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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한국 종족집단의 연구사 개관(1930~2015) - 사회인류학적 연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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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족집단의 연구사 개관(1930~2015) - 사회인류학적 연구를 중심으로

Research History on Study of Korean Lineage Groups(1930~2015): A Socio-anthropological Probe

이창기 ( Lee Chang Kee )
  • : 한국사회사학회
  •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3월
  • : 333-371(39pages)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DOI

10.37743/SAH.125.9


목차

1. 서론
2. 일제 강점기의 한국 종족마을 연구(1930~1945)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종족집단 연구(1960~1979)
4.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종족집단 연구(1980~1999)
5. 2000년 이후의 종족집단 연구(2000~2015)
6. 맺는 말: 평가와 과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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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종법(宗法)이 널리 보급되고 부계혈연의식이 강화되면서 종족집단은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국 종족집단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1930년 이후에 나타난다. 이때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몇몇 한국인 학자들과 일본인 학자들이 종족마을을 조사해서 여러 편의 논문과 자료집을 발표하였다. 이때 발표된 연구들은 종족집단의 실태를 소개하는 조사보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광복 이후 1960년까지는 사회적·경제적 불안정으로 한국 종족집단에 관한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 종족집단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1960년 이후이며, 1970년대에 들어와서 연구자의 수가 증가하고 연구 주제도 점차 구체화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비해 연구자가 더욱 증가하고 연구의 주제가 더욱 다양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종족집단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종족집단의 체계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구의 시야를 확대하여 중국 및 일본의 종족집단을 조명하는 논문이 여러 편 발표되고 있다. 특히 종족집단을 주제로 한 석사학위 논문과 박사학위 논문이 대폭 증가하였다. 2000년 이후에도 종족집단 연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난 연구의 중요한 특징은 연구자들에 따라서 연구의 대상을 특정 지역이나 특정 주제에 집중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종족집단의 연구를 좀 더 구체화하고 심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족집단에 대한 젊은 학문 후속 세대의 관심이 낮아져서 석·박사 학위논문의 발표가 크게 줄어들었다. 앞으로 한국 종족집단을 연구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연구주제를 좀 더 세분해서 하위영역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꾸준히 축적할 필요가 있다. (2) 특정 지역, 특정 계층에 치우친 연구경향을 벗어나서 다양한 지역, 다양한 계층의 종족활동에 대한 연구 성과가 고르게 축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3) 연구의 시야를 넓혀서 종족집단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문화체계와 종족집단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4) 21세기에 한국 종족집단이 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 갈 것인지 탐색하는 것도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Since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the jong-beop or succession rule(宗法), heightened public patrilineal consciousness as an essential part of everyday life in Korea. Interest in lineage tracing became an academic interest from the 1930s. By 1945, both Japanese and Korean scholars had published articles and reports on lineage villages that were less academic as pilot studies.
However, it was not until 1960 that Korean lineage re-emerged as an academic topic due to the social and economic disturbance in Korea. Only since 1960 has it reappeared that Korean lineage group was paid attention from scholars with their new focus on its structure and function, which also led to and was built on by the expansion of researchers and their research areas in 1970s. Between the 1980s and 90s, lineage group studies grew in both range and topical contexts. These two decades saw a growing interest in the transition of lineage group situated in the process of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of South Korea, along with the advent of theoretical discussion on the systemic and structural approach to lineage group. A broader understanding of lineage group led to the publication of some articles focusing on that of China and Japan. The millennial turn represents a turn in research that includes more focused topics and specific regions, which further deepened the study of lineage groups. In recent years, younger research shows less interest in the study of Korean lineage groups.
The findings suggest the following: (1) advances in the area requires more detailed and sub-divided research topics and data accumulation; (2) accumulation requires more representation of lineage activities to supply a less biased focus; (3) more significant discussions and broadening of research on the social and cultural systems surrounding lineage groups is necessary; and (4) additional exploration of 21st-century challenges to lineage groups is crucial.

