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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당뮤지엄 발굴 늑도유적 인골의 형질적 특징

The Characteristics of human bones in Neukdo site excavated by Seokdang Museum

김재현 ( Kim Jae-hyun )
  •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 석당논총 7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3월
  • : 5-20(16pages)
석당논총

DOI


목차

Ⅰ. 머리말
Ⅱ. 연구방법과 대상
Ⅲ. 분석과 검토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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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도유적은 한정된 범위에서 한정된 시간대에 집중되어 사람들이 거주한 정주 생활 주거유적이다. 인골의 분석이나 주거유형, 매장방법 등에서 추정하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집단이 거주한 유적이다. 시간차를 감안하더라도 인골이 100여개체 확인되는 사실에서 적어도 몇십명 단위가 아닌 몇백명 단위의 거주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늑도인골의 형질적 특징은 두개장폭시수(M8/1)의 비교에서는 늑도 인골은 장두에 속하며 두개장고시수(M17/1)와 두개폭고시수(M17/8)는 중두에 속한다. Kollmann안시수(M47/45)와 Kollmann상안시수(M48/45)는 저안과 저상안의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늑도 인골은 김해 예안리 인골이나 일본과 몽골 등의 형질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늑도인골은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개념의 관련성이 아니라, 오히려 북방-마한-늑도-왜 라는 연결 선상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Neukdo site is a remains of livelihood where people lived in certain range concentrated in certain period. Estimating from analysis of human bones, dwelling site, and burial method, there were at least two groups dwell in this very site.
Despite the slight time differences, It is estimated that there were at least hundreds of human population at the time, as more than 100 human skeletons were identified.
The characteristic properties of Neukdo human bones are that it appertain to long cranial in comparison of cranial index(M8/1), the langen-hohen index(M17/1), and the breiten-hohen index(M17/8) appertain to medium cranial.
Also, Kollmann total facial index(M47/45) and Kollmann obergesichts index(M48/45) shows the properties of low facies and low upper facies.
Therefore, Neukdo human bones aren’t directly related to Kimhae Yean-ri human bones or Japanese, and Mongolian characteristics. Neukdo human bones should be researched in relations of Northern Asian-Mahan (baekje)-Neukdo-Wa(Japan), rather than the same standards as present Korea, Mongoli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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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3회
  • : 1738-6578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7-2021
  • : 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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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권0호(2021년 07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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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장관전서』를 통해 살펴본 조선후기 서얼 문인들 - 이덕무의 벗들을 중심으로 -

저자 : 권정원 ( Kwon Jung-Wo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4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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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덕무의 문집 『청장관전서』에 언급된 몇몇의 서얼문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문학 세계의 일단을 고찰하였다.
이덕무(1741~1793)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서얼문인으로, 그와 교유했던 인물들도 대부분이 서얼이었다. 서얼들은 사대부 적자들과는 달리 문헌에 기록이 남는 경우가 드물고 개인문집을 남기는 일도 쉽지 않았기에, 그들의 문학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이덕무의 경우는 사후 정조의 명으로 그의 문집이 간행되는 행운을 얻었는데, 『청장관전서』가 그것이다. 『청장관전서』는 71권 33책의 방대한 분량의 문집으로, 이덕무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교유했던 서얼문인들에 대한 기록 또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장관전서』에 언급된 서얼문인은 대략 65명 정도이다. 본고에서는 이들 중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청장관전서』에 실제 작품과 비평이 남아 있는 서얼문인을 대상으로 삼았다. 본 기준에 부합하는 문인은 이광석, 변일휴, 박종산, 윤가기, 이공무, 김홍운, 이형상, 이규승, 8명 정도로 간추릴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확인되는 이들의 작품은 이광석의 시 9수, 변일휴의 시 7수, 박종산의 시 5수, 윤가기의 시 3수 그리고 나머지는 시 1~2수 정도이다. 남아 있는 작품 수가 많지 않기에 그들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몇몇 서얼문인에게서 공안파와 경릉파의 시풍을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이광석의 경우는 경릉파에, 변일휴와 박종산의 경우는 공안파에 깊이 경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들의 시에서도 그러한 시풍의 영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공무와 이규승의 시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보이나, 작품 수가 너무 적어서 단언할 수는 없다. 이 밖에도 김홍운의 경우는 고풍스런 시풍을, 이형상의 경우는 온화하고 평이한 시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청장관전서』에 소개된 서얼문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기에, 대상이 이덕무와 교유한 벗들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이덕무에 의해 기억되고 기록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자칫 잊힐 수 있었던 서얼문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This thesis introduced some of the Seoeol(庶孼) writers in Lee Duk-moo's 『Chungjangkwan Junseo(靑莊館全書)』, and considered a piece of their literary world.
Lee Duk-moo was one of the most famous Seoeol writers of the late Joseon Dynasty, most of his friends were Seoeol. Since it was not easy for Seoeol to leave a collection of works or related records, there is not much data to look at their literary world. Lee Deok-moo's 『Chungjangkwan Junseo』 is a vast collection of writings, which contains some of the works and criticisms of the writers who have been acquainted with him.
Approximately 65 Seoeolwriters were mentioned in 『Chungjangkwan Junseo』. Among them, it was not well known yet, and it is targeted at cases where works and criticism remain in 『Chungjangkwan Junseo』. There are seven writers in total, Lee Kwang-seok(李光錫), Byun Il-Hue(邊日休), Park Jong-san(朴宗山), Lee Gong-moo(李功懋), Kim Hong-woon(金洪運), Lee Hyeong-sang(李亨祥) and so on. There are not many of these works left, but only 9 poems by Lee Gwang-seok, 7 poems by Byun Il-min, 5 poems by Park Jong-san, and 1~2 poems by others. These poems were generally found to be of a tendency to pursue novelty and eccentricity, which can be understood to have been influenced by Angong clique(公安派) and Jingling Coterie(竟陵派).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the Seoeolwriters had been exposed to and actively accepted the literary flow of Ming and Qing literrature clique from China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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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세기 한문단편소설집 『기설(奇說)』의 성격과 고전소설 교육의 방향

