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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톨릭철학회> 가톨릭철학> 호스피스 철학에서 에디트 슈타인 사상의 의미 연구 -죽음과 죽어감 그리고 사랑과 비움의 영성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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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철학에서 에디트 슈타인 사상의 의미 연구 -죽음과 죽어감 그리고 사랑과 비움의 영성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Ideas of Edith Stein in Hospice Philosophy

이은영 ( Lee¸ Eun-young )
  • : 한국가톨릭철학회
  • : 가톨릭철학 24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5년 04월
  • : 135-170(36pages)
가톨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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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호스피스의 어원과 유래
3. 현대사회에서 죽음의 이해
4. 결론을 대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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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웰다잉’의 문제가 우리사회에 있어서 상당히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촉구하면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호스피스’ 내지는 ‘호스피스 활동’이 아니라 왜 ‘호스피스 철학’인가? 이에 대하여 필자는 호스피스 철학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정초하기 위해 첫째, 죽음의 의미를 통한 호스피스 철학의 필요성과, 둘째, 우리 사회의 구성원과 환자사이의 관계를 통한 호스피스 철학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호스피스 철학의 이론적 근거를 철학자이자 가톨릭 성인(聖人)인 에디트 슈타인의 사상과 연결시킴으로써 ‘호스피스 철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필자가 밝혀내고자 하는 호스피스 철학에서 슈타인 사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필자는 우선 현대인의 죽음 이해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육체적 죽음이해’, ‘죽어감의 의미 부재’, ‘간호제공자 내지는 우리 사회구성원과 환자사이의 관계’로 지정한다. 그리고 이 문제점들을 첫째, 슈타인의 인간학 측면에서 인간의 죽음이 사물의 죽음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인간의 죽음은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론적이며 영성적 측면의 지반위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슈타인에 의하면, 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감각을 통하여 소리와 소음이라는 감각적 해석을 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물질적 몸이 무엇인가를 물질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존재가 무엇인가를 감각적으로 지각할 때 단순히 물질적 몸 이상으로 지각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소리와 소음을 구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오늘날의 죽음 이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우리 사회는 육체적 죽음과 사회적 죽음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강하며 정신적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는 무관심하다. 다시 말해서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죽어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번째 문제점을 슈타인의 형이상학 측면에서 죽음과 죽어감을 구별하여 고찰함으로써, 임종자가 받아들여야 할 죽음의 과정을 ‘죽어감’이라는 하나의 ‘과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죽음의 형이상학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마지막 세 번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종래의 호스피스 철학의 개념인 순례자나 병약자를 돌보기 위한 ‘간호’(시간)와 그들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숙박’(공간)이라는 기본범주를 토대로 간호하는 호스피스와 간호를 받는 환자 사이의 ‘관계’(태도)라는 요소를 추가하여 인간존재라는 바탕에서 재해석하려는 것이며, 이를 ‘호스피스 철학’(Hospice Philosophy)으로 규정하였다.
그렇다면 간호하는 호스피스와 간호를 받는 환자 사이의 ‘관계’(태도)와 우리 사회의 전 구성원과 환자 사이의 ‘관계’(태도)는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 라는 점에서 슈타인의 사랑과 비움을 통한 영성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임종 환자가 경험하게 되는 영적고통을 최대한 감소시키고 잘 극복하도록 도와주며, 영적 요구를 충족시켜 영적 안녕 상태를 유지, 증진하도록 돕는 영적 간호가 호스피스의 핵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간호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의 느낌을 수용할 때, 다시 말해서 죽음을 앞둔 환자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심경을 자신을 간호하는 사람이 수용하고 있다고 느낄 때, 간호제공자와 환자는 상호 소통에 놀라운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적 간호는 임종환자의 남은 삶의 질을 높여 주며, 임종환자가 자신, 이웃 그리고 환경과 갖게 되는 ‘관계’를 유지시킬 것이다. 또한 임종환자가 현재의 상황과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내세에 대한 희망 속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주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결국 간호제공자는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너’가 아닌 ‘나’였음을 깨닫게 되고, 환자에 대한 사랑이 환자를 넘어서 간호제공자 자신을 비워나가는 계기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구성원도 자신과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임을 깨닫고, 자신을 비워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때 우리 사회의 호스피스는 유의미하게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begins with the fact that the issue of ‘dying well’ calls for a considerable and urgent challenge to our society. If this is the case, why do we not use the term ‘Hospice’ or ‘Hospice activities’ as opposed to ‘Hospice Philosophy’? In order to establish the term ‘Hospice Philosophy’ as a paradigm, I would like to propose the necessity of Hospice Philosophy through the meaning of death and the relationship that exists between the members of a community and patients. In this process, the theoretical rationale for Hospice Philosophy is connected to the ideas of Edith Stein, a Catholic saint, for the new Hospice Philosophy paradigm to be introduced.
Then, what is the meaning of Stein’s ideas on Hospice Philosophy? First of all, I specify the problems caused by the modern misunderstanding of death in the three categories of “understanding physical death,” “absence of meaning in dying,”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community members and patients.”
By considering firstly that the meaning of human death cannot be equated with the death of things from the viewpoint of Stein’s anthropology, it is put forth that these issues should be discussed on the existential and spiritual dimensions, ranging beyond biological significance. Secondly, our society tends to take an interest only in physical and social death, while remaining indifferent to the notions of mental and spiritual death. In other words, the idea of ‘dying’ as dealt with from a metaphysical perspective is disappearing. Therefore, by considering the second issue from Stein’s metaphysical aspect, a distinction between ‘death’ and ‘dying’ is made, and the process of death that a dying person must accept is reinterpreted as an actual ‘process,’ presenting a metaphysical point of view of death. Lastly, in order to solve the third issue, I added the element of the ‘relationship’ (attitude) between the hospice providing nursing care and the patients receiving care to the main categories of conventional hospice philosophy, such as those of ‘nursing’ (time) for pilgrims or the sick and ‘accommodation’ (space) allowing them to rest, in order to reinterpret the issue on the basis of human existence and define it in line with Hospice Philosophy. Especially, the spirituality through Stein’s love and emptying is proposed for the question of how the ‘relationship’ (attitude) between the nursing hospice and patients receiving nursing care, as well as the ‘relationship’ (attitude) between the whole community and patients, should be formed. As a result, it is emphasized that the core of Hospice Philosophy should be centered on spiritual nursing that effectively helps reduce and overcome the spiritual pain experienced by a dying patient, and meeting such spiritual needs would help to maintain and improve the well-being of patients. Spiritual nursing would enhance the quality of the remaining life of a dying patient, while also maintaining the ‘relationship’ that a dying patient has with God, himself/herself, neighbors, and the environment. In addition, it would be effective in helping the dying patient to accept his or her current situation as well as death in a positive manner, in order to die in peace and with hopes of an afte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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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22-000-00039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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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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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9-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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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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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권0호(2022년 10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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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회정의 영역으로서 가족과 젠더 문제