UCI(KEPA)

I410-ECN-0102-2021-300-000929118

간행물정보

  • : 사회과학분야  > 사회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5535
  • : 2733-8851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6-2022
  • : 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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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권0호(2022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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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구동태와 호정(戶政) ― 조선시대 호총(戶總)의 의미에 대한 재고찰

저자 : 박경숙 ( Park Keong-suk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3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82 (7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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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13년(1789년)에 발간된 <호구총수>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호구총수의 자료는 조선 시기의 인구동태를 추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활용되었다. 한편 2000년대 들어 다양한 지역에서 호적들이 발굴되고 전산화되면서 그동안의 호적 연구의 인식론적 가정들을 질문하는 논의들이 확대되었다. 호구총수의 근거가 되는 호적이 작성될 때 상당한 누락과 복잡한 편제가 작용하여, 호구총수의 추이를 그대로 인구동태의 추이로 가정하는 데 비판적인 논의가 제기되었다.
이 연구는 호구총이 인구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는지, 호구총에 어떻게 인구동태와 호정(戶政)이 배태되어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호총의 추이와 실질적 인구동태 사이의 관련성을 추론하기 위해 조선 시기 재해(역병)의 기록자료를 검색하여 호총과 재해기록의 추이 사이의 연관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전염병의 빈도 추이와 호총의 추이 사이에 상당히 흥미로운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16-18세기를 통해 심각한 재해가 지속되고, 특히 재해가 심각했던 시기 호총의 수치도 여느 식년에 비해 뚜렷하게 떨어지는 추세가 확인되었다. 한편 19세기에는 재해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데 호총의 수가 크게 감소하고 정체되어 그 맥락이 무엇인지 새로운 의문으로 제기되었다. 또한 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에서 재해상황, 호적, 부세, 신분, 가족제도와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여 호정(戶政)의 이념과 현실을 해석하였다. 자연호와 편제호의 논란의 쟁점이듯이, 호총이 실제의 호수나 인구동태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은 호총과 그 기록이 복잡한 사회관계를 배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한 관계성이 허구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호총에 작용하는 인구동태와 호적 등록율 그리고 호적 편제 양식의 영향을 세심하게 선별하면 맥락타당한 추정방법을 기대할 수 있다.


The Hogu Chongsu, published in the 13th year of King Jeongjo (1789), and total number of households recorded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have provided key data for estimating the population dynamics of the Joseon period. However, as ho (household) registers for various regions were discovered and computerized in the 2000s, scholars began to discuss the epistemological assumptions involved in ho register research. Significant omissions and a complicated editing process affected the creation of ho registers and, since these were the basis of recorded total number of households, questions were raised about whether the trends seen in those records could be treated as reliable indicators of population dynamics.
This study examines whether the ho registers and total number of households, both of which were produced in the complex context of ho-politics, can be used as population data. It also analyzes how population dynamics and ho-politics are embedded ho registers. In order to explor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igures for the total number of households recorded in ho registers and actual demographic dynamics, the relationship between registered total number of households and records of disasters (plagues) during the Joseon Dynasty were examined. A very interesting relationship between the frequency of infectious diseases and the figures for the total number of households was found. Serious disasters occurred throughout the 16th, 17th and 18th centuries, and the number of households declined during years of severe disaster. However, whilst the number of disasters recorded during the 19th century was relatively small, the number of households decreased significantly and stagnated over this period, raising the question of why, and in what context, this transpired. To address these questions the study explores how ho politics was strongly related to disaster governance and the politics of tax, social status, and family support. Ho politics sought to secure the ho as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state's system of military, agricultural and financial obligations. The concept of ho insisted that men and women form a family regardless of their social status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observing the three doctrines (samgang). These tenets were easily absorbed by the populace. They were internalized and put into practice through small, male-centered family living units that embodied the three doctrines (samgang) and acted as units of self-reliant survival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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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후기 근기남인 사족의 '가(家)' 이념에 대한 일고찰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정일균 ( Jeong¸ Il-gyu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3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3-139 (5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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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근기남인(近畿南人) 사족(士族)의 '가(家)' 이념의 요체를 당시 근기남인을 대표했던 정약용(丁若鏞)의 사례를 중심으로 일별해보았다. 즉, 그가 제시한바 ① '사족의 가' 개념의 이상형으로서 '유인(幽人)의 삶'을 전제하는 가운데, ② '사족의 가'론과 관련하여 '사족의 가'의 기본구성과 그 확대조직, ③ '사족의 가 윤리'론과 관련해서는 '사족의 제가(齊家) 덕목(德目)'론, '사족의 가례(家禮)'론 및 '사족의 입후(立後)'론의 주요내용과 그 내용적 특징, ④ '사족의 가계경영(家計經營)'론과 관련해서는 특히 '상업적 농업경영론'의 주요내용과 내용적 특징을 차례대로 정리·개관해보았다.
이처럼 정약용이 구상·제출했던 '사족의 가' 이념은 또한 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조선사회가 목하 경험하고 있었던 일련의 심대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정약용이 구상·제출한바 상기의 '사족의 가' 이념은, ① 특히 그가 '사족의 가계경영'론에서 그 대상으로 “작록(爵祿)의 계통(系統)을 잃은 사대부가(士大夫家)” 또는 “가난한 사족”을 반복적으로 언급한 데서 간취할 수 있듯이, 당시 당색(黨色)을 막론하고 몰락해가던 대다수 하층양반의 입장에서 꿈꿀 수 있었던 '거가사본(居家四本)[제가(齊家)·치가(治家)·기가(起家)·보가(保家)]'의 최대치이자, ② 같은 남인(南人)이면서도 영남남인(嶺南南人)의 경우에 비해 근기남인이 가지는 재지적 기반의 상대적 허약함에다 불행하게도 어느덧 '폐족(廢族)'으로 전락하고 만 자신의 가문의 중흥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이 아니었던가 한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cardinal points of 'family'(家) ideology among the nobility (Yangban) of the Southerners (Namin) in Gyeonggi (京畿) districts. It focuses on the case of Jeong Yak-Yong who was a typical example of noble members of the Southerners in Gyeonggi districts. The main contents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① The paper introduces Jeong Yak-Yong's idea that 'the life of a hermit' represents the ideal type of the nobility's concept of 'family'. ② In relation to Jeong Yak-Yong's theory of 'family of the nobility', the basic constituent elements of 'family of the nobility' and its enlarged organizations are examined. ③ In connection with Jeong Yak-Yong's theory of 'family ethics of the nobility', the main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theory of 'virtues for wise government of the nobility's family', that of 'family formalities of the nobility', and that of 'adoption of the nobility's heir' are considered. ④ Jeong Yak-Yong's theory of 'management of household economy of the nobility' is surveyed briefly, with special attention paid to the main points and characteristics of his theory of 'commercial management of agriculture'.
It is clear that the ideology of 'family of the nobility' which Jeong Yak-Yong mapped out and presented was a response to a series of enormous socio-economic changes which Joseon society experienced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18th century and the first half of 19th century. After all, Jeong Yak-Yong's ideology of 'family of the nobility' was probably ① the maximum to which the then lower-class nobility could dream of going forward, and ② a practical plan for the restoration of Jeong Yak-Yong's own family, which had fallen into 'a ruined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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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족보를 활용한 조선후기 인구현상의 이해 ― 전주이씨 『선원속보(璿源續譜)』를 중심으로

