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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 조선시대 임종 장례 일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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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종 장례 일기 연구

A Study on the Diary of the Deathly funeral in the Joseon Dynasty

박동욱 ( Pak Dong-uk )
  • : 근역한문학회
  • : 한문학논집 5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6월
  • : 73-101(29pages)
한문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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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임종 장례 일기의 현황과 의미
3. 임종 장례 일기의 내용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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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장례 일기는 임종과 장례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죽은 사람을 대신해 그의 가장 측근 중 한 사람이 기록한다. 일기는 날짜별로 기록된 자신의 일상이니 당연히 작성자 또한 본인이 되지만, 임종 장례 일기의 경우는 타인을 대상으로 한 기록이다.
통상 임종 장례일기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임종의 순간이나 장례의 과정을 다룬다. 일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1달 안팎의 짧은 기간을 다루고 있다. 지금 흔히 쓰는 考終日記란 용어는 임종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용어로는 임종 장례 일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임종 일기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죽음을 맞는 모습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생 동안 했던 공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증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일상의 생활을 단절하지 않고 육신이 한계치에 이를 때까지 지속했으며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정중했다. 이 모든 것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바탕이 되었다. 제자들에 대한 강론을 지속하고 문병객들을 상대했다.
병세가 위중해지면 더 이상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집중하지 않았다. 본인의 몸에서 보내오는 죽음의 증후를 인정하며 의원을 청하거나 약을 먹지 않고, 음식 섭취를 줄여나갔다. 몹시 위중해지면 남에게 배변을 위한 도움을 받거나 노출이 불가피할 때도 극도로 조심했다. 생애 마지막 순간에 임박하며 정침으로 자리를 옮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타인의 죽음을 보는 것도 내 삶을 점검하는데 필요한 공부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죽음에서 지금까지 살아 왔던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의 의미를 재조정하는 시간이 된다. 그들이 갔던 길이 곧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임종 장례 일기는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웰다잉의 의미를 재고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The death-bed funeral diary deals with the death-bed and funeral process. One of his closest aides records on behalf of the dead. The diary is a daily routine recorded by date, so the writer is of course the person who wrote it, but in the case of the death funeral diary, it is a record for others.
Usually, death-bed funeral diaries begin with almost impossible recovery and cover the moment of death or the process of funeral. It varies from diary to diary, but it covers a short period of about a month. Since the term “gojonggi,” which is now commonly used, mainly deals with dying, it seems appropriate to describe it as a deathbed funeral diary in the exact terms.
The most notable thing in the dying diary is the appearance of death. Without cutting off daily life, the body continued to reach its limit and the attitude toward people was polite. When the condition became critical, he no longer focused on meaningless life-sustaining treatments. At the last minute of his life, he moved to Jeongchim and passed away leaving a will to the people around him.
Watching other people die can also be a necessary study to check my life. It is time to reflect on the meaning of life that has lived in their deaths so far, and to readjust the meaning of the days ahead. The path they’ve gone is the one I have to go. The death-bed funeral diary is a good story for not only researchers but also the general public to reconsider the meaning of well-dying.

UCI(KEPA)

I410-ECN-0102-2021-800-001113235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연3회
  • : 1225-1313
  • : 2713-9905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3-2021
  • :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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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권0호(2021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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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초 서적간행의 토대 구축과 종이의 공급

저자 : 노요한 ( Johann Noh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4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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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즉위 초부터 명나라로부터 經史子集을 아우르는 학문 제방면의 서적을 수입하고자 부심하였다. 책은 당대에 지식전파의 가장 유력한 미디어로서 다양한 지식정보를 싣고서 조선으로 건너왔으며, 조선조정은 책에 실려서 건너온 지식정보를 연찬함으로써 국가 경영과 관련된 최신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중국으로부터 당대의 주요 서적을 구득하고 이를 경연에서 연찬함으로써 그 서적에 담겨 있는 학술문화의 성과를 섭취하고, 섭취한 학술문화를 국내에 다시 확산함으로써 유교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그런데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된, 서적의 편찬 및 간행을 통한 지식정보의 재확산을 위해서는 책을 만들어낼 물질적 기술적 준비와 함께 이를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산시킬 행정적 준비가 요구되었다. 그렇다면 건국 초기 조선조정은 이러한 책이라는 미디어를 통한 지식정보의 축적과 재생산, 확산을 위해 어떠한 행정적 기반을 마련하였을까. 또 그러한 지식정보의 전달자로서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조선조정은 어떤 인적 물적 토대를 구축하였을까. 본고는 조선초 세종의 명으로 이루어진 『사서오경대전』과 『성리대전』의 복각 사례를 중심으로 조선초 서적 출판을 위해 구축된 행정 체계와 여러 물적 토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King Sejong, from the very beginning of his reign, strives to import books from the Ming dynasty that encompasses the whole rages of disciplines covering Jing (經, Classics), Shi (史, Histories), Zi (子, Masters Literatures), and Ji (集, Collections). Books were the most influential media for knowledge dissemination at that time and Chosŏn government could also obtain the newest knowledge and information concerning the doctrine of statecraft based on Confucianism through books. Absorbed the academic and cultural achievements of Ming China through the royal lectures, Chosŏn government now made steady and persistent effort to diffused the knowledge throughout the country.
However, it was also required to lay material and technical foundation as well as administrative foundation in order to spread the knowledge through the compilation and the publication of books which was conducted as a national project. If so, what did Chosŏn government prepare for the accumulation, reproduction, and spread of the knowledge through the book media? Furthermore, what kind of human and material foundation did Chosŏn government establish in order to publish a book as a messenger of such knowledge and information? This paper examines the administrative system and various material foundations for book publication in the early Chosŏn period, focusing on the case of republication of Sishu Wujing Daquan (四書五經大全), Xingli Daquan (性理大全) by the Chosŏn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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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물질로서의 책과 유만주(兪晩柱)의 도서 구매 책주릅 조씨(曺氏)와의 거래를 중심으로

