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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초반 사인조보(私印朝報)사건을 통해 본 정치상황과 조보(朝報)정책

Political Situation and Jobo Policies in the early part of King Seonjo宣祖) through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私印朝報事件)

김경록 ( Kim Kyeong Lok )
  • : 온지학회
  • : 온지논총 67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4월
  • : 197-233(37pages)
온지논총

DOI

10.16900/ONJI.2021.67.07.197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의 조보발행과 조보정책
Ⅲ. 선조의 즉위과정과 선조초반 국정운영
Ⅳ. 선조초반 사인조보사건과 역사적 의미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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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보는 승정원에서 정리하여 전국에 전파함으로써 국왕의 선정 및 통치의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발간되었다.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필사조보를 인쇄하여 보다 많은 부수를 보다 편리하게 전파할 수 있음에도 선조는 이를 사건화하여 정국을 경색시켰다. 그 결과 인쇄를 통해 신속하고 대량으로 전파할 수 있음에도 인쇄조보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은 유교국가로써 국왕을 정점으로 사대부의 지배체제가 공론정치를 지향했다. 공론정치를 지속하고 확장하기 위해 국왕의 정당한 정치를 알리고 민심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활용된 것이 조보였다. 조보는 국왕과 왕실의 동정 및 각종 예제, 인사정책, 관리의 공론정치 및 보고서와 이에 대한 국왕의 처분을 포함하였다. 조선은 건국직후 조보를 왕정의 전파수단으로 인식하여 철저히 통제하고자 하였으며, 각종 정치사건, 예제사건, 인사정책에 조보는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선조는 즉위하며 명종대에 척신정치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의 분화 및 대립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유교국가의 정통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격화되었다. 이런 정치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군사적 위기의식이 고조되자 선조는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즉, 선조는 왕위계승의 문제를 극복하고 정치 상황에 대응하고자 정세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에 의한 사인조보의 발행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조보를 왕권의 대외 전파수단임을 강조했다.
1577년(선조 10) 선조의 備忘記에서 시작된 사인조보사건은 유교국가에서 조보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직계왕손으로 즉위하지 못한 선조가 초반기 왕위의 정통성과 통치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였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왕의 정당한 통치를 전파하는 조보를 민간에서 사적 이익을 위해 인쇄하였다는 점은 선조로써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약 3개월의 조사를 통해 30여 명의 관련자를 처벌한 선조는 향후 조보의 인쇄를 금지하고 철저한 관리를 지시하며 사건을 종료했다.
선조에 의해 제기되고 처벌된 사인조보사건은 선조초반 정치상황의 전개과정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재위 10년을 경과하며 선조는 왕위의 권위를 회복하고 갈등구도의 정치상황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자 사인조보사건을 정치사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히 엄단하는 태도를 보였다. 실제 사인조보는 당시 명에서 일상적으로 시행되는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王政의 전파 및 전달단계를 원활히 함과 동시에 이의 발행을 수월하게 하여 민간에서 이익을 가지고자 했던 사회발전의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선조는 사인조보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왕명출납의 한방식이라 강조하였다. 조보는 이후 매우 한정적으로 발행되었으며, 임진전쟁의 와중에 통치질서가 붕괴되자 이를 보완하는 매체로 활용됨으로써 선조초반 사인조보사건이 선조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발생하였음을 증명한다.
The purpose of the Joseon(朝鮮) was to promote the selection and governance of the king by organizing Jobo(朝報) from the Seungjeongwon(承政院) and spreading them throughout the country. It is convenient to print a desperate Jobo that takes a lot of time and manpower, but King Seonjo extended this to case. This resulted in the degeneration of the printed Jobo, even though it could be quickly and massively propagated through printing.
Joseon was a Confucian state, with the king at its peak, and the ruling system of the four great masters was aimed at public opinion politics. It was an Jobo that was used to promote the king's legitimate politics and stabilize public sentiment. Jobo included the king's movements and various ritual system, personnel policy, public opinion politics, reports, and the king's disposition. Shortly after the foundation, Joseon recognized Jobo as a means of propagation to the monarchy and tried to control it thoroughly. Jobo was closely involved in various political events, ritual events, and personnel policies.
King Seonjo needed to patch up the previous political turmoil shortly after his ascension and establish a new political order. Nevertheless, the conflict among the ruling class has intensified. As conflicts and military crises between political forces escalated, King Seonjo tried to establish royal authority. In other words, King Seonjo used the situation to overcome the problem of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respond to the political situation. The issuance of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私印朝報事件) in this process was regarded as a challenge to the throne and severely punished. In conclusion, King Seonjo emphasized that Jobo was a means of spreading the king's politics externally.
In 1577,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 illustrates the meaning of Jobo in Confucian countries. This is an case that occurred in the process of securing the legitimacy of the kingship and the authority of King Seonjo who could not be crowned by the immediate royal family. The fact that Jobo, which propagated the king's legitimate rule, was printed for economic benefit in the private sector was an unacceptable event as King Seonjo. King Seonjo, who punished 30 people involved through a thorough investigation for about three months, ended the case by banning the printing of Jobo in the future and ordering thorough management.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 raised and punished by King Seonjo can be grasped during the development of the political situation at the beginning of the reign. After 10 years of reign, King Seonjo stipulated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 as a political case in order to restore the throne's authority and lead the political situation of 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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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22-800-00054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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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598-1444
  • : 2384-2253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5-2022
  • : 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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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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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 : 17세기 통신사 사행록의 필담 및 시문창화 수록 양상