저자 : 김은희 ( Kim Eun-hee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4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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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가족 영역 내에는 여전히 관습적인 성별 노동분업구조가 깃들어 있고 이를 문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구조를 바탕으로 사회의 분배구조가 성립되어 있다. 이 논문은 가족의 성별 노동분업구조가 사회정의의 문제로 다뤄져야 함을 주장하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간과한 롤즈와 왈저의 정의론을 오킨의 논의를 통해 비판한다. 이 논문은 가족 영역의 성별분업구조가 정의의 문제임을 밝힌 오킨의 통찰이 차이의 정치를 내세운 영의 노선 혹은 분배 패러다임의 복원을 내세운 프레이저의 노선을 택하여 발전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영과 프레이저는 여성주의적 패러다임 안에서도 서로 다른 노선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 논문은 두 노선의 차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검토하였고 적어도 오킨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볼 때 두 노선의 차이가 실질적인 것이라기보다 개념 사용의 불일치에서 온다는 점을 밝힌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oint that the gendered division of labor in the family should be treated as an issue of social justice and examine some persuasive ideas to address this issue as one of social justice. First I criticize Rawls's and Walzer's theory of justice, both of which overlooked the issue of gender inequality in the family, via introducing Okin's criticism. And then I argue that Okin's insight, which reveals that the gendered division of labor in the family is the issue of justice, can be developed by taking Young's approach to the politics of difference or Fraser's approach to the restoration of the distributive paradigm. Young and Fraser appear to show very different ways from each other, or even at odds with each other within the feminist paradigm. I examine the nature of the divergence between them and finally conclude that their disagreement comes from their different scope of key concept, not from their substantial viewpo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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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쿠자누스의 '하나'에 대한 이해 -'하나' 개념의 새로운 이해 가능성-