저자 : 백광열 ( Baek¸ Kwang Ryeol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3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1-17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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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주이씨 대동보인 『선원속보』를 활용하여 조선후기의 출산 관련 현상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이다. 지금까지 족보는 자료적 한계로 인해 인구학적 분석에 그다지 잘 이용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인구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자료중에 족보는 그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유용한 자료임이 틀림없다. 이 글에서는 족보가 가진 인구 자료로서의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출산 관련 지표를 도출하고 이를 분석하였다. 이 결과 조선후기 출산 현상과 관련하여 몇 가지 함의를 얻을 수 있었다. 합계출산율 개념을 활용하여, 한 여성이 평생동안 출산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시킬 것이 기대되는 자녀 수인 '합계생존율'을 구해보았다. 전주이씨 집단에 있어 '합계생존율' 값은 17세기 전반기까지 전란으로 인해 매우 낮은 상태이다가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걸쳐 상승하였다. 특히, 종래의 일반적인 관찰과는 다르게 19세기 전반기에 이 값이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이것은 이 시기 출산 및 인구동태에 관한 인식 재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비록 완전한 의미의 것은 아니지만, (기록상의) 초산연령 및 평균출산연령도 구해보았다. 이 값은 17세기까지 상승하다가 18세기에 정점에 도달하였다. 이 과정이 '합계생존율'의 상승과 병행했다. 18세기 이후에는 기록상 초산연령이 급격히 하강하고 '합계생존율'은 증가하였다. 이에 대해 유아사망율이나 출산율의 관련을 통한 해석을 시도해 보았다. 한편, 『선원속보』가 왕실 후손의 족보라는 것에서 오는 계층편의를 보완하기 위해 적파/서파를 구분하여 그 인구학적 영향을 살펴보았다. 이 결과 서파의 영향이 기록상의 출산아 수에 음의 방향으로 작용함을 관찰하였다. 추후, 다양한 변수들에 대한 분석과 다른 사회와의 비교를 가미한다면 인구 및 사회에 관한 보다 심화된 역사상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understand the birth dynamics in the late Joseon Dynasty by utilizing the Jeonju Yi clan's great companion genealogy, The Seonwon Sokbo (璿源續譜, 1900~1902). Until now, genealogy has not often been used for demographic analysis due to data limitations. However, of the available forms of data for understanding the population of the Joseon society, genealogy offers advantages in terms of size and quality. In this paper, in order to solve the limitations of genealogy as a form of population data, various methods were used to derive and analyze fertility-related indicators. The results have several implications for our understanding of birth Dynamic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dapting the concept of Total Fertility Rate (TFR), I calculated the Yi clan's 'total survival rate'. This is the number of children a woman is expected to give birth to and survive to adulthood. In the Jeonju Yi clan, the 'total survival rate' was very low until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due to war, but rose from the late 17th to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The total survival rate stayed at a very high level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a finding which differs from previous observations. This suggests we need to reconsider fertility and population-related phenomena during this period. Although the data was not complete, I also calculated the women's (recorded) average age at first birth and (recorded) mean age at birth. These values rose through the 17th century and peaked in the 18th century. This process coincided with an increase in the total survival rate. After the 18th century women's (recorded) average age at first birth dropped sharply while the total survival rate increased. In this regard, an interpretation was attempted through the relation between the infant mortality rate and the fertility rate. The Seonwon Sokbo has an inherent class bias because it is a genealogy of royal descendants, so, in order to compensate for this, the demographic effects for legitimate and illegitimate son were investigated individually. As a result, it was observed that illegitimacy had a negative effect on fertility. In the future, if we add analysis of various variables and comparison with other societies, we may be able to attain a more in-depth history of population and society during thi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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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병역 대체복무제도의 역사적 구성 ― '잉여자원' 관리와 발전에의 동원