저자 : 김하라 ( Kim Hara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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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서울 남촌의 독서인 兪晩柱가 책주릅[冊儈] 曺氏와의 서적 거래를 기록한 『欽英』의 자료를 분석해 18세기 조선에서 책이라는 재화가 갖는 물질성의 문제에 접근해 보았다.
유만주는 1784년 4월부터 1785년 7월까지 고가의 도서를 여러 종류 구매했다. 당시 그가 주로 거래한 책주릅 조씨는 조수삼과 정약용 등 동시대인이 목격한 '조신선'과 동일인이다. 1784년 4월 23일 유만주의 倉洞 집을 처음 방문한 조씨는 『珮文韻府』 등 4종의 책을 의뢰받았고, 유만주가 明洞의 고급주택으로 이주한 1784년 8월 이후로도 계속 그를 방문해 『文選』, 『패문운부』, 『人外脞史』, 『思辨錄輯要』, 『資治通鑑綱目』 및 그 시리즈에 해당하는 『續資治通鑑綱目』과 『資治通鑑綱目發明』 등 3종의 역사서 『合綱』까지 160냥 어치의 책을 차례로 판매했다. 한편 유만주는 책값을 융통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였고, 조씨는 요청받은 도서목록집이나 중국본 역사서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의 거래가 갈등을 보인 1784년 11월 이래 유만주는 도서목록집 『浙江書目』을 소유한 '書客'과의 교유를 시작하며 호혜적 교환의 방식으로 원하는 책을 빌려 보기 시작했다. 이 서객은 『輸廫故人錄』과 『三朝要典』 寫本, 그리고 閔聖徽의 장서인이 압인된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추후 『흠영』에서 '凜'으로 불리게 되는 교유인물 閔景涑이 확실하다.
유만주와 민경속 사이의 교유가 본격화되며, 유만주와 책주릅 조씨의 거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유만주는 1784년 12월 22일에 『西遊記』를 구매하고 『합강』의 잔금을 지불했으며, 1785년 2월 3일에 『汪南溟集』 등 1냥 어치의 책을 구입했다. 그가 조씨에게 마지막으로 산 책은 『松雪學士全集』인데 이때 그는 돈 대신 해주 먹 20개를 지불했다. 조씨는 1785년 7월 18일에 유만주의 명동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고, 유만주는 이틀 후인 7월 20일에 도로 창동으로 집을 옮겼는데 이 이주는 유만주 가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닥쳤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책주릅 조씨는 물질적 형편이 나빠진 유만주를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This thesis tried to investigate the problem of the materiality of books in Joseon in the 18th century by analyzing the transactions between Yu Man-ju兪晩柱, a passionate reader in Seoul, and Mr. Jo曺氏, a book salesman, recorded in Yu Man-ju' diary Heumyeong 『欽英』.
During the period from April 1784 to July 1785, Yu Man-ju purchased several kinds of expensive books. At that time, Mr. Jo, whom he mainly dealt with were the same person as the Immortal Jo曺神仙, witnessed by his contemporaries such as Jo Su-sam趙秀三 and Jeong Yak-yong丁若鏞. On April 23, 1784, Jo visited Yu's house for the first time and was commissioned for four books including Paemununbu 『珮文韻府』. Also, after Yu Man-ju moved to a luxury house in August 1784, Jo continued to visit Yu and sell 160 nyang worth of books, including the books he was commissioned for and the books in the series. It was not easy for Yu to pay for the books, so he paid for some books in installments. And Jo had difficulties in obtaining a separately commissioned catalog of Chinese books or Chinese history books. Since November 1784, when the two men's dealings were in conflict, Yu Man-ju met an anonymous book collector called 'seogaek'書客 who owned a catalog of Chinese books and started borrowing books in a reciprocal way. The anonymous book collector is presumed to be Min Kyeong-sok閔景涑, as he possesses the legacy of Min Seong-hwi閔聖徽, a legendary collector of Joseon. The relationship between Yu and Min started in earnest, and the frequency of transactions between Yu and Jo significantly decreased. The last time Yu bought Jo a book, he paid 20 sticks of ink instead of money. Jo last visited Yu's luxury home on July 18, 1785, and Yu moved to a cheaper house on July 20, two days later. The move means that Yu is facing a difficult time economically. And Jo no longer came to visit Yu, who was in a bad economic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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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세기 연행록에 나타난 아편, 아편전쟁