저자 : 김형수 ( Kim Hyoungsoo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6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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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는 현실적인 존재를 넘어서 모든 존재를 포괄하며 모든 존재의 원천이 되는 무한한 초월성을 지니는 신의 절대적 존재를 하나로 나타낸다. 존재의 참된 계기로서 하나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동시에 모든 것 안에 있음으로써, 초월성과 내재성은 신의 본질로서 이해된다.
무엇보다 절대적 하나는 대립적인 것들의 모순 이전의 합치로서 다수 또는 다른 것을 무차별적으로 자신 안에 내적으로 접고 있다. 반면에 존재하는 하나는 절대적 단일성 자체에 의해 외적으로 펼쳐진 하나이다. 하지만 절대적 하나가 이름 불릴 수 없고 규정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하나는 합치의 저편에 있다.
특별히 쿠자누스에게서 하나는 신의 이름으로서 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고찰된다. 다르지 않음의 하나임에서 모든 다름과 대립은 지양된다. 다른 것이 아닌 것은 대립적인 것들을 넘어서지만, 오직 자신 안의 셋-하나 본질의 현재하는 관계성으로서만 존재한다. 창조론의 관점에서도 다른 것이 아닌 것과 동일한 것으로서 하나는 그 자신과 다른 것이 아니지만, 동시에 그 자신 안에서 그리고 다른 것이 아닌 것을 향해서는 다른 것이기도 한 존재하는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것의 근거가 된다. 쿠자누스는 우리 자신의 척도로서 하나를 찾으려는 정신의 갈망 옆에서 우리와 마주하는 대상들의 참된 척도로서 하나를 찾으려는 갈망을 본다. 궁극적으로 쿠자누스에게서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에 대해서 인식하려는 노력은 정신적 원천인 동시에 모든 것의 목적인, 말해질 수 없는 신의 본질에 대한 추구이다.


Nicholas of Cusa represents the absolute existence of God with infinite transcendence that encompasses all beings beyond the actual existence and is the source of all existence as the One. Transcendence and immanence are understood as the essence of God, by which the One as the true moment of being is beyond all and in all.
Above all else, the absolute One is the coincidence before contradiction of the opposing things, which indiscriminately enfolds the many or the other within itself. On the other hand, the One that exists is the One that is outwardly unfolded by the absolute unity itself. But in the sense that the absolute one cannot be named and cannot be defined, the one is beyond coincidence.
Especially, in Cusanus the absolute One is considered 'Not-other', namely the name of God. In the oneness of 'Not- other', all differences and oppositions are avoided. The 'Not- other' transcends opposites but exists only as a present relation of the three-one essence within itself. From the point of view of creationism, as the same as the 'Not-other', the one is not different from itself, but at the same time is the basis of the other in the form of being which is also another in itself and towards the other. In the desire of the mind to find the One as our own measure, Cusa sees the longing to find the One as the true measure of the objects we encounter. Ultimately, in Cusa, the effort to know the One in various ways is not only the pursuit of a spiritual source but of the unspeakable essence of God as the goal of all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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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식 이론의 관점에서 본 『볼데마르』 -헤겔 『정신현상학』을 기초로-

저자 : 남기호 ( Nahm Ki Ho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7-10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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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헤겔 『정신현상학』의 양심 부분에서 전개되는 아름다운 영혼의 두 의식 형태들을 야코비의 소설 『볼데마르』의 두 주인공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 해석은 구조적 유사성에 토대를 둔 정신현상학적인 소설 읽기라 할 수 있다.
야코비의 철학 소설 『볼데마르』는 아름다운 영혼들의 양심을 둘러싼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헨리에테는 『정신현상학』에서 언급되는 행위하는 의식으로서 불행한 아름다운 영혼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행위하지 않고 오직 판정하려고만 하는 볼데마르는 『정신현상학』에서 등장하는 경직된 마음의 아름다운 영혼이라 할 수 있다. 야코비는 이 소설을 통해 볼데마르가 내적으로 고수하고자 하는 순수한 우정과 헨리에테가 실천하고자 하는 순수한 사랑의 이원론적 양립을 유지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지니는 실천적 생의 능력을 더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정신현상학』 양심 부분에서 아름다운 영혼들의 고백과 용서를 통한 화해의 공동체 형성과 연결된다.
이렇게 순수 사랑의 실천을 통해 신과의 만남을 초대하는 『볼데마르』는 종교 장(章)으로의 입문이기도 한 『정신현상학』의 양심 부분에서 잘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This article attempts to interpret the two forms of consciousness of the beautiful soul developed in the conscience part of Hegel's Phenomenology of Spirit as the two main characters of Jacobi's novel, Woldemar. This interpretation is a spirit-phenomenological novel reading based on structural similarity.
Jacobi's philosophical novel, Woldemar, is a story of conflict and reconciliation over the consciences of beautiful souls. Henriete, who appears here, corresponds to an unfortunate beautiful soul as an acting consciousness mentioned in Phenomenology of Spirit. Woldemar, who does not act and only tries to judge, can be said to be a beautiful soul with a rigid heart appearing in Phenomenology of Spirit. In this novel, Jacob tries to maintain the dualistic compatibility between the pure friendship that Woldemar wants to hold internally and the pure love that Henriette wants to practice, while ultimately further emphasizing the practical life ability of love. This is connected with the formation of a community of reconciliation through the confession and forgiveness of beautiful souls in the conscience part of Phenomenology of Spirit.
The conclusion of this article is that Woldemar, which invites an encounter with God through the practice of pure love, can be read well in the conscience part of Phenomenology of Spirit, which is also an introduction into the religion chapter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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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과학과 종교의 갈등 -갈릴레이와 도킨스의 과학적 독단과 신학적 천박함-