저자 : 장진엽 ( Jang Jin-youp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63 (5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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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의 한 단계로서 17세기 통신사 사행록에 수록된 필담 및 시문창화 관련 기록의 현황 및 그 수록 양상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이 시기 사행록 21종을 대상으로 필담·서신·창화시 및 필담창화와 관련된 상황을 담고 있는 기록을 발췌하여 목록으로 작성하였다. 이시기 사행록은 필담보다는 창화시 위주인데, 이는 실제로 필담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상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사행록 집필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사행록에 기록된 필담은 저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된 것이다. 이는 창화시를 기록하는 것에 비해 어려운 일이며, 필담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의식이 생겨나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게 된다.
다음으로 시기별 사행록의 필담 수록 양상 및 그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17세기 통신사를 '필담 교류'의 진전 정도에 따라 '맹아기-성립기-발전기(초기)'의 세 단계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맹아기인 회답겸쇄환사 시기에는 주로 접반승들의 요청에 의해 시문창화가 이루어졌다. 필담 기록 역시 소략한 편이지만, 필담창화집에서 확인되지 않는 초기의 필담 교류 정황을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성립기는 제4차 병자사행(1636)부터 제6차 을미사행(1655)이다. 이 시기부터 통신사행은 문화사절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사신들 역시 시문창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사행록에 다량의 창화시를 수록하였고, 인상적인 필담 내용을 기록해 두기도 했다. 이 시기 기록 가운데 김세렴과 하야시 라잔의 대화, 조경과 라잔이 주고받은 편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세 번째 단계는 발전기(초기)에 해당하는 제7차 임술통신사(1682)이다. 임술사행 시기에는 필담 교류의 담당자인 제술관이 처음으로 파견되었고, 일본 내에서도 문인 계층이 성장하여 필담창화가 대폭 확대되었다. 그러나 사행록 소재 필담 기록은 오히려 양적인 면에서나 구체성의 측면에서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 시기 사행록 저자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일록 형식의 사행록을 저술한 홍우재와 김지남은 둘 다 역관으로서 필담창화의 중심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편 김지남의 사행록에는 우연한 필담 교류의 현장을 전하고 있는 기록이 있어 눈길을 끈다.
본고는 '동아시아 필담문헌 기초연구'의 첫 단계로서 시도된 작업이다. 후속 작업으로 18세기 통신사 및 근대 수신사의 필담, 표류 필담, 그리고 연행사 필담의 현황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의 길항 속에서 동아시아 고전문헌 연구의 타당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데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As one step in the foundational research on East Asian brush talk literature, the aim of this research is to review the records pertaining to the brush talks (筆談) and poetry exchanges (唱和), in 17th century travel journals ('sahaengnok' 使行錄) produced by Chosŏn envoy to Tokugawa Japan ('tongsinsa' 通信使).
First, the accounts of the brush talks, letters, exchanged poetry, as well as the entries that feature the works or circumstances from brush talks and poetry exchanges have been pulled and tabulated from twenty one sahaengnok produced in this era. Sahaengnok of this era more prominently feature poems from poetry exchanges than brush talks; this partly has to do with the fact that not much brush talks have taken place at the time, and also has to do with the way in which sahaengnok is written. Since brush talks recorded in sahaengnok had to be recounted relying on the writer's recollection, it was more difficult to document them compared to the poems from the exchanges. In order to record the brush talk, the writer had to carry an specific intention to leave its account. This kind of consciousness only came to appear in 18th century.
Next, the contents and significance of brush talks recorded in sahaengnok is discussed per period. The progress in the exchanges via brush talks by 17th century tongsinsa could be organized into three stages: the inceptive stage, the founding stage, and the early developmental stage. In the inceptive stage of response-and-repatriations era, poetry exchange took place from the request of the escorting monks. The records of the brush talks tend to be terse, but they illuminate the circumstances of early brush talk exchanges. The founding stage refers to a period between the 4th tongsinsa of 1636 and the 6th tongsinsa of 1655; from this time on, tongsinsa became more of culture envoys, and the three envoys displayed a more eager attitude in poetry exchanges. They included a lot of poems from exchanges in their sahaengnok, and documented intriguing discussions from the brush talks. Particularly interesting of this period is the conversation between Kim Seryŏm and Hayashi Razan, and the letters exchanged between Cho Kyŏng and Razan. The third stage is the 7th tongsinsa of 1682, which constitutes an early developmental stage. An official in charge of documenting ('Chesulgwan' 製述官) was first dispatched during this time; and as a result of a growth in literati status in Japan, this era also saw a boom in brush talk and poetry exchange with tongsinsa. However, the records of the brush talks in sahaengnok show a contrasting decrease in their quantity and detailedness. This is linked to the then writers of sahaengnok; Hong Ujae and Kim Chinam, who wrote sahaengnok in a journal format, were both interpreters and therefore not the main agents of the brush talks. Yet, Kim Chinam's sahaengnok includes an incidental record that depicts the scene of a brush talk exchange, which warrants some attention.
This study was designed to be the first step for the fundamental research of brush talks writings in East Asia. What follows will be a probe on the brush talk of the 18th century tongsinsa and modern diplomatic envoys to Meiji Japan ('susinsa' 修信使), driftees, and Chosŏn envoy to Qing China ('yŏnhaengsa' 燕行使). It is the hope that these works would be able to contribute in developing a sound methodology in researching East Asian classical literature, between Korean studies and East Asia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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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樗庵 申宅權의 老吟詩 一考察