저자 : 임영길 ( Yim¸ Young-gil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7-10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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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은 본래 설사와 복통의 치료제로 알려졌으나 그 환각 작용과 중독성으로 인해 기호품으로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조선에서 아편이라는 물질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병증을 치료하는 약재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 상품으로서의 아편은 유통된 적이 없었으며, 그에 대한 지식도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조선의 연행 사절단이 아편으로 인해 내우외환을 겪는 중국의 상황을 접하게 되면서 아편의 유래, 아편 흡연도구와 방식, 아편의 효용과 중독에 따른 폐해, 아편전쟁의 경위와 내막 등에 관한 정보들을 입수하기 시작하였다. 1848년에는 역관 박희영이 아편 흡연 도구를 국내로 들여오다 적발되는가 하면, 이 일을 계기로 조정에서 아편연에 대한 금령을 내렸으나 결국 조선 내부에도 아편이 침투하여 심각한 위해 물질로 자리하게 된다.
아편(연)에 관한 기록은 19세기에 저술된 시화나 필기 등 일부 자료에 산재해 있는데, 특히 연행록에서 조선 사절단이 중국 현지에서 직접 견문한 아편 중독의 실태, 당보나 전언 등을 통해 입수한 영국과의 분쟁 상황, 아편 정책을 둘러싼 만주족과 한족 관원의 정치적 대립 등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포착하고 있어 주목된다. 李圭景의 鴉片煙辨證說 에는 1820년대부터 연행을 통해 수집된 아편 관련 정보들이 조선 사회에 공유된 정황이 드러나 있다. 또한 尹程의 『西行錄』(1844), 權時亨의 『石湍燕記』(1850)에 수록된 한족 지식인들과의 필담에는 아편의 해독성 및 조선에의 유입을 경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영국의 강한 군사력, 청 관료 사회의 부패, 은 유출로 인한 재정 고갈, 아편 금지책의 혼선 등의 내밀한 사정까지 생생하게 보고되어 있다. 아편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관심이 서양 세력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으로 전환된 배경에 연행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Opium was originally known as a remedy for diarrhea and abdominal pain, but its hallucinogenic and addictive properties have spread it around the world as an item of personal preference. Until the 19th century in Joseon, the substance called opium was only recognized as a medicine to treat diseases, and opium as a commodity had never been circulated and it is understood that they did not have any knowledge about it. However, after the 19th century, the Joseon delegation came into contact with the situation of China that suffers internal and external troubles by opium, then they started to obtain information on the origin of opium, tools and methods of smoking opium, the effects of opium and the effects of addiction, and the history of the opium war. In 1848, station officer Park Hee-young was caught bringing in opium smoking tools and the court imposed a ban on opium smoking, however, eventually, opium penetrated into Joseon and became a serious hazardous substance.
Records about opium are scattered in some materials such as poems and writings written in the 19th century. In particular, it is noteworthy because Yeonhaengnok actively captures the realities of the opium addiction, the conflict with the UK obtained through Tang-Bao(塘報) or messages, and the conflict and the political confrontation between Manchu and Han Chinese officials over opium policy which were experienced in China by Joseon delegation. In ApyeonyeonByeonJeungseol of I Gyu-gyeong, the situation in which opiumrelated information collected from the 1820s was shared in Joseon society is revealed. In addition, the handwritten conversations with Han Chinese intellectuals published in Yun Jeong's Seohaengnok(1844) and Gwon Si-Hyeong's Seokdan Yeongi(1850) do not stop at the level of being wary of opium's hazard and influx into Joseon, vividly reports the confidential circumstances such as the UK's strong military power, corruption in the Qing bureaucracy, financial exhaustion due to silver leakage, and confusion of opium bans. It can be seen that Yeonhaeng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background in which Joseon intellectuals' curiosity about opium developed into a crisis awareness that they had to prepare for threats from Western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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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문고전문헌의 기계번역 평가방안 탐색

저자 : 정성훈 ( Jung¸ Sunghoon ) , 하지영 ( Ha¸ Jiyoung ) , 김우정 ( Kim¸ Wooje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55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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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계번역을 이용한 한문고전 번역물의 품질평가 방법을 살펴보고, 품질평가의 객관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번역품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고립어인 한문 고전문언문은 문체가 다양하고 문법상의 변화도 복잡하다. 또한 기계번역은 평가기준·평가목적·평가비용·텍스트의 종류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하므로 신뢰성이 높고 간편한 번역 품질 평가모델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자동평가는 기계번역의 어떤 요소가 번역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점수가 가장 높은 기계번역 모델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기계번역 품질에 대한 타당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평가기준도 평가모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대량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수동평가가 필요한데, 평가자 각각의 경험이나 수준이 존재하고, 평가기준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으며, 평가 환경이나 차수에 따른 차이 등 주관에 치우칠 우려도 불식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동평가와 수동평가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기계번역기의 성격과 목적에 맞는 평가방법을 찾아 적용하되, 기계번역 모델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하여야 하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평가방법이 기계번역 모델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several methods of translation quality evaluation on the classical chinese using machine translation, and suggest some ways to increase the objectivity of quality evaluation and improve the quality of translation. The classical chinese, an isolated language, have diverse styles and complicated grammatical changes. In addition, it is not easy to develop a reliable and easy translation quality evaluation model because machine translation should also consider evaluation standards, evaluation purposes, evaluation costs, and types of text. Automatic evaluation does not know which elements of machine translation affect translation quality, and although it can show the highest scoring machine translation model, it does not guarantee validity for machine translation quality. In addition, evaluation criteria may vary depending on the evaluation model and may require a large amount of data. To compensate for this problem, manual evaluation is required, which may have different results depending on the experience or level of the appraiser, understanding of the criteria, and the environment or number of evaluations. Therefore, considering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automatic and manual evaluation, an evaluation method suitable for the purpose of the machine translator shall be found and applied, but a measure shall be developed to objectively evaluate the performance of the machine translation model. And ultimately, these evaluation methods should help identify and improve the problems of the machine translation 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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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데이터 정제의 관점에서 본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 검토