저자 : 한의숭 ( Han Eui-soo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1-6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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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문단편소설집인 『奇說』에 수록된 여섯 작품을 통해 야담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한문단편소설로 재편되면서 변화된 성격을 재검토하고,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로 포착된 '奇'를 19세기 문화 지형과 관련하여 분석해 보고자 기획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한문단편소설집이란 자료를 통해 고전소설 교육의 새로운 접근 시각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기설』에 수록된 여섯 작품은 조선후기 한문단편 서사양식을 대표하는 장르의 성격이 혼효된 서술 방식이 활용되고 있었다. 이는 『기설』의 편찬자가 조선후기 한문단편 서사양식의 주류적 흐름을 이해한 바탕 아래 이야기를 가공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설』은 야담에 원천을 둔 이야기가 당대 서사 문화의 반영을 통해 한문단편소설집으로 편찬된 것으로, 야담에서 소설로 전변하는 서사의 변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기설』은 19세기에 편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록 작품에 드러난 기이는 자극적이거나 초현실적인 환상성이 극도로 발현되는 형태로 표현되지 않았다. 수록된 작품에 표출된 기이는 이물로 대표되는 비현실지향과 인간으로 대표되는 현실지향이 『기설』 내부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이가 서술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비현실적 요소의 배치를 통해 환상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아닌 현실적 인물과 시공간의 배치, 그리고 대화 장면 서술과 내면 묘사를 통해 인과성과 현실성을 강화한 형태를 지향하는 특징이 간취되었다.
이러한 측면을 바탕으로 고전소설 교육에서 『기설』과 같은 소설집의 존재는 고전소설을 향유하던 문화 환경과 작품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실증적 자료로 주목된다. 이는 야담과 소설의 장르 이동 양상의 실체를 확인하는데 활용될 수 있고, 한문소설선집이라는 자료 영역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부각시킬 수 있다. 아울러 개별 작품론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특정 주제나 개념 중심 고전소설 교육 방법론을 제안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고전소설 교육이 작품론 중심에서 벗어나 문화론적 시각을 선취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This paper was designed to review the nature of the story based on Yadam through six works in the collection of Chinese short stories, 『Gi-seol』 and analyze the theme of 'Gi', which penetrates the novel book, in relation to the 19th century cultural landscape. Along with this, a collection of short stories in Chinese literature discussed a new approach to classical fiction education.
The six works in 『Gi-seol』 were used to describe the genre representing the narrative style of Chinese short stori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is understood that the compilers of 『Gi-seol』 intended to process the story based on their understanding of the mainstream flow of the Chinese short story style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Gi-seol』 is a compilation of stories based on Ya-dam into a collection of short stories in Chinese literature, reflecting the narrative culture of the time, and is meaningful in that it can confirm the transformation of Ya-dam into a novel.
In addition, despite the fact that 『Gi-seol』 was compiled in the 19th century, the eccentricity revealed in the works was not expressed in the form of extreme sensational or surreal fantasies. The chi expressed in the work was coexisting within the 『Gi-seol』 with the unrealistic orientation represented by foreign objects and the reality orientation represented by humans. In addition, the way in which the eccentricity is described, rather than emphasizing fantasy through the placement of unrealistic elements, the layout of real people and space, and the form of enhanced causality and realism through dialogue scene description and internal description.
Based on this aspect, the existence of novel collections such as 『Gi-seol』 in the education of classical novels is noted as an empirical material to read the cultural environment and changes in works enjoyed by classical novels. This can be used to identify the true nature of the genre shift of ya-dam and novels, and to highlight a new interest in the data field of Chinese literature fiction selection. In addition, it is meaningful in that it proposes a classical novel education methodology centered on a specific topic or concept, away from education centered on individual works. This also raises the need for the education of classical novels to shift away from the focus of work theory and take a cultural perspective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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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물와(勿窩) 김상욱(金相頊)의 「중주기행(中州記行)」 고찰 - 북경행의 배경과 기행시의 시정(詩情)을 중심으로 -