저자 : 강인화 ( Kang¸ Inhwa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3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1-21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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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병역 대체복무제도가 형성되어온 역사·사회적 과정을 살펴본다. 병역제도의 운영은 국민개병 이념과 징병제 실행 사이의 불일치를 수반한다. 한국사회는 병역의무의 대상에게 현역 군복무를 '대체'하는 의무를 '병역'의 일종으로 요구하는 대체복무제도의 운영을 통해 이러한 불일치의 문제를 해결해왔다. 냉전시기 징병제는 안보와 발전의 중첩된 이해를 토대로 방위소집복무, 병역특례 등과 같은 대체복무를 병역제도 안으로 포섭하였다. 대체복무가 제도화되면서 군사활동을 담당하는 현역복무 이외에 이를 대체하는 다양한 방식의 활동이 '병역의무'로 개념화되었다. 민주화 이후 정부는 병역 대상자를 현역 군복무 이외의 분야에 동원하던 앞선 시기의 유제를 이용하여 '잉여' 병역자원의 경제·사회적 활용 정책을 펼쳤다. 이때 '공익분야에서의 복무'가 대체복무에 포함되었다. 이렇게 대체복무를 포괄하는 확대된 병역 개념에 기초하여 징병제 운영의 전면화와 병역의무의 보편화가 추구되어 왔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history and the social processes of the alternative service system in South Korea. The management of the military service system faces a discrepancy between the ideology of the citizen-soldier and the implementation of the conscription system. Korean society solved these discrepancies by implementing an alternative service system that offers alternatives to military service as a kind of “military duty.” During the Cold War, the draft system included alternative military services such as the homeland reserve service and military service exceptions based on the understanding that development and national security overlap. Various alternative forms of activities were conceptualized as “military service obligations” since the institutionalization of alternative services. After democratization, the government developed economic and social utilization policies for “surplus resources,” based on the legacy of the earlier mobilization of military service personnel to other areas. At that time, “serving in an area of public interest” was a form of military service. Based on the expanded concept of military service, which includes alternative services, the Korean government aimed to manage the universal conscriptio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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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성 노동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라 ― 1980년대 이후 중국 '부녀회가(婦女回家)' 담론의 전개와 굴절