저자 : 최지연 ( Choi¸ Ji Yeon ) , 조성덕 ( Cho¸ Sung Duk ) , 최동빈 ( Choi¸ Dong B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9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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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단순한 데이터베이스의 서비스보다 DB의 재가공 또는 DB 융합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 서비스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본고는 데이터 정제의 관점에서 현재 구축된 한국 고전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한국고전종합 DB의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를 검토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삼국 시대부터 대한제국 말기까지 저작된 한국의 문집 중에서 주요 문집을 선정하고, 표점·영인하여 간행한 것으로, 한국고전번역원은 지난 1999년부터 2021년까지 전체 1,259종 500책에 대한 DB 구축 사업을 진행하였다. 본 연구진은 한국문집총간 DB를 기초데이터로 사용하는 과제를 진행하면서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를 검토하였다. 데이터 정제에 영향을 주는 장애요인을 '페이지 번호 불일치', '데이터 추가', '데이터 누락', '원문 이미지와 XML 한자의 불일치'의 네가지로 나누고 그 원인을 고찰해 보았다. 본고에서 살펴본 한국문집총간 XML에 대한 논의가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From the perspective of data reprocessing, this paper intends to review the XML document of the Korean Anthologies Collection Database among the oriental classic databases currently constructed. 'Korean Anthologies Collection' is a book published by the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to the end of Joseon Dynasty by selecting and imprinting major collections of Korean literature. From 1999 to 2021, the establishment of a database (DB) for a total of 500 books of 1,259 species was completed. The researchers divided the types of errors found in the process of reprocessing and using the DB between Korean literature as basic research data into four categories: page number mismatch, data addition, data omission, and, mismatched XML Chinese characters.
As information technology is advanced, various types of information service methods such as reprocessing DB or DB convergence service are required rather than simple database services. We hoped that the discussion on XML between the Korean Anthologies Collection examined in this paper will help build reliable research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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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디지털화된 이종 언어자원의 연계와 인문학 연구의 확장성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과 KorLex의 연동 가능성 검토를 통해 -

저자 : 윤애선 ( Yoon Aes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5-24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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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이종언어자원인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이하, 『통합』)과 한국어 어휘 의미망인KorLex 의 연동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상이한 동기와 배경에서 개발된 두 언어자원은 양립하기 어려운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구조를 갖고 있다. 2절과 3절에서는 각각 KorLex 와 『통합』의 특성을 살펴보고, 4절에서는 두 이종 언어자원 간 연계 가능한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또한 현 단계에서 극복해야 할 한계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향후 한국어 사전연구의 활성화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두 언어자원의 유일한 연계점은 한자로 된 표제어휘인데, 접점의 그물코가 매우 크고 성글기 때문에 현 상태의 그물로 당장 거둬 올릴 수 있는 유용한 결과는 크지 않다. 하지만, 두 언어자원에 연계점을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과 『통합』의 연동성은 좀 더 가시적이고, 기존 한국어 사전의 보완 또는 편찬 방향에 시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통합』의 풍부한 정보를 이용하면, 한국어 사전에서 아직 결여된 부분인 어휘의 역사문화정보를 상당히 보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편찬될 사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디지털화된 다양한 한국어 관련 사전이 동참한다면 좀 더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aims at examining the interoperability of two heterogeneous language resources - Unified Great Chinese-Korean Dictionary (hereafter, UGCK), and KorLex, Korean WordNet. Initiated with completely different motives and backgrounds, these two language resources show their own macro and micro structures which are hard to be compatible, at a glance. In Sections 2 and 3, we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KorLex and UGCK, respectively. Section 4 investigates the possible linking elements between UGCK and KorLex. The limitations and the problems to overcome at the present stage are analyzed in detail. Finally, directions to revitalize future Korean lexicographic research are discussed.
The only linking elements between UGCK and KorLex are the headword in Chinese characters. Since the mesh of their links is very large and sparse, the useful results can be hardly obtained at this moment. However, the advantage of interlinking UGCK and Standard Korean Dictionary (hereafter, STD) which provides the headword in Chinese to KorLex, is more visible: existing Korean dictionaries including STD could be significantly enriched. For example, the rich lexical and cultural information of UGCK can provide STD with the historical and semantic changes of a lexicon, which still lacks in Korean dictionaries. The interlinked language resources can suggest a new direction for the dictionary to be compiled in the future. If various digitalized Korean dictionaries participate in this new attempt, a more prosperous harvest will be obt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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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李奎報 詔令類 散文 硏究