저자 : 박종준 ( Park Jong June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9-13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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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 사건은 종교 갈등의 가장 유명한 경우로서, '합리적 과학과 미신적 종교의 갈등'이라는 소위 '전쟁모델'로 단순화되었다. 이런 단순화된 구도는 현대에서도 종교와 과학 간의 갈등을 보는 관점을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근세 갈릴레이 사건에서 현대 무신론에 이르는 종교 갈등을 합리성과 미신 사이의 전쟁으로 보는 것은 현상을 본질로 오해하는 것이다. 종교와 과학 간 갈등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올바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런 단순화된 관점을 지양해야 한다. 이 논문은 종교 갈등의 과거로서 갈릴레이 사건과 현재로서 도킨스의 무신론에서 과학적 실재론에 기반한 문자주의 성서해석, 과학적 증거의 엄밀성이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논의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종교와 과학의 갈등은 합리성과 미신 간의 전쟁모델로 일반화될 수 없음을 논변한다.


Galileo Galilei and his condemnation by the Catholic Church, so called the 'Galilei Affair', is taken as the typical conflict between science and the church. The affair has been generally simplified as an warfare between rational science and superstitious religion. The warfare model is still influential in the contemporary understanding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science and religion. Richard Dawkins takes the real nature of conflict between science and religion as the real war between rationalism and superstition. I argue that Galilei's theism and Dawkins's atheism are based on biblical literalism and scientific realism in common. And scientific evidence and theological sloppiness in their arguments cause the real conflict. Therefore, the conflict can not be taken as the war between rational science and superstitious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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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현명과 다른 덕들의 연결에 관한 연구 -토마스 아퀴나스의 덕론을 중심으로-

저자 : 임경헌 ( Im Kyunghun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3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1-17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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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덕론에서 '덕의 연결'에 관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현명과 도덕적 덕들 혹은 습득덕과 주입덕의 연결을 주로 다뤄왔다. 본 연구의 목적은 현명에 연결되는 '지성적 덕들'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현명은 도덕적 덕들로부터 올바른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도덕적 덕이 욕구 능력의 탁월성인 한, 거기에는 올바른 목적에 대한 이성 능력의 선행하는 파악과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 현명은 지성적 덕의 한 종류인 원리들의 이해로부터 제일 원리들(목적들)을 획득한다. 그러나 원리들의 이해는 인간의 마땅한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완전한 덕으로서의 현명은 여러 자연적 좋음들 중에서 무엇이 왜 마땅한 최종 목적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앎을 요구한다. 이러한 앎은 윤리학을 통해, 즉 학문의 덕을 달성한 자에 의해 주어진다. 그러나 윤리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최종 목적은 원리들에 이해에 의해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 불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학문의 제일 원리들에 관여할 수 있는 지혜의 덕에 의해서만 분명해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현명은 지성적 덕들(원리들의 이해, 학문, 지혜)와 연결된다. 이러한 연구는 결과적으로 토마스 윤리학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오늘날 윤리적 논의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는 더 연구되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In Thomas Aquinas's Theory of Virtue, the studies on the 'connection of the virtues' has mainly dealt with the connection between prudence and moral virtues, or between acquired and infused virtues.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reveal that there are 'intellectual virtues' that are connected to prudence. Prudence has a right end from moral virtues. But insofar as moral virtue is the excellence of the faculty of desire, it must be predicated on the prior grasp and judgment of the faculty of reason for the right end. At first prudence acquires the first principles (purposes) from the understanding of principles, which is a kind of intellectual virtue. But the understanding of the principles does not tell us what the proper end of man is. Nevertheless, prudence as 'a perfect virtue' requires a clear view on the due end and means in the entire human life. This knowledge is given through ethics, an intellectual virtue of science. However, the ultimate end, the most important principle of ethics, is still unclear because it is not grasped by the understanding of the principles. And this can be made clear only by virtue of the wisdom which can relate to the first principles of all science. In this way prudence is connected to the intellectual virtues (understanding of principles, science, wisdom). The result of this study emphasizes the metaphysical foundations of Thomas' ethics. However, how it develops in detail and what implications it may have in today's ethical discussion remains a subject for further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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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리대금의 죄악성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

