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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동양학> 금대(金代) 한족(漢族) 관료(官僚) 기용(起用)의 특징(特徵)과 변화(變化) - 재집(宰執) 집단의 분석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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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金代) 한족(漢族) 관료(官僚) 기용(起用)의 특징(特徵)과 변화(變化) - 재집(宰執) 집단의 분석을 중심으로 -

Characteristics and Changes of the Employment of Han Chinese Officials in the Jin Dynasty - Focusing on the Analysis of the Prime Ministers’(zaiji 宰執) Group -

윤욱 ( Yoon¸ Wook )
  •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 : 동양학 83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4월
  • : 179-203(25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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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한족 재집 분석의 필요성
Ⅱ. 한족 宰執의 수량적 고찰
Ⅲ. 한족 宰執 집단의 지역 분포의 변화
Ⅳ. 宰執 기용 전의 경력
Ⅴ. 한족 宰執의 역할
Ⅵ. 결론:변동하는 한족 기용 정책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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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金代 漢族 宰執의 총수를 조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漢族 宰執의 출신, 경력 및 역할의 변화를 검토했다. 金代 漢族 宰執의 총수는 44명이었다. 출신을 본다면 금의 건국에 참여했던 燕雲 출신이 章宗 때까지 두드러지게 많았다. 南征을 위해 北宋 명문가 출신을 중용했던 海陵王代는 예외였다. 衛紹王시기 이후 눈에 띠게 燕雲 출신이 급감하고 북송의 故地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몽골이 금을 침략하여 燕雲지역을 장악하자 燕雲의 한인 엘리트들이 적극적으로 몽골의 화북 정벌에 동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漢族 宰執의 경력은 世宗 시기를 전후하여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世宗 이전의 漢族 宰執은 주로 宋, 遼의 관료출신으로 여진 엘리트들이 생소한 조정 의례나 외교상의 의전 방면의 전문가이거나 한지를 경영하던 行臺尙書省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世宗 이후부터는 宰執에 임명되는 사람들의 경력이 정형화되는 경향이 등장했다. 金이 설치한 과거의 進士 출신으로서 尙書省에서 令史와 司官으로 근무하면서 황제 및 宰執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주로 宰執에 임명되었다. 또한 금조의 통치자들은 국민의 대다수를 점할 뿐만 아니라 제국의 세원이기도한 漢族의 민생 문제에 밝은 戶部 출신이나 재정전문가들을 宰執에 기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漢族 관원들은 宰執에 임명된 이후에도 민생과 재정분야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In this article, the total number of Han Chinese prime minister of the Jin dynasty was investigated, and the changes in their geographic origin, career and role over time were reviewed. The total number of Han Chinese prime ministers in the Jin Dynasty was 44. In terms of geographic origins, the prime ministers from the Yanyun area, which had produced not a few Chinese founding fathers of the dynasty, occupied the mainstream until the Zhangzong period. An exception was the King of Hailing period, when Chinese officials from prestigious Northern Song families were often appointed as prime ministers to help conquering the Southern Song. After the King of Weishao period, the number of people from Yanyun markedly decreased, and instead, the majority came from the former Northern Song territory. This had to do with Mongol’s domination of the Yanyun area and the fact that Yanyun’s Han Chinese elites actively contributed to the Mongolian conquest of North China.
The career of han officials who would became prime ministers changed around the Shizong period. Before the Shizong period, the Han prime ministers were primarily former officials of the Song Dynasty or the Liao dynasty, and were experts in court etiquette and diplomatic rituals which were unfamiliar to the Jurchen elites. Before their appointment as prime minister, they also often worked in the organizations that administered the areas whose population was mostly Chinese. From the time of Shizong, a pattern began to appear in the careers of those appointed as prime minister. Prime ministers were mainly those who had obtained the jinshi degree through the civil examinations established by the Jin dynasty, and who had worked as clerks or (and) officials in the Department of State Affairs (shangshusheng 尙書省) and had developed close relationship with the emperor and prime ministers. In addition, the rulers of the Jin dyansty preferred to appoint as prime minister financial experts of the Ministry of Revenue (hubu), who were well aware of the welfare of the Han Chinese, who not only made up the majority of the people but also were the tax source of the empire. Even after their appointment, Han Chinese prime ministers were remarkably active in the fields of finace and Han Chinese people’s welf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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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계간
  • : 1229-3199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17-2021
  • :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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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세훈민정음도설(經世訓民正音圖說)』과 『오음집운(五音集韻)』의 운모체계 비교