저자 : 박종훈 ( Park Chongh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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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나라 劉克莊이 10수의 연작 老吟詩를 지은 이후, 조선 문인 역시 이를 토대로 적지 않은 연작 노음시를 창작했다. 그 중에서도 55수의 연작 노음시를 지은 신택권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申宅權(1722~1801)의 연작 노음시는 64세 전후에 지은 것인데, 그때까지 아직 벼슬살이를 하지 못한채 노년을 맞이하는 늙음의 인식이 담겨 있다.
신택권은 노음시의 전통적인 詩體인 칠언율시를 활용하면서도 '9→7→5→3→1→10→8→6→4→2'의 구조로 55수의 연작 노음시를 창작한 것이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내용면에서는 우선 자신과 자신의 신체를 대상으로 11수의 작품을 지은 것이 특징적 일면이다. 노음시의 출발점은 늙음에 대한 탄식이 될 수 밖에 없다. 신택권의 작품 역시 노년의 모습을 대면한 늙음의 탄식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의 고단했던 삶을 환기하면서 늙음의 비애감을 더욱 조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년의 탄식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노련함 혹은 원숙함을 갖춘 노년의 삶에 긍정적인 시선을 두면서, 스스로 노년의 존재 가치를 부여했다. 더 나아가 늙음은 자연스러운 이치이기에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경주했다. 마지막으로 신택권은 자신과 자신의 신체를 대상으로 11수의 작품을 지으면서 노년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이들 작품 역시 늙음에 대한 탄식이 주를 이룬다. 이밖에 노년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이를 수긍하려는 자세도 엿보인다.
이처럼 신택권의 노음시에는 變과 不變 사이를 넘나들면서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노년의 다단한 인식이 담겨있다. 64세의 나이에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한 신택권의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Song Dynasty Liu kezhuang(劉克莊) built 10 works on the theme of old age. Since then, the writers of Joseon have also built a series of prototypes with the theme of old age. Here, we looked at the works of Shin Taek-kwon(申宅權), who wrote 55 consecutive poems on the theme of old age. Shin Taek-kwon continued to build these works at the age of 64, and it contains his review of his old age without yet serving as a government official until then.
Shin Taek-kwon's works have a unique structure of '9→7→5→3→1→10→8→6→4→2'. This part is characteristic of the formal aspect. It is also characteristic that he created 11 works of himself and his body.
These works started from lamentations about old age. In such a state, he recalled the difficult life of his youth and doubled the sorrow of old age. However, it did not stop at the lamentation of old age. By placing a positive view on the life of an old man with old age or maturity, he gave the value of existence to old age by himself. Furthermore, since aging is a natural reason, he consciously tried to accept it calmly.
Finally, Shin Taek-kwon drew a self-portrait of old age while composing 11 works for himself and his body. These works also focus on lamenting about old age, and a conscious effort was made to accept it while calmly portraying such a life of old age.
As such, Shin Taek-kwon's works contain a strong perception that cannot be defined as either one, crossing between change and unchanging. These works appear to have occurred in the complex situation of Shin Taek-kwon, who is aging without serving as a government official even at the age of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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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현감직에 대한 황윤석의 갈망과 소회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

저자 : 이상봉 ( Lee Sangbo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11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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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석은 호남의 선비가문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능으로 주위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학업에 열중하던 10대말과 20대 초에는 순수학문의 추구와 과거시험 준비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1세가 되어서야 진사시에 합격할 수 있었고 38세가 되어서야 장릉 참봉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강원도 영월의 장릉에서 첫 벼슬살이를 하게 된 황윤석은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처음 장릉 참봉에 낙점을 받았을 때 고향집과 가까운 경기전과 임지를 바꿀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었다. 이처럼 그는 부모님의 봉양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정경순은 황윤석이 장릉참봉을 시작한 이후 60개월의 기한을 채우면 현감이 될 자격이 되니 그러면 부모님을 모시면서 벼슬생활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경세의 꿈을 펼치는 것과 부모님 봉양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황윤석에게 현감직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갈망하던 현감 직위를 두 번이나 얻게 되지만 둘 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파직 당했다. 전 생애를 현감 직위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그의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황윤석은 안타까운 마음을 삼키면서 후손들을 위해 현감이 된 과정과 파직의 전말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해 두었다.
부동산과 주식이 들썩이면 많은 사람들이 일희일비한다. 정치권·재계·연예계 등에서 이슈가 터지면 그 사건에 주의를 빼앗기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들은 다사다난한 일상에 휩싸여서 소중한 나 자신의 행복과 내 가족의 평안을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혹은 나의 꿈을 위해서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 치열한 삶 속에서도 자신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황윤석의 삶 속에서 반조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Hwang Yun-seok was born to a scholarly family in Honam, and grew up receiving expectations from those around him with his innate talent. In his late teens and early twenties, when he was immersed in his studies, he struggled between pursuing pure studies and preparing for state examination but none gave up. It was not until the age of 31 that he was able to pass the Jinsa exam, and it was not until the age of 38 that he could become a Jangneung Chambong.
Hwang Yun-seok, who started his first post at Jangneung in Yeongwol, Gangwon-do, was worried about not being able to take care of his parents. So, when he first became Jangneung Chambong, he also looked to see if he could change his work place to gyeong-gijeong, which is close to his hometown. As such, he always had in mind the issue of supporting his parents.
Jeong Gyeong-soon, who knew this, informed Hwang Yun-seok that if he met the 60-month deadline after starting Jangneung Chambong, he would be eligible to become a prefect, and then he would be able to lead a public life while supporting his parents. For Hwang Yun-seok, who didn't want to miss out on both Gyeongse(經世)'s dream and raising his parents, prefect seems to be the most realistic option.
Since then, he has been awarded the post of prefect twice, which he longed for, but both were dismissed after less than a year. It was such a futile ending compared to his efforts, who spent his entire life looking only at the title of prefect.
However, Hwang Yun-seok swallowed his sorrowful heart and wrote down the process of becoming prefect and the reason for his resignation in poetry and prose to show to his descendants.
When real estate and stocks fluctuate, many people shudder. When an issue arises in the political, business, or entertainment world, attention is focused on the incident. As such, we are engulfed in our daily life, and there are many cases in which we lose sight of our precious happiness and the peace of our family.
People live in pursuit of money, power, or fame for a living or for their dreams. Even in such a fierce life, I hope that we can reflect on what makes us truly happy in Hwang Yun-seok'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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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육미당기>의 서사 구조와 가부장의 성장