저자 : 김중섭 ( Kim¸ Jungseop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5-27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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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李奎報의 詔令類 散文에 내재되어 있는 글쓰기 방식을 살피고 의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규보가 작성한 조령류 산문에는 敎書, 批答, 制誥 등이 있다. 당시 관각문의 대다수를 변려문체로 지었기 때문에 이규보의 조령류 산문 역시 변려문체로 이루어진 것이 상당수이다. 하지만 이규보는 前代와 當代의 문풍에 대한 반발심과 문풍을 개혁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므로, 모든 유형을 변려문체만 활용하여 지은 것은 아니다. 그의 조령류 산문에는 변려문체와 산문체가 공존하며 변려문체와 산문체가 혼재되어 있는 형식도 있다.
이규보는 다양한 전고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장중한 풍격을 이루었고, 옛 문인이 사용한 구절을 알맞게 변용하였으며, 전고를 적게 써가며 자신만의 용어를 고안해내기도 하였다. 또한 자신의 뜻을 절실히 전달하기 위하여 문체에 변화를 주는 등 의도적인 글쓰기를 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이규보의 조령류 산문에도 그가 사적으로 지은 문장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문학적 성취와 글쓰기 방식, 그리고 좋은 문장을 짓기 위한 고뇌가 담겨 있음을 방증한다. 이규보와 그의 문학에 대하여 보다 입체적인 파악을 하기 위해서 조령류 산문을 비롯한 관각문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writing styles of Lee Gyu-bo(李奎報)'s Joryeong-ryu(詔令類) prose and to clarify its significance.
There are Gyo-seo(敎書), Bi-dap(批答), Jae-go(制誥), etc in Lee Gyu-bo's Joryeong-ryu prose. As most of Gwangak-mun(館閣文) at the time were written in Pianliwen(騈儷文), Lee also wrote many of his Joryeong-ryu prose in Pianliwen. However, he had resistance against previous and contemporary literature culture and tried to reform the culture. Therefore a part of his Joryeong-ryu prose is written in Pianliwen style, another part in prose style, with some prose in Pianliwen and prose style mixed.
Lee skillfully utilized various authentic precedent to create solemnity. Also he appropriately rephrased the lines of previous writers, and he devised his own term rather than using a lot of authentic precedent. In addition, he intentionally made changes such as shift of writing style to deliver his idea more closely.
These characteristics prove that Lee Gyu-bo's Joryeong-ryu prose contains a certain literary achievements, writing style, and personal agony for better lines just as his private literature works. This is why, in order to gain a more complex understanding of Lee Gyu-bo and his literature, more interest active approach to his Gwangak-mun such as Joryeong-ryu prose is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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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식민지시기 경향(京鄕)한학자들의 교유 - 변영만, 조긍섭과 정인보, 하겸진의 교유를 중심으로

저자 : 김진균 ( Kim Jin-ky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5-29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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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식민지시기에 전근대 학술을 표방하는 한학자들은 상심과 소외감을 품고, 상심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아 결속을 강화하였다. 구시대에 귀속되는 한학을 표방하며 도학과 문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상심의 원인이 크게 다르지 않았겠으나, 한학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 전망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씩 결이 달랐다. 그것은 한학을 표방하면서도 어느 방향으로 변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며, 그 사람의 성향 혹은 체질과 관련될 것이다. 상심을 공유하며 넓은 의미의 교유의 자장에 함께 묶인 사람들도 이 전망의 결에 따라 친분의 농담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조긍섭이 특히 변영만과 각별한 교유를 갖게 되고, 정인보가 하겸진과 더욱 긴밀한 교유를 하게 된 것은 상대방에게 전망의 공유 영역을 더 많이 발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망 공유 가능성을 보고 적극적으로 교유를 청하는 것도 각각의 주목할 만한 점이지만, 영남권에서 활동하던 같은 세대의 거유들과 서울의 문화계에서 활동하던 한 세대 아래의 명망가들이 쌍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During the modern colonial period, scholars advocating pre-modern studies were heartbroken and alienated, and strengthened solidarity by finding people to share their heartbreak. The cause of heartbreak would not have been very different in that it pursued moral and literature while advocating Chinese classical studies, but the decision was slightly different in terms of how to set up future prospects. It is a question of which direction to change while advocating Chinese classical studies, and it will be related to the person's disposition or constitution. People who share their heartbreak and are tied together by the magnetic field of friendship in a broad sense are bound to change their friendship jokes depending on the resolution of this prospect. Cho Geung-seop, in particular, had a special relationship with Byeon Young-man, and Jung In-bo had a closer relationship with Ha Gyeom-jin because he discovered more areas of sharing the outlook to the other party. It is also noteworthy to see the possibility of sharing the outlook and actively asking for friendship, but it is also noteworthy that the same generation of giants working in the Yeong-nam region and a generation of celebrities working in Seoul's cultural world are pa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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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三國遺事』 「古朝鮮 條」 기록에서 '古'의 의미와 그 시간적 범위

저자 : 李鏡淑 ( Lee¸ Keoungsuk ) , 文致雄 ( Moon¸ Chiu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1-3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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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古의 시간사적 의미인 昔과 古代에 대한 논의이며, 특히 『三國遺事』「古朝鮮條」에서 古朝鮮이라 칭한 그 古의 의미와 시기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정리에 중점을 두었다. 연구의 방법은 우선 고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주요 문헌의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古의 시기와 그 구체적인 시대를 세분화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三國遺事』「古朝鮮條」에서 해당 시기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 古의 시대와 비교하고 구분, 정리하였다.
「古朝鮮條」에서 『古記』를 인용하여 기록한 “昔有桓國”에서 桓國이 있었던 昔의 시대는 上古에 해당함을 보였다.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당시의 관직명인 “風伯, 雨師, 雲師”에 대해 『山海經』, 『史記』등을 포함한 고대를 기록한 문헌 분석 결과 그 시기가 上古시대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문헌 분석을 통해 나타나는 古에 대한 시간적 구분은 上古, 中古, 近古(後古, 下古)의 세 구간으로 나누고 있는데, 上古와 中古사이에 治水라고 하는 막대한 사건과 이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대를 古의 중심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본 연구에서는 이를 구분하여 本古로 하였다. 『玉篇』에 보면, 古는 “久也, 始也”라 하여 오래전 처음 시작하던 때라 한 내용이 보이는데, 本古를 본격적인 古의 시작으로 보고, 이보다 앞선 시대의 上古를 昔으로 하였다. 이렇게, 昔이라고도 하는 上古와 中古사이의 本古시대를 따로 분류하여 시대 구분의 한 기간으로 삼아, 단군조선을 건국한 시기를 本古로 하였다. 이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伏羲神農, 蚩尤'로 대표되는 시기는 昔인 上古시대로, 堯舜時代를 비롯한 虞夏, 殷과 고조선 건국 시기는 上古와 구분하여 本古의 시기로 분리하였다. 『三國遺事』의 “與高同時”가 의미하는 시대는 바로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바로 堯舜시대와 같은 古의 시대인 本古라고 구분할 수 있다.
中古는 보통 周文王시대로, 『三國遺事』「古朝鮮條」의 “周虎王卽位己卯(周나라 虎王이 즉위한 己卯년)”에 보이는 시기를 말한다. 近古에 해당하는 기록은, “壇君乃移於藏唐京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壽一千九百八歲。(단군이 藏唐京으로 옮겨 살다가 후에 살 곳을 아사달의 산에 만든 때는 단군이 命을 할 때부터 1908년이 된다)”의 내용 중에서 “壽一千九百八歲”이라고 한 것을 근거로 나라를 건립하고 1908년이 지난 시점은 단군 조선이 건국된 B.C. 2333년으로부터 1908년이 지난 시기인 B.C. 425년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C. 425년은 공자가 사망한 B.C. 475년 보다 50년 後의 시대로, 이 의미는 이때까지도 왕검 조선이 존속하였음을 의미한다.