저자 : 배규리 ( Bae¸ Gyuree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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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경세훈민정음도설』 음계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하여 『오음집운』과 『경세훈민정음도설』의 상관관계를 먼저 정립한 후, 『오음집운』의 운모체계의 특징인 2등운의 병합, 3등운 간의 합류, 3·4등운 간의 병합이 『경세도설』에 반영되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두 문헌을 비교하였다. 『경세도설』과 『오음집운』의 운부 체계를 비교한 결과, 支·脂·之운, 皆·佳운, 山·刪운, 銜·咸운, 嚴운이 『경세도설』에서는 분립하고, 『오음집운』은 이미 위의 운들이 병합되었다. 『경세도설』 중 2등운 중운인 山·删운, 佳·皆운 및 거성 卦·耕·庚운, 咸·銜운이 실제 용자의 배열에서 혼용되었다. 『오음집운』의 3등운 중 支·脂·之운이 支운으로, 眞·臻운이 眞운으로, 嚴·凡운이 凡운으로 합쳐졌는데, 『경세도설』에서는 支·脂·之운을 분립시켰으나, 실제 용자에서는 支·脂·之운이 서로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경세도설』은 凡韻을 嚴운에 귀속시켰으나, 『오음집운』은 嚴운을 凡운에 배열하였다. 『경세도설』에서 先운과 仙운, 鹽운과 添韻이 합류되었고, 宵·蕭운, 靑·淸운이 각각 함께 배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경세도설』의 용자 배열은 『오음집운』 운부 체계의 양상을 일부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경세도설』의 중성 표기음이 『오음집운』의 재구음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최석정이 자신의 언어관념과 역리적 틀에 따라 설계한 중성 자모 체계를 따랐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2옛 지명 복제(卜梯)의 어원 연구

저자 : 조강봉 ( Cho¸ Kang-bo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40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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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복제(卜梯)의 어원을 살핀 논의다. 복제원(卜梯院)은 『승람』 전라도 흥양현조에 기록된 지명인데 그 잔형으로 복제교(卜梯橋)가 남아 있으나 지금은 거의 속지명 '짐다리'로 불리고 있으며, 현행지도에는 '진교' 또는 '진다리'로 적혀있다.
'진다리'의 한자 표기는 '泥橋', '辰橋', '長橋'로 나타난다. 그 중 '진다리(泥橋)'는 냇물 속에 진흙더미를 쌓아 만든 징검다리인 '진흙다리'의 훈차 표기로 보이고, '진다리(辰橋)'도 '진(흙)다리'의 '진'을 '辰'으로 음차 표기한 지명으로 보이며, '진다리(長橋)'는 '진흙다리'의 '진'이 역구개음화 현상으로 '긴'으로 변한 것을 '長'으로 훈차 표기한 지명으로 보인다.
복제(卜梯)는 과역면과 점암면(占巖面)을 경계 짓는 폭이 좁은 사정천에 놓인 징검다리일 가능성이 높고, 징검다리는 『훈몽자회』에는 '點石'이라 했기 때문에 '卜'은 냇물에 놓은 '點石'의 '點'의 음 '점'의 훈차 표기로 보인다.