저자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1-15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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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미당기>는 독립성 강한 몇 편의 서사를 조합하여 만들어진 소설로, 소재원과 구조에 대해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왔다. 그러나 각기 다른 출처의 하위 서사를 포괄하는 소설 전체의 구성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못한 감이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육미당기>의 서사 구조를 읽는 하나의 시각으로 가부장의 성장을 제시한다. <육미당기>를 구성하는 하위 서사들의 목적의식과 배치 방식에는 가부장의 성장이라는 일정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육미당기>의 서사 축은 크게 소선의 출국-귀국 서사, 소선과 여섯 여성의 결연 서사로 구분된다. 두 서사 축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가부장의 성장을 보여준다. 출국-귀국 서사에서 소선은 부권의 계승자가 된다. 부왕의 적자인 소선은 서자인 형으로부터 패배하여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고, 고국을 떠나 표류한다. 소선에게 주어지는 소설적 과업은 형으로부터 정당한 부권 계승자의 지위를 돌려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보다 강한 힘과 정당성을 얻어야 하는데, 출국과 귀국 사이에 배치된 중국에서의 결연이 그 방법으로 기능한다. 해당 서사의 결과 소선은 형을 물리치고 신라 국왕으로 등극한다.
결연 서사에서 소선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권력을 획득한다. 결연 서사는 크게 세 편의 결연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연이 진행될수록 남녀 인물의 지위와 주도권이 단계적으로 역전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소선의 지위는 눈먼 거지 소년에서 부마이자 고위 관료로 상승하는 반면, 여성 인물의 지위는 공주에서 천애고아로 하락한다. 또한 소선은 수동적으로 여성의 애정을 따르는 존재에서 여성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반면, 여성은 관계를 주도하는 위치에서 소선에게 생존을 의존하는 위치로 추락한다. 결연의 결과 소선은 남성 시각에서의 이상적 가정인 육미당(六美堂)을 완성한다.


Yukmidanggi[六美堂記] is a fiction made by combining several independent narratives. Many studies have been focused on the original stories and narrative structure of this fiction. However, the principle of composition which encompasses entire sub-narratives, has not been sufficiently identified. In this essay, I will analyze the narrative structure of Yukmidanggi in the perspective of 'growth of the patriarch'. It is possible to find the principle of the growth of the patriarch in the sense of purpose and the composition of the sub-narratives.
Yukmidanggi consists of two narrative axes; a narrative of departure-return and a narrative of romance. These two narrative axes show how the protagonist grows into a patriarch in different level. In the narrative of departure-return, the protagonist, Soseon[簫仙], grows into a heir of patriarchal right. Soseon, the prince of Silla[新羅] is defeated by his bastard brother and left his homeland, losing the right to inherit the throne. The task given to Soseon is to get back the status of a legitimate heir. For that, he must acquire stronger strength and legitimacy than his brother. The romance in China functions for it. As a result of this narrative, Soseon defeats his brother and becomes the king of Silla.
In the narrative of romance, Soseon acquires power in relation to women. This narrative is a combination of three stories. Following each story, the status and leadership of male and female characters are reversed step by step. While the status of Soseon rises from blind beggar to high-ranking official, the status of female characters decreases from a princess to an orphan in distress. In addition, Soseon's position changes from following women's choice to influencing women's survival, while women character's position fall from leading Soseon to relying on Soseon for survival. As a result, Soseon completes the patriarch's paradise Yukmi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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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세기 인문학과 한문학 연구의 향방

저자 : 박수밀 ( Park Sumil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1-17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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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전환의 세기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문학으로서의 한문학의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본 것이다. 20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의 주요 흐름에 대해 살피고 21세기 지금의 현실에서 한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았다. 한문학은 학제 간 연구를 앞장서서 도모해야 하며 지금의 시대가 현실을 좇느라 잃어가는 가치를 살펴 인간다움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문화 현상 및 현실과 연계하여 한문학이 당면한 연구과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았다. 먼저는,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논하고 생태와 환경의 차이 및 고전의 생태 정신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전의 생태 정신은 자연 친화를 이야기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관계론과 존재론의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문화콘텐츠와 고전의 가치에 대해 살폈다. 문화콘텐츠는 고전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교육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고전 전공자가 문화콘텐츠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원형 소스의 발굴과 개발이라고 보고 그 예를 제시해 보았다. 나아가 21세기는 문학에서 문화로, 이데올로기에서 일상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그와 같은 문화 변동의 세기에 한문학이 지금 시대와 호응하고 소통하기 위해 무엇에 주목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인문학으로서의 한문학에 대해 논의하면서 문화적 측면에 주목한 것은 총체적 시야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한문학은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해가는 동시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 지금 시대의 당면 과제와 대화적 소통을 해나가야 한다.


This study is to review the direction of Chinese classics as humanities study in this post-Covid era of great transformation. Firstly it reveals the main stream of humanities study till 21th century from the 20th century, then proposes the future direction of Chinese classics according to current situation. The Chinese classics should lead the interdisciplinary approach and deeply contemplate humanism, considering the value lost today because of realistic trends. On this base, the current tasks of Chinese classics is to be taken, being connected with cultural phenomenon and reality. For this, firstly climate crisis and serious environmental destruction are dealt with, the difference between ecology and environment, the importance of ecology spirit in classics are reviewed. The ecology spirit of classics is not to be limited to talk about nature friendly, should be considered in terms of relationship theory and ontology. And further more, culture contents and the value of classics are to be reviewed. The culture contents are meaningful not only in the study of classical literature, but also in education itself. The classics scholars might dedicate to the invention and development of sources, in this sense the examples are represented at once. Lastly in the 21th century the culture rather than literature, daily living rather than ideology are to be pursued. In this great transformation era, it is stressed to what point Chinese classics should pay attention in order to respond to and communicate with this era. Till today the key point of focusing the cultural aspects in Chinese classics as humanities is to secure the general point of view. The Chinese classics has own role so far, at the same time should follow the spirit of Ongojeesin - reviewing the old, learning the new -, with communication with current tasks and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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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서(四書)의 심성론적 연구