저자 : 최원오 ( Choe¸ Wono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5-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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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금융 시장은 거대한 도박장처럼 변했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은 거대하고 강력한 종교가 되었다. 돈이 돈을 낳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인되고, 최고선은 곧 최고 수익이라는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돈벌이 가운데 가장 고약한 것이 고리대금업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고리 대출뿐 아니라, 돈을 빌려주고 '빚의 열매'로 받는 통상적 웃돈조차 교부들은 강하게 비판하고 단죄했다. 악덕 사채업은 물론, 이자 받는 것 자체를 대죄로 여겼다.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당연시되는 이자가 교부들의 눈에는 혐오스럽고 반복음적인 범죄였다. 이자 문제는 경제 논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 물음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생존 문제이며, 인간을 착취하고 노예화하는 거대한 사회구조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공공연하게 빚을 권하고,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사채와 고리대금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극단적 약육강식의 악순환과 탐욕스런 무한경쟁으로 민중의 삶이 허물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서럽고 처절한 인생살이를 섬세하게 헤아리고 따뜻하게 품어 안을 줄 알았던 교부들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경제 윤리의 핵심이며 가톨릭 사회교리의 복음적 원리이다. 이 논문에서는 2000년 거룩한 전통의 기둥인 교부들의 강력한 경고와 간절한 호소를 바탕으로, 고금리 대출을 일삼는 금융업에서 개인적 돈거래에 이르기까지 이자놀이가 얼마나 악랄한 범죄인지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소비주의에서 해방되어 풍요로운 가난을 기꺼이 껴안고, 복음적 모험심과 우정으로 연대할 때 비로소 탐욕적 돈벌이와 빚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교부들의 권고는 새롭고도 오랜 삶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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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추상과 실재의 관계에서 본 화폐 - 칸트와 고진(柄谷行人)의 이론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석수 ( Kim¸ Suk-soo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39-7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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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추상작용을 통해서 우연성과 특수성이 안겨주는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해왔듯이, 화폐를 통해 직접 물물교환이 안겨주는 불편함을 극복하려고 해왔다. 그러나 추상을 통해 성립된 세계가 실재를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듯이, 오늘날 화폐가 물건 자체를 압도하며 물신화를 낳고 있다. 칸트는 이 점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긋기 위해 물자체를 한계개념으로 설정하였으며, 또한 도식과 상징에 관한 논의를 통해 감성의 직관과 지성의 개념, 그리고 이성의 이념 사이에 '하나 됨이 없는 매개'를 강조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기본 입장에 기초하여 화폐 역시 물건 자체를 압도하지 않는 교환일반의 형식적 조건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그는 인간이 수단으로 취급받는 상업주의를 넘어 모든 인간이 목적으로 대우받는 도덕의 나라로 나아가려고 했으며, 이를 위해 세계공화국이라는 이념을 규제적으로 설정하려고 하였다. 칸트의 이런 생각은 고진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는 칸트의 이성비판과 마르크스의 자본비판을 종합하는 트랜스크리틱의 길을 추구하였다. 그는 화폐의 물신화를 극복하기 위해 화폐를 칸트의 “선가험적 통각X”나 마르크스의 “연합된 지성” 차원에서 바라보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정신에 입각하여 그는 “소생산자 연대”나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제=국가=네이션”의 등식이 낳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의 이런 시도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렇지만 칸트에 대한 그의 사회주의적 독해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실제로 헤겔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은 칸트의 능동시민과 수동시민의 분류 및 그의 소유권론이 자유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진이 주목한 칸트의 이성비판과 그로부터 마련된 화폐비판에 대한 논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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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감정과 이성의 정치적 관계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저자 : 서병창 ( Seo¸ Byeong-chang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73-10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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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욕구와 이성적 욕구는 감각적 이해와 이성적 이해를 통해서 일어난다.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욕구가 달라진다. 그런데 이러한 욕구들이 올바른 이해를 따르지 않고 굳어진 성향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습성을 바로잡아 올바른 습성을 갖추는 길이 무엇인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감각적 욕구로서 감정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감정에는 선행감정과 후행감정이 있는데, 후행감정은 이성과 의지에 의해 추구된 것이므로 어떤 의지인가에 종속된다. 그래서 선행감정이 어떻게 올바른 덕을 갖출 수 있느냐고 할 때, 선행감정이 생기는 두가지 경로를 살피게 된다. 선행감정은 감각과 상상력뿐 아니라 이성의 평가에 따라 발생하는데, 문제는 어떤 이성의 기능 없이 오직 감각과 상상력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다. 선행감정은 이성과 의지가 개입하지 않는 한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욕구가 아니다.
이런 선행감정에 대해서 이성과 의지의 개입이 가능한가? 아니면 어떤 자발적 영역이 아니므로 도덕적 차원이 아니며 어떤 책임도 지울 수 없는가? 만약 주어진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본능적 행동이라면 도덕적 차원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도덕적 차원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의 자발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들도 이성과 의지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어진 조건에서 두려운 상상으로 빠지지 않고 다른 상상을 일으키는 훈련으로 두려운 감정을 덜 수 있다. 이성은 이러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통제 하지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조절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성과 의지는 이러한 감정을 전제적으로 지배하지 못하지만 정치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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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도덕적 선과 미의 존재론적 유비 - 스코투스의 '통합적 적합성'(convenientia integra) 개념을 중심으로