3현대 중국어 다품사어 '自+X'의 형태-통사적 특징

저자 : 장호득 ( Chang¸ Hodeu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1-6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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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现代汉语词典』(第七版) 표제어의 2음절 '自+X' 구조 가운데 2개 이상의 품사를 갖는 다품사어를 전수조사(全數調査)하여 추출한 후 목록화하고 분류하여 그 형태 - 통사적 특징을 규명하였다. 그 연구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自+X'는 내부 구조의 재분석을 통해 형태 - 통사적 특징을 알 수 있는데, 그 정체성은 내현적 분산형태의 통합합성어로 생성·도출된다.
둘째, 다품사어인 '自+X' 구조는 그 형태만으로는 다품사 중의 개별 품사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그 구조의 통사적 생성·도출 과정을 통해 '自+X' 중 '自'의 재귀성과 조응성, '自+X'의 명사성, 동사성, 형용사성, 부사성 등을 함께 종합적으로 살펴야 그 정체성을 규명하여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통사적 도출 과정에서 형용사가 격 표지의 도움 없이 부사어로 도출된다든지, 부사가 부사어격 표지 '地'와 함께 병합하여 다시 부사어로 도출되는 현상은 '自+X' 구조의 내현적 분산형태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중국어의 다품사어 '自+X' 구조에서 품사를 구분 짓는 명확한 형태적·구조적 기준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부 구조의 재분석을 통해 그것이 내현적 분산형태의 통합합성어 특징을 가지면서 형태론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통사적 층차까지 연결되어 형태 - 통사적 면모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네 갈래의 백합(四又の百合)』 “백합”과 “사(四)”의 탐구

저자 : 박경연 ( Park¸ Kyoung Yeo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1-8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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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 동화의 특징은 비유 표현, 암시, 의외성, 종교, 도덕성 등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종교학, 철학, 역사학, 광물학, 식물생태학, 천문학, 자연 과학 등 다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지식을 기초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고, 겐지 특유의 종교 관념은 종교성을 토대로 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일련종의 법화경과 깊은 인연이 있었던 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네 갈래의 백합(四又の百合)』의 제목 속에 나타난 “백합”과 “사(四)”에 주목한다. 『네 갈래의 백합』의 등장인물은 여래정변지, 왕과 대신, 마을 사람들, 숲속의 아이가 존재하고 이러한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은 작품의 무대 설정을 구분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 속에서 무대 설정은 여래정변지가 있는 장소, 여래정변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 그 사이를 흐르는 강, 아이가 있는 숲속으로 4개의 공간이 있다고 보았다. 더욱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백합의 꽃잎이 네 잎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수리적 신비성에 대하여 추구한다. 불교색이 농후한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는 현실의 인간세계에서 불교적 이상세계를 구현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백합”과 “사(四)”의 키워드를 가지고 새로운 각도에서 고찰한다.
다수의 겐지 동화에 나타난 공간구조는 현실과 비현실의 이중구조로 구분된다. 『네 갈래의 백합』의 현실세계는 유형세계와 무형세계로 구분되며, 이는 눈에 보이는 육체의 세계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비현실세계는 공상세계로서 여래가 살고 있는 세계, 어린이가 있는 이(異)공간이다. 현실세계는 여래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고, 강을 경계로 강 건너의 세계는 대조적으로 구분된다. 유형세계 속에서 무형세계와 겹치는 부분은 아이가 등장하는 이(異)공간의 세계이다. 『네 갈래의 백합』의 물리적인 공간은 섬, 성, 강, 숲속 등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불교적 존재인 여래의 공간은 다원적인 공간이다. 2차원과 3차원의 세계는 픽션과 논픽션의 세계이다. 2차원의 세계는 공상의 세계로 판타지 등의 가상세계이다. 3차원의 세계는 현실세계이고 인간이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유형세계이다. 4차원의 세계는 인간이 죽어서 가는 사후 세계, 즉 영(靈)의 세계인 무형세계이다. 2차원과 3차원의 세계, 불교적 우주관으로의 4차원의 세계를 복합한 공간구조는 왕이나 마을 사람들이 사는 육지, 경계선인 강, 여래정변지가 있는 육지로 구분된다. 더불어 어린이가 존재하는 숲의 공간이 추가되어 4개의 공간이 된다. 강의 공간설정은 3차원 세계와 4차원 세계를 교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네 갈래의 백합』은 2차원의 가상세계와 3차원의 현실세계 등의 차원적인 관점에 의해 물리적인 공간을 나누어 해석할 수 있다. 숲속에서는 이(異)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 숲속이라는 같은 상황에서도 백합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발견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유형세계와 무형세계가 교차하는 정신적인 공간으로 구별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여래가 있는 세계는 일반적으로 사후세계라고 할 수 있는 4차원의 세계이고, 또 인간의 공상에 의한 2차원의 세계이기도 하다. 3차원의 세계는 왕이 있는 세계이고, 그 경계가 강의 세계, 숲속은 3차원 세계 속에서도 이(異)차원의 세계인 것이다.
숲속 맨발의 아이는 현실세계와 사후세계의 경계선의 존재, 또는 사후세계의 존재처럼 상상하게 하고, 맨발의 의미가 사후세계라는 설정은 연구자의 연구와도 연계성을 갖는다. 법화경에 귀의한 켄지는 여래에게 귀의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이를 통하여 투영하고자 설정하고, 백합이 있는 숲속 맨발의 아이가 있는 공간으로 분리한다. 숲은 눈에 보이는 공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백합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유무를 통하여 구분할 수 있다.
겐지의 동화는 다양한 비유 표현과 이중구조의 형식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겐지 동화의 연구는 다각도에서 조명하고 해석할 수 있다. 겐지 동화의 특징과 종교와의 관련성, 『네 갈래의 백합』의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 겐지의 사상과 『네 갈래의 백합』의 불교의식, 백합의 역할과 위치 설정, 네 갈래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선정한 겐지의 의도 등, “백합”에 초점을 두고 작품의 무대 설정에서 보이는 공간구조 “사(四)”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53~6세기 삼국의 정세와 도기동산성