저자 : 임헌규 ( Lim Heongyu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9-20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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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보편적인 철학 혹은 종교로 인정된 여러 학파에는 고유의 경전이 존재한다. 유교에서도 시대별로 그 강조점을 달리했지만, 五經에서 十三經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경전들이 존숭되어 왔다. 그런데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朱子(1130~1200)가 여러 경전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하고(新注), 특히 四書(三經)를 정립한 이래, 四書는 그 이후 신유학에서 근본 경전으로 존숭되고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이 논문의 과제는 “'四書'란 문명사적으로 볼 때, 어떤 성격의 책이며,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때,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가?”하는 것에 대해 하나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四書란 인간에 근본을 두고, 금수와 구별되는 인간의 본성을 정립하여, 인간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人文사회를 구현할 방도를 제안한 체계이며, 따라서 四書란 심성론(인성론)으로 접근할 때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따라서 四書에 대한 연구에서 심성론적 탐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 논문은 그 기초 연구로서 『논어』에서 시작하여 『대학』·『중용』을 거쳐 『맹자』에서 정립된 心·性·情·意란 글자가 나타난 용례와 의미를 드러내고, 그 체계화 과정을 살폈다. 그리고 이렇게 사서의 심성론적 용어의 의미와 체계화 과정을 살피면서, 그것이 지니는 인간관의 특징과 그 문명사적인 의미를 탐색하였다. 나아가 四書에 나타난 심성론을 통해 인간을 재조명할 때, 오늘날과 같은 AI시대에서 위기의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유교적 인간관이 지니는 의미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제안한다.


In this paper, I'd like to study of four book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doctrine of human nature. Confucius & his successor(four books) regarded human-being and human nature(人性) with importance more than any other schools at the time.
It is known that Confucius was the first one to present the doctrine of human nature in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Confucius said, “By nature, human-being are nearly alike; by practice, human-being get to be wide apart.” C onfucius's successor spread the doctrine of human nature's nature to block heterodoxy after succeeding the theory by Confucius. The Great Learning said : “What the Great Learning teaches, is -- to illustrate illustrious virtue; to renovate the people; and to rest in the highest excellence.” The Doctrine of the Mean said :
“What Heaven has conferred is called The Nature(性); an accordance with this Nature is called The Way(道) ; the regulation of this Way is called Teaching(敎).” Mencius was the founder to present the doctrine of human nature systematically in the history of Confucianism. He said : “He who has exhausted all his mind knows his human nature. Knowing his human nature, he knows Heaven. To preserve one's mind, and nourish one's human nature, is the way to serve Heaven.” Confucius & his successor's four books was interpreted and reestablished by Chu H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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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옥재(集玉齋) 소장 서화(書畵)·금석(金石) 자료와 고종대 문화변동 연구

저자 : 유순영 ( Yoo Soonyou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7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4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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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집옥재 수집 서화·금석 자료를 조사, 분석하고 19세기 말 동아시아의 서화와 서적 유통 측면에서 집옥재 자료의 국제성을 살피며, 수집 자료의 성격과 시각 이미지에 근거하여 고종대 미술현상의 변화를 고찰한 것이다.
집옥재에 수집된 서화·금석 자료는 畵史와 畵論書, 畵譜, 명승도류, 인물 판화, 통치 및 교화, 신문물과 근대 시각 지식, 일본 자료, 금석서, 서예와 회화 자료로 이루어져 있다. 서화와 금석 관련 저록, 화보, 서예와 판화, 통치와 개화 관련 서적이 수집되었고, 일본 자료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중국의 전통 지식과 동시대 상해의 서화 경향을 담은 石印本이 대종을 이루는 것은 淸의 변화를 모델로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고자 한 고종의 시대 인식과 상통한다.
집옥재 수집 서화·금석 자료는 點石齋, 申報館, 同文書局, 行素艸堂, 江左書林에서 출판된 것이 다수를 이루며, 점석재와 동문서국 발간본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서구 자본으로 운영된 점석재와 중국인이 경영한 동문서국의 출판 경쟁은 서화 자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 판본의 유통과 서화 유통 공간으로서 상해 서점의 역할도 주목된다.
집옥재 수집 자료의 성격과 시각 이미지에 근거하여 미술문화의 변동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화조, 영모, 사군자에서 상해 화보의 유입과 해상화파 화풍의 확산을 새로 파악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며, 금석학과 골동취미, 길상적 욕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각물과 궁궐 주련을 대상으로 궁중의 서화 취향이 변화된 측면을 고찰하였다.


This thesis investigates the visual, calligraphic, epigraphic materials in the Jibokjae library, and examines the internationality of the materials of Jibokjae in terms of painting, calligraphy and book distribution in East Asia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Furthermore, I examines the changes in the art phenomenon of the Gojong era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and visual images of the collected materials in the Jibokjae library.
The visual, calligraphic, epigraphic materials in the Jibokjae library consist of painting history and picture theory books, painting manuals, scenic prints, character prints, books about government-education and new culture-modern visual knowledge, Japanese materials, epigraphic books, calligraphy and painting prints. The lithography prints containing traditional knowledge of China and the trend of contemporary Shanghai calligraphy and painting occupy a large part. This is connected with King Gojong's perception of the era, who tried to respond to a new era by using the Qing change as a model.
Large number of materials collected in Jipokjae were published in Dianshizhai, Shenbaoguan, Tongwenshuju, Xingsucaotang, and Jiangzuoshulin. Especially, publications of Dianshizhai and Tongwenshuju occupy a high proportion. The publication competition between Dianshizhai and Shenbaoguan is confirmed. The role of the Shanghai bookstores as a space of the circulation of Japanese editions and Chinese calligraphies and paintings is also noted.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and visual image of the materials collected from Jipokjae, the change of art culture is researched from two aspects. The spread of Shanghai painting style in the flower-birds, animals, and four gentlemen paintings is examined focusing on newly researched contents. The change in the taste of painting and calligraphy at the court is targeted at visual objects that acted on epigraphic studies, antique tastes, and auspicious desires. A verse couplet carved on a plank which is put on a pillar in palace is also the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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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용익의 <독사시장편삼백이십오운(讀史詩長篇三百二十五韻)>에 대하여

