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920~30년대 보성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조직 및 운영구조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1915년 「개정사립학교규칙」의 공포 이후 조선 내 사립전문학교 운영에 재단법인 설립이 요구되었다는 것에 주목하여, 재단법인화 이후 학교 조직 운영에서 나타나는 학교와 외부의 사적 기부자, 총독부 행정당국과의 복합적 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1921년 설립된 ‘재단법인보성전문학교’의 법인 기구 중 ‘평의원회’는 독특한 위상을 부여받고 있었는데, 이는 조선인 사회의 모금운동과 ‘민립’ 전문학교로서의 정체성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었다. 1932년 김성수의 재단 인수 이후 이러한 법인 구조는 상당한 변화를 겪지만, 이후에도 보성전문학교가 조선 민족의 ‘공기’(公器)라는 관념은 학교운영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보성전문학교의 사례는 공공성(公共性)와 사사성(私事性) 사이의 긴장 속에 운영되었던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사회적 존재 방식과 그 제도적ㆍ조직적 유산에 대해서 보다 면밀한 탐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In this article, I examined the organizational and governing structure of private colleg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ocused on Boseong College case in 1920’s-30’s. Since the enforcement of the revised ‘Private School Regulation’ in 1915, every private college should establish foundational juridical person, which was endowed with sufficient amount of assets to run the college. And the incorporation of private college was accompanied by reorganizing the governing structures, as well as interrelationships between college and private donors. Boseong college foundation, founded in 1921, was a product of public fund-raising campaign within colonial society, which led to peculiar council-based foundational form. Even after the takeover of Boseong college by Kim Sung-Soo in 1932, this tradition had remained as countervailing force against private initiatives in college. In this sense, Boseong college case can be interpreted in terms of colonial publicness and private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