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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 남송(南宋) 시기 지방관의 이혼 관련 소송의 처리 - 의절(義絶)·칠출(七出)·화리(和離)의 변용과 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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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南宋) 시기 지방관의 이혼 관련 소송의 처리 - 의절(義絶)·칠출(七出)·화리(和離)의 변용과 확장 -

he Processing of Divorce Cases by Local Officials during the Southern Song Period - Changes and Expansion of Yijue(義絶), Qichu(七出), and Huali(和離) -

최해별 ( Choi Hae-byoul )
  • : 한국여성사학회
  • : 여성과 역사 33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12월
  • : 269-303(35pages)

DOI


목차

Ⅰ. 머리말
Ⅱ. 부부간의 의(義)와 정(情)의 훼손 - ‘청리(聽離)’
Ⅲ. 칠출(七出)과 ‘청종부의(聽從夫意)’
Ⅳ. 화리(和離)를 대하는 지방관의 태도 - 이혼서 중시
Ⅴ. ‘처무기부지조(妻無棄夫之條)’ - 합의의 모색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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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청명집』의 판례를 통해 남송 시기 지방관이 이혼 소송을 다룰 때 보인 공통된 경향을 찾아 그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지방관은 더 이상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는 부부간 ‘의(義)’가 끊어졌다며 이혼을 명하고, 아내의 간통, 도망, 절도에 대해서는 ‘청종부의(聽從夫意)’로 처리했으며, 화리(和離)에 대해 이혼서의 효력을 중시했고, 여자 쪽의 이혼제기에 대해서는 합의를 위해 중재자를 자처했다. 이로써 당시 이혼 소송의 처리 경향이 당률의 의절(義絶), 칠출(七出), 화리의 범위 속에 있으면서도, 그 구체적 실천에서 그것의 변용과 확장을 확인할 수 있다. 부부 당사자의 의와 정을 강조한 것, 칠출의 정신이 남편에 대한 규제가 아닌 관의 개입에 대한 규제로 실천된 것, 화리에 대해 관이 개입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 중재자로서 지방관의 역할을 중시한 것 등은 당대와 다른 부부 중심의 소가족 형태인 송대 가족문화를 반영한 것이며, 이혼 소송이 부부(양가)의 의사나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처리된 남송 사법 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ind commonalities among the divorce cases that local officials from the Southern Song period encountered by analyzing divorce cases from the Qingmingji淸明集. We considered the implications of the commonalities and found that there are finite patterns in the local officials’ judgements from this period. When they determined that a couple could not sustain a marital relation, they allowed divorces by stating that ‘Yi(義)’ between the couple had been broken. In the case of the wife’s misdeeds such as infidelity, flight, or theft, they allowed the husband to make the decision regarding the divorce. In the case of mutual agreement, they fully understood that the bureaucracy had limited power to intervene and upheld the divorce agreement. In the case where the wife’s family filed for divorce, they actively played the role of the mediator in order to bring both parties to an agreement. Therefore, the way disputes between marital couples were discussed and handled were within the boundaries of ‘Yijue(義絶)’, ‘Qichu (七出)’, and ‘Huali(和離)’ of the Tang Code. At the same time, however, we can confirm that the actual methods of execution and discussion of divorce have changed and expanded from Yijue(義絶), Qichu(七出), and Huali(和 離). Through these changes and expansions, we see the impact of the changes in family culture, where smaller family units became more prevalent during the Song Dynasty in comparison to that during the Tang Dynasty. Furthermore, we see the local officials respecting the changes in family culture. In the case of individual disputes between the couples, we can observe how the judicial culture of the Southern Song period dictated that they must try to respect the opinions or the relationships of the couples (or their families) as much as they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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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70년대 여성중등교육과 여학생 인식

저자 : 윤은순 ( Yoon Eun-soon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3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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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고교평준화제도의 시행으로 중등학교 취학률이 상승하였고 여학생의 수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시기 국가 교육 정책의 특징은 국민정신교육의 강화로서, 정부는 중고등학생들에게 국가주의 교육을 철저히 시행하였고, 강력한 군사주의 아래 여성교육은 전통의 부덕을 함양하고 산업화에 적응하는 현대적 현모양처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였다. 여학생은 희생정신을 가지고 국가에 봉사하며 미래의 현모양처를 준비하는 존재로 사회적으로 형상화 되었고, 한편으로 미숙한 존재로 상정되어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학생을 향한 사회적 관념이 동일하게 모든 여학생에게 적용되어 내면화된 것은 아니었다. 여학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통적 가치관보다 진취적이고 신념있는 여성상을 추구하였다. 하이틴문화를 본격적으로 형성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문화집단으로 등장한 여학생들은 사회문제나 학교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피력하며 자신을 향한 가벼움의 시선에 맞섰다. 정권의 교육방침과 사회의 담론에 맹목적으로 순응하거나 함몰되기보다 사회 현실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여학생들의 자의식은 성장해가고 있었다.