저자 : 이남면 ( Lee Nam-my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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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남용익의 <讀史詩長篇三百二十五韻>시를 고찰한 것이다. 이 작품은 중국의 太古시대부터 淸나라 초기까지 흥망성쇠의 변천 과정을 시대 순으로 읊은 칠언고시로, 총 325운이고 650구이며 4,550자에 이르는 장편 대작이다.
창작 동기는 남용익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아울러 勸善懲惡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하였으며 명말청초의 암울한 현실을 역사의 반추를 통해 위안 받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의 특징은 儒家的 이념과 사유에 입각한 역사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유가의 인물을 칭송하고 異端을 배척했으며, 蜀漢이 漢나라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기술했고, 곳곳에서 尊王攘夷 의식을 드러내었으며, 秦始皇과 隋煬帝 등 폭군을 비판한 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표현의 특징은, 우선 장법 면에서 褒와 貶의 반복과 그 거리 조절을 통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함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하였고, 역사의 전환기마다 과거와 새 시대를 연결하는 '聯'을 배치하여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시어의 사용은 '哀', '恨', '傷' 등 감정 표현의 글자를 사용하여 비판의 효과를 높였으며, 동물과 관련한 일화를 실패와 몰락 등의 표현을 위해 원용하는 한편 고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내어 역사를 현장감 있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구법 면에서는 7언구가 5언구에 비해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 시는 다양한 역사 기술의 방법 중 하나를 제시해주었고, 家學을 통해 전승된 남용익의 역사 인식이 조선 후기 문인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다만 긴 편폭에 너무 많은 역사를 압축 제시하여 일별하기에 쉽지 않고 그 내용 또한 난해하다. 결국 이런 방식의 역사 시 창작이 후대에 계승되지 못한 것은 이 작품의 한계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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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설리시(說理詩) 연구(硏究)

저자 : 李貞和 ( Lee Jeong Hwa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7-7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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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설리적 언표로 자신의 사상을 표출한 병와 이형상의 학문 인식과 시세계의 상관관계를 탐색한 것이다. 병와가 애호한 산수는 음풍농월하기 위한 소일의 공간이 아니라 성학의 이치를 깨닫는 장소이자 학문적 사유의 공간이다. 병와의 학자적 풍모는 벼슬아치들이 모여 있는 조시에서의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었으니, 오히려 초야에서의 은거생활 속에서 완성된 것이었다.
병와는 생전에 '병와순옹(甁窩順翁)'를 명정(銘旌)에 써 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자신의 내면 수양에 철저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실천 의지가 매우 강하였다. <경전명(鏡前銘)>에서는 내면을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이 유자의 자세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때 묻기 쉬운 마음 상태를 염려하여 수신해야 함을 일깨운 작품이 <경후명(鏡後銘)>이다. 또한 <경갑명(鏡匣銘)>에서는 먼지를 막기 위해 거울에 덮개가 있는 것과 같이 유자의 수기(修己) 역시 허물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절조축(節操祝)」은 자신의 기상을 낙락장송에 빗대어 표출하고 있는데, 올곧은 선비로 살았던 병와의 삶과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임고알묘(臨皐謁廟)」에서는 유학의 도통을 전수한 포은을 스승으로 존경하고 우러르는 마음을 나타내었다. 고결한 스승의 정신을 본받아서 자신 또한 지극한 정성을 다해 스승의 사우에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에서 이러한 그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설리시에 내재된 시정신은 기본적으로 이학자의 구도 정신인데, 시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 것이다. 마음의 다스림을 수양의 근본으로 삼고 성학을 통해 체득한 이치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삶이 설리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공맹(孔孟)을 위시한 성현의 학문을 삶의 척도로 삼아 살아가는 유자의 일상은 수기(修己)가 중심이 됨은 물론이다. 병와의 시에는 『대학(大學)』을 비롯한 경전을 통해 성학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시화한 작품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작품들에 나타나 있는 병와의 가르침은 오로지 학문에 전념해야 통찰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일깨우는 마음을 담고 있다.
병와시에는 실천궁행하는 삶의 자세가 바로 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병와는 설리시를 읊음으로써 사람이면 마땅히 걸어가야 하는 길이 곧 '도'임을 표명하고 있으니, 이는 깨달음의 도가 충만할수록 더욱더 실천궁행하는 것이 유자의 바른 길임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일방삼연(一方三然)」에서 병와는 공자와 안회의 덕망을 우러르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인(仁)의 마음을 변치 않고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병와의 설리시 가운데 일상의 경솔한 언동을 경계하는 설리시가 들어 있는데, 이를 통해 신중한 태도로 살아가는 선비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다. 「삼성수수(三聖授受)」의 경우, 도심(道心)을 정밀하게 살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삼가고 재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은사(隱士)인 소부·허유의 고사를 전고로 하여 「소허청절(巢許淸節)」을 읊은 바 있으니, 이 시에는 본성을 잃지 말 것을 권면하는 가르침이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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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채주문(蔡周文) 사건의 서사화 양상을 통해 본 조선 후기 복수 서사의 이념성