저자 : 한길로 ( Han Gil-ro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9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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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남 창원의 유림 물와(勿窩) 김상욱(金相頊, 1857~1936)이 남긴 「중주기행(中州記行)」에 주목한 연구이다. 「중주기행」은 지우들의 제안으로 1913년 4월, 동경하던 이상향과 같았던 '중국'행에 올라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유람한 소회를 서술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른바 '장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중국행을 결정했지만 당대의 중국과 유교의 면모는 과거의 것과 상이하였고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했기에 그의 시에는 기대보다는 회한과 탄식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국치와 이민족의 압제를 피해 압록강 너머의 서간도 일대에 머물고 있던 국내의 유림들과 함께하고, 또 '화인(華人)'과 교류하면서는 다소간의 기대와 긍정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회한과 기대감 속에 북경에 당도했지만 그곳은 '구제(舊制)'의 면모와 중화의 위용을 찾기 어려운 공간으로 변했고 오히려 쇠망과 무상(無常)의 흔적을 보지하고 있는, 탄식을 그치기 어려운 곳이 되어 있었다. 요컨대 「중주기행」은 이주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유림이 아닌, 국내에 남아 있던 유림들의 내면과 대외 인식의 일면을 잘 담고 있다. 또한 그의 기록은 연행시의 전통에 자리하면서 변혁이 일던 '중화민국' 기행의 소회 역시 잘 드러나 있어, 20세기 구지식인의 근대 중국 기행문의 특징적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구지식인에게 근대 중국과 북경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인지되고 있는지와 함께 중국 기행을 통한 당시의 시대상과 현실인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This paper is a study of the 「Joongju-Gihaeng(中州記行)」 created by Mulwa Kim Sang-wook(勿窩 金相頊, 1857~1936). This document describes his thoughts on traveling across the 'Ap-lok river' to Beijing in April 1913 at the suggestion of his friends. At that time, the state became a colony, so his poetry had many sentiments of sadness and sorrow. There, he met Confucian scholars who stayed in Seo-gando, Manchuria, who lived there to escape the humiliation and immigration rule of the country, and also had a conversation by writing(筆談) with the Han Chinese(漢族, 華人), which revealed some expectations and optimism. However, he was disappointed when he arrived in Beijing. Because Beijing was hard to find its past and the traces of the Ming(明) Empire were hard to find. In other words, there was a big difference between his ideal and the actual appearance of Beijing. Against this backdrop, the sentiment of his poem went from remorse to expectation and ultimately to futility. In short, his work records the travel of modern Confucian intellectuals to China and shows the sorrow of the early 20th century. In particular, the view of China and the encounter with Korean intellectuals in China are among the most important features of travel records during this period, which are different from Yeonhaengrok(燕行錄) of the past. This text reflects the landscape of Beijing during the modern period and the perception of Confucian intellectuals in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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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첫째로 이데올로기론을 넘어서 그동안 거의 분석되지 않았던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남한과 북한 첩보영화의 비교분석을 통해 이떻게 (냉전) 아시아-주로 일본-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졌는 지 살펴 보고자 한다. 예를 들면 남한 첩보영화, <엑스포 70 동경작전>(최인현, 1970)에서는 도쿄가 경제번영의 도시로 재현되고 북한 첩보영화, <매화꽃은 떨어졌다>(1970)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앞잡이인 부패한 자본주의 국가로 표상되며, 오히려 북한이 자주경제를 이루어 낸 이상적인 국가로 표상되는 것은 징후적이다. 다시 말하면 미첼 딘(Michell Dean)이 말한 정치경제학의 틀 안에서의 “경제개발”을 강조한 “권위주의적 통치성”과 결합되어 냉전시기 남북한 첩보영화에서 일본에 대한 인식은 각각 자유주의에 입각한 친일과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반일의 경향이 나타난다. 둘째로 분단된 민족 간의 기존의 금지된 경제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한 동시대 첩보영화, <강철비>(2017)와 <공작>(2018)을 통해 냉전시기, '냉전 블록으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이 '민족적 정치경제학'으로 전환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전환을 백낙청과 백영서가 말하는 '분단체제극복론'과 '복합국가론'의 틀로 읽음으로써, 탈식민지적 사유를 조망한다. 하지만 이들 위의 첩보영화에서 남성민족주의라는 접근방식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은 문제적이며, 특히 동시대 영화는 분명 탈식민지적 사유에 천착하면서도 동시에 아시아 간의 연대나 소통을 보여주는 인터-아시아에 대한 사고를 전적으로 제외시킨다. 따라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러한 남성중심적인 친일/반일 냉전 프로파간다 및 반일 민족주의의 대중장르의 한계를 재일조선인 여성감독 금선희의 다큐멘터리 영화, <외국의 하늘>(2005)과 <짐승이 되어서도>(2005)를 통해 극복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금선희 영화들은 탈식민주의의 가능성을 가지면서도 인터 아시아적 궤적-일본과의 소통가능성-과 젠더 문제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First, this paper aims to see how (Cold War) Asia-mainly Japan-was represented through comparative analysis of South and North Korean spy films from a political economic perspective that has not been analyzed much in the past, beyond ideological approach. It is symptomatic that in the South Korean spy film, Expo 70 Tokyo Operation (Choi In-hyun, 1970), Tokyo is represented as a city of economic prosperity and in North Korean spy film, A Plum Blossom Fell (1970), Japan as a corrupt capitalist country that is the pawn of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as an ideal country that has achieved an independent economic prosperity. In other words, combined with “authoritarian governmentality” that emphasizes “economic development” within the framework of political economy as Michell Dean said, during the Cold War, the perception of Asia (Japan) in South Korean spy film has pro-Japanese tendencies based on liberalism and that in North Korean spy film has Anti-Japanese tendencies based on anti-imperialism. Second, through the contemporary spy films Steel Rain (2017) and The Espionage Operations (2018), which emphasize the necessity of the previously forbidden economic exchanges between divided ethnic groups during the Cold War period, I'd like to show that “political economy made up of Cold War Asian Blocs” was transformed into “ethnic political economy.” By reading this transition into the framework of the 'overcoming division of the system' and 'the theory of a complex state' that Baek Nak-cheong and Baek Young-seo spoke of, I look at the post-colonial thinking. However, it is problematic that the above-mentioned spy films prioritize the approach of male-oriented nationalism. In particular, while contemporary films clearly focus on post-colonial thinking, at the same time they completely exclude the idea of Inter-Asia, which shows solidarity and communication between Asia. Therefore, in the last part of this paper, I try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these male-centered pro-Japanese/anti-Japanese Cold War propaganda and anti-Japanese nationalism in the popular genre through the documentary films Foreign Sky and Beast of Me by Soni, Kum, a female Zainichi Korean director. In other words, Soni Kum's films will be a good example of possibiity of communication with Asia (Japan) and ethical attitudes toward gender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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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K적인 것의 기원과 K차별 - 차별 대응 제도와 교육, 사회통념 개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

