progressive education (in the US) became a trend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In Japan, new ideas on education and the “child” were introduced beginning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by reformers. From 1921 to 1922, Bang audited classes at Toyo Univesity(東洋大學) in Tokyo(東京). Toyo University had just opened the department of cultural studies. At that time, Taisho liberal education was popular in Japan. Taisho liberal education emphasized art for art's sake. So, the artistic tastes of children were important. Thus, Bang felt that he could learn children's psychology and children's literature by studying in the department of cultural studies. During the two years, he was at Toyo University(1921-1922) and he met a few Korean students who studied in Tokyo. As these Korean students gathered, he was able to organize SaekDongHoi(색동회)_(1923), which was the first group to study children. New ideas were introduced and practiced by members of 'Saekdonghoi' in Colonial Korea(1910-1045). This organization was the basis for the publishing of EORINI(어린이)_(1923). By publishing the children's magazine EORINI_(어린이), Bang could contribute to children's literature and songs, arts, and story-telling. This is what essentially completed the comprehensive style of artistic movement magazine of the Taisho Period which is centered on Douwa(童話), Douyo(童謠), writing, children's poems, and “Free Drawing” Movement of Yamamoto Kanae. Bang studied the art magazines of the Taisho Period and utilized his knowledge of them to good effect. When he edited and managed EORINI_(어린이), he made the cross-cultural relationship between EORINI_(어린이) and Kinnohune. Bang acquired artistic compositions for his free drawing section by actively promoting the Children's Art Education through EORINI_(어린이). Bang's A Gift of Love (Salanguiseonmul) was a work that introduced foreign fairy tales tailored to Korean tastes through translation and adaptation. Recruitment for “Free Drawing(자 유화)” was conducted through the magazine itself. Bang's thoughts on children emphasized not only an intellectual education but also a well-rounded character education. The Korean songs' movement for children was good for the recovery of our original energy(元氣). Furthermore, Bang's Children's Art Education emphasized on an independent life of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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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동양고전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논어집주대전』을 활용한 『논어』 강의

저자 : 지정민 ( Chi¸ Jeong-min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3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7-105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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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나 『맹자』등의 동양고전을 대학 강의에서 가르치는 경우에 흔히 경구에 대한 도덕적 교훈이나 학생의 경험에 기반한 일상적 소감, 또는 원문의 소개와 어구의 풀이 위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철학으로서의 유학을 그 성격에 충실하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원전이 제기하는 철학적 논의와 다양한 해석을 학생의 수준에 적합한 형태로 가능한 한 심도있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논어』강의의 대안적 방식을 모색하기 위하여 『사서대전』의 하나인 『논어집주대전』에 수록된 성리학자들의 논의를 기반으로 삼아 간략한 강의내용 및 몇 가지 수업자료를 소개한다. 『논어』에 나타난 '학습의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주제로 한 두 차시의 강의를 구성하고자 할 때 학생들의 흥미와 동기를 촉진하도록 도입부를 구안하고, 주제에 대한 예비 고찰을 위한 활동지를 조별로 작성하고, 『논어』의 중요 구절의 설명을 위하여 성리학자들의 주석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마지막으로 심화질문을 토의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학습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예술, 가족, 윤리, 삶과 죽음, 경제 등 다양한 주제가 『논어』에 담겨있으며, 각 주제에 따라 이와 같은 방식의 강의를 다각도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강의의 순서나 해석, 발문, 학생 참여의 방식 등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될 수 있지만, 『논어』를 『논어』답게 가르치는 일, 고전읽기의 유구한 교육적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교육사철학 연구자로서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소명이다.


This study investigates about how to properly teach Confucian classics such as Analects, Mencius, Myeongsimbogam(明心寶鑑), etc in universities. In most cases, professors deal with them emphasizing various moral suggestions and students' personal opinions or simply reading word by word. However, if we consider our prominent academic traditions of philosophical discussion on those books, it is critically important to focus on traditional Neo-Confucian commentaries like Great book of Four Canons Commentary(四書大全), which show us the way how to think and to make questions philosophically through those classics. The example given in this paper is a preliminary attempt for philosophical discussion about 'the pleasure and pain of learning' in the Analects reading class. Based upon Great book of Analects Commentary (論語集註大全) edited by Chu Hsi, it consists of introduction, quiz for students, main issues and explanation, questions for advanced learning. Here are also provided a few more examples of quizes and issues in addition. As researchers and as teachers in the field of Eastern studies, we have the essential calling to inherit our academic and pedagogical tradition, and to develop modern way of Confucian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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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1·1894년 사마방목 연구