저자 : 김율 ( Kim¸ Yul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07-13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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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둔스 스코투스 미 개념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해명하는 것이다. 스코투스는 비례의 미학 전통을 계승하여, 언제나 미를 비례 또는 조화의 관계로서 규정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스코투스의 미 개념은 도덕적 선의 유비로서 등장하는바, 본질적 선이 아니라 우유적 선의 일종으로 간주될 수 있다. 어떤 행위가 마땅히 갖춰야 할 적합한 요소들을 갖추었을 때 그 행위에 진술되는 술어가 도덕적 선인 것처럼, 미는 어떤 물체가 마땅히 갖춰야 할 적합한 요소들을 갖추었을 때 그 물체에 진술되는 술어다. 즉, 미는 아름다운 물체 안의 절대적 성질이 아니라 그 물체에 마땅히 속해야 할 모든 것들의 총체, 곧 통합적 적합성을 가리킨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전 이론가들과 달리 스코투스가 이 총체 안에 색채를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색채의 미는 전통적으로 빛이라는 원리로 환원되었으나, 스코투스는 주체에 대한 적합성이라는 새로운 원리를 도입하여 색채의 미를 설명한다. 이로써 스코투스의 통합적 적합성으로서의 미 개념은 빛의 미학 안으로 비례 미학의 지평이 확장되는 양상으로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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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스피스 철학에서 에디트 슈타인 사상의 의미 연구 -죽음과 죽어감 그리고 사랑과 비움의 영성을 중심으로-

저자 : 이은영 ( Lee¸ Eun-young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35-17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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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웰다잉'의 문제가 우리사회에 있어서 상당히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촉구하면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호스피스' 내지는 '호스피스 활동'이 아니라 왜 '호스피스 철학'인가? 이에 대하여 필자는 호스피스 철학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정초하기 위해 첫째, 죽음의 의미를 통한 호스피스 철학의 필요성과, 둘째, 우리 사회의 구성원과 환자사이의 관계를 통한 호스피스 철학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호스피스 철학의 이론적 근거를 철학자이자 가톨릭 성인(聖人)인 에디트 슈타인의 사상과 연결시킴으로써 '호스피스 철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필자가 밝혀내고자 하는 호스피스 철학에서 슈타인 사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필자는 우선 현대인의 죽음 이해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육체적 죽음이해', '죽어감의 의미 부재', '간호제공자 내지는 우리 사회구성원과 환자사이의 관계'로 지정한다. 그리고 이 문제점들을 첫째, 슈타인의 인간학 측면에서 인간의 죽음이 사물의 죽음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인간의 죽음은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론적이며 영성적 측면의 지반위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슈타인에 의하면, 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감각을 통하여 소리와 소음이라는 감각적 해석을 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물질적 몸이 무엇인가를 물질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존재가 무엇인가를 감각적으로 지각할 때 단순히 물질적 몸 이상으로 지각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소리와 소음을 구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오늘날의 죽음 이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우리 사회는 육체적 죽음과 사회적 죽음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강하며 정신적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는 무관심하다. 다시 말해서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죽어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번째 문제점을 슈타인의 형이상학 측면에서 죽음과 죽어감을 구별하여 고찰함으로써, 임종자가 받아들여야 할 죽음의 과정을 '죽어감'이라는 하나의 '과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죽음의 형이상학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마지막 세 번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종래의 호스피스 철학의 개념인 순례자나 병약자를 돌보기 위한 '간호'(시간)와 그들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숙박'(공간)이라는 기본범주를 토대로 간호하는 호스피스와 간호를 받는 환자 사이의 '관계'(태도)라는 요소를 추가하여 인간존재라는 바탕에서 재해석하려는 것이며, 이를 '호스피스 철학'(Hospice Philosophy)으로 규정하였다.
그렇다면 간호하는 호스피스와 간호를 받는 환자 사이의 '관계'(태도)와 우리 사회의 전 구성원과 환자 사이의 '관계'(태도)는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 라는 점에서 슈타인의 사랑과 비움을 통한 영성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임종 환자가 경험하게 되는 영적고통을 최대한 감소시키고 잘 극복하도록 도와주며, 영적 요구를 충족시켜 영적 안녕 상태를 유지, 증진하도록 돕는 영적 간호가 호스피스의 핵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간호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의 느낌을 수용할 때, 다시 말해서 죽음을 앞둔 환자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심경을 자신을 간호하는 사람이 수용하고 있다고 느낄 때, 간호제공자와 환자는 상호 소통에 놀라운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적 간호는 임종환자의 남은 삶의 질을 높여 주며, 임종환자가 자신, 이웃 그리고 환경과 갖게 되는 '관계'를 유지시킬 것이다. 또한 임종환자가 현재의 상황과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내세에 대한 희망 속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주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결국 간호제공자는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너'가 아닌 '나'였음을 깨닫게 되고, 환자에 대한 사랑이 환자를 넘어서 간호제공자 자신을 비워나가는 계기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구성원도 자신과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임을 깨닫고, 자신을 비워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때 우리 사회의 호스피스는 유의미하게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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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아렌트의 루소 이해를 통한 양심과 여론의 관계