저자 : 권명아 ( Kwon Myoung-a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9-16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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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나 차별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담론적으로 확장된 것과 달리 정책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라는 문턱에서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또 차별과 혐오에 대한 정책 기조가 일관성이 없고 정파적 이해관계나 특정 사안을 돌파하기 위한 타협과 절충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정부가 차별을 더욱 부추기는 경향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차별과 혐오 대응에 있어 중요한 지점은 차별과 관련한 전문가 그룹(인권 활동가, 지원 단체, 관련된 연구자 등)의 지속적인 담론 형성과 구체적 사안을 널리 알리는 일 그리고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제를 통해 정책 일관성을 형성하는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하여 차별에 대응하는 정책, 교육, 대안을 연구해온 전문 기관의 공통된 진단은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 통념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차별 통념은 차별을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생각해서 차별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사회적 인식 구조를 뜻한다. 전문가들의 이런 상황 진단과 달리 정부는 줄곧 '사회적 통념'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사회적 통념'을 절충이나 타협의 근거로 내세우고 강조하는 정책 기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어긋남은 정책의 모순을 일으킬 뿐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차별 선동을 합법화하는 근거를 국가가 제공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Unlike the discourse expansion of academic discussions on hatred or discrimination, politically, it is repeated to stop at the threshold of “social consensus.” In addition, the government's tendency to further encourage discrimination is increasing as its policy stance on discrimination and disgust is inconsistent and has degenerated into a means of compromise to break through political interests or certain issues. At this point, the key point in responding to discrimination and hatred is the formation of continuous discourse by groups of experts (human rights activists, support groups, related researchers, etc.) and policy consistency through critical checks on national policies. The common diagnosis of specialized institutions that have studied policies, education, and alternatives to cope with discrimination, including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 is to change the prevailing concept of discrimination in Korean society. Discrimination is a social perception structure in which discrimination is not recognized as discrimination, or recognizes discrimination because it is natural and familiar. Unlike expert's diagnosis of the situation, the government has been repeating its policy stance of emphasizing “social conventional wisdom” as a basis for compromise or compromise without trying to change “social conventional wisdom.” This contradiction not only creates a contradiction in policy, but also leads to a serious problem that the state provides a basis for justifying discrimination or legalizing discrimination inci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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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려 무신집권기 왕권과 의례 - 왕실 조상 숭배의례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아네스 ( Kim Agnes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9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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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 무신집권기 국왕이 주재한 주요 의례를 왕권의 위상과 관련하여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왕실 조상에 대한 숭배 의례인 왕실제사와 국휼의례를 중심으로 정치의 두 구심, 즉 국왕과 무신집정의 시각에서 의례의 설행 의도 및 의례 개정과 참용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명종은 왕실 조상에 대한 숭배의례를 국왕의 위상을 확인하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 활용하였다. 재위 초반 명종은 경령전과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서, 자신이 태조의 후계 왕이며 왕정의 최고 책임자임을 과시하였다. 재위 후반 명종은 공예태후의 국휼을 주관하면서 신민과 구별되는 왕실의 존엄을 드러내고 왕권의 위상을 높이려 하였다.
최씨정권이 성립하면서 국왕의 권력은 미약해졌다. 왕권을 표상하는 왕실 조상 숭배의례를 주관하는 일은 국왕의 권리였지만 최충헌은 국휼의 상기를 단축하고 예식을 격하시켰다. 최씨집정은 국왕의 폐위와 옹립을 좌우하며 태묘에 봉안할 신주를 정하고 소목의 위차를 개정하였다. 왕통을 상징하는 의례를 개정함으로써 국왕의 실질적 권위가 향상되는 것을 제어하였다. 최우가 집권자가 되면서 최씨 집정 집안의 상장례에 국휼의 왕례와 왕후례를 참용하였다. 이에 따라 왕실의례가 가지는 특수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최항집정기에 고종은 최씨집정이 권력을 승계한 것을 기념하며 왕실 조상에게 시호를 가상하였다. 최씨정권 아래서 왕들은 의례를 주재하는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였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royal rituals hosted by the kings during Goryeo dynasty under the military regime. The study focuses on royal ancestral worship ceremonies and funerals. It explores the administration and the alteration of rituals, and the abuse of power, from the perspectives of the two major powers in the dynasty: the king and the military rulers. King Myeong-jong utilized the royal ancestral worship rituals to affirm his status as the highest ruler in the royal court and to also establish the royal power. King Myeong-jong, in his early years of reign, conducted ancestral ritual ceremonies at Gyeong-ryeong-jeon and Royal Ancestral Shrine in order to worship the founding King Taejo. Through these ritual ceremonies, the king affirmed that he was a part of King Taejo's royal lineage, and he had the highest status in the dynasty. Later, when King Myeong-jong hosted the funeral of his mother, Empress Dower Gong-ye, he dignified the royal family over the common people.
When Choe military regime established, the king's power dwindled. It was the king's right to command royal ancestral ceremonies and funerals. However, Choe Chung-heon downgraded royal rituals by shortening the mourning period for royal funerals. Choe clan rulers exerted their power by enthroning or dethroning the king in addition to selecting the ancestral tablets along with their placement in the Royal Ancestral Shrine. The Choe rulers rewrote the royal rituals that signified royal lineage in order to prevent the kings from possessing heightened royal power. After Choe Woo, son of Choe Chung-heon, became the second ruler of the military regime, the funerals of the Choe family were conducted as if they were royal rituals. During Choe Hang's regime, the third generation of Choe, King Gojong conducted a congratulatory ceremony celebrating the succession of power in the Choe clan. The significance of the royal rituals hosted by the king during the military regime has changed based on the power structures and the circumstances of the ritual. The significance of the royal rituals and the king's status and power has changed as the Choe clan took over the military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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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고려후기 및 조선전기 불전류(佛傳類)의 간행과 유통

저자 : 박용진 ( Park Yong-ji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3-22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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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려후기 및 조선전기 석가 전기류의 간행과 유통을 검토한 것이다. 고려대장경에 입장된 漢譯 佛傳은 약 18종이며, 고려시대에는 이들 불전의 단독 간행이나 유통은 잘 찾아지지 않고, 『교장총록』에 수록된 불전류의 간행이나 유통 역시 잘 확인되지 않는다.
고려후기 불전류를 살펴보면, 한국 찬술 불전류로는 최초의 약기인 『해동고승전』의 기술이 있고, 최초의 한국 찬술 불전으로 평가되는 『석가여래행적송』이 있다. 기타 불전류로는 『주석가여래성도기』, 『대장일람집』이 있고, 『석가여래행적송』의 편찬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불전은 아니지만 『조당집』, 『경덕전등록』 등 선종의 등사류, 『선문염송』 등 선종의 어록류에서도 석가의 생애를 찾을 수 있다.
조선전기 불전류의 간행과 유통을 살펴보면, 『석가보』와 『석가씨보』가 중심이 되었고, 史傳部 佛傳類의 『증수석가보』, 『석보상절』, 『월인천강』, 『월인석보』, 『석가여래성도기』, 『석가여래행적송』, 사전부 불교사의 『석씨통감』, 『불조역대통재』, 사전부 禪宗傳의 『조당집』, 『경덕전등록』, 『연등회요』, 사휘부의 『대장일람집』 등이 간행·유통되었다.
고려후기와 조선전기 불전류의 간행과 유통의 특징을 정리하면, 첫째, 직접기에 해당하는 『석가보』와 『석가씨보』가 중심이 되었고, 고려후기의 『행적송』이나 조선전기의 『석보상절』의 편찬에 활용되었다. 둘째, 한국 찬술 불전류로는 고려 시대의 『석가여래행적송』이 있고, 조선전기에 편찬된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는 자국의 언어와 문자로 편찬되고 간행된 불전이라는 점에 있어 획기적이다. 『석가여래행적송』이나 『석보상절』 등의 인용서 역시 석가의 생애를 기술하고 있고, 당시 유통된 불전류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셋째, 불전의 간접기와 약기는 사전부나 사휘류, 선종의 등사류와 어록류의 찬술이 있다. 본고를 통하여 고려 및 조선시대의 석가관이나 불교 인식 등을 분석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reviews the publication and distribution of Buddha's biography(佛傳) i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Dynasty.
In the late Goryeo Dynasty, the first Korean Buddha's biography(佛傳) is the Seokgayeorae Haengjeoksong. In addition, there are Zhushijiarulai chengdaoji and Dazang yilanji, and books of the Seon sect such as Zutangji, Jingde zhuandenglu, etc.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publication and distribution of Buddha's biography centered on Shijiapu and Shijia shipu, and there were Seokbosangjeol and Wolinseokbo and Shijiarulai chengdaoji in the Buddha's biography, Shishi tongjian and Fozu lidai tongzai in Buddhist history, and a biography and a written record of priest's word in Zen sect.
The Buddha's biography of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 were centered on Shijiapu and Shijia shipu, and were used in the compilation of Haengjeoksong in the late Goryeo and Seokbosangjeol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first compilation of Buddha's biography in Korea was the Seokgayeorae Haengjeoksong of the Goryeo Dynast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Seokbosangjeol, Wolincheongangjigok, and Wolinseokbo were epoch-making in that they were Buddha's biographies compiled and published in Korean language and script. In addition, books cited in Seokbosangjeol are significant in that they can know the situation of Buddha's biographies in circulation at the time.
A brief record of the life of Buddha can be found in a biography and a written record of priest's word in Seon sect and a buddhist history. It is significant in that it is possible to review the cult of Śākyamuni at that time through these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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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성 옥천사 대웅전 불석제(佛石製) 불상 연구