저자 : 김란 ( Jin¸ La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3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7-25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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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 혁명과정에서 '노동'은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이 시기 국가 주도로 여성을 노동자로서 위로부터 아래로 주체화하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여성노동자 모범이나 노동자 모범가족 선정과 같은 작업을 통해 사회주의 '생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문화적 작업은 당시 국가 이데올로기가 지향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시장주의의 도입에 따른 고용유연화로 여성 노동력 감축의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부녀회가”라는 문화적 담론의 장이 열렸다. 본 연구는 개혁개방이 시작된 중국 8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와 쇠퇴과정을 반영하는 문화적 흐름을 십년 단위로 전개된 네 차례의 '부녀회가(여성회가)' 담론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시기별로 80년대 단계성취업론, 90년대 기업부담론, 사회발전 단계론, 2000년대 가사노동 찬양, 2010년대 생물학적 모성론 등 다양한 논변이 제기되었고, 그 와중에도 중국 전국부녀연합회의 반대는 끈질기게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서 여성지위의 하락과 쇠퇴의 과정은 단선적인 것이 아니라 많은 부침과 격론을 거치면서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이를 통해 볼 때, 사회주의 시기 여성-노동자로서의 주체화는 개혁개방 이후에도 여전히 강하게 작동했다.


In the early era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labor” was top of the government's agenda. During this period the state led a process of top-down subjectivation that intended to make women into workers. However, after China's reform and opening up, women's involvement in the labor market began to decline and a cultural discourse about “women-going-home” emerged. This study will describe different forms of the “women-going-home” discourse from the 1980s, 1990s, 2000s and 2010s. These reflect the process of change and decline in women's social status since the 1980s. Over this period a variety of debates and ideas arose that reinforced and interacted with the “women-going-home” discourse, including stage employment discourses in the 1980s, corporate burden discourses and the social development stage theory in the 1990s, the praise of domestic labor debates in the 2000s, and biological maternity discourses in the 2010s. Throughout this era the All-China Women's Federation mounted persistent opposition. The decline in women's status in China has not been linear, but instead developed in a complex manner through controversy and argument. From this perspective, the socialist era subjectivation of women laborers remained strong even after reform and opening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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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국 내몽골 자치구 '다원일체' 민족주의의 구축 ― 왕소군 이미지의 변모 양상과 소군박물원을 중심으로

저자 : 고페이 ( Gu¸ Fei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3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9-304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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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중국의 역사적 인물인 왕소군(王昭君)의 이미지의 변모 과정과 역사 기억의 시기별 특징을 고찰하고, 동시에 현재 왕소군을 활발히 기념하고 있는 내몽골 소군박물원에서의 현지 참여 경험을 토대로 내몽골 지역 주민들의 담론과 심리적 반응을 분석함으로써 비소수민족자치구역인 후베이(湖北)성에 있는 왕소군 기념물과 대비1)되어 나타나는 '다원일체론'적 민족주의를 밝히고자 한다.
상상된 영웅의 과거를 신비롭게 구성하여 국가의 권위를 표출하는 것은 근대 민족국가의 일반적 특징이지만, 다민족국가에서 국가적 영웅의 창출은 훨씬 더 복잡한 논리를 필요로 한다. 대표적인 다민족국가인 중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왕소군을 여성영웅으로 추앙하여 민족주의 구축의 국가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 자원으로 활용했다. 왕소군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로, 최초 등장한 한나라 시기부터 현재까지 그녀의 이미지는 계속 변모해왔다. 그녀는 민족적 저항, 다민족국가건설, 소수민족통합, 다원일체적 국가 구축 등의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되어 왔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맥락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져 왔으며, 소수민족 우세지역과 한족우세지역에서 그 상징적 가치가 다르게 활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 민족주의의 '재소환 및 재기'시기에 북방소수민족지역인 내몽골에서 그녀는 '다원일체' 민족주의 구축의 역사적 소재로 적극 활용되어 왔는데, 이는 페이샤오퉁의 '다원일체론'의 민족주의 이념을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t is common for modern nation-states to express the authority of the state by mythicizing an imagined hero's past. But the creation of national heroes in a multinational state requires much more complex logic. China, a representative multi-ethnic country, held up Wang Zhaojun as a heroine during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and used her as a historical resource to help establish a unified national identity. The image of Wang Zhaojun, a historical figure, her image has been constantly changing since her first appearance during the Han Dynasty. She has been used in various contexts, including national resistance, multi-ethnic country construction, minority integration, and pluralistic state construction. Most interesting is that her symbolic value has been used differently in minority and non-minority areas. In particular, in Inner Mongolia, a northern minority region of China, she was actively used as a historical resource for the establishment of “Diversity in Unity” nationalism during the “recall and comeback” period of Chinese 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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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평과 반론 : 예술가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의 어려움