저자 : 오보라 ( Oh Bo-ra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10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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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복수를 둘러싼 쟁점들이 복수 서사를 통해 유교 이념으로 포섭되고 유교 이념을 실천하는 행위로 미화되는 과정에 주목하여, 蔡周文 사건의 서사화 양상을 분석했다.
채주문의 복수 살인은 장계, 옥안, 판부 등의 공문서에 형성된 내러티브를 통해 정당한 행위로 판결되었다. 당초 황성엽에 대한 옥안에서는 채서우가 황성엽에 의해 죽은 것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경상감사의 장계 등에서 각종 정황 증거를 거론하여 채주문의 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평가했다. 하지만 채주문의 복수 살인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이러한 논란을 해소하고자 창작된 것이 바로 정상리의 「채효자복수기사」이다. 채주문의 가문과 인척 관계였던 정상리는 실기류 산문을 통해 채주문의 복수가 정당한 행위였음을 역사적 사실로 명문화했다. 그 뒤 정민병과 고성겸은 「채효자전」을 지어, 채효자 사건을 인구에 회자될 만한 흥미롭고도 특출난 효행으로 윤색했다.
정민병은 정상리의 再從姪이었으며, 고성겸은 정민병과 교유했던 상주지역의 유생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정상리의 의도를 계승·발전하여, 복수사건을 보다 극적으로 탈바꿈하는 데 주력했다. 이들은 복수 준비 과정, 복수 살인 장면 등을 확대하고 새로운 서사를 삽입하여, 복수 서사를 흥미롭고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정민병과 고성겸이 새로 삽입하거나 확대한 서사 요소들은 모두 '孝'라는 가치와 긴밀하게 조응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이 창작한 「채효자전」은 독자들로 하여금 복수 관련 쟁점들을 상기하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채주문의 행위를 보기 드문 위대한 효행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정민병과 고성겸이 이러한 서사화를 통해 노린 것은 궁극적으로 채주문이 정려를 받고 역사서에 기록되는 것이었다.
요컨대, 정상리, 정민병, 고성겸은 의도적으로 채주문의 복수 관련 의혹들을 제거하여, 채주문의 살인을 칭송할 만한 윤리적 행위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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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후산(后山) 정윤영(鄭胤永)의 『영악록(瀛嶽錄)』 일고찰(一考察)

저자 : 박종훈 ( Park Chongh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9-14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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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금강산 유기로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后山 鄭胤永의 『瀛嶽錄』을 살펴본 것이다. 정윤영은 1897년 8월 16일 安城을 출발하여 內外 金剛과 東海를 유람하고 10월 8일 귀향했다.
『영악록』은 화성 향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총 99면, 17,956자이다. 특징 중 하나는 前代문인들의 금강산 관련 기록을 대폭 수용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金昌協의 「東游記」와는 그 체제나 실제 내용에서 유사한 측면이 너무도 많다. 전인의 기록을 대폭 수용한 것은 『영악록』을 쓴 의도가, 단순히 금강산의 소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목적의식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목적은 첫째, 금강산의 절경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영악록』에는 산수 유람과 관련된 수많은 중국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직접 금강산을 말하지 않고 중국의 뛰어난 산수만을 표현함으로써 금강산의 절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냈고, 중국 산수와의 대비를 통해 금강산이 비교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둘째, 유자적 사유를 체험하는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유람을 통해, 유자로서 평소 익혔던 사유를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체득하는 기회로 삼았다. 또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은 철저하게 고증하는 자세를 취했다. 셋째, 산수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함이었다. 절경의 산수에 대해서는 칭송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암벽에 새겨진 이름이나 정자에 걸린 작품 등을 통해 東國의 유람 습속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넷째,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기 위함이었다. 척화 관련 소장으로 유배의 시련을 겪었는데, 그러한 시련의 삶에 대한 진지한 회고가 담겨 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로 유람을 활용했는데, 이 부분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한 측면에서도 그 목적의식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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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고전문학에 수용된 인물의 특질과 형상화 방안 ― 설화 <우렁각시>를 중심으로 ―

저자 : 하경숙 ( Ha Kyoung-sook ) , 이정현 ( Lee Jung-hyu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5-16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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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설화는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우렁각시는 다양한 유통을 통해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총각이 농사를 짓다가 우렁이를 발견하고 우렁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변신해 밥상을 차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총각과 처녀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설화 <우렁각시> 속에는 여성적이며 현실적이며 신비한 면모를 지닌 여성의 모습이 나타나며, 사회적·문화적 문맥을 통하여 이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또한 결핍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는 여성의 특성을 중심으로 서사가 지니고 있는 관계적 가치를 풀어보고자 모색하였다. 우렁각시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아내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총각이 지닌 다양한 결핍과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해결해주는 인물이다. 아울러 현모양처의 면모가 상세히 드러난다.
우렁각시라는 인물은 독립적인 결정과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능동적인 인물이다. 스스로 다양한 사건을 경험한 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렁각시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서사에서는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상황으로의 국면을 전환하는 노력과 아울러 주체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우렁각시가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리고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보다 삶에 대해 적극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렁각시가 인간의 일상생활에 속하게 되면서 다양하고 신이한 능력을 발휘한다. 이는 자연의 풍요로움과 여성이 지닌 생명성을 동일하게 바라본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고대사회의 여성이 지니고 있는 생명에 대한 관점과 삶속에서 생명추구의 모습을 모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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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연행록(燕行錄) 국역 사업'의 성과와 향후 과제 ― 학술적 가치와 연계하여 ―

저자 : 이홍식 ( Lee¸ Hongshik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7-19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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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2015년부터 수행하고 있는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를 학술적 차원에서 평가하고 그 의미를 점검하여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에 지금까지 제출된 연행록 국역 성과와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를 비교 분석하여 현재 의미를 평가하였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이루어진 사행 관련 학술연구 성과를 분석하여 '연행록 국역 사업' 성과의 미래 가치를 점검하였다. 마지막으로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에 비추어서 앞으로의 국역 사업 진행 방향 등에 대해 정책 제언을 더하였다.
대중국 사행기록인 연행록은 한·중 교류의 역사적인 기록이자 문화의 교류와 충격 그리고 자각을 드러내는 문화사적·지성사적 자료이다. 우리 문화유산 속에서 독자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닌 문헌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사에서도 매우 독특한 존재로 인정되고 있다. 이에 한·중 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밝히는 자료로써 그 가치가 매우 높은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번역 출간한 20권의 연행록은 이러한 사행기록의 학술적 가치를 드러내는 데 매우 유용한 텍스트이다.
따라서 '연행록 국역 사업'은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체계적인 계획 아래에서 완성도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제출할 필요가 있다. 더하여 학술 연구와의 연계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사업 주체들의 책임의식과 협업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하여 한국고전번역원의 평가 심사 외에도 성과발표회 및 학술세미나 등을 주기적으로 개최하여 국역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학술연구와 연계하여 새로운 비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부의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연구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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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선조초반 사인조보(私印朝報)사건을 통해 본 정치상황과 조보(朝報)정책