저자 : 이정은 ( Lee¸ Jeong-eun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71-20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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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려면, 대중들이 정치적 실천을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여론이 정부에 잘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중은 정치적 자유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거나 정치 행위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론이 어떤 가치와 위계를 지니는지를 객관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아렌트는 근대 혁명이 '하나의 여론'이나 '만장일치'에 기초한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상실한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의 목표와 세계사적 의미를 기존과 달리 '다원성과 다양성 존중'에 맞추고, 프랑스 혁명이 공포정치로 전락하면서 본래 목표인 '정치적 자유'를 포기하는 이유는 루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루소에게서 인민의 보편적 기반인 일반의지와, 인민을 빈곤과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동정심이 혁명 과정에서 오히려 '자유'를 포기하게 하는 요인이며 로베스피에르의 자유의 전제정과 공포정치를 야기한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일반의지의 만장일치와 국가이성이 인민의 공적 영역에 대한 진입도 막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렌트 비판과 달리, 루소는 인민의 한계를 미리 예단하여 보완책을 제시한다. 루소는 일반의지의 만장일치로 주권 국가의 법 내지 근본법을 입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진단한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인민이 정치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적 공간 내지 공공 영역을 창출하고, 정부의 타락을 극복하는 집회와 민회를 상시화하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집회에서 문제를 교정하는 근간으로 마음의 법을 제시하고, 마음의 법이 '여론'이라고 한다.
이때 여론은 사회과학적 차원을 넘어 근대 철학사의 전통에서는 양심의 발현이며, 신의 목소리의 담지자인 신법과 관련이 있다. 신법을 국가법 내지 시민법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지만, 마음의 법은 여론 내지 여론법으로 작동하면서 대중의 다양한 의견을 발휘하는 기초이다.
이 글은 루소의 마음의 법을 로크와 칸트의 여론법 내지 양심에 견주어 여론의 가치와 위치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아렌트의 루소 비판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정치적 자유를 실현하는 공공 영역과 공적 공간을 제시하기 때문에, 현대인의 정치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는 근대인임을 밝힌다. 집회와 마음의 법을 추가로 상정하는 루소는 '여론'의 중요성을 개진하여 정치 행위와 정치적 자유를 향한 아렌트의 노력을 선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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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블롱델의 철학에서 비관론의 문제