저자 : 이진아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3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1-33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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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60-70년대 접경지역 전략촌의 형성과 냉전경관 - 강원도 철원지역 '재건촌'을 중심으로

저자 : 강인화 ( Kang Inhwa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4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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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60-70년대 강원도 철원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 접경지역의 비무장지대(DMZ)와 민간인통제선(CCL) 사이에 설치된 전략촌의 형성 배경과 설치 과정을 살펴본다. 한국전쟁과 냉전분단체제 속에서 형성된 남과 북의 접경지역은 '적'의 시선에 항시적으로 노출된 '접적(接敵)지역'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 안보위기 국면에서 박정희 정부는 '적'의 시선으로부터 일상적으로 포획되어 있다는, '적가시성(敵可視性)'을 의식하면서 이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이 지역에 전략촌 설치를 결정하였다. 전략촌은 휴전선 경계를 위한 방어책으로서, 정부는 '간첩' 침투를 감시하고 휴전선 인근을 방어하는 것에 더해, 접경지역을 '향토'로서 개발하고 발전된 일상을 전시하여, 국가안보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1960년대 후반대마리를 첫 시작으로 하는 전략촌의 형성 배경이다. 냉전·분단체제가 공고화되던 시기 전개된 냉전·분단의 공간 정치와 군사화된 통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의 접경지역에 설치된 전략촌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작업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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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냉전기 통일촌 건설을 통해 본 '전방'의 의미화 과정 - 장벽, 전시장, 캠프

저자 : 전원근 ( Chun Wonkeu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5-8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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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사회에서 '전방'이라는 관념과 공간 구성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논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분석으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이루어진 통일촌의 건설과 운영을 살펴본다. 한국전쟁 이후 장기화된 식량부족의 문제는 민통선 이북지역 개간의 필요성으로 이어졌지만, 이러한 경제적·인구학적 필요성은 남북간의 대치와 냉전이라고 하는 안보의 논리와 충돌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곧 전방의 개발과 군사화 속에서 '전략촌'이라는 형태를 통해 이 둘의 논리를 절충하였다. 먼저 전방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남한과 북한, 우리와 적을 나누는 한편, 국토 내부의 위험한 전방지역과 안전한 후방지역을 나누는 이중의 장벽으로 기능했다. 그것은 휴전선 일대의 군사화와 더불어 민북지역 개발과 민통선의 제도화로 나타났다. 또한 고도로 통제된 전방은 적과 외부세계뿐만 아니라 내부의 국민들을 향한 선전물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통일촌은 북한에서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에 당시 통치 권력이 꿈꾸는 이상촌의 모습으로 건설되었고, 그 성과들은 국민에게도 전시되었다. 마지막으로 통일촌은 특정 목표의 수행을 위해 인간과 사물의 이동성과 속성들을 통제하고 별도의 공간적 질서를 구축하는 예외공간으로서 캠프의 성격을 보여준다. 신체와 사상, 사회적 경력과 가족구성 등 다양한 기준을 통해 선별된 입주민들은 긴 시간 동안 국가와 군의 통제 속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 이 연구는 한국사회에서 전방이 가지는 정치경제학과 문화적 효과들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고 새로운 공간 구성의 논리와 상상을 위해 전방이 해체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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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영농중심형 재건촌의 형성과 생태마을로의 전환 - 철원 양지리 연구

저자 : 김영광 ( Kim Young-kwang ) , 정근식 ( Jung Keun-sik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3-126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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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철원군 일대에 소재한 전략촌 중 하나인 양지리의 형성과정과 사회적 변동에 관한 사례연구이다. 전략촌은 국가가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식량 증산 및 안보 강화를 위하여 비무장지대 인근의 민간인 통제구역에 조성한 마을로, 재건촌과 통일촌으로 구성되었다.
이 글은 지금까지 민북마을로 알려진 전략촌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주자 구성비율에 따라 유형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밝히고, 양지리가 대표적인 생태마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탐색하면서, 민통선 북상에 따른 마을의 변화를 검토하려고 한다.
양지리는 한국전쟁 이전에 있던 마을이 폐허가 된 후 약 20년 만에 재건된 마을로, 출입영농을 하던 농민들이 입주한 영농중심형 재건촌이다. 양지리는 마을 조성 후 약 25년이 지나면서 겨울 철새의 도래로 인하여 유명한 생태마을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을 인근에 토교저수지가 건설되어 영농에 유리한 환경을 갖게 되었다는 점 이외에 영농 기계화 및 주민들의 두루미 보호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 생활의 편리를 위해 이루어진 민통선북상과 마을의 개방은 축산농가의 유입을 가져오면서 생태마을로서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역효과를 낳았다. 우리는 양지리의 사례연구를 통해 접경지역 마을의 발전에서 상징적 자원의 보유가 중요하다는 점과 함께,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민통선 해제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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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유엔사 규정'(UNC Reg.)과 유엔군사령부의 비무장지대(DMZ) 관리