저자 : 이희정 ( Lee Hee-Ju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3-25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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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는 의상 대사 창건 사찰로, 화엄 10찰중 하나이며, 오랫동안 많은 고승 대덕이 주석했었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에 전소되어 1639년 학명과 의오의 주도하에 복구되기 시작했으며 차차로 대웅전, 명부전 등의 새 전각과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 시기 불상의 주재료는 목재였지만 이곳은 불석제의 석재 상이 지금의 대웅전과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상들은 신체비례, 얼굴 등 조선후기 보편적인 석조불상의 조형성을 따르면서도 17세기 후반의 대표적 석조 조각승 경옥과 그의 작풍을 계승하는 조각승들이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조선후기 불석제 불상은 고성 옥천사와 같이 부산, 울산 등 해안과 가까운 사찰에 봉안된 사례가 많다. 불석불상은 조선 전기 15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때는 청옥(靑玉)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옥석(玉石)으로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돌은 지금의 경주 함월산과 천태산 2곳에서 채석되어 불상이 만들어졌는데 당시 사람은 불령산(佛靈山), 불석산(佛石山)으로 불렀으며, 이렇게 조성된 불상은 동해천과 감포 앞 바다의 바다 루트를 통해 이운되었다.


Okcheonsa is a temple built by Veneral Uisang upon his return from his study under Zhiyan in Tang dynasty. The temple is one of ten Hwaeom temple designated by Uisang himself. The temple was bestowed on many great masters, however, was burnt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1592) in the Joseon Dynasty. In the aftermath of the war, pavillions and Buddha statues for ceremonial obeisance destructed in flames were recreated and enshrined as perspectives on monks started to change. In particular, restoration of Okcheonsa Temple was initiated under the guidance of Hakmyeong and Uio in 1639, and many Buddha statues and pavillions including the Hall of Utmost Bliss, Great Hero Hall and Hall of Ksitigarbah Bodhisattva were rebuilt in the process. Most statues were made of wood at the time, however, the statues enshrined in the Great Hero Hall and Hall of Ksitigarbah Bodhisattva were made with zeolite stones. Such statues have common formative featur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including body ratio and face. However, the statues also demonstrate unique features made by Keongok, most reknowned monk sculptor of the time, and others who suceeded his style. Many zeolite Buddha statues creat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were enshrined in temples located near the coast such as Busan and Ulsan, as Okcheonsa Temple in Goseong. Zeolite Buddha statues were first created in the 15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called Cheong-ok(靑玉, sapphire) at that time which the present name Ok-seok(jade) originates from. Zeolites for such Buddha statues were cut from the present Hamwolsan Mountain and Cheontaesan Mountain in Gyeongju. Back in the Joseon Dynasty, the mountains were called Bulyeongsan Mountain(佛靈山) or Bulseoksan Mountain(佛石山), and the statues were shipped on the sea route connected from Donghaecheon stream to the sea in Ga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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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당뮤지엄 발굴 늑도유적 인골의 형질적 특징

저자 : 김재현 ( Kim Jae-hyu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20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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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도유적은 한정된 범위에서 한정된 시간대에 집중되어 사람들이 거주한 정주 생활 주거유적이다. 인골의 분석이나 주거유형, 매장방법 등에서 추정하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집단이 거주한 유적이다. 시간차를 감안하더라도 인골이 100여개체 확인되는 사실에서 적어도 몇십명 단위가 아닌 몇백명 단위의 거주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늑도인골의 형질적 특징은 두개장폭시수(M8/1)의 비교에서는 늑도 인골은 장두에 속하며 두개장고시수(M17/1)와 두개폭고시수(M17/8)는 중두에 속한다. Kollmann안시수(M47/45)와 Kollmann상안시수(M48/45)는 저안과 저상안의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늑도 인골은 김해 예안리 인골이나 일본과 몽골 등의 형질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늑도인골은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개념의 관련성이 아니라, 오히려 북방-마한-늑도-왜 라는 연결 선상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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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석당뮤지엄 발굴, 고성 송학동고분군의 가치와 확장성

저자 : 최경규 ( Choi Gyong-gyu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4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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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당 뮤지엄에서 발굴조사한 고성 송학동고분군 1호분은 문헌기록이 영성한 가야사 연구에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고, 그 중 소가야의 역사를 해명하는데 있어서는 1급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1999년~2002년에 실시된 고성 송학동고분군 1호분의 발굴조사는 그간의 전방후원분 논란을 종식하고 고분의 구조와 성격을 밝힌 학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깊고 중요한 조사였다. 발굴조사가 있은 지 20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했지만, 공표된 송학동고분군의 보고서(동아대 석당뮤지엄, 2005)를 바탕으로 주변 가야 유적과의 비교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간의 연구결과 고성 송학동고분군은 소가야의 성장과 정치·교역 시스템을 증명할 수 있는 유적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고성 송학동고분군의 등장과 소멸은 소가야 정치체의 등장과 소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고분군 내 묘제의 도입과 위계화, 축조 질서 등의 변화를 통해 소가야 사회 구조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결국 고성 송학동고분군은 가야고분군을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역사의 중요한 가치를 보여주며 삼국시대라는 한반도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에 가야를 예증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구조물이다. 송학동고분군 1호분의 발굴조사 후, 지속적 학술 연구의 결과로 유적의 가치가 확장되어 세계유산 등재 후보에 이르게 되었으며 인류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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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석당뮤지엄 소장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䟽)』 권88의 역사·문화적인 가치