저자 : 황보경 ( Hwangbo¸ Ky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9-11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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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도기동산성은 발견과 동시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학술적으로나 문화재적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은 삼국시대 성곽이다. 이 성은 백제와 고구려가 축성하여 사용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목책과 토축, 석축 등 다양한 재료와 기술로 축성되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또한, 성 내부와 주위에서 백제와 고구려 취락 및 생산시설, 여러 종류의 고분도 발굴되었다. 이제까지의 조사성과로 보아 도기동산성은 4세기에 축성되어 6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도기동산성은 안성의 거점성 중 하나로 교통로와 취락, 고분군이 갖추어진 유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삼국시대 초기에 안성천이 마한과 백제의 경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3~4세기 본격적으로 영역 확장을 추진하였고, 안성지역도 복속하여 도기동산성을 축성하였다. 백제가 이 산성을 축성한 목적은 첫째, 한강 이남에서 경기 남부를 거쳐 충남지역으로 진출하기에 적합한 요충지라는 점, 둘째 마한의 잔여 세력을 제압하고 교통로 통제를 하기에 적절한 거점성의 역할, 셋째 안성천변을 따라 발달한 평야지대에서 식량 생산과 수취 획득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475년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한 이후 대전 일대까지 남진하는 과정에서 이 산성도 점유하였다. 고구려 입장에서 도기동산성이 갖는 장점은 첫째, 안성천 유역을 따라 발달한 동-서 교통로를 통해 나제를 동시에 압박할 수 있다는 점과, 둘째 수취와 식량 획득이 용이한 평야지대라는 점, 셋째 서해안과 인접하여 해상을 통한 백제의 북상 및 중국 교류도 간접적으로 통제하는데 유리하다는 점, 넷째 백제의 북진을 방어하기가 적합했기 때문이다.
무령왕은 재위 초부터 고구려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위천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한성을 수복하면서 도기동산성도 다시 운용했던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도기동산성은 백제 한성기부터 웅진기까지 운영되었고, 고구려도 일정기간 점유하면서 백제의 북상을 저지하였다.