저자 : 김경용 ( Kim Gyungyong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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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891년 증광·식년시 및 1894년 식년시 사마방목은 그 원본이 소실된 탓에 1899년 전국에 훈령을 내려 해당 시기에 입격한 생원·진사를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한 다음 뒤늦게 1902년에야 인쇄되었으며, 특히 1891년 식년시 사마방목은 원방(原榜) 필사본만 현전할 뿐 정원외 입격자까지 기재한 온전한 인쇄본의 행방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착수한 것이다. 세 사마방목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방목의 기재내용에 착오·누락 등의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였고, 종래에 모르고 있던 생원·진사 입격자를 상당수 찾아내었으며(아직 밝혀내지 못한 입격자가 더 있다는 것도 확인함), 입격당시의 나이를 산정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심각한 착오를 범하게 되며, 실제로 60년 적게 산정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뒤늦게 출간된 사마방목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정원외 입격자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정원외 입격자 가운데 성균관과시 출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고, 성균관과시에서 소과 관련 은사(생진방말 또는 감시초시방말)가 처음으로 주어진 1790년(정조14) 이후 1894년 마지막 사마시까지의 내력을 상세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이해부족은 특이하게 여겨지는 현상, 예컨대 문과급제 이후에 진사에 입격한 경우를 접했을 때, 부조리 또는 일탈 현상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성균관과시를 통해서 생진방말의 은사가 시행된 데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었으며, 특이하기는 했으나 부조리한 현상이 아니었다. 나아가 성균관과시 자체에 대한 체계적이고 치밀한 연구가 요구된다. 이런 시도는 양란 이후 조선후기에서 경술국치 직전까지의 인재 양성 및 선발 체제에 대한 색다른 안목을 제공할 것이며, 전반적으로 조선의 인재 양성 및 선발 체제를 재조명하는 데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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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죽음교육에 대한 한 성찰: 의과대학 내 죽음교육 현황과 동양사상적 시선을 중심으로

저자 : 김선경 ( Kim Seon-kyoung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6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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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의과대학 내 죽음교육을 성찰하고, 삶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죽음은 생명이 다함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의 죽음은 삶을 담아내고 있고, 삶은 교육을 담고 있어야 한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과정 내 죽음 교육의 현황을 분석해 보았을 때, 그 메시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못하였다. 죽음 교육은 불확실성, 불안의 연속성, 비교의 패배에서 오는 무기력함, 반복된 일상의 무의미함, 불신의 상황에 던져진 매일의 우리 일상에 '그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심사숙고해야 할 부분은 '잘 죽는 방법'의 문제를 '잘 사는 방법'의 문제로 교육이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이 글은 공자, 퇴계, 사마천의 삶과 죽음을 통해 정해진 운명에 맞서서 뒷걸음치지 않고, 피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그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자유의 힘을 고찰해보았다. 그 토대는 진리를 추구하려는 학문과 겸손한 자세였다. 이러한 삶은 기억됨으로써 시간을 초월해 불멸한다. 운명을 인정하고, 자신의 몫을 다 해내는 힘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배우면서 성찰하는 일상의 지속성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순간, 가슴으로 삶이 참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죽음은 분명 아름다운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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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한 미 평화봉사단 교육사업의 특징과 그 유산

저자 : 서나래 ( Narae Seo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3-9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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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평화봉사단은 자국 시민을 대상으로 봉사단원을 선발하여 개발도상국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단체다. 평화봉사단은 1966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에 TESOL 강사, 보건요원 등을 파견했다. 본 연구는 주한 미 평화봉사단 영어교육 성과에서 벗어나 주한 미 평화봉사단의 유산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우선 주한 미 평화봉사단 교육사업의 특징을 살필 것이다. 주한 미 평화봉사단의 교육사업은 쌍방국가주의(bi-nationalism)에 실패하였고 상이한 교육 사조로 인해 난항을 겪었다. 결국 주한 미 평화봉사단은 현상 유지(status-quo)의 교육을 선택하는데 이는 오히려 한국적 맥락에 맞추어 가는 것이었다. 주한 미 평화봉사단의 유산은 한국 공교육에 남았다고 보기 어려운데 이것은 오히려 한국과 미국 양 국가의 학계에 남았다. 일부 주한 미 평화봉사단원들이 파견 종료 이후 적극적으로 한국학을 연구하면서 지역학으로서 한국학이 탄생하고 발전하였으며 한국 역시 주한 미 평화봉사단이라는 타자집단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재발견했다. 이러한 유산은 주한 미 평화봉사단이 시작될 당시 정책결정자뿐만 아니라 봉사단원들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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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김제 금산사(金山寺) 혜덕왕사(慧德王師) 진응탑비문(眞應塔碑文)

저자 : 이미종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3권 2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12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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