저자 : 한모니까 ( Hahn Monica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7-171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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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무장지대(DMZ) 관련 유엔사 규정들의 종류와 개정의 추이, 규정들에 나타난 비무장지대 출입통제와 무장화 양상을 분석한다. 첫째, 이를 통해 비무장지대에 관한 실질적인 관리 및 운영이 유엔사 규정들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살핀다. 정전협정이 비무장지대와 한반도 정전 관리의 근간이긴 하지만, 정전협정을 구체화하여 현장에 적용한 것은 유엔사 규정들이다. 둘째, 유엔사 규정들은 유엔군사령관이 애초 정전협정에 명시된 군사적 목적을 벗어나 정치적·행정적 목적까지 포함하는 통제권을 행사하는 근거가 되었다. 셋째, 반면, 유엔사 규정은 정전협정이 금지했던 비무장지대의 무장화에 대해서는 2000년대 이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고, 그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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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세전: 1919년 '만세'운동 이전 <묘지규칙>의 제도화 과정 - 1910년대 경성을 중심으로

저자 : 이향아 ( Lee Hyang A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5-216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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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12년 일제가 도입한 <墓地火葬場埋葬及火葬取締規則>, 즉 <묘지규칙>이 식민지 조선, 특히 경성에서 제도화되어가는 과정을 1919년 규칙 개정전인 1910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어 기존의 제도가 변화 혹은 승계되는 양상을 추적하기 위해 조선시대 묘제를 간단히 살펴보고, 1912년 <묘지규칙>이 기존의 묘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시켰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조선시대에는 묘지가 산 자와 죽은 자의 연대를 도모하거나 토지사유의 수단이었다면, 1912년 발포된 새로운 제도인 <묘지규칙>은 관념과 문화를 배제하고, 묘지를 통한 산 자와 죽은 자의 해체를 시도했으며, 묘지의 물리적 토지이용만을 핵심 기제로 설정했다. 이러한 제도변화를 위해 일제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조선인들의 경험은 신체 처벌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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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베트남전 위문공연에 관한 젠더론적 연구Ⅰ(1964-73)

저자 : 이진아 ( Lee Jin-a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7-24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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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64-73년 사이 수행된 베트남전 위문공연의 양상에 대해 젠더론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했다. 당시 이동하는 연예/위문단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인 남성을 위문하기 위해 베트남 현지와 한국 내부에서 반복적인 위문공연을 하였다. 베트남전 위문공연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한국연예협회와 공보부의 후원과 지지를 통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 레퍼토리는 주로 한국인 예능인의 대중가요와 댄스 등이었다. 이들은 순회하는 공연 문화를 통해 특정한 남성성, 즉 파월장병으로 표상되는 지배적 정체성을 생성하고 있었다. 이는 위문공연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남성 개별자를 넘어 이들의 가족과 형제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위문하고 위문 받는 주체 위치에서 박정희 정권의 국민으로 호명되고 상상되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성과 남성성이 결합된 기표였던 파월장병은 1960-70년대 위문공연을 통해 '한국―베트남'이 연결되는 사회적 공간 안에서 '맹호, 청룡, 백마, 비둘기'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되면서 일종의 위문예능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이는 서로 일면식도 없었던 이들에게 파월장병이라는 신체 감각과 동질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호명기제이자 문화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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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정부의 '자활정책'과 형제복지원 내 사업의 변화