6경주(慶州) 이중구가(李中久家) 오대(五代) 고문서(古文書) 자료(資料)의 정리와 성과

저자 : 이재령 ( Lee¸ Jaeryo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5-14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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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서간문에 기초한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까지의 민간생활사 자료' 구축을 위해 탈초, 해제된 결과를 정리, 소개하는데 목표를 둔다. 연구대상으로 삼은 자료는 단국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경주 이중구가의 5대 고문서' 8천여 건이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회재 이언적의 후손이라는 높은 긍지를 지녔을 영남 남인계의 가문이 혼돈의 근대이행기를 살아낸 내면의 기록들로 자료의 성격과 시대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거시적으로는 향촌에 거주한 양반들의 동학, 위정척사, 을미사변, 단발령, 아관파천 등의 국내문제와 의화단사건,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대외문제에 관한 봉건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과 대응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미시적으로는 향촌의 공공영역 활동, 서원 및 개인의 학문 활동, 전통문화와 관습, 관혼상제, 의료·보건, 과거 급제와 출세의 열망, 친인척간 사랑, 지인들의 관심과 배려, 문학 활동과 예술적 흥취 등 일상 속에서 쌓여온 삶의 모습과 생각들이 그대로 드러나 이들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예컨대 감모궁 건립 모금의 폐해, 러일전쟁 전후 일제 침탈에 대한 우려와 분노, 신문명에 대한 반응과 신지식체계의 수용 등을 통해 구한말 지식인들이 고루하거나 폐쇄적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중구가 관직 생활을 마치고 낙향한 후 펼친 다양한 활동은 향론의 주도자요, 향촌 지도자로서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종의 복국 운동은 실행 유무와 문건의 진위 여부를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고문서에 포함된 등본자료를 통해 나라를 잃은 군주의 절실한 노력과 이를 뒷받침했던 신하의 지극한 모습을 통해 저물어가는 봉건시대 충의 잔영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절한 정을 드러낸 편지를 많이 볼 수 있다. 며느리를 보는 날, 딸은 오지 않고 사위만 오자, 딸 사돈이 사돈에게 보낸 아쉬움이 절절하게 배어난 편지나 손녀딸에 애태우는 친정 할아버지의 애달픔을 살필 수 있는 편지, 출산을 앞둔 긴장감을 전한 편지 등은 동시대 가족사랑이 엄격한 예교 질서나 표피적 현상과 많이 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중구가의 편지와 기타 고문서에 대한 탈초, 해제 및 기본정보 등의 연구가 마무리되고, 체계적인 정리, 분석작업이 진행되면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까지 사회상과 향촌의 일상, 지식인의 현실적 고뇌와 대응을 보다 실질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 근대사의 연구범위와 대상을 확장시켜 동아시아 근대사의 이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7일제 말기 '조선문화공로상' 수여와 식민지배적 성격

저자 : 최현우 ( Choi¸ Hyunw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158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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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가 수여한 조선문화공로상에 천착하여 그 수여 제도의 운영과 수상자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40년 '시정 30년'을 기념하기 위해 「朝鮮文化功勞賞授與規程」을 제정하고 그 해부터 1944년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21명에게 조선문화공로상을 수여하였다.
조선문화공로상은 도지사의 추천을 거친 자를 대상으로 별도의 전형위원회가 심사하여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전형위원회는 20명에 달하는 규모였으며, 조선총독부 각 부서 책임자와 경성제국대학 총장 및 교수 등으로 구성되었다. 당초 조선문화공로상은 조선총독부가 개청한 10월 1일에 수여되었으나, 1942년 제3회부터는 수여일이 11월 3일 명치절(明治節)로 변경되었다.
조선문화공로상 수상자는 1명의 조선인을 제외하고 모두 일본인이었다. 수상자의 상당수는 조선총독부 관료였으며, 불이흥업주식회사·압록강수력전기회사·조선석유주식회사·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 등과 같은 관변기업의 임원이 포함되었다. 수상자의 활동 분야는 크게 인문, 종교, 의료, 농림, 수산, 지질, 연료, 항공, 토목으로 구분되었다.
인문, 종교, 의료를 제외한 나머지 농림, 수산, 지질, 연료, 항공, 토목에 해당하는 조선문화공로상 수여자는 총 14명으로 전체 21명의 약 70퍼센트에 해당한다. 이들 분야의 수상자는 과학기술 관료와 실업가로 농수산물·광물의 생산 증대, 운송력의 확대를 가져오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관련 활동을 전개한 '공로'로 수상하였다. 국가총동원체제 아래에 생산력의 증대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조선총독부는 조선문화공로상을 통해 기왕의 연구성과와 활동을 치하하고, 이들을 '모범'으로 부각시켰다. 이를 통해 전시 체제에 도움을 주는 생산력의 확대가 곧 '문화공로'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한편, 전 분야에서 추진된 생산력 확대 시책을 정당화하려 하였다.