저자 : 崔永好 ( Choy Young-ho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5-6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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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동아대학교 석당뮤지엄에 소장된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의 역사·문화적인 실체와 성격을 진단하였다. 이 불교기록유산은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에서 주문·제작하여 선종 4년(1087) 3월 고려사회로 수입된 『대방광불화엄경소』 120권의 목판 가운데 해당 경판을 찍은 인출본이다.
우선, 석당뮤지엄 소장 권88의 인출본에 새겨진 외형적 형태·서체와 전체적인 구성체계·내용 및 종이종류·규격·표지제목 등 다양한 기준지표를 분석·정리한 다음, 선종 4년 3월 송나라에서 수입한 불교기록유산의 동일 여부를 확인하였다. 현존 다른 권차의 동일 판본과 기준지표를 세밀하게 대조하여 동일한 원천텍스트로 인출한 판본으로 확정하였다. 그리고 석당뮤지엄 소장의 권88은 종이 종류와 표지문양 및 표지제목 형태·서체·배열형태 등도 분석하여 보물 제1106호 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등의 판본과 같은 시기나 근접한 시기에 찍은 판본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권88의 판본에는 政和丙臣五月敬造이라는 정보가 권미제 다음에 표기되어 있으며, 이 정보는 예종 11년(1116) 음력 5월 인출정보를 추가로 새겨 매목한 인경목활자로 진단할 수 있다.
석당뮤지엄 소장 권88의 판본에는 경판의 보존상태·보각현상 등 다양한 역사·문화적인 실체를 담고 있다. 우선, 고려 사람들이 권88 등 일부 목판에 인출 정보 등의 내용을 추가·보완하였으며, 보완된 내용은 이후에도 매목 상태로 지속되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다음으로, 보완 내용에서는 예종 11년 당시 고려사회가 송나라 중심의 대외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해당 판본에는 개법장진언부호 등 불교 경전의 존엄적 가치를 반영한 사실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권88의 판본은 현재 확인되는 동일 판본과의 연계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원천자료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권차로서의 희소적인 가치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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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석당박물관(石堂博物館) 소장(所藏) 『감지은니묘법련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권삼(卷三)의 역사(歷史)·문화적(文化的) 가치(價値)

저자 : 정제규 ( Chung Je-kyu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9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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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당박물관> 소장 『감지은니묘법연화경』권3은 법화경 28품 가운데 「약초유품(藥草喩品)」제5, 「수기품(授記品)」 제6, 「화성유품(化成喩品)」 제7의 내용을 필사한 경전이다. 사경은 전체 108절면으로 이루어졌으며, 1절면의 크기는 세로 41.9cm, 가로 14.4cm 로서 일반적인 사경 형태에 비해서 큰 편이다.
<석당본> 사경은 사성기(寫成記)는 없으나 서지적 검토 및 표지화 및 변상도의 형식 등의 비교를 통해 보물 제269-1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권1, 보물 제269-2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권2,4,5,6 그리고 보물 제269-4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권7과 본래 한 질을 구성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향후 사경의 연구는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사경에 쓰인 서체에 대한 연구가 심화될 필요가 있다. 사경은 형태서지학적으로 볼 때 필사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유형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필사된 내용의 성격에 대한 검토와 더불어 당시의 서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불교문화적인 성격에 대한 검토이다. 고려 후기의 경권신앙(經卷信仰)의 성격과 그 대상이 되었던 불경에 대한 사상적 검토가 추구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유물의 역사적 성격과 함쎄 사회문화사적인 의미가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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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판본(版本) 양상(樣相)과 문화재적(文化財的) 가치(價値)

저자 : 朴文烈 ( Park Moon-year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7-13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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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硏究는 朝鮮朝 王室版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와 公州 岬寺版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대비를 통하여 東亞大學校 石堂뮤지엄 소장 岬寺版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版本 樣相과 文化財的 價値를 考察한 것으로 그 結果는 다음과 같다.
(1) 水陸齋는 水陸의 떠도는 孤魂과 餓鬼를 위로할 목적으로 佛法의 講說과 음식의 供養을 통하여 저들을 救濟하는 密敎의 성격을 지닌 法會이며, 水陸齋의 起緣을 비롯한 제반 儀式과 節次를 기록한 것이 水陸文이고 이를 정리하여 版本化한 것이 水陸書이다.
(2) 중국의 水陸齋는 梁朝의 武帝로부터 시작되어 宋朝에 이르러 水陸文이 정비되면서 楊諤의 『天地冥陽水陸儀文』과 志磐의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가 編纂ㆍ刊行되었다.
(3) 우리나라는 高麗朝를 시작으로 朝鮮朝에 이르기까지 國行의 水陸齋가 常設되기도 하였으나 燕山朝 이후로는 國行의 水陸齋는 중지되고 점차 寺刹과 民間을 중심으로 傳承되기에 이르렀다.
(4) 중국의 水陸書가 우리나라로 傳來된 이후로 國內에서도 다양한 水陸書가 編纂ㆍ刊行되었으나 그중에서도 編者 不明의 『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와 竹菴의 『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및 志磐의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5) 成宗 원(1470)년 7월 무렵에 간행된 王室版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는 王室의 主導 아래 [貞熹]大王大妃가 世祖와 睿宗 및 懿敬王(德宗)의 冥福을 기원하고 침체된 水陸齋의 復興을 위하여 朴耕의 板下本으로 開板된 版本이며, 朝鮮朝의 崇儒抑佛의 政策 아래서도 王室에서 開板된 王室版의 嚆矢이다.
(6) 東亞大學校 石堂뮤지엄 소장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는 明宗 13(1558)년에 公州의 岬寺에서 王室版을 底本으로 惠仁과 祖榮이 翻刻함과 아울러 守玄이 書寫한 刊行秩만은 새로이 板刻하여 간행된 寺刹版의 最初이며, 이 판본은 岬寺(1558)에서 開板된 후로 廣興寺(1563)ㆍ普院寺(1565)ㆍ空林寺(1573)ㆍ淸溪寺(1622)ㆍ龍腹寺(1632)ㆍ釋王寺(1634)ㆍ通度寺(1649)ㆍ松廣寺(1786) 등의 寺刹에 이르기까지 각 사찰에서 開板된 版本에 영향을 미친 根源的 版本이라 할 수 있다.
(7) 朝鮮朝 각 寺刹에서 開板된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木板 중 비록 完帙이 아닌 일부나마 현재까지 開心寺ㆍ淸溪寺ㆍ通度寺ㆍ松廣寺 등에 殘存되어 우리나라 寺刹 木板文化財의 우수성이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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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정언묘선(精言妙選)』 풍격론(風格論)