저자 : 이근세 ( Lee¸ Keun-se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09-23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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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행동철학의 창시자인 모리스 블롱델(Maurice Blondel, 1861-1949)의 철학에서 비관론의 문제를 다룬다. 블롱델의 주저인 『행동』은 19세기 프랑스의 문학과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심층적 진단을 포함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비관론은 실증주의 및 칸트의 비판철학과 연관되면서 프랑스 철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주목되었다. 본 논문은 블롱델이 쇼펜하우어의 비관론에 가하는 철학적 비판의 의미를 규명한다. 비관론은 한편으로 블롱델이 주창한 의지의 철학을 풍요롭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입장으로 나타난다. 블롱델은 인간 실존의 수동적 상태를 진단하는 차원에서는 비관론에 동의하지만 삶의 고통을 단순한 인식 대상이나 의지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고통과 예속은 그것들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에 대한 의식을 통해서 비로소 자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블롱델은 쇼펜하우어가 삶의 고통에 대한 해결로서 제시하는 무의 개념을 비판한다. 무의 개념은 그 자체로 정의 불가능한 개념인 동시에, 존재와 현상을 요청함으로써 가공된 작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블롱델은 존재와 현상의 분리를 통해 구축된 비관론 체계를 비판적으로 진단함으로써 존재와 현상의 확정적 분리를 문제 삼고 있으며 그렇다고 양자의 즉각적 동일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존재와 현상은 인간의 행동을 통해 통합되어야 할 잠정적 이원성이다. 블롱델의 사상은 존재와 현상의 분리주의를 지양하고 행동을 통한 두 영역의 결합을 요청하는 행동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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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언어적-서사적 전회의 철학적 함의와 하버마스의 대응

저자 : 정대성 ( Jeong¸ Dae-seong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35-25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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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인간의 사유의 역사에서 하나의 변혁으로 간주되는 “언어적 전회”와 “서사적 전회”의 철학적 함의와 이 전회에 대한 하버마스의 대응을 살피고 있다. 언어적 전회는 20세기를 특징짓는 철학적 사유의 결정적 패러다임으로서 많은 경우 계몽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나왔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언어적 전회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계몽의 인간 해방의 기획을 갱신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그는 언어에 내재한 상호주관성에 기초하여 계몽의 합리성의 기획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한다. 그것은 근대 주체철학의 주체성 개념에 내재한 독단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이에 반해 서사적 전회는 특히 60년대 이후 철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언어 구성체인 서사 개념을 철학적 사유의 중심으로 이끌어 온다. 서사(narrative), 혹은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과학적 서술, 학문적 언어사용과는 가장 거리가 있는 언어현상으로 간주되어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이 있는 곳에 서사가 있고(있었고) 서사가 있는 곳에 인간이 있다(있었다)'는 서사적 전회의 주창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서사야 말로 인문현상의 핵심이고, 따라서 서사에 대한 방기는 인문학과 언어학의 태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하버마스에 따르면 서사에 대한 강조는 계몽과 합리성으로부터의 급진적 일탈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반합리주의적 운동을 20세기 후반의 허무주의와 연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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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감각질로서의 통증'에 대한 비판의 철학적 함의들에 관한 고찰

저자 : 김혜련 ( Kim¸ Hyu-ryun )

발행기관 : 한국가톨릭철학회 간행물 : 가톨릭철학 24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59-29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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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출발점은 통증(pain)이나 고통스러움(painfulness)을 순수한 심적 대상으로 다루면서 철학적으로 사소한 에피소드처럼 취급된다는 사실에 대한 개인적인 관찰 경험이다. 그리하여 통증이 과연 감각질(quale)인가 하는 물음에 철학자들이 어떻게 답변해왔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 통증을 단일한 감각질 또는 지각적 성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대안적 설명을 제시하려는 오스틴 클라크의 주장이 이 글의 논의의 중심 줄거리가 된다.
클라크에 따르면, 고통스러운 감각질은 그 자체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경험의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주체가 주목할 만한 것으로 간주하는 동기나 목적에 의해 유발되는 특수한 효과에 의해 동일시되는 질적 면모이다. 그러므로 고통스러움이 감각질이 아니라면, 하위 인격적(infra-personal) 수준에서의 감각에 대한 특성화는 주체의 동기에 관한 특성화라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대안은 둘 사이에 매우 강한 그러나 우연적인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상 언어로서 '통증'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 두 항목에 의해 구성되는 사태를 가리킨다. 우리의 구성 조건 때문에 어떤 종류의 신체감각의 질적 상태가 우리의 주목을 끌고 그 느낌을 멈추게 하려는, 즉각적이고 압도적이고 강제적인 욕구를 촉발시킨다. 그러한 종류의 성질을 느끼는 경험이 예외 없이 그 성질에 대한 강한 혐오를 야기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유사-인과적 연관이 매우 강하고 예외가 거의 없는 까닭에 일상 언어는 그 연합을 하나의 낱말로 명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묶어주는 논리적 필연성은 없고, 또 특이한 경우에만 분리될 수 있다. 클라크는 이것을 '제휴 모델'이라고 부른다. 아편을 복용한 환자는 동일한 작열통을 느끼지만 더 이상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보고한다. 그는 통증 하부 감각을 갖고 있음에도 통증 하위 동기를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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