8해방 이후(1945~50) 천안지역 정치동향의 추이와 성격

저자 : 박상준 ( Park¸ Sangju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9-17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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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해방 이후 정치동향에 대한 지역사례 연구로서, 충남 천안 내 변화의 양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해방 직후 미군의 진주와 인민위원회의 부침이라는 상황 속에서 천안지역 내 국가건설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천안에서는 일제시기 유력자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관료기구를 장악하고 반탁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우익세력으로 새롭게 재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탁치정국하에서 이들은 폭력공세를 통해 좌익세력을 억제하는 한편,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여 세력을 규합해 나갔다.
천안지역의 우익세력은 정치적 주도권을 점차 장악해 나가게 되었지만, 이후 야기된 분화현상이 1949~50년간 진행된 두 번의 보궐선거와 제2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곧 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을 통해 다시금 좌우익간 대결이 펼쳐지는 형태로 지역사회의 정세가 변화되어 갔다. 이와 같은 천안지역의 정세변화는 거시적으로 볼 때 당시 중앙정치의 규정력하에서 그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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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金代 漢族 宰執의 총수를 조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漢族 宰執의 출신, 경력 및 역할의 변화를 검토했다. 金代 漢族 宰執의 총수는 44명이었다. 출신을 본다면 금의 건국에 참여했던 燕雲 출신이 章宗 때까지 두드러지게 많았다. 南征을 위해 北宋 명문가 출신을 중용했던 海陵王代는 예외였다. 衛紹王시기 이후 눈에 띠게 燕雲 출신이 급감하고 북송의 故地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몽골이 금을 침략하여 燕雲지역을 장악하자 燕雲의 한인 엘리트들이 적극적으로 몽골의 화북 정벌에 동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漢族 宰執의 경력은 世宗 시기를 전후하여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世宗 이전의 漢族 宰執은 주로 宋, 遼의 관료출신으로 여진 엘리트들이 생소한 조정 의례나 외교상의 의전 방면의 전문가이거나 한지를 경영하던 行臺尙書省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世宗 이후부터는 宰執에 임명되는 사람들의 경력이 정형화되는 경향이 등장했다. 金이 설치한 과거의 進士 출신으로서 尙書省에서 令史와 司官으로 근무하면서 황제 및 宰執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주로 宰執에 임명되었다. 또한 금조의 통치자들은 국민의 대다수를 점할 뿐만 아니라 제국의 세원이기도한 漢族의 민생 문제에 밝은 戶部 출신이나 재정전문가들을 宰執에 기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漢族 관원들은 宰執에 임명된 이후에도 민생과 재정분야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10성재(性齋) 허전(許傳)의 심의(深衣) 연구

저자 : 차서연 ( Cha¸ Seoyeo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5-224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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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유학자들이 존숭한 深衣에 대한 性齋 許傳의 해석을 고찰한 것이다. 허전은 『禮記』 「玉藻」와 「深衣」, 『儀禮』 「喪服」의 기록이 서로 보완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家禮』와 함께 『예기』와 『의례』를 상세하게 고찰하고 분석하여 고경의 본지를 얻은 듯하다고 자부하였다.
심의는 文武와 貴賤, 吉凶, 男女의 구분 없이 다양한 상황에서 입을 수 있으며 그 형태는 상징성까지 담고 있다. 턱 아래 네모난 方領은 곱자[矩]와 같은 방정함[方], 반원 형태의 둥근 소매는 그림쇠[規], 등솔은 먹줄[繩]과 같은 곧음[直], 아랫단이 가지런함은 저울[權衡]과 같은 평평함[平]을 상징한다. 下裳의 12폭은 1년 12개월의 큰 수에 응한하는 의미이다.
심의의 해석 가운데 특히 曲袷과 續衽鉤邊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허전은 경문을 토대로 의미와 위치를 명확하게 고증하였다. 曲袷은 턱 아래가 네모난 方領이고, 衽은 上衣와 下裳에 모두 있어 상의의 衽은 섶으로 상의의 길옆과 方領의 끝에 위치하고, 하상의 衽은 12폭 중 끝에 있는 2폭이 續衽鉤邊이라고 결론지었다. 당시 턱 아래가 네모난 형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허전은 이 형태만이 고례와 『가례』의 의미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였다.
허전이 제시한 심의는 고례를 준수하고 검소함을 숭상하여 완벽하면서도 낭비가 없는 옷이다. 그는 조선에서 심의의 간편함을 알고 제대로 만들어 입는다면 성인을 따르고 예를 갖출 수 있으면서 직물까지 절약하는 선왕의 의제가 회복될 것으로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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