In this study, we discuss the old (古) means as the pre-ancient (上古) and ancient era (古代) based on temporal meanings, which is the important historical meanings in order to understand ancient era. The study approach, firstly, subdivided the ancient era and its specific period through a comprehensive analysis of major literature containing ancient contents. Based on the contents of this ancient temporal classification, the periods appearing in the records of the Samgukyusa(三國遺事) were compared with major literature, and classified into four periods such as Pre-ancient, Primary ancient, Middle ancient, and Late ancient periods.
The Phrase 昔有桓國 expressed in Gojoseon article of Samgukyusa, which means Hwan dynasty (桓國) existed in Pre-ancient era. We can also found the official titles related to this era including Hwanung (桓雄), Usa (雨師), Unsa (雲師) and Pungbaek (風伯) in Samgukyusa. The era of Dangun Wanggeom, Yao and Shun (堯舜), Yu Xin (虞夏), and Yin (殷) separated from Pre-ancient and there era can be classified into Primary ancient era. There is a record in the Samgukyusa that Dangun Wanggeom founded the country called Joseon, and that there were Yao as a person at that time. The primary ancient is the beginning of ancient and the early of ancient era.
The Middle ancient is generally classified by the time of beginning the king Wen (文王) reign of Zhou dynasty about BC 1122. This time is referred to the during the reign of King Ho (虎) of Zhou dynasty (周虎王卽位己卯) described in Samgukyusa. The record corresponding to the Late ancient is the 1908 years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country based on the BC 2333 in the contents of 壇君 ... 壽一千九百八歲. Therefore It's time can be seen that BC 425 years. It is 1908 years after establishment of Dangun Joseon at BC 2333 is BC 425. This time is 50 years later than BC 475 when Confucius died. This means that there were still royal Dangun Joseon during thi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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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촌(象村) 신흠(申欽)의 풍체(風體)에 관한 고찰

저자 : 尹錫花 ( Yoon Sukhwa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4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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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은 穆陵盛世에 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風體 16편을 남겼다. '풍체'란 四言古詩의 시경체를 말한다.
그의 풍체에는 백성을 권면하는 시와 풍자의 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그의 생애와 관련된 것으로 평탄한 관료생활 기간에는 백성을 교화하는 일환으로 권면의 시를 읊었고, 광해조의 계축옥사 이후에는 사회풍자의 시가 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권면의 시에는 농업의 권장과 교육의 지표를 내세웠고, 풍자의 시에는 자신의 억울함과 사회의 모순, 즉 소인배의 횡행을 지적하고 있다.
상촌의 풍체에 있어 특징은 개인의 성정을 읊은 國風의 성격이라기보다는 백성을 상대로 한, 조정관료로서의 신분에서 읊은 雅의 문체를 구가하였다. 이는 관료의 입장에서 조정의 정책 및 교화라는 公的인 시가를 읊은 때문이다. 이러한 시풍은 멀리 陽村 權近이 조선조 창업제왕을 찬양한 시경의 大雅의 문체를 계승하여, 아래로 茶山 丁若鏞 등의 사회풍자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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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팔선루집(八仙樓集)』, 기생의 사랑과 이별

저자 : 박영민 ( Park Young-m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3-7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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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仙樓集』은 2018년 11월 25일 KBS1에서 방송된 제1149회 「TV쇼 진품명품」을 통해 처음 일반에 공개된 필사본 유일본이다. 본고는 『八仙樓集』(개인소장본)을 통해 기생의 사랑과 이별의 형태를 보다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그래서 기생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에게 사랑과 이별은 무엇이었을까를 살펴보았다. 기생은 박학, 시재, 덕 등의 덕목을 기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근거로 보았고, 이 가치를 가지고 자신의 가치에 상응하는 짝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생이 자신의 가치를 키우고 그 가치에 상응하는 상대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그가 누구를 만나 사랑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사랑을 이룬 기생들은 주변의 축하를 받았고 아직 사랑을 이루지 못한 기생들은 은근한 재촉을 받았다. 그런데 소운과 미양공자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을 풍류공간으로 명명하는 것을 통해 볼 때, 기생이 꿈꾸는 百年之約은 단 한 번의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생과 남성의 만남은 혼인과 풍류 그 사이의 지점에 자리하고 있고, 혼인과 풍류 사이에 자리잡은 기생의 百年之約은 불변하는 사랑, 영원한 지속과는 거리가 있는 관계이다. 이 점이 사랑의 주체인 기생들이 빈번하게 혼인과 관련된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신분의 여성들과는 다른 함의를 부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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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시대 임종 장례 일기 연구