저자 : 소준철 ( So Jun Chol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3-27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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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정부의 '자활정책'과 형제복지원이 실시한 '자활사업'의 관계를 다룬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배회하는 도시하층민이 늘어난 상황에서 정부는 사회복지시설이 도시하층민을 관리하게 하고 정부는 사회복지시설을 관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 시설들의 수용자들이 성공적으로 자활했다는 사례를 찾기란 어렵다. 이 논문은 이러한 흐름을 염두에 두고, '자활'은 정부와 시설의 공모로 구성된 이념이라는 견지에서 당시 사회복지기관 중 선도모델로 여겨졌던 형제복지원을 검토한다. 특히 국가의 목적과 시설의 목적을 드러내고, 이러한 목적 아래에서 수용자들에게 제공되는 '자활' 사업의 의미와 한계를 살펴본다. 다음으로, 시설 내에서 '자활사업'이 다각화되며 시설이 수용자를 어떻게 대상화하는지를 살펴보고, 국가-시설의 공모에 지역사업체가 연루되는 상황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자가 '자활'에 성공하지 못하게 된 구조적인 이유가 무언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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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여성노동운동가 김지선의 젠더경험과 생애사적 과제 - 이야기된 생애사를 중심으로

저자 : 김영선 ( Kim Young-su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1-330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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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김지선의 이야기된 생애사를 채록하여, 근대 한국의 중요 정치사회적 국면을 관통하며 구성된 한 여성노동운동가의 젠더 경험을 역사적·사회적 시공간적 맥락 안에 위치시켜 살펴보는 것이다. 2018년도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 수집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본 구술의 채록과정에서 김지선은 국가폭력의 트라우마와 가족해체의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회한, 유년시절의 친족 성폭력 경험에 대해서 말했고, 생산된 동영상과 녹취록을 삭제 없이 아카이브 자료로 남기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였다. 본 연구는 자기 생애 경험을 이 세계를 만들어 온 여성/노동자들의 역사의 한 부분으로, 동시에 노동운동의 역사를 자신의 기억을 매개해 재현하고자 했던 구술자의 적극적 행위자성을 김지선의 생애사적 과제로 접근했다. 특히 당시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던 '미투' 국면에서 친족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하기'를 결심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운동가로서 김지선의 정체성 재구성의 궤적과 더불어 피해자 연대로서의 '미투'의 확장성을 둘러싼 젠더정치의 의미를 재해석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연구과정 전체를 관통한 방법론의 질문이었던, 실명 구술자가 아직[은] 말할 수 없는 것들과 이야기된 것들에 대해서, 구조화된 위계와 해석의 권력을 가진 면담자이자 동시에 연구자는 이를 어떻게 듣고 또 해석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함께, 말하기를 가능케 하는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술자의 시간'은 언제 어떻게 도래, 혹은 유예되는가를 둘러싼 이슈를 성찰적으로 제기했다. 그동안 구술사 방법론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었던 '구술자는 언제 말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시간성의 물음에 대한 논의를 요청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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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한국 종족집단의 연구사 개관(1930~2015) - 사회인류학적 연구를 중심으로

저자 : 이창기 ( Lee Chang Kee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33-37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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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종법(宗法)이 널리 보급되고 부계혈연의식이 강화되면서 종족집단은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국 종족집단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1930년 이후에 나타난다. 이때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몇몇 한국인 학자들과 일본인 학자들이 종족마을을 조사해서 여러 편의 논문과 자료집을 발표하였다. 이때 발표된 연구들은 종족집단의 실태를 소개하는 조사보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광복 이후 1960년까지는 사회적·경제적 불안정으로 한국 종족집단에 관한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 종족집단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1960년 이후이며, 1970년대에 들어와서 연구자의 수가 증가하고 연구 주제도 점차 구체화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비해 연구자가 더욱 증가하고 연구의 주제가 더욱 다양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종족집단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종족집단의 체계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구의 시야를 확대하여 중국 및 일본의 종족집단을 조명하는 논문이 여러 편 발표되고 있다. 특히 종족집단을 주제로 한 석사학위 논문과 박사학위 논문이 대폭 증가하였다. 2000년 이후에도 종족집단 연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난 연구의 중요한 특징은 연구자들에 따라서 연구의 대상을 특정 지역이나 특정 주제에 집중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종족집단의 연구를 좀 더 구체화하고 심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족집단에 대한 젊은 학문 후속 세대의 관심이 낮아져서 석·박사 학위논문의 발표가 크게 줄어들었다. 앞으로 한국 종족집단을 연구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연구주제를 좀 더 세분해서 하위영역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꾸준히 축적할 필요가 있다. (2) 특정 지역, 특정 계층에 치우친 연구경향을 벗어나서 다양한 지역, 다양한 계층의 종족활동에 대한 연구 성과가 고르게 축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3) 연구의 시야를 넓혀서 종족집단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문화체계와 종족집단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4) 21세기에 한국 종족집단이 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 갈 것인지 탐색하는 것도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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