저자 : 박수천 ( Park Soo-cheo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3-15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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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묘선(精言妙選)』은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자신의 문학 인식에 따른 시학의 전범(典範)을 보여주기 위해 찬집한 중국시 선집이다. 율곡은 『정언묘선』에서 시적 전범을 간결하게 요약된 풍격(風格)으로 제시하고 그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선별해 수록하고 있다.
「원자집(元字集)」에서 주로 선발해 모은 작품은 충담소산(沖澹蕭散)의 풍격을 가진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의 중심 개념은 당연히 충담(沖澹)이며 소산(蕭散)은 이 충담(沖澹)함을 부연 설명해 놓은 말이다. <정언묘선서(精言妙選序)>에서도 충담소산(沖澹蕭散)을 다시 요약해 충담(沖澹)이라 기술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율곡은 충담(沖澹)을 여러 시적 전범들 중 가장 대표적 풍격으로 인식하였다. 「형자집(亨字集)」에서 표방한 한미청적(閒美淸適) 풍격은 한가로운 아름다움으로서의 '한미(閒美)'가 중심적인 의미라 할 수 있다. 율곡 자신의 정신적 지향의 한 면모가 '한가로움'이었기 때문에 문학에서도 전범으로 삼을 만한 하나의 문학성을 '한미(閒美)'라 말한 것이다. 「이자집(利字集)」에서 표방한 청신쇄락(淸新灑落)의 풍격도 '청신(淸新)' 중심의 문학성을 지목한 것이라 여겨진다. '쇄락(灑落)'은 '청신(淸新)'의 이미지를 더욱 잘 드러내기 위해 부연된 말이라 하겠다.
『정언묘선』 각 권에서 제시한 풍격들을 살펴보면 율곡은 문학비평의 주요 준거를 의경(意境), 사어(辭語), 격조(格調) 등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그는 의경을 가장 중심적 요건으로 파악했다. 『정언묘선』의 「정자집(貞字集)」은 용의정심(用意精深)을 기준으로 선집한 것이라 하였다. 선발된 작품은 '정심(精深)'함이 두드러진 풍격으로 구현되었는데, 바로 작가의 의경이 '정심(精深)'함을 파악한 것이다. 「인자집(仁字集)」에서는 정심의원(情深意遠)한 작품들을 가려 뽑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작가의 '정과 뜻[情意]'이 '심원(深遠)'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선발했다는 말이다. 「정자집(貞字集)」의 용의정심(用意精深)한 풍격은 의경 중심의 작품 선발 기준이면서 한편으로는 작품 창작기법의 한 측면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즉, 시인이 작품을 창작할 때는 그 의경이 정밀하고 깊게 표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자집(仁字集)」에서 표방한 선발 기준인 정심의원(情深意遠)의 경우도 작품의 창작방법을 함께 말하고 있다. 작품이 지향해야 할 바의 깊은 서정과 길게 이어지는 의경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인이 작품을 창작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의자집(義字集)」에서는 격사청건(格詞淸健)을 말했는데 작품의 격식과 사어(辭語)의 측면에서 맑고 굳센 면모를 평가한 것이다. 여기서는 작품 비평의 층위로서 격식과 사어를 들고, 본받아야 할 문학성과 창작방법으로서 격사(格詞)의 청건(淸健)함을 보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자집(禮字集)」 작품들의 대표적 풍격은 정공묘려(精工妙麗)라 했는데, 이 말은 '정공(精工)'에 의미 비중이 더 있고 '묘려(妙麗)'는 '정공(精工)'의 효과를 부연해 설명한 풍격이라 보여진다. 작품에서 이루어진 정공묘려(精工妙麗)한 풍격은 율곡이 생각한 또 하나의 시적 전범이면서 창작방법의 일면이기도 하다.
율곡은 『정언묘선』의 여덟 편에 각각 기준으로 삼은 작품의 풍격을 제시해 놓았다. 「원자집(元字集)」에서 '충담(沖澹)'의 풍격을 먼저 거론해 그것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나머지 일곱 편에서 기준으로 삼은 풍격들이 모두 학시(學詩)의 전범이라 하였다. 시문학 작품이 지닌 여러 층위들 중에 율곡은 특히 의경의 측면을 중시하여, 그것을 올바르게 구현하는 창작방법을 각 편의 표제적인 풍격으로 나타내 보였다. 율곡은 이러한 시학을 통해 『정언묘선』이 학자들의 존심양성(存心養性)을 위한 하나의 교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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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목심윤등(木心輪鐙)으로 본 제작기술의 지향성(志向性) -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