저자 : 김경록 ( Kim Kyeong Lok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7-23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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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보는 승정원에서 정리하여 전국에 전파함으로써 국왕의 선정 및 통치의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발간되었다.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필사조보를 인쇄하여 보다 많은 부수를 보다 편리하게 전파할 수 있음에도 선조는 이를 사건화하여 정국을 경색시켰다. 그 결과 인쇄를 통해 신속하고 대량으로 전파할 수 있음에도 인쇄조보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은 유교국가로써 국왕을 정점으로 사대부의 지배체제가 공론정치를 지향했다. 공론정치를 지속하고 확장하기 위해 국왕의 정당한 정치를 알리고 민심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활용된 것이 조보였다. 조보는 국왕과 왕실의 동정 및 각종 예제, 인사정책, 관리의 공론정치 및 보고서와 이에 대한 국왕의 처분을 포함하였다. 조선은 건국직후 조보를 왕정의 전파수단으로 인식하여 철저히 통제하고자 하였으며, 각종 정치사건, 예제사건, 인사정책에 조보는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선조는 즉위하며 명종대에 척신정치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의 분화 및 대립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유교국가의 정통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격화되었다. 이런 정치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군사적 위기의식이 고조되자 선조는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즉, 선조는 왕위계승의 문제를 극복하고 정치 상황에 대응하고자 정세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에 의한 사인조보의 발행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조보를 왕권의 대외 전파수단임을 강조했다.
1577년(선조 10) 선조의 備忘記에서 시작된 사인조보사건은 유교국가에서 조보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직계왕손으로 즉위하지 못한 선조가 초반기 왕위의 정통성과 통치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였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왕의 정당한 통치를 전파하는 조보를 민간에서 사적 이익을 위해 인쇄하였다는 점은 선조로써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약 3개월의 조사를 통해 30여 명의 관련자를 처벌한 선조는 향후 조보의 인쇄를 금지하고 철저한 관리를 지시하며 사건을 종료했다.
선조에 의해 제기되고 처벌된 사인조보사건은 선조초반 정치상황의 전개과정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재위 10년을 경과하며 선조는 왕위의 권위를 회복하고 갈등구도의 정치상황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자 사인조보사건을 정치사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히 엄단하는 태도를 보였다. 실제 사인조보는 당시 명에서 일상적으로 시행되는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王政의 전파 및 전달단계를 원활히 함과 동시에 이의 발행을 수월하게 하여 민간에서 이익을 가지고자 했던 사회발전의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선조는 사인조보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왕명출납의 한방식이라 강조하였다. 조보는 이후 매우 한정적으로 발행되었으며, 임진전쟁의 와중에 통치질서가 붕괴되자 이를 보완하는 매체로 활용됨으로써 선조초반 사인조보사건이 선조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발생하였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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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성호 이익의 관혼례(冠婚禮) 의절(儀節) 연구

저자 : 도민재 ( Doh Min-jae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5-26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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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성호 이익이 실제 관례와 혼례를 거행하며 의식절차를 정리한 「산절관의(刪節冠儀)」와 「취부의(娶婦儀)」, 「가녀의(嫁女儀)」의 내용 분석을 통해, 이익이 제시한 실용적인 관례와 혼례 의절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이익은 관례에서 빈객을 모시는 절차를 생략하고, 삼가례는 한 번으로 간소화하여 관례 시행에 필요한 의복이나 기물 준비에 드는 비용 부담을 줄였다. 이는 예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가난한 집안의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혼례는 시속(時俗)을 따라 친영(親迎)을 하지 않고 신부집에서 혼례식을 거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청기(請期)'도 신랑집이 아닌 신부집에서 청하도록 하고, 폐백과 음식의 종류 및 가짓수를 간소화하여 실용적인 혼례 의식을 제시했다.
이익은 『가례』가 의례 실천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점은 인정했으나, 『가례』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실적인 경제 상황에 맞추어 의례를 실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가난한 양반이나 일반 서인들이 『가례』를 제대로 따르기 어려운 현실에서, 경제적인 측면에 구애되지 않고 시행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의례의 형식을 제시했다. 이처럼 이익은 당시 조선의 현실에 알맞은 실용적인 의례 실천을 추구하여, 형식에 치우친 허례허식(虛禮虛飾)이 아닌 진정한 실학으로서의 예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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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희의 미발공부 유무와 호락논쟁

저자 : 이종우 ( Yi Jongwoo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5-29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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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는 미발시 공부로서 계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훗날 조선후기 호락논쟁의 쟁점이 되었다. 호학의 한원진은 낙학인 이현익의 미발시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김창흡을 지지하였다. 당시 김창흡은 낙학에서 이현익과 박필주가 논쟁을 벌인 것에 대하여 이현익을 비판하면서 박필주를 지지하였다. 그는 미발시에도 함양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현익은 미발이란 희노애락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일 뿐만 아니라 허황된 생각도 생기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였고, 주희의 미발무공부에 근거하였다. 반면에 김창흡은 그러한 상태일지라도 그것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함양으로서 계신공구 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고, 주희의 미발공부에 근거하였다. 김창흡은 미발이란 본연지성만 있으므로 순선하다고 여긴 반면에 한원진은 기질지성도 있기 때문에 선악이 함께 있다고 여긴 것이 다른 점이다. 이간은 미발을 본연지성만 있으므로 순선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것이 김창흡과 공통점이다. 이 때문에 『정조실록』에서 이간을 김창흡과 같은 낙학으로 분류하였으나 미발시 공부설도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간은 미발을 중과 부중으로 구분하여 부중의 미발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중의 미발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주희의 미발공부의 유무에 근거하였다. 이간의 미발시 무공부는 이현익과 공통점을 갖는 반면에 김창흡과 다르다. 그러므로 『정조실록』에서 이간과 김창흡을 낙학으로 분류한 것은 미발시 본연지성만 있다는 주장이 같았기 때문일 뿐 공부설이 같아서 분류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의 미발시 공부에 관한 논쟁은 성리학의 목적에 해당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것은 호락논쟁의 결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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