2중국 만주지역 독립운동과 여성항일운동

저자 : 이계형 ( Lee Kye-hyung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3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7-85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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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10년대 전후부터 1930년대까지 만주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활약상을 살피고, 시대별로 어떤 경향성을 보이는지 분석하였다. 1910년대 전후의 만주 지역의 여성 독립운동은 활발하지 못하고 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의 부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는 1919년 3·1운동 이후 크게 변화하였다. 용정 3·13운동 당시 여성이 단상에 올라가 연설하는가 하면 여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훈춘애국부인회·간도부인애국회·만주여자교육회 등의 여성단체가 등장하였다. 1920년대에는 여성들이 직접전투에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독립군들에게 음식 제공, 세탁, 전투복 제작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30년대에는 여성 독립운동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이 성립되자 한중연합전선이 형성 되면서 공산주의를 추종한 젊은 여성들이 직접 전투에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한인 여성들은 전장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고 훗날 중국 정부는 이들을 '여전사'로 기억하고 있다.

34월 혁명과 여성 참여 - 2·28대구학생시위로부터 4·11민주항쟁까지를 중심으로 -

저자 : 한상권 ( Han Sang-kwon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3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7-129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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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혁명의 직접적인 발단은 학원의 정치도구화에 반대하는 2·28대구학 생시위였다. 2월 28일 대구학생시위는 경북고와 대구고 등 남자고등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작됐다. 하지만 서너 시간 뒤 경북여고와 대구여고 등 여자고등학생도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3·15의거를 계기로 여중생도 4월 혁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4월 혁명의 중심에 여고생과 여중생 그리고 일반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존의 남성 중심의 4월 혁명 이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28대구학생시위로부터 3·15의거를 거쳐 4·11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4월 혁명에 참여한 여성을 여학생과 일반 여성 두 부류로 나누어 그들의 참여 양상과 활약상을 검토한다.

41920년대 최영택의 여성해방론과 여성잡지 출판 활동 - 자조론 계열 지식인의 여성해방 문제에 대한 인식과 실천 -

저자 : 최희정 ( Choi Hee-jung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3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1-15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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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20년대 자조론 계열 지식인의 여성해방 문제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으며, 이를 위해 최영택을 사례로 하여 그의 여성해방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검토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밝힌 사항은 다음4가지이다. 첫째, 1920년대 초 최영택을 비롯한 자조론 계열 지식인들은 '신여자'의 여성해방론에 비판적이었던 일군의 남성 지식인이었다. 둘째, 최영택은 '신여자'의 여성해방론에 비판적인 남성 지식인이었지만, 여성해방을 달성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셋째, 최영택이 차미리사와 연대하여 여성해방운동을 실천한 의지의 결과물이 조선여자교육회 기관지로 전환된 『여자시론』이었다. 넷째, 『여자시론』 『부인계』와 같은 최영택의 여성잡지 출판 활동은 '신여자'의 '여자도 사람이다'는 주장에 공명하는 데에서 나아가,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독립'이라는 그의 여성해방 목표를 실천하려는 행위였다. 요컨대 이 연구는 복잡다단한 기원을 가진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독립' 담론의 한 계보를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조선인의 만주 이주 정책과 '대륙신부'

저자 : 박정애 ( Park Jung-ae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3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1-19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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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만주 이주 정책을 추진하면서 식민권력은 '조선인의 이민 적응력'이라는 레토릭 안에 조선인 여성을 동원하되 정치적 담론 안에서는 여성을 비가시화하였다. 그러나 만주 이주민 청년들이 결혼난에 봉착하면서 식민권력은 '만주개척'의 사활을 걸고 '대륙신부' 알선이란 명목의 여성동원을 시행했다. 조선인 대륙신부 정책은 일본인의 그것에 비해 비체계적이었고 상황에 따른 임시방편적 성격이 강했다. 이 때문에 조선인 대륙신부 이야기는 한국 근대 여성사에서 아직도 비가시화된 영역 안에 있다. 그러나 대륙신부로 동원된 여성은 존재했으며, 식민권력은 만주 이주 조선인 여성에 대한 개입을 통해 '제국의 확장'이라는 '국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대륙신부를 포함한 만주 이주 여성들은 전쟁을 위한 총동원체제라는 정치적 상황과 생존이라는 원초적 과제 사이에서 '위안하고 일하는 존재'로서의 의미가 강화된 여성성을 요구받았다.