저자 : 장윤정 ( Chang Yoon-chu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9-18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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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목심윤등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목심의 구조와 형태를 검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목심을 덮고 있는 철판 혹은 금동판(투조금동판), 그리고 그것을 고정하는 못의 역할을 파악하였다. 이를 경주지역 출토 목심윤등에 적용하여 목심 자체의 변화와 관계 깊은 답수부 폭과 함께 답수부 못의 유무로 형식을 분류하였다. 각 형식의 등장을 기준으로 하여 3시기로 구분하고 목심윤등의 변천에 따른 당시 등자 제작집단의 지향성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 제1기에는 나무를 구부려 만든 독특한 구조의 등자가 그 형태를 고정, 유지할 수 있는 철판의 조합이 확인되고 등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병상 단부에 대한 기능적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목심 전체를 철판으로 덮은 것도 확인되고 있어 목심철판피윤등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취약함은 물론이고 부분적으로 보이는 목심에 대한 불안감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제2기가 되면 답수부에 못이 있는 형식이 등장하며 목심철판피윤등은 청동제 윤등과의 형태적 공유가 확인되어 당시 제작집단이 금속제 등자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금동판, 투조금동판 등 다양한 금속판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심 전체를 덮어 씌워 금동제 윤등의 효과를 지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제3기에는 답수부 폭 만큼 넓어진 새로운 목심을 사용한 목심철판피윤등이 등장하는 가운데 답수부가 2조로 나누어진 철제윤등을 모방한 유례도 확인되어 금속제 윤등과의 형태적 공유는 지속되고 있다. 이에 반해 목심금동판(투조금동판) 피윤등은 전단계의 목심형태를 그대로 사용하고 금동판으로 목심 전체를 덮어씌운 형태가 확인되어 2종류의 목심이 금속판의 재질에 따라 각각 다르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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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려대장경판 정밀기록화 서지조사(書誌調査) 및 제문제(諸問題)

저자 : 박용진 ( Park Yong-ji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5-21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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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불교 경판 특히 고려대장경판의 조사에 있어 동아시아 한문불교문화권의 한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기관의 판본 및 판목 서지 조사 항목을 제시하고, 이들 가운데 공통 항목을 정리하면서 용어의 이동이나 향후 방향성을 검토하였다.
본고는 판본서지학의 조사항목에 대하여 그룹화하고 세부항목을 정리하였으며, 板木書誌學(板誌學)의 측면에서 행해진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을 중심으로 한 연구성과와 그 조사와 연구에서 확인되는 조사항목을 검토하였다. 이를 기초로 하여 고려대장경판의 조사항목과 내용을 제시하였다. 조사항목에 대해서는 국내외의 판목서지학(板誌學)의 용어의 정의와 설명에 대해 異同을 검토하는 한편 조사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살펴보았다.
고려대장경판은 13세기 조성 이래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노후와 훼손의 문제로 상시적 조사는 불가하다. 경판의 조사항목은 목판의 인출에서부터 목판의 주변까지 순차적 조사가 가능하도록 板題事項, 保管事項, 板木 및 板刻事項, 板面事項, 판주변사항, 판화사항, 주기사항으로 그룹화 하고, 조사의 세부 항목을 설정하여 용어를 비교하고 설명하였다. 1)板題事項은 木板名, 板次(卷張次: 卷○, 全○張의 第○張), 2)保管事項은 판고명, 판가번호, 보관위치(층,단,열), 천자문함차, 보관처기재사항, 3)板木 및 板刻事項은 판현상, 판규격, 마구리, 刻字部, 入木, 4)板面事項은 卷首部 및 本文部, 판식부(版式部), 권미부(卷尾部), 간기부(刊記部), 5)판 주변사항은 판면의 사주의 이외에 기록된 다양한 정보인 각수(위치, 인명, 刻向), 묵서, 견출지 기재사항 등 기타 기재사항, 6)판화사항, 7)주기사항 등의 용어를 기존 조사 및 연구의 내용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문제점이나 방향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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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울산 개운포진성 연구

저자 : 이일갑 ( Lee Il-gab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7-24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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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개운포진성은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지점에 설치 축조되어 있어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영진보성이다.
개운포진성은 입지조건상 해안평야형이며 평면형태는 주형이다. 기본적으로 15세기 중후반에서 16세기에 연결되는 기단수평화수법과 외벽석축내탁식 축조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개운포진성 해자로 볼 때 조선시대 영진보성 해자는 지형적 조건에 상관없이 구비되었다. 개운포진성 선창 내지 선소는 기존 알려진 추정 서문지 주변 '선입지'가 아닌 남벽 체성부 동남쪽 해안지역으로 추정된다.
개운포진성이 위치하는 남구 성암동 일대 지명 중 선소는 일명 군선창(軍船廠)이라 하며 군선의 선계지(船繫地)는 물론 전함(戰艦)의 건조, 개조, 수리 등을 담당하는 장소이다. 오늘날 불리고 있는 선수는 선소(船所)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선수 동쪽에 있는 마을인 세다골은 세대(細竹)에서 변화된 것으로 세다골이 개운 포진성 동쪽 공단지역에 해당함으로 선창은 왼쪽인 개운포진성 남벽 체성부 아래쪽 마을 동남쪽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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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소장 지석(誌石) 연구

저자 : 오임숙 ( Oh Im-suk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3-27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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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은 피장자에 대한 인적사항이나 묘에 대한 기록을 판석이나 도판 등에 새겨 장례절차 마지막에 무덤 속이나 그 언저리에 매납하는 장례용구를 말한다. 출생을 비롯하여 계보, 혼인, 사망, 매장 등 피장자에 대한 생생한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는 지석이야말로 한 개인의 기록이자 역사라 할 수 있다. 이를 잘 분석하면 당대의 사회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지석이 등장을 한다. 이후 고려시대는 지석의 형태와 재질이 다양하지 못하며, 지석 수요층 또한 귀족 등에 한정적이다. 지석은 조선시대에 비로소 재질 및 형태가 다양해지며 전국적으로 엄청난 수량의 지석이 등장을 한다. 특히 유교식 상장례 제도가 보편화되면서 장례용구인 지석 제작에 일반인들까지 대거 참여하면서 지석문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본 연구는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지석 13건 45점에 대한 자료 소개 및 분석이다. 먼저 종류별로 분류한 후, 시기별로 나타나는 지석의 형태ㆍ재질ㆍ시문기법을 분석해 보았다. 지석의 형태는 조선시대 전 시기동안에 걸쳐 가장 유행했던 장방형을 비롯하여 말각방형, 정방형, 연상형, 대접형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질에서는 석제, 자기제(白磁), 토제가 모두 나타나고 있다. 시문기법은 음각, 음각+목탄분, 청화, 철화, 묵서 등으로 표현한 것을 확인하였다. 지석의 내용을 토대로 내용구성, 편수표기, 제작시기, 그리고 유사한 지석들도 비교ㆍ분석하였다. 제작시기는 15세기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지석의 수요자 또한 고위 관직자가 많다는 점도 주목된다.
특히 이들 지석 중 몇 건은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고, 그 기초적인 조사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하루빨리 이루어져 관련 분야 학자들의 연구자료로 제공되길 바라며, 본 연구가 그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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