저자 : 박동욱 ( Pak Dong-uk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3-10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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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장례 일기는 임종과 장례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죽은 사람을 대신해 그의 가장 측근 중 한 사람이 기록한다. 일기는 날짜별로 기록된 자신의 일상이니 당연히 작성자 또한 본인이 되지만, 임종 장례 일기의 경우는 타인을 대상으로 한 기록이다.
통상 임종 장례일기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임종의 순간이나 장례의 과정을 다룬다. 일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1달 안팎의 짧은 기간을 다루고 있다. 지금 흔히 쓰는 考終日記란 용어는 임종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용어로는 임종 장례 일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임종 일기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죽음을 맞는 모습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생 동안 했던 공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증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일상의 생활을 단절하지 않고 육신이 한계치에 이를 때까지 지속했으며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정중했다. 이 모든 것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바탕이 되었다. 제자들에 대한 강론을 지속하고 문병객들을 상대했다.
병세가 위중해지면 더 이상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집중하지 않았다. 본인의 몸에서 보내오는 죽음의 증후를 인정하며 의원을 청하거나 약을 먹지 않고, 음식 섭취를 줄여나갔다. 몹시 위중해지면 남에게 배변을 위한 도움을 받거나 노출이 불가피할 때도 극도로 조심했다. 생애 마지막 순간에 임박하며 정침으로 자리를 옮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타인의 죽음을 보는 것도 내 삶을 점검하는데 필요한 공부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죽음에서 지금까지 살아 왔던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의 의미를 재조정하는 시간이 된다. 그들이 갔던 길이 곧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임종 장례 일기는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웰다잉의 의미를 재고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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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임재당(任再堂)의 『갑진일록(甲辰日錄)』에 나타난 죽음과 애도

저자 : 鄭雨峰 ( Chung Woob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3-13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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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任再堂(1686-1726)이 아내의 죽음 이후의 삶을 기록한 일기인 『甲辰日錄』을 중심으로 조선후기에 이르러 나타난 일기문학 및 悼亡文學의 새로운 경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갑진일록』에 나타난 애도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일기 장르의 선택 및 작품 구조, 작품상의 중요한 특징적 면모를 구명하였다.
임재당의 『갑진일록』은 지금까지 알려진 전근대시기 일기 자료 가운데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갑진일록』은 홀로 남겨진 작자가 아내의 죽음 이후로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소상하게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문이나 행장, 묘지명 등을 통해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기라는 장르를 통해 홀로 남겨진 자의 애도의 글쓰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일기문학으로서의 특별한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특정 장르를 활용하여 창작된 기왕의 도망문학과 달리 『갑진일록』은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 보낸 이후 홀로 남겨진 작자의 달라진 생활과 변화된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내해야 했던 내면의 감정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매우 구체적이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만 2년에 걸쳐 지속된 시간 속에서 작자가 견뎌내야 했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리움의 감정이 일상의 나날 속에서 끊임없이 환기되고 있다는 점이 도망문학으로서의 『갑진일록』이 지닌 특징적인 면모이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悼亡詩文의 창작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의 하나는 悼亡錄의 편찬이다. 悼亡錄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 단행본 저술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제문, 묘지명, 행장 등의 단일 장르를 이용한 창작에서 벗어나 단행본 형태의 悼亡錄이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 18세기 이후 주목할 만한 변화의 하나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문을 통해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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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원용(鄭元容)의 기록정신과 저술(著述)

저자 : 권은지 ( Kwon Eun-ji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3-15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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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세기 관료 문인이자 지식인이었던 經山 鄭元容(1783-1873)의 기록정신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원용의 저술을 제시하고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기존연구에서 정원용의 기록정신에 대해 많이 언급하였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울러 정원용이 남긴 저술의 전체 규모와 현황에 관한 연구는 미흡한 편이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정원용의 기록정신의 배경과 저술의 전체 현황을 고찰하였다.
먼저 2장에서 정원용의 기록정신의 배경을 가학, 관료로서의 경험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정원용은 서울에 대대로 세거한 동래 정씨의 박학과 문헌학에 기초한 학풍과 아버지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기록을 중시하며 다양한 문헌을 접하였다. 또한, 그는 70여 년간 벼슬을 하며 국가에서 주도하는 다양한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고, 헌종 즉위 이후 여러 차례 삼정승을 지내며 조정의 중심에서 국정을 이끌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철종 즉위 이후 국정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국가의 전장, 제도와 관련된 저술을 편찬하였다.
3장에서 정원용의 저술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정원용의 현전 저술은 모두 21종으로 이들을 표를 통해 시기별로 제시하고, 소장 현황을 밝혔다. 그리고 이 가운데 기존의 해제나 설명에 오류가 있었던 『經山北征錄』, 『黃閣章奏』를 검토하여 이를 다시 규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원용의 저술을 관료로서의 자의식을 중심에 두고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느냐에 따라 ①관료로서의 삶을 기록한 저술 ②실제 정무 과정 및 관련 문서를 모은 저술 ③실무 관련 典章ㆍ制度를 상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한 저술 ④복합적 성격의 저술로 분류하고 간략히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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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갑오·을미년 한 지방관의 소신과 기록 -수당 이남규의 영흥 부사 시절-