61930년 서울 여학생 만세운동 연구 - 여학생의 「신문조서」를 활용하여 -

저자 : 이상경 ( Lee Sang-kyung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3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1-232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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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29년 11월의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아 1930년 1월 15∼16일 서울에서 전개된 여학생들의 연합 시위를 '1930년 서울여학생 만세운동'이라고 부르고, 시위 당시 연행된 학생들을 상대로 일제 경찰이 작성한 신문조서를 통해 사건의 구체적 전개과정, 만세운동을 끌고가는 여학생의 주체성, 거기에 참가했던 여학생 개인의 의식과 상황 등을 밝혔다. 근우회의 여성들과 여학생들은 광주학생운동이 일본인 남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한 데서 발단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했고 서울 시내거의 모든 여학교가 시위에 참여하면서 남학생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형식으로 시위가 진행되었다. 또한 신문조서를 통해 개화한 지역 출신이 많고 월 20원 정도의 학자금을 송금할 수 있는 집안 출신인 것을 확인하는 한편 결혼하고서 여학교를 다닌 경우도 있음을 확인했다. 나아가 시위 참가 경험이 그 이후의 삶에 미친 영향과 아울러 이 사건의 여성사적 의미를 밝혔다.

7전쟁미망인의 노동 경험과 주체화, 그리고 일상 연대 - 부산·경남지역 전쟁미망인의 구술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은경 ( Kim Eun-kyung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3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3-26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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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부산·경남지역에 거주하는 전쟁미망인의 구술을 통해 그들의 노동경험과 주체화를 분석한 것이다.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족의 생계를 전담했던 전쟁미망인의 노동경험에서는 공사 영역이 따로 분리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구술자들의 노동세계를 물질적 생산물을 만드는 물질노동과 정동의 상호성을 특징으로 한 정동적 노동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이를 통해 '생산노동/재생산노동'의 구분이 공사 이분법을 재생산해 왔던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다. 둘째, 구술자들은 어머니와 며느리로서 역할 수행의 일환으로 물질노동과 정동적 노동을 했다. 그런 역할수행을 통해서 '일하는 자'로서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역할수행-노동을 통한 주체화는 한편으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예속화되는 과정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트라우마 공동체로서 가족이나 마을 구성원과의 상호 관계성을 (재)구축함으로써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는 과정이었다. 셋째 구술자들은 노동을 통한 주체화 과정에서 '혼자살기'와 '연대하기'라는 삶의 전략을 구사했다. 가족 부양을 전담했던 전쟁미망인의 취약성은 이웃과의 연대를 공고히 했다. 이러한 공동체적 연대는 '아래로부터' 전후 복구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8남송(南宋) 시기 지방관의 이혼 관련 소송의 처리 - 의절(義絶)·칠출(七出)·화리(和離)의 변용과 확장 -

저자 : 최해별 ( Choi Hae-byoul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3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69-30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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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청명집』의 판례를 통해 남송 시기 지방관이 이혼 소송을 다룰 때 보인 공통된 경향을 찾아 그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지방관은 더 이상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는 부부간 '의(義)'가 끊어졌다며 이혼을 명하고, 아내의 간통, 도망, 절도에 대해서는 '청종부의(聽從夫意)'로 처리했으며, 화리(和離)에 대해 이혼서의 효력을 중시했고, 여자 쪽의 이혼제기에 대해서는 합의를 위해 중재자를 자처했다. 이로써 당시 이혼 소송의 처리 경향이 당률의 의절(義絶), 칠출(七出), 화리의 범위 속에 있으면서도, 그 구체적 실천에서 그것의 변용과 확장을 확인할 수 있다. 부부 당사자의 의와 정을 강조한 것, 칠출의 정신이 남편에 대한 규제가 아닌 관의 개입에 대한 규제로 실천된 것, 화리에 대해 관이 개입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 중재자로서 지방관의 역할을 중시한 것 등은 당대와 다른 부부 중심의 소가족 형태인 송대 가족문화를 반영한 것이며, 이혼 소송이 부부(양가)의 의사나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처리된 남송 사법 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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