저자 : 서성준 ( Seo Sung J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9-19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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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우리의 지난 역사를 거울로 삼고자, 구한말 국권 침탈기 갑오년(1894), 을미년(1895)에 영흥 부사를 지냈던 修堂 李南珪(1855~1907)의 행적과 소신에 초점을 맞추었다. 수당의 영흥 부사 시절의 기록인 『갑오일기』와 『을미일기』, 관련된 50여 편의 시문을 자료로 하여 영흥 부임 경위부터 사퇴까지의 15개월여를 살펴 시대상, 수당의 행적과 사상, 내면과 정서, 지향과 소신, 사퇴 경위, 유교 지식인으로서의 현실 대응을 고찰하였다.
수당의 영흥 부사로서의 행적과 소신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民生 수습과 광산 철폐령'. 수당은 각종 사건과 재난시 民生 구호 및 수습에 진력하였고 임소에 도착하기 전 광산 철폐령을 감행하는 등, 영흥 지역 백성들에게 福星이 되고反風之政을 펼치고자 노력하였다.
둘째, '豐沛之鄕과 尙武之地의 전통'. 수당은 조선 왕조의 발상지이자 關防 요충지인 영흥에서 역사적 전통과 지역적 특성을 유지하고 계승하려 노력하였다.
셋째, '儒風 진작과 文敎 장려'. 수당은 關北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시각과 인식을 교정하여 이곳에 기대를 걸었다, 곧 관북의 儒風을 진작하고 文敎를 장려하여 학문의 힘으로 당대 현실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넷째, '廢后 勅命 반대와 自劾'. 수당은 乙未事變 때 복수설치를 주장했으며, 폐후 칙명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소신이 용납되지 않자 스스로를 탄핵하여 벼슬을 던지고 낙향하였다. 수당은 갑오년과 을미년의 혼란 속에서 유교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소임을 다했으며 그 배운 바를 소신껏 실천하였다. 그의 의리 정신, 자주적인 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감당하고자 했던 삶의 자세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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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관저(關雎)』의 수용 양상과 주요 논의에 관하여 -조선시대 문집과 실록을 중심으로-

저자 : 이상봉 ( Lee Sang B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9-22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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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은 유학의 대표적인 경전이기에 주자는 『시경집전』을 남겼고, 주자의 학설에 경도된 대부분의 조선 문인들은 「관저」를 '후비의 덕'이나 '왕실의 교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관저」를 단순한 사랑의 노래나 축혼가로 보는 견해도 많기 때문에 이런 논리가 성립되기 어렵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개별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은 달라지기 마련이어서, 고려말과 조선시대에는 「관저」의 내용을 '후비의 덕'이나 '왕실의 교화'로 인식하면서 敎命文·表文·箋文·상소문 등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또한 임금과 대신들이 함께한 자리에서도 「관저」의 내용을 비유로 삼아 대화를 나눌 정도로 「관저」는 조선의 왕실과 고위층 사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저」에 대한 조선문인들의 논의 중 두드러진 것은 공자가 말한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의 해석문제와 「관저」의 화자가 누구인지의 문제였다. 이익은 '樂而不淫'을 방안에서 연주하는 琴瑟을 이용해서 성욕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절제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았고, 정약용은 '荇菜流芼'가 제사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哀而不傷'은 바로 이 점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이익의 경우 '琴瑟友之'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樂而不淫'을 '음악'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한것 같다. '琴瑟'이 '음악'이 아니라 '음률의 조화로움'으로 '부부의 화목함'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樂而不淫'은 지나치지 않고 '절제된 사랑의 표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것 같다. '哀而不傷'에 대한 정약용과 이삼환의 논쟁에서는 '荇菜流芼'가 제사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 정약용의 주장이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삼환의 말처럼 「관저」를 가지고 주남 전체, 또는 『시경』 전편을 지칭한다면, 「관저」만을 가리키고 싶을 때는 어떤 표현을 써야 되는지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관저」의 화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문인과 왕들이 궁인을 지목했는데, 더러는 문왕을 지목하기도 했고, 안정복은 알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성록』의 기록에 따르면 영조의 경우 「관저」의 작자를 詩人(侍人)이라고 했는데, 작자를 밝혀낼 수 없는 상황에서 희박한 근거를 내세우며 작자를 단정하기 보다는 그냥 詩人(侍人)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판단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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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30년 『신편(新編)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요망건(要望件)에 대하여

저자 : 박영미 ( Park Youngmi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5-26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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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직후, 조선총독부는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을 발포하였고 이 교육령에 기반해 편찬된 것이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이다.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은 『稿本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과는 달리 조선어부와 한문부로 구분하고 1-3권까지 현토 하였다.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가 발간되면서 참고용 도서도 여러 종류가 간행되었다. 이 교재를 5-6년 정도 사용하다가 1930년, 경성부내 한문교원회가 중심이 되어 학무국에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동아일보』에 1930년 2월 28일부터 3월 9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을 연재하였다. 한문교원회는 현행 독본이 크게 배열 순서와 存拔에 관한 것, 착오 및 중출 등에 관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하며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내용을 선택하여야 하고, 학생들이 흥미를 잃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독본에는 문법 연습, 삽화를 넣을 것, 종이 질 및 장정도 고려할 것을 요구하였다. 교재의 내용도 문학적인 성취가 있는 것을 넣고, 쉬운 데서 어려운 데로 그리고 단문에서 장문으로 학습할 것을 희망하였다. 한문교원회는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의 오류를 별표로 제공되었는데 현토 오류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1930년 학무국은 이들의 요구와는 별도로 교과서 개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이 제출되면서 출판에 박차를 가하여 1933년부터 『中等敎育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1937년 조선어급한문과에서 한문과는 폐지되었고 조선어과로 개편이 되었다. 이후, 고등보통교육에서의 국어(일본어